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사유하기 (1) :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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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만일 가능하다면 어떤 형태의 사유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90년대 이후 마치 유행처럼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이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의 연구자들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영화가 기존의 모든 예술을 재매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 더불어 대부분의 인문학 연구 영역들을 재매개하는 성격을 가지는, 말 그대로 ‘하이브리드’한 성격을 가진 예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 방식이지만, 그러한 방식들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한 사유방식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사회의 변화, 기술의 변화 그리고 영화(영화 자체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여러가지 문화적, 제도적, 관행적 변화를 포함)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와 동영상, 비디오 등을 포함하는 유사 영화들에 대해 개입하고 언급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적절하며 의미있는 발언일 수 있을까. 대상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패턴으로 개입하는 사유 방식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학문의 경우는 일단 제쳐두고, 철학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영화의 주제나 캐릭터, 스토리 등을 소재로 삼아 철학자들의 난해한 개념을 구체화시켜보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으로 이루어진 영화에 대한 철학의 개입 방식일 것이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Matrix)’를 통해 호접몽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보드리야르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혹은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통해 인간의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논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교양 강의에서 많이 사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파이트 클럽(Fight Club)’의 경우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떠올랐고, 프롬의 이론을 적용하면 영화에서 쉽게 이해가지 않던 부분들이 너무나도 선명히 의미를 드러내곤 했다. 현대 사회와 소외 그리고 집단과 폭력의 문제를 졸리지 않게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데이빗 린치의 영화들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꿈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너무나도 훌륭한 보조자료 역할을 해줬고,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설명하기 위한 너무나도 자극적인 도입부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와의 접합 지점을 찾아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로 영화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문학이나 다른 인문학 영역의 개입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영화의 활용은 여러 긍정적인 측면들을 지닌다. 영화를 좀 더 진지한 분석과 탐구 대상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또한 난해한 이론들에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게 만들거나 어려운 철학 이론들이 얼마나 이 세상의 불가해한 모습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감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앞서 말했듯 필자 역시 아주 많은 영화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덜 졸게 하면서 어려운 이야기들을 강의 시간에 전달해 왔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묻고 싶다. 이런 방법들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인가 아니면 영화를 ‘소재’로 사유를 진행하는 것인가.

먼저 이에 대한 대답부터 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영화를 소재로 삼아 사유에 도움을 얻는 방식이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식 또한 긍정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음은 이미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새로운 사유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알고 있던 철학 이론들의 생생한 사례들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적용하여 풀어낸 것일 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유를 전개한 것은 아니다. 들뢰즈에 따르자면 철학적 사유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대상 속에서 발견해내는 재인식(recognition)이 아니다. 주어져 있는 사유의 틀을 넘어서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과 사유 방식들을 창안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유라고 한다. 그래서 들뢰즈의 주장에 따르면 필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영화에 대해 개입한 방식은 매우 거칠게 말하자면 영화를 착취한 것일뿐, 진정한 사유와는 거리가 먼 견해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존의 방식들과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들뢰즈의 주장을 차치하고서라도 대체 왜 새로운 영화적 사유가 필요한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모두들 현재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 이미지는 영화나 사진을 포함하는 기계적으로 생산된 이미지를 의미한다. 길거리를 걸어다니건, 집안에서 쉬고 있을 때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때건, 심지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이미지들은 넘실댄다.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고, 선형적이라기보다는 비선형적 특성을 가지는 이미지들이 예전 책과 글이 차지하던 자리를 꿰찬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관적이고 비선형적인 이미지들을 전통적인 논리로 이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언어의 논리와는 다른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가 어떤 방식으로 직동하고 있으며, 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미지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전 사유 방식을 적용하여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거나 혹은 부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전철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동영상들(moving images) 속에 파묻혀 산다. 특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비약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은 특정인들에게만 허락된 한정된 범위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산하고, 수용하고, 공유한다. 예전 극장에서만 혹은 텔레비젼 모니터를 통해서 보던 영화는 어쩌면 지나간 시대의 상징일런지 모른다. (여전히 이 방식 또한 다수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사회적 위상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동일하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영화는 어두운 극장을 나와 길거리로, 모바일 기기 속으로, 동영상 공유사이트, 개인 블로그와 같은 사이버 공간 속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변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저 예전과 같은 방식의 영화만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더 넓은 영역의 영화(이런 맥락에서 ‘확장된 영화’라는 이름을 붙혀본다)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확장된 영화들은 많은 경우 줄거리, 캐릭터와 같은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이전과 같은 사유 방식으로는 이제 수많은 우리 주변의 확장된 영화에 대해 더 이상 의미를 풀어낼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와버린 것 같다.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 그것은 영화를 소재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이미지 자체의 논리를 따라 그 사유의 궤적에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화적 사유에 참여할 것인가. 물론 미리 정해져 있는 정답이 있다거나, 유일한 하나의 방식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에서 우리가 정말 새롭다거나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영화들의 공통점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적 사유는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적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 이미지의 논리를 사유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로 우리를 열어놓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로 사유하기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이 유일하거나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는 이야기는 아님을 전제한 상태에서 말이다. 니체의 말처럼, 확신은 거짓말보다도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변화하는 와중에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영화의 기본적인 메커니즘들을 통해 영화적 사유의 궤적을 추적해보는 것이 앞으로의 연재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영화 이미지, 프레임, 쇼트, 몽타주, 서사, 시점 등의 기본적인 영화 개념들이 어떠한 사유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따라가 보고자 한다.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대상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피하면서 새로운 개념화를 끌어내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오류와 오해들로 짜여진 부끄러운 생각들이라고 나중에 분명 후회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변화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중이라고 오류가 없으라는 보장도 없으며, 나중에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지금 상태에서의 사유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용기를 내어보고자 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자가 의지하는 사상가는 들뢰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영화에 대한 상당히 두꺼운 두 권의 책을 썼다. 사실 만만치 않은 책이다. 여전히 읽을 때마다 숨어 있던 새로운 문장들과 새로운 의미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래서 나의 들뢰즈의 영화책에 대한 독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결코 완결될 수도, 완전해질 수 없는 들뢰즈와 영화에 대한 나의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 개념들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정식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물론 그의 영화책을 읽기 위해서는 들뢰즈의 철학과 특히 베르그손에 대한 그의 해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제시될 것이다. 마치 들뢰즈 사진 속의 이미지처럼, 영화와 철학이 거울을 마주한 채 서로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철학이 영화적 사유에 개입하기를 희망한다.

기본적으로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주로 들뢰즈 영화책의 이론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이론을 현재에로 확장하고자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의 영화들과 그에 대한 사유들이 담겨있는 그의 영화책은 그 이후 대략 30여년 동안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변화는 그 이후 너무나도 바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뢰즈의 사유를 변화에 열어놓는 것은 아마도 들뢰즈 자신이 가장 원하는 사유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변화와 생성, 창조의 철학자인 그의 사유를 그의 죽음 이후의 시간에까지 열어놓는 것은, 설사 그의 이론을 변형시킨다 하더라도 가장 들뢰즈적인 사유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존의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열어놓고 있는 시대이다. 열려있으며 새로운 연결접속이 무한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시대에 대한 사유를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와 영화에 대한 사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뢰즈 자신의 시대에서보다도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들뢰즈의 영화책은 그저 영화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들은 영화를 통한 사유를 보여주며, 그 사유가 향하는 곳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며, 그에게 영화란 이 세계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관계와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 관계와 시선들이 영화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영화의 메커니즘들에 대한 개념화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들뢰즈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영화와 그것이 속해있는 세상은 어떤 색채일지를 보고자 한다. 상당히 편협한 방식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솔직히 어쩔 수 없다. 상당히 좁은 우물이지만, 파고 내려가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깊이 파내려간 다른 우물과 만날 것이라 믿으며, 이 우물을 통해 내 우물 속의 물만이 아니라, 저 땅속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다양한 물들이 좁은 내 우물을 통해 지상으로 나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기대와 두려움을 주절거리는 것으로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는 없다[생각vs생각]

행복전도와 자살의 역설-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의 자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혼란을 넘어 “행복하라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나”, “당신의 책을 모두 버렸다”, “행복전도사 자격이 없다”는 등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의 자살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심지어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일치를 느끼는 이유는 남에게는 행복한 삶을 살라고 말하고서는 정작 자신은 불행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다는 생각은 외부관찰자의 판단일 뿐이다. 당혹스러움은 당사자의 관점과 외부관찰자의 관점을 혼동한 데서 비롯되었다.

고통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는 메저키스트의 행동을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행위로 보는 것은 외부관찰자의 관점일 뿐이며 당사자의 관점으로부터 보면 그것 또한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도 스스로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다.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와 불행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행복을 얻는 소극적 행위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바보의 행복 또한 마찬가지다. 작은 다이아몬드보다 커다란 빵을 선택하고 행복해하는 바보를 외부관찰자는 불쌍하다고 동정한다. 당사자는 마냥 행복한데 말이다. 작은 다이아몬드보다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선택한 강아지는 어떨까? 외부관찰자로서 우리는 그 강아지도 불쌍하다고 동정할까? 노무현이 야합적인 3당 합당을 비판하고 꼬마민주당을 고집했을 때, 낙선이 불 보듯 뻔한 출마를 스스로 선택했을 때, 살아서 당당하게 결백을 밝히는 대신 부엉이 바위를 선택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는 없다. 행복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인지생물학자인 움베르또 마뚜라나(H. Maturana)에 따르면, 외부관찰자는 관찰자 스스로 설정한 특정한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으로 관찰되는 행동을 인지적이거나 지능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 행동의 긍정적 효과를 행복이라고 본다면, 바보는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교환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으므로 그 행동은 불행을 스스로 선택한 어리석은 것이다. 반면에 강아지는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사용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인 행동을 했으므로 이는 행복을 스스로 선택한 똑똑한 행동이다.

노무현은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권력의 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으므로 그의 행동은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강아지뿐만 아니라 바보도 스스로 설정한 사용가치라는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을 했고, 노무현도 스스로 설정한 정의의 가치라는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을 했다. 모두들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그녀가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초연하게 맞서라”고 말한 데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해놓고 스스로는 불행으로부터 도망갔으니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게다. 그런데 그녀는 불행으로부터 단지 벗어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불행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한 것일까? 이 두 가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앞의 것은 불행을 단지 불편해하는 경우이며, 뒤의 것은 불행을 무서워하는 경우다. 그녀는 어떤 경우였을까?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초연하게 맞서라”라는 그녀의 말이 진실이었다면 그녀는 불행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몹시 불편했을 뿐이다. 그녀가 유서에서 “죄송하다”고 말한 이유는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서가 아니라 불편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벗어나려 한 데 있을 것이다.

마틴 하이데거(M. Heidegger)는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는 것을 실존적 결단이라고 한다. 물론 하이데거의 이 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죽음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면 공포를 느끼지만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면 불안을 느낀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삶에 집착하여 종교인이나 의사를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걸하지만,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삶의 무반성적인 태도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실존적 의미를 찾게 된다. 삶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에도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실존적 삶을 살게 된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모든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최윤희씨가 전도한 행복의 비밀이 아닐까? 바보가 마냥 행복한 이유는 삶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우리가 바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가 권력에, 아니 삶과 죽음에조차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최윤희씨의 자살은 그녀가 전도하며 다닌 “모든 불행은 집착으로부터 온다.”는 깨달음을 몸소 실천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당혹감이나 배신감 또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그 행복의 비밀을 아직 몸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최윤희씨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속삭인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어요?”

김광식(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

중국의 신자유주의 대 신좌파[생각vs생각]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추상에서 구체로

1980년대의 개혁개방, 이와 더불어 분출된 사회와 사상운동의 활력 속에서의 중국 지식인을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대다수는 ‘피안’(마오쩌둥의 실험)이 이미 치유 불가능한 위기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제는 대다수가 그 피안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강을 건너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지식계는 거의 옆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갔을 뿐, 잠시 멈추어 자신의 다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대오 중 물살에 휩쓸린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지식계는 1989년의 갑작스러운 사건(천안문 사태)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1990년대의 거대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직면한다. 열정과 추상이 휩쓸고 간 직후 그들에게는 좌절된 현실, 새롭게 직면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구체적인 전망이 요구됐다.

1990년대 초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에 다시금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중앙정부는 정치적으로 더욱 강하고 집중된 권력을 행사했고, 경제적으로는 전에 없는 고도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대내적으로 시장화가, 대외적으로는 세계화가 심화되었으며 사회적 모순은 점점 첨예해졌다. 그러나 이를 정치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술계는 정부와 발맞춰 1980년대의 ‘급진주의’에 대한 비판과 국학 부흥을 주도했고, 대중문화와 상업문화의 확산이라는 현상을 두고 진행된 ‘인문정신’에 관한 토론 이후 경제와 정치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공정책, 정치개혁에 관한 이론적 토론들을 통해 점차 선명하게 두 진영으로 분화되어갔다.

현대화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사회주의로서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중국 공산당의 기본 방침으로 공인된 1992년 이후 시장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중심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중국에서 널리 주목받기 시작한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해가려는 노력 속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회적 모순을 어떤 이들은 건전한 시장경제로 나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중국판에 불과하며 그 성과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제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제출한다. 이는 사회가 새롭게 재편해가는 과정에 대한 매우 상반된 인식으로 전자의 견해는 ‘신자유주의(또는 자유주의)’로, 후자의 견해는 ‘신좌파’로 불린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동의하며 중국의 현대화는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현대화와 그 궤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의 문제는 개혁과 시장화가 자발적으로 아래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추동된 것이어서 시장이 권력체제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성숙하고 규범화되지 못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에게 많은 역할을 맡긴다면 시장 자신의 발전 요구와 규율, 그리고 사람들의 이성적 노력에 의해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적 민주와 정치적 민주를 이룰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민주의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이후 민주와 시장경제가 분리됐던 사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공정(公正)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불공정문제의 해결방법은 첫째 진정한 시장, 진정한 자유경쟁을 실현하고 규칙을 공정하게 하여 모든 사람이 준수하며 권력을 시장에서 축출하는 것이고, 둘째 법제를 완비하는 것, 즉 합법적인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입법을 통해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법률에 의해 부패를 처벌하고 국유재산의 유지를 방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시장경제 개혁의 미명 아래 권력이 사회적 재부를 약탈하는 것을 반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벗어나는 개혁과 공정에 대한 요구를 반대한다. 전자는 중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고, 후자는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신좌파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들에게서 시장과 이에 기반 한 공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나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9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의 논쟁이 본격화된다. 이를 촉발시킨 것이 신좌파로 분류되는 왕후이(汪暉)의 논문 「당대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이다. 논쟁의 배경에는 중국 사회 모순의 첨예화 뿐 아니라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다.

신좌파는 세계화는 중국 사회 밖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중국 사회에 이미 내재된 문제로, 정치권력과 시장계획의 관계, 새로운 사회에서의 빈곤과 불공정의 출현, 구권력의 네트워크와 새로운 시장 확대의 내적 연계들이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다시 사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왕휘는 이로부터 만들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현대화를 서구의 현대화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되며, 서구 자본주의의 현대성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반현대적인 현대성’ 즉 서구의 현대화 과정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토대로 현대성을 토론하고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화 또는 현대성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서 신자유주의와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인다.

그러므로 중국의 ‘개혁’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부가 집중되는 과도기적 자본주의가 아닌 정치와 경제적 민주를 확대하여 분배의 공정과 평등을 보장하고 빈부의 차가 무한히 확대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개방’은 자본의 논리를 무조건 받아들여 국제 자본주의 체계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신좌파는 신자유주의가 추상적인 ‘시장’ 개념으로 중국 사회와 세계의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그 사회의 경제가 정치와 맺고 있는 내적 관계를 은폐하면서, 맹목적적인 시장주의로 평등의 가치를 거세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정치변혁의 필요성과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기본적인 호소를 희석시킨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모두 시장 경제를 긍정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공정을 자유로운 시장의 ‘경쟁과 효율’에 맡길 것을, 신좌파는 ‘공정과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비판과 견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과거와 함께 가기: 전통의 재인식 대 역사의 재인식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들이 각각 자신들의 과거, 신자유주의는 전통을 신좌파는 모택동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재인식하려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일부는 현대화의 길은 반드시 중국의 전통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화를 위해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오히려 가치체계의 해체와 문화 동일성의 상실을 이끌어 현대화 과정을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유교를 포함하여 합리성을 가진 문화전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들의 견해는 아시아 공업문명의 눈부신 발전의 원인이 유교문화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교부흥론자’, 전통 가치의 비판적 계승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비판계승론자’, 전통의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전통의 창조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서체중용론자’와 유사하다.

전통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1910년대 신문화운동과 1980년대 문화열 시기의 전통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지향했던 자유주의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통을 폐쇄적이고 정형화된 유물이 아닌 개방적이고 연속적인 유기적 생명체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전통에 주목하도록 하였을까? 첫째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전면적인 서구화론자’, ‘부르주와 자유화의 주범’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꼬리표로 인하여 위축되고 탄압받기보다는 전통과의 화해를 도모하기로 한다. 둘째는 서구의 자유주의를 중국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통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전통 속에서 이에 부합하는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유주의 속에 있었던 전통과 서구화의 오랜 불화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일단락된다.

신좌파는 1980년대 이후 대다수가 부정했던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그들이 중국이 추구해야 할 현대성을 ‘반현대적인 현대성’으로 설정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반식민지적 지배 아래에서 현대화를 모색했던 중국은 현대화운동에 있어서 서구의 현대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받았으며,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현대화에 대한 비판을 수렴하며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것이 곧 ‘반자본주의적인 현대성’이었다.

왕후이는 마오쩌둥은 공사제(公司制)와 집단경제방식으로 중국 경제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분배제도에서 자본주의 현대화가 초래한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피하려 했으며, 공유제(公有制) 방식으로 전체 사회를 국가의 현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조직하여 개인의 정치적 자주권을 박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기구가 인민주권을 억압하는 것에 깊은 반감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마오쩌둥 사회주의가 심각한 역사적 모순을 드러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부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그 안에 담겨있는 ‘반현대적’인 내용은 반드시 새롭게 성찰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좌파의 입장이다.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공정과 평등’이라는 반자본주의적 현대성의 내용이 지금의 중국에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개혁 이후의 사회주의는 개혁 이전의 사회주의가 지니고 있었던 ‘반현대적’ 특징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며 사회적 불평등은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다. 세계화되고 독점적인 시장경제에 빠르게 편입되어가고 있는 중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와 같은 긍정적인 사회주의적 요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계몽과 현대성을 모색하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 그 가운데서도 신좌파의 주장은 적어도 자신들의 모색을 위한 치열한 비판과 성찰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계몽’과 ‘현대성’의 문제는 중국의 지식인에게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지식인에게, 그리고 과거에서만 아니라 현재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주제다.

19세기 서구의 물리적 힘에 의해서 근대를 시작하게 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은 필연적으로 동일한 계몽과 현대성을 목표로 갖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립, 국민국가의 건설, 봉건질서와의 단절 등은 강조되었지만 모든 인간의 법적 평등, 개인의 해방과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은 억압되었다.

서구의 계몽과 현대성은 적어도 스스로 변화하고 충돌하는 긴장 속에 있었지만, 우리에게 계몽과 현대성은 불변하며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그러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절대적인 목표였다. 항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질책했을 뿐 계몽과 현대성이 우리에게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 앞에는 지금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의 지배가 심화되어가는 현실이 놓여 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뒤쳐지지 않게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어떤 이들은 이 현실을 뛰어넘으려 모색한다. 중국의 신좌파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지나치게 그 일면만 관찰되고 있는 계몽과 현대성을 재검토하고, 마오쩌둥 사회주의를 재평가하고,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이는 오랫동안 중국에서의 계몽이 보여준 무비판적인 서구화를 반성하고, 현대성에 내재된 모순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중국의 현실적 역사 속에 존재함을 성찰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계몽은 이미 그 속에 스스로를 계몽시켜야 함을 함의하고 있으며, 현대성은 이미 그 속에 새로운 시대의식으로서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계몽과 현대성은 스스로, 그리고 시대와 끊임없이 긴장하고 각성하며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박영미(한양대 강사) /

무모함과 소심함을 넘어선 솔직함[생각vs생각]

전통, 찬양할까? 내칠까?

최근에 출판된 나의 저서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에 대해서, 한 기자는 나를 어떤 다른 저자의 “무모함”에 비교하여 “소심함?”으로 평가하였다. “저자는 소심하였다”가 아니라 ‘?’를 동원하여 “소심한 걸까?” 라는 의문 제기의 방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좀 더 원색적인 발언이나 내용을 기대하였던 듯하다.

예컨대 “공자가 죽어야…” 혹은 “공자가 살아야…” 류가 아니어서, 재미난 구경거리가 한 판 벌어졌을 법도 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또한 『공자, 페미니즘을 말하였다』라고 왜 좀 더 강력히 발언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왜 좀 더 화끈하게 공자를 내다 팔지 않았는가 하는 은근한 질책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같은 저서를 두고 아주 다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하다”를 “말하였다”로 자체 이해하면서, 공자가 언제 페미니즘을 논한 적이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 격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논조는 공자와 유교는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여성 억압적이며 계급적 한계를 지니는 것인데, 이것이 페미니즘 논의와 어떻게 한 자리에서 거론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공자와 페미니즘, 유교와 페미니즘을 함께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유교 안에서 현대적인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것은 또 다시 공자를 살리려는 보수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전통 사상을 거론하는 데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방식은 이처럼 찬양할까? 내쳐 버릴까?의 둘 중 하나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둘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폐기시켜 버리거나 다른 한 편에 완벽한 승리를 안겨 주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 안에서는 가치폄하 하는 논쟁 방식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의도만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한쪽이‘전통은 과거일 뿐이고, 전통은 아무 것도 아니며 그래서 폐기되어야 할 뿐이고’라고 말하면, 다른 한 쪽은‘현대는 문제투성이일 뿐이고 그래서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현대는 타락의 소치일 뿐이고’로 응수한다.

이 둘에게서 서로 만날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그들은 소통, 화해, 융화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논리만이 통하며, 전통의 만능을 찬양하거나 혹은 전통의 무능을 한탄하는 둘 중 하나의 방식만을 논의하고자 한다.

상호성과 ‘한국적’ 상호성

최근 차이의 철학, 다문화주의 등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서구를 보편으로 간주하는 것, 그래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전통을 무시하는 태도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 또 서구라는 잣대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 속한 전통에서 발전된 목소리를 배제하게 된다고 고발하기도 한다.

상호문화성을 통해서 서로 다르고 때로는 이질적인 철학들 사이의 만남과 매개 – 타자성, 차이, 낯선 자의 해석학, 다문화성, 상호문화성, 초문화성 – 에 대하여 관심 가져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작업,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는 현실을 겪으면서 중심성을 배제하고 문화의 상호성을 논의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호문화성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도 ‘어떻게’ 상호성을 개발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서구’에 기반해서 ‘우리’의 문제를 말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그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촌화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별도의 ‘우리’를 설정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기에 상호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한국적’ 상호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그저 중심성을 비판하고 상호문화성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상호성을 마련하는 데 과연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상호성을 개발하는 것은 단일한 하나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 발 딛고 있는 현실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자신이 현재 어디에 어떻게 발 딛고 있는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화두가 되는 것이며, 전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전통에 대한 거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전통과 현대, 이들을 한 자리에 놓고 거론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그 때에도 그 둘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한 채로 남아 있기 쉽다. 전통 사상의 개념과 용어들을 현대 사회에서 사용하는 데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개념과 용어들을 재활용하는 작업은 비록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호성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단일한 단어를 찾는 것보다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주된 과제에 충실할 수 있는 또 다른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보는 것이 때로는 더 유용한 방식일 수도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과 그것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전통을 완벽하게 분리해내기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영역의 일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질문은 그 자체로서 우문일 수 있다.

전통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전통은 있고 그 전통은 어떻게든 해석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현실은 있고 현실의 부정성은 어떻게든 해소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즉 우리 내부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남을 도울 수도 없다. 전통과 현대에 대한 어렵고도 지난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관심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남의 말과 생각을 빌어서 사회 변혁을 이루어보겠다는 무모한 모험을 시도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전통과 현실을 한꺼번에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함과 소심함을 넘어서서 솔직하게 전통을 바라보기

제주도 한라산의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코스의 길이 있다. 서북쪽 코스인 어리목 등반, 서남쪽 코스인 영실산 길, 동쪽 코스인 성판악 길, 북쪽 코스인 관음사 길 등이다. 영실산 길은 영실 기암의 경관이 좋으나 등산길이 짧아서 등산꾼들에게는 그다지 선호의 대상이 아니란다. 성판악 산길은 활엽수가 우거져 삼림욕 하기는 좋으나 그 때문에 주변경관을 온전히 감상하기는 어렵다. 한편 관음사 길은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여 오르기가 수월치 않으나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각자 자기에게 익숙한 길을 따라, 혹은 자기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정상에 오르면 된다. 동쪽에 사는 사람이 북쪽 코스를 선택하거나 북쪽 사는 사람이 동쪽 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어쩌다 특별히 하는 등산이 아니라면, 일상 속에서 늘 등산을 할라치면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기 쉬운 코스를 택하는 것이 편리하고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논의하는 데 거기에 전통을 거론할 필요가 있는 이유 혹은 상호문화성을 논의하는 데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필요가 있는 맥락을 나는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로부터 나에게 익숙한 개념을 가지고 낯선 방식으로 차이, 만남, 관계, 상생, 융화를 말할 수 있는 철학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허나 이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해석의 방식이 반드시 ‘낯선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인, 익숙한 방식으로는 새로운 논의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즈음에서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에 대한 서평을 다시 떠올려 보고, 그것을 바로잡아 보자. 공자가 비록 페미니즘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에서 여성주의 사상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상상하고 유희하는 것은 소심함? 이 아니라 솔직함! 이라는 것이다. 공자 사상의 이러저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새로운 패러다임 구성, 새 판 짜기의 맥락에 재활용하는 전략은 소심함 혹은 무모함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긍정성과 부정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사상과 그것의 현대적 해석의 노력에는 전통과 현대라는 시공간적 간극을 이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이는 그들 간의 차별화된 개념과 그 범주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개념이 어떤 방향의 철학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충실한 해명이 요구된다. 또한 이러한 해명의 작업은 단순히 전통을 답습, 찬양하거나 혹은 비판, 거부하는 방식으로써가 아니라 과거의 문제들을 현실적 안목에서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서리아 (성신여대) /

안토니오 네그리 – ‘제국’ 그리고 ‘다중’ [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⑮

안토니오 네그리 – ‘제국’ 그리고 ‘다중’ [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⑮

 

강사 : 박영균(건국대학교 HK교수)
후기 : 조배준(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비물질노동’과 ‘삶-정치적 노동’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강좌 열다섯 번째 시간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정치철학자이자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를 박영균 건국대학교 HK교수의 소개로 만나보았다. 박 교수는 네그리의 주요 3부작인 <제국>, <다중>, <공통체>를 중심으로 그의 요동치는 삶 속에서 이러한 대표작들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의식은 어떤 것인지 수강생들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에 따르면 네그리는 젊은 시절부터 현실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대단히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실천적인 좌파 활동가였다. 또한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들뢰즈와 가타리 같은 프랑스 좌파 철학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마르크스주의를 정립한 독창적인 이론가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그가 제시한 주요 개념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 입장과의 차별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네그리는 우선 현 단계 자본주의 양식이 ‘산업사회’에서 ‘네트워크사회’로, 노동의 성격도 ‘산업노동’에서 ‘비물질노동’으로, 그리고 변혁의 주체도 ‘노동자계급’에서 ‘다중(multitude)’으로 그 중심이 변화했다고 파악했다. 이것은 기술적 양식의 변화가 사회적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인데, 네그리는 지배적인 생산부문을 중심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업과 원료 채취가 중심이던 첫 번째 패러다임에서 제조산업과 내구재 제조가 중심인 두 번째 패러다임으로, 다시 공장을 벗어난 서비스와 생산의 정보화가 그 특징인 최근의 경향으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 비물질적인 것을 생산하는 ‘비(非)물질노동(immaterial labor)’에 대해 네그리는 <제국>에서 다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설명했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이 사회와 노동의 모든 실행 및 관계를 다시 규정하는 경향’, ‘문제를 해결하고 명시하며 전략적으로 중개하는 활동’ 즉, 상징적이고 분석적인 서비스, ‘신체적이고 정서적으로 인간과 접촉하고 상호작용하더라도 만질 수 없는 노동의 결과물들-안심, 행복, 만족, 흥분, 정열 등-을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비물질적인 정동노동(affective labor)’ 등이 점차 확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4년에 출간된 <다중>에서는 네그리는 위의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 측면이 약화되고 나머지 측면이 보다 강조된 비물질노동 개념을 제시했다. 그것의 “또 다른 주요 형태를 (감정과 정서가 중심인) ‘정동적 노동’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편안한 느낌, 웰빙, 만족, 흥분 또는 열정과 같은 정동들을 생산하거나 처리하는 노동이다.”

네그리는 이렇게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에 산업노동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아이디어, 이미지, 지식, 정보, 소통, 관계, 정동적 반응 등과 같은 비물질적 생산물들을 창출하는” 새로운 노동이 질적으로 우위에 선 사회에선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산업과 노동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 또한 보다 정보화되고 지적이며, 소통적이며, 정동적인 공간으로, 또한 “분산된 네트워크들의 무수한 불확정적인 관계”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영균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비물질노동 헤게모니의 강화는 “곧 비물질노동 그 자체가 삶 자체를 생산하는 노동의 전면화, 즉 ‘삶-정치적 노동(biopolitic labor)’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삶-정치’란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들의 경계가 무너지고 “생산의 다양하고 특이한 형태들 사이에 충분한 공통적인 토대, 상호작용 그리고 소통”의 가능성이 제공되는 새로운 지평을 말한다. 기존의 물질적 생산이 사회적 삶의 수단을 창출했다면, 비물질적 생산은 사회적 삶 자체와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을 생산하기 때문에 삶-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의 공통되기 – ‘사적 소유’, ‘노동가치론’, ‘착취’ 개념의 와해

네그리는 현대자본주의가 탈근대적인 생산양식 속에서 근대적인 경제-정치 시스템을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사적 소유’ 개념이 점차 해체되고 있는 것인데, 소비자와 생산자가 분리되어 소비자가 단지 생산된 상품을 화폐를 통해 구입하고 소비하는 기존의 방식에 머물지 않고, 이미 생산세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은 이제 공동체가 함께 하고 있으며 생산하는 동안 그 공동체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규정되고 있다. 박영균 교수는 페이스북의 시장 가치는 마크 주커버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며, 최신 컴퓨터 게임은 수많은 유저들이 먼저 사용해보고 버그를 발견해내고, 개선사항을 건의하는 등 온갖 시행착오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완제품으로 시판된다고 설명했다. 네그리는 “상품을 사용하거나 점유하여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를 처분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로서의 사적 소유 개념은 점점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네그리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가치론’도 해체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다중>에서 삶-정치적 생산은 시간의 고정된 단위로 양화될 수 없기 때문에 측정불가능한 것이며, 자본이 결코 우리들의 삶 전체를 포획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이 노동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가치를 언제나 초과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과 가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수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네그리는 잉여가치론과 토대-상부구조라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 핵심이 되어왔던 틀에서도 모순을 발견하고 이제는 그것을 해체하여 재구성할 것을 주문한다.

네그리는 마찬가지로 ‘착취’라는 개념 또한 자본과 개별 노동 사이에 종속된 전통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서 “공통된 것의 강탈(약탈)로 간주해야”한다고 말한다. 가치의 생산을 공통된 것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듯이, 노동시간이 정확히 시간으로 측정될 수 없는 사회에서 “공통된 것이 잉여가치의 장소”가 되었다면 착취 역시 공통의 생산물을 강탈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언어, 아이디어, 지식, 이미지의 생산은 공통적으로 생산된 것이 사적 소유로 변환된 것이다.

박영균 교수는 병의 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서 발견된 유전적 정보를 통해 추출된 새로운 물질이 막대한 부를 얻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더라도, 그 개인은 결코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최근의 특허권, 저작권, 지적재산권의 아이러니에 대해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주민공동체에서 생산된 전통적인 지식이 혹은 과학공동체에서 생산된 지식”이 하루아침에 사유재산으로 둔갑하는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 네그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통적인 특징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도 자본이 여전히 통제력을 행사하여 부를 뽑아내는 모호한 논리를 화폐와 경제의 금융화가 요약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금융자본의 이윤들은 공통된 것을 강탈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일 것이다.”

한편 (유럽중심적 관점이긴 하지만) 생산양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도적으로 안정화시키던 국가나 시민사회의 구조와 제도들도 30년간 계속된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점차 붕괴되고 있다. 또한 경제나 정치의 분리가 모호해지고 경제가 정치를 흡수하여 더 이상 제도적 장치나 정치가들을 통해 국가가 세계경제 변동을 예측하고 관리하고 통제할 수도 없게 되었다. 곳곳에서 정치와 경제가 부조응하고 그 괴리가 심화되고 전면화되지만, ‘국가에 의한 소유권의 보장 시스템’은 법적 권위를 통해 더욱 강고해지기도 한다. 더불어 시민사회가 약화되고 훈육사회가 쇠퇴하는 등 이 모든 것들은 “근대의 사회적 공간들에 놓여 있던 홈 패임을 매끄럽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 계급은 세계적 이주와 탈출을 선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제 통제사회의 네트워크들이 생겨난다.”

 

‘제국’에서 ‘다중’으로

▲ 박영균(건국대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네그리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국가주권에서 제국주권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목도하면서,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전 지구적 주권을 주장하는 제국에 의한 내전으로 파악하고 마이클 하트와 함께 집필을 시작하여 8년 뒤에 <제국(Empire)>을 출간했다. 여기서 그는 전 지구적 지배양식의 변화를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라는 말로 요약했다. 제국주의가 국민국가 사이의 지배관계를 뜻했다면, 제국은 국민국가의 한계와위기의 공백 속에서 출현하여 국민국가가 갖고 있던 공적 기능과 치안을 국제적 관계 속에서 대신 담당하려는 것을 뜻한다. 기존의 국민국가들이 경제적 교환의 전지구화와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점차 자국 내에서 그 주권적 권위가 쇠퇴하고 역할이 축소되었기 때문에 “민족국가와 국제기구들을 자신의 마디로 포섭한 초국적인 네트워크 주권인 ‘제국’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네그리는 이 제국을 여러 주권들의 합성체이면서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한 지배장치이면서 사법적 구성체”로 파악한다. 그래서 네그리가 보기에 미국의 이라크전은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초국적인 자본의 네트워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제국 전쟁’라는 것이다.

그런데 네그리는 이 ‘제국’의 출현이 다름 아닌 ‘다중의 활력이 작동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말한다. 여기서 잠깐 그가 말하는 ‘다중’의 개념을 살펴보면, 먼저 영원성의 관점에서 보는 ‘존재론적 차원’과,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역사적 차원’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존재론적 차원의 다중은 “역사적 힘들의 복합적 상호작용에서 이성과 열정을 통해 스피노자가 절대적이라고 부르는 자유를 창조하는” 늘 있어 왔던 존재이다. 이러한 다중 없이는 사회적 존재를 생각할 수 없으며 이들이 가진 활력이 운동을 생산한다. 그런데 네그리는 이 활력을 현행적인 것(the actual)으로 바꾸는 것을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권력이란 것은 늘 다중을 모두 포섭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다중 개념의 두 번째 차원인 ‘역사적 다중’은 “아직 아닌 다중(the not-yet multitude)”으로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다중이다. 이 다중은 “정치적이며, 이들을 제국의 출현 조건들을 토대로 해서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다중의 출현을 고민할 때, 이제 중요한 것은 삶-정치적 조건들의 발생과 국민국가의 위기 속에서 출현한 제국 이후가 된다. ‘제국적 네트워크’에 반대하는 ‘대항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제한된 국지적 자율성을 겨냥하는 기획으로는 제국에 저항할 수 없다. ……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가 자본의 전지구화에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을 가속화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 전지구화는 틀림없이 대항적 전지구화와 만날 것이며, 제국은 틀림없이 대항제국과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생명력이나 인간의 정서와 느낌마저도 자본의 탐욕 아래 놓인 이 상황에서 자본의 외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을까? 박영균 교수는 “다중은 자본에 포획되지 않는 외부에서 삶 자체를 생산하는 삶-정치적 노동을 통해 노동의 공통되기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다중 속에 융합되는 형상들-산업노동자들, 비물질적 노동자들, 농업노동자들, 실업자들, 이주자들 등-이 구체적인 장소에서 삶의 독특한 형식들을 대표하는 삶-정치적 형상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다중의 반란은 “부를 기초로 해서만, 즉 지성, 경험, 지식, 욕망 등의 잉여를 기초로 해서만 나타나며, 각 투쟁의 강렬함을 높이고 (전염병처럼) 다른 투쟁들로 확산되는 방식-투쟁들의 국제적 순환-으로 가동된다.” 박영균 교수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례들로 19세기 중반 카리브해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노예 반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유럽과 북미 전역 산업노동자들의 반란, 20세기 중반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를 가로질러 만개했던 게릴라 투쟁과 반식민지 투쟁, 1968년 노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반제국주의 게릴라 운동들의 전지구적 투쟁, 1990년대 후반 지구화 문제를 둘러싸고 출현했던 1999년 시애틀 투쟁 등을 들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2008년 봄과 여름의 촛불집회와 광장에서의 기억도 다중의 향연으로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삶-정치와 삶-권력의 투쟁

앞서 말했듯이 노동가치-잉여가치에 의해서만 작동할 수 없는 세계에서, 자본의 가치증식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큰 경제외적 강제는 ‘정치권력’이다. 오늘날 현대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것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에 의한 힘이 아니라, 경제 외적인 권력인 ‘정치’의 힘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자본주의적 요소처럼 보이는 ‘지대화된 이윤’과 ‘강탈로서의 축적’ 같은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비호하는 것은 국가인데, 국가는 여기서 “하나의 기업으로, 다중들의 생산활동을 포획하는 정치적 다이어그램의 하나로 기능한다.”

네그리는 이런 점에서 현대사회는 더 이상 푸코와 들뢰즈의 ‘훈육사회’-노동자로 호명되는 주체의 훈육-이 아니라 ‘통제사회’로 전환되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은 더 이상 ‘노동력으로서의 노동’만이 아니라 ‘생명활동’이며, ‘삶-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통제’라는 시스템을 요청하게 된다. 오늘날의 권력은 이런 통제, 일상적이고 미시적이며 기술적인 감시들과 결합되어 있는 ‘통제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 통제사회를 강화하는 것은 “고용과 소득의 불안이라는 이중의 불안정성”이다. 박영균 교수는 “오늘날의 도시는 불안이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이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어떠한 안정된 기반도 없는 예측가능성이 상실된 곳”이라고 말했다.

박영균 교수는 이런 불안의 총체화 속에서 대안과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조정환의 <인지자본주의>의 내용을 빌려와 ‘삶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노동의 힘’을 통해 ‘거대한 전환의 내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인지란, “인식 주체 바깥에 있는 어떤 저 세계의 표상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어느 한 세계를 끊임없이 산출하는 일”이며, 새로운 세계를 산출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힘이다. 그런 점에서 ‘삶-정치’와 ‘삶-권력’은 “생산적인 것의 비물질화와 인지화”가 낳는 다중의 역능을 두고 벌이는 전쟁터의 두 세력이며, 그런 점에서 오늘날 “삶-정치와 삶-권력의 투쟁”이 전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삶-정치’적 관점은 한편으로는 경제결정론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의 자율성론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관계, 즉 상품관계와 자본관계 그 자체 때문에 공통적인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수동성과 예속, 슬픔의 정서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라면, 그 전복적 역량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박영균 교수는 “따라서 문제는 다중이 ‘인지자본주의에서 그 정점에 이른 이 사회적 인지능력을 어떻게 자본관계의 지배로부터 벗겨내어 공통된 삶의 에너지로 전화시킬 것인가’”라고 말했다.

 

다중의 반란

물론 이 ‘다중’이라는 주체에 대한 동시대 좌파 학자들의 비판은 다양하다. 다중은 “양가적이고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으며, 그들의 특이성은 통일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동과 상충되며, 헤게모니적인 힘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무기력하다.” 또한 다중은 “현대자본주의의 향락에 근거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며, 자신들의 욕망의 권리만을 주장하면서 “결단과 선택을 회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네그리가 바라보는 다중은 본성상 혁명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치적 조직화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되는 주체들이다. 박영균 교수는 다중에 대한 비판과 불신의 일부는 ‘정치적인 것’을 여전히 헤게모니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네그리의 다중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통일성이나 지도자 없이 공동 행동을 할 때 만들어”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다중이 혁명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장은 정치학과 윤리학, 봉기와 제도, 레닌의 기동전과 그람시의 진지전이 구분될 수 없는 탈근대적인 지점에서이다.

근대적 세계에서의 저항이 직접적인 또는 변증법적인 힘의 대립을 의미했다면, 탈근대적인 저항은 애매하거나 삐딱한 자세에서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제국에 대항하는 전투는 삭제와 태만을 통해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주는 어떤 장소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의 장소를 철거하는(비우는) 것이다.” 네그리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 공간은 “노동, 생산, 금융, 그리고 부의 재분배를 다수의 사람들이 참가해서 함께 관리해가는 체제를 만들어가는” 절대민주주의로 나아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의제와 3권 분립 등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가 부패한 것은 부정부패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치제도와 국가권력이 집행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뉴욕의 월가에서, 유럽 각지에서, 북아프리카와 아랍에서 말이다. 설계나 통제가 아닌, 중앙의 지도나 맹목적인 신뢰가 없는, 새로운 투쟁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군중은 비로소 “독자성을 가진 자율적인 개인의 집합”인 다중이 된다. 그 때 그들은 단순한 대중이나 군중이 아니라 불안정하지만 독자적이고 자율적이며 유연한 개인-공동체이다.

무릇, 자책을 관두고 분노의 능력을 회복하면,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기 시작하면, 억눌린 생각과 의사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다중의 역량이 스스로 발현된다. 박영균 교수의 말처럼 다른 무엇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닐까? 조금 더 받기 위해, 조금 더 편하기 위해 어색하게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며 데모하는 것이 아니라, “캠프를 차리고 생활 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공동토의하고 있는” 그 현장에, 나와 공동체의 관계가 최대한 좁혀지기 위해 협력하는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 움트지 않을까? 그 새로운 정치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가치나 원리로 작동할 것이다. 통치나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고 누리기 위해 조직되는 정치가 그것이다. 네그리가 말한 다중의 능력도 바로 이러한 가치를 생산하는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본은 보기보다 약하고, 다중은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본은 다중에 의존하고 있고, 자본의 명령과 권위에 저항하는 다중의 의해 끊임없이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총체성:자유로 가는 길[생각vs생각]

“‘포괄적으로 보는 사람’(ho synoptikos)은 ‘변증술에 능한 자’(dialektikos)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이가 아니기 때문이네.”(플라톤, 『국가』)

전체는 비진리인가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곧 전체”라고 제시하며 변증법적인 총체성의 개념을 존재론적 원자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실체존재론과 근대의 경험주의, 그리고 선험적 형식주의(경험주의의 변형태 중 하나)를 비판하는 토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대학살과 스탈린의 강제수용소를 경험한 이후 보수적인 학자 진영이나 진보적인 학자 진영이 이 개념을 집중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 개념과 아울러 변증법 자체의 학문성과 실천성까지 모두 의심하고 심지어 폐기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로써 변증법적 총체성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전체주의라는 현실적 정치체제와 필연적 연관성을 지닌 것처럼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을 아도르노는 “전체는 진리가 아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표현한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며 개인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실증주의나 분석철학과 같은 경험-형식적 합리성의 철학(대표자로는 포퍼, 그의 반증주의는 전형적인 과학주의임), 그리고 소비에트 공식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정치적으로 새로운 진보를 제시하기를 열망하는 네오맑스주의(대표자로는 아도르노)나 포스트모던주의(대표자로는 리요타르)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다.

새로운 좌파적 실험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주자인 리요타르는 변증법의 ‘총체성’ 개념과 거대 담론을 비판하며 차이의 활성화를 통한 작은 담론을 대안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전체와 하나에 대한 동경(변증법적인 총체성-인용자 주), 개념과 감성의 화해에 대한 동경, 명료하고 의사소통가능한 경험에 대한 동경을 실현하기 위해 지나친 대가를 치렀다. …… 그리하여 서술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하고, 충돌하는 차이를 활성화하고 그 이름의 명예를 구원하라.” 이 글에서 변증법적인 총체성은 다양성을 배제하고 차이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한편 정치적 보수주의자인 포퍼는 자유주의의 기초가 되는 개인주의라는 정치철학적 관점과 자신의 과학적 탐구의 방법인 “시행착오”의 방법을 기초로 해서 변증법적 총체성을, 그 총체성의 역사적 발전적 과정의 필연성을 일종의 예언자의 망령으로 규정한다. 포퍼는 변증법적 총체성을, 역사적으로 전개된 과정 전체를 필연적으로 규정하는 일종의 ‘역사법칙주의’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법칙주의는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하나의 역사발전법칙으로 설명하고, 특히 미래를 이 법칙에 따라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퍼는 변증법적 역사진행과정의 총체를 점성술의 예언 차원으로 격하시키면서 동시에 변증법 자체도 ‘전(前)과학적이자 전(前)논리적인 사유방식’으로 규정한다. 그는 변증법을 “어떤 발전 또는 어떤 역사적 과정이 어떤 전형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변증법적 3박자 이론으로 정의한다. 이 전형성이 바로 역사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론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결정론의 형태가 헤겔에서는 개념적 필연성으로, 마르크스에서는 경제적 필연성으로 나타난다.

포퍼는 필연성에 기반을 둔 변증법이 철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정치이론의 발전에서도 불행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에는 그 진행 과정을 필연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역사에는 의미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포퍼에 의하면 “미래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으며 우리들은 어떤 역사적 필연성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필연성에 기초한 전체 과정으로서의 변증법적 총체성은 예언적 환상에 불과하고 이로부터 인류의 자유를 구속하는 정치적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개인화는 전체화를 동반한다

그런데 포퍼와 리요타르가 공격하는 내용과 방식은 달라도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즉, 현대 정치에 출현한 전체주의적 요소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정치공동체와 이성국가를 강조하는 변증법에서 기원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전체주의의 기원이 아니다. 도리어 자유주의가 전체주의의 출현에 책임이 있다. 현상적으로 보기에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전체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의 치료제로 추천되기도 한다.

이러한 혼동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대 정치를 ‘개별화’와 ‘전체화’가 맞물려 진행되어 온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푸코). 일례로 ‘개인의 권리’와 ‘인격의 자유’에서 쓰이는 ‘권리’와 ‘인격’ 모두가 개인적인 차원에 속하는 개념들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차원에서 법적인 토대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개념들은 이미 자신들 속에 사회적, 더 나아가서 정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개인’이라는 개념도 추상화된 단위, 즉 국가나 사회로부터 추상화된 결과이지 이것들의 선행 원인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개인’, ‘권리’, ‘인격’ 모두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개별화와 국가화(전체화)가 별개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가 성립(전체화)하면서 개별화가 함께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개별화는 추상적 직접성의 단계로서 이미 전체화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개념들 속에 이미 전체화의 요소가 전제되어 있음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는 절대로 어떤 정치적 지배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이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담론 형식인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홉스의 절대주의적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가 기원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홉스의 정치철학이 근대성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철학에는 자유주의의 핵심인 도구적 합리성(욕망을 계산하는 이기적 인간의 합리성)과 이 합리성의 주체인 이기적 개인(이는 갈릴레이의 분해와 결합의 방법에 의해서 시계가 분해되어 부품으로 쪼개지듯이 개인도 사회가 그 요소로 분해되어 나타난 단위이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그의 철학이 욕망하고 투쟁하는 시민사회의 철학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시민사회의 갈등과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홉스는 국가라는 괴물(홉스가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나오는 괴물 이름이다)을 고안한다. 그는 시민사회가 국가라는 절대 권력체 없이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통찰한 것이다.

이를 로크는 국가의 목표가 ‘재산의 보호’에 있다고 함으로써 분명히 한다. 재산 이론을 통해서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자신이 전제한 평등한 권리를 불평등한 권리로 변형시킨다. “시민사회(=정치 사회)는 이미 자연 상태에서 불평등한 권리를 생기게 한 불평등한 소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건설된 것이다.”(맥퍼슨) 이는 자연 상태인 시민사회의 재산은 국가의 법률적 보호 없이는 안전할 수 없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로크의 소유 개인주의(자유주의)는 국가와 법률의 강제를 필요로 한다.

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과 성격뿐만 아니라 근대 정치철학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가 지적한 대로 근대 정치적 합리성이 ‘개별화’와 ‘전체화’를 동시에 진행시킨 점을 통찰해야 한다. 또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주장한 것처럼 계몽주의는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자유주의 이념의 학문적 형식인 경험-형식적 합리성(논리실증주의에서 잘 구현된 합리성)에서 잘 드러난다.

이 합리성은 처음부터 배제의 논리를 구사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로부터 역사와 실천이성이 배제된다. 그리고 형이상학을 신화로 해체한 경험-형식적 합리성(계몽주의)은 자신이 다시 신화가 된다. 이러한 역설적인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개인주의 외에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계몽주의의 합리성이 신화와 탈마법화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듯이 자유주의는 자유와 지배(자유로부터 생겨난 지배)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다.

이 테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최소 국가론을 주장하므로 국가를 목적으로 두는 전체주의(국가 권위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는 나치즘과 파시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치즘과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핵심적 주장인 ‘시장의 자기조절능력’의 무능에 대한 우파적 입장의 해결책으로 역사에 등장한다(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이것들은 시장 사회의 공격적 요소에서 기원한 시장주의의 실패작이다. 또한 이러한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케인즈의 복지국가와 자유주의의 최소국가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적대적인 두 집안의 극단적인 대립이 아니라 자유주의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두 가족이 대립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효율성을 신뢰하는 것이고 복지국가론은 시장이 낳은 문제를 시장주의로 보완한다는 수세적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의 위기와 현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등장한 공세적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자본을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시도한다. 이처럼 초국적화된 자본의 본질적 운동은 수세에 있을 때는 국가라는 기구를 이용하고 공세에 있을 때는 국가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권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자신의 개념 안에 권력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의 특징은 권력을 실체화하지 않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의 그물망(예컨대 통치계약)으로 엮는 동시에 (예컨대 수용소 또는 파놉티콘 안에서) 권력의 개별화를 행한다. 로크의 ‘권리’, ‘인격’ 개념과 벤덤의 ‘원형감옥(파놉티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실제로 자유주의는 원자적 개인주의 더 나가 소유 개인주의로, 그래서 소유한 자의 자유와 소유하지 못한 자의 종속으로 귀결되며, 이 종속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억압적 권위주의로 귀결된다. 이러한 소수만이 자유로운 자유주의적 국가의 권위주의로부터 해방되고 만인이 자유로운 이성국가나 코뮌주의를 건설하려는 철학적 입장들이 등장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비억압적 총체성을 기획하는 정치적 오르가논으로서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이 역사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변증법이 정치적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오해받는 역사적 이유

이처럼 정치적 전체주의의 기원이 자유주의임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적 총체성이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오해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탈린 소련의 수용소(굴락)와 중국의 인권 탄압이라는 역사적인 불행한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스탈린 소련은 동구 몰락에서 보듯이 근본적으로 변증법과 사회주의의 원래 이념에서 변질된 근대 (도구)이성과 계몽 기획의 어두운 얼굴에서 기인한 것이다.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동구의 몰락은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에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복지국가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구소련 모두 근대성과 자유주의의 핵심인 도구적 합리성(경험-형식적 합리성의 형태 중의 하나)을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구의 몰락은 근대성의 위기의 표현이며 그 근대성의 헤게모니적 지배권을 지닌 자유주의의 몰락(월러스틴의 테제)이다. 자유주의가 이러한 몰락에 직면하여 공세를 편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의 과학적 논리인 실증주의는 이러한 근대성의 어두운 얼굴을 무시하고 근대성을 일방적으로 찬양하지만, 변증법은 근대성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본다. 변증법이 이 중에서 하나만을 주장한다면 이는 계몽을 찬성 아니면 반대하라는 ‘계몽의 협박’에 말려드는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지배적 변증법은 근대의 성과만을 지나치게 미화한 비변증법적인 사유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탈린주의는 비변증법적 요소, 더구나 자유주의적 요소(형식적이고 도구적인 합리성), 즉 계몽의 변증법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성 일반(유럽의 근대성과 그의 대표적 형태인 자유주의 철학)이 변증법보다 훨씬 더 이 이데올로기적 괴물의 탄생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동구의 몰락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 진행의 한 계기일 뿐이다.

근대성 일반(그 핵심으로서의 자유주의)이 위기에 봉착한 지금, 변증법적 사고의 폐기가 아닌 복권이 필요하다. 이러한 복권으로 인해 역사성에 기반을 둔 개념적 ‘노동’과 공시적인 것과 통시적인 것의 전체를 포착하려는 ‘총체성’을 향한 사유의 노동이 작동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근대성의 성과와 한계가 잘 드러날 것이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고 표현된 것에 순종하고 분쟁들을 일방적으로 종식시키는 논리적 전체주의도 아니며 더 나가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당이나 지도자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복종시키고 억압하는 정치적 전체주의는 더욱 아니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파편화되고 복잡한 현대 사회의 전체의 모습을 그려보려는 진리에 대한 용기 있는 자의 학문적 시도이다.

반대로 총체성이라는 내적 연관성을 지니지 못한 채 자유주의자들처럼 고립되고 분열된 단위들의 상호소통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아니다.

이와는 다르게 변증법은 서로 내적으로 연관된 전체라는 관점에서 서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전체 인류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그 생생한 대립적인 총체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로써 변증법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소외된 목소리를 활성화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갈등 속에서 조화하는 자유와 해방의 논리이자 정치의 오르가논이 된다. 다시 말해서 변증법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오르가논이 된다.

변증법은 초역사적 추상적 공간이 아닌 현재의 역사적 조건을 원자화된 그림이 아니라 내적 연관성이라는 총체성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변증법은 미래를 예언하는 사이비 과학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적 조건을 성찰하고 그 현실에서 무르익은 이념적 차원을 드러내는, ‘서술’과 ‘비판’의 기능을 하는 ‘황혼 무렵에 날아오르는 올빼미’이다.

김성우(상지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

소피스트는 정말로 나쁜 놈인가?[생각vs생각]

분신술을 사용하는 철학자가 있다면?

홍길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듯이 우리에게도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재주가 있다면 어떨까? 두 장소가 아니라 ‘한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분신술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만약 한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 ‘철학자’라면, 철학자는 그 재주를 어디에 사용할까?

아마도 철학자 분신들은 동일한 주제에 대해 자신들과 반대 입장을 지닌 사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힘을 합쳐서 상대방을 한 목소리로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천하무적의 분신들.

그러나 만약 그 자리에 반대 입장을 지닌 사람은 없고 ‘단지 분신들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신들끼리 서로 반대 입장을 취하여 끝나지 않는 논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분신들.

동일한 분신들이 환상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 실제로 나타나서 반대 주장을 펼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양보 없는 논쟁을 벌이는 집요한 철학자로 간주하기보다는 반성 능력이 부족하여 논리적 모순을 범한다는 둥, 오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둥, 철학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둥, 심지어는 자아 분열, 다중 인격 운운하면서 비판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철학사를 들쳐보면, 청년기 때의 생각이 바뀌어서 말년에 자신의 생각을 번복하거나, 간혹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는 철학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후대 사람들이 동일한 주장에 대해 ‘해석’ 내지 ‘가치 평가’를 달리 하여 대립각을 이루기도 한다. 그 중에는 너무도 당연해서 도저히 ‘그 해석’과 ‘그 가치 평가’를 바꿀 수 없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뒤집어서 세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 들어 충격파를 만들어내는 한 예로 고대 철학자를 들여다보자.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와 그 적들인 소피스트들을.

상투적 대립 – 소크라테스는 좋은 놈, 소피스트는 나쁜 놈

반드시 철학계가 아니더라도 일상 세계에 타산지석의 모델 내지 반면교사로 평가되던 소피스트들, 그들은 상투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소피스트는 잘못된 의견과 궤변이 난무하는 폴리스 안에서 두려움 없이 쓴 소리를 한 강직한 소크라테스를 미워하여 – 허위를 유포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 억울한 누명을 씌워 독배를 마시게 했으니, 소피스트가 나쁜 놈의 대명사가 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단지 ‘한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상적 유산을 어느 정도 만들어낼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위대한 천재 철학자’를 죽인 것이며, 그것은 곧 그가 부르짖는 ‘보편 규범과 보편 도덕’을 죽인 것이며, 궁극적으로 ‘진리’, ‘보편 진리’ 자체를 살해한 것이 된다.

진리 살해, 진리 매장은 소피스트가 주장하는 의견(잘못된 주장, 억견:doxa)을 진리(episteme)로 부각시키는 것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리 대 억견의 대립 구도’뿐만 아니라 ‘진리’와 ‘진리 인식 가능성’까지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소피스트에게 보편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 인식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결과적으로 진리는 의견이라서,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

소피스트에게 진리는 논쟁에서 이기는 자의 주장이며, 논쟁을 펼치는 정치의 장에서 이기기만 하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그에 반해 진리 다양성을 비판하면서 보편 진리와 보편 규범을 들고 나온 소크라테스와 진리 일원성은 소피스트에게는 가장 껄끄러운 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집단행동을 통해 제거되어야 할 걸림돌이기 때문에, 소피스트는 나쁜 놈이 되더라도 소크라테스를 죽여서 그의 보편 진리까지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순을 드러내는 분신 – 소크라테스의 이중성

나쁜 놈들의 수작에 맞서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동시에 진리 일원성과 보편 진리를 관철시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과업이다. 그러므로 좋은 놈의 면모를 철저히 발휘하여 소피스트가 나쁜 놈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소크라테스는 청소년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소피스트에게 고발당한다.

마지막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재판관과 방청객이 그의 무죄를 수긍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설득시켜 보라는 주문을 재판관으로부터 받는다. 사형 언도 권한을 지니는 재판관 앞에서 만약 소크라테스가 수사술을 통해 이들을 ‘감동’시킨다면 그는 무죄를 ‘설득’시키는 셈이 되고, 소크라테스에 대한 사형 판결은 철회될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설득적 연설을 해야 하는 곳에서 수사술이 아니라 변증술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논박한다. 결국 논쟁에서 이기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지는 못 한다. 감동받지 못한, 설득당하지 못한 재판관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다.

희랍 당대에는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방법으로 변증술과 수사술을 사용했다. 변증술은 철학적 논증을 하는 기술로서 철저한 논쟁술이며,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그에 반해 수사술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정치적 연설의 기술이며, 다수를 향하여 이루어지는 웅변술이다.

철학적 진리를 논증하기 위해 변증술을 견지하는 소크라테스에 반해, 소피스트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득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사술을 악용하여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의견을 진리처럼 오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요구받은 것은 다수를 감동시키고 설득시키는 수사술임에도 불구하고 – 그가 변증술과 수사술의 차이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실수인지 모르지만 – 변증술을 사용한다. 그래서 대화 상대자와의 논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그리고 다수를 감동시키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소피스트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결정적 실수도 한몫하고 있는 셈이 아닐까? 수사술을 사용해야 할 곳에서 변증술을 사용했다면, 그가 변증술과 수사술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며, 그러한 미구별은 ‘진리를 다루는 변증술’과 ‘의견을 다루는 수사술’의 미구별로 이어진다. 달리 말하면 진리와 의견을 구분하지 않거나,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 셈이 된다.

변증술과 설득술을 구분하지 않은 것은 진리(episteme)와 의견(doxa)을 구분하지 않은 것이 되고, 그로 인해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진리도 ‘하나의 의견’으로 전락한다. ‘소크라테스 대 소피스트의 대립’은 ‘진리 대 의견’의 대립이 아니라 – 진리가 의견이 됨으로 해서 – ‘의견 대 의견’의 대립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범한 실수는 그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간 데에서 그치지 않고 소크라테스 자신을 소피스트로 전락시킨 것이 된다. 소크라테스, 그는 또 하나의 소피스트인가?

소크라테스는 각자의 정신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진리의 일원성과 보편성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의 대표 방법인 산파술을 보자. 산파는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산모에게 아이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인간 누구나 보편 진리라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으며, 산파는 단지 임신한 아이를 낳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이며, 그러한 산파가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산파술은 변증술로 전환되며, 변증술은 진리의 일원성에 기초하는 보편 진리를 찾는 방법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있으며, 진리 인식은 변증술에 의해 누구나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재판정에서는 변증술과 수사술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함으로 해서 진리와 의견의 차이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아렌트는 『정치의 약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실수를 언급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보편 진리와 진리 인식을 그 자체로가 아니라 ‘의견’ 가운데서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한다고 주장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에게 의견은 파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진리가 오히려 의견의 작동 가운데서 산출되며, 의견은 언제나 진리와 유착(48쪽)해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진리는 의견을 통해 드러난다는 발상이 암묵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폴리스 공동체에서 ‘의견들의 대립’, ‘소피스트들의 대립’,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은 ‘진리를 드러나게 하는 대립’이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위해 정신에 몰두하기보다는 ‘타인의 의견’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하며, 달리 말하면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가 되어야 한다. 소피스트화된 소크라테스라면, ‘소크라테스 대 소피스트의 대립’은 ‘소피스트 대 소피스트의 대립’이 된다.

의견들의 대립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려면 자신보다는 다른 의견을 지니는 타인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타인의 의견을 통해야 하므로, 진리 발견과 진리 주장은 외로운 철학자의 작업이 아니라 다수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 소피스트의 작업이 된다.

또 하나의 모순적인 분신 – 진정한 민주주의자로서 소피스트?

분신술을 사용하여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로 만들고, 진리를 의견 가운데 드러내도록 함으로써 진리가 의견이 되고, 의견이 진리가 되는 상황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지지자인 플라톤은 아렌트와 달리 의견을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설득을 사용하여 대중을 다루는 것은 ‘폭력’과 폭력에 의한 ‘지배’라고 본다. 차후에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변론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는 하지만, 설득에 의한 방법을 거부한 결과는 독배를 마시는 죽음일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소피스트는 주관주의, 진리 상대주의에 기초하여 진리 다양성을 주장하며, 이로 인해 이기주의와 유아독존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태도를 낳는다. 게다가 그들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치졸한 방법, 속임수까지 사용하여 의견을 진리로 둔갑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소피스트가 이렇게까지 타락하여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낼 때 그들이 속한 폴리스 공동체가 실제로 추구한 것은 자유와 평등이다. 자유민의 자유는 논쟁 과정에도 그대로 투영되는데, 자유의 근간이 되는 희랍의 이소노미(isonomy)라는 단어는 후대 사람들이 소피스트의 정신적 기반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폴리스 공동체는 민주 질서를 갖췄지만, 민주정보다는 ‘비지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아렌트의 『혁명론』에 따르면, 아테네의 민주정은 “지배받지 않는 조건 아래서 시민들이 함께 생활하는 정치조직,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하지 않는 정치조직”(97쪽)이다. 그래서 자유는 비지배를 의미하는 이소노미로 간주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권력을 강화하여 타인을 지배하게 된다면, 그는 이소노미에 의거하여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된다. 자유민의 자유는 노예와 대비시키면 타고난 것일 수 있지만, 구체적 내용을 실현하는 정치적 행위 공간에서는 비지배를 관철시키는 것이라서 – 타고난 것이 아니라 – 폴리스적 삶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 인간적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자유민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서 정치적 행위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이때 자신의 의견이 없는 사람은 논쟁의 한 축을 이룰 수 없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서 논쟁의 장으로 뛰어들 때, 그들은 정치적 입장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입장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소피스트에게 철학적 진리는 의견이지만, 의견의 대립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서 비지배’가 견지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진리가 하나이다.’라는 전제는 무의미하다.

오랫동안 권모술사라는 철학사적 지탄을 받았던 소피스트가 정치적 행위와 논쟁의 장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의견을 지녀야 하고, 다양한 의견만큼 다양한 충돌 가운데서 진리를 구체화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자신의 의견을 진리로 격상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상대방을 만나야 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 하고,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비지배가 견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폭력, 그로 인한 억압과 지배는 배제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보편 진리조차도 의견 가운데서, 다양한 의견 가운데서 드러난다면, 보편 진리를 위해 타인과 만나야 하고, 타인과 대화를 해야 하고, 타인과 만나는 공적 토론의 장에서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민주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소피스트가 보여준 것은 자유분방한 토론의 장에서 각자의 의견을 거쳐서 진리를 드러내려면 언제나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의 의견’이 필요하고, ‘타인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보편 질서 내지 보편 규범과 보편 진리를 내세워 의견을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태도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 가운데서 진리를 드러나게 하는 비지배적인 태도에 비추어 보면, 하나의 진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폭력이고 억압이며 비민주적인 철학적 독소가 된다.

분신술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독재적이고, 소피스트는 민주적이며, 소피스트는 반성 능력을 발휘하는 비지배적 대화를 하는 자이고, 소크라테스는 우격다짐으로 소피스트를 억압하는 또 다른 소피스트가 아닌가? 소피스트가 자유, 비지배, 그로 인한 다양한 의견, 의견 대립 속에서도 타인과의 대화를 지속하는 민주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태도와 정신은 망각되고 억울한 죽음을 야기한 집단행동만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지배적인 자유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과 대화의 장을 만드는 모습, 즉 ‘망각된’ 소피스트의 모습을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에서 다시 부각시켜야 한다. 공적 토론과 소통의 장을 실현하기 위해 비지배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현 정부가 낯선 타인으로 간주하는 서민들이 필요하고, 서민의 의견과 행동이 필요하며, 궁극적으로 의견 난립 속에서 상호 공존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이다.

이정은(연세대) /

‘탁월함’의 행위 기준은 무엇인가?[고전은 숨쉰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소고 (上)

윤리학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을 이론학과 구별한다. 윤리학은 좋은 행위를 그 주제로 한다. 윤리학은 우리의 삶을 진작하기 위해 연구하는 분야다. 그래서 그 주된 관심은 인간의 행복(잘삶/성공)의 본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따라 덕(아레테)을 잘 사는 삶(eu prattein)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좋음 삶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그는 윤리적 덕(정의, 용기, 절제 등)은 이성적, 감정적, 사회적 관계에 관련된 복합적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다만 플라톤과 달리 ‘최고의 좋음’을 파악하기 위해 학문적 훈련이나 형이상학적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는‘잘 살기’ 위해서는 친애(philia), 쾌락, 영예, 쾌락, 부와 같은 ‘좋음’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윤리학을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개별적 좋음들’은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별적 상황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적절한 교육, 습관을 들임으로써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개별적 상황 속에서 특정한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이성에 의해 지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경우에 우리의 행위를 선택하게 해주는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phronesis)는 단순히 일반적 행위규칙을 배우는 것으로 획득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행위, 숙고, 감정, 사회적 관계를 가지는 기술(techn?)을 통해 개별적 상황에 적합한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잘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윤리학에 관련된 두 작품;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개의 윤리적 작품을 썼는데 하나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고 다른 하나가 『에우데모스 윤리학』이다. 이 두 작품은 ta ?thika라고 불리는데, 동일한 윤리적 기반에 서면서 두 작품은 거의 대등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작품은 동일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행복으로부터 그 논의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aret?(탁월성/덕)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음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성품, 쾌락과 친애의 본질을 논의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에우데모스 윤리학』 8권 끝머리에서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짤막한 논의로 마무리되고 있다. 신에 대한 ‘관조의 삶’이 최고의 좋음이라는 것이다. 외견상으로 이 두 작품은 동일한 논의구조를 가지지만, 그 내용과 구성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흔히는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니코마코스 윤리학』보다 앞서 써진 저작이고, 나중에 보다 세련되게 후자의 작품으로 개선되어 완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바대로 『에우데모스 윤리학』 1권은 행복, 최고의 궁극적 목적, 인간행위의 목적을 논의한다. 실천학문의 탐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음에 대한 지식이 그 성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삶이 구별되고 있다. 사유하는 철학적 삶, 정치적 삶, 육체적 향락을 바라는 삶이 그것이다. 또 그는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를 거부하고, 어떤 경우든 좋음 자체는 실천적 삶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제2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좋은 영혼의 활동”(1219a35)으로 정의한다. 이어서 잘사는 것, 잘 행위하는 것, 행복하다는 것은 다 같다고 말한다. 대체로 제2권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의 논의를 담고 있다. 그밖에도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3권 1-4장의 내용에 대응하는 논의로 전개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 중용, 여러 아레테들, 자유의지 문제를 자발성, 비자발성과 바람의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

3권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3권 6장 이하 4권에서 논의하는 개별적 탁월성을 열거하고 논의하는 대목과 들어맞는다. 이어지는 4. 5. 6권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5, 6, 7권과 동일하므로 사본에서는 빠뜨리고 있다. 이 권들은 각각 정의, 실천적 지혜,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 등을 다루고 있다. 6권(『니코마코스 윤리학』7권) 후반부에서 다룬 쾌락의 문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에서 더 자세하게 논의된다. 『에우데모스』 7권의 주제는 친애(philia)다. 이 개념은 수평-수직적 관계, 동등한 관계를 비롯하여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이 주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9권에서 보다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다. 어쨌거나 살펴본 바와 같이 논의되는 주제의 배열은 다르나 주제에 대한 견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면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재개정한 것으로 여겨지며, 대체로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니코마코스 윤리학』 보다 앞서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니코마코스 윤리학』는 『에우데모스 윤리학』의 편집자인 사촌 에우데모스가 침묵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부가적으로 첨가해서 편집된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큰 차이점으로 지적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윤리이론과 정치학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논의한다는 점은 주목해서 바라다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죽을 때까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의 솔론의 언명(‘끝을 보라’)을 고찰하고 있는 것도 다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정치적 삶보다 철학적 삶의 우월성을 논의하는 일련의 논의를 담고 있다는 점도 차이를 가진다.

최고의 좋음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묻는다. 최고의 좋음은 무엇인가? 이 물음이 윤리학의 출발점이다.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물음을 다음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즉 만일 무한 소급에 빠지지 않아야만 한다면 이러한 최고의 좋음과 이러한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데모스 윤리학』 첫머리에서 델로스 섬 성소에 있는 레토의 사원의 입구에 쓰여 있는 비문을 인용하고 있다. 처음으로 그 비문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좋음(to agathon), 아름다움(to kalon), 즐거움(to hedu)을 구별한다. “가장 정의로운 것은 가장 아름다움 것이다. 건강함은 가장 좋은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이루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은 것인 행복은 가장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EE.1214a 5-7)

『니코마코스 윤리학』(1094a18-23) 첫머리에서도 비슷한 어조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1 그렇다면, 만일 행위될 수 있는 것이 그 자체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은 이것[목적] 때문에 우리가 바란다고 하면, [20]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과정은] 적어도 무한히 계속될 것이고, 그래서 욕구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 목적이 좋음, 말하자면 최상의 좋음(ariston)일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좋음’ 혹은 ‘최고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1) 만일 우리가 다른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선택한다고 하면, 욕구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일 것이다.
(2) 욕구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이 아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체를 위해서 어떤 것을 선택한다.
(5) 이것이 바로 최상의 좋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개하는 이 논변이 단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선택함이 없이, 그 자체를 위한 다른 것들의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는 논변인 셈이다.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상의 목적이 있다는 점만을 주장한다. 1권 7장 들어 그는 다시 최상의 목적을 다루고, 특히 그 자체를 위해서 추구되는 ‘여러 목적’의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그는 최상의 좋음이 ‘행복’(eudaimonia)이라 답한다. 이 답변은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이긴 하지만 일종의 쾌락주의적(hedonistic)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쾌락이긴 보다는 일종의 ‘잘나감’(성공; success, flourishing)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에 ‘한창때’(전성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완전한 탁월성에 따라 활동하며 외적인 좋음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1101a15)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말한다. 그는 1권의 행복의 논의에서 행복이 외적인 좋음(ektos agathos)을 포함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의미라면 에우다이모니아는 번영, 성공이란 말에 더 적합한 번역어인 듯싶다.

행복은 순수하게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 행복은 목적들 중에서 유일무이한 상태를 가진다. 그것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일 수 없다. 그것은 유일한 완전한( teleion) 목적이다. 어떤 목적들은 가령 부나 음악적 도구들은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다. 행복은 완전한 목적이라면, 그 밖의 지성, 영예, 쾌락은 어떤가? 그것들도 부분적으로는 그 자체를 위한 목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부는 예외일 수 있다 – 어떤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될 수 있다. 이를테면 지성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누구도 행복을 어떤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늘 목적으로 그 자체적으로 선택된다. 행복은 그 자체로 인생을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든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최선의 좋음이라는 결론을 지지하기 위해 또 다른 고려를 가져온다. 완전한 좋음은 자기 충족적이라는 것(autarkeia)이다.

(1097b 15 이하) 어쨌거나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삶을 선택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그리고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것을 자기충족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 [20] 그렇다면 행복은 명백히 완전하고 자기 충족적인 어떤 것이다. 그것은 행위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의 목적이니까.

여기서 충족을 말하는 경우에 그는 고립적 삶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친구, 가족을 포함하는 사회적 생활을 고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폴리스적 동물(z?on politikon)이기 때문이다.

목적으로서의 좋음과 자족으로서의 좋음

행복은 행위가 목표로 하는 목적이다. 자족은 사람을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오직 목적으로도 그 자체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족적인 좋음이다. 그것은 근대철학적인 언어표현으로는 ‘내재적(본래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과 함께 나란히 갈 수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는 무언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그것을 그 자체적으로 평가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는지에 달려 있다. 다른 하나는 좋음의 본질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그 자체로 좋은가 혹은 그것이 어떤 다른 것의 좋음에 의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우리가 목적으로 평가하는(가치를 매기는) 것은 내재적 혹은 ‘자족적’ 가치를 결여하고 있다. 우리는 내재적인 ‘자족적’가치를 가진 것을 목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기능논증은 무엇을 말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은 기능(ergon) 논증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능개념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 논증은 인간에게 좋은 것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1097b23 이하) 그런데 어쩌면, 만일 우리가 인간의 기능(ergon)을 파악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5] 왜냐하면 피리(아울로스) 부는 사람, 조각가 및 모든 기술자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떤 기능과 행위를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되었든지 간에 그 좋음은, 즉 잘(to eu)은 그 기능 안에 달려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 같이, 만일 사람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사람에게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물의 기능은 그것이 무엇인가에 결정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아울로스 부는 사람의 기능은 아울로스를 부는 것이다. 좋은 아울로스 부는 사람은 그것을 ‘잘’ 연주한다. 이와 같은 것이 인간을 위한 기능에도 있는가? 만일 있다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말하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생물과 비교해 보자. 인간은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다. 생물로서 인간은 영양섭취, 성장, 장소운동, 감각지각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기능들은 식물, 동물들도 나누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고유한(idion) 기능은 무엇인가? ‘이성적 부분의 실천적 삶’, ‘이성적 원리를 가지는 요소들의 능동적 삶’이다.

(1098a3 이하) [13] 이렇게 되고 보니, 남는 것은 이성(로고스)을 가지고 있는 영혼의 그 부분의 것의 어떤 종류의 행위적 삶이다. 이것의 한 부분은 이성에 따르는 한에서 이성적이고, 다른 한 부분은 [그 자체가] 이성을 가지며 생각하는 한에서 이성적이다. [5] 게다가, 이러한 [행위적 또는 이성적] 삶은 또한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해지는데, 우리는 현실 활동(에네르게이아)에 따르는 [인간에게 특별한 기능이 될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보다 고유한 의미에서 삶이라고 말해지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무엇인가? 만일 좋음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고유한 기능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또 인간의 기능은 ‘이성적 원리에 따라는 영혼의 활동’이라면, 인간의 좋음은‘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 즉 aret?이다.(1097a15; 1098a8).

그런데, 만일 인간의 기능이 이성에 따르는 혹은 적어도 이성이 빠지지 않은 영혼의 활동(energeia)이라고 하면, 또 우리가 어떤 것의 기능이 그 종류의 것의 뛰어난 사람의 기능과 종류에서 같다고 말하면, – 마치 하프 타는 사람과 하프에 뛰어난 사람의 기능이 같은 것처럼 -, [10]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 기능에다 덕에 따르는 뛰어난 성취를 덧붙인다면, 이것은 모든 경우에 대해서 단적으로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 논증의 구조는 먼저 인간에게 좋음이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 목적으로부터의 논증과 자족으로부터의 논증은 인간의 좋음은 행복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능 논증은 인간의 좋음은 이성적 부분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이 세 논증들은 인간의 좋음을 설명하는 경쟁적 논증이 아니다. 오히려 이 논증들을 통해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이성적 부분에 따라는 영혼의 활동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행복은 우리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 데 놓여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행복이 곧 아레테인 셈이다.

한 마리 제비가 여름을 만들지는 않는다. 좋은 날 하루가 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1098a17).

행복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복한 하루나 짧은 시간이 지극히 복되고 행복한 만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지속적인 성품의 발현에서 오는 것이다. 탁월성 곧 덕은 습관을 통해 획득된다. 도덕적 탁월성은 우리가 그것을 활용하기 전에조차 가지고 있는 시각과 같은 자연적 능력과 대조된다. 도덕적 탁월성의 경우에 우리는 ‘행함으로써’그것을 배운다.

(1103a28 이하) §4 게다가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것에서 우리는 먼저 그것들의 능력을 얻고 나중에 그 활동을 드러낸다. 이것은 감각들의 경우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각들을 자주 보거나 혹은 자주 들음으로써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30] 오히려 [이런 감각을] 사용하기 이전에 그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그것들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 기예의 경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덕들은 우리가 먼저 활동시킴으로써 우리는 덕들을 얻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배웠을 때 만들어야만 하는 그것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기술들을 배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건축해봄으로써 우리는 건축가가 되고, 또 기타라를 타봄으로써 기타라를 타는 악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1103b] 따라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옳은 행위들을 함으로써 옳게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된다.

아레테는 지식, 선택, 성품을 포함한다. 예술작업이나 음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생각을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덕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무엇을 행위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행위했는가 이다. 행위자는 행위를 선택하는 경우에 어떤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먼저 그는 앎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행위를 선택해야 하되 그 행위자체 때문에 선택해야만 한다. 그 행위는 확고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덕에 따라 행해진 행위들은, 설령 그것들 자신들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혹은 절제 있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30] 오히려 행위하는 사람이 그것들을 행할 때 어떤 [올바른]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먼저 그는 [자신이 덕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고, 다음으로 그는 행위들을 합리적으로 선택(prohairesis)하되 그 행위 자체 때문에 선택해야 하며, 그리고 셋째로 그는 또한 행위들을 확고하고 또 결코 흔들리지 상태에서 행해야만 한다.(1105a31-1105b1)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행위에 앞서 앎을 중시하는 소크라테스-플라톤적 주지주의적 생각과는 다르게 탁월성의 소유여부와 관련해서는‘안다는 것’은 아무런 중요성을 가지지 않거나 작은 중요성만을 가진다는 점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이 탁월성을 생겨나게 한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애써 강조한다. “이 두 조건들은 올바른 행위들과 절제 있는 행위들을 빈번하게 행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올바른 습관과 반복된 덕의 발현이 용기와 절제 같은 개별적 덕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다.

중용과 행위의 기준은 무엇인가?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사람들에게 대하여, 마땅한 목적을 위해서 그리고 마땅한 방식으로 이런 것을 겪는 것은 중간적이며 또 최선의 것이고, 또 바로 이것이 덕에 고유한 것”인데, 이 덕에 맞는 행위가 중용의 행위이고, 이 중용의 행위는 탁월성을 소유한 사람이 행하는 행위다. “탁월성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는 한, 일종의 중용이다.” 그러니까 탁월한 사람이 탁월성의 기준을 제공하는 셈이다. 누군가는, 그렇다면 탁월성이란 무엇인가, 탁월성의 기준은 무엇인가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탁월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탁월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바로 탁월성의 척도라고 답한다면, 논리적으로 순환의 오류에 빠진 것이라고 공격할 것이다. 정의롭지 않고 절제가 없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우연히 그 탁월성을 모르면서 정의로운 행동이나 절제 있는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 절제 있는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중용은 두 악덕인 지나침에 따른 악덕과 모자람에 따른 악덕 사이의 중용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는 행동을 중용의 모델로 삼을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 대답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덕은 우리와의 관계에서의 중용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으로 [행위와 겪음을] 선택하는 [품성의] 상태이다. 1107a [이 중용은] 이성에 의하여 규정되는데, 다시 말해서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규정하는 경우에 규정할 수 있는 이성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러니까 지혜 있는 사람,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가진 탁월함을 소유한 사람의 행한 행위가 한 특정한 행위의 중용을 결정하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부분적으로 이 정의는 1105a31, 1103b21에서 예견되었다. 가령, 1103b19 이하에서 그는 습성화는 품성에 중요한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욕구나 노여움에 관한 것들의 경우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처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동하는가 또는 저렇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또 온화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성마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동일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행함으로써 그러저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한 마디로 말하여, 품성상태(hexis)들은 그 품성상태들과 비슷한 활동들[의 반복]에서 생긴다. §8 이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에 어떤 성품을 부여해야만 한다. 이것들에서의 차이들이 품성상태에서의 [대응하는] 차이를 초래하는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곧장 이런 혹은 저런 습관을 획득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25] 오히려 아주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고, 아니 모든 차이가 거기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에 대한 언급은 1106b8-16에서 끄집어내질 수 있다. 그곳에서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중용을 발견하는 기술자에 대응한다.

§9 따라서 만일 모든 전문 지식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즉 중간적인 것을 바라보면서 또 이것에로 그 성과물을 이끔으로써 그 기능을 잘 해내는 것이라고 하면([10] 바로 이것 때문에, 실제로 우리는 흔히 잘 만들어진 작품을 두고 더 이상 뺄 것도 없고 더 보탤 것도 없다고 말하곤 한다. 이때 우리는 지나침과 모자람이 그 작품의 좋은 것을 손상시키지만, 중용(mesit?s)은 그것을 보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바로 이것 때문에] 좋은 기술자들은, 우리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작품을 만듦에 있어서 중간적인 것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또 만일 탁월성이 [15] 또한 자연(physis)과 마찬가지로 어떤 기예보다도 더 정확하고 더 나은 것이라면, 덕은 중간적인 것을 목표로 삼는 것(stochastik?)일 게다.

김재홍(정암학당) /

손자병법과의 만남[고전은 숨쉰다]

인생이 복잡하고 힘들다고 느낄 때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복잡한 인생을 간단하게 네 글자로 정리하면 무엇일까. 결국 생노병사 혹은 희노애락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정리를 하면 비록 잠시일지라도 마음이 초연해지면서 편안한 것을 느낀다. 만약 이 네 글자를 두 글자로 더 줄인다면? 결국 생사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생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가는 도정에 있다. 우리는 무덤으로 가는 도정에서 수 없는 도전과 선택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들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비록 싸움을 전문적으로 하는 군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다. 인생은 결국 싸움이다. 정도와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인생에서 자신이 직면한 문제와 싸움을 벌어야 한다.

일찍이 마오쩌둥은 “하늘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무궁하고 땅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무궁하며 인간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더더욱 무궁하다”라고 설파했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늘상 싸움을 회피만 했지 정면으로 부딪혀 싸움을 벌이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고 가끔 반성한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었더라도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터인지 한번 손자병법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손에 집어 들고 읽지 못했다. 왠지 출세를 위한 얄팍한 실용서를 읽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전략이니 전술이니 모략이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결국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손자병법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쯔끼다시’ 삼아 손자병법과 마주치게 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아주 좋아하는 중국의 학자 중에 진커무(金克木)이라는 분이 있는데, 1912년 생으로 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책을 서가의 아주 좋은 자리에 모셔 놓고 가끔 꺼내 읽는다. 그분의 글은 남자한테 뿐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참 좋은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참 난감하다. 크게 보면 20세기 동서양의 문화와 철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경험과 통찰을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에세이 형식으로 아주 짧게 쓴 것들이다.

그분의 책 중에 연탁춘니(燕啄春泥)라는 정말 작은 책이 있는데 제목이 참 운치가 있다. 제목처럼 제비가 봄 진흙을 쪼듯이, 혹은 제비가 쪼아 놓은 봄 진흙처럼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봄이 돌아와 그동안 마음에 하나하나 간직해두었을 이야기들이다. 이런 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읽을 때마다 의외의 소득에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그리고 긴 여운이 남는다. 좋은 차라도 있다면 차를 마시면서 그의 짧은 글을 읽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그의 전공은 본래 인도문화인데 북경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이후에도 죽는 순간까지 다양한 글을 쓰다가 88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다. 70세 이후에 컴퓨터를 배웠다는데 돌아가신 후에 그가 글을 쓸 때 사용한 손녀의 컴퓨터 하드를 조사해보니 여러 권의 책의 구상이 나왔다고 한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세기 30년대에 꽤 유명한 시인이었으며, 여러 대학에서 다섯 개국의 언어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한동안 뽕잎을 먹기만 하던 누에가 어느 순간 실을 토해내듯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만년에 정력적으로 글을 남긴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시나 전공 분야의 글은 내가 문외한인 고로 별로 읽지 못했지만 그분의 수필은 우연한 기회에 읽고 빠져들게 되었다. 한 때 이분의 ‘폐인’이 되어 그의 글이 자주 실리던 잡지에 새롭게 발표되면 만사 제치고 구해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작정 그분의 일화를 떠들어 민폐도 많이 끼쳤다. 이 자리에서 한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젊은 날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지인의 소개로 어렵사리 북경대학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원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서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서고에 가서 책을 찾아 주기도 하고 반납한 책을 받는 단순한 일을 하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일만을 한 것이 아니라 빌려 준 책이나 반납한 책을 일일이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빈 시간이 나면 그 책을 반드시 찾아 읽었다. 서고 속의 수많은 책 중에서 왜 저 사람은 그 책을 읽었을까 하는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하루는 한 문학 전공의 여학생이 오래된 잡지를 빌리러 왔는데 서고에 간 다른 동료가 책 찾는 시간이 길어져 그 여학생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 당시에 썼던 졸업 논문 원고를 가지고 와서 카운터에 올려 놓고 있었는데 오래된 잡지는 지도교수의 지적을 받고 참고하기 위해 빌리러 온 것이다. 그가 그 원고에 관심을 가진 눈치를 보이자 최고 학부의 그 여학생은 자신이 있었던지 보라고 건네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시 펼쳐보니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아는 내용도 일정한 형식을 갖추면 대학의 졸업 논문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대학도 나오지 않은 자신이 당시에 이미 대학 졸업생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말년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책을 빌리기 위해서 건냈던 책 이름을 적은 쪽지로 자신에게 무언의 수업을 하고 간 수 많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한편 호기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언급하면서 한 이야기다. 그는 젊은 시절 도서관에서 일한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 일생 중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한 노학자가 풀어놓는 그때 그 시절의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상태가 지나쳐 꿈 속에서 그분을 두 번 만난 일도 있고 급기야 진짜 한번 만나보겠다고 무모하게 중국에 찾아 간 일도 있었다. 결국 만나 뵙지는 못했다.

헌데 중국사상사로 유명한 런지위(任繼愈)라는 학자가 생전에 그를 두고 내린 짧은 인물평에 이런 말이 있었다. “병서에 싸움을 잘 하는 자에게는 가지 않는 길이 있으며 공격하지 않는 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김공(金公)의 학문을 보면 병서를 잘 읽은 분이다.”

이 말은 원래 손자병법의 「구변」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글이나 학문의 어떤 부분이 가지 않은 길이고 공격하지 않은 성이었는지 지금도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인물에 대한 병법을 동원한 이 묘한 인물평이 계기가 되어 손자병법에 대한 흥미가 엉뚱하게 솟았다.

그러고 보니 연암 박지원이 글쓰기와 병법을 연관시켜 서술한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라는 글이 있다.

“글을 잘 하는 자는 아마도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가 대오를 이뤄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습 공격하는 기병(騎兵)이요, 억양반복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운을 남기는 것이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연암의 말에 비추어볼 때 그분은 확실히 병법에 능한 분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별다른 인 연이 없던 내가 어떻게 그의 글에 사로잡혔겠는가. 그가 글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 병법에 능한 분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앞서 그분을 만나러 중국에 갔다가 못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전화통화는 나누었다. 미리 준비한 예의바른 말로 뵙기를 청했지만 그분의 완곡한 거절로 결국 만나지 못했다. 팔십 노인의 정중한 거절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나는 결국 성을 공략하지 못했고 그분은 자신의 성을 잘 방어하셨다.

그는 한 책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일찍이 명예롭게 강호를 떠나겠다고 ‘금분세수(金盆洗手)’했는데 왜 책을 다시 내서 서문을 쓰고 있느냐 하면 관세음보살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늙은 자신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고 아무리 거절을 해도 한 출판사의 여성 편집자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신세가 되어 결국 책을 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은 수 십년 동안 곧 죽을 것이라고 온갖 핑계를 대고 곧잘 거절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여성 편집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아서 결국 책을 출판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나는 단 한 수에 무너져 결국 그분 살아생전에 만나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준비가 부족했다.

타국에서 불원천리 찾아온 독자를 거절한 그분의 냉정함이 섭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처신을 한 것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은 무모한 외국 독자를 만나 무슨 곡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자신을 좋아하는 외국 독자를 만나 기분이 좋아 인증샷의 요구에 응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다음에 헤어지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분과의 만남이 불발했다고 해서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손자병법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거절을 잘 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손자병법을 읽는다고 병법에 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손자병법을 읽고 나서도 후배의 요구에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고 맛도 없는 이 ‘쯔끼다시’ 같은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중에 정말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아예 ‘회’를 내놓지 않을 작정이다. 왜냐하면 ‘쯔끼다시’가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그래도 견딜 만하지만 ‘회’마저 맛이 없다고 한다면 그 절망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황희경(영산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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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길, 사람 자취마저 끊겼는데(萬徑人?滅)
외로운 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孤舟蓑笠翁)
홀로 낚시질, 차디찬 강에 눈만 내리고(獨釣寒江雪)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강설’(江雪)이다. 이 시의 정경은 수많은 화가들이 묘사했던 화제(畵題)이다. 남송 시대 마원(馬遠, 1160~1225)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최북(崔北, 1712~1786))의 ‘한강독조도’도 있다.

고전을 두루두루 꿰뚫으신 어른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기대를 한껏 했지만 어르신은 그저 간단히 코멘트만 하시고 수업을 진행하셨다. 어느 날 수업 중 당시의 백미라던 ‘강설’이 나왔을 때도 난 짐짓 딴청을 피우며 듣고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이 시를 볼 때마다 복괘(復卦)가 떠오른다고 단 한마디 하셨다. 순간 엉? 하고서 왜? 했다가 아! 했다.

난 자신의 섹스 경력을 자랑인양 떠벌리는 사람이 느끼는 섹스의 쾌락을 신뢰하지 않는다. 포르노를, 그렇다, 오해하지는 말자, 아주 가끔 본다. 가만히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어떨 때 난 흥분했고 어떨 때 짜증을 냈던가.

자연스러움이 답이었다. 리얼한 자연스러움, 위선적이지도 위악적이지도 않으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 자연스러움을 상대에게 요구하거나 강제하지도 않으면서도 서로 몰입되는 도취의 순간. 나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시선을 의식하면서 쾌락의 쇼를 부리는 모습은 얼마나 짜증이 나는가.) 오직 몰려오는 흥분에 도취한 몸의 모든 미세한 떨림을 느낄 때, 나는 그 리얼한 몰입에 함께 도취되는 합일을 잠깐, 그래 오해하지는 말자, 잠깐 느끼고, 아! 했다.

‘강설’의 시에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늙은이의 시선과 나의 시선. 그러나 늙은이는 나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산과 사람 자취마저 끊긴 길을 배경으로 한겨울의 한없이 내리는 눈 속 외로운 배 위에서 생명력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낚는 즐거움에 몰입해 있다. 입질과 손맛을 즐기는 늙은이의 눈빛이 번득인다.

보이지는 않지만 물속에 있는 물고기란 『장자』의 ‘호수가 다리 위의 물고기’(濠梁之樂)나 『중용』의 ‘물고기는 연못에서 즐겁다’(魚躍于淵)는 『시경』 구절이 상징하듯이 ‘즐거움’을 상징한다. 리얼한 자연스러움이다. 시를 읽고 늙은이의 자연스런 몰입을 몰래 훔쳐보며 나도 모르게, 다시 말하건대 오해하지는 말자, 그 즐거움에 합일되는 순간, 아! 했다.

즐거움과 낚시질

‘강설’을 복괘와 함께 읽을 때 주목해야 할 것은 ‘즐거움’과 ‘낚시질’이다. 복괘는 자연스러움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복괘는 『주역』의 괘 가운데 여러 학자들이 칭송하고 놀라워했던 괘이다. 왜일까. 복괘는 동지(冬至)에 해당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양(陽)의 기운이 비로소 차가운 땅에서 올라오려는 순간으로 생명이 막 소생하려는 때이다. 생명력의 회복이 복괘다. 복괘의 괘사는 이렇다.

“회복은 형통하니, 나아가고 들어옴에 막힘이 없다. 친구가 와야 허물이 없다.(復, 亨, 出入無疾, 朋來, 無咎.)”

간단하다. ‘출입무질’(出入無疾)과 ‘붕래무구’(朋來無咎). 먼저 ‘출입무질’이란 무슨 말인가. 생명의 힘이 정치권 안으로 들어왔으니 ‘입’이고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니 ‘출’이다. ‘무질’이란 억지로 강제하지 않고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다는 의미다. ‘붕래무구’란 동지(同志)들이 즐거움을 함께 하려고 모여들어 연대해야 완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천지’(天地)의 마음을 본다고 한다.

이 말을 동시에 이해하기 위해 ‘안연’(顔淵)과 ‘강태공’(姜太公)을 함께 겹쳐 보아야 한다. 정이천은 복괘를 안연과 비교한다. 안연은 ‘안빈낙도’(安貧樂道)로 유명하다. 그는 도를 즐거워했다. 진정으로 도를 즐겼던 인물로 삶의 모든 순간을 도의 즐거움으로 채우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들뢰즈의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철학자에게서 검소함은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의 ‘결과’이다.” 이 말을 패러디 해보자. “철학자에게서 즐거움은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함 그 자체의 결과이다.”

‘안빈낙도’란 가난을 칭송하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다. ‘안빈낙도’를 외치며 자신의 가난함을 정당화하는 것은 위선이다. ‘낙도’하기 위하여 가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은 ‘낙도’의 결과일 뿐이지 가난하다고 ‘낙도’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낙도’하기 위해 가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도’를 즐겼다고 스스로 의식하면 그것은 도를 즐긴 것이 아니다. 시선이 개입되지 않는 완전한 몰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낙도’하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몰입이어야 한다. 제자가 정이천에게 안연의 즐거움을 물었을 때 정이천은 “안연으로 하여금 도를 즐기게 한 것은 안연이 아니다.”(使顔子而樂道, 不爲顔子矣)라고 대답했다.

곱씹어 볼 말이다. 안연은 도를 즐겨야 한다고 의지를 발휘하지도 않았고 도를 즐기고 있다고 스스로 의식하지 않고서 단지 수동적으로 몰입 당했을 뿐이다. 포르노에 나온 사람의 리얼한 자연스러움과 동일하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연은 단지 스스로의 즐거움에만 몰입하는 쾌락주의자였을까. 복괘에서 “친구가 와야 허물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친구들이 오지 않는다면 그 즐거움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즐거움과 더불어 ‘낚시질’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낚시질이란 말은 흔히 사용된다. 나도 인터넷에서 얄궂은 말에 낚시질을 많이 당했다. 허탈하게 낚인 것이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때도 낚시질한다고 표현한다. 이 낚시질이란 말에는 분명 족보가 있다.

중국 문화에서 낚시질은 상당히 중요한 상징이다. 낚시질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바로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로서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던 태공망으로 잘 알려진 여상(呂尙)이다. 하루는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인재를 찾던 주나라 문왕이 그를 보고 재상으로 등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무엇을 낚고 있었을까? 군주의 마음을 낚시질했던 것이다.

『귀곡자』에는 재미난 표현이 있다. 『귀곡자』는 유세술(遊說術)과 모략에 관한 책인데 군주에게 유세를 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귀곡자는 상징과 비유를 통해 상대방의 속내와 의도를 떠보는 방식을 ‘사람을 낚는 것’(釣人之網也.)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는 행위를 낚시질로 말하지 않는가.

유세란 그리스 시대의 수사학과 비슷하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귀곡자는 “유세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지만 상대를 기쁘게 해야 한다”(說者, 說之也)고 말한다. ‘유세’(說)는 ‘설(說)명’하고 ‘설(說)득’하여 상대를 기쁘게 ‘열(悅)광’하게 해야 한다. 설(說)이라는 한자는 유세, 설명, 설득, 기쁨의 뜻이 들어있다. 주목해 보자. 공통적으로 들어간 한자가 있다. 바로 태(兌)라는 글자이다.

유혹하지 않는 유혹

『주역』에 바로 ‘태괘(兌卦)’가 있다. 태괘는 연못을 상징하는데 물이 만물을 윤택하게 해서 기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주역』 ?설괘전?에서는 이 태괘가 입(口)를 상징한다고 되어있는데 입이란 말재주를 상징한다. 물이 만물을 윤택하게 하듯이 말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유세를 통해서 상대를 감동시켜 설득한다는 말이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낚을 때 ‘뻐꾸기’, 즉 ‘말빨’이 전부는 아니지만,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말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다가 아첨과 기만에 빠지기 쉽다. 말이란 진정성이 없다면 허울일 뿐이다. 진정한 뜻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태괘의 ?단전(彖傳)?에서 “속으로는 강직한 뜻을 가지고서 겉으로는 부드럽게 상대를 기쁘게 한다”(剛中而柔外)고 말한다. 정이천은 “마음을 감동시켜서 기쁘게 설복하게 만든다.”고 설명하는데 왕필의 주석이 재미있다.

“상대를 기쁘게만 하고 자신의 강직한 뜻을 어긴다면 아첨이고, 강직한 뜻만 지키려다가 상대를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폭력이다.”(說而違剛則諂, 剛而違說則暴)”

상대 기분만 맞춰 아첨하다가는 자신의 뜻을 잃게 되고 자기의 뜻만을 상대에게 강제하는 폭력은 상대를 저항하게 만들어 설득시키기 어렵게 한다. 아첨하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게 상대를 설득하는 유세의 방식은 무엇일까.

강태공은 미끼를 쓰지 않고 곧은 바늘로 낚시를 했다고 한다. 세월을 낚기 위해서였을까? 곧은 낚시 바늘이란 미끼를 낄 수가 없다. 미끼란 무엇일까. 낚아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상대를 유혹하려는 속임의 수단이다. 미끼를 던진다는 것은 물고기를 속여서 미끼를 물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일상 언어에서도 미끼를 던진다는 말을 사기 치기 위한 술수를 말한다. 맹자는 미끼 던지는 낚시질을 증오했다.

“선비가 말할 만한 때가 아닌데 말을 하면 이는 말로써 미끼를 던져 낚는 사기술이고 말할 만한 때인데 말하지 않으면 이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미끼를 던져 낚는 사기술이다. 이는 담을 뚫고 넘는 좀도둑질이다.”(士未可以言而言, 是以言?之也, 可以言而不言, 是以不言?之也, 是皆穿踰之類也.)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맹자는 말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말할 만한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말할 만한 때 말을 해야만 한다. 낚시질하되 미끼를 던져 사기 치지 말라는 것이다. 강태공도 낚시질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미끼를 쓰지 않고 곧은 바늘로 낚시하며 사람을 낚으려고 했을 뿐이다. 강태공은 『육도(六韜)』라는 병법서를 쓴 유세가였고 전략가였다.

다시 ‘강설’의 장면을 복괘와 함께 생각해보자. 한겨울 새조차 없는 산속 강가 차디찬 얼음 위에서 늙은이는 생명력이 넘쳐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낚으려 한다. 안연처럼 그 즐거움에 몰입되어 있으면서도 강태공처럼 미끼를 던져 사기 치지 않고 미끼 없이 군주의 마음을 설득시켜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을 낚는다는 말은 곧 때를 기다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안연과 같은 ‘낙도(樂道)’가 강태공의 낚시질처럼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 낚이게 한다.

몰입의 즐거움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가져온다. 다시 한번 들뢰즈의 말을 패러디해보자. “철학자에게서 타인의 변화는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함 그 자체의 결과이다.” 혹은, “철학자에게서 사회의 변혁은 도덕적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철학함 그 자체의 결과이다.”

상대를 설득하여 변화시키려면 자신이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진짜 즐거워서 즐겁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은 상태로 몰입해야 한다. 유세란 자신의 즐거움이 발휘하는 감동의 효과이다. 즐거워야 한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그러나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라고 말하며 어금니 꽉 깨무는 순간, 지고 만 것이다. 말했다는 것은 이미 부러워함을 스스로 인지했다는 증거이므로.

즐거운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공자는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그런데도 사계절은 운행되고 만물은 생겨난다.”고 하면서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정말 침묵을 지키겠다는 뜻이었을까. 왜 말을 하지 않으려 했을까. 하늘은 말이 없이도 영향력을 미치고 만물을 복종시킨다. 말없음의 말의 효과이다.

성인(聖人)은 말이 없다. 타인에게 말하려고 한다는 것은 인정과 복종을 구하는 것이다. 성인은 자신의 즐거움을 타인에게 자랑하지 않으며 강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말없음의 즐거움이 상대를 감동시켜 변화를 일으킨다.

결국 성인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쾌락에 도취된 사람, 이 우주 한 가운데 오직 자신만이 홀로 서서 쾌락에 흠뻑 취하는 사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욕망을 충족하는 ‘변태’(變態)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쾌락에의 도취는 주변 사람들을 유혹하고 전염시켜 열광을 불러일으킬 때 완성된다. “친구들이 모여들어야 한다.”

타인에게 말하지도 않고 즐거움을 전염시켜야만 하는 모순, 유혹하려 하지 않고 유혹해야 하는 모순을 실천해야만 하는 사람, 이것이 성인의 위대한 기상이다. 그러나 유혹하지 않는 ‘척’하면서 유혹한다면? 사기꾼일까? 오해하지는 말자, 그러나, 문제는? 전략 없음의 정치 전략이다. 전략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전략적 효과를 내는 이중 전략이다.

심의용(서울예대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