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없는 과학 윤리(2)[대안도덕교과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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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없는 과학 윤리(2)[대안도덕교과서]-8

 

 

강경표(중앙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진짜 문제는 국가과학과 자본주의다!

 

만약 당신이 원자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시 상황에서 국가가 당신의 지식과 기술을 전쟁을 위해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과학 윤리의 전형으로 대변되는 원자 폭탄 이야기는 사실 과학자 개인의 도덕 문제라기보다는 과학을 이용하는 국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도덕 교과서는 이러한 문제를 간과한 채 마치 과학자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 몇몇 과학자들이 원자 폭탄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물리학자들 중에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고 즐겁게 임무를 수행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초기부터 핵무기 개발이 인류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며 반대했던 학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별 생각 없이 참여하였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이후의 결과를 보고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사람들도 있었다.

출처: www.dailymail.co.uk

출처: www.dailymail.co.uk

아인슈타인은 이론은 제공했지만 제작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동료 과학자들의 권유에 밀려 원자 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에 서명하였지만, 나중에는 후회하였다. 그 후로 아인슈타인은 죽기 바로 직전까지 적극적으로 평화활동을 펼쳤다.

(중학교 도덕2, 중앙교육진흥연구소 278쪽)

 

원자 폭탄 개발은 고도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과학입니다. 단순하게 과학자 몇명이 이론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막대한 지원이 없이는 실행될 수 없는 과학입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가 넘는 비용과 13만의 인력이 동원된 미국 정부가 주도한 과학 프로젝트입니다. 원자 폭탄 개발을 주도했던 오펜하이머(1904-1967) 박사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폭탄을 투여한 후 과학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고 이후 미국의 수소 폭탄 개발을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에너지국(AEC)위원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로슨은 오펜하이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축출했으며, 미국은 제일 먼저 수소 폭탄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과학 프로젝트에서 과학자 개개인은 고용된 노동자에 불과합니다. 물론 과학의 내용이 전문적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고도 할 수 있지만, 원자 폭탄 개발과 같은 문제는 단순한 과학 윤리가 아닌 국가가 결정하는 정책 방향과 더욱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덕 교과서에는 이와 비슷한 또 다른 문제가 나옵니다. 이는 사실 시장자본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야기지만 도덕 교과서는 이를 과학자가 윤리적이지 못해서 발생한 사실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름 : 과학 기술은 어렵고 복잡해. 그냥 전문가들을 믿고 따르면 될 거야.

바름 : 그래도 될까? 과학자들의 말만 믿다 보면 큰일이 생길 수도 있어.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라고 못 들어보았어?

아름 : 그게 뭐야?

바름 : ‘탈리도마이드’는 임산부 입덧 방지용 약이야. 그런데 이 약의 안정성을 엉터리로 실험하고는 부작용이 없는 기적의 약으로 판매했어. 결국 그 약을 먹은 전 세계의 1만여 명의 임산부가 기형아를 출산하였어.

아름 : 정말 전문가의 말이라고 모두 믿고 맹신하면 안 되겠네.

(중학교 도덕2, 천재교육 317쪽)

 

탈리도마이드와 같은 약은 라세미 화합물입니다. 라세미화합물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분자 화합물과는 구성이 다릅니다. 쉽게 얘기해서 라세미 화합물은 오른손과 왼손처럼 그 모양은 같으나 반대 방향을 하고 있는 거울 대칭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방향의 화합물 중 한쪽은 약성을 갖고 다른 한쪽은 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탈리도마이드입니다. 이 약은 1953년에 독일의 제약회사 그루넨탈에서 개발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라세미 화합물은 분리를 통해 약성이 있는 부분만을 분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리 방법은 큰 비용이 듭니다. 사실 탈리도마이드 문제는 과학자가 위험 물질을 만들어 내거나, 위험을 속인 것이 아니라 라세미 화합물을 분리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거대 자본이 없이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거기에 더해 자본가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입덧은 임신한 여성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증상이지 각한 질병이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단순하게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에 자본을 투입해서 정제를 한다는 것은 비용만 상승시키는 짓으로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자본의 투입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요? 과학자일까요? 그 회사의 최고 경영자일까요? 그러나 우리의 도덕 교과서에는 마치 탈리도마이드 문제가 과학자가 비윤리적이라서 발생한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탈리도마이드가 2006년 미국에서 악성암치료제로 허가를 받았고 암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최근에는 이탈라아 알렉산드로 벤튜라 교수에 의하면 소아크론병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판단해 볼까요? 탈리도마이드를 계속 사용해야 할까요? 아니면 폐기해야할까요? 희귀병치료제인 탈리도마이드의 가격은 얼마로 하는 것이 좋을까요? 바로 이것이 과학 윤리 뒤에 숨겨진 자본의 문제인 것입니다.

과학과 민주주의

 

도덕 교과서에는 “과학 기술의 목적은 자연 현상을 탐구하고 활용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데 있다”(중학교 도덕2, 중앙교육진흥연구소 280쪽)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과학 기술의 중요성은 민주주의와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 도덕적?정치적 판단을 옳게 내리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유롭게 정보와 자료를 사용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가 사용하는 정보와 자료를 정확하고 엄밀하게 제공하는 학문입니다. 민주사회의 시민은 이러한 정보와 자료를 비교 분석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으며, 최선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도덕 교과서에서 과학은 여전히 경제 개발과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는 도구일 뿐이고 정치적?도덕적 주장을 하는 미사여구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명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유전자 조작이나 배아 복제 등의 문제는 도덕적 사고가 필요한 부분으로 기술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과 2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과학이 주는 혜택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물체의 유용한 특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생명공학 기술은 해충에 강한 옥수수나 당도가 높은 토마토를 만들어 내고, 품질이 좋은 가축을 대량으로 생산하며, 의약품을 만드는데 이용되고 있다……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입자를 다루는 나노 기술 등 다양한 현대 과학 기술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중학교 도덕2, 천재교육 304쪽)

 

유전자 변형 생물(GMO)에서 유전자 재작성 생물(GRO)까지 인간이 조작할 수 있는 생명공학 기술은 비단 우리에게 혜택만 있을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유전자 변형 식품을 왜 두려워할까요? 품질 좋은 가축을 생산한다는 목적 하에 행해지는 공장식 축산의 문제나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억지로 사료를 먹이는 행위도 우리에게 혜택이 될까요? 미세먼지를 걱정하는 현대 사회에서 나노 기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나노 공해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사실 도덕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과학 기술의 혜택은 경제적 측면에서의 기술일 뿐 과학이 전달해야 하는 사실 정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를 피상적으로 혜택으로 묘사할 때 과학 정보는 왜곡이 일어나기 쉽고, 이 때문에 과학 전문가가 도덕 교과서를 만들 때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학 정보의 왜곡은 국가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문제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처럼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사업에서 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에 의해 과학 정보는 무시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입니다.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중한 청년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남는 이유는 과학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민주주의를 고양시키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아주 단순한 예로 인터넷과 스마트 폰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도구들은 우리가 정보를 주고받는데 큰 역할을 수행하고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 정보가 산출되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면 과학 정보가 얼마나 엄밀하고 공개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황우석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거짓 정보는 결국 탄로나는 것이 현대 과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현대 과학 기술은 더 이상 전통 윤리의 통제를 일방적으로 받아야 하는 문화의 산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적 사실과 성과물이 우리의 판단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도덕?윤리적 판단도 과학적으로 생각해 봐야할 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학을 도덕과 윤리에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제 그 대답을 살펴볼 때입니다.

 

새로운 시민&과학 윤리를 향하여

우리는 과학이 매우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천재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현대 과학은 어려운 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로 과학논문을 써야만 인정을 받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사실 우리와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도계는 열역학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의 온돌 문화는 베르누이(1700-1782)가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현대 과학 기술을 표현하는 방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과학 전문가가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의 과학과 도덕을 생각할 때 중요한 점도 바로 이런 사례들입니다. 다시 말해 도덕과 마찬가지로 과학도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교과서는 과학을 서양 근대 사회에서 갑자기 생겨난 문화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과학기술을 도덕이 통제해아만 하는 그 무엇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 기술의 위험성을 발생시키는 진짜 문제는 도외시하고 과학 윤리를 과학자 개개인이 지켜야 하는 문제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원래 도덕과 윤리 교과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제시된 도덕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율성을 갖고 비판적?합리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과학 윤리를 이야기할 때도 시민과 과학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학을 도덕적으로 바라볼 때의 기준은 그 과학이 시민을 위해 올바르게 복무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 기술도 시민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특권화 된다면 우리는 그 과학을 반드시 경계해야만 합니다. 또한 과학을 규제하려는 도덕과 윤리가 담고 있는 내용이 현대 과학 기술 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거나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할 때에는 현대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과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덕 교과서가 과학 윤리라는 이름으로 담아야 할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도덕 교과서의 현실은 이와는 매우 다릅니다. 과학자가 지켜야할 윤리를 이야기하면서도 단 한 명의 과학자도 도덕 교과서를 만드는 데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윤리전문가들이 과학자들이 지켜야 할 윤리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내 의견과 상관없이 만들어지면 그 규칙을 따르고 싶을까요? 도덕을 연구하고 전문가가 되면, 현대의 복잡한 과학 기술과 관련한 문제도 정말 정확하게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을까요? 이 정도 이유라면 우리의 도덕 교과서에서 과학 윤리를 다시 써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과학윤리가 담긴 교과서가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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