조선의 뒷골목, ‘아만’의 등불을 밝히다! 4-② [色 다른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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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자유기고가)

요절한 천재 시인, 시문(詩文)을 태우다

‘아악~ 안돼요!’
품앗이로 종일 기름 냄새 절어가며 부침개 부쳐주고 얻어온 떡 보따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공터에 쭈그려 앉은 누더기 승복의 왜소한 남자, 불길에 어른대는 옆얼굴이 틀림없이 남편 이언진이었다. 피를 토하듯 집필한 서책들이 화마에 스러지며 절반 이상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물거릴 틈도 없이 집안으로 뛰어든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타다 남은 서책을 치마폭에 쓸어 담고 골목어귀로 달려 나왔다. 사흘 밤낮을 앓으며 죽으로 연명해 온 남편이 죽을힘을 다해 태워 없애는 그의 전부, 그의 분신들. 눈물바람을 하고 허둥지둥 집에서 멀어지는 그녀의 뇌리 속에는 ‘이언진’ 이름 석 자마저 지워버리고 떠나려는 절통한 남편의 소리 없는 절규가 가득하다. 아깝고 서러운 내 남편, 내 사랑이여!

조선 영조 때 태어나 스물 여섯 해를 살다 요절한 천재 시인 이언진(李彦?, 1740-1766). 시문 가운데 일부나마 남게 된 건 그나마 그의 부인 덕이다. 앞의 상황은 부인의 애절함을 상상하며 그려본 장면이다. 신분질서의 부조리에 저항했던 조선시대의 이단아, 이언진은 그렇게 부인 덕에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흔적마저 말끔히 거둬 산화하려는 마지막 저항, 그 숨 막히는 긴장과 위기 속에서 목숨을 건진 이언진의 분신들은 부인과 후세의 집념어린 학자의 손을 거쳐 어렵게 세상에 전해졌다. 그리고 앞서 우리는 박희병 교수의 전작 <저항과 아만>을 통해 이언진의 시를 만나고, 오늘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평전>을 통해 그의 불꽃같은 삶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미 <저항과 아만>(돌베개 펴냄)을 통해 그의 <호동거실>의 일체를 소개했음에도, 작품 소개만으로는 불꽃처럼 살다간 저항 시인 이언진을 알리는 데 허기를 느꼈다며 박희병 교수는 평전을 펴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나는 골목길 부처다>는 한국 고전 인물전(傳)의 형식을 활용하여 입전(立傳), 인물의 생평(生平)을 시간적 계기 속에서 개괄하고, 인물의 본질적 면모를 공시적으로 고찰한 후에 논평을 붙이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 인물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영향을 주고받던 대상과 세계로 확대되는 것은 독자의 관심과 지적 호기심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언진의 스승이자 당시 명망 있는 문인이던 이용휴(李用休, 1708~1782)는 “세상에 드문이런 보배를/어찌 오래도록 빌릴 수 있으랴” 하며 요절한 제자를 안타까워했다. 일찍이 역관을 많이 배출한 강양(江陽, 오늘날 경북 합천) 이씨(李氏) 출신의 이언진은, 부친이 관왕묘(관우를 모신 사당)에 가서 문장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해 얻은 아들이었다. 서얼로 차별받는 중인신분 역관의 아들로 태어나 20세에 역과에 합격한 천재문인 이언진의 모진 운명은, 잉태를 바라는 기도에서부터 정해졌던 것이다. 양반이 아니면 출세가 불가능한 시절에, 역관이었던 이언진의 아버지는 왜 하필 ‘문장가’를 바랬던가? 날개 달린 새에게 걷기만을 요구할 때에는 미치거나, 죽는 길밖에 없다. “오래 빌릴 수 없는 보배” 라는 스승의탄식은 그의 비극적 운명의 정곡을 찌르는 듯하다.

 

일본 열도에서 하루 천 개의 부채에 시를 남기다

박희병 교수에 따르면, 이언진에 대한 입소문은 조선이 아닌 일본을 통해 역으로 날아 들었다. 지금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이언진의 장편시 ?바다를 구경하다?(海覽篇)는 조선과 일본의 문단을 술렁이게 하며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알렸다. 당시 일본에 동행한 원중거는 “… 좌중이 돌려가며 이 시를 읽었는데 정말 奇才다… 이 같은 재주를 지니고도 머리를 굽혀 역관 직에 종사하다니 애석하다”고 했다. 또 1천 개의 부채에 시를 적고, 5백수의 율시를 지으면서, 자신이 지은 시를 하나도 착오 없이 외운 이언진에게 일본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경탄했다고 전해진다. 동시대인인 박준원은 “이 사람은, 총명하기로는 글을 한 번 보면 금방 외고, 민첩하기로는 일곱 걸음을 떼기 전에 시를 짓는다”는 글을 남겼다. 문장으로 단번에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던 것이다.

이언진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통신사를 대표해 학식을 논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본의 문인들이 이언진과의 만남을 소원하고, 그 내용들을 자신의 문집으로 남겼을 정도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언진과 필담을 나눈 일본의 다섯 문사(文士)를 소개하며 그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필담’(筆談)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순발력과 학식을 총동원해야 하며, 오자가 나와도 고치기 민망한 현장에서 이루어진 ‘진검 승부’이기에 특출한 재능 없이는 주목받기가 쉽지 않다. 이언진과 필담을 나눈 일본 문인들 또한 만만치 않은 명사들로, 이언진은 자신의 사상과 뜻을 과감히 피력하고, 때로는 치고 빠지는 식의 전술을 구사하며 ‘아만’ 특유의 고집스런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이언진이 다이텐과 나눈 필담에서, 다이텐이 조선 문학의 일인자가 누구냐고 묻자 “주(周)는 물고기가 아니니 어찌 물고기를 알겠습니까” 라고 엉뚱하게 답한다. 다이텐이 그것은 “주(고대 중국의 장자)가 한 말이 아니지 않느냐며 자기를 상대하기 싫어서 그러냐”고 서운해 하자, 이언진은 정말 아는 것이 없어 그렇다고 발뺌을 한다. ?장자?에 나오는 고사로 혜자가 장자에게 한 말이라는 것은 이언진도 잘 알고 있지만, 일부러 논의를 회피하기 위해 말을 바꾼 것이었다. 박식함과 천재성을 갖춘 이언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며, 박희병은 당시의 필담들을 조목조목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바다를 구경하고, 아득한 산하를 넘어 ‘조선’을 뛰어넘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 앞서 두 번이나 다녀온 중국 기행을 통해 이언진의 조선 바깥 세계에 대한 사유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고 한다. 김인겸이 ?일동장유가?에서 “우리나라 도성 안은 동에서 서에 오기 10리라 하지만 채 10리가 못 되며…” 라고 일본과 우리나라를 견주어표현했는데, 이언진은 북경과 조선이 4천여 리나 떨어져 있으며 산하가 아득하여 무인지경(無人之境)을 가야 한다며 “천 리 아득히 마을이 없어/날다람쥐 울어대고 독수리 나네” 라는 시를 읊으며 중국의 광대함을 상대적으로 드러냈다. 중국을 통해 기하학, 서학, 천문학 등에 두루 지식을 쌓은 이언진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개방적이며 앞선 세계인식을 갖게 된다.

지구의 수많은 나라들이
바둑돌과 별처럼 벌여 있네.
월나라에서는 상투를 틀고
인도에서는 머리를 깎네.
제나라와 노나라 옷은 소매가 넓고
북방의 호(胡)와 맥(貊)은 털옷을 입네.
혹은 문채 빛나고 예(禮)가 있으며
혹은 시끄럽게 지껄이누나.
무리에 따라 나뉘고 끼리끼리 모여 살아
지구상에 온통 인간들일세.

저자가 말하듯 ?바다를 구경하다?의 서두를 보면 이언진이 조선이라는 좁은 세계, 그것도 서울의 여항인으로 사는 자기 현실의 한계를 스스로 넘어설 꿈을 꾸게 된 것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더 넓은 세상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음이 잘 드러난다. 안으로는 눈에 불을 켜고 학문을 연마했으며, 밖으로는 역관이라는 신분을 통해 변화하는 18세기를 온몸으로 체득했던 이언진의 삶. 이를 저자는 ?호동거실?을 다룬 전작에서 ‘저항’과 ‘아만’이라고 명명한다. (<평전>에 소개된 시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박희병 교수의 <저항과 아만-호동거실 평설>을 읽어보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이언진이 일본에 다녀 온 후 자신의 시문을 모아 엮은 ?송목관집?은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스승 이용휴의 서문이 남아 있어 우리는 당시 이언진의 면모를어느 정도 알게 한다.

“시문을 짓는 사람 중에는 남을 좇아서 견해를 일으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를 좇아서 견해를 일으키는 자가 있다. 남을 좇아서 견해를 일으키는 자는 비루하여 논할 것이 없지만, 자기를 좇아서 견해를 일으키는 자라 하더라도 편벽됨이 섞이지 않아야 참된 견해에 이를 수 있다. 거기에다 또 반드시 참된 재주가 뒷받침을 해줘야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을 찾은 지 여러 해 만에 송목관주인(松穆館主人) 이군 우상을 얻었다. 군은 이러한 도(道)에 있어서 출중한 학식과 현묘한 사색이 있어 먹을 아끼기를 금처럼 하고 구절을 다듬기를 단약(丹藥)처럼 하니, 일단 붓을 종이에 대기만 하면 후세에 전할 만한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그를 알아줄 만한 사람이 세상에 없었기때문이다. 또 남에게 이기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이길 상대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112-113쪽)

이용휴는 저 유명한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을 숙부로 둔 당시의 대표적 문장가이니 그의 이 같은 평가가 애제자에 대한 과찬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저자가 이 부분을 소개하며 이언진이 ‘내적 망명’ 상태에 있다고 한 것은 아마 세상에 알려지길 꺼리고, 남을 이기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스승의 전언을 토대로 한 것 같다. 박희병이 이언진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용어 ‘아만’(我慢)은, 대적할 자 없을 정도로 학식을 쌓고, 선진 외국을 섭렵한 의식의 고양에도 불구하고 발딛고 선 당시 조선의 신분의 벽 속에서 이언진이 느껴야 했던 절대 고독과 자폐에 가까운 고립의 정신세계, 거기에 덧입혀진 병마와의 싸움으로 점철한 그의 인생을 잘 응축하여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아아, 아만한 이언진!

최근에 읽은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에서 나카지마 아츠시는 ‘존대한 수치심’과 ‘겁많은 자존심’ 이란 표현을 소개한다. 당(唐) 현종 때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 젊은 나이에 진사에 급제했으나 남과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관직을 내던지고 은둔하며 시인이 되고자 했던 ‘이징’이란 인물의 삶을 그린 ?산월기?에 나오는 말이다. 자신의 광기와 울분을 참지못해 호랑이가 되어버린 이징은 ‘겁 많은 자존심’으로 연명하며, ‘존대한 수치심’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어 맹수가 되고 말았다는 고백을 한다.

참으로 글 쓰는 자의 천형과도 같은 운명을 명징하게 드러낸 말인 듯하다. 안으로는 자신에게 상처입고, 밖으로는 세상과 타자로 인해 거듭 고꾸라지는 자존심과 수치심 덩어리, 그것이 글 쓰는 자의 운명이다. 박희병이 소개하는 이언진, 그리고 그의 시문을 통해 전해지는 이언진의 정신 또한 이와 다를 바가 없는 듯이 느껴진다.

 

골목길의 소외된 삶에서 ‘주체’를 찾다

이언진의 대표작 ?호동거실?은 170수의 연작시로, ‘호동’이란 ‘가난한 하층민의 골목길’을 뜻한다. 이언진의 호가 ‘호동’이니, 스스로 사대부를 지향하는 중인이 아닌 서민과 같은 피지배층으로 간주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는 중국 구어인 ‘백화(白話)’체가 등장하고, 6언 시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 문단의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고 형식에서 이미 새로움과 저항, 자유 등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이언진의 시 작업이 논리와 이성에 중심을 둔 산문 글쓰기와 달리 직관과 정서에 기초한 구술과 전근대 글쓰기인 ‘시’의 전통을 이어나간 새로운 진리인식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지키려 한 이언진에게 ‘시’는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노자(老子), 묵자(墨子), 형명가(刑名家)는 저마다 작가
가을꽃은 봄꽃만 못하지 않네 (<송목관진여고> 중에서)

길 위의 행상과 거간꾼들은
칭찬과 비난에 개의치 않네 (<호동거실> 제30수)

미칠 땐 기생한테 가고
성스러워질 땐 불전(佛前)에 참배하네 (<호동거실> 제149수)

쌀 빚과 땔감 빚에 개의치 않고단지 책과 그림만 사니
처자가 어찌 알고 고시랑거리며
나를 보고 미쳤다 오활타 하네 (<호동거실> 제167수)

철저한 신분제 사회 조선을 야유하고, 유교 이외엔 이단인 세상에서 노자와 묵자를 칭송하며, 체면과 권위에 짓눌린 사대부를 호동의 서민과 상인에 빗대어 조롱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본성과 삶의 고단함을 ‘시’로 압축해 이만큼 전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저자의 번역의 힘이 큰 몫을 하겠지만.

이언진의 주체의식은 사대부와 서민 사이에 낀 모호한 정체성에서 탈피함으로써 가능했다. 사대부가 되지 못한 열등감, 피해의식에 매몰되지 않은 항장한 기개로 조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평민에게서 주체의식을 찾아내고 체화해 나간 것이다. 다만 끝내 떨쳐낼 수 없는 아쉬움은 불교라는 종교를 통해 현실을 도피한 흔적들이다. 홀로 향불을 피워놓고 승복을 입고 참선에 든 20대의 이언진을 떠올리면, 세상 고통을 모두 초월한 듯 우아하게 노년을 장식하는 한 때의 투사들이 겹쳐진다. 종교는 스스로 날개를 접고 들어앉기에 더없이 안락한 쉼터를 공공연히 제공한다. 비겁과 실패를 감추기에 그만이지 않은가. 중세의 거울로 오늘을 비춰보아도 좀 탁하기만 할 뿐 보이기는 다 보인다.

모든 것이 경쟁인 사회, 돈과 외모, 인맥, 학벌이 우열을 판가름하는 사회,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소통은 없고 소외는 넘쳐나는 사회, 그래서 수치심도 자존심도 없는 사회, 소외된 사람들에게 오늘날 현실이 서얼 이언진의 조선과 무엇이 다를까! 그곳에 ‘호동’의 푸른 씨앗을 다시 심을 수는 없을까? ‘아만’의 등불을 높이 들고, 친구들과 뛰어놀던 골목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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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이번부터는 <色 다른 책 읽기>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루는 책은, 박희병 지음,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돌베개 펴냄)으로, 최은정(숭실대 중문과 강사), 이현숙(자유기고가), 이경아(돌베개 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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