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의 역사, 현재형이 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황선만 (책익는 마을 전촌장)
내가 노비가 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우리사회에 노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이 노비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유의 세상, 정치적 민주화의 시대가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보수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화 운동>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기념회를 열기도 하였으니 민주화 시대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당시 담당검사였던 안 대표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 은폐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홍보를 위해 박종철 열사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 시대는 개인의 존엄이 확고히 자리잡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지금 노비를 말한다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 역사의 한 구석을 호랑이 담배피우는 옛 이야기 듣듯이 넘겨다보는 일에 불과하다. 잔잔한 남한강 어디쯤에서 조각배를 저으며 풍광을 구경하듯이 말이다. 내가 임상혁이 쓴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를 펼쳤을 때 그런 마음이었다. 이참에 못다한 역사공부나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한가한 내 생각은 머리말에서 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예전에 글쓴이가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상이 노비였던 분은 손들어 보세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모두 까르르 웃을 뿐, 물론 손 올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연구자들은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일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3분의 2까지 보는 학자도 있다고 말해줄때면 놀라는 기색이 완연합니다. 노비는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일생동안 상전에게 재화와 노동을 바치는 알짜배기이지요. 이 시기 부의 척도는 거느린 노복들의 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문대가라 불렸던 집안에는 수백 명의 노비를 자손에게 분배하는 상속 문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옵니다.”
순간 나는 ‘혹시 내 조상도 노비였을지 몰라. 그렇다면 노비해방이 안 되었다고 할 때 나는 지금 노비로 살아갈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몸서리 쳐지는 것이었다. 인신과 정신이 상전에게 구속받아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온종일 상전이 시키는대로 복종해야만하는 노비의 삶, 내 귀여운 자식들도 똑같이 그런 굴레에 갖혀 일평생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비를 거부하는 노비들
인간이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법, 전통사회 노비라 하여 어찌 자유를 갈망하지 않았으랴. 이 책의 송사에 등장하는 두 당사자는 노비인 자와 노비 아닌 자였고, 노비는 항상 그 굴레를 벗어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 특히 시종 이야기를 끌고가는 두 주인공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궤적은 우리 전통사회의 노비제에 관한 다양한 배경지식을 알려주고, 시대를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욕구와 갈망을 보여준다.
원래 양인인 다물사리가 노비인 윤필과 결혼하였고 인이라는 딸을 두었는데, 인이가 이유겸의 사노비인 구지와 결혼하여 6남매를 둔다. 따라서 다물사리의 딸과 자손들은 모두 이유겸 집안의 사노가 되어 상속되게 된다. 자신의 귀여운 손자 손녀들이 모두 사노비의 생을 살게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던 다물사리는 관가의 노비담당자의 묵인하에 스스로 관노가 되어 가솔을 모두 관노로 등록시킨다. 왜냐하면 사노비 보다는 관노비의 생이 훨씬 덜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이유겸 집안에서 소를 제기하게 되고 결국 다물사리의 가족은 쓸쓸히 사노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안동시에 사당을 두고 있는 학봉 김성일이 나주 목사로 재직하던 시절(1583년8월~1586년12월)에 처리한 판결문에 실려 있다. 저자는 숭실대 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법학자로 조선의 노비재판과 관련한 사료를 찾아내 김성일의 명 판결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심급제도, 소송절차를 비롯해 최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의 소개에 이르기까지 법학자답게 전통사회의 법과 그의 적용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법학도 비슷한 인연도 없었던 필자로서는 저자가 소개하는 노비재판의 실화들에 더욱 눈길이 가고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곤 하였다.
불공정한 판결
양인으로 잘 살아가던 한 가족이 노비로 급락하는 일도 있었다. 1568년 해남의 하급 아전이었던 허관손은 자신의 처와 세 자녀를 모두 노비로 빼앗긴다. 상대는 과거에 급제하고 이조참판까지 지냈던 유희춘이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 관료였던 유희춘과의 소송을 소개하며 저자는 판결결과를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유희춘의 누나는 다음해 7월 허관손의 아내와 그의 세 자녀를 잡아다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소나 말을 ‘부리듯’ 말이다. 멀쩡하던 처자식이 노비로 전락했으니 허관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급 관료지만 그 시대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유는 허락받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불현 듯 다가온 가족의 쇄락을 허관손은 어찌 감당했을까. 그러나 법학자인 저자는 이 판결에 의구심을 버리지 않는다. 다음 인용을 보자.
“양반 상민, 노비 할 것 없이 소송능력은 법적으로 제한 없이 인정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위관리에 맞서는 소송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으로 치면, 고액을 들여 전관예우 변호사를 고용한 상대방에 맞서 나홀로 본인소송을 하는 당사자가 고단하기 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헌부, 장예원의 관리들은 수시로 미암에게 와서 심리의 진행상황을 보고하였으며, 그의 동료 관리들은 행정조직을 동원하여 24년 전의 판결을 찾아내는 등 유리한 증거를 모았다.”
자신의 조상이 사실상 노비였기에 다시 노비로 돌아간다 하여도 극도로 싫었을 터인데, 만약 양인이었다가 권력자의 소송으로 억울하게 노비가 된다면 그 울분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상상을 하니 허리가 곳추세워지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법이라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가까운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해방된 노비들, 어디로 갔을까
노비신분을 벗어나고자 하는 대표적인 노력은 고려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만적이라는 노비가 중심이된 만적의 난이 있었고 조선 전기에는 노비 소송이 넘쳐났다. 그래서 소송처리에 지친 태종이 “사전을 혁파하였듯이 사천제도를 없애버리면 이런 폐단은 없어질 것”이라며 노비제의 혁파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비해방이 공식화된 갑오개혁 이전인 1801년 순조1년에 관에서 부리던 공노비를 해방시켰으니 우리 전통사회는 노비의 노동력에 의존해왔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고자했던 몸부림의 역사이기도 하였다.
그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노예제와 농노제가 있었다면서 우리의 노비제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명천지 21세기가 되었고, 세계화와 인간존중이라는 근엄한 사유가 지배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의 독재에 저항하는 북아프리카와 아랍민중들의 항거소식이 연일 전파를 타고 있으니 이 시대 사람들은 진전된 인간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노비해방이 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 신분상 천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력이 확보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은 유력한 집안의 머슴살이를 하여야 했다. 또 주인집에 얹혀살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담살이, 주인집을 드나들면서 일을 도와주는 드난살이도 있었는데 산업화 이후 사라졌다.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세한 농민들의 수 많은 가족들이 도시의 공장노동자로 전업한 것이다. 이것은 노비의 역사이면서 노비의 현재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투표권을 갖고 나라의 대표, 마을의 대표를 뽑는다. 자유로운 세상이다. 해방된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담살이나 드난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피땀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 에너지는 생산의 기초이자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잔잔할 줄 모르는가. 아직 노비해방은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신분상승으로 가는 최고의 길인 일류대 합격률은 강남 학군에서 대부분 점령한지 오래다. 아버지가 기업을 갖고 있으면 약간의 불법을 감행하더라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용인되곤 하는 당당한 상속사회이다. 아버지가 대형교회 목사이면 자식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 뻔뻔한 대물림 신분사회이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노비의 후예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벌사회의 들러리, 부당한 권력과 떳떳하지 못한 재산의 사적인 세습을 도와주는 입닫은 노비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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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여덟번째 일로서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