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자유와 평등을 꿈꾼 ‘그’를 되살리다! 4-③ [色 다른 책읽기]
이경아 (돌베개 편집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박희병 선생의 ‘이언진 3부작’(<골목길 나의 집>, <저항과 아만>, <나는 골목길 부처다>)을 만들며 든 생각이 바로 이 시다. 나는 박희병 선생의 제자이자 박희병 선생의 책을 만든 편집자다. 이언진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박희병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박희병 선생은 국문학계에서 유명한 필자다. 그의 글을 읽으면 천여 매의 원고가 마치 단숨에 쓰인 것처럼 느껴진다. 숨도 쉬지 않고 써내려간 듯 막힘없는 글에 감탄하고, 조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철저함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그는 책 한 권을 쓰면서 동시에 다음 책에 대한 구상에 들어가는 듯하다.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글을 뭐로 할까 떠오르는 듯. 땅에서 고구마를 캐내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줄기차게 온 힘을 다하여 글을 쓰고 연구한다. 때론 가차 없는 비판과 반론으로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건 그가 출중한 국문학자라는 것이다.
이런 그가 이언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언진의 작품을 온전히 바로잡고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언진의 시집 <호동거실>은 두 가지 간본이 전하는데, 그 하나는 <송목관집>이고 또 하나는 <송목관신여고>다. 그리고 별도의 필사본이 두 가지 전하는데, 연세대본인 <송목각시고>, 고려대본인 <송목각유고>다.
모두 ?호동거실?을 수록한 이언진의 유고집이지만 각 책별로 오류가 적지 않고 배열의 착란이 없지 않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탈락되거나 오기된 시도 많았다. 박희병 선생은 이네 가지 판본을 비교하여 전체 170수의 『호동거실』 판본을 정비하고, 정확한 번역을 해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골목길 나의 집>이다. 이 책은 돌베개 출판사의 ‘우리 고전 100선’시리즈의 12권에 해당하는데, 이 시리즈가 일반 대중을 위한 교양서인지라 각 시에 대한 설명이 지극히 소략할 수밖에 없었다.
박희병 선생은 ?호동거실?의 각 시들이 무척 난해하고 또 문제적이어서 자세한 분석을 요하는데다 처음 번역된 이 작품을 이렇게만 하는 것이 작품에 대한 그리고 이언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세한 분석서를 냈는데 그것이 바로 『저항과 아만』이다. 부제가 ‘?호동거실? 평설’이다. 그리고 이 두 책을 통해 소개된 이언진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삶과 사상을 정리한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을 출간함으로써, 이언진에 대한 연구와 집필을 3부작으로 마무리하였다. 요즘 말로 하면 박희병 선생은 ‘이언진종결자’인 셈이다.
이언진, 역사의 그늘에서 걸어나오다
박희병 선생이 이언진(李彦?, 1740∼1766)에 관한 책들을 펴내기 전까지 이언진은 아주낯선 인물이었다. 심지어 이언진의 시집 <호동거실>은 ‘동호거실’이라고 불려왔다. 하지만 이런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학계에서도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언진은 300년 전 조선의 대문호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쓴 글로 알려졌다. 연암은 이언진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의 전기를 썼는데, ?연암집?에 수록된 ?우상전?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연암의 전(傳)은 이언진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 이유를 박희병 선생은 연암과 이언진의 ‘진리인식의 틀’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연암은 조선왕조의 틀 안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이언진은 조선왕조의 틀을 부정하고 그 바깥으로 나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골목길 부처다>는 18세기 조선의 이단아 이언진에 대한 평전이다. 신분차별과 사상통제가 엄격하게 지켜지던 과거의 시공간을 산 이언진을 21세기의 시각으로 다시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언진을 평가한 당대 문인들의 글을 살펴보고, 또 당대동아시아 삼국의 이단아들과 이언진을 비교함으로써 중세 동양의 사상사 속에서의 이언진의위치를 가늠해보고 있다.
한낱 중인 역관 신분에 20대에 요절했고 또 작품도 변변히 남긴 게 많지 않은 이언진을 이처럼 깊게 파고드는 까닭은 중세 동양의 사상사 속에서도 독특한 빛을 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세 조선도 다양한 인물 유형이 숨 쉬는 사회였을텐데, 그간 우리 학계가 그려낸 조선 사회는 선비, 유학자, 도학자, 승려, 그리고 상놈이라는 뭉뚱그려진 집단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양반을 위주로 하고 그리고 종교인 정도의 유형만이 사는 사회였다. 상놈―여기서 상놈은 중인 계층까지 포함한다―은 그저 숨만 쉬고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무의미한 집단으로 분류되던 중인 신분에 이처럼 독특한 인물이 있었다. 연암의 전기 ?우상전?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묻혀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을 인물이었기에, 우선 이언진의 전기를 쓴 연암 박지원에게 감사를 해야 될 것이다. 조선의 정신사에서 ‘이언진’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주체이다. 이 주체는 이전의 역사 속에서는 전혀 드러낸 적이 없었으며, 장차 도래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때문에 아주 낯설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조선의 골목길에 살던 부처, 새로운 주체의 탄생
이언진의 신분은 중인(中人)이다. 조선의 지배질서 속에서 중인은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 자리에 있었다. 중인은 전문지식을 갖추었지만 지배관계 내에서 여전히 예속적, 부용적 지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언진은 중인이면서 자신의 타자성을 투철하게 자각하고, 스스로 를 ‘주체’로 전화(轉化)해냈다. 이언진은 자신의 중인이라는 신분을 태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대부라는 주체와 대립하면서 사사건건 맞섰다. 그러므로 사대부적주체를 ‘지배적 주체’라고 한다면 이언진과 같은 주체는 ‘저항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언진이 스스로 주체로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외적인 영향과 내적 요인 두 가지 경우를 다 살펴야 한다. 외적인 요인은 이탁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양명학 급진좌파로 명명되는 이탁오의 사상은 뚜렷한 자아의식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언진이 이탁오의 주아사상(主我思想: ‘나’를 주장하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스승 이용휴의 영향인 듯하다.
이언진이 스스로 주체로 설 수 있었던 내적 요인은 두 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이언진이 스스로를 사대부에 예속된 비천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태생적으로 비범하고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더러운 골목 지나 깨끗한 내 방에 들어와
맑은 향 피우고 수불(繡佛)을 걸면
피부병 있는 자건 몹쓸병 있는 자건
모두 다 보살 생각을 하리. (<호동거실> 제17수)
이언진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거처하는 호동까지도 주체적인 영역으로 확대한다. 이는 이언진이 스스로 ‘호동’(골목길)이라고 호를 한데서도 드러난다. 이언진은 주체를 공간화함으로써 ‘나’의 자각과 각성을 호동의 자각과 각성으로 연결지었다. 또 이언진은 드러내놓고 사대부를 조롱하기도 했다.
한 그릇 밥 먹고 배부르면 쉬고
큰길가에서 웅크리고 자는
저 거지아이 승지(承旨) 보고 불쌍타 하네
눈 내린 새벽 매일 출근한다고. (<호동거실> 제13수)
이언진의 넘쳐흐르는 주체성은 결국 스스로를 부처라고 명명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부처는 나 앞의 나
미래의 부처는 나 뒤의 나.
부처 하나 바로 지금 여기 있으니
호동 이씨가 바로 그. (<호동거실> 제158수)
이언진이 스스로 부처라고 한 것은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확신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확신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에서 비롯된다. ‘나’는 깨달음의 주체요, 세계의 중심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호동의 부처’라고 선언한 이 시만큼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탁오, 안도오 쇼오에키 그리고 이언진
혹자는 이언진이라는 인물이 천재문인이긴 하지만 26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갔고, 남긴저서도 고작 시집 ?호동거실?과 그밖에 짧은 글들 몇 편(<우상잉복> 포함)뿐이라, 사상을 논하거나 동아시아의 대사상가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언진이 살았던 시공간 속에서 이언진의 글을 본다면 그의 비범함은 이미 조선을 뛰어넘었다. 또한 남긴 저작이 시집 한 권이라서 그의 사상을 보여주는 산문이 없기는 하지만, 짧은 시만으로도 사상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사상은, 대단히 함축적이고 정제된, 그리고 비유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특징을 지닌 시(詩)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진술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법구경>이나 <성경>의 ?시편?, <바가바드기타>, <숫타니파타>의 운문 부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언진의 시집만으로도 그의 사상을 충분히 논할 수 있다. 박희병 선생은 이런 이언진을 온전히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18세기라는 같은 시간을 산 동아시아의 이단자들을 내세웠다. 중국의 이단아 이탁오(李卓吾, 1527-1602)와 일본의 이단아 안도오 쇼오에키(安藤昌益, 1703-1762)가 바로 그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이 좀 더 많이 집필되기를 희망했다. 작품 분석과 이언진 개인에 대한 분석에 비해 이 부분은 소략한 감이 없지 않았다. 나의 의견에 대해 박희병 선생은 일부 긍정하면서도 당신은 조선이라는 시공간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친 이언진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되살려내는 데 초점을 둔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언진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독특한 유형의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데는 이 정도의 비교면 충분하다고 했다. 또한 다른 이단아와의 비교를 통한 본격적인 사상 비교는 사상뿐 아니라 당시 사회에 대한 분석이 부연되어야 하므로 좀 더 다른 지면이 필요하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도 멀지 않은 장래엔 한번 집필해봄직하다 싶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독자로서의 나의 욕심이다.
이언진은 조선 후기에 한중일 세 나라를 두루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만큼 조선은 폐쇄적인 사회였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을 드나드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그런 나라였다. 역관이라는 신분은 이언진의 명을 짧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또한 세 나라를 두루 여행할 수 있었던 큰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스승 이용휴를 통해 중국의 이단아 이탁오의 좌파 양명학을 받아들였고, 일본 문인과의 대화를 통해 주자학 일변도가 아닌 왕세정(王世貞, 1526-1590)과 이반룡(李攀龍, 1514-1570)의 문학적 장점들을 두루 평가하고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조선의 사상계는 송시열 이후로 주자학 유일주의였다).
그렇다면 그와 견줄만한 이단적인 인물을 동아시아 삼국에서 찾아 비교해 본다면 좀 더 정확하게 이언진의 존재를 평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중국의 이단아 이탁오, 일본의 이단아 안도오 쇼오세키 두 사람의 예를 들어 이언진의 사상과 비교하고 있다. 이탁오는 명말(明末)의 저명한 사상가로 인간의 평등을 부르짖었고, 안도오 쇼오에키는 18세기 전반(前半)에 활동했는데, 철저하게 계급을 부정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이 세 명의 사상가는 저마다 치열한 사유행위를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 체제에 도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희병 선생이 이언진에 대해 이렇게 3부작의 집필을 통해 공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유사 이래의 독특한 인물 유형 발굴이라는 큰 의의를 둘 수 있겠고, 또 하나는 이를 통해 일반인과 학계 연구자들의 조선 사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확대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이다. 조선 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확대만이 다양한 연구와 저작을 내놓을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박희병 선생은 이제 이언진을 내려놓고 능호관 이인상에 전념하고 있다. 또 한 번 종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독자로서 그리고 선생님의 편집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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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이번부터는 <色 다른 책 읽기>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루는 책은, 박희병 지음,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돌베개 펴냄)으로, 최은정(숭실대 중문과 강사), 이현숙(자유기고가), 이경아(돌베개 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