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트와 천안함[철학적 인간극장]

나르시시즘과 권력.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성격들 중의 하나가 아마 나르시스트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어 물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트는 그리스 신화에서 처음 주목받은 이후 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분석하려 했던 대상이었다. 그런 분석 가운데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특히 주목받을 만하다.

라캉은 거울 단계(상상계)라는 개념을 통해 나르시시즘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나르시스트는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서 자기 어머니(라캉은 이를 개념화 하여 대타자라 부른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바로 어머니가 욕망하는 대상임을 확신한다. 라캉은 욕망의 대상을 ‘팔루스(phallus:남근)’라 지칭하였는데, 나르시스트가 거울 앞에서 희열을 느낄 때 그것은 자신이 바로 어머니의 팔루스라는 확신에 기인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나르시스트의 자기 매혹은 단순한 에고이즘과 구분된다. 에고이스트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나르시스트의 자기 매혹은 대타자(곧 어머니)의 욕망을 전제로 하므로, 오히려 나르시스트는 자기 부정성 또는 자기 상실성을 드러낸다.

라캉에게서 나르시스트는 항상 그 분신과 연관된다. 나르시스트는 대타자의 욕망에 구속되어 있으면서 한편으로 자신이 대타자의 팔루스라고 확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에 대해 의심한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대타자의 팔루스인지 또는 무엇이 대타자의 팔루스가 되는지 의심한다. 나르시스트에게 확신과 의심은 끊임없이 교체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확신과 불신이 교체되는 현상을 라캉은 ‘부정(negation)’이라 하여 이를 도착증의 기본 메카니즘으로 규정한다.

이런 부정의 현상 때문에 나르시스트에게는 필연적으로 분신이 출현한다. 자신의 확신이 불신으로 바뀔 때, 나르시스트는 그것을 자신의 분신이 대타자의 욕망의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설명하게 된다. 이 분신은 대타자의 팔루스가 되고, 나르시스트는 그런 분신을 부러운 마음과 질투의 심정으로 흘겨본다. 이런 분신의 역할(대타자와 구분하여 소타자라 불린다)은 대체로 자신과 가까운 형제자매들에게 전가되지만, 때로는 이런 분신은 환상 속에서 창조되기도 한다.

나르시스트의 모습은 예를 들어 의처증 환자에게서도 확인된다. 의처증 환자는 자신의 소유물을 누가 훔쳐가는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누가 훔쳐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처증 환자는 오히려 자신의 아내(대타자로서의 아내)에 대한 자신의 자리(곧 팔루스로서의 자리)를 누가 대신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아내를 의심하게 된 것은 사실은 자신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자신이 아내의 팔루스가 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아내를 의심한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가는 소타자 곧 분신은 때로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 스스로 가상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다.

이렇게 먼저 자기 아내의 부정(不貞)의 대상인 소타자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해서, 그는 그것을 입증해 주는 증거를 찾는다. 그는 어떤 사소한 사실이라도 아내의 부정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아무리 확신할만한 증거라고 할지라도 그의 확신을 밑받침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는 또 다시 새로운 증거를 수집하려 한다. 그의 의심은 너무나도 서투르며 그는 오히려 의심의 서투름을 즐긴다.

따라서 의처증 환자에게서 자신에 대한 확신과 불신이 교체되면서, 자신의 자리를 뺏어가는 소타자의 존재도 부정되거나 긍정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아내가 부정을 범했다는 증거도 아직 모자라거나 이미 충분하다. 그러므로 의처증 환자는 의심의 천재이다.

천안함 사건의 변질과정

최근 일어난 천안함 사건은 이런 나르시스트의 모습을 닮았다. 그것은 천암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드러내는 정부 당국의 서투름 때문이다. 천암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이라는 주장은 아주 확고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증거가 의심스럽다는 것을 스스로 누설하고 있다.

처음에 발표될 당시만 해도, 그것은 그저 평범한 사건으로 보였다. 처음에 군은 유가족들 앞에서 군함이 얕은 바닷가에 들어가서 좌초되었다고 지도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사건이 나자 처음에는 긴장해서 새떼를 보고도 총질했던 군은 곧 이를 단순한 좌초사건이라고 보고서 경계를 해제했다.

한반도 군사 상황을 책임진 미군도 처음에는 이 사건을 그저 단순한 사건으로서 받아들였다. 그래서 미군은 태연하게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없고, 군함의 내부 문제와 관련된 것 이외의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없다고 발표했다. 좌초 후 지휘관의 잘못된 대응으로 배가 두 동강 나고 많은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다면, 그것은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었을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도 약간의 태만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보고에 따라 단순하게 규정되었던 사건은 점차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런 왜곡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서 시작되었다. 처음 발표된 사건의 내용이 조금씩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변경되기 시작했다. 우선 사건이 일어난 장소, 시간이 춤추기 시작했다. 언론에 갖가지 추측과 가정이 사건 조사 관계자의 이름으로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일찍부터 다만 하나의 가설로 제시되었던 주장 즉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설이 확정적인 것으로 인정되기 시작했고, 다른 모든 세부사항들은 이런 가설에 맞추어 조정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추측과 가정들 가운데 이 가설과 어긋나는 것은 마치 무의식적으로 억압되는 것처럼 언론의 표면에서 사라져 갔다.

이렇게 오랫동안 비틀거린 이후 사건은 마침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 거의 전쟁 포고에 가까운 사건으로 확정되어 버렸다. 이렇게 확정되자 여기서부터 사건은 하나의 가상현실이 되었다. 가상현실이 되어버린 사건으로부터 새로운 파생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남북 사이에는 전쟁 상황이 벌어졌고,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에 직면하자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처음에 태평스러웠던 미국의 태도도 바뀌었고, 그 결과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국제적 대결이 전개되었다. 유엔의 안보리가 소집되었다.

드디어 북한의 침투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군에 대한 문책의 소리가 높아졌다. 군에게 사건을 왜곡시킨 책임을 묻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작전 실패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로 전치되었다.

그러나 군 조사당국이 내미는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물증이라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웠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증거이었지만 정부와 일부언론은 시민들이 그런 증거를 믿지 못한다는 것을 터무니없어 했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보면 천안함 사건은 미아가 되어 버렸다. 안보리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더구나 사건을 왜곡시키는데 기여한 군은 자기 발등에 스스로 도끼를 박았다. 군은 전투에서의 패배보다 더 엄중한 경계에서의 패배라는 치욕을 떠안고 말았다. 그 조작된 치욕은 역사에 기록되어 영원히 사실로 인정되고 말 것이다. 치욕이야 참으면 되고, 국제적인 망신은 눈감는다 하더라도 한번 뒤 흔들린 군의 명예는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명예를 먹고 사는 군인이 역사상 유례없는 패배의 치욕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르시스트와 북한 핵

천안함 사건 전체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서투름이다. 사건의 왜곡이 너무나도 서투르며, 군 조사단이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라고 내세운 것들은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것들이다. 더구나 그 증거는 이미 자신의 서투름을 스스로 누설하고 있다. 어쩌면 그 증거들은 이렇게 스스로 부정되는 것이기에 선택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서투름은 정부와 군 그리고 언론의 확고부동한 확신,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수없이 남발되는 보증수표와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도대체 이런 기묘한 대조는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이런 기묘한 대조 때문에 필자는 하나의 가설이지만, 천안함 사건의 배후에 있는 정부, 군, 그리고 조중동 언론이라는 소위 군-정-언 복합체 속에서 나르시스트의 증상이 발견된다고 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북한의 침투 공격이라는 군-정-언 복합체의 주장은 자신의 분신에 대한 나르시스트의 증오와 너무나도 닮았다.

이렇게 사건의 본질이 나르시스트 증상이라 규정한다면, 주요한 것은 그렇다면 누가 이런 군-정-언 복합체의 대타자인가 하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나르시스트의 증상은 대타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것이 바로 미국이 아닐까 한다. 미국은 군-정-언 복합체를 보호하면서 양육해 왔으니 군-정-언 복합체의 대타자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에 대한 라캉의 이론에 따라서 볼 때, 천안함 사건으로 불거진 북한에 대한 군-정-언 복합체의 증오감의 진정한 원인은 바로 그 자신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군-정-언 복합체는 자신들의 대타자인 미국의 욕망 대상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군-정-언 복합체는 그런 믿음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군-정-언 복합체의 확신이 무너졌다. 군-정-언 복합체의 마음속에 어떤 자격지심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국이 우리가 좋아서 우리를 지켜주려 하겠어?’ 이제 군-정-언 복합체는 언제라도 동맹국 미국이 그들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런 두려움이 군-정-언 복합체의 마음속에 두 가지 환상을 낳는다. 하나는 군-정-언 복합체가 미국이 좋아할 팔루스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온갖 추파가 던져진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온갖 양보가 이루어진다. 그 단적인 예가 광우병 파동이었다.

모랄리스트 이창동[철학적 인간극장]

모랄리스트란?

‘모랄리스트(moralist)’와 ‘도덕주의자’는 서로 다른 말이다. 도덕주의자란 자신을 일정한 도덕적 규범의 지배하에 두려는 사람을 말한다. 그에게 주요한 것은 규범을 지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이 정한 규범을 지키지 못할 때가 실제로 더 많다. 그러면 그는 그때마다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의외로 느껴지겠지만, 도덕주의자는 자신의 도덕규범의 합당한 근거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의 도덕규범은 대체로 종교적 믿음이나 사회적 관습에서 유래한다. 합당한 근거 없이 특정 도덕에 집착하는 도덕주의자의 모습에서 어떤 병적인 징후를 읽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반면 모랄리스트라고 한다면, 자신의 삶 속에서 합당한 도덕규범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그는 도덕적 의식을 지닌다. 그러기에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지켜야 할 확고한 도덕규범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도덕규범을 결정할 원리 자체가 의심스럽다. 그는 자신의 삶에 적합한 도덕원리를 발견하려고 여전히 노력하는 가운데 있다.

도덕적 의식을 지니면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이나 원리를 알지 못한다는 데서 모랄리스트의 고통이 시작된다. 모랄리스트는 행동에 앞서 항상 주저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랄리스트가 행동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삶 자체가 끝없는 도덕적 결단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후의 순간 마치 주사위를 던지는 심정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한 이후 모랄리스트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 자신을 지니지 못한다. 후회와 죄의식의 감정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는 행동하는 것이 정말 두렵다. 그런데 모랄리스트를 모랄리스트로 만드는 것은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는 행동에 이미 서있으면서도 행동의 근거를 의문시하는 자이다. 행동에의 결단과 행동에 대한 회의 사이의 내면적 갈등으로 그의 얼굴은 항상 창백하다.

모랄리스트를 유혹하는 악마가 있다면 그것은 곧 이런 갈등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항상 단순한 신념에서 즐거이 노래하는 자와 행동을 단념하고 마음이 평정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도덕의식이 결여된 현실주의나 광신적인 도덕주의, 그 모두가 모랄리스트에게는 악마가 된다. 모랄리스트에게 그런 태도들은 모두 일종의 도피이다. 모랄리스트적인 삶이란 이런 도피적 삶과의 싸움을 말한다.

모랄리스트 이창동

모랄리스트를 이렇게 규정한다면, 이창동 감독이야말로 모랄리스트적인 작가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그는 이미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등에서 이런 모랄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박하사탕』에서 그는 순수한 인간을 군화발자국처럼 짓밟는 사회현실을 묘사하면서 인간이라면 이런 현실 앞에 어떤 삶의 원칙을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는 이미 순수라는 도덕적 규범을 회의한다. 그것은 실현하기 불가능한 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수라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끝내 돌아가고 싶은 그 순수를 찾아서 기나긴 시간여행을 떠난다.

이어 『오아시스』에서 이창동 감독은 사랑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다. 물론 그는 현실의 사랑이 거짓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너무나 때 묻어 있어서 다시 꺼내보기도 싫은 사랑이라는 동전을 그는 장애인의 사랑이라는 기적을 통해 깨끗하게 닦아내려 한다. 그러나 영화는 끝내 그 기적이 성공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감독에게서 중요한 것은 닦아내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양』에서 이창동 감독은 기독교적 용서라는 도덕을 다룬다. 타인을 용서할 수 있을까? 심지어 자기 자식을 죽인 자를? 자신이 용서한 적이 없는데 신이 먼저 용서해 버린다면, 용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 영화 속에서 회의하고 투쟁할 뿐,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런 영화들 속에서 이창동 감독은 순수와 사랑 그리고 용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어떤 답을 내리고 이를 관객에게 설득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이 말하려는 것은 다만 모랄리스트로서의 삶이다. 그의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랄리스트로서 싸움 속에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런 싸움을 피해 현실에 안주하거나 도덕적 신념으로 도피하려는 악마의 유혹과 싸운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오직 싸울 뿐이다.

시인과 모랄리스트

이창동 감독이 새로 만든 영화 『시』 역시 이런 모랄리스트로서의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는 시에서 자신의 아바타로서 할머니를 내세운다.

할머니는 어느 시골 도시에서 산다. 할머니는 시청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과 다른 노인을 수발하는 간병인으로서의 수입으로 살면서, 이혼한 딸이 맡긴 손자를 기른다. 할머니는 손자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아는 평범한 할머니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아직도 소녀 시절의 꿈을 버리지 않은 모습이다. 할머니는 꽃무늬 치마를 걸쳐 입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하며, 노래방에서는 아직도 감상적인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그런 할머니이다.

그런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자신이 치매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머지않아 닥쳐올 죽음을 예감한 할머니는 돌아오던 중 시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할머니가 어릴 적 꿈 하나를 이루어, 의미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랐던 것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는 시청에서 문화프로그램으로 개설한 시인 학교에 가기도 하고, 이 도시에서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시를 배운다. 시인학교의 선생은 할머니에게 시를 잘 쓰기 위한 아주 단순한 원리만을 가르쳐 준다. 그 원리란 곧 먼저 사물에게 다가가서 사물을 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사물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며, 시는 이런 느낌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할머니는 선생의 말대로 사물에게 의식적으로 다가간다. 할머니는 아파트 앞에 있는 큰 나무 밑에 앉아 나무에 비추이는 빛과 바람에 스쳐 나뭇잎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할머니는 화단에 핀 핏빛 맨드라미를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 그 짙은 향기를 맡아 보기도 한다.

이렇게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는 시인의 마음은 모랄리스트의 태도와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사물을 보지만 실제로는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어떤 추상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물에 다가서기 위해서 즉 사물을 더 잘 보기 위해서는 사물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을 덮고 있는 추상적 관념을 버리고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 사람의 눈을 덮고 있는 추상적 관념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신념이거나 경직된 도덕적 관념이다.

모랄리스트 역시 도덕적 의식을 지니되, 주어진 도덕을 회의하는 자이다. 그러기에 모랄리스트는 현실에 안주하지도 않으며 추상적 도덕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그는 구체적인 사물에 적합한 도덕적 규범을 발견하기 위해 사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하며 그리하여 사물 자체를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창동 감독은 자신의 모랄리스트로서의 태도를 이 영화에서 시인의 마음에 유비했다고 생각된다.

할머니는 시를 쓰면서 아니 어쩌면 그 전에 이미 시인으로서 마음을 가졌기에 사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간병하던 할아버지 그리고 자기에게 성적인 욕구를 호소하던 할아버지에게 다가간다. 또한 지금까지 멀리서만 지켜보고 그저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던 손자, 소녀의 성폭행에 가담하고 소녀를 결국 자살하게 만들었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손자에게로 할머니는 다가간다. 또한 할머니는 딸을 잃고도 어찌할 수 없는 가난 때문에 돈의 유혹을 받아들여야 하는 죽은 소녀의 어머니에게로 다가간다.

영화에서 할머니의 마음이 열려 시가 태어나는 것은 아마도 자살한 여학생이 투신한 다리를 찾아갔을 때가 아닐까 한다. 할머니는 다리 위에 서서 소녀의 마음을 느끼려 한다. 그때 할머니의 모자가 다리 위에서 할머니를 대신하여 떨어진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할머니는 비를 맞으면서 자신이 간병하던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요구하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벌과 용서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어느 도시에서 실제로 있었다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 그것은 여러 남학생들이 한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그 때문에 여학생이 자살한 사건이다. 이창동 감독은 할머니의 손자를 이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라고 설정한다. 모랄리스트 이창동 감독을 대신하는 시인 할머니는 이제 이 사건의 진실에 부딪혀 간다.

이창동 감독은 이 사건에 관계하는 사회적 힘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들은 학교의 명성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이 사건을 취재하는 지방언론 기자들은 가해자의 아버지들이 전해주는 대가를 받아들여 자신의 임무를 포기한다. 가해자 학생들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의 행위를 성장기의 일시적 일탈로 치부하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은폐하려 한다. 이때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힘들을 무기로 한다.

가해자 편에서 움직이는 한국사회의 모습들은 전형적인 모습대로 그려내어 진다. 이에 못지않게 이창동 감독은 피해자의 어머니의 모습을 냉혹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 그는 가난하고 삶에 찌들었으며 결국 가해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처지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아무도 피해자인 여학생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 가운데, 유독 할머니만은 피해자인 여학생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며 모랄리스트의 마음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여학생이 성폭행 당했다는 학교 교실을 찾아가기도 하며, 여학생이 마침내 물에 투신한 다리 위에 올라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여학생의 어머니를 직접 만나보기도 한다.

이런 과정 끝에 할머니는 점차 여학생의 마음을 느끼게 되며, 이런 느낌을 통해서 할머니는 모랄리스트로서 현실에 적합한 도덕적 규범을 찾으려 한다. 이창동 감독은 현실의 다양한 측면들을 고려하여 결론를 내린다.

할머니는 학생의 어머니에게 보상금을 전달한다. 이를 위해 할머니는 자신이 간병하던 할아버지와 담판을 하기도 한다. 돈을 전달한 바로 그날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를 경찰에 자기 손으로 고발한다. 마지막 경찰에 끌려가기 전날, 할머니는 정성들여 손자의 발톱을 깎아 준다. 그리고 할머니는 한편의 시를 써서 꽃다발과 함께 시인학교의 선생에게 남기고 종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가운데 하나의 행동이 결론이 아니다. 이 모든 행동의 복합체가 바로 이창동 감독이 모랄리스트로서 나름대로 이런 문제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런 현실적 문제에 대한 모랄리스트로서 이창동 감독이 나름대로의 고투를 통해 발견한 도덕적 결정이다. 이창동 감독은 그가 제시한 도덕적 결정을 확고하게 믿고 이를 관객에게 강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랄리스트로서의 삶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다. 사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모랄리스트의 태도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창동 감독은 할머니의 시를 소개한다. 첫 연이 지나면서 시의 화자는 여학생 자신으로 바뀐다. 그것은 할머니와 여학생의 마음이 하나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창동, 아네스의 노래, 마지막 연)

이병창(동아대학교, 철학) /

 

행복한 사회 [철학적 인간극장]

하나.

오늘 이미 졸업하여 학교선생이 된 어떤 제자로부터 아주 귀중한 메일을 받았다. 여기엔 사연이 좀 담겨 있는데, 그 사정은 이렇다.

언제가 내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영화를 하나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그 영화를 80년 여름 그 지독한 절망 속에서 뒹굴던 일요일 낮의 TV 영화관에서 보았다. 그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그만 빠져들어서 보았다. 그동안 영화의 줄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영화 제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그해 8월을 잊어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목도 그해 8월과 함께 잊어버렸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우연히 ‘행복한 사회’라는 주제로 강의하다가 이 영화가 떠올라서 얘기했었다. 학생들에게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모른다고 고백했다. 대개 학생들은 내가 지어낸 얘기로 기억했을 것이다.

오늘 메일을 보내준 제자는 그때 내가 얘기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 우연히 책을 보다가 내가 얘기한 영화 줄거리와 똑같은 소설의 줄거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로널드 B. 토비아스 저)]를 읽는 도중, 59 쪽에 그 이야기의 핵심 에피소드와 비슷한 줄거리가 실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렇게 옮겨 적어 주었다.

“셜리 잭슨(Shirley Jackson, 1919-1965)의 짧은 이야기 [복권The Lottery]은 이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설명한다. 이야기의 제목부터 흥미롭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1년에 한 번씩 복권 잔치가 열리고 있다. 복권의 당첨 방식과 거기 연루된 사람들이 소개된다. 독자들은 마을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된 사람을 돌로 쳐 죽인다는 결말을 알게 되기까지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따라가며, 복권 당첨이 주제인 터라 전개과정에 큰 의심을 품지 않는다. 작가로서 잭슨은 교활하리만큼 재치가 있다. 독자로 하여금 꼭 봐야 할 곳을 보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쪽도 보게 한다. 소설을 읽어 나가다보면 복권 당첨자를 선택하는 방식에 흥미를 갖게 된다. 독자는 무방비 상태로 마지막 대목까지 읽게 되는데 비극적 결말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된다.”

이렇게 제자의 도움으로 제목을 찾게 되자 나는 너무나 기뻐 인터넷을 통해 이 제목의 소설이나 영화를 찾아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이 소설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는 않았다. 연세대 영어교육학과에서 어떤 학생이 석사학위논문을 이 소설을 가지고 쓴 게 국내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둘.

그런데 영어소설로는 교보문고에서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셜리 잭슨은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나온 자료를 통해 그녀의 단편 소설 [복권]이 영화로 3번이나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알았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지금 세계 어디서도 구할 수는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혹, 누가 이 영화를 가지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솔직히 내가 본 영화가 3번이나 만들어진 것 가운데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먼저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소설은 어느 일요일 아침 마을 사람들이 축제의 자리에 모여들어, 마침내 제비를 뽑은 사람을 죽이는 과정을 아주 냉정하게 서술한다. 마치 이런 일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 듯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저 마을 제사를 하나 지내는 듯이 별로 심각한 동요 없이 가볍고 상쾌하게 그려진다. 이렇게 그려졌기 때문에 이 사건은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아무런 가책 없이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내가 본 영화는 소설의 줄거리에 앞뒤가 좀 더 부연되어 있다.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죽자, 유골을 수습하여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기 어머니가 묻혀있는 마을로 찾아갔다. 그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이상하게도 싸늘한 적대감이 그를 둘러싼다. 다행히 여관집 주인의 딸이 이 남자에 단번에 반해서, 그 남자를 도와주기 시작한다. 남자는 마을 보안관을 찾아가 공동묘지에 묻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보안관은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날 밤에는 마을 청년들이 그를 위협한다.

그는 마을 공동묘지에 들러 자기 어머니의 무덤을 살펴보던 중 기이한 것을 발견한다. 그 공동묘지의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죽은 날자가 해만 달랐지 동일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의문을 품고 도움을 얻기 위해 외할머니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침묵하고, 외할아버지는 그를 적대시한다. 다행히 외할머니가 마음을 돌려 그는 어머니가 죽게 된 사정을 알게 된다.

그 마을에는 오래된 마을의 축제가 있었다. 그 축제날 마을에는 제비뽑기를 실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첨된 사람은 축제날 마을 광장에 묶어두고 돌로 쳐 죽인다. 이 신성한 의무에는 마을의 누구도 빠질 수 없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당첨된 사람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만일 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역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이 축제 덕분에 마을에는 더 이상 어떤 싸움도 없고, 서로 다정하며, 다 같이 행복하다.

이 남자의 아버지도 우연하게 그 마을에 들렀다가, 이 남자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해서 이 남자도 낳았는데, 아직 이 남자가 어릴 때, 그해 축제날 그만 그의 어머니가 당첨되고 말았던 것이다. 축제날 사랑하는 아내를 돌로 쳐 죽이는 고통만은 피하려던 아버지에게도 마을 사람들은 억지로 돌을 쥐여 준다. 아버지는 자기의 돌을 던지기 직전 마음을 바꾼다. 돌멩이를 내팽개친 그의 아버지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아내를 뒤로하고, 어린 남자를 안고서 마을로부터 도주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쫒지만 그는 천신만고 끝에 마을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먼 도시로 가서 죽기까지 비밀을 감추고 살았던 것이다.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는 흥분하지만, 방법은 없다. 그런 남자에게 하숙집 딸이 다가와서, 자기도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둘은 다음날 함께 마을로부터 도주하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사로잡혀 그는 갇히게 된다.
며칠 뒤 축제날이 다가온다. 그해 축제날도 제비뽑기가 시행되었다. 우선 몇몇 사람들이 선정되고, 그 중에 둘이 다시 선정되고, 그 둘 중에 최후로 하나가 가려진다.

그런데 그해 축제에는 하숙집 딸과 하숙집 어머니가 동시에 최후의 2인으로 선정되었다. 딸과 어머니는 사색이 된 채 마지막 추첨에 들어간다. 어머니가 먼저 패를 뽑았다. 그 어머니의 패는 사실은 떨어지는 패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의 패가 무언지를 알자마자, 그 패를 감추고 스스로 자기가 당첨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마을에서는 그녀의 말을 믿고 축제를 준비한다. 감옥에 갇힌 남자도, 하숙집 딸도 강제로 축제에 초대되어 돌이 쥐어진다. 그녀의 어머니가 광장에 묶여 서자,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남자도 딸도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그 둘은 손에 든 돌을 던져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토끼몰이 하듯이 그 둘을 쫒는다. 다행히도 그 둘은 손을 잡고서 무사히 마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셋.

그런데 이 오싹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허구이므로, 실제로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상당히 현실감을 가진다.

우선 ‘범죄의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보자. [복권]에서 마을 사람들은 바로 이런 공동의 범죄 때문에 더 이상 다투지도 않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가장 행복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런 ‘범죄를 통한 공동체’는 현실적으로 자주 발견된다. 가장 가까운 예로서 ‘폭탄주 돌리기’가 있다. 폭탄주를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다 같이 함께 정신을 잃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 같이 광란의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잊어버리기로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그 광란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폭탄주 돌리기를 통해 내부의 친밀함이 강화된다.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동의 징표를 지닌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런데 ‘폭탄주 돌리기’와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 ‘폭탄주 돌리기’가 외부를 향한 공동의 범죄이지만, [복권]의 경우는 내부에서 한 사람을 처단한다.

그렇다면 [복권]에 나오는 이야기를 희생양 제도와 비교해서 이해하면 어떨까?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포가 엄습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책임질 어떤 희생양을 찾는다. 그 희생양은 대체로 그 사회의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이방인이다. 사실은 그 공동체 자체 내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는데, 그 책임은 항상 이 이방인에게 돌려진다.

희생양인 이방인에 대한 공동의 적대감을 통해 내부적 결속이 지켜진다. 그렇기에 역사상 자주 희생양이 만들어졌다. 추첨이란 신의 선택의 과정이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장치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외부로 책임을 돌리는 점에서 [복권]과 희생양은 동일하지만, 무언가 차이가 있다. 희생양은 내부에서 공포가 엄습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그러나 [복권]의 경우는 그야말로 맑은 하늘에 즐거운 축제처럼 시작된다.

또는 이 이야기는 인간의 어떤 사악함이 관련되기에, 어릴 때 했던 ‘잠자리 시집보내기’와 같은 장난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끔찍한 장난이 그때는 아무런 자책감도 없이 행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장난은 항상 여러 아이들이 함께 모였을 때 벌어졌던 것 같다. 이런 장난으로 아이들이 얻을 이익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장난은 그야말로 악을 위한 악의 행위, 곧 사악한 행위였다. 이런 사악한 행위가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벌였다는 점에서 이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복권]의 이야기는 ‘잠자리 시집보내기’와 사악한 행위라는 점에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복권]의 경우 추첨이라는 과정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복권]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차이점을 지닌다. 어쩌면 이런 세 가지 즉 ‘폭탄주 돌리기’와 희생양, ‘잠자리 시집보내기’가 결합되어 일어난 사건이 아닐까?

이병창(동아대,철학) /

 

청소와 인문학

먹빛 실루엣 아래 칠흑으로 잠긴 산으로 들어가면 낮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 어느 생의 그릇으로 영겁을 쌓아온 시간의 벽이 사라지고 스스로 살아나 바람의 결로 유유할 때, 세상은 크게 열리고 나는 태고의 원시포자를 느낀다.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환함 속에서 숲도 길도 더없이 아름답고 아늑해진다. 절망이나 포기란 사실 게으름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곧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해도 산 입구에 드리워지는 무겁고 짙은 어둠의 커텐은 친절하지 않다.

사춘기에 마주친 가난이라는 어둠의 입구에서 돌린 발길은 지천명의 목전에서 기초 생활수급자가 되는 데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쌀이나 연탄 정도를 가끔 지원받으시던 동네 영세민 할머니는 단 하루도 쉴 날 없이 일하는 내 부모님보다도 더 불쌍해 보였는데, 그런 영세민이 된 것이다. 낯설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안으로 싸우다 돌아보면 나름대로 약간의 체념상태에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던 모범생, 부모님의 끔찍한 애정은 세상을 만만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오만함은 또 댓가를 치르게 했다.

2007년 8월, 몹시 지친 마음으로 자활기관의 문을 두드렸을 때 청소 팀이 있었다. 면담을 하던 팀장이 비위는 좋은지.. 등등을 물었을 때, 약간은 부어 있는 마음으로 상관없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어머니가 하는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겠냐고 하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싫다 마다 할 수 없는 처지이니 한 달만 하고 말거라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면서 돌아왔다. 일은 가끔 진이 빠지도록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일보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옛 말에 길을 가다보면 소도 보고 뭐도 본다던가.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날 때부터 씨가 있는 것이 아니니 누가 한들 대수며 사람이 하는 일, 못 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평소의 인식이라는 것이 문제다. 청소를 직업으로 가지게 되면서 한동안의 우울함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특히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이 시절의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연민의 상처는 깊을 것이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몸 생각 좀 하라고 말릴 정도로 열심히 일 하면서,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느냐를 따진다면 부끄러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운 이들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말할 수 없었고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변명해야 했다. 바닥의 먼지를 닦는 것이 아니라 전생이거나 현생에서 나도 모르게 쌓아 놓은 자잘한 업들을 쓸고 닦는 거라고… 엉뚱한 곳을 헤매며 태만하게 살아온 많은 시간들을 메워야 하지 않겠냐고… 남은 생의 지름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시간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긴 했지만 온갖 변명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우울한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는데 그런 중에 기관 홈페이지에서 자활 인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강의는 진행 중이었고 일 년을 참고 견딜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마음 속에 밝은 등대 하나가 켜지는 것이다. 일을 하는 내내도 강좌를 잊어버리지 않았고 혹시 놓칠세라 수시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곤 했다. 2008년 7월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이런 저런 핑계로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편이고, 혼자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유치한 그림을 그리고 수다 떨듯이 글을 쓴다. 인문학 수업으로 오랜만에 다시 써보는 글과 읽게 되는 시로 특별한 감회를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인문학 수업 이후에 책을 덜 읽게 되었고 글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행복했다. 수업을 받게 되면서, 그렇게 무겁던 생은 날개를 단 듯 가벼워졌다. 인문학 수업을 마치고, 문학 교수님의 소개로에 “자활(自活)인문학”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돌아보면, 배우는 것이 좋고 인문학이라 더 좋았지만, 밥 한 그릇과 맞바꾸어지는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들과 달리 밥과 바꿀 수 없는 시간들…그래서 행복했고 소중했다. 모든 순간순간들이 소중한 만큼 스스로 정성스러워졌다. 수업이 있는 날은 게으른 얼굴에 분도 좀 바르고 변변치 않은 것들 중에서나마 조금 더 깨끗한 옷을 골라서 입으려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타는 1호선 전철은 금정역을 출발하는 순간, 순간이동을 했다. 세상의 빛과 공기가 달라졌고, 현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길가 풍경들 위에선 축제를 알리는 무수한 마음의 깃발이 펄럭였고, 나는 늘 봉실봉실한 구름을 타고 다녔다. 행복했다. 좋아 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은 분진 가득한 현장을 벗어나서 찾아 들어간 향기롭고 신선한 천국의 숲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묻은 작업복을 벗고 깨끗하고 순한 옷을 입은 채, 새처럼 떠들고 꽃처럼 웃었다. 우리가 함께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신 모든 시간들은 순결한 행복으로 채워졌다. 항아리 위로 넘치는 물처럼 마음 속을 채우고 넘쳐 오른 행복감은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흘러 우리는 끝없이 서로 감사하면서 사랑한다고…이전엔 결코 쓰지 않던 말들을 하고 또 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비슷한 교육들을 받기도 할 것이지만, 어느 곳에서의 교육도 지금과 같은 의미는 두 번 다시 찾기 어려우리라. 스스로 아무런 가림막도 갖지 않았지만, 부모님 슬하에 있던 어린 시절처럼 안온한 시간들이었다. 다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숲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적셔, 종내 나도 한그루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던 느낌이다. 내 일상은 서늘하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함이나 피로를 알지 못했다. 딛는 발자국마다 에너지가 넘쳐 흘렀고, 마음 속에선 꽃이 피고 또 피었다…

어떤 표현을 쓴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마음 둘 데 없는 이들과 마음으로 만났고 우리의 외로움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교수님들을 만났다. 수업이 끝날 일을 생각하면 서운함은 매운 칼바람처럼 미리부터 가슴을 에이었고 불 꺼진 무대처럼 그 황량함을 어찌 견딜까 싶어지곤 했었다. 아쉬움 속에서 졸업을 하고 동문들끼리 한 번씩 만나 추억을 되새기며 마음을 이어가고 있을 때 심화과정이 개설되었다. 졸업 후, 확실히 우리는 더욱 돈독하고 따뜻해졌다. 많은 것들이 기능적 일회성 또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세상이지만, 학교에선 이런 저런 행사와 함께 졸업생들을 각별하게 챙겼다. 심부름 센터에서 잠시 빌린 친척처럼 어색하기만 하던 학교가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전략) 여전한 무기력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서 생각 한다 맑은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필요해… 쉬고 싶어… 그 물속 깊숙이 웅크리고 있으면 눈을 뜨지 않아도 돼 숨을 쉬지 않아도 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후략) …

인문학 수업을 듣기 직전에 지친 마음으로 썼던 짧은 글이다. 제목을 「양수」라고 붙였는데, 반전 같은 걸 꿈꾸고 싶지 않을 만큼의 피곤이 느껴지던 그 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입학식 날의 기대와 설레임 속에서, 쓸 때와는 전혀 달리 출발선의 푸르고 힘찬 느낌으로 이 글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도 인문학 수업은 그런 느낌과 함께 한다. 심화 과정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할까 고민하시는 교수님들의 마음과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한층 성숙해진 동료들을 느낀다. 정리해 보면 인문학 수업은 내 안에 있던 외로움이라는 두터운 스모그를 걷어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건 없이 마음 써 주는 분들이 있다는 커다란 믿음과 위안의 언덕을 가지게 하였다. 발등만 보면서 급하게 걷던 생활에서 고개 들어 이웃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깝고 진지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가난은 여전하지만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남춘자(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

너의 도시

비탈진 계단을 내려오며
오늘의 소망도
함께 길을 나섭니다.

수박 향기 같은
비온 뒤의 아침이
살짝 코 끝을 시큰하게 합니다.

하늘 한 번 볼 일 없이
살았던 날들이
언제부터 인지
먼 하늘을 바라 보게 합니다.

버스를 오르며
창 밖의 먼 하늘 끝에
어제처럼
간절한 소망 하나 걸어 놉니다.

*이 글은 시민 인문학 강좌 수강생이 쓴 것입니다

출근길

비탈진 계단을 내려오며
오늘의 소망도
함께 길을 나섭니다.

수박 향기 같은
비온 뒤의 아침이
살짝 코 끝을 시큰하게 합니다.

하늘 한 번 볼 일 없이
살았던 날들이
언제부터 인지
먼 하늘을 바라 보게 합니다.

버스를 오르며
창 밖의 먼 하늘 끝에
어제처럼
간절한 소망 하나 걸어 놉니다.

*이 글은 시민 인문학 강좌 수강생이 쓴 것입니다

나의 사치

어제 이사 일을 거들고 돈이 좀 생겼다. 구멍 난 신발을 신고 다닌 지 좀 된 터라 동네 시장을 찾았다. 북적거리는 틈을 돌아다니며 가죽신발과 티셔츠를 샀는데, 티셔츠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레이온, 실크, 스판덱스가 소재였다.

대중화장실에서 티셔츠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가방 맨 어깨 쪽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혹시나 가방끈 때문에 보풀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이렇게 어떤 것 때문에 신경 쓰인 때도 없었다. 나는 요즘 전화도 없고, 그냥 속옷과 잡다한 물건이 든 가방 하나가 지금 가진 전재산이랄까. 가방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많이 속상할 일도 없다. 걱정이라면 오늘 산 실크가 조금 들어간 티셔츠가 당분간 내 걱정거리가 될 것 같다. 없어서 불편한 것보다 있어서 신경 쓰이는 게 좋은 걸까 하는 우스운 생각에 잠시 글을 남긴다.
– 서울역 근처 희망무지개 어린이놀이터에서

*이 글은 시민 인문학 강좌 수강생이 쓴 것입니다.

윤준오(인정복지관 만나샘) /

여기 ‘어둠 속의 희망’이 있었네

교도소의 담장은 야트막했다. 오월의 햇살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정문을 지나 발걸음을 옮기자 교도소의 뜰에 핀 봄꽃들이 제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윽고 육중한 철문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 철문 안이 감옥이다. 절로 심호흡이 나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마음을 다잡으며, 오월 햇살이 내리쬐는 철문 안으로 발길을 천천히 옮겼다.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진행된 재소자 인문학 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활(自活) 인문학

하나.

2007년 8월부터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던 일로 많이 지쳐 있을 때였고 자활 사업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몸으로 하는 일이니, ‘마음은 좀 쉬자’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들어갔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2008년이 되었다. 봄이 되자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소식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해보았다.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교육이 예정되어 있음은 확실하다고 했다. 마음 조이며 기다리던 어느 날, 드디어 모집공고가 났고 참가 신청서를 냈다.

시민 인문학 강좌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희대학교 실천인문학센터에서 주관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강좌이다. 철학, 글쓰기, 예술사, 문학, 역사의 5과목이 12강으로 짜여 있다. 2학기로 나누어 매주 목요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두 과목 수업을 하고, 격주로 토요일에 예술사 수업과 현장체험학습이 있다.
둘.

6월 24일 오리엔테이션과 26일 입학식을 거쳐 우리는 경기광역 4기로 입학하였다. 지난 기수의 졸업생들과 기관에서 함께 축하해 주러 왔고, 몇 분의 교수님들 그리고 6개월간 함께 공부할 경기 남부 권역의 자활사업 참여자들 20여명이 자리를 하였다.

서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였다. 오고 싶어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권유로, 때로는 마지못해 왔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전 수료생에게 들은 글쓰기 숙제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문득 얼마 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전략) 여전한 무기력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서
생각한다
맑은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필요해…
쉬고 싶어…
그 물속 깊숙이 웅크리고 있으면
눈을 뜨지 않아도 돼
숨을 쉬지 않아도 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후략)

[양수]라는 제목을 붙였던 짧은 글이다.

시작 전부터 이번 교육에 대한 느낌은 매우 특별했다. 기대로 설레던 입학식 날, 문득 양수 속 태아의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충분히 즐기겠다는 각오를 인사말과 함께 이야기했다. 나는 수업은 물론 뒤풀이 자리까지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단거리 주자의 출발 선상 같은 내 진지함이 조금은 과해 보였는지, 교수님은 더러더러 놓치기도 하면서 여유있게 즐기라고 말씀하셨다.
셋.

수업의 문을 여는 7월 첫째 주 목요일 첫 시간은 철학수업이다. 현재를 거스르지 않고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은 나름대로 편했지만, 철학 수업은 그 편함을 건드린다. ‘그게 참된 편안함이냐고…’ 고요한 수면에 던져진 돌이 만든 파문처럼 마음이 복잡해졌다. ‘불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 뒷골목 좁은 길을 디디며 겨우 의탁하는 내 한 몸도 벅찬 일인데…’ 그러나 며칠 만에 고민을 접고 평상으로 돌아올 때쯤 다시 듣게 되는 철학 강의는 또 다시 마음을 긁는다. 외유내강의 강의는 자꾸만 외면하고 싶던 것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다. 철학 수업의 기본 전제는 각자 개개인의 삶 자체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 스스로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면서 평등하게 존귀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한다. 시대의 화두, 품격 있는 삶(well-being)은 품위 있는 죽음(well-dying)을 준비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각인시키면서…

진지하고 충만한 두 시간이 지나면 저녁식사 시간이다. 밥 먹는 시간은 언제나 떠들썩하고 즐거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문학과 글쓰기 수업이다. 교수님은 글쓰기를 일상화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제시하신다. 제출한 글은 본인의 동의를 얻어 함께 읽었다. 아픔이 느껴지는 학우들의 글을 보면서 저렇게 힘든 삶도 있음을, 내 아픔은 오히려 어리광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학우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람 만나는 일을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 외톨이 성격 탓이다.

글쓰기를 통해 보이는 상처들은 이전의 것들과 같지 않았다.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시간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없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가식 없는 마음의 손들이 돌아와 따뜻하게 맞잡았다. 글쓰기 외에도 이덕무, 길재를 비롯한 옛 선비들의 글을 읽었고, 손택수, 안도현 등의 서정적인 시를 읽었으며, 나카지마 아츠시와 강희맹의 단편들을 함께 읽고 즐거워했다.

토요일에 진행된 예술사 시간에, 우리는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보았고, 황소의 의미를 들었다. 독특한 발상의 현대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엿보기도 하였으며, 茶 매니아 교수님의 차 강의도 재미있게 들었다. 먹고 사는 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예술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여유가 되어 돌아왔다. 또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즐거움은 배가됐다.

10월 첫 주에 시작된 2학기는 문학과 역사 수업이다. 문학 수업 첫 시간엔 1학기를 마친 소감을 돌아가며 얘기하게 되었다. 각자의 소감들이 나왔고, 그때마다 교수님은 문학작품들 속에서 발췌한 비슷한 이야기들을 곁들여 위로하거나 공감을 표하신다. 그런 방식의 수업이 2학기 내내 이어졌는데, 수많은 시와 산문을 읽고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으로 문학을 이야기하는 문학의 숲이었다. 시를 읽다 보면 마음속에선 어느새 시의 불이 붙곤 했다. 마음속에서 이는 맹렬한 겨울 들불이었지만, 써놓고 보면 번번이 졸렬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문학에 이어지는 입담 좋은 교수님의 역사 수업은 단군조선의 건국을 시작으로 조선의 건국, 세종의 문화정치, 그리고 또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고 한탄하곤 하시던 근현대사 이야기들을 줄줄 풀어내시면 우리는 옛날 얘기를 듣듯이 재미나게 들었다. 재미에 빠져 있다 보면 역사와 시대에 대한 차가운 의식이 서늘하게 스쳐가곤 했다.

강의실 수업 이외에 우리는 간간히 현장학습을 했다. 처음 나간 곳은 [어둠속의 대화] 체험이었다. 우리 일상의 주변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에 빛을 배제한 것이다. 시각과 인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예술사 교수님의 친절한 해설을 곁들인 관람을 했다. 예술이란 푯말은 때로는 껄끄러웠고 때로는 향기로웠다.

늘 챙기고 배려해야 하는 주부입장에서 누군가로부터 챙김 받고 배려 받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아무래도 1박2일 코스로 다녀온 문학기행이다. 우리는 운길산의 유서 깊은 사찰 수종사를 거쳐 오래 전부터 소망하던 곳인 가평 아침 고요 수목원을 둘러보았다. 그 중 가장 인상에 남은 시간들은 한옥 체험장인 취옹예술관에서의 밤이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깔린 이불속에 발을 묻고 둘러 앉아 초청 시인의 특강과 함께 11월의 시들을 읽었고, 배깔고 엎드려 우리는 시를 지었다.

오는 동안 모두들 조금씩 들떠서, 하도 웃고 떠들어 대니 그 웃음소리들이 온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통에 글은 제대로 써지지 않았지만, 써지지 않는 대로도 좋은 것이었다. 그래도 글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1학기 초기 글쓰기 시간을 생각해 보면 큰 변화인 것이다. 각자 쓴 글에 대한 시인의 조언을 듣고 나서 우리는 자유롭게 먹고 마시기로 했다. 사무실에선 술과 음료, 안주와 간식들을 푸짐하고 살뜰하게 챙겨 왔지만, 그것들은 그 날 그 자리에서 엑스트라 역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와 대화들 때문이었다. 매 순간순간을 가만 두지 않던 에피소드들… 오고 가는 길 내내 어린 소년 소녀들이 되어 웃음 떠들썩하던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 후, 다시 한 번 역사 기행을 다녀온 후 우리는 곧 졸업식을 했다. 졸업을 앞두고 모두가 서운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지만, 마음을 합쳐 함께 졸업 작품으로 택한 어설픈 춤을 연습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공동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유대는 더욱 끈끈하게 다져졌다.
넷.

돌아보면, 밥 한 그릇과 맞바꾸어지는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들과는 달리, ‘밥과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이라서 행복했고 소중했다. 모든 순간순간에 스스로 정성스러워졌다. 수업이 있는 날은 게으른 얼굴에 분도 좀 바르고, 변변치 않은 것들 중에서나마 조금 더 깨끗한 옷을 골라서 입으려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타는 1호선 전철은 금정역을 출발하는 순간, 순간이동을 했다. 세상의 빛과 공기가 달라졌고, 현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길가 풍경들 위에선 축제를 알리는 무수한 마음의 깃발이 펄럭였고, 나는 늘 봉실봉실한 구름을 타고 다녔다.

행복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은 향기롭고 신선한 천국의 숲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 묻은 작업복을 벗고 깨끗하고 순한 옷을 입은 채, 새처럼 떠들고 꽃처럼 웃었다. 항아리 위로 넘치는 물처럼 마음속을 채우고 넘쳐 오른 행복감은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흘러, 우리는 끝없이 서로 ‘감사하면서 사랑한다고…’ 이전엔 결코 쓰지 않던 말들을 하고 또 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비슷한 교육들을 받기도 할 것이지만, 어느 곳에서의 교육에서도 지금과 같은 의미는 두 번 다시 찾기 어려우리라. 부모님 슬하에 있던 어린 시절처럼 안온한 시간들이었다. 다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숲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적셔, 종내 나도 한그루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던 느낌이다. 내 일상은 서늘하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함이나 피로를 알지 못했다. 딛는 발자국마다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마음속에선 꽃이 피고 또 피었다.

함께 수업 듣던 언니가 졸업식을 한다는 말에 누군가 그걸 배우면 어디에 취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더라고 했다. 우리는 웃었지만 생각해 보니 남은 것은 사람과 추억이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다들 얼마만큼씩은 외로운 구석도 없지 않지만, 선뜻 마음 열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일상이다. 인문학 수업으로 맺어진 우리는 있는 대로 마음을 열고, 서로 제 일처럼 걱정하고 좋아 한다. 때때로 문자로 계절이 오고 가는 일을 전하며 낭만을 일깨우기도 하고,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도 한다. 공부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는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난 몇 개월의 행복은 참으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첫 동문 모임을 가졌다. 한 달이 조금 덜된 시점이었지만, 우리는 쏟아질 듯 반가움들을 토해 내었고 계속 글을 써서 일 년에 한권씩 우리들의 문집을 만들자고 약속을 하였다.

어느 책 속에 있던,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행복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나 한겨울에 봄날의 햇볕을 당겨오는 것처럼 거창한 것들이 필요한 일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며, 긴 겨울 끝자락에 만나는 향기로운 후리지아 꽃처럼 내 앞에 펼쳐질 따뜻한 봄날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 2008년 인문학 수업은 정녕 행운의 열쇠였다. 내게 인문학은 삶의 자활(自活)이기에…

**이 글은 2009년 『녹색평론』 3-4월호에 실렸던 것을 발췌,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편집자)
남자연(경희대 시민인문학강좌 졸업생) /

실천인문학 ? 삶을 고민하고 가꾸는 인문학

삶을 고민하는 인문학.

인간은 누구나 풍족하게 살고 싶고, 편리하게 생활하고 싶어 한다. 풍족함과 편리함에 대한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욕망을 얼마만큼 합리적으로 조율하면서 충족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존재론적으로’ 욕망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잉여욕망, 즉 거품욕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말해야 한다.
‘사람은 진실로 무엇으로 살까? – 나는 진실로 무엇으로 살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참으로 오래된 물음들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정신없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진부한 이야기들이고, 어쩌면 사치스럽고 한가한 허영이고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물음들은 일생 동안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거나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괴롭힌다. 예외는 없다. 우리 ‘영혼의 물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부분 사회적 통념의 가치를 추구하며 그냥 관성적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통속적인 물질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관계에 들어서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영혼의 물음을 내팽개친다. 오히려 통속적인 사회적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더 노심초사하고 더 발버둥친다. 우리는 이 ‘영혼의 물음’에 정면으로 답해야 한다. 이 영혼의 물음은 양심의 소리이기도 하고, 철학적으로 ‘존재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 소리를 듣고 물음에 답하는 것을 우리는 ‘삶의 근원적 성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너도 나도 웰빙을 말한다. 어느덧 웰빙은 질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질 높은 상품의 대명사가 되었다. 웰빙 설렁탕까지 있으니 오죽하랴. 웰빙은 삶의 질을 오로지 상품의 가치로 환원하여, 한 달에 몇 번의 외식을 하며, 상품화된 문화 공연을 몇 차례 관람하며, 유기농 채소와 과일 혹은 등 푸른 생선을 먹느냐 그렇지 않느냐, 운동을 하느냐 런닝 머신을 어떻게 활용하는냐 등등을 이용해 객관적 지표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웰빙 상표가 아니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우리들 의식에 스며들었다.

웰빙인 삶의 질은 곧 행복일 텐테, 행복이 오로지 객관적 지표로 치환되어, 주관적 심리 상태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가치를 완전히 찬탈해 버렸다. 웰빙은 문자 그대로 ‘존재의 최적 상태’, 즉 인간 존재가 가장 인간 존재다움을 뜻한다. 그리고 존재다움은 존재(인간)가 자리하고 있는 세계(사회) 속에서 최적의 가치를 실현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다움은 존재와 세계, 인간과 사회의 합리적인 관계에서 빛과 향기를 발하는 인간 존재의 아름다운 ‘사회적 가치’인 것이다. 여기서 웰빙, ‘품격 있는 삶의 방식’을 말할 수 있다.

존재(있음)는 무(없음)에 대한 존재요, 삶은 죽음에 대한 삶이다. 웰빙(well-being)은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웰빙이다. 품격 있는 삶은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데에서 온다. 몇 백년 몇 천년의 삶은 우리 인간에게 없다. 그래서 반성과 성찰의 삶을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이제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말할 수 있다.

삶의 현장과 인문정신

인문학은 다음의 세 가지 역할(혹은 영역)의 연관성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첫째, 인문학의 순수 연구활동이다. 인문학 각 분야의 이론 연구와 작품 활동을 의미한다. 둘째, 인문학의 응용 연구활동이다. 문화(모든 문화 혹은 문화적 표현은 인간 삶의 가치와 그 고민을 다루기 때문), 민주주의의 실질화, 시민사회의 윤리 등에 관한 연구를 의미한다. 셋째, 인문학과 현실 사회의 합리적ㆍ실천적 결합에 관한 일이다. 인문학의 인문정신이 현실 사회에서 꽃피울 수 있는 실천적인 활동을 전면화해야 한다.

우리의 논의는 이 세 번째의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개개인의 삶이 지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장 값진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의 삶의 과정은 그 자체로 소중한 사상이며 이념이고,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우리 스스로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삶도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인 우리, 우리인 나’라는 공동체적 의식을 갖는다. 이것이 인문학의 핵심인 인문정신이다.

이런 인문정신에는 뚜렷이 자각된 주체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주거의 불안정, 생활의 유목성과 의존성, 심리적 불안, 삶의 박탈감과 체념 등등은 한마디로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공통된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각된 주체의식이 엄청나게 약화되어 있다.

인문정신을 매개로 한 만남은 교육자든 피교육자든 주체의식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이런 인문정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어우러지는 삶의 모둠판 속에서 빛과 향기를 발한다. 이 삶의 모둠판에는 좌초하고 분노하며 환멸을 느끼면서 욕망과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의 열정에 가득찬 행위들이 있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있다. 갈등과 대립이 있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에 다름이 있음이요, 생각과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삶의 가치를 똑같이 인정하고 평가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화와 소통과 만남을 통해 하나의 삶의 모둠판에서 어우러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삶의 현장은 개인들의 다양성의 가치가 인정되고 단절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며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만남의 광장이다. 인문학을 통한 만남도 이런 것이다.

삶을 나누고 가꾸는 인문학

주체의식의 자각은 개인적 깨침으로도 가능하고 종교적 귀의를 통해서도 가능하며,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 혹은 옹골찬 노력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인문정신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인류의 다양한 역사적 축적물이 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가치 있는 세상살이의 내용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 학적 체계의 형식을 인문학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인문정신은 세상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한,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정신은 자각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다시 회복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인문학 교육과정은 함께 진지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이런 인문정신을 서로 일깨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각된 주체의식도 영롱한 삶의 사상도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거의 폭력적 수준에 가까운 경제적 물질적 욕망과 이해관계 속에서 일관되게 정신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기란 예사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통상 말하는 소외계층의 사람들은 자의든 아니든 사회 시스템에서의 일탈 혹은 주변화로 인해 체념에 가까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주체의식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보통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통념의 가치에 내몰리면서 모르는 사이에 주체의식을 상실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통념의 가치에 따르게 되면 돈과 지위만을 추구하고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면서 쾌락을 즐기는 삶을 살게 되고, 그래서 통념의 가치를 추구하고 획득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면 여지없이 명분을 내세워 저항한다.

여기에는 정신적 가치가 자리할 곳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인문정신이 오염되고 말살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가치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인문정신의 상실은 자연스레 사회적 윤리의식의 부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질적 가치와 이기주의적 의식이 지배하는 사회는 교육의 측면에서나 가치의 측면에서나 다양하고 창조적인 개인의 능력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사회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다. 국가 윤리나 국민 윤리가 아닌 시민사회의 윤리가 부재하고 실종된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강하게 지켜 왔던 인문정신의 와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의 교육과정은 유행도 아니요, 특정 계층에 국한된 것도 아니요, 특별한 사건도 아니다. 인문학의 인문정신은 물, 공기와 동일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정신적 사회적 가치다. 물과 공기가 오염되면 정수기와 여과기를 거치듯이, 인문정신이 오염되면 인문학적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인문학적 교육과정이란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교육행위나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 구성원들 상호간에 교육적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오염된 물과 공기를 들이켜고 있으면서 오염된 사실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오염되어 있지 않다고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인문학 교육을 통한 인문정신 공유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때 그 교육과정은 제도교육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을 함께 다듬고 가꾸어가는 과정임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기동(경희대 철학과) / admin@ad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