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통약불가능성 [썩은 뿌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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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뿌리 자르기]

혁명과 통약불가능성

글: 이규성 (이화여대)

과학사상가 페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는 서로 환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사고 모델이 공존하는 상황을 과학사에서 확인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그러한 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을 사회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레닌과 모택동과 같은 혁명적 지식인들은 그러한 현상을 예리하게 파악했다고 지적했다. 그와 대부분의 과학사가들에 의하면 근대과학의 수리 물리적 법칙은 현재 순간인 지금(now)의 동일한 연속을 전제하고서 성립한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과학 법칙이 과거 현재 미래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시간의 가역성(reversibility)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제는 이미 아인슈타인이 어느 곳 어느 시점으로도 순간적으로 갈 수 있다는, 순간에서의 무한 속도를 전제하는 것과 같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은 서양 근대 과학의 무반성적인 형이상학적 전제가 동일성이라는 사실을 서양 지성사에 각인시켰다.

이러한 논의의 맥락에서 페이어아벤트는 뉴턴-유클리드적 시­공간 좌표를 전제한 사고 유형과 이를 전복할 수 있는 전혀 다른, 그래서 통약불가능한 새로운 사고 유형이 균일하지 않게 병존하는 현상을 주목하였다. 이러한 ‘불균등발전’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며, 그럼에도 만일 근대 과학적 사고 모델을 유일한 합리적 모델로 통용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고의 독재이다. 혁명사에서는 그러한 동일성에 근거한 환원주의적 태도는 교조주의적 인식 방식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는 맹목성은 그로 인한 실천적 패배를 보여 준다.

한 동안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논리 실증주의와 칼 포퍼의 사고 모델은 근대와 현대에 걸쳐 합리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믿고 있는 과학적 방법을 교조주의적으로 옹호하는 것이었다.[최근 번역된 『파르메니데스의 세계』(K. Popper, 이한구 옮김, 2010)는 근대적 동일성을 옹호하는 『동일성과 실재』(Identity and Reality, 1908)의 저자인 과학철학자 에밀 메이어슨(E. Meyerson)을 존경하고 계승하는 관점의 결정판이다.] 이렇게 보면 페이어아벤트의 『방법에의 도전(Ageinst Method)』(정병훈 옮김, 1987)은 지성사에서의 사고의 억압에 대한 폭동(revolt)을 옹호하는 셈이 된다.

정치 경제적 억압과 착취가, 철학과 과학이 비판적, 논리적 사고라는 미명하에 가하는 억제와 함께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한국 철학도들만큼 겪어온 이들도 드물 것이다. 철학을 왜하냐? 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을 망설이는 것은 조건 없이 주어진 신기한 외래 철학과 과학에 주눅이 들어 고생하고 있는 것이 이미 응답으로 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지성사에도 이들을 항복시켜 수오지심을 유발한 위정자와 교육자 학술관료, ‘승냥이、돼지、남루한 개들'(레닌)이 있다.

서양 전통의 합리적 사고 모델이 생리적 불건강을 초래한 것에 저항한 니체가 “교회, 국가, 군대 이 개들이 언제 죽고자 했는가?”라고 염세적으로 반문한 것은 인간 지성의 부단한 자기 비하적 편집증이 사상과 심리, 사회조직에서 부단히 재생산되는 현상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함께 진화해온 개를 측근에 두면서도 비난의 상징으로 쓰는 것은 자신처럼 순치된 것에 대한 심적 저항과 분열일 것이다. 이러한 저항적 분열자체가, 순치된 비폭력 사회에 욕이 많듯이, 심성의 불균등발전의 한 사례일 것이다. 심성의 불균등현상이 없다면, 심리학과 정신 분석학도 없었을 것이다.

페이어아벤트는 맑스에서 모택동과 알튀세르에 이르는 급진 사상가들이 언급하는, 역사에서의 다양한 불균등현상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맑스는 구 생산관계를 앞지르는 예술 사상이 구제도를 이끌어 갈 수도 있음을 언급하였고, 트로츠키는 사회 내 각 제도적 층위들이 평행선상에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현상의 철학적 배경에 대해서는 모택동의 『모순론』이 훌륭하게 설명한다고 보았다. 레닌은 20세기 초부터 시작한 중국 혁명과 유럽을 비교하면서, 유럽의 부르주아 계급이 노동계급의 저항을 두려워하여 중세적인 것을 다시 들여와 그것에 안주하려고 하는 반면, 젊은 아시아는 역동적 혁명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사실 중국 혁명은 교조주의와의 투쟁사이기도 했는데, 모택동의 사회철학은 중국 사회의 불균등발전 현상(봉건 군벌과 봉건적 유산의 잔존, 광범위한 농업과 도시 자본주의의 공존, 제국주의와 민족 자본가의 공존 등)을 모순이라는 변증법적 개념을 활용하여 예리하게 인식하였다. 그는 어떤 모순의 어느 측면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가에 따라 변동해가는 역사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사회과학적 안목을 입증하였다.

모순이란 반대 방향의 힘들이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면서 공존하면서도 서로 알력을 생산하는 관계[대립의 통일]를 의미한다. 이 힘들은 두 개 이상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계급모순은 기본 모순이지만, 과정에 있는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과거의 봉건적 모순일 수 있으며,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모순이 다른 모순들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때그때의 사회성격을 지배하는 모순은 주요모순이라 부르고, 자본주의의 공통된 모순인 계급모순은 그것에 의해 ‘중첩'(李大釗)된다. 이러한 융통적 인식은 중국의 혁명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지식이 되었다.

이처럼 불균등발전은 사회의 개조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면서도 그것을 성공시키는 이점이 되기도 했다. 레닌에 의하면 그러한 불균등현상은 맑스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역설’이나 ‘변증법적 수수께끼(conundrum)’로 보일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로 자연계에서나 사회에서나 생의 모든 단계에서 생존하고 있는 새로운 것은 남아 있는 옛 것의 잔재와 맞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맑스는 부르주아적 권리의 잔재를 독단적으로 공산주의에 끼워 넣었던 것이 결코 아니며, 자본주의라는 자궁에서 출현한 하나의 사회에 있어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무엇인가를 지적했던 것이다.”(『국가와 혁명』, 김영철 옮김, 1988)

여기서 불가피한 것이란 상공업자 독재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적 인권과 권리를 의미한다. 비록 추상적 평등이지만 그 민주주의는 로베스피에르의 혁명 유산으로서 정치적 해방의 원리였으며, 혁명적 경제 해방을 추구하는 단계에서도 필수적 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필수적인 것은 ‘보다 민주적인’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국가는 파리 콤뮨을 모델로 한 것으로 시민 각자가 국가 경영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 지고, 공직자가 반민주적인 경우에는 소환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국가이다.

민주주의는 그 구체적 형태가 발전하는 가운데 그것이 지향하는 최상의 이상이 이루어져, 계급과 민중이라는 언어가 소멸될 때까지는 보존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정신이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함께 간다. 그러나 레닌 자신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기존의 혁명사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립시킴으로써 민주주의를 자유주의 쪽으로 보내었고, 그에 따라 자유주의 체제는 사회주의를 정치적 독재로 인식하게 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평등을 의미한다.”(『국가와 혁명』) 부자유가 불평등을 의미한다면, 평등은 자주적 평등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어느 국가도 민주주의를 수사적으로만 사용해 온 것이 될 것이다. 억압 기구들의 복합체인 국가가 그 언어를 수식 도구로 오염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에 따라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개방적 관계가 칸트적인 내적 양심으로 내면화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정치적 양심으로 내면화된 것은 현대 사회의 불균등현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이 점에서 새로운 정치학은 인간 내면도 정치의 장으로 인식하는 내면의 정치학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테르미도르 반동 직전, 빵을 요구하는 평민과 그것을 줄 수 있는 산업 부르주아로부터 고립된 로베스피에르의 고뇌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장차 인민들이 부르주아의 노예로 될 것임을 예감하고, 빵만으로 살 것인가 라는 성서적 논쟁을 벌이게 된다.

그가 사라진 후 빵을 주체로 한 자유와의 절충품이 나왔는데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중국 혁명사도 중국적 형태로 그러한 현상을 보였다. 원리상으로만 보면 문화대혁명은 생산력 결정론과 의지주의적 실천론 사이의 대립, 혹은 상 시몽에 연원하는 ‘기술 공학주의’와 ‘루소적이면서도 맹자적인 평등주의’ 사이의 대립(B. Schwartz)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상화나 관료주의와 같은 봉건 잔재와 봉건문화의 폭력적 파괴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실패로 끝났지만, 그 강렬한 평등에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문화대혁명은 주자파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스탈린주의의 핵심 요소인 국가자본주의적 기술관료 지배체제로 귀결되었다. 민주주의는 다시 내적 양심으로 내면화되었다.

기존의 혁명사에 대한 이러한 개괄적 이해로 보면, 외적 투쟁의 상황에 있어서나 내면적 양심화에 있어서나, 폐쇄와 개방, 속박과 해방, 이른바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분열과 항쟁이 있다. 이러한 불균등현상을 혁명적 사상가들은 차이(差異)라기보다는 모순(矛盾)으로 표현했는데, 그들은 모순을 우주의 보편적 생성의 원리로도 확대하였다.

모택동에게도 나타나는 이러한 존재론적 우주관은 엥겔스의 근대적 우주관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자연 변증법에 의하면 무한히 계속되는 자연의 진화사는 생명체의 생과 사, 그 총체적 절멸, 지구와 성운들의 파괴를 동반하면서 범우주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현상계의 보편적 전변 과정은 근대 과학이 세운 물질과 그 에너지의 항존성과 동일성의 법칙을 전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동일성은 과학적 법칙들의 항구적 동일성을 보장해 주는 근대적 합리성의 공준으로 간주되었다. 심지어 그것은 인식론적 관념론과 물질의 소멸 가능성을 언급했던, 그래서 볼셰비즘의 비난의 표적이 되었던, 포앙카레나 마하주의자들과 아인슈타인도 궁극적으로는 버릴 수 없었던 근대적 신념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혁명적 세계관의 이러한 근본적 신념은 유럽의 지성사적 문맥에서 보면 하나의 강경한 형태의 합리적 사고 모델을 관철시키는(,) 그래서 또 다른 새로운 세계상과 충돌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와 한국의 부드러운 형태의 과학주의도 생산력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기술 공학주의와 궤도를 같이 한다.]

근 현대의 볼셰비즘적 형태이건 자유주의적 형태이건, 과학주의적 세계상은 세계에 대한 자연주의적이고 객관주의적 태도에 대한 무비판적 신앙 때문에 자신들의 시야 안에서의 일관성에만 집착하였다. 이러한 일관성은 자기 폐쇄적인 통약가능성을 전제한 의사소통과 합의 가능성을 이성적 사고라고 선전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 신념은 자신들의 구태의연한 태도가 인간의 또 다른 심각한 인식 방법과 통약불가능성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 이 인식 방법은 인간의 ‘내감에서의 자기의식’이 이해하는, 기억과 연속된 느낌들과 의지、상상과 열망의 영역으로서, 이른바 질적 경험과 통찰의 영역이다.

외감에 주어진 감각만으로 내감을 채우는 칸트의 무미건조한 지성, 그러한 감각을 계기로 실재론적 인식론이나 관념론적 인식론을 구성하는 레닌, 모택동과 마하주의의 현대적 후예들은, 그러한 질적 자기의식의 차원이 인간과 생명의 진화를 포함한 자연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 수 있다는 심원한 사실을 다룰 능력이 없었다. 이러한 무능에 속류 유물론의 한 형태인 물리주의적 심성론이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도구인 수량화와 질적 자기의식의 광대한 차원 사이의 불가통약성에 대한 주의 깊은 성찰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상상에 기초한 혁명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혁명의 보편적 핵심인 자주적 평등에 대한 자연사적 발생 근거와 함께 그 주체적 기초에 대한 이해는 내감에서의 의식이 감행하는 경험의 심화에서 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와 베르그송(B. Bergson)이 지성의 ‘객관화하고 고체화하는 습성’과 ‘내감에서 알려지는 의지나 생명’ 사이의 전혀 종류가 다른 불균등이 있음을 알고, 그러한 통약불가능성과 역설을 회피한 것을 서양 문명의 퇴폐성과 파괴성으로 암시한 것은 다시 상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존 생 철학의 낭만주의적 성격이 지나치게 부각된 것이, ‘폐쇄적 고체의 논리에 고착되는 경향성’과 ‘개방적 유동성을 표현하는 경향성’ 사이의 불균등이 집약된 존재가 생명체이고 인간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했다. 그럼에도 생 철학은 자연사의 부단한 진화가 개방적 유동성의 힘인 자유의 충동이 나타나려는 노력이며, 인간의 존재 의미는 그 노력에서 확인된다는 것을 음미하게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인간이 만든 온갖 도구들을 불평등의 도구로 폐쇄화하는 계급의 분화를 타파하는 개혁이나 혁명으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잊혀진 조선 후기의 동학혁명의 세계상이 다시 환기될 필요가 있다. 최시형은 혁명을 개벽(開闢)으로 이해했다. 개벽은 내적 성찰에서 경험되는 심층적 생기(生氣)가, 고정되고 형해화된 사회 구조와 심리 구조를 용해시키면서, 보편적으로 ‘표현(表顯)’되는 전환점을 의미한다.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본성[性]을 구성하는 생기는 ‘약동불식(躍動不息)’하는 힘으로 우주를 생성시키고, 응고된 인성과 사회를 혁신해 나간다. 유동성과 개방적 소통성을 가진 그 본연의 성품은 자유로이 그리고 평등한 방식으로 자연과 인생사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진정한 주체성이란 이러한 우주적 연대성의 원리를 억압의 시대를 돌파하여 표현하는 행동에서 표현된다.

원래 『周易』에 연원하는 개벽은 양성의 생기(生氣)가 문을 열고 자신을 실현해 보이는 과정적 운동을 통해 음성의 정체적 상태가 약화되는 전변의 시간을 의미한다. 최시형(崔時亨)은 자신의 이름처럼, 이러한 시간을 결정적인 ‘형통(亨通)’의 시간[時]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소통적 공감의 힘이자 활력인 생기를 자기성찰의 노력을 통해 이해하고, 그 생동성이 이끄는 내적 필연성에 따라 실천하였다.

동학의 사상이 비록 역사적 사회에 대한 사회과학적 인식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 역동적 심성론은 고체화된 사회를 혁신하는 혁명적 인성론의 이념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생 철학이 제기한 고체적 수량화의 논리와 유동체에 대한 내적 경험의 통약불가능성이 사회를 새 것으로 변동시키는 혁명적 세계관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이 결국은 기술 공학주의적 통제 사회로 되고, 아메리카와 함께 군산복합체 사회로 나아가는 오늘의 역사를 볼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평등’이라는 테제는 실로 어려운 사상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황야와 숲에서 온 저 고대의 성인들이 고통과 번뇌 속에서도 인생의 진리로 제시한 이래로, 일상의 번민에서는 물론 수많은 폭동과 혁명에서 나타났다가는 사라진, 그리고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진실된 역설의 사상이다. 그것은 분명 야성의 이념으로서, 순치되고 강경해진 문명과 역(逆)운동을 하는 세력을 창조해 낼 것이다. 그리고 이 세력은 자신의 젊은 생기로 내적 양심의 사상을 구체적인 물질적 삶에서 실현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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