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온 편지 6]

한국의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의 한국 포럼. [베를린에서 온 편지 6]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독일 한글문화신문 <풍경>(http://www.punggyeong.de/ko)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는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Friedensfestival Berlin)이 열렸다. 행사 마지막 날이자 일요일인 17일, 참석자들은 세 개의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는 한반도와 관련된 이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오후 무대에서는 한반도 관련 쟁점들이 연속적으로 다뤄지면서, 참석자들에게 한국에서 여전히 진행중인 전쟁과 폭력의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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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페어반트(Korea Verband)에서 주최하는 오후 행사는 행사장 중앙 무대에서 15시에 시작되었다. 오프닝을 알리는 “두들소리”의 사물놀이 공연이 끝난 뒤,이어“북한-남한. 마침내 분단 61년만에 평화협정 체결인가? 분단 독일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좌담회 (Nordkorea-S?dkorea. EndlichFriedensvertragnach 61 Jahre der Teilung Koreas?!:Podiumsgespr?chimHerz des ehemalsgeteiltenDeutchlands)“라는제목의토론회가열렸다. 기조발제를맡은한반도와 아시아 전문가 라이너베르닝(Rainer Werning) 박사는 한반도의 불안정이 오늘날에도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것은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위기의 일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한국 정부는 이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없으며 오히려 강경대북정책으로 인해 이 위기를 낳는 주범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 내에서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데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점도 독일인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이는 정전협정 체제인 한반도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이 어떻게 정치적 억압으로 활용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 것이다. 이어 발제를 맡은 임민석 교수는 한반도 위기의 주범은 미군의 주둔과 미국의 패권전략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동북아시아에서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에 적극 협조하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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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가 끝난 뒤 프리랜서 기자 정옥희씨가 연단에 올라 독어와 영어로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투쟁 소식을 전했다. 연설에서 그녀는 세월호 사고의 발생 원인을 밝히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만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 가족들의 억울함이 풀릴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그녀뿐 아니라 몇몇 한국인 참석자들이 노란 종이 배를 접어 전시하고 행사장 곳곳에서 이곳을 찾은 독일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았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독일인들은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고, 유가족들이 단식투쟁을 벌인다는 소식에 놀라워했다. 한국인 참석자들이 나눠준 유인물을 읽고 서명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세월호 사건은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언론에서 듣지 못해 모르고 있었다면서, 건네받은 영어 유인물을 꼼꼼히 읽고 서명을 했다. 어느 독일인 목사는 서명을 한 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이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행사장에 도착했다. 먼저 무대 위에서는 이옥선 할머니의 발언을 듣기 전, 일본인 무용수 카즈마모토무라(KazumaMotomura)씨의 퍼포먼스가펄쳐졌다. 참석자들은 슬픈 선율 속에서 폭력의 고통을 형상화한 그의 퍼포먼스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이어 무대에 오른 이옥선 할머니는 “여성의 미래를 위한 치욕의 극복(?berwindung der Schamf?r die Zukunft der Frauen)”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일본이 저지르는 참담한 만행들을 고발하고 여전히 위안부 징발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를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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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위에 앉은 할머니는 작고 여윈 몸이었지만 불편한 몸을 감수하며 진실을 알리고자 자신의 마지막 힘을 불사르는 모습이었다. 이제 마이크로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을만큼 몸이 쇠약해진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진실을 알리려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한국인들도, 독일인들도 그리고 우연히 이곳을 찾은 다양한 국적의 방문객들도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할머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다. 특히 발언의 말미에 할머니는 본인이 위안부로서 매우 수치스러우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본인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모른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는 그러나 일본이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한 이러한 발언을 계속 할 것이며, 그래야만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발언은 참석자들에게 이옥선 할머니의 용기와 강인함에 대해 각인시켰고, 참석자들은 모두 뜨거운 박수로 이러한 용기에 응답해주었다.

이날 이옥선 할머니의 행사에 참석하러 온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 타이치로카지무라(TaichiroKajimura)씨는 오늘 행사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며, 이옥선 할머니의 발언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나아가 이러한 활동들이 아시아에서 인권 향상을 위한 운동들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온 파티야 자사리(FatijaJasari)씨는 행사가 끝난 뒤 이옥선 할머니를 찾아와 긴 대화를 나누며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이옥선 할머니처럼 강인한 여성은 처음 본다며, 이러한 강인함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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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 다뤄진 한국과 관련된 세 주제들, 즉 한반도의 상시적인 전쟁위기,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의 투쟁,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과거,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한 현주소를 이곳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언제나 정치적 권력에 의해 권력의 유지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언제나 북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제약하고 사회 전체를 군사적 기지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정작 300명의 학생들과 승객들이 차디찬 바다에 빠져 있을 때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부는 골든 타임 동안 손을 놓아버렸고, 그 뒤엔 아예 구조작업 자체를 민간업체에 위임했다. 그 피해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제정해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애원할 때조차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경찰의 폭력뿐이었다. 위안부로 징발된 성노예 피해자들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에 항의하며 목놓아 외칠 때에도 국가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3억 달러 무상차관이라는 싼 값에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어떤 배상도 묻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지금 아베 정권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커녕 과거사를 부정하고, 나아가 평화헌법을 개정함으로써 군국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한국 정부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국사 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키고, 이 교과서를 옹호한 사람들이 주요 장관 후보자들로 지명됐다. 국민을 억압하는 국가는 존재하지만 공적 권위를 갖는 정치체로서 국가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강한 국가권력 속에서 정작 다수 대중들은 국가 없는 국민으로 살고 있는 한국의 이 역설적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고민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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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화 페스티벌은 한국에 과연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리고 많은 참석자들은 긍정적인 대답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이란?

평화를 촉진하며, 국제 연합(UN)의 목적 그리고 각국의 평화 의무를 알리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베를린 평화 페스티벌은 올해 6회째를 맞이했다. 이번 행사는 알렉산더 광장에서 열렸으며, 나흘간 수많은 예술가들의 전시와 공연, 각국 민속축제와 전통음식 축제, 학술적 좌담회 등 많은 행사들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이 전달되었다. 독일의 무기수출 반대, 그리고 1989년 동독 정권을 붕괴시킨 시민혁명,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시리아 위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이 토론회의 주제들이었다. 내년에는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여러가지 행사들이 열릴 에정이다. 1월 15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해방을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되고, 5월 8일에는 종전 7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릴 전망이다. 내년 7월 15일부터 9월 21일까지는 베를린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평화자전거 행진이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