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등급이 있다:『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 나태영/[보고 듣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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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영(한철연 회원, 교육강좌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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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과 처절한 죽음스콧 니어링은 중년 나이까지 교수로서 열정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펼친 사람이다. 늙어서는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서 자연 속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간 사람이다. 100세까지 모래 살다가 스스로 밥 굶고 죽은 사람이다.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한없이 살다간 사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한을 안고 자살하신 분들이 구천을 헤매신다. 한국이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서 자살률이 2위와 큰 차이나는 1위이다. 전 세계에서는 1, 2위와 비슷한 3위이다.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31.4명이다. 2007년에 한겨레신문에서 자살방지위원회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나는 꼴이라고 말이다. 60대 자살률은 그 두 배이다. 이 분들의 죽음은 스콧 니어링의 죽음과 너무나 대조된다. 이 분들의 죽음을 기억해 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분들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 사회 구성원을 챙겨주지 못한 병든 사회가 죽인 살인이다. 이분들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할 때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생명줄이다.국민연금이 단단했다면 우리나라 60대 자살률이 참혹한 수준으로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연금 혜택을 많이 받아야할 서민들이 국민연금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서민들이 오히려 국민연금에 강하게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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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여러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높은 소득 재분배의 효과를 지닌 사회복지의 기둥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국민연금에 가장 많이 저항하는 저소득,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국민연금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게다.’(8, 9쪽)
국민연금은 생명체이다.국민연금 정책은 완벽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다. 큰 틀은 정해졌지만 운영방식은 5년에 한 번씩 바꿀 수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국민연금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국민연금이 이룰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60대 자살률 수치도 달라질 것이다.
사보험 연금은 1천원 내고 850원 받는다. 국민연금은 1천원 내고 2천원에서 2천 5백원 사이 받는다. 우리나라가 스웨덴 수준 되면 2천 5백원 받을 것이고,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사회복지정책을 확고하게 펼치지 못하면 2천원 받을 것이다. 아니 2천원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대부분 납부한 보험료보다 2배 이상의 연금액을 수령한다.’(76쪽)‘심각한 일은 대다수 국민이 국민연금과 사보험 중 사보험이 가입자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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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사보험보다 유리한 점은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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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국민연금의 연금수령액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실질가치로 지급된다. 이는 사보험의 연금액 기준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계속 국민연금에 가입한다면, 62세가 되는 2027년(서평자 주: 2033년부터 연금 개시자는 65세부터)부터 매월 43만 원을 받을 예정이다.’ ‘국민연금에서 밝히는 미래 연금액 43만 원은 사보험의 137만 원과 동일한 금액이다.’(60,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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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서 덧붙일 내용이 있다. 이 책을 쓴 오건호는 62세부터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오건호보다 몇 살 더 어린 세대는 2033년부터 연금 개시 나이가 65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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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지속가능한가?
‘가장 뜨거운 쟁점은 재정추계 기간이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설정한 재정추계 기간 70년이 지나치게 길다고 비판했다.’ ‘외국의 재정추계 기간은 60~75년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연금의 역사가 짧고 연금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이 급속히 변하는 곳에서는 가능한 한 기간을 짧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주장이다. 민주노총은 신규 가입자의 가입 연령(24~27세)과 평균수명(84세)을 고려할 때 60년이면 재정추계 기간으로 충분하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10년이라는 차이가 왜 이렇게 중요한가?’‘만약 재정추계를 60년으로 설정한다면,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한 필요보험료율은 정부안에 비해 3.1%P 낮아진다. 즉 정부가 급여율 60%를 유지하기 위해 제시한 필요보험료율 19.85%가 16.75%로 줄어들고, 급여율을 50%(서평자 주: 2008년 50프로에서 매년 0.5% 인하하여 2028년 급여율 40%로 낮추기로 확정)로 인하할 경우 필요보험료율은 15.9%에서 12.8%로 더욱 완화된다.’(100, 101쪽)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민주노총 주장대로 재정추계를 70년이 아니라 60년으로 설정한다면 국민연금 재정이 바닥나는 예상 시점이 더 늦춰질 것이다. 가입자가 내야할 보험료율도 낮아질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의해서 느끼는 일반인들 두려움도 많이 누그러뜨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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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가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출산율은 너무 낮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재정을 단단하게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팍팍한 사회에서 그 누가 아이를 많이 낳고 싶겠는가. 이 사회에서 복지정책이 잘 펼쳐지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다. 국민연금이 든든하게 이 사회 구성원 노후를 지켜준다면 또한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높이면 국민연금 재정은 더 든든해질 것이다. 보험료율 9프로를 선진국처럼 18프로로 높여갈 필요가 있다. 천천히 높여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선 가입자 당사자가 싫어할 수 있다. 직장가입자는 국민연금 보험료 절반을 기업주가 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크게 저항할 것이다. 기업주들은 노동자 노후가 편해져야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국민연금 수익비가 높아서 국민연금 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사회적으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우선 4대강 사업처럼 해만 끼치는 행정에 많은 예산을 쓰는 일을 없애야 할 것이다. 남북화해를 이루어 국방비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납세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루어진 부자감세를 원래 수준으로 돌려놔야 한다. 더하여 부자증세를 이뤄내야 한다. 그 다음 사회 전체 구성원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부자증세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다른 구성원들도 세금 더 내는 것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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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과 기초 노령연금
2007년에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프로로 낮췄다. 국민연금 보험금을 낮췄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기초노령 연금을 만들었다. 65세 이상 노인 70프로가 기초노령 연금으로 월 9만 4천 6백원을 받는다. 박근혜가 대통령 공약으로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이 기초노령 연금으로 20만원 받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는 대통령 당선 된 후에 국민연금 기금 일부의 돈으로 모자라는 기초노령연금 재정을 메우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바른 길이 아니다. 2011년 국민연금 1인당 수급액이 월 26만 원이다. 공무원연금의 12% 수준이고, 사학연금의 9% 수준이다. 그걸 헐어서 기초 노령연금 재원으로 쓴다? 너무 황당하다. 2011년 공무원연금 1인당 수급액은 월 218만 원이다. 거액의 퇴직수당을 제외한 수급액이 이 정도이다. 2009년 군인연금 1인당 수급액은 월 235만 원이다. 2011년 사립학교교직원연금 1인당 수급액은 월 298만원이다. 민주당은 특수직연금 받는 사람도 기초노령연금 20만원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홍헌호는 민주당 주장을 비판한다. 나도 홍헌호 주장에 동의한다. 특수직연금 대상자는 국민연금 대상자보다 높은 액수의 연금을 받는다. 굳이 그 분들이 기초노령연금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은 모자라는 재정을 국민세금으로 메운다. 국민연금은 이 세 연금보다 관련 당사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우선 공평성 차원에서 옳지 않다. 아직 고령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당장은 국민연금에 쌓인 돈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몇 십 년 뒤에 국민연금 받을 대상자가 압도적으로 늘어날 것을 생각하면 국민연금 기금에서 돈을 빼 내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 아랫돌 빼내서 윗돌 막으려 하면 그 집은 반드시 무너진다. 장기적으로는 적자로 돌아설 수도 있는 국민연금에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때가 닥친다. 이명박 정부 때 부자감세 했던 것을 원래 위치로 되돌려서 기초노령연금 재정을 메워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낮춰서 기초노령 연금을 만든 것을 생각하면 국민연금 기금 중 일부를 기초노령연금으로 쓴다는 말은 결코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이 책이 지닌 약점과 강점이 책은 2006년에 나온 책이다. 국민연금 운영방식은 5년에 한 번씩 바뀐다. 2013년 에도 국민연금 운영방식이 바뀔 것이다. 그럼 이 책이 나온 뒤에 두 번 운영방식이 바뀐다. 이 책이 바뀐 운영방식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이 지닌 한계이다. 가장 큰 한계는 이 책에서 오건호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을 모두 합칠 것을 과감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말하기 어려운 점은 있다.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오건호가 이 책 고쳐서 다시 내게 된다면 국민연금하나로 운동을 다뤄주길 기도한다. 오건호가 건강보험하나로 운동 펼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지닌 강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의 큰 틀을 이 책은 알려주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왜 연대임금인 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왜 서민들이 국민연금을 들어야 하는 지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2004년에 일어난 국민연금 반대 운동에 대해서 글쓴이 오건호는 반대만 하지 않는다. 일부 내용은 옳다고 인정한다. 물론 틀린 내용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말한다. 정부가 잘못한 내용도 차분하게 짚어낸다.이 책은 얇다. 값도 싸다. 5천 9백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한 권씩 사 읽기를 권한다. 바뀐 내용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아직 국민연금 가입하지 않고서 사보험 연금에 가입하려는 사람은 우선 이 책을 꼭 사 읽기 바란다. 아직 국민연금 가입하지 않은 서민은 반드시 이 책 사 읽기 바란다. 이 책이 널리 읽히면 60대 자살률이 많이 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시는 분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책값은 단 돈 5천 9백원이다.
법륜, 침묵의 법을 부활시키지 말라[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8 Comments/in old & goodys, 문화 & 생각보기,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by Ji Yeong YunKim법륜, 침묵의 법을 부활시키지 말라[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윤지영(명지대 강사)
법륜의 말은 구토를 일으킨다. 자신의 우울증의 근간이 가족 내 성폭력에서 기인하며 그 안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뒤엉켜 있음을 어렵게 토로한 이에게 법륜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법륜의 손쉬운 답에 대한 비판에 앞서, 먼저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한 짧은 글귀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시작해야 한다.
내담자의 글귀는 근친상간 성폭력의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기반이며 심리적, 물질적 쉼터이자 안전망이라 여기던 가정이 한순간에 위협적 공간으로 바뀌었을 때, 심리적 물리적 약자인 아이는 이 상황을 감내하거나, 아니면 폭로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러한 감당하기 힘든 진실 앞에서 아이의 발언은 헛소리나 망상, 쓸데없는 이야기로 치부되어 간과되어진다. 왜냐하면 여태껏 우리는 가족에 대한 신화를 통해 행복의 패러다임을 정초해 왔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단위가 폐쇄적 불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란 공적 영역과 분리되어야할 내밀한 사적 영역이자 혈연으로 맺어진 비영리적 자연적, 순리적 관계로 이상화됨으로써, 가족 구조 내의 위계성과 폭력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함구해 버리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친상간 성폭력에 대해 폭로하는 이는 영구한 단위여야 할 가족을 해체해 버리는 내부적 위협 요소로 인식되어진다. 그러하기에 가족 구조 내에 산재한 불편한 진실을 건드리는 이의 발화 위상은 내동댕이쳐져 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내담자는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발화할 기회조차 박탈되어 침묵 속에 방치되어야 했다. 아버지의 가해와 어머니의 방관 속에서 내담자는 행복과 위로의 원천으로 이상화된 가족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현실적 가족의 피폐함의 간극 안에서 혼동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긴 침묵과 자기 혐오로 점철된 시간의 강을 건너 어렵게 말하기 시작한 내담자는 다시금 가족들이 그녀에게 강요했던 침묵의 법이 법륜에 의해 부활되었음을 볼 것이다.
침묵의 법에 의해 봉인되었던 뒤엉킨 고통과 몸의 기억들을 망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법륜의 요지다. 마약중독의 예로 시작되는 그의 글은 마약 중독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읽어내는 단순함을 보인다. 납치와 강제적 마약 투여란 폭력적 실태에 노출된 개인이 어떻게 그 엄청난 트라우마를 감당하며 생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심층적 분석없이 마약중독이라 결과물만을 보고 이를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 진단하는 것은 스스로가 제시한 콘텍스트에 대한 이해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왜 상습적 마약 복용을 통해 그가 도피하고자 하는 고통은 무엇이며 그 고통은 단순히 생리학적 뇌의 일부분의 중독 현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심리적 신체적 상흔을 스스로가 자해하는 방식은 아닌지 등에 대한 질문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대로 된 트라우마의 예에 대한 이해도도 없이 법륜은 마약 중독에서 근친상간 성폭행의 문제로 이야기를 비약해 버린다.
고통의 원인을 찾기 보다, 그 고통을 키워낸 자신을 다스리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란 해법은 모든 폭력 양상을 개인의 마인드 컨트롤의 문제로 축소해 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성폭행은 하나의 망상일뿐이며 피해자 자신의 정신수양 문제로 극복가능한단 법륜의 말은 억압과 차별 메커니즘을 정당화하는 보수 담론이다.세상은 아무래도 안바뀌니 당한 너가 입다물고 없었던 일로 쳐라는 논리는 고통의 개인화를 통해 구조적 폭력성을 은폐한다. 즉 억압의 부조리성을 폭로하는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보다,부조리에 분노하는 이를 망상가로 만들어 침묵케 하는 것이 여태껏 폭압적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방식아니었는가? 더없이 기득권 유지적 발언을 수양으로 포장하지말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은 고통의 원인에 대한 직시,그 감당하기 힘들고 불편한 진실과의 대면이다. 어디서 고통이 기인한 지도 모른 채, 어떻게 고통을 넘어설 수 있다고 여기는가. 그것이야말로 고통을 더욱 더 비대하게 키우는 도피의 방식일 뿐이다.
아버지의 사죄와 반성, 어머니의 방조에 대한 설명을 내담자는 필요로 한다. 물론 이러한 정면충돌의 방식에서 내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개인적 가족사의 특이성에 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폭력 양상이 구조적인 가족의 위계질서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근친상간 성폭력이 빈번히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은폐되어져 버리고 마는가. 왜 어머니는 방관자가 될 수 밖에 없었나, 이는 경제적 의존성과 생존 기반의 물적 토대를 남편이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는가. 가족은 왜 해체되어선 안되는가. 피해자와 방관자, 가해자란 뒤틀린 관계성이 가족이란 이름 아래 유지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 바로 내담자가 침묵을 깨고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아닌가.
다시 말해 내담자가 겪은 이 트라우마가 미친 몇몇 개인의 가족사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신비화가 강화될 수록 가족 내의 부조리와 폭력 현상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륜은 고통의 기억과 몸을 속세의 헛된 망상으로 치부하는 초월적 태도로써 내담자가 수십년간 고투해 오던 실존적 고통과 몸부림을 헛된 몸에 새겨진 망상더미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를 더욱 키우게 할 수 있는 상담 방식이다.
나아가 권력을 지닌 이-아버지가 어떠한 일을 저질러도 하위주체인 자식은 그저 감사하란 말은 권력 구조의 폭력양상을 재생산하게할뿐이다.구조에 내재한 부조리 자체를 허상으로 만듦으로써 세상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고통어린 비명들을 비가시화하는것은 종교적 해탈이 아니라 폭력적 수탈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구조적 폭력 구도를 건드리기 보다, 개인적 차원의 마인드 컨트롤로 구원을 찾으라는 말은, 아직도 이 사회가 가족 신화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가족은 신비롭고 내밀한 사적 영역으로 공적 영역의 분리를 통해 신성화되어야 하고 침묵되어야 할 성전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거하고 일상의 미시 정치학이 발휘되고 협상되고 갈등이 발생하는 공간이 바로 가정이다. 이 가정 내의 폭력이 사회적 폭력의 일부이며 가족이란 사적 단위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족이 지옥이 되었을 때 대안적 공동체가 폭력 구도에 노출된 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비명과 고함에 귀기울일 지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법륜의 말은 고통의 초월이란 종교적 맥락에서 읽혀야 하며,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는 다른 결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묻겠다. 그 초월이란 위치의 강요가 과연 내담자와 같이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또한번의 침묵의 법의 시행이며 그들을 자신 안으로 유폐시키는 감금 방식이라 생각하진 않는가.
이재원 단편소설-오래된 빈 무덤[철학을 사랑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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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채 차도와 인도에 늘어서 있던 전투경찰들이 물러가자, 팽팽했던 긴장이 사라졌다. 눈에 불을 켠 채 경찰과 대치하던 유가족들과 젊은 사람들이 빈소 겸 숙소로 사용하는 건물, 엉성한 포장을 들추고 들어갔다. 밤을 지새운 탓에 눈을 붙이려는 것이다.
함께 온 백발의 이 선생이 서 교수, 김 시인과 둘러서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플라톤의 농담을 번안하며, 속으로 웃었다. ‘백발만큼이나 현명하지!’
핸드마이크를 든 사람이 추모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 백발의 신부가 강론을 시작한 미사 텐트로 가서, 비닐 천을 깐 바닥에 앉았다.
“안식 후 첫 날 사람들이 제사지낸 스승의 묘를 찾았다. 스승은 억울하게 죽었다. 스승에게 애정을 가진 이들은 무덤이 멀리 있는데도 벌써 눈이 붉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되 무덤은 사람이 들어갈 만 한 동굴을 만들고 문을 대신해 큰 바위로 빗장을 지르는 양식이었다.
무덤의 문이 열려있었다. 한두 사람이 옮길 만 한 돌이 아니었다. 스승의 시신은 거기 없었다. 기어이 비자연적인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에게 뿌리박힌 믿음이 있다. 언제부터 생긴 믿음인지 모른다. 비자연적인 현상은 비자연적인 현상을 부른다. 억울하게 죽은 자에게는 비자연적인 현상이 따른다. 사람들이 믿는 논리적 귀결은 빈 무덤이다.”
신부는 한참 뜸을 들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2009년 1월 20일 아침, 서울 한복판에서 건물 옥상 위 망루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있는 참혹한 현장을 중계하던 인터넷 방송 앵커의 목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남일당 앞, 백열등 몇 개를 켠 무대를 차린 문화패가 공연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백발이 많았다. 문화패가 공연을 시작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사회자가 이교수의 손을 잡아 무대 앞으로 이끌었다. 사회자는 무엇인가 보는 눈이 있었다. 노래패의 연주가 흘러나오자, 미리 맞춘 듯 왈츠가 이어졌다. 백발이 성성한 여교수의 동작이 경쾌함에 놀랐다. 왈츠의 음악은 박수로 화답하는 관중들의 소음을 뚫고 마치 한적한 산속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었다. 그 때도 이런 느낌이었나? 충신 되기도 거부하고 가족을 위해 산천을 떠돌던 한 인간이 한적한 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도 멈춰버린듯 했던 그 곳, 최 군의 무덤 봉분을 만드는 뒤켠에 앉아있었던 1985년 겨울, 월계리(月桂理)로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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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쪽방에서 홍제동 유진상가 앞 까지는 족히 40여분 거리였다. 오늘 하루 일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십 명,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영하의 날씨도 일하려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사람들을 빼곡히 태운 봉고차 한 대가 유진상가 앞에 섰다. 나는 조수 대에 탄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최 군이다’. 그 역시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차에서 내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혀?”
악수하며 내가 말했다.
“목수.”
“타.”
누군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연장가방을 든 채 비집고 차에 올랐다. 최 군이 말했다.
“우리 같은 늠이야 이런데서 밖에 만날 디가 읇다야만, 대학생이 되었다며 웬일이냐?”
나는 대답대신 되물었다.
“반장이야?”
옆 사람이 말했다.
“군기반장이요, 군기반장. 말 잘 들으쇼.”
겨울 해는 벌써 사라졌다. 어둑하니 땅거미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 날 일 끝난 후, 평창동 택지개발 축대 거푸집작업 현장 함바에 마주 앉았다. 막걸리 잔을 앞에 둔 채, 자기자랑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의 말은 처연한 것인지 자조적인 것인지, 짐작할 수 없도록 이중적이었다.
“별스럽지 않은 여자지만 함께 끼구 자는 것이 삶의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여자가 가족 없이 혼자 큰 티 안내구 아픈 노인네 보살핀다.”
“노인네가 아파? 어버지? 어머니? 누가 편찮으신데?”
“아버지, 시굴서는 술 한 잔도 안하던 양반이, 금호동 올라와서는 허구헌날 마시더니, 저 새파란 나이에 풍이다.”
고향에서는 제법 탁탁한 살림을 일구던 그의 부친은 제법 넓은 땅을 씨 한 톨 안 남기고 모두 팔아 서울로 이주했다. 큰 아들을 감옥에서 빼 내기 위해서라는 둥, 이주를 둘러 싼 소문이 무성했다. 최 군의 말에 의하면 친척에게 뜯기고 고향 사람에게 사기 당한 아버지는 시골 땅 판 돈으로 금호동에 간신히 가게 방 겸 방 하나 딸린 판자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의 형은 중앙 체육관 페터급 챔프였다. 그도 덩달아 중앙체육관에 다녔다. 그가 가장 즐겁게 이야기하는 대목이라서 알 수 있다. 그 때가 그에게는 호시절이었다.
낮에 그가 반장에게 말했다.
“내 고향 친구여. 대학생이여, 대학생. 계속 일 시켜줘.”
우리보다 한창 연배인 반장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팔자가 풀렸다. 반장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네모도 깔아’, 하면 최 군이 와서 일 요령을 알려주었다. 다시 반장이 와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판네루 대’, 하면 다시 최 군이 와서 일 요령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 말을 달았다.
“여기서 일하는 애덜 다 신당동 패거리여. 나는 목수루 왔지만, 반장은 신당동에서는 내 아우 뻘이여. 아무 걱정말구 시키는대루 혀.”
십 수 살이나 나이 많은 동생을 두고 있는 그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주먹잽이였다. 반장 말에 토를 다는 인간은 그로부터 즉시 응징 당했다. 그가 앙앙대는 사람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채 뒤집어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뜯어 말리는 시늉을 했고, 응징당한 사람은 고분고분해졌다.
최 군 덕분에 나는 연탄난로가 확확 달아오르는 커다란 군용 텐트 숙소에서 잘 수 있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함바에서 막걸리 한 사발 곁들이는 것도 여반사였다. 그는 주인을 향해, “어이, 이거 내 앞으로 달아놔”, 하고는 내 밥상에 막걸리 두어 병 안겨주었다. 나는 한껏 일에 버팅겼다. 달포가 지나자, 반장이 시키는 것도 무엇이든 최 군 도움 없이 할 수 있었다.
최 군과 손을 맞춰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힘도 좋고 일하는 요령도 좋았다. 삼육 패널 두 장을 힘도 안들이고 어깨에 메어 날랐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통에 일찌감치 할당량을 마치면, 그는 “가자”, 하고는 함바로 들어갔다. 해가 잔뜩 남았는데도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나 택지조성 축대 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방학이 다 해,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리도 일이 맞아 떨어지는지, 마침 철 늦게 온 구정이라서 학교 돌아갈 시점과 간조 날이 엇비슷했다.
일찍 간조한 후, 그가 이끄는 대로 커다란 연장가방을 든 채 옥수동으로 향했다.
버스 종점에서 내리자 최 군이, “뭘 좀 사야겠어, 걔가 고기를 좋아해” 라고 말하고는 어둑한 상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그가 말했다.
“이제 반 왔다잉. 한 참 더 걸어가야 혀”, 하고는 길 옆 어느 집 문을 열었다.
그의 집은 내가 상상했던 판잣집은 아니었다. 벽돌 골조에 슬레이트집이었다. 부친도 상태가 그리 나쁜 편으로 보이지 않았다. 말도 잘 했다. 그의 새댁은 수줍음을 많이 타 보였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큼지막한 몸을 하고 있었다. 얼굴 한 번 보여주고는 어디로 숨었다.
최 군을 따라 공동 수도 깐으로 갔다. 그는 돼지고기를 씻어 잘게 잘라 냄비에 담았다. 생선은 비늘을 제거하고 배를 가른 다음 깨끗이 씻어 토막을 치 다른 냄비에 담았다. 최 군이 멀뚱해 하는 나를 향해 말했다.
“쟈는 이런 거 못 혀. 친척 집에서 눈칫밥 먹고 컸을텐디 왜 이런 것두 못허는지 모르겄어. 그런디 아버지 옆에는 항상 붙어있어.”
최 군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가지고 온 것들을 들고 부엌(이라야 우습게 친 차양막) 으로 들어갔다. 소리를 죽인 최 군의 우렁우렁한 소리가 밖으로까지 들렸다.
“돼지고기는 고추장으로 비벼서 연탄에 올리면 되어. 생선은… 무를 이렇게…” 하고는 도마 소리가 들렸다. 최군에게 응답하는 새댁의 목소리는 분명하지는 않았으나, 다정다감한 것만은 분명했다.
밥상에서 그의 부친이 말했다.
“나 평생 용산 시장에서 지게 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더군.”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최 군의 동생도 있었다. 모친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서 저자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식사를 끝낸 후, 짐 보따리를 든 채 다시 그의 손에 이끌려 산을 넘었다. 그는 이 길을 매일 왕복해서 로드 웍을 했다고 말했다.
“실력이여, 실력. 한 두 방 맞는 것은 문제도 아녀. 노렸다가 날릴 수 있을라먼 하체거덩, 하체. 하체 단련은 로드 웍이거덩. 지금도 맞고 살지 않는 이유가 이거지 이거.”
이것이란 그의 허벅지였다.
“츰에는 맞구 다니지 말라구, 절대루 객지 와서 맞구 다니지 말라구 갈켜주었지. 형은 빵잽이여. 허구헌 날 빵이여.”
복싱을 배우게 해준 형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로도 들리고, 무책임한 형을 원망하는 이야기로도 들렸다.
어느 산등성이에서 그가 저 아래 보이는 커다란 돔 형 건물을 가리켰다.
“저게 장충체육관이여. 저기 서는 게 꿈이었는디, 이게 안 따라주는 거여, 이게.”
그는 자기 눈을 가리켰다. 그의 한 쪽 눈은 시력이 없다. 체력과 깡이 있으나 상대를 가격할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따라서 랭킹에 오른다거나 프로가 되기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눈 때문에 그의 별명은 어원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눈깔멩이리’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나와 같은 학년이 없었다. 그의 집과는 근거리였으므로 우리는 초등 중등을 함께 걸어 다녔다. 군것질은 그의 몫이었다. 그에게 백리 사탕을 살 돈은 항상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이름도 모르는 ‘나쇼날’ 라디오니, ‘딸라 장수’니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친척이 있어, 서울에서 그런 장사를 한다고 했다. 마침 이 고장을 덮친 해일의 원인과 영향, 태풍의 원인과 그 길목에 대해서도 자상히 알고 있었다. ‘나쇼날’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일 터였다.
그는 원래 깡다구가 있었다. 중학교 때 어떤 아이와 붙었다. 시골 이이들 싸움질은 무척 드문 일이라서, 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상대 아이는 몸이 잽싸기로 유명했으며, 유일한 취미가 싸움이라서 항상 누군가를 골탕 먹이고 싶어 했다. 상대방은 싸움이 시작되었는데도 얼굴에 살짝 웃음까지 머금고 있었다.
최 군이 먼저 코피가 터졌다. 코피 터지면 물러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그가 주먹을 쥐고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 하며 기회를 엿보는 통에 상대방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가 뒤로 주춤거리자, 상대가 앞으로 조끔씩 전진했다. 그가 싸움터에 있는 야트막한 무덤으로 조금씩 뒷걸음으로 올라갔다. 무심코 좇아가던 상대방이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무덤 중간쯤에서 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토록 잔인한 아이들 싸움은 처음 보았다. 위에 올라탄 그가 막무가내로 상대방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뒤로 아무도 그와 싸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싸움꾼들이 슬슬 그를 피했다.
그는 중학교 미술선생에게 자주 칭찬을 들었다. 그의 그림이 항상 복도에 걸렸다. 리얼하달까, 이삭 줍는 여인 비슷하게, 굴 따는 여인 그림도 있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나서 그에게 물었다.
“그림 그리고 싶어 했잖아? 그 쪽에서는 해본 거 없어?”
“그림이랄 것은 없지만, 극장 간판 그리는 거 배웠다. 몇 년간 극장에서 잘 놀았지. 그러나 간판이 사양길이라서 밥 먹고 살 수 읎을 뿐만 아니라 저 판자집을 지켜야 했어.”
그가 다시 말했다.
“저 집 지키려고 별 짓 다 해봤다. 저기서 밀려나면 갈 데 읎으니께. 형 한테 들은 이야기다. 빵 살다가 고명한 사람헌티 들었것지.
거 옛날 사람 하나가, 충신 시켜줄테니 순장 당하라는 명령을 거절했다며? 나는 가족을 지켜야겠다, 충신 되는 것도 싫다. 데리고 산천을 떠돌지언정, 나는 가족을 지켜야겠다고 했다며?
내가 그런 심정이었다. 안강망이라고 아나? 예닐곱 명 타는 배인디, 겨울마다 가서 배 탔다. 그게 그물 내렸다가 걷으면 마구 술을 마시거등. 첨 배에 올랐을 때 멀미를 심하게 하니, 조금 봐 주더라구. 죽는 줄 알았지, 모든 걸 다 토하는겨. 그게 익숙해지구 시간이 지나자 애덜이 사람 잡는겨. 선원덜이 오락거리가 읎잖은감. 츰 온 사람 개나 고양이 데리고 놀기지 뭐. 어떻게든 우그려뜨려 가지구 노는거여. 어떤 영감이 그러데. 죽기 아니면 살기루다가 걔들한티 뎀벼야지,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겨.”
그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려 흔들며 말했다.
“이거루 살았다. 소주병 잇슈 마신 늠덜 서너 명이야 나 당할 수 있나? ”
그의 집에서 걷기 시작한지 한 참 만에 산을 건너, 길을 건너 신당동에 도착했다. 그가 어디로 시선을 고정하지 않은 채 말했다.
“한번 헐레?”
나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내가 이 동네 잘 알어.”
나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신당동에 도착자마자 그가 안내한 곳이 여인숙이었다. 그가 주인에게 말했다.
“내 친군디 대학생이여, 대학생.”
지금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그곳 거리의 광경이 선하다. 뒷골목 술집은 안주가 다양했다. 막걸리 앞에서는 나는 속없는 인간이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통했다. 막걸리 빈 병이 몇 개 되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건장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가 눈을 휘번덕 하더니만, 한 사람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짝 갈라진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되었다구? 뭐라구 아가기 놀리고 다녔어?”
멱살 잡힌 사람이 켁켁거리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함께 온 사람들이 그를 얼렜다. 한 참이 지나서야 멱살 잡혔던 사람이 말을 시작했다.
“서울 교통 운전수들이 데모를 시작했어. 오야지가 깨라구 해서 몇 명 갔지. 버스에서 내리는 족족 운전수들 개패듯 팼어. 덩치 좋고 대찬 놈이 덤벼들자, 형이 냅다 발로 찼다. 그 냥 기절하데…
살인나는 줄 알았다. 병원 데리고 갔는데, 불알 터졌대. 그래 형이 달려 간거야.
엊그제두 면회 갔다 왔어. 홍성 교도소로. 우량 판정 받을랴구 애쓴다 하더라구. 나는 잘못한 거 없어.”
최 군이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구 다녀? 머, 형이 잘못해서 달려갔다구? 느이덜이 한 짓이잖여. 느덜두 같이 사람 팬 거 아녀. 왜 형한티 뒤집어 씌우디끼 허냐? 드런 느무 깡패새끼덜, 옳게 살어 옳게…”
나는 술이 다 깨버렸다. 그의 이야기 중에, 자주 들었던 것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금호동에 재개발 계획이 있다. 부친 대신 자기도 그곳 재개발 협상 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은 중이다. 그가 말했다.
“나이만 먹었지, 무얼 알아야 조합에 들어가지. 갸덜이 나헌티 바라는 건 이거야, 이거.” 하며 그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의 말을 듣자하면, 재개발 조합은 항상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땅과 건물을 함께 가진 사람은 극소수였다. 문제는 땅 없이 건물 권리만 소유한 사람들이나, 세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딱지를 준다 해도 아파트 입주는 불가능했다. 그 동네 사람들이 새로 짓는 아파트에 입주할 만 한 돈이 없었다. 그의 집은 건물 소유권만 있었다. 따라서 까딱 잘못되면 그냥 거리에 나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응답할 지식이 없었다. 내 관심이라야 학교에서는 기껏 책 읽는 시간, 책 몇 페이지 뿐이요, 그것 날아갈까봐 놀러 다니지도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방학에는 몇 푼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와 헤어진 후 몇 학기가 지났다. 자취집 주인이 시골에서 연락이 왔다며, 고향 송 군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송군에게 전화 했다.
“최군이 죽었어. 윌기리(월계기)로 와. 최 씨네 종산.”
“어떻게 죽었는데?”
“얼어죽었대.”
“이 날씨에?”
“그러게, 그렇게 이야기 들었어.”
그의 운구를 따라 온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산일 하는 사람, 친구 몇 명, 그리고 일을 주도하는 최 군의 사촌 형과 새댁, 동생이 전부였다.
작지 않은 몸집의, 수줍었던 새댁은 여전히 수줍음을 타는 듯 했다. 아무에게도 얼굴을 안 보여주려 작심한 듯, 고개를 무덤 앞 땅에 밖은 채 엎드려 있었다. 누가 몸을 들어 올려도, 몸을 흔들어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그의 죽음이 무척 의심스러웠다. 그의 사촌에게 넌지시 물었다.
“형님, 어떻게 된 거예요?”
“때려 부순 집에서 안 나가겠다고, 텐트 치고 잤대. 그날 밤에 얼어 죽었대.”
그의 사촌으로부터는 더 이상 들을 말이 없었다. 그의 동생을 찾았다. 몇 년 새 그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묘지 봉분을 만드는 뒤편에서였다.
“저는 그 때 공장에 있었어요. 동네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예요. 철거반 수십 명이 떼거지로 몰려왔대요. 아랫 쪽은 포클레인이 부수고, 포클레인이 올라오지 못하는 언덕에는 함마를 든 사람들이…”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 가재도구가 나뒹구는 소리, 벽돌에 가해지는 함마 소리, 공간이 빈 벽돌의 울림…
입에 갈증이 났다. 나는 저 아래편에 놓인 술짝으로 걸어가 술을 들고 다시 올라왔다. 그가 다시 말했다.
“형이 발악을 했대요. 철거작업자 두들겨 패구, 경찰 두들겨 패구, 신사복 입은 사람들, 회사 사람들 쫓아가서 패구. 여러 사람들한테 짓밟혔대요. 철거원, 경찰, 회사 사람 할 거 없이 달려들어 형을 짓밟았대요.”
떠날 곳 없는 철거민들이 거기에서 밤샘을 했다. 그는 뭉개진 나무를 치우고 벽돌을 들어내 텐트를 치고 기어 들어갔다.
아침에 그가 일어나지 못했다. 소리도 없이 신음도 없이 죽었다. 경찰이 의사를 대동하고 왔다. 사인은 ‘동사’였다. 동네 사람들이 경찰과 의사에게 항의했다. 어제 최 군에게 몰매를 준 사람들을 조사해야 한다.
그의 부친이 말했다.
“월기리루 가. 늬덜까지 죽으까 무섭다. 몇 백 명 눈 깜작 안허구 죽이는 늠덜이다.”
최군은 자기가 지킨 것들의 댓가, 벽돌 슬레트 집 보상금을 써서 장지로 향했다.
묘지 봉분 작업하는 옆에 서있던 그의 사촌이 우리 있는 쪽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최군 동생에게 말했다.
“동상, 일허는 사람덜 뭘 좀 멕여야겠는디, 식당에다가 국밥이라도 시키까?”
최군의 동생이, “그러셔야죠”, 하고는 주머니 지갑을 뒤졌다.
김이 자욱한 함바에서 처음 마주 앉았을 때,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참 용케도 만났구만, 객지에서”, 라고 너스레를 떨던 그의 모습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나는 마음의 손가락으로 저 멀리 산 능선을 따라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참 후에야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젠가 평창동에 간 일이 있었다. 밤늦게 모임이 끝나, 나는 이 선생 집에 가서 잠자기로 했다. 택시를 타자 이 선생이, “평창동”하고 말했다. 나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동네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를 돌아보았다. 이 선생 집은 빌딩과도 같았다. 집들이 모두 웅장했다. 동네는 깨끗했으며, 잘 다듬어져 있었다. 김을 풍기던 함바와 군용 텐트로 만들었던 숙소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발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금호동의 개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강 물이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그 곳을 돈 잘 버는 사람들이 그냥 놔 둘리 없다. 최 군이 금호동에 자리 잡은 것 자체가 비극의 씨앗이었다면, 그는 애초에 유랑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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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한국현대철학사론> 출간 좌담회[ⓔ시대와철학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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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술1부입니다.?
2월 월례발표회는 이규성 선생님의 <한국현대철학사론> 출간 좌담회로 이루어집니다.
<한국현대철학사론>은 한국철학사의 공백기로 인식된 19세기 말 이후의 사상 흐름을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을 부제로 서술한 책입니다.
좌담회를 통해 한국현대철학을, 그리고 우리의 ‘지적 수동성’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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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이규성 선생님의 짧은 강연을 듣고, 사회자와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합니다.
내용은 책의 ‘서문-성실성과 충실성’, ‘결론-운명과 이름’을 중심으로 합니다.
(미리 읽고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ympiao89@hanmail.net으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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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한국현대철학사론-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이화여대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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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이규성(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사회: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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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월 15일 오후 5시 태복빌딩 202호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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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다룬 한국 현대철학은 세계의 변화가 주는 생명의 위기, 그리고 착취와 억압이 주는 고난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위기와 고난은 이전의 친숙한 세계의 상실감으로 집약되며, 세계상실은 상실한 사람의 인격도 분열시켰다. 세계상실의 경험은 세계의 회복과 인격의 고결성을 사상의 핵심으로 정립하게 했다. 세계가 인간화되지 않는다면 세계는 나의 것이 아니다. 세태의 힘에 의해 분열된 인격은 나의 통일된 고결성이 아니라 둔감한 속물성이 되거나 불행한 의식이 된다. 고결성은 세계 극복과 함께 도덕적 실천을 요구했다. 동시에 이 실천은 사회적 실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문제 상황이 주는 고통과 소외는 그들로 하여금 진실로 체득된 주체적인 진리를 진리로 이해하게 했다. 그 진리는 고통의 심화에서 얻게 된 인류애와 대도(大道)로 표현된 우주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했으며, 그 진리는 행동을 통해 표현되어야 했다. 진리의 근거는 현대에서 의심받게 된 수학적 확실성을 확보하는 것에 있기보다는 주체적 진실성에 있었다. 현대 한국철학을 통해 우리는 고뇌하는 인생이 도달한 자유의 높이와 구체적 실천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들어가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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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홈 하단에 이규성 교수님이 2012년 11월 26일에 이화학술원에서 책을 설명하신 동영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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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분열되고 전치된 한국사회의 자화상②-[시대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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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역설, 증오의 정치에서 희망의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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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한철연 기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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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와 민주화의 대결, 민주화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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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은 ‘유권자 인구 구성비의 변화’였다. 그것은 20-30대가 50대 이상보다 많았던 이전 선거들과 달리 이번 대선에는 최초로 20-30대에 비해 50대 이상의 인구 구성비가 약 2% 정도 높았던 선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던 2002년 대선과 비교해 보면 50대 6.2%와 60대 0.1% 상승으로, 전체 평균 3.15%가 오른 반면 20대(8.65%), 30대(4.95%), 40대(2.4%)는 전체 평균 5.33%로, 5.0%라는 투표율 상승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30대의 노무현-문재인 지지율 또한, 2002년에 비해 각각 8.0%, 8.3% 상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2002년 대선에서는 단지 0.2% 차이로만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40대가 이번에는 무려 11.3%나 오른 11.5% 차이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따라서 애초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주력했던 높은 투표율과 젊은 세대의 결집이라는 선거 전략이 먹혀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패배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유권자의 인구 구성비 문제를 제기하거나 나이가 들면 보수화한다는 ‘연령효과’를 들면서 이후로는 보수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현재 486세대 중 50대에 속하는 50-53세는 50대 후반의 정치적 성향과 다르다. 이것은 나이가 들어가면 보수화하는 ‘연령효과’가 특정한 세대의 역사적 경험에 따른 ‘세대효과’에 의해 상쇄하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2002년 대선과 비교해 볼 때, 2012년 대선에서 20-30대뿐만 아니라 40대까지 더욱 좌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인구 구성비의 변화가 아니라 50대 이후가 이런 40대 이하의 좌로의 이동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우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89.9%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50대와 더불어 50대-60대는 압도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세대 간의 정치적 성향의 분열이며 이 분열의 기점이 되는 것은 40대 이하와 50대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40대 이하는 전체적으로 좌향좌를 했다면 50대 이상은 우향우를 했다. 여기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소위 486세대이다. 486세대의 역사적인 정치적 경험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민주화’이다. 그들은 80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좌향좌를 한 40대 이하와 우향우를 한 50대 이상 사이의 분열은 역사적으로 ‘산업화’ 대 ‘민주화’라는 두 개의 역사적 경험을 보는 정치적 성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분석들에는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한 분석이 없다. 이것은 이번 대선의 책임을 50대의 보수적 결집에서 찾는 경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50대의 보수적 결집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50대의 보수적 결집이 이번 대선 결과 그 자체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50대는 2002년 대선에서 17.8%(이회창 57.9% 대 노무현 40.1%)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25.1%(박근혜 62.5% 대 문재인 37.4%)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이전 대선보다 7.3%나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20대, 30대, 40대가 각각 2002년 대선보다 8.0%, 8.3%, 11.3% 더 많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50대 이상의 보수화 경향이 40대 이하의 반(anti)보수적 경향을 압도했다고 할 수는 없다.
반면 60대 이상을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60대 이상은 박근혜 72.3% 대 문재인 27.3%로, 2002년 대선 당시 지지율 격차 28.6%(이회창 63.5% 대 노무현 34.9%)보다 무려 16.2%가 더 많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따라서 20-40대의 좌로의 상승률을 전체적으로 상쇄시키면서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이끈 세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50대가 아니라 60대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50대의 높은 투표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보아야 할 것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가장 높은 비율로 우향우를 한 60대 이상의 보수적 결집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 결과에서 분석되어야 할 것은 ‘산업화’ 대 ‘민주화’라는 두 개의 코드이며 ‘민주화’에 대한 ‘산업화’ 세대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민주화’에 대해서 집단적인 반란을 꾀한 것일까? 그것은 소위 87년 6.10 이후 진행되었던,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에 의한 민주화, 그리고 소위 486세대가 주도했던 김대중-노무현정권 시절의 민주화가 ‘산업화 세대’의 욕망을 민주화의 흐름 속으로 편입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보여준다. 정치적인 ‘민주화’는 결국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 및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기간에 진행되었던 ‘민주화’가 그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 그 결과로 나타난 ‘반동’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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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는 사회, 증오심에 가득 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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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년 한겨레신문 기획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손수레로 1t 트럭보다 많은 폐지를 실어 나르는 ‘1t 리어카’ 정영배(56)씨.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정씨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운동 공로자에게는 보상을 해주는데 왜 자신처럼 평생 열심히 일하다 다치고 병든 이들은 충분히 돌봐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맞는 말이다. 특히, 그들은 1970년대 경제적 빈곤을 온 몸으로 때우고 살아온 세대이다. 1970년대 중반, 그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수출의 역군’으로, ‘산업화의 기수’로 바꾸면서 그 스스로 대한민국 국가 건설의 주체로 만들어왔다. 그것은 명백히 가해자 국가가 심어 놓은 환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노동을 자본으로 바꾸어 경제 권력으로 바꾼 것은 국가였으며 그들은 그 국가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재벌이 대한민국의 최고위층 권력이 되어갈 때, 그들은 더욱더 가난해졌다. 하지만 그 때 유신독재국가는 그렇게 그들을 불러 세웠으며 그들 또한, 그 어려운 삶의 고통을 이 환상을 통해서 이겨냈다. 그 환상이 승리의 환호성으로 바뀐 것은 전두환 정권 때였다.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무역수지를 적자에서 흑자로 바꾸어 놓았으며 그 당시의 경제성장률은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능가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1970년대였으며 그들은 전두환의 푸념과 달리 그를 기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세워놓은 것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87년 6.10민주항쟁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주화는 자유주의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자유화와 더불어 ‘시장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우파 시장주의-신자유주의 좌파’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1970년대를 거쳐 온 그들이 40-50대가 되었을 때, 그리하여 비로소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안정적 삶의 기반을 찾고자 했을 때, 그들을 인내하게 하며 견디어 내게 했던 ‘미래’는 더욱더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1997년 IMF는 ‘정리해고’의 광풍으로 되돌아왔으며 정보화 사회는 더 이상 구시대의 저임금체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환상은 분노와 증오가 되었다. 내가 세운 나라, 내가 만든 경제적 풍요.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그것을 누리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
자동화와 정보화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잉여인간에 불과했다. 무너진 자존심. 그러나 다시 시작하기에 그들은 이미 늙고 병들었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화려한 쇼윈도를 펼쳐 놓은 상품들의 스펙타클한 세계를 즐기기에도 그들의 욕망은 너무 낡고 추했다. 1990년대 한국의 자본주의는 대중소비사회로 이동했으며 그 소비를 전유한 세대는 X세대였다. 대중가요의 주요한 소비층은 10대가 되었으며 문화적 감각의 향유 폭은 더욱더 넓어졌다. 어쩌면 그렇게 1970년대의 ‘산업화’ 세대의 반란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징후는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지하철 노약자 석에서 이루어지는 노인들의 젊은이에 대한 테러는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 대한민국’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더 많은 상품들 속에서 우리를 유혹하면서도 오직 능력 있는 자들, 스마트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세력은 다름은 김대중-노무현정권이었다. 따라서 노무현정권은 민주당과 함께 이미 청산되어야 할 역사적 구세력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정치는 여전히 한나라당(새누리당) 대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의 양당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무현정권의 실패와 더불어 ‘구 민주당 세력’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는 급속히 떨어졌었다.
그러나 ‘노무현전대통령의 투신’과 민주노동당의 ‘진보단일후보’ 노선은 10% 내외의 지지율이라는 벼랑 끝에 서 있었던 구 민주당 세력을 기사회생시켰다. 지난 지자체와 총선에서 사람들은 진보단일후보가 아니었다면 구 민주당 세력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의회 진출에 성공했으며 나름대로 지자체에서도 성과를 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성공은 구 민주당 세력인 노무현정권에 대한 냉정한 정치적 평가와 청산에 대한 역사적 단절을 없애버리는 대가를 지불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투신’은 그에 대한 인간적 애도의 물결로 바뀌었으며 정치적 과오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사라졌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애도마저도 2011년 총선 직후 벌어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소위 ‘진보’라는 세력에 대한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으며 그것이 50대 이상의 결집을 불러왔다. 그들은 그 동안 ‘민주화’라는 명분 앞에서 밀리고 있었으나 그 이후 자신의 왜곡된 욕망과 ‘산업화’ 세대들의 ‘비도덕성’을 ‘증오심’에 근거한 정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이번 대선 결과는 대한민국 사회가 극심한 정치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사실상 ‘계급이 없는 계급투표’, ‘여성이 없는 여성투표’로 귀결되었다.
노후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노인들, 하우스푸어-렌트푸어인 50대들은 그들의 생존적 불안감을 ‘민주화세력’에 대한 증오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무상보육, 무상급식’과 같은 ‘보편적 인권’의 권리에 오히려 분노했으며 새누리당이 제시하는 허구적인 ‘차별적인 복지’의 구호에 말려들었다. 또한, 가부장제적인 한국 사회에서 온갖 고난을 감내하며 청춘을 보냈으나 ‘민주화’와 더불어 여성의 권리에 눈뜨기 시작한 여성들은 박근혜후보의 여성대통령 구호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20대 여성은 감성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산업화 시대’의 여성이 지니고 있는 정서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40대와 50대의 여성은 충분히 남성적이지도, 여성적이지도 못한 한국의 남성들과 달리 박근혜의 ‘여성’대통령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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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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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메를로-퐁티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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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화가의 시선과 몸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와 함께 20세기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열었던 사람이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이다. 메를로-퐁티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몸’이다. 그의 철학은 이른바 ‘몸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몸철학’을 가장 정교하게 잘 제시한 것이 메를로-퐁티이다.
1990년대 들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와 페미니즘 운동 등이 활발해지면서 이즈음 ‘몸’이라는 화두가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1990년대 후반에는 ‘몸’이 인문ㆍ사회과학적인 담론에 있어 핵심 키워드로 작용했다. 이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보통 ‘정신과 이성‘은 남성적인 것과 관계하지만 몸을 바탕으로 한 ‘감각‘은 여성성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전반적인 구도에서 봤을 때 이성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충분히 가정할 수 있고 몸을 통해 이성을 근본적으로 한계 지을 수 있다는 사유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 된다.
이 배경에 메를로-퐁티의 ‘몸철학’이 있다.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지 않았고 몸의 ‘감각’을 중요시 했다는 점은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이 욕망을 통해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코기토(cogito)’ 중심의 철학적 사유를 전환시켰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몸철학의 관점에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바탕은 몸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 아래 물에 잠긴 큰 얼음덩이와 같다. 메를로-퐁티는 정신과 의식 보다는 몸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여덟 번째 시간에는 ‘몸과 살, 그리고 세계’라는 제목 아래 메를로-퐁티가 얘기했던 몸철학의 세계를 경험했다. 메를로-퐁티의 특징 중 하나는 사유의 출발점을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한 이론이나 철학적 반성으로 보지 않고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는 삶의 현장이라고 했던 점이다. 메를로-퐁티의 몸철학을 전공한 조광제 교수는 “수업이 진행되는 지금 이 공간이 철학적 사유가 시작되는 장이면서 동시에 앞에서 말하는 자와 앉아서 듣는 자가 서로 감각적 소통이 가능함을 몸소 느끼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메를로-퐁티 사유의 출발점
메를로-퐁티가 『행동의 구조』에서 밝히고 있는 ‘현상의 장’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그는 ‘실재적인 빛(lumi?re r?elle)’과 ‘현상적인 빛(lumi?re ph?nom?nale)’의 구분을 통해 객관적인 과학 세계와 현상세계 간의 대립을 이해시키고 있다. 가령 벽에 둥근 광점(光點, spotlight)이 나타나 여기저기 위치를 바꿔 옮긴다면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광점이 주위를 끄는 대로 그것을 향해 시선의 방향을 돌릴 것이다. 이 때 광점의 움직임은 나의 행동(시선의 움직임)을 유발한다. 이런 설명은 현상 그대로를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은 이런 특징을 외현으로 취급하고 그 아래 다른 종류의 실재가 있어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재적인 빛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광점을 비추고 다시 반사되어 내 눈의 망막과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된 대상을 보게 만드는 실재적인 빛은 나(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극은 실재적인 빛이고 이 자극이 주어지면 반응(결과로서 행동)을 한다.[자극→반응;행동(결과)] 하지만 실제로는 이 반응이 자극이 되어 다시 우리의 반응을 촉구하는 것이다.[반응→자극(반응)]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현상의 장’에서 볼 때 과학적인 실재의 빛이 되는 순수한 자극은 없다. 자극이 이미 반응이다.
과학은 ‘실재적인 빛’을 연구하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들은 과학의 실재적 빛이 아니라 ‘현상적인 빛’을 얘기한다. 우리가 지각하는 빛이란 실재적인 빛이 아니라 현상적인 빛이다. 실제 우리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장은 과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순수한 ‘물리적 사태(事態)’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현상의 장’ 속에 들어온 후에 과학을 연구한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사유의 출발점은 배후의 어떤 객관적 실재가 아니고 직접 보고 만지는 현상의 장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현상학적 태도이다. 과학주의적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량, 속도, 힘, 가속도 등의 개념을 다룬다. 물리학적 세계에서는 색과 소리, 밝고 어둡다는 개념도 없다. 이런 것은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감각을 쏙 빼버린 순수 이론적인 세계를 진짜 세계(진리의 세계)라고 배워 왔지만 이런 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의 생각이 현실을 떠나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과학적 태도가 아닌, 현상에서 출발해보자는 입장이 메를로-퐁티 사유의 시작이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그리고 ‘반성철학’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이 ‘현상의 장’은 과학에서 말하는 객관적 실재도 아니고 의식철학에서 말하는 순수 의식의 세계도 아니다. 흔히 주관과 객관을 나누어 세계를 설명하려 하지만 현상에서는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없다.
메를로-퐁티는 기존의 ‘반성(反省)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코기토’ 명제와 관련해서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가 반성철학의 모습이다. ‘반성’은 근대철학을 규정하는 기초인데, 이 때 ‘명석 판별함’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반성이고 이 반성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반성을 통해 명석 판별함을 찾고 명석 판별함을 통해 반성이 진리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성주의’라고 규정했다.
지성주의 관점에서는 진리를 구현하는 체계 바깥의 세계를 도저히 입증해낼 길이 없다. 여기서 ‘반성=의식’이 되고, ‘의식=자기의식’이 된다. 결국 ‘반성=자기의식’이다. 지성주의는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모든 진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데카르트다. 그리고 자기의식을 최대로 발달시켜 절대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 사람이 헤겔(Hegel, 1770~1831)이고, 자기의식 ‘나는 생각한다(Ich denke)’를 중요하게 여겨서 온 세계를 구성하는 총론적 의식을 중시한 것이 칸트(Kant, 1724~1804)이다.
이런 것들을 고전주의시대의 지식 형태라고 보는 인물이 푸코(Foucault, 1926~1984)이다. 푸코는 17~18세기를 ‘고전주의시대’라고 했다. 푸코는 고전주의의 근본형태는 ‘재현(representation)’에 있다고 했고 재현은 ‘표상’이며 표상은 ‘의식의 표상’이다. ‘의식’과 ‘반성’ 중심으로 일체의 모든 지식을 말하던 시대가 바로 고전주의시대이다. 고전주의시대의 ‘에피스테메(?pist?m?)’가 표상이고 재현이다. 푸코에 의하면 그러다가 19세기 초중반부터 근대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지식에 있어 의식과 반성이라는 구도가 깨지게 된다.
조광제 교수는 푸코의 이런 구분에는 반(反)지성주의ㆍ의식주의ㆍ반성주의ㆍ재현주의가 들어있다고 하면서 비(非)반성적 영역, 혹은 선(先)반성적 영역을 앞에서도 언급했던 빙산에 비유한다. “빙산의 일각 밑의 몸체가 되는 바탕이 있다. 빙산의 일각은 반성의 영역이다. 빙산의 일각=’의식(정신)’이고, 몸체가 되는 바탕=’몸’이다. 헤겔은 ‘감각적 확실성(무엇인지는 모르고 그냥 확실히 보이는 것)’에서부터 절대적인 상태에 이르는 체계적 단계를 말하지만 메를로-퐁티는 이런 반성적 과정 이전에 사유와 철학은 바탕이 되는 몸에서 출발함을 주장한다.”
몸과 지각의 근원성
‘현상의 장’은 행동이 중심이다. 그리고 ‘지각’과 ‘현상’의 관계에서 보면 현상의 장이 곧 ‘지각의 장’이 된다. 모든 철학은 몸의 지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우리는 ‘몸’이라고 하면 정신보다 하찮은 존재, 혹은 그 아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정신을 주체로, 몸을 대상이나 그 다음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몸은 나에게 ‘저항적인 존재’이다. 앞에서 말한 반성은 정신으로 생각한다. 정신으로 생각만 한다면 순간 에베레스트 정상에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정신적 자유이다. 인간은 정신은 자유로운데 몸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항이 있어야 자유가 있는 법이다. 맘대로 아무렇게나 자유로움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참된 자유인가? 주체와 대상을 의미하는 영어 ‘subject’와 ‘object’를 보자. 먼저 ‘object’는 ‘대상’이란 뜻이지만 동사로는 ‘반대하다’, ‘이의를 제기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subject’는 ‘주체’를 뜻하지만 원 뜻은 ‘신하’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대상이라는 것은 저항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주체는 대상의 아래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주체는 대상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길거리를 걷다가 장애물 있으면 피해 간다. 장애물이 우리를 피할 수는 없다. 장애물이 걷는 주체의 행동을 유발시킨다. 그렇다면 실제에서는 주체가 대상을 만들지 않고 대상이 주체를 만들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철학에서 이것이 전도되었다. 철학에서는 주체가 온갖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관념론이다. 주체는 대상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실제적인 것을 무시하면 현실감각이 없어진다. 관념론이 그렇지 않은가? 관념론은 대상을 무시한다. 사회적인 힘을 무시하면 현실에서 떠나게 된다. 그리고 황당한 생각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염력, 초능력에 대한 상상력과 집착은 ‘황당한 주체에 대한 신화‘이다. 현실을 보면 주체는 사회적 힘에 의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대상들인 자동차, 전화기, 세탁기, 스마트폰까지, 대상이 주체(인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우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면서 항상 주체와 대상(객체)이라는 존재적 위치를 부여했다. 조광제 교수는 보통 강의실에서 강사를 주체, 학생들은 대상이라고 여기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으로는 도저히 접근해서 분석할 수 없는 것이 몸이라는 존재라고 한다. 특히 강사의 정신이 강의하는지 아니면 몸이 강의하는지에 대해 물으면서 앎에 대한 정의와 운동과 감각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앎에는 두 가지가 있다. ① ‘~ 임을 안다'(지식, 이론, 표상)는 것과 ② ‘~ 할 줄 안다'(실천, 변형, 노동, 놀이 등)는 앎이다. ①의 경우에는 ‘주체=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②의 경우 ‘주체=몸’이다. 몸은 행동의 주체로서 행동은 감각+운동의 두 가지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운동에 따라 감각의 내용이 달라지지만 감각에 따라서도 운동이 달라진다. 대상의 움직임을 자기의 시선이 쫓기도 하고 차 경적 소리에 사람이 몸을 피하기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연주자는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쓴다. 인상을 쓴다는 것은 얼굴의 운동이다. 왜 운동할까? 최상의 소리를 지금 내고 있는데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운동에 신경을 덜 쓰면 감각이 바뀌어 최상의 소리가 깨진다. 온몸이 운동을 해서 바이올린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감각’과 이에 대응하는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운동’, 이런 것이 행동을 설명하는데 같이 얘기되어야 할 것들이다.
‘인생을 사는 맛’이라는 말이 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을 사는 이유는 ‘감각’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그 사회는 ‘전면적이고 심오한 감각을 갖춘 인간들을 사회적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그 사회는 다양하게 미세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다양하게 모두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인생은 감각과 운동이고 이것은 ‘향유’이다.
몸의 감각과 운동을 통한 행동은 지각과 결합되어 있음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지각 할 때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지각을 하지 않는 행동은 예를 들면, 등산할 때 절벽에서 조심조심 걷던 걸음을 평지에 내려와서도 똑같이 하는 것이다.
또 행동은 정신에 앞서 있다. 흔히 우리가 심리학을 말하는데 심리학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상심리(abnormal psychology)’ 즉 비정상 심리는 말 그대로 정신이 이상해서 연구하는 게 아니다. 행동이 이상해서 그렇다. 조광제 교수는 “만약 정신이 이상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이 있는데 행동은 전혀 문제없다면 심리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거다. 그런데 어떤 인간이 하루에 5000번 웃는다고 치자. 이상하다. 이런 사람이 심리학에서 이상 심리의 연구대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동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철학이다. 정신과 이론의 논리에 대해서만 얘기하다보면 행동에 대해서는 다 놓치게 된다. 행동에 따라 인간 존재가 달라지는 것을 잡아내야 철학이 시작된다.
‘몸틀’이라는 개념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예전에 느꼈던 감각 운동이 차곡차곡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웬만한 감각이 들어와도 충격 받지 않는다. 행동이라는 것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차곡차곡 축적된다. 감각의 축적이다. 그러면 몸이 점점 바뀐다. 이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쌓이는데 메를로-퐁티는 이를 ‘몸틀(le schema corporel)’이라고 한다. 한자식으로 말하면 ‘신체도식(身體圖式)’이라고 하겠다.
메를로-퐁티식으로 말하면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것’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몸틀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과 같다. 몸틀은 한번 정해지면 오래간다. 그런데 이 몸틀은 처음에 한 동작을 할 때 온 몸이 그 동작에 집중해야 어떤 하나의 행위가 가능해진다. 자전거 배울 때도 그렇지만 글을 쓸 때는 글 쓰는 몸틀, 책을 읽을 때는 책 읽는 몸틀에 맞아야 한다. 그 행위의 몸틀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온 몸이 그 몸틀에 따라서 집중되는 것이다. 이제 온 신경을 쓰던 정신의 집중이 몸으로 들어옴으로써 몸틀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체득(體得)’이라고 한다.
행동은 반드시 어떤 상황 속에서 하게 된다. 상황은 과제이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과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상황에는 반드시 타인(타자)들이 있다. 과제는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몸과 과제와 상황은 각각 구조가 있어서 그것이 일치가 되면 몸틀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몸틀을 미리 갖추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때 사람은 ‘생각’하게 된다. 생각은 더 효율적인 행동을 위해 하는 것이다.
몸은 항상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려 한다. 이것을 메를로-퐁티는 ‘세계에의 존재(l’?tre-au- monde)’라고 한다.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를 통해 하나가 되려는 과정에 있다는 것. 또 그 과정에서 벗어나길 거부한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상황 지어진 존재’라고 한다. 힘이 들면 숨이 가빠지는 것이 그 아주 쉬운 예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계속 역동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복합적인 세계이다. 주어지는 상황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몸틀 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계속 새로운 몸틀을 만들어 간다. 한 인간에는 여러 몸틀이 만들어져 있고 또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다. 이것을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아주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늑대소년을 상기해보자.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의 몸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이다.
들뢰즈(Deleuze, 1925~1995)가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게서 가져온 중요한 개념 중 ‘intensit?’라는 개념이 있다. ‘강도’, ‘강밀도’ 등으로 번역되는데 감각이 밀도가 높아지면 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강도는 어떤 몸틀을 갖추느냐에 따라 다르고 또 인간의 삶은 전혀 달라진다. 천재라고 소문난 예술가들은 그 방면으로 엄청난 몸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보다 인간들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조광제 교수는 몸틀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본주의는 한 인간을 특정한 몇 가지 몸틀 만을 가지고 살도록 만든다고 한다. 이런 것을 반영한 작품이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이다. TV프로에 나오는 달인(전문직)들을 보면 그 전문 분야에 대한 몸틀이 정말이지 대단하다. 하지만 10년 이상 그것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몸틀은 강도가 높아지지만 여러 몸틀이 결핍된다. 그러면 몸은 왜곡된 형태로 변하게 된다.
“나는 내 몸이다” : 습관과 체화
“나는 내 몸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때 내 몸은 계속해서 새롭게 몸틀을 갖추게 되고 새롭게 운동하는 그 몸이다. 몸틀은 자기 무의식적이다.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 몸은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자아이기 때문에 내 몸은 나의 의식에 다 체크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의식으로는 알 수 없는 내 몸이 작동하면서 나를 형성한다. 이 때 자아는 정신적 차원의 자아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정신적 차원에서 말하는 자아를 ‘허공의 자아’라고 한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자아이다.
메를로-퐁티는 몸은 복합적이기에 근본적으로 ‘불투명(opacit?)’하다고 했다. 데카르트는 명석 판별함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았는데 의식으로 ‘투명(transparence)’하게 주어지는 것만 진리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불투명한 것이야말로 진리라고 했다. 낯낯이 밝혀지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불투명한 것이 역량을 발휘한다. 불투명을 정신분석학에서는 트라우마, 무의식의 상태라고 설명할 것이다. 몸 철학적으로 트라우마를 설명하면, 삶의 과거 어떤 지점에서 특정하고 이상스럽게 강력한 감각이 와서 순식간에 몸틀을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잠복해 있다가 유사한 상황이 나오면 증상이 나타난다.
조광제 교수는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세계 속에 살다보니까 몸이 바뀌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세계와 몸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① 세계는 몸을 구조화 한다. 그리고 ② 구조화된 몸이 세계를 재구성한다. 이 때 구조화 되었다는 것은 몸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어떤 몸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지고 그 속에서 운동하는 것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요가나 국선도 수련을 해보니까 정말 좋다고 추천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사람에게는 요가나 국선도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들어왔고 그 몸에 요가와 국선도를 하는 몸틀이 갖추어지다 보니까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시 상호교환’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공동체적 의미에서 ‘집단적 몸’이라고 한다. 만약 흔히 말하듯이 세계는 객관적이고 몸은 주관적이라고 해보자 이렇게 되면 상호교환이 안 된다.
‘체화(體化)’라는 개념이 있다. ‘체현’, ‘육화’라고도 한다. 우리가 어떤 과제를 수행해야하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하면 생각을 한다. 생각이 올라왔다가 몸틀을 갖추면 올라왔던 생각은 다시 사라진다. 그런데 이때 그 생각은 어디로 갔을까? 바로 몸에 체화되었다. 몸1ㆍ2ㆍ3(…), 의식1ㆍ2ㆍ3(…)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몸1이 의식1을 바꾸고 의식1이 몸2로 체화된다. 몸2는 체화된 의식을 바탕으로 의식2를 바꾸고 몸3으로 체화된다. 이것이 반복된다. 결국 의식은 몸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이걸 설명할 때 메를로-퐁티는 아메바를 예로 든다고 한다. 아메바가 환경이 좋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상황이 바뀌면 몸을 옮기는데, 방식은 자기 몸을 한 쪽으로 쭉 늘어뜨려 몸을 옮기고 나면 다시 예전의 형태를 회복한다. 이때 늘어지는 아메바의 일부를 허족(虛足)ㆍ위족(僞足)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 정신과 의식은 허족ㆍ위족과 같다. 필요가 있을 때는 쭉 뻗어 발휘했다가 필요가 없으면 거둔다. 그래서 정신적 사유를 하거나 의식하고 있을 때에는 에너지가 분산되어 감각이 약해진다. 그러나 ‘몰입’ 상황은 대체적으로 감각적인 것에 몰두할 때다. 이때는 정신과 사유가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섹스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 사실 잘 안 된다. 그냥 미쳐버려야 잘되는 것이다. 가장 감각적인 상태가 되어 생각하지 않는 도취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 몰입은 순수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했지만 생각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각의 향유’이다. 조광제 교수는 내 몸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면서 또 어떤 감각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염두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까 생각하기 위해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을 생각하기 위해 생각했던 것이 ‘근대’이다. 이렇게 되면 데카르트는 혹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인간이 늘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항상 새로운 감각, 운동, 상황에서 내 존재를 계속 역동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내 존재는 갇혀 있지 않고 결정론적이지 않으며 변화의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향해 계속 나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몸틀은 어떤 특별한 중심이 되는 몸틀이 없다. 파시즘적인 전제적 형태의 피라미드 체계가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는 서로의 위치와 배치를 바꾸기도 한다. 몸은 그래서 탈중심적인 존재이다. 메를로-퐁티는 “각각의 나는 다른 모든 나의 교차점이다”라고 했다. 세상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ㆍ역사 등등의 복합적 영향을 받으며 내 몸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내 몸은 내가 의식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인간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몸에서 살로 : ‘살존재론’
몸을 철학적 사유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것은 몸 바깥에 있는 모든 세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세계와 항상 접촉한다는 것은 서로 감각적인 것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몸들은 감각적인 방식으로 주어진다. 왜 하필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감각적으로 들어올까? 우리는 감각하면서도 감각되는 자이다. ‘본다는 것’과 ‘보인다는 것’, 악수처럼 ‘만진다는 것’과 ‘만져진다는 것’ ? ‘봄을 본다는 것’, ‘만짐을 만진다는 것’ 이런 것이 몸의 성격이다. 몸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다. 몸은 내 안의 개별적인 몸이 아니라 세계와 항상 소통하고 있는 것이고 소통은 감각을 통해서 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끼리 보고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인간과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까?
이 부분에서 메를로-퐁티는 화가 폴 세잔(Paul C?zanne, 1839~1906)에게 영향을 받았다. 세잔은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라고 했다. 세잔은 풍경을 한참 쳐다보다가 풍경이 자기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풍경이 내 속에 자기를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는 일종의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감각적 세계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바탕으로 ‘몸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말했다.
조광제 교수는 “보이는 것이 보는 나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보는 나는 온데간데없고 보이는 대상이 꽉 나를 채우고 있다. 사실 보는 나도 그런 것을 원한다. 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이 오히려 주체가 된다. 보이는 대상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내가 사물을 만질 대 만져지는 것은 사물이 오히려 나를 만지는 것이다. 이런 나르시시즘적인 감각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하냐면 메를로-퐁티는 모든 존재는 살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를로-퐁티는 ‘감각덩어리(masso du sensible)’라는 말을 했다. 덩어리는 사물이다. 사물이 감각으로 덩어리져 있다는 것인데, 색도 알고 보면 시각 중심의 색 덩어리이다. 색은 사물의 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자르면 그 단면에도 색이 있다. 사물은 모두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인식적으로 규정하지만 감각적으로 만져서 단단하게, 혹 물렁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사물 그 자체’라고 한다. 일종의 감각적 유물론이다.
마르크스가 자유를 얘기할 때 기본으로 접근하는 것이 감각이다. 노동이라는 것은 감각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것을 좀 더 존재론적인 ‘살’이라는 개념으로 심화시킨 것이 메를로-퐁티이다. 그래서 우주의 살, 세계의 살, 보는 자의 살, 보이는 것의 살 등의 얘기를 한다.
여기에 플라톤(Plato)의 이데아는 보이지 않는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가지적[可知的, 가지적인 것(no?ton)]’으로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것이다. 이데아는 아이러니 하게도 색이 없다. 예를 들어 빨강의 이데아는 전혀 빨갛지 않다. 이러한 플라톤의 사유를 끌어다 놓은 것이 과학적 세계이고 물리학적 세계인데 이것과 정반대로 보는 것이 메를로-퐁티의 ‘살존재론’이다. 이것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핵심 내용이다. 살존재론은 예술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1943)에서 “애무는 몸을 살로 바꾼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몸은 노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도구를 사용할 때 우리는 손을 이용해 도구를 잡는다. 그러나 애무는 노동과 다르다. 무엇을 도구적으로 잡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애무는 도구적인 몸이 도구성을 벗고 순수 감각적인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우리 인간은 살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살이 된다’는 것은 사르트르의 경우 ‘즉자(卽自)’와 하나가 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인간이 완전한 살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아무리 다양한 많은 시도를 해도 완전한 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알았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내가 살이 되는 만큼 파트너를 살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사르트르는 살이라는 개념을 인간에게만 적용한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전 우주에 확대 적용시켜 온 우주가 애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살이라는 것은 늘 감각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모든 각 존재는 살의 상태에 있다. 모든 사물의 근본적인 존재의 상태는 살의 상태라는 것. 그래서 온 우주는 살로 되어있는데 이 살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다. 온 우주는 살이라는 단 하나의 원소로 되어있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살일원론’이라고 명명한다. 우주의 정신과 물질도 살의 변형태이고 몸도 살의 변형태이다.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의 신=자연=실체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이 다양한 양태로 변함을 언급한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메를로-퐁티가 살일원론을 다 말하지는 못하고 죽었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교직-교차’ 장에 보면 이에 대한 원론이 나오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말년에 쓴 『눈과 정신』에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이 보인다고 한다. 회화는 살을 만나고 살을 접촉하면서 그 살을 그려내는 것이다. 순수 감각적인 상태를 회화라고 본다. 곧 존재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은 ‘존재론적인 회화론’이다. 조광제 교수는 회화론적 존재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한다.
하늘의 별을 보고 바람을 맞으며 시적 감성을 느끼는 것은 온 우주가 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속에 빨려 들어가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것이다. 온 우주가 나고, 내가 우주가 됨을 느낀다. 이것이 메를로-퐁티의 후기 살존재론이다. 유물론 치고는 매우 감각적이다. 감각적 유물론이라고 말할 만한데 유물론에서 물질은 순수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메를로-퐁티에게 순수 객관적인 것은 찾을 수 없다.
메를로-퐁티에게 순수 객관적인 것은 없다. 주관적인 것은 의식이나 정신이 아니고 몸이다. 이것이 들뢰즈에 가게 되면 감각론으로 나오는데 『감각의 논리』(1984)에 보면 신경체계에 대한 설명에서 따가움과 같은 신체적 고통의 순간, 신경을 통해 느끼는 감각이 진짜 감각이라고 한다. 이것이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 1992)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통해 극적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메를로-퐁티의 살존재론을 들뢰즈는 극단적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감각의 논리』에서 감각은 세계의 존재라고 한다. 메를로-퐁티가 영향을 끼친 푸코나 들뢰즈는 이런 감각론에 기초하고 있다.
메를로-퐁티의 순수 감각적인 상태로서 세상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면 평소에는 별 느낌 없이 보던 예술 작품을 볼 때도 뭔가 느낌이 달라지고 길을 걷다가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들에서도 순수 감각적인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예술적인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살일원론에 입각한 살존재론은 예술존재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사르트르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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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이순웅(숭실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1960년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80년에 죽었지만 사르트르 동시대와 이후의 사상가들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의 경우처럼 현대에 주목받는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럼 지금 사르트르가 다시 부활하는 것인가? 부활의 여부는 모르더라도 확실한 것은 사르트르는 큰 저수지와 같은 존재로서 어디에도 물을 댈 수 있는 사상을 담은 철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는 2013년을 사르트르와 함께 시작했다. 이순웅 교수는 이 강의를 통해 사르트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폭넓고 다양한 얘기를 담은 철학자임을 알려줬다. 사실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미진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실존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사르트르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는 현대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사르트르의 철학
?
사르트르의 철학에는 베르그송의 영향이 많았다. 지속의 개념이 그것이다. 공간화한 규칙적 시간은 의식 속에서 느끼는 참된 시간(지속)과 다르다는 것은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세계를 설명할 때 필연성이 아닌 우연성으로 설명한다.
사르트르 철학은 넓게 보면 의식의 철학이고 주체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현상학은 대상을 향해 있는 의식으로서 대상과 관계 맺는, ‘무엇인가와 관계 맺는 의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코기토(cogito)’ 명제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자동사의 ‘think’가 아닌, ‘~에 대해서 생각’하는 ‘think of’의 의미이다. 이후 사르트르의 현상학에서는 후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르트르와 관련하여 궁금한 부분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사르트르의 철학이 퇴색 되었는지의 문제이다. ‘구조주의(Structuralism)’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다.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것이 구조주의이다.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는 구조주의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는 것인데 이순웅 교수는 ‘post’를 ‘후기’로 번역할 때와 ‘탈(脫)’로 번역할 때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한다.
‘후기 구조주의’로 번역하면 주체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주체에 대해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럴 경우 주체가 없어 자칫 허무하고 공허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탈구조주의’는 ‘주체’를 상대적으로 중요시 하여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얘기한다. 지젝(Slavoj zizek, 1949~)이나 바디우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구조주의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구조주의자들은 구조를 장악하지 못하면 인간의 주체에 대해서도 장악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의 인간관과 『존재와 무』
사르트르 철학의 중심은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은 왜 잔혹해졌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잔혹한 존재인가?’ 그리고 ‘잔혹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두고 사르트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삶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 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세계대전은 유럽을 위시한 서구 제국주의 사이의 대결이었고 식민지라는 시장을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 전쟁에서 제국주의의 대상이 된 식민지 국가의 입장은 배제되어 있었다. 결국 지배국가인 자본주의국가 간의 싸움이었지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쉽게 읽었던 것처럼 정의의 연합군과 세계를 지배하려던 악마 같은 독재국가의 대결이 아니다. 결코 선과 악의 대결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떤 인간이며 자본주의를 사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런 면은 사르트르가 소련의 스탈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았고 이 계기가 인간의 문제에 대해 천착해 가는 과정이면서 기폭제가 되었다. 『존재와 무』(1943)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잔혹한 존재라서 절망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끈을 놓지 않는다. 그의 책에는 이런 이중적인 문제의식이 보인다.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관은 그 이전의 저작인 『구토』(1938)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사르트르는 평생 몸 편히 살 수 있는 ‘이자 생활자’인 주인공 ‘로캉탱(Roquentin)’이 자기 존재의 ‘무상성(無償性)’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주인공은 이른바 이중적 상태의 인간이다. 이자만 타먹는 무노동의 밥벌레와 같은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노동을 할 수 있는 도시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이런 인간은 ‘죽은 인간’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주인공 로캉탱은 여기서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 사르트르는 여기에 희망을 건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정신적 자유의 무상성과 의식의 명석함을 자각하는 과정에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정신적으로는 자유롭지만 자각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conscience적 존재’라는 말로 표현한다. ‘구토’는 이 의식이 ‘존재’ 그 자체와 대면한 때에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의미와 실존
‘현상학(phenomenology)’에서 말하는 의식은 ‘무엇에 관한 의식’이다. ‘의식’과 ‘의식의 대상’이 있다. 이 둘의 관계를 규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현상학이다. 또는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의식에는 ‘지향성’이 있는 것이다. 의식은 ‘존재’가 있는 한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이기도 해서, ‘구토’는 ‘존재의 출현’과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의 출현’ 두 가지가 서로 겹쳐진 체험이 된다.
존재의 우연성이란 필연성과 반대의 의미이다.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에 의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진리의 체계와 법칙을 상징한다. 간단한 예로 우리가 알고 있는 3단 논법의 체계가 필연성의 체계를 축약해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변화와 유동적인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연성의 세계는 유신론적 세계질서와 관계한다.
이쯤에서 신이 미리 세계를 ‘설계(design)’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순웅 교수는 “신 존재 증명에는 ‘목적론적 증명’이 있는데 어떤 사물의 설계자를 상정하고 그 사물의 완성을 ‘end’라고 할 때, ‘end’의 어원은 ‘목적’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끝’이란 ‘신의 목적’에 도달했다는 뜻이 된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결국 신의 목적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기다림’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한 때 유행했던 ‘휴거(携擧, rapture)’ 따위의 소동이 바로 이것이다.
사르트르는 신이 설계한 세계의 특성으로서 목적, 본질은 없으며 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사르트르는 보통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인간이 우연 그 자체인 어떤 존재와 만나고, 인간은 한결같이 우연을 지향하는 의식 그것으로 있으며, 따라서 인간도 또 우연으로서 무상인 것이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존재에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없다. 존재에는 원인도 없으며 목적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우연과 무상적 존재로서 인간이다. 인간은 정해진 길을 따라 순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히 선택하고 결단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사르트르에게는 본질보다 ‘실존’이 우선한다.
자유와 초월의 추구
사르트르는 어떻게 하면 자유를 잃지 않고, 자유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존재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르트르 철학은 자유와 존재, 사실(거기에 있는 것)과 초월(transcendance, 무언가 되기 위해 자신을 만드는 능력)의 결합을 얻으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유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유일한 입법자라는 것을 알고 인간은 늘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며 살아가며 자신을 둘러싼 대상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자유는 이 ‘초월성’과 ‘주체성’의 결합으로 성립하며 이 두 가지의 결합이야말로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헛된 ‘기투(企投 또는 投企, projeter)’라고 사르트르는 명명한다.
사르트르는 초월을 추구하지만 초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다만 부정만 할 뿐, 건설할 만한 적극적인 제안을 갖고 있지 않다. 주관과 객관 둘 다 부정하며 그 두 가지를 교차시켜 ‘혼합‘시킬 뿐, 조금도 ‘종합’하려 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초현실주의를 비판하며 그저 ‘불가능’을 꾀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후설 현상학과의 차이
후설에 의하면 “의식이란 그 자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찾고 지향하고, 무언가를 향하려고 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의식이란 그 본성상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후설의 지향대상은 의식에 의해 파악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의식의 내용도 의식 내부에 있는 것, 의식에 내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 생각에 반대한다. 대상이 의식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의식 바깥에 있다. 이것이 후설과 사르트르의 현상학 입장에 대한 차이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대상은 의식 바깥에 있는 것이므로 의식으로부터 불거져 나온 쓸모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 의식의 본질에 규정되지 않은 우연·무상인 것이다. 누가 결정했든지 간에 (신이든 인간이든) 어떻게 어떤 일이든 먼저 일반적인 본질이 있고, 거기에 맞추어 삶의 방법을 생각하는 본질주의 그 자체를 거부한다.
사르트르는 후설의 현상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후설과 구별되는 사르트르 현상학의 특징은 ① ‘대상이 의식 밖에 있다는 것’, ② ‘본질에 대한 거부’, ③ ‘본질적인 직관(intuition: 실험, 관찰을 통한 감각적 경험을 작동시켜 알아내는 앎의 상태)에 대한 반대’ 등을 들 수 있다.
『존재와 무』에서 존재의 세 영역
사르트르는 존재에 있어 세 가지 영역을 설정한다. 먼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즉자존재(卽自存在, Being-in-itself)’와 ‘대자존재(對自存在, Being-for-itself)’가 그것이다. 인간은 ‘즉자존재’로도 살 수 있고 ‘대자존재’로도 살 수 있다. 『구토』에서 로캉탱처럼 즉자의 무상성을 취한 채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자유로이 사는 것도 가능하고, 반면 인간은 즉자존재의 우연성에 도전하여 이 우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마주 놓고,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 스스로 입법하고, 자기가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간단히 이 세상의 존재를 나누어 볼 때, ‘인간(나, 타자)-사물’로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나-타자-사물’로 보면 세 가지가 된다. 즉자존재는 타자를 설정하지 않아서, 예를 들어 속이 꽉 찬 쇠구슬에 비유할 수 있는데 자기라는 존재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서 다른 것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개는 의식이 없어서 고민도 없다. 이것은 즉자존재다. 반면에 대자존재로서 인간은 텅 빈, 비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자존재는 무엇인가? 대자존재는 ‘자기를 존재 바깥에 두는’ 존재이다. 비어있다는 것이 중요한데,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순웅 교수는 ‘의식’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비어 있는 결핍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자’ 존재는 늘 ‘결여자’이며 동시에 ‘가능성’과 짝이 되어 존재한다. 인간은 내가 나를 항상 변신시켜 나가고, 바깥으로 던져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존재가 타자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 『구토』에서 로캉탱이 대자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상업도시’를 바라보며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삶이 없음을 자각하고 ‘구토’를 통해 그 자각에 대해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웅 교수는 “‘need’라는 말은 필요를 의미하지만 ‘결핍’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어서 결핍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변화, 운동, 미래, 발전은 없다”고 한다. 즉 우리는 결핍을 알기 때문에 필요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또 대자존재의 대자의 번역인 ‘對自’와 ‘Being-for-itself’의 ‘for’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밖으로 내 던지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존재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존재ㆍ실재ㆍ현존이라는 의미의 ‘existence’의 어원은 라틴어 ‘existere’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ex(~로 부터)’+’sistere(서다, 존립하다)’의 합성어이다. 자기 자신을 자기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뜻이 본래 의미이다.
사르트르는 초현실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상태로, 대자의 가능성을 잃는 법 없이, 동시에 즉자의 존재성과 일치하는 상태, ‘대자-즉자’의 상태를 바랐다. 그러나 인간은 기투가 실현되었다고 해도 기투의 실현과 동시에 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대자인 채로 즉자인 것, 가치를 보존하면서 실현을 쟁취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실현의 어느 부분에는 가치가 없고, 가치의 어느 부분에는 실현이 없다. 존재와 가치가 일치된 것은 신의 경우이다. 신은 죽어있으면서 살아있는 존재인데, 인간은 이 상태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대자-즉자의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를 향한 기투를 멈출 수 없고, 가치의 존재성을 바라는 것을 그칠 수 없다. 실현을 기대하지 않는 이 이로움 없는 노력을 두고 사르트르는 ‘인간은 하나의 이롭지 못한 수난(passion)’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타존재(對他存在, Being-for-Others)’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타인’은 ‘타자(他者)’ 자체로서 떨어져 나간 존재가 아니다. ‘타자’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인간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인이란 나와 똑같은 개체로 자유로운 주체이다. 그래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다.
이 때 자유로운 가능성을 가진 두 주체는 ‘시선’을 주고, 받는 것의 대립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일종의 투쟁 관계이다. 사르트르는 이 경우 다른 한쪽의 인물은 ‘시선’의 대상이 되어 ‘물화(物化)’되고, 사물과 같은 것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경우 두 개체의 자유가 공존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이순웅 교수는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나는 지금 방 안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을 보고 싶다는 유혹에 져서,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 나는 열중해 있었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와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자 누군가가 서서 나에게 ‘시선’을 주며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전신이 부끄러움 덩어리로 바뀐 것을 발견한다. 여기에는 ‘타자’가 서 있었다.”
이순웅 교수는 여기서 말하는 ‘시선’이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가 말하는 시선과 유사하다고 한다. 근대인은 자발적 복종을 오히려 자유롭다고 여기는데 권력자가 누구보다 먼저 ‘시선’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내가 타자와 맺고 있는 관계의 실상이다. 이 때 타자는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매개자가 된다. 인간은 여기서 내가 타자와 동화되거나 타자를 초월하거나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대타존재에 대한 논의는 사르트르의 도덕론을 내포한다.
대타존재에 있어서 가령 남성이 ‘시선’을 독점하고, 자유를 독차지한다면, 여성은 ‘물(物)’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르트르는 “마치 ‘지옥이란 바로 타자를 일컫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은 대타존재로서의 인간이 권력구조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구도가 사르트르에게는 인간과 인간의 차원에서 서로 시선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려는 개체의 투쟁으로 해석되는 것이고 푸코로 계승되면서 권력과 시선의 주체 관계로 해석되는 것이다.
사르트르 철학의 의의와 한계
사르트르는 철학자로서는 유일하게 지난 한 세기 동안 문화의 아이콘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르트르의 철학 강의나 그가 행보하는 자리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고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와는 관계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유발시키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많은 철학자들이 사르트르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사실 사르트르는 극복되지 않았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나 푸코의 얘기들도 모두 사르트르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주체의 문제도 그렇다. 현대철학에서는 주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관점이다. 구조주의에서 주체는 죽었다고 말했고 포스트구조주의도 주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랭 바디우는 ‘후사건적 주체(後事件的 主體)’라는 말로 어떤 사건 이후 형성되는 주체에 대해 언급한다.
예를 들어 세계대전의 경우 이기적 욕망으로 계산적 이성을 가진 자들끼리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전쟁 자체를 통해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고 비약적인 발전도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 전반의 모든 내용을 화해와 담합이라는 봉합 없이, 끝까지 놓지 않고 계속해서 재평가의 가능성을 들이대는 것이 중요하다. 폭 넓게 보면 과거 동학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의지의 인간들이 이런 일을 수행하고 이들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중심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상은 이들로부터 올 수 있다. 이런 부분 역시 사르트르의 영향이 없지 않다.
사르트르가 얘기한 자유와 초월은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가 그린 ‘마르시아스((Marsyas)’의 표정에 나타나는 듯하다. 신에게 도전하여 살갗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고 있는 마르시아스의 표정은 역설적으로 아주 평온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1905년 북경에서 찍혔다고 전해지는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cent morceaux)’이라는 사진에서 형벌을 받는 죄수는 전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언가 초월하여 황홀경에 빠진 듯하다.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상태가 바로 이런 것인가?
이순웅 교수는 사르트르의 ‘대자-즉자적 삶’은 사실 고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만큼 어려운 사안일 것이라고 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늘 피할 수 없는 선택과 결단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의 의식이 깨어있어 이런 어려운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는지 그 상태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아마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의 경지가 아닐까, 말하자면 목적과 본질이 없어 끝이 없는 여행을 떠나는 자유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화이트헤드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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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최종덕(상지대 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화이트헤드와 자연철학
서양의 철학사에 있어 전통적인 ‘플라톤(Plato)의 존재론’ 관점은 ‘기독교 철학’과 함께 보편적인 실체 개념 위에서 보편의 체계를 설립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근대과학’의 정신은 보편성을 찾아가는 활동으로 이러한 정신에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사물’과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본능적 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반면 경험론의 철학자 흄(David Hume, 1711~1776)은 원인이나 결과가 본질적으로 내재한다는 인과율을 부정한다. 이것은 흄에게서 관찰되는 주장이다. 흄의 입장을 감안하면 과학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존재론을 상정하는 면이 있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관찰과 경험에 의존해야 한다는 흄과 같은 경험론적 방법론을 가정해야 한다.
20세기 들어오면서 근대과학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수많은 개념의 변화로 뉴턴(Isaac Newton, 1642~1727)과학이 그 안정성과 확실성을 상실하면서 화이트헤드(Alfred Whitehead, 1861~1947)는 뉴턴과학(전통, 근대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한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물질과학의 변화를 인지하고 과학의 개념이 분석의 관점에서 탈피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후에 ‘유기체 철학’의 맹아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라는 책은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로 자연철학의 시대와 형이상학의 시대를 연결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여섯 번째 시간에는 최종덕 교수의 안내로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가 만든 여러 새로운 개념들의 해석을 통해 화이트헤드가 2,500년의 서구사상의 흐름을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고 한 말이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그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화이트헤드의 전공은 원래 수학이다. 1910년경에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과 만나면서 수학에 관한 책을 같이 쓰기도 하지만 1925년 이후 두 사람은 사상적 차이 때문에 결별한다. 이후 화이트헤드는 수학으로부터 물리학과 생물학의 자연과학으로 전환한다. 이것을 ‘중기 자연철학시대’라고 한다.(1913~1924, 약 10년간) 그리고 화이트헤드는 1924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데 화이트헤드가 미국으로 간 1925년 이후를 ‘후기 형이상학시대’라고 한다.
서구과학의 특징과 플라톤주의
화이트헤드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이다. 최종덕 교수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존재’ 개념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철학을 포함 신학, 예술, 사회과학 분야에까지 서구사상은 플라톤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플라톤을 넘지 않고는 현대까지의 서구사상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유럽에는 산업혁명 이후 환경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자처하던 백인들 세계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한 1차 세계대전의 경우 만해도 그렇고, 완전한 존재로 진보하는 중이라고 믿었던 인간 존재의 확실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화이트헤드는 이런 것들의 핵심 원인으로 플라톤 철학의 사유체계를 지목한다. 화이트헤드는 철학적 사유구조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플라톤을 넘으려 하였다. 최종덕 교수는 화이트헤드가 수학을 연구하던 시기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1915~1925년 사이에 이런 생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이트헤드는 이 세계가 완전하게 플라톤적인 껍질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뉴턴과학(전통적 근대과학)의 특징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colorless(무색)’, ‘dry(건조함)’, ‘cold(냉정함)’의 표현은 서구 근대과학의 특징을 상징한다. 이 서구과학 낳게 한 것이 플라톤의 체계인데, 이것은 당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이런 흐름을 20세기 2차 세계대전이후에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불렀다. 모더니즘은 세 가지 서구과학의 존재론적 특징과 이것의 기반이 되는 플라토니즘과의 관계를 말한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세상을 진정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고 이런 생각들의 기본적인 틀은 이미 19세기 말에 형성이 된다. 그러나 당시 선봉에서 2,500년의 플라톤적인 것을 뒤집을 사람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서구과학은 기독교라는 종교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체계는 너무나 굳건해서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stubborn(고집이 센)’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깨부술지 솔직하게 말해보자고 나선 사람들이 니체(Nietzsche, 1844~1900), 마르크스(Marx, 1818~1883), 프로이트(Freud, 1856~1939) 세 사람이다.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존재’라는 개념은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존재만이 진리를 담고 있고 이 현상계는 존재의 그림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 존재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로서 감각적인 것들은 존재의 축에 끼지도 못했다. 플라톤 존재의 5가지 속성은 ‘불변’, ‘유일‘, ‘독립’, ‘절대’, ‘무모순’의 다섯 가지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것들을 플라톤은 존재라 명명했고 이 존재가 어떤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느냐가 2,500년 서양사상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데아’, ‘헤겔(Hegel, 1770~1831)-절대자’, ‘기독교-신’,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실체’ 등등.
여기에 저항한 것이 니체 계열인데 화이트헤드는 ‘변화’ㆍ’운동‘하고 ‘상관적’이며 ‘상대적’인 틀을 가지는 것을 플라톤의 존재개념에 대체해야하는 새로운 존재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라고 했다.
19세기 물리학은 확장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통계적인 확률의 측면이 강화되었는데 화이트헤드는 19세기 물리학을 바라보며 플라톤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인식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의 경우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지구와 달 사이의 역학관계를 설명한 것인데 알고 보면 태양계의 수많은 행성들의 사실적 존재는 무시해버리고 이론적 틀의 상황설정을 ‘이상화’시킨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빗대어 플라톤의 존재는 ‘이상화된 존재’라고 했다. 또 열에너지 개념 있어 공기 단위 안의 분자량 6×10²³ 개의 수많은 분자들이 서로 부딪히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이것은 이상화 시킬 수도 없다. 방법은 분자들이 벽에 부딪히는 압력을 통해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열에너지 개념과 같은 것들은 플라톤적 존재론과 그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뉴턴과학 전통의 영향 아래의 서구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고 화이트헤드는 이 새로운 존재론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적 존재론’을 주장한다.
현실적 존재의 운동성이라는 것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용어 ‘파악(prehension)’으로 표현한다. 주체가 대상을 볼 때 대상이 운동 중이라면 나의 간섭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화이트헤드는 ‘과정(process)’이라는 개념 속에 ‘운동’, ‘상관’, ‘상대’, ‘통계’, ‘확률’, ‘분할‘의 개념을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현실적 존재’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적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 量子力學 )’을 도입한다.
– 원자상태 이하의 세계가 ‘양자역학’이다. 누가 볼 때마다 결과 값이 달라진다는 것은 파동함수로 증명해 낸다. –
‘대상(object)’은 뉴턴의 입장에서는 상호간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은 ‘색깔(colorless)이 없고’, 자연 대상은 감정이 없어 ‘dry’하다. 이상적 상황을 설정하고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 객관적 관찰이다. 객관적인 것은 누가 관찰해도 결과 값이 같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객관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설명할 때는 ‘양자역학’을 얘기한다.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것은 관찰자가 사물을 관찰할 때 관찰자가 사물에 간섭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성을 가지고 운동하지 않는 고정된 존재는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
화이트헤드는 근대고전과학과 뉴턴과학을 비판하기 위해 오류상황을 설정했다. 최종덕 교수는 그것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얘기를 풀어낸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느 마을에서 해마다 너무 울창하여 두렵기까지 한 검푸른 숲에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있다고 치자. 그 숲 속에는 아무도 들어가 본적이 없다. 그러나 고전적 진리의 전통은 확실한 것을 찾으려면 현실세계에서의 감각적인 공포를 피해야 가능하다. 겁이나 누구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숲 속에 한 남자가 용감히 들어갔다. 이 자는 누구인가? 이성을 상징한다. 공포를 회피하지 않는 이성주의. 이로부터 우리의 과학은 발달했다. 그래서 서구를 발전시켜 온 모더니즘, 그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도 모두 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철학자들은 모더니즘으로는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의견에 모두 합의했다. 서구의 언어는 모더니티로 무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대상을 설명하려면 어찌 할 줄을 모른다. 갈 길을 잃은 것이다.”
최종덕 교수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숲은 외경심을 가지게 하는 숭앙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다. 숭앙과 공포는 꼭 같이 간다. 그래서 과거 권력자들은 숲을 정확히 묘사하는 사람들을 다 잡아서 죽이는 짓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헛갈리는 거다. 사실 우리는 그 숲을 보면서 아름다움과 같은 감성을 느끼거나 과학적 관찰대상으로 여길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보면 인간에게는 아마 두 가지 언어가 있을 것이다. 시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가 그것이다.”
최종덕 교수의 말을 정리해 보면 뉴턴의 근대과학 이후의 현대인은 그 숲의 모양을 상상만 하지 숲으로 막상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사랑을 할 때는 시적 언어를 써야하고 과학적 대상을 파악할 때는 과학적 언어를 써야하는데 이것을 헛갈려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연애에 있어 스펙을 분류하는 정량화된 과학적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 연애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것도 이를테면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과학적 언어, 시적 언어는 호불호 대상이 아니다. 이것을 ‘혼동’하는 것이 문제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은 ‘내면적 성찰’ +’비판적 실천’인데 어느 하나만 기필하는 것이 문제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다면 구체적인 현상들을 대입시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의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성으로 들어가게 되면 유기체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60조개 세포 하나하나는 서로 무관하지 않고 상관적이다. 그 세포 하나하나는 전체와 ‘섭동(攝動, 의미를 교환)’하고 있다. 기존의 무기체 철학에서는 모든 개체들이 서로 독립적이어서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존재론적(형이상학적) 근거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개체와 개체, 세포와 세포들이 현실적 존재로서 서로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큰 상위 존재와 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이며 이것이 ‘유기체 철학’의 큰 배경이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
플라톤에게 있어 창조는 신의 피조물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고백록』에서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이전의 시간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한다. 이것을 묻게 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결국 플라톤의 존재론과 기독교 철학의 전통의 바운더리는 신이 창조한 세계 안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금기시한 질문을 정면에서 되묻고 있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고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기 이전에는 ‘일자(一者, oneness)’만 존재한다. 일자인 신이 세계를 창조하면서 ‘다자(多者)’가 형성된다> 이것이 전통적인 플라톤-기독교 철학의 흐름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정반대로 여러 구체적인 존재인 ‘a’-‘b’-‘c’-‘d’-‘e’가 만나서 ‘f’가 되고 또 ‘a’-‘b’-‘c’-‘f’-‘z’-‘t’가 만나 ‘u’가 되는, 다자로부터의 또 다른 다자의 탄생을 얘기한다. 서로 교통하면서, 이른바 ‘togetherness’를 형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합생(合生)’이다. 예를 들어 펜-종이-연필 이런 것들이 문구라는 명칭으로 설명되듯이 새로운 연구적 대상이 만들어진다. 다자가 모여 일자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에서 유기체철학의 가장 큰 개념은 ‘합생’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적 존재란 개념, 또 창조성 개념 등이 나온다. 이미 있는 것에서 새로운 것 다른 것을 낳는 것을 ‘과정의 생성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창조를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있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가는 것이다. 과정의 생성성은 1910년대에는 ‘becoming’을 썼지만 지금은 ‘prehension’이란 영어표현으로 그 개념이 정착되었다.
화이트헤드의 실재론과 ‘영원적 대상’
실재론의 영역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실재론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19세기 후반에서 말하는 실재론과 유사하다. 몇몇 현상학자와 실재론자들이 착시의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 이데아계에 있다거나, 예를 들어 ‘1+2=3’이라는 명제를 가정할 때 이 둘을 더한다는 관계성의 이데아가 있다는 따위의 가설이 그것이다. ‘더한다는 것’도 구체적이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에게 실재적이라는 말은 곧 구체적이라는 의미이다. 구체적인 현실세계를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재를 구성하는 존재가 ‘불변’, ‘유일’, ‘독립’, ‘절대’, ‘무모순’이 아니라 운동성과 상관성으로 된 존재라는 것이고 그 실재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 ‘영원적 대상(객체)’이다. 화이트헤드는 ‘영원적 대상’을 생명체에 비유한다. 생명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신진대사를 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내부의 자기목적성을 가진다. 자기목적성이 ‘영원적 대상’을 생명이도록 만드는 기능을 한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는 신의 의지대로 창조했을 것이고 신의 청사진 설계도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학에서 신의 디자인대로 모든 것이 운동하고 신이 설계한 목적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플라톤-기독교적 존재론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의 동력 전부이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는 플라톤적인 세계관과는 무관하게 모든 존재 개체(영원적 대상)는 어떤 절대적 개체에 의해서가 아닌 자기 내부의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화이트헤드가 생각한 신은 현실적 존재의 하나이다. 신도 수많은 ‘영원적 객체’ 중 하나인 것이다. 신도 신 만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 개인 ‘철수’가 내부의 ‘합목적성’을 가지고 산다면 ‘신’도 또한 ‘합목적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실재적인 생명성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부분-부분은 모두 내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
② 부분-부분은 전체와 ‘합생(통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세포 하나하나는 별개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내적으로 상관된다. 상관성의 핵심은 자기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고 부속인 존재가 또 새로운 것을 낳을 수 있다.(창조성)
화이트헤드의 ‘초월체(superject)’개념과 합목적성
얼핏 보면 자기 목적성이라는 것이 칸트의 합목적성과 헛갈릴 수 있다. 목적은 ‘내재적 목적성’과 ‘외재적 목적성’이 있는데 칸트의 합목적성은 외재적 목적성이다. 그러나 내재적 목적은 ‘자기 합목적성(self-organiz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명이 기계와 다른 중요한 점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조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기 합목적성과 등치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prehension’하는 ‘주체(subject)’가 있는데 그것을 자신만의 용어로 ‘superject(초월체 혹은 자기 초월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화이트헤드가 주장하는, 초월체가 ‘prehension’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어떤 사건에 있어서 주체와 행위는 항상 같이 있어야 성립된다고 보는 점이다. 언어의 영역에서 볼 때 주어와 동사가 함께 있어야 성립되는 것과 같아서 주어(주체)만 따로 존재하는 방식은 성립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최종덕 교수는 ‘나는 빗속을 걷는다’라는 명제가 있다면 비오는 날, 빗속을 걸어가는 것은 내가 주체이지 비가 주체는 아니다. 비가 오든 말든 내가 거기에 없으면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교의 화엄사상에도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또 나를 의미하는 주어 하나만 가지고 문장이 성립할 수는 없고 사건이 성립할 수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어(주체)와 관련한 동사 행위를 분리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 ‘a’, ‘b’, ‘c’가 있을 때 ‘a’가 ‘나는 빵을 먹는다’는 문장이 성립할 때 ‘b, c는 그만큼 더 배가 고프다’라는 문장 성립이 가능해진다. ‘a’의 행위는 또 다른 ‘b’, ‘c’의 상태(행위)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그런데 합목적성에 맞는다는 것은 ‘a’, ‘b’, ‘c’ 모두 배고프지 않게 그 양이 대충 맞아떨어진다는 말이다. 외재적 목적을 부정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작동하는 방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외재적 목적은 없지만 내재적 목적은 ‘superject’가 자기 합목적성을 가지는데 큰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생물학적 태생이 같은 균일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표현에 의하면 ‘uniformity’라고 한다. ‘oneness’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uniformity’라는 말은 자연의 ‘제어성’을 뜻하고 ‘oneness’란 말은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세계의 통일성을 말한다. 어쨌든 주어진 목적성은 아니지만 자기 제어가 되는 통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 존재들이 목적성에 자기 갈 길을 가지만 마구잡이로 가지는 않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유기체의 힘
자생성은 유기체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디서 나올까? ‘superject’는 ‘subject’의 포괄적인 개념이다. ‘subject’가 달성되면 또 다른 ‘subject’가 만들어 진다. 생명이 가진 존재의 순환 논리이다. 존재론에 있어 존재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는다면 플라톤은 이데아, 기독교는 신에서 나온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는 이 자생성의 힘이 어디서 나온다고 딱 꼬집어 정확히 말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최종덕 교수는 답변한다.
왜냐하면 화이트헤드의 존재는 순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우리가 시간을 너무 공간화 시켜 분절된 시간으로 말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와 ‘prehension’하는 주체를 분리해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도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 중의 하나가 되겠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유기체의 범주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기체만이 아닌 과학적 대상인 무생물도 유기체의 범주로 본다.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subject’는 서로 수평적이다. 이분법적 존재론에서는 ‘존재’가 현상계의 대상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을 우리 삶의 정치에 접목시켜 보면, 플라톤과 기독교적인 체계의 논리는 물론 동양도 마찬가지지만 ‘존재’는 대상을 지배하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사회적 절연체를 형성한다. 넘을 수 없는 강을 만들어야 권력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는 ‘현실적 존재’와 ‘영원적 대상’을 연속성의 상관관계로 본다. 그래서 상부의 어느 한쪽이 하부를 구조적으로 지배한다는 정당성이 생길 수 없다.
사실 화이트헤드는 정치적인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1980년대 이후 화이트헤드 연구자들이 정치와 연결시켜 이렇게 해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존재들 사이의 연속성을 ‘nexus(결합)’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자체를 전체에 편제시킨다는 개념이다.
최종덕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강의 말미에 “『화엄경(華嚴經)』 마지막에 나오는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어린 구도자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도 아마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선재동자가 구도과정에서 여러 높고 낮은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며 얻은 깨달음도 결국에는 어떤 절대 불변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라, ‘보현행(普賢行)’이라는 실천의 한 과정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화엄의 본뜻임을 상기 해보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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