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을 생각하며 [썩은 뿌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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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바야흐로 정직이 문젯거리인 시대다.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사, 2010)의 마지막 대목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권해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현명한 것으로 통하고 “손해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는 생각은 순진한 어리석음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아이들이 커가는 일을 차마 지켜볼 자신이 없다. (447쪽)

삼성그룹의 전 회장인 이건희가 이 글을 미리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어떻든 이건희는 이 책이 출판되기 얼마 전인 금년 2월 초에 한 공개 석상(‘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었다고 한다)에서 다음과 같은 기가 막힌 발언을 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이 말을 전해 듣고는 나도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정말 어이없어 했다. 쓴웃음이 아니라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조지 부시가 전쟁 없는 세상을 바란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명박이 부동산 투기가 없는 사회를 바란다는 것보다 더 황당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냥 웃어버리기에는 이 실소(失笑)의 끝이 어째 좀 찜찜했다. 도대체 이건희는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이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말이 겨냥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리라고 본 것일까?

얼마 후 나는 위에 인용한 김용철 변호사의 글을 읽다가 다시 이건희의 말을 떠올렸다. 그 순간 머릿속이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혹 이건희는 진짜 자신이 정직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마치 조지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전쟁을 일으키면서 스스로를 정의의 편이라고 굳게 믿었듯이, 또 이명박이 온 나라의 강바닥을 파헤치면서 자신을 불철주야(不撤晝夜) 국가를 위해 일하는 진정한 일꾼이라고 굳게 믿고 있듯이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건희가 염두에 두는 정직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삼성에 몸담고 있다가 자신을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가 오히려 부정직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비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또 김용철 변호사에 동조하여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들도 대부분 자기 배반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부정직함을 범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이건희의 발언을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은 거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이 발언으로 고립되거나 곤란에 처하지 않았다. 한편에선 오히려 그 발언이 이건희의 화려한 복권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미 그는 유례가 없는 1인 사면의 방식으로 법률상 훌륭하게 복권하지 않았는가. 이건희는 이제 범죄자가 아니라 당당한 승리자다. 일부의 질시와 배신, 그리고 허울뿐인 법의 부질없는 핍박을 뚫고 다시 무대의 전면으로 돌아온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다. 기다렸다는 듯 경쟁적으로 아부하는 매스컴의 행태가 이런 점을 입증해준다. 이건희와 그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표정을 지었으며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기사가 된다.

누군가는 작금의 우리 사회를 이명박과 강호동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했지만, 이는 겉보기의 묘사에 그친다. 낮에는 이명박이, 밤에는 강호동이 깃발을 들고 설친다면, 밤이건 낮이건 그 깃발이 나부끼는 방향을 조종하는 건 이건희와 같은 부류다. 그렇다면, 그의 복권은 명실상부(名實相符)함을 요청하는 현실의 세력관계가 작용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건 맑스의 생각대로 경제관계가 법을 지배하고 의식(意識)을 지배하는 사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건희의 ‘정직’ 발언은 이런 사태의 한 표현(表現)일 수 있다. 그 발언은 이건희가 이 사회의 법망만이 아니라 윤리적 의식까지 장악하고 지배하려 함을 드러내준다. 모름지기 사회의 지배자라면, 무엇이 바르고(正) 곧은(直)지를, 즉 무엇이 정직(正直)인지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하며, 그에 따라 무엇이 거짓말이고 무엇이 참말인지를 판가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사태가 있다. 이건희와 삼성을 비판하는 칼럼이 그래도 비판적 신문에 속한다는 [경향신문]에 실리지 못한 것이다.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재로 삼아 쓴 정기 칼럼 원고가 제 날짜에 게재되지 않았다. 김상봉 교수는 거부당한 원고와 그 경위를 설명하는 글을 대표적인 인터넷신문 가운데 하나인 [오마이뉴스]에 보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그곳에도 싣지 못하고 결국 다른 인터넷 신문인 [프레시안]과 [레디앙] 등을 통해 겨우 발표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아직도 유력 일간지들에는 [삼성을 비판한다]의 책 광고조차 실리지 못한다.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는 이건희와 삼성이 대중 매체들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대부분의 언론마저 장악한 이건희와 삼성의 경제적 힘이 도사리고 있다. 김상봉 교수의 칼럼 거부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자, 경향신문이 사과 기사와 함께 실은 다음과 같은 해명의 말(2010년 2월 24일자)은 이 점을 직접 드러내준다.

“2007년 말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사건을 집중 보도한 것을 계기로 삼성으로부터 2년 이상 광고를 받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정부 및 공공기관의 광고 수주액이 크게 떨어지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어 왔다.”

삼성그룹의 광고가 전체 신문광고에 차지하는 비중은 액수 기준으로 전체의 10%를 훨씬 웃돌며, 규모가 작은 신문이나 방송일수록 그 비중은 더 커진다고 한다. 이런 지경이면 광고 수익에 경영을 의존하는 언론사로서는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건희가 감히 정직까지 들먹일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이 같은 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둘.

이건희도 아마 정직에 대한 자기 기준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는 기준에 충실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잣대로 보면 유죄판결을 받으면서까지 자신에게 충성을 보이는 이학수나 김인주 같은 가신(家臣)은 곧고 바른 반면, 삼성의 녹(祿)을 먹다가 비리를 공개하고 나선 김용철은 비뚤어지고 굽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세상에는 이런 식의 잣대가 먹혀들기도 한다. 혹자는 아직도 김용철의 숨은 동기를 의심하며 손가락질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것은 사실 깡패 같은 집단에나 통용되는 논리다. 자기 보존과 자기 이익에 급급한 집단은 그 충실성의 기준을 내부에, 그것도 폭력적인 중심에 둔다. 이들에게 법이나 도덕규범 같은 외부의 잣대는 타넘거나 이용하여야 할 대상일 뿐이다. 내부의 기준이 외부의 사회적 기준과 어긋나면 어긋날수록 이런 집단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폭력적이 된다. 그래서 내부자의 고발이나 양심선언은 대개 큰 위험 부담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러나 깡패 집단은 그 존속을 자기 집단 밖에서 정당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부의 고발은 외부로부터 강력한 원군을 얻을 수 있다. 이럴 때 정직이나 정의의 기준은 집단 안이 아니라 그 밖에 있게 된다.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용철의 폭로와 고발을 삼성이라는 집단의 기준 내에서, 나아가 이건희 일가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이건희가 말하는 정직은 사회에 대한 정직이나 충실성과 다를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상반된다. 이건희의 정직 운운이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사회의 기준에서 볼 때 그의 말이 정녕 가당치 않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로 명시된 것만 227억의 배임죄를 저지르고 수천억 원의 세금을 포탈했으며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여 사회의 구석구석을 오염시킨 인물이, 또 노조설립 시도를 온갖 수단을 동원해 탄압하고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기업집단의 지배자가 정직을 운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은 깡패가 의리(義理)를 말하고 폭력배가 ‘바르게 살자’를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것은 삼성의 경제력이다.

삼성그룹의 매출은 2009년에 대략 200조원, 우리나라 GDP의 약 20%다. 올해 정부 예산(약 293조원)의 3분의 2가 넘는 액수다. 국내 고용 인원만 30만 명에 가깝다. 주력기업인 삼성전자는 2009년에 매출액 기준(1183억 달러)으로 세계 최대의 전자업체가 되었으며, 영업이익만 10조를 넘게 남겼다. 이것이 삼성의 힘이며, 여전히 삼성에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이건희와 그 일족의 힘이다. 이런 힘 덕택에 그들은 자기 집단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자신의 존립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삼성이 망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 사회는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구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삼성 그룹 주식의 반 이상이 외국인 소유고 이건희 일가의 지분은 1% 남짓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렇다. 삼성 그룹을 키워온 것은 이병철이고 이건희이니 그 소유권과 지배권은 그들 일가가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접 생산을 담당하고 일터를 일궈온 당사자가 이건희 일족과 몇몇 가신들이 아니라 무수한 근로자였음에도 그렇다.

더구나 김용철 변호사가 그 일각(一角)을 폭로했다시피, 삼성은 이 사회에서 힘깨나 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돈을 뿌렸다. 그렇게 하여 인맥을 관리하고 언로(言路)를 제어하며 정보를 장악한다. 자신들의 촉수를 사회 곳곳에 박아 넣는다.
이런 방식으로 한 집단과 사회가 결합되면 그 집단 내부의 기준이 사회의 기준으로 파급될 여지가 생긴다. 설사 그 기준이 전근대적이거나 편파적이라 하더라도 먹혀들어갈 수 있다. 사회 곳곳을 뇌물과 촌지로 오염시켜 놓으면, 그러한 흐름이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정직이나 정의의 기준은 그 바탕 위에서 작동하게 된다. 전 사회의 깡패화, 전 사회의 삼성화가 이룩되는 것이다.

하긴, 왜 삼성과 이건희뿐이겠는가. 이건희는 대표주자고 그래서 대표적으로 뻔뻔한 것이라 해야 옳을지 모른다. 한화의 이승연은 가죽장갑을 낀 채 권총을 들고 설치는 깡패의 면모를 몸소 선보였지만, 오염된 법망을 통과해 여전히 회장님으로 잘 지내고 있다. 물론 태광의 박연차 같은 경우도 있으니 모두가 형편이 같은 것은 아니다. 깡패들의 세계에서처럼 여기도 약육강식이 판친다.

셋.

사정이 이러니 대책이 쉽지 않다. 원론적인 말을 하자면, 삼성을 비롯한 거대 경제 집단이 자기중심적이고 자의적(恣意的)인 기준에 따라 다른 영역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이클 왈쪄(Michael Walzer) 같은 자칭 자유주의자의 말에 따르더라도, 한 영역의 힘이 다른 영역들마저 장악하게 되면 사회는 부정의해지기 십상이다. 정치 영역이 경제 논리에 휩쓸려서도, 법의 영역이 돈의 위력에 짓눌려서도 안 된다. 하물며 일족의 자기중심주의나 깡패 논리가 판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기업이나 경제 영역에서도 나름의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이미 말했던 것처럼, 삼성의 광고를 마다할 수 있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몇몇 사람들이 삼성 불매운동을 외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데 사용하고 있는 공용(公用) 컴퓨터와 모니터가 삼성 것이고 내 책상 위에 놓은 전화기에도 삼성 로고가 선명하다. 그러니 어떻게?

어려워도 안 할 수 없다. 김상봉 교수의 말처럼 이것은 시대적 과제다. 경향신문이 김상봉 교수의 글을 거부한 사태가 아무런 파문 없이 끝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은 광고 지면을 얻지 못해도 이미 수십만 부가 팔려나갔다. 삼성이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한, 삼성의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이건희가 경영에 복귀하고 그 일족이 지배권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사태를 그냥 용인해서는 안 된다.

철학을 하는 사람에게 이런 과제는 더 무겁다. 삼성은 안 되고 LG는 된다는 식의 문제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본의 지배, 돈의 지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김상봉 교수가 ?내가 경향을 비난하지 않는 까닭?([경향신문], 2010년 3월 9일)이라는 칼럼에 썼던 것처럼, 밥벌이나 경제적 고려가 우리 삶을 이끄는 본질적인 사안이 아니라고 얘기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와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이건희의 정직과는 다른 정직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다는 건 안다. 정직은 이건희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성원(부산대) / admin@ad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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