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인 줄기, 패인 나무에서 생명을 말하다 [청춘의 고전 시즌2]-④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④

??? 일시: 2012. 5. 12. (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꺾인 줄기, 패인 나무에서 생명을 말하다

– <세한도>에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와 『주역』-

강연:? 조민환 교수 (춘천교대)

 

 

꺾인 줄기, 패인 나무에서 생명을 말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는 강원도 정선 두위봉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평 용문사에 1,100년 된 은행나무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두위봉 주목나무가 1400년 된 것으로 밝혀졌다. 천 년 이상 살아온 나무도 놀랍지만, 아프리카 바오밥 나무의 수령은 최고 5,000년가량 된다. 인류사로 어림잡아도 5,000년이라는 시간은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만년을 넘게 산 나무가 있다면 과연 믿어지는가?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그런 나무가 있다. 무려 12,000년 이상을 산 이 소나무의 이름은 ‘므두셀라’. 그는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모습으로 5,000년, 고목의 모습으로 아직도 7,000년째 살고 있다. 줄기가 죽은 듯 보이지만, 여전히 잎이 나고 해마다 1cm씩 성장한다.

우주에 호응하는 법을 깨친 것일까? 오래 산 나무들이 견뎌온 시간은 기적을 넘어선다.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지혜가 있는 것만 같다. 세월을 간직한 나무 대부분은 잎이 풍성하지도 않고 줄기가 곧지도 않다. 심지어 고목의 색은 검고 가지들은 꺾여 흉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무의 중심 줄기마저도 거센 비바람에 둥글게 패이고 버티다가 결국 꺾이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바위틈에 자라거나 땅 위에 누워 자라기도 한다. 심하게 아플 때면, 알 수 없는 혹주머니 하나 다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벌레의 등살에 차가운 시멘트로 덧칠되기 수차례, 세월이 길수록 나무색은 짙어지고 나이테는 조금씩 늘어난다. 이것이 긴 세월을 이겨낸 나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 노송 ⓒ조민환

5월 12일, 상상마당을 찾은 조민환 교수는 나무의 이 당연한 자연스러움에 주목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명의 원리를 찾아 옛 그림들을 주역으로 풀어낸다. 흥미롭게도 그가 강연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그림과 사진은 그래서 푸르고, 바른, 평이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줄기가 부러지거나 움푹 패여 보기만 해도 힘겨운 모습이었다.
김정희,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 23.7*108.2cm, 조선시대(19세기), 한국 개인 소장조민환 교수는 이러한 노송의 모습이 특히 추사의에 자세히 묘사되었다고 본다. 원래 사제간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유명하지만,에서의 노송은 자연의 강인한 정신도 담고 있다. 얼핏 보기에 힘없고 초라해 보이는 노송이 꺾이고 휘어져도 생명을 멈추지 않는다.

▲ 김정희 <세한도>,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 23.7*108.2cm

“가지가 잘리고 옆으로 휜 나무는 고난을 극복하며 위로 자라려 한다. 하지만 위로부터 몰려온 풍파로 말미암아 다시 엄청난 고통의 시기를 보낸다. 나무는 닥친 시련을 또 다시 극복해야만 하는 생명의 연속성을 보여준다”고 조민환 교수는 말한다.

처음에 노송 줄기는 옆에 있는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위로 곧게 뻗어 있었다. 그러나 너무 바른 탓인지 거센 풍파를 이겨낼 힘이 없어 꺾이고 만다. 이제 노송의 다른 줄기 하나가 굵게 자라지만, 다시 몰려온 풍파에 휘어지고 이도 힘에 부쳐 점점 가늘어진다. 시련이 계속될 때마다 아래로 향하는 줄기, 그럴 때마다 다시 솟구치는 새로운 줄기. 이렇게 굽이치길 몇 차례, 마침내 노송에게도 희망의 봄은 싹튼다. 그런데 이 봄은 사그라질 줄 모르는 봄이다. 가지 끝에 난 희미한 솔잎들은 겨울이 되어도 생명으로 거듭난다. 마치 추사의 인생길처럼 말이다.

고단함 속에 숨어있는 강인함, 이름없는 수많은 고목과의 가지가 간직한 기적의 힘이다. “가지는 미약하지만, 나무는 그 미약함을 새로운 생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조민환 교수의 말대로 바로 여기에서 그 기적의 힘이 발현되고 있다.

끝자락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힘

자연이 보여주는 강인함은 생명력의 회복 또는 극복에 있다. 꺾일듯 꺾일듯하지만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있어 고목 줄기는 생명 줄기로 재탄생한다. 조민환 교수는 이러한 만물의 이치가 주역의 ‘지뢰복괘’(地雷復卦)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여긴다.

‘지뢰복괘’는 땅에 우레 같은 힘이 솟구치는 형상이다. 맨 위에 음 세 개가 땅을 상징한다면, 맨 아래에 양 하나가 봄을 채비한다. 홀로 애쓰는 양의 움직임은 우레의 놀라운 힘을 상징한다. 양의 기운으로 비로소 음의 기운이 다하니 절기로 따지면, 동지(음력 11월, 양력 12월 22일)다. 고난과 어둠이 다해야 양이 회복(復)하므로 이 괘는 머지않아 언 땅에 봄이 올 형세다. 추위의 절정이 지난 후 봄의 기운이 싹트는 것처럼, 우레의 힘은 땅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뚫고 올라온다. 봄이 오기까지 하나의 ‘양’(_)이 고된 시련을 희망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지뢰복괘’는 미미한 작은 기적으로부터 큰 기적으로 변해가는 생명의 ‘길’(吉)한 이치다.

불사조 같은 자연의 강인함 ? 사군자

자연의 강인함은 주역 사상뿐 아니라 인간의 예술혼에도 담겨있다. 조민환 교수는 사군자를 고난과 역경을 품어낸 자연정신이 예술로 승화된 것으로 본다. 가장 쉬운 사군자의 예가 5만 원권 지폐 뒷면에 담긴 매화와 대나무이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 같지만, 사실 이 그림은 이정의와 어몽룡의가 겹쳐졌다.
월매도(왼쪽)와 풍죽도(오른쪽)대나무의 상징은 푸른 잎과 곧은줄기다. 여름날 대나무가 가장 시원하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한편 이른 봄부터 피어나는 매화는 봄의 전령사다. 설사 눈이 내리더라도 꽃을 피운다. 그래서 풍기는 향기가 더욱 그윽하고 청아하다.

대나무는 땡볕 더위에도 마르지 않고, 매화는 강추위에도 여지없이 자신의 생명력을 뿜어낸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그들은 어두운 시간을 인동초처럼 감내해야 했다.와는 바로 그런 시절의 그림이다. 바위 위에 단단히 서 있는 대나무, 그는 매서운 북서풍을 맞이함에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매화나무는 상한 밑동 아래로부터 가지 세우는 일을 밤에도 그치지 않는다. 둥근 달이 그의 고독한 일을 알고 찾아와 가지 끝을 향해 길을 내준다. 그들은 고난을 의미 있게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사군자의 굳건한 정신은 여러 그림 중에서도 특히 추사의에 절묘하게 녹아있다.

▲ 추사 김정희ⓒ간송미술관

난초는 환경에 좌우됨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은은한 향기와 청초한 자태를 간직한다. 선비들은 그런 난초의 고고하고 순수한 정신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런데 추사의은 다르다. 난초의 줄기들은 섬세하고 세련되게 그려지지 않았다. 필선이 너무 단순한 나머지 무성하게 자란 잡초 같다.

또한, 이 그림에서 점들은 여기저기 들쑥날쑥 찍혀있다. 겨울에 얼어붙은 줄기일까? 이 난도 향기를 풍길 수 있을까? 그림에서 꽃 모양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줄기 대부분이 진한 먹색으로 강하게 그려졌다. 묵색의 명암대비가 뚜렷하다. 흐릿한 색의 문양들은 마치 잡초 같은 난 줄기를 둥그렇게 감싸는듯하다. 난 줄기는 일반적으로 얇고 긴 선모양으로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추사의 것은 바늘처럼 삐쭉삐쭉, 억세고 거칠다. 그런가 하면 난 아래 글자들은 난초가 뿌리 내린 땅을 연상시킨다. 윗줄에 있는 글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보면, 조민환 교수의 말대로 흙표면이 고르지 않은 언덕모양이다.

그는 이런 추사의 미학을 ‘문자 예술’이 보여주는 ‘화제의 조형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조형미가 추사의 필법에 어우러져 있다고 말한다. “온산 눈 덮혀 가득하고 강물은 얼어서 난간 되었네. 손 잡힐 듯 부는 봄바람에 어찌 하늘 뜻 모르리오.” 조민환 교수가 말한 바로 이 화제에 ‘간’(干)자는 원래 아래 획이 짧은 것이지만, 위에 획보다 길게 표현되었다. 다시 말해 위, 아래가 뒤바뀐 것이다. 한겨울 돌덩이처럼 단단히 얼은 얼음이 온 세상을 길쭉하게 누은 듯 뒤덮은 형태라고 그는 해석한다. 추위가 극에 달해 쇠하려는 순간, 사람의 손끝(人)에서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고 싹이 솟아날 태세다(春). 즉, 양기가 위로 치켜 올라가는 모양새다. 바람(風) 속에서도 벌레들은 벌써 봄을 감지하고 땅 위로 나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봄소식에 이내 어깨춤이 절로 나 (乃), 마음이 미소 짓는다 (心).

추사의 문체 하나하나에는 그림의 까닭이 담겨있다. 그에게서는 글과 그림의 경계가 무너져 화제의 형상미가 생동한다. 보이지 않는 힘은 난의 굵은 힘이다. 어두운 땅속에 묻혀있는 ‘양’(_)의 기운이 아지랑이 되어 피어난 천심(天心)이다. 그래서 ‘천심난도’다. 난이 꽃 필 때까지, 고목에서 새싹이 날 때까지 어려운 시간 동안 자연에는 고난을 ‘아는’ 지혜가 있다. 이것이 곧 조민환 교수가 이번 강연을 통해서 전하고자 한 ‘지뢰복괘’의 숨은 뜻은 아닐까.

후기: 김은하 (건국대 외래교수)

자본론을 읽자[자본론 강독]-①

자본론을 읽자[자본론 강독]-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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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 : 이재유, 김선이, 김성심, 나태영, 박종호, 신재길, 신준하, 윤지미, 최혜진

정리 : 신재길(2012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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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도 교육강좌 후속 세미나로 [자본]을 읽고 있습니다. 세미나 팀에서 매번 정리하여 웹진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자본론’은 유럽사회의 변화에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친 책으로 성경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소련이 몰락하자 사람들은 자본론이 틀렸다고 생각했으며 자본론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맑스의 자본주의 이론이 틀렸다는 생각이 거의 상식화 되었을 때, 1997년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가 몰아쳤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러한 세계적 경제위기는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인식이 분명해지자 자본론은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나 자신의 경우에도 2008년 이후에 자본론을 읽어 보고자 했으나, 혼자는 어려워 하지 못하다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자본론 읽기 모임이 만들어져 참여하게 되었고 이 지면을 빌려 자본론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대체로 개념 정리를 기본으로 하고 자본론 읽기 모임의 후기로 간추려보고자 하나, 철학과 경제를 아울러 일반 경제관련 책들에 비해 어려운 자본론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의욕을 앞선다. 맑스는 자본론이 노동자들에게 많이 읽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무기가 되기를 염원했지만, 나 자신만이라도 새롭게 변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정리하고자 한다.

 

제 1 편 상품과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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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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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실체, 가치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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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론의 연구 대상과 방법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집적’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부터 시작한다.”(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p87)

 

이 문장은 자본론 본문의 첫 시작 문장이며,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다.

그러나 바로 이 첫 문장부터 어려움에 봉착한다. 먼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낯선 용어가 앞길을 막아선다. 아마도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구조와 원리를 밝히는 것을 자본론의 최종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 또한 맑스의 이야기를 따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조와 원리에 차차 접근해보도록 하자.

다음으로 경제학의 연구대상인 ‘부’에 대해서 보자. 경제학은 예술도 아니고 정치도 아닌 ‘부’가 그 연구대상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보통 ‘부’하면 돈을 생각하지만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는 ‘상품’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돈을 ‘부’로 보는 우리의 생각이나 상품을 ‘부’로 보는 맑스의 생각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돈이란 상품의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상품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돈은 우리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상품을 살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돈에 집착한다. 해고되거나 취직할 수 없으면 생존자체가 위협받게 되어 우리는 돈을 얻기 위해 우리자신도 상품으로 판다. 모든 것은 상품이 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상품은 우리의 삶의 현실을 대표한다. 맑스는 이런 상품이 무엇인가 묻고 그 답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맑스는 ‘상품’에서 출발하여 어느 곳에 도달할 것인가?

 

하비는 자본론에서 ‘나타나다’에 주목한다. 영어의 appear, 독일어의 erscheinen 는 그 명사형들이 철학용어로 ‘현상’을 뜻한다. 현상이란 “감각, 직관,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물, 과정 등의 외적인 성질의 총체”라 한다(철학대사전, 동녘). 현상은 본질적인 징표뿐만 아니라 비본질적인 징표도 나타낸다고 한다. 학문은 바로 사물의 현상에서 출발해서 사물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라는 주어진 현실에서 상품이라는 현상을 포착한다. 상품을 현상으로 본다는 것은 상품의 외적인 성질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자본주의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으로서 이 상품이라는 현상을 통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길을 갈 것인가? 맑스는 상품의 ‘분석’으로 간다고 한다. 분석이란 “전체를 그것의 부분들로, 한 체계를 그것의 요소들로, 사유에 의해서나 또는 실제로 분해, 해체, 해부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 인식 절차”이다(철학소사전, 동녘). 분석이란 말 그대로 나눈다는 것이다. 나눈다는 것은 단순화시킨다는 의미다. 어떤 문제가 복잡해서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충고 한다. 문제를 단순화시키라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단순화가 ‘분석’의 핵심이다. 문제가 복잡하면 그 문제를 여러 단계나 작은 문제들로 나누어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을 끄집어내어 풀어가면 명확하게 문제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해결의 대안도 보인다. 그래서 맑스는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맑스는 단순히 ‘분석’의 도구만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맑스의 ‘분석’은 ‘추상’을 위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맑스는 상품을 ‘분석’하여 상품의 본질을 추상화 한다. 자본론 전체를 아울러 맑스는 반복적으로 대상을 ‘분석’하고 ‘추상’하여 다시 그 추상화된 대상물을 ‘분석’한다. 마치 한 고비 넘어가면 새로운 지형(=추상)이 나타나고 그 곳의 길(=분석)을 찾아 올라가면 또 다른 지형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공리체계(이진경의 ‘자본을 넘어 자본’ 참조)와는 완전히 다르다. 공리란 어떤 이론체계의 기본명제 내지 근본명제로 이로부터 새로운 정리들이 연역된다. 따라서 공리는 보통 증명 없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제로 출발하고 무모순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체계이다. 즉 공리체계는 모든 추론이 전적으로 논리적 연역의 결과일 것이 요구된다. 이는 현실의 경험이나 분석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맑스는 상품이라는 현실을 ‘분석’하여 노동가치를 도출해 낼 때, 맑스의 ‘분석’은 무모순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웹진이 페이지를 옮겨 이사를 하는 도중입니다〈ⓔ시대와 철학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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