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노비의 역사, 현재형이 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황선만 (책익는 마을 전촌장)

 

내가 노비가 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우리사회에 노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이 노비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유의 세상, 정치적 민주화의 시대가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보수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화 운동>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기념회를 열기도 하였으니 민주화 시대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당시 담당검사였던 안 대표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 은폐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홍보를 위해 박종철 열사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 시대는 개인의 존엄이 확고히 자리잡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지금 노비를 말한다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 역사의 한 구석을 호랑이 담배피우는 옛 이야기 듣듯이 넘겨다보는 일에 불과하다. 잔잔한 남한강 어디쯤에서 조각배를 저으며 풍광을 구경하듯이 말이다. 내가 임상혁이 쓴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를 펼쳤을 때 그런 마음이었다. 이참에 못다한 역사공부나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한가한 내 생각은 머리말에서 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예전에 글쓴이가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상이 노비였던 분은 손들어 보세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모두 까르르 웃을 뿐, 물론 손 올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연구자들은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일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3분의 2까지 보는 학자도 있다고 말해줄때면 놀라는 기색이 완연합니다. 노비는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일생동안 상전에게 재화와 노동을 바치는 알짜배기이지요. 이 시기 부의 척도는 거느린 노복들의 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문대가라 불렸던 집안에는 수백 명의 노비를 자손에게 분배하는 상속 문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옵니다.”

순간 나는 ‘혹시 내 조상도 노비였을지 몰라. 그렇다면 노비해방이 안 되었다고 할 때 나는 지금 노비로 살아갈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몸서리 쳐지는 것이었다. 인신과 정신이 상전에게 구속받아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온종일 상전이 시키는대로 복종해야만하는 노비의 삶, 내 귀여운 자식들도 똑같이 그런 굴레에 갖혀 일평생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비를 거부하는 노비들

인간이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법, 전통사회 노비라 하여 어찌 자유를 갈망하지 않았으랴. 이 책의 송사에 등장하는 두 당사자는 노비인 자와 노비 아닌 자였고, 노비는 항상 그 굴레를 벗어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 특히 시종 이야기를 끌고가는 두 주인공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궤적은 우리 전통사회의 노비제에 관한 다양한 배경지식을 알려주고, 시대를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욕구와 갈망을 보여준다.

원래 양인인 다물사리가 노비인 윤필과 결혼하였고 인이라는 딸을 두었는데, 인이가 이유겸의 사노비인 구지와 결혼하여 6남매를 둔다. 따라서 다물사리의 딸과 자손들은 모두 이유겸 집안의 사노가 되어 상속되게 된다. 자신의 귀여운 손자 손녀들이 모두 사노비의 생을 살게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던 다물사리는 관가의 노비담당자의 묵인하에 스스로 관노가 되어 가솔을 모두 관노로 등록시킨다. 왜냐하면 사노비 보다는 관노비의 생이 훨씬 덜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이유겸 집안에서 소를 제기하게 되고 결국 다물사리의 가족은 쓸쓸히 사노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안동시에 사당을 두고 있는 학봉 김성일이 나주 목사로 재직하던 시절(1583년8월~1586년12월)에 처리한 판결문에 실려 있다. 저자는 숭실대 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법학자로 조선의 노비재판과 관련한 사료를 찾아내 김성일의 명 판결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심급제도, 소송절차를 비롯해 최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의 소개에 이르기까지 법학자답게 전통사회의 법과 그의 적용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법학도 비슷한 인연도 없었던 필자로서는 저자가 소개하는 노비재판의 실화들에 더욱 눈길이 가고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곤 하였다.

 

불공정한 판결

양인으로 잘 살아가던 한 가족이 노비로 급락하는 일도 있었다. 1568년 해남의 하급 아전이었던 허관손은 자신의 처와 세 자녀를 모두 노비로 빼앗긴다. 상대는 과거에 급제하고 이조참판까지 지냈던 유희춘이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 관료였던 유희춘과의 소송을 소개하며 저자는 판결결과를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유희춘의 누나는 다음해 7월 허관손의 아내와 그의 세 자녀를 잡아다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소나 말을 ‘부리듯’ 말이다. 멀쩡하던 처자식이 노비로 전락했으니 허관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급 관료지만 그 시대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유는 허락받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불현 듯 다가온 가족의 쇄락을 허관손은 어찌 감당했을까. 그러나 법학자인 저자는 이 판결에 의구심을 버리지 않는다. 다음 인용을 보자.

“양반 상민, 노비 할 것 없이 소송능력은 법적으로 제한 없이 인정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위관리에 맞서는 소송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으로 치면, 고액을 들여 전관예우 변호사를 고용한 상대방에 맞서 나홀로 본인소송을 하는 당사자가 고단하기 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헌부, 장예원의 관리들은 수시로 미암에게 와서 심리의 진행상황을 보고하였으며, 그의 동료 관리들은 행정조직을 동원하여 24년 전의 판결을 찾아내는 등 유리한 증거를 모았다.”

자신의 조상이 사실상 노비였기에 다시 노비로 돌아간다 하여도 극도로 싫었을 터인데, 만약 양인이었다가 권력자의 소송으로 억울하게 노비가 된다면 그 울분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상상을 하니 허리가 곳추세워지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법이라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가까운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해방된 노비들, 어디로 갔을까

노비신분을 벗어나고자 하는 대표적인 노력은 고려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만적이라는 노비가 중심이된 만적의 난이 있었고 조선 전기에는 노비 소송이 넘쳐났다. 그래서 소송처리에 지친 태종이 “사전을 혁파하였듯이 사천제도를 없애버리면 이런 폐단은 없어질 것”이라며 노비제의 혁파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비해방이 공식화된 갑오개혁 이전인 1801년 순조1년에 관에서 부리던 공노비를 해방시켰으니 우리 전통사회는 노비의 노동력에 의존해왔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고자했던 몸부림의 역사이기도 하였다.

그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노예제와 농노제가 있었다면서 우리의 노비제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명천지 21세기가 되었고, 세계화와 인간존중이라는 근엄한 사유가 지배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의 독재에 저항하는 북아프리카와 아랍민중들의 항거소식이 연일 전파를 타고 있으니 이 시대 사람들은 진전된 인간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노비해방이 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 신분상 천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력이 확보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은 유력한 집안의 머슴살이를 하여야 했다. 또 주인집에 얹혀살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담살이, 주인집을 드나들면서 일을 도와주는 드난살이도 있었는데 산업화 이후 사라졌다.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세한 농민들의 수 많은 가족들이 도시의 공장노동자로 전업한 것이다. 이것은 노비의 역사이면서 노비의 현재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투표권을 갖고 나라의 대표, 마을의 대표를 뽑는다. 자유로운 세상이다. 해방된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담살이나 드난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피땀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 에너지는 생산의 기초이자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잔잔할 줄 모르는가. 아직 노비해방은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신분상승으로 가는 최고의 길인 일류대 합격률은 강남 학군에서 대부분 점령한지 오래다. 아버지가 기업을 갖고 있으면 약간의 불법을 감행하더라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용인되곤 하는 당당한 상속사회이다. 아버지가 대형교회 목사이면 자식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 뻔뻔한 대물림 신분사회이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노비의 후예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벌사회의 들러리, 부당한 권력과 떳떳하지 못한 재산의 사적인 세습을 도와주는 입닫은 노비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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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여덟번째 일로서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대학의 이념』칼 야스퍼스 – 등록금문제와 대학의 이념[청춘의 서재]

이원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한 학생이 이야기한다. “학업을 계속하려면 학업을 포기해야 해요.” 거짓말인줄 알았다. A를 얻기 위해 A를 포기해야한다니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마치 선문답이나 동화에서 말하는 교훈 속에 있는 이야기같았다. 그런데 이런 금도끼 은도끼이야기 속에 나오는 나무꾼들이 광화문광장에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등록금을 벌어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대신 ‘알바’를 하는 대학생, 그들의 젊은 이성은 오늘도 열심히 돈 번다.

등록금문제가 한참 이슈다. 하루 이틀된 문제도 아니지만 이번엔 뭔가 조금 달라 보인다. 철되면 돌아오는 제철음식처럼 으레 봄이 되면 하는 개나리투쟁도, 광우병 이후 오랜만에 잡은 소위 ‘껀수’도 아니다. 이번에 대학생들에게 보이는 비장함은 대학생이라는 실존에 대한 위협에서 나왔다. 대학생이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고 대학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니라 돈벌이를 가르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처음으로 모두의 문제나 타인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거리에 섰다. 등록금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그 금액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생과 예비 대학생들의 진로도 좌우한다. 높은 등록금 덕택에 학생들은 자유로운 이성보다 시장논리에 더욱 익숙하게 대학생활을 보낸다. 높은 등록금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이 아닌 미래의 돈을 기대한다. 이성과 학문의 자유로운 연애에는 이제 대학에서 익숙하지 않은 낯선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이 학문을 할 수 없는 사회, 대학은 취업만 할 수 있다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어버린 사회는 이른 바 ‘대학이 위기’인 사회다. 대학이 위기라는 말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대학과 학문의 위기에 대해 이미 수십 년 앞서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칼 야스퍼스(1883~1969)이다. 칼 야스퍼스가 활동하던 시대도 대학이 위기인 시대였다. 그는 유대인 아내와의 이혼을 거절하여 나치로 인해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나치는 대학에 직접 개입하여 수백 년간 이어져온 소위 ‘대학의 이념’들에 덧칠을 하기 시작했다. 야스퍼스는 대학과 학문이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보편적 앎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로 보았다. 대학의 목적은 근원적인 지적 욕구를 실현하는데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지적 욕구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며 그 앎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되는가를 발견하는데 있다. 그러나 야스퍼스 당시 대학은 나치는 물론이고 나치집권 전후에도 이미 자본에 의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유성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야스퍼스는 1945년 나치 12년간 굴복당한 대학의 이념을 다시금 바로세우고자 소책자를 발간한다. 이 책은 야스퍼스가 겪은 고통스러운 나치의 지배와 대학의 정신에 대한 그의 믿음 속에서 집필된 것으로 그 동안의 강연과 수기를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대학의 이념』이다. 『대학의 이념』에서 야스퍼스는 학문과 대학의 목적, 그리고 그 존립 조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야스퍼스는 대학의 위기를 학문의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 그리고 학문의 본질에 대해 논하면서 서서히 대학의 존립의 문제를 고민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요란스럽지 않다. 대학의 이념과 그것을 침해하는 외적요소들에 대한 ‘스펙터클’한 공격을 기대한다면 이 책에선 잠시 흥분을 가라 앉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근차근 대학의 이념에 대해 설명하지만 우리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이미 그가 60~70년 전에 말한 대학과 학문의 정신을 마주하면 그렇지 못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자꾸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취업 후 상환이라는 무책임한 대학등록금 대책을 무슨 은혜 베풀 듯 하는 나라님이 있는 나라에서는 대학생들은 어서 취업해야 한다. 취업이 잘되는 과로 전과도 빚쟁이에게 쫒기 듯 어서하지 않으면 돈 안 되는 학문을 4년이나 배워야한다. 대학의 역할 중 직업훈련도 분명히 한 축을 담당하지만 한 건물에서 한 기둥만을 위해 다른 기둥의 못을 뽑아버리면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대학의 이념은 지적인 욕구에 부응하여 교수와 학생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진리를 터득해 나가는 것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인격의 도야를 목적으로 한다. 그는 대학교육을 전인교육, 직업훈련, 연구 세 가지로 이루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대학의 교육을 이루는 요소지만 하나가 분리되어 그것만이 강조 될 경우 대학의 목적은 요원해진다. 야스퍼스는 대학이 학문의 미덕의 전체성이라 말한다. 대학의 이름이 university인 것처럼 대학은 하나의 우주이다. 그는 전체성과 결별한 학문과 학생의 생산에 대해 우려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문의 생명력은 전체와의 관계에 근거한다. 대학은 학문적 견해가 일생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그 기초를 갖추게 하고, 지식의 통합을 추구한다. 의사, 교사, 행정가, 판사, 목사, 건축가 등의 직업은 비록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직업을 위한 준비는 그 과정이 전인적이지 못하거나, 지각력을 계발시키지 못하거나, 안목의 지평을 넓혀주지 못하고 ‘철학적’사고를 형성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지 못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다. 요즘 국가고시의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전문지식의 부족은 직업적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학문적 교양의 기초가 결여된 사람으로부터는 어떠한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72~73쪽) 오래 전 글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참 와닿는 말이다. 고대그리스에서도 통했던,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처럼 그저 보편성을 가진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문화라는 폭력에 내몰리는 대학 학문의 위기라는 점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대학의 위기는 체계와 자본주의 본질의 문제이지 어느 한 현상적 문제로 귀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의 문제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꿰뚫고 있다.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에서 대학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체성과 자율성이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의 목적은 인간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지적욕구는 항상 전문영역에서 실현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야스퍼스는 지적욕구의 본질은 지식의 통합과 전체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대학은 바로 그 통합의 장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학은 개별지식의 다양성과 그 통합을 추구하면서 university가 된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대학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학문에 대해 다시 정의하면서 학문을 수행하는 대학을 이야기하는데 그가 말한 학문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그 내용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며 보편타당성을 갖추는 것이다. 대학의 목적은 이러한 학문을 수행하면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대학의 이념이 갖는 전체성인데 이러한 전체성은 대학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는 지위를 보장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율성은 중요하다. 따라서 대학은 전체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가져야한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대학의 재정문제와 시장화는 이러한 대학의 전체성과 자율성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에 의해 종속된 대학은 직접적으로 금화를 생산할 수 있는 학문만을 육성하고 그곳에 학생들이 모인다. 몇몇 학문에만 학생들이 모여들면서 대학학문이 가져야할 보편성과 전체성이 공격받는다. 이는 대학이 가진 ‘하나의 우주로서 학문의 장’이라는 자신의 역할은 물론 보편성을 추구하는 학문자체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 몇몇 집중된 인력은 항상 공급과잉을 초래하여 적정 수의 산업예비군을 항상 유지하게 한다. “자본의 학문지배 -> 학문의 전체성 상실 -> 대학 학문과 교육의 다양성 상실 -> 자본의 노동 및 대학구성원(교수, 연구자, 학생)에 대한 지배강화 -> 자본의 학문지배”라는 악순환이 바로 대학과 학문의 위기의 본질이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배를 학문의 전체성 상실을 통해 이루고 있으며 강력해진 자본은 더욱더 대학과 그 학문을 간섭하며 전체성과 자율성을 침해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 등록금문제는 이러한 대학의 위기 속에서 그 문제가 심화되어왔다. 야스퍼스는 대학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오히려 보호받고 지원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이성적 결과물들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안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국가와 사회가 못해주고 있기 때문에 재정이 약한 대학은 무리해서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자기 자신이 바로 자본으로서 학문과 대학구성원의 적을 자임한다. 현재 한국대학의 취약한 재정구조, 특히 86%에 이르는 높은 등록금의존율은 대학에 대한 자본의 지배, 즉 대학자체의 총체적 위기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왜 지금껏 단순한 경제적 부담에서 불거졌던 대학생들의 등록금투쟁이 이제와 새삼스럽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왜 또 ‘조국통일이나 노동해방’과 같은 거창한 거시적 담론만을 투쟁의 담론으로 삼았던 대학생운동이 선배들의 투쟁 주제에 비하면 소소하기 그지없는 ‘등록금’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당면과제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야스퍼스는 대학의 이념과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책의 목차를 유기적으로 구성했다. 그는 전체성과 보편성을 설명하는 학문의 본질을 앞서 이야기하고 이어 그 학문을 유지하는 지적 삶에 관한 문제, 그리고 대학의 조직, 마지막으로는 대학의 재정적 문제에 대해 논한다. 그는 마치 백의를 입은 선비처럼 대학의 목적을 순수한 앎의 추구라는 학문적 문제제기를 하며 글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현실 속의 사상가로 돌아와 국가와 사회의 역할 및 대학의 재정으로 『대학의 이념』을 마무리 짓는데 이는 대학의 위기를 단순히 ‘학문하기 어려움’으로 진단한 것이 아니라 이성과 학문의 자체의 위기에 대항해 자신이 생각한 ‘대학의 이념’을 다시금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학은 지적양심과 욕구를 실현 할 수 있는 연구와 소크라테스식의 민주교육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이는 이상적이고 선언적일지 모르고 그것이 진정으로 가능한 것이 도대체 언제일까라는 고민은 남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정의는 오늘날 대학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해준다. 대한민국 초중고 모든 교육이 대학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학자체는 자신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그 혼란을 높은 등록금이란 형태로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는 ‘인심 좋은’ 대학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야스퍼스의『대학의 이념』은 대학이 본래가진 초심은 물론,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대학의 모습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사랑의 조미료로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비법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박비호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사랑의 조미료’에 관한 이야기

“지금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이 말은 십 여 년 전부터 급식 조리 사원을 뽑을 때 지원자들에게 내가 던지는 유일한 질문이다. 질문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요즘 당신은 가족들과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이다.

지금부터 십 칠년 전에 학교에 납품하는 위탁 급식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걱정이 된 것은 과연 소비자들이 얼마동안이나 우리 음식에 질리지 않고 계속해서 먹어줄까 하는 것이었다.

‘일류 호텔의 주방장들이 고급재료를 엄선하여 만든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계속하여 두 끼를 먹기가 힘들지만 집에서 아내나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은 비록 솜씨가 부족하고 재료가 보잘 것 없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먼저 그 원인을 찾고 난 후에 이 사업을 시작하면 성공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의문을 가지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나는 얼마 후에 그 해답을 어머니와 아내의 가족에 대한 ‘사랑의 결과’ 라는 형이상학적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사랑은 음식의 재료나 음식 솜씨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정성과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사랑을 일명 ‘사랑의 조미료’ 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 그리고 사랑과 정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사원으로 채용하였고 음식 재료의 선택부터 음식을 만드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고스란히 사업장에서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 때마다 ‘사랑의 조미료’를 흠뻑 뿌려 만든 음식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날 집안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거나 사원 상호간에 갈등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 혹은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음식 조리에서 배제하였다. 이와 같은 운영의 결과였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십칠 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서해안에서 유일한 급식 납품업체를 운영할 수 있었다.

 

과학으로 비과학적인 문제를 증명한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

2002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194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요코하마 시립대학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한 에모토 마사루의 작품으로 모든 생물의 생명은 물론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물을 주제로 수시로 변하는 물의 사진을 통하여 물에도 의식이 있음과 특히 물이 말과 글씨, 음악 등에 따라 변화되는 것을 물 결정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특히 우리 인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이 우리의 의식에 따라서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책이다.

1. 우주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저자는 ‘인간은 물이다.’ 라고 정의하면서 이 말을 세계의 수수께끼를 풀어 줄 키워드라고 한다. 즉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드라마는 물이 비쳐내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다에 물방울을 떨어뜨림으로써 사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물에게 말을 들려주고, 글씨를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물이 보여주는 신비하고 놀라운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랫동안 물과 파동에 대한 연구를 해온 저자는 눈(雪)의 결정체 하나하나가 그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부터 물의 결정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사랑, 감사’와 같은 말이나 긍정적인 글을 보여준 물에서는 완전한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이 나타났지만 ‘악마’, ‘멍청한 놈’, ‘바보’, ‘짜증나, 죽여 버릴 거야’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에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찌그러진 결정체의 모습이 나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 주세요’ 라는 온유한 말에는 꽃처럼 예쁜 육각형 결정이 나왔지만 ‘그렇게 해!’ 라는 명령조의 말에는 ‘악마’ 라고 말할 때와 같은 결정을 보였다고 한다. 물 결정 사진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결정을 보인 것이 바로 ‘사랑’과 ‘감사’라는 말에 대한 결정이다.

인간의 몸도 70퍼센트가 물임을 고려하면 우리가 서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즉 사랑과 감사처럼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면 몸속 물도 건강하게, 맑고 아름답게 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과 감사로 가득 채우면 사랑해야 하는 것, 감사해야만 할 멋진 일들이 저절로 찾아와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만 원한이나 불만, 슬픔과 같은 파동을 발하면 한층 더 원한을 품어야 할 상황이나 슬픔으로 가득 찬 세계를 자신에게로 끌어 오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세계를 선택하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2. 물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입구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은 몇 십 년, 몇 백 년의 세월에 걸쳐 흙을 통하여 지하수가 된다. 저자는 스위스 취리히 공대 교수였던 조안 데이비스씨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물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은 정보를 기억하고 지구를 순환함으로써 그 정보를 전달하며 물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해독하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물의 결정에 관한 관찰이라고 한다. 특히 ‘고맙습니다’ 라는 말에 반응하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결정체와 ‘사랑과 감사’라는 말에 반응하는 장엄한 광체가 물의 생명과 혼의 모습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과 감사’ 라는 말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하고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말이라고 한다.

3. 의식이 모든 것을 만든다.

저자는 물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매력에 이끌려서 인간이 오염된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의 답을 물과 연관하여 찾고 있다. 그리고 물의 결정이 생기는 이유는 모든 물질의 감정과 의식이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파동이 물에 영향을 주어 파동에 상응하는 결정구조를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글자 또한 고유한 파동이 있기 때문에 물이 거기에 반응한다고 주장한다.

생각과 의식이 파동 에너지로 전파되듯이 사랑을 느끼는 것도 혹은 서로 반목하는 것도 파동의 영향이라고 한다. 또 분노와 슬픔, 원한 같은 감정을 치유하는 데도 파동의 법칙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좋지 않은 감정과 정반대의 파동을 내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한이란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분노에는 연민을, 공포에는 용기를, 불안에는 안심을, 초조에는 안정을, 압박감에는 평상심을 가지면 된다고 한다. 이런 원리로 원한의 감정으로 병에 걸린 사람은 감사의 마음을 되찾음으로써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과 의식은 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즉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4. 한순간에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끝으로 저자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련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연구하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셀드레이크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번 만들어진 형태의 장은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넘어서 전파된다고 한다.

즉 형태의 장이 만들어 지면 다른 장소에도 영향을 끼치며 이것은 한 순간에 세계를 바꾸는 일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생명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장으로 살아가는데, 따라서 우리는 주위 사람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의식을 향한다는 말은 사랑으로 대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장을 만드는가에 따라서 고통과 상처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사랑과 감사로 가득한 세계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넘치는 사랑과 감사로 세계를 감싸줄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멋진 형태의 장이 되어서 세계를 바꾸어 간다고 한다.

 

인간이 서로 조화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사랑의 조미료’라는 말이나 ‘물이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과 음악 같은 소리는 물론 글자에도 반응한다.’는 형이상학적인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랑과 감사라는 말은 멀지않은 장래에 그 중요성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실하게 증명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물에서 조차 아름답게 반응하는 낱말인 ‘사랑과 감사’라는 말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지역이나 인종, 언어 등 모든 여건을 초월하여 인간이 서로 조화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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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일곱 번째 글로서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양억관 옮김/나무심는사람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책소개]

* 이병창선생님(MEGA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의 책『반가워요, 베리만 감독님』이 나왔습니다. 한 명의 영화감독과 그 영화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하는 독특한 ‘철학적 영화비평’입니다. 그래서인지 베리만의 영화 속에서 헤겔, 들뢰즈, 라캉, 프로이트를 넘나들거나 현대 영화사조를 되짚기도 하고, 아울러 욕망, 소통, 자유, 영혼, 신 등의 주제를 성찰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일단 출판사의 책소개글로 소식을 먼저 전하고 추후에 좀 더 진지한 서평과 논의를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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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다. 그는 칸느 영화제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여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감독이다. 그는 우디 알렌이나 박찬욱 감독 등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가 만든 영화들 「제7의 봉인」, 「산딸기」,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 빛」, 「침묵」, 「화니와 알렉산더」는 한국에서도 영화 마니아들이라면 누구나 손꼽는 걸작들이다.

독자들은 그 동안 베리만의 영화들을 쉽게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의 영화의 이야기가 거의 수수께끼 같고, 연극적인 대사들로 가득하며,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는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베리만의 영화 가운데서 대표적인 영화 15편을 골라서, 독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저자는 이런 재구성 속에서 연극적인 대사들을 풀이하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의 속살을 채우고, 이미지의 암시적인 의미를 밝혀 준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소원하게 느껴졌던 베리만의 영화들을 독자들이 반갑게 맞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베리만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성격을 라캉의 욕망 개념을 끌어들여 분석한다. 저자는 다양한 주인공들을 욕망의 평면 위에 배치하면서 그들이 가진 성격적인 차이를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통해 그 동안 베리만의 영화에서 감추어져 왔던 인물들의 성격적인 갈등의 원인과 양상을 밝혀 낸다. 저자는 주인공들의 성격적인 갈등 속에서 현실과 환상, 권력과 욕망의 대립을 찾아 낸다.

베리만의 영화는 주인공들 사이의 성격적인 갈등의 정점을 그려낸다. 그것은 마치 묵시록에 나오는 신이 침묵하는 순간과 같다. 이 순간에서 절망은 영원히 계속될 듯하다. 그러므로 베리만의 영화는 침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신이 침묵하는 그 순간에 이미 신이 도래해 있듯이 베리만의 영화 역시 어둠 속에서 이미 밝아 오는 겨울빛과 같은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고 본다.

<목차>

여는 글
1 「여름 간주곡」예술과 삶
2 「모니카의 여름」체념과 저항
3 「톱밥과 반짝이」모욕당하는 예술가
4 「제7의 봉인」신의 침묵
5 「산딸기」허무주의와 모성
6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거미신
7 「겨울빛」영적인 교감
8 「침묵」소통의 가능성
9 「페르조나」영화의 자기반영성
10 「늑대의 시간」깨어진 거울
11 「수치」폭력성의 근원
12 「애착」환상의 힘
13 「외침과 속삭임」죽음을 넘어서
14 「가을과 소나타」억눌린 고통
15 「화니와 알렉산더」조화의 우주
닫는 글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 사랑을 깨닫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최안나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책읽기 모임에서

우리 동네 책 읽기 모임에서 지난 4월은 『책 읽어주는 남자』를 선정했다.

2년 전 영화로 관람했을 적에는 남자 주인공이 별 매력이 없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여주인공인 케이트 원슬렛은 무척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 된다.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하는 지인들도 매우 재미있어서 책장이 쉽게 잘 넘어갔다고 했다. 특히 독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 그리 듯 묘사해서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고 했다. 나도 영화와는 달리소설 속에서는 깊은 감동을 찾았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야기

글을 읽을 줄 모르는 36살 여자와 15살 소년의 뜨거운 사랑이야기이다. 우리들의 시각에서 봤을 땐 이런 추잡한 불륜이 없다. 36살 여자와 15살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과의 사랑은 동양의 연애관이 아니라 개방적인 서양의 연애관이라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그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열다섯 살 가을날 처음 그녀, 한나를 만난다. 소년과 한나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면서 신비로우나 감성이 예민한 그녀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진다. 36살 여자와 15살 소년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나눈 후 소년은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로 늘 그들의 사랑의 의식을 마무리 했다. 한창 서로에게 충실 했을 때 어느 날 불현듯 한나는 떠나버린다. 어떤 이유로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15살에 남자가 된 소년은 그녀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까닭을 알기 위해 소년은 혼자 남겨진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그녀를 다시 본 건 몇 년 후 소년이 대학생이 되어 수업 참관으로 간 재판장에서이다. 그녀는 나치의 앞잡이로 유대인들이 불에 타 죽는 현장에서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책임자로서 그 모든 죄를 그녀 혼자 뒤집어쓰게 되어 20여 년 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책임자로 몰면서 자신들의 죄를 면죄 받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이없게도 글을 쓰기는커녕 전혀 읽지도 못하는 여자가 책임자가 된 것이다. 재판장은 그녀의 자필 서명을 원했지만 그녀는 서명을 거부 하며 모두 본인의 소행으로 마무리 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원래 한나는 전철의 차장이었다. 자신이 기관사로 승진이 되는 것을 알고 도망을 친다. 기관사는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승진이 되면 자신의 문맹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소년까지 자신의 문맹을 알아버릴까 두려워 변명도 없이 연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이처럼 문맹은 그녀의 치부였다. 청년이 된 소년은 감옥에 있는 한나를 한 번도 찾아 가지 않는다.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하여 이혼으로 마감한다. 그 남자의 마음엔 그녀가 내려 놓을 수 없는 짐처럼, 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아물지 못한 상처가 되어 그리움으로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야 완성되는 사랑?

감방에 있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책을 낭독해 테이프로 보내준다. 책들을 수 백 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여자는 문맹을 이긴다. 그리고 감방에서 모든 죄수들의 상담사 역할까지 해낸다. 한나는 죄수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와 존경을 받으면서 생활했다. 그런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다. 그것도 석방되기 전날에. 그녀의 죽음은 남자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그녀가 남긴 유품은 15살 소년의 졸업사진, 그리고 약간의 돈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희생자들에게 보내주길 원했지만 문맹퇴치에 보태진다.

단 한 장의 소년 사진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 왔던 그녀가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는 전 날에 죽음으로 남자에게 고백했다. 난 계속 ‘왜 죽었을까? 왜 죽어야만 했을까? 죽어야만 사랑이 완성되는가?’ 라며 고민했다. 그랬다! 죽어야만 한나의 사랑은 완성된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그녀가 죽어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다.

만일 한나가 살아남아 이제는 남자가 된 소년을 만나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면 15살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함을 한나는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 판사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상상하게 만들었기에 위대하다. 또한 작가는 유럽의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하나도 해결하지 않는다. 모두 독자의 몫으로 남게 했다.

 

내가 몰랐던 하나의 사실

우리에게 사랑은 난해한 숙제이다. 비록 난해할 지라도 사랑을 못해 본다면 딱하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 사랑이 행복인지 모른 채 사는 일이 많았다. 마치 익숙한 공기처럼. 오래전 나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본 이후부터 폭풍 같은 사랑을 갈구했다. 열애에 대한 책임은 없으나 그 추억이 남는 그런 사랑 말이다. 그래서 메릴 스트립이 평생 추억을 꺼내며 그리워하는 것을 부러워했다. 철없는 소녀다운 상상을 하면서. 이런 내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편의 사랑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난 요즘 들어 예쁘다는 말을 듣는다. 자라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늘 막내 동생이랑 작은 언니만 듣던 말을 내가 듣는다. 그럴 때면 내 이야기가 아닌 듯해서 겸연쩍은 마음이 들어 숨고 싶어진다. 그러면 옆에 친구도 한마디 거든다.

“너, 예뻐졌어.”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을 마흔 훌쩍 넘긴 지금에서야 듣게 된 것은 순전히 남편의 사랑 덕이다. 자상하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도 않고, 늘 경상도식으로 퉁명스럽게 대해서 외롭게도 하지만 남편만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준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 피 터지게 싸웠다.

바깥일에 가정일 까지 나만 혼자서 늘 분주하다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남편은 직장생활만 충실했지 이런 잡다한 일들에 신경을 쓰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일하는 사이사이에 시장 봐서 식사 준비해야 했으며 하루 종일 아이들도 신경 써야 했다. 어떤 날은 빨래해서 널고 개어놓을 시간이 없어서 소파에 던져 놓고 다시 빨래를 널었다. 그러다가 외출했다 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남편이 커피 한 잔을 부탁하면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참았어? 집에 오자마자 너무 하는 거 아냐?”

큰소리로 짜증을 내며 결국 커피 한 잔 타주지 않았다. 늘 종종거리면서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내가 더 많이 일한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 남편의 깊은 사랑은 깨닫지 못했다. 다만 아이들에게나 남편에게나 나만 열심히 일한다는 생색을 내며 살았다.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남편에게서 물 흐르듯 한 세월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무뚝뚝한 남편은 이젠 작아졌고 약해졌으며 언제부턴가 내 모습을 살피기까지 한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 밤 식탁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편이 울기도 했다. 서글퍼서가 아니라 행복해서란다. 남편의 그 모습이 서글퍼 나도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시내에 있는 빌딩 중에서 안 들어 가본 빌딩이 없다고 말했다.

“나, 참 열심히 살았어.”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가 그동안 남편 등골 빼먹으며 살았구나. 그런데도 이 이는 행복하다네.’ 라는 생각이 들어 그 동안 남편에게 서운 했거나 억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이것이 남편이 나를 사랑 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는 눈치 보면서 살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게 해주었으며 나 잘났다 당당하게 소리치면서 살도록 해 준 사람이다. 남편의 사랑은 햇살처럼 따뜻하고 오래오래 내 곁에서 비춰주고 있다.

이런 사랑을 두고 나는 그동안 폭풍 같은 사랑만 아름답다며 그런 사랑에만 감동했다. 내가 남편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만 남았는데 수학공식처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입에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난 남편에게 한나처럼 죽음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말해주면 되는데 쉽지가 않다. ‘감. 사. 해. 요.’ 그 한마디면 되는 것을 하지 못한다. 죽음보다 쉬운 것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길 싫어한다. 약속도 전화도 늘 누군가 내게 먼저 해 주길 원했다. 거절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스스로 상처를 깊이 받는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다. 난 죽음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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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여섯째 글로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김재혁 옮김/이레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월례 발표회 참관기] 김성우 선생의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에 대하여

?[2011년 4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논문 제목: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발표자: 발표자: 김성우

 

철학은 선택 가능한가?

후기: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1.

항상 마음속으로 묻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철학도 선택이 가능한가(preferable) 하는 문제이다. 예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런 선택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은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런 소설이 싫어, 나는 카프카 유의 소설을 즐겨 읽지.”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의 경우 “리얼리즘 소설은 무언가 잘못 되었어, 소설이라면 카프카처럼 써야 마땅하지”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끼리 소설을 둘러싸고 얼굴을 붉힌 채 논쟁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서로의 태도를 존중하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상식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경우는 이런 선택가능성은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도 “나는 뉴턴의 물리학을 받아들이지만, 당신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받아들이더라도 상관하지는 않겠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이론들을 지닌 과학자들은 격렬한 논쟁을 거치더라도 끝내 결정적인 판단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조차 그들은 서로 돌아서서 상대방을 비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택가능성을 둘러싼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철학은 어디에 속하는가? 철학은 이런 점에서 예술에 가까운가 아니면 과학에 가까운가?

2.

필자가 이렇게 철학의 선택가능성의 문제를 이 자리에서 언급한 것은 이 글의 의도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본래 4월 30일 한철연 발표회에서 발표된 김성우 선생의 논문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의를 소개하는데 목표가 있다. 그런데 발표 이후 전개된 논쟁에서 필자에게 떠오른 가장 강력한 물음이 바로 앞에서 제기한 그런 물음이었다.

여기에 연유를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발표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발표자는 이 논문에서 매우 대담한 가설을 내세웠다. 알다시피 푸코의 사유는 단계적으로 변천(또는 발전)되어 왔다. 초기 그의 사유는 고고학의 입장이다. 고고학은 다양한 담론들의 배후에 인식의 개념틀(episteme)이 존재한다는 구조주의적 가정에 기초한다. 이런 가정에 따라서 작성한 대표적인 글이 바로 『말과 사물』이다. 중기에(1970년대 초반) 푸코는 담론을 발생시키는 인과적인 힘을 발견하려 했다. 이런 시도를 그는 니체의 용어를 빌려와서 계보학이라고 명명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곧 『감시와 처벌』이다. 말년에 이르러(대개 1980년대) 푸코는 자기 배려의 윤리학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그는 『성의 역사』와 같은 대작을 작성했지만 자기의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논자인 김성우 선생은 푸코의 사유는 ‘역사-비판 존재론’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 개념을 푸코가 말년에 작성한 글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규명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 시대 다양한 담론들의 전제가 되는 에피스테메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발생했는가를 추적하는 계보학의 개념을 재구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푸코의 에피스테메가 존재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그의 계보학이 역사-비판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계보학, 다시 말해 ‘역사-비판 존재론’이 푸코의 전반적인 사유를 묶어 낼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푸코의 계보학은 말할 것도 없이, 고고학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의 한 단면이며, 윤리학적 입장도 이 개념의 한 표현으로 본다.

김성우 선생이 ‘역사-비판 존재론’ 이란 개념을 끌어내어서 푸코의 사유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시도는 정말 새로운 시도였다고 보겠다. 푸코에 관심을 가져서 푸코와 관련된 이런 저런 글들을 읽어 본 적이 많던 필자조차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 참신함이 필자를 상당히 흥분시켰을 정도였다.

3.

그런데 김성우 선생이 계보학을 그저 계보학이라 하지 않고, ‘역사-비판 존재론’이라고 다시 명명한 이유는 영향 사를 밝히려는 데 있다. 그는 이런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을 하이데거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규정한다(또는 하이데거를 통해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영향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필자가 자꾸만 대답을 회피하려는 김성우 선생의 발목을 붙잡고 캐물어서 겨우 알아낸 바에 의하면(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아직 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체로 하이데거의 존재라는 개념이 푸코의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開示:eroeffenung)가 푸코에서 계보학적인 역사의 개념과 상응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대응시켜 놓고 보니, 푸코의 계보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사이에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푸코의 에피스테메 사이의 상응에는 일리가 있다. 둘 다 사물 또는 존재자를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존재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의 개시가 계보학적인 것일까? 푸코의 계보학은 우연적인 사건들이 얽혀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는 상당히 운명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과 운명은 통하는 바가 있다. 우연의 이면이 운명이라 본다면, 푸코와 하이데거의 주장은 서로 동전의 이면처럼 연관된다고도 하겠다. 사실 푸코의 계보학도 읽어보면 무언가 운명적인 것을 전제로 한 듯 보이며, 하이데거의 운명적인 존재의 개시도 그 출발점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본다면,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 개념은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영향의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하며, 잘못하면 푸코의 계보학에 대한 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성우 선생이 하이데거의 영향을 주장한다면, 이런 논점을 잡아서 양자의 유사성과 차이에 관해 더욱 천착해 들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김성우 선생의 논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비록 이런 영향 관계를 천착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연구 성과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 점은 아쉬운 측면이지만 앞으로 연구의 성과를 기대할만한 지점이라 하겠다.

4.

그런데 김성우 선생은 하이데거의 영향을 과장하면서, 푸코의 사상에서 구조주의적인 특징을 지워버리려 시도한다는 데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푸코는 후기 구조주의자라 알려져 왔다.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전기 구조주의는 구조를 일원적(unitary)인 것이며 불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화용(parole)적 측면을 개인의 실천에 속하는 우연적인 측면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에서 간과한 화용적인 측면에 더 주목하며 이런 화용적인 측면도 구조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파악한다. 또한 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구조는 가변적인 것이며, 다양체적(multiple)인 것이라 본다.

푸코가 출현할 당시 60년대 프랑스의 지성계는 구조주의가 지배할 시대였다. 구조주의는 그 이전 50년대 실존주의의 사상적인 지배력을 무너뜨리고 등장했다. 그래서 구조주의가 비판의 논적으로 삼았던 대상이 바로 실존주의였다. 그런데 푸코는 성장기에 분명 실존주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따라서 그런 실존주의적인 사유가 그에게 상당히 침윤되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푸코가 대학시절 당시 지배적인 구조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푸코는 구조주의에 서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후기구조주의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

따라서 푸코가 후기 구조주의로 넘어가는 데 실존주의의 영향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김성우 선생처럼 푸코의 구조주의적인 사유를 부정하고, 하이데거의 영향을 극대화한다면 이는 너무 과도한 주장이 아닐까? 왜냐하면 푸코 역시 그의 시대를 지배했던 구조주의의 힘을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논쟁은 푸코에게 미친 하이데거의 영향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데 집중되었다.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하이데거의 영향의 정도를 판정하는 결정적인 관건은 역시 하이데거의 존재 개시라는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이라는 개념 사이의 연관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개시성의 운명론적인 성격과 계보학의 우연론적인 성격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문제라 하겠다.

5.

그런데 논의를 비틀어 필자를 씁쓸하게 했던 것은 바로 푸코의 계보학이 비판하는 역사 개념이 곧 헤겔의 역사 개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푸코의 계보학이 우연론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것에 대립되는 운명론적인 역사 개념을 헤겔에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헤겔의 역사 개념이 운명론적일까? 오히려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이 더욱 운명론적이 아닐까? 그런데 푸코는 하이데거와 가깝다고 하고 반면 헤겔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면 이것은 무언가 착종된 생각이 아닐까?

이것은 철학적인 판단의 문제이다. 앞으로 더욱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것은 이런 생각이었다.

헤겔에 대한 철학적인 비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분석철학 등은 항상 헤겔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마르크스주의와 분석철학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철학과는 전혀 다른 철학적인 태도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는 철학도들이 헤겔을 비판하는 경우, 필자에게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그들의 헤겔 철학에 대한 이해는 구조주의자 알뛰쎄가 마르크스를 해석하면서 도입했던 헤겔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헤겔은 목적론자이면서 일원론자로 간주된다. 그게 바로 헤겔의 발전 개념이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헤겔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상세하게 논증하고 싶지 않으며 또 그런 자리도 아닐 것이다. 다만 필자는 사람들이 알뛰쎄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것이 헤겔의 진짜 모습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자신이 헤겔을 읽고 이해하면서 비판했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려낸 모습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문제 있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가지 필자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왜 사람들은 자기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항상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하는 것일까? 철학도 선택가능하다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항상 타자를 비판하면서 시작하려는 철학자의 태도에는 철학이 과학처럼 진리성의 기준을 갖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모더니즘 철학자들이라면 그들은 철학의 진리성을 믿으므로, 이런 논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철학자들 그래서 상대주의적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철학자들이 철학에서만은 유독 진리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설적이 아닐까?

소위 회의주의의 역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의주의가 자기 자신을 회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면 이런 회의주의의 역설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청춘의 서재]

신 정 순(홍익대학교 입학사정관)

새로운 날개짓을 위해

청춘의 서재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고민하다 문득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라는 옛노래가 떠올라 흥얼거려보았다. 청춘을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니 청춘은 정말로 꿈같은 봄날이기만 할까, 아니 오히려 이때가 풋사과마냥 풋풋하고 기운행동하는 시기라 역설적이게도 더 크게 흔들리고 방황하며 아파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참신한 열매를 창조해낼 수 있기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예찬하며 부러워하는 게 아닐까, 이 노래의 지은이 역시 그래서 청춘을 뭐든지 실현가능한 꿈나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어떨까!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기를 살아가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할 순 있지만, 대부분의 청춘들은 방황하고 아파할 그래서 이전과 다른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만의 특권을 뒤로한 채 무한경쟁 속에서 더 큰 자유와 물질들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한 처절한 날개짓에 몰두하고 있다. 청춘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시기인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언젠가 대학에서 <시각의 의미>라는 주제강의를 하며 교재로 활용했던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소개해야겠다고 맘이 들었다. 어쩌면 익숙한 시선(관점)을 전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민할 수 있는, 그리하여 목적중심의 또는 자본 중심적 인간관계망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에.

청춘의 의미가 그렇듯 세상만사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낳을 수 있다. 본다는 것은 결국 세계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또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주어진 대로 수동적으로 보지 말고 그것의 제작 의도 및 사회적 의미까지도 간파해내길 원했던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사고방식(또는 행동방식)을 취할 수 있는 새로운 ‘나’로 거듭나 새로운 의미(문화)까지도 창조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상호 관계회복을 위한 새로운 응시

미학에 입문한 뒤, 이성적 지혜를 발휘하여 거대문명을 발전시켜온 서구의 역사에 관해 다음과 같은 비판적 시선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시선은 서구 역사가 ‘나(인간, 이성)’ 이외의 다른 모든 것, 이른바 ‘타자(자연, 비이성적인 것 등)’를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하거나 대상(사물)화시켜 지배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비판한다.

존버거 역시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각의 재검토 과정을 통해 그러한 입장에 동의를 표한다. 그에게 대상(이미지 또는 사태)을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빛이 망막을 통해 시신경으로 전달되는 물리?화학적 의미로서의 시각이 아니라, 본다는 행위에 깃들인 사회적 의미를 파헤치는 ‘시각의 재검토’로써 이성 중심의 근대적인 또는 자본주의적인 삶(역사, 문화, 사회)의 의미를 묻고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다. 이 책은 I. 왜 동물을 구경하는가, II. 사진술의 이용, III. 체험된 순간들이라는 세 가지 큰 제목 아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제작?감상하는 사람의 시선 이면에 깊숙이 감추어진 사회적 의미를 파헤친 총 18편의 글을 담아 낸다. 이로써 <본다는 것의 의미>는 미학에 관한 훌륭한 교양서이자 미디어와 영상론을 다루는 기초 교재로써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평을 받게 된다.

그 중 I. 왜 동물을 구경하는가의 내용은 아무런 생각 없이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어린 아들 둘의 손을 잡고 동물원을 찾아 부모 역할을 다했노라 자부했던 또 언젠가는 내 어머니가 내게 해주었듯 내 아이들에게도 애완동물을 사주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겠노라 생각했던 내게 인간과 동물(자연)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존버거에 따르면, 동물원에서의 동물구경, 애완동물, 동물장난감 등은 우리가 생각하듯 동물을 반려자로 생각하는 인간의 친자연적인 태도 또는 동물에 대한 사랑의 의미라기보다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구체적으로 인간의 언어능력(상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근거로 동물을 단지 객체(대상 또는 기계)로만 바라보게 되었음을 뜻한다.

“동물은 이제 애완동물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에 흡수되거나, 구경거리에 흡수되어 언제나 관찰되는 대상에 머물고 만다.”

그는 말한다. 동물원은 박물관처럼 지식을 넓히고 일반인들을 계도하기 위해 만든 전형적인 소비자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근대 이전까지 동물과 인간이 인근에서 서로 독립된 삶을 유지해오며 평행자적 관계를 이루어오던 상황(만남)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일반인들을 위한 동물원은 일상생활에서 동물들이 사라져버리는 시기가 시작되면서 존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동물을 만나고, 관찰하고, 구경하기 위해 찾아가는 동물원은, 사실 그러한 만남의 불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경계가 되는 표시이다. 오늘날의 동물원들은 인간이 존재해온 것만큼이나 오래된 하나의 관계에 대한 묘비명인 것이다.”

이런 설명에 동심을 위한 때로는 끈끈한 가족애를 확인하는 동물원으로의 즐거운 가족 나들이를 뭐 그렇게까지 삐딱하게 바라봐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동물구경의 사회적 의미를 파헤치는 것이 단순히 인간과 동물(자연)의 관계 규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간의 관계까지도 예시해주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존버거는 동물에 대한 접근방식이 곧 인간에 대한 접근방식을 예시한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따라서 특히 산업?정보사회에서 제작된(특히 폭력성을 배가시키는 전쟁 관련된) 사진을 볼 때는 더더욱 단순 관찰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 이미지(사진)에 들어간 인간의 욕망까지도 읽어내 새로운 맥락(의미)을 재창조해낼 수 있어야한다고 II. 사진술의 이용 장에서 역설한다.

한편 근(현)대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근대사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많은 현대적인 사상가들 역시 동의하는 바인데, 그런 점에서 존버거를 따라 수행한 시각의 재검토(새로운 응시)는 곧 인간(이성) 중심의 근(현)대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자, 인간과 동물(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주체와 객체의 전복 체험 & 새로운 의미(문화) 창조

굳이 현학적인 고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두 번 쯤은 지나치게 이성 중심적인(목적지향적인) 삶을 살다 또는 과도한 자본시장의 논리에 치여 그로부터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현대 사상가들 역시 그 점을 고민해왔고 그 결과로 일종의 ‘되기’를,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몸을,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바라보는 나’로 분열된 주체를, ‘음악하는 소크라테스’를 그리고 경악과 놀람을 주는 예술 체험 및 실존적 체험 등을 강조해왔으며, 존버거 역시 <세케르 아흐메드와 숲>라는 글에서 주체와 객체의 전복이 일어나는 실존적(미적) 체험의 순간을 통해 그 단초를 마련한다.

III. 체험된 순간들에 소개된 티벳 화가 세케르 아흐메드의 그림 <숲속의 나무꾼>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다. 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이 그림의 원경에 자리잡은 너도밤나무가 뒤로 멀어지면서 동시에 앞에 있는 나무들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럴까? 화가가 너도밤나무의 잎들을 앞의 나뭇잎만큼이나 크게 그리고, 너도밤나무 줄기에 빛줄기를 쏟아 부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숲 가장자리와 오른쪽 덤불숲의 기괴한 사선이 만나는 지점에 삼차원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이 여전히 2차원인 그림 표면에 머무름으로써 공간적인 모호성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덤불숲을 살짝 가리면(없애면) 너도밤나무가 원경으로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그림은 원근법을 잘못 이해한 화가의, 이른바 일종의 학문적 실수 탓일까 아니면 설득력을 결여한 화가의 미숙함의 결과 탓일까?

존버거는 파리에서 작업하며 쿠르베와 바르비종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가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말하며, 숲속을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실제의 실존적 경험과 조화를 이루도록 그리고자 했던 화가의 남다른 세계관 덕이라고 설명한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말한다. 숲은 우리에게 단지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존의 삶에서 하나의 사건(만남)으로 체험하는 그리고 감상자에게까지 확장되어 주체와 객체의 전복을 체험하게 한다고.

“세케르 아흐메드는 숲을,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물로, 그리고 그가 파리에서 배웠던 것처럼 그것으로부터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하나의 존재로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 움직이고 있는 것은 숲이다. 자신의 현재 존재를 가지고 있는 숲은 나무꾼과 반대 방향으로, 즉 우리쪽을 향해 앞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에게 접근하고, 그에게 도달하며, 그에게까지 확장하는 지속적인 머물기이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이젠 굳이 글쓴이가 왜 모호한(양가적인) 세케르 아흐메드의 그림을 원근법에 위배되는 비논리적(비문법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실존주의적인 방식으로 읽어냈는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창작자의 세계관에 따라 회화의 표현이 달라지듯, 이제 회화를 감상할 때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의미(문화)를 창조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날개짓이라도 시도해보기를 권하며, 아울러 존버거의 말대로 프리미티브 화가들이 서툴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의 존재 체험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살아있는 감동을 주었듯이, 자신만의 눈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나에게도 청춘에게도.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한흥수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가슴에서 여전히 펄떡이는 유년의 기억들

두 아이의 아빠로 힘든 사회생활 속에서도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흐릅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작은 농촌 마을 이었습니다. 집 뒤에는 나지막한 청산이 있고, 마을 넘어 드넓은 논이 있고, 논을 지나면 역내라는 맑은 샛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7명의 또래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틈만 나면 놀 것을 찾아 온 마을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여름이면 우리의 즐거움은 단연 물고기 잡이였습니다. 수로에 얼망을 놓고 친구들이 물고기를 몰면 그 조그만 얼망 가득 붕어, 매기, 미꾸라지가 펄떡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물고기를 산에 가지고 가서 어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한 친구는 집에서 몰래 양은솥을 가져오고, 한 친구는 고추장을 가져오고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는 친구는 삭정을 모아 불을 피웠습니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아도 어찌나 맛있던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 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속에 군침이 흐릅니다.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를 애완동물로 키우다

나는 유독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애완동물을 키우지만 옛날에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짐승을 잡아다 집에서 키웠습니다. 기억에 남는 애완동물은 새매였습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포획 및 사육이 금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법도 없었고, 나 또한 죄가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새매는 높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새끼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대로 둥지를 한번 쑤시고 어미매가 날아오면 도망가고 또 쑤시기를 반복했더니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네 마리를 집에 가져가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를 주며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네 마리는 모두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왔는데 두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어머니께 따져 물었더니 동네 아저씨가 참새를 쫓는다고 두 마리를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급히 매를 찾아 논으로 갔더니 매의 날개는 잘려있고 끈에 묶이어 허수아비 마냥 참새를 쫓고 있었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두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새매는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더니 다음 날부터는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마을은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살아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유년시절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자연생태계를 몸으로 배우고, 친구들과 싸우면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마을에서 서리하다가 걸려 도둑질의 나쁨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책에서 말했듯이 지나고 보니 마을은 공동체였습니다. 아이들 끼리 어울려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다 물에 빠지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구조했고, 서로 싸우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꾸중을 했으며 예의범절 또한 마을 어른들의 몫 이었습니다. 이런 마을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발전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만 기억하고 모든 가치를 부와 명예로만 생각하고 소중한 아이들에게서 추억을 빼앗고 학원으로만 몰고 있습니다.
저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승강기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고 계단에는 아이들이 피운 양담배가 수북이 쌓여 있고 아파트 뒤편 구석진 곳에는 깨진 술병과 먹다 남은 안주가 너저분하게 놓여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지친 마음을 손쉽게 풀 수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져 듭니다. 게임 속에서도 여전히 경쟁은 시작됩니다. 지친 마음을 쉬려고 시작했던 게임은 어느새 더욱 심신을 피로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란 똑똑한 아이들이 다스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사회일까요, 무한 경쟁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사회일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아이들에게 이제는 우리 부모에게 선물 받은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날개를 잃고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박원순 작가는 마을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사라져 가는 마을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저절로 느껴지는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 전북 임실의 치즈마을, 환경 농업공동체를 실현시킨 경북의성의 쌍호공동체마을 등 책에서 소개된 모든 마을들은 의식 있는 몇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참여로 인해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마을이 사라지면 우리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미래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소중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서는 농어촌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되고,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도 마을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구해야 됩니다. 어른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아파트 주민끼리 서로 인사하고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마을 공동체로 만들어 우리가 잊고 지내던 품앗이 문화를 되살려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부터 변해야 합니다. 너무 자녀들을 경쟁에 밀어 넣지 말고, 아이들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공동체 문화가 정착 되어야 아이들의 범죄도 사라지고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아름답던 유년시절을 추억하며 날개를 잃고 아무런 생각 없이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다시 한 번 사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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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다섯째 글로서 박원순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검둥소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세상과 다른 꿈, 조선 선비 9인의 사상을 읽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안세환 (보령 책 익는 마을 회원)

 
인터넷 서점 새 책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라는 제목을 볼 때 당시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걸어갔을 그들을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을 했든, 타의에 의해서 선택을 했든 그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 길을 걸어갔을 꼿꼿한 선비의 모습을 제목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5권의 새 책이 택배로 배달이 되는 시간에 마침 우리 ‘보령 책 익는 마을’ 박종택 촌장과 다른 몇 분이 오셔서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었다. 새 책들을 펼쳐 가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마을 분들은 이 책이 마음에 든다고 독후감을 쓰라고 한다. 여러 분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것으로 볼 때 제목에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를 살펴보니 ‘세상과 다른 꿈을 꾼 조선의 사상가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세상과는 다른 사상가들의 삶이 녹아져 있다. 그들의 생각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이 책에는 모두 아홉 명이나 되는 인물들을 아홉 장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김시습, 서경덕, 박세당, 정제두, 이익, 유수원, 홍대용, 이벽, 최한기가 그들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 보다는 대강의 삶의 언저리를 살펴보는 수준에서 읽어 볼만한 책이다. 나는 여기에 나오는 아홉 명을 다 설명할 수는 없고 김시습, 이익, 최한기 세 사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매월당은 공명과 지조 사이에서 고뇌한 ‘광인’으로 제목을 삼고 있을 만큼 지조의 사람이다. 그에게는 두 평가가 있다. ‘신세 망친 인간’과 ‘지조를 지킨 사람’이라는 평가이다. 전자가 주로 일상적인 삶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지식을 담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평가이다. 그는 21살 때(1455년)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노와 슬픔에 찬 통곡으로 3일간 지내다가 공부하던 책과 원고들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그리고는 유랑의 길로 들어서는데 어떤 때는 분뇨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다. 그 후 설악산에 있는 오세암에 들어가 삭발을 하고 기인의 삶을 산다. 경주 남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쓰고, 호를 매월당으로 한다. 마지막 2년은 부여의 무량사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쳤다.

그의 기행을 살펴보면 어느 날 한강변을 지나다가 보니 한명회가 압구정 근처 한강변에 정자를 한 채 지어 시 한 수를 걸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그 시구는 이렇다.

靑春扶社稷 청춘부사직 젊어서는 나라를 붙들었고

白首臥江湖 백수와강호늙어서는 강호에 누워있구나

이 시의 작자가 한명회임을 알게 된 김시습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붓을 들어 표현하는데, 扶를 危로, 臥를 汚로 살짝 바꾸어 놓았다.

靑春危社稷 청춘위사직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했고

白首汚江湖 백수오강호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는구나

정말 촌철살인의 위트가 번뜩인다.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인 노년의 한명회를 향하여 이처럼 온 세상에 시원함을 줄 수 있는 인물이 김시습이다. 오늘날 이런 기개로 세상을 향하여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권력에 붙어 온갖 영화를 누린 한명회를 보는 김시습의 눈에는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강호를 더럽히는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에 한명회가 알고는 펄펄 뛰었지만 광인처럼 지내는 김시습을 어쩌지는 못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한명회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세상에서 돌아가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나보다.

매월당은 제법 많은 분량의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특히 도연명을 좋아해 그에 답하는 화도시(和陶詩)를 66편이나 남겼다. 또한 그의 소설 『금오신화』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여겨지고 있다. 단편소설 정도지만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이라는 5편이 실려 있는데, 앞의 세 편은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뒤의 두 편은 지옥과 용궁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신유학이라고 하며 주자에 이르러 완성을 본 성리학을 더욱 완성시켰는데, 그의 이기론을 보면 개개의 현상만을 인정하는 이기일원론자 같기도 하고, 보편과 현상을 다 함께 보는 이기이원론자 같기도 하다. 오늘날 학자들 간에 그의 이기론을 두고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다.

성호 이익(1681-1763)

먼저 영풍(獰風)이란 시를 보자.

野老竅窓疑不出 야로규창의불출 시골 늙은이 밖을 엿볼 뿐 나갈 엄두 못 내고

書生推沈?無言 서생추침묵무언서생들은 자다 일어나 아무런 말이 없다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엄청나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밤중에 지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하늘에서는 뇌성벽력이 일어 땅을 흔들 정도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하여 염려는 되지만 밖에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방에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이익은 관직에 나가는 청운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첫 시험에서 주어진 형식대로 쓰지 않은 것 때문에 2차 시험에 나가지 못했고, 또 친형이자 스승인 이잠이 사형당한 일이다.

그 아픔을 뒤로 하고 재야에 묻혀 농사와 교육에 종사하면서 학문연구에 몸을 바치기로 한다. 시골 초가의 방안에 앉아 그가 접할 수 있는 넓은 세계로 문을 열어 놓고 학문을 한다. 철학, 정치, 사회, 역사, 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가 그의 관심에 들어와 있다. 부친이 청나라 사행길에 구입한 많은 서구 관련 책들을 읽고 서구에 열려진 진보적인 유학자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그의 주장 중에 6두(?)라는 것이 있다. 여섯 개의 좀이 있다는 말이다. 노비제도, 과거, 문벌중시, 잡기와 무당, (일부의) 승려(승적으로 인해 병역기피가 많았기에), 게으름 등을 말하는데 없어져야 할 사회의 악으로 보고 있다. 성호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입장에서 정책을 펴도록 주장을 한다. 이런 주장들은 대부분 성호사설에 들어 있다. 그에게 늘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도 있다. 절대적인 존경의 마음을 가진 인재들을 제자로 둘 수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조선 후기 이름을 떨친 윤동규, 안정복, 신후담, 권철신 등이 그의 제자였고,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게다가 여든셋까지 살았으니 그 시대에 장수한 셈이다.

성호사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옛 글과 자신의 글을 뒤섞어 책을 만들었기에 후대의 정약용은 올바른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런 중립적 사유가 있기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내용이 실천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익이 제기한 부정부패, 빈부의 문제와 개선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혜강 최한기(1803-1877)

혜강 최한기는 1980년대 이후에 관심과 연구가 부쩍 늘었다. 혜강의 학문은 넓고 깊다. 그가 남긴 1천여 권의 저서는 최남선이 탄복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니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그는 개성 출신인데 ‘개성상인’과는 거리가 먼 저술가로 평생을 바쳤다. 그는 비싼 돈을 들여 북경에서 들어온 책들을 샀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책을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을 한다.

‘가령 이 책 중의 사람이 나와 같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천리라도 불구하고 찾아가야만 할 텐데 지금 나는 아무 수고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책을 구입하는 것이 돈이 많이 들기는 한다지만 식량을 싸가지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야 훨씬 난 것이 아니겠나.’

성리학자들에게 주공이나 공자는 성역의 존재다. 그들을 비평하는 것은 금기다. 그런데 혜강은 주공이나 공자에 대해서도 반대의 입장에 설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기측체의 서’에서 오직 두 성인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려는 맹점을 지적한다. 나라의 풍속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도 그들 두 사람이 남긴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며 변통할 줄 모른다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했다. 하기는 최근인 1999년에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내었다가 유학자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탄을 받았는가? 하물며 19세기의 사람임에랴!

그의 책 『신기통』과 『추측록』 두 권을 묶어서『기측체의(氣測體義)』라는 이름으로 중국 북경의 서점가인 유리창에서 발간이 되었는데, 이것은 수입일변도인 조선에서 중국으로 수출이 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혜강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미래에 대해 열려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문호가 닫혀 있었던 시대에 많은 책들을 통하여 배우고, 수많은 책을 저술하면서 시대를 앞서 나갔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자주 쓰는 용어 중에 ‘운화’란 말이 있다. 운화는 운동, 운행, 운영 정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상업에 있어서 나와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업을 운영하는 것이 곧 이익을 보는 최상의 길이니 그 길을 따르라고 한다. 이런 시각은 비단 상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 이익이 되어야 하고, 사회에서도 서로 이익이 되는 보편적인 방법이 최상임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 하며

저자는 독특한 사상의 길을 걸어갔던 아홉 명을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작은 책에 담다 보니 가볍게 그 분들의 정신보다는 삶을 이해하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고, 나 또한 다 다룰 수 없어 세 분만 들어 그야말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았다. 특히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e시대와 철학> 사이트에 글을 싣는다는데, 철학 쪽보다는 우리 선조들의 삶에 조명을 하게 된 셈이어서 의도에 상충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철학책 중에서 선정할 걸’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위안을 삼는다.

여러 사람들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면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해의 정도가 문제이다. 저자의 생각과 글 속에 나타나는 의미를 내가 얼마만큼 아느냐가 관건이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읽을 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해의 정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여기며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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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넷째 글로서 이종호 님의 <나는 불온한 선비다>(위즈덤하우스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찌질하거나 어리석음에 관한 수고로운 보고서 3-① [4人4色 책읽기]

김종옥 (작가)

지구보다 훨씬 더 큰 행성에서 인간보다 훨씬 더 큰 몸집을 한, 문명을 가진 지적생명체가 있다고 치자. 그들이 지구를 보았을 때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보일까. 꼬물꼬물 모여 살면서 집도 지었다 허물었다 하고, 먹을 걸 만들어 먹기도 하고, 무기로 서로를 죽이기도 하며 난리일 게다. 그 사는 모습이, 제 집을 짓고 먹이를 모으고 새끼를 낳고 물어뜯고 싸우는 다른 짐승들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제 터전을 열심히 망쳐가면서 살기도 한다는 것이겠다.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38억년이 지나오면서 가장 고약한 종은 인간이다. 인간은 그 자신 지구생태계의 일원이면서도 아닌 척 고개를 외로 꼬고 스스로 꼭대기에 선 듯 행동한다. 살아온 역사가 각종의 전쟁과 정복의 저열한 역사였으니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생은 둘째치고 제 무리들하고의 공생과 조화조차 못 이루고 살아왔다고 보인다. 그래도 지구상에 나타났던 어떤 특정한 종이 존재하는 평균 기간이 대략 4백만년 정도라고 하니, 그에 비추면 우리 인간종들은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살아 온 것이다. 그러니 네 깜냥대로 계속 그렇게 거칠게 살아라, 라고 말하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는 이 밉쌀스런 인간 무리를 몰아내고 지구에 이주할 생각을 품고 있는 게 틀림없다.

서론이 길어졌다. 반복되는 어리석음에 하릴없이 농을 풀어본 것이다. 물론 정색을 하는 것보다는 농을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농과 풍자는 적어도 나는 그 속에 속해 있지 않다는 거리감이 담보될 때 나오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반복되는 비극에 일말의 책임도 없는가. 스스로 삶의 터전을 제 손으로 더럽히고 허물어뜨리는 어리석은 일에 눈꼽만큼도 책임이 없는가. 자연이 스스로의 상처를 스스로의 손길과 숨결로 간신히 꿰매어 나가고 있을, 그걸 보면서 감탄하고 박수치고, 그러다 끝내는 그걸 느긋하게 누릴 자격이 내게 있는가. 우리에게 있는가. 태안에 가서 기름묻은 자갈 한 번 닦았으면 그런 자격이 주어지는가. 찜찜한 마음을 숨기며 바닷가 가서 몸을 담가주면, 서해안산 조개 구어 먹었으면 그런 자격이 주어지는가. 희망제작소에서 기획한 이 책 <태안은 살아있다>(동녘 펴냄)를 보면 누구라도 쉽사리 난 가해자가 아니오, 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우리 모두는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자연은, 고맙게도 피해자인 동시에 스스로 치료사이고.

태안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바닷가로 밀려오던 무겁고 시커먼 기름띠와, 물새떼들마냥 무리지어 앉아서 기름묻은 자갈을 닦아내던 자원봉사자들의 감동 어린 장면만을 기억한다면 제2의 재앙, 제3의 재앙이 이어질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태안은 살아있다>라는 제목의 책

물론 태안은 살아있다. 물론 과거에도 죽은 적이 없으니 지금도 살아있으며 미래에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2007년에는 한 때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 때는 인간이 태안 앞바다를, 갯벌을 죽인 것처럼 보였다. 시화호가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고인물로 죽어있었듯이 태안도 그렇게 죽어서 더 이상 생명이 깃든 자연이 아닌 듯했다. 그러나 3년여가 지난 지금 태안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걸 보면서 자연은 결코 죽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깊어서 죽은 듯이 보일 뿐이며 다만 상처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오히려 죽은 듯 보이는 자연 안에서 정작 죽어버리는 건 사람의 삶이다.

자연이 생명을 품지 않는다면 그 어떤 영악한 생명도 그 안에서 살아낼 수 없다. 태안이 지금도 살아있는 건 사람이 기름을 걷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복구가 그만큼 놀랍도록 성실했기 때문이다. 기름을 걷어낸 수고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자연은 그 수고보다 훨씬 더 많은 응답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태안은 우리가 ‘살려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처가 아물고 속속들이 완전히 새살이 돋아나려면, 그래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가려면 앞으로도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야 한다니, 그때까지 태안의 바다는 묵묵히 제 살을 치유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태안이 어떻게해서 살아나고 있는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먼 훗날 태안의 자연이 스스로 제 몸으로 보일테니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스스로의 손으로 어떻게 자기 환경을 더럽혔고, 그 바람에 자기 공동체사회가 어떻게 망가졌는가 하는 점이다. 그 과정을 꼼꼼히 복기해보면 어느 시점에서 어느 바둑돌이 잘못 놓였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바다도 갯벌도 자기 색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그 바다와 갯벌이 품고 사는 사람 사회는 깊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일종의 자기진술서라고 할 수 있는 이 보고서는 사고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치밀하게 짚어가면서, 태안의 일을 ‘태안의 기적’이니 ‘태안을 살려냈다’니 하는 무용담으로 포장하는 게 얼마나 참람한 짓인지 보여준다. 비록 바닷물빛이 돌아오고 갯벌에 윤기가 흐른다고 해도 한 번 튕겨져 나갔던 인간들이 그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도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 공동체 사회를 회복하기까지는 아직 계산해야 할 복잡한 목록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해서 태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살아있기도 한 것이다. 박원순 이사가 ‘희망을 향한 미완의 기록’이라고 소제목을 붙인 이유도 그것이다.

태안의 죽음

2007년 12월 6일 서해바다의 기상악화가 예보된 상황에서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과 이를 이끄는 2척의 예인선단이 인천에서 경남 거제로 출발했다. 12월 7일 새벽 서해에는 강풍과 파도가 일었고 풍랑주의보도 내려져 있었다. 운항을 강행하던 삼성크레인선단은 새벽 5시경부터 예인력을 잃고 풍랑에 밀리기 시작했다. 근처 대산 지방해양수산청 관제실은 예인선단이 정박 중인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고 긴급 호출했으나 예인선단은 응답이 없었다. 드디어 새벽 7시 6분경 삼성크레인은 현대오일뱅크의 기름을 실은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했다.

이 충돌로 원유는 사상 최대인 1만 2500여 킬로리터가 바다로 쏟아졌고, 49일간의 해상방제로 회수된 양은 그 3분의 1인 4175킬로리터였다. 시커먼 기름띠는 인근 해안선을 오염시키기 시작하여, 충남 6개 시 군의 11개 읍 면과, 59개 도서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부안 군산 영광 무안 신안 등 전라남북도의 연안 해안과 42개 도서를 오염시켰다. 또 김 굴 미역 양식장 820여 곳과, 조피볼락 넙치 등 종묘시설 81곳, 해수욕장 15곳이 황폐화되었다. 양식장과 어장, 숙박업소, 음식점, 유통과 운송 등 주민들의 피해 신고는 10만 건에 달한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 IOPC’의 엄격한 보상 기준에 따른 추정액만도 피해액이 6천억 원을 넘어선다.(국내 전문가들은 실제 피해규모를 3조원대로 추정한다.) 태안 일대가 실로 ‘6천억 원짜리 환경 쓰나미에 휩쓸린’(노진철) 것이다.

이 참담한 현실에 맞서 자원봉사자와 태안주민 등 군 관 민이 모두 팔을 걷어부치고 기름을 걷어내고 닦아내기 시작해서 사고 일주일만에 기름띠 오염 해안선의 79%가 응급방제되었다. 겨울을 지나 7개월여 이어진 방제에 자원봉사자 123만 명을 포함해 200여만 명의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해 2008년 여름에는 깨끗해진 해수욕장을 볼 수 있게 되는 기적같은 일도 일어났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의 개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사건의 제목만 알고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사건의 시작도, 진행과정도, 결말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는 게 너무 없다. 가해자는 누구이며 피해자는 누구인지, 무엇이 망가졌으며 무엇이 복구되었는지 아는 게 없다. 2010년까지 보상된 것이 고작 54건에 그나마 기대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160억 정도라는 것도,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완전한 회복은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른다는 것도 잘 모른다.

왜 삼성은 무리한 운항으로 엄청난 사고를 쳐놓고도 법원 판결 뒤로 슬그머니 빠져 있는지, 왜 현대오일뱅크는 이중선체에 들어가는 수십억의 비용을 아끼려고 기름 유출에 취약한 단일선체구조의 선박을 쓰다가 기름을 쏟아놓고도 그 책임에 대해선 왜 아무 말이 없는지, 재난처리를 관장해야 할 정부는 왜 책임 소재 규명과 배상 및 보상에 그토록 소극적이고 무능하며, 왜 제대로 된 재난관리 매뉴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지, 그보다 앞서 초동 대응에는 왜 그렇게 허점이 많았는지, 왜 자원봉사자의 활동은 감격에 겨워 열정적으로 보도하던 매스컴이 정작 3명의 주민이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공동체 붕괴의 현실과 그 복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지, 그 어느 것도 우리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사고 후 3년도 지난 2010년 2월에 또 한 명의 주민이 자살을 택했을 때도, 그를 쓰러뜨린 절망이 무엇이었는지 아는 게 없다. 아는 게 없다면 당연히 얻어야 할 교훈도 얻지 못할 것이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잘못은 언제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자연재난에 이어 현재 진행형인 고통스런 사회재난도 모두 일단 잘 기억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재난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이고자 하는 이 책에는 재난의 원인과 경과, 진단이 모두 여러 각도에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환경의 측면에서 무엇을 잃었는지, 사회공동체는 어떤 식으로 파열되었는지, 공적 재난관리 체계는 어떻게 허술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한편, 잘못된 보도로 말미암아 쇼가 되고만 자원봉사자 활동의 명암도 짚어본다. 또 재난관리의 매뉴얼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갈등 상황에는 어떤 해법이 있을지, 어떻게 공동체를 복원 할 지 등이 언급되어 있다. 글을 읽다 보면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쏟아낸 것은 1만 2천여 킬로리터의 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그 양이 증폭되어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총체적 재앙이었음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갈등, 갈등, 갈등

사고 발생부터 태안에는 숱한 갈등이 생겨났다. 모든 단체간, 모든 개인간에 온갖 종류의 갈등이 서로 얽혀서 만들어졌으므로 실로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의 본질은 이 수많은 갈등구조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태순 씨와 이재은 씨, 노진철 씨의 보고서는 이 복잡다단한 갈등 양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고원인자이자 가해자인 삼성 등과 법적 공방, 정부의 책임문제, 배상문제 등을 놓고 태안 주민과 삼성, 유조선회사, 중앙정부, 태안군, 아이오피시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으며, 태안 재건 방향을 놓고도 군민들과 태안군, 충남도, 정부 간에 이견이 표출되었다. 또 생계비 배분을 둘러싼 마을과 마을 간의 갈등, 통합 대책위 구성을 둘러싼 수산과 비수산 간의 갈등, 삼성과의 자매결연을 둘러산 갈등 등이 발생했다. 이쯤되면 태안 사람들이 수많은 집단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처럼 들린다.”(박태순)

“방제 방식에 대한 갈등, 사고 원인에 대한 견해 차이, 중대과실 책임, 삼성중공업의 책임 범위에 대한 갈등, 생계비의 지역별 배분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 주민 간의 생계비 배분의 형평성을 둘러싼 갈등….. 이밖에도 사고 원인 규명과 관련한 갈등, 피해 조사와 관련한 갈등, 배상액 산정과 관련된 갈등, 피해 주민 간 갈등,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 중앙정부와 삼성과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갈등, 지역개발 방식을 둘러싼 갈등, 생태계 복원 방식을 둘러싼 갈등 등이 있다. 또 함께 살아온 주민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져나갔고, 이것 때문에 이 지역사회를 뒷받침해오던 공동체 사회의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잃어버린 것이다.”(이재은)

이러한 갈등의 본질은 결국 ‘돈’ 문제였고, 이것을 조정할 능력이 정부에게도, 주민에게도, 물론 사고당사자에게도 없었다는 것이 공동체 붕괴의 위기를 맞은 원인이 되었다. 복잡하고 지난한 심사와 재판과정을 거쳐야 하는 피해보상금 문제도 그렇지만, 정부에서 나오는 생계지원비도 서로 자기 몫을 더 많이 챙기려는 진흙탕 싸움이 되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어차피 국고에서 지원되는 ‘눈먼 돈’인 바에야 내가 못 챙기면 남이 챙길 것이므로 양보고 염치고 차릴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치열한 내 몫 챙기기 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바닥을 보아버린 주민들은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이 비극은 ‘주민들 스스로 만든 갈등도 아니었고, 기름 유출 사고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으니’(박태순) 겪지 않아도 될 고통, 보이지 않아도 될 바닥을 보이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허베이 스피리트 사고가 가져온 가장 큰 비극은 아마도 이것인 듯 싶다.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곳도 이 대목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그에 기대어 살고 있던 사람의 공동체에도 균열이 갔다. 생태계의 파괴가 사회적 재난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도, 사회공동체의 균열도 책임은 모두 인간에게 있지만, 길게 보아서 생태계가 복원되면 그에 기댄 인간 공동체도 결국에는 예전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기다리기에는 지금 당장의 상처가 너무 크고 당장의 삶이 너무 절박하다. 보상과 배상 문제, 복구 방향 등이 아직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라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오히려 앞으로 더 증폭될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위기에 놓인 마을공동체의 분열을 막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결국 지역을 살려낼 사람은 지역주민들이기 때문이다.’(노진철)

그렇지만 상황이 암담하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태안에서 이미 싹트고 있는 희망을 본 연구자도 있다. 박태순 씨는 ‘다행스러운 것은 갈등의 주체들이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자신과 이웃을 재발견하고, 협력과 상생의 중요성을 스스로 터득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기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태안을 되돌릴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본 희망대로 태안 사고의 ‘완결판’을 만들 때쯤이면 ‘싹트고 있는 희망’이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4대강, 구제역, 반복되는 악몽

몇 년 사이에 몇 조에서 몇십 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단위의 돈을 입에 자주 올린다. 허베이 스피리트 재앙이 크게는 5조대에 이르는 피해라고 하더니만, 4대강을 콘크리트로 감싸는 공사비가 십몇 조, 이십몇 조라고 하였다. 작년 겨울부터는 구제역에 들어가는 처리 비용이 몇 조란다. ‘억’도 억 소리 나게 큰 돈인데, ‘조’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문제는 이 엄청난 돈들이 결국 헛돈이라는 데 있다. 들이지 않아도 되었을 돈이고, 들이지 말아야 할 돈이다. 구제역과 허베이 스피리트 재난에 들어가는 돈은 환경을 망친 대가로 치러야 하는 비용이고, 4대강 사업비는 어이없게도 환경을 망치는 비용이다. 세 경우 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보다 얼마나 더 큰 비용이 단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던 시점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 헛돈을 메꾸기 위해 국민들은 얼마나 아까운 땀을 공연한 곳에다 흘려야 하는가.

앞장서서, 혹은 제 책무를 방기해서 크게 망쳐놓고 국민들의 땀을, 성금과 봉사를 요구하는 국가는 대체 어떤 수준의 국가라고 할까. 태안 재난에 관련한 이 중간 보고서는 약 4백여 쪽이다. 이 기막힌 수준의 국가는 4대강과 구제역으로는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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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세번째 책은, 희망제작소에서 기획안 노진철 외 지음, <태안은 살아있다>(도서출판 동녘 펴냄)으로 김종옥(작가), 김한규(생태해설가), 정한(대학생), 이정미(동녘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아울러 글 사이에 게재된 사진들은 출판사의 협조로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