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그 불완전한 확실성 8-② [色 다른 책읽기]

손산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사례 1.

사건 번호: 04cv2688.

키츠밀러 대 도버 교육청(Kitzmiller vs Dover Area School District)

담당 법원 및 판사: 펜실베니아 중부 지방 법원, 존스(John E. Jones III) 판사

사건 개요:

2004년 11월 19일, 도버 교육청(피고)은 고등학교 과정 ‘생물’ 교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이를 이듬해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한다. 간략하게 추려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윈의 이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며, 따라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그 진위를 판단해야 한다. 다윈의 이론은 사실(fact)이 아니다. 다윈의 이론에 있는 틈새들은 그에 합당한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기에 존재한다. 이론은 광범위한 관찰들을 통합하는, 잘-다듬어진(well-tested) 설명으로 정의된다. 지적 설계론은 다윈의 견해와는 다르게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다. …… 학생들은 어떠한 이론이던지 간에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이 권장된다.’ 따라서, 도버 교육청은 2005년부터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다윈의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동등한 지위에서 가르치도록 결정한다. 도버 교육청의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여 키츠밀러를 위시한 학부모들(원고)은 교육청의 결정은 미국 수정 헌법 1조(미연방은 국교를 수립할 수 없다) 및 14조(법률에 따른 평등한 보호)를 위배하고 있기에, 그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를 제기한다.

판결 및 그 이유: 존스 판사는 139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통해, ‘지적 설계론’을 교과 과정에 넣은 교육청의 행위는 레몬 대 쿠르츠만(Lemon vs Kurtzman 403 U.S. 602 (1971)) 판결이 제시한 일련의 기준 (레몬 테스트라 알려져 있다: 정부의 행위는 세속적인secular 입법 목적을 가져야 하며, 종교를 장려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종교와 ‘과도하게 얽혀있지’ 않아야 한다)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미국 수정 헌법 1조 및 14조를 위배하고 있다고 판시한다.

사례 2.

1975년 어느 가을, 183명의 과학자들(18명의 노벨상 수상자 포함)이 바트 복(Bart Bok 천문학자), 로렌스 제롬(Lawrence Jerome 과학 작가), 그리고 폴 쿠르츠(Paul Kurtz 철학자)가 작성한 성명서에 서명을 한다. 이 성명서를 통해 이들은 ‘점증하는 점성학(astrology)의 영향력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점성학은 ‘신비적 세계관’의 산물로, 별들의 힘이 우리에게 미치기에는 ‘우리와 별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고’, 그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기에,’ 별들이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중 상당수는 사례 1과 2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아마도 재확인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은 이런 거야!’ 하는 안도감과 함께. 러셀의 종교와 과학을 읽고 난 사람들의 감상도 아마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선명하게 대비시켜 배열된 종교와 과학 사이의 ‘투쟁사’는 깔끔한 그의 문장처럼 아주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우리는 그렇게 ‘계몽’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사례 1과 2를 이용해, 러셀이 주장하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투쟁’을 조금 더 깊숙이 파고 들어보자.

 

과학이란 무엇인가?

러셀은 과학을 ‘관찰과 그것에 기반을 둔 추론을 통해 우선은 세계에 관한 특정한 사실을, 그 다음은 그런 사실들을 상호 연결해주고 (운이 좋으면) 미래의 현상들까지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9쪽).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과학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의 정의가 사례 1과 2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사례 1에서 등장하는 ‘지적 설계론’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순간 (생명의 기원)’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지적 설계론을 과학으로부터 추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의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한정할 수 있는가? 사례 2의 경우는 ‘별들’과 ‘인간들’을 그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에 일단 과학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점성학은 별들과 인간을 이어주는 ‘경험적 법칙’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때에 따라 점성학자의 예측은 성공하기도 하지만 ‘운이 없어’ 실패하기도 한다. 앞의 성명서에서 언급된 점성학의 ‘신비적 기원’ 또한 문제시 되지 않는다. 만일 그 기원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연금술에 기원을 둔 화학 또한 그 과학의 지위를 박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점성학을 과학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나아가 ‘관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과학자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예를 들어 이론 물리학자들), 우리는 그들에게 교황이 호킹(S. Hawking)에게 했던, ‘빅뱅 이후의 우주의 진화를 연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빅뱅 그 자체 및 그 넘어는 연구하지 말라’는 충고를 되풀이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러셀을 따라, ‘정확한 실험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적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98쪽)라고 선언해야 하는 것일까?

 

세속의 탄생: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사례 1로 되돌아가 보자.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재판의 결과보다도, 미국의 입법가들이 그리고 존스 판사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던 간에 사용하고 있는 ‘세속적이어야’ 한다는 문장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속적’이라는 표현은 ‘성스럽다(holy)’라는 표현과 대비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이 낱말들의 어원이 ‘전체로 완전함‘을 뜻하는 15세기 독일말 heil과 ’나이 먹음‘을 뜻하는 라틴말 saeculum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해낸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 낼 수 있다.

우리 기억 속의 인간들은 그들이 이 땅에서 보낸 시간의 양 만큼 그들을 둘러 싼 세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했다. 종교 또한 이러한 인간의 열망 속에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으며, 그리고 성장한다. 역사 속에서 ‘종교’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이 땅에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믿음의 체계’로 자신을 발전시켜 나아왔다. 종교의 ‘영성 체험,’ 또한 ‘약물’을 사용하던 ‘세계 종교(world religion)’에서 약물 사용이 필요 없는 종교로 통합 발전해 왔다. 이러한 발전 과정의 연장선 위에서 우리는 ’종교의 세계 이해‘를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는 (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 구분은 메리 더글라스(M. Douglas)의 지적처럼 ’완전한 것을 따라서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던‘ 고대 유대인들이 ‘그들의 생물 구분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동물들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더글라스는 고대 유대인들이 비늘 없는 물고기를 ‘완전한’ 물고기로, 날지 못하는 새를 ‘완전한’ 새로 볼 수 없었을 것이라 지적하며, 만일 중동에 펭귄이 살고 있었으면 틀림없이 펭귄 또한 부정한 짐승의 목록에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러한 종교의 이해가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종교에서, ‘완전한’ 그들의 신관(神觀)과 ‘공존하는 그들의 세계 이해’를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성스러운 것으로부터 나이를 먹는, 따라서 변화하는, 덕분에 ‘세속적인’ 우리의 세계 이해를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경험 속의 완전함의 추구에서 불완전한 확실성의 추구로

‘실체substance는 통사론에서 나온 개념이며, 통사론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구조를 결정한 원시 종족들의 다소 무의식적인 형이상학에서 나왔다. 문장은 주어와 술어로 나뉘는데, 어떤 단어들은 주어 혹은 술어로서 존재하는 반면, 오직 주어로만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니라 할지라도) 존재하는 단어들도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단어들 – 고유 명사가 가장 좋은 예인데 – 이 ’실체‘를 의미한다.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단어는 ’물체thing’ –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인격체person’ – 이다. 실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은 어떤 물체나 인격체가 의미하는 바에 정확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102쪽). 이제 우리는, 다소 두서없이 등장한 러셀의 이러한 지적을 그의 ‘종교와 과학’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갈등의 예들과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을 ‘경험 속의 완전함의 추구 (성과 속의 일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으로부터 속을 분리해 냄으로써 갈등의 해소 또한 간단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간단함이 인간 지식의 역사라고, ‘불완전한 확실성’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세속적인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무리 있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사실 오류라는 영원한 희극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103쪽)라는 러셀의 표현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언:

참고로 미국 수정 헌법 1조 (국교 수립의 금지)와 관련된 판례들 중, 멕레안 판례(McLean vs Arkansas Board of Education 1982)가 처음으로 ‘과학’에 대한 전문가 증언을 ‘비’ 과학자인 마이클 루스(Michael Ruse)로 부터 구했다 (그는 과학 철학자이다). 점성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 ‘초능력 협회’ 또한 미국 과학 진흥 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협회는 황우석 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SCIENCE’라는 학술지를 펴내고 있다)의 준회원 기구로 아직까지(2011년 현재) 남아 있다.

참고 문헌

메리 더글라스 (1997 [1966]) 순수와 위험. 유제분, 이훈상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버트런드 러셀 (2011 [1935]). 종교와 과학. 김 이선 옮김. 파주: 동녘.

Bok, Bart J., Jerome, Lawrence E., and Kurtz, Paul (1975). “Objections to Astrology”. The Humanist. (September) 4-6. available at http://psychicinvestigator.com/demo/AstroSkc2.htm

Tammy Kitzmiller, et al vs Dover Area School District (400 F. Supp. 2d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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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덟 번째 책은 버트란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김이선 옮김, 동녘 펴냄)으로, 이한오(성공회 신부), 손산(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오상현(상지대 강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종교가 종교답고 과학이 과학다운 세상을 그리며 8-③ [色 다른 책읽기]

오상현 (상지대 강사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우리 집 종교의 역사는 좀 화려한 편이다. 아버지는 결혼 전에 한동안 남묘호랑게교(SGI)에 심취하셨고, 어머니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흔치 않은 종교인이셨단다. 그런 두 분이 만나 결혼을 하셨고 그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종교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를 얻으셨다. 얼마 전까지도 이모 한 분의 종교는 대순진리교였고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작은아버지의 가족들은 원불교도시다. 다양한 종교인을 친인척으로 두었던 과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포부도 당당했던 철학과 신입생 시절에 내 관심은 온통 ‘종교철학’에 있었다.

 

종교와 과학, 그 진부한(?) 이야기

아직도 서점에 가보면 ‘종교와 과학’에 관한 신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대개 종교와 과학을 대립적 구도로 나누고,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승리를 안겨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진화론’ 연구도 상당히 ‘진화’했다. 이에 응전하기 위해 종교도 ‘창조론’에서 ‘지적 설계론’ 등의 대항마를 만들어 전쟁을 치렀지만 대부분의 승리는 과학의 몫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과학적 성향은 신중하고 잠정적이고 점진적이다. 자기가 획득한 최고의 지식조차도 전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이론은 머지않아 수정되어야 하며, 이 필연적인 수정 과정에는 연구와 토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219p.)

‘종교’와 ‘과학’은 사실 서구 사회를 이룬 두 가지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적이고 초월적인 기독교 사상을 말하고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에 기원을 둔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일컫는다. 러셀도 이런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에서 그는 ‘종교’를 기독교에 한정하고 있으며 ‘과학’을 합리적 토론과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요컨대, 종교와 헤브라이즘, 과학과 헬레니즘은 치환이 가능한 것이다.

길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과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일본인이 대화의 두 주인공이다. 만약 이들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하고 있노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쉽게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의미 있는 논쟁이 오고가기 위해서는 먼저 말이 통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진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삶은 늘 ‘판단’의 연속이다. “지난 주 ‘나는 가수다’의 1위는 박정현이야.”라는 식의 판단은 ‘다시 보기’를 통해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려낼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사실판단’이라고 한다. 반면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쁜 여배우는 송혜교야.”라는 판단은 그야말로 자기 주관적 호불호(好不好)에 의해 내려지는 판단으로 우리는 이것을 ‘가치판단’이라고 한다.

‘가치’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전적으로 지식의 영역 밖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이것 혹은 저것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에 상관없이 언제나 참인 어떤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4p.)

러셀의 주장대로 ‘가치’의 영역은 과학이 추구하는 ‘사실’의 영역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앞서 종교와 과학의 논쟁을 진부하다고 혹평한 까닭은 두 주장이 실은 전혀 다른 영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하려 애쓰는 모습이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으면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우격다짐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논쟁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펼치면서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논쟁의 당사자는 상대의 합리적 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래야만 ‘논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논쟁’은 합리적이어야 하며 러셀의 표현처럼 ‘과학적 성향’이 필요한 영역이다. 종교가 늘 과학과의 논쟁에서 지는 까닭은 싸움의 규칙 자체가 과학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무장한 근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가치판단’의 문제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무모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러셀이 이 책을 쓴 진짜 이유

서양 근대의 합리주의는 데카르트에서 비롯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명제로 유명한 그는 『방법서설』에서 “학문에서 어떤 확고부동한 것을 이룩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견해를 벗어나 아주 기초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껏 믿어왔던 경험적 사실들을 모두 부정하고 명석하고 판명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라는 것이다.

과학적인 방법을 제외하고는 진리에 도달하는 어떤 다른 방법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감정의 영역에서 종교의 근원을 이루는 경험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험은 잘못된 믿음과 결함하여 선뿐만 아니라 많은 악을 낳았다. 그런 결함에서 풀려난다면, 바라건대 오직 선만이 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166p)

러셀은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단지 무의미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그가 데카르트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인물이었고 그로 인하여 <종교와 과학>의 대부분에서 과학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종교가 잘못된 믿음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많은 악에 대한 우려가 있었을 뿐.

러셀은 초기에는 수학이나 논리학, 과학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이와 관련한 많은 책들을 집필했다. 또한 철학사가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는 <서양철학사>를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윤리학이나 정치?사회?교육 등의 분야에도 전문서적을 펴냈으며 급기야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셀이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거나 학문에 대한 욕심과 노력이 남달랐음에 있지 않다. 그의 삶이 던지는 묵직한 메아리는 그가 단지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한 지식인이었다는 것에 있다.

<종교와 과학>이 의미 있는 까닭은 러셀이 단순히 종교와 과학의 다툼을 나열하고 과학의 승리를 언명하고자 함에 목적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에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담겨있다. 핵무장을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던 평화주의자였고 옳지 못한 국가권력에 맞서 ‘불복종운동’을 주장하기도 했던 그의 실천적 행위는 그 내면에 자리했던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다.

오늘날의 위협은 정부로부터의 위협이다. 혼돈과 무질서라는 현대적 위험 요소 때문에, 오늘날 정부는 이전에는 교회의 권위에 부여됐던 신성불가침의 특성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낡은 형태의 박해가 사라졌다는 것에 만족하며 자축하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박해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자를 비롯하여 과학적 지식을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이들의 명백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223p.)

새로운 진리는 종종 불편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얼룩진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총명하면서도 방종한 우리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 (224p.)

러셀은 ‘신성불가침의 특성을 이어받은 새 권력들’을 ‘신흥종교’라고 불렀다. 러셀이 비유한 ‘신흥종교’는 오늘날 ‘국가 권력’이나 ‘자본 권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러셀은 이런 ‘신흥종교’가 자행하는 수많은 악행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자기계발서가 넘쳐나고 있는 요즘 누군가 말했다. “누가 이 좋은 말들을 몰라서 이러냐? 실천하기 어려워서 그러지.”라고. ‘앎’이 진정한 ‘앎’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현자(賢者)들에 의해 회자되었다. 그러나 실천은 늘 어려운 법?!

 

반성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자.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政)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답하길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논어』, 「안연」)

위에서 공자가 강조한 것은 ‘자기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정치가 바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이른바 공자의 ‘정명(正名)’이다. 나는 종교와 과학의 미래도 ‘정명하는 것’에 그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본다.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종교를 이유로 자행된 전쟁들과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당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잘못된 ‘이웃사랑’을 펼쳤던 그들을 칭찬하실 수 있을까? ‘종교’란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식을 주며 권력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잊지 않고 따스한 온정을 베푸는 사회의 정화장치가 아니던가?

과학은 인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발전해왔다. 그것도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 준 것도 과학의 힘이고, 짧은 시간에 멀리 데려다주는 것도 과학의 힘이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도 과학의 힘이고 방사능물질 오염도 또한 과학의 힘이다. 오늘날 과학은 이처럼 인간을 위하던 초심을 잃고 자본이나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종교가 신성하고 고귀한 겉옷을 벗고 낮은 데에 임하는 것,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하고 아픔이 있는 곳에 위로를 건네는 것, 그것이 종교다운 것이며 종교가 지향해야 하는 길이다. 과학도 이제 권력과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 ‘돈 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택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종교건 과학이건 무턱대고 믿는다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까닭이 ‘사유함’에 있다면 자기가 믿는 바―그것이 종교건 과학이건―가 혹 저지를지도 모르는 잘못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종교가 종교답고 과학이 과학다운 세상은 아직도 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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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덟 번째 책은 버트란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김이선 옮김, 동녘 펴냄)으로, 이한오(성공회 신부), 손산(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강사), 오상현(상지대 강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섬세한 삶의 감각을 찾는 연습 7-② [色 다른 책읽기]

박혜정 (산책자 에디터)

두툼해도 단숨에 읽히는 책이 읽는가 하면, 얄팍해도 읽는 도중 읽기를 멈추어 가며 생각에 잠기게 되는 책이 있다. <무미 예찬>을 만들고 있을 때에는 교정지를 보고 있다가도 문득 눈을 들어 허공을 보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구체적인 생각을 몰아간 것은 아니었다. 교정지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느슨한 행간과 넉넉한 여백, 전체적으로 건조하면서도 색이 적은 담채화처럼 적당한 물기가 있던 프랑수아 줄리앙의 사유가 내 눈길도 어떤 ‘생각 사이의 여백’으로 향하도록 했던 것이다. ‘산책자의 에쎄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인 <무미 예찬>은 그런 책이었다.

사실 산책자의 에쎄 시리즈는, 학부 졸업 정도의 교양 수준에다 당시 책을 만들기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초보편집자에게는 제법 어려운 텍스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도 <무미 예찬>은 그보다 묵직하고 사회적인 에쎄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와,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를 만든 후에 시작한 책으로 앞의 책들보다는 미학적이고, 지식보다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즉 편집자로서의 나와 독자로서의 나 양쪽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주었던 책이다.

‘에쎄essais’ 시리즈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에쎄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양한 에쎄가 존재하지만 누군가에게 에쎄 시리즈에 대해서 설명할 때 제목부터가 ‘에쎄Les Essais’인 몽테뉴의 <수상록>이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예로 들곤 한다. 어느 인류학 연구 논문 못지않은 학술적 성과를 담고 있는 <슬픈 열대>는 “내가 이 일을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라는 지극히 내밀한 어조의 수필 문체로 시작된다. 자신의 감정, 지식, 경험들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문체로 서술했기에 담고 있는 내용들이 논문이나 보고서만큼이나 단단하게 쌓아올려지는 지적인 에세이, 그것이 에쎄라고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에세이’라고 하면 인생사나 감상을 주로 표현한 부드럽고 감성적인 글들(또 다른 수필의 분류로 따지자면 ‘미셀러니’ 정도의 글)을 떠올리기 때문에 ‘에쎄’라는 단어도 종종 그런 선상에서 이해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에쎄 시리즈’라고 해서 읽기 편한 수위의 책으로 생각하고 골랐는데 왜 이렇게 학술적인가라는 독자의 불만을 간혹 듣곤 한다. 글의 형식에 대한 개념이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그런 불만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편집자로서 간단히 웃어넘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그런 불만을 감안하고 보았을 때, <무미 예찬>은 약간 유화되어있는 한국 독자의 ‘에세이’ 개념에도 제법 들어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문화에 대한 참신한 시선을 보여주는 프랑수아 줄리앙을 소개할 때 ‘푸른 눈을 가진 동양학자 중 가장 독보적인 학자’라는 표현을 쓴다. 서양인이 동양에 대한 책을 썼다고 생각하면, 오리엔탈리즘이 가미된 편견이나 열광이 아니면 정말이지 성실하고 딱딱한 학술 연구 외에 무엇이 있을까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이후에는 그런 생각을 차츰 버리게 되었다. ‘동양 문화에 속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라는 생각보다는 ‘동양 문화에 속하지 않은 눈으로 보니 우리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것들을 본다’ 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사실 동양 문화에 속해있다고 해도 속도감 넘치고 자극이 가득한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저 의식만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는 중국 문화의 면면들이 던져준다. 현대인이 너무도 당연시 하는 것, 개성과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누구나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진부한 덕’, 즉 ‘중용’을 담백한 삶의 태도라는 형태라고 해석해낸 대목은 중용이라는 개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 이상의 깨달음을 준다.

불어로는 ‘맛없음,싱거움fadeur’ 으로 번역되는 ‘담淡’의 개념은 불어에서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어 저런 대체어를 썼을 정도로 서양에서는 낯선 개념이었을 테지만, 프랑수아 줄리앙은 그 개념을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미, 담백함의 풍경은 정말로 모든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아주 가까운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장 소박한 모든 풍경 속에 ‘담’이 있다.

나로서는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물 맛’이니 ‘흰 돌을 삶아 먹는’ 중국 선인들의 이미지에서 담담하고 산뜻한 흰색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이 떠오른다. 일단 박완서가 <개성사람 이야기>에서 쓴 흰색에 대한 글. “어머니는 버선만 보고도 어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면서 개성사람 버선은 옥시설처럼 희고, 서울사람 버선은 푸르뎅뎅하게 희고, 일산·금촌사람 버선은 불그죽죽하게 희다고 했다. 옥시설은 어머니가 완벽한 흰색에 바치는 최고의 찬사인데,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소설가인 강경애도 손빨래를 하며 흰 옷을 더욱 희게 빨아내는 데 크나큰 희열을 느낀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다보면 흰색을 넘어 담백한 심상에 대한 글들도 떠오른다. ‘슴슴한’ 국수를 사랑한 백석의 시,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고 하는 피천득의 <수필>로 생각이 이어진다.

현대의 풍경을 둘러보아도 ‘담’을 느낄 수 있다. 아파트에 질린 현대인들은 흰 문종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문살의 그림자가 가장 큰 인테리어 요소이며 가구로 가득차지 않아 아름다운 한옥의 아름다움에 다시 집중하곤 한다. ‘슈퍼 노멀’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장 표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이 탁월하다는 것 역시 의식하고 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가 가장 단순한 스타일과 옅은 화장을 고수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가?

이 책의 원제 Eloge de la fadeur를 거의 그대로 옮긴 <무미 예찬>이 큰 고심 없이 자연스럽게 가제에서 최종 제목으로 결정된 것도 알려 두고 싶다. 문화적인 사안이든 정치적인 사안이든, 시쳇말로 ‘까는’ 행위가 ‘쿨한’ 트렌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무언가를 예찬하고 있는 책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제목에 ‘예찬’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이 제법 많다. 미셸 투르니에의 <예찬>부터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 프란츠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에 이르기까지 멋진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 <무미 예찬>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陰?禮讚>인데, 한국판은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일본 문화가 곳곳에서 그림자와 그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활용했다는 것을 해석한 글이 있는 책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수준 높은 미학을 맛볼 수 있는 ‘동양의 에쎄’ 라 할 만하다.

<무미 예찬>은 중국 문화에 대한 책이지만 담백한 취향과 삶에 관한 포괄적인 책으로 더 다가온다. 싱거움이나 비어 있음을 강조하지만 이 모든 자극을 단호히 떨쳐버리라거나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라는 방햐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가장 감지하기 어려운 맛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기에, 가장 미묘하고 섬세한 감각들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음식에서 배어나오는 미묘한 맛을 즐기는 사람을 미식가라고 한다. 자극적인 맛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둔하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금방 파악할 수 있는 뚜렷한 자극만 추구하는 둔한 사람을 진정한 삶의 향유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넓게 퍼져 있는 동시에 가장 미세하게만 느낄 수 있는 맛, 가장 까다로우면도 가장 폭넓은 삶의 취향을 찾는 감각을 이 책을 통해 연습해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허공을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박혜정 (산책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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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일곱 번째 책은 프랑수와 줄리앙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펴냄)으로, 김익균(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안세환(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박혜정(산책자 편집자)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바깥에 대한 사유와 초월하지 않는 담백함 7-① [色 다른 책읽기]

김익균 (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서구적 세계의 바깥으로서 중국

『무미예찬(無味禮讚)』의 리뷰를 쓰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이 책의 존재를 모르는 동안에도 나는 이 책을 요청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어떤 면이 독자인 ‘나’를 자극한 걸까?

책을 읽을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책읽기 행위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람 즉 저자와 독자(리뷰어)의 만남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 짧으나마 통성명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책의 저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은 프랑스의 학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고 중국학을 전공했다. 나는 남한에서 성장했으며 남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국문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남한의 정체성은, 중국의 영향을 장기지속 해온 동시에 서구화와 식민화의 복잡한 체험으로 교착된 ‘조선’의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어낸 산통의 과정, 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남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나는 해방 이후 혹은 한국전쟁 이후의 십여 년간의 서정주 시를 공부하고 있다. 해방 이후에서 사일구 이전까지 서정주의 시가 얻은 국민적인 호응과 부침의 과정을 살펴보면 당대 남한의 ‘세계감’을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시 프랑수아 줄리앙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후에 중국을 연구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중국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서양 전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각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옮긴이의 설명을 좀 더 참조해 보면 프랑수아 줄리앙이 속해 있는 서구적 세계의 바깥이란,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서양과 무관하게 형성된 독자적인 세계인바 인도-유럽 언어권의 바깥, 서양 역사 및 문화의 영향권 바깥-따라서 인도나 이슬람 문화는 제외되었다-그리고 연구 가능한 풍부한 텍스트 전통을 지닌 세계”였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곧 중국이었다는 것이다. 서구가 그동안 행한 중국에 대한 탐구가 신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제국주의자의 시선이 중첩된 어떤 것이었다면 프랑수아 줄리앙은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덧붙이고 있는 셈이다.

 

그 안에 들어가야 할 하나의 ‘세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프랑수아 줄리앙이 ‘서구적 세계의 바깥’으로 생각하는 ‘중국’의 특징을 그대로 남한의 그것으로 연상하거나 동양 삼국의 잃어버린(혹은 되찾아야 할) 과거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수아 줄리앙에게 바깥인 것은 ‘우리’에게도 바깥이며, 50년대의 서정주에게도 바깥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근대적 신분제 하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즉 근대의 노동자 혹은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인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개진한 담(淡)의 원리는 지금-여기에 있는 실체(혹은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 확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서구적 세계의 바깥’의 잠재태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적으로 말해서 이 세계는 중국이나 동양 삼국이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소유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무미(無味)’라고 옮겨진 단어는 중국어의 ‘담(淡)’에 부여된 가치를 괄호친 의미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불어로 ‘fadeur’라고 옮겼고 한글로는 담백하다, 묽다, 싱겁다, 부드럽다, 자극이 적다 등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영어로는 ‘blandness’라고 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담=무미’가 중국의 문화와 미학적 전통에서 중심적인 가치이자 바탕을 이루는 가치라고 한다. 담은 “특수한 시각(문체론적 심리적 윤리적 시각 등등)이 아니라 전체적 시각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중국인들의 말을 빌자면, 그것은 그 안에 들어가야 할 하나의 ‘세계’이다.” 앞에서 지적했듯 이 세계가 지금 존재하는 실체인가는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경험이 서구적 근대의 세계를 상대화 하는 개연성을 제공한다고는 할 수 있겠다. 가령 “‘감각적’인 것과 ‘이지적’인 것이 상반된 두 가지 현실이며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모방이라는 생각, 천구(天球)들의 음악이든 천사들의 음악이든 간에 음악이 다른 어떤 세계에 속하는 것이라는” 서구적 세계관은 ‘담(淡)의 가치가 주도하는 세계’ 쪽에서는 낯선 것이 될 것이다. 담(淡)의 세계에는 현실 세계와 그 너머의 바깥이라는 구분이 없다. “섬세함의 정도 차이” 즉 감각이 지각할 수 있는 것과 정신이라는 좀 더 예민한 ‘기관’이 요구되는 것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비가시적인 것들이 서구에서처럼 초월적 세계에 속하지 않고 연속적인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철학에는 존재론이 없다. 내가 보기에, 고대 중국 사상을 (그리스 사상과 대비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고대 중국 사상이 현실에 접근하는 관점은 진실로 ‘존재’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것(물자체, 이데아)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내재하며 생성에 그 변전의 논리를 부여하는 일관성을 묻는 것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무미 혹은 담(淡)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맛의 성질은 그 특수한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퍼져나가는 힘에 있다.”

“무미의 미덕은 우리의 정신을 사물의 더 근본적인 국면과 일치시키는 데 있다. 어떤 맛도 다른 맛보다 특별히 더 우리를 유혹하지 못할 때, 우리는 작용하는 모든 잠재태들 가운데 ‘대등한’ 균형을 유지하며 -그것이 제(齊)이다-존재에 내재하는 논리로 하여금 스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다.” “담(淡)의 기초는 그저 엷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강인함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인바, “담은 감지할 수 있는 것의 마지막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초입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그것은 감지할 수 있게끔 드러나는 즉시 그 초월적인 조화로움으로 돌아간다. (…)담은 사물들이 차별화되지 않는 것 속으로 돌아갈 때, 사물들이 그 변별적 특성들을 잃어버리고 차이를 흡수하며 혼돈을 향할 때 비로소 그것들에 대해 말한다. 담은 측량할 수 없는 성질이자, 그래서 필연적으로 덧없으며(…) 일체의 체계적 모색을 피하며, 손을 잡아 붙들 수도 없다.”

이러한 세계의 특징을 프랑수아 줄리앙은 상당히 풍부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으므로 우리는 ‘몰랐다는 듯이’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동양인 혹은 남한의 독자들이 ‘우리는 다 아는 이야기’라는 고자세로 이 책을 읽는다면 프랑수아 줄리앙이 공들여 탐색해 보이는 ‘새로운 세계’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예스런 담백함에는 진정한 맛이 들어있다. 대제사의 탕에 간을 맞출 필요가 어디 있으리요.”라는 구절을 읽으며 예스러운 취향에 대한 호불호를 거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탕의 담백한 맛이 진정한 맛으로 인정되는 세계의 가치관과 철학의 체계를 이해하고 지금-여기 남한은 그 체계 바깥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담백한 맛은 “유(儒)?불(佛)?선(仙) 모든 사상의 지원을 받으며, 시, 음악, 회화 등 다양한 예술에 공통된 이상을 환기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주장은 강하게 논증되기보다는 풍부한 예시를 통해서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의미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들에서 ‘우러나게’ 하는 것이 또한 무미의 기술일 것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지적했듯 “음미(吟味)”라는 말이 갖는 읽기와 먹기 사이의 유사성은 “(서구의 지적 시각에서처럼) 의미를 해독하기보다 그에게 외적으로 주어지는 물질성(즉 텍스트를 이루는 말들)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바깥인 중국은 바깥이 없는 세계다?

『무미예찬(無味禮讚)』(혹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출발점은 고대 중국이 프랑수아 줄리앙이 속한 세계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의 판명함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판명하다고 전제한 것들이 과연 그러한지 묻는 것은 논외로 한다면, 역으로 ‘우리’에게 그것이 판명한가를 묻는 일이 요청된다. 서구는 우리의 바깥인가? 혹은 고대 중국은 우리의 바깥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혼란을 일으키는 지점은 프랑수아 줄리앙이 ‘발견한’ 중국은 바깥이 없는 세계라는 점일 것이다. 서구의 바깥에 대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탐구는 바깥이 없는 세계로서의 중국을 산출한다. 그렇다면 담(淡)의 체계인 중국적 사유에서 바깥은 사유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프랑수아 줄리앙이 발견한 세계는 서구적 방법으로 만든 서구의 대립항이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밀고나가는 것은 전공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도록 하고 나는 남한의 건국 과정에서 나온 ‘우리’의 탐색이 『무미예찬(無味禮讚)』과 어떻게 서로 비출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싶다. 그 시기에 서정주는 『귀촉도』, 『서정주시선』, 『신라초』를 내놓은바 ‘국민시인’ 혹은 ‘시의 정부’, ‘부족 방언의 족장’ 등으로 호명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서정주가 모색한 이 시세계는 현실의 긴장, 갈등, 고통이 없는 세계로 비판받아 왔다. 비판자들은 시가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기를 요구했는데 그것은 고통의 너머에 놓인, 발견해야 할 이데아로서의 세계에 대한 전제와 분리되지 않았다. ‘저기’가 없다면 ‘여기’의 고통은 선명한 이미지를 갖지 못하는 것이 서구적 근대 미학이지 않은가.

이에 비해 서정주가 해방 이후 ‘신라의 내부에 대한 한 모색’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근대의 미적 세계 바깥에 대한 모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정주는- ‘우리’가 그렇듯이- 어떤 혼동 속에서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정주가 간혹 역사적 실체라는 허상에 얽매였다면 그것은 ‘판명한 바깥’에 대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자의식과 맺는 모종의 차이를 생산하지 않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물론 그 차이를 근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배운 논리를 적용해보면 이 차이는 서구적인 안과 밖의 차이가 아닌 중국적인 ‘담’의 중심과 가장자리의 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서정주(와 청록파)로 대변되는,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나 대한민국 건국의 중추가 되었던 세대가 탐구한 세계이다. 그것은 일본에 의해 형성된 식민지 근대화를 30년 안팎의 한 생애를 통해 체현한 1910년대 생인 세대가 그 세계의 바깥을 꿈꿨던 경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주는 건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구적 가치에 대한 환멸이 심화되고 서구의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탐색하려고 노력했다. 간혹 고대사를 실체화하는 오류에도 빠져 가면서, 서정주는 서구적 가치와 유불선의 가치 그리고 더 옛날의 샤머니즘(서정주의 용어로는 영통과 혼교)을,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를 통해 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시로 체현하려 했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학자로서 그리고 판명한 바깥에 선 자의 강점을 가지고 그려낸 담(淡)의 세계는 50년대 극동의 한 시인이 그려낸 ‘신라의 내부’와 서로 비추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담의 세계 바깥에서 담의 세계를 그려보는 프랑수아 줄리앙과 이미 담의 세계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하며 시를 통해 담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서정주의 모색은 담의 세계를 재구하기 위해 마주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담(淡)의 체계에서는 현실의 바깥으로 나가는 초월이 없다’고 요약해 본다. 내가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남한의 50년대에 서정주 (세대)와 신세대의 시적 정신을 초월(의 고통)이 없는 세계의 모색과 초월을 단행하려는 고통의 실천 사이에 두는 내 문제의식에 새로운 자극을 줬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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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일곱 번째 책은 프랑수와 줄리앙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펴냄)으로, 김익균(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안세환(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박혜정(산책자 편집자)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나에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갖는 의미란? 6-① [色 다른 책읽기]

김택중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강사)

 

어린 시절의 화두 ‘진화론’

명색이 서평이니만큼 서평 대상 도서에 대한 소개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아마도 보편타당한 전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진화’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내 어린(어리석은) 시절, 화두나 다름없었던 것이 바로 이 ‘진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득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글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려 하는 점,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미리 양해 구하고자 한다.

나름 철이 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어렸던 고등학생 시절, 그 때까지 세상살이에 무슨 심각한 불만이 없던 나에게도 마침내 ‘의문’이라는 것이 하나 생겼더랬다. 딴에는 꽤 진지한 의문이었는데, 생물 교과서를 읽다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이 실려 있음을 포착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즉, 19세기에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생물은 오직 생물을 통해서만 이어진다는 생물속생설이 확립된 뒤로 자연발생설은 폐기되었다는 설명에 이어 그 유명한 ‘밀러-유레이 실험’이 소개되더니 생명의 기원은 결국 자연발생적이라는 자가당착적인 내용이 등장했던 것이다. 앞에서는 자연발생설을 실컷 오류라고 선언해 놓고 바로 뒤에서는 다시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니?!!

물론 지금은 이 앞뒤 맞지 않는 모순된 설명이 모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도대체 이 모순을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혜성처럼 내 앞에 출현한 것이 소위 ‘창조과학’이었다. 집안이 3대를 이어 내려온 통짜배기 기독교도(신교도) 집안이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자연히 습득한 기독교 문화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간 알게 모르게 신앙의 갈등을 겪었던 나로서는 과학적 증거가 기독교 신앙과 성경 기록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이 제2의 복음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요컨대 창조과학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된 ‘밀러-유레이 실험’은 거짓과학일 뿐이므로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사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도 책에서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듯이 신앙은 신앙 차원에서, 과학은 과학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19세기 말 개항 이후 수입된 기독교의 주류가 하필 ‘성경 무오류성’을 끔찍이도 챙기는 미국 보수교단들의 기독교였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면 발단이었다. 이들 교단은 성경의 기록이 모두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신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므로 내용상에서도 오류가 전혀 없다는 이른바 ‘성경 문자주의’를 개인 신앙의 진실성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으로 삼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경의 문자적 기록에 집착했다. 그러므로 신이 세상을 창조했음을 엄숙한 어조로 선포하는 성경의 첫 장에서부터 벌써 이들은 굳이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과학적 사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듯이 개항 이후 20세기에 접어든 뒤로도 한국에서 진화론 자체가 본격적인 학문적ㆍ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로 진화론은 우파적인 진보주의의 자장 안에서 장려되기까지 했으며, 서양 문명의 압도적인 우세 가운데 기독교도들에게조차 자명한 과학적 사실로서 불가피하게 수용되었다. 반면 성경 무오류성 신학에 기초한 기독교 보수교단들은 20세기 초 미국의 성경 문자주의자들, 즉 근본주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분리주의 노선을 선택하여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개인 신앙을 추구하는 쪽으로 후퇴해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이 역전되어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도들이 공세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즈음이었다.

 

창조과학에서 과학으로

1980년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일단의 한국 기독교도 과학자들이 미국 창조과학계의 대부 격인 헨리 모리스 등의 영향 아래 창조과학의 세례를 듬뿍 받고 귀국한 시기였다. 이들에 의해 성경 문자주의는 과학이라는 날개를 달고 의도치 않은 재부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접적으로는 미국의 창조과학계를 주도한 이들 상당수의 신학적 성향이 문자주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이─물론 선량한 의도에서 비롯되었겠지만─전국의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간증 형식을 빌려 정력적으로 창조과학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기독교도 대중은 이들의 공세적인 ‘과학적 간증’을 경청하면서 크게 안심하였고, 안심하면 할수록 거꾸로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와 오해의 폭은 넓어져만 갔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과학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창조과학이 나름의 방식으로 한국의 과학계에 기여한 바가 있음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간 자명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던 생물 진화를 한 번쯤 의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본의 아니게 창조과학측이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진화론은 창조과학자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공식 석상에서 단 한 차례도 부정되었던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창조과학이라는 종교적 프리즘을 통해 비로소 재조명되었고, 또한 각성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이는 그만큼 한국 학계의 진화론에 대한 이해 수준이 피상적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1988년 국내의 한 TV 패널토론에 출연하여 진화론측 토론자들에게 맹공을 퍼붓고 이들을 수세로 몰았던 창조과학자들의 전투적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럼에도 어쨌든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유사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사실로써도 쉽게 반증이 된다. 즉, 창조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독교도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도여야만 창조과학을 수용할 여지가 생긴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자청해서 창조과학을 수용하거나 나아가 창조과학자가 된 사례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진화학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비기독교도나 무신론자의 입장을 취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전혀 없다. 성경 문자주의를 신봉하지만 않는다면 설사 기독교도라 할지라도 무리 없이 진화학자나 진화론자가 된 사례를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생물학자 전방욱이 바로 그러한 한 예이다.

창조과학측이 공격했고 무디어진 검이나마 지금도 여전히 휘두르며 공격하고 있는 진화론은 기실 알고 보면 허버트 스펜서류의 우파적 논리, 즉 사회진화론으로 각색된 일종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 찰스 다윈이 구상하고 제시했던 진화론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러나 창조과학측은 현재도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사회적 해악의 진원지로 진화론을 지목하면서 찰스 다윈과 진화론을 분별없이 비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창조과학이 이처럼 사회 전면에 등장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미국과 한국 밖에 없다. 미국도 그러하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까닭은 창조과학이 대체로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회의 세에 편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 걸쳐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에는 노골적인 근본주의 경향 대신 미국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복음주의라는 한층 세련되고 완곡해진 형태의 신학 사조가 등장하였다. 미국에서 이 복음주의는 레이건 공화당 정부의 집권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미국 사회의 기류를 타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복음주의가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를 기독교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형태로 발화되었다. 다소 느슨한 방식으로 전개된 이 비공식적이고 범교파적이었던 개혁 운동의 지도자들은 그간 사회, 즉 세속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교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적극적으로 사회를 수용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나아가 이들은 학문의 각 분야 또한 기독교의 시선으로 접근해 들어가 재해석하고자 했는데, 이 때 신앙의 과학적 정당성이라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 우연히도 창조과학이었다. 이는 복음주의자들의 상당수가 국내 창조과학의 출발점인 ‘한국창조과학회’와 어떤 식으로든 연계되어 있었던 데에 기인한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가 내부적으로 진화론 대신 창조과학을 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도들 상당수가 결과적으로 자연과학적 상식에 무지한 무리가 되어 갔다면, 그 사이 한국의 진화학계는 서구 학계의 논의들을 흡수하면서 차분히 내실을 다져 나갈 수 있었다. 이 책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사실상 그러한 내실화의 한 열매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진화 담론을 주도해 왔던 서구의 학자들이 아닌 한국의 각 분야 학자들이 찰스 다윈과 진화론을 소화해낸 상태에서, 그간 리처드 도킨스 같은 전투적 진화론자들의 논리를 지나칠 정도로 편식해 온 한국의 독자 대중에게 ‘변화(다양성)’와 ‘우연(무목적성)’을 핵심으로 한 진화론의 과학적ㆍ사상적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다. 다만 대담 형식의 책이므로 진화론이나 주변 학문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하기엔 다소 미흡하다는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다.

 

생명에 대한 존중

나는 애초 창조론에 대한 변증을 목적으로 진화론에 다가선 위인이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종교의 굴레를 벗어난 지금, 창조론은 아스라한 과거의 추억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사실 성경에 근거한 부동의 진리를 앞세워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완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자연의 일부 메커니즘을 초자연적 존재, 곧 신에 의탁하여 그때그때 해소하려는 입장이 과연 과학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지 나로선 의문이다. 그러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수사학적 차원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그닥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전지전능한 성경의 창조주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비유하는 나의 이러한 발언이 창조과학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을 전제로 한 과학’이 더 괴이하고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이는 ‘창조과학’이 ‘지적 설계’로 옷을 바꿔 입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과학적 설명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계속 변한다. 변하지 않고 정체돼 있으면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정설에 기초하여 계속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과학 활동이 아니라 포교 활동에 해당한다. 창조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진화론은 변해 왔고, 지금도 논쟁을 거듭하면서 계속 변하고 있다. 이렇듯 진화의 메커니즘을 풀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 류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과학의 ‘자연주의’적 접근 방식은 지극히 정당하다.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동양철학자 김시천이 적절히 언급했듯이 자연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으로 보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자연주의 말이다.

끝으로, 주제넘은 짓 같지만 의학과 생물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진화의 메커니즘이든 창조의 과학화든 그 해명에 몰두하고 있는 분들께 바라는 것 한 가지 조심스레 언급하고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내 경험상 진화론자든 창조론자든 생명 현상을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개인적인 편견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공학 분야를 전공하신 분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진화론의 입장에 선 분들은 부지불식간 유물론에 기초하여 사람의 몸을 기계로, 창조론의 입장에 선 분들은 부지불식간 영육 이원론에 기초하여 사람의 몸을 썩어 없어질 것으로…. 그러나 내가 보기에 생명 현상이란 그렇게 쉽게 단정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생명 현상에 경이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가지는 놀라운 생명력과 인내력 때문이다. 자신의 탐구 대상에 대한 존중은 학자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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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섯 번째 책은, 최종덕 교수가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철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과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펴냄)으로 김택중(인제대 의대 연구강사), 강경표(중앙대철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백준수(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진화론, ‘좌우’의 두 날개로 날다 6-② [色 다른 책읽기]

강경표 (중앙대 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진화론에도 색깔이 있고 좌우가 있다!

과학에도 색깔이 있다. 정치판에서나 등장하는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가 과학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고, 아니면 과학계도 좌파, 우파를 따진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색깔이 없을 수는 없다. 과학이 항상 중립적이라면 그야말로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못하다. 특히 진화론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거의 독학으로 진화생물학을 공부해 왔다. 철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대학원에서 진화생물학 공부와 관련된 도움을 받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책 읽기부터 시작했다. 국내?외 여러 서적들을 읽으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국내의 진화생물학논의가 상당히 우(右) 편향적이라는 점이다. 한쪽으로 쏠린 저울의 균형을 위해서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진화생물학 논의도 있어야만 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야 말로 이 사회가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라는 책에 ‘진보적 혹은 좌파적 진화론 인문서(人文書)’ 라는 별칭으로 불러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식의 별칭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진화생물학에는 좌우라는 두 가지 입장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입장 차이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어쩌면 진화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정치적 논의가 포함된 진화생물학을 구분하는 일은 지금까지는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중의 관심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진화생물학 관련 서적들의 인기 속에 짭짤한 수익과 명성을 즐거워하며 진화생물학이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화생물학의 좌우 논쟁은 70년대 E. O. 윌슨의 <사회생물학>이라는 책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 책에서 생물학은 유전학이나 분자생물학 같은 생물학에서 분화되어 발전한 학문 영역을 아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분석하는 사회과학도 생물학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개체란 유전자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파격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한편 그 당시 미국에는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의 영향으로 생물학계에도 이념적으로 좌파를 선언하는 학자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R. 레빈스, R. 르원틴, S. J. 굴드가 대표적인데 레빈스와 르원틴은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기존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고, 다윈의 진화론과도 모순된다고 비판하면서 ‘변증법적 생물학’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 중 가장 잘 알려진 학자인 굴드는 생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고도 불리는데, 대중적 글쓰기에 능했던 그는 여러 종의 대중과학서를 통해 사회생물학이 지닌 정치적 위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진화생물학을 서구로부터 수입하고 연구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정치적 위험성을 알리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는 못했다. ‘제 얼굴에 침 뱉기’라도 되는 듯 흉이 될 만한 것들을 숨기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치장을 그만두고 반성의 첫걸음으로 좌우의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때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의 좌파 진화생물학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작은 논쟁의 불씨를 당기다

내가 보기에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은 이러한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난 국내의 첫 저술이다. 물론 지금까지 색깔 있는 번역서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국내 학자가 펴낸 책으로서는 최초라고 본다. 5인의 특색 있는 학자들이 3년의 세월을 보내며 완성한 이 책은 분명 진화생물학 좌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최종덕, 임지현, 전방욱, 강신익, 김시천이 대담한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에 대한 첫 반응도 역시 이러한 색깔이 주목되어 나왔다. 2010년 8월 23일 출간 직후 나온 장대익 교수의 비판적 서평이 그것이다.

장대익 교수는 “진화론 제자백가… 다윈의 선택은?”(프레시안 2010. 8. 27)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좌파 진화생물학 진영에 대한 포문을 연다. 이 글에서 장대익 교수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진화론 논쟁이 이념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런지 이젠 좀 그런 비판에 무덤덤해지는 것 같아요”라는 말로 이 책이 가진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고 한다.

물론 장대익 교수의 비판적 서평에는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가 가진 문제점들 또한 비교적 잘 지적되어 있다. 일일이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이 완성되기까지 3년 동안 감수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러운 정도의 오기와 근거가 불명확해 보이는 수치들 그리고 논리적 비약이 있는 사실 관계들은 이 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정도는 아니다. 또한 지적한 내용들은 내가 보기에 모두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장대익 교수의 서평을 보면서 기대했던 것은 최종덕, 강신익 두 학자와의 열띤 논쟁이었다. 나만의 기대인지는 몰라도 이 기회를 통해 우로 치우친 진화생물학이 이와 다른 입장의 진화생물학이라는 무게 추에 의해 균형 잡힌 진화생물학으로 한국 사회에 뿌리내렸으면 하는 희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후학으로서 선배 학자들의 멋진 토론을 보았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그런 논쟁은 없었다. 하지만 논쟁의 불씨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 생길 수 있었다는 의미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성과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또 다른 좌파를 위하여

좌파 진화생물학이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 진영과 불편한 대화를 시작할 쯤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문제는 마르크스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문제는 이 책의 구성이 야기한 문제일 수도 있다. 실상 최종덕 교수는 과학철학자이고 임지현 교수는 역사학자이며, 전방욱 교수는 생물학자, 강신익 교수는 의철학자, 김시천 선생은 동양철학자이다. 대담집이라는 특성과 함께 5인의 각기 다른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과 결부된 진화론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구성이 다채롭기는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진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임지현 교수와 최종덕 교수의 대화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라는 시대 상황으로부터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임지현 교수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빅토리아 시대 이야기는 필자 본인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언급된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또 다른 이들이게는 불편한 점이 있었나보다. 유범현 선생은 “진화론, 변화의 과학이 세상을 말하다”(레프트21 40호 2010. 9. 11)라는 장문의 서평을 통해 “이 책의 대담자들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진화론 이해를 왜곡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 것은 분명 이러한 맥락의 반응이다.

대학 때 잠시 접해본 마르크스의 몇몇 서적들로, 나로서는 감히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좌파=마르크시즘’이라는 절대 공식이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또는 한국의 좌파들에게 마르크스가 상당히 신성시되는 상황에서 두 대담자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가 한국의 좌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 ‘좌파적 진화생물학 인문서(人文書)’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내 입장에서, 좌파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게다가 마르크스를 잘 알지 못하는 내게 임지현 교수의 논의들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면서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유범현 선생의 서평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임지현 교수가 유범현 선생의 서평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새로운 시도가 주는 즐거움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실 최종덕 교수와 강신익 교수가 ‘생태주의적 진화론’을 논한 부분과, 김시천 선생과 동아시아 전통 담론과 진화론적 사유가 함께 논의되는 부분이었다.

진화생물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도브잔스키는 “진화를 빼고 나면 생물학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진화생물학을 처음 접하던 시절 이 말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생물학에서 진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큰 것인지 그 당시에는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강신익 교수의 의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와, 아직은 조금 거칠게 보이는 ‘생태주의적 진화론’이라는 개념은 도브잔스키의 말 만큼이나 묘한 매력이 있다. 사실 나는 ‘생태주의적’ 이라는 수식어가 이미 진화생물학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극적으로 수식어를 붙임으로해서 진화의 지평이 좀 더 명확하고 균형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생태’ 라는 말을 통해 개체의 진화생물학이 아닌 전체의 진화생물학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단연 동양철학자 김시천 선생과의 대담 부분이다. 과학이나 서양학문을 전공한 다른 대담자들과 달리, 과학자도 아니고 서양 학문을 연구한 학자도 아닌 김시천 선생의 대담을 보며, 나는 인문학자의 길을 다시금 생각한다. 학문의 기준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구조로 양분된 사회에서 김시천 선생의 시도가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교육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생각을 바꾼 터였다. 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느 날 한국철학사에 관한 저술을 읽다가 목차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없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국철학사에는 한국의 현대철학이 없었다. 실학에서 끝나버린 한국철학사, 그 때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서양의 현대 철학자가 지껄이는 뜻 모를 소리를 부러워하며 책을 읽어대고, 지껄여봤지만 정작 내가 속한 사회의 현대철학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현실을 마주한 순간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김시천 선생의 대담을 유심히 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동양철학에 대한 파격적인 재해석과 당당함, 진화론과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나가려는 의지, 이것이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통해 본 김시천이다.

 

진화론, 이제 좌우의 두 날개로 날 수 있었으면!

내가 다윈을 만난 것은 10여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 윤리를 전공하고 싶어 석사과정을 시작했지만 본의 아니게 ‘칸트 철학’을 전공하면서 혼자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진화생물학 공부를 시작했다. 순수한 인문학도인 내가 거의 독학으로 해 온 공부이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장님이 코끼리 잘못 더듬으면 밟혀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석사를 마칠 무렵 공부에 대한 심한 회의가 들었다. 그 와중에 학교 공부와는 거의 별로도 읽기 시작한 몇 권의 책들 중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이라는 책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진화생물학 내부의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거리를 두게 된 것이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현재도 나는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주된 관심사는 진화론적 윤리학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공생, 협력 같은 공진화와 그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한 가지 고백하고 싶은 것은, 나의 공부과정에서 중요했던 그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라는 책의 번역자가 전방욱 교수라는 사실을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읽고나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전방욱 교수가 번역한 여러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하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당시 전방욱 교수의 번역서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공부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최종덕 교수를 굴드의 추종자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내가 최종덕 교수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저서를 통해서였다. 석사논문의 주제를 칸트의 공간 개념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리학에서 말하는 공간 개념에 관한 책들을 보게 되었고, 그 중 하이젠베르크의 얇은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의 번역자가 바로 최종덕 교수였다. 실제로 최종덕 교수는 물리학을 공부한 후 독일에서 양자역학에 관한 철학적 연구로 학위를 취득한 학자이기도 하다. 석사 이후 굴드의 책을 포함한 진화생물학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덕 교수가 독일 유학시절부터 진화론을 연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최종덕 교수는 자의든 타의든 한국 땅에서는 ‘좌파적’ 입장의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간에 내가 보기에 최종덕 교수는 최소한 자신이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의 깨끗하지 못했던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라는 과거를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몇 안 되는 지식인이다. 또한 진화생물학의 논의가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좌파 진화생물학의 무게 추의 역할을 이 땅에서 해 주고 있다는게 나의 소견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과학저술이면서 인문학 저술이다. 또한 대담자의 전공이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견해와 통찰이 녹이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무척 어려운 책이다. 또한 아직까지는 좋은 서평보다는 비판적 서평이 앞서는 글이기도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책이지만 진화생물학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불씨가 되어, 우리 학계와 사회에서 진화론의 넓은 담론 영역에서 좌우의 균형이 잡힌 학문적 논의가 살아날 수 있는 계기의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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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섯 번째 책은, 최종덕 교수가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철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과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펴냄)으로 김택중(인제대 의대 연구강사), 강경표(중앙대철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백준수(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아니! 이런 만남이 있을 줄이야 6-③ [色 다른 책읽기]

백준수 (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

 

인문학은 어떻게 진화론과 만나는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교훈을 담고 있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한다.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영화 중 제목으로 세인들의 이목을 끈 영화도 많다. 영화 제목이 참신하거나, 충격적이거나. 필자가 보기에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같은 영화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제목에서 풍기는 영화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지고, <마더>라는 영화는 제목을 <엄마>로 하지 않고 영어로 정한 것이 감독의 의도가 있음을 관객들은 쉽게 눈치 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방법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책 제목을 통해 지은이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책을 선택하는 독자도 많이 있다. 최종덕 교수가 네 학자와 대담하여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가 그러한 경우라고 여겨진다. 책 제목만 보고도 책을 펴낸 의도와 내용이 명확하게 다가온다. 특히 “진화론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부제는 독자들의 시선 끌기에 더 효과적이다.

최종덕 선생은 진화론을 논의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진화론을 논의한 이유는 현대 생물학을 배우려는 게 아니라 그 사유구조의 인문학적 접근법을 찾는 데 있을 거예요. 우리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에서 어떻게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바로 궁극적인 방향이겠죠” (399쪽)

한국의 인문학을 대표할 만한 학자들이 진화론의 과학적 이해와 인문사회학적 의미를 비교 분석하여 밝히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동양철학도 진화론과 만날 수 있다니!

특히 동양 철학을 전공한 김시천 선생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비교한 부분은 매우 이채롭다. 서양 과학을 동양철학 입장에서, 그것도 과학 관점이 아닌 철학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점이그러하다. 다만, 진화론적 사유와 동양철학적 사유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 알의 작은 씨앗 속에 싹이 트고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는 생명의 잠재성이 담겨 있듯이, 인간 성선의 바탕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씨앗이 적당한 습기와 햇빛을 받지 못하면 온전한 나무가 될 수 없듯이 사람도 성선을 완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321쪽)

“고대 중국인의 사유 속에는 논리적 진리체계보다는 모든 사람이 경험적으로 공유하는 공통의 은유 체계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통해서 고대 중국적 사유를 복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죠. 그런 점에서 생물학적 사유구조와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322쪽)

동양철학 사유의 독창성이 자연현상에 은유하여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고 하여, 동양철학과 진화론의 유사성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진화론, ‘겸손의 과학’을 가르치다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은 유한한 생명의 시간 동안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왜 인간이 병에 걸리게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타당하다. 진화의학은 질병과 건강이 서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존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의 질서에 근거한 주장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자연을 정복하려 하거나, 종속시키려 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돌아오는 재난의 부메랑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강신익 선생이 주장하는 과학에 붙여야 할 수식어가 겸손함이어야 한다는 것은 의미 있다. 진화의학을 ‘겸손의 의학’이라고 한다면, 과학을 통해 이뤄낸 성과로 인간 스스로 오만함에 빠지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으리라.

“진화의 관점이 미래의 생명을 살리는 일과 직결된다는 것은 생각이 중요하죠. 다만, 진화의 방향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과학의 증세라고 봐요. 진화는 이상적인 상태를 향해서 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니까요.”(204쪽)

강신익 선생의 촌철살인 같은 말에 6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태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때 우리 사회는 감식안이 전혀 없었다. 사이비 학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혹세무민을 자행하고 있었다. 진화의 관점을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면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적 사유방식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창이 된다고 본다.

 

과학이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전방욱 선생은 황우석 사태는 과학이 사회적 가치를 왜곡한 전형적 사례라고 갈파한다. 유전자를 통해서 진화라든가 인간의 본성, 사회 현상을 해석하려는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체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면 인간 에 대한 존중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지금보다도 더 극단적 자본주의가 팽배해진다면 과학윤리에 기반을 둔 생명존중 사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 자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전방욱 선생은 진화론과 진보의 개념은 다르다고 말한다. 다윈의

나는 백성이 아니옵니다. 노비이옵니다 5-① [色 다른 책읽기]

이재민 (너머북스 대표)

 

조선의 백성이길 거부한 노비의 법정 투쟁기

1586년 나주 관아의 노비소송을 서사 구조로 하는 『나는 노비로소이다』(임상혁 지음, 너머북스 펴냄)를 따라가 보면, 조선시대의 사법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 절차를 통해 당시 체제가 빚어내는 반목의 양태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윽고 불화의 핵심에 선 조선시대 ‘노비제’를 만난다. 흔히 조선전기는 ‘노비송(奴婢訟)’, 후기는 ‘산송(山訟)’이라는 표현처럼 조선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노비제의 질곡이 주요한 내적 모순으로 존재하였다. 조선시대 송사를 매우 역동적으로 다룬 이 책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조선시대 노비의 실체를 찾는데 있다.

다물사리와 구지, 허관손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자손을 사노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벌이는 법정투쟁기는 조선시대의 노비제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혹독한 질곡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조선시대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3분의 2에 이른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도 과연 오늘날 자기 조상이 노비였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노비의 역사적 실체를 찾는 것은 나의 최근 역사책 기획의 관심 중 하나이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생부와 양부로부터 660구가 넘는 노비를 상속받았으며, 유명한 어부사시사의 고향인 보길도 부용동의 원림을 조성하는데 노비 700여명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상층이 아닌 소박한 생활을 영위한 양반이라 하더라도 노비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양반에게 있어 ‘봉제사’는 일상의 일부라고 하나, 이것이 집안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일년내내 선산을 관리하고 수시로 벌초하며, 묘사 준비와 실제 제사를 지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조상을 모시는 일에 노비가 동원되었다. 생업인 파종에서 추수까지 농사일은 기본이고 험한 땅을 개간하거나 묵은 논밭을 갈아엎기도 하는 등 농지도 일구었다. 노비는 상전의 수행원이었고 심부름꾼이었으며 통신수단이기도 했다.

무반 노상추의 68년 동안 쓴 일기를 통해 조선후기 가족의 실체를 다루어 주목받은 바 있는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문숙자 지음, 너머북스 펴냄)에는 가족과 재물의 경계에 선 노비의 모습이 생생이 묘사되어 있다. 노비 점발이 도망한 1726년 2월 12일 노상추는 일기에 ‘그의 죄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썼다. 6개월 뒤 점발을 찾아내 벌을 준 뒤 그는 점발을 ‘죽을 만큼’ 때렸다고 기록했다. 일기에서 스스로 ‘죽을 만큼’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응징의 정도가 어땠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기의 또 다른 기록이다. 비부(婢夫) 한선이 노씨가의 계집종인 아내 손단을 데리도 도주한 것은 1779년 2월 7일이었다.

노상추는 단호하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부부는 길바닥에서 굶어죽는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듯하다”고 했다. 나에게 의지해 살던 노비 부부가 나를 떠나서, 그리고 전국에 깔려 있는 나와 내 지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벗어나 살아갈 방법은 도저히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노비들은 모든 양반의 지배를 받는 존재였다. 거주지를 벗어나 멀리 도망간다 하더라도 양반의 광범위한 네트워크 안에 있었고, 양반들의 연망(聯網)은 노비의 관리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다시 『나는 노비로소이다』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2장에 소개하는 “또 다른 노비소송, 나는 양인이로소이다”에서는 노비제 고수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양반과 그들의 모순에 찬 면모를 볼 수 있다. 이 소송은 허관손이란 인물의 제소로 시작된다. 그는 지방의 아전이었으나 그의 장모의 아버지가 ‘사노’였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 모두 노비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는 장모의 아버지가 보충대에 입속하였으므로 양인의 신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서출자녀인 경우 보충대 입속을 통해 양인이 되는 길이 있었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송의 상대는 『미암일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상층 양반 미암 유희춘이었다.

1544년 강진현에서 유희춘의 어머니, 최씨가 승소한다. 1551년에는 반대로 허관손이 승소하고, 1564년 최씨 사후 미암의 누나가 다시 제소하여 승소한다. 1566년 허관손이 사헌부에 상소했으나 패소한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관료 유희춘을 상대로 한 아전 허관손의 30여년이 넘은 투쟁은, 결국 1568년 3월 임금이 행차하는 길에 엎어지며 억울함을 호소하며 – 이를 ‘상언’이라 한다 – 해결하려 했지만 현직 관리의 영향력을 넘지 못하고 패소하고 만다.

이 책이 밝히는 흥미로운 사실은 허관손이 양인이라 증명하려 했던 방식대로 유희춘은 자신의 얼녀 네 명을 양인으로 속량시켰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희춘이 허관손에게 승소한 그 시점인 1568년부터 자신의 서출자녀들을 보충대에 입속시키고 대가를 지불하여 노비의 신분에서 풀려나게 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미암은 8년에 걸쳐 천첩 자식들을 모두 속량한 뒤 외친다. “얼녀 네 명이 모두 몸을 씻어 양인이 되었다. 어찌 이리 기쁜지!”(미암일기초 5권 230쪽) 내적 갈등이나 모순적 의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유희춘과 허관손의 쟁송 사례에는 당시 최고 지식인이 가진 의식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얼녀들에 대해서는 속신을 시키려 그처럼 안타까워하면서도 허관손의 후손에 대해서는 면천의 기회를 박탈하고 만 셈이다.

이 글의 앞머리에서 노비 몇 ‘구’라 했다. 조선시대에 노비를 생구(生口)라 부르고 수효를 셀 때도 한 구 두 구 식으로 세었던 것은 그들을 가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비제도가 전근대적인 노예제였다는 것은 노비 매매가 일상적이었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비 매매는 국가적으로 공인되었는데 <경국대전>에서는 노비의 값을 말 한 필과 비슷하게 매겨놓고 있다. 농지의 확대로 노비 수요가 많아진 조선 중엽에는 말 한 마리가 포목 2필일 때 노비 1구의 가격이 포목 6.5필로 급등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양인은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스스로를 팔아 노비가 되기도 하였다. 하층민의 경우 흉년이 들거나 하여 먹고살기 어려워지면 당장에 굶어죽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를 원했고, 양반들은 손쉽게 노동력 또는 재화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양자간의 거래가 빈번했던 것이다. 잠깐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노비도 다른 신분처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자식이 각각 서로 다른 주인에게 소속되어 있다면 그 가계가 안정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상전이 각각의 노비를 내다팔기라도 하면 그 가족은 어떻게 될까? 그들의 가족은 안정성이 없고, 가계가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계를 잇는 일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노비로소이다』의 핵심 모티브가 되는 이지도 대 다물사리 노비소송은 시작부터 특이했다. 원고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하고, 피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고 반박한다. 당시 노비의 신분을 다투는 소송에서는 자기는 노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그 연유는 극적인 반전 속에 드러난다. 책을 보시면 이내 알게 되지만 양인 신분인 다물사리가 성균관에 관비로 투탁한 것이었다.

독자들은 소송 당시 다물사리의 나이가 여든 살이었는데, 그처럼 노쇠한 여인이 대담하게도 성균관에 투탁하여 신분을 숨기고 상대편의 소송에 맞서려 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다물사리의 뒤에는 그의 사위인 구지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 또한 사노비로서 자기 자식들을 어떻게든 사노비의 사슬에서 끌어내 관노비로 만들어 조금이라도 나은 처우를 받게끔 하려 했다. 그리하여 이지도의 집안의 허술한 틈(저자 임상혁은 이지도의 아버지가 이유겸임이라고 추정하는데 당시 이유겸은 살인 혐의로 숨어 지내는 중이었다)을 노려 자기 장모로 하여금 투탁하도록 하는 꾀를 내고 지방 관아의 노비빗리와 공모하여 문서를 조작하기도 했던 것이다.

다물사리와 구지의 기구한 사연은 조선시대 노비제도가 얼마나 혹독한 질곡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시대 절반의 사람은 노비 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존재였다. 노비제는 양반제의 필수도구였던 것이다. 양반의 또 다른 이면이자 상충되는 존재였던 노비, 그 역사적 실체 찾기는 『나는 노비로소이다』가 던진 새로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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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다섯 번째 책은,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너머북스 펴냄)으로 허정화(자유평론가), 이재민(너머북스 대표)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연구서 5-② [色 다른 책읽기]

허정화 (자유평론가)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짜진 연구서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나는 노비로소이다』앞의 소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다면 조선시대 노비의 이야기인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자신을 규정하는 것. 예를 들어, 나는 여인입니다. 나는 변호사입니다. 나는 시민입니다. 등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짓는 문장은 무엇인가 강력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준다. 그런 점에서 제목은 독자로 하여금 책장으로부터 책을 뽑아 들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소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은 노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 당대 소송에 관한 연구서다. 책은 1584년 선조 19년 나주 관아의 이지도(원고)와 다물사리(피고)의 소송으로 시작된다. 임상혁은 머리말에서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랐지만 픽션은 아니기에 모든 글월과 낱말이 세부적인 역사의 사실과 부합하는지 재삼 검토 해가며 진행했다.”(14)고 한다. 그러한 작가의 의도는 일반적인 노비 소송, 즉 노비이기를 부정하고 양인이기를 주장하는 사건이 아닌 자신이 노비임을 증명하고자 소송을 제기한 다물사리 사건으로 글 문을 열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설처럼 읽히기를 원하는 작가는 또한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만 보여주다가 잔득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실마리도 못 찾고 좌불안석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 사건의 전모를 밝히듯이 다물사리가 노비이기를 주장하게 된 배경과 소송의 결론을 책의 마무리에 배치한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소설로 시작해서 연구서를 읽다가 다시 소설을 한 권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나 법과 거리가 먼 전공과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만만히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소송으로 보는 언어 변천사

문학서를 편식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법률 용어들보다는 일상화 된 언어들에 관심이 더 가고, 그 언어의 질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은 파생어와 이두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척(隻)이란 피고를 가리키는 말이다’(52)로부터 ‘척지지 말라’는 말이 나왔고 ‘다짐결송’에서 지금의 ‘다짐’의 의미가 생겼다는 정보는 재미있는 공부였다. “이두의 글자상 의미는 서리들이 쓰는 표기법”(110)이며 “각종 공문서와 거래서에 이두가 쓰였다.”(111)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두식 표현들이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데 있는 한계를 극복한 선조들의 지혜였으며 역시 그 중심은 귀족 양반들이 아니라 하층 관리(아전)들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고을 사족의 향청에 서리들의 조직은 질청이라 할 수 있다. 作(작)을 질로 읽는 것도 이두식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질청은 아전들의 집무처인 건물이다.”(116)라고 하며 “질은 요즈음 삽질, 걸레질처럼 행위나 행동을 뜻하고, 나아가 훈장질과 같이 업무나 일의 의미까지 갖는다.”(205)고 말한다. 여기에 좀 덧붙이면 접미사 ‘질’은 행위나 직업을 하찮다는 의미로 전달하고 싶을 때 주로 쓰이고 있다. 이는 과거에 쓰였던 순 우리말이 긍정적이 어감보다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변화된 하나의 증거인데 접미사 ‘살이’ 또한 그렇다. 다물사리가 담+울+살이(152)에서 변화되었다고 추정되는 데 ‘살이’는 ‘살림살이’처럼 ‘살다’의 명사형이지만 ‘시집살이’라는 단어에서 보여주듯이(시집살이라는 표현은 여자들이 결혼해서 사는 형편이 좋을 때보다 힘들 때 주로 쓰인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의미에 더 많이 쓴다. 이는 순우리말보다 한자를 고급어로 인식하는 사대주의적인 사고에서 온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일제를 거쳐 일상으로 사용되었던 우리말들이 점점 협소화되어 접두사나 접미사, 조사로서의 기능이 주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계속되는 용어 해석 – 읽기의 고단함

이 책이 소송으로 보는 조선 사회이다 보니 수많은 그 시대의 소송과 관련된 용어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다. “소지라는 것은 관청에 내는 신청서이다. 다라서 여러 종류의 신청이 있을 수 있으며, 그 가운데 판결을 구하는 소지를 제출하게 되면 그것이 소장이 되는 셈이다. 소지를 제출하는 행위, 곳 소를 제기하는 것을 고장이라 한다. 소지는 발괄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이 연명하여 올리는 경우를 등장, 수령의 판결에 불복하여 감사나 어사에게 올리는 소지를 의송이라 한다. 소지를 접수한 관청은 그에 대한 처분을 내리게 되는데, 대개 소지의 여백에다 직접 써 주었다. 이를 제김 또는 제사라 한다.”(102) 이런 문장들을 읽고 있으려면 건너 뛰어 읽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진다. “『사송유추』의 편제는 소송이론적으로 앞서간 모습을 보인다. 곡 소송요건과 실체법규를 구별하는 편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흠결되었을 때는 원칙적으로 본안 심리에 들어갈 것도 없이 소를 각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관에 관계된 사항인 1)상피, 소 각하 사유를 중심으로 2)단송, 소송 수리에 관한 3) 청송은 소송요건에 관계되어 보안 심리 전에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므로 앞쪽에 배열되었다.”(126)는 애써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실제로 건너 뛰어 읽듯이 했다. 사실 법률 용어가 일상어와 너무 괴리감이 커서 법제도에 대한 이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공포감이나 두려움(법이 신격화되는)을 가지게 하는 것이 크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소송으로 보는 사회 : 현대와 비교

분쟁이 있어야 법이 생기는 것이다.(198) 조선 시대에 노비와 관련된 소송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노비 제도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드러내며 신분제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면 지금 시대에 가장 많은 소송은 무엇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법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 민사 소송 중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물었다.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 임금 지급 청구 소송,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 이라고 한다. 보니 민사 소송은 거의 재산 분쟁이다. 맞다. 현대는 재산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또한 서민들에게 있는 것은 전세금이 전부고, 일해서 받는 임금이 전부인데 그것을 잃었을 때 생계가 위태로워지니 소송을 할 수 밖에 없다.

다물사리의 사건은 결국 사노비가 앙역의 부담이 없는 공노비를 해볼 양으로 벌인 소송이었다. 가난한 양인은 부유한 노비보다 사는 게 못하기도 했고, 사노비보다는 공노비의 일이 힘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요즘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고용이 불안정한 기업에 취직하기 보다는 비교적 기업보다 안정적이고 경쟁이 심하지 않은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이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글쓰기의 고단함

특이하게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머리말이었다. 글쓴이 임상혁이 책을 쓴 계기와 쓰기까지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는데 어찌나 솔직한지 그 심정이 절로 마음에 다가왔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해, 세월이 해가 바뀌어도 책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장님은 더 독촉할 기운도 없을 지경이었지요.”(13) 라고 말하는 지점에선 석사 논문을 너무 심사숙고하다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한 내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모든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만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지금 쓰는 글이 그것의 정형이다) 글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떻게 생각하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면 뚝딱 나올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텍스트가 주는 가치에 대한 고민, 쓰고자 하는 내용의 자료 준비에서 정리와 배치, 읽는 독자에 대한 배려, 문장을 짓는 기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실제 자판을 두드리는 노동력. 등이 없으면 한 줄의 문장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투적일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크게 흥미를 가지기 힘든 소송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조선이라는 사회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쓰고자 한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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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다섯 번째 책은,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너머북스 펴냄)으로 허정화(자유평론가), 이재민(너머북스 대표)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평등이 부재한 세상,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4-① [色다른 책읽기]

최은정(숭실대 중문과 강사)

누가 초현대에 오를 것인가?

옛 중국의 유주(幽州), 지금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아주 오래된 누대(樓臺)가 있었다. 유주에 있어 유주대(幽州臺) 혹은 계북루(?北樓)라고도 부르는 이 누대는, 옛날 유주에 나라를 세웠던 연나라 소왕(昭王)이 어진 이를 모셔와 거처하게 하기 위하여 지은 황금대(黃金臺)로 일명 초현대(招賢臺)를 가리킨다. 당대(唐代) 중국의 시인 진자앙(陳子昻, 661-702)은 ?등유주대가?를 두고 이렇게 읊은 바 있다.

앞으로는 옛사람을 보지 못하고, (前不見古人)
뒤로는 미래의 사람도 볼 수가 없네. (後不見來者)
천지의 무궁함을 생각하다, (念天地之悠悠)
홀로 슬퍼하며 눈물 흘리네. (獨愴然而涕下)

시인 진자앙이 남긴 위의 시는 가슴에 한 가득 원대한 포부를 안고 험난한 출사의 길에 자신을 내던지던 역사 속 여느 지식인들이 모두 통탄에 마지않으며 공감하는 명문이다. 시는 은연중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옛 사람을 보지 못하고, 뒤로는 미래의 사람도 볼 수 없구나. 그렇다면 어진 이를 모셔와 거처하게 한다는 초현대(招賢臺)에 오를 자 누구인가?” 그런데 진자앙의 시대로부터 약 1,400년이 훌쩍 지난 국경 너머 조선 땅 어디쯤인가 유독 골목길 이 씨를 자처하는 한 사내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도발적 언사를 늘어놓는다.

과거의 부처는 나 앞의 나
미래의 부처는 나 뒤의 나.
부처 하나 바로 지금 여기 있으니
호동 이 씨가 바로 그. (<호동거실> 제158수)

그 사내가 바로 골목길 이부처 이언진이다. 요즘 흔한 말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 듯, 내지르는 그의 말투에는 이언진이라는 사람의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언진 평전의 저자 박희병은 이것을 ‘주체성에 대한 확신’이라 평가한다. 문화평론가 조우석에 따르면,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확신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에서 비롯되는데, 스스로를 ‘호동의 부처’라고 선언한 이 시만큼 조선시대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라고 한다.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더욱이 억불숭유(抑佛崇儒)의 기치를 내세우던 당시의 유교적 봉건사회 속에서 역관(譯官)이라는 중인의 신분으로 살면서 부딪치며 느낀 수많은 좌절과 실의를 이루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숲 속에서는 다만 나무만 보이고, 숲을 벗어나야 진짜 숲의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것. 조선이라는 사대부의 나라에서 기득권의 열쇠를 쥐지 못한 중인 신분의 이언진이었기에 조선 사회를 직시할 수 있었고 또 자기 자신을 직시함으로써 결국 신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함과 주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유독 ‘부처’를 자처한 것인가? 바로 여기에 이언진의 ‘저항정신’이 드러난다. 근엄한 주자학 나라, 유교가 밥 먹여주는 조선이라는 곳에서 그는 망설임 없이 ‘부처’를 외친다. 기득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 그리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체제에 대한 부정 나아가 변혁과 혁명을 도모하는 그의 숭고한 정신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시(詩)의 혁명

더욱이 이언진은 그의 시집 <호동거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따거의 쌍도끼를 빌려 와,
확 부숴 버렸으면.
손에 칼을 잡고,
강호의 쾌남들과 결교했으면. (<호동거실> 제104수)

‘이 따거’라 함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양산박 호걸의 한 사람인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를 가리킨다. 이언진이 소설 속의 인물 이규를 불러와 그의 쌍도끼로 부숴 버리고자 한 것은 물론 조선의 왕조 체제이며, 죄악과도 같았던 신분제였다. 다시 말해 그는 위의 시를 통해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뜨거운 혁명의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보여 준 혁명의 의지가 그의 정신에서 뿐만 아니라 시의 예술성에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시를 창작함에 있어 그는 구태의연한 詩의 체제를 탈피하고자 하였다. 그의 ?호동거실?이라는 시집은 시인 이언진이 자신의 사상을 시라는 형식을 차용해 개진해 놓은 텍스트로서의 성격이 농후하다고 저자 박희병은 말한다. 이것은 이른바 시의 의론화(議論化)라고 할 수 있다.

시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의론’은 중국이 당말(唐末)에서 송(宋)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출현한 시의 새로운 경향이다. 이후 송(宋)의 시들은 낭만성과 유미주의적 경향보다 는 강한 의론적 성격 일변도를 걷게 된다. 이언진이 보여준 시를 통해 사상을 개진하는 철학적 시 쓰기의 혁명은 ‘유가와 성리학적 가치’에 부합하는 ‘치세 이념’과 ‘심성 수양’을 드러내는 정주학 중심의 사상·문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유불선(儒佛禪)을 융합하고 노장(老莊)및 서학(西學)을 받아들이는 독창성을 보인다.

<호동거실> 제120수에서 이언진은 “관은 유자요 얼굴은 승려 성씨는 상청의 노자와 같네. 그러니 한 가지로 이름 할 수 없고 삼교의 대제자(三敎中大弟子)라 해야 하겠지”라고 읊는다. 상청(上淸)은 도교의 선인이 산다는 천상의 세계이다. 게다가 노자의 성은 이언진 자신 과 같은 ‘이 씨’이다. 그에게 유불도는 모두 존숭해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은 유불도 삼교의 대제자라 자처한 것이다. 사상탄압이 심한 조선의 하늘 아래에서 그의 시 창작이 갖는 탁월한 혁명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시는 투식을, 그림은 격식을 따라선 안 되니
틀을 뒤엎고 관습을 벗어나야지.
앞 성인(聖人)이 간 길을 가지 말아야
후대의 진정한 성인이 되리. (<호동거실> 제33수)

즉 독창의 세계를 창조할 때 참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인을 답습하는 구태의연함을 벗어나 판을 깨부수고 틀을 뒤집고 말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에 투철하고 타협하지 않는 혁명의 의지와 정신이 빛난다. 특히 “이 따거”(李大哥)가 등장하는 제104수는 중국의 백화체 문장의 어투로 통속적 느낌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언진의 시는 대단히 난해하다고 인식되어 왔으며 바르게 번역되지 못해 왔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가 자유롭게 사용한 백화에 대한 정확한 독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역관이라는 신분적인 배경이 다소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의 언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거리낌 없이 펼쳐 보인 것이다. 시의 언어와 사상이 한 작품 속에서 상승 작용을 하여 독자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이 따거의 쌍도끼”가 등장하는 <호동거실>의 제104수와 같은 작품은 시의 혁명을 이룬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골목길 돌아 돌아

이언진의 호는 호동, 다시 말해 골목길이다. 글 읽고 시 쓰는 선비의 호가 모퉁이 굽이굽이 좁은 길 돌아 돌아 다녀야 하는 먼지 뒤엉킨 골목길이라니. 당시의 근엄한 정주학의 세계에서 보란 듯이 고집스럽게 지어 낸 호동 이라는 호는 시대의 이단아로서의 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의 호가 알려 주듯 그의 문학의 주된 관심과 소재는 서민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활의 중심무대가 호동이요, 그의 문학의 중심무대가 호동이었던 것이다. 호동, 골목길 그곳에는 북적북적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하루 종일 시끄럽게 지지고 볶고, 웃고 떠들고 싸우고 뒤엉키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이언진이 표현한 당시 한양의 골목길 풍경은 어땠을까? 그의 시를 통해 살펴보자.

달구지 소리 뚜닥뚜닥 덜컹덜컹
여인네들 조잘조잘 재잘재잘
나는 면벽(面壁)한 승려처럼
평생 신(神)을 기르네 이 시끄런 데서. (<호동거실>? 제8수)

가는 것은 소, 오는 것은 말길에는 오줌, 저자에는 똥.
선생은 코끝으로 청정(淸淨)을 관(觀)하고
책상엔 피워 논 향 하나. (<호동거실> 제4수)

비집고 들어 갈 틈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비좁고 혼잡한 골목길을 이리 저리 피해 가며, 이 사람 저 사람과 어깨 맞부딪혀 가며, 호리호리 깡마른 체구에 가름하고 백지장처럼 흰얼굴빛의 한 내가 지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의 눈 속에 들어 온 골목길의 풍경은 시끄럽고 불결하지만 정겹기 짝이 없다. 소란스럽게 북적이는 골목을 끼고 자리한 보잘 것 없는 집 한 채. 골목길 부처의 보금자리다. 남루한 민중들의 집결지인 골목길, 그 한복판에 자리한 가난에 찌든 집에서 놀랍게도 시인은 승려처럼 깨달음을 추구하고, 참선을 한단다.

이언진이 보여 준 ‘속(俗)’의 한복판에서 행해지는 ‘성(聖)’의 지극함은 차라리 짐승의 분뇨 냄새 코끝에 진동하는 말구유에서 태어난 어떤 이처럼 숭고하고 성스럽기 그지없다. 뿐만 아니라 ‘속’의 최전방에서 지극한 ‘성’을 이루고자하는 시인의 구도求道 태도의 근저에는 구체제에 대한 확고한 저항과 반역의 정서가 도사리고 있다. 진시황이 죽자 진(秦)에 반기를 들고 진 나라 타도에 나섰던 진섭(陣涉)과 고려시대 노비해방운동을 일으킨 만적(萬積,?-1198)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하는 외침이 절로 오버랩 된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이언진의 시를 통한 사상의 개진에 대해 박희병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문이 (사상을 펼쳐 보이는) 정규전이라면, 시는 게릴라전에 가깝다. 따라서 기습, 치고 빠지기, 응축을 통한 포괄, 도달할 수 없는 심연(深淵)의 포착을 꾀하거나 시대를 넘어선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에는 시가 유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시는 사유의 삽질을 본령으로 삼는 철학과 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이언진은 문학사만이 아니라 사상사의 시좌로 조망되지 못할게 없다.”

각 종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한 개인 의견의 자유로운 전개가 담보된 오늘날의 현재 우리 사회는 ‘논객’들의 활약이 뜨겁다. 이언진 시의 게릴라전적 사상전개의 양상은 흡사 오늘날의 ‘논객’과 비슷하다. 논객들의 말은 예리하고 날카롭게 상대의 급소를 찌른다. 때로는 날카로운 정도가 아니라 말로써 극악을 떤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방패삼아 맹렬한 사나움을 드러내는 삐뚤어진 인터넷 워리어 일명 ‘전사’들도 많지만 그들은 공격의 철학적 기저도 공격의 대상도 방법도 ‘논객’과는 다르므로 차지하자.) 논객들이 극악을 떨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대의 아성이 너무도 견고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피의 대가를 요구한다는 말이 그냥 생겼겠는가? 우리 사회의 도처에 포진해 있는 온갖 구타를 유발하는 장치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 피를 불사하며 투쟁하는 것이다.

시인 이언진이 시 작품을 통해 기습적이고도 공격적으로 제시한 가치는 ‘저항’이었고 ‘혁명’이었으며 ‘혁신’이었다.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에 가득 찬 신분제와 인간 차별에 대한 저항과 낡은 사회체제를 부숴 버리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고자 한 혁명과 혁신이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현재나 과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신분의 벽과 차별이 조선시대 당시에는 가시적이고도 굳건한 사회 체제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미 평등이 부재한 세상을 바꾸는데 페어플레이가 왠말인가? 사치일 뿐이다. 그러니 그 예의 없는 세상에, 구타를 유발하는 세상의 질서에 흑선풍(黑旋風) 이규의 쌍도끼를 휘둘러 버릴 수밖에.

혹자는 말하기를 진보 논객이라 함은 우리가 지향할만한 가치를 거침없이 제시하는 사람이고, 보수 논객은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를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 조선의 논객 이언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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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이번부터는 <色 다른 책 읽기>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루는 책은, 박희병 지음,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돌베개 펴냄)으로, 최은정(숭실대 중문과 강사), 이현숙(자유기고가), 이경아(돌베개 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