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인간의 삶: ‘나는 왜 쇼핑몰에서 해방감을 느끼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3-1

소비와 인간의 삶: ‘나는 왜 쇼핑몰에서 해방감을 느끼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3-1

조은평(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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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과?‘힐링’!?곳곳에서 상처받고 삶에 시달리는 우리들을 유혹하는 말들입니다.?게다가 인생의?‘멘토’를 자처하는 온갖 전문가들이?‘멘붕’에 빠진 우리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돼주겠다고 외쳐댑니다.?물론 이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불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노력들은 어쩌면 절망적인 삶에서 헤쳐 나오려는 나름의 노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누가 누구에게 인생의 멘토가 될 수 있을까요??대체 누가 어떤 권리로 내 삶의 나침반을 자처하며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사실 우리는 너무나 힘든 삶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로 이런 전문가들에게 기대려 합니다.?그럼에도 이처럼 전문가들에게 기대려는 충동은 결국 스스로 삶을 반성할 수 있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인문학,?특히 철학은 언제나 스스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을 요구합니다.?어쩌면 누구나 스스로 삶을 돌아보며 주변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습니다.?더구나 그런 자신의 고민들을 주변 지인들과 나누며 치열하게 토론한다면,?누구나 우리 삶을 억누르며 방해하는 요인들과 사회 환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아마도 철학은 이런 스스로의 노력들이 만나 소통하는 공간이자 함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서로 소통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1.?철학이란? : ‘일상에서 솟아나는 질문들’로부터 출발하는 철학함

“스스로의 철학함(Philosophieren)?없는 철학은,?다시 말해 자신의 철학적 체험이 없는 철학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1)?일상에서 솟아나는 철학

-?철학이란??과연 인간이 생각하는 이유는? ‘철학이란 결국 비-철학,?철학의 외부’?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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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럼에도 일상에 거리두기를 하는 철학(비판/반성/낯설게 보기)

-?일상에서 많은 철학적 질문들을 하지만 동시에 일상에 매몰되는 우리들.

-?말하자면?‘일상에서 솟아나는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우리는 철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런 면에서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철학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처럼 일상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즉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속에서 출발하지 않는 철학적 물음을 당연히 공허하다.?하지만 반대로 일상에서의 삶에만 매몰되고,?그 속에서 자신이 던진 질문들과 대답들 속에만 갇혀 있게 될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철학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일상에서 솟아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지만,?동시에?일상에 매몰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고 고민한다.

-?바로 플라톤의?‘동굴의 비유’는?‘일상에 매몰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경계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일상???철학?(일상에서 솟아나는 동시에,?일상에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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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오늘의 주제이자?‘일상에서 솟아나는 사소한 질문’

:?소비와 인간의 삶?- ‘나는 왜 쇼핑몰에서 해방감을 느끼는가?’

-?나는 왜 쇼핑몰을 갈까??또 쇼핑을 하면 왜 즐거운 걸까??특히 기분이 우울하거나 짜증날 때,?대형 쇼핑몰에 가면 왜 갑자기 즐거워지는 걸까??뭐 여러 가지 질문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듯.

-?그럼 왜 쇼핑몰에서 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걸까??당연히 내가 그 공간에서 만큼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소비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

-?그러면 일단 우리 삶에서 쇼핑이 이루어지는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자.

1)?쇼핑할 때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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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느끼는 자유와 해방의 상황은 아마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말하자면 다른 일상에서의 삶은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누릴 수 없더라도, 쇼핑을 하는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해방감을 느끼며 쇼핑몰을 산책하게 된다고 할 수 있을 듯.

– 이런 측면에서 쇼핑의 공간은 마치 ‘약국’과도 같은 곳.(아래 바우만 참조). 다시 말해 모든 일상의 괴로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의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 (물론 나의 구매력이 허락하는 한!)

2) 쇼핑몰이라는 동굴의 비밀(?)

– 하지만, 사실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즐기는 쇼핑의 순간은 그저 잠깐일 뿐이고 그때 느끼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해방의 감정도 결국에는 나의 구매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 이렇듯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쇼핑을 할 때, 또 쇼핑몰을 구경할 때 우리는 그럼에도 자유롭고 주체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성이라는 환상 : 독립적인 소비자. 합리적인 소비자. 주체적인 소비자) 말하자면 그 무엇에 의해(광고든, 마케팅이든 간에) 영향을 받아 소비를 한다고 하더라고(그렇다고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그런 선택을 하는 건 나의 결정이니까 나의 자유라고. 그렇기에 난 자유롭고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뭐 이런 식으로 우린 스스로의 자율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이데올로기적인 환상 : 이데올로기적인 원환성)

–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는 너무나 부자유스럽기 때문에. 예를 들어 일터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고, 정치 영역에서는 늘 전문 정치인들에게 지겹게 끌려 다녀야 하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일상의 부자유 공간에서 벗어나 쇼핑할 때만큼은 나의 자유를 누린다고도 할 수 있을 듯.

– 하지만 쇼핑의 공간과 쇼핑의 상황은 어쩌면 ‘플라톤의 동굴’과도 흡사하다. 마치 동굴 속 죄수들이 자신들 앞에 펼쳐지는 이미지들의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삶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상상하듯이, 현대의 소비자들도 쇼핑몰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이미지의 상품 세계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에서.

( ‘동굴’ 벽면에 펼쳐지는 이미지 세계 = 쇼핑몰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이미지의 상품 세계)

– 어쩌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푸코가 ‘현실에 감옥이 왜 존재하는지 아는가? 현실이 감옥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저기 감옥이 존재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쇼핑몰이 우리 주변에 멋지게 펼쳐져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미 쇼핑몰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 말하자면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이미 소비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소비지상주의 사회’라는 점을 은폐하기 위해서.

– 그렇다면 이런 동굴과도 같은 쇼핑몰에서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소비를 하며 살고 있다고 믿게 하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 지탱되고 있는 것일까?

– 바로 이런 논의가 ‘소비의 사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철학적, 사회적 논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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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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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익힘에서 기쁨을 찾다-인생을말하는『논어』 <논현정보도서관 행복한 고전읽기>3

배우고 익힘에서 기쁨을 찾다-인생을말하는『논어』?<논현정보도서관 행복한 고전읽기>3

구태환(상지대 강사)

 

이 글은 5월 20일?7시에 열린?<논현정보도서관 행복한 고전읽기> 세번째 강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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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익힘,?그리고 공자와?『논어』

우리나라의 성인들 대부분은 『논어』라는 책을 한 번은 접해봤을 것이다.그래서인지 『논어』의 첫 구절인?“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은 대부분 알고 있다.?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다는 것은 맞아.?하지만 공부가 얼마나 지겨운데.?배우고 익히는 게 기쁘다는 것이 말이 돼?’라고 말이다.?물론 멀리 있는 벗이 나를 보고자 찾아왔는데,?즐거워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그런데 배우고 익히는 것,?즉 학습(學習)은 진정으로 기쁘지 않은 것일까??여기에서 우리는『논어』 의 내용을 오해하고 있다.?여기에서‘배우고 익히는 것’은 반드시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읽기 싫은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다.?영어,?수학을 배우는 것도 배우는 것이지만,?수영,?오락,?기타,스케이트보드,?스키,?춤,?노래,?축구,?심지어는 화투를 배우는 것 역시 배우는 것이다.?그것이 재미있고 기쁘지 않다는 말인가??실제로 공자는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서 그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석 달간 고기 맛을 모를 정도로 심취했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논어』에는 언뜻 봐서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한 내용이 제법 있다.?물론 『논어』에 담긴 모든 말을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와 재전(再傳)?제자들이 공자와 그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이다.?공자(이름은 구丘)는 늙은 아버지와 어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경제적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그가 살았던 시기는 중국의 춘추시대였다.?춘추시대는 주나라의 종법제도(宗法制度)가 붕괴되고 힘을 상실한 천자를 대신해서 각국의 제후들이 중국 천하의 권력을 장악하려고 다투던 혼란기이다.?공자는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고 종법적 질서가 회복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이러한 공자의 노력은 각국을 돌아다니던 공자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그는?56세부터?68세까지 고국인 노나라를 떠나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나름의 천하를 평정할 방도를 역설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고,?공자는 자신의 뜻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오죽하면?‘도가 실행되지 않는 세상을 떠나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다니고 싶다’고까지 한다.?그리고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 임금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 조나라의 필힐이 부르자 그를 만나려 하고,?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당시에 국정을 좌우하는 여인으로서 평판이 좋지 않았던 위나라 군주의 아내인 남자(南子)를 만나기도 한다.?그리고 이런 행동 때문에 제자 자로(子路)로부터 욕을 먹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공자는 이처럼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노력했지만 자신의 뜻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결국?68세의 나이에 조국 노나라에 돌아와 학문과 교육에 힘쓰다.

 

학습의 내용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는 학습의 내용은 무엇일까??사마천의『사기』?에 의하면,?공자의 제자는 약?3,000명이고 그 가운데?‘육예(六藝)’에 통달한(通)이가?72명이었다고 한다.?그렇다면 공자의 학습 내용은?‘육예’였던 셈인데, ‘육예’는 예(禮,?예의범절),?악(樂,?음악),?사(射,?활쏘기),?어(御,?말이나 수레 몰기),?서(書,?글쓰기),?수(數,?셈하기)를 말한다.?이 여섯 가지는 당시의 지배층이 습득해야 교양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이 있다.?육예에?‘통달했다’는 것이다.

통달했다는 것은 단순하게 어떤 것을 배우고 익혔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의 원리까지 체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즉 학습의 궁극의 경지이다.?예컨대 조상에 대한 제사나 부모에 대한 삼년상은 예의 중요한 항목이다.?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례나 상례를 치룰 때 그러한 의식을 왜 거행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답습한 대로 실행할 뿐이다.?하지만 공자는 제례나 상례가 조상과 부모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의식임을 밝히고 있다.?어떤 의식에 통달했다는 것은 그것을 실천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의식의 연원이 무엇인지를 궁구하여 밝히고 이해하는 것이다.?그리고 겉모습으로서의 예의만이 아니라 그 예를 실행할 때의 마음가짐까지 갖추게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그리고 이러한 교양은 지배층이 습득해야 할 것이다.

 

배움의 목적,?군자

DSC09035-1사실 공자가 개창한 유가 사상은 일반 백성들을 위한 사상이 아니다.?지금과는 달리 신분제 사회였던 과거에 일반 백성은 그 사회의 주인이 아니었다.그 사회의 주인은 임금을 비롯한 소수의 지배층이었던 것이다.?그리고 유가 사상은 사회의 주인인 이들 지배층이 어떻게 하면 일반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려나갈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공자가 보기에는 이들 지배층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했다.?그리고 배움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들 지배층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군자(君子)’이다.?우리는 흔히?‘군자’라고 하면, ‘도덕군자’, ‘성인군자’를 연상하며,?도덕적 인격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한다.?하지만?‘군자’는 글자 그대로 임금(君)의 아들(子),?즉 지배층이다.?그런데 공자는 이 용어를 지배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말 그대로 지배층이다.?계강자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선해지고자 하면 백성들이 선해질 것입니다.?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으니,?풀 위에 바람이 불면(풀은)?반드시 눕게 됩니다.”?지배층이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면,?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이,?백성들도 그를 모델로 하여 선해질 것이라는 말이다.?이처럼 군자를 지배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공자 이전에는 당연한 것이었다.?그런데 공자는 이 개념을 변용한다.

공자는 지배층을 가리키는?‘군자’를 군자다운 덕목을 가진 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바꿔놓은 것이다.?그는 군자를 이야기할 때 원래는 피지배층을 가리키는 개념인?‘소인(小人)’과 대비해서 말하고 있는데,?그 중 하나가?“군자는 옳음에 밝고,?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말이다.?이것을 현대어로 바꾸면, ‘지배층은 무엇이 옳은가에 관심을 갖고,?피지배층은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가 된다.

그런데 공자의 이러한 언명은 사실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당위를 말하고 있다. ‘착한 어린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가 실제로는?‘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는 의미를 갖는 것처럼 말이다.?위의 언명도?“군자(지배층)는 옳음에 밝고,?소인(피지배층)은 이익에 밝다”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문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지배층은 옳음에 밝아야 하고,?피지배층은 이익에 밝아야 한다”로 읽힐 수 있다.?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옳음에 밝아야 지배층 자격이 있고,?이익에 밝은 이는 피지배층일 뿐이다”?라는 말이 된다.?이는 옳음,?사회적 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당시의 지배층에 대한 공자의 질타이다.

 

군자의 모습

공자가 말하는 배움이 진정

DSC09029-1한 군자가 되기 위한 것이라면,?그러한 군자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비교적 잘 알려진 구절로는?“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는 못한다)를 들 수 있다.?여기에서
의?‘화’는 조화나 화합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이러한 조화나 화합은 기본적으로 다른 것들 사이에 가능하다.마치 오케스트라의 여러 다른 악기들이 각각의 음을 내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듯이,?지배층다운 덕목을 가진 사람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타인과 조화하여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낸다.?이처럼 서로 화합하고 조화하는 그들이지만,?결코 권력과 이익이 있는 곳으로 몰려가서 힘 있는 이의 견해에 무조건 동조하는 소인배 같은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각기 다른 입장을 갖는 이들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커다란 원칙이 필요할 것이다.?즉 이들도 서로간에 다름 속에서도 공통적인 무엇인가가 있어야 그 안에서 조화할 수 있을 것이다.?공자의 사상에서 그러한 원칙은 인(仁)과 예(禮)라고 할 수 있다.?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인)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사랑을 표현해내는 수단(예)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을 공자는 꾸밈과 바탕의 적절한 조화라고 한다. “子曰,?質勝文則野,?文

勝質則史.?文質彬彬,?然後君子.(공자가 말했다.바탕이 꾸밈을 넘어서면 야만인이고,?꾸밈이 바탕을 넘어서면 문서를 다루는 관료이다.?꾸밈과 바탕이 아름답게 조화된 다음에야 군자가 된다)”는 문장에서 바탕(질)이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즉 인이고,?꾸밈(문)이란 사랑의 표현,?즉 예이다.?이처럼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군자인 것이다.

이러한 군자,?즉 지배층다운 덕목을 가진 사람이 현실에서 지배층이 되어 백성들을 다스린다면,?우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그리고 그 사랑을 적절히 표현할 제도를 마련할 것이다.?만약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백성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백성들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것을 제도로써 표현해야 할 것이다.?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제도만 내놓는다면,?그 제도는 아마도 백성들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얻기 위한 것이거나 눈앞에 닥친 정치적 곤경을 순간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하지만 그러한 제도가 백성들의 삶에 도움이 될 리는 만무하다.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을 꿈꾸다

앞에서 보았듯이 공자가 말하는 학습은 바로 군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공자는 그러한 군자가 세상을 다스리기를 바랐으며,?그러한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은 평화롭고 도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군자는 누구인가??우리 시대는 신분제를 거부한다.모든 사람이 평등하며,?헌법에도 나와 있듯이?‘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즉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주인인 사회를 지향한다.?신분상으로 봤을 때 우리 사회의 모든 성원이 군자,?즉 이 사회의 지배층인 것이다.?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군자들은 누구를 다스리는가?바로 우리다.?우리는 각자가 군자이면서 소인이다.?이제는 신분상의 군자,소인은 무의미해졌다.?다만 각자의 관심에 따라,?즉 각자의 이익을 추구할 것인가 사회의 정의를 추구할 것인가에 따라 소인과 군자가 나뉠 뿐이다.어찌 보면 공자가 생각했던 것이 실현된 사회이다.

자기들을 지배층이라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지배층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지배에 따라 사는 소인이 될 것인지,?스스로가 군자인 지배층이 되어 소수의 관료들을 심부름꾼으로 부리고 살 것인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시대이다.

 

 

논현정보도서관 다음 강의는 6월 17일 주인으로 살아가기-맹자의 『호통』?:?구태환(상지대 강사)입니다. ?

 

거짓 원인의 오류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거짓 원인의 오류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학생들에게?Argumentation Theory를 가르치다 보면 논리학의?’오류론’을 한 번은 꼭 다룬다.?그런데 이 오류 론에는?’형식적 오류’와?’비형식적 오류’가 다 포함된다.?형식적 오류는 형식적 규칙을 위배했는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니까 그 규칙만 알면 비교적 판별하기가 쉽다.?마치 도로 교통에서 신호 위반이나 과속의 경우 규칙 위반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그런데 일상 언어에서는 형식이 아닌 내용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때로는 이 오류를 일정한 효과를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재판정에서 피의자가 눈물 흘리면서 동정심에 호소하는 경우가 전형적이다.?그가 한 행위와 그의 처지는 별개지만 눈물은 이 둘을 연결시켜줘서 정상참작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소크라테스도?『변명』에 보면 이런?’연민에의 호소’를 한다. “친구여,?저도 사람입니다.?다른 사람과 똑같습니다.?저도 호머의 말처럼 목석으로 된 인간이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고,?식구도 있고,?아들도 셋 이예요.”?찔러도 피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소크라테스 조차 마누라와 자식새끼를 앞세우며 선처를 구하는 것이다.?김 시습의?’자지는 만지고,?보지는 조지라'(自知晩知 補知早知)는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로 혼용되는 우리 일상어의 애매성을 노린 위트 효과다.?서당에서 열심히 글을 읽는 아이들 모습이 기특해 큰 소리로 한 수 읊었더니 서당의 훈장 이하 아이들이 욕하는 줄 알고 달려들었다는 것이다.?사실은 김 시습 자신이 왔는데도 내다보지도 않는 모습에 부아가 나서 야유를 한 것이리라.?스스로 알려고 하면 늦게 알고,?도움을 받아 알려고 하면 일찍 안다는 말이다.?선거철만 되면 흑색선전이 난무하고,?온갖 비리들이 폭로되는 경우가 있다.?전형적인 물 타기 방식이요,?피장파장의 오류이다.?종종?’예수 믿으시오’?하면서 확성기로 떠들고 앞뒤로는?’불신지옥’?간판을 달고 다니는데 이는 흑백논리의 오류이다.?신이 이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했는데 그들은 흑과 백이라는 두 가지 색깔로만 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신의 창조물을 왜곡하는 저들이 오히려 불신하는 것은 아닐까??이런 단순화가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에 종종 정치인들이나 대중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쉽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때문에 이런 형태의 오류는 무조건 틀렸으니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만 말하기 어렵다.?그 중에 하나가?’거짓 원인의 오류’이다.

이 오류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필연성이 없음에도 마치 있는 것처럼 상정하는 오류다.?예전에 마당이 있던 시절 여름날 열심히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었는데 소나기가 내린다고 생각해 보라.?또 그런 불편한 경험을 두 어 차례 반복해보라.?그러니까 나오는 엄마들의 소리가?’빨래만 하면 비가 온다’는 것이다.?여러분들은 세차를 할 때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는가??세차만 하면 비가 온다고…사실 빨래를 널거나 세차를 하는 사건과 비가 온다는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음에도 우리의 연상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개들만 조건 반사하는 것이 아니다.?전라도 사람이 어떻고,?경상도 사람이 어떻고 하는 것도 사실 그 사람 자체와 그의 출신 지역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다.?중세의 마녀사냥이나 나치가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한국 정치에서 늘 반복이 되는 종북 놀이도 그 한 예이다.?과거 왕조시대에 여름 날 가뭄이 심하면 왕이 나서서 기우제를 지냈다.?자연재해와 인간의 도덕적 책임 간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믿는가??동양의 전통적인 천인합일의 사상에서는 양자는 연결되어 있고 상호 조응한다고 본다.?이 형이상학적 가설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은근슬쩍 학생들한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기우제를 지내면 실제로 비가 올까요 안 올까요?”?학생들은 당연히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질문을 받으면 당황 하면서 여러 가지 답변을 내놓는다. ‘안 옵니다.’?사실 이런 답변이 합리적이다.?그런데 배운 것이 죄라고,?어떤 학생은 기우제를 지내면 연기가 하늘로 많이 올라가 비가 내린다고 나름 과학적으로 답변하는 경우도 있다.?마른하늘에 그 한 조각구름이 무슨 큰 역할을 하겠는가??하지만 정답은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왜 그럴까??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니까…

일전에 송 강호,?김 혜수가 주연한?<관상>이라는 영화가 히트를 친 적이 있다.?병약한 문종이 관상쟁이를 통해 역모의 상을 미리 알아 단종의 보위를 지키려다 실패하는 이야기다.?수양의 상은 전형적으로 역모의 상이라고 한다.?역모는 당시 정치 상황을 꿰뚫고 있다면 충분히 예측 가능할 것이다.?관상쟁이의 판단은 다만 사람들에게 합리적 예측에 대해 신념과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데 적격이다.?꿈보다 해몽이고 후행적 정당화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관상은 얼굴에 드러난 상을 통해 그 사람의 과거/현재/미래를 본다는 것인데 사실 가당찮은 이야기일까??드러난 상은 과거를 일정하게 반영할 수 있고,?그 과거를 통해 미래를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다.?그리고 이런 판단은 상당히 경험적이고 통계적이다.?게다가 오랜 숙련을 통해 통계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과학적인 통계가 부족하던 시절의 경험적 통계학이다.?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에서는 외양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신뢰도가 있다.?나도 그렇게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동양의?12지 이론을 가지고 사람들을 일정하게 그 유형에 포함시켜 판단하는 것이다.?예전에 노무현과 이회창이 대통령 선거로 대립할 때 다들 이 회창을 독수리 상이라고 했는데,?나는 쥐 상이다고 하고 노 무현 상이 호랑이 상이다고 어거지 부린 적이 있다.?사실 이런 포괄적 분류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아무튼 이걸 가지고 학생들이 많이 떠들면?”?너희들 다 보인다.?미래가”?라고 엄포주면 서로 봐달라고 하면서 조용해진다.?학생들은 나의 합리적 이론보다는 그런 불합리하고 비합리적인 속설에 더 반응한다.?학자가 하는 애기보다 사주 봐주는 점쟁이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듣지 않는가??일종의 심리적 효과이고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이다.?서양에서도?19세기 초에 이런 형태의 관상학과 골상학이 유행한 적이 있다.?용모와 안색,?얼굴에 드러난 특성 등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다.?외면이 내면을 반영한다는 생각이다.?특히 범죄인의 성향과 유형을 판단하는 데 골상학이 상당히 이용되기도 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비 과학으로 더는 과학의 반열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외면으로 드러난 특질,?뼈의 구조와 배치 등이 내면의 정신과 필연적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동양에서는 관상보다는 골상이요,?골상 보다는 심상이라고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안에 감추어진 마음을 더 높이 사고 있다.?나는 아직도?”정신은 뼈다”라는 말의 의미를 묻고 있다.

현 정부 들어 크고 작은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그 중에서도 세월 호 사건은 너무도 큰 참사인데다 현재까지도 진행형의 사건이다.?얼마 전에는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양 터미널에서 화재가 나?7명이 죽고 수 십 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시민들이 일상으로 이용하는 시설에서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는 것은 큰 충격이 될 수 있다.?전남 장성의 한 요양원에서는 화재가 놔 요양 노인들?21명이 불에 타고 연기에 질식돼서 죽는 사고도 났다.?그런데 이처럼 빈발하는 사고의 형태가 과거 김 영삼 대통령 시절을 연상케 하고 있다.?당시의 대형사고 몇 가지만 손꼽아도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사망292명),?대구 지하철 가스 사고(98명 사명),?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사망500여명), KAL기 괌 추락사고(228명 사망),?성수대교 붕괴사고(32명 사망)이다.?하나 만으로도 엄청난 데 이런 대형 사고가 부지기수로 터지니까 국민들이 받는 체감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그러니까 영부인의 상이 곡상(哭象)이라 국민들의 눈물을 많이 뺀다는 말이 돌았다.?영부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들어가고 나온 굴곡(屈谷)이 없지는 않다.?뒤의 곡(谷)을 앞의 곡(哭)으로 치환한 것이다.?어느 유명한 관상가의 말이라고 했다.?물리적인 사고와 대통령 영부인의 상간에 인과관계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마는 관상가들의 그런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가 대중들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저항 없이 자리 잡기도 한다.?김 영삼 정부 말에 초유의?IMF?위기를 맞았으니 더 그 말의 울림이 더 크다.?전형적인?‘거짓 원인의 오류’이지만 국민들의 집단 연상의 메카니즘 속에서는 필연성이 있다는 믿음이다.?혹세무민은 바로 이런 틈을 파고든다. “어,?그러고 보니 박 근혜 상도 만만찮아.?눈물 꽤 짜내게 생겼네.?편안한 상이 아니여…”

 

신기욱의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철학자의 서재]

신기욱의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철학자의 서재]

이병수(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역사적으로 각인된, 우연한, 경쟁적”이라는 분석틀

 

▲ (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창비 펴냄) ⓒ창비

▲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창비 펴냄) ⓒ창비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창비 펴냄)는 미국에서 한국학 연구의 중심인물로 활동하고 있는 스탠포드대학교 신기욱 교수의 2006년 저서(『Ethnic Nationalism in Korea: Genealogy, Politics, and Legacy』)를 2009년 창비에서 번역 출간한 책이다.

저자 신기욱은 서문에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혈연에 기초한 단일민족주의 내지는 의식”이며 “한국인의 단일민족주의를 이해하지 않고는 20세기 한국사회와 정치의 변화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한 저자는 단일한 민족의식이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가를 질문하면서 그 역사적 형성과정을 확인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집합적 정체성들 가운데 어째서 공통의 혈통을 강조하는 종족적 민족주의로 귀착했느냐를 탐문한다.

요컨대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를 혈연에 기반을 둔 종족적 민족주의로 보면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 그리고 기능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한국 민족주의의 억압적, 배타적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되면서 민족주의 논쟁이 전개되었지만 한국 민족주의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실증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서구의 민족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19세기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근현대사의 구체적인 전개과정에 기반을 두고 한국 민족주의를 논하고 있다. 서구의 민족이론에 더불어 한반도 근현대사의 역사적 경험들을 동시에 섭렵함으로써 이론적 고찰과 경험적 자료의 활용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주류 민족이론들의 한반도적 적합성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는 특히 민족의 기원에 대한 원초주의적 견해와 근대주의적 견해의 한계점들을 극복하려는 저자의 시도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견해를, 첫째 단일한 혈통을 자연적이고 운명적으로 간주하는 원초주의적 견해, 둘째 한민족을 조선왕조 말기에 도입된 근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는 근대주의적 견해, 셋째 두 입장을 논박하며 서구와는 다른 한민족의 역사적 경험의 특수성(장기간의 중앙집권적 국가 등선재하는 역사적 유산)을 강조하는 견해 세 가지로 정리한다. 그는 세 입장이 모두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면서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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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민족 형성의 “결정적 요소”로 보는가? 저자에 따르면 우연한 민족의 구성에서 결정적 요소는 경쟁적인 정치의 결과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분석틀을 “민족은 특히 대내외의 논쟁적인 정치의 결과, 역사적으로 각인되고 구조적으로 우연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구조의 산물”로 요약한다.

요컨대 저자의 입장은 전근대적 유래를 지닌 종족적 유산의 규정력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역사적 각인) 위의 두 번째 견해와 차이가 나며, 그 규정력을 약화시켜 우연적으로 본다는 측면에서(우연한 상황) 세 번째 견해와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 역사적 각인과 우연한 상황을 정당화하는 민족 형성의 결정적 요소가 “이중적인 경쟁적 논쟁”이다.

그는 민족개념이 처음부터 혈통에 기반을 두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면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종족적으로 되어가는 역사과정을 이중적 경쟁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민족은 인종, 계급 등 초민족적인 집단 정체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민족개념에 대한 여러 해석들 가운데 종족적 민족개념이 경쟁에서 이겨 지배적인 것으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즉, “20세기에 인종지향적인 한민족 개념이 출현하고 지배하게 된 것은 민족세력과 초민족 세력 사이의 논쟁과 민족 개념에 대한 논쟁이라는 이원적 논쟁과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민족적인 것과 초민족적인 것의 경쟁, 민족개념 자체를 둘러싼 경쟁이라는 이중적인 경쟁의 틀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저자의 “역사적으로 각인된, 우연한, 경쟁적”이라는 분석틀은 매력적이지만 그 분석틀의 성공 유무는 일차적으로 이런 이중적 논쟁이 한반도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과 합치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적 사실과의 합치 여부보다는 이 책의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규정과 “종족성과 시민성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관점,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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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적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선 저자는 종족적 민족주의를 혈통에 바탕을 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족개념에 대한 우리의 통념적 이해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현재 우리의 종족성이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는 강한 혈통주의적 특징(더불어 대한민국 중심주의)을 지닌 재외동포재단법에서 찾을 수 있다.

 

“‘재외동포’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이거나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거주,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재외동포재단법, 제2조)

 

▲ 단재 신채호

▲ 단재 신채호

그러나 식민지 시기 민족담론은 아직 혈통적 단일성에로 한정된 민족주의적 지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학자들은 다종족설을 상식으로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다종족 구성, 주종족 주도론’은 일찍이 한말에 신채호가 ‘독사신론’에서 말한 바 있다. 단일한 혈통에 기초한 민족이라는 ‘단일민족론’은 해방 이후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이는 해방 후 국내외적 정세가 민족분단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운데 단일민족은 결코 분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혈연을 중심으로 한 단일민족설보다는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종족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종족적 민족주의의 성격이 강하다고 표현할 경우, 그것은 혈연보다는 풍속·습관과 같은 문화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를 뜻하는 방향에서 사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다음으로, 저자는 종족적 민족주의를 통해 20세기 한반도에서 등장한 다양한 민족주의를 통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족성의 전일적 지배를 강조하는 저자는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적 현상을 획일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를 종족적 민족주의와 동일시하는 과도한 환원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백남운, 이광수, 김일성, 박정희의 민족주의는 혈연에 기반을 둔 종족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등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자기완결적인 논리구조를 갖추지 못한 채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이차적 이데올로기이며, 진보성과 아울러 침략성의 양면성을 갖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민족주의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특징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해방 후 한반도에는 남북한 각각의 국가에 의해 주도된 두 개의 국가주의적 민족주의, 그에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민중이 주체가 된 민중주의적 민족주의 등 다양한 민족담론이 존재한다.

이처럼 종족적 민족개념은 사회주의, 자유주의, 국가주의와 모두 결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종족적 민족개념이 마치 불변적으로 지속되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정치적, 이념적 지향성을 무시한 채 혈연적 종족성이라는 유사성을 근거로 20세기 한반도에 등장한 다양한 민족주의를 통시적으로 적용, 평가하는 시각은 역사적 다양성을 배제하는 과도한 환원주의로 여겨진다.

셋째, 저자는 종족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능을 축복이자 저주인 “양날의 칼”로 설명하면서 서구의 주요 민족주의 이론들의 한반도적 적합성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스 콘 이래 서구의 민족주의 연구자들은 정치적 민족주의를 시민적, 통합적, 건설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 종족민족주의를 위험하고,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보는 강한 전통이 있다. 저자는 유럽적 경험에 바탕을 둔 이러한 이분법적인 본질주의 시각이 한국의 종족 민족주의가 지닌 다양하고 복잡한 역할과 기능을 간과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한반도 역사에서 종족 민족주의는 일제하 반식민주의의 기능을 했고, 남북의 근대화 과정에서 통합적 기능을 수행했으며, 나아가 통일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두 체제의 부드러운 통합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축복) 그러나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중요한 정체성들을 억압했고, 자유주의의 빈곤을 초래했으며, 남북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저주)

그러나 “양날의 칼”의 비유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 곳곳에 되풀이해서 종족 정체성의 부정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시민적 민족정체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혈통 중심의 민족 개념을 재고해야 한다. 외국인 이주민과 혈통을 떠나 민주국가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적 민족 정체성’이 필요하다.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 논리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시민 정체성과 종족 정체성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종족 정체성의 양면적인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도처에서 시민적 정체성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 과연 저자가 한스 콘 이래의 본질주의적 시각을 제대로 극복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문제는 종족성과 시민성이 결합될 수 없다는 그의 관점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종족성과 시민성의 결합을 위하여

 

‘민족’은 순전히 언어, 역사 등의 문화적 단위로도, 순전히 정치적 단위로도 정의될 수 없으며, 양자가 결합한 범주로 이해될 수 있다. 민족의 역사는 정치공동체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지만, 민족은 정치 공동체로 환원되지 않는 종족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현실에서 모든 민족은 종족적 특성들과 시민적 특성들을 동시에 갖게 마련이다. 종족성과 시민성은 서구의 민족국가에서도 한 번도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양자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종족성을 배제하고 시민성을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지닌 한계는 분명하다. ‘시민 민족주의’에서와 같이 시민성을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전략이 현실적 차원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는 종족적인 기반에 의한 동기부여 없이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연합은 추진력을 갖고 실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족적 민족”(ethnic nations)과 “시민적 민족”(civic nations)의 구분 시도는 우리 학계의 민족논의에서 종족적 민족개념이 한국 민족주의의 성격을 강력히 주조(배타성과 획일성)했다는 점만 부각시키는 경향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종족성이 중요한 행위의 원천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 어떤 정치적 행위를 낳는 것은 아니다. 종족성은 당대의 정치적 조건과 불가분하게 엮여 있으며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결합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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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여러 민족주의의 정치적, 이념적 지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족적 민족개념이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예컨대 지배세력의 공식적 민족 개념과 1980년대의 민중적 민족주의는 “민족의 종족적 토대에는 동의했지만, 민족에 대한 정치적 개념이 전혀 달랐”다. 정치적 민족 개념이 달랐을지라도 종족적 민족성의 토대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직 정치적 양상만이 논쟁의 대상이었을 뿐, 양자는 동일한 종족적 개념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족성과 정치 공동체가 한 번도 일치해 본적이 없는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는 특정 민족주의 개념의 지배를 위협하는 근본 요인이자 시민적 민족과 종족적 민족의 이분법의 적용불가능성을 보여준다. 20세기 한반도의 종족 정체성은 특정한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서 다양하게 변용되었다. 따라서 남북 그리고 디아스포라는 기존의 민족 정체성 모델에 딱 들어맞게 이해될 수 없다. 문화적 다양성과 민주적 권리를 강조하는 시민적 정체성이나 혈연 언어 전통 등을 강조하는 종족적 정체성은 그 어느 것도 20세기 한반도 역사에서 진행되어온 다양한 국적, 법적 지위, 언어차이, 관습의 현지화 등 민족 정체성의 다양한 변용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민족 정체성은 종족적 요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해당 거주국(남과 북 그리고 해외 디아스포라)의 정치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남과 북은 과거의 문화전통 가운데에서 각자의 정치 경제적 체제에 맞는 국민적, 인민적 서사들을 교육과 언론매체를 활용한 국가주의적 기획 아래 동원하였다. 분단은 남북 모두 민족 내부의 적대적 타자라는 의미를 상대에게 부여하였고, 민족 서사와 민족 문화의 정체성에 균열을 가져왔다. 북은 사회주의 대가족 제도를 주장하면서 한민족의 혈통을 강조해 김일성에 대한 충효 그리고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를 위한 도구로 민족주의를 활용했다. 남 역시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대한민국 민족주의’가 강화되어왔다. 해외 디아스포라 역시 해당 거주국의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서 종족 정체성의 상당한 변용을 겪었다. 거주국 정치 경제 체제의 객관적 조건에 제약되면서 디아스포라는 자신의 생존과 적응을 위해 특정 전통을 선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종족 정체성을 재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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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개인의 자유와 시민적 성장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민족 이해에서 종족성을 배제하려는 논리는 한반도와 해외 디아스포라의의 복합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면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민족을 정치 공동체로만 규정할 경우, 중국 조선족은 중국민족이며,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조선인은 일본민족이며,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필리핀 이주 여성은 한국 민족이며, 북한 주민은 한 때 같은 민족이었지만 정치 공동체가 상이한 이상, 더 이상 한국 민족이 아니게 된다. 이런 논리가 복합적 정체성 때문에 실존적 고민과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남과 북의 주민 그리고 디아스포라 당사자들에게 과연 납득될 수 있을까?

▲ 1998년 월드컵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응원 중인 붉은 악마ⓒhttp://blog.gwangju2015.kr/trackback/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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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민족은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며, 종족적 민족은 피해의식과 인종주의적 폐쇄성을 지닌다는 이분법적인 접근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교차하고 있는 종족 정체성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정치 경제 공동체를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종족성을 부인하고 시민적 연대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성과 시민성을 결합하려는 사유이다.

종족적 정체성과 정치적 정체성의 결합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한반도의 종족 정체성이 특정한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서 다양하게 변용된 사실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20세기의 한반도 역사에서 비롯된 종족 정체성의 다양한 변용들을 단일 정체성으로 통합해야 할 정체성의 분열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민족 개념을 사유하는 출발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민족개념을 사유한다는 것은 단일한 민족국가를 추구하는 기존 민족주의의 틀이나 민족국가를 해체하는 탈민족주의의 틀이 아니라, 식민주의적 억압과 남북의 적대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는 자주적 민족국가를 지향하면서도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담은 정치 공동체를 사유하는 사회 철학적 과제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다. 달리 말해 이는 남과 북이든 특정 공동체에 의한 민족개념의 일방적 전유가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적 틀을 넘어 남과 북 그리고 디아스포라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전망과 관련된다.

 

 

 

 

 

대통령의 악수와 소통의 문제[이종철의 세상보기철학]

대통령의 악수와 소통의 문제 [이종철의 세상보기철학]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1.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는데 거부하는 나라..어이가 없네. 사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보통 사람도 악수를 청했는데 거절 당하면 불쾌한데,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인데…이쯤되면 막나가자는 것이 아닌가? 이걸 그냥 둬, 말어.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잘 못 건드리면 또 벌떼 처럼 달려붙을 텐데…사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 놓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를 얼마나 희화화했는가? 현 권력의 핵심 실세는 아예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싸이코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배우 분장을 하고 그런 싸이코적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아랫것들이라고 배우지 말란 법이 있는가? 모 눈에는 모만 보인다고, 서로 막말이나 막가는 태도로 상대를 깍아 내리다 보니 이제 막 돼먹은 집의 망나니같은 아이들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모 그런 것을 정색하듯 따지나…그래도 대한 민국의 미래를 해서 탈 권위주의 시대의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박 근혜 정부를 ‘불통정부’라 부르는 이가 많다. 국민과의 소통이 적고 권위주의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굳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많은 리더들이 이런 비판에 대하면서 억울해 할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아랫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노력했고, 또 그들보고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노력을 했어도 아래 사람들이 별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말 해, 얼마든지, 다 들어 줄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왠지 고압적이고 권위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말 잘못하면 경을 칠 일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것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자리 깔아줬다고 함부로 입을 나블대다 가는 신세 조질 수도 있다. 그러니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느냐를 먼저 판단할 일이다. 종종 TV를 통해 청와대에서 고위 공직자들을 모아다 놓고 회의하는 장면을 보면 가관이다. 수첩 공주 흉내를 내느라고 다들 열심히 펜을 들고 받아쓰기 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회의 참석 전에 관련 문건들을 검토도 하고 오지 않는지 궁금하다. 웬만한 기업이면 다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모든 문건들을 등급별로 공유하고 있다. 청와대의 내부 시스템은 다른 어떤 기업들보다 최상급일 텐데 그들은 여전히 종이와 연필을 들고 대통령의 목소리를 받아쓰는 데 정신이 없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목소리는 가신들의 영혼에 각인되는 아버지 남성의 목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 2012년 대선 시 연세대 심리학과의 황상민 교수가 박근혜 후보보고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말을 했다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고위 공직자들도 제 말을 못하는 분위기에서 국민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말로는 연일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야말로 꽉 막혀 있다. 불통이 되다 보면 오해도 심해지고 갈등도 많아진다.

?그림을 한 번 보자. 유명한 Matisse의 그림이다. 그림 속의 남자는 고압적으로 서서 여자를 내려다 보고 있다. 반면 여자는 의자에 앉아서 남자를 올려다 보고 있다. 이런 눈높이의 차이는 권력 관계를 반영하기도 한다. 시선으로 제압할 때는 대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때이다. 그래서 팽팽한 기 싸움 할 때 상대방 보고 눈 내리까라고 겁준다. 게다가 남자의 손은 주머니 속에 꽂혀 있다. 여자에게 다가 가려는 태도가 아니다.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데서 그만큼 여자의 감정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인다. 그렇길래 여자는 의자에 갇혀서 남자의 처분만 기다리는 것 같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그림의 제목은 대화(Conversation)이다. 대화라면 당연히 서로의 눈높이도 맞추고, 거리도 줄이고, 주머니에서 손도 빼 상대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이 그림은 역설적으로 ‘대화의 부재’를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여자는 그런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남자의 일방통행 식의 하명을 거부할 도리가 없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침묵하는 것뿐이다. 이런 여자의 마음은 분위기로, 즉 그들 간의 마음이 교류되는 창의 창살로 표현된다. 창살에는 non이 표시되어 있다. 당신이 아무리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도 내 마음은 ‘아니예요’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역설적인 그림을 통해 대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대화는 소통이다.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아니 그 전에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불통인 상황에서 갑자기 고압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은 폭력일 수도 있지 않은가? 무조건 말하자고, 네 말을 다 들어주겠다고 말만 하지 말고 말을 할 수 있는 눈높이, 거리, 자세를 먼저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이 그림이 주제에 충실하려면 남자가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여자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그런 제스처를 취하기 힘들면 적어도 다른 의자를 가져와 무릎을 맞대고 서로의 눈을 맞추면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종종 강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그렇게 하면 밑에서 올려다 보는 사람은 더 감동할 수 있지 않을까??

무릇 소통은 되먹임이고 순환이다. 순환이란 높은 것이 낮아지고 낮은 것이 올라가는 것, 혹은 외부가 내부로, 내부가 외부로의 전환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정체는 이런 입출력의 균형이 깨어질 때 나타난다. 맛있는 것을 죽도록 많이 먹어도 변비로 배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을 맛이리라. 로마의 귀족들은 아래로 배설이 안되니까 어거지로 구토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성찬을 즐기면서 바로 옆에다가 그것을 토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하지만 입출력의 자연스러운 균형이 파괴되면 신체의 건강도 깨진다. 현대인의 비만은 대개는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서 너무 적게 배설하는 데서 나온다. 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늙은 생명의 죽음도 그렇게 이해한다. 이런 입출력의 균형이 깨어지면 사회 생태계도 깨질 수밖에 없다. 오래 사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다고 본다. 좋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삶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이다. 그것이 반드시 오래 사는 것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2. 동양의 오랜 철학서인 <주역>에도 이런 소통에 관한 괘가 있다. <주역>은 점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중국인들의 오랜 경험이 녹아진 자연관, 우주관을 특별히 괘(卦)라는 일종의 이미지(象)를 통해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미지는 마구잡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극에서 음과 양이 나오고, 이 음양으로부터 4상이 나오고 하는 식의 ‘이치 논리’의 일정한 규칙을 띠고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총 64가지의 괘가 만들어지고, 이 괘를 통해 인간사와 우주 자연사를 설명한다. 이 중에 ‘천지비'(天地否)(왼쪽 그림)와 ‘지천태'(地天泰)(오른 쪽 그림)라고 하는 두 가지 괘가 있다. 이 두 괘는 모두 하늘과 땅이 중첩된 형상을 하고 있다. 천은 하늘이고, 남자이고, 왕이고 하는 것이다. 반면 곤은 땅(地)이고, 여자이고, 백성이고 한다. 만일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고려한다면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남자가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식이다. 왕은 위에서 다스리고? 백성은 아래서 다스림을 받는다. 그래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괘가 천지비이다. 그런데 이 괘를 설명한 것을 보면 象曰 天地不交이다. 천지가 불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괘를 얻으면 아주 좋지 않다. 불통이라 함으로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폐색되어 있다는 의미다. 장 폐색 때문에 장이 썩는 질병을 생각하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입출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오히려 불통해서 폐색한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반면 이 괘를 뒤집어 놓은 것이 지천태이다. 이것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습이다. 오히려 이것은 자연의 질서, 사물의 질서, 사회의 질서 등이 전도된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이 괘의 설명을 보면 이렇다. 象曰 天地交泰 상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태평하다. 전도된 형태가 오히려 화합과 교류가 잘 이루어져 태평하고 번성한다는 의미다. 이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천지의 관계, 임금과 백성의 관계, 남자와 여자의 관계,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오히려 정상적 형태의 관계 보다는 전도되고 역전된 관계에 있을 때 더 소통이 잘 된다고 하는 것이다.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그 원리는 아주 단순하다. 양기는 위로 올라가고 음기는 아래로 가라 앉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을 상징하는 하늘이 아래에 있고, 음을 상징하는 땅이 위에 있다면, 양기는 위로 올라가고 음기는 아래로 내려와서 서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은가? 인간을 위시한 우주 만물의 모든 건강은 이런 자연스런 소통에 기초해 있다.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을 따뜻하게 하라는 것도 이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동양의 모든 양생 수련법은 수승화강(水升火降)이 기초다. 즉 물의 기운인 음기는 위로 끌어 올리고, 불의 기운인 양기는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이런 소통이 잘 이루어질 때 신체의 건강이 유지될 수 있다. 책을 많이 보거나 머리를 많이 쓰면 머리에 열이 많이 난다. 열이 나면 골도 아프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수행을 잘 못 하다 보면 이렇게 양기가 위로 뻗쳐 며칠씩 잠을 못 자서 나중에 머리가 도는 경우가 있다. 주화입마(走火入魔)나 상기증(上氣)이 그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미친 사람들을 몇 번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런건지 옛날 선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책을 한 권 마칠 때마다 반드시 책 걸이 행사를 한다. 이 책 걸이는 음주가무로 노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공부 때문에 위로 뻗친 기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라 해도 좋다. 특히 이런 기가 머리로 뻗쳐서 통제가 안 될 때는 육체 노동을 강도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 문호 톨스토이는 통제할 수 없는 이런 양기(성욕)를 풀기 위해 생활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으로 대신했다. 그래서 종종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육체노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은 독서나 음악 감상 등 정신노동으로 푸는 것이 이상적이다. 정신과 육체의 통일의 원리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양과 음은 사물의 고정불변하는 속성이 아니다. 양과 음은 관계 속에서 주어지며, 이러한 속성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과 소멸을 반복한다. 우리 태극기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음이 커지면 양으로 변하고, 양이 커지면 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 논리 속에서 음과 양의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남자는 존엄하고 여자는 비천하다는 남존여비의 사상도 남과 여를 불변적 속성으로 생각하는 데서 나온 오류이다. 동양의 전형적인 새옹지마의 논리가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지천태의 좋은 괘도 방심하면 나빠질 수 있고, 천지비의 나쁜 괘도 대비를 하고 개혁을 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좋은 것도 없다. 정치에서 여-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여이지 불변하는 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야가 될 수 있으며, 야 또한 불변하는 야가 아니다. 국민의 지지 여하에 따라 여야의 관계가 결정된다. 그런데 종종 정치인들은 이런 권력의 속성을 절대 불변하는 것으로 착각해서 자신의 지위가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권력을 장악하면 일방 통행 식으로 행사하려 하고, 그 권력을 상실하면 한없이 조롱하고 희화화한다. 이런 형태로는 권력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만이 있을 뿐이다. 정작 국민의 지지로 탄생한 그 권력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생산적 권력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 부를 가진 자가 국민과 법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먼저 하심하고, 낮은 데로 임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여야간의 소통, 국민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제는 정치인들도 국민이라는 바탕 위에서 서로 상대방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다시 소통과 대화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니까 직립 감읍해서 두 손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관념이다. 그런 일방 통행 식의 권위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상당 부분 의미가 퇘색했을 뿐더러 희화화되기도 했다. 그런 상태에서 정치인들의 일방통행 식의 악수를 거절했다고 어이없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요즘 세대에게는 더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다. 50대가 보수 꼴통이 되는 것은 이런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몸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남북 정상 회담할 때 김장수 국방장관이 김정일과 악수를 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고 꼿꼿장수로 칭송을 받은 적이 있다. 북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것도 어이상실이고 패륜이다. 제왕 같은 지도자 동지 앞에서 감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악수를 하다니. 하지만 우리 국민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탈 권위주의 시대에 중요한 선거관리 직무를 보는 사람들이 갑자기 직립 도열해서 악수를 해야 한다고 하는 모습이 더 이상할 수 있다. 물론 악수를 거절하는 모습을 무조건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맺힌 마음에 악수를 거절했다면 그것을 비난하기 보다는 먼저 그 아픈 마음을 쓰다듬으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는 그런 장면을 포착해서 이상한 시각으로 전달하는 언론이 더 문제이고, 별 생각 없이 그런 비난에 동조하는 태도도 문제인 것 같다. 그것은 언론의 공정성을 상실한 채, 선거의 효과를 노린 일종의 악마의 앵글이고 편집이 아닐까?

 

노동소외-왜 아침에 출근하기 싫은 걸까?<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2

노동소외-왜 아침에 출근하기 싫은 걸까?<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2

이재유(건국대)

 

 

1.?나는 월요병에 걸려 있다!

2강1-1우리의 노래 중에?<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라는 노래가 있다.?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아쉬움이 쌓이는 소리/?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우리는 금요일 저녁이 되면 홀가분해지고,?일요일 저녁이 되면 뭔가 불안하고 마음이 찝찝하다.이것은 평일에도 비슷하다.?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가 참으로 힘들다.?그렇지만 저녁 퇴근 무렵이면 생기가 난다.?학생들일 경우에 수업시간만 되면 졸리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얼굴에 생기가 돋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아왔을까??원시시대부터 이렇게 살아왔을까??아니다.?이런 삶의 모습은 다름 아닌 현대인들의 모습이다.?우리는 왜 일이나 공부하러 갈 때는 불안하고 끔찍하다고 생각하고,?쉬거나 노는 시간에는 편안하고 안락함을 느끼는 것일까??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시인 엘리엇(T. S. Eliot)의 시‘텅 빈 인간(The Hollow Men)’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텅 빈 인간

우리는 짚으로 채워진 인간

서로 기대고 있지만

아!?머리통은 짚으로 가득 차 있네

우리가 모여 수근대면

메마른 목소리가

소리 없고 의미 없다

마치 마른 풀섶 지나는 바람

또는 메마른 지하창고에서

깨어진 유리 위를 밟는 쥐 소리

형체 없는 모양,?빛 없는 그늘

마비된 힘,?동작 없는 몸짓.

곧장 바라보고 죽음의 다른 왕국으로

바다 건너간 자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 한들

지옥에 떨어진 맹렬한 혼으로서가 아니라,?다만

텅 빈 인간으로서

짚으로 채워진 인간으로서.

이 시는?‘텅 빈 인간’의?Ⅰ부의 내용이다.?시인이며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자아를 모르는 현대인들을?‘텅 빈 인간’이라 부르고 그들의 모습을 읊었다. ‘이렇게 세계가 끝나는구나’로 결말의 첫머리를 시작하는 이 시는 세계가 총이 아니라 인간의 흐느낌으로 멸망한다고 끝을 맺는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즉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디에서건 발견할 수 없음을,?우리가 아무 생각 없는 기계나 좀비가 된 것은 아닌가를 의심해 본다.?이제 우리는 아침에 일하러 가기 싫은 이유를 이렇게 연결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싶다.?즉 우리가 일하러 갈 때 불안감과 끔찍함을 느끼는 이유가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갈 수밖에 없는 강요를 당하는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2.?노동과 자유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일을 할 때 인간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이 상실된다는 것은 일,?즉 노동이 인간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할 수 있다.?근대 이후 인간다움의 기초는 바로?‘자유’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권은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 일을 할 때,?즉 노동을 할 때,?현대인들은?‘자유’를 상실한 느낌을 가진다는 것이다.?이때?‘자유’란 동물처럼 자연법칙이라는 타자의 압력이나 강제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그러므로 자유를 상실한다는 것은 이른바 동물적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유는 자기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과연 인간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을까??인간도 동물처럼 자연법칙의 영향을 받으며,?자연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그렇다면 자기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이에 대해 철학자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란 자연법칙으로부터 공상적인 독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이 법칙을 인식하고?일정한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그러므로 자유는 자연의 필연성들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우리 자신과 외부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다(엥겔스,?『반뒤링론』).”

결국 자기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법칙을?‘일정한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리고 자연법칙을 계획적으로 작동시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활동 또는 행위가 바로?‘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이 노동을 통해 인간은 자연을?‘인간화시키는 것’이며,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게 된다.

 

3.?자본주의 사회에서 왜,?어떻게 소외가 발생하는가?

1)?자본주의 사회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한마디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이다.?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자본주의 사회는 봉건사회 등 이전의 사회와는 달리 인간의 노동력이 상품으로 판매되는 사회이다.?그리고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생산되는 사회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모든 상품들과 구별되는,?상품을 만들어 낸 창조주이자 주체이다.?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인간의 주요 특성이 바로?‘노동’?자체이고,?이러한 사실로부터 인간 노동 자체를 다른 모든 상품처럼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으며,?다만 이러한 노동의 구현체로서의 노동력(다른 모든 상품들도 노동의 구현체이다)이 다른 모든 상품들처럼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다.

그러므로?<노동>과?<노동력>의 가치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노동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인데,?왜냐하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이 노동력은 이 노동력을 만들어 내는 창조주,?주체로서의 인간과 현실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특수한 상품이다.?다시 말하자면 시장에서 판매되긴 하였지만 아직 추상적이고 가능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는 노동력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즉 노동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인간의 노동을 마르크스는?‘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이라 하는데,?노동력과 기계,?원료 등을 결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고,?이는 종전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데,?이 새로운 가치 부분이 바로 잉여가치이다.?그렇게 해서 잉여가치는 바로 인간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다.?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은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이다.

또한 단순가격과 생산가격이 시장의 경쟁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아래의 도표를 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이재유 그립파일

C(불변자본, Constant capital):기계,?공장부지,?원료 등을 뜻하는데,?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자본을 뜻한다.

V(가변자본, Variable capital):노동자의 노동력을 뜻하는데,?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본을 뜻한다.

S(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 Surplus)

C+V+S:단순가격으로서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뜻하는데,?시장에 나오기 전의 그 상품의 가치를 나타낸다.

P(이윤, Profit):시장에서 그 상품이 팔렸을 때 실제 남는 이윤을 뜻한다.

C+V+P:생산가격으로서 단순가격이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통해 현실화된 가격이다.

표에서 자본가Ⅰ,Ⅱ,Ⅲ?모두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데 총100원(C+V)을 투자하고,?잉여가치율(S`=V/S)이 모두?100%라고 가정한다.?이때 상품은 단순가격으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경쟁에 따라 단순가격들의 평균으로?120원에 팔리게 된다.?그러면 자본가?Ⅰ,Ⅱ,Ⅲ?중 자본가Ⅰ이 가장 많은 이득을 취한다.?즉 단순가격에?10원의 이득이 더 붙는다는 것이다.?그 다음에는 자본가Ⅱ이고,?그 다음에는 자본가Ⅲ이다.?자본가Ⅱ는 단순가격과 생산가격이 같고,?자본가Ⅲ은 단순가격에서?-10원을 손해보고 있다.?가격경쟁에서 자본가Ⅰ이 우위를 점하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그런데 우위를 점하고 있으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요인이 무엇일까??그것은 자본가Ⅰ이 자본가Ⅱ,Ⅲ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C/V)가 높다는 것이다.?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높다는 것은 가변자본이 적어진다는 것,?즉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적어지고,?불변자본이 많아진다는 것,?다시 말해 사람이 일하던 것을 기계로 대체한다는 것이며,?그 기계의 효율을 최대한 높여서 노동 강도를 엄청나게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구조조정’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가변자본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가변자본에 의하여 생겨난 잉여가치(S)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또한 잉여가치가 줄어든다는 것은 이윤율(S/C+V)이 줄어든다는 것이다.?이 이윤율은 경제성장률 지수의 척도이다.?위 표에서 보다시피 자본Ⅲ의 이윤율은?30/100인데 자본Ⅰ의 이윤율은?10/100이다.?서구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1~2%대에 머무르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의 이윤 증대를 꾀한 결과이며,?이는 곧 노동력을 감소시킨다.?그리고 이 노동력의 감소는 다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가져와서 자본의 이윤 증대를 꾀하게 되며,?다시 노동력을 감소시킨다.?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순환과정은?<이윤율의 저하 경향?→?자본의 이윤 증대를 꾀한 결과?→?노동력의 감소?→?이윤율의 저하 경향?→자본의 이윤 증대를 꾀한 결과?→?노동력의 감소?→?이윤율의 저하 경향?→ ……>이다.?노동력의 감소는 노동자의 임금 전체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며,?비정규직과 실직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이러한 순화과정이 계속 되풀이되면서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황폐해진다.

2) <노동의 소외>는?<노동력의 가치>로 나타난다.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노동>과?<노동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소외가 발생하는 것은?<노동>이 아니라 물적인 형태로서의?<노동력>으로부터 발생한다.

노동력이란 자연과의 관계,?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실현시키는 인간의 구체적 실천활동 일반이 아니라,?자본가와 관계 맺는,?즉 자본에게 종속되고 착취되는 관계로서 노동자가 판매하는 상품의 실체이다.?그러나 이와 반대로 노동은 자연과의 관계,?나아가 사회적 관계,?즉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실현시키는 인간의 구체적인 실천적이고 변혁적인 활동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변혁시키는 실천활동이다.

가치란 자본주의 하에서의 역사적 개념으로서 모든 인간관계를 상품관계로 변환시키는 척도이다.?그리고 이때의 가치는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노동력>의 가치이다.?이 노동력의 가치는 그 자체로 인간 노동의 소외 형태이다.?왜냐하면 인간 삶의 목적이 이 가치에 종속당하게 되며,?결과적으로 이 가치로서는 인간 자신의 삶의 목적을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노동력 가치의 현상 형태가 가격인데,?가격은 구체적으로 임금의 형태로서 우리 눈에 나타나게 된다.?가격 또는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와는 다르게 나타나는데,?그 이유는 경쟁 개념이 도입되기 때문이다.?또한 임금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것도 동일 부문의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있다.?예를 들자면 최저임금제는 바로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에 근거해 책정된다.?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동력의 가치의 현상 형태인 가격 또는 임금은 인간 노동이 소외된 형태이다.?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개별 노동자의 임금인상에 매달리거나 생산성을 담보로 하는 임금인상은 인간 노동 소외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 마르크스는?『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노동 소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실로 노동 자체는 노동자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가장 변칙적인 범죄를 저질러야 비로소 자기 것으로 차지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 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행복을 느끼지 않고 불행을 느끼며,?자유로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계발하지 못하고,?자신의 신체를 채찍질하며 자신의 정신을 황폐화한다.?따라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 있을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며 노동을 할 때 탈아감(脫我感, ausser sich)을 느낀다.?그는 노동을 하지 않을 때 편안한 느낌을 갖고,?노동을 할 때에는 편안한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

??소외된 노동은 자기 활동 곧 자유로운 활동을 수단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인간의 유적(類的)?생활을 인간의 신체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의 소외 곧 인간이 자기 자신에 맞서 있는 상태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맞서 있는 상태 속에서 비로소 현실화되고 분명히 표현된다.

 

2강-1

 

4.?인간 노동 소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노동자의 생계가 엄청 위협받음과 동시에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이 다른 방식은 다름 아니라 맑스가 말하는?“각자의 필요에 따라”,?즉 각자의 욕구에 따라 분배,?교환,?소통되는 방식이다.?이 방식 속에서는 그 누구도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없다.?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방식을 대단히 현실과 동떨어진,?유토피아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방식에 움터 있다.?친구들과의 관계,?가족과의 관계,?연인,?동아리 등등의 관계에서 말이다.?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이익이나 손해 등을 따지지 않는다.?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는다.?그러므로 이 방식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다.?문제는 이 방식을 어떻게 의식적으로 사회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이다.?그렇지만 이것도 실현가능함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국내적으로 보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가면 서로가 서로에게 먹을 것과 담요,?음료수 등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주고받는다.?서로에게 격려와 희망,?연대의 벅참을 주고받는다.

국외로 보면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이 민중무역협정(PTA)(미국을 축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서 만든 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하였다.?자유무역협정은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것은 화폐의 양으로 나타난다)에 따라 분배,?교환,?소통하는 방식이다.?그러나 민중무역협정은 각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양에 따라 분배,?교환,?소통하는 방식이다.?쿠바는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를,?볼리비아로부터 천연가스와 콩을,?베네수엘라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볼리비아로부터는 천연가스와 콩,?밀을,?볼리비아는 쿠바로부터 의사를 비롯한 선진 의료제도를,?베네수엘라로부터는 석유 등을 필요한 만큼 서로 주고받는다.

우리가 노동하는 것은 각자가 필요한 것을 얻고 충족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이것이 바로 노동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결국 중요한 것은?<생산양식>이 문제이다.?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생산양식,?즉 계획 생산 양식은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 양식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의 베를린 생활 [베를린에서 온 편지 3]

맑스와 엥겔스의 베를린 생활 [베를린에서 온 편지 3]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맑스 엥겔스 포럼. 냉전 시절 동독 정부가 동베를린 지역에 만든 건축물로 오늘날 베를린의 관광명소로 분류되고 있다.

맑스 엥겔스 포럼. 냉전 시절 동독 정부가 동베를린 지역에 만든 건축물로 오늘날 베를린의 관광명소로 분류되고 있다.

맑스는 그의 생애에 걸쳐 총 4차례 베를린을 방문한다. 첫 방문은 그가 베를린 대학교, 즉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Friedrich-Wilhelm-Universit?t, 오늘날의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처음 본에서 학업을 시작한 그는 1년 뒤인 1836년에 베를린을 방문해 1841년까지 머문다. (맑스는 베를린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지 못했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예나 대학에 제출했다.) 그 후 1848년에 잠시 기차 환승을 위해 베를린에 들른 기록이 있다. 1861년에는 당시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사망과 빌헬름 1세로의 왕위계승을 계기로 기존의 정치범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이 이뤄졌는데, 맑스는 이 당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프로이센 시민권을 얻고자 했다. 때마침 페르디난트 라쌀레의 제안으로 베를린에서 공동의 신문을 창설할 계획으로 일주일간 라쌀레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복잡한 법적 문제로 맑스의 프로이센 시민권 취득은 실패했고 그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야 했다.) 1874년 말에는 막내 딸 엘리노어와 함께 베를린을 여행했다. 그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맑스는 베를린 대학교 법학과 학생이었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철학, 특히 베를린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다 1831년 사망한 헤겔 철학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당시 베를린 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헤겔 법철학을 편집, 출간한 에두아르트 간스(Eduard Gans) 교수 밑에서 헤겔 철학을 공부한다. 또 1838년에는 브루노 바우어의 소개로 ‘박사 클럽(Doktorklub)’에 가입해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맑스가 살던 당시 왕립 도서관이 있던 자리에 현재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학과 건물이 있으며, 앞에는 베벨 광장(Bebel Platz)이 있는데, 이곳은 1933년 권력을 장악한 나치 세력이 유태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책을 쌓아놓고 불태워버린 곳으로 유명하다. <공산당 선언>을 비롯한 맑스의 서적들 역시 당시 대거 불태워졌다. 현재 이곳에는 텅 빈 서고만 남아 있는 지하 도서관을 땅 위에서 볼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이는 나치에 의한 분서갱유 사건으로 학문이 탄압받았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물이다.

현 훔볼트 대학교 법학과 건물과 베벨 광장

현 훔볼트 대학교 법학과 건물과 베벨 광장

참고로 이 법학과 건물의 도서관에는 동독 정부 시절 제작된 6미터 높이의 거대하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직 남아 있는데, 그 중심에는 레닌이 서 있고 그 옆에 맑스와 엥겔스의 얼굴이 보인다. 이곳은 레닌이 1894년 이 건물(당시에는 왕립 도서관)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현 훔볼트 대학교 법학과 도서관의 레닌 창문

현 훔볼트 대학교 법학과 도서관의 레닌 창문

그가 공부했던 베를린 대학교의 명칭은 이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로 바뀌는데, 훔볼트 대학교는 냉전 시절 동베를린 지역으로 편입되어 동독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동독 정부는 맑스주의를 홍보할 목적으로 훔볼트 대학 본관에 맑스의 <포이어바흐 테제>의 마지막 문구인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변혁해 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금속으로 제작해 벽에 전시하였다. 통일 직후 이 글귀를 벽에서 철거할지 말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학 측은 이 글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며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훔볼트 대학교 본관에 전시된 맑스의 포이어바흐 테제.

훔볼트 대학교 본관에 전시된 맑스의 포이어바흐 테제.

그는 베를린에 공부하며 거주지를 총 6차례 옮겼는데, 그중 그가 그의 약혼자 예니 폰 베스트팔렌의 오빠이자 맑스의 정치적 동료인 에드가 폰 베스트팔렌과 함께 거주했던 3번째 집이 가장 유명하다. 루이제 거리 60번지(Luisenstraße. 60)에 위치한 이 집에 동독 정부는 맑스가 살았던 곳임을 표시하는 현판을 걸어두었는데, 지금은 이 건물이 예술 아카데미 기록관(Das Archiv der Akademie der K?nste)으로 편입되면서 현판이 철거되었다. 현재 베를린의 맑스 엥겔스 전집 편찬위원회는 맑스라는 인물의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 이 현판을 다시 제작해 전시하자고 당국에 건의하고 있다.

맑스가 살던 집 건물에 붙어 있던 현판

맑스가 살던 집 건물에 붙어 있던 현판

엥겔스는 언제 베를린에 머물렀을까? 맑스가 베를린을 떠난 지 수개월 뒤인 1841년 9월 엥겔스가 베를린에 온다. 군대에 자원한 엥겔스는 포병으로서 베를린 대학 근처에 있는 Am Kupfergraben에 주둔한 병영에 거주하며 종종 베를린 대학의 철학 수업을 청강했으며, 브루노 바우어가 이끄는 청년 헤겔학파와도 교류했다. 동독 정부 시절엔 시내 중심에 위치한 그가 살던 집에 커다란 현판이 붙어있었지만, 지금은 재개발이 진행되어 건물이 소실되어버렸다. 1년 뒤 엥겔스는 쾰른을 거쳐 맨체스터로 이주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업을 물려받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그곳의 노동자들의 생활을 관찰한 뒤 정치적으로 급진화하기 시작한다.

베를린에 남아 있던 맑스의 흔적들은 대부분 동독 정권 시절 정권 홍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러한 흔적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 소실되어 더 이상 기념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비록 동독이 무너졌지만 맑스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부심은 여전히 대단해서, 베를린에만 칼 맑스 거리(Karl Marx Straße), 칼 맑스 대로(Karl Marx Allee) 등 맑스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곳곳에 맑스의 흉상과 얼굴 조각상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맑스를 기념하는 장소들과 지명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들도 우파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맑스와 독재를 동일시하며, 동독이 사라진 현재 맑스를 기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묻는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맑스의 사상은 동독 정권의 독재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동독 정권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맑스 사상의 비판적이고 변혁적인 핵심을 연구하고 실천적으로 계승하려는 노력들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독일의 연구자들은 맑스 엥겔스 전집(MEGA)을 발간하며 동독 국가 이데올로기와 다른 맑스 사상의 새로운 내용들을 세상에 공개하고 있다.

맑스가 죽은지 1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불평등과 착취, 억압이 지배하며, 새로운 형태의 위기가 재생산되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맑스의 사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전히 베를린에 “더 많은” 맑스 기념시설들이 필요한 이유다.

“내 이름은 양추자입니다”[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 -2

“내 이름은 양추자입니다”[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2

김성리(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고향

?

빨간 색 뽈통 소쿠리 가득 담기면

주물러 붉은 물 빼고

남은 씨는 고운 햇살에 말려

찧으면 나오는 붉은 가루로

개떡 만들어 주던 이웃은 어디로 갔을까.

?

어머니 몰래 가져간 밥 한 그릇과

바꾸었던 칡수제비 한 그릇 먹고

함께 놀던 친구들은 잘 있을까.

?

목화송이마냥 하얗게 부풀어

베어 먹으면 새콤달콤한 동백꽃

구름이라도 끼이면

끝도 없이 가물거리던 그 작은 섬들

?

산이라도 그대로

바다라도 그대로

날 기다리며 있을 것 같은

한번은 가보고 싶은

잊을 수 없는 그 곳!!

-양추자, 2014년 2월 18일 구술한 것을 수정-

20140122_091652참말로 이상하고 얄궂다. 무신 시를 쓰고 읽자고 자꾸 찾아 오노? 말은 하는데 시는 모린다. 뭐 안 쓰도 된다하이 한번 해 보자. 내 이야기 들어가꼬 뭐 할끼고? 나는 서럽고 서러워서 그라고 억울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란데 또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내 맘을 나도 모리제. 이래 뵈도 내가 노래는 참 잘한다. 소록도에 있을 때에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라 하모 뜻도 모르는 유행가를 몇 곡씩 불어 제낐다.

고향? 우리 겉은 사람한테 고향이 어딨노. 태어나서 8살 묵을 때까지 살았다. 나는 거제도 바닷가 동네에서 태어났제. 위로 언니가 둘 있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내 고향은 앞에 바다가 있었고 뒤에는 산이 있었는데, 그 산에는 참꽃이 얼매나 붉게 피었는지 모린다. 참꽃 피몬 벚꽃도 피제. 아참, 머루도 참 많았다.

머루보다 뽈통이 더 많았는데, 그 뽈통은 워나게 커서 몇 개만 따 묵어도 금방 배가 부르고는 했다. 뽈통 알제? 큰 거는 손가락 마디만 하다. 없는 집에서는 그 뽈통으로 개떡을 만들어 묵었제. 산이라고 해도 바다 가까이에 있는데, 뽈통나무를 타고 올라가 흔들모 열매가 우두둑 떨어진다. 금방 소쿠리가 찬다 아이가. 참 재미있었다. 뽈통은 약간 떫으면서도 단맛이 난다.

우리 옆에 집에 살던 아가 그 뽈통을 한 소쿠리 따 가모 그 집 어매는 소쿠리 채 뽈통을 주무르는 기라. 그러면 뽈통 살은 빠지고 포루스럼한 씨가 남아. 씨는 포루스럼하고 하얗는데 그 씨를 빻으모 벌건 가리가 나오는 기라. 하모, 가리 색깔이 벌겋제. 그 가리를 체에 몇 번씩 거르모 밀가루 같다. 그게다가 쑥을 찧어 섞어 버무리서 커다랗게 만들어 찌거든. 그게 쑥개떡이라. 그게 너무 맛있어 보이제. 그래서 우리 어매 몰래 솥에 있는 밥을 한 그릇 가져가서 개떡하고 바까서 묵었다 아이가. 참 맞을 짓 했제.

어떤 때는 칡가리 수제비하고 밥하고 바까 묵기도 하고…… 아이고, 칡은 크기가 내 다리만 하다. 큰 칡을 도구통에 넣고 찧어서 물에 담가 놓거든. 시간이 지나모 밑에 칡가리가 가라앉는다. 그라모 물은 버리고 가라앉은 것을 돗자리 펴고 그 위에서 말린다. 그기 칡가리다. 그 말린 가리를 반죽해서 밭에서 나는 푸성귀를 섞기도 하고 그냥 칡가리만 갖고 반죽해서 뚝뚝 뜯어 끓는 물에 넣어 끓이모 수제비 아이가. 칡수제비는 시커멓다. 암만 생각해도 그리 맛있는 거는 요새까지도 별로 없는 것 같네.

칡 알제? 그 칡이 가리 칡도 있고 물 칡도 있다. 가리 칡은 꼭 생긴 게 고구마 같다. 이 칡이 큰 거는 참 크다. 웬만한 사람 다리만 한 것도 있고, 더 큰 것도 있다. 큰 칡은 손으로는 못 떼내고 톱으로 자르는데, 그때 옆에서 보모 칡가리 날리는 게 보인다. 이 가리 칡은 가리가 많아서 묵고 나모 입안이 터분한데 달착지근한 게 맛은 있다.

물 칡은 가리 칡보다 좀 작은데, 이거는 그냥 손으로 죽죽 찢으모 찢기거든. 입에 넣고 씹으모 물하고 찌꺼기가 입안에서 따로 논다. 단물만 빨아묵고 찌꺼기는 뱉아 내지. 그때는 묵는 게 귀해서 그런 것도 맛있었다. 요게 성심원의 클라라의 집에 있을 때 박군이 칡을 참 잘 캤다. 바로 그 옆이 산이거든. 툭하면 산에 가서 칡을 캐오는데, 참 잘 캐오더라.

우리 집이 있던 거기는 한 열대여섯 가구가 살고 있었다. 내가 시방도 한 집 두 집 셀 수 있다. 논이 거의 없었는데, 아마 한 집 정도 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란데 우리집에는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항시 밥이 있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애를 썼겠노 싶다. 논이 거의 없다보니 주로 강냉이하고 고구마를 마이 키웠다. 강냉이랑 고구마 참 마이 묵었다. 지금은 고구마 안 묵는다. 안 묵고 싶다.

바닷가에는 언제나 염소가 있었다. 그 염소들은 바닷가 바위 위를 폴짝폴짝 다님시로 여게저게 풀을 뜯어 묵다가 희한하게 해 지모 들어오는 기라. 산에는 소가 있고 바닷가에는 염소가 있는데, 해가 안 떨어져도 비가 오모 들어온다. 짐승도 생각은 있는 기라. 비라도 올라고 구름이 끼이모 섬들이 끝도 없이 가물가물하제. 실눈을 뜨고 봐도 섬은 기냥 가물거리고 있는 기라. 날이 맑으모 대마도가 아른아른 비치고, 어떤 때는 훤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 산이라도 그대로, 그 바다라도 그대로 있겄제. 나는 이리 변해도 그 산은 그 바다는 안 변하고 그대로 있겄제. 사람들은 나를 모린 척 해도 그 산은 그 바다는 나를 기다릴 것 같다. 내 친구들은 아즉도 살아있을까. 이때쯤 되몬 동백꽃도 따 묵고 했는데…… 커다란 동백꽃을 따서 빨아 묵으모 새콤달콤하다. 동백꽃 안에 고인 물을 빨아 묵으모 새콤달콤해.

미처 꽃이 되다 만 동백꽃은 뒤꽁지가 목화솜처럼 부풀어 있거든. 말하자모 사람으로 치모 장애자라. 씨가 온전하게 못돼서 장애자가 된 기라. 거기를 베어 묵으모 참 달다. 좀 새콤하기도 하고, 그 맛이 생각난다. 같이 꽃을 따 먹고 뛰놀던 내 친구들, 영이, 성이, 동열이, 재열이 다 거기 살고 있겄제. 나만 여게 있다. 친구들 이름은 그대로 적지마라. 갸들한테 해가 가모 어짤기고. 친구들 이름은 바리게 적지 마라.

우리 동네에 나무소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내가 그냥 그리 불렀다. 열서너 살 쯤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지지리 가난했다. 맨날 지게 지고 산에 가서 나무 해 와서 그 많은 식구를 멕여 살렸다. 나는 학교에 갈 때 갸를 만나고는 했는데, 내가 머리를 푹 숙이고 지나치고는 했다. 마음이 참 안 됐더라고. 아부지는 병들어 누워있고 어매는 능력이 없고, 어린 여동생만 둘이 있었다. 그리하니 땅뙈기도 하나 없고 맨날 산에 가서 나무 주워 와서 묵고 사니 얼매나 가난하겄노.

그런데 세상에는 법이 없다. 남의 산에 가서 나무하다가 들키모 두드려 맞고 나무도 뺏기고, 그래도 다음 날에는 또 남의 산에 가는 기라. 내가 소록도에 있을 때 우리 어매가 와서 갸가 죽었다고 안 하나. 남의 산에 가서 땅에 떨어져 있는 나무를 주워오다가 들켜서 얼매나 맞았는지 집에 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단다.

세상에 무슨 법이 있노. 그게 법이가? 땅에 떨어진 나무 좀 주워 그 많은 식구 멕여 살리는 그 얼라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을 만치 때리노. 땅에 떨어진 나무도 임자가 있는 갑다. 나는 그 아가 안 잊어진다. 자꾸 생각이 안 나나. 이상하제. 울 언니가 전에 와서 말해주는데 여동생 둘이는 그대로 그게 살고 있다카더라.

그래도 참 가보고 싶다. 근데 그기 왜 그리 안 되노. 아이고, 잊을 수가 없다. 얄궂게 왜 안 잊혀질고. 생각이 자꾸 난다. 내 고향은 거제도 함목이다. 동부면 갈고지 함목이다. 산양도 기억나고 도당포도 기억나고 구조라, 장승포도 놀러 다녔다. 쌍나리라고 있었는데…… 쌍나리는 내 외갓집 동네 이름이다. 통영다리를 지나서 한참 가모 나온다. 산을 타고 돌아가야 나오는데 산비탈이라서 돌이 떨어지모 그대로 바다에 첨벙하고 떨어진다. 그리 멀고 험한 동네도 외갓집이라고 힘든 줄 모리고 걸어서 놀러 다녔다.

건강하던 그 때의 내 이름은 막딸이었다. 언니 둘하고 나까지 연달아 딸이 태어나니까 우리 집에서는 이제 딸은 그만 놓으라고 막딸이라고 불렀는데, 내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이름을 막딸로만 알고 있었는데, 울언니하고 소록도에 가서 아부지가 서류에다가 ‘추자’라고 적더라. 그때 알았다. 내가 추자, 양추자인 걸. 모리제, 원래 추잔데 아들 놓으라고 막딸이라 한긴지 이름이 없는데 적으라 하니까 ‘추자’라고 적은 긴지.

교수와 강사수업에 수업료 차등적용으로 대학의 기만적 구조 드러내자[세월호의 또다른 이름-대학]3

교수와 강사, 수업료 차등적용으로 대학의 기만적 구조 드러내자[세월호의 또다른 이름-대학]3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지난 호에 이어서

숭고한 이상으로 수업하고 시궁창같은 현실에 좌절하는 대학강사

셋째, 강사들은 자신들의 허위의식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강사들은 머리는 하늘의 별을 향해 있지만 몸은 시궁창 속에 빠져 있는, 이 시대의 가장 분열된 존재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정신은 한 없이 숭고합니다. 하지만 강의실을 벗어나는 순간 품위와 명예를 존중하던 그들은 한없는 굴욕감과 분노를 곱씹을 뿐입니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들은 속으로 끊임없이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냐, 나에게는 이상이 있어. 전임만 되면 이 모든 굴욕을 한꺼번에 벗어던질 수 있어”라고 자위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 현실 속에서 좌절될 때 그들은 또 다시 허탈해하고 좌절하다가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 시궁창 같은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교수들의 수족 같은 노예 역할을 하고, 또 때로는 교수나 재단이 채용을 이유로 비정상적인 금품을 요구하는 것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합니다. 생계를 위해 지식 보따리를 들고 이 대학 저 대학을 떠돌고, 오전에는 이 도시 오후에는 저 도시로 미친 듯이 차를 몰고 다니며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뛰어 다니면서도 최소한의 경제적 삶을 보장받기가 힘들고, 그런 세월이 반복되다 보면 연구할 시간도 확보하지 못해 나중에는 학자로서 자긍심마저 잃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미 수많은 강사들이 그런 전철을 밟아가면서 상아탑을 쌓는 무덤들이 되었습니다. 사실이지 오늘날 강사 문제는 개인의 역량과 크게 상관없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대학교육의 40% 이상을 담당하고, 수많은 연구 단체, 학회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력의 60-70%가 강사와 무늬만 교수인 강의 전담, 비 정년 트랙 등 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한국의 대학은 그들을 사회적 루저(Loser)로 취급하고 굴욕감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지적 호기심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 이 땅의 강사들과 연구자들이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는 결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이러한 수탈구조를 통해 자신들의 성장과 발전을 꾀하려는 대학들의 부도덕과 불공정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피해 당사자인 대학 강사들이 이런 현실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전국단위 토론대회 3연속 우승 – 수업의 질, 강사와 교수 간 크게 차이 없어

대학 안에서 가장 착취 받는 그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비판하고 개혁하려 들지 않는 한 누구도 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들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과 허위의식을 깨뜨리려 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강사문제, 대학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나는 강사’라고 밝힌다고 해서, 아니 그렇게까지 나서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강사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요. 이미 학생들도 강의하는 선생이 강사인지 아닌지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뿐이지요. 그렇지만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학생들이 강사의 수업을 들을 때는 그에 해당하는 수업료를 차별 지급하라고 하는 것이고 그 혜택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이 운동이 현실화된다면 강사들은 이 왜곡된 대학 현실 속에서 학생들을 참으로 위하는 진정한 스승으로, 저임금과 신분차별 속에서도 학생들에 대한 열정과 책임을 다하는 진정한 스승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이지 강의실에서 만나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저임금이나 신분 차별과는 상관없습니다. 오로지 배우려는 열의와 가르치려는 열정으로 만나는, 순수한 영혼과 영혼의 불꽃 튀는 만남이 있을 뿐입니다. 필자가 강의하는 대학의 토론 관련 수업에서는 수강생들이 전국 단위의 토론대회에서 내리 2년간 3연속 우승하는 진기록을 낳기도 했습니다. 강사냐 교수냐는 수업의 질과 크게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야바위꾼 같은 대학들이 이런 순수한 열정을 악용해서 현재의 착취구조를 영속화하려는 기도에 있고, 이 착취 구조 하에서 자신들이 대단한 역량을 가진 듯 당연히 이 착취의 수혜 물을 향유하고 동료 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방관하는 교수들에 책임이 있습니다.

 

대학교수, 동료 강사의 부당한 차별에 대해 분명한 책임 있어

그렇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 교수들은 대학에서 부당 차별을 받고 있는 동료 학자이자 강사들에 대해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한정된 파이에서 한 쪽이 다른 쪽에 비해 현저하게 많이 가져간다면 결과의 부정의를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강사들의 비참하고 불공정한 현실이 대학의 왜곡된 착취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한다면, 이 구조의 수혜집단인 대학교수들도 큰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운동은 합리적인 시장 논리에 의해 교수들 역시 현재의 수탈 구조 하에서 그들 역시 수탈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수혜 집단임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비판하고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양심적인 소수의 대학교수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들의 양심과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대다수의 교수들은 그들이 누리는 향유와 특권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 역량 때문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현재 대학들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도덕과 불공정의 하수인이고 협력자들입니다. 그들 역시 동료 학자들의 비참한 상황을 유지·존속한 것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마치 식민지 체제의 안정과 유지에 성실하게 노력한 자들이 그 체제 하에서 고통 받던 대다수의 주민들의 고통에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고액 연봉, 그들이 안식년을 가서 편안하게 즐기는 여유, 그들이 우아하게 연구실에서 차를 마시며 하는 작업의 이면에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강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점철된 고통이 있습니다. 때문에 교수들 역시 이런 현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작금의 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학 사회에서는 강사들을 동료 학자로 존중하지 않고 한낱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는 철부지 부도덕한 교수들도 많습니다.

 

대학의 건물은 우후죽순 늘었지만 대학발전의 한 축인 강사를 위한 공간은 턱없이 부족

지금까지 강사들은 법적 지위를 개선하고 강사료 문제를 현실화시켜 달라고 부단히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오히려 강사들의 비참한 현실만을 부각시켜 그들을 루저로 만들고 시혜의 대상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강사 문제는 결코 시혜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교육의 정상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파행적이고 불공정한 현실이 온존함으로써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생들에게 가고 있고, 대학의 미래, 사회의 미래, 나아가서는 국가의 미래에도 그대로 악영향을 줄 것입니다. “강의 실라버스 직급 공개와 수업료 차등 지불 운동”은 부도덕하고 불공정한 대학의 기형적 구조의 진실을 밝히고 대학을 혁신하는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 운동은 왜곡된 구조의 원인 제공자라고 할 대학들이 실제로 얼마나 부도덕하고 불공정한 행태를 일삼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태를 합법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법 이전에 도덕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대학의 건물은 30년 전에 비해 엄청 늘어났지만, 강사들에게는 최소한의 연구와 휴식 공간마저 허용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의 고도성장의 당당한 주역이라고 할 강사들의 흔적은 대학 발전사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다만 무한 희생과 무한 고통만 강요당하는 소모품으로 취급될 뿐입니다.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도, 최소한의 경제적 삶과 행복도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강사들에게는 방학 중에는 연구를 위해 필수 요소인 도서관 출입과 접속도 끊어버리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을 헌신짝 취급하는 대학들이 과연 이 땅의 인재들의 미래 교육을 말할 수 있을까요? 대학의 교직원들도 이 기막힌 현실의 부역자이자 수혜자라는 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불공정하고 부도덕한 주체였던가를 깨닫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더는 이런 현실을 관행으로 덮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부정의와 부도덕이 온존해 있는 한 대학은 결코 자유를 외칠 수 없고, 진리와 양심의 상아탑을 자처할 수 없습니다. 대학사회는 이제 비판의 화살을 자신들의 심장으로 돌려야 할 것입니다. 대학 사회의 힘 있는 주체들은 분명하게 자신들의 부도덕하고 불공정한 현실을 깨닫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지난 수 십 년 간 대학들은 이 땅의 경제 발전을 위해 귀중한 인재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또 사회 민주화를 위해 대학 사회의 수많은 주체들이 용감한 목소리를 내왔고 헌신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왔습니다. 이 땅의 강사들은 이 모든 공로와 희생에 절반 이상의 기여를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쌓아 올린 대학이 지금은 사회 어느 곳보다 극심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편법과 불법을 감행하는, 가장 부도덕하고 부정의한 집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부끄러운 고리를 끊기 위해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강의 실라버스 직급 공개와 수업료 차등 지불하자!”는 우리의 운동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시작은 미미하겠지만, 대학과 사회의 도덕적 공분과 정의에 대한 열망이 들불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강사 여러분들, 대학생 여러분들, 학부모 여러분들, 비정규직 노동자 여러분들,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애쓰는 이 땅의 모든 양심적 시민들, 우리들 스스로가 이 들불을 당기는 횃불을 높이 치켜듭시다!

 

하나, 강의 실라버스에 직급(강사냐 교수냐) 실명제를 도입하자!

 

하나, 직급에 따라 수업료를 차등 지불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