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들보다 상전들이 더 문제구나’ ? 끝없는 주한미군범죄에 대하여[썩은 뿌리 자르기]

진보성(대진대학교 강사)

“전대미문의 만행 – 오천년 문화민족으로서 처음 당하는 천인이 공노한 미군인의 조선부녀능욕사건”(「동아일보」, 47. 1. 11), “호남선차중에서 일어난 사건은 미국이 아모리 연합국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엄중한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연합군의 조선주둔 목적이 조선 민주과업 완수지도에만 있을진대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소수의 자격자만 남겨놓고 그 외의 제 군인은 급속히 총 철퇴를 단행하라”(「경향신문」, 47. 1. 14)

1947년 1월 7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벌어진 미군의 부녀자 강간사건의 보도이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군범죄가 언론에 구체적으로 보도된 첫 사례이다. 이 사건은 같은 해 2월 18일 서울 대법원법정에서 피해자들이 직접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 최초의 판결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판결은 관대하다. 미군의 범죄는 대부분 대국민 강력 범죄이고 미군기지 부근 지역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에 미군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민감하다. 그 동안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와 같은 단체의 지속적인 감시와 노력으로 미군과 미군범죄에 대한 국민 의식이 많이 성장했다. 그러나 성장한 국민 의식에 비해 한미 간 ‘SOFA :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대미종속의 굴욕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군들이 안심하고(?) 범죄를 행하도록 방조하는 꼴이다.

199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12세 소녀가 주일미군 3명에게 윤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오키나와 지역은 물론 일본 전역에서 대중들이 폭발했다. 결국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사과를 했고 SOFA 협의를 개선하여 ‘살인ㆍ강도ㆍ강간ㆍ방화ㆍ마약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해 기소 전 미군이 일본 경찰에 신병 인도를 호의적으로 고려한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한미 SOFA 규정에 따르면 중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라 하더라도 검찰 기소 이후에 한국이 미군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다. 한국 경찰은 미군에 대한 구속수사를 선점하지 못 한다.

지난 5년간 1,463명의 미군 범죄자 가운데 SOFA가 규정하는 12대 중대 범죄에 속하는 살인, 강간, 강도 등의 흉악범이 101명에 달했으나 경찰이 구속수사 의견을 낸 것은 단 4명에 불과했다. 한국 경찰은 매번 주어져 있는 수사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동두천과 마포에서 야간에 주거침입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 국무부 부장관과 차관보가 사과의 뜻을 표했고 미2사단장도 사과했다”며 “오키나와 사건과 이번 사건은 다르다. SOFA가 불평등 하다고 하지만 일본, 독일에 비해 절대 불평등 하지 않다”며 “이번 사건으로 SOFA 개정을 거론하기는 힘들다”고 답변했다.(「문화저널21」, 11. 11. 9) 이런 발언은 우리나라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자의 발언이 될 수 없다. 뭔가 정신이 온전한 상태인지 의심될 정도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후 한동안 ‘악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요구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개정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동두천과 마포에서 발생한 10대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미군은 다시 병사들의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했으나 사실 미군들의 야간통행금지는 최초 9?11테러 이후 미군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이번 사례도 자군의 보호 차원에서 실시된 것이지 한국인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고려는 한 번도 없었다. 주둔군을 위한 정책만 있고 주둔지 주민의 안전과 인권은 무시했다.

주한미군문제는 언제나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당국의 무관심?묵살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지는 10년이 조금 넘는다. 그 동안 반공주의와 국가안보주의에 의해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대책과 존립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금기시되었고 일종 성역화 되어 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친미=반공=반북=안보가 되고 반미=친공=종북좌파=국가전복세력이 된다. 이 논리가 곧 바뀔 수 있다는 여론이 10년 전 얘기였다. 하지만 광복절에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미국빠들이 여전히 등장하는 상황을 두고 볼 때 웃고 넘길 일 만은 아닌 것이다.

주한미군의 범죄는 지금까지 소수 문제 사병들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미군 당국과 한국 정부는 주장해 왔다. 매번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주한미군은 안전 대책으로 ‘버디 시스템’과 ‘컴벳 윙맨’과 같은 규정을 두는데 이는 외출할 때 미군 병사 혼자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오히려 역으로 미군 여럿이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군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 당국에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애초부터 이런 기대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주한미군이 미군범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친미수구세력의 순진한 바램이다. 주한미군은 사실상 점령군이다. 점령군은 점령지 주민들의 안정과 평화, 행복에는 별 관심 없다. 얼마나 더 적은 비용과 행위로 자기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미군의 점령군적 지위를 인식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우리 정부는 항상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서 국가안보가 확립되고 동북아 평화유지에 필수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하지만 MB의 말을 빌려, 이거 다~ 거짓말인거,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실질적인 이유를 오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국민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국민 개개인이 고통을 감내해야 안보가 지켜진다는 주장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독점하는 안보주의의 한계이다. 오히려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인들과 미군부대 주변 사람들에게 일상적 안보의 허점을 노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구원군이란 명목으로 조선에 들어왔을 때 명나라 군대의 모습도 지금 미군의 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고 지금 정부의 대응과 과거 조정의 대응도 닮아있다. 전쟁 후 외상 스트레스에 의한 명군들의 횡포는 말도 못했다. 거주민들의 가옥을 차지하고 약탈과 부녀자 희롱은 물론이고 심지어 비협조적인 지역관료의 목을 끈으로 묶고 끌고 다니면서 폭행하여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있었다. 군기해이로 인한 사건 뿐 아니라 명군의 군량 공급에 막대한 돈을 들이면서 조선민의 고통은 막심했다. 당시 명군 지휘부는 병사들의 작폐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비호하거나 문책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에서는 백성들의 탄원을 듣고도 명나라가 베푼 ‘재조지은(再造之恩)’에 감사하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할 처지에 “어느 벌레 같은 백성이 감히 이런 짓을 했느냐”고 대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용산 지역은 우리역사에서 외세가 침략한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증언하는 땅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지금의 효창원 부근에 보급기지를 설치하고 명나라 군대와 강화조약을 체결했으며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하였다. 1884년 청일전쟁 때는 일본 군대가 주둔하였다가 1885년 을미사변 때 민비 시해에 개입하였다. 또 일제는 1908년 조선군 사령부를 용산에 세워 동북아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이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오늘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국민일보」, 04. 4. 22)

외세침탈의 역사를 겪으면서 동족은 외세가 돼버렸고 외세는 과거 존명(尊明) 사대주의를 뛰어넘어 항상 고마워하고 감사해야할 아버지(국부 이승만)의 아버지 나라쯤으로 여긴다. 과거 ‘재조지은’과 ‘자유주의의 은인’이라는 상징은 오버랩 된다. 이런 오버랩이 너무 남발되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리고 국가주의적 안보유지라는 미명 아래에서 정작 미군의 범죄를 우리 현실에서 일상과는 아주 먼 얘기로 인식해 온 듯하다.

문제가 생길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미군문제와 관련하여 항상 정치적 구호와 같은 큰 얘기만 한다. 그리고 작은 이야기, 실제 삶의 목소리는 일단 제쳐둔다.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이해와 대책」에서 김혜순은 주한미군 관련지역 이외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미군은 “군사적, 추상적으로만 존재해 온 듯하다.”고 말한다. 미군의 존재는 관련 연구자, 기지촌 경험자들, 활동가들에게만 존재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여론이 들끓다가 식으면서 구체적 미군의 존재는 다시 잊혀지고 미군철수논란, 남북문제 속에서 미군은 다시 군사적, 추상적 존재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안보문제를 추상적으로 생각해 왔다. 한미동맹은 무엇을 위한 동맹이고 국가안보는 무엇을 위한 안보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미군범죄 사안 자체는 한미 양국의 관계가 치우쳐 편향되었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명하게 알려주는 사실이다. 2000년에 매향리 주민들이 미공군사격장 폐쇄를 주장하며,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정부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럽다”며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던 일을 상기해 보자. 국가가 주장하던 국가안보가 구체적인 안보대상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자국민에게 오히려 피해와 고통을 준다면 그 안보는 허상이고 국가폭력이다. 허상에 충성하도록 국가가 폭력을 남용한다면 국민 역시 그 국가의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85호 크레인 위의 외침과 집단적 책임의 문제[썩은 뿌리 자르기]

조현진(숭실대 강사)

독일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열린 나찌 전범재판을 참관하고 난 후, 그 과정과 함께 전범재판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 책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펴냅니다. 평범한 가장이요 자상한 남편인 나찌의 간부들이 상명하달의 조직체계 안에서 어떻게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를 고발하고 있는 이 책에서, 아렌트는 ‘집단적 책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원래 서양철학 전통에서 ‘책임’이란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물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동기의 확인이 필요한데, 집단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그런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러한 동기의 확인은 더욱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국가의 구성원이나 거대조직의 구성원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것으로 간주됐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렌트 이후 이런 인식은 바뀌게 됩니다. 나찌의 유대인 학살이나 정신분열증환자 및 정신지체아에 대한 안락사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범죄행위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법안을 통과시키는 의원들을 국민들이 뽑지 않았다면 그러한 야만적인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야만적인 해악을 예방하는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 비로소 집단적 책임 개념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한진 중공업 경영진의 집단적 책임감의 실종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이자 민주노총 지도위원인 김진숙 씨가 4인의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영도조선소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농성은 390일간 지속되었습니다. 회사 측은 수주경쟁력의 저하, 매출액의 현저한 감소, 경영실적 악화 등을 들어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회사 측이 정리해고 발표 다음날 대주주들에게 174억을 배당하고, 이사들의 연봉을 1억원씩 올리기로 결정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상황이 회사 측이 내세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당시 경영상황이 긴박했다는 회사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사실로부터 정리해고가 자동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경영진 역시 수주경쟁력의 저하와 같은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진중공업의 경영진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 데 대해 집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집단적 책임을 망각한 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현실과 세대간 부정의에 대한 집단적 책임의식의 필요

그러나 경영진들의 이러한 집단적인 무책임은 보다 광범위한 집단적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보다 광범위한 집단적 무책임이란 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한 우리 모두의 집단적 무책임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명예나 OECD 가입국이라는 지위는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삶의 질 하락을 댓가로 한 것이었습니다. OECD 최장 노동시간(평균치보다 600시간 이상 차이)과 OECD 최하의 최저임금 수준이라는 통계자료는 이런 주장이 근거없는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조합 조직율이나 단체교섭적용률은 OECD 가입 이후 꼴찌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이중적인 노동통제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실시함으로써 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노사관계가 불공평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적어도 노동분야에 관한 한 민주화는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역동적인 정치 민주화 과정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주의와 노동의 민주주의 간의 이러한 불균형을 낳은 주원인 중 하나로 국민들의 반노동적 관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노동적인 관점은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이념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요인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와 고용주간에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할 때 고용주의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생각하고 해결하려는 관점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발상이 두 가지 명백한 사실을 망각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반노동적 관점은 노사관계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의 소유자는 생산과 투자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이를 통해 국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노동자에게 사회적으로 중대한 권력을 행사합니다. 오늘날 마치 상식처럼 되어버린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같은 생산에 대한 지휘권과 국내공장의 해외이전 같은 투자에 대한 지휘권이 국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노동적 관점의 또 다른 자양분은 노동상품 가정입니다. 이는 노동자가 기업주에게 파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우리가 사고 싶을 때 사고 또한 팔고 싶을 때 파는 여타의 상품과 다를 바 없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가정입니다. 이로 인해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 인해 기업주에게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준강제적인 노동계약은 자발적인 계약으로 포장되며, 실업은 낮은 임금의 노동을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노동귀족’의 불평으로 폄하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실업이 발생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이런 관점은 실업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노동적 관점이 이처럼 기업 소유자가 생산과 투자에 대한 과도한 지휘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노동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망각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면, 또 이런 반노동적 관점이 노동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주요인이라면, 노동의 민주주의를 위한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전환은 정리해고나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인해 일어나고 있고 또한 앞으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인 책임을 진다는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88만원 세대보다도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할지도 모를 후속 세대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 역시 갖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의 고용기회와 고용의 질을 희생시키면서 현재 세대의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어떤 의미로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과 민주주의 관련 조항이 때아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경제민주화와 민주주의가 시대적 화두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이중적인 불공정 노동의 족쇄가 작동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노동없는 민주주의 문제만큼 시급한 경제 민주화의 과제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5호 크레인 위의 고공농성은 일단락되었지만 너무나도 긴급한 시대적 과제의 해결을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에>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임을 밝혀 둡니다. –

한국 법치에 대한 단상 [썩은 뿌리 자르기]

오상현(한국철학사상연구회, 상지대 강사)

얼마 전, 진보진영의 버팀목이셨던 이소선 어머니께서 향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한(恨) 많은 그분의 마지막 길에는 ‘살아남은 자’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바람처럼 떠나버린 아들, 태일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40여년의 세월, 그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우리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제 사람이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잠드시길 기원한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이십대 초반의 한 청년의 절규가 있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전하고는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폈다. 그가 전태일이다. 유명무실했던 ‘법’ 앞에서 참담하고 무력했던 젊은 혈기는 자기를 태워 세상을 비추고자 했다. 법을 지켜달라는 소박한 바람은 재가 되어 모란공원에 잠들었다.

며칠 전, 학부 4학년 후배에게 ‘한국 사회의 법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 녀석 머뭇거림도 없이 짧게 되물었다. “유전무죄 아닌가요?” 부와 권력을 누리는 이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도 생활고에 못 이겨 범죄를 저지를 이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것이 한국 사회의 법치가 아니냐고. 취업 전선에 내몰려야 하는 예비 사회인의 대답이라 더욱 가슴에 남는다.

2010년 봄,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는 이른바 ‘스폰서 검사’편이 방송되었다. 제보자 스스로가 ‘다수의 전현직 검사들에게 지속적으로 금전 · 향응 · 성상납 등의 스폰서 행위를 해왔다고 밝힌 문서를 토대로 진행된 취재의 결과물이었다. 제보자와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세밀한 부분까지 사실에 가까운 보도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기에 순식간의 세간의 관심이 주목된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에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들은 과연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지난 7월 6일 연합뉴스에는 ‘스폰서 검사’ 의혹 사건의 중심인물 중에 한 사람인 한승철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기소됐다가 1ㆍ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면직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냈고 이에 대한 판결이 기사의 내용을 이루고 있었다. 예상(?)대로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시 말해서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인해 면직처분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부분은 인정되지만 그 금액이 100만원 정도에 불과해 징계 종류로 면직을 선택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득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검사(檢事)’라는 집단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든 잘 모르겠다면 사전부터 뒤져보자. 그러면 실마리가 보이는 법이니까. ‘검사’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 행정공무원과는 달리 각자가 단독으로 검찰사무를 처리하는 단독관청으로서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서 향응을 제공받은 것은 인정되지만 그게 고작(?) 100만원 정도라면 별 문제 없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말이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처분이 내려진다지만 어딘가 좀 수상한 법이 또 하나 있다. ‘병역법’이 그것이다. 병역법이 대한민국 모든 청년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회 지도층’이라 통칭되는 그룹, 다시 말해 정치인이나 재벌들의 2세가 군에 입대하는 비율은 일반 청년들이 입대하는 비율에 비하면 이상하리만큼 적다. 현 정부 고위 관료들을 보아도 그 흔한 군필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법은 왜 권력을 지닌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이 순진한 물음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동아시아 사상사에 있다. 특히 고대 제자백가 중의 하나인 법가(法家)의 내용을 살펴보면 앞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법가는 모두가 인정할 만한 창시자가 없다. 따라서 사승관계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법가로 분류되는 학자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본래적으로 이익(利)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법가는 진(秦)의 시황제가 최초의 통일 국가를 건설하면서 통치기반으로 삼은 사상이었다. 시황제는 법가 사상가인 이사(李斯)의 도움으로 통일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법가의 연원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상가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상군서(商君書)』의 저자로 알려진 상앙(商?, ?~BC 338)이다. 그는 ‘법(法)’을 중시하며 이를 통해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음으로는 ‘술(術)’을 군주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은 신불해(申不害, ?~BC 337?)다. ‘술’은 군주가 신하를 다루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술책(術策)이나 술수(術數)처럼 계략(計略)이나 수단으로써의 기술을 의미한다. 마지막 인물은 신도(愼到, BC 395~BC 315)다. 그는 ‘세(勢)’를 중요하게 여겼다. ‘세’는 용례로 쉽게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데, 기세(氣勢)아 권세(權勢) 혹은 형세(形勢)처럼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말이다. 군주가 ‘세’가 없다면 법이나 술도 발휘되기 어려울 것이다.

대중들에게는 낯선 학자들을 셋이나 등장시켰던 이유는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비자(韓非, BC 280?∼BC 233)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한비자는 앞서 언급한 ‘법’, ‘술’, ‘세’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국가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자는 이사와 더불어 순자(荀子) 아래에서 배운 인물로 인간의 본성을 악함으로 규정했던 순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을 ‘이익을 좋아하고 해악을 싫어하는 존재’로 보았다.

인간을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순간, 백성은 국가가 ‘위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통제해야 할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이 때문에 법은 절대 권력과 그 언저리에 있는 자들이 일반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의미를 갖게 된다. 요컨대 힘깨나 있는 사람들은 법 위에 군림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법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법가의 속내는 사실 이런 것이었다.

『법가, 절대권력의 기술』이란 책의 역자는 그의 서문에서 동아시아의 법의 역사에 대해 이런 소회를 담았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역자는 법가적 전제 정치를 우선 박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법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로 한 걸음 다가서려면 말이다.” 박멸까지 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책(政策)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고자 한다면 백성들은 (단지 법적으로) 면하려고만 한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또 올바름에 이르게 된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論語』, 「爲政」)

“옳지 않음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도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 『孟子』「公孫丑上」)

위의 두 문장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부끄러움(恥, 羞)’이다. 법을 정면으로 위반하지만 않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공자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이라고 나무란다.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끄러움이 없다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꾸짖는다.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을 ‘의(義)’의 단서라고 했다. 의(義)란 ‘바름’이나 ‘의로움’으로 풀이되는데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였던 ‘정의(正義)’가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토록 경쟁적으로 읽혀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책으로 보고 배워야만 알 수 있는 화석화된 개념이 되었다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들이 내걸고 있는 ‘정의’와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진짜 ‘정의’가 궁금했던 것일까?

법은 빈부와 귀천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진짜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길이다. 물론 이런 사회가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권력을 쥐는 것.

잠재적 귀족들의 사회 : 귀족사회 지향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단상 [썩은 뿌리 자르기]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현재 한국사회의 많은 병리적 현상 가운데 가장 중심에 위치하는 것은 양극화문제이다. 대통령 선거나 지방선거 때마다 선거입후보자들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양극화 해소용 백신을 공약으로 내걸지만 아직까지 이런 공약이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사회를 괴롭힌 문제다. 양극화란, 말 그대로 ‘자본’의 편향 문제이다. 자본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소수의 풍족함과 대다수의 빈곤으로 양분되고 거기에 따른 대다수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분위기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지역적 관점에서 서울은 양극화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자본가들의 주 밀집지역인 강남권과 강남을 제외한 비주류 지역인 非강남권으로 나누게 된다. 사회통념상 동일한 행정권 아래 이렇게 양분된 도시모델을 찾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한마디로 두 개의 서울이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서울에 모여 사는 서울시민들의 정서에 ‘지방’이라는 말은 이미 서울을 제외한 비주류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 된지 오래지만 이제는 강남을 ‘서울 대표시민구’(서초?강남?송파)라는 호칭으로, 강북은 ‘강북 지방’으로 서울의 지역성을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남들 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하거나 풍족한 자본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들의 구역을 특정화시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선망하는 귀족주의이고 구별짓기 행위이다.

최근 언론매체의 보도에 간간히 귀족들의 구별짓기가 구체적으로 목격된다. 서울 남산 3호터널 인근의 스테이트타워 펜트하우스에는 영국이나 홍콩 등지에서 운영되는 고급 비즈니스 클럽을 표방한 이른바 ‘젠틀맨스클럽’이 성행중이다. 사회 상위 0.01% 고객을 대상으로 연회비가 1천만 원이 넘는다. IMF이후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오히려 귀족마케팅으로 VIP고객을 획득한 백화점, 은행, 호텔, 명품 숍 등 소비중심 서비스업체들은 쏠쏠한 재미를 봤고 고급 비즈니스 클럽은 귀족마케팅의 정점에 와있는 느낌이다. 서비스업체 뿐 아니라 문화관련 업계에도 이런 마케팅은 존재한다. 고급화로 차별화된 문화공연을 제공하는 강남구 삼성동의 마리아칼라스홀은 대기업관련 부유층이나 의사, 약사, 법조인등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을 주요 고객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곳 역시 VIP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활용되며 대관 요청 시 내부 심사를 통해 대관 요청자나 요청단체의 권위나 지명도가 자격요건에 맞지 않을 경우 대관이 불가능하다. 이런 예에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상류층들은 과거의 경제적 자본에 의존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문화자본과 사회자본 소유의 문제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또 자본주의에서 문화산업의 소비패턴이 어떻게 상류층과 일반계층을 차별하는지도 구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앞에서 언급한 강남의 중산층 아파트 주거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아파트 부녀회의 가격 담합, 집값 올리기 등은 부의 재창출 및 외부적 응집력의 강화를 통해 외부인들이 강남권에 진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강남권 주택 지구에서 살다가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다는 말이 그것이다. 말을 만들어보자면 ‘一落不入’이라고나 할까? 구별짓기는 이뿐만 아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좋은 상품’을 구분하는 기준의 차이는 좋은 집안끼리의 혼인을 장려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이나 강남지역에서 서울대 진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사실을 두고 보면 한국사회에서 서울대 출신의 사회적 장악력을 가늠할 수 있고 대대로 그 출신성분을 유지하려는 욕구인 학벌지상주의는 한국에서 강력한 신분구조를 만들어내는 주요 요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중심주의 신화를 지향하는 사고와 행동, 그리고 이에 말미암은 구성원들의 갈등 유발현상은 단지 유력 지역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혐의를 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주류 지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러한 사회적 병폐는 한결같이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언젠가는 상류지역?계층에 편입하고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신분상승의 꿈이다. 앞서의 1차적 문제는 신흥귀족들이 배타적인 현 상황을 지속시키고 세습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점이지만 그들의 노력에 중산층은 물론 현 정권에서 확실히 규정한 서민층까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꽤 지난일이지만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민이미지의 진보신당 노회찬이 귀족이미지의 한나라당 홍정욱에게 노원구에서 패배한 것과, 같은 시기 도봉구에서 민주당의 김근태가 보수우파 정치인 신지호에게 지역구를 내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우리지역도 한번 잘살아 볼까(?)’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이 너무 단도직입적이고 무엇인가 진지한 사유와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 누구나 사회적으로 부유한 삶을 누리려는 욕망은 있고 존중되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계속해서 강자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이런 비현실적인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대선이나 지방선거만 되면 가까운 동네나 시장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보통 이런 문제를 체제의 문제로 보거나 도덕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대한민국의 근대와 현대의 역사적 접점이 정확히 맞물리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를 경험할 여유 없이 엉겁결에 수용하게 된 민주주의제도와 자본주의체제를 아직까지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잘못 전수된 전통적 정치체제와 사회의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근대 국민국가 건설운동이 한국전쟁으로 무산되고 전후 이데올로기적 사회구조가 지속되면서 미군정의 지배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물론 그 이후 경자유전?농자본위(耕者有田?農者本位)의 원칙 아래 토지개혁이 진행되었고 봉건적 신분질서를 실질적으로 극복하는 듯 했지만 이승만 이후 반공이데올로기의 대두는 사회운동을 통한 평등질서를 자리매김하는데 걸림돌이었다. 전제군주제-일제강점기-미군정-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지배체제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절대 권력자가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은혜로운 베풂의 수혜자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후 국민이 정치상황에 참여하지 못했던 군부독재 시대의 성과주의, 성장위주, 업적정치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우리의 정치사 현실에 그 잔상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국민은 자본의 공세에 대해 반성적, 비판적으로 대처할 힘이 부족했고 IMF이후 신자유주의 국면을 맞이하면서 오로지 자본을 위한 나라가 되었다.

현재 우리사회가 누구나 귀족적인 신분상승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연유에 있어서 문화적인 면에서 조선시대 이른바 지배귀족계층의 주류문화였던 양반(兩班)문화에 대한 관념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원래 조선 초기에 사회신분은 양인(良人)신분과 천인(賤人)신분이 법제적 기준이었지만 이후 양반과 非양반의 신분구분이 더 중요시 되었고 양반?중인?양인?천인의 네 신분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양반이란 말은 원래 관료체계에서 비롯된 말이고 양반은 사적 토지를 소유한 지배신분계층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일반 양인들이 과거에 응시하는데 어떠한 제약도 명시하지 않았지만 일반 양인들의 경제력은 양반들의 경제력과 그에 따른 교육환경을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조선은 지식엘리트 집단인 양반지식인층에 의해 통치되었고 조선왕조 500년은 이런 보수적 유교정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양반계층의 신분적 우월성은 혈연에 의한 특권과 차별적 대우가 세습되는 인간집단을 의미한다.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고 자기와 자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신분이 적용되는 외연을 끊임없이 확대한다. 양반이란 신분은 이미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통한 세력의 확대는 조선시대 상위층의 구별짓기 방법이었다. 1894년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양반이라는 신분은 없어졌지만 긴 시간동안 우리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신분제의 기억은 그대로 우리의 문화의식 속 심층구조에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양반이란 개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게 되었지만 과거 권력에 대한 독점권을 포섭하기 위한 방법과 그 형태는 현대 신흥 귀족들과 그 귀족사회를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과 별반 다름없다.

다만 사회체제가 다를 뿐 구조적인 문제는 동일하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조선후기 지배층의 무능력과 벌열(閥閱)숭상을 비판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현재 신흥 귀족세력은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가는 이를 방치한다. 상대적으로 생존권과 행복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많은 중소계층에게 무한경쟁의 논리를 강요하면서 희망이 있는 것처럼 쇼를 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찾기 힘들다. 노력의 보상이라고 하는 명문대 입학은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신분전환의 유일한 기재였던 교육은 자본에 포섭된 지 오래이다. 재벌가와 사회지배층의 지배력 확대에 대한 계속되는 합리화는 우리의 성찰을 무디게 만들고 거기에 동조하게 한다. 무의식으로 쫒아 가게 만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조장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나 세습적 신분제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얼기설기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근현대는 성찰을 통한 과거 극복에 실패했고 그 폐단이 고스란히 현재화된 문제점이 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의식의 개진이 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자화상은 엄마의 젖가슴만 인식한 채 성인이 되어서도 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페티시즘을 안고 살아가는 형상이다. 자신의 생존과 자본의 연결을 인간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이 그 중심에 서있어야 안정된다. 오늘 우리가 항상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사실 외부에서부터 왔다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시대적인 아픔도 분명 존재하고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현실의 시대착오적 발상은 결국 우리 안에서 돌파해야 한다. 이미 사회의 중심 권력의 자리는 선점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중심화의 신화는 서로가 실현 불가능한 사안임을 인식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중심의 배타성은 심각해질 것이다. 작은 부분부터 사회적 공동체의식을 확립시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생적인 공동체문화의 태동이 중요하다. 공동체적 국가가 아닌 지배력에 의존하는 국가체제가 상존하는 한 고대 동양의 정치철학을 대변하는『서경(書經)』의 “한쪽과 한 당파에 치우침이 없으면 왕의 도가 탕탕(蕩蕩:사악함이 없이 관대하고 큼)하며, 한 당파와 한쪽에 치우침이 없으면 왕의 도가 평평(平平)하며…(無偏無黨王道蕩蕩, 無黨無偏王道平平…)”라는 공평의 통치철학에도 근접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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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에서 국민대분회장을 맡고 있던 황효일씨가 2011년 가을학기에 부당하게 해고되었지만 국민대 교내에서 시위를 열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하여 부당해고에 맞서왔다. 국민대 학생들은 ‘황효일 교수님 해고를 반대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항의하는 뜻을 펼쳐왔고 결국 대학본부는 2011년 7월 8일 부당해고를 철회했다.” 최근의 이 사건은 대학사회가 얼마나 경직되고 배타적인 사회인지를 증명함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와 노력이 현실 문제 개선에 큰 힘이 됨을 증명했다. 반대로 상위계층인 교수와 비정규직 하위계층인 강사의 현실적 차이와 자본의 위력은 강사들이 노조를 외면하고 대학 측의 입장에 고분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이유인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 비자(visa)계급을 말하다 [썩은 뿌리 자르기]

강경표(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원곡동 이야기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한참을 가다보면 안산역에 도착한다. 안산역을 나와 지하도를 건너서 잘 보이지도 않는 2번 출구를 찾아 나오면 그 곳에 원곡동이 있다.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예전에는 외국인 거리라고 하면 이태원을 먼저 떠올렸다. 코쟁이 백인들이 돌아다니는 곳, 백인이 아닐라치면 미국인이 활보하던 곳, 우리나라를 지켜준다던 미군이 놀던 곳 이태원은 그런 동네였다.

원곡동에도 외국인이 있다. 알록달록한 얼굴들만큼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곳, 노동자의 쉼터이자 생활의 터전이다. 토요일 저녁 해질 무렵이면 우즈벡 식당 노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중앙아시아 아저씨들부터 팔뚝만한 꽈배기를 몇 개씩 사가는 중국 아줌마, 식당 유리창에 붉은 글씨로 개 구(狗)자를 멋지게 써놓은 조선족 동포들, 카레 냄새가 향기로운 인도 식당과 먹기 힘들만큼 원래 맛을 고집하는 베트남 식당, 너무나 당당하게 차려입은 짧은 치마가 민망해 쳐다보기도 힘든 동남아 언니들까지 그들의 삶이 있는 그곳이 바로 원곡동이다.

힘들고 허전한 하루를 위로받기 위해 모국에 있는 가족과의 짧은 통화를 기다리며 슈퍼 앞에 차려둔 국제 통화용 전화기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고향 이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까지… 주말의 원곡동은 그렇게 활기차 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새벽녘 입김을 불며 나가본 안산역 옆 공터 주차장 인력 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어슴푸레 비치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칼날처럼 나누어진 구획. 한국인, 우리의 동포인 조선족과 고려인, 그리고 외국인들. 인력시장으로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 누군가 구획을 넘어 오갈라치면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들. 일용직 노동자의 경쟁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하루 품삯이 한국 사람은 일당 7만원, 동포들은 5만원, 나머지 외국인들은 3만원으로 정해지고 비싼 한국 사람보다는 말 통하는 동포들이 우대를 받는 곳, “저 힘든 일 좋아합니다, 잘 합니다”라는 색다른 억양의 큰 목소리가 몇 번 들리고 나면 봉고차들의 부르릉거림과 함께 거리는 금방 한산해 진다. 오늘도 조선족 때문에 힘센 중앙아시아인들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한국 사람들은 무거운 어깨를 뒤로하고 조선족을 욕하며 자리를 뜬다. “새끼들 그냥 짱깨 땅에나 있지…”

– 비자계급

살인미수 혐의의 재미교포는 14년 동안 강남에서 학원장을 할 수 있지만 재중동포인 김산(본명 장지락)의 외손자는 7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목수로 일한다. 행정상의 착오일까? 행정상의 착오라기 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 길다.

지난 해 황유복 교수(베이징중앙민족대 교수)는 “해외 거주 한인을 싸잡아 재외동포라고 부르는 것은 크기와 색상, 재질을 구분하지 않고 구슬을 손에 잡히는 대로 꿰는 격”이라며 아예 동포와 교포를 구분해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2010.10.04). 황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한시적으로 거주하는 한국인은 ‘재외국민’, 거주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경우는 ‘재외교포’,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거주국의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는 ‘재외동포’라고 부른다. 사전적인 정의 따르면 ‘동포’란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고 ‘교포’란 ‘다른 나라에 아예 정착하여 그 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는 동포’를 지칭하는 말로 동포의 외연이 교포 보다는 크다. 사실 동포와 교포라는 단어는 병행해서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교수가 동포와 교포를 구분하자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재미동포 재일동포라는 말은 사용해도 재중동포, 재러동포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조선족 고려인이 그들의 이름이다. 동포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들을 동포로 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 정부 또한 “재외동포 참정권”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재외동포를 국적에 따라 차별할 뿐만 아니라 지원에서도 많은 차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자 문제만 해도 재중동포?재러동포와 재미동포?재일동포가 비자를 받는 방식이 다르다. 법이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동포는 대한민국에 들어오기조차 힘들다. 재미동포와 재일동포가 받을 수 있는 F-4비자는 단순노무를 하는 사람에게는 발급되지 않지만 이 비자 취득자는 가족을 동반할 수 있다. 재중동포나 재러동포가 받는 H-2비자는 3D 직종에 근무하는 방문취업비자로 가족을 동반할 수도 없다. 더 황당한 사실은 F-4비자를 받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못해도 되지만 H-2비자를 받는 사람들은 실무 한국어 시험을 치러야 할뿐만 아니라 쿼터제로 비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H-2비자는 대상 국가의 경제적 수준을 고려하여 정해진다. 결혼을 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면 재중동포와 재러동포뿐만 아니라 원곡동에 거주하는 약 57개 나라의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비자가 H-2비자다. 그나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C-3비자(관광이나 친지 방문)로 들어와 불법으로 체류하며 이상한 기획사를 통해 E-6비자(수익이 따르는 예술 활동 및 전문 방송 연기자)를 받아 강제로 몸을 팔거나, 외국 학생 유치라는 명목으로 판매되는 유학프로그램을 통해 D-2비자(유학생)를 이용해 들어와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은 모르는 한국비자의 종류는 9종 94개다. 즉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재외교포 포함 외국인들을 94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자 취득 자격을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나누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 민족계급론

국적에 따른 국가의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눈이 그것이다. 스스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재미동포나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눈과 재중동포 또는 재러동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지는 않은가? 또는 백인과 황인, 흑인을 보는 눈이 다르지는 않은가?

생태학의 선구자쯤으로 알려진 에른스트 헤켈은 1905년 그의 저서에서 인종과 민족을 4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1)원시 민족 또는 미개인, 2)야만족 또는 반(半)미개인, 3)문명민족, 4) 문화민족이 그것이다. 또 다른 분류인 <인종과 민족의 계통수>라는 1902년 분류표를 보면 한국계도 그 표에 포함이 되어 있다. 혹시 여러분들은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몽고인종에서 분리되어 한국?일본계열이 되며 일본인 보다는 열등한 민족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중국은 몽고인종에서 분리된 인도차이나계열로 우리와는 계열이 다르지만 약간은 더 높은 위치에 있다. 물론 우리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는 민족들도 많다. 이러한 분류는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1900년대 초 당시 일본과 독일간의 친분관계와 우리나라의 사회상황을 생각해 보면 일본인 아래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현대에도 민족에 대한 이러한 차별적 분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이다. 이런 차별적인 대우가 우리에게 가해진다면? 더욱더 크게 분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가 차별적이다. 백인을 보는 눈과 흑인을 보는 눈이 다르며,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일본인과 동남아시아인을 보는 눈이 다르다. 물론 재미동포와 재중동포를 보는 눈도 다르다.

‘다문화 가정’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서 외국인들끼리 살면 외국인 가정일 뿐이다. 우리가 지칭하는 ‘다문화 가정’이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에 한정된다. 그러나 백인 여자와 결혼한 한국인은 그럴듯해 보이고, 동남아시아인과 결혼한 한국인은 없어 보인다. 한국 여성이 동남아시아 남자와 결혼하면 따가운 시선은 배로 가해진다.

‘다문화 가정’에 다문화는 없고, 언어?생김새?풍습은 다르지만 우리 문화에 동화되어 가는 외국인들만이 칭송을 받는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는 주체가 우리 자신이면서도 다문화 가정을 꾸린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수용할 것을 교육하며, TV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한국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싸늘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스스로 계급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한민족이 일등시민이다. 나머지는 국적과 피부색, 한민족과의 연관성,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계급이 나누어진다. 일등시민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비자를 발급받는 순간부터 계급이 생긴다. 그 계급은 안산의 원곡동이라는 작은 동네에서조차 임금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 다시 원곡동 이야기로…

대학 초년 뭣 모르고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 다니던 시절 이문열의 <구로 아리랑>이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치졸하기 짝이 없는 그 글이 생각나는 것은 ‘구로’라는 동네 배경과 공순이라 불리던 언니들 때문일 것이다. 소위 공순이라고 불리던 순박한 언니들의 삶을 생각해 본 것도, 내가 누리는 경제적 혜택이 대기업들의 회장 덕분이 아니라 밤낮으로 고생하며 일한 언니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이 때쯤이다.

빈곤의 상징이었던 구로동과 가리봉동은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 단지로 변신했다. 그 많던 공순이 언니들은 우리의 엄마 아빠가 되어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많은 공장을 돌리던 일손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원곡동, 안산 원곡동에는 우리의 언니 오빠들을 대신해 공장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을 위해 일하는 근로자는 아니지만 우리를 대신해 대한민국의 경제가 돌아가도록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돈을 버는 목적은 각자 달라도, 사용하는 말과 생김새?국적은 다를지 몰라도, 그들이 우리 경제의 바닥을 지탱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방가? 방가!’라는 영화가 있다. 취업을 하지 못한 한국인이 부탄 사람으로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해 겪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원곡동이다. 이 영화는 재미있지만 슬프다.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노동자에게는 민족이 없다. 노동을 통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언제나 평등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비자 발급 제도는 계급을 만든다. 아니 이미 계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도다. 거기에 우리의 차별 섞인 눈빛까지 더해진다. 원곡동이라는 국경 없는 마을에도 계급을 가르는 비자가 있다.

희망을 먹는 인민과 ‘탐(貪)’이라는 자본 [시대와 철학]

희망을 먹는 인민과 ‘탐(貪)’이라는 자본 [시대와 철학]

 

박종성(한철연 대외협력부장)

 

-한진중공업, 그 야누스의 얼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촉구 및 경찰 강경진압 규탄 농성 중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최종덕장맛비가 다시 시작되었고 그 빗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던 여름밤, 화면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언과 오버랩 되어 피겨 여왕의 눈물 어린 얼굴이 비춘다. 환호와 기쁨의 눈물이다. 그러나 전자 신문 다른 한쪽에는 숨죽이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본의 탐욕과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절망과 분노의 눈물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건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에 머물지 않는다. 기륭전자, KTX, 이랜드,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아산공장 등의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에게 이중의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그 하나는 맑스,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마지막 구절이다. 다른 하나는 이 슬로건이 “만국의 자본이여 자유로울 지어다”로 버전업되어 들려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난 3년간 수주실적이 없어 정리해고라는 명분 쌓기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한진중공업은 결국 경영난을 이유로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였다. 올해 초 700여 명이었던 노동자는 6월 말 100여 명으로 줄었다. 나아가 한진중공업은 노조 파업 철회 직후 아시아 선사로부터 컨테이너선 4척(총 2억5000만 달러), 방위사업청으로부터 해군의 해상작전 지원 및 물자보급용 군수지원정 2척을 수주했다고 6일 밝혔다. 자본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은 이렇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이것이 수주실적이 전무하다고 말하면서 정리해고의 명분을 만들고 실행한 한진중공업의 얼굴이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 발표 다음날 174억 원 주식 배당금을 챙겼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수빅조선소이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2008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으로부터 수빅조선소 선소 건설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수요 받았다. 수빅조선소는 한중 해외 계열화사 7개중 하나이다. 허민영 박사에 따르면 수빅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 3년간 수주 실적이 없던 시기에 18척을 소화했고 2011-2012년에도 35척이 인도될 예정이라고 한다. 수빅조선소의 임금 수준은 국내의 10%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했다는 한진중공업의 주장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듯 수빅조선소로의 수주 집중이라면 그것은 경영전략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정리해고의 요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정리해고의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의 악화는 한중의 지분 1%를 가지고 있는 조회장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에게는 삶의 공포 그 자체이다.

이렇듯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 신자유주의, 즉 자본의 지구화는 인간의 생명을 벌거벗은 존재로 전락시키고 그 생명 아닌 생명의 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자본의 지구화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노동의 유연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위한 정리해고의 유연화이고 이는 결국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귀결되고 만다. 한진중공업이 다시 수주물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로 부족한 노동자를 불안정 노동자로 채울 것도 불 보듯 자명할 것이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의 유장현 교육선전부장에 따르면 수주 물량을 제대로 생산하려면 3000~4000명 정도가 필요한데, 현재 영도조선소에는 정규직 비해고자 620명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700~800명만 일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자본은 자신의 안정된 잉여가치 운동을 위해 불안정 노동자라는 생명의 불꽃을 희미하게 만든다. 타워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크레인에서 쓰는 마지막 글’에 따르면, “임금은 다른 조선소의 60-70%밖에 안 된다. 반면에 영업 이익은 타 조선소 평균의 3배이다.” 이렇듯 자본의 무한한 소유의 집착은 인간의 관계를 사물의 관계로 전화하며 임대주의적 관계로 전락시킨다.

-자본에 의한 삶의 분열, 주권의 상실

 

인간의 삶이 사물의 관계로 전락되면 될수록, 자본이 인간의 생명을 처리하는 방식은 야만의 상태를 지향할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간의 사물화에는 윤리와 인륜의 자리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관계를 사물로 전락시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통제와 처분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보다 자본의 활동을 비호하는 법원의 판결은 생명에 대한 죽음과 공포의 폭력이다. 예를 들어 해고 노동자들의 삶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이 기각되어 노조원의 사원아파트 퇴거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받아들여지면서 삶의 희망을 급속하게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파업 참가자들의 동료에 대한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줄었다. 아이들과 가정 때문에 파업에서 이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해고자와 비해고자, 파업 참여자와 비참여자로 분열된다. 이렇듯 분열의 정책은 동료, 이웃, 아이들의 친구마저 갈라놓는다.

자본에 의해 분열된(?) 이들의 가족 또한 서로 마주치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자본에 의한 분열과 그로 인한 인륜성의 상실이 자본의 탐욕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배적 허구가 자본의 정치이다. 자본은 언제나 자본이라는 가치만을 최선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 밖의 다른 가치는 배제하는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이다. 이는 결국 자본의 가치를 증식하고자 하는 나르시시즘의 문화를 강요한다. 그리고 이 문화에 인간의 욕망을 빠뜨리고자 한다. 자본의 나르시시즘은 인간의 의미와 삶의 지평을 상실하고 도덕적 차원의 질적인 하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는 희석되고 만다. 따라서 자본의 권력 획득의 증가만큼 인간은 상호간의 교류와 협동, 그리고 타자와의 공동체적 공감이라는 삶의 목표를 상실하고 정치로부터 소외되어간다.

나아가 국가의 모습은 어떠한가! 일찍이 홉스는 근대국가의 절대적 폭력성을 『리바이어던』에서 정당화했다. 그는 ‘공화(republic)’, ‘공적 부(commonwealth)’ 등으로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오늘날 정권은 ‘국가경쟁력’,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 속에서 21세기 한국의 ‘리바이어던’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의 홉스적 광기를 보는 듯하다. 홉스는 보상과 처벌을 리바이어던의 수족과 관절을 움직이는 신경과 힘줄과 같은 것으로 비유했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온갖 법적이고 물리적인 처벌로 자신의 존립을 운동시켜 나간다. 홉스가 말하는 리바이어던은 절대적 주권자이기 때문에 이 주권자에 대한 어떤 항의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인민 복종의 의무만이 허용될 뿐이다. 집단행위 금지 규정과 성실의 의무, ‘복종’의 의무 등. 따라서 ‘주권’의 원천이었던 개인들은 오히려 그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소위 ‘국민(subject)’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통제권력 안에서의 개인들일 뿐이다. 이 때 국민은 리바이어던이라는 절대적 주권자에게 복종을 전제로 안전을 보장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리바이어던은 모든 국민의 복종을 요구하면서 홉스조차 인정한 최소한의 인간의 생명 보호와 안전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현실이다.

-일상화된 죽음의 정치를 넘어 공감의 정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집단 심리에 상담을 하고 있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쌍용차 가족들의 고통은 죽음의 기운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상담결과에 따르면, 해고자 아내는 “내내 울다가 어느 순간 보니까 옷장에서 넥타이를 꺼내서 묶고 안방 쓰레기통을 뒤집어서 그 위에 올라가 (내가) 목을 매고 있더라”거나 어떤 해고자는 “술 먹고 몸에 휘발유를 부은 적이” 있다고 한다. 정혜신에 따르면 상담을 하면서 쌍용차 가족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유형을 8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에 “죽음이 가까지 있다.”, “끝없이 무기력하다”, “내가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등이 있다.

‘절망’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뜻은 절망하면 죽는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절망’이라는 병이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절망이라는 병을 치유하는 방식은 ‘단독자’로 ‘하느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자각이다. 이를 통해 신앙에 대한 확고한 결단이 한다면 이 절망이란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에 대한 실존철학자의 방식이 유일한 치유의 방식이거나 모든 것을 열수 있는 열쇠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해고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절망의 치유는 그들의 상처에 공감하는 것이다. 라캉의 말로 하면, 아마도 타인의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가 말하듯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거울은 애덤 스미스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믹스를 넘어선 인간의 거울일 것이다. 잠재적이건 현실적이건 간에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이렇듯 자신을 넘어 타인에 대한 걱정을 만들어 낸다. 한진중공업 농성장에 남아있는 한 비해고 노동자는 파업을 이탈하는 것에 대해 “이해한다. 다만 다음엔 우리 차례라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가난한 계급으로의 전락, 그 속에서 언제든지 우리 모두가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삶의 공감(sympathy)이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형성은 이 점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본의 정치가 아닌 인간의 정치, 보다 정확히 인민의 정치일 것이다.

인간을 ‘호모 이코노믹스’로만 규정하여 인간의 다양한 가치 지향성을 단일한 것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단일한 세포로 구성된 재벌에게는 자본의 가치를 추구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인간의 정치는 부재하다. 어찌 그들에게 유적이고 공동의 인간을 사유하며 반성하는 것을 기대하겠는가. 맑스가 말하듯이 자본가가 악인 이유는 그들이 자본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천적 인간배제 재벌 사회에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흔적조차 없다. 코나투스(conatus)는 인간이 생명을 보존하고 지속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인간의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 이를 위해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신을 외롭고 단절된 공간인 85호 크레인에 자기를 구속하였다. 이는 샤르트르가 말하듯 자신 스스로 선택한 쪽으로 자기를 구속하는 것, 곧 자유이다. 자기를 구속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은 다시금 그들의 삶에 대해 보다 더 공감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반성의 시간기도 하다.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삶이었다는…

-여전히 모순은 노동과 자본이다

 

몇 달 전 감자를 먹기 위해 도려낸 감자 조각을 베란다에 심었더니 얼마 뒤 감자 싹이 나오고, 꽃이 피었다. 혹시나 하여 살며시 흙을 뒤집었더니 콩알보다 조금 큰 감자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이렇듯 조각난 감자에서 작은 또 다른 감자로 생성되는 것처럼, 자본에 의해 도려낸 해고 노동자들, 정치적 · 생산적 활동에서 배제된 이들은 자기 창조(autopoiesis)적인 ‘가능성의 존재’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능성의 존재는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힘인 에로스와 이익이 없어도 희생하는 아가페의 결합일 것이다.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죄의식을 만들어내는 자본의 책략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사회적 부의 축적을 가로막는 죄인으로 만든다. 이렇듯 노동자를 고대 유태에서 속죄일에 많은 사람의 죄를 씌워서 황야로 내쫒던 ‘속죄양’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작동방식이다. 이는 노동과 자본의 내부적 적대의 관계를 노동자 내부로 해소하는 방식이다. 지젝이 말하는 누빔점이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자본이라는 적대적 모순의 관계를 노동자 내부로 해소하고자 하는 책략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는 자본의 탐욕에 대해 투쟁하는 이들, 즉 타자라는 존재의 긍정이다. 그런데 자본과 노동은 각각 모순의 유지와 폐지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자본과 임금노동은 서로 상대방을 전제하고 부정한다. 이렇듯 양 극단을 서로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부정하는 것만이 ‘모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이라는 양 극단의 존재에 부분적인 조건이 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정규직 노동자라는 존재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 자체가 없다면 ‘정규직 노동자’라는 존재는 그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관계가 갈등의 관계에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순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해고 노동자와 비해고 노동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순의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생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문제는 타자의 자리에 화폐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때 화폐의 기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타자들의 계열이라는 가상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현실적으로 가능한 타자와의 만남은 화폐를 욕망하는 것이다. 화폐에 대한 욕망은 구체적인 타자와의 만남이 아니다. 단지 화폐와의 만남, 화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그 화폐가 변환되어 욕망 가능한 것을 욕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구체적인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신체는 화폐를 욕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체는 구체적인 것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교환가치를 먹고 배부르지는 않다.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화폐라는 공허한 타자와의 만남만이 존재한다. 생성은 물질과의 만남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것은 더 이상 공허한 타자와의 만남을 중지하고 살과 피로 이루어진 실질적인 만남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화폐라는 공허한 타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종식은 비단 인식의 단절 혹은 전환을 통하여 그 근원적 비판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사물화 된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전복은 화폐가 아닌 인간과의 만남을 통해 자본이라는 일자의 원리를 파괴하는 다수의 현실적 부정의 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인간의 실존은 다른 실존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실존을 만들어 낸다. 불안정 노동자라는 양태는 자본과 국가라는 다른 양태와의 관계 속에서만 실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 역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키아벨리의 교훈처럼 역사는 정치의 열쇠인 것이다. 여전히 모순은 노동과 자본이다.

-탐(貪)

 

공자의 가르침 중에 ‘탐’(貪) 이라는 상상속의 동물이 있다. 머리는 용, 뒷부분은 원숭이 꼬리, 전신은 긴 털로 덮여 있는 기린의 가죽, 발굽은 소의 형상인 괴상한 동물이다. 흙, 광물, 산, 바다 할 것 없이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탐’은 이 시대의 자본과 권력의 형상과 너무나 닮았다. 4대강을 난도질하여 먹어치우고 그것도 모자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명, “밤에 잠 좀 자자”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희망을 먹어치우고 그 아가리로 희망의 연대에 물대포와 최루액을 토해낸다. 어디 그뿐인가 교사와 공무원 1900여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먹어치운다. 권리 표현과 결사의 자유 그리고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집어 삼킨다. 그러나 여전히 ‘비정규직 없는 공장만들기 희망버스’ 저 멀리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희망버스, 1, 2차 희망의 버스가 존재했고 3차 존재할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창조물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탐’, 이는 마치 산노동의 착취를 통해 만족할 줄 모르는 잉여가치 창출의 욕망을 내재하고 있는 ‘자본’과 같다. 마치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처럼 운동하는 자본이라는 욕망이 이와 같지 않은가! 맑스는 자본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형이상학을 부정한다. 즉 그는 자본 또한 “불멸의 죽음”(mors immortalis)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것이 맑스의 변증법의 핵심적 기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의 형상을 닮은 인격은 인간의 죽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잉여가치의 파티를 욕망한다. 이러한 욕망의 흐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자기보존’(conatus)을 최우선의 가치로 실현해야만 ‘국가’는 그 존재 자체가 무기력해 보일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자본의 욕망 흐름과 이 흐름을 위해 노동력을 한편으로는 포획하고 재배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치하고 배제하는 국가를 긍정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은 부정의 힘이다. 이 부정의 힘은 희망을 먹고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밥이고 생명이다. 공자가 말하는 탐, 그 추악하고 탐욕적인 ‘탐’은 결국에는 태양까지 먹어버린 후에 어둠을 남기고 자기 자신 까지 먹어 치워, 결국 무(無)가 된다고 한다. 결국 공자는 탐이라는 동물을 통해 이 천박한 자본의 시대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다.

“자본이여, 인민의 희망을 탐하지 마시오, 인민이여, 희망이란 욕망을 탐하시오”

 

마지막으로 김진숙 위원의 글에서 다음의 구절이 가슴에 맺힌다. “84호를 움직이면 85호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특공대가 투입된다면 여기서 혼자 163일을 매달려 있던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건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제발 그의 말처럼 “선택의 문제”가 아니길 바란다.

오늘 따라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의 가사가 가슴 속을 떠나질 않는다.

“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 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너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개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한신대 등록금 투쟁, 그 미완의 싸움 [썩은 뿌리 자르기]

이현기(한신대 등록금 투쟁위원회)

2011년 상반기 대학가의 가장 큰 이슈는 “등록금” 이었다. 이 대학생들의 등록금에 대한 외침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있어왔던 등록금투쟁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고,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모순을 향한 싸움이었다. “반값 등록금”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각종 미디어를 타고 전국으로 퍼지면서, 등록금 문제는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 사회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었다. 우리 한신대학교(이하 한신대)의 2011 등록금투쟁도 이러한 과정 안에서 큰 역할을 했다.

올해 한신대 안에서 등록금 투쟁이 시작된 시점은 “2011 등록금투쟁위원회(이하 등투위)” 가 출범한 3월 말이다. 다른 학교들이 등록금 투쟁을 끝낼 시점인 3월 말에 투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총학생회(이하 총학)의 부재였다. 한신대에서는 2010년 말 총학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4월까지 유지하던 상황이었다. 3.4%라는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잠정 고지한 상황에서 총학의 부재는 등록금 투쟁의 주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학내 현실에서 일반학우들이 모여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그렇게 한신대 안에서는 등투위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후 총학이 선출되었지만 이들은 등록금 투쟁에 집중하지 않았고, 모든 투쟁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해 학내 투쟁에서 등투위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등투위는 투쟁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교양대회”를 개최했다. 등록금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학생들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교양대회에 참석한 이들은 인문대, 사회과학대의 특정 몇 개 학과 학생들뿐이었다. 그리고 이어 진행된 집회나 선전전에도 그 학생들만 참여했다. 결국 등록금 투쟁이 몇 개 학과에게만 전가된 분위기였고,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등투위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몇 개 학과씩 연합해 선전전과 집회를 로테이션으로 진행하고, 이 과정을 “전체학생총회”로 연결시키는 전략을 수립하여 진행하였다. 각 학과 학생회들은 책임감 있게 등록금 투쟁에 결합했고 이러한 노력들은 4월 14일 제 1차 전체학생총회 성사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체학생총회에서 한신대 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을 결의했고, 기획처장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확인된 학교의 무책임함에 대해 분노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분노지점이 있었는데,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였다. 총학은 회의 내내 학생들의 요구에 반하는 진행을 했고, 등록금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에 찬 발언들을 ‘시간이 없다.’ 등의 이유로 제지하려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의결을 통해 확정된 본관 진입을 거부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투위와 개별 과 학생회의 의지로 본관에 진입하였고, 학생들의 의지를 학교당국에 다시 한 번 확인시킬 수 있었다.

전체학생총회 이후 등투위는 기존의 선전전 집회 방식과는 다르게 등록금심의위원회에 적극 참여함과 동시에 선전물 제작 및 부착, 외부 단체 연대 조직 등에 집중했다. 이유는 중간고사 기간과 특별활동주간(수업 외 활동 주간) 등 2주간 등록금투쟁 활동을 현실적으로 펼칠 수 없는 기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2주간 동안 학내 등록금투쟁 분위기는 점점 사라져갔다. 학생들은 이미 등록금을 모두 납부한 상태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등록금 투쟁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등투위에는 이 상황을 타개할 카드가 필요했다. 단식, 본관점거 등의 방안들이 나왔지만, 모든 방안들이 학생들과 함께하는 투쟁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에는 투쟁 자체가 고립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등장한 전략이 “동맹휴업”이었다. 동맹휴업의 경우 학생 대중들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투쟁이고, 동맹휴업을 만들어가는 투표 등 과정에서 학생들의 등록금에 대한 의사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동맹휴업을 등록금 투쟁 전략으로 제시했지만 추진 과정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총학생회운영위원회에 최초 제안했지만 ‘전체투표가 성사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오면 학생들이 패배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 총학의 반대로 시일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로 미루어 졌다. 이 회의에서 다행히 동맹휴업을 지지하는 학생대표자들의 노력으로 동맹휴업을 위한 전체투표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가결된 이후 등투위는 강의실을 돌며 동맹휴업 총투표 지지를 호소했고, 캠퍼스에 동맹휴업과 총투표에 대한 선전물을 내걸었다. 이 시기 서울대, 이화여대 등의 지지와 외부 진보사회단체들의 지지가 큰 보탬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과 연대들은 학우들의 높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축제기간과 겹쳐 성사가 불투명했고, 적극적인 투표 독려를 하지 못한 점이 있었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것이었다. 사흘간 전체학생 5303명 중 54.7%인 2903명이 투표에 참여하며 총학 투표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었고, 이 중 82.9%가 찬성하며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동맹휴업은 전국 최초로 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총학의 문제점은 나타났는데, 동맹휴업에 관한 선전물은 단 하나도 부착하지 않은 점과 5303명 전체학우들의 전체투표 투표용지를 3000장 밖에 뽑지 않는 등의 안일한 대처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총학생회의 불성실함과 책임회피는 이후 등투위와의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힘들게 진행된 6월 6일 동맹휴업 당일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해 수업을 거부하고 학내 광장으로 모이기로 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갔고, 또 많은 학생들은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모인 것은 300명 정도의 학생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이 300명가량 되는 학생들이 몇 시간 동안 기다렸고, 수업을 끝내고 나온 학생들과 결합하면서 제 2차 전체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전체학생총회에서 학생들은 등록금 인하 투쟁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하지만 총회 막바지에 실천투쟁을 논의함에 있어 총학생회가 의도적으로 등투위의 전략을 방해하면서 이날 동맹휴업은 등투위와 총학의 감정싸움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현재 한신대 학교당국은 등록금 3.4% 인상에서 1.9% 인상으로 확정했다. 인상분에서 1.5% 내려간 수치이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투쟁한 학생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등투위와 총학의 갈등 등 과정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학생대표 기구인 총학이 부재함에도 일반학우들이 투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한신대의 투쟁은 높이 평가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학교가 3.4% 인상분에서 1.5% 깎은 부분은 학생들의 장학기금과 교직원 임금이었다. 학생들의 재단전입금과 적립금 문제 해결로 등록금 인하를 이루고자 했던 요구를 무시한 것이다. 우리는 몇 만원 돌려받는 것을 원해 구걸했던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투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신대학교의 등록금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록금문제 해결방안이 교육재정 돌려막기? [썩은 뿌리 자르기]

이원혁(건국대 대학원)

사그라진 줄 알았던 등록금 촛불이 7월 9일, 열흘만에 다시 켜졌다. 이번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많은 이슈들 사이에서도 쉽게 묻히지 않고 있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고 또 그만큼 정치권에서도 민감해진 ‘장사거리’다. 핫이슈는 정치권에서만 잘 팔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의 처방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 얼핏 들으면 옳은 소리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딘가 불편한 진단과 처방책이 있다. 대학이 너무 많아 나랏돈이 허튼곳에 쓰이니 대학구조조정을 통해 정부지원금을 절약하고 그 돈으로 소위 잘 나가는 학교들에 등록금 지원을 하자는 제안이 진보, 보수 진영을 넘나들면서 무릇 사람들의 귀를 쫑긋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진단에서는 등록금문제의 원인을 ‘과잉된 대학교육’때문으로 보는데 여기의 숨은 전제는 교육의 시장화를 부추길 뿐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예전부터 아니 처음부터 대학은 소위 잘난 곳이었다. 동양에서 최고 학문기관인 대학은 대중적 교육기관이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은 “대학공의”에서 본래 대학은 왕의 아들들이나 삼공의 맏아들이 지도자교육을 받던 곳으로 보편적 앎이 아닌 엘리트 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서양에서도 대학은 지적귀족의 사교장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성장했다.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고등교육이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은 개천에서 유일하게 용이 나올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대학을 꿈꿨고 대학은 점차 선택에서 필수가 되어갔다. 여기에 폐단도 많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능력여하와 상관없이 정상적인 직장과 수입을 가지기가 힘들어졌다. 따라서 혹자는 대학의 문제를 학벌사회의 병폐로 보고 대학과잉을 문제 삼는다. 굳이 대학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대학으로 보내는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가 해결되면 소수의 수요자만 대학에 가고 등록금문제와 같은 대학의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 말을 당장 누구한테 할 것인가? 이미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대중적 교육기관으로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엘리트만의 전당으로서 대학은 한국에서는 이미 누구나 넘볼 수 있는 대중적 지적교류의 장이다. 누구나 최고등교육을 받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최고등교육이 시장성, 효율성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다시 말해 공장노동자가 될 사람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대학교육이 취업훈련으로만 대체되는 것이 문제다. 대학교육의 과잉을 말하는 사람의 상상력은 오후에 퇴근한 노동자가 저녁에 대학에서 세익스피어를 읽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사회에는 적정수를 유지해야하는 것이 있는 반면 사회에 흘러 넘쳐도 과하지 않는 것이 있다. 교육의 질을 위해서 대중교육의 자리를 제한하는 발상은 그 교육의 질이 어디를 또 누구를 향하는 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7월 5일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첫 회의를 했다. 이들은 거세지는 반값 등록금 요구에 부응하여 정부가 내놓은 방책이다. 위원회는 교과부 장관의 자문기구로 출범·운영하지만 `사립대학 구조개선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 법적 심의기구가 된다. 이들은 부실 사립대 퇴출과 국공립대 통폐합 등을 주요 주제로 활동하게 된다. 홍승용위원장은 ‘지방대학, 소규모대학 죽이기는 아니다.’라고 단언하지만 사실 위원회의 칼날은 모두 이들을 향해있다. 학생 충원율과 등록금에 대한 재정의존도, 취업률을 기준으로 부실대학과 그를 바탕으로 퇴출대학의 명단을 만든다고 한다. 물론 재학생 수를 조작하고 재단비리가 많은 학교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한다. 위원회는 이러한 문제학교를 조정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위원회의 출범배경이이다. 국가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빗발치는 등록금인하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나온 ‘교육재정 돌려막기’의 일환이 이 위원회의 숨겨진 미션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집에 돈이 없다고 말하실 때와는 달리, 이번 정권이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나라님이 세도가들 세금 깎아주고 살아있는 강물을 세금으로 메우고 이 때문에 재정이 바닥나 등록금인하 요구에 대응하지 못 하는 현실은 정상적인 ‘돈 없는 집안’이 아니다. 실제로 2008년 2725억이었던 시도교육청의 지방채는 2009년 2조1316억으로 훌쩍 늘어났다.(2009교육과학기술부자료 권영길의원실분석) 그러지 않아도 감세와 4대강공사 등으로 전입금을 줄어 적자인 교육재정에 반값등록금은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애당초 무리였다. 위원회의 목적이 ‘돈 아끼기’로 정해진 이상 부실대학 구조조정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진행될 여지가 있다. 위원회의 부실대학 판단기준 중 하나는 등록금의존율인데 우리나라 대학의 평균 등록금 의존율은 80%에 다달 한다. 서울의 주요 사립대는 70%정도인데, 주요 사회적 기부금을 국립대와 서울의 주요 사립대들이 싹쓸이하는 현실과 일본의 대학등록금의존율이 13%, 영국이 26%(등록금의존율 자료-한국일보 2011.6.16 사회면 4면3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토리 키 재기다. 물론 등록금의존율이 극단적인 몇몇 학교도 있지만 이들 학교만을 정리한다해서 실질적인 등록금인하가 가능한 금액이 산출되지는 않는다. 전체의 문제를 일부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 대학 줄 세우기와 이로 인해 만들어진 순위대로, 어쩌면 할당된 수대로 대학을 처분한다면 그 학교를 배움의 터로 삼고 있는 학생들을 다시 한 번 좌절하게 만든다. 대학을 줄여나가며 대학교육을 제한함으로써 등록금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위원회의 칼날은 살생부에 의한 꼬리 자르기가 아닌 대학 전반에 대한 손질이 되어야한다. 등록금의존율 80%인 학교가 문제라고 해서 70%, 60%인 학교가 정상이거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등록금의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교를 퇴출시킴으로써 다른 학교의 변화를 유도한다지만 지방대, 소규모대학과 소위 서울명문대 간의 간극이 유지되는 한 그러한 변화는 요원하다.

등록금문제는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해결되어야한다. 더 이상 한국에서 대학은 선택적 엘리트교육이 아니다. 대학입학자의 비율이 고교 졸업생의 80%에 이르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대학이 많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대학의 문제를 소수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소수의 영역에 감히 침범한 대중을 나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20대의 다수에게 대학은 일상이다. 그 일상이 등록금과 생활비에 눌려있다. 일상의 문제를 특수한 문제로 치부하니 현실적인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보편적 복지는 그 혜택의 제한이 없다. 누구나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 보편적 복지다. 국민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것이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건전하게 부합한다면 이는 당연히 보편적 복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는 건전하게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자하는 청년들의 자연스런 요구이다. 하지만 대학구조조정을 통해 등록금문제를 해결 하고자는 것 300만이 넘는 대학생의 문제를 보편복지가 아닌 시혜적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을 엘리트만의 비밀장소로 남겨 두려하는 것이거나 교육을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맡겨두겠다는 의미로 읽혀 질 수밖에 없다.

등록금문제가 학생들에게 단순하게 금전의 문제를 넘어서는 이유는 이 문제가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이성과 진리보다는 시장논리에 훨씬 더 친숙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등록금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이 아닌 미래의 돈을 기대한다. 취업 후 상환이라는 무책임한 대학등록금 대책 덕택에 대학생들은 취업에 서두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학생들은 소수의 취업이 잘되는 과로 모이고 그러한 몇몇 과는 항상 과잉으로 전문인력을 배출한다. 학생들이 규격화된 욕망 속에서 서로 경쟁하다보니 당연히 취업은 쉽지 않아지고 자본은 노동과 교육을 모두 지배하는데 용이해졌다. 교육의 시장화는 만성적 청년실업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절대 우위를 유지하게 한다. 그런데 정부가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통해 진행하는 구조조정은 이러한 시장화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취업률과 대학등록금의존율을 통한 대학구조조정은 사실상 학벌사회에서 대학 줄세우기의 공식화의 다름이 아니다. 대학등록금의존율은 낮을수록 좋다. 하지만 소위 잘나가는 학교들의 오너가 대기업이 경우가 많고 명문대가 정부 주관사업이나 사회적 기부금을 과점하는 것은 지방, 하위대학들이 못나서만은 아니다.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대학과 학생은 대학에서 직접 금화를 찍어내는 학문에만 치중하게 될 것이며 이는 대학의 시장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위상은 이제 존귀한 지성의 장도, 취업의 지름길도 아니다. 둘 다 실패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 대학은 종합적 교양인을 양성하며 그 속에서 젊은 청춘들이 꿈을 가꾸는 곳이다. 더 이상 신성한 곳도 아니며 금화를 건네는 곳도 아니다. 대중적 지성의 교류의 장으로서 사회 전체의 교양을 함양시키는 보편적 교육기관이다. 물론 이곳에서 미래의 금화를 가꾸고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 누구도 자신의 대학생활을 취업준비로 가득 채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대학에서 기대하는 낭만과 추억은 사회가 기대하는 사회전체의 교양과 연계된다. 학생들의 등록금인하요구는 대학교육의 사회성, 보편성을 요구하는 것이지 이의 선택적 제한이 아니다. 대학의 등록금문제는 사회전체의 지적성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학내 계급과 등록금 문제 [썩은 뿌리 자르기]

박선정(한신대 일반대학원 사회과학 통합과정)

올 초부터 시작된 등록금 투쟁이 장마가 시작된 지금까지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3월에 시작해서 5월이 오기전에 끝난다고 해서 개나리 투쟁이라고 부리던 대학 등록금 투쟁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다. 또한 이번 투쟁은 그동안 각 학교안에서 투쟁을 벌이던 형식에서 벗어나, 학생당사자와 등록금 문제를 동의 하는 대중들이 거리로 나와 범국민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앞서 말한 이 두가지 현상은 모두 등록금문제가 더 이상 한가정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사회적인 문제라는 라는 것을 말해준다.

역사적으로 대학이라는 공간이 사회적으로 모두 똑같은 기능과 구성원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국 사회의 대학은 필수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관문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접근성은 필수적으로 졸업을 해야 하는 상황과 달리 경제적 조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현재 고졸자 10명 중 8명 정도가 대학에 입학을 한다. 이것은 대학 교과과정이 더 이상 소수의 몇몇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학 교과과정이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상황에 반해 등록금은 연간 천만원이라는, 소위 ‘미친 등록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게다가 2010년 334개교의 대학들 중 국·공립대는 14%의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학생들에 대한 등록금 의존율이 국립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사립대학은 86%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적인 국립대 서울대는 현재 법인화 문제를 겪으며 대학이라는 공간이 결코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은 필수로 나와야 하지만 누구나 대학을 쉽게 갈수 없는 사회. 대학은 넘쳐나지만 국? 공립대는 전체대학 중 14%에 불가한 현실 이처럼 대학 등록금 문제는 우리사회가 필수적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등록금 문제는 단순히 등록금을 내리거나 지원해주는 형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사회안에서 대학 졸업의 자격 조건이 강화되는 것과 사립대학의 비정상적인 증가, 이를 둘러싼 대학등록금 인상이, 모두 자본주의 사회안에서의 교육 상품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는 교육마저 상품화 시켰다. 수업은 화폐와 교환되어지고, 이는 대학졸업과 함께 특정한 자격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리고 대학의 서열을 통해 그 자격들은 사회 경쟁체제에서 힘으로 작용된다. 이는 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이아닌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생산하고 이윤을 만들어 내는 기업으로 변모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시대에서 대학이 어떤 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그 안에 어떠한 구성원들이 있고, 그 구성원들이 각각 어떤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대학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공간은 공장처럼 생산수단의 소유를 통한 계급관계의 대립이 극명하지 않다. 하지만 대학 이전의 교육과정(물론, 초?중?고 안에도 노동관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존재한다.)과는 차이를 보이는 학내의 구성단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학내 구성단위들은 학내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다. 이는 계급적으로 대립될 수도 있고 노동의 종류와 위치는 다르지만 같은 계급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

맑스의 노동자 계급 개념을 보았을 때 학내노동자(교수, 교직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임금을 받고 노동을 하는 임금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잉여가치를 창출하지는 않는다. 맑스는 ‘생산적 노동’이라는 정의를 “임금으로 주어지는 생활 수단의 전체가치를 자기자신을 위해 생산할 뿐 아니라 부르주아를 위해 이윤을 함께 생산하는 노동자.”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자만이 생산적인 노동”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비생산적 노동’은 “자본과 교화되지 않는 노동이며 자본이 아니라 수입과 교환되는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이때 수입이란 임금 또는 이윤을 의미하고 여기에는 이자 및 지대 같이 부르주아의 이윤으로서 취득되는 다양한 범주를 포함 한다. 이런 ‘비생산적 노동’을 하는 ‘비생산적 노동자 계급’에는 공무원, 학교 교직원 등이 포함 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 계급이란, ‘생산 관계에서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하는 자’, ‘노동력을 팔아 임금으로 생활하는 자’라는 결론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이처럼 학교 안에서 교수와 교직원은 노동자의 계급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의 이러한 학내 노동자(교수, 교직원)들이 만들어낸 이윤을 착취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등록금과 같은 사안을 놓고 투쟁을 벌일 때 흔히 벌어 질 수 있는 논쟁이고 학내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책임이 전가되어지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는 곧 우리가 누구를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직결된다. 이는 앞서 이글의 서두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교육이 상품화 되고 이윤을 창출해 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자본주의의 생산방식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대학이 국립과 같이 공적공간의 성격이 강한 것부터 시작해서, 법인, 완전한 개인소유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국립을 제외한다면 학교를 소유하는 재단이 학교의 이윤을 착취하는 가장 일반적이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심화되고 교육 상품화의 성격이 명확해 질수록 재단의 기업적 형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운영(정책)의 주체이다. 학교는 일반적으로 재단이 소유하지만 교수들 또한 학교의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교수는 학내에서 이윤 생산의 주체임과 동시에 학교운영의 결정권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노동자로만 규정할 수 없는 교수집단의 성격이다. 중간 관리적 성격을 가진 교수 집단은 학교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고 이윤을 착취하지는 않지만 운영과정에서 대학을 상품화 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등록금 인상 또한 중간 관리를 담당하는 교수진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 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학교당국이라는 의미에는 이러한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집단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학이라는 공간은 학내노동자를 통한 잉여의 착취보다는 등록금을 내는 당사자(학생)에게 높은 등록금을 부과하는 형식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교육을 상품화 시키고 등록금을 올리는 논리는 필연적으로 교수와 교직원의 노동환경 변화를 수반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등록금 인상은 단순히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문제는 대학 내 노동 또한 예외가 아니다.(이미 대학 내 시간제 강사들에 노동권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었다.) 이러한 노동 억압적 요소들은 더 이상 대학을 민주적인 공간으로 존재할 수 없게 한다. 실제 교수사회에서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를 거쳐 중간관리자까지 가지위해서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고, 이런 과정들은 점점 더 권력화 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학위를 이수한 교육노동들이 이러한 교수사회에 편입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교수집단이 학내에서 한편으로는 권력을 가진 중간관리자로 다른 한편으로는 빠른 속도로 프롤레타리아화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학내의 노동유연화는 이윤 생산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교수집단 보다 교직원집단에서 더욱 빠르게 일어난다. 청소나 경비와 같은 행정주변부의 간접고용을 시작으로 행정 중심부의 노동유연화 또한 가속화 되고 있다. 이윤추구 중심의 대학운영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업무들을 만들낸다. 흔히 학내에서 등록금 투쟁의 주체는 학생들인 경우가 많다. 등록금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임금을 학교로부터 받기 때문에 교수와 교직원이 당연히 등록금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인식은 다시 한번 재고해 보아야 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등록금 인상의 원인인 신자유주의는 학내 노동자의 노동권과도 분명연관 이 있기 때문이다.

등록금 해결을 위한 정책들의 실효성에 대한 찬반이 뜨겁다. 반값등록금을 외치고는 있지만 실현될지, 혹은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등록금 문제를 제외하고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이 매우 많고, 그와 과련 된 교내의 여러 계급들이 존재 하는데도 부과하고 여전히 학교밖에서 학생들의 힘으로만 싸움이 진행되는 것 또한 아쉽다.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현재 대학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이고 그 안에서 어떤 구조와 계급들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학이라는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비단 학생 뿐만이 아니 그안에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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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금을 통해 축적된 이윤을 학교와 임노관계인 교수가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권력과 힘으로 연결되는 지에 관한 논쟁은 학교를 계급적으로 분석함에 있어 더 이야기 해볼만 한 여기가 매우 높다.

세일러문의 국가[썩은 뿌리 자르기]

양정진(한국철학사상연구회)

1.‘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 이어 복지국가 열풍이 찾아왔다. (행성X와 혜성 엘레닌을 사랑하는 음흉한 나에게는, 정의론 중에서도 왜 하필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뇌내망상의 세계를 만들어낼 신나는 구실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정의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무지개의 끝에 숨겨져 있는 줄만 알았던 그 정의가, 복지국가라는 이름의 오색 빛깔 스펙트럼으로 공중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조지 레이코프 식으로 말하자면 과거 우리의 ‘엄격한 아버지’께서조차도 우리에게 복지국가를 실현시켜 주시고자 했던 것뿐이라고 그의 생물학적 딸이 주장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진보는 국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 자체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장치라고 폄하하던 과거의 태도를 버리고, 공공선과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로서 국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의 기획은 현실적으로 실패했으며 시장과 국가를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역사의 종말’ 론을 반복하는 경향으로도 나타난다. 내용상 딱히 새로울 것은 없는 주장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이 하필 샌델의 정의론 열풍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보인다.

2.복지국가, 좋다. 더 이상 아무도 크레인에 올라갈 필요가 없고 분신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온다면, 살갑게 돌봐 온 배추를, 소와 돼지를, 아이를 가슴에 묻지 않아도 된다면, 점심 먹을 시간 좀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면, 학생 신분이라는 게 사치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 그게 어떤 이름을 갖고 있든 대체 무슨 상관일까. 누구 말마따나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만 제대로 보장될 수 있어도, 최소한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가슴 벅찰 듯하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처절하게 행복한 상상들이 정의라는 관념과 연결될 때, 또 복지국가라는 이념이 정책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상황일 때, 이 상상들은 단일한 입장으로 좁혀지기가 쉽지 않다.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누구의 정의인가’,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를 물어야 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실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의가 더 우선인가’에 대한 세부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3.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단지 ‘현존하는 긴급한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앞뒤 자르고 무조건 진보가 뭉쳐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CPD)’을 제거해야 한다는 냉전 시대 미국의 논리와 닮아 있다. 미국은 바로 이 논리를 확장하여 9.11 이후 애국자법을 발효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과거에는 매카시즘으로, 현재에는 이슬람교도와 이민자들을 제물로 삼는 희생제의로 나타났다. 즉, 미국은 악을 제거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거했다.

악을 제거하겠다는 수단은 그렇게, 정의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제치고 스스로 목적이 된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은 용납된다. 선과 악의 이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악의 반대가 곧 정의라는 이 단순한 논리 안에서, 악의 제거를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은 악으로 규정된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지난 몇몇 선거에서 어떤 진보 정당은 악으로 규정되기도 했고, 또 어떤 진보 정치인은 ‘정치 생명이 끊어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제는 누가 진보인지, 무엇이 진보인지도 헛갈릴 지경이다. 이러한 이분법을 깨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복지국가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악만 일단 제거하고 나면 공공선과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 국가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은 혁명이 일단 성공하고 나면 이상적 사회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국경 따위 가볍게 뛰어 넘는 국내외 거대 자본 및 잃어버린 십 년을 보상 받고 그들만의 천년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점진적으로 공공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과연 정말로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쉽고 더 빠른 방법인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현재 이곳의 이 누더기 같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다음 선거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기다리고,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그냥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면서 죽든지 텅 빈 축사에서 목을 매든지 반도체 공장에서 암에 걸리든지 4대강 공사 현장에 묻혀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건지, 혹시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 감각이 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4.어차피 둘 다 이상적이긴 매한가지다. 더구나 둘 다 ‘그 이후’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마찬가지다. 둘 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이후의 세계를 합의하고 구성해나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를 바 없다. 어떤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어떤 것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최종 근거 따위는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혁명론자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현재 정치적 입장을 굳이 설명하자면 슬프지만, 무뇌형 변신박쥐라고 해야 적절하겠다.)

그러므로 국가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보다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은, 그리하여 시장과 국가를 자연화 하는 데까지 이르는 주장은, 그다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입장이 더 이상적이고 어떤 입장이 더 현실적인지가 아니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다 그냥 이상일 뿐이다. 이상으로서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이상을 꿈꿀 것인가이다. 즉, 문제는 정의라는 이념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는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를 논할 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5.이상이나 이념이 현실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이상이 현실에 대한 규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상을 갖는지에 따라, 현실을 얼마만큼 바꿔내야 할 것인지, 어디에서 만족하고 변화를 멈출 것인지가 결정된다. 개혁이 됐든 혁명이 됐든 변화의 최종 목적지를 설정해 주는 것이 바로 이상이다.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고 모두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가운데 이들 사이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이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일 것이다. 목적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수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여기서 물어야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이다. 각자가 취하는 이상, 각자가 설정하는 최종 목적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래서 그 최종 목적지에서 내버려지는 것은 누구인지를 물어야 한다. 시장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자신의 이상을 자본주의 내부에 설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상은 아무리 깜찍한 말로 포장해도 자본주의 체제 그 바깥으로 절대 나아갈 수 없다. 기껏해야 그러한 이상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에서는 단지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부유해졌는지, 빈곤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등을 통계적으로 제시하고 한 사람 당 한 표의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만족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목적지에서는 화폐 한 장 당 한 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잘 은폐되어야 하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좋은 삶이 곧 돈을 많이 가진 삶을 의미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것만 잘 은폐된다면 달리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해결되면 좋고 해결 안 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냥 해결될 때까지 열심히 대화해야 한다. 대화에 낄 수 없는 존재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를 대신 말해 주는 시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6.마이클 샌델의 공화주의적 정의론 역시 다르지 않다. 샌델이 정치를 도덕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도덕은 선거에서 보다 많은 표를 획득할 수 있는 도덕이다. <왜 도덕인가>에서 샌델이 미국 국민 전체의 의지이자 미국 국민이 원하는 도덕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설정하는 것은 선거의 결과인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국의 특수한 선거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선거에 반영되는 의지가 대체로 기득권층의 의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샌델이 말하는 도덕은 백인 남성 기독교인으로 대변될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의 공동선이지, 미국 사람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공동선일 수는 없다. 더구나 샌델이 묘사하고 있는 미국 내 인권 확대의 역사가 정치 엘리트 및 백인 남성들의 역사라는 점 또한 샌델의 정의가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를 드러내 주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9.11 테러 이후 누군가는 ‘예외상태’가 상례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또 누군가는 이슬람교도와 같은 특수한 사람들이 희생양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국제적 연대보다도 공동체의 정체성 및 이웃의 정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샌델의 논의는 단순히 개인과 공동체가 맺는 긴밀한 관계에 대한 윤리라고만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샌델이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 공공영역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순간에조차도, 샌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미국 중산층의 재산과 안위이지 빈곤 계층이나 유색 인종의 행복은 아니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7.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는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샌델의 정의론이 놓여 있는 미국의 역사적 맥락이나 사상적 맥락이 잘려나간 채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대기업에 심각하게 프랜들리한 정부가 샌델의 책을 선전하는, 샌델 자신조차도 경악할 만한 어이없는 상황이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미국에서 출간된 2009년에 같은 하버드대 교수인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라는 아이디어>도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센의 책이 보다 더 주목을 받았지만, 그러나 2010년 우리의 서점가를 점령한 것이 센델의 책이라는 사실은 자못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렇게 샌델 열풍을 타고 우리는 샌델이 해석해낸 공리주의와 샌델이 해석해낸 칸트와 롤스를, 샌델이 규정하는 정의와 공동선을 흡수하고 있다.

맥락이 잘려나간 샌델이 현재 활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방식은 ‘나의 주장은 곧 국민의 뜻’이라는 정치인들의 상투어구를 ‘나의 정의가 곧 보편적 정의’라는 새로운 미사여구로 바꿔놓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웃어넘길 수 있다. 두려운 것은 샌델의 논의가 ‘정의’를 공동체에 대한 ‘충직’이나 ‘애국심’과 결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인권에 대한 감각이나 타자에 대한 관용에조차 익숙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샌델의 개념은 공동체나 애국심을 강조하는 논리로, 국가를 신화화하는 논리로 도용되려 하고 있다. 샌델의 논의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은 잘려나가고 이 몇몇 개념들만이 자의적으로 남용될 때, 그 결과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강화, 또는 전체주의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8.때문에, 자신의 정의가 보편적 정의라고 외치며 정의의 이름으로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어떤 복지국가론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는 묻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수를 따르라는 말을 현실을 인정하라는 말로 바꿔치기하는 그 복지국가가, 합의를 실천하지 않고 합의를 종용하는 그 복지국가가, 과연 보편적 복지를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타박하는 복지국가가 민주주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만일 그 복지국가가 먹고사니즘을 내세우며 FTA를 밀어붙이고 삼성공화국을 연장시키는 국가라면, 새만금 간척지에 골프장을 세우는 것이 사회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국가라면, 나는 그 복지국가 절대 반대다. 머나먼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돕느라 자기 자식들의 눈물은 훔쳐 주지 않는 어머니가 제대로 된 어머니 맞냐는 샌델의 논의를 착실하게 따라, 해외 파병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복지국가라면 나는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