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발견 [썩은 뿌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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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자본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경제적 권력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부르주아(토지에 묶여있던 농노와는 달리 성 안에 살며 상공업에 종사했던 자유인들)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삼성공화국’은 자본주의 사회의 예외적 현상이거나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궁극적 실현태입니다. 자본이 초국적화되어 세계를 주도하는 권력이 되는 현상인 ‘세계화’도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필연입니다.

1. 1인 1표의 민주주의와 1주 1표의 기업의 근본적인 충돌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투표로 그 정치적 리더를 뽑습니다. 반면에 기업은 노동자의 투표가 아니라 주주의 투표로 그 기업의 리더를 뽑습니다. 국민 투표는 1인 1표를 원칙으로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재산이나 성별, 학력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1표를 행사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러나 주주 투표는 1주 1표를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평등의 단위는 사람이 아니라 돈입니다. 돈이 많아 주식을 많이 사서 최대주주가 되면 누구라도 그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기업의 주인이 주주입니다. 그 주주들이 모여 주식회사의 총회를 엽니다. 여기서 주주를 대신해서 경영을 담당할 이사들과 대표이사를 뽑습니다. 또한 이들 경영진을 감시할 감사를 뽑습니다. 따라서 최대주주의 의사대로 회사는 움직이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기업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말대로 국민주권이 중심이 된 민주주의와 주주주권(본질적으로 자본주권 또는 돈의 민주주의)이 중심이 된 시장은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돼있습니다. 사람의 민주주의와 돈의 민주주의는 이처럼 대립합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렇게 민주주의를 비판한 이유도 민주주의가 돈의 민주주의(금권정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까닭입니다.

2. 삼성그룹의 제왕적 지배체제

삼성이라는 기업과 그 총수인 이건희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이러한 기업의 비민주주의적 지배구조의 원칙을 알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2010년 3월 24일자 프레시안의 이건희 회장의 “제왕적 지배 체제”가 완벽히 복원되었나를 다룬 뉴스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1주 1표의 기업의 지배구조 원칙과 제왕적 지배 체제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같은 날 경제개혁연대의 ?이건희 회장 복귀에 대한 논평?이라는 보도자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이건희 회장의 전격적인 복귀와 전략기획실 사실상 부활은 삼성그룹이 자신의 지배구조 상 문제를 스스로 치유할 능력과 의지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의 잘못된 지배구조에 따른 비용이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만 귀속된다면,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는 국민경제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삼성의 잘못된 지배구조는 이건희 회장의 제왕적 지배체제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김진방 교수에 의하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세 가지 점에서 다른 재벌그룹과 다릅니다. 첫째, 총수일가(동일인 + 8촌 이내 혈족 + 4촌 이내 인척)의 지분이 유난히 적습니다. 둘째, 금융회사를 통해 비금융회사를 소유하고 지배합니다. 셋째, 소속회사들이 교차출자와 순환출자로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첫 번째이자 가장 근원적인 문제점인 총수일가의 적은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도입된 방법들인 것입니다.

김상조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승계구도는 공정거래법 제11조(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 금융산업구조개선법 제24조(동일계열 금융기관의 다른 회사 주식 소유 제한), 금융지주회사법, 보험업법 상의 자산운용규제 등 금융관련법에 의한 규제는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돈의 민주주의 원칙마저 저버린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불법 로비와 비자금 조성 등 실정법을 위반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제왕적 지배체제라는 말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시장과 민주주의의 상호발전이라고 불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마저도 위협하는 세력이 된 것입니다.

3.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또 다른 국가, 삼성공화국

경제개혁연대가 삼성공화국을 비판하는 핵심은 “삼성이 경제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기업조직의 차원을 넘어, 경제환경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그럼으로써 그 자신의 조직적 탄력성은 물론 국민경제의 동태적 활력마저 질식시키는 경제권력으로 변모하였음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단순히 삼성그룹의 제왕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면령이 아니었다면 이번의 이 회장 복귀는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이 국가권력이 불법을 저지른 삼성그룹의 총수를 비호하게 만든 막강한 정치력과 경제력으로 인해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라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된 이유기도 합니다. 따라서 삼성공화국이 국내를 지배하는 절대 권력이 되었다면 이런 삼성공화국의 제왕인 이건희 회장이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보다 은밀하지만 더 강한 권력을 지니게 됩니다. 이런 권력이 불법과 비리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의 복귀 발표일 날 조선일보마저도 ?이건희 회장의 복귀와 삼성의 책무?라는 사설에서 “삼성은 글로벌 기업이면서 한국 기업이다. 글로벌 규칙도 지켜야 할뿐더러, 투명 경영과 사회적 공헌을 통해 계층·지역의 구별 없이 한국 국민 전체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삼성은 도요타자동차처럼 ‘1등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미래를 대비해 나가야 한다. 이 회장은 삼성이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제적 유산과 함께 도덕적 토대도 함께 물려주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회장의 복귀의 대가로 삼성그룹의 윤리성 회복을 주장한 것입니다. 반면에 경제개혁연대는 이회장 복귀를 반대하며 삼성그룹의 윤리성 회복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윤리성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돈의 민주주의가 정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그 윤리성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 준수로부터 곧바로 사람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하준 교수의 통찰처럼 “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했다. 그런 정치는 사표를 내야 한다. 권력을 준 것은 시장을 통제하라는 것인데,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우리나라 담론 구조가 시장을 풀어주는 것이 민주화라고 돼 버렸다.” 이러한 지적은 조선일보나 경제개혁연대의 논리상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돈의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입증합니다. 따라서 국가가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민주주의는 그 진정한 실현의 기초를 다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나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의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민주주의와 시장은 근본적으로 대립적 모순에 해당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망각한 사회적 자유주의 또는 좌파 신자유주의(영국의 블레어주의와 한국의 노무현주의)가 정치적으로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기업과 시장의 권력을 견제할 건강한 정치공동체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4. 국내에는 삼성공화국, 세계에는 세계시장공화국

민주주의와 기업의 기본 주권구조가 원칙적으로 다르고 서로 대립한다는 점은 이미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한 국가에서 국내시장의 형성이 곧바로 국내공동체의 형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꾸로 시장권력의 비대화가 국내 정치공동체의 위협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삼성공화국의 사례를 통해 잘 알게 됐습니다.

삼성공화국의 사례는 실제로 대우주의 소우주 모델에 해당합니다. 대우주는 세계화의 사례입니다. 세계화는 자본의 세계시장의 출현입니다. 세계시장이 출현했다고 해서 세계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꾸로 이 세계시장이 개별국가의 힘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각국의 정치공동체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삼성공화국은 글로벌스탠더드를 위반한 사례가 아니라 세계시장공화국이라는 글로벌스탠더드의 진정한 회원입니다.

세계시장공화국이란 일단 자본과 금융이 주도하는 제왕적 지배체제입니다. 데이비드 헬드에 의하면 모든 나라의 경제정책의 기준이 전지구적 금융시장에 대한 적응입니다. 세계화의 신자유주의적 특징은 시장이 더 잘 작동하도록 시장에 대한 탈규제를 강조하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이로써 각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 사이에서 불평등이 증가하고, 이는 정치적 자유가 크게 위축됨을 의미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정적으로 정치공동체의 위축은 시장 견제 세력의 사라짐으로 나타나 시장의 독주를 통한 극도의 경제위기를 산출할 가능성 증대로 이어지는데, 이는 초국적 금융투기꾼으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마저도 세계금융시장의 규제를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경고를 무시한 미국의 부시행정부를 비롯한 주요국가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정부들에 의해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출현하게 됐습니다. 세계금융위기는 세계시장공화국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며, 이 강력한 힘 앞에서 세계정치공동체의 구성 없이는 각국의 정치공동체도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삼성공화국 문제는 단순히 삼성만의 문제이거나 국내적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주도의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문제의 축소판입니다. 우리는 삼성공화국을 통해 시장이 주도하는 세계가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세계금융자본은 국내 재벌을 더 압박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장 돈이 많은 국제 금융자본의 뜻대로 우리나라 경제가 개조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금융자본의 경영권 위협 앞에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국내 재벌들이 시장논리를 수정해 경영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한다면 삼성공화국도 세계시장공화국에서는 약자에 불과합니다. 그 약자가 살기 위해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국내 재벌은 세계금융자본에 맞서 싸우며 우리 경제를 선진화하기 위한 투사라는 이미지가 그려지게 됩니다. 19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대립적 구도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도 다른 형태로 잔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구도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 정치공동체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진정한 적은 삼성공화국보다 세계금융자본입니다. 다만 삼성공화국이 이 세계금융자본의 국내 침략의 첨병노릇을 하는 선교사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이번 복귀는 그 진통에도 불구하고 삼성공화국이 국내적으로 여전히 강건함을 보여준 사례인 동시에 삼성공화국도 세계시장공화국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든 세계에서든 돈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시장공화국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건강한 정치공동체의 최대의 적에 해당합니다. 각국의 정치공동체의 발전을 통한 세계정치공동체의 형성이야말로 세계시장공화국을 견제하며 인간과 인간의 조화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길입니다. 시장공화국의 길은 결코 우리가 걸어가야 갈 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정치공동체의 발전이 삼성공화국을 견제하며 올바로 서게 하는 첩경입니다. 시장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결코 아닙니다.

김성우(상지대 겸임교수) / admin@ad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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