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와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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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빛 실루엣 아래 칠흑으로 잠긴 산으로 들어가면 낮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 어느 생의 그릇으로 영겁을 쌓아온 시간의 벽이 사라지고 스스로 살아나 바람의 결로 유유할 때, 세상은 크게 열리고 나는 태고의 원시포자를 느낀다.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환함 속에서 숲도 길도 더없이 아름답고 아늑해진다. 절망이나 포기란 사실 게으름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곧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해도 산 입구에 드리워지는 무겁고 짙은 어둠의 커텐은 친절하지 않다.

사춘기에 마주친 가난이라는 어둠의 입구에서 돌린 발길은 지천명의 목전에서 기초 생활수급자가 되는 데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쌀이나 연탄 정도를 가끔 지원받으시던 동네 영세민 할머니는 단 하루도 쉴 날 없이 일하는 내 부모님보다도 더 불쌍해 보였는데, 그런 영세민이 된 것이다. 낯설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안으로 싸우다 돌아보면 나름대로 약간의 체념상태에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던 모범생, 부모님의 끔찍한 애정은 세상을 만만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오만함은 또 댓가를 치르게 했다.

2007년 8월, 몹시 지친 마음으로 자활기관의 문을 두드렸을 때 청소 팀이 있었다. 면담을 하던 팀장이 비위는 좋은지.. 등등을 물었을 때, 약간은 부어 있는 마음으로 상관없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어머니가 하는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겠냐고 하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싫다 마다 할 수 없는 처지이니 한 달만 하고 말거라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면서 돌아왔다. 일은 가끔 진이 빠지도록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일보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옛 말에 길을 가다보면 소도 보고 뭐도 본다던가.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날 때부터 씨가 있는 것이 아니니 누가 한들 대수며 사람이 하는 일, 못 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평소의 인식이라는 것이 문제다. 청소를 직업으로 가지게 되면서 한동안의 우울함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특히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이 시절의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연민의 상처는 깊을 것이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몸 생각 좀 하라고 말릴 정도로 열심히 일 하면서,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느냐를 따진다면 부끄러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운 이들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말할 수 없었고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변명해야 했다. 바닥의 먼지를 닦는 것이 아니라 전생이거나 현생에서 나도 모르게 쌓아 놓은 자잘한 업들을 쓸고 닦는 거라고… 엉뚱한 곳을 헤매며 태만하게 살아온 많은 시간들을 메워야 하지 않겠냐고… 남은 생의 지름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시간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긴 했지만 온갖 변명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우울한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는데 그런 중에 기관 홈페이지에서 자활 인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강의는 진행 중이었고 일 년을 참고 견딜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마음 속에 밝은 등대 하나가 켜지는 것이다. 일을 하는 내내도 강좌를 잊어버리지 않았고 혹시 놓칠세라 수시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곤 했다. 2008년 7월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이런 저런 핑계로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편이고, 혼자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유치한 그림을 그리고 수다 떨듯이 글을 쓴다. 인문학 수업으로 오랜만에 다시 써보는 글과 읽게 되는 시로 특별한 감회를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인문학 수업 이후에 책을 덜 읽게 되었고 글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행복했다. 수업을 받게 되면서, 그렇게 무겁던 생은 날개를 단 듯 가벼워졌다. 인문학 수업을 마치고, 문학 교수님의 소개로에 “자활(自活)인문학”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돌아보면, 배우는 것이 좋고 인문학이라 더 좋았지만, 밥 한 그릇과 맞바꾸어지는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들과 달리 밥과 바꿀 수 없는 시간들…그래서 행복했고 소중했다. 모든 순간순간들이 소중한 만큼 스스로 정성스러워졌다. 수업이 있는 날은 게으른 얼굴에 분도 좀 바르고 변변치 않은 것들 중에서나마 조금 더 깨끗한 옷을 골라서 입으려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타는 1호선 전철은 금정역을 출발하는 순간, 순간이동을 했다. 세상의 빛과 공기가 달라졌고, 현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길가 풍경들 위에선 축제를 알리는 무수한 마음의 깃발이 펄럭였고, 나는 늘 봉실봉실한 구름을 타고 다녔다. 행복했다. 좋아 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은 분진 가득한 현장을 벗어나서 찾아 들어간 향기롭고 신선한 천국의 숲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묻은 작업복을 벗고 깨끗하고 순한 옷을 입은 채, 새처럼 떠들고 꽃처럼 웃었다. 우리가 함께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신 모든 시간들은 순결한 행복으로 채워졌다. 항아리 위로 넘치는 물처럼 마음 속을 채우고 넘쳐 오른 행복감은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흘러 우리는 끝없이 서로 감사하면서 사랑한다고…이전엔 결코 쓰지 않던 말들을 하고 또 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비슷한 교육들을 받기도 할 것이지만, 어느 곳에서의 교육도 지금과 같은 의미는 두 번 다시 찾기 어려우리라. 스스로 아무런 가림막도 갖지 않았지만, 부모님 슬하에 있던 어린 시절처럼 안온한 시간들이었다. 다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숲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적셔, 종내 나도 한그루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던 느낌이다. 내 일상은 서늘하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함이나 피로를 알지 못했다. 딛는 발자국마다 에너지가 넘쳐 흘렀고, 마음 속에선 꽃이 피고 또 피었다…

어떤 표현을 쓴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마음 둘 데 없는 이들과 마음으로 만났고 우리의 외로움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교수님들을 만났다. 수업이 끝날 일을 생각하면 서운함은 매운 칼바람처럼 미리부터 가슴을 에이었고 불 꺼진 무대처럼 그 황량함을 어찌 견딜까 싶어지곤 했었다. 아쉬움 속에서 졸업을 하고 동문들끼리 한 번씩 만나 추억을 되새기며 마음을 이어가고 있을 때 심화과정이 개설되었다. 졸업 후, 확실히 우리는 더욱 돈독하고 따뜻해졌다. 많은 것들이 기능적 일회성 또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세상이지만, 학교에선 이런 저런 행사와 함께 졸업생들을 각별하게 챙겼다. 심부름 센터에서 잠시 빌린 친척처럼 어색하기만 하던 학교가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전략) 여전한 무기력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서 생각 한다 맑은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필요해… 쉬고 싶어… 그 물속 깊숙이 웅크리고 있으면 눈을 뜨지 않아도 돼 숨을 쉬지 않아도 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후략) …

인문학 수업을 듣기 직전에 지친 마음으로 썼던 짧은 글이다. 제목을 「양수」라고 붙였는데, 반전 같은 걸 꿈꾸고 싶지 않을 만큼의 피곤이 느껴지던 그 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입학식 날의 기대와 설레임 속에서, 쓸 때와는 전혀 달리 출발선의 푸르고 힘찬 느낌으로 이 글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도 인문학 수업은 그런 느낌과 함께 한다. 심화 과정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할까 고민하시는 교수님들의 마음과 이전보다 훨씬 여유 있고 한층 성숙해진 동료들을 느낀다. 정리해 보면 인문학 수업은 내 안에 있던 외로움이라는 두터운 스모그를 걷어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건 없이 마음 써 주는 분들이 있다는 커다란 믿음과 위안의 언덕을 가지게 하였다. 발등만 보면서 급하게 걷던 생활에서 고개 들어 이웃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깝고 진지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가난은 여전하지만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남춘자(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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