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아직도 설렌다, ‘아름답다’는 말 [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아름다운 책』(비룡소)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아름다운 책』(클로드 부종 글·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

선생님을 생각하면 저 깊은 곳, 가슴 밑바닥부터 저절로 기분 좋게 찰랑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동시에 환하게 빛나는 느낌.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분이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선생님은 생물을 가르치셨다. 내가 아직까지 과학 쪽을 기웃거리는 데도 그분 영향이 틀림없이 크다. 생물학과 과학을 넘어서, 인간과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첫눈을 뜨도록 친절하게 도닥여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 분 곁에서 자라던 중학 시절은 언제 돌아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게 빛나는 시간이다. 선생님은 염색체, 완두콩, 멘델을 징검다리 삼아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시곤 했다. 언젠가 생물 시간, 선생님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마음으로 결정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설명할 땐 ‘어떤’ 사람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데 그 형용사는 과학 법칙을 넘어서 우리 자신이 만들고 결정할 수 있다는 말씀도 기억난다.

“멋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 훌륭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길로 나갈 수 있다. 자,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그 며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사랑하고 깊이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이니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꽤 여러 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말을 고르는 일이 곧 내 인생을 결정하는 일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조심스레 건져 올렸다.

막상 대답을 찾고 나니 내 안은 순식간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픈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니까 그 뒤부터 나의 성장기를 감히 말한다면 ‘아름다움을 찾아 헤맨 과정’이라 해도 괜찮겠다. 내 마음은 아름다움과 관련 있는 모든 말과 내용을 모으는 이야기 상자와도 같았다.

눈물이 주르르 흐르거나 가슴이 콩당대는 책을 찾아 읽었고 아름다운 말씨, 아름다운 행동이라면 무엇이든 흉내 내려고 했다. 친구들에겐 다 괜찮다, 너그러이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거리에서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지켜보고 쫓아가고 가진 푼돈을 털어 주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쫓으면서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건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겉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사실. 안에서 가만가만 스며나와서는 그 빛과 향기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사실. 그런 건 쉬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내 작은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즈음, 한 개인의 아름다운 삶과 사회적으로 아름다운 삶 사이에 미묘한 틈이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크게 보면 분명 하나이련만 내 깜냥으로는 도무지 통일시킬 수가 없어 분열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저러한 굴곡을 겪으면서도 절대자에게 신심을 바치듯, 중학 시절 선택한 ‘삶의 잣대’를 마음 깊이 품고 살아온 것 같다. 멋진 말이나 용기 있는 모습, 감동을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때면 지금도 아름답단 말이 먼저 나온다. 세상의 구체적인 차이들이 내 감성의 거름망을 거치면 그저 아름답다, 한 마디로 획일화되곤 한다. 나는 점점 더 단순무식하게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

어쨌거나 선생님 덕분에 나는 상대적으로 내면에 충실한 삶의 태도를 배웠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 외모로 겉에 매달렸다면 틀림없이 절망만 깊었을 터이다. 그나마 결정되지 않았고 그래서 가능성을 많이 지닌 내면을 가꾸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 건 다행스런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나 사건을 만나면 가슴이 뛰고 설렌다.

나는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한다. 무슨 공부를 한다, 딱 꼬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는 ‘마음공부’를 한다고 얼버무리곤 한다. 마음공부라! 참 멋진 얘기지만 이렇게 외연이 넓어서야 무책임하단 말을 들을 법도 하다. 아이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가 좋을 때는 “아름답다!”는 말부터 튀어나오는데, 이제 아이들은 으레 그런 줄 알고 자기들이 알아서 분류하고 때로 구체적인 차이를 되묻기도 한다.

아이들과 하는 주된 공부가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일이라지만 소소한 일상을 놓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다. 수다를 떤다고도 볼 수 있는데, 우리 수다가 삶의 진실 어느 자락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면 주저 않고 책을 덮는 편이다. 삶이, 이 세상이 커다랗고 심오한 책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하지만,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글 잘 쓰길 바라서 데려왔을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탈 때도 많으리라. 수업하는 몇 주 동안이고 책을 읽지 않을 때도 있다. 책을 읽는다 해도 다 큰 아이들과도 그림책을 자주 읽는다.

제목부터가 『아름다운 책』(클로드 부종 글·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이라는 그림책이 여기 있다. 유아용으로 분류돼 있는 이 책은 내용이 아주 간단하다.

 

『아름다운 책』중에서

토끼인 형 에르네스트가 길에서 책을 한 권 주워온다. 동생 빅토르는 생전 처음 책을 본다. “그게 뭐 하는 건데?” “책은 읽는 거야. 글씨를 읽을 줄 모르면 그림을 보는 거고.” 형과 동생은 같이 책을 읽는다. 책 속 주인공은 당연히 토끼들이다. 재미나게 구슬치기를 하는 토끼, 용을 때려눕히는 토끼 이야기 같은 것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빅토르가 책을 보며 꿈을 꾸기 시작한다. “빅토르, 꿈을 꾸는 건 좋아. 하지만 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다 믿으면 안 돼. 나름대로 판단을 해야지.” 무지무지 큰 토끼가 콩알만한 여우를 갖고 노는 장면을 보니 둘은 기분이 더없이 좋다. 자기들 같은 보통 토끼가 사자와 여우를 훈련시키는 장면에선 “진짜로 이러면 얼마나 좋겠어!” 한숨까지 나온다.

이렇게 둘이 책읽기에 빠져 있을 때 바로 앞에 진짜 여우가 나타난다. ‘크흐흐’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여우. 당장 잡아먹힐 순간인데, 둘이 가진 거라곤 책밖에 없다. “책! 그렇지!” 에르네스트는 책으로 여우를 내려치고는 여우 입에다 책을 쑤셔 넣는다. 여우는 책을 문 채 도망가고 만다. “봤지, 책은 정말 쓸모 있는 거야.” 에르네스트는 때를 놓치지 않고 동생에게 일러준다.

내가 평생을 마음으로 조물락거리며 애지중지한 말 때문인지,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을 붙잡았다. 책이 우리를 꿈꾸게 하고, 때로 현실을 바로 보게 하고,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는 걸 두 형제는 책을 보며 직접 겪고 배운다. 형제를 보며 ‘그래, 책은 세상과 삶과 우리 마음 사이에 놓인, 참 재미있고 튼튼하고 믿음직스런 징검다리다’ 생각한다. 그런 생각 끝에 절로 흘러나오는 소리, “책은 참 아름답다!”

작가 클로드 부종은 다른 작품을 봐도 그렇고,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게다가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재주가 있다. 다들 왜 그렇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아우성인지, 몇 장 안 되는 이야기로 할 말을 다 한다. 현실을 보고, 꿈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문제로 달려드는 것. 책을 보며 우리는 이런 힘을 얻는다. 그러니 책을 안 보고 어찌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책이 지닌 이런 힘을 ‘아름답다’고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고맙다, 책들아!
책은 웃음, 천진함, 무, 다정한 저녁들,
텅 빈 충만, 대 숲에 이는 바람의 직계(直系)다.
······
그것들은 내가 먹은 밥, 내가 마신 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 덧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엄청난 다독가로 알려진 시인 장석주가 한 말이다. 책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왠지 딱 시인이 되지 싶다. 장석주는 책을 보며 저리도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고 느끼며 몸과 마음을 키운다. 그리고 자라나는 존재가 시키는 대로 시를 쓴다. 그러면서도 장석주는 “엄정하게 말하자면 책읽기에 힘씀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말 그대로 아주 엄정해서 가슴이 철렁할 정도다.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여우를 내려치는 것, 책읽기가 결국에는 삶으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장석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지도 모른다. 클로드 부종이 재미있고 명쾌하게 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면, 장석주는 따뜻하면서도 한편 처절하게 책의 힘과 자기 존재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책을 읽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를 휘어잡는 힘이 있다. 그래, 존재를 휘어잡는다. 그러니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책이 존재가 되고 삶이 되지 않을까. ‘책읽기가 삶으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앞서 한 말은 ‘책읽기는 삶으로, 세상으로 나간다’고 바꿔야 정확하지 않을까. 달려드는 여우를 책으로 물리칠 때 책밖에 없었던 건 우연일까.

가만 보니 ‘아름답다’는 말 하나 때문에 『아름다운 책』을 붙잡아서는 쩔쩔매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일치만이 아니라, 내가 부여잡는 아름다움과 이 책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다르지 않다는 걸 밝혀 보겠다고 이리 헤매나 보다.

그런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어떤 이야기를 자꾸 피해가는 느낌이 든다. 말로 하기 힘들 때도 많지만 어떤 건 말로 하고 싶지 않다. 말과 말 사이에 남겨 두고 싶다. 이런 느낌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책을 읽다가 활자들 사이에 놓인 그 무엇에 사로잡혀 본 적은 없는지. 그건 작가가 만드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우리 자신이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그 비슷한 느낌에 기대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나는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고픈 꿈이 있다. 『아름다운 책』같이 재미있는 책을 보며 꿈을 키우고 다듬고 아이들과 꿈을 나눈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만났던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 선생님이 내게 주었던 느낌들을 나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나를 만나며 어떤 느낌을 받는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곁에 있어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었던 옛 꿈을 여전히 꾼다. 아이들과 있어서 감히 나 자신이 아름다운 사건이 되면 좋겠다던 어린 시절 바람을 아직은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이렇게 스스로 다독인다. 그저, 아이들이 가끔은 ‘이런 사람 만나서 좋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내가 내 삶을 치장할 소중한 형용사를 선생님과 함께 발견했듯이, 아이들이 자기 빛깔을 살릴 그 무엇을 찾는 시간을 나와 함께 가지는 거라면 참 좋겠다고.

김호경(어린이철학 선생님) /

[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잉쯔의 고민

여러분은 혹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온 경험이 없나요?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아마 누구라도 바짝 긴장하게 될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만 봐서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천사같이 고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예쁜 얼굴로 상냥하게 웃는 아가씨가 실은 유괴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려면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실제 행동을 봐야 합니다. 걸핏하면 남을 괴롭히고 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쁜 사람일 테지요. 반대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정말 사람의 행동만 보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 같은 행동을 두고도 누구는 좋다 하고 누구는 나쁘다고 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니까요.

한번 우리나라 대통령의 예를 들어 볼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해 왔는지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행동, 같은 사람을 놓고 좋다, 나쁘다는 생각이 갈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황금빛 붉은 태양이 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태양은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하잖아요? 나는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겠고요.”

이 말은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라는 중국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잉쯔가 한 말입니다. 잉쯔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여자아이입니다. 그리고 잉쯔가 말을 건네고 있는 사람은 마을 어귀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낯선 아저씨입니다. 잉쯔는 이때 모르고 있었지만, 실은 이 아저씨는 도둑이랍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값비싼 물건을 이미 여러 번 훔쳤고, 그래서 경찰이 뒤쫓고 있는 사람이지요. 저지른 행동만 놓고 보면 이 아저씨는 분명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다시 생각해 봅시다. 혹시 이 아저씨가 좋은 사람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다시 말해,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데도 나쁜 행동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여러분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거짓말은 일반적으로 나쁜 행동이지만, 때로 좋은 마음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염려하여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숨긴다면 바로 그런 경우지요.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상황에 따라서는 살인조차 좋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생각해 보세요. 안중근 의사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일본의 지도자 이등박문을 살해했습니다. 이 행동은 어디까지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로운 마음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사람의 행동만 갖고 섣불리 좋다, 나쁘다를 단언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잉쯔가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저씨에게는 잉쯔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짜리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은 해마다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는 아주 뛰어난 학생입니다. 품은 뜻도 커서, 학교를 졸업하면 바다 건너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아저씨는 직업도 없고 무척 가난했답니다. 더욱이 늙은 어머니까지 보살펴야 하는 처지라서 동생을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늙으신 우리 어머니는 희망 없는 나를 위해 우시다가 눈이 멀었단다. 어머니는 지금 내가 개과천선해 집을 잡히고 그 돈으로 조그만 장사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계시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모르신단다. 오직 책만 들고파는 내 동생은 나를 좋은 형이라고 생각하지. 당연하지, 내가 제 학비를 대니까. 지금 난 동생 유학 뒷바라지해 줄 생각밖에 없단다. 그러니 나 좋은 사람 아니냐? 잉쯔, 네 생각에 나는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아저씨가 왜 도둑이 되었는지 이제 짐작이 가나요? 아저씨는 동생의 유학을 돕고 눈먼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기 위해 도둑질에 나선 겁니다.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나쁜 행동을 한 거지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보통 좋은 마음에서 좋은 행동이, 나쁜 마음에서 나쁜 행동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좋은 마음에서 나쁜 행동이 나온 걸까요?

사실 아저씨의 경우를 잘 살펴보면, 두 가지 생각 또는 두 가지 도덕이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지요. 아마 다른 사람들 같으면 두 가지 도덕을 다 잘 지키는 일이 어렵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일푼인 데다가 직업도 없는 아저씨로서는 둘 다 잘 지킬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하나를 저버리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을 가리켜 흔히 딜레마(dilemma)라고 부릅니다. ‘도덕적 딜레마’는 어떤 행동을 선택하든 간에 어떤 도덕을 어길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내 친한 짝꿍이 다른 친구의 물건을 훔치는 걸 내가 봤다고 해 봅시다. 이 경우 나는 짝꿍의 행동을 못 본 척하면 나쁜 행동에 가담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사실을 폭로하면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우정과 정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저버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잉쯔가 만난 아저씨도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두 가지 도덕이 충돌하더라도 더 중요한 상위의 도덕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 도덕을 선택하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가족의 안위를 돌보는 일보다 공공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므로, 가족을 위해 도둑질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요. 물론 일리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느 도덕이 더 우선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의 경우, ‘나라를 구해야 한다’와 ‘살인하면 안 된다’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상위의 도덕으로 보았을까요? 문제는 안중근 의사의 대답과 간디의 대답이 같은 것일 리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해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없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요. 옛날 중국에서는 죄 지은 부모를 자식이 고발하면 오히려 자식을 사형에 처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국법보다 효도가 훨씬 더 중요한 도덕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러지 않지요. 그러나 옛날의 도덕보다 오늘날의 도덕이 더 옳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어느 도덕이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하는가는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쉴 새 없이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하고 판단하지만, 그 판단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확인할 길은 사실 없습니다. 생각이 같고 판단이 같은 사람을 얼마든지 많이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의 판단과 대립되는 다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란 없습니다.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 문제, 사형 문제, 낙태 문제, 환경개발 문제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이런저런 이유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뉘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어느 쪽 판단이 옳은가를 입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서로가 끊임없이 상대쪽을 설득하는 과정, 그래서 자기쪽이 다수파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잉쯔의 고백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잉쯔가 만났던 아저씨는 결국 얼마 못 가 경찰에 붙잡히고 맙니다. 그러나 잉쯔는 경찰에 끌려가는 아저씨를 먼발치에서 보면서도 아저씨가 결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수평선을 자세히 보면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듯이, 사람 사는 일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쉬 구별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김우철(한우리독서토론논술 연구실장) / admin@admin.com

알랭 드 보통『행복의 건축』 [청춘의 서재]

공간이 움직이고, 삶이 꿈틀거린다.

마침내 집에 돌아와 혼자 있게 되어 복도 창 밖 정원 위로 어둠이 깔리는 것을 보면, 서서히 더 진정한 나, 낮 동안 옆으로 늘어진 막 뒤에서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와 다시 접촉을 하게 된다. 낮 동안 가라앉아 있던 장난스러운 면이 문 양옆에 그려진 꽃에서 힘을 얻기도 한다. 커튼의 섬세한 주름에서 온유의 가치를 확인하기도 한다. 허세를 부리지 않는 바닥의 거친 나무 판자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수한 행복에 부쩍 관심이 생긴다. 우리 주위의 재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품고 있는 최고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행복의 건축』중에서-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집은 일상에 매몰된 내가 진정한 나의 모습을 되찾는 공간이다. 나는 내 집 문고리, 커튼의 모양 속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치들과 추억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서 또 나는 희망을 발견한다. 집은 우리의 추억과 동시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일 또 지칠 줄 알면서도 집을 나설 것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서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공간 속에 존재하고, 그 공간이 움직임에 따라 삶 전체가 요동친다. 어릴 적 꿈이 어린 내 방, 맛있는 추억을 간직한 주방, 아빠와 뛰놀던 정원, 애인과 웃고 떠들던 교외 벤치… 공간은 사라지기도 하고 또 새롭게 탄생되기도 하면서 내 삶을 둘러싼다.

내가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마주한 건 하필이면 우리 동네에 재건축의 바람이 불어 닥칠 때였다. 온 동네가 술렁거렸고, 사람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각자의 집을 머릿 속에 그려봤다. 그 때, 나는 내 추억어린 공간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이 나에게 행복을 말해준다고? 이러한 석연치 않은 의구심으로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내 눈에 띄는 저 촘촘한 공간이 숨쉬고, 나에게 말을 걸고, 심지어 울렁이게 하고 벅차게 하는 마법을 느꼈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을 통해서 바로 이런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축은 우리에게 여러 가치들을 기억해내고 생산해내는 작업이며,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건축 속으로…

어떤 사람에게 건축은 단순히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한 공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반면, 어떤 사람에게 건축은 아름다움의 현현일 수 있고, 신성한 존재의 거주공간일 수도 있다. 가까운 교회나 성당에 들어가면,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신성함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에게 건축은 문화와 역사를 바꾸고 이끌어가는 공간일 수도 있다.

건축이 추위나 더위를 막아주는 집을 짓는 작업이라는 생각은 이미 넘어선지 오래이다. 서양적 전통에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니콜라우스 펩스너의 말처럼, 링컨 성당은 건축이지만, 자전거 보관소는 건축일 수 없다. 그러면 건축의 본질은 아름다움인가?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건축의 미적 추구가 실용성의 문제에 부딪친 것은 이른바 건축 기술자들이 생겨나면서 부터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건축은 제작비용과 그것의 효용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싼 비용으로 가장 긴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를 설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지, 그 다리가 어떤 스타일로 지어져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지나치게 미적 감각을 추구한 나머지, 아름다운 집이지만 정작 집의 본질적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높은 천장과 사방이 유리로 된 집의 경우, 미관상 아름다울 수는 있으나, 거주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건축은 기술과 예술 사이 어딘가에 있다.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제거하고, 건축의 과학과 기술을 도입하여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새로운 건축을 원했고, 기술자이기를 자처했다. 그의 건축에 대한 생각은 ‘건축은 거주하는 기계’ 라는 간단명료한 정의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실용정신을 강조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역시도 예술적 동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르 코르뷔지에가 그토록 실용주의를 강조했으면서도, 결국 ‘빌라 사부아(르 코르뷔지의 건축물)’를 “아름답지만 방수는 되지 않는 집”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바로 그의 예술적 충동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물이 말을 한다?!

건축물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건물이 말을 한다고?? 이 발칙한 알랭 드 보통의 주장에 당황해하지 말고, 그의 재미있고 발랄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보자. 내가 어떤 건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외관상 예컨대, 아름다운 장식이나 구조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외관상 건물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건물이 보여주는 모습 (지붕, 구조물, 손잡이, 창틀, 내부의 인테리어) 이 좋은 생활이라는 관념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건축은 좋은 생활과 느낌의 관념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건축은 마치 거대한 상형문자와도 같다.

건물이 말하는 바는 곧 그것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신의 성스러움과 숭배에 대해 말한다. 바꿔 말하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신의 성스러움과 찬미를 위해 지어졌다. 철학자 하이데거에 따르면, 그리스 신전의 건립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표현하면서 거기에 신을 깃들게 하는데 있다. 우리는 그리스 신전 또는 성당이 말하는 신의 존엄과 영광 속에서 고개를 숙인다. 인간은 성스러운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고 불안에 떠는 불쌍한 존재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건축은 불행한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나의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는 단순히 낡고 흉물스러운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일제 치하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건물은 우리에게 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언제나 묵묵히 기다린다. 우리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줄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물이 은근하게 건네는 조언”에 언제나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때 비로소 건물의 돌, 흙, 지붕, 계단은 생생한 관념으로, 재미난 이야기꾼으로 거듭날 수 있다.

건축은 기억과 희망을 연결하는 행복의 ‘곳’이다.

건축은 삶을 위한 공간이자 거처하고 있는 사람의 의식의 내부이기도 하다. 예컨대, 집은 물리적 공간이자 내 기억과 애정이 담긴 심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세계 곳곳에 있는 무덤들은 그 외관과 양식, 그 의미들이 모두 다르더라도 공통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기억하라’이다. 나의 집은 나의 역사를 담고 있다. 또 한 어떤 건물은 추억이 아닌 희망과 열망을 담기도 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궁 천장에 그려진 네 명의 여인은 정의, 평화, 온유, 절제를 표현하는데, 이는 곧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건축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있다. 거기에는 추억이 있고, 이상과 희망을 담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의 현존을 증명하는 ‘그 곳’이 있다. 하나의 건물에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으며, 그 목소리가 내는 화음이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사실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빛을 가득 담고, 곳곳에 추억과 희망을 불어넣는 작업만큼 행복에 기여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건축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행복을 만들고, 그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건축이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가장 고귀한 건축이 때로는 낮잠이나 아스피린이 주는 작은 위안에도 못 미칠 수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 속에서 나는 애인과 다툴 수도 있고, 반면 지하 월세방에서도 행복한 가족의 웃음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진정한 건축은 외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보다 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름의 방식으로 말하고, 담아낼 줄 아는 탁월한 재주꾼의 창조이다. 그리고 바로 알랭 드 보통이 말하고자 하는 행복의 건축의 의미도 그런 것이다.

우리의 행복, 우리의 미래의 곳은 어디인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에게 건축은 행복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네 삶의 공간은 어떠할까?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여전히 건축은 행복을 만들고 있는가? 언젠가 건축가 교수가 대한민국의 건축 현실 안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와 같은 건축가는 전혀 꿈꿀 수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물질숭배가 극에 달한 한국 사회 속에 부동산 투기가 있고, 그 투기 한 가운데에 바로 건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동안 건축의 의미나 역할,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자면, 건축이 말하는 바에 전혀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우리에게 건축은 단순히 내 한 몸, 우리 가족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그나마 그것은 나은 편이다. 언젠가부터 이제 건물은 부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똑같은 건물이라도, 지역에 따라 그 값이 천차만별이고, 아름다운 건물은 단순히 값을 부풀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국 현실에서 건축은 좁은 공간에 보다 많은 사람을 밀어넣는 효용성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돈 버는 기계’일 뿐이다.

남산타워 전망대에 가면, 서울 도심이 한 눈에 보인다. 개성을 상실한 채, 높다랗게만 솟은 건물들이 반짝 반짝 빛나는 불빛으로 겨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나는 그 건물들이 나에게 뭐라고 속삭이는지 보다 내가 그 건물 속 어디에 살 것인지가 더 궁금하다. 저기 어디쯤에 내 집이 있을까? 어쩌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행복의 건축은 대한민국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건물이 무엇을 말하든, 그것이 아름답건 실용적이건 간에, ‘내 공간’ 하나 얻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그 공간이 어떠하다는 의미부여는 그 다음에 생각해 볼 문제다. 치솟은 전세 값에 집에 대한 희망은 그만큼 멀어지고, 도심 곳곳의 재개발은 돈 있는 자만 살아남는 서바이벌의 장이 되어버렸다. 이 냉혹한 현실이 바로 대한민국의 ‘곳’의 현재이다.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건축의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언젠가는 우리 미래의 ‘곳’을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다. 희망을 담는 것 또한 건축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덮으면서, 나는 문득 아주 익숙한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값비싼 빌딩보다 초가집이 더 좋다는 이 소박한 희망이 자꾸만 서글프게 들리는 건 왜 일까?….

최진아(건국대 강사) /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청춘의 서재]

“일상적인 삶의 경험은 우리가 원하는 삶에 의해 부정되고, 그것은 다시 우리가 실제로 희망하는 삶에 의해 부정된다.”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뽑아 든 책에서 저 글귀를 만난 이후로,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저 문장을 읽은 건 일종의 만남이었고, 내면에서 일어나던 일련의 심리적 사건들의 성격이 해명되는 순간이자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를 받는 경험이었다. 청춘이라는 말에 어울릴 만한 기간은 아마, 일상이 결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런 자아가, 맨 발로, 일상이라는 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인 나이와는 또 다르게, 일상의 현실이 유일하고 압도적인 현실이 되는 순간마다 우리는 청춘에서 물러나게 되는 듯하다.

그런데 일상적 삶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간에, 현실의 삶과는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그 내면세계를 어디서 어떻게 갖추게 되는 걸까? 망구엘은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어떤 역사를 지니는지’를 조사하고 적어 내려가면서 이런 의문을 푸는데 도전한다. 책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찾아 헤매는가?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이길래 그게 우리를 매혹시키는지도 알고 싶어한다. 그는 『독서의 역사』에서 비록 시대는 달랐지만 ‘(책) 읽기’라는 경험을 공유하는 ‘독서가’들로부터 그것을 찾아내려 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를 살피려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읽는다.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이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읽는다. 뭔가를 읽지 않고는 배겨 내지 못한다. 읽기는 숨 쉬는 행위만큼이나 필수적인 기능이다.” 읽기라는 행위 전체에서 보면 “책장의 문자를 읽는 행위는 그런 기능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일 뿐”이지만, “문자 기록이 없는 사회에서는 시간 감각이 ‘일직선적’인 데 반해, (문자 기록을) ‘읽고 쓸 줄 아는’ 사회에서는 시간 감각이 ‘점증적’이다.” 그리고 시간적 제약을 뛰어넘은 그 점증적인 시간 감각이 일상의 현상적이고 휘발적인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사실, 저자는 스스로도 밝혔듯 서술방식으로서 “연대기적 순서나 논리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았는데,” 그것은 체계에 기대지 않고 한 명 한 명의 독서가가 누린 삶과 책 읽기를 들여다보고 싶어 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서술 방식은 책 읽기와 관련해서 그가 가진 의문이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쉽게 알아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인용했던 독서가들의 ‘고백’을 빌린다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음직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내면세계의 전부가 책 읽기를 통해 형성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부는 그렇다. 특히나 일상적 삶 내지는 ‘현실’과 내면세계와의 관계는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나 미세하게라도 거듭 수정을 반복하고 있을 텐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통로가 책 읽기이다. 게다가 잘하면 양자의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기대가 번번이 좌절되기 일쑤인 일상 속에서 버티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은 다양하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 힘을 길러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망구엘 또한 그랬듯 “책에 빠져들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싶은 욕망과 가능한 한 결말 부분을 늦추려는 욕망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어본 적 있는 이라면 누구든 책 읽는 것 자체가 너무도 재미있어서 단지 그 이유로 책을 읽어봤음직하다. 그러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부 작품들을 제하면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무언가를 기대하고 찾는 심정으로 책장을 펼쳐 들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오직 몇몇 축복받은 그런 독서 경험에서조차도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는 검은 잉크로 뒤덮인 종이 뭉치를 살아 있는 것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하고,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그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던 카프카의 이야기를 망구엘의 책에서 다시 그리고 마저 들어보자.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우리에게 책이 전혀 없다 해도 아마 그만큼은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들은 우리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단 말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마치 우리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던 이의 죽음처럼, 아니면 자살처럼, 혹은 인간 존재와는 아득히 먼 숲속에 버림받았다는 기분마냥 더없이 고통스런 불운으로 와 닿는 책들이라구.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아마 이 문절과 만난 것만으로도 망구엘의 책을 들춰본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듯싶다. 평범한 우리들과 달리 탁월한 독서가들이나 위인들은 공통적으로 자기환상을 껴안기보다는 무언가에 마비되어 있는 자신을 깨우려고 한 것 같다. 책 읽기는 즐거움도 아픔도 주지만, 책 읽기에서 더 고유한 건 삶에 편재된 고통을 간신히 견디게 하는 그 마취를 풀어버리는 것이라니.

그렇다면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이길래 우리의 내면을 뒤엎을 수 있단 말인가. 감지하다시피,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간단히 대답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물음인데 이에 대해 망구엘은 이 물음 앞에서 정직하게 대답하는 용기와 세련된 교양을 보여준다.

“독서가들이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는 가운데 오늘날의 우리 독서가들은 독서란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만 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독서 역사의 미래는― 마음 속으로만 읽어야 할 텍스트와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야 할 텍스트를 구별하려고 노력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독서가의 해석 권한을 제한하는 데 의문을 품었던 단테에 의해 …… 두루마리식의 책 읽기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성가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에게 그런 방법 대신 책장을 넘겨 읽으면서 여백에 끄적거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초기의 책 제조업자에 의해 이미 탐험되었다.”

우리 독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 ‘책 읽기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일이라고 지목한 망구엘은 사실상 ‘책을 읽는다는 경험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한 셈이다. 그리고서, 그는 역사상 실재했던 독서가들의 경험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시대를 거슬러 혹은 시대를 앞, 뒤로 오가면서 알렉산더 왕을 비롯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중세의 필사자들, 와일드, 그리고 카프카나 릴케는 물론 무명의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는다는 행위와 그 힘에 대하여 탐색해나간다.

“기원전 3천년대 말 즈음,” “십중팔구, 적는 기술은 어느 가족에 가축 몇 마리가 있는지, 아니면 어느 지점으로 가축 몇 마리를 옮겼는지 따위를 기억하기 위한 상업적 목적에서 발명되었을 것이다. 쓰여진 기호는 기억력을 높이는 장치의 역할을 했다. 그림 속의 소 한 마리는 소 한 마리를 의미했기 때문에 그것을 읽는 자에게는 거래가 소로 이뤄졌다는 사실과 몇 마리의 소가 거래되었는지, 아마 소를 산 사람과 판 사람의 이름까지도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인류가 뭔가를 적기 시작했을 때, 읽는다는 행위는 거래 내용을 파악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읽어줄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뭔가를 쓴다는 행위의 목적은 그 텍스트를 보존하려는 것―다시 말해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새김은 동시에 한 사람의 독자를 창조해 낸 셈이다.”

더 나아가, 망구엘은 저자와 독자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독서가의 역할을 창조해 냄으로써 저자는 동시에 저자의 죽음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는 텍스트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저자가 존재를 멈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현존하는 한 그 텍스트는 언제나 미완으로 남는다. 작가가 텍스트에서 손을 뗄 때에만 그 텍스트는 텍스트로서 존재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텍스트는 한 사람의 독자가 읽어 줄 때까지 조용한 존재로 남는다. 기호를 읽을 줄 아는 눈이 서판에 새겨진 형상 앞에 서는 순간, 그 텍스트는 왕성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렇듯 모든 기록은 독서가의 호의(generosity)에 의존한다.”

쓰여진 기호가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순간은 그것이 읽힐 때이며, 독서가로서 임무는 그것을 읽는 것이다. 이제 추적해야 할 것은, 그 읽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또 그게 읽는 자에게 어떤 경험인지를 알아내는 일이겠지만 그것은 애초 완벽하게 대답될 수가 없다. 다만 “우리 존재는 읽은 만큼 성장”하고 “그 순환이 완성되는 과정은 단순히 지적인 과정만은 아니라는 휘트먼”의 믿음으로부터, 책을 통해 우리의 내면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는 있겠다.

“표면적으로는 지적으로 읽어 어떤 의미를 파악하고 어떤 사실들을 자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도 텍스트와 독서가는 서로 한데 얽히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창조해 낸다. 그래서 우리가 텍스트를 섭취하여 텍스트가 가두고 있던 무언가를 풀어 낼 때마다 그 텍스트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아직 파악해 내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책 읽기라는 행위를 알아내려는 우리의 시도가 애초 불가능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이다.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우리가 아직 잡아내지 못했던 다른 무언가와 마주치므로 “어떠한 책 읽기도 결코 완성”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같은 책이더라도 매번 새로운 책 읽기가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망구엘은 저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손질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결코 똑 같은 책으로, 아니면 똑 같은 페이지로 되돌아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 우리도 변하고 책도 변하고, 그리고 우리의 기억도 밝았다가 쇠해졌다가 또다시 밝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배우고 까먹고 또 기억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도 한다.”

“인생 여정의 단계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책 읽기라는 행위에서 책을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읽는 자로서 갖는 힘이다. 아카데미 내에서야 어떻게든 자의적인 읽기를 배제하고 형식화된 결과물들을 축적하려 함에도, 망구엘의 탐색에 따른다면 책 읽기는 어쨌든 독자와 텍스트의 결합 과정으로서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얼마간 ‘자의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서기 330년, 훗날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기억될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독서법만이 진실”이었는데, “종교 텍스트에 대해 한 가지 독서법을 요구하는 일은 만장일치 제국이라는 콘스탄티누스의 개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원본에 보다 가깝게, 포용성은 보다 덜하게’, 이거야말로 당시에 베르길리우스의 시 같은 세속적인 텍스트를 읽는 데 유일하게 허용됐던 정통적인 독서 개념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어째서 콘스탄티누스가 표준적인 독서법을 고집했는지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책 읽기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똑똑히 자각하고 있었다. “아득한 옛날 성 금요일에 콘스탄티누스가 발견한 것은 한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대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의 단어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사적으로 그 텍스트나 저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의문을 풀어 주는 메시지로 바꿔 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의미 변질은 텍스트 자체를 확장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에 독서가 자신의 환경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 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 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말해 그것을 재창조한다.”

콘스탄티누스는 독서가가 갖는 힘의 위력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그것을 조정하려고 했음이 드러난다. 망구엘은 이를 통해 독서란 독자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원본을 재창조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읽어야 좋다거나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책 읽기 과정이란 사실 텍스트의 재창조 과정임을 분명히 직시하면서 그로 인한 위험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로 나아간다.

“독서가의 힘이라고 해서 모두가 계몽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의 텍스트를 창조할 수 있고, 그 텍스트의 의미를 다양화하고 그 텍스트로 과거와 현재를 비추고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해 낼 수 있는 똑 같은 행위가 살아 숨 쉬는 페이지를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독서가는 나름대로 책 읽기의 방법을 창조해 내는데,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독서가는 그 텍스트를 어떤 교의나 전횡적인 법, 사사로운 이익, 노예 소유자의 권리나 전제군주의 권위 등에 교묘하게 종속시킴으로써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책 읽기 과정이 독자의 역량에 따른 재창조 과정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독자의 역량에 달렸기에 읽는 이의 그것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므로 순수한 객관적인 읽기라는 건 환상이지만, 그럼에도 텍스트에서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독서라는 재창조 과정의 한계를 벗어난다. 망구엘은 비록 “의도적인 거짓말”만을 지적했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책에서 그것을 보았노라고. 나 역시 망구엘의 이 책을 다 읽지도 잘 읽지도 못했다. 휘트먼이 분명히 드러냈듯 책 읽기는 완성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저 거듭 읽기를 통해서 고쳐나갈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책과 내면세계 모두 변화를 겪는다. 망구엘은 무엇을 읽는다는 것 역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독자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책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었다.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무수한 좌절에도 다시 일어서고, 책에서 기대하는 그것을 번번이 찾지 못하더라도 다시 책을 쥔다. 책의 무엇이 다시금 책장을 넘기도록 하는지에 대해서는, 망구엘이 ‘마지막 페이지’라고 제목 붙인 첫 번째 챕터에서 맺음말로 인용했던 오르한 파묵의 어느 문절로부터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편도 마차 승차권으로는 한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삶이라는 마차에 오를 수 없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다면, 그 책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은 뒤에 언제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음으로써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김정신(한국철학사상연구회) /

김창완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청춘의 서재]

‘청춘의 서재’라는 말 앞에 멈춰 섰다. 청춘에게 권하는 책에 대해 글을 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코너명일 테다. 그런데 이 말 앞에 한참을 멈춰 선 것은 이 말의 어색함 때문이었다. 청춘에게 ‘서재’라…

나의 청춘을 돌아 보았을 때 나의 청춘엔 ‘책꽂이’가 있었다. 편식과 잡식으로 엉성한 책꽂이였다. 도서 분류 기준표 상 고른 책, 혹은 인문, 자연, 사회 별 고른 책이 아니라 내가 당시 관심을 가진 책만 잔뜩 꽂혀 있는 책꽂이였다. 그러면서도 책 고르는 안목이 없어 어처구니없이 어렵거나 평생 가야 다시 볼 일 없는 허튼소리가 적힌 책까지 들쭉날쭉 꽂혀 있는 책꽂이였다. 정작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은 후배의 생일에 아낌없이 선물한 결과 훗날 내가 그 책을 읽었는지 가물가물해져 추억할 건더기마저 남아 있지 않은 가난한 책꽂이였다.

그 때의 가난한 책꽂이는 결핍이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편식과 잡식을 단진동하고 책이 책꽂이에 붙박히는 날 없었던 그 가난한 책꽂이가 읽히지 않은 전집으로 채워진 서재보다 얼마나 생산력이 있었던지… 늘 비어 있다는 생각에 끝없이 새로운 주제를 찾아 나서곤 했다. 청춘에는 항상 ‘찾아 나섰다’면, 이제 달라진 것은 ‘찾아 들어온다’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작고 부끄러워서 더 크고 위용 있는 것을 찾아 나섰던 나는 이제 내가 작고 부끄럽다고 여긴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고, 그 평범, 그 통속성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지금 이 글을 통해 나는 내가 좋아했던 ‘산울림’과 대중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40살 무렵, 한 대학의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두 개의 노래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하나는 산울림의 ‘청춘’,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브레인의 ‘그것이 젊음’. 학생들은 후자의 노래는 잘 알고 있었지만, ‘청춘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럴 줄 알고 ppt에 노래와 가사를 담아 게시했다.

‘청춘’은 내 젊음이 한창일 때 도취하여 청승스레 불렀던 노래이고, ‘그것이 젊음’은 젊음이 한풀 꺾인 40에 ‘미친 듯’고개를 흔들며 -소위 ‘헤드 뱅잉’, 혹자는 ‘헤드 뱅뱅’이라고 한다- 불러 제꼈다. ‘미친 듯’공감하며 말이다. 얼마나 공감하면 나는 정말 미친 듯 공감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청춘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것이 젊음’에 그려진 청춘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젊음’속에서 젊은이들은 ‘고민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울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압박 받고’, ‘텅 비고’, ‘흐린 날 속에서’산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좌절을 변기에 버리고’, ‘슬픔도 코 한 번 풀고 나면 나아진다’. ‘부딪치고’, ‘타오르고’, ‘거침없고’, 맑은 날도 올 것이라 ‘희망한다’. 나도 그랬었다. 젊음 속에서 겪었던 모든 것이 이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정작 나의 청춘 시절, 나는 청춘을 산울림처럼 생각했다. ‘청춘’이라는 노래의 핵심은 ‘언젠가 이 청춘이 갈 것’이라는 데 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가 몸담고 있던 그 젊음을 ‘경과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내가 몸담고 있는 젊음 속에서 한 발 나와 ‘이 젊음도 흘러가리라’라고 헤라클레이토스적으로 생각했던 것, 그것이 내 청춘의 명상(speculation: 라틴어 ‘spect’, 즉 ‘보다’에 어원을 두어, 명상이란 곧 사태로부터 한 발 물러난 ‘관조’라는 뜻)이었다.

언젠가 산울림의 김창완이 TV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자신이 지금도 생각하면 낯간지러운 노래 몇 가지를 지었는데, 그 중 하나가 ‘청춘’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낯간지럽다는 이유는 ‘이런 가사를 듣고 사람들이 좋아할 것을 너무 잘 알았던 것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 인터뷰를 듣고 나서 나 혼자 명상하는 줄 알았던 착각에서 비로소 깨어났다. 착각도 때론 필요한데… 이 착각에서 깨어나기 전에 나는 사태에서 항상 한 발 물러나 있는 태도가 나로 하여금 철학을 하게 한다고 생각했었다. 여하튼 돌이켜보니, 그러면서도 실상 나는 항상 청춘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고, 나의 청춘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불의로 가득 찬,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피부로 느끼면서, 젊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피를 가지고 있었지만 젊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의 젊음을 쓸모없다고 느꼈다. ‘출정가’, ‘임을 위한 행진곡’과 ‘불행아’사이를 하루에도 수 십 번 오갈 때, 이 분열된 의식을 어루만져준 노래가 ‘청춘’이었다. ‘그래, 이 피 끓는 시간도 이 아픈 시대와 함께 기필코 스러지리라…’라고 나를 위로했다.

한 때 민중 가요와 대중 가요를 날카롭게 가르면서, 대중 가요는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비자율적인 영역인 반면, 민중 가요는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자생적 저항 의식이 투영된 것이기에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여겼다. 민중 가요를 불렀던 나를 돌이켜 보면 나는 이 사회의 비리에 대해 둔감한 대중과 다르다는 의식을 깔고 노래했던 것 같다. 나 또한 ‘구별짓기’속에 있었다. 깨어 있는 민중과 잠 자는 대중. 실상 내가 불렀던 민중 가요 중에는 저항적이고 현실 비판적인 것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일반적으로 동류 집단 간 집단 의식의 제의적 확인인 ‘하위 문화’의 일환이 바로 민중 가요를 부르는 의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민중 가요든 대중 가요든 우리 삶과 얽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요 속에서 자신을 보고 느낀다. 노래를 통해 얻은 동질성 속에서 다양한 ‘하위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노래방에서 선택하여 부르는 노래들, 늘 듣는 MP3에 담겨있는 노래들은 과거 어느 순간의 자신, 현재의 자신, 혹은 ‘우리 인간들’이라는 느낌을 표현해 준다. 오늘 나는 김창완의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그것을 부른 사람의 삶 속에서 ‘우리 인간들’이라는 느낌이 강화되는 것을 느낀다.

김창완의 산문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일게 된 임철순의 ‘노래도 늙는구나’라는 제목의 일련의 칼럼 덕이었다. 그는 신문사 기자 출신인데 노래와 얽힌 추억담을 진솔하게 적은 그의 글이 와닿았다. 그는 ‘애창곡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한 번도 노래하는 걸 남에게 보여 준 적이 없는 아버지와 장인’을 추억하면서 ‘어떻게 노래도 하지 않고 이 풍진 한 세상을 건너 가셨는지, 노래하지 않고 살았던 그 분들 마음속의 숨김과 감춤, 슬픔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적었다.

김창완도 그의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에서 ‘어머니의 노래’에 대해 말했다. 김창완의 어머니는 10대엔 ‘스께가게 사스 코로라도’, ‘가고노도리’를 불렀고, 20대엔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찔레꽃 피는 언덕’을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이름도 짓기 전에 젖이 말라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는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에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 서서 눈물을 감추었소’라는 가사의 ‘님께서 가신 길을’을 부른 데에서 노래의 힘, 모진 삶의 힘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힘을 느꼈다고 말한다.

김창완은 이 책의 ‘내 인생의 간판은?’이라는 글에서 자신을 스스로 ‘가수’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이 음반을 여남은 장쯤 발표하고 나서, 즉 데뷔 후 10년이 지나고 나서라고 고백한다. 벌써 수 십 장의 앨범을 발표한 그가 아직도 자신의 삶을 ‘제목 없는 노래’라고 칭하는 데에서 그의 자유 정신을 읽는다. 하지만 그는 ‘자유? 글쎄…’라는 글에서 자신이 자유라는 말에 대해 대단히 인색하다고 말한다. 이유인 즉슨 ‘자유의 급체’를 겪어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식을 하면 체하듯이 자유에 얹힌 경험이 있던’그는, 지금은 자유가 ‘조화로움’이라고 말한다. ‘초원을 달리는 말, 바다 위에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나는 갈매기’가 자유라는 것이다.

김창완의 노래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기타로 오도바일 타자, 오도바이로 기타를 타자, 타자’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이다. 이 노래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부처’가 보이고 ‘노자’가 보이고 ‘데리다’가 보이고 ‘젊음’이 보이고 ‘자유’가 보이고 ‘놀이’가 보이고, ‘노래 그 자체’가 보인다. 그는 노래 속에서 놀고, 노래로 인해 놀고, 노래를 위해 놀고, 노래와 놀았다. ‘기타로 오도바이를 탄다’거나 ‘오도바이로 기타를 탄다’거나 모두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느낀다.

무의미의 의미를 직감하고, 서로 공감하고 있는 데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넓은 의미의 세계 속에서 함께 거주한다는 것을 느낀다. 흥겨운 리듬을 타고 교환된 의미는 잘 뒤섞인다. 노래 가사의 의미가 명료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의 동질감을 강화시키는 것이 바로 이 노래이다. 가사가 있는데도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즐기는 사람들의 의식을 대변하는 노래이다. 의미 없는 가사에서 역설적으로 의미가 발생된다는 것, 즉 고정적 의미에 반항하는 의식이 발생된다는 것을 흥겨운 리듬 속에서 느끼게 해주는 노래이다.

이 노래로 인해 또 하나의 논쟁을 떠올리게 된다. 음악이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 보편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철학, 문화를 읽다』라는 책에서 박영욱은 먼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보편성에 대한 주장을 소개한 뒤, 그러나 사실은 음악이 서구를 중심으로 기보법이라든가 악기의 보편화가 이루어지면서 생겨난 서구 중심적 시선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음악 인류학적 관점의 저서인 『인간은 얼마나 음악적인가』라는 책에서 저자 존 블래킹은 서구의 음악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남아프리카 벤다 족의 음악을 연구하면서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음악적 존재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다른 논조이지만, 인간에게 있는 음악 능력으로서의 음악의 보편성에 대한 주장인 것이다. 산울림의 ‘기타로 오도바일 타자’라는 노래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입장을 편드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 음악과 관련해 또 다른 오래된 논쟁 하나는 대중음악을 고급 예술과 구분되는 저급한 행태로 보는 시선 대 대중 음악을 고급 예술과 이분법적으로 구분된다는 견해를 거부하는 시선이다. 나는 산울림의 ‘사변적인’대중음악을 들으며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의 무의미성을 느낀다. 최유준은 『예술 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예술 음악과 대중음악을 가르는 시선 이면에 전자는 순수한 음악이고 후자는 실용적 음악이라는 판단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순수한 음악이란 어떤 제의적 용도, 실생활에서의 쓰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음악의 형식적 완성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유준은 순수 음악의 대명사로 기려지는 서양의 고전 음악이 사실상은 당대 귀족이나 부르주아의 계급성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제의의 성격을 가진 음악이었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음악이 아니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기존 음악을 예술 음악과 대중음악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자율 음악 대 실용 음악으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음악의 형식적 완결성, 새로운 창작의 시도를 지향해 나가는 음악이라면 그것이 클래식 음악이든, 재즈이든, 힙합이든, 장르나 음악의 복잡성과 상관없이 모두가 자율 음악이며, 반면 제의적인 성격을 띠거나 특정한 실용적 목적(가령 휴대폰 벨소리 음악)에 기여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면 그 음악 형식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이것은 실용 음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음악의 세계에 어떤 위계 질서나 편견을 부여하지 않으면서 음악 현상을 의미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논변이다.

많은 음악 평론가들이나 음악을 즐기는 청중들이 오늘날 우리의 대중음악에서 단순한 후렴
구가 반복되는 ‘훅 송(hook song)’이 만연한 현상을 개탄한다.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노래하는 사람의 비주얼이 강조되는 현상 또한 개탄한다. 또한 샘플러를 통해 음악적 차용이 도를 넘어서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는 현상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리메이크가 반복되면서 음악적 창조보다는 지속적 소비를 향한 상술이 판치는 현상을 우려한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을 ‘대중음악’을 만들고 소비하는 ‘대중’의 저급함의 탓이라고 말하려는 유혹적 시선으로 내몬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대중’이다. 훅 송과 단순하고 따라하기 좋은 안무를 모방하면서 노래방에서, 축제에서 흥에 겨워하는 우리는 대중이다. 우리는 저급한가?

크리스토퍼 스몰은 『뮤지킹 음악하기』라는 저서에서 음악은 정체된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음악은 완성된 작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고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은 천재적인 몇몇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구비되어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산업화된 음악 문화의 요구에 묵묵히 순응해 ‘소수의 유능한 사람이 다수의 무능한 사람을 위해 음악을 생산할 자격을 부여받는다’는 논리를 받아들이면 일반인들의 음악 향유 양상은 대단히 수동적인 것으로만 해석된다는 비판이다.

음악을 향유하는 대중은 수동적이지도 않고 저급하지도 않다. 대중에게는 다양한 것을 즐기고 싶은 욕구가 있다. 우리들의 음악 창고에는 바흐의 음악도, 에디트 피아프의 음악도, 액맥이 타령도, 산울림, 노브레인, 김윤아, 드렁큰 타이거나 화나의 음악도, 원더 걸스의 음악도 담겨 있다. ‘또는’으로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로 담겨 있는 것이다. ‘텔미’를 따라 춤추며 동시에 언더 힙합 음악을 따라 하고, 동시에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그러는 중 내 속에 새로운 노래를 만드는 영혼이 잉태된다.

우리의 청춘은 이렇게 뒤섞이고 어우러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기이다. 내가 들었던 산울림의 노래를 그의 책과 더불어 오늘의 청춘에 유전시키고자 한다. 음악의 DNA를 타고 삶의 진정성까지 유전되길 희망하며 말이다. 당신의 청춘도 언젠가는 간다. 당신의 질풍노도와 함께.

박민미(동국대학교 강사) /

청춘의 부활을 꿈꾸며, 레닌 재장전![청춘의 서재]

*『레닌 재장전 :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외 지음, 이현우, 이재원 외 옮김, 마티, 2010.)를 청년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청춘의 서재, 그 무기력한 나날들

내 청춘의 날들과 그 서재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어리고 여린 마음에 처음 접하게 된 세상의 현실은 낯설고 두려워서 무언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항상 주변을 배회하며 주저하기만 했다. 현실에 저항하는 투쟁의 현장과 현실에 안주해 승리를 쟁취하려는 성공의 길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했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식은 그 갈림길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일이었다. 데카르트와 후설,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철학자들과의 만남은 그러한 선택의 과정을 유예하고 지연시켜주는 편리한 나름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연된 과정은 결국 상처가 되어 항상 나를 괴롭혔다. 철학에 대한 회의, 삶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나를 갉아먹고 있었고, 지금도 역시 ‘왜 철학을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와 계속해서 어떤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과연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망의 상실, 진리 해체의 시대

뒤로 물러나 있던 나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은 어느덧 점차 비슷해져 갔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열기는 자본주의를 뒤엎는 운동으로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승리와 역사의 종말을 외치는 논의들이 이어졌다.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자본주의의 힘 앞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은 상실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은 모든 진리에 대한 추구를 ‘전체주의’라는 유령을 앞세워 폐기처분해 버렸다. 진리를 앞세워 세계에 대한 정치적 기획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결국 현실 사회주의처럼 전체주의로 귀결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이 이 시대의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공산주의를 언급하면 반드시 전체주의, 독재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며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심을 드러낸다.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는 아름답고 그럴듯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상일 뿐이며, 더구나 독재를 옹호하고 실현시킨 전체주의일 뿐이라는 반응이 되풀이 된다.

맑스를 접하게 되면서 철학과 실천에 대해 고민하게 됐지만, 나도 여전히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언급할 때면 민감해져서 두려움과 주저함이 되살아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도 맑스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정작 20세기 초반에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을 참조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에 대한 외면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레닌’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말들을 애써 감추며, 현실에 정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 급진적인 전망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에 충실한 채,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명목으로 급진성은 잠시 접어둔다. 다시 ‘그럼에도’ 분명 모두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라는 선택을 통해 어느새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게 된다는 것을.

왜 다시 레닌인가?

『레닌 재장전 :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마티, 2010)
『레닌 재장전』을 읽으면서 내가 지닌 두려움과 불만족의 실체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우선 현실의 장벽을 돌파하는 데 뒤따를 엄청난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두려움으로 표출된 것이다. 또한 철학을 정치와 결합할 수 없었던 나의 무능력이 불만족의 또 다른 원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레닌으로의 복귀’를 논하는 이 책 속에서 철학과 정치가 접합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공동 편저자인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는 나에게 철학과 정치가 연결되는 새로운 길로 읽혀진다.

“상황에 개입하겠다는 레닌의 결단”, 즉 “필요한 타협을 하고 현실적인 요구에 이론을 맞추려는 실용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모든 기회주의적 타협을 물리치고, 오직 일이관지하는 급진적 입장(이를 통해서만 우리의 개입이 상황의 배치를 바꿀 수 있는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다)을 채택한다는 의미에서”(22-23쪽) 개입한다는 레닌의 결정. 더구나 이러한 정치적 개입은 단지 현실 정치라는 흙탕물 속에 뛰어들겠다는 식의 결정은 아니다. 오히려 ‘진리의 정치’(바디우), 혹은 ‘당파성’(레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전략적 개입이다.

특히 ‘철학에서의 레닌’을 논하는 이 책의 2부는 레닌이 어떻게 철학을 통해 정치에 개입해 들어갔는지를 시사해 준다는 점에서 더 관심이 간다. 헤겔 『논리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전화하는 레닌의 접근방식은 정치에 개입하려는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대상의 본질 속에 자리한 모순에 대한 연구”(187쪽)인 변증법을 통해 위기의 시대를 통찰하고 구체적 상황에 개입해 들어가는 레닌의 자세는 여전히 우리가 뒤따라야 하는 길이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레닌의 ‘전위당’ 개념이 지닌 엘리트적 모습에서 전체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권위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는 레닌의 당파성이란 결국에는 이론적 독단을 옹호하려는 장치에 불과하다고 폄하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순수한 입장을 정치라는 구체적 정세 속에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글턴의 말대로, “순수한 혁명에 대한 희망 속에서만 사는 사람은 결코 그러한 순수한 혁명을 보지 못할 것”(96쪽)이다.

전위와 엘리트는 다른 개념이다. “엘리트는 자기 영속적인데 반해 전위는 자기 파괴적이다. 전위는 변동이 심한 문화적, 정치적 발전 조건에서 출현한다. 전위는 이질성이 낳은 존재이다. 꼭 우월한 재능 때문만이 아니라 물질적 환경 때문에 일군의 사람들이 아직 일반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특정한 현실을 ‘미리’ 포착할 수 있는 상황 또한 전위를 낳는다. 이들은 자신이 지닌 보다 특권적인 문화적 위치 때문에 전위가 될 수도 있지만, 정확히 그 반대의 이유, 곧 억압의 대상이자 그 억압에 맞서는 투사라고 하는 그들만의 경험 때문에 전위가 되기도 한다.”(85쪽)

결국 레닌이 말하는 정치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존재하게 되는 침입”(240쪽)의 과정이며, 그의 “전략적 사유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든 그러한 사건과의 관련 속에서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250쪽) 따라서 전위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에 대해,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 일어날 사건에 대해 준비하는”(241쪽) 일을 의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니 우리는 과연 이러한 정치를 준비하고 있는가? 다니엘 벤사이드의 다음과 같은 훈계는 지금의 우리 상황을 잘 보여준다. “레닌주의를 피상적으로 비방하는 이들은 그들 스스로는 당의 억압적 규율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은 사실 그 모든 타당성들에 대한 논의를 공허하게 만들며 의견토론의 장을 축소시켜 결국 그 어느 누구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공동의 결정도 없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있은 후에 모든 사람들은 그저 원래대로 남게 될 뿐이며 어떠한 실천도 공유할 수 없기에 생성 중에 있는 반대 입장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이다.”(253쪽)

벤사이드의 말대로, “당(운동, 조직, 연맹, 당 등 주어진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이 없는 정치란 대부분의 경우 정치 없는 정치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럴 경우 철학은 “미학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결국 정치적인 것을 억압”(253쪽)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레닌을 재장전하는 청춘의 부활을 꿈꾸며

아마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저 갈림길에서 주저하고 흔들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내 주저함의 원인을 알게 된 이상, 준비해 나갈 것이다. 이미 청춘은 무기력하게 흘러갔지만, 선택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그 선택을 오랫동안 지연시켜왔던 만큼 어떤 의미에서 난 제대로 청춘을 살아온 것이 아니기에, 이제야 비로소 새 청춘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침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한국철학사상연구회도 21살의 청춘이다. 물론 그 청춘의 선택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청춘이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급진성’의 부활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레닌 재장전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철학이 정치의 길을 열어주는 방식을 모색해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이야기일까? 아무튼 난 레닌처럼 ‘꿈을 꾸련다. 그리고는 역시 흠칫 놀란다.’

조은평(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갈림길-노신의 글에서 나의 길을 묻다[청춘의 서재]

첫 번째 인연.

내가 처음 노신을 만난 것은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류에서였다. 세계 명작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실어 놓은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만난 노신의 《아Q정전》은 12세 무렵의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당시 나는 이 책을 위인 이야긴 줄 알고 빼들었다가 바보짓만 일삼는 인물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이내 내팽개쳤다. 고전을 알아보기에는 아직 어렸나 보다. 노신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 이후에도 ‘아Q’와는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강철의 노신’

틀어진 사이가 회복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리영희 교수의 중재로 노신과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리영희 교수는 당시 내게 큰 감동을 주고 있었기에 그가 훌륭하다고 추천하는 노신의 책도 당연히 좋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펼쳐든 책이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였다. 노신의 잡감문(雜感文)을 엮은 이 책에서 나는 노신을 ‘멍청이의 전기 작가’가 아닌 ‘강철의 작가’로 만나게 되었다. 반어적 독설을 무기로 사회 모순에 꿋꿋한 붓끝을 펼치는 노신의 글에 나는 매료되었다. ‘강철의 정의’를 우선했던 당시의 나에게 노신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수세에 몰린 수구 세력들을 ‘물에 빠진 개’에 비유하면서 그런 개는 동정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물지 못하도록 ‘두들겨 패야 한다’고 했다(‘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강철의 노신’이 던진 이 말은 나에게 반민주세력을 뿌리 뽑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민주화 이후의 우리 사회의 앞길을 잡아줄 나침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보다 깊은 노신’을 만나지는 못했다. 노신은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민중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 소회도 밝히고 있었지만,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했을 뿐이었다.

‘희망’의 정체

‘강철의 정의’만으로는 세상이 아름다워지지 않았다. ‘굳건한 도덕’이 미래의 희망을 구현해준다고 주장할수록 사람들은 떠나갔다. 우리는 외로워졌고 절망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옳다고는 했지만, 함께 길을 걷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차츰 그들은 우리를 달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어느새 ‘용서와 화합’을 이야기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들이 ‘물에 빠진 개’로 보였다. 민중은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올바른 길을 간다는 것이 과거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그런데 그런 ‘민중’과 ‘사람들’은 사라지고, 어느새 내 앞에는 ‘개’들만 한 무더기였다. 독재자들만이 ‘암흑’인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암흑’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핍박받던 어린 양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폭군에게 당하는 선량한 이들이기도 하지만, ‘남의 고통을 자신의 오락으로 삼으면서(‘폭군의 신민’)’ 타인을 잡아먹는 이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꿈은 이제 ‘대한민국 1%’였고, 그들의 덕담은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였다. 그들은 독재자를 버리고 CEO를 섬기기 시작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 희망은 나를 배반했다. 희망은 절망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몸서리쳤다. 세상이 미웠고, 나는 온종일 화가 나 있었다. 알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앞길은 ‘암흑’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희망’의 허망함

사람과 삶이 온통 ‘암흑’이었던 것은 노신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홀로 외쳤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면, 즉 찬성도 반대도 없다면 마치 끝없는 벌판에 홀로 버려진 듯 자신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른다. …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적막이었다. 그 적막감은 하루하루 자라났고, 독사처럼 내 영혼을 감아왔다.”(《외침》중 머리말)

이 ‘적막감’이 당시 내 분노의 정체였다. 그때 문득 펼쳐 본 책이 노신의 ?고향?이었다. 거기서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말하는 소위 희망이란 것도 또한 내 손으로 친히 만든 우상이 아닌가.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대지에 난 길과 같은 것이다. 애당초 땅 위에는 길이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섣부른 희망을 지표로 하여 우상으로 삼은 것이 잘못이었다. 애당초 삶은 불인(不仁)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은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광막한 대지와 같아서 ‘불인’과 ‘선량’이라는 협소한 말로는 도저히 규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로는 정의롭지만 때로는 추악하다. 그래서 희망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절망스럽기도 한 것이다.

광막한 대지에 ‘희망’이라는 길은 아무데도 없다. 가고 오는 가운데 길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가운데 수많은 길이 갈라져 나가니, 어느 길이 ‘희망’이고 어느 길이 ‘절망’이 될지는 걸어봐야 안다. 길은 길일 뿐 더 이상 ‘희망’도 ‘지표’도 될 수 없다. 오히려 걸어가면서 ‘희망’으로 삼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걷는 ‘현재’에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뿐, 신기루 같은 미래의 ‘희망’이 내 걷는 행위의 지주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곧게 뻗은 저 외길을 ‘희망’이라 부르며 걸어오다가, 길 없는 대지와 수많은 갈림길에 절망하고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이다. 오직 ‘강철의 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오직 ‘희망’일 뿐이라거나, ‘절망’의 얼굴만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암흑’의 복잡성

사람들은 단지 두려웠을 뿐이다.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부자’의 주문도 외우고, ‘1%’의 주문도 외우면서 ‘CEO’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그것을 나는 ‘절망’이라 하고 ‘배반’이라 몰아세우며 그들의 참모습으로 고정시켰다.

나는 어떠한가? 나도 그들 사이에 ‘살아가고 있었고 살고 있다’. ‘강철의 정의’를 주장했던 나도 그 바닥에서는 ‘성공’하고 싶어 했고, ‘그곳의 1%’가 되고 싶어 했으며, 상징자본을 탐내고 있었다. 사회 비판을 통해 ‘명망의 재력’을 갖추는 것. 이러한 ‘암흑’의 욕구가 나에게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그러한 ‘암흑’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 또한 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암흑’은 밖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었다. 돌아보니 ‘신념의 곧은 외길’은 굽이굽이 갈라진 길들이었고, 앞도 마찬가지였다. 내 갈 길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나는 맥이 다 빠져 주저앉았다.

노신은 이렇게 속삭였다. “묵적 선생은 갈림길 앞에서 슬피 울며 돌아섰다고 하지만 나라면 결코 울며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선 갈림길 초입에 앉아 잠시 쉬거나 한숨 자고 나서 걸어갈 만한 길을 골라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지금은 한숨 자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참호를 파고 들어가 담배도 피우고, 노래도 부르고, 카드놀이와 미술전도 하면서’(《루쉰의 편지》) 내 안팎에 자리 잡은 ‘암흑’을 곰곰이 숙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전진하다가 또 한 숨 자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두렵기는 하다. 저 아득한 어둠이, 내 안의 이 무한한 암흑이 나를 삼켜버릴 수도 있으니. 하지만 이 어둠을 응시하고, ‘암흑’을 ‘애독해 가면서’ 굳건히 살아가고자 한다. 그게 노신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노파심에서의 사족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을 구하는 이를 구인(救人)이라고 한다. 노신은 내게 구인이다. 그러나 그가 책 속에만 있었다면 구인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삶과 나의 삶이 공명하는 연이 닿았기에 그가 구인일 수 있었다. 모든 이에게 그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궁하면 통하는지, 자기 삶에 위기가 왔을 때 간혹 영감을 주는 글이나 사람들이 인연을 맺는 경우들이 있다.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질문하는 진지한 노력 속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참된 만남을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 노신의 글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반어와 냉소적인 문체, 당대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과문함이 그와의 만남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나의 마음에서 그의 심정을 짐작해 보는 과정을 조금씩 진행하다 보면, 그의 삶이 나와 공명하면서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데도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글들도 있다. 허나 인연이 닿으면 글이 절실해진다. 아직 닿지 않았을 뿐이니, 조금 더 기다려주기를. 곁을 주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만나기 마련이다.

단순히 ‘사회적 교제를 위한 교양’을 위해서라거나, 진보적 감흥을 잠시 보조해 주는 ‘진보에세이’로서라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좋은 벗이 소모되는 모습을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한길석(한국철학사상연구회, 충북대 강사) /

태권V,2천년 역사의 한(漢)을 풀다[청춘의 서재]

『김태권의 한(漢)나라 이야기』(비아북)를 청년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씬 레드라인? vs.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한 장면

1 vs. 100,000 즉 10만 대 1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숫자일까? 정확한 사실인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지만, 옛날 어느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다. 옛날 한국내전 즉 6.25 전쟁 때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 가운데 실제로 인명을 살상하거나 상해를 입힌 총탄의 숫자가 10만발 당 ‘하나’ 라고 한다. 처음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숫자였다. 아마 허공에 대고 기관총을 난사했을 때 지나가던 참새 한 마리가 적중하여 떨어질 확률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도대체 전쟁 중에 어떻게 사격을 하였기에 이런 숫자가 가능할까? 하지만 전쟁의 실상을 알고 난 지금 오히려 나는 이 숫자도 과장이 아닐까 싶다. 과연 누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정확한 조준을 하고 사격을 할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도 뻔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인데, 왜 10만대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 비율의 숫자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을 실감나게 보여준 영화가 있다. 바로 ?씬 레드라인?이란 영화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전쟁’이란, 빗발치는 포탄과 귓가를 스치듯이 지나가는 총탄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돌격하는 영웅들로 가득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병사들은 먼지 속을 군화발로 누비며 용감하게 진격해 들어간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적진 속에 남겨진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은 용감하게 돌진한다.

영화 [씬 레드라인](1999)의 한 장면

그런데 미국의 영화철학자라 불리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라인?의 병사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일본군이 점령한 고지를 계속 탈환하라는 대령의 명령에 불복하는 대위, 게다가 지휘관의 돌격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은 엄폐물 뒤에 찰싹 누워서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과연 어느 누가 감히 고개를 들고 죽음이 보이는 고지로 용감하게 진격해 나갈 수 있을까?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그렇게도 흔히 보았던 장면들이 실제로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먼 것인가를 아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현실’이란 아직도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어서 그런 것일까? ‘현실’을 보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 우리들의 ‘감각’이란 것이 참으로 우습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전쟁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공자님은 볼 일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나는 동양 고전, 그것도 2,000년이 넘는 아주 먼 옛날의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읽는 책들은 대개가 다 고매하다. ?논어?도 그렇고, ?맹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상하게 행동하고 고상하게 말한다. 그래서 난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며 공자(孔子)나 맹자(孟子), 노자(老子)나 장자(莊子)를 속으로 조롱하곤 했다.

제후를 만나러 가서 연회 중에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가 없어서 황당한 경우에 처한 공자, 기다랗게 늘어진 하이얀 수염이 국그릇에 빠져 꺼내어 말리느라 고생하는 노자. 이런 상상을 하다보면 결국 그들도 나와 같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사람이고, 우리가 늘 하는 고민을 똑같이 하며 살다간 사람이 아닐까 상상한다. 결혼한 후엔 소크라테스처럼 공자님도 부인에게 바가지 꽤나 긁히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런 순진한 상상도 사실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 당시에는 우리가 흔히 먹는 품종을 개량한 쌀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의 ‘쌀’(米)이 오늘날의 기장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상상’을 위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도대체 그네들은 뭘 입고, 뭘 먹고, 어떻게 살았을까?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님은 ‘볼 일’을 어떻게 해결하며 살았을까?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이 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처럼 보이는 그네들의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공자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모른 채 ?논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거꾸로 과거 선인(先人)들의 실제 삶의 모습을 이해할 때 ?논어?든, ?노자?든 더욱 살갑고 친근하게 이해되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날아라 태권 V?에서 ?한(漢)나라 이야기?까지

어릴 적부터 만화를 즐겨 읽어 온 내게 우스꽝스런 일이 있었다. 어느 때엔 오전에, 또 어느 때엔 저녁 무렵에, 또 어느 때엔 밤늦은 시각에, 그것도 어떤 때는 체육복 차림으로, 또 어떤 때는 양복 차림으로 만화방에 들어서는 내게 어느 날 만화방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도대체 뭐 하는 분이세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뭐 하는 사람 같아요? 저, 대학에서 강의합니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비아북

고교 시절에는 만화방에서 생물선생님과 만난 적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모른 척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일에 몰두했다. 이현세와 황미나는 가장 즐겨보던 만화가였다. 그렇게 만화는 살아가는 재미였고, 일상이었다. 만화를 좋아하게 된 건 어릴 적에 본 최초의 한국애니메이션 영화 ?날아라 태권 V?를 본 이후였다. 난 아직도 가끔씩 ?전자인간 337?의 삽입곡 “아람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던 차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만화를 다시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과거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하나의 창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옛날 중국의 삶의 모습, 2천 년 전의 모습도 이렇게 눈으로 볼 수는 없을까? 대만 출신의 만화가 채지충의 만화는 왠지 억지로 꾸민 듯한 외모 때문에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다. 비록 수준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내게는 2% 부족한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김태권의 ?한(漢)나라 이야기?를 펴든 순간 그간의 기다림은 단순에 풀리고 말았다. 책을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책을 읽는 내내 눈과 손과 입술이 함께 움직였다. 넘기는 페이지마다 어느 그림 하나, 어느 대사 하나도 놓칠 수 없는 흥분과 쾌감을 주었다. 처음엔 감탄으로 읽다가 나중엔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한 젊은 만화가의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漢) 나라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며, 부러움과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김태권, 2천 년 ‘한’(漢)의 역사를 풀다

?한나라 이야기?는 기원전 238년 진시황(秦始皇)이 스무 살이 되던 해로부터 시작한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는 물론 제자백가(諸子百家)와 현대 역사학의 성과까지 동원하면서 김태권은 ‘권력 앞에서 개인의 고독’이라는 주제를 추적해 간다. ?진시황과 이사?를 다룬 1권에서부터 ?항우와 유방?을 다룬 2권, 그리고 ?조조와 유비?(10권)까지 다룰 예정이라 한다.

그런데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의 매력은 이런 역사를 재미있는 만화로 소개한 데에 있지 않다. “독자 여러분은 한니발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영화나 그림에서 튜더 시대의 판금 갑옷을 입은 한니발이 포병부대를 지휘한다면, 여러분은 짜증을 낼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 때의 복장을 한 항우나 유방을 보아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전국시대 말의 유물을 토대로 복식을 고증하면, 그게 더 낯설어 보일 것이다.” 고 하며 그 낯설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태권은 진시황을 비롯하여 이사, 한비자, 항우, 유방 등등 출연하는 모든 인물들의 복식과 장식, 전쟁의 상황 묘사나 무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비아북

기 등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한 나라 때의 화상석에서부터 후대의 자료까지 최대한 실증과 고증된 자료를 통해 현실감있게 보여준다. 단지 보여주는 것뿐만이 아니다. 각종 역사서와 역사 연구서를 통해 중요한 사건, 대화의 의미와 해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렇게 볼 때 ?한나라 이야기?는 재미로 보는 만화를 넘어서 새로운 ‘사기’, 새로운 ‘한서’, 더 나아가 새로운 ‘삼국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만화라는 장르는 이제 어린이들이나 보는 장남감이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예술인이 있는 것처럼, 김태권은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고대의 역사, 살과 피로 이루어져 부대끼고 싸우며 우정을 나누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건조한 문자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듯이 꿈틀거리는 형상들을 통해서.

?제자백가?와 갖가지 중국 고전을 만화화한 채지충의 고전만화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조선의 역사를 비주얼로 창조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제 일본인이면서 로마를 노래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있듯이, 한국인이지만 ?사기?, ?한서?, ?삼국지?의 세계를 새롭게 역사화하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는 기본이다. 아마도 소장하여 물려줄 만한 책은 이런 것이 아닐까? 특히 학업에 지친 젊은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김시천(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