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l’idee ?δ?α), 플라톤의 이데아(Idea), 생각(영 idea)
삽화에서 보듯이 머리 위에 반짝이는 별이,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는 것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아이디어는 생각이다. 관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몇 가지 이야기를 먼저 하자.
내가 20살쯤이었을 때 관념이란 용어가 철학의 모든 것인 줄 알았다. 어려운 용어는 모두 다 관념이고 그 자체를 알아야 한다고들 하였다. 마치 누군가 ‘부처’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부처’라는 관념은 선사의 선문답처럼 홀려서 들렸듯이. 그때 이해하지 못한 그 관념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었다. 부처, 도(道), 신, 그리고 이데아도 그 자체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탐구하여 밝게 아는 것이 철학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는 그 자체 있다는 것으로 답하기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느꼈다. 그 자체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자체에 대해 무엇인가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 나는 산에 다니며 놀았다. 암벽 등반을 잘 하는 산 선배 중의 한 분이 밤에 텐트 속에서 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산도 내가 다니는 산(개별)이 아니라, 그 산은 곧 신(관념)과 같은 것이었다.
‘산은 없다. 거기에 사람이 오르기에 있다’ 또는 ‘바위는 마음이다. 마음에 겁이 없으면 잘 오르다가, 아차 마가 끼면 온갖 잡사가 떠올라 한 손톱만한 잡을 것도 보이지 않아 오르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산은 없다’거나 ‘바위는 마음이다’는 어쩌면 영국 근대 철학자 버클리의 경지일지 모른다.
나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어릴 때, 방학이라 고향에 가면 온갖 이야기를 듣는다. 그 중에 이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다. 누군가 ‘중공군 백만이 백두산에서 오줌을 누면 우리 반도가 떠내려 간다’거나, ‘중국의 인구 5억이 함께 발을 구르면 지구가 흔들거린다’거나, ‘소련의 모스크바 광장에 비둘기가 없다. 평화가 없으니깐’ 등이다.
앞의 두 물음은 고등학교 시절에 물리학을 배우면서 구체적으로 계산을 해보았고,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와 받침점을 계산을 하면서, 그런 지렛대는 실재상으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위 두 이야기가 뻥(농담)이구나 했었다.
셋째 이야기는 여행도 못하는 시절에 누구도 가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을 검증해 볼 수 없지만, 막연하게 생물학적으로 비둘기는 키우면 되는데, 소련은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둘기조차 살 수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어낸 넌센스 또는 유머일 것 같았다.
철학을 공부한답시고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부처를 믿었고 또한 미륵보살이 모든 사람을 밝은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해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어디엔가 있다고 믿으셨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도 미륵이야 불교의 설화중의 하나라고 치부하면 되었는데, 세상은 그런 분이 여럿인 모양이다. 내가 ‘세상을 구원하는’ 또는 ‘저 세상에 있는’ 주제자에 대해 관심을 갖은 것은 이야기 속에서였다. 어느 때인가, 저 세상에 사는 이든, 주제자이든, 그런 어떤 누군가가 있기는 있는가?
그래도 극락에는 부처와 보살들이, 천당에는 크리스트와 천사들이, 중국에는 옥황상제와 그 부류들이, 우리 이야기 속에는 환인과 환웅 그리고 나무꾼과 선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누군가가 있다고들 한다. 믿는 양식에 따라 각각은 착하게 살아서 각각이 바라는 그곳에 가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죄 값을 치르는 곳에 간다고들 한다.
이상한 것은 그 명칭들 중의 하나가 주제를 하면 다른 명칭은 배제되거나 소외되고, 나아가 그 명칭에 신앙을 건 자들은 다른 것에 대해 비하하고 심지어는 악으로 간주한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것을 웃기기 위한 농담의 일부라고 하면, 각각의 신앙자는 농담이라고 하는 자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기와 다른 자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는 자들이 미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다.
신앙자가 자기를 제외한 사람에 대해 갖는 반대 또는 적대 의식이 무엇인가? 그 바탕에는 하나의 존재에 대한 그것 외에는 모순이라는 논리적 생각을 먼저 하는 경우이거나, 또는 그가 사는 문화에 젖어서 다른 문화에 대한 적대의식이 자신의 이기심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닐까?
자! 생각해보자. 그 곳도, 그 명칭들(환인, 부처, 크리스트, 상제)도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l’id?al)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왜 상징의 이상이 존재가 되고 가치에 개입하는 하는 것일까? 철학을 배우면서 다시 생각하기를, 관념(l’id?e)이라는 용어가 그 기원에 자리하고, 또 그 용어에 어떤 성질 또는 속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그 기능과 역량을 개입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에는 이상도 있고 관념도 있고, 그리고 일상적으로 대화를 위해 일반적 사물을 지칭하며 소통하는 개념들도 있고, 자신도 이해 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이름을 붙여서 만든 것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가라리 네히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이 중층에는 상징으로 이상, 논리적으로 관념, 경험 일반의 개념, 잘 알 수 없지만 이름을 붙인 이념(유명, 이름 붙이기)이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관념과 이념을 따로 구별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 답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그 이야기, 즉 담론을 시작해보자.
관념은 어원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idea ?δ?α)이다. 이 이데아는 1. 형식, 2. (사물을) 봄(lat. species), 3. 종류, 본성. 4. 에이도스(eidos ε?δο?), 분류, 종류, 류(類)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나는 이데아라는 용어가 피타고라스의 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라는 사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간단히 말하면 원리상 수(數)에서 하나(un)는 수들 중에서 일자(l’un)가 아니다. 하나는 모든 것에 기입되지만, 일자(l’un)처럼 자기 스스로 따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존재(Etre)는 모든 사물에 부가 또는 바탕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물체 없이 따로 현존(l’existence)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와 존재가 ‘있다’고 할 때, ‘있다’는 ‘없다’고 말할 수 없기에 쓰인 논리적 용어정도, 한계의 용어라고 생각한다. 이 이상의 논의는 전문적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여기서 그치고, 우리의 주제 “관념”으로 가보자.
“이데아”를 설정한 플라톤의 이 용어가 “관념”으로 번역된다. 이데아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지적 본질 또는 지적 형식을 나타낸다. 그리고 감각적 사실들은 이 이데아에 참여한다(분유한다)고 한다. 이 “이데아의 세계”는 지상의 세계, 또는 물질적 세계에 대립된다. 또한 이데아 세계는 진실한 세계이며, 지상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 또는 현상의 세계라고 한다. 게다가 플라톤은 이 다수의 관념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설정하고, 이 관념들이 현세상의 모범이라 한다. 그리고 이 관념들의 최고의 관념은 선의 관념이라 한다.
플라톤의 이런 생각(id?e)은 아름다움(미 美)을 판단하면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판단하는데 있어서, 인간들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판단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논쟁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아름다움의 관념은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즉 미의 관념은 인간과 별개로 존재한다.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처럼. 그럼에도 인간의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점에서 어떤 이는 담론은 당시의 시대와 관계있다고 하고, 플라톤이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싸움을 위해 이러한 주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의 상대주의 세계를 전복하기 위하여 진실한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선언한 것이라 한다.
나는 이 전복이 현실적 개념의 기준을 삼기 위한 노력이지만, 심층에서 우러나는 새로운 개념의 생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여긴다. 아름다움의 관념은 기준이 아니라 어쩌면 상징으로서 이상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환희의 외적 표현일 뿐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인간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이름(유명 有名)일 뿐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름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 만을 여기서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플라톤의 이데아가 별개적 존재라는 것을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당대 그리고 중세 이르기까지의 문화 속에서 이상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박하기에는 인간의 삶의 터전이 너무나 열악했다. 단지 있을 수 있다면 거지처럼 살았던 퀴니코스 학파의 사람들이 있었거나 걸승처럼 떠도는 수도자가 있었을 것이다. 열악한 사회조건에서 터전을 부정하고 미래의 저세상에 희망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인민은 현실의 고통과 가난을 부정하고 미래의 삶의 지표로서의 이상을 수용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퀴니코스 학파는 내세와 죽음을 미끼로 담론을 전개하는 것을 사기라고 보았다. 내일의 희망, 미래의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고 개혁하려는 힘일 수도 있지만, 현실의 열악한 조건을 수용하고 묵묵히 살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아편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르네상스라는 시기 이전에 유명론자들은 관념세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현실세계에도 미래세계와 같은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유명론자들은 관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 소리(flatus vocis)일 뿐이라는 이유에서 현실의 사실에 부합하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과학은 물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는 관점을 제시한다. 갈릴레오는 천상의 운동이 지상의 운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았다.
바로 이 시기에 데카르트는 진실한 관념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면서도, 그 독립적 존재에 물체의 관념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 그는 사유와 부피라는 관념들이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다고 하였다. 이런 관점 속에 두 개의 실체의 존재를 주장한 것은 관념의 전복은 아닐지라도 철학사의 전환이었다.
데카르트는 타고난 관념(l’id?e inn?e)이 “명석 판명”한 것으로 여겼다. 이 관념은 영국 경험론자들의 견해처럼 만들어지는 개념도 아니고, 칸트처럼 절대적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선천적으로 구성된 개념도 아니며 선험적 변증론에서 성립하는 이상적 이념도 아니다. 경험론자들은 대부분 이데아와 같은 신 관념은 이름일 뿐이라고 여긴 데 비하여, 데카르트는 수학적 명증성의 확신으로 창조자로서 신은 아니지만 절대적 관념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근대 철학은 플라톤 이래로 중세에 이르기까지 절대적 별개 존재로서 관념의 본성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났다. 그 대신에 관념이 어떻게 생겨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데카르트는 이에 대해 세 가지 관념들을 구별했다. (소위 선천적이라고 표현하는) 타고난(inn?es) 관념들, 밖에서 오는 부수적(adeventices 우연적) 관념들, 내가 자의적으로 만드는 인위적(factices) 관념들이다. 표현이 즉 관념이지만, 플라톤의 표현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현대적 번역으로 개념들이다. 물론 데카르트는 타고난 개념(관념)이 신의 절대적 관념에 의해 우리 정신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경험론자들은, 특히 홉스 같은 이는 타고난 관념이 없다고 보았다. 초월적이고 절대적 신앙을 벗어난 경험론자들은 물질적 세계의 일반성에 주목한다. 개념의 형성은 상식(공통감각)을 통해서 경험 속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형성이란 인상을 통해 우리의 정신 속에 각인되어 반복의 결과로서 일반성, 즉 개념이 된다.
이런 귀납적 방식은 흄의 인과성의 원리에 대한 회의로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즉 과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에 의한 판단들은 개연적 인식으로서 보편성을 추구하는 지식의 확실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귀결에 이르렀다. 이는 칸트로 하여금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이르게 한다. 칸트에게서 개념은 미리 주어진 2선험적 형식과 12개의 오성의 범주를 가지고 인간이 구축하는 것이다. 이 전환은 데카르트에서 전환이라기보다 플라톤의 관념의 형성에 대한 전환이었다.
플라톤은 관념을 인간이 외재적으로 원래 있는 것으로 믿음으로써 그에 대해 열망하는 (소크라테스적 사랑 필로스의, 심리학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칸트는 관념을 인간이 선천적 능력과 선험적 구성력을 통해 포획하는 것으로 보았다. 공간의 개념을 예로 들면, 플라톤에서는 공간은 ‘하나’와 ‘존재’처럼 부정할 수 없이 실재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비하여, 칸트는 공간이 선천적으로 절대적 형식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여겼다.
데카르트에게 관념(개념)은 형식적이 아니고 실재적이지만, 그 실재성으로서 공간 또는 부피를 이해하는 데에는 생물학적 일반성의 관념이 도래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베르그송은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양 철학사가 데카르트 이후 400여 년을 인간의 이기심(틀뢰즈 용어로 포획성)으로 인하여 실재성을 상실하는 길로 나갔다고 하면서 한탄한다. 그는 이 버려진 미지의 세계로 길을 돌려놓고 심층으로 탐구해 들어갔다. 그래서 2500년 이래 플라톤주의자들의 전도된 심리학을 바로 세운 것이 베르그송 자신이었다고 한다. 이를 이어 들뢰즈는 그의 철학을 “개념의 생성”이라 부르면서, 생성의 철학은 플라톤주의의 전복이라 했다.]
어쨌거나 인간 지성에 대한 관점이 관념의 원리 또는 본성에서 관념의 형성 또는 생성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칸트에 이르러 관념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올바른 사용을 구축하게 된다. 칸트에서는 플라톤주의자의 관념은 이상에 속하며, 개념과 판단을 통해 과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에 비해 들뢰즈 철학은 이상을 상징으로 바꾸고 상징은 의미가 여러 가지라고 한다.
나는 이쯤에서 “가라리 네히어라”에 비추어 정리하고자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이상으로서 관념이며 상층이라는 한 ‘가라리’며, 데카르트에서 두 실체는 표면의 이중성이다. 즉 표면의 이 중성으로 두 ‘가라리’다. 경험론자들은 표면의 겉면을 공격하면서도 상층으로 공략하러 올라가다가 자기 회의에 빠졌으며, 칸트는 표면의 겉면을 인정하기 위해 표면의 속면으로서 선험적 형식과 범주를 내세웠지만, 이 두 가지를 다시 표면의 겉면으로 올리고, 속면의 생성에 대해 (생물학과 심리학의 도래를 보지 못하고 죽었기에) 무지했기에, 다시 말하면 물자체를 수동성의 영역의 일부로서만 보고 나머지는 버려버렸기 때문에, 심층으로 들어가는 “진정한 전회” 또는 “2400년 철학사를 전복”하지 못했다. 이 심층이 나머지 ‘가라리’이다. 자, 인간 의식에서 심층으로 들어간다는 것, 보다 정확하게 심층에서 솟아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때가 되었다.
칸트의 개념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오죽 했으면 들뢰즈가 자신의 생성의 철학이 칸트 위에 서 있다고 했겠는가? 칸트가 죽은 시기(1804) 이후 즉 19세기 이래로 세상은 이전 시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 방면에서 빠른 속도로 달라졌다. 프랑스는 이미 대혁명을 겪었다. 모든 인간이 자유, 평등, 박애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물질 문명이 인간의 의식을 변하게 했다. 왜냐하면 사물들을 다루면서 인간에게 이롭게, 유용하게, 실용적으로 만들 수 있는 철학적 학설이 이 세상의 변화에 걸맞게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또한 인간은 스스로 개념을 구축하였듯이, 인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을 열 가능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신의 존재에 의탁하지 않고, 심지어는 신과 같은 창조자로서 세계에 대해 창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르네상스 시대와 엄청난 차이로서 새로운 생산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미래를 당겨서 현실에서 풍요와 안녕을 통한 평등의 터전을 곧 구가하면서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증기기관과 모터의 발달이 생산력을 높였지만 생산물에 대한 노동자의 소외는 더욱 심화되고, 빈부의 격차는 어느 시대보다 인민의 삶을 열악하게 만들었다. 인민에 의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관념을 논하는 자들이 아니라, 경제적 기반에 대한 정치학을 말했던 맑스였다. 맑스는 새로운 개념의 구축이 변증법적 역사 속에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언젠가 다가올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칸트가 뉴턴 물리학의 인식적 토대를 주기 위해 개념을 구축한 것에 비해, 새로운 관점으로 개념의 생성을 보여준 것은 프랑스의 유물론자 전통에 선 의학생물학자들 중의 한명인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였다. 그는 역사가 어떤 주제자에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이 생명 생성의 터전을 이념(l’id?e)이라 불렀다. (이것은 어쩌면 자유의식의 상층으로 향하는 과정을 이념이라고 불렀던 헤겔과 대척점에 있다)
심층에서 생성되는 원리를 이념이라 부르게 되면, 소박한 유물론자는 그것을 생기론이라 한다. 이 의학생물학의 유물론은 물자체(심층)로부터 유익한 것만을 물체로 구축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물자체(자연 자체)가 생명을 생성하고 자기 단위 속에서 자치적이고 자기 조절적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생명이 중동의 전설에 따라 삼천리에서 나온 설화의 영감이 창조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생성되었다고 하면 생명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질 수 없는가? 그는 원리로서 이념을 세우고 생명체 속에 이념이 있다고 주장한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이 이를 이어받아 주장하듯이 생명체의 이념은 오랜 생성과정에서 생성한 실재적 일반관념(표면이 상상 또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일반관념을 들뢰즈는 개념의 생성이라 부른다. 그런데 서양 철학사적으로 영국의 경험론자들이 관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일반 관념(개념)을 형성하였지만 그 체계의 단일성(통일성)에 부딪혀 상층의 관념을 인정했던 것과 달리, 이 의학생물학은 지금까지 오랜 과정에서 변화하는 힘에 의해 새로운 물체가 형성되고 이 형성된 신체(생명체)가 지니는, 또는 타고난 일반 관념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일반 관념(생성된 개념) 중에 데카르트의 부피(l’?tendue)도 이에 속한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실재하는 개념이며 태어나면서 갖는 개념이다. 이것은 베르그송 용어로 생명체 속에 등록된 것이다. 이 개념은 칸트가 말하는 포획하는 개념으로서 신체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생체 속에 오랫동안, 심지어는 생명의 역사 모두를 등록한 일반 개념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회상(r?miniscence)과 달리, 베르그송이 기억(la m?moire pure 순수기억)이라 부르는 이념이다. 베르그송은 관념의 동일성과 다른 의미에서 이 이념에도 동일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인격성이라 부르고, 심층자아에서 표면자아에 이르기까지 실재성의 현전을 지속(la dur?e)이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동일성은 기학학적 동일성(l’identit?)과 같은 단어이지만, 지속을 정체성(l’identit?, 생명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으며, 이념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이 이념은 상징으로서 상층의 동일자에 대한 이데아와 전혀 다른 대척점에 있다.
물체의 형성에 대해 개념 형성을 소박한 유물론이라 하면, 생체의 생성에 관한 것을 실질적 유물론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실재론은 형상적 형이상학이라 한다면,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란 표현은 표면의 이중성의 실재성에 대한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고, 르네상스 이래로 400여년을 지난 후 회복한 실재성, 즉 전도된 실재성을 바로 세운 베르그송의 실재론은 질료의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는 전복의 철학을 제시하면서, 생명 기억의 움직임 또는 이 능동성이자 잠세성을 노마드라 불렀다. 그에게 있어 표면 위의 겉면에 재현하는 칸트 식의 구축개념의 형성은 도구주의의 포획의 일부일 뿐이다. 표면 위에 말달리듯 선을 긋는 것을 노마드라고 부르는 것은 들뢰즈에 대한 곡해이다. 들뢰즈의 노마드란 의식의 흐름, 기억의 능동적 종합, 생명의 자기 발현이 심층에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표면의 약한 균열을 뚫고 나오는 연기(jouer)이다. 연기의 일반적 또는 공통적 감각을 상식이라 부르고, 그 상식의 일반화를 개념이라 부른다면, 플라톤주의 철학을 이용한 플라톤주의의 전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성은 의식의 흐름이며, 기억의 총체이며, 그 총체의 발현에서 자유가 있다. 철학은 오랜 과정 속에서 인격성의 자유 실현에 대해 기대해 왔었다. 그 기대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표면 위에 선긋기하는 철학 즉 규범의 철학은 정태적 철학에 불과하다. 인격성의 운동전개에 따른 동태적 철학의 도래는 이미 있어왔다. 그 실행이 남아있을 뿐이다.
류종렬(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