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이 부재한 세상,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4-① [色다른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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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정(숭실대 중문과 강사)

누가 초현대에 오를 것인가?

옛 중국의 유주(幽州), 지금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아주 오래된 누대(樓臺)가 있었다. 유주에 있어 유주대(幽州臺) 혹은 계북루(?北樓)라고도 부르는 이 누대는, 옛날 유주에 나라를 세웠던 연나라 소왕(昭王)이 어진 이를 모셔와 거처하게 하기 위하여 지은 황금대(黃金臺)로 일명 초현대(招賢臺)를 가리킨다. 당대(唐代) 중국의 시인 진자앙(陳子昻, 661-702)은 ?등유주대가?를 두고 이렇게 읊은 바 있다.

앞으로는 옛사람을 보지 못하고, (前不見古人)
뒤로는 미래의 사람도 볼 수가 없네. (後不見來者)
천지의 무궁함을 생각하다, (念天地之悠悠)
홀로 슬퍼하며 눈물 흘리네. (獨愴然而涕下)

시인 진자앙이 남긴 위의 시는 가슴에 한 가득 원대한 포부를 안고 험난한 출사의 길에 자신을 내던지던 역사 속 여느 지식인들이 모두 통탄에 마지않으며 공감하는 명문이다. 시는 은연중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옛 사람을 보지 못하고, 뒤로는 미래의 사람도 볼 수 없구나. 그렇다면 어진 이를 모셔와 거처하게 한다는 초현대(招賢臺)에 오를 자 누구인가?” 그런데 진자앙의 시대로부터 약 1,400년이 훌쩍 지난 국경 너머 조선 땅 어디쯤인가 유독 골목길 이 씨를 자처하는 한 사내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도발적 언사를 늘어놓는다.

과거의 부처는 나 앞의 나
미래의 부처는 나 뒤의 나.
부처 하나 바로 지금 여기 있으니
호동 이 씨가 바로 그. (<호동거실> 제158수)

그 사내가 바로 골목길 이부처 이언진이다. 요즘 흔한 말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 듯, 내지르는 그의 말투에는 이언진이라는 사람의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언진 평전의 저자 박희병은 이것을 ‘주체성에 대한 확신’이라 평가한다. 문화평론가 조우석에 따르면,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확신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에서 비롯되는데, 스스로를 ‘호동의 부처’라고 선언한 이 시만큼 조선시대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라고 한다.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더욱이 억불숭유(抑佛崇儒)의 기치를 내세우던 당시의 유교적 봉건사회 속에서 역관(譯官)이라는 중인의 신분으로 살면서 부딪치며 느낀 수많은 좌절과 실의를 이루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숲 속에서는 다만 나무만 보이고, 숲을 벗어나야 진짜 숲의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것. 조선이라는 사대부의 나라에서 기득권의 열쇠를 쥐지 못한 중인 신분의 이언진이었기에 조선 사회를 직시할 수 있었고 또 자기 자신을 직시함으로써 결국 신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함과 주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유독 ‘부처’를 자처한 것인가? 바로 여기에 이언진의 ‘저항정신’이 드러난다. 근엄한 주자학 나라, 유교가 밥 먹여주는 조선이라는 곳에서 그는 망설임 없이 ‘부처’를 외친다. 기득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 그리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체제에 대한 부정 나아가 변혁과 혁명을 도모하는 그의 숭고한 정신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시(詩)의 혁명

더욱이 이언진은 그의 시집 <호동거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따거의 쌍도끼를 빌려 와,
확 부숴 버렸으면.
손에 칼을 잡고,
강호의 쾌남들과 결교했으면. (<호동거실> 제104수)

‘이 따거’라 함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양산박 호걸의 한 사람인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를 가리킨다. 이언진이 소설 속의 인물 이규를 불러와 그의 쌍도끼로 부숴 버리고자 한 것은 물론 조선의 왕조 체제이며, 죄악과도 같았던 신분제였다. 다시 말해 그는 위의 시를 통해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뜨거운 혁명의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보여 준 혁명의 의지가 그의 정신에서 뿐만 아니라 시의 예술성에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시를 창작함에 있어 그는 구태의연한 詩의 체제를 탈피하고자 하였다. 그의 ?호동거실?이라는 시집은 시인 이언진이 자신의 사상을 시라는 형식을 차용해 개진해 놓은 텍스트로서의 성격이 농후하다고 저자 박희병은 말한다. 이것은 이른바 시의 의론화(議論化)라고 할 수 있다.

시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의론’은 중국이 당말(唐末)에서 송(宋)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출현한 시의 새로운 경향이다. 이후 송(宋)의 시들은 낭만성과 유미주의적 경향보다 는 강한 의론적 성격 일변도를 걷게 된다. 이언진이 보여준 시를 통해 사상을 개진하는 철학적 시 쓰기의 혁명은 ‘유가와 성리학적 가치’에 부합하는 ‘치세 이념’과 ‘심성 수양’을 드러내는 정주학 중심의 사상·문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유불선(儒佛禪)을 융합하고 노장(老莊)및 서학(西學)을 받아들이는 독창성을 보인다.

<호동거실> 제120수에서 이언진은 “관은 유자요 얼굴은 승려 성씨는 상청의 노자와 같네. 그러니 한 가지로 이름 할 수 없고 삼교의 대제자(三敎中大弟子)라 해야 하겠지”라고 읊는다. 상청(上淸)은 도교의 선인이 산다는 천상의 세계이다. 게다가 노자의 성은 이언진 자신 과 같은 ‘이 씨’이다. 그에게 유불도는 모두 존숭해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은 유불도 삼교의 대제자라 자처한 것이다. 사상탄압이 심한 조선의 하늘 아래에서 그의 시 창작이 갖는 탁월한 혁명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시는 투식을, 그림은 격식을 따라선 안 되니
틀을 뒤엎고 관습을 벗어나야지.
앞 성인(聖人)이 간 길을 가지 말아야
후대의 진정한 성인이 되리. (<호동거실> 제33수)

즉 독창의 세계를 창조할 때 참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인을 답습하는 구태의연함을 벗어나 판을 깨부수고 틀을 뒤집고 말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에 투철하고 타협하지 않는 혁명의 의지와 정신이 빛난다. 특히 “이 따거”(李大哥)가 등장하는 제104수는 중국의 백화체 문장의 어투로 통속적 느낌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언진의 시는 대단히 난해하다고 인식되어 왔으며 바르게 번역되지 못해 왔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가 자유롭게 사용한 백화에 대한 정확한 독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역관이라는 신분적인 배경이 다소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의 언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거리낌 없이 펼쳐 보인 것이다. 시의 언어와 사상이 한 작품 속에서 상승 작용을 하여 독자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이 따거의 쌍도끼”가 등장하는 <호동거실>의 제104수와 같은 작품은 시의 혁명을 이룬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골목길 돌아 돌아

이언진의 호는 호동, 다시 말해 골목길이다. 글 읽고 시 쓰는 선비의 호가 모퉁이 굽이굽이 좁은 길 돌아 돌아 다녀야 하는 먼지 뒤엉킨 골목길이라니. 당시의 근엄한 정주학의 세계에서 보란 듯이 고집스럽게 지어 낸 호동 이라는 호는 시대의 이단아로서의 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의 호가 알려 주듯 그의 문학의 주된 관심과 소재는 서민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활의 중심무대가 호동이요, 그의 문학의 중심무대가 호동이었던 것이다. 호동, 골목길 그곳에는 북적북적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하루 종일 시끄럽게 지지고 볶고, 웃고 떠들고 싸우고 뒤엉키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이언진이 표현한 당시 한양의 골목길 풍경은 어땠을까? 그의 시를 통해 살펴보자.

달구지 소리 뚜닥뚜닥 덜컹덜컹
여인네들 조잘조잘 재잘재잘
나는 면벽(面壁)한 승려처럼
평생 신(神)을 기르네 이 시끄런 데서. (<호동거실>? 제8수)

가는 것은 소, 오는 것은 말길에는 오줌, 저자에는 똥.
선생은 코끝으로 청정(淸淨)을 관(觀)하고
책상엔 피워 논 향 하나. (<호동거실> 제4수)

비집고 들어 갈 틈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비좁고 혼잡한 골목길을 이리 저리 피해 가며, 이 사람 저 사람과 어깨 맞부딪혀 가며, 호리호리 깡마른 체구에 가름하고 백지장처럼 흰얼굴빛의 한 내가 지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의 눈 속에 들어 온 골목길의 풍경은 시끄럽고 불결하지만 정겹기 짝이 없다. 소란스럽게 북적이는 골목을 끼고 자리한 보잘 것 없는 집 한 채. 골목길 부처의 보금자리다. 남루한 민중들의 집결지인 골목길, 그 한복판에 자리한 가난에 찌든 집에서 놀랍게도 시인은 승려처럼 깨달음을 추구하고, 참선을 한단다.

이언진이 보여 준 ‘속(俗)’의 한복판에서 행해지는 ‘성(聖)’의 지극함은 차라리 짐승의 분뇨 냄새 코끝에 진동하는 말구유에서 태어난 어떤 이처럼 숭고하고 성스럽기 그지없다. 뿐만 아니라 ‘속’의 최전방에서 지극한 ‘성’을 이루고자하는 시인의 구도求道 태도의 근저에는 구체제에 대한 확고한 저항과 반역의 정서가 도사리고 있다. 진시황이 죽자 진(秦)에 반기를 들고 진 나라 타도에 나섰던 진섭(陣涉)과 고려시대 노비해방운동을 일으킨 만적(萬積,?-1198)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하는 외침이 절로 오버랩 된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이언진의 시를 통한 사상의 개진에 대해 박희병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문이 (사상을 펼쳐 보이는) 정규전이라면, 시는 게릴라전에 가깝다. 따라서 기습, 치고 빠지기, 응축을 통한 포괄, 도달할 수 없는 심연(深淵)의 포착을 꾀하거나 시대를 넘어선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에는 시가 유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시는 사유의 삽질을 본령으로 삼는 철학과 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이언진은 문학사만이 아니라 사상사의 시좌로 조망되지 못할게 없다.”

각 종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한 개인 의견의 자유로운 전개가 담보된 오늘날의 현재 우리 사회는 ‘논객’들의 활약이 뜨겁다. 이언진 시의 게릴라전적 사상전개의 양상은 흡사 오늘날의 ‘논객’과 비슷하다. 논객들의 말은 예리하고 날카롭게 상대의 급소를 찌른다. 때로는 날카로운 정도가 아니라 말로써 극악을 떤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방패삼아 맹렬한 사나움을 드러내는 삐뚤어진 인터넷 워리어 일명 ‘전사’들도 많지만 그들은 공격의 철학적 기저도 공격의 대상도 방법도 ‘논객’과는 다르므로 차지하자.) 논객들이 극악을 떨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대의 아성이 너무도 견고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피의 대가를 요구한다는 말이 그냥 생겼겠는가? 우리 사회의 도처에 포진해 있는 온갖 구타를 유발하는 장치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 피를 불사하며 투쟁하는 것이다.

시인 이언진이 시 작품을 통해 기습적이고도 공격적으로 제시한 가치는 ‘저항’이었고 ‘혁명’이었으며 ‘혁신’이었다.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에 가득 찬 신분제와 인간 차별에 대한 저항과 낡은 사회체제를 부숴 버리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고자 한 혁명과 혁신이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현재나 과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신분의 벽과 차별이 조선시대 당시에는 가시적이고도 굳건한 사회 체제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미 평등이 부재한 세상을 바꾸는데 페어플레이가 왠말인가? 사치일 뿐이다. 그러니 그 예의 없는 세상에, 구타를 유발하는 세상의 질서에 흑선풍(黑旋風) 이규의 쌍도끼를 휘둘러 버릴 수밖에.

혹자는 말하기를 진보 논객이라 함은 우리가 지향할만한 가치를 거침없이 제시하는 사람이고, 보수 논객은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를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 조선의 논객 이언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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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이번부터는 <色 다른 책 읽기>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루는 책은, 박희병 지음,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돌베개 펴냄)으로, 최은정(숭실대 중문과 강사), 이현숙(자유기고가), 이경아(돌베개 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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