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 사랑을 깨닫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최안나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책읽기 모임에서

우리 동네 책 읽기 모임에서 지난 4월은 『책 읽어주는 남자』를 선정했다.

2년 전 영화로 관람했을 적에는 남자 주인공이 별 매력이 없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여주인공인 케이트 원슬렛은 무척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 된다.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하는 지인들도 매우 재미있어서 책장이 쉽게 잘 넘어갔다고 했다. 특히 독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 그리 듯 묘사해서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고 했다. 나도 영화와는 달리소설 속에서는 깊은 감동을 찾았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야기

글을 읽을 줄 모르는 36살 여자와 15살 소년의 뜨거운 사랑이야기이다. 우리들의 시각에서 봤을 땐 이런 추잡한 불륜이 없다. 36살 여자와 15살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과의 사랑은 동양의 연애관이 아니라 개방적인 서양의 연애관이라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그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열다섯 살 가을날 처음 그녀, 한나를 만난다. 소년과 한나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면서 신비로우나 감성이 예민한 그녀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진다. 36살 여자와 15살 소년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나눈 후 소년은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로 늘 그들의 사랑의 의식을 마무리 했다. 한창 서로에게 충실 했을 때 어느 날 불현듯 한나는 떠나버린다. 어떤 이유로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15살에 남자가 된 소년은 그녀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까닭을 알기 위해 소년은 혼자 남겨진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그녀를 다시 본 건 몇 년 후 소년이 대학생이 되어 수업 참관으로 간 재판장에서이다. 그녀는 나치의 앞잡이로 유대인들이 불에 타 죽는 현장에서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책임자로서 그 모든 죄를 그녀 혼자 뒤집어쓰게 되어 20여 년 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책임자로 몰면서 자신들의 죄를 면죄 받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이없게도 글을 쓰기는커녕 전혀 읽지도 못하는 여자가 책임자가 된 것이다. 재판장은 그녀의 자필 서명을 원했지만 그녀는 서명을 거부 하며 모두 본인의 소행으로 마무리 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원래 한나는 전철의 차장이었다. 자신이 기관사로 승진이 되는 것을 알고 도망을 친다. 기관사는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승진이 되면 자신의 문맹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소년까지 자신의 문맹을 알아버릴까 두려워 변명도 없이 연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이처럼 문맹은 그녀의 치부였다. 청년이 된 소년은 감옥에 있는 한나를 한 번도 찾아 가지 않는다.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하여 이혼으로 마감한다. 그 남자의 마음엔 그녀가 내려 놓을 수 없는 짐처럼, 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아물지 못한 상처가 되어 그리움으로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야 완성되는 사랑?

감방에 있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책을 낭독해 테이프로 보내준다. 책들을 수 백 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여자는 문맹을 이긴다. 그리고 감방에서 모든 죄수들의 상담사 역할까지 해낸다. 한나는 죄수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와 존경을 받으면서 생활했다. 그런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다. 그것도 석방되기 전날에. 그녀의 죽음은 남자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그녀가 남긴 유품은 15살 소년의 졸업사진, 그리고 약간의 돈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희생자들에게 보내주길 원했지만 문맹퇴치에 보태진다.

단 한 장의 소년 사진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 왔던 그녀가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는 전 날에 죽음으로 남자에게 고백했다. 난 계속 ‘왜 죽었을까? 왜 죽어야만 했을까? 죽어야만 사랑이 완성되는가?’ 라며 고민했다. 그랬다! 죽어야만 한나의 사랑은 완성된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그녀가 죽어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다.

만일 한나가 살아남아 이제는 남자가 된 소년을 만나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면 15살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함을 한나는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 판사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상상하게 만들었기에 위대하다. 또한 작가는 유럽의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하나도 해결하지 않는다. 모두 독자의 몫으로 남게 했다.

 

내가 몰랐던 하나의 사실

우리에게 사랑은 난해한 숙제이다. 비록 난해할 지라도 사랑을 못해 본다면 딱하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랑이 행복인지 모른 채 사는 일이 많았다. 마치 익숙한 공기처럼. 오래전 나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본 이후부터 폭풍 같은 사랑을 갈구했다. 열애에 대한 책임은 없으나 그 추억이 남는 그런 사랑 말이다. 그래서 메릴 스트립이 평생 추억을 꺼내며 그리워하는 것을 부러워했다. 철없는 소녀다운 상상을 하면서. 이런 내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편의 사랑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난 요즘 들어 예쁘다는 말을 듣는다. 자라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늘 막내 동생이랑 작은 언니만 듣던 말을 내가 듣는다. 그럴 때면 내 이야기가 아닌 듯해서 겸연쩍은 마음이 들어 숨고 싶어진다. 그러면 옆에 친구도 한마디 거든다.

“너, 예뻐졌어.”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을 마흔 훌쩍 넘긴 지금에서야 듣게 된 것은 순전히 남편의 사랑 덕이다. 자상하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도 않고, 늘 경상도식으로 퉁명스럽게 대해서 외롭게도 하지만 남편만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준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 피 터지게 싸웠다.

바깥일에 가정일 까지 나만 혼자서 늘 분주하다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남편은 직장생활만 충실했지 이런 잡다한 일들에 신경을 쓰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일하는 사이사이에 시장 봐서 식사 준비해야 했으며 하루 종일 아이들도 신경 써야 했다. 어떤 날은 빨래해서 널고 개어놓을 시간이 없어서 소파에 던져 놓고 다시 빨래를 널었다. 그러다가 외출했다 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남편이 커피 한 잔을 부탁하면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참았어? 집에 오자마자 너무 하는 거 아냐?”

큰소리로 짜증을 내며 결국 커피 한 잔 타주지 않았다. 늘 종종거리면서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내가 더 많이 일한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 남편의 깊은 사랑은 깨닫지 못했다. 다만 아이들에게나 남편에게나 나만 열심히 일한다는 생색을 내며 살았다.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남편에게서 물 흐르듯 한 세월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무뚝뚝한 남편은 이젠 작아졌고 약해졌으며 언제부턴가 내 모습을 살피기까지 한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 밤 식탁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편이 울기도 했다. 서글퍼서가 아니라 행복해서란다. 남편의 그 모습이 서글퍼 나도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시내에 있는 빌딩 중에서 안 들어 가본 빌딩이 없다고 말했다.

“나, 참 열심히 살았어.”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가 그동안 남편 등골 빼먹으며 살았구나. 그런데도 이 이는 행복하다네.’ 라는 생각이 들어 그 동안 남편에게 서운 했거나 억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이것이 남편이 나를 사랑 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는 눈치 보면서 살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게 해주었으며 나 잘났다 당당하게 소리치면서 살도록 해 준 사람이다. 남편의 사랑은 햇살처럼 따뜻하고 오래오래 내 곁에서 비춰주고 있다.

이런 사랑을 두고 나는 그동안 폭풍 같은 사랑만 아름답다며 그런 사랑에만 감동했다. 내가 남편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만 남았는데 수학공식처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입에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난 남편에게 한나처럼 죽음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말해주면 되는데 쉽지가 않다. ‘감. 사. 해. 요.’ 그 한마디면 되는 것을 하지 못한다. 죽음보다 쉬운 것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길 싫어한다. 약속도 전화도 늘 누군가 내게 먼저 해 주길 원했다. 거절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스스로 상처를 깊이 받는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다. 난 죽음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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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여섯째 글로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김재혁 옮김/이레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