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2
수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수 많은 별들 가운데 빛나는 수는 하나이다.
하나의 수와 하나의 수는 이어져 길이되고
길은 공간에 수를 채우고 채워진 벽에
수 많은 사람 안에 띄우는 수의 수는 붉은 심장이 된다.
빼어난 수는 수 안의 수 아닌 수의 결합이다.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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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별들 가운데 빛나는 수는 하나이다.
하나의 수와 하나의 수는 이어져 길이되고
길은 공간에 수를 채우고 채워진 벽에
수 많은 사람 안에 띄우는 수의 수는 붉은 심장이 된다.
빼어난 수는 수 안의 수 아닌 수의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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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이제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어 왔던 ‘운동’의 문제라는 ‘벼랑 끝에서 허공으로 한 번 내딛기’의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다룰 길을 찾아왔지만 여전히 저는 사막 한가운데서 제자리를 맴도는 여행자의 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 몇 말씀 여쭈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그 동안 몸담아 왔던 지방 대학을 떠나 한 해 말미로 이 땅에서는 가장 머리 좋은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중앙 도시의 국립 대학 대학원 철학과 석사 과정 학생들에게 ‘존재론’을 강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 계획은 거창했습니다. 이 기회에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존재론 전통의 맥을 짚어 가면서 ‘존재’와 ‘운동’의 문제를 중심에서부터 파고들자는 욕심을 부렸으니까요. 이 무리한 욕심이 저를 파멸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저는 제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동’의 깊은 늪에 뛰어드는 시기는 되도록이면 뒤로 미루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은 그 동안 제가 조금씩 쌓아올렸던 존재론의 비축 양식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으로 버텼습니다. 잘 하면 이미 쌓아 놓은 양식으로 한 학기를 더 버틸 수도 있겠다는 약삭빠른 생각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지만 저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어차피 이번 한 학기가 제가 대학에 머무는 마지막 날들이었습니다. 다음 해부터는 시골에 들어가 농사를 지을 작정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이 좋은 기회를 적당히 뭉개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동안 망설이고 망설이면서 뜸만 들이고 있던 솥뚜껑을 열어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모순’을 회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제 모순 속에 빠져들어 모순을 극복할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원탁 강의실에 둘러앉아 저를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 두 점이 있다고 칩시다. 점〔point〕은 물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하나로 있는 것이 그렇듯이 크기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모든 끝(한계, peras)이 그렇듯이 크기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두 점은 우리가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감각에 들어오지 않는 이 두 점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고 칩시다. 당구공 두 개가 서로 맞닿아 있는 당구대를 연상해도 됩니다. 이 때 서로 맞닿아 있는 이 두 점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제 물음이 무슨 뜻을 지녔는지 모르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저는 달리 물어야 하겠다고 느꼈습니다.
“두 개의 점이 나란히 맞닿아 있을 때 이 두 점 사이에 크기(또는 길이)로 드러나는 공간이 생긴다고 보아야 하겠습니까?”
제 질문에 어떤 학생이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선생님, 점은 본디 크기가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크기가 없는 두 점이 나란히 놓여 있다고 해서 그 사이에서 크기가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크기가 없는 두 점이 맞닿아 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지요? 만일에 두 개의 점이 맞닿아 있는데 그 사이에 크기가 없다면, 다시 말해서 두 점이 서로 따로따로 차지하는 자리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 두 점은 한 자리에 있다는 말이 되고, 두 점이 한 자리에 있다는 말은 두 점이 겹쳐서 하나가 된다, 곧 합동(合同)이 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끝, 곧 한계〔peras〕가 하나인 것만이 크기를 갖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두 개의 점이 있다는 말은 끝이 두 개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지요? 끝이 둘인 것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르지요?”
“선〔line〕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옛 피타고라스학파의 전통에 따르면 끝이 두 개인 것은 선분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선〔line〕에서 두 끝 사이에는 끝이 없는 것〔apeiron〕이 들어 있지요?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점이 두 개 있고, 그 두 개의 점이 관계를 맺으면 그 두 점 사이에는 끝이 아닌 것, 곧 끝이 없는 그 무엇, 다시 말해 크기가 생겨나고, 길이로 나타나는 끝이 아닌 그 무엇과 두 개의 끝을 서로 연관시켜 우리는 그것을 선분으로 정의한다고 말입니다.”
“글쎄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싸하기는 한데, 그래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데요. 어떻게 크기가 없는 점 두 개가 맞닿는다고 해서 그 사이에서 크기가 생겨난다, 공간적인 거리가 생겨난다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이 바로 둘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특성이자 하나와 다른 점이지요. 모든 하나는 어떤 하나이든 크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간의 규정을 벗어납니다.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형상〔idea〕의 세계에는 모든 형상이 하나하나 다 고립되어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공간이 없습니다. 플라톤의 형상들은 하나, 둘…… 하고 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와 관계를 맺어 둘을 이루면, 다시 말해 둘이 나타나면 이 둘 사이에는 이 하나도 아니고 저 하나도 아닌 것이 나타나는데, 점의 형상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듯이 두 개의 하나가 저마다 크기가 없는 것, 끝, 한계이므로 이 하나도 저 하나도 아닌 것은 크기가 없는 것이 아닌 것, 끝이 아닌 것,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둘이 없으면 크기도 없고 공간도 없습니다. 둘은 이 하나와 저 하나의 만남의 다른 이름이고, ‘실체’의 이름이 아니라 관계의 이름입니다. 여럿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둘(여럿의 최소 단위)은 있는 것이 아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있는 것은 하나이지 둘은 아니니까요.”
“아니, 선생님!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께서는 분명히 ‘이 하나, 저 하나’‘점 두 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또 ‘여러 하나’라든지 ‘모든 하나’라는 말씀도 하셨고요. 그런데 금방 말을 바꾸어 하나, 둘, 셋……으로 셀 수 있는 하나가 두 개가 모여서 둘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둘이나 여럿이 ‘만남의 이름’이고 ‘관계의 이름’이라니, 그런 엉터리없는 논리의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인정하지요. 저는 지금 분명히 모순되게 여겨지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왜냐하면 제가 하는 말은 모두 사유의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추론을 반영하는데, 알다시피 추론에는 공간, 다시 말해서 이 하나도 아니고 저 하나도 아닌 것,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끼어들어, 하나가 아닌 것을 하나로 보이게도 하고, 관계를 실체로 여기도록 만들기도 하니까요. 미리 앞당겨서 성급히 이야기하자면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고, 추론을 이끌어 낼 수도 없는데, 없는 것을 생각하고 없는 것을 바탕으로 추론이 전개된다는 한계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이 이렇게 왔다갔다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아무튼 이제까지 내가 한 말 가운데서 이 말만 귀담아들어 두면 됩니다. ‘공간은 두 하나의 만남에서 생겨나는데, 하나는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으므로, 두 하나라는 말은 관계 맺음의 다른 이름이다.’”
학생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지만 저는 짐짓 모르는 척했습니다. 제가 이제부터 씨름해야 할 문제는 공간의 생성 배경이 아니라 ‘운동’의 생성 배경이라고 보았고, 어차피 ‘운동’과 ‘공간’은 한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이므로 ‘운동’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공간 탄생의 내력도 저절로 드러나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점이 만날 때 드러나는 또 하나의 이상한 사건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자, 다시 두 점이 맞닿아 있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봅시다. 크기가 없는 점이 맞닿아 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기 힘들다면 당구공 두 개가 맞닿아 있는 모습을 머리에 떠올려도 좋겠지요. 당구공 두 개는 한 점에서 맞닿아 있겠지요? 우리는 이 점을 ‘접점’이라고 부릅니다. 이 접점은 당구공 두 개 가운데 어느 것에 속하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묻자 한 학생이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접점이 어느 당구공 하나에 속한다고 말하기는 힘들겠는데요.”
“그러면 그 접점은 당구공 두 개에 모두 속한다, 그러니까 당구공 두 개가 접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렇다면 ‘어느 한 점을 공유하고 있는 두 개의 당구공은 붙어 있다.(이어져 있다.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둘이 아니다.’라는 반론이 나온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글쎄요. 참 대답하기 곤란한데요. 그러니까 그 접점은 어느 순간에는 이 공에, 또 다음 순간에는 저 공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이 공, 저 공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두 공이 맞닿아 있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두 개의 공이 맞닿아 있을 때 이 ‘두 개의 공은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요?”
“소박하게 표현하면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고 할 수도 있고…… 다시 말해서 접점이 끊임없이 운동한다고 할 수도 있고…….”
“더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요?”
“입체인 구(球)를 단순화해서 두 개의 원(圓)이 맞닿아 있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보기로 합시다. 이 때 두 개의 원은 한 점에서 만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접점이라는 말이 생겨났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위에서 우리는 ‘점은 끝(한계, peras)이 하나인 어떤 것을 말한다, 그리고 끝에는 크기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하나는 어떤 하나이든 크기가 없고 따라서 운동하지 않는다(정지해 있다)’는 말도 했지요?”
“예, 파르메니데스가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두 원 가운데 어느 하나를 다른 원 위로 굴려서 처음에 두 원이 맞닿아 있던 점까지 한 바퀴 돌린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때 한 원의 모든 끝은 다른 원의 모든 끝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맞닿는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유의 실험에서 우리는 아주 기묘한 결과를 얻게 되니까요.”
“무엇이 기묘하지요?”
“먼저 원 둘레의 모든 점은 한정된 것〔peperasmenon〕이므로 이 한정된 것의 집합도 역시 한정된 어떤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나 원주율을 측정하려는 현대 수학은 아직까지도 한정된 측정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반복되는 수의 계열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주율에는 한정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되풀이되지 않는 수의 계열이 무한히 연속된다는 것은 원을 이루는 곡선 안에 무한〔apeiron〕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요. 우리의 추론과 실제 측정치 사이의 이런 불일치가 기묘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거 참! 그건 그렇다 치고 다음으로 기묘한 결과는 어떤 것을 가리키지요?”
“점은 끝이고 크기가 없는 것이라는 정의가 맞다면, 크기가 없는 점을 무한히 더해 보아야 크기가 있는 어떤 것이 나올 수 없는데, 알다시피 선분〔line〕의 한 끝을 한 자리에 고정시켜 놓고, 다른 끝을 고정된 한 끝과 같은 거리로 움직여서 드러나는 자취를 그린 원은 크기를 갖게 되거든요. 크기는 없지만 서로 맞닿아 있는 두 개의 점을 가지고 실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크기가 없는 것에서 크기가 나온다는 것이 기묘하지 않습니까?”
“이거야 뭐. 야바위 노름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선생님 말씀을 드러내 놓고 야바위 노름으로 몰아붙이기도 그렇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당장 뭐라고 하기 힘든데요.”
“그러면 다시 한 번 접점의 성격을 살펴봅시다. 접점은 서로 맞닿아 있는 두 개의 점이지요?”
“그렇습니다. 아 참! 그렇고 보니 끝이 두 개 있으면 그 사이에 끝이 없는 것, 크기로 드러나는 것이 끼어들어 선분〔line〕으로 규정된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하셨지요?”
“기억을 해냈군요.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접점의 성격 가운데는 더 까다로운 무엇인가가 숨어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앞에서도 잠깐 비쳤지만 그걸 이른바 둘이 가지는 모순, 둘에서 생기는 원시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선 모순의 측면을 적극적인 것으로 원시 우연의 측면을 소극적인 것으로 나누어 놓고 생각해 봅시다. 먼저 두 점이 만나면 그 사이에서는 원초적인 공간 규정인 크기도 생겨나지만, 원초적인 시간 규정인 운동도 생겨난다고 귀띔했던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접점에서 만나는 두 점은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는 조금 앞서 했습니다. 그런데 만남, 관계의 성격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만 있다면 만남도, 관계도 없지요. 만남은 늘 둘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있는 것은 하나로 있고, 바로 하나라는 특성 때문에 사유의 공간에서도 벗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사유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없는 것 바로 그것도 사유의 대상이 아님은 거듭해서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있다, 없다고 하는 것, 있는 것, 없는 것이라고 일컫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닌 그 무엇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 잠깐만요. 그러니까 우리가 있다, 없다, 있는 것, 없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관계 속에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시간과 공간의 규정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되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임이 드러나는 측면을 보고 있는 것이라 하고 무엇임이 드러나지 않는 측면을 보고 없는 것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컴퓨터는 1과 0으로 드러나는 이진법(二進法) 체계를 써서 정보를 처리하는데 1과 0은 그 자체로서는 어떤 기능도 할 수 없습니다. 컴퓨터의 전원(電源)을 꺼 버리면 컴퓨터 안에서 1과 0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이에 따라 컴퓨터 화면에 떠올랐던 모든 정보는 눈 앞에서 사라집니다. 우리가 앞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했듯이 1(하나)을 있는 것으로 보고 0을 없는 것으로 보면 모든 정보의 체계는 바로 이 1과 0을 관계 맺어 주는 ‘운동’(이 말을 1과 0의 만남에서 생겨나는 운동이라고 불러도 됩니다.)에서 세워진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어떤 사물의 끝(겉이라고 불러도 좋고 갓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이 세 낱말─끝과 겉과 갓은 같은 말에서 나왔으니까요.)을 보고 그것이 무엇임을 알고, 그 무엇인 것을 있는 것이라고 부르고, 그 사물의 안(끝도 갓도 겉도 없는 측면)은 보이지 않으므로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까 무엇임이 드러나지 않는 이 측면을 가리켜 없는 것이라고 흔히 부른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겉과 속, 안과 밖, 끊어진 데와 이어진 데가 있는 모든 것은 관계 맺음이 드러나는 한 방식이며, 이 방식을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기와 운동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관계에서 공간 규정과 시간 규정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있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인 것, 다시 말해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이고, 없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늘 이 세상에는 진짜로 있는 것도 없고 진짜로 없는 것도 없다고 주장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시지요?”
“이를테면 나 윤구병은 윤구병으로서는 있는 것이지만 나 밖의 다른 모든 사람으로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윤구병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그물코에 얽혀 있는 관계의 산물이라는 뜻이지요.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적으로 여기 있는 것은 저기 없는 것이고, 저기 있는 것은 여기 없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없는 것인데 지금 있는 것인 현재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을 형성합니다. 내가 시간과 공간을 비롯해서 여럿과 운동으로 드러나는 삼라만상 모두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이름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여기에 있지요.”
“선생님은 없는 것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이 시공간에는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은 빠진 것이 있다는 말과 같다고도 하셨지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없는 것은 빠진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없는 것이 갖는 특성 가운데 두드러진 것 하나가 바로 빠진 것, 결핍이지요.”
“그런데 빠진 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 지금 없는 것을 가리키거나 어느 자리에 있는 것이 다른 자리에는 없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빠진 것이 있다는 말은 있을 것이 없다 함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있을 것은 반드시 과거에 있었던 것만을 가리키거나 지금 있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지만 머지않아 있게 될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고 아무 데에서도 눈에 띄지 않지만 거시 세계나 미시 세계의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요.”
“아무튼 빠진 것은 무엇인가가 없음을 가리키는데 그 무엇은 있는 것을 가리킬 터이므로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 꼭 없음, 곧 허무의 실재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자, 우리 여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썼던 낱말들을 다시 한 번 달리 규정하고 들어갑시다. 그 동안 나는 일부러 있음이나 없음 같은 낱말을 쓰지 않으려고 애써 왔습니다. 우리 말에서 있음이나 없음을 하나의 개념어로서 쓸 경우에 자연스러운 우리말 질서를 깨뜨리는 흠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사이에 존재나 무(이런 말 내가 무척 싫어하는 까닭은 이미 밝혔지요?)의 여러 층위에 관해서 혼동이 있는 것 같으니, 앞에서 우리가 있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했던 것을 있음으로 고쳐 부르고, 아예 없는 것이라고 불렀던 것을 없음이라고 바꾸기로 하지요. 앞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이 있음이나 없음은 우리의 사유 공간 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있음이나 없음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있음이나 없음을 두고 우리는 있다, 없다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 있는 것인데, 생각은 사유의 공간에서 성립하는 것이므로, 이 공간을 벗어나는 것은 도무지 입 밖에 나올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주장대로라면 있는 것 바로 그것이나 있음이나 아예 없는 것이나 없음 같은 말도 존재나 무의 실상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수 없겠네요.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고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것을 근거삼아 이런 논의를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말도 맞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있다, 없다는 말을 빼 놓고는 여럿과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상계를 의식에 제대로 반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뿐만이 아니에요. 있다, 없다는 말은 모든 인류의 사유에 바탕이 되는 기본 언어예요. 에이나이(einai)가 없는 그리스 말, 에세(esse)가 없는 라틴어, 에트르(etre), 비(be), 자인(sein)이 없는 불어, 영어, 독일어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언어학자들에게 우리말 있다, 없다에 해당하는 말을 일상 언어에서 빼놓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 공동체가 어디 하나라도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내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존재론이 인식론이나 가치론 같은 철학 분야의 기초가 되는 까닭은 바로 있다, 없다는 말, 그리고 그 말이 반영하는 사유 체계의 주춧돌 위에 철학, 과학, 상식…… 이 모든 것의 기둥과 벽과 지붕과 창틀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의식이 어떤 경로를 밟아서 추상의 최고 단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이 개념을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가장 자주 쓰는 낱말로 삼았느냐를 밝힐 수 있느냐인데, 나로서는 아직 이 수수께끼를 풀 능력이 없어요.
다만 있다, 없다는 말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하기에 앞서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말이고, 이 주어진 말의 통로를 따라 우리의 생각이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은 이 말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만 밝히기로 하지요.
어쨌건 있음이나 없음은 우리 생각 속에 들어와 우리 사유의 가장 넓은 테두리를 이룹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이 울타리 안에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의 의식 공간에서 있음과 없음이 관계를 맺으면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있음은 여러 하나인 있는 것들로 분산되고 없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는 하되 없다는 규정 아닌 규정을 받아들이는 어떤 것으로 바뀌어 나름으로 있게 되고 있는 것으로서 어떤 힘을 지니게 됩니다.”
“선생님이 우리의 사유 속에 있는 것이든 현실 세계에 있는 것이든 있는 것, 또는 없는 것으로 규정되는 모든 것은 실재하는 것도 실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닌 관계의 이름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려는 의도는 이해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있는 것, 없는 것으로 규정되는 여러 하나와 운동의 세계가 있음(하나)과 없음의 관계 맺음에서 비롯한다는 것도 받아들인다고 칩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럿과 운동 속에서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모두 상대적 규정일 뿐이고, 있는 것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없는 것이 있는 것과 다를 바도 없으며,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극단의 가능성까지도 인정할 수 있겠지요. 불교 경전의 하나인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則是空 空則是色)’이라는 말도 그런 뜻을 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관계를 맺어 순간순간 바뀌는 이 연기(緣起)의 세계에서 ‘늘 머무는 것〔常住〕’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덧없이〔無常〕 생겨났다가 없어졌다〔生滅〕 하겠지요.
그런데 관계라는 이 끝없는 흐름의 어느 측면을 어떤 방식으로 고정시켜서 우리는 있는 것이라 일컫고, 또 어떤 측면을 일컬어 없는 것이라고 부르지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어쩌면 우리는 이 논의를 통해서 의식이 저지르는 잘못 가운데 가장 큰 잘못인 실체화의 오류(이 끔찍한 말을 용서하기를!)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살아 있는 화석(化石) 언어라고 할 수 있는 한어(漢語)를 예로 들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 갈까 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한어에는 명사가 따로 있고 동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가 놓이는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명사가 되기도 하고 동사가 되기도 하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글자가 전체 문장의 어디에 자리잡느냐에 따라서 고정된 실체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운동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섣부르다는 욕을 먹을 셈치고 물리학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한 낱말의 위상을 관계 고리의 어느 측면에서 관찰하느냐에 따라 낱말의 입자성과 파동성이 그때 그때 달리 드러나는데, 이것은 관찰자의 위치에 탓이 있는 게 아니라 낱말과 그 낱말이 반영하는 객관 세계의 여러 있는 것 안에 그것들을 고정시키는 공간과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공간도 시간도 관계의 이름입니다. 공간이라는 관계의 그물 속에서 질〔quality〕은 저마다 따로 떨어져서 고정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간 관계 안에서 흩어진 모습으로 드러나는 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시간이라는 관계의 그물 속에서는 질들이 서로 엉켜 있습니다. 이를테면 앞에서도 예를 들었듯이 하나의 기타 줄에는 무한히 많은 소리들이 한데 엉켜서 이어진 음의 계열을 이루는데, 30센티미터의 기타 줄 안에 엉킨 채로 들어 있는 저마다 다른 이 소리들의 무한한 계열을 어떤 무모한 사람이 하나하나 따로 떼어 내어 공간 속에 늘어놓으려고 든다고 칩시다. 그 사람은 현악기의 줄을 건반 악기의 건반으로 바꾸려고 들 텐데, 이 경우에 30센티미터의 현악기 줄에 담긴 소리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담는 건반 악기의 건반 수는 무한할 수밖에 없고, 만일에 이 우주 공간이 유한하다면 그 건반 악기는 우주 공간을 다 채우고도 우주 밖에서 무한히 늘어놓이는 건반들을 주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모순되면서도 불가사의해 보이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겠습니까? 현상 세계의 모든 현상들을 공간 속에 좌표화할 수 있다는 사고는 이런 단순한 좌표화의 실험조차도 견딜 수 없는 무지몽매한 단순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로써 밝혀졌을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이 우주가 원자(편의에 따라 이렇게 부릅니다만 물질의 최소 기본 단위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겠습니다.)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대 원자론자들로부터 현대 물리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공유하고 있는 전제를 틀렸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자를 만들고, 그 자로 질과 양을 나누고 재는 일, 공간 축과 시간 축이라는 좌표를 만들어 차원을 설정하고 그 단순화된 차원 속에 삼라만상을 배치하는 일은 삶의 필요에 따라 사람의 의식이 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 텅 빈 공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진공’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든 질이 다 빠진 텅 빈 순수 공간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시간의 흐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이른바 ‘비가역적’이라는 말도 바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미 개념화한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이 우주는 서로 엉켜 있는 질〔quality〕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말을 더 단순화하면 이 우주(이 말도 개념입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실체는 없습니다.)에는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습니다. 이 우주는 일관된 사유의 법칙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진화의 방향을 두뇌 용량을 늘리고 두뇌 회로의 길이를 연장하여 의식이 성장하는 쪽으로 돌려 삶의 길을 찾은 인간의 경우에 떼를 이루어 살아야 한다는 사정도 겹쳐, 말하자면 흐르는 물을 하나하나의 물방울로 고정시키려는 소망이 싹텄습니다. 그 소망의 가장 명료한 표현은 옛 그리스인들의 의식 속에 못박힌 뒤로 지금까지 이 우주를 재는 바뀌지 않는 잣대 노릇을 해 온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또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바뀌지 않는 세계에는 참된 변화와 운동은 없습니다. 우주 안에 있는 이러저러한 것들은 바뀔 수 있으나 우주는 바뀌지 않습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이러한 세계관의 반영입니다. 우주는 있는 것을 대표하는 하나, 곧 영원불변한 하나의 단위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큰 단위가 설정되면 그 다음 일은 쉬워집니다. 그 큰 단위를 이루는 하부 단위들을 일정한 체계에 따라 설정하면 되니까요. 그리스 학문의 전통은 이것을 주춧돌로 삼아 세워졌고, 그 전통은 현대 과학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의심할 여지없는 전제 위에 서구 과학도 종교도 서 있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우주는 그 사람들의 우주고 당신들의 우주입니다. 내 우주에는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습니다. 거꾸로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내 우주에는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마찬가지 말입니다.
(p408~)‘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 장에서도 노동력의 가치〔즉 노동일 가운데 노동력의 재생산 또는 그 유지에 필요한 부분〕는 주어진 불변적 크기로 가정한다.’
‘가변자본은 자본가가 동시에 사용하는 모든 노동력의 총가치를 나타내는 화폐 표현이다. 그러므로 가변자본의 가치는 노동력 한 사람의 평균가치에 사용된 노동력의 수를 곱한 것과 같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다면 가변자본의 크기는 동시에 사용되는 노동자 수에 정비례한다. 이리하여 노동력 한 사람의 하루 가치가 1탈러라면 자본은 날마다 100명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는 100탈러를, n명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는 n탈러를 투하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1탈러의 가변자본〔즉 노동력 한 사람의 하루 가치〕이 하루에 1탈러의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면, 100탈러의 가변자본은 매일 100탈러의 잉여가치를, n탈러의 가변자본은 매일 1탈러×n의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따라서 생산된 잉여가치의 양은 노동자 한 사람의 1노동일이 제공하는 잉여가치에 사용된 노동자 수를 곱한 것과 같다.’
‘생산된 잉여가치의 양은 투하된 가변자본의 양에 잉여가치율을 곱한 것과 같다. 바꾸어 말해서 그것은 한 자본가에 의해 동시에 착취당하는 노동력의 수와 개별 노동력의 착취도를 합한 비율에 따라 정해진다.’(424, 425쪽)‘가변자본이 감소하더라도 동시에 같은 비율로 잉여가치율이 증가한다면 생산된 잉여가치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
‘가변자본의 감소는 노동력 착취도의 비례적인 증가로 상쇄되고 또 사용노동자 수의 감소는 노동일의 비례적 연장으로 상쇄될 수 있다. 따라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자본이 짜낼 수 있는 노동의 공급이 노동자의 공급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거꾸로 가변자본의 크기〔또는 사용노동자 수〕가 비례적으로 증가할 때는, 잉여가치율이 감소하더라도 생산되는 잉여가치의 양은 변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 수나 가변자본의 크기를 잉여가치율의 증가 또는 노동일의 연장을 통해 보전하는 데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426쪽)
‘원래 언제나 24시간보다 짧은 평균노동일의 절대적 한계는 가변자본의 감소를 잉여가치율의 증대로써 상쇄하거나 착취당하는 노동자 수의 감소를 노동력 착취도의 증대로 보전하는 데 절대적인 한계를 이루고 있다. 이 명약관화한 제2의 법칙은 위에 논의할 자본의 경향, 즉 자본이 고용한 노동자 수 또는 노동력으로 전화하는 가변자본 부분을 될 수 있는 한 축소하려는 자본의 경향 〔다시 말해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려는 자본의 또 다른 경향과는 모순되는 경향〕에서 발생하는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제3의 법칙은 생산되는 잉여가치의 양이 잉여가치율과 투하된 가변자본의 크기라는 두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 된다는 점에서 나온다. 잉여가치율〔또는 노동력의 착취도〕이 주어져 있고 또 노동력의 가치〔또는 필요노동시간의 길이〕가 주어져 있다면, 가변자본이 커지는 만큼 생산되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양도 커진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노동일의 한계가 주어져 있고 그 필요노동 부분의 한계도 주어져 있다면 한 사람의 자본가가 생산하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양은 명백히 그가 운용하는 노동량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그런데 주어진 가정 아래에서 이 노동량은 그가 착취하는 노동력의 양〔또는 노동자 수〕수에 따라 정해지고 그가 투하하는 가변자본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을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눈다. 한 부분을 그는 생산수단에 지출한다. 이것은 그의 자본 가운데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다른 한 부분을 그는 살아 있는 노동력으로 바꾼다. 이 부분은 가변자본을 이룬다.’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고 노동력의 차구치도가 같을 때는, 이들 각 자본에 의해서 생산되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양은 이들 자본의 가변 부분〔즉 살아 있는 노동력으로 전화하는 부분〕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이 법칙은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경험과는 명백히 모순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어떤 방적업자가, 사용된 총자본의 백분비를 기준으로 불변자본에 비교적 높은 비율, 가변자본에 낮은 비율을 사용하는 제빵업자 보다 이익이나 잉여가치를 적게 얻는 것은 아니다.’(427, 428쪽)
‘한 사회의 총자본에 의해서 날마다 움직여지는 노동은 하나의 단일한 노동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노동일의 한계가-육체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주어져 있다면, 잉여가치의 경우에는 인구의 증대가 사회적 총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생산의 수학적 한계를 이룬다. 거꾸로 인구의 크기가 주어져 있다면, 이 한계는 노동일을 얼마나 연장할 수 있는가에 의해서 주어진다.’(429쪽)‘가변자본의 최소한은 1년 동안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노동력 한 사람의 비용가격(Kostempreis)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어느 정도 고도화되려면 자본가가 자본가〔즉 인격화된 자본〕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전 기간을 타인의 노동에 대한 취득과 통제, 그리고 이 노동의 생산물에 대한 판매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430쪽)
‘한 사람의 화폐소유자나 상품소유자가 자본가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할 최소가치액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지며, 또 주어진 발전단계에서도 각 생산부분의 특수한 기술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경우에는 콜베르 시대의 프랑스나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몇몇 독일 지방에서처럼, 이런 산업분야에 종사하는 사적 개인들에 대해서 국가보조금이 지급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특정 산업부문이나 상업부문의 사업에 대해 법적으로 독점권을 갖는 회사-이것이야말로 근대적 주식회사의 선구이다-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본은, 타인의 노동을 만들어내고, 잉여노동을 수취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점에서 직접적 강제노동(direkter Zwangsarbeit)에 기반 하는 그 이전의 모든 생산제도에 비해 그 정력이나 무절제함 그리고 그 효과에서 이들을 훨씬 능가한다.
자본은 일단 역사적으로 주어진 기술적 조건들에 기초하여 노동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따라서 자본은 직접적으로 생산양식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431, 432쪽)
‘생산수단은 이제 타인의 노동을 흡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뀐다. 이제는 더 이상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노동자를 사용하게 된다.’
‘용광로나 작업장이 야간에는 문을 닫고 살아 있는 노동을 흡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본가에게 ‘순손실’(mere loss)이다.’
‘자본주의적인 생산에만 존재하고 또한 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전도(轉倒), 즉 죽은 노동과 살아있는 노동 〔즉 가치와 가치창조력〕 사이의 관계가 서로 자리를 맞바꾸는 현상이 자본가의 의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433쪽)
‘말하자면 방추에 포함되어 있는〔즉 방추의 생산에 필요한〕노동뿐만 아니라 방추의 도움으로 날마다 페이즐리의 부지런한 서부 스코틀랜드인들에게서 빨아들이는 잉여노동까지 판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노동일을 2시간 줄이면 방적기 12대의 매각 가격도 10대 값으로 줄어들어버린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434쪽)
사각거리는 빛은 꿈을 담고
흥얼거리는 빛은 우리의 마음을 잠식한다.
고요하고 고요한 침묵의 방은 어둠을 헤치고
새롭게 뜨는 태양을 향해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갈구한다.
빛은 소리없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하얀 빛은 똑하고 물보라를 일으키고
어둠은 사랑스럽게 빛에 의해 더더욱 찬란해져 빛으로 빛난다.
쉽게 내어주는 우리의 시간은 어둠과 빛의 무지개빛 공기로
가득해져 간다.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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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단하고 힘든 2015년 청양띠의 을미년(乙未年) 해가 저물어 가고
2016년 병신년(丙申年) 원숭이띠의 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해 봅니다.
2016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신년회 일정을 알려 드립니다.
일시 : 2016년 1월 14일(목) 오후 3시
장소 : 서교동 태복빌딩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신년회의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에 다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2년 간의 한철연 연구협력위원회 4기의 활동이 다 마무리되고
2016년 새해부터는 5기의 새로운 연구협력위원회가 구성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4기 연구협력위원회를 음으로 양으로 응원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회원 여러분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회원 여러분!
남은 올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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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머리는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을 훔치는 기타가 되고
나의 검은 상상은 희망으로 넘치는 목이 기다란 술병이 되고
나의 두 다리는 바다를 항해하는 검은 고래의 꼬리가 되고
나의 얼굴은 영원한 우주를 무한히 헤엄치는 비행기가 되고
나의 입은 복슬복슬 먹이를 찾는 절실하지도 않은 부리가 되고
그렇게 절실하고도 절실하지도 않은 나의 두 눈에 반짝이는 우주를 반짝반짝 담는다.
우리는 무엇을 닮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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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첫사랑은 그것이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때에 아름답다. 그것의 과거 시제가 현재를 침범할 때,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비루한 현재만 부각된다. 피천득은 <인연>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뜬금없이 철학 웹진에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드라마들에 등장하는 이상 징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첫사랑은 불치병이나 출생의 비밀 못지않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치병, 출생의 비밀, 재벌가 실장님 등이 등장할 때 사람들이 보이는 짜증섞인 반응에 비교한다면, 첫사랑은 늘 모두를 설레게 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단골 소재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몇년 간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첫사랑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예전과는 좀 다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첫사랑 드라마 <겨울연가>의 경우만 해도, 고등학교 시절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십여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충분히 납득할만 하다. 다만 거의 서른이 된 주인공들이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과의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매우 놀라워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부 시절의 일들도 매우 어렴풋하게 중요한 몇몇 장면들만 기억날 뿐, 그렇게 생생한 강도로 선명하게 디테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몇 년만 지나도 요새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뭐, 기억력의 경우 개인차가 심할 수 있을테니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드라마들은 뭔가 수상하다. 첫사랑의 나이가 아주 어려졌다. 첫사랑인지 아닌지도 잘 분간하기 힘들만큼 어린 시절, 초등학교나 심지어는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로 연령대가 낮아졌다.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그녀는 예뻤다> 역시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15년만에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몇 달 전 방영되었던 <킬미 힐미>에서는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만나서 함께 지내던 아이 둘이 트라우마로 둘 다 그 시절 기억을 잃어버렸으나 뭔가의 끌림으로 다시 시작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였다. 그와 동시에 방영되었던 비슷한 소재의 다중인격을 다룬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서도 10대 초반 시절의 강렬한 인연이 바탕이 되어 성인이 된 주인공들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현재 방영중인 조선 건국을 다룬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이방원 (유아인) 과 러브라인을 형성하게 되는 분이 (신세경)의 인연 역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온 주인공들의 사랑 (<풍선껌>, <너를 사랑한 시간>, <로맨스가 필요해 2012>)의 경우에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첫사랑 아니면 무엇인지 확인하기 힘든 인연이 성인이 된 이들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드라마적 요소로 등장한다. (작년 드라마 <힐러>의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이 외에도 아마 당장 기억나지 않는 드라마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이야기를 시작하기엔 충분할 만큼 많다.
고백하건대, 나는 드라마 매니아이다. 거의 종류를 막론하고 왠만한 건 다 본다. 영화 철학을 연구하는 필자가 온갖 드라마들을 매일 본다고 이야기하면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유치하고 식상한 클리쉐들로 가득 찬 수준낮은 드라마를 아방가르드한 영화를 연구하는 인간이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곤 한다. 사실 드라마는 나에게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복잡한 철학적 미학적 논의들과 피곤한 세상사를 잊게 해주는 마취제이자, 머리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비워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치하고 빤한 클리쉐들도 나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즐거운 드라마들이 이상한 징후들을 내뿜으며 나에게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첫사랑 판타지가 꼭 미취학 아동 시절, 아니면 최소한 청소년기 이전에 이루어져야만 그 순수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시절의 첫사랑은, 요즘 아이들의 조숙함을 생각한다면 너무 늦은 때묻은 사랑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중년의 사랑이나 노년의 사랑은 뭐란 말인가. 흉측하게 때묻은,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냥 그런 너저분한 남녀상열지사란 말인가? 아, 이건 뭔가 불편하고 불쾌하다는 생각이 넘실거린다. 개개인에게 있을법한 원형적인 첫사랑의 기억은 물론 소중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집착은 ‘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랑 역시 어차피 일종의 정신병 아닌가. 이런 개운하지 않은 기분은 그저 이 사회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중년이나 노년을 배제하고 있다는 그런 에이지즘(Ageism)적 차별 때문일까 라고도 생각해 보았으나,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첫사랑에의 집착은 그렇다고 보기엔 도가 지나치고 뭔가 더 이상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이 현상에 대해 이렇게 원인을 말했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피상적인 인간 관계만을 맺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신뢰하고 사랑할 만한 대상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맞는 말일 것 같다. 이런 측면 역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어투를 빌어 표현하자면,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뭔가 그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고 말해야겠다.
대체 뭘까? 가끔씩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현듯 ‘그 이상한 기운’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왜 지금 알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때문이었다. 99 퍼센트의 국민을 좌파로 몰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을 좌편향 빨갱이로 몰고 있으며, 국정화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없다고 하는 이 황당하고 끔찍한 메카시즘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점이 바로 나로 하여금 ‘그 이상한 기운’을 파악하게 만들었다. IMF 이후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경제 침체와 경제적 불안정은 정치적 보수화를 가속화시켰고, 그 결과 우리 모두가 맞닥뜨리고 있듯 현 정권은 역사의 시계를 1970년대로 되돌리고 있다. 국정화 문제는, 우리집 아이의 표현을 빌자면, ‘박근혜의 공약대로 전국민을 대통합시키고 있다’고 할 만큼 보수와 진보를 넘어 모두가 반대하는 문제임에도 강행시키는 저 대담함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추친력 아니던가. 모두가 다 아는 이런 시국에 나는 왜 첫사랑 드라마들 이야기나 하고 있는 것일까. 첫사랑에의 집착이라는 전국민적 정서가 혹시 박정희에 대한 첫사랑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대통령이라는 중요한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박씨 왕조의 공주로 인식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선택한 국민들의 선택은 박정희의 경제 성장에 대한 첫사랑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야 현재의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 여자가 대통령으로 뽑힌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 아닌가. 결국 국민들이 선택한 것은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이다. 박정희라는 첫사랑에 대한 집착이 결국은 박근혜 정권이라는 시대착오적 결과를 자아낸 것이다. 정치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첫사랑이라는 과거의 판타지에 대한 집착이 현재를 갉아먹는 것이 2015년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니. 이 첫사랑 판타지에 대한 집착은 더 이상 순수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이것은 병이다. 특히나 10세 이전의 첫사랑에 대한 집착은, 현재의 이상한 기운 속에서 박정희라는 판타지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생각하니, 그저 병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점잖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집착이 너무나도 강해서 이는 음란한 도착증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10세 이전에 만났던 첫사랑 꼬마아이는 그 사이 많은 세상 풍파를 겪으며 더 이상은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며 나 역시 그 때의 내가 아니다. 6-70년대 경제를 살렸다는 (물론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그냥 군말없이 일단은 인정하기로 하자.) 박정희 정권이 가고 우리나라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그때의 상황과 조금도 같지 않다. 이러한 모든 중요한 세상사의 변화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기억 속 판타지의 대상에 집착하는 것은 거의 시체애호증(necrophilia)이나 소아성애자(paedophilia)의 변태적 도착증과 너무나도 유사하지 않은가. 징그럽다. 소아성애증 말이 나온 김에 최근의 아이유 ‘제제’ 논란이 떠오른다. 아이유의 해석이 소아성애를 부추기므로 음원을 폐지하라는 사람들이 3만명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다. 소아성애증의 대상이어야 하는 아이유가 그 시선의 관계를 뒤집자 광분하는 꼴이라니.. 진정 사회에 해로운 도착증 환자들은 저기 다른 곳에 있는데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럼 과거는 다시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그런 대상인가? 아니다. 우리는 늘 그 과거의 영향권 하에서 살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과거는 현재의 우리를 규정한다. 과거는 그저 아무 쓸데 없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굳이 철학자들의 이름과 논의들을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과거는 현재 속에 공존하고 있으며 현재를 규정하는 막강한 존재론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거를 현재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면하고 인식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첫사랑이든 아니면 과거사이든 간에. 왜 우리 사회는 지금 과거를, 그것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과거를 현재에 아주 음란한 방식으로 반복하게 되었는가. 이 무슨 징그러운 반복강박인가. 어린 시절의 첫사랑에의 실패를 계속 반복하는 강박적 증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 그 원인 역시 과거에 있다. 지금껏 우리는 과거를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의 개념을 조금 이용한다면, 과거에 대해 제대로 된 애도(mourning)를 하지 않은 탓일지 모른다. 첫사랑을 잃고 엉엉 울며 소주잔에 의지하는 것만이 애도는 아니다. 데리다에게 애도란 그저 지나간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애도란 과거를 현재에 불러내어 정당하게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 과거와는 다른 변화된 미래를 여는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는 과거를 정당하게 대우한 적이 없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행위를 한 인물들은, 조선시대식 어휘로 표현한다면 역모를 꾀한 것이고 이는 3대를 멸해야 하는 중죄이거늘, 우리는 그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챙긴 부와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놔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군정기의 혼란과 미국의 이익 때문에 시작이 되었건, 일본에 혈서로 충성을 맹세했던 전직 일본군이 나라를 18년이나 통치했던 이유 때문이었건, 그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건 간에 말이다. 바로 그 자손들이 이제 자신들의 더러운 과거를 맑고 깨끗하게 세탁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계속하여 유지하고 강화할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 그들에게 과거는 그 어떤 현재의 반대보다도 강력한 현재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4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닥터 후(Doctor Who)의 타임머신 타디스(Tardis)도,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의 드로리안(Delorean)도 없는데 우리 모두가 원치않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 하수상한 도착적 정권은 전 국민을 원하지도 않았던 시간여행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의 시간을 어떻게 1970년대가 아닌 2015년으로 재조정할 것인가. 데리다가 말하는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은 대체 어떻게 열 수 있다는 말인가. 뻔한 답이지만 우리의 과거를 절대로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도 세탁하고 싶어하는 얼룩진 과거를 제대로 활짝 펼쳐서 김치국물 얼룩 하나까지도 모두가 볼 수 있게 하고, 그에 대해 정당한 대우 (doing justice)를 해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아마도 페티쉬라 할 수 있을만한 첫사랑에 대한 도착적 정신병은 음란함의 정도를 넘어 우리 나라 자체를 거대한 폐쇄 정신 병동으로 변하게 만들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는 박씨 가문의 인물들을 현재까지 두 번 만났다. 피천득의 인연을 다시 떠올린다면, 우리에게 한번의 기회가 더 있는 것이다.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인 세번째 만남은 결코 성사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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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의 논의에서 금은 화폐상품으로 간주한다.
금은 모든 상품에 대해 질적으로 동일하고 양적으로 비교 가능한 가치표현의 재료로, 즉 가치의 일반적인 척도로 기능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단위 측정의 근거가 금이 화폐라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주지하고 있는 사실, 모든 상품에 내재한 공통적 속성 – 상품에 대상화된 인간노동- 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금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상품이 대표적인, 공통적인 가치척도인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가치척도로의 화폐를 가치척도의 필연적인 현상 형태로 생각해야 한다.
화폐가 가치척도로 기능함에 따라 늘어서있던 상품의 행렬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금이라는 화폐와 상품의 비교만이 남는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단순한 또는 개별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의 모습을 띠고, 전개된 상대적 가치표현은 화폐상품의 독특한 상대적 가치형태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그 가치형태의 모습은 ‘상품의 가격’이라는 형태로 사회에 출현한다. 다만, 화폐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화폐가 다른 상품들을 상대로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등가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어 반복적 관계일 뿐이다.
이제 화폐와 가격의 문제에 대해 고려해본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가격 또는 화폐형태는 상품의 가치형태 일반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가치는 상품에 내재하며, 그것을 가치척도로 재고자 할 때 관념적인 금과의 상상된 관계에 의해 표현된다. 상품의 주인이 자신의 상품가치에 가격이라는 형태를 부여한다 할지라도, 아직 그의 상품이 금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상품의 가치는 여러 크기의 상상적 금량이라는 동일한 명칭의 양으로 전환된다. 다만 상품의 가치를 배제한 채, 척도로의 가격이라는 사회적 형태만을 고려한다면 가격의 문제는 “화폐 재료”로부터 비롯한다. 즉, 특정상품의 가치는 동일한 양의 노동량을 포함하는 상상 속의 화폐상품의 양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유통되는 화폐상품의 재질이 복수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상품만이 가치척도로의 지위를 유지한다. 이중의 가치척도가 가치척도의 기능과 모순 된다는 것이다. 이제 금이 가치척도로의 견고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금량을 가치들의 도량단위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도량단위는 세부적으로 분할된 도량표준으로 발전한다.
결국, 지금까지 고찰한 화폐의 기능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으로, 가치를 측정하는 가치척도로의 기능이며, 또 하나는 고정된 무게라는 속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금의 양을 측정하는 도량표준으로의 기능이다. 맑스가 보기에 화폐형태를 고려할 때 우리는 이 두 기능을 분리해서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화폐가 도량표준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도량을 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동생산물로의 금 역시 잠재적으로 가변적인데, 이는 금이 가치척도가 되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 (가치가 전환된 형태인) 여러 가치의 금량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상품가격이 오른다면, 그것은 나머지 요소들은 고정된 상태에서 상품가치가 올랐거나,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이고, 상품가격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상품가치가 내렸거나, 화폐 가치가 오른 것이다. 금의 가치가 변해도 도량표준으로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는 없는 셈이다.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문화적, 관습적 요소들에 의해서 화폐의 명칭이 그 무게 명칭으로부터 분리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결국 도량표준의 화폐명칭은 실제 무게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이름을 획득하고, 법률에 의해 규제된다. 이제 “1쿼터의 밀은 1온스의 금과 가치가 같다”고 표현하지 않고, “3파운드 17실링”의 가치가 있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3파운드 17실링”이란 것은 그러한 가격을 가진 상품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물의 명칭은 사물의 성질과 관련성을 가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폐의 명칭들에서 우리는 상품의 가치 관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없다. 가격은 상품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의 화폐명칭이기는 하지만, 그 외현된 이름으로부터 가치관계의 논의를 시작할 수는 없다. 나아가 화폐형태와 상품 사이의 관계를 단순한 상대적 가치형태와 그것의 등가형태의 표현으로 간주하기도 어렵다. 즉, 가격이라는 형태는 상품의 가치와 더불어 수요/공급 등의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변화되어 출현하기에, 상품가치량의 지표로의 가격은 상품과 화폐 교환 비율의 지표이나,
그 역의 관계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동일한 이상, 사회적 노동 시간이 동일하다면, 그 상품의 가치량은 동일하게 상품에 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격으로 사회적으로 외화된 형태로 출현할 때는 사회적 조건이 그 거울 관계를 왜곡시킨다. 결국, 가격과 가치량 사이의 양적 불일치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가격 형태에 내재하는 것으로 이 질적 모순은 거의 언제나 존재한다. 가격형태만을 가지지 가치가 없는 것(양심, 명예), 상상적 가격형태(미개간지) 등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상품이 그 가치를 고려할 때, 현실의 물질적 형태에서 벗어나 상상의 금과 비교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때의 금은 관념적인, 상상적인 금이지만, 주인이 상품에 가격이라는 형태를 부여하길 원한다면, 상품이 등가물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상의 금은 실제의 금으로 대체되어 출현해야 한다. 사실상 관념적 가치 척도에는 hard cash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금이 현실의 금으로 전환되는 순간, 노동생산물이라는 가치 형태가 그것이 그대로 반영되기보다 필연적으로 변형되어 ‘가격’이라는 모습을 가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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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
삶은 깊은 것도 얕은 것도 아닌 중간 사이다.
깊어질 것 같은 가을 위에 어느 사이 옅어지는 겨울이 하나둘씩 쌓이고
우리의 추상의 모호함은 눈 위에 소복히 쌓인다.
소리없는 외침의 갈망은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는 발자국을 남기고
남겨진 발자국 위에 흰 북소리가 덮는다.
표현할 수 없는 공기를 가두어 공기라고 하고
온데 간데 없는 흔적은 흔적조차 없는데 흔적이라고 하고
우리는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를 닮았다.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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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배준(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분단과 전쟁으로 귀결된 ‘가능성의 역사’
1945년 이후 육십갑자가 지나고 십년이 더 흘렀다. 당시 한반도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날’은 일제로부터 ‘해방(解放)’되었다는 환희를 느끼기에 충분했지만, 점령군이 된 강대국들 사이에서 민족의 미래를 온전히 우리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감도 엄습했을 것이다. 식민지 상태를 벗어났더라도 진정한 주권을 확보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까지 예상되는 수많은 난관을 짐작해보면 그들에게 진정한 광복(光復)은 요원했으리라. 그런데 정부는 올 해가 ‘광복 70주년’임을 강조하면서도 그 숫자가 동시에 ‘남북분단의 역사’를 가리킨다는 것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8.15 해방 이후 정확히 3년이 되는 날에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즉 적대적 분단시대가 도래하기까지 한반도의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이념들의 정글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암울한 식민지 터널의 끝에서 염원하던 해방이 도래했지만, 우리는 왜 분단이라는 또 다른 터널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처럼 독립의 완결과 분단의 극복은 서로 중첩되고 연결된 역사적 과제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남아 있다. 친일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에서 후대 세대에게 민족국가의 진정한 독립을 운운하기가 어렵다면, 진정한 광복 역시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되는 한 완수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한국만의 관점에서 거칠게 요약하자면 ‘건국․압축성장․민주화’의 과정이겠지만, 한반도 전체로 보자면 그것은 곧 ‘분단․전쟁․적대적 대립’이 낳은 구조적 산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통일된 민족 국가의 건설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 다른 두 체제로의 분단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해방 후 3년’은 남북이 각각 성공한 ‘건국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분단으로 귀결되고 만 ‘실패의 역사’이다.
그런데 이 책의 필자(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는 그 실패의 역사에서 ‘가능성의 역사’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는 “해방 후 3년은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었고,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었”던 시기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 해방공간의 이야기 속에서 미래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안에 일치된 노선이나 어떤 합의점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마다 신봉하는 가치를 절대시하고 너무나 다른 민주주의‘들’을 말했으면서도 그 실패의 역사에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지향했던 강렬한 열망이 숨어 있다. 그런 점에서 그 혼돈의 과정은 각 민족 지도부의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또는 점령군의 전횡과 억압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곳곳에서 야만적 폭력이 횡행했지만, 적어도 당시는 개인적 삶과 정치공동체의 혁신을 함께 꿈꿀 수 있을 정도의 희망은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조국을 ‘헬(hell) 조선’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젊은이들이 태반인 2015년의 한국에서 그 시대가 품었던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위한 희망”은 간절하게 그리운 것이다.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율 세계 최저’로 대변되는 오늘날 한국 청년 세대들의 절망적 시대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는 단지 정권교체로 일어나는 역사적 진보나 퇴행의 수준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인민들과 정치공동체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미래 전망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통합을 말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뜬 구름 잡는 얘기로 간주되고, 국가 시스템은 위급한 상황에서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주고, 정치는 혐오나 냉소의 대상이 되어 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른바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 찬란한 ‘광복 70년’의 해에 한국현대사의 출발점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7인의 민족지도자, 그들의 선택과 분열의 한계
필자는 해방 후 정치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7명의 민족지도자들, 즉 여운형, 박헌영, 송진우, 김일성,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 어떤 정치적 열망 혹은 야망을 표출하며 새로운 국가의 건설로 나아가려 했는지를 추적한다. 필자는 이 7명의 언급 순서는 “해방 후 활동을 개시한 순서나 귀국한 순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하는 각 세력의 제반 조건 및 활동 방향의 배경과 그 결과를 요약하며,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종료 시점까지 즉, 분단으로 가는 폐쇄회로에 갇히기 전까지 그들의 ‘차이’를 강조한다.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을 미리 준비하며 자주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국내에서 노력했던 여운형, 일제강점기 한국 최고의 공산주의 이론가이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였던 박헌영, 국내 우파 민족주의 세력을 대표하던 송진우, 항일무장투쟁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이름을 떨치던 소련군 장교 출신의 젊은 지도자 김일성, 미군정의 적극적인 후원을 이끌어내며 급부상하고 있었던 이승만, 임시정부를 이끌며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세력을 대표하던 김구, 중도우파 입장을 대표했던 김규식의 존재는 오늘날의 한반도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을 대변한다.
물론 이 책은 서술 과정에서 때로는 논리적 비약이나 압축을 부득이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제한된 분량의 대중교양서에서 각 인물들의 성취와 한계를 분명히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보다 저자가 더 경계하고 있는 점은 ‘해방 후 3년’은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시각이다. 냉전의 서막을 알리며 한반도에서 맞붙은 두 강대국 사이의 힘겨루기 속에서 어떻게 분단을 피할 수 있었겠냐는 논리이다. 미소의 분할 점령과 모스크바 3상회의, 미소공동위원회 등 세계 질서 재편의 흐름 속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도 그저 강대국 입장의 대리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비록 그 ‘세계 체제의 규정력’이 막강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해방 후 3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미․소가 만든 세계 질서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면서 하나하나 소중하게 만들어간 역사”라고 강조한다.
여러 단체와 조직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상을 지향하며 난립하며 경쟁하던 당시 상황에서 저자는 민족통일국가가 수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점으로 정당통일운동과 정부통합이 시도되었던 해방 이후의 4개월여 시간을 꼽는다. ‘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라는 상설 회의기구가 만들어졌던 데에서 보듯이 당시 단일한 정치적 의결기구를 건설하기 위한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좌우익으로부터 조정자 역할을 위임 받게 된 이승만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우익인사로만 채우면서 이 정당통일운동의 성과와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그 후 중경 임시정부와 조선인민공화국의 좌우익 ‘통일합작운동’이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큰 뜻으로 화합하지 못하고 단기 정략적인 입장만을 내세운 각 세력의 태도로 인해 역시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또한 신탁통치에 대한 격렬한 입장의 대립 이후 한국민주당, 국민당,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이 참여한 ‘4당 합의’도 우익 정당들의 중도이탈로 수포로 돌아갔다. 여운형과 김규식으로 대변되는 좌우세력이 다시 만났던 ‘좌우합작운동’에서도 박헌영이 주도한 좌익 세력의 비타협적인 입장은 걸림돌이 되었다.
이처럼 통합된 힘을 창출하지 못했던 연속된 분열과, 지리멸렬하게 소멸해 버린 자생적 정치역량의 표출 가능성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민족의 역량이 결집될 수 있었던 기회의 상실을 탄식한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공전되면서 ‘예정된 미래’로서의 분단이 다가올 때,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쳐 합의를 종용했다면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각 세력의 합치된 의견이 단일한 정치력으로 승화되었다고 해서 극동지역에서 맞붙은 세계체제의 강고한 규정력을 극복할 수 있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역사적 성과는 이후의 분단 극복 과정과 통일의 전망을 위해서 중요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추측해볼 수 있다. 당시 이념적 대립을 넘어 민족적 합력이 단기간이나마 창출될 수 있었다면, 외세의 영향이나 체제의 통합보다 사람들 사이의 통합이 분단 극복의 과정에서 최우선이라는 민족적 가치가 명징하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자마자 미소의 동아시아 전략에 종속된 극단적 이념 지향의 미로 속에서 전선의 최전방이 된지 2년도 채 안 되어 잿더미가 되었다.
대한민국 탄생 시기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이런 점에서 해방 후 3년은 오늘날 세습 통치와 수령론에 근거한 극단적 폐쇄사회인 북한 체제와, 반세기 넘게 친일친미기득권 세력의 후예들이 건국세력의 적통을 참칭하며 여타의 다른 세력을 ‘좌빨종북’으로 매도하는 한국정치사의 근원적 모순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건전한 보수 민족주의 세력, 열려 있는 사회주의 세력, 중도좌․우 세력 등이 한반도의 정치 지형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되고, 극단적인 체제경쟁과 적대적 군사대치가 각 통치 세력들에게 활용되기도 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3년간의 정치적 진통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공간의 정치 지형이 응축하고 있던 공화의 이념, 민주주의의 다양한 논리들의 스펙트럼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공화’와 ‘민주’의 개념이 아주 제한적이고 편향적인 의미로 축소되어 통용되는 문제의 극복과도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분단의 지속 과정에서 두 체제가 적대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키워 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분단은 우리 삶과 국가의 특징적 ‘변수’로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한 제반 조건으로 간주되기 일쑤이다. 북한을 불가해한 타자로 대상화시켜 ‘통일대박론’의 도구적 가치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간편한 사고방식이며, 분단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문제와 통일을 연결시킨다는 생각은 아주 낯선 생각인 것이다.
물론 필자가 다소 민족 개념을 엄밀하지 않게 남용한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이 책만의 아쉬움이 아니라 계속 함께 고민할 화두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저자의 서술 의도를 다시 한 번 옮겨 본다. “해방 후 3년의 역사에서 우리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고, 역사의 가능성을 돌이켜보는 것”을 통해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의 가능성’을 확인하자.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선택은 어떤 역사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대학에 적을 둔 일반 학자들이 연관성 높은 기존의 논문을 아주 포괄적으로 엮어 출간하면서 전문학술서를 표방하는 데 비해, 민족지도자들의 ‘선택’을 비교적 공정한 시각에서 비교하면서도 선명하게 유지된 필자의 문제의식은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올 해에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부활이 가시화된 요즘,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탄생’이 어떤 역경과 희생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강조하며 그것을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객관적이냐’의 문제가 다시 뜨거운 논쟁 속에 휘말릴 것이다. 해방 후 3년, 어렵게 탄생했고 숱한 과제를 안고 있던 당시 신생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싸움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싸움이자 분단과 평화통일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한, 지지부진하더라도 결국은 국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신생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앞에 놓인 운명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발전, 친일세력과 기획주의자들에 대한 과감한 역사적 청산, 봉건적 잔재와 부정부패를 일소한 시민사회의 발전, 부가 독점적으로 세습되지 않는 민주적 경제발전, 한반도 평화의 유지와 민족통일의 달성. 이 과제들은 비극적이게도 70여년 전과 다름없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숙제이며,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앞에 놓인 문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