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방법서설>[철학자의 서재]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철학자의 서재]

 

박정하 (성균관대학교 교수)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1. 데카르트, 그는 누구인가?

데카르트는 17세기 초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서, ‘근대 철학의 아버지’ 혹은 ‘근대성의 아버지’라 불린다. 데카르트가 산 시대는 결코 평온한 시대가 아니었다. 그 시대는 중세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근대라는 새 시대가 탄생하기 위한 해산의 고통을 겪던 격변기요 과도기였다. 사회적으로는 종교 개혁 때문에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종교 세력이 복잡한 갈등 속에서 30년 전쟁(1618~48)을 치렀고, 오랜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상태에서 고통 받던 시대였다. 사회가 불안했기 때문에 신비주의와 미신이 널리 퍼져 정신적으로도 혼미한 상태였다.

르네 데카르트(Rene-Descartes, 1596~1650)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데카르트는 젊은 시절 전쟁터에 뛰어들기도 했고 세상을 배우기 위해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랑 생활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세상 온갖 일의 허무함, 무의미함을 느끼고, 혼자 숨어살면서 오직 진리 탐구를 위해 일생을 바치려고 노력했다. 그런 진지한 삶의 역정을 겪은 끝에 데카르트는 합리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떠올라, 길 잃은 나그네처럼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이 중세의 낡은 사고방식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주체의 확립’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근대성의 기초를 닦고 문을 열어젖히는 역할을 하였다.

<방법서설>은 데카르트 사상의 주제들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요약하고 있어서 그의 사상 전체를 아주 잘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방법서설>의 제4부에서만 간략히 다룬 철학의 주제들에 대해 체계적이고 완전한 설명을 제시하는 책은 1640년에 나온 <성찰>이다. <성찰>에 대해서는 당시 중세 철학을 고수하던 철학자는 물론이고 중세 철학에 반대하여 새로운 철학을 추구하던 사람들도 가세하여 열띤 찬반 논의를 펼쳤다. 이론적인 반박만이 아니라 무신론과 신성 모독죄로 공공연히 고발당하는 사태까지 겪으면서 데카르트는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2. 근대성(modernity)의 아버지

 

▲<방법서설>(르네 데카르트 지음, 최명관 옮김, 서광사 펴냄). ⓒ서광사

 

이 책들에서 데카르트는 근대성(modernity)의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근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각 개인을 주체로 확립했다는 것이다. 흔히 중세의 신(神)중심주의에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로 넘어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때 ‘인간’은 개인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서양 고대도, 특히 그리스의 사상도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인간은 사회에서 독립된. 사회 이전에 더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서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부여받는 공동체적 인간이다.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안에서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만 개인은 개인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충족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폴리스에서는 좋은 인간이기 이전에 좋은 시민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흔히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로 번역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명제는 정확한 의미를 따지자면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근대의 인간은 이러한 공동체적 인간, 즉 공동체 속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받는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으로서의 원자적인 인간이 먼저 있고, 사회는 이 인간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성립된다. 사회가 개인에 의해 의미 부여되는 것이다. ‘사회 계약론’이라 부르는 근대의 주류 사회철학 이론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근대 계몽주의의 완성자라 평가받는 칸트는 근대 주체의 모습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계몽이란 우리가 스스로 책임져야할 미성년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미성년의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런 미성년 상태의 원인이 [신체적이거나 환경적인 요인 등으로 인하여] 이성의 결핍 자체에 있을 경우에는 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도 스스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고자 하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몽의 표어로 우리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즉 ‘과감하고 지혜롭고자 하라!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라고.”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어떤 다른 권위나 힘의 강제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자율적인 근대 주체의 모습이다. 결국 주체를 주체이게끔 만드는 실질적인 내용은 바로 이성인 셈이다.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을 때 주체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주체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개인을 주체로 확립했다는 것은 각 개인이 바로 이렇게 자율적으로 이성을 사용할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확립했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렇게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스스로 사용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바로 데카르트는 근대성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초판본(1637) ⓒgreenbee.co.kr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양식(良識, good sense)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상으로 양식을 가지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가려내는 능력, 바로 양식 혹은 이성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나면서부터 평등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체의 확립을 선언하는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을 가지고 이에 기반해서 사고할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은 오늘날에는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상식(common sense)’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상식이란 개념은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양식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지금이야 너무 일상화되었지만 근대 전체를 떠받드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사실 중세까지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세 신분제를 정당화하는 중요한 토대 중에 하나가 인간은 날 때부터 능력을 다르게 타고나기 때문에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봉건 귀족 계급은 이성을 갖추고 양식을 타고난 계급이기에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노 계급은 이성을 갖추지 못한, 따라서 양식을 갖추지 못한 계급이기에 배워도 소용없고, 봉건 귀족의 지도와 지배를 받아야 하는 계급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양식 여부에 따라서 신분을 나누던 시대의 끝자락에서 데카르트는 혁명적 선언을 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을 갖추고 있다”라고. 이는 중세 신분제에 대한 마지막 진혼곡을 울리는 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선언 이후 근대 사회는 이른바 상식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사실 근대 초까지도 많은 정치철학자는 민주주의를 반대하였다. 이른바 ‘중우(衆愚) 정치’를 초래한다는 이유였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는데 그러면 어리석은 대중이 머릿수로 밀어붙일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이성을 갖추고 이를 스스로 사용하는 자율적인 주체라는 데카르트식 생각이 확보되면서, 그렇다면 다수가 찬성하는 쪽이 올바른 판단에 가까울 것이라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저 선언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3. 방법적 회의

이러한 데카르트 사상의 핵심이 잘 응축되어 있는 책이 바로 <방법서설>이다. <방법서설>은 아주 짧은 책이다. 정식 제목은 “이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모든 학문에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다. 6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언뜻 엉성하고 치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사상 전체를 쉽고 간결하게 압축하고 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데카르트가 과학과 철학의 전문가들보다는 일반 대중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쉽게 쓴 책이다. 당시에 학자들은 책을 쓸 때 어려운 라틴어로 썼는데 그는 이 책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프랑스어로 썼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학자들이 한문으로 책을 쓰던 조선 중기쯤에 한글로 쓴 격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데카르트 자신의 말에 따르면 학문을 잘 모르는 부인네들조차 무언가 깨달을 수 있도록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데카르트가 이 책을 통해서 제시하려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정말 대담하고 야심만만하게 철학의 기초를 새롭게 놓으려 했다. 그는 중세와 근세의 건널목에서 길 잃은 나그네처럼 방황하고 있는 철학에서 새로운 방법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를 “방법의 철학자”라고 자주 부른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규칙을 4가지로 압축하여 제시한다.

“첫째는 내가 명증적으로 참되다고 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조심하여 피할 것,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을 정도로 아주 명석하게 또 아주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내 판단 속에 넣지 않을 것.

둘째는 내가 검토할 난제의 하나하나를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가장 잘 해결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소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는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가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위로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들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자연대로는 피차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것들 간에도 순서가 있는 듯이 단정하고 나아갈 것.

그리고 끝으로,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매거(枚擧)와 전체에 걸친 통관(通觀)을 어디서나 행할 것.” (<방법서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진리 탐구를 위한 방법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진리인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 것. 속단과 편견을 피할 것.
둘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쪼개서 탐구할 것. (분석의 규칙)
셋째, 가장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여 점점 복잡한 것에 다가갈 것. (종합의 규칙)
넷째, 문제의 요소들을 다 열거하고 그 중 단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 것.

그리고 유명한 이 4가지 규칙 외에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으로 신중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을 제시하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 규칙들을 보면서 실망 반, 비웃음 반으로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무슨 엄청나고 대단한 규칙인 줄 알았더니 그게 뭐냐면서 속았다고 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규칙들은 오늘날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고 초등학생들에게도 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워낙 상식적인 것이니까 이 규칙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당연히 알고 있었고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독단적이고 공허한 중세 스콜라 철학이 지배하여 실제로 이 규칙들이 무시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이런 규칙들을 철학 연구에도 적용하여 철학을 새롭게 세우려 했다. 이때 그가 제시한 규칙 가운데 특히 첫째 규칙이 잘 통용되고 있는 전형이 수학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수학의 정확한 방법을 철학에 도입하여 철학을 중세의 신비적이고 사변적인 암흑에서 끌어내고 철학을 수학, 특히 기하학과 같이 확실하고 명증하고 투명한 학문으로 확립하려 했다.

“나는 수학을 특히 좋아하였는데 이것은 그 추리의 확실함과 명증성(明證性)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참된 용도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학이 기계적 기술에만 응용되고 있음을 생각하고서 그 기초가 아주 확고하고 견실한 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위에다가 더 높은 건물을 세우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도덕을 다룬 고대 이교도들의 저술은 화려하고 웅장하나 모래와 진흙탕 위에 세운 궁전과 같다고 본다. 그들은 여러 가지 덕을 대단히 찬양하고, 세상의 어느 무엇보다도 더 존중할 만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충분히 가르쳐주지는 못하고 있으며, 또 그들이 그토록 훌륭한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이 가끔 냉혹이나, 교만이나, 절망이나, 친족 살해에 지나지 않는다.” (<방법서설>)

그렇다면 수학을 모델로 해서 얻은 새로운 방법으로 철학의 물음들을 다룬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데카르트도 신의 존재라든가 인간 정신의 본질과 같은 중세 철학이 제기한 물음을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진정 학문으로 다루려면 신비적이고 추상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고 확실한 토대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학이 엄밀한 학문일 수 있는 이유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또는 “평행하는 두 직선은 만날 수 없다”와 같은 명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성을 가진 공리들이다. 수학은 이러한 공리들에서 출발하여 구성된 체계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도형의 어떤 성질을 나타내는 ‘정리’가 참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증명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바로 이 증명에서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공리’다. 그러나 ‘공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리는 스스로 명백히 참인 것이고 따라서 최초의 출발점, 제1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철학도 확실한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수학의 공리와 같이 직접으로 확실하고 명백해서 철학의 전체 구조를 떠받쳐 줄 수 있는 토대가 되는 한 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절대 확실한 시작에 도달하려면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진리라고 여겨 온 것들을 일단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대담하게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뒤엎어 버리고 첫 번째 기초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철저한 의심 속에 자신을 내던진다. 데카르트의 이런 작업을 ‘방법적 회의’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근세 철학의 결정적인 일대 변혁을 이룩한 과정이었다.

4. 제1원리를 찾아서

데카르트가 활동했던 시기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회의주의의 시대였다. 당시는 아직도 과학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이는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믿을 만한 방법이 없던 시대였으며,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던 시대였다. 이렇게 회의주의가 팽배하게 된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종교였다. 단 하나의 종교적 진리만을 인정하던 중세의 권위에 도전하여 다양한 문제제기가 등장함으로써 종교적 진리가 어떻게 획득될 수 있는가에 대해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졌다.

데카르트도 바로 이런 회의주의라는 시대의 분위기 중심에 있었음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알 수 있다.

“철학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겠다. 즉 철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우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논쟁의 여지가 없는,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직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해 나아가리라는 자부심은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에 관하여는 참된 의견이 하나 이상 있을 수 없을 터인데 실제로는 갖가지 많은 의견이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학식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나는 참인 듯 보이는 모든 것을 거짓에 가까운 것으로 여겼다.” (<방법서설>)

이런 회의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를 확고한 기초 위에 놓을 수 없는가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부각되었으며, 지식을 획득하고 축적할 방법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식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을 확립하려는 관심이 17, 18세기 철학의 주된 관심으로 부각된 것이다. 데카르트는 바로 수학적 방법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하여 보편학(mathesis universalis)을 확립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인물이다.

방법적 회의는 바로 이런 보편학을 확립할 수 있는 토대를 찾는 작업이다. 어떤 회의주의보다도 저 지독한 회의를 통해 어떤 회의주의도 승복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토대를 확보하자는 전략인 것이다. 적의 무기로 적을 무찌르는 역설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문제마다 의심스럽고 잘못하기 쉬운 점들을 특히 반성하면서, 전부터 내 정신 속에 스며들어 있던 오류를 모두 차츰 뿌리 뽑았다. 그렇다고 내가 의심하기 위해 의심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회의론자를 흉내 낸 것은 아니었다. 이와 반대로 내 모든 계획은 내 스스로 확신하고, 무른 흙이나 모래를 젖혀 두고 바위나 찰흙을 발견하자는 것이었다.” (<방법서설>)

그런 확실한 토대를 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제1원리’라고 부른다. 바로 이 제1원리를 찾기 위한 실험적인 작업이 방법적 회의인 것이다. 보편학의 토대가 될 제1원리는 어떤 회의주의도 무너뜨리기 힘들 정도로 ‘확실(certain)’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심정으로 이 확실함을 굉장히 강하게 규정한다. 확실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데카르트에 따르면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오직 진리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법서설>)

현재 의심하지 않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의심 불가능한 것을 찾으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이다”라는 주장은 확실한 것인가? 아마 여러분은 대체로 이런 주장을 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도 데카르트에 따르면 확실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의심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한테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간에 어떤 이유 때문에 수도를 다른 곳으로 바꾸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그동안 우리가 참된 지식으로 믿고 있던 것들의 확실성을 하나씩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을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어떤 사람이 사과를 한 바구니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몇 개가 썩어 버려서 나머지 성한 사과도 썩게 될지 모른다고 하자. 그래서 썩은 사과들을 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우선 모든 사과를 바구니에서 꺼내 놓고 나서 하나씩 자세히 검사하여 썩지 않은 것만 골라 다시 바구니에 담은 다음 나머지는 버리지 않겠는가?” (<성찰>)

데카르트는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것이라고 여겨온 것의 토대를 의심해 보자마자 모든 것이 흔들거리기 시작함을 느꼈다.

▲ <방법서설/성찰/철학의 원리/정념론>(데카르트 지음, 소두영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동서문화사

우선 감각적인 지식부터 의심해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많은 사물이 정말 내가 보는 대로 내 밖에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 눈은 우리를 속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속의 막대기가 휘어져 보이는 빛의 굴절 현상이나 똑같은 색이 바탕색에 따라 밝기가 달라 보이는 착시 현상 등에서 종종 경험하듯이 감각은 우리를 자주 속이기 때문에 100퍼센트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의심 속에서도 최소한 내 몸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을까? 그러나 조금만 주의해 보면 그 확실함도 무너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을 꾸면서 내 몸이 벼랑에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땀을 흘리기도 하고 물에 빠진 것으로 착각하여 두려워하기도 한다. 따라서 내 몸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이 절대로 꿈일 리 없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흔들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또 하나의 진리가 있다. 예컨대 “2+3=5″라는 수학의 진리나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는 과학의 진리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모든 인식의 기초가 되는 이런 진리마저도 데카르트가 근원적으로 철저히 회의하자 무너져 버리고 만다. 실제로는 2+3=5가 아닌데 만일 신이 인간을 2+3=5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면, 즉 신이 인간을 근본적인 기만과 본질적인 왜곡과 비진리 속에서 살도록 창조해놓았다면 어떻게 되는가? 신이 과학과 철학이 끊임없이 주장해 온 ‘진리의 원천’이 아니라 ‘기만하는 신’ 또는 더 나아가 ‘악의에 가득 찬 악마’라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수학의 원리까지도 의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추론하면서 까지도 오류를 범하였으며, 지금은 오류라고 밝혀진 것을 이전에는 확실하고 자명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창조한 신은 모든 것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물에 대해서까지 도 우리가 항상 속임을 당하도록 신이 우리를 창조하였는지 아닌지를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의 원리>)

이런 얘기는 억지 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데카르트도 신성모독의 위험 때문에 주춤거린다. 그러나 중세 전체를 통해 절대시된 신에 대해 감히 가설로라도 대담하게 의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근대로 한 발짝 더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최고의 권위인 신조차도 비판적 이성의 회의 대상으로 놓고자 하는 진정한 근대적 자율적 주체의 모습을 몸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나는 진리의 원천으로서 최고선인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악령이 존재하며, 그 악령이 나를 속이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가정해보겠다. 또한 나는 하늘, 대기, 달, 색채, 외형, 소리 그리고 모든 외계의 대상들이 단지 허황된 꿈에 불과하며 악령이 나의 고지식함을 이용해서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고 가정해 보겠다. 또 나 자신은 손도 귀도 살이나 피, 감각 기관도 없는데 단지 자기가 이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는 잘못된 신념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다. 나는 이런 생각을 굳게 지니면서 다음과 같은 결심에 따를 참이다. 즉 이제껏 내가 생각해 온 것처럼 어떤 진리를 알아낼 힘이 내게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잘못된 것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며, 또 나를 속이는 자가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할지라도 그가 나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도록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성찰>)

 

5. 주체의 확립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앎의 모든 확실성이 무너져 버린 바로 그 자리에서 역설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확실성이 생겨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을 전부 의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고, 내가 의심하는 한 의심하고 있는 나는 존재해야 한다. 의심하는 나에 대한 확실성은 신이 사기꾼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 신이 나를 속일지라도 속는 나는 존재한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유명한 명제,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사기 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 이르게 된다.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쓰는 동안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야말로 반드시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진리,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견고하고 확실하여 아무리 과장이 심한 회의론자라도 이 진리를 뒤집어엎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내가 찾아 헤매던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이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방법서설>)

“나, 바로 내 자신은 어떤 것도 아니란 말인가? 나는 이미 내가 감각과 육체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였다. 이제 나는 이로부터 또 무엇을 생각해낼 수 있는지 주저하고 있다. 나는 육체와 감각들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것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가? 또한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즉 하늘도 대지도 인간의 정신과 육체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내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거꾸로 만일 내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전지전능한 기만자가 있어서 항상 의도적으로 나를 속인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가 나를 속인다 할지라도 나는 존재한다.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나를 속여보라고 하더라도 내가 내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끔 속일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심사숙고해 본 후에 나는 결국 ‘나는 존재한다’, ‘나는 현존한다’는 명제는 내가 그것을 말하건 아니면 마음속에 품건 간에 필연적으로 참이라고 결론짓게 된다.” (<성찰>)

데카르트가 철학의 기초로 세운 이 명제에 대해 그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말할 사람도 있음직하다. 그러나 이 명제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 명제는 근원적인 확실성을 신에게서 찾은 중세 철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사유, 인간의 자의식에서 철학의 토대가 되는 확실성을 찾음으로써 서양 사상의 새 장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명제가 갖는 사유하는 주체가 갖는 확실성이 모든 진리의 기준이 되고 참된 사고 밑에 놓여야 할 기초가 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 안에 사고하기 위해서 나는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외에는 참이라고 보증된 어떤 사실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우리가 매우 명석하고 판명하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참이라는 점을 일반적 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성찰>)

이처럼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신이 아닌 인간이 진정한 주체로서 모든 확실성의 근원임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바로 ‘내’가 출발점이고 기초임을 보여 주었고, “사고하는 나”를 제1원리로 하여 형이상학을 구성하고, 이 형이상학은 자연학, 기술학, 의학, 도덕학 등 실천학을 근거 짓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로써 인간이 자신의 두 다리로 서서 오직 자신으로부터만 솟아나는 확실성에 따라 진정한 주체가 되는 근대성의 특징을 데카르트는 최초로 정초하게 된다. 모든 것은 바로 또한 자연도 이제 중세 세계관에서처럼 신성한 피조물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며 토대인 인간이 적극으로 파악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된다. 결국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신 중심의 중세 세계관에 치명타를 먹이면서 근대의 인간에 대한 ‘주체성의 철학’이 확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해서 근대 주체는 지금까지 발전의 과정을 밟아왔다. 그 자세한 내막을 여기서 다 추적하기는 힘들겠지만, 중요한 발전 단계들을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다. 데카르트가 최초로 개인을 주체로 확립했지만 너무 개인 개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다보니 ‘나’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고 유아론(唯我論)적 성격에 빠져 버렸음은 잘 알려진 문제이다.

이에 대해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 이성의 활동인 수학과 과학이 가진 보편성을 토대로 하여 인간 이성이 보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여 주체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구조를 밝혀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칸트의 주체는 보편성을 강조하다보니 탈역사적이고 탈시간적인 성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헤겔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주체에 역사적, 사회적 성격을 부여하여,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해명하려고 하였다. 마르크스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물론적 접근을 통해 주체의 사회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노동하는 주체, 계급으로서의 주체 개념을 확보하였다. 하버마스는 다시금 한 차원 더 넓혀 주체가 다른 주체와 맺는 관계가 중요한 측면임을 해명하면서 의사소통적 주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근대 주체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발전되어 가는 첫걸음을 데카르트가 내디디고 있고, 그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삼성제국이다[보고듣고생각하기]

대한민국은 삼성제국이다: 김용철이 쓴 『삼성을 생각한다』

 

나태영(한철연 회원)

 

 

대학생들은 왜? 삼성에서 일하고 싶어 할까?

?‘대학생 선호 기업 1위에’…‘성별을 구분하지 않으면 전체 20.2%의 지지를 받은 삼성전자가 2004년부터 10년째 내리 1위 자리에 올랐다.’([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2013. 8. 12.)

현실이다. 많은 대학생들이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사실은 현실이다. 그럼 왜 많은 대학생들이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할까? 우리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일 거다. 세상 사람들이 삼성에서 일한다고 하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일 거다. 결혼하기도 수월해지기 때문일 거다. 지방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경우와 대조해 보면 왜 많은 대학생들이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지방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하면 2년 뒤가 불안하다. 2년 뒤에 계속 일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월급도 턱없이 적다. 결혼하기도 만만치 않다. 현실이다. 내 자식이 삼성에 취직하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 사실이다. 내 자식이 삼성에 들어갈 실력 되면서도 삼성 들어가지 않으면 내 자식은 자유인이다. 우리는 삼성의 민낯을 보아야 한다. 화장을 지운 삼성의 민낯을 보아야 한다. 김용철이 쓴 『삼성을 생각한다』 이 책은 화장기 없는 삼성의 민낯을 보여준다. 화장기 없는 이건희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건희는 삼성이다. 삼성은 이건희이다.

?‘이회장은 ‘고독한 황태자’로 키워져 왔다. 그는 사람보다는 영화나 대중매체와 더 어울렸다. 그가 강조하는 ‘입체적 사고’는 ‘영상매체적 사고’를 의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 하나로도 큰 공부가 된다. 영화가 한 사람의 일생을 2시간으로 축약시킨다고 보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게 입체적 사고다.” 그런데 문제는 ‘입체적 사고’는 커뮤니케이션에 장애를 일으키기 쉽다는 점이다. 글과 달리 영화는 각자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75쪽) ‘삼성인들은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살아온 반면 이회장은 ’가상 현실‘에서 지내왔다. 이러한 진단에 아직 동의할 수 없다면, 이회장이 경영진에게 수시로 강조한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자. “양은 0%로, 질은 100%로 해라. 이를 위해서라면 시장점유율이 줄어도 좋고 회사가 1년 동안 문을 닫아도 좋다.” “기업이 돈 잘 버는 기계여서도 안 된다. 도덕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발언은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 이유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그간 한국 경제는 ‘질’이 아닌 ‘양’으로 커왔다. 그게 어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겠는가. 도덕 경영?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놀고 있네!’라는 대꾸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강준만이 쓴 『인물과 사상 1』, 85, 86쪽)

강준만이 한 말 중에서 ‘가상현실’ 네 글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건희는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모른다. 자기가 저지른 죄가 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이건희가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2009년 12월 29일 이건희가 죄를 짓고도 대통령 특별사면 받고 풀려났다. 그 뒤 이건희가 이런 말을 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이건희는 가상현실 속에서 사는 게 맞다. 이건희가 가상현실 속에서 살기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가? 이건희가 가상현실 속에서 살게 된 상황은 어떠한가? 이건희가 떡값을 뿌렸기 때문이다. 삼성제국이 광고시장의 제왕이기 때문이다. 장관, 대법원장, 검찰총장, 국정원장, 국세청장 될 인간들한테 미리 장학금을 줬기 때문이다. 삼성장학금을 줬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저들한테 큰돈을 퍼부어 줬다. 언론기관 월급쟁이들한테는 떡고물 뿌렸다. 그래서 언론기관 월급쟁이들은 이건희와 삼성제국한테 충성을 바친다. 진정 충성을 바친다. 삼성제국 이건희 황제를 위해서라면 마누라 빼고 다 바꾼다. 삼성제국을 무서워한다. 김용철이 삼성제국의 비리를 언론을 통해서 알리려고 해도 언론에서는 꺼릴 뿐이다. 삼성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언론은 삼성제국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KBS, MBC 등 방송사에 같은 내용을 제보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다들 누가 먼저 나서주기만을 바랐다. 상대가 삼성이 아니었다면 달랐을 게다.’ ‘그런데 삼성에 대해서는 다들 무서우리만치 조심스러워했다. 서로 공을 떠넘겼다.’(32쪽)

 

대한민국 관료는 삼성제국 종이다.

삼성제국은 1프로 정점에 서 있다. 1프로는 수가 적다. 99프로는 수가 많다. 제 정신 박힌 관료라면 99프로를 위한 정책을 펴야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7년 11월 20일, 경제개혁연대는 삼성화재가 이재용 재산 증식 과정에서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금산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5%를 초과해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한 금산법 제24조에 걸렸다. 이는 8일 전인 사제단 3차 기자회견 당시 공개된 “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 문건을 기초로 분석한 결과다.’ ‘금산법 등 금산분리 관련 법령은 삼성의 약한 고리였다.’‘이명박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 수장이었던 강만수에 이어 기획재정부 장관에 오른 윤증현은 대표적인 금산분리 완화론자로 꼽힌다.’(65쪽)대통령은 5년에 한 번씩 바뀐다. 하지만 삼성제국 황제 이건희는 죽을 때까지 황제이다. 관료들이 영원한 권력자 이건희에게 잘 보이려고 애 쓰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99프로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진보언론은 제 역할을 해내는가?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기자들은 삼성이, 삼성경제연구소가 기획하고 노무현과 이명박이 밀어붙인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를 지금 외치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은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특집기사를 쓴 적이 있다. 폐기까지 외치지 못했다. 재협상 여론만 조성했을 뿐이다. [프레시안]은 2000년대 중반에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반대 외친 것 자랑만 한다. [오마이뉴스]도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만 관심 갖고 지금은 감감 무소식이다. 김대중은 남북통일 정책을 1970년대 초부터 약 40년간 다듬고 다듬고 다듬었다. 남북통일 정책을 물고 늘어졌다. 지금 진보언론은 그러지 못한다. 진보언론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하지 않고는 경제민주화, 복지정책은 가상현실 속 이야기일 뿐이다. 언론은 여론을 기사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여론을 만드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할 몫이다.

 

진보언론 기자들은 김유진이 하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정론직필, 언론인의 길을 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꿈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게는 어떤가. 조심스레 지켜보다가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문제가 되고서야 달려드는 언론, 누군가의 죽음으로 누구나 알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나서야 들끓는 언론. 진실을 전하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움직이고 희생하고 큰 문제가 되어야 움직이는 언론. 이것이 오늘의 전근대적이고도 세계적인 기업 삼성을 만든 일등공신은 아니었을까. 한국사회에서 삼성을 건드린다는 것은 ‘삼성에겐 어쩔 수 없다’며 숨죽이고 있는 수많은 권리와 정의를 되살리는 일이다. 이런 사회적인 힘을 키우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지지하고 고대한다.’ (김유진, [미디어오늘], 2013. 11. 9.)

 

이상호, 노회찬은 괜찮은 사람이다.

김용철이 삼성 비리를 밝히다가 큰 고생을 했다. 삼성 바로세우기 하려면 어려움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 비리를 물고 즐어진 노회찬과 이상호는 괜찮은 사람이다. ‘삼성 측은 중앙일보 부국장을 통해 2007년 5월 25일자 [한겨레] 1면 기사를 문제 삼았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누군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삼성 측이 이 기사에 격분했다고 했다.’ ‘중앙일보 부국장이 전한 삼성 측의 항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가볍게 듣지 말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서정이 반(反)기업적인 변호사가 있는 로펌이라고 알리겠다. 그래서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25쪽) ‘대표 변호사들은’ ‘내게 삼성과 한화 등의 반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두 달간 휴직하라고 지시했다.’‘서정 동료 변호사 둘을 만났다.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네가 복귀할 분위기가 아니다. 네가 먼저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 사과하고, 그쪽에서도 근무시켜도 좋다는 연락이 와야 서정에 복귀할 명분이 있다. 삼성전자 최도석 사장도 김용철이 있는 한 서정과 거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28쪽) 물론 노회찬은 좀 거시기하다. 조선일보에게 아부했던 노회찬은 좀 거시기하다. 그래도 노회찬은 삼성제국에게 대들 줄 안다. 인정한다. 이상호는 기자이다. 송건호, 리영희 뒤를 잇는 기자이다. 조선시대 사관답다. 왕한테도 으르렁 거린 조선시대 사관답다. 호랑이 조선 왕 이방원이 가장 무서워한 사람은 조선시대 사관이었다. 노회찬, 이상호처럼 삼성제국한테 맞서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빈다.

99프로는 1프로 대표 삼성제국에 잘 맞서는가? 잘 맞서지 못한다. 이건희 꼭두각시 이명박, 박근혜에게 표를 준 99프로는 잘 맞서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 등에 그리고 다른 99프로 등에 칼을 꽂는다. 조중동, 종편, 새누리당에 놀아난 99프로 정신 차려야 한다. 제 밥그릇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가 제 밥그릇 챙기지 못하는데 그 누가 99프로 밥그릇 챙겨 주겠는가? 삼성은 치밀하다. 99프로는 느슨하다. 삼성에 대해서 공부하자. 삼성에 대한 공부가 전문가들 몫만은 아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삼성제국 민낯을 정확히 보고 삼성에 맞서자. 삼성제국 민낯을 보여주는 이 책을 꼭 읽자. 삼성이 대한민국 법대로 하는 기업이 되게 하자. 삼성이 상식을 지키는 기업이 되게 하자. 삼성이 제 정신 차리도록 우선 삼성제국 물건 쓰지 않는 실천이라도 하자.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의 기원과 의미-한철연 신년회 기념 강연회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의 기원과 의미-한철연 신년회 기념 강연회

강연 : 이정호(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

정리 : 강지은(ⓔ시대와철학 편집주간)

 

 

1월 9일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정식 신년회 행사에 앞서 우리 학회 이정호 선생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2시간여 걸쳐 진행된 이날 강연은 새로 단장한 학회의 강연장에서 개최되었으며 3시 시작부터 강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가 신년회의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이정호 선생님의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의 핵심은 ‘다의 공존과 조화의 추구’이다. 정치를 바라보는 이러한 입장은 놀랍게도 현대의 정치철학이 추구하는 이상과 일치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은 생명력 있는 모습으로 더욱 우리에게 다가온다. 강연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를 통해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자연을 비롯한 환경적 조건에 대한 그리스인의 운명의식이다. 신들조차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바다(水)는 포세이돈의 것이고 하데스에게는 그가 주재하는 사자(使者)들이 일몰지를 넘어가서 서쪽의 어두움 속에 거주하느냐 또는 지하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안개 짙은 어둠’ 즉 대기(風)나 대지(地)가 배당된다. 이 모든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그들 자신의 몫이다. 이와 같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건 신이건 모든 개체의 능력과 실존을 한계 짓는 운명에 대한 심원한 믿음을 발견한다.

 

사진 : 강지은
새단장한 한철연 강연장에서

신화와 철학에서 발견되는 고대 그리스인의 정치사상적 단초

 

이와 같은 우주 탄생과 관련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는 단순히 우주생성의 비밀 이상의 사회적 역사적 삶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대응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의식은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이르러 점차 정교하게 되면서 마침내 신화적 단계를 넘어서 우주, 자연의 근본 구조를 그 자체로서 탐구하려는 움직임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정호 선생님은 신화적 세계관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인들의 근본 의식은 철학사가들에 의해 최초의 철학자로서 재평가되고 있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철학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계승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주생성의 근원으로서 무한정자(apeiron)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따뜻함과 차가움, 메마름과 습함(온냉건습)이라는 대립적인 원시 질료적 요소들이 생겨나고 그 요소들의 대립적 성질로 인한 상호침식과 운동 및 변화에 의해 가시적 세계만물이 생성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주생성에 관한 신화적 서술을 철저히 질료적 힘에 의한 우주론적 논의로 치환하고 있을 뿐,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전통 그리스의 정신은 온전한 모습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철학에 나타난 자연철학적 세계관 역시 신화적 세계관과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 인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운명의식과 연관되면서 자연학적 탐구의 윤리학적, 사회적 연관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두 말할 나위 없이 그 운명의식이란 신화에서 운명의 신 모이라가 각 신에게 할당된 고유의 영역, 경계, 지위, 역할 및 권한의 분배를 표상하듯이, 사회공동체적인 측면에서도 분할, 영역, 할당된 몫의 불가침적 보존 내지 질서에 대한 의식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독특한 ‘운명’의식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할당된 몫이란 오늘날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인들 간의 이해관계에서 성립하는 배타적 소유 내지 권리라기보다는 환경세계 속에서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삶의 보존을 위한 역할과 능력의 분담과 그 분담된 다양한 역할의 상호존중과 수행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그것은 고대적 삶의 기초로서 농업생산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협동적 질서(taxis)와 절제(sophrosyn?)의 구현 다시 말해 공동체에서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맞추어 할당된 역할의 적극적인 실현과 그것을 통한 공동체적 자치와 자기 보존 구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폴리스적 시민이 권리이자 의무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명예와 자유의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도 고대 그리스의 자유는 근대가 지향하는 소극적 자유와 거리가 멀다. 이정호 선생님은 이런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운명의식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종교적 또는 역사적, 시간적 좌표 상에서 필연으로 묶여진 운명론적 개념이 아닌 가능성의 영역에서 능력을 다해 지켜야할 한계를 표시하고 당위를 견인하는 공간적 개념이자 윤리학적, 정치철학적 개념이라고 정리한다.

 

대규모 농업생산과 순수한 사유의 관계

 

사진 : 강지은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으로 대표되는 엘레아학파는 우리가 그동안 상식적으로 당연시되어온 운동과 여럿을 부정하고 자연세계를 그 자체로 정지된 하나로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자연세계를 운동과 변화과정의 총체로 여기던 기존의 자연관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의 기초에는 순수한 사유에 의한 논리주의가 자리잡고 있었고 기존의 자연학과 자연철학적 성과는 논리주의 앞에서 모두 부정되었다.

이미 질료에서 분리된 순수사유는 오직 공간적 성격만 갖는 것이어서 시간성과 결합된 일체의 질료적 운동성과 변화는 그 자체로 순수 사유로 해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사유로 해명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의 설명방식에 입각해 있는 한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잡거나, 화살이 날아가는 현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즉 ‘사유가 곧 존재’인 순수사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플라톤에 의해 운동이 공간적 사유로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질 때까지 이러한 논리주의의 위세는 상식적으로 경험적인 자연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지적 열등감과 무력감을 안겨주면서 그리스의 지적 풍토를 한 동안 지배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추상적 사유의 배경은 농업생산에 있다. 엘레아학파가 태동한 크로톤 지방은 그리스 본토와는 달리 대평원지역에다 지중해 교통의 요지여서 대규모 관계농업이 발달했다. 이러한 농업생산량의 확대는 관리계층 및 상업계층을 발달시켰고 그 핵심에 속한 엘리트들은 소규모 농업생산사회의 엘리트보다 훨씬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토끼에서 벗어나려는 그리스적 사유

 

기원전 5세기에 들어서자 아테네 지식인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엘레아학파에 의해 파기된 질료적 자연 사물들과 그것들이 운동변화에 대한 해명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에서 대두된 대표적인 고전기 아테네 사상이 곧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주창된 원자론이다. 원자론자들의 기본적인 관심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엘레아의 비판에 의해 운동도 변화도 없이 정지해버린 세계를 끊임없이 운동하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현실로 구제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엘레아적 논박을 피하기 위해 엘레아학파가 주장한 일자의 성격과 똑같은 분할자체가 불가능한 원자를 우선 상정하되, 동시에 엘레아학파들에 의해 파기된 다자성과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원자의 수를 무한하게 상정하고 그것들이 움직일 허공(kenon)을 상정하였다. 그리고 그 허공마저 비존재라는 논박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주저 없이 엘레아 기준으로 이른바 ‘없는 것(to m? on)’인 허공 또한 물체 못지 않게 모두 실제로 있는 것(ousia)이라고 선언하였다.

요컨대 운동과 질적 변화의 현실적 실재를 부정할 수 없었던 그들은 원자와 허공의 존재를 통해 다와 운동을 구제하였고 이미 엘레아 근본주의 앞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린 성질의 실재성은 포기하되 그 성질을 원자들의 부대현상으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운동의 원인을 해명하기보다는, 허공의 도입을 통해 운동을 설명이 필요없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던 전통적 확신을 복원하였던 것이다.

 

일자성과 다자성, 조화와 공존의 문제

 

신화적 세계관에서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의 자연적인 것(physis)과 인위적인 것(nomos) 내지 자연학적 관심과 윤리학적 관심을 정치철학적으로 추적해 볼 때 거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우선 자연학적 논의의 측면에서 보면 자연의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 물음으로서 일관되게 일자성과 다자성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사회 윤리학적 정치철학적 시각에서 보면 그리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도시국가들 간의 공존과 질서 또는 하나의 도시국가 내에서 각기 다른 계층 내지 사람들 간의 조화와 공존에 관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형이상학과 존재론은 ‘생존의 존재론’이고 본질적으로 정치철학적 윤리학적 성격을 갖는다. 일과 다의 문제, 정지와 운동의 문제는 우주론과 자연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이미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상이한 세력들 간의 갈등과 조화, 분열과 통일이라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자연학과 윤리학을 통일하는 하나의 원리로서 제시된 다의 공존과 조화의 원리 또한 두말할 나위 없이 기원전 5세기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상적 삶의 원리이자 사회적 관계형성의 근본 원리였던 것이다.

강연이 끝난 후 40여분간 진행된 질문과 응답 시간이 이어졌으며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도 마치지 못하여 아쉬움이 많았다.

 

 

극좌 [노동이야기]-11

극좌 [노동이야기]-11

이 재 원(한철연 회원)

 

 

 

1. 극우와 극좌

아시시의 프랜시스의 경구를 실천할 수 있을까?? “필요한 것은 네가 써라. 남는 것은 타인의 몫이다.”

타인 지배와 관련한 또 다른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성가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한 젊은 수도사가 그에게,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악보집을 자기 개인 소유로 하기를 청했다. 프랜시스가 말했다.

“그대는 지금은 책 한 권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 다음에는 다른 것을 소유하기를 원할 것이다. 나중에 그대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형제여, 이리 와서 이것을 나에게 집어 다오.'”

프랜시스는 소유욕이 지배욕과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꿰 뚫어본 셈이다.

지배와 소유의 원칙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 극우적 성향이라면 소유와 지배에서 벗어나는 성향은 극우의 반대인 극좌가 틀림없다. 노동 현장에는 극우적 성향이 지배적이다. 만약에 극좌적 성향의 노동 현장을 만들 수만 있다면 좀 더 인간적인 노동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2. 팀장들

겨울에 목수일 얻기란 대단히 어렵다. 팀장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일 잘 하고 고분고분 자기 말 잘 듣는 사람들만 뽑아 데리고 간다.

나는 팀장이 좋아할 목수는 못 된다. 일찌감치 인력회사 사장에게 조공일 하기를 지원했다. 월급소장보다는 어대충 귀여운 용역회사 여사장에게 부탁했다. 나보다 나이 한 참 어린 여 사장은 나를 “재원씨, 재원씨”하며 불러 일을 보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 대신 내 옷깃을 끌어, 그것을 일 보내는 신호로 삼기도 한다. 가끔 농담도 한다. 이를테면 여사장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일 관계로 전화를 했으며, 그런 이야기가 화제에 오를 경우, 나는 “노인에게 전화해서 뭣에 써요? 젊은 남자에게 전화해야지–” 라는 식의 개그다. 성적 수치심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농담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뿐만 아니라, 약간 즐거운 상상도 가능하게 한다.

목수만 팀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조공도 팀장이 있다. 팀장을 지명하는 것은 대개 현장의 반장들, 또는 용역회사에서 팀장을 지명하기도 한다. 현장의 입장이든 용역회사의 입장이든 팀장을 지명해야만 인력 관리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용역회사는 팀장에게 “어디 현장 몇 명”이라고 알려주면 팀장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아 데리고 간다. 그런데 이 팀장에 임명된 사람들의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다. 두목노동자도 아니고 보수를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전횡을 휘두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웃과 잘 지내야 하지만, 팀장들과 잘 지내기란 나로서는 어려웠다.

이곳저곳으로 일 하러 다녔다. 오피스텔, 학교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조공으로 일했다. 조공 일은 목수 일에 비해 힘이 딱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 목수 일은 진을 빼지만 조공 일은 수월하기 짝이 없어서 일 년 내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이재원

신축 22층 오피스텔은 분양가가 평당 천만 원이라 한다. 건물주는 전문으로 오피스텔을 짓는 사람이란다. 땅을 사고 자본 있으면 건물은 그야말로 저절로 올라간다. 건축회사 하나를 지정해서 건축 계약을 한다. 이 회사를 가리켜 원청이라고 한다. 원청회사는 5데마의 하청회사와 계약을 한다. 5데마는 토목과 목수, 철근과 콘크리트, 조적을 포함한 미장을 가리킨다. 원청회사는 다시 5데마와 하청 계약을 맺는다. 건축법에는 원청과 하청만 있다. 그런데 그게 애매해서, 특수한 경우에는 재하청도 허가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지금 모든 하청회사는 재하청을 준다. 직접 고용이란 건축 관련 분야에서 [없다]. 그리고 재하청은 회사 간의 제 살 깎아 먹기의 온상이다. 경쟁의 모든 하중은 개별 노동자들이 받는다.

JH 현장은 일할 만 했다. 눈 오면 눈 쓸고, 콘 타설하면 온도를 올리기 위해 난로 불을 피워야 한다. 회사의 반장은 나에게 매일 자기 현장에 일 나오기를 청했다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할 뿐만 아니라, 노가다 짬밥(경력)이 있어서 일머리를 알아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용역회사 팀장 YH였다. 그의 행위 – 그는 타인을 지배하는 행위를 당연시했다 – 에 대해 바른말 하자, “너는 빠져라”고 했다. 나는 그가 일 안 나오는 주말에만 JH로 일 하러 갔다. 용역회사 사장이 “아저씨, JH가요”라고 말해도 YH가 있으면 뒷짐 지고 일 하러 가지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 못 보는 고통이 가슴을 에듯, 껄끄러운 사람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는 것 역시 지옥임을 다 알기 때문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말하듯, 이런저런 면에서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노동자들 간에 어린 아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 P 아파트 현장에 조공으로 갔다. 이곳에 몇 번 왔다. 어느 사이엔가 상황이 변했다. 전에는 용역 팀장을 지명하지 않고 일 했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이곳 용역팀장 X가 작업지시를 하고 있었다. 정화조 해체 작업과 자재정리였다.

나는 평소대로 자재 나올 분량을 예상하여 정리할 부재의 바닥 받침목을 깔고 그 위에 품을 쌓고 있었다. 용역 팀장이, 다시 받침목 깔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옳지 않았다. 그가 지정한 장소에도 받침목을 깔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받침목 놓은 장소에도 역시 필요하다. 지하, 지금해체작업을 하는 공간에서 부재들이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사정을 말하자,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가 하는 작업 지시를 그렇게 고까워하면 나는 어떻게 작업을 시킨단 말이오?” 말 소리로 보아 X는 외국 동포였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나와 X를 쳐다보았다. 아하, 나만 몰랐을 뿐, 바로 옆에 회사 반장이 지켜보고 있었다. X팀장은 반장에게 나를 고자질한 셈이었다. 반장이 작업자 전원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한 마디 훈시를 했다.

“내가 시키는 일이 못 마당하면 이 현장 안 나오면 됩니다.”

그리고 나를 지목해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아저씨도 팀장 지시하는 것이 맘에 안 들면 안 나오면 됩니다.”

나는 큰 소리로, “네” 라고 말했다.

Y는 경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젊다. L은 고관절 환자이다. 늙었다. L은 아픈 몸을 이끌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러 온다. 나는 두 사람 모두 함께 일 해 본 적이 있다. L과 함께 일하러 가면, 그가 힘들지 않는 일 하도록 도와주었다. 순전히 말풍선이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L씨, 옆에 서 있어. 내가 다 하께”라고 말하기도 했다.

P현장에서는 오늘 따라 자재를 밑에서 위로 올리는, 일명 되치기 작업이었다. 하필 Y와 L이 한 조가 되어 일했다. L이 허리 아파서 자주 쉬었다. Y는 항상 쫓긴다. 자기 신체의 핸디캡도 있어, 일 해치운 분량이 늦어지면 일하러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팀장이 채근하는 눈빛을 보이자 Y는 기어코 팀장에게 L을 고자질하고 말았다.

“저 아저씨가 일을 안 해요”라고.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이 아주 적절한 경우가 있다. 대개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는 교대로 일 나간다. 용역회사 소장이 일 나갈 사람을 지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선착순으로 사람들을 태우는 차를 타면 일 나가는 경우도 있다. 75세의 월남 참전용사 김 노인은 아주 일찍 와서 노란봉고차에 올라타 있다. 나도 두 번 그 차에 타 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일찍 올라탈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뺏는 셈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온 사람은 일을 못 나가게 된다.

일 못나가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크다. 김 노인의 가계부를 보자. 월세 30만원, 겨울 연료비 30만원, 부인 병원비, 약값, 생활비가 기본으로 필요하다.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찍 와서는 노란 봉고차에 올라탄다.

3. 두 건축회사들

학교 신축현장,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 에어컨 설치 작업에 조공으로 배치 받아 갔다. 네 명이 갔다. 용역 소장은 내게, ‘아침밥을 사 먹고는 영

사진-이재원

수증을 회사에 제출하라’고 했다.

현장에 도착해서 두 명은 기초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갔다. 그 기초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 신분이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한 명은 혈압이 높았다. 따라서 세 명 쫓겨오고, 나만 남아서 일했다. 늙은 것이 힘만 좋아서 노동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다리 한 쪽 달아 매어놓는다 해도’ 하루를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일이 끝나면 용역회사에서 주는 일일 공수 싸인을 받아가야 한다. 그것을 증거로 용역회사는 파견한 회사에서 돈을 받는다. 대기업 S전자 과장은 아침밥 영수증을 보고 말했다.

“이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를 넘어서네요. 일은 한명 했는데 4인 밥값에 사인해 줄 수는 없어요. 현장소장님 오실 때가지 기다려 주세요.”

소장이 왔다. 문제를 설명 듣고는 내게 말했다.

“식사 한 명 분만 싸인해 줄께요.”

현장소장에게 말했다.

“일 못하고 간 사람들 차비는 못 주더라도, 부잣집에서 숟가락 하나 더 놓으십시오.”“부잣집을 떠나서, 기초 교육 안 받은 사람 보내면 안 되는 것, 혈압 환자 보내면 안 되는 것 알면서 보낸 용역회사 잘못입니다. 용역회사 가서 받으세요.”

나는 하릴없이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 P건설에서 ‘안전기원제’를 올렸다. 작업자들은 세 시 반에 일을 마치고 강당으로 모였다. 성균관 집례관이 기원제를 주도했다. 봉행, 신위봉헌, 분향, 술 올리기, 축문독촉, 그리고 참석자들의 성의 표시와 배례 순서로 이어졌다. 나도 담배 한 가치(지갑을 집에 놓고 나왔다) 놓고 배례했다.

음식을 푸짐하게 차렸다. 한 200명 충분히 먹을 만한 양이었다. 떡은 작은 트럭으로 한 차정도? 되었다. 고기와 막걸리도 푸짐했다.

기원제는 내게 익숙하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흔치 않게 보기 때문이고, 몇 십년 전, 매 해 농민과 공장 여공 조동조합 합동 기원제를 지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 민주주의 염원 기원제는 당시의 우리들에게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 출근 투쟁으로 마루타처럼 매맞는 여공과 전경환이가 해 먹은 도입우 여파로 거덜 난 농민들에게 간절한 것은 민주주의였다.

젊은 농민들은 음복 후 여공들이 내 뿜는 막걸리 세례를 얼굴에 맞고는 오히려 희희낙락했다. 노-동 기원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축제의 장이었고, 연대의 장이었다. 상호 위로와 치유의 장이었다. 이들의 기원제는 경직된 건축회사의 기원제와는 영 달랐다.

지금은 성균관 집례관이 기원제를 집도하지만, 예전이라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축 현장에는 무당이 집도하는 ‘고사’를 지냈다. 고사 비용은 무척 비싸다. 현장 소장의 주머니 돈이 아니라, 하청 회사의 부조금들이다. 대기업 현장 소장은 돈을 지불한 대가를 받는다.

어렵게 인터뷰한 새끼무당의 이야기는 ‘을화’의 내용과 같았다. 고사를 집도하는 늙은 무당이 있다면 여러 명의 젊고 아리따운 새끼 무당들이 있다. 보수를 두둑이 받은 새끼무당 중 하나는 대개 몇 개월간 현장소장의 애인이 된다.

4. 여성 건축노동자들

H 건설현장에서 여자목수가 경량철골, 내장 일을 하고 있었다. 여성으로서는 조금 무겁게 여겨질 대형 타카를 어깨에 메고 작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우께(도급노동)하면 도합 40만원 선일 것이다.

S 건설 현장에서 페인트 여공이 기둥에 테이핑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삐 움직였다. 나는 기둥 주변의 장애물들을 치웠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자마자 일당이 얼마인지 물었다. 그녀는 10년차, 9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여공들은 대개 타일 조공, 페인트, 도배, 드물게는 내장목수 조공도 있다. 방수, 마감청소, 이사 청소도 여성들의 몫이 크다. 타일 여공 일당이 가장 높다. 부부가 함께 일한다면 하루 도합 40-50 만원을 받는다. 그만큼 타일 일이 어렵다. 오랜 숙련 과정이 필요해서 기능을 익히기도 어렵다.

중년 여성들의 일거리라야 식당밖에 없다. 그러나 식당의 노동은 해 본 사람만 안다. 일 자체도 고단하지만 손님들 접대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감정노동까지 겸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여공들은 이구동성으로 식당 노동은 할 게 못된다고, 끔찍하다고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공은 H누나이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았기 때문에 연하이지만 누나라고 불렀다. 기능이 뛰어나서 반장을 제외하고는 임금이 가장 높았다. 그녀의 자랑은 지방대학 박사과정인 아들이었다. 아들이 학위를 받으면 아주 좋은 차를 사 주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녀의 집에도 가 보았는데, 동해안 큰 냇가 주변에 넓직한 단층 슬라브였다. 집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쓰지도 않았다. 30여 년의 오랜 노동으로 그녀의 손마디 마다 관절염이 있었다. 아픈 손으로 아주 야무지게 작업했다. 그녀는 육체를 초월하는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가? 술 취한 동료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성 추행하려는 바람에 그녀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제기랄, 그 뒷수습을 하러 내가 내려가서 고생했다. 피해 여성이 고소하면 회사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해 남성에게 술을 진탕 사 먹이자, 술술 뱉아냈다. 거대 현장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라서 단 두 명만 일했단다.

“지가 내 마누라라도 되나, 모든 힘든 일은 다 내가 했다. 그러고도 품값이 나와 똑 같다. 떼돈 벌면서 내게 무엇을 해 주는가?”

술 취해 방어 능력이 없는 여성에게 그랬단 말이지? 너보다 힘없는 여성에게 그랬단 말이지?

나는 H누나의 경우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가해자의 ‘욕망이 증오로 바뀌었는가, 증오가 욕망의 옷을 입었는가?’ 아니면 노동의 고통이 다른 식의 보상을 찾도록 했는가?

몇 십 년 전에는 건축 현장에 여성도 목수를 했다. 남자들과 똑 같이 못 주머니 차고 일했다. 여자라 해서 머뭇거리거나 ‘여자인 양’ 하는 법이 없었다. 남자들이 어깨에 메고 나른다면 그녀들은 판넬을 머리에 이고 날랐다.

미모는 죄가 아닌데도 여성들에게는 항상 천형처럼 붙어 다닌다. 아르바이트하던 미모의 외국 여성이 내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있다. 아주 친한 동료였다.

“배운 사람이나 못배운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이나 다 똑같아요. 왜 그렇죠?”

왜 그러냐는 물음은 만나는 남성들 모두 성을 요구한다거나 유혹한다는 뜻이다. 건설 현장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돌았다. 대개 여공들은 남편이 아파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는 경우가 많다. 친척을 따라 일한다면 별 문제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야지들이 여공에게 성 상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인 듯해서, 어떤? 부인이 여럿인 오야지들이 이었다.

합의와 동의하에, 사랑하는 사이라면 문제될 것 없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성상납은 이 나라에 희망 없음의 상징이다.

다른 모든 사랑의 이야기처럼 아가서를 읽다 보면 사랑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결코 성을 사소한 문제로 생각할 수 없다. 도대체 강제적 성 관계를 시도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강제란 사랑하는 사이에서 있을 수 없다. 만약 폭력에 길들여진 관계라면 사디즘과 매저키즘으로 뒤엉킨 관계일 것이다. 사랑의 신비는 생 떽쥐베리가 말하듯, “그 사람을 향해 나아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사람을 품에 안으려는 욕구”이다. 이런 욕구만이 사랑은 너와 나만 아니라, “제3의 것”을 바라보게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초월적”힘이 되며 프랑스 60운동에서 보듯,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 시범강좌[ⓔ시대와철학 알림]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 시범강좌

 

안녕하세요,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입니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은 분과학문으로 파편화되고 기업화된 낡은 대학의 틀을 벗어 던지고, 학문 간 통섭이라는 원리를 통하여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 평등하게 마주하는 새로운 대안대학의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2014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이 앞으로 펼쳐나갈 교육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범강좌를 개최합니다. 이번 시범 강좌의 열쇠말은 [카오스와 비전 Chaos and Vision]입니다. 총 9강으로 이루어진 이번 시범강좌는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들에 주목하였습니다. 위세를 떨쳤던 신자유주의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체제가 시작되는 이행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통한 새로운 비전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의 시작을 알리는 시범강좌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강좌 소개]

 

[3/11 후쿠시마, 끝에서 시작으로]

1/13(월) 19:00~22:00

최종덕(상지대 과학철학),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김익중(『한국탈핵』 저자, 동국대 의대 교수)

 

[인류의 위기와 대안에 대한 원효와 맑스의 대화]

1/14(화) 19:00~22:00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

 

[케이팝의 흉내내기는 어떻게 문화자본이 되었나]

1/15(수) 19:00~22:00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어린왕자’에서 보편종교성을 읽다]

1/16(목) 19:00~22:00

박규현(부산동래생협)

 

[대안세계는 적녹보라 연대로부터 온다]

1/17(금) 19:00~22:00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박이은실(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21세기 변혁 존재론을 위하여]

1/20(월) 19:00~22:00

김성우(한국철학사상연구회)+서영화(한국철학사상연구회)

 

[위기의 청년들에게 ‘자본’이 일용한 양식인 이유]

1/21(화) 19:00~22:00

임승수(경희대학교 강사)

 

[기억하라 1980년대 : 칠수와 만수의 시대극장]

1/22(수) 19:00~22:00

김종길(미술평론가)+한홍구(역사학자, 성공회대 교수)

 

[혼돈 속에서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

1/24(금) 19:00~22:00

대안적 지식생산자들의 파티 (홍세화, 조희연, 이명원 등)

 

 

 

일시 : 2014.1.13(월) ~ 2014.1.24(금), 저녁 7시 ~ 10시

(총 9회, 1/23(금) 및 토, 일요일 강의 없음)

장소 : 중림종합사회복지관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수강료 : 강의 당 5,000원

신청(링크) : http://www.freeuniv.net

https://freeuniv.typeform.com/to/iQHPyI

문의 : kcunion2013@gmail.com / www.freeuniv.net / 010-4721-5757(사무국장 강정석)

 

 

 

 

 

 

타이-마르크 르탄의 <알몸으로 학교 간 날> [철학자의 서재]

타이-마르크 르탄의 <알몸으로 학교 간 날>?[철학자의 서재]

 

신우현 (상지대학교 강사)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알몸으로 학교가기

<알몸으로 학교 간 날>(타이-마르크 르탄 지음, 벵자맹 쇼 그림, 이주희 옮김, 아름다운사람들 펴냄)이라는 그림책을 소개하려한다. 주인공인 피에르는 어느 날 알몸으로 학교에 간다. 책가방은 챙겼지만 아이가 알몸인 것은 눈치 채지 못한 아빠 덕분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너무 심각하게 따지지는 말자. ‘아무리 이야기의 배경이 정신없는 아침이더라도 아이가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라든지 ‘도대체 엄마는 어디로 갔기에 아빠가 아이를 챙겨서 저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들었지?’라든가 하는 질문은 잠시 멈추기로 하자. 어쨌든 아이가 알몸으로 학교에 갔다. 아이가 알몸으로 학교에 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말을 잠자코 들어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빠는 신발을 잊진 않았다. 빨간 장화다. 신발은 신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덕분에 알몸인 것이 더욱 두드러진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인사했어요. “피에르, 안녕” “피에르, 별일 없지?” “피에르, 오늘 좀 달라 보이는데?” “어, 그런데 피에르, 너 장화 예쁘다.” “아, 그래, 장화 아주 멋있네!” “예쁜 빨간색이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장화 속이 조금 갑갑했어요.(6쪽)

 

▲(타이-마르크 르탄 지음, 벵자맹 쇼 그림, 이주희 옮김, 아름다운사람들 펴냄). 출처: book.daum.net

 

알몸으로 등교한 피에르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이다. 어느 누구도 알몸인 피에르에 대해 손가락질하거나 조롱하거나 질책하지 않는다. 다만, 단짝 친구만이 에둘러 배려하지 않고 “안 추워?”라고 질문한다. 그런데도 피에르는 아무 말 없이 갑갑함을 느낀다. 선생님 역시 빙그레 웃으며 맞이해주셔도 ‘나무 의자가 너무 딱딱했지만 몸을 비틀지는 않았어요. 눈에 띄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라며 위축된 마음을 드러낸다.

선생님 역시 선생님은 피에르를 배려한답시고 가리개로 몸을 덮어주거나 없는 듯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알몸 상태 그대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피에르에게 발표를 많이 시킨다. 비록, “피에르, 피리새에 대해 아주 잘 설명했다. 꼭 이 교실 안에 피리새가 있는 것 같아” “피에르, 아주 잘 대답했다. 꼭 이 교실 안에 작은 수도꼭지가 있는 것 같구나”라는 칭찬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체육시간에 두발을 모으고 뛸 때가 가장 좋아요. 그렇게 뛰다 보면 걱정을 잊을 수 있거든요. 오늘도 옷차림 때문에 걱정이 있으니까 열심히 뛰기로 했어요. 나는 깡충깡충 뛰었어요. 있는 힘껏 뛰었어요. 그리고 웃었어요. 마음껏 웃었어요. 웃을수록 더 높이 뛰어올랐어요. 바람처럼 자유로운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곧 멈춰 설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모두 가만히 서서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종이 울렸어요. 이제 점심시간이에요. (17~18 쪽)

사실 피에르가 체육시간에 열심히 뛰어오른 것은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로 크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걱정을 잊을 수 있도록 열심히 뛰면서 웃고, 웃을수록 더 높이 뛰어올라 자유로운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자 곧 멈추고 만다. 결국 이어지는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모두 왁자지껄 웃는 상황에서도 조금밖에 웃지 못한다.

더욱이 방학 때 가장 즐거웠던 일을 그리는 미술시간에 아이들은 모두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특이한 바닷가를 그린 것을 보고 피에르는 더욱 마음 불편해한다. 쉬는 시간이 오자 친구들이 또 빨간 장화이야기를 할까봐 큰 덤불 뒤에 숨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던 피에르는 나뭇잎과 줄기로 몸을 가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알몸인 채로 초록 장화만을 신고 있던 옆 반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 애 이름은 마리였어요. 나는 마리에게 내 나뭇잎을 보여주었어요. 마리도 나에게 제 나뭇잎을 보여주었어요. 우리는 깔깔 웃었어요. 우리는 함께 풀줄기를 찾았어요. 그러고는 각자 나뭇잎을 붙였어요. “고마워” 마리가 나에게 말했어요. “고마워” 나도 마리에게 말했어요. 우리는 또 웃었지만 아까처럼 실컷 웃지는 못했어요. 종이 울렸거든요. 쉬는 시간이 끝났어요. (27쪽)

마리와의 만남으로 이제 피에르는 자신감을 찾는다. 선생님이 천사에 관한 노래를 시키자 자신 있게 손을 들고 교단 위로 올라가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들 감탄한 얼굴로 피에르를 보고 있었고, 손뼉 치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피에르는 그 자리에서서 멋진 빨간 장화를 신고 작은 나뭇잎을 붙이고 아주 자랑스럽게 인사를 한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갔어요. 어찌된 일인지 길거리에서 가볍고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어요. 체육시간처럼 말이에요. 나는 날듯이 달려갔어요. 지나치는 사람마다 나를 보고 활짝 웃었어요. 알몸이 되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31쪽)

 

남과는 다른 피에르가 자유로워지기까지

‘알몸’은 이 세상의 수많은 ‘차이’이다. 그림책의 저자인 타이 마르크 르탄은 대부분의 사람과 다른 ‘차이’를 지닌 사람이 자유로워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림책은 피에르의 감정을 덤덤한 듯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벵자맹 쇼의 재치 있고 상큼한 그림은 이를 잘 보여준다. 처음 알몸으로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피에르는 망설이듯 몸을 숨기고 운동장을 들여다본다. 쑥스러웠지만 피에르는 친구들 앞에 선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는 친구들을 만났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갑갑해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수업시간에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을 비틀지도 못한다.

웃음으로 맞아주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에르에게 발표를 시키지만, 피에르와 선생님은 당황함을 주고받는다. 그래도 체육시간에 피에르가 걱정을 잊기 위해 깡충깡충 뛰고 순간이나마 바람처럼 자유로운 기분을 느꼈던 것은 다름 아닌 친구들과 선생님의 이러한 배려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카트린느 선생님이 피에르에게 여벌의 옷을 입혀주거나 다른 아이들처럼 옷을 입혀주었어야 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 상황에서 옷을 벗고 있는 아이가 어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동학대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다. 상징이고 은유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이에게 옷을 주는 것은 다른 아이와 억지로 같아지라고 하는 것일 수 있다. 옷을 입지 않은 등교한 것도 선택일 수 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피에르의 선택을 존중해준 것이다. 그런 선택을 왜 했느냐며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피에르를 받아들여준 것이다.

하지만, 피에르의 갈등 상황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체육시간에 피에르는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이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피에르가 의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술시간에 피에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의 그림에 벌거벗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바닷가의 풍경이 있는 것을 보고 피에르는 더욱 불편해진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차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피에르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자신과 같은 ‘차이’를 지닌 옆 반 아이를 만나고 나서다. 피에르는 마리와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대부분의 사람과 다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만 다르다고 생각했을 때 느꼈을 소외감과 불안함이 같은 처지의 마리와 만나고 해소되었을 테니 말이다. 마리를 만난 후 피에르는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노래 부르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 로 인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고, 그 ‘차이’를 내가 지니고 있어서 좋다고 진심으로 여기게 되었다. 피에르는 ‘차이’로 인한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것이다.

피에르가 ‘차이’를 긍정하고 세상과 화해하여 자유로워지게 된 데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배려와 같은 처지인 마리와의 소통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태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자, 상당수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변태!!!”라고 외쳤다. 재치 있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부끄러운 부분을 교묘하게 가린 그림에 순수하게 즐거워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아이들보다는 “말도 안 돼. 선생님한테는 혼나고 아이들한테는 놀림 받을 텐데, 다른 애들은 왜 아무 말도 안하지?”라며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어린이들이 더 많았다. 자기라면, 절대로 알몸으로는 학교에 가지 않을 거란다.

우리 사회는 ‘차이’에 너그럽지 않다. 나와 다른 점은 이상한 것으로 치부된다. 심한 경우에는 적으로 간주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차이’를 핑계로 진행된다. 사회에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므로 옆의 친구나 동료의 ‘차이’는 약점이 되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피에르의 친구들과 선생님의 배려는 다소 생경한 것이 된다.

‘동일성’만을 강조하면서 ‘차이’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폭력이다. 대체로 ‘동일성’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대다수이고 기득권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차이’는 ‘차별’이 되기 쉽다. 우리 사회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거나 많다는 이유로, 키가 작거나 못생겼거나 뚱뚱하다는 이유로, 출신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력이 짧다는 이유로,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며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차이’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고 ‘차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배려를 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배려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과 상상력,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공격하려는 충동을 절제하려는 이성으로부터 온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힘들다. 여기서의 상상력은 다른 사람의 불편과 고통을 내 것으로 생각해보는 능력이다.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생각해볼 수 있는 능력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불편함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환경이 아이를 기르는데 최고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불편한 것은 조금도 참지 못하고, 고통스러움을 경험해보지 않으면서 자란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다른 사람의 불편함과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능력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훈련될 필요가 있다.

용산 참사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중은 얼마나 싸늘했는가. 대다수 사람들의 경제적 이익 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소수의 인권 요구는 냉정하게 묵살되었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불에 타죽어도, 얼어 죽어도 무관심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날수록 배려는 찾아볼 수 없고, 우리의 삶은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고 민주적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이 어떤 보호를 받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그저 우아한 지식인이나 교양인의 제스처가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다.

생각하는 게 달라도, 뚱뚱해도, 장애인이어도, 돈이 없어도, 외국인 노동자여도, 여자여도, 가방끈이 짧아도 주변의 배려로 자신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생활하며 결국 나에게 있는 ‘차이’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유토피아다. 피에르처럼 알몸이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외칠 수 있는 사회가 어서 오기를.

주체성과 자율성[철학을다시 쓴다]-⑮

주체성과 자율성[철학을다시 쓴다]-⑮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제가 ‘자유’를 이야기하면 ‘사회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자유주의자네?’ 이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자유에는 결이 여럿입니다. 노예소유주의 자유 개념이 있고, 부르주아 자유 개념이 있고, 지주들의 자유 개념이 있고, 자본가의 자유 개념이 있고… 저마다 내세우는 자유들이 서로 결이 달라요. 무엇을 ‘자유민주주의’라고 그러죠? 자본주의를 자본민주주의라고 말하는 대신에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자유’가 하도 좋으니까, 저마다 자기 체제, 자기가 신봉하는 이념에 ‘민주’도 끌어다 놓고 ‘자유’도 끌어다 쓰고 그래요.

우리 헌법에 보장된 자유가 뭐죠?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죠? 추상적인 것 말고 거주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여행의 자유, 이런 소박한 것들을 생각해봅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은 아무 자유도 없어요. 돈이 없으면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고, 신체의 자유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헌법에 보장된 자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자유예요.

여러분들, 추석이나 설 때마다 도시에 붙들려 있는 아들딸이 ‘어머니, 미안해요.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이번에는 못 내려가요.’ 하는 이야기를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들어보셨죠? 그러고 철야하죠? 고향에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거예요. 여행의 자유도 없고 고향 찾아 갈 자유도 없어요.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종만 있습니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아주 명쾌하게 갈라지죠.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쓴 유명한 찰스 램이 한 이야기입니다. 흑인, 백인, 황인, 이런 인종구별 없다, ‘있는 놈’과 ‘없는 놈’, 딱 두 종류로 구별이 된다. 있는 놈은 다 있고, 없는 놈은 아무것도 없고… 오죽하면 ‘없는 놈’이라 그래요? 재산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존재’조차 없는 거예요.

‘스탠포드 엑스페리먼트’(Stanford Experiment) 이야기를 잠깐 떠올려 보지요. 이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으니까 따로 긴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아홉 명이 죄수 역할을 맡고, 열두 명이 간수 역할을 맡은 가상 감옥에서 벌어지는 실제 이야기입니다. 이 실험에 자원한 20대 젊은이 가운데 12명은 네 명씩 삼교대로 간수 역을 맡게 됩니다. 간수가 되는 사람은 죄수 역을 맡은 사람이 지닌 한 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상식적이고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없애야 하고, 등질적인 죄수 집단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을 받습니다. 죄수가 된 사람의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없애서 비인간화시키는 것이 간수의 임무예요. 감옥 체제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임무이기 때문에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수록 죄수들을 비인간화시킬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정체성을 없앨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서 죄수들에게서 심각한 시간 왜곡 현상이 나타납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생명의 시간 가운데 자연의 시간이 우리 몸에 그대로 작동을 합니다.

 

영화 ‘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출처: http://folksonomy.co/?keyword=15274

 

쥐들에게 실험을 해봤는데, 같은 용량의 인슐린 주사를 시간을 바꾸어서 투여하면 어느 시간대에서는 백퍼센트 죽고, 똑같은 양인데도 어느 시간에 투여하면 한 마리도 죽지 않습니다. 우리 몸 안에 저항이 커지고 줄어드는 생명의 주기들이 있는 거예요. 시계로 측정되는 인간의 시간에는 이런 게 하나도 없는데, 복종을 끌어내기 위해선 생명체가 지닌 자연의 시간, 곧 생명의 시간을 등질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감옥에서 간수 역을 맡은 사람은 교대시간에 무조건 호루라기를 불어서 죄수 역을 맡은 사람을 일으키고 팔굽혀펴기 등 체제에 순응하고 권위에 순종하도록 온갖 종류의 벌들을 부과하는 거예요. 너희들은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다, 너희들은 개성이 없다, 감옥 안에서 일률적으로 밥은 몇 분 안에 먹고 소변보는 시간은 몇 분 만에 끝내라, 이렇게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된단 말이죠.

이 상황 속에서 죄수로 자원했던 선량한 중산층 대학생이(처음에는 모두 죄수로 자원하겠다고 하고 간수하기 싫다고 했던 사람들인데), 자기가 돈을 받고 계약을 해서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진짜 감옥에 갇혀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말하면 금방 나올 수 있는데, 못 나와요. 그리고 간수 역을 맡은 사람들은 점점 잔인해지고, 나중에는 취미 삼아서 성적인 학대까지 하게 됩니다.

이라크에서 자기들의 전리품으로 생각해서 붙잡힌 사람들 목에다 줄을 매서 끌고 다니고 성적인 모욕을 주고 그 행위를 사진으로 찍어서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성적인 모욕이라는 것은 엄청난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목숨은 내놓을망정 그런 짓을 당하지는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바로 그런 반응이 가장 큰 약점이니까 그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려고 그 잔혹한 짓을 태연하게 저지릅니다.

그 미군들이 ‘스탠포드 실험’에서 나오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과 똑같은 사람이죠.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시스템’이, ‘매트릭스’가 작동하는 데 따라 그런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거죠. 그러니까 자유 박탈은 인간에게 비인간화, 몰개성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 박탈 가운데 가장 광범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도 등질적인 공간으로 바꾸고 시간도 등질적인 시간으로 만들어 생명의 시간 가운데 자연의 시간을 죄다 없애버리고 모두 인공의 시간으로 바꿔 전체 우주 체계, 아주 작은 소립자 단계에서부터 아주 큰 우주까지 전부 등질적인 시공간으로 바꿔서,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형성되고 합의되는 세계, 수학공식을 통해서 확정된 세계를 진짜 우주로 감쪽같이 바꿔치기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천체물리학이나 수학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이 덫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이 휜 공간이 됐든, 무한히 확산되는 공간이 됐든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달라지든,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이든, 지구가 해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시간이든, 사람의 의식 속에서 가공되는 시간은 잘라내는 기준에 상관없이 내용을 채우는 것들은 다 빼버립니다. 그래야 계산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화 된 세계, 이어진 연속체는 늘 무규정성이 들어가 있어서, 이게 이렇다, 저게 저렇다 딱 잘라서 수치화되지 않아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측정 가능한 것, 수치화된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도시사회에서 삶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도시사회에서는 저마다의 삶을 인간끼리 통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통제하는 세계에서는 맨 밑바닥에서 맨 위까지 위계질서가 반드시 성립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맨 위에는 ‘빅브라더’가 있고 맨 아래에는 ‘노바디’(아무것도 아닌 사람)로 위계질서가 생기는데 이런 위계질서를 세우는 작업을 우리 왼쪽 뇌가 맡습니다. 분석하고 조직하는 것은 왼쪽 뇌에서 하는데, 인간 수컷들이 ‘반편이’들이거든요, 언어와 추론의 중추가 왼쪽 뇌에만 몰려있어요. 여자들은 이야기할 때 양쪽 뇌가 작동하지만 남자들은 한쪽 뇌밖에 작동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수컷들은 조직하면 주욱 늘어서고, 정치 이야기하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어쨌거나 자율성이란 것은 생명의 시간 속에서만 싹트고 꽃 피고 열매 맺습니다. 생명의 시간은 자연계의 여러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때 가장 도드라지게 드러나게 됩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되는 강아지풀도 누가 언제 싹터라, 꽃 피워라, 열매 맺어라 이렇게 명령하고, 간섭하고,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연스럽게 싹트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죽을 때는 알아서 죽고 또 땅에 묻힙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가장 경계했었던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스(hybris), ‘오만’이라는 뜻이죠. 현대 도시에서 ‘디지탈’화한 시간, 시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끊어낸 인간의 시간, 공간화된 시간은 인간의 오만이 극대화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하느님 흉내를 내죠? 생명체를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믿고, 사기도 치죠? 돼지 장기로 사람 장기를 대신해서 프랑켄슈타인처럼 몸 전체를 잘라내고, 잇고, 기워도 끄떡없다고 여깁니다. 돼지 장기를 사람 몸에 꿰맞추면 사람이 돼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몰라요. 물질체계에서는 상호교환이 가능하고 가역성이 성립이 되지만, 생명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물질과학에 기초를 둔 생명공학자들은 생체조직과 물질조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 못합니다. 장기이식이라든지 유전자 조작이라는 것이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냐 하는 것은 여러 세대를 거쳐서 지켜봐야 합니다.

저한테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합니다. 장기기증 하지 않을 거냐고, 제가 착해 보이는 모양이에요. (일동 웃음.) 저는 자신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저도 저 자신을 못 믿는데 안구를 기증해서 눈을 번쩍 뜨게 만들면, 그 사람이 어느 순간 누구에게 갑자기 심한 증오심을 느끼게 될 때 칼로 푹 쑤셔 살인죄를 저지를지 어떻게 알아요?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 꼭 그것을 고맙게 여기고, 착하게만 살라는 법 없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기증된 장기를 나쁘게 쓰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전 세계가 장기이식 시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있는 나라 있는 사람들은 없는 나라 없는 사람 눈알도 빼고 콩팥도 빼는데 혈안이 돼 있는 세상입니다. 죽을 때 기증한 장기가 꼭 성냥팔이 소녀한테 가라는 법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죽어서 장기 기증하겠다고 하면 착하단 말 들을 줄 알고 있지만, 이미 죽은 사람에게 착하다는 칭찬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안식교 사람들은 수혈과 헌혈을 안 하잖아요. 그것을 이기적인 동기와 종교적인 편견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전엔 저도 걸핏하면 수혈하고 헌혈하고 그랬지만 나중에 B형 간염을 걸려서 자꾸 간염 걸린 흔적이 복제되는 게 있어서 헌혈해도 그 피 버리게 된다고 적십자병원에서 하지 말라고 연락이 와서 그 뒤로 그만두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사회가 전부 그것이 옳다고 해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사회가 전부 그르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정말 내가 이 일을 받아들이는데 내적인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자기 몸과 마음을 자율적으로 이용하고, 상황과 체제에 맞서서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을 열어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시간을 인공의 시간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모든 통제에 대해서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물읍시다.

중국의 지식(인)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10월 월례발표회 후기]

?[2013년 10월 월례발표회]

 

중국의 지식(인)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발표: 조경란(연세대)
후기: 진보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북아시아에서 센카쿠 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 분쟁에 이어 이어도를 중심으로 한중일 3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갈등이 연일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중재자로 개입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영토분쟁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첨예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제3자의 일인마냥 이 문제를 좌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동북아 정세를 감안한다면 지난 10월에 있었던 월례발표회에서 장장 3시간 30분에 걸친 논의도 어찌 보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 발표회는 근래에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조경란 선생님이 들고 나온 문제의식은 단순 담론을 넘어 우리 주위 현실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반드시 우리의 가장 가까운 미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동아시아에서 그 중심 자리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조경란 선생님의 이번 발표에는 현재 동북아시아의 정세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학자적 양심에 의한 견제와 비판이 담겨 있다. 특히 정치경제적인 중국의 부흥에 편승해 우러러 박수만치는 친중화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인문학적 분석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앞으로 책으로 출간될 이번 논의에서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동아시아의 역사궤적에서 중국의 서양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던지는 질문이다. 바로 근대성 얘기이며 서구의 근대성과 동아시아에서 근대란 과연 무엇이었는지의 문제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중국사회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북경거리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오와 마주보게 된 부활한 공자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번 월례발표회는 중점적인 이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한 전초적인 과정의 일환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 내부에서 중국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의 경제성장 이후 양지에 주목하는 낙관론이다. 경제성장을 통한 중국인들 스스로 자신감의 소산이다. 또 하나는 비관론으로 중국의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신좌파와 유교중국을 꿈꾸는 자들이 힘을 합해 세계문명으로써 바라마지 않는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이런 모습에 거리를 둔다. 다시 말해 비관론자들은 세계를 지배해 왔던 유럽적 보편주의(근대성) 문제에 대해 중국이 새로운 보편으로서의 근대적 민주주의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런 중국을 두고 “눈물의 계곡을 거쳤다”고 했다. 중국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국가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국가능력은 이미 보통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빈부의 차이와 화려한 도시에서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민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지금의 중국이 제대로 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동양에서 능력(能)은 곧 덕(德)을 말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이 달성하자던 전면적 소강(小康)사회가 중국의 정치적 부흥과 경제적 성장만을 두고 말한 것이었다면, 또는 청중들이 이것을 염두하고 소강을 이해했다면 현대 중국에서 ‘인(仁)에 바탕을 둔 가족윤리’의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인 확장은 불가능하다. 그런 사회에서 ‘인(仁)’은 이미 사회의 최소단위에서 형성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부에서 보는 중국은 굴기에 대해 고무적이지만, 외부에서 보는 중국은 위중해 보인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외부에서 보이는 것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이제 중국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기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중국의 정치사회권의 분위기를 보자면 신좌파는 극우가 되어가고 있고 이 신좌파와 대륙 신유가의 관계는 서로 밀접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학의 ‘화(和)’개념을 통해 뒤에서 유가의 등을 밀고 있지만 동시에 통제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지난날 중국의 사회주의가 중국 내부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면서 지젝의 지적처럼 현재 중국 사회주의의 경제적 성공은 사회주의의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의 권위주의가 만나 결국 국가독점 자본주의를 형성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중국은 과거 유교의 ‘천하’개념을 통해 국가독점 자본주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동아시아에 대한 수평적 인식을 포기한다. 아시아가 중국이고 중국이 곧 아시아인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중국모델론은 ‘문명-국가(civiliztion-state)’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이것이 중국 지식인들이 고민하는 핵심문제이다. 중국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이른바 유교사회주의공화국을 주장하는 간양(甘陽)과 같은 사람은 ‘대중화문명-국가’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21세기 중국 사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경란 선생님은 이 대목에서 중국 21세기의 핵심개념인 ‘문명-국가’의 논리가 과거 유교적 천하통치주의였던 ‘천하-문명’과 과연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한다. 만약 중국모델론이 그 내용에 있어서 인문학적 통찰에 근거한 합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모더니티와 민주주의를 보여줄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헤게모니에 의해 국가와 ‘공모’한 중국모델론은 결국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표출할 수밖에 없다.

 

?박영미

 

마치 과거 중국 제국주의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듯하다. 그런데 과거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국은 19세기 말 서양의 제국주의의 형태와는 다르게 당시 조공제를 통해 어느 정도 평화적 체제를 유지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왕후이(汪暉)는 자신의 분석을 통해 이 조공체제를 재구성하여 현대에도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혹시 중화문명으로서 중국이 편제한 동아시아의 문명은 서구의 문명과는 다르기 때문에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마치 B급 중화반점식 짬뽕논리와 같은 막무가내 낙관론은 아닐까? 조경란 선생님은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역으로 서구도 중국과 같은 배경이었다면 국가 관계에 조공제를 썼을 것이고, 이 조공제라는 것 자체가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고는 하지만 상호필요에 의해 위선을 전제한 서로의 주고받기의 평화 유지 방법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논의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중국의 사회주의가 서구를 극복한 대안체제였는가? 라는 질문에 바로 ‘Yes’라고 대답할 수만은 없는 중요한 지점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사회주의는 서구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중국 사회주의도 근대성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현재 중국의 상황이 독립적인 지식인들의 윤리적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고, 사회 안에서 일정한 공론장도 형성되기 어렵다고 본다. 다른 나라보다 오히려 국가와 자본의 지배가 강력하며 국방비 지출 보다 국가 통제 시스템을 위한 지출이 더 많다는 사실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이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신장에만 기대하여 교류를 위해 중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접근하면서 중국 내부의 문제나 중국과 우리 사이의 문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새로운 소중화주의 아닌가.

실패한 서구의 극복 차원에서, 또는 서구의 대안으로써 근래 사람들은 중국을 주목한다. 이런 관심은 서방 중심의 세상은 이제 종결되었다는 전제 아래, 중국은 기존의 것들과는 뭔가 다르며 유럽적 보편주의와 미국적 보편의 가치를 뛰어넘은 새로운 보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서구의 좌파들이 중국의 좌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결국 중국의 모순적인 현 상황을 눈감고 지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한국에서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조경란 선생님의 언급처럼 보편성은 가치로써 존재하는 것이고 현실을 견인해 내는 것이지만 보편적 보편주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닌가. 서양좌파들이 중국의 좌파들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근거가 없다. 자기들의 사회와 체제는 문제제기하고 비판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에는 희망을 건다. 어떻게 중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보이지 않을까? 이들은 세계 중심의 힘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보는 것 같다. 그들은 이를 문명의 전환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문명론은 매우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편주의라고 불렀던 서구식 지식구조가 동서양의 패권구도, 현실사회의 강약구도에서 불평등을 은폐할 뿐 아니라 양극화를 조장하고 유지해오는 데 어떤 작용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와 함께 현 중국 자본주의가 ‘괴물자본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 내부의 ‘민족-국가’ 지배체제와 자본의 이중지배, 그리고 그 아래에서 어느 때보다 주변화 되고 있는 민(民)과 이(夷)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발표문 중에서 –

중국이 향후 50년 동안 어떤 새로운 대안적인 틀로써 ‘보편적 보편주의’를 제시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사실 어느 정도 지켜봐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논의한 내용들을 통해 현 동북아시아 정세를 두고 본다면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중국의 미래를 둘러싼 이해방식은 곧 한국의 미래에 대한 이해방식과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중국연구자로써 조경란 선생님 자신도 말한바 ‘또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이 도전이 어떻게 진행될 지도 우리로써는 관심 있게 지켜볼만하다. 이번 발표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의 흥미진진함은 앞으로 출간될 책에서 더욱 풍부한 식견과 내용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⑥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⑥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나루는 힘센 왕이 된 황금빛 그림자를 상상했어.
그런데 개토할아버지의 미소 뒤로
감추어진 기다란 꼬리가 살짝 보이는 거야.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그림자를 사서 영혼을 빼앗았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