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를 부추기는 정치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시대와 철학]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시대와 철학]

 

박영균(한철연 기조부장)

 

증오를 부추기는 세상

 

2012년 여름과 초가을, 한국 사회는 온통 ‘증오’에 사로잡혀 있다. 대외적으로 한국 사회는 이명박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기점으로 하여 반일감정에 휩싸여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묻지마 살인’과 ‘성폭행’이라는 흉악범들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여기에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사건에는 사람들에게 공분을 자아낼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공분’이 ‘증오의 정치’를 생산할 때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보존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를 해치는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누군가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때, 그것에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분노가 특정 범죄자들, 특정 인물에 대한 ‘제거 또는 살해의 욕망’으로 전화할 때, 그것은 ‘위험’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 ‘위험’은 결코 ‘작은 위험’이 아니다. 그것은 흉악범죄가 지닌 위험보다 훨씬 위험한, 근본적인 위험이다. 이런 위험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된 박근혜의원은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 사형제는 필요하다”고 출입기자 오찬에서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이어 새누리당 박인숙의원은 재범 가능성이 큰 상습적 성범죄자에 대해서 물리적 거세를 실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리하여 흉악범들에 대한 분노는 그들에 대한 제거의 욕망으로 이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합리적인 토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 나주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사건 피의자 고아무개 씨가 2일 고개를 떨군 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그러나 이런 선의 절대성에 근거한 ‘제거의 욕망’은 본질적인 물음을 감추고 있다. 그것은 이런 흉악범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면 범죄는 사라질 수 있는가이다. 그들은 모든 죄의 원인을 몇몇 흉악범들에게 돌린다. 그들이 보기에 범죄는 범죄를 저지른 자 안에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애초 인간이 아닌 ‘괴물들’만을 제거하면 사회는 마치 깨끗해질 것처럼 생각한다. 마치 암세포를 돌려내면 암은 사라지기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암세포를 돌려낸다고 암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암세포를 이겨낼 수 있는 우리의 신체, 사회적 환경이다. 사회가 흉악범들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와 같은 암세포가 자랄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근본적인 원인을 사유하지 않으며 눈에 즉자적으로 주어진 감각적 즉물성에 빠져 ‘혐오’를 증오로 바꾸어 놓고 있다.

‘악’에 대한 정당한 ‘분노’는 정의를 생산한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원인을 사유하지 않는 ‘혐오의 감정’을 근거한 ‘분노’가 되어 버릴 때, 그것은 오히려 더 거대한 악이 되어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복수’는 정의의 감정에서 나온다. 하지만 악을 제거하고자 했던 복수의 감정이 오히려 자신을 더 흉측한 괴물로 만들어버리면서 ‘복수의 악순환’을 낳는 것처럼 그것은 ‘악’을 먹고 자라는 더 근본적인 ‘악’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증오의 정치학과 노예의 도덕

 

정념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스피노자는 이미 이와 같은 ‘악’의 악순환을 사유했었다. 그는 ‘원인에 대한 무지’가 부정적 정서에 근거한 악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문제는 이 악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정념에 붙잡혀, 이 ‘악’의 근본적인 원인을 사유하지 않으며 현재의 정념에 충실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형제’와 같은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그것을 처벌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권력을 요구한다.

최근 한 연예인(배우, 김규리)은 자신의 트위터에 “신체절단형 난 반댈세~ 유신이 부활하면 아무나 멍에 씌워 절단해버릴 수 있을 것 같음. 무서워~~”라는 글을 남겼다. 민주통합당도 박근혜의 사형제 옹호 발언에 대해서 유신정권 시절 ‘인혁당’으로 몰아 사형을 집행했던 과거의 역사에 들추어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웬 뜬금없는 이야기냐’는 식으로 민주통합당을 몰아붙였다. 사실, 이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다. 하나는 흉악범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정치범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전쟁’, ‘범죄에 대한 전쟁’ 등, ‘?에 대한 전쟁’이라는 모토로 표현되는, 어떤 특정 악을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정당성 없는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식이었다. 박정희 구데타 정권은 ‘북의 위협과 이에 대한 전쟁’을, 전두환 구데타 정권은 ‘범죄의 위협과 이에 대한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에 대한 청산 작업을 벌였다. 유신독재시절에 정적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것도, 사회정화를 내세우며 ‘삼청교육대’를 만들었던 것도 바로 이런 ‘악에 대한 전쟁’이었다.

만일 독재를 만들어낸 것이 대중이라면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악의 제거’라는 ‘선(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바디우가 정확히 지적하듯이 사이비 선에 대한 열정일 뿐이다. 그것은 실상, 선을 추구하는 정의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확히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나온 것일 뿐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를 보라. 그들이 선교하는 것은 ‘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가 보여주듯이 신을 믿도록 만드는 것은 ‘지옥’이라는 형벌의 참혹성에 대한 공포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폭력범죄자’들에 대한 공분 또한 정확히 사람들이 ‘정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그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물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공포를 통해서 생산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그것은 보다 거대한, 근본적인 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나를 지배하는 권력’에 나를 위탁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보았듯이 폭군은 이와 같은 슬픔의 정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슬픈 정념에 사로잡혀 있는 대중들은 그것을 권력에 위탁시킴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노예로 전락시켜버린다. 따라서 김규리의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권력은 ‘악’을 먹고 자라난다. 그들은 악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강화하며 법을 신성화한다. 따라서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군주제의 커다란 비밀과 그것의 근본적인 관심은 인간들을 속박할 때 이용하는 공포를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하면서 인간들을 속이는 데 있다. 따라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예속이 마치 자신들의 안녕이기라도 하듯이 예속을 위해서 투쟁한다.”

 

지배의 정치학으로부터 벗어나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분단 문제가 곧 이데올로기적 적대와 대립으로, 지역 간의 갈등과 분열로 비화하는 것 또한, 바로 이와 같은 ‘증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북’을 악으로 불러내며 그것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파시스트적 권력을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의 거대한 권력이 되어버린 기독교는 ‘예수 믿어. 안 그러면 지옥 가!’라는 공포를 통해서 교회 내에서의 유일권력을 만들어냈으며 그 권력을 만들어준 대중은 스스로 그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부정적 정서’와 ‘정념’의 포로가 되어 주인을 위해 싸운다. 따라서 문제는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해방과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피를 흘리는 투쟁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투쟁은 단순히 부정의와 싸우는 것만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아차’ 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그 스스로를 속이면서 빠져드는 ‘정념들’과의 투쟁 또한 요구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선’으로 포장하는 ‘정의’가 아니라 ‘정의’ 그 자체, ‘선’ 그 자체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필요로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나(대중) 자신의 성찰이자 권력에 대해 ‘거리를 두고’ 삐딱하게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은 나의 슬픈 영혼을 부추겨 그들의 지배적인 힘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고해의 삶에서 얻는 상처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지배의 정치학은 우리의 고통을 파먹고 살며 우리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며 그 잔혹한 삶의 고통이 유발하는 분노의 정념을 파먹고 자라난다. 따라서 지배의 정치학은 나 자신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나 자신의 밖을 향해, 타자에 대한 공격과 원한으로부터 출발한다. 민주주의가 가진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때 오늘날 우리가 자랑하는 민주주의는, 5년 전에 그랬듯이 한편으로, ‘민생이니 사회통합이니’하면서 노무현-김대중-전태일기념사업회를 방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박정희의 강력한 권력을 환기시키는 이중의 행보가 지닌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을 배신하고 또 다시 대중들 스스로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4.11 선거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시대와 철학]

4.11 선거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시대와 철학]

이 순 웅(숭실대 강사)

 

1. 집단주의의 뿌리

 

1980년대 초반에는 ‘NL(national liberation)’이니 ‘PD(people democracy)’니 하는 게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광주 시민들의 피를 먹고 등장한 전두환 정권, 그 정권을 감싸고도는 미국, 그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바빴다. 북한에 관해서는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친일세력을 청산했고 거지가 없을 거라는 정도라고나 할까.

1982년쯤일 것이다. ‘야비’(야학 비판)라는 문건이 돌고, 학생운동의 위상에 관한 논쟁이 조금씩 일었다. 그건 한국 사회에 관한 진단의 문제였고 변혁 방법론에 관한 문제였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98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가 ‘외채 4강’에 들기도 했다. 한 번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4개 국가가 국제 축구 대회를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4개 국가는 외채가 많은 순으로 1~4위였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 ⓒ연합뉴스

당시의 변혁 노선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자본주의 파국론’에 입각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학생 운동보다는 노동운동에 기대를 일종의 ‘준비론’이었다. 자본주의 파국론에 따르면 학생운동은 일종의 기동전 같은 것으로서 도시 봉기의 기폭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1980년 광주, 강절도 사건이 전무했던 것으로 알려진 해방구 광주에서는 시민들이 시민군 편이었고 ‘완벽한’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파국론에는 광주에서의 봉기가 확산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내지는 이와 유사한 형태의 봉기가 가능하리란 진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이 외채 비율이 높은 것은 일종의 경제 파국의 징표처럼 보였다. 경제 파국은 민중의 불만을 유발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러시아식 혁명이 가능하리라는 판단이 변혁 노선의 한 축을 형성했던 것이다.

한편 준비론은 광주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근본적인 변혁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전두환 정권은 봉기를 진압했고, 각종 언론 등을 동원한 이미지 조작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장악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계급에 기반을 둔 투쟁, 보다 근본적인 계급, 노동자 계급에게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은 일종의 특권 신분으로서 언제든지 변절할 가능성이 있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했다. 일종의 사상적 무장이 강조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사례도 있다. 광주 항쟁이 일어나기 전, 서울역에 모였던 대학생들은 만일의 경우 다시 거리로 나서겠다고 하면서 철수해버렸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작전 실패’였던 것이다. 군부 정권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서울의 학생운동은 군부 세력의 폭력적 각개격파에 무너졌으며 광주에서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광주 항쟁에서도 인텔리들은 투항을 결정한다. 주로 인텔리로 구성된 지도부는 무기를 반납하고 투항하자는 결정을 내렸으며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은 대개 못 배우고 가난한 민중들이었다.

비록 오래 전 얘기이긴 하지만 두 노선은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는 방법론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어떤 노선이 옳은지를 판단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 노선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유다. 각각의 노선이 가진 논리적 정합성이나 현실 타당성이 아니라 내 선배가 어떤 노선을 선택했느냐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어떤 노선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선배들이 둘로 갈라졌다. 선배들의 판단은 무오류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던 당시로서는 혼란이 적지 않았다. 어쨌든 나 역시 어느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의 내 기준은 좀 더 좋아하는 선배 편에 서는 것이었다. 어쩌면 논리보다는 인간관계를 우선시했기 때문에 선택이 좀 더 쉬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중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만, 당시에는 일종의 현장 준비론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무서운 게 있다. 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당시에 이런 저런 노선상의 이유로 갈라졌던 이들이 ‘영원히 안 보는 관계’로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논리를 선택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선배가 까라면 깠던 시절, 선배의 말은 다 옳은 것처럼 여겨졌던 시절, 파국론이나 준비론이나 둘 다 옳은 것처럼 여겨졌고 따지고 보면 어떤 노선이 옳은지 검증하기도 어려운 시절에, 일종의 혈맹 관계처럼 맺어졌던 그 인간관계를 누가 감히 깰 수 있었을까.

1980년대 후반의 학생 운동은 정파 간의 균형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던 노동 현장 운동과는 달리 통일운동 일변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NL파가 득세했다.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서도 북한을 주력군 내지 동맹군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던 것 같다. 수령론이 어떻고, 북한 방송을 듣고 세미나를 한다는 등의 얘기를 간간이 들은 적이 있는데, 나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들이었다. 북한이 그 정도였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제법 길다. 박정희 정권 시절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40년이 넘는다. 봉건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민주화를 경험하지 못한 특수한 운동 환경은 민주적 의사소통보다는 가부장제나 권위에 의존하는 형태의 운동을 만들어냈다. 거기에다 학연, 지연 등의 요소는 같은 노선을 가진 운동권끼리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하는 측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 말은 노선이 다르면 원수처럼 지내기도 했다는 뜻도 된다.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의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이라 묘사되는 현 상황이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일종의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민통당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까. 2012년 5월 13일 현재, 이른바 당권파는 폭력적 상황까지 연출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기존의 제도권 정치를 통해서 보고 배운 것이기도 하기에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통진당이 한국의 진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니 크게 기대할 것도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당 이름 치고 안 좋은 이름이 어디 있는가.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 민주당, 새누리당 등 모두 좋은 이름들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름에 걸맞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기에, 진보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서 곧 진보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태극기 머리에 두른 사람 중에서 제대로 된 애국자는 거의 없지 않은가. 어쨌든 현재의 통진당 사태를 볼 때 다음과 같은 판단은 가능해보인다.

아마도 비당권파는 이번 기회에 당권파의 (흔히 패권주의라 부르는) 집단주의를 일소하고 실질적인 헤게모니를 잡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일사불란한 전열을 갖춘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NL은 대중사업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대중 사업은 정치(精緻)한 논리적 토론이나 합의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오랜 교분과 감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때로는 이러한 문화가 일사불란하게 어떤 대응을 할 필요가 있을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지난번 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다분히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이유 역시 오랜 대중 사업의 결과다.

반면에 PD는 견결한 계급성을 강조하지만 ‘영 아니다’ 싶은 대상과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성공적인 대중 사업과 거리가 멀다. 선거판에서 PD나 좌파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다. 얼마 전 좌파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진보 전략 회의’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다. 좌파의 총체적 실패를 두고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나는 그 평가가 ‘우리도 NL처럼’으로 들렸다. 기왕에 선거판에 끼어들 것이라면 NL을 비판하기 전에 NL처럼 하지 못한 것에 관해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비당권파는 일사불란한 전열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NL적 성향의 당권파와 달리,다소 어중간한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실정에 있다. 더욱이 민심을 배반했다고 평가받는 유시민 그룹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좌파로부터의 심정적 지지를 얻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3.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

 

진보 운동 진영이 선거에 뛰어드는 것은 부르주아 제도들을 활용하면서 부르주아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극복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선거와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활용과 관련해서는 이미 부르주아 지배 계급이 고수다. 선거판은 일종의 포커 게임이기도 하다.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면서도 자기 패를 모두 보여 주지는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진보 좌파는 패를 너무 많이 보여준다. 자금도 딸리고 경험도 없기 때문인지 속을 다 드러낸다. 그만큼 진보 좌파가 선거판에서 기득권 세력을 이기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국민들이 진보적 좌파에게 표를 주는 이유는 수권(受權) 능력 때문이 아니다. 보수 여당이나 야당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순수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 순수함이 훼손된다면 씻을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긴다. 불순함으로 본다면야 보수 여당이나 보수 야당이 훨씬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간인 사찰 사건은 그야말로 탄핵을 해야 마땅한 사항 아닌가. 보수 여당의 정책을 일정 부분 계승한 보수 야당도 정권을 잡았던 적이 있다. 국민들이 그들의 부도덕함이나 반(反)민주성을 유야무야 대충 넘기는 이유는 그래도 그들은 권력을 잡고 무언가를 할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능력이 있든 없든 어쨌든 그들은 국민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보수 야당과 선거 제휴할 때도 이른바 ‘당선 가능성’이라는 것이 늘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통진당은 기존 정치권에서 보여줬던 행태를 그만 보여줬으면 한다. 이제 그만 주목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비당권파는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일단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당권파는 결코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정치에서는 논리가 힘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집단적 연대가 힘이다. 전두환 대통령도 자기 부하들을 절대 충성파로 만드는 데 능했다. 누가 뭐래도 ‘존경하옵는 각하’다. 한편 그 시절에는 언론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는 사람은 다 알 수 있는 시대다. ‘모두가 정치가요, 모두가 정치 평론가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통진당에게 이롭지 않다.

당권파에게는 비당권파의 모습이 ‘조직적 기반도 없으면서 날로 먹으려는 태도’로 보일 것이다. 어떻게 이룬 결과인데 이렇게 줄 순 없다고 볼 것이다. 나아가서는, 당권을 준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당권을 가질 수도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례대표 선거과정에 오해가 있다고 하니 좀 더 조사를 해보는 것도 이미지 연출과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것이다. 투표 부정은 관례대로 한 것이거나 과장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그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인데, 불분명하면 불분명한 대로 그때 가서 국민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지 고민했으면 한다. 그래서 통진당이 아니라 통진당의 일부를 포함한 ‘실질적인 진보적 좌파’가 정치에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거나 장관 정도라도 만들고자 하는 단기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으면 한다. 아마도 이 길은 보수 여당이나 보수 야당 모두에게 실망한 이들의 마음을 얻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고, 진보라는 말이 누더기처럼 보이지 않을 때 좀 더 활짝 열릴 것이다.

 

핵 패권주의 확인의 장, 핵안보정상회의[시대와 철학]

핵 패권주의 확인의 장, 핵안보정상회의[시대와 철학]

강지은(ⓔ시대와철학 편집주간)

 

 

7~8만명이 8월 6일 사망, 그 해 말까지 9~14만명 서서히 사망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이후 히로시마의 이야기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집계 : 직접 피폭 사망자 56명, 최고 4000명 암으로 사망 예상
그린피스 집계 : 20만 명 사망 추정, 9만3000명 암으로 사망 예상
핵전쟁 방지를 위한 의사회 집계 : 54만 명 불구자, 최소 5만 명 사망 예상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이후 체르노빌의 이야기이다. 히로시마 원폭 500배 규모의 방사능이 유출된 그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과 방사능 유출로 아직 집계조차 되지 않는 피해가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2011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지금 대한민국은 53개국의 정상이 참여하는 핵안보정상회의(26, 27일)로 들썩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들썩이고 있고, 차량2부제 시행으로 서울시민들이 들썩이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4월 미국의 핵정책에 관한 프라하 특별연설에서 궁극적으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지향해 나가되, 우선적으로 향후 4년 내 전 세계의 취약 핵물질을 안전하게 보호(secure)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노력을 추진할 계획임을 천명한 데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2010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회의가 궁극적으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정상들이 모이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회의의 의제를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회의의 주요 의제들은 핵물질 통제 강화 및 최소화, 시설보안 강화, IAEA와 유엔1540위원회 등 국제 핵안보 체제간의 협력·조정 강화, 불법거래와 밀수 방지 및 국경통제 강화,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간 시너지, 방사성 테러방지를 위한 방사성 물질 안보 등이다. 여기 제시된 어느 의제에서도 핵무기 보유국의 구체적인 핵무기 감축 계획은 들어있지 않다.

대신 언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과 200여차례(24~29일)의 양자 회담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는 데에 열을

▲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폐막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각 국 정상들과 함께 하고 있다. ⓒ뉴시스

올리고 있다. 특히 언론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등 6자회담 당사국 정상들이 북한의 최근 장거리 로켓 발사 의지에 관하여 논의할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는 세계의 패권을 쥔 나라들이 동북아의 긴장에 긴밀하게 연관되고자 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야야 한다. 더군다나 언론은 핵안보정상회의의 정식 의제는 아니지만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과 관련하여 북핵문제가 거론될 것임을 흘리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테러, 핵전쟁 없는 평화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노골적으로 세계의 패권을 확인하는 자리처럼 보인다. 핵안보정상회의 공식 의제는 ‘비국가행위자에 의한 핵물질과 방사성물질 탈취 또는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 등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핵안보(nuclear security)’ 문제다. 그러나 도대체 그 비국가행위자는 어디에 있는가? 세계 53개국 정상이 모여서 의논하면 비국가행위자가 적발이 될까? 오바마는 9.11을 상기하라고 한다. 9.11은 끔찍한 기억이다. 9.11이 의문 한 점 없이 정확하게 밝혀졌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전세계의 시민들은 실체 없는 비국가행위자를 향해 핵무기를 겨누는 정상들을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자국의 핵무기 감축과 핵발전 중지에 목소리를 모아야 하며, 핵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평화를 우리 모두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보의 위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Q 선생의 閑談]

[Q 선생의 閑談]

진보의 위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론 ? 진보의 위기와 연관하여

글: 이규성(편집위원장, 이화여대 교수)

최근 참신한 석사학위 논문이 숭실대 철학과에서 나왔다. 논문 제목은 『무페와 라클라우의 급진민주주의론』(한유미, 2011, 지도교수 김선욱)이다. 이 논문은 계급의식이 희석되고 다양한 시민운동들이 출현한 상황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을 오늘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신자유주의적 경제국가가 주는 고통)과 연관하여 논하고 있다. 이 급진 민주주의론은 계급분석에 의거한 근대적 계급동맹론으로는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반영한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 일상세계를 장악하고 있으며, 초특급 부자는 뒤집어진 마르크스주의자처럼 계급의식이 분명한데 서민들의 계급의식은 희석되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국가나 소비문화에서 찾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만인의 평등한 자유를 부정하는 보수여당의 자유 민주주의가 인격의 평등과 자율지배라는 민주주의(급진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기본 조건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한유미는 특정 이론가의 학설을 소개하는 태도를 넘어 민주주의 정신을 오늘의 상황에 적용하여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에서 무폐와 라클라우의 제안을 시험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뒤흔듦’, ‘전복’ 등과 같은 개념들을 자주 구사하는 것에서도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는 우리 진보정치의 위기와 연관하여 다시 음미해 볼 만한 개념들을 제시하고 있다. 급진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은 보수당의 정치?문화적 패권(헤게모니)이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한국에서 그 패권은 보수당의 저급한 교양에서 나오는 정치공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기 이익을 민생으로 포장하고 반대파를 내몰기 위해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광기의 종교재판, 불화와 궤변에 능한 정치인이 애국을 요청하는 것, 이에 동조하여 반종북을 고백하는 인사들의 형식적 민주주의론 등은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석으로 내몰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 근본 공리(公理)를 부인하는 이 모든 행태들이 노회한 독재의 후예들의 패권 장악으로 귀결된다면, 해방 공간에서의 한국 진보정치의 실패를 다른 형태로 반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급진 민주주의는 당연한 관심사가 되며, 이 관심이 어떻게 정치?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성해나가는 실천으로 될 것인가라는 물음도 나오게 된다.

급진 민주주의론에 자극받은 한유미는 민주주의라는 기호(기표)가 정치적 편의에 따라 규정되어 왔듯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보면서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임을 전제한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즉 ‘인민의 자기통치’라는 이념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관철되어야 한다. 그것은 근대 마르크스-레닌주의 ‘계급동맹론’이 자유를 자유주의적 개념으로만 치부해오던 관습을 극복하는 동시에 평등을 제거하려는 자유주의의 폐습을 넘어서는 방향성을 갖는다. 자유와 평등을 함께 추구하는 급진 민주주의는 기존의 좌우 정치사상의 관행을 뒤흔들어 이른바 초심을 회복하게 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만행의 산물인 비정규화된 인생(비정규직 근로자, 유랑 이민자, 실업, 여성 노동자, 어린이 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반자본, 반국가적인 ‘헤게모니’를 ‘구성’하려 한다.

헤게모니는 그람시로부터 온 개념인데, 구식 계급동맹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 의해 정당화되지 못하는 모든 피억압자, 예외자, 이른바 타자를 정치적으로 구성하여, 국가와 자본의 영역인 내부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사회에 이러한 타자가 있기에 정치가 있는 것이며, 이정치는 헤게모니 구성의 활동이기에 타자는 ‘구성적 타자’가 된다. 이러한 헤게모니 구성 활동이 ‘정치의 사회화’이다. 이것은 국가 내부로부터 배제된 외부자를 정치화하는 장외 활동이므로 여러 형태의 차이들을 갖는 시민운동과 그 밖의 반체제적 정치활동을 포괄한다. 정치의 사회화는 외부를 정치화하여 내부를 뒤흔들고 그에 침투하여 보편적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효력을 갖는다. 그것은 내부의 특권을 전복하려 한다. 이러한 활동으로서의 민주주의는《정치의 사회화》 이외에도 부차적으로 ‘정치의 국가화’도 필요로 한다. 《정치의 국가화》는 의회와 같은 기구에 들어가 제도내적 활동을 통해 민주화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정치의 국가화는 정치의 사회화가 지역성에 갇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처럼, 진보인사들이 국가권력에 사로잡히거나 지나치게 우경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갖는다. 그러나 정치의 국가화가 급진 민주주의 정신을 상실하지 않는 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가를 변형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

한유미가 주장하는 급진 민주주의 전략은 ‘두 개의 공간’ 즉 ‘국민국가 안과 밖에서’ 쟁투하여, 근대적 확실성이 사라진 사회의 ‘불확실성(결정불가능성)’ 속에서, 배제된 외부자와 내부자의 경계를 타파하는 부단한 과정적 민주화의 쟁투에 진입하는 것이다. 역사의 미래를 단시일에 결정하는 결정적 계급과 이 계급이 권력을 장악한다는 확실성은 사라졌다. 사실 레닌도 언급했듯 자본주의와 의회제가 정착된 사회는 혁명을 말하기 어려운 또 다른 상황을 보여 준다. 성질 급한 사람은 결정적 미래가 도래하지 않는 과정적 급진론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봉건제의 붕괴와 세계대전이 혁명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대와는 달리 ‘극소전자혁명’과 ‘생명공학 산업’이 자본증식의 논리에 잡혀 있고, 계급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 여러 사회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급진 민주주의론은 주목할 만한 대안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 투쟁이 진보적이지만 않고’, 각종 차이들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 단체들이 있는 한, 노동과 차이의 정치학을 연결하여 반민주세력에 적대하는 헤게모니를 구성하려는 급진 정치학은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도 정치의 사회화와 정치의 국가화에 이미 접근하고 있다.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론처럼 ‘경계의 무력화’는 이미 진보진영의 전략이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제도권에 진입한다는 정치의 국가화는 한유미의 지적처럼 국가권력에 오염되어 방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권세가들의 비리는 법을 멋대로 휘두르는 망나니들에 맡겨지고, 동강난 전함에 대한 엄밀한 화학적 조사 요구를 종북으로 위협하며, 비정규 노동자의 절규는 그 원인 제공자나 판사에게 맡겨지고, 대학생들의 생존 위기와 교육의 파탄은 교육 산업가들에 맡겨지며, 여성노동자들의 비참이 국가 여성주의에 맡겨져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민주적 가치에 입각한 헤게모니 구성에 민주주의가 실패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정치의 사회화가 불평등한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면, 민주진영이 이 핵심을 버리고 정치의 국가화에 몰입하여 내부 분란으로 치닫는 것은 국가화가 갖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그 함정에 빠진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급진 민주주의론은 오늘의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 보건대 진보적 활동은 온갖 어려움에 봉착하고 허약한 인간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현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어 양쪽이 모두 민주적 가치와 덕을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은 자유와 평등을 모순관계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양자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유 없는 평등이 평등을 부정하게 되어 인간의 평등이 아니게 되며, 평등 없는 자유가 자유를 부정하는 부자유로 귀결된다는 역설을 직시한다면 한유미의 급진 민주주의론은 오늘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치의 사회화와 평등한 연대를 통한 헤게모니 구성이 근본적으로 폐쇄성을 극복하는 개방성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이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인성론적이고 윤리적인 토대가 무엇인지가 더 분명해지면 급진 민주주의론은 그 철학적 기초를 획득하여 오늘의 난국을 헤어날 수 있는 가치관을 수립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계급사회가 있고, 이를 극복하고 자신을 실현하려는 인간성이 있는 한 정치는 존속할 것이다.

미 공화당을 모방하여 빨간 옷을 뒤집어 쓴 보수당은 타도의 대상이었던 독재의 망령을 불러와 다시 응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민생이라는 반민주적 구호로 그들이 통합하려는 세상은 둘로 분열될 것이다. 특권과 민주로 갈라서게 되는 것은 인간위에 인간 없고 인간아래 인간 없다는 초등학생도 아는 평등 원리 때문이다. 급진 민주주의는 이 인간 선언위에서 다양한 운동들이 연대했던 3 ? 1 운동의 원리를 새로이 계승하여 시민적 헤게모니를 확장해 나아갈 것이다.

농촌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썩은 뿌리 자르기]

농촌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썩은 뿌리 자르기]

장 민 수(목부)

 

시골에 살다보면 과일을 잘 사먹지 않게 된다. 제철과일이나 하우스 작물을 서로서로 나누는 경우가 많아서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작물 같은 경우 너무 많아서 가끔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 이런 곳에 살다보면 과일을 사먹을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간 학생들을 보면 그리 품질이 좋지 않은 과일을 돈 주고 사서 먹어야할 때 특히나 아깝게 느낄 수밖에 없다. 비단 과일뿐만이 아니라 시골에 살다보면 서로서로 먹는 것이나 쓰는 것을 참 편하게 나누는 경우가 많다.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이웃이 큰일이 있을 때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당연히 도우러 오는 아름다운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시골인심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얼굴을 마주하고 살고, 같은 일을 하게 되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시골에서는 이런 나눔의 삶이 결국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퍼져있는 것 같다. 철저한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나눔을 이어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즉 이 나눔 속에는 어디까지나 삶의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드는 집단의 선택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친절을 받기 위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방식이 반복되고, 내가 도움을 얻기 위해 당장 아무이익이 없더라도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게 이곳의 방식이다. 농사는 대부분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자세가 언제나 최선의 삶의 형태가 된다. 도시에서는 많이 약화되어 있는 이웃 간의 협동과 나눔이 아직 시골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중심이 도시가 되고나니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않아도 되지만 지켜졌으면 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중 하나가 이 “시골인심”이다. 즉 도시민들은 자신들은 나눔이나 배려를 가지는 삶의 자세를 매우 약화시켜 놓고는 시골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농사보다는 신산업이 경제적 이익이 더 큰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비도시에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적 상황을 만들고 인간의 삶조차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현실에 살아간다.

시골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나무에 열린 열매를 마음대로 꺾는 사람들에게 이곳의 주민으로서 항의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심운운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언제나 시골사람들은 무지하고, 순박하며 뭐든 퍼주는 사람으로 그려내고 있다. 심지어 시골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현대화된 시골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이어가는 것만 그려내려 조작하기도 한다.

 

여전히 시골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미디어

 

한우농장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소고기를 먹는 모습, 뜬금없이 초가집에 가마솥을 걸어놓거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신기해하는 모습까지 우리는 심심치 않게 티비에서 만들어내는 시대에 뒤떨어진 시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전혀 공감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언제까지나 시골이 그런 모습을 지키기를 원하는 것인지 시골사람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보며 과연 이 사회가 시골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시골의 모습은 잘 나누어주면서도 더럽고 무지하다. 이러한 방식의 표현은 이들을 희생시켜도 되는, 혹은 도태되어야만 하는 이미지로 그리는 것이 아닐까. 이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나 매체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가진 편견 속에서 시골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정과 나눔의 삶을 가진 사람들이 왜 희생과 도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어째서 사회가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이 인심의 문제라면 문제가 크지 않겠지만, 사회는 지금 더 이상 산업의 주체 혹은 경제의 주체가 되지 않는 모든 것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도시에 관련된 정책의 중심에는 도시민이 있어야하고, 농어촌에 관련된 정책에는 농민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수입제품이 싸거나, 토지의 개발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농어촌정책은 농어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 토건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투기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될 때가 많다. 예를 들자면 말 많던 한미 FTA를 하고 나서 축산민을 위해 정부가 우선 시행하며 생색을 냈던 정책이 바로 폐업 장려금이다. 경쟁력이 약한 산업이니 다른 일을 찾아보기 위해 현재 사업을 중단하면 장려금을 주겠다는 이야기인데, 바꿔 말하면 농업이 망해도 다른 산업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냥 접으라는 이야기다. 농민의 입장에서 이게 지금 우리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미국정부에서 하는 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미국 농업의 이익을 위해 발벗는 대한민국
전농등 농민단체는 15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협상국회비준저지 농민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구제역이 일어났을 때도 발 빠른 조치보다는 정치인들의 환심 사기를 위해 피해지 방문이 줄을 이었다. 무조건적인 살처분이 이어졌고, 그로인해 한국의 축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적 가축의 감소와 더불어, 그 이후의 후폭풍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책은 급하게 만들어졌고, 후속조치는 조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좋아하는 “선진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물만 축산업종사자들에게 통보되어졌다. 한국의 축산품의 이미지는 바닥을 쳤고, 덕분에 수입농산물을 엄청나게 들여올 수 있는 명분이 섰다. 이번 정부가 차라리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였으면 축산민들이 덜 억울했을 텐데 최근 광우병 발생 후 국가가 취한 태도는 축산민들의 분노를 사지 않을 수 없는 태도였다. 구제역이나 광우병은 세계가 인정하는 위험질병이다. 그럼에도 광우병 걸린 미국산소고기는 아무문제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수입을 막지도 못했고, 흐지부지 지나고만 있다.

한국정부가 한국의 축산물보다 미국산 축산물에 대한 안전성 홍보에 열을 올리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국의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를 홍보하고 나서니 축산인 으로써 기가 찰 노릇이다. 내 나라의 정부가 자기 국민보다 타국의 집단을 위해준다면 과연 어떤 국민이 그 정부를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정부가 취하는 농어민에 대한 태도는 과연 이 정부가 우리나라의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농어민이 겪어야하는 불합리함은 정부정책에 휘둘리는 것뿐 만아니라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농어민 같은 생산자들은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임에도 위치만큼 시장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한다. 언제나 소비자보다도 중간상인이나 정부에 휘둘려야한다. 이는 매우 불합리하지만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매년 부채가 늘어나는 농민이 허다하다. 소를 예로 들어보면 누구나 소고기는 비싸다 생각한다. 이는 식당이든 정육점이든 어디를 가든 소고기 값이 항상 비싸기만 하고, 내리는 건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고기 가격이 산지에서는 조그만 일만 있어도 탄력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심지어 구제역파동 이후에 산지에서 곤두박질친 소의 가격이 소고기에는 전혀 적용이 안 되거나 겨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린 게 전부였다.

이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은 한우의 가격에 대해 언제나 비싸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상 값싼 외국산 고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언제나 생산자들에게는 무항생제, 깨끗한 환경, 동물복지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중간마진이 엄청난 유통과정은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와 생산자만 손해를 보고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결국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산업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결국 시골경제의 몰락을 가져오고 있다.

정책과 시장에서 자리를 잃은 시골사람이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할 수 있을까. 시위를 나가더라도 농민의 시위는 제대로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의사의 시위에 경찰이 곤봉을 들고 진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농민의 시위에는 어김없이 강경진압이 이루어지거나 시위자체를 봉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농민은 사회적 약자이자 국민이다. 국민간의 차별을 정부나 매체가 스스로 만들어 낸다면 이야말로 불합리한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시와 농촌의 공생 절실

 

부농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시골사람이 사실 다 부자인데 앓는 소리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맥이 풀린다. 시골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시골사람이 가난하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국가 내에서 시골과 도시가 차별이 존재하며, 정책이 시골 위주의 산업보다는 도시 위주의 산업에 집중된다. 국가 간 무역협정에서도 언제나 농어업, 축산업은 포기하더라도 다른 산업에 이익을 늘릴 수 있다면 너무 쉽게 시골의 주요산업들을 포기시킨다. 많은 FTA가 이루어질 때마다 농민들이 자살하며 소리 지르고 시위를 벌이지만 정부는 지원책을 펴줄테니 조용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불법시위라 규정하고, 제목소리 내는 것조차 눌러버린다.

힘이 없는 국민이 자신의 직업을 잃게 만드는 정부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부를 바른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농민의 산업을 알아서 폐기시키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지는 의심해 보아야 한다. 국가의 총이익이 늘어날지 몰라도, 정책으로 인해 산업이 망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과 이익을 얻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이는 분명 불합리한 일이다. 이대로 시골과 도시의 격차가 벌어지고, 계속해서 시골에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 사회는 불균형을 견디다 못해 한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사회란 유기체인데 한쪽이 무너지고 다른 쪽이 선다고해서 그 사회가 얼마나 오래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겠는가.

나눔과 공생의 시골이 누군가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한쪽에만 희생을 강요하는지, 이게 상식적 사회인지 의심해야한다. 시골사람에게 계속 시골인심이 있길 바란다면 사회가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모습을 버리고, 시골에서조차 무분별한 이익만을 쫓아가게 만든다면 우리사회는 돌아 갈 곳을 잃고 말 것이다.

 

 

‘양키들보다 상전들이 더 문제구나’ ? 끝없는 주한미군범죄에 대하여[썩은 뿌리 자르기]

진보성(대진대학교 강사)

“전대미문의 만행 – 오천년 문화민족으로서 처음 당하는 천인이 공노한 미군인의 조선부녀능욕사건”(「동아일보」, 47. 1. 11), “호남선차중에서 일어난 사건은 미국이 아모리 연합국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엄중한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연합군의 조선주둔 목적이 조선 민주과업 완수지도에만 있을진대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소수의 자격자만 남겨놓고 그 외의 제 군인은 급속히 총 철퇴를 단행하라”(「경향신문」, 47. 1. 14)

1947년 1월 7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벌어진 미군의 부녀자 강간사건의 보도이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군범죄가 언론에 구체적으로 보도된 첫 사례이다. 이 사건은 같은 해 2월 18일 서울 대법원법정에서 피해자들이 직접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 최초의 판결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판결은 관대하다. 미군의 범죄는 대부분 대국민 강력 범죄이고 미군기지 부근 지역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에 미군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민감하다. 그 동안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와 같은 단체의 지속적인 감시와 노력으로 미군과 미군범죄에 대한 국민 의식이 많이 성장했다. 그러나 성장한 국민 의식에 비해 한미 간 ‘SOFA :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대미종속의 굴욕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군들이 안심하고(?) 범죄를 행하도록 방조하는 꼴이다.

199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12세 소녀가 주일미군 3명에게 윤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오키나와 지역은 물론 일본 전역에서 대중들이 폭발했다. 결국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사과를 했고 SOFA 협의를 개선하여 ‘살인ㆍ강도ㆍ강간ㆍ방화ㆍ마약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해 기소 전 미군이 일본 경찰에 신병 인도를 호의적으로 고려한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한미 SOFA 규정에 따르면 중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라 하더라도 검찰 기소 이후에 한국이 미군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다. 한국 경찰은 미군에 대한 구속수사를 선점하지 못 한다.

지난 5년간 1,463명의 미군 범죄자 가운데 SOFA가 규정하는 12대 중대 범죄에 속하는 살인, 강간, 강도 등의 흉악범이 101명에 달했으나 경찰이 구속수사 의견을 낸 것은 단 4명에 불과했다. 한국 경찰은 매번 주어져 있는 수사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동두천과 마포에서 야간에 주거침입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 국무부 부장관과 차관보가 사과의 뜻을 표했고 미2사단장도 사과했다”며 “오키나와 사건과 이번 사건은 다르다. SOFA가 불평등 하다고 하지만 일본, 독일에 비해 절대 불평등 하지 않다”며 “이번 사건으로 SOFA 개정을 거론하기는 힘들다”고 답변했다.(「문화저널21」, 11. 11. 9) 이런 발언은 우리나라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자의 발언이 될 수 없다. 뭔가 정신이 온전한 상태인지 의심될 정도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후 한동안 ‘악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요구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개정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동두천과 마포에서 발생한 10대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미군은 다시 병사들의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했으나 사실 미군들의 야간통행금지는 최초 9?11테러 이후 미군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이번 사례도 자군의 보호 차원에서 실시된 것이지 한국인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고려는 한 번도 없었다. 주둔군을 위한 정책만 있고 주둔지 주민의 안전과 인권은 무시했다.

주한미군문제는 언제나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당국의 무관심?묵살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지는 10년이 조금 넘는다. 그 동안 반공주의와 국가안보주의에 의해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대책과 존립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금기시되었고 일종 성역화 되어 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친미=반공=반북=안보가 되고 반미=친공=종북좌파=국가전복세력이 된다. 이 논리가 곧 바뀔 수 있다는 여론이 10년 전 얘기였다. 하지만 광복절에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미국빠들이 여전히 등장하는 상황을 두고 볼 때 웃고 넘길 일 만은 아닌 것이다.

주한미군의 범죄는 지금까지 소수 문제 사병들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미군 당국과 한국 정부는 주장해 왔다. 매번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주한미군은 안전 대책으로 ‘버디 시스템’과 ‘컴벳 윙맨’과 같은 규정을 두는데 이는 외출할 때 미군 병사 혼자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오히려 역으로 미군 여럿이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군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 당국에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애초부터 이런 기대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주한미군이 미군범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친미수구세력의 순진한 바램이다. 주한미군은 사실상 점령군이다. 점령군은 점령지 주민들의 안정과 평화, 행복에는 별 관심 없다. 얼마나 더 적은 비용과 행위로 자기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미군의 점령군적 지위를 인식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우리 정부는 항상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서 국가안보가 확립되고 동북아 평화유지에 필수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하지만 MB의 말을 빌려, 이거 다~ 거짓말인거,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실질적인 이유를 오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국민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국민 개개인이 고통을 감내해야 안보가 지켜진다는 주장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독점하는 안보주의의 한계이다. 오히려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인들과 미군부대 주변 사람들에게 일상적 안보의 허점을 노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구원군이란 명목으로 조선에 들어왔을 때 명나라 군대의 모습도 지금 미군의 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고 지금 정부의 대응과 과거 조정의 대응도 닮아있다. 전쟁 후 외상 스트레스에 의한 명군들의 횡포는 말도 못했다. 거주민들의 가옥을 차지하고 약탈과 부녀자 희롱은 물론이고 심지어 비협조적인 지역관료의 목을 끈으로 묶고 끌고 다니면서 폭행하여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있었다. 군기해이로 인한 사건 뿐 아니라 명군의 군량 공급에 막대한 돈을 들이면서 조선민의 고통은 막심했다. 당시 명군 지휘부는 병사들의 작폐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비호하거나 문책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에서는 백성들의 탄원을 듣고도 명나라가 베푼 ‘재조지은(再造之恩)’에 감사하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할 처지에 “어느 벌레 같은 백성이 감히 이런 짓을 했느냐”고 대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용산 지역은 우리역사에서 외세가 침략한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증언하는 땅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지금의 효창원 부근에 보급기지를 설치하고 명나라 군대와 강화조약을 체결했으며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하였다. 1884년 청일전쟁 때는 일본 군대가 주둔하였다가 1885년 을미사변 때 민비 시해에 개입하였다. 또 일제는 1908년 조선군 사령부를 용산에 세워 동북아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이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오늘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국민일보」, 04. 4. 22)

외세침탈의 역사를 겪으면서 동족은 외세가 돼버렸고 외세는 과거 존명(尊明) 사대주의를 뛰어넘어 항상 고마워하고 감사해야할 아버지(국부 이승만)의 아버지 나라쯤으로 여긴다. 과거 ‘재조지은’과 ‘자유주의의 은인’이라는 상징은 오버랩 된다. 이런 오버랩이 너무 남발되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리고 국가주의적 안보유지라는 미명 아래에서 정작 미군의 범죄를 우리 현실에서 일상과는 아주 먼 얘기로 인식해 온 듯하다.

문제가 생길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미군문제와 관련하여 항상 정치적 구호와 같은 큰 얘기만 한다. 그리고 작은 이야기, 실제 삶의 목소리는 일단 제쳐둔다.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이해와 대책」에서 김혜순은 주한미군 관련지역 이외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미군은 “군사적, 추상적으로만 존재해 온 듯하다.”고 말한다. 미군의 존재는 관련 연구자, 기지촌 경험자들, 활동가들에게만 존재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여론이 들끓다가 식으면서 구체적 미군의 존재는 다시 잊혀지고 미군철수논란, 남북문제 속에서 미군은 다시 군사적, 추상적 존재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안보문제를 추상적으로 생각해 왔다. 한미동맹은 무엇을 위한 동맹이고 국가안보는 무엇을 위한 안보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미군범죄 사안 자체는 한미 양국의 관계가 치우쳐 편향되었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명하게 알려주는 사실이다. 2000년에 매향리 주민들이 미공군사격장 폐쇄를 주장하며,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정부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럽다”며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던 일을 상기해 보자. 국가가 주장하던 국가안보가 구체적인 안보대상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자국민에게 오히려 피해와 고통을 준다면 그 안보는 허상이고 국가폭력이다. 허상에 충성하도록 국가가 폭력을 남용한다면 국민 역시 그 국가의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85호 크레인 위의 외침과 집단적 책임의 문제[썩은 뿌리 자르기]

조현진(숭실대 강사)

독일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열린 나찌 전범재판을 참관하고 난 후, 그 과정과 함께 전범재판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 책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펴냅니다. 평범한 가장이요 자상한 남편인 나찌의 간부들이 상명하달의 조직체계 안에서 어떻게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를 고발하고 있는 이 책에서, 아렌트는 ‘집단적 책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원래 서양철학 전통에서 ‘책임’이란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물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동기의 확인이 필요한데, 집단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그런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러한 동기의 확인은 더욱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국가의 구성원이나 거대조직의 구성원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것으로 간주됐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렌트 이후 이런 인식은 바뀌게 됩니다. 나찌의 유대인 학살이나 정신분열증환자 및 정신지체아에 대한 안락사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범죄행위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법안을 통과시키는 의원들을 국민들이 뽑지 않았다면 그러한 야만적인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야만적인 해악을 예방하는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 비로소 집단적 책임 개념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한진 중공업 경영진의 집단적 책임감의 실종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이자 민주노총 지도위원인 김진숙 씨가 4인의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영도조선소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농성은 390일간 지속되었습니다. 회사 측은 수주경쟁력의 저하, 매출액의 현저한 감소, 경영실적 악화 등을 들어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회사 측이 정리해고 발표 다음날 대주주들에게 174억을 배당하고, 이사들의 연봉을 1억원씩 올리기로 결정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상황이 회사 측이 내세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당시 경영상황이 긴박했다는 회사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사실로부터 정리해고가 자동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경영진 역시 수주경쟁력의 저하와 같은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진중공업의 경영진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 데 대해 집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집단적 책임을 망각한 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현실과 세대간 부정의에 대한 집단적 책임의식의 필요

그러나 경영진들의 이러한 집단적인 무책임은 보다 광범위한 집단적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보다 광범위한 집단적 무책임이란 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한 우리 모두의 집단적 무책임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명예나 OECD 가입국이라는 지위는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삶의 질 하락을 댓가로 한 것이었습니다. OECD 최장 노동시간(평균치보다 600시간 이상 차이)과 OECD 최하의 최저임금 수준이라는 통계자료는 이런 주장이 근거없는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조합 조직율이나 단체교섭적용률은 OECD 가입 이후 꼴찌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이중적인 노동통제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실시함으로써 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노사관계가 불공평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적어도 노동분야에 관한 한 민주화는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역동적인 정치 민주화 과정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주의와 노동의 민주주의 간의 이러한 불균형을 낳은 주원인 중 하나로 국민들의 반노동적 관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노동적인 관점은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이념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요인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와 고용주간에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할 때 고용주의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생각하고 해결하려는 관점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발상이 두 가지 명백한 사실을 망각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반노동적 관점은 노사관계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의 소유자는 생산과 투자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이를 통해 국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노동자에게 사회적으로 중대한 권력을 행사합니다. 오늘날 마치 상식처럼 되어버린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같은 생산에 대한 지휘권과 국내공장의 해외이전 같은 투자에 대한 지휘권이 국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노동적 관점의 또 다른 자양분은 노동상품 가정입니다. 이는 노동자가 기업주에게 파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우리가 사고 싶을 때 사고 또한 팔고 싶을 때 파는 여타의 상품과 다를 바 없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가정입니다. 이로 인해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 인해 기업주에게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준강제적인 노동계약은 자발적인 계약으로 포장되며, 실업은 낮은 임금의 노동을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노동귀족’의 불평으로 폄하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실업이 발생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이런 관점은 실업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노동적 관점이 이처럼 기업 소유자가 생산과 투자에 대한 과도한 지휘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노동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망각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면, 또 이런 반노동적 관점이 노동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주요인이라면, 노동의 민주주의를 위한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전환은 정리해고나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인해 일어나고 있고 또한 앞으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인 책임을 진다는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88만원 세대보다도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할지도 모를 후속 세대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 역시 갖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의 고용기회와 고용의 질을 희생시키면서 현재 세대의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어떤 의미로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과 민주주의 관련 조항이 때아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경제민주화와 민주주의가 시대적 화두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이중적인 불공정 노동의 족쇄가 작동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노동없는 민주주의 문제만큼 시급한 경제 민주화의 과제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5호 크레인 위의 고공농성은 일단락되었지만 너무나도 긴급한 시대적 과제의 해결을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에>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임을 밝혀 둡니다. –

한국 법치에 대한 단상 [썩은 뿌리 자르기]

오상현(한국철학사상연구회, 상지대 강사)

얼마 전, 진보진영의 버팀목이셨던 이소선 어머니께서 향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한(恨) 많은 그분의 마지막 길에는 ‘살아남은 자’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바람처럼 떠나버린 아들, 태일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40여년의 세월, 그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우리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제 사람이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잠드시길 기원한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이십대 초반의 한 청년의 절규가 있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전하고는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폈다. 그가 전태일이다. 유명무실했던 ‘법’ 앞에서 참담하고 무력했던 젊은 혈기는 자기를 태워 세상을 비추고자 했다. 법을 지켜달라는 소박한 바람은 재가 되어 모란공원에 잠들었다.

며칠 전, 학부 4학년 후배에게 ‘한국 사회의 법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 녀석 머뭇거림도 없이 짧게 되물었다. “유전무죄 아닌가요?” 부와 권력을 누리는 이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도 생활고에 못 이겨 범죄를 저지를 이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것이 한국 사회의 법치가 아니냐고. 취업 전선에 내몰려야 하는 예비 사회인의 대답이라 더욱 가슴에 남는다.

2010년 봄,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는 이른바 ‘스폰서 검사’편이 방송되었다. 제보자 스스로가 ‘다수의 전현직 검사들에게 지속적으로 금전 · 향응 · 성상납 등의 스폰서 행위를 해왔다고 밝힌 문서를 토대로 진행된 취재의 결과물이었다. 제보자와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세밀한 부분까지 사실에 가까운 보도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기에 순식간의 세간의 관심이 주목된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에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들은 과연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지난 7월 6일 연합뉴스에는 ‘스폰서 검사’ 의혹 사건의 중심인물 중에 한 사람인 한승철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기소됐다가 1ㆍ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면직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냈고 이에 대한 판결이 기사의 내용을 이루고 있었다. 예상(?)대로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시 말해서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인해 면직처분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부분은 인정되지만 그 금액이 100만원 정도에 불과해 징계 종류로 면직을 선택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득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검사(檢事)’라는 집단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든 잘 모르겠다면 사전부터 뒤져보자. 그러면 실마리가 보이는 법이니까. ‘검사’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 행정공무원과는 달리 각자가 단독으로 검찰사무를 처리하는 단독관청으로서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서 향응을 제공받은 것은 인정되지만 그게 고작(?) 100만원 정도라면 별 문제 없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말이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처분이 내려진다지만 어딘가 좀 수상한 법이 또 하나 있다. ‘병역법’이 그것이다. 병역법이 대한민국 모든 청년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회 지도층’이라 통칭되는 그룹, 다시 말해 정치인이나 재벌들의 2세가 군에 입대하는 비율은 일반 청년들이 입대하는 비율에 비하면 이상하리만큼 적다. 현 정부 고위 관료들을 보아도 그 흔한 군필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법은 왜 권력을 지닌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이 순진한 물음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동아시아 사상사에 있다. 특히 고대 제자백가 중의 하나인 법가(法家)의 내용을 살펴보면 앞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법가는 모두가 인정할 만한 창시자가 없다. 따라서 사승관계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법가로 분류되는 학자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본래적으로 이익(利)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법가는 진(秦)의 시황제가 최초의 통일 국가를 건설하면서 통치기반으로 삼은 사상이었다. 시황제는 법가 사상가인 이사(李斯)의 도움으로 통일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법가의 연원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상가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상군서(商君書)』의 저자로 알려진 상앙(商?, ?~BC 338)이다. 그는 ‘법(法)’을 중시하며 이를 통해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음으로는 ‘술(術)’을 군주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은 신불해(申不害, ?~BC 337?)다. ‘술’은 군주가 신하를 다루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술책(術策)이나 술수(術數)처럼 계략(計略)이나 수단으로써의 기술을 의미한다. 마지막 인물은 신도(愼到, BC 395~BC 315)다. 그는 ‘세(勢)’를 중요하게 여겼다. ‘세’는 용례로 쉽게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데, 기세(氣勢)아 권세(權勢) 혹은 형세(形勢)처럼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말이다. 군주가 ‘세’가 없다면 법이나 술도 발휘되기 어려울 것이다.

대중들에게는 낯선 학자들을 셋이나 등장시켰던 이유는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비자(韓非, BC 280?∼BC 233)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한비자는 앞서 언급한 ‘법’, ‘술’, ‘세’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국가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자는 이사와 더불어 순자(荀子) 아래에서 배운 인물로 인간의 본성을 악함으로 규정했던 순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을 ‘이익을 좋아하고 해악을 싫어하는 존재’로 보았다.

인간을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순간, 백성은 국가가 ‘위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통제해야 할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이 때문에 법은 절대 권력과 그 언저리에 있는 자들이 일반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의미를 갖게 된다. 요컨대 힘깨나 있는 사람들은 법 위에 군림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법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법가의 속내는 사실 이런 것이었다.

『법가, 절대권력의 기술』이란 책의 역자는 그의 서문에서 동아시아의 법의 역사에 대해 이런 소회를 담았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역자는 법가적 전제 정치를 우선 박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법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로 한 걸음 다가서려면 말이다.” 박멸까지 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책(政策)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고자 한다면 백성들은 (단지 법적으로) 면하려고만 한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또 올바름에 이르게 된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論語』, 「爲政」)

“옳지 않음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도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 『孟子』「公孫丑上」)

위의 두 문장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부끄러움(恥, 羞)’이다. 법을 정면으로 위반하지만 않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공자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이라고 나무란다.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끄러움이 없다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꾸짖는다.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을 ‘의(義)’의 단서라고 했다. 의(義)란 ‘바름’이나 ‘의로움’으로 풀이되는데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였던 ‘정의(正義)’가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토록 경쟁적으로 읽혀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책으로 보고 배워야만 알 수 있는 화석화된 개념이 되었다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들이 내걸고 있는 ‘정의’와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진짜 ‘정의’가 궁금했던 것일까?

법은 빈부와 귀천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진짜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길이다. 물론 이런 사회가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권력을 쥐는 것.

잠재적 귀족들의 사회 : 귀족사회 지향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단상 [썩은 뿌리 자르기]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현재 한국사회의 많은 병리적 현상 가운데 가장 중심에 위치하는 것은 양극화문제이다. 대통령 선거나 지방선거 때마다 선거입후보자들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양극화 해소용 백신을 공약으로 내걸지만 아직까지 이런 공약이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사회를 괴롭힌 문제다. 양극화란, 말 그대로 ‘자본’의 편향 문제이다. 자본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소수의 풍족함과 대다수의 빈곤으로 양분되고 거기에 따른 대다수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분위기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지역적 관점에서 서울은 양극화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자본가들의 주 밀집지역인 강남권과 강남을 제외한 비주류 지역인 非강남권으로 나누게 된다. 사회통념상 동일한 행정권 아래 이렇게 양분된 도시모델을 찾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한마디로 두 개의 서울이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서울에 모여 사는 서울시민들의 정서에 ‘지방’이라는 말은 이미 서울을 제외한 비주류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 된지 오래지만 이제는 강남을 ‘서울 대표시민구’(서초?강남?송파)라는 호칭으로, 강북은 ‘강북 지방’으로 서울의 지역성을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남들 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하거나 풍족한 자본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들의 구역을 특정화시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선망하는 귀족주의이고 구별짓기 행위이다.

최근 언론매체의 보도에 간간히 귀족들의 구별짓기가 구체적으로 목격된다. 서울 남산 3호터널 인근의 스테이트타워 펜트하우스에는 영국이나 홍콩 등지에서 운영되는 고급 비즈니스 클럽을 표방한 이른바 ‘젠틀맨스클럽’이 성행중이다. 사회 상위 0.01% 고객을 대상으로 연회비가 1천만 원이 넘는다. IMF이후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오히려 귀족마케팅으로 VIP고객을 획득한 백화점, 은행, 호텔, 명품 숍 등 소비중심 서비스업체들은 쏠쏠한 재미를 봤고 고급 비즈니스 클럽은 귀족마케팅의 정점에 와있는 느낌이다. 서비스업체 뿐 아니라 문화관련 업계에도 이런 마케팅은 존재한다. 고급화로 차별화된 문화공연을 제공하는 강남구 삼성동의 마리아칼라스홀은 대기업관련 부유층이나 의사, 약사, 법조인등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을 주요 고객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곳 역시 VIP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활용되며 대관 요청 시 내부 심사를 통해 대관 요청자나 요청단체의 권위나 지명도가 자격요건에 맞지 않을 경우 대관이 불가능하다. 이런 예에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상류층들은 과거의 경제적 자본에 의존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문화자본과 사회자본 소유의 문제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또 자본주의에서 문화산업의 소비패턴이 어떻게 상류층과 일반계층을 차별하는지도 구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앞에서 언급한 강남의 중산층 아파트 주거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아파트 부녀회의 가격 담합, 집값 올리기 등은 부의 재창출 및 외부적 응집력의 강화를 통해 외부인들이 강남권에 진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강남권 주택 지구에서 살다가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다는 말이 그것이다. 말을 만들어보자면 ‘一落不入’이라고나 할까? 구별짓기는 이뿐만 아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좋은 상품’을 구분하는 기준의 차이는 좋은 집안끼리의 혼인을 장려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이나 강남지역에서 서울대 진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사실을 두고 보면 한국사회에서 서울대 출신의 사회적 장악력을 가늠할 수 있고 대대로 그 출신성분을 유지하려는 욕구인 학벌지상주의는 한국에서 강력한 신분구조를 만들어내는 주요 요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중심주의 신화를 지향하는 사고와 행동, 그리고 이에 말미암은 구성원들의 갈등 유발현상은 단지 유력 지역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혐의를 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주류 지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러한 사회적 병폐는 한결같이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언젠가는 상류지역?계층에 편입하고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신분상승의 꿈이다. 앞서의 1차적 문제는 신흥귀족들이 배타적인 현 상황을 지속시키고 세습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점이지만 그들의 노력에 중산층은 물론 현 정권에서 확실히 규정한 서민층까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꽤 지난일이지만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민이미지의 진보신당 노회찬이 귀족이미지의 한나라당 홍정욱에게 노원구에서 패배한 것과, 같은 시기 도봉구에서 민주당의 김근태가 보수우파 정치인 신지호에게 지역구를 내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우리지역도 한번 잘살아 볼까(?)’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이 너무 단도직입적이고 무엇인가 진지한 사유와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 누구나 사회적으로 부유한 삶을 누리려는 욕망은 있고 존중되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계속해서 강자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이런 비현실적인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대선이나 지방선거만 되면 가까운 동네나 시장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보통 이런 문제를 체제의 문제로 보거나 도덕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대한민국의 근대와 현대의 역사적 접점이 정확히 맞물리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를 경험할 여유 없이 엉겁결에 수용하게 된 민주주의제도와 자본주의체제를 아직까지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잘못 전수된 전통적 정치체제와 사회의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근대 국민국가 건설운동이 한국전쟁으로 무산되고 전후 이데올로기적 사회구조가 지속되면서 미군정의 지배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물론 그 이후 경자유전?농자본위(耕者有田?農者本位)의 원칙 아래 토지개혁이 진행되었고 봉건적 신분질서를 실질적으로 극복하는 듯 했지만 이승만 이후 반공이데올로기의 대두는 사회운동을 통한 평등질서를 자리매김하는데 걸림돌이었다. 전제군주제-일제강점기-미군정-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지배체제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절대 권력자가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은혜로운 베풂의 수혜자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후 국민이 정치상황에 참여하지 못했던 군부독재 시대의 성과주의, 성장위주, 업적정치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우리의 정치사 현실에 그 잔상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국민은 자본의 공세에 대해 반성적, 비판적으로 대처할 힘이 부족했고 IMF이후 신자유주의 국면을 맞이하면서 오로지 자본을 위한 나라가 되었다.

현재 우리사회가 누구나 귀족적인 신분상승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연유에 있어서 문화적인 면에서 조선시대 이른바 지배귀족계층의 주류문화였던 양반(兩班)문화에 대한 관념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원래 조선 초기에 사회신분은 양인(良人)신분과 천인(賤人)신분이 법제적 기준이었지만 이후 양반과 非양반의 신분구분이 더 중요시 되었고 양반?중인?양인?천인의 네 신분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양반이란 말은 원래 관료체계에서 비롯된 말이고 양반은 사적 토지를 소유한 지배신분계층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일반 양인들이 과거에 응시하는데 어떠한 제약도 명시하지 않았지만 일반 양인들의 경제력은 양반들의 경제력과 그에 따른 교육환경을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조선은 지식엘리트 집단인 양반지식인층에 의해 통치되었고 조선왕조 500년은 이런 보수적 유교정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양반계층의 신분적 우월성은 혈연에 의한 특권과 차별적 대우가 세습되는 인간집단을 의미한다.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고 자기와 자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신분이 적용되는 외연을 끊임없이 확대한다. 양반이란 신분은 이미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통한 세력의 확대는 조선시대 상위층의 구별짓기 방법이었다. 1894년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양반이라는 신분은 없어졌지만 긴 시간동안 우리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신분제의 기억은 그대로 우리의 문화의식 속 심층구조에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양반이란 개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게 되었지만 과거 권력에 대한 독점권을 포섭하기 위한 방법과 그 형태는 현대 신흥 귀족들과 그 귀족사회를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과 별반 다름없다.

다만 사회체제가 다를 뿐 구조적인 문제는 동일하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조선후기 지배층의 무능력과 벌열(閥閱)숭상을 비판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현재 신흥 귀족세력은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가는 이를 방치한다. 상대적으로 생존권과 행복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많은 중소계층에게 무한경쟁의 논리를 강요하면서 희망이 있는 것처럼 쇼를 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찾기 힘들다. 노력의 보상이라고 하는 명문대 입학은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신분전환의 유일한 기재였던 교육은 자본에 포섭된 지 오래이다. 재벌가와 사회지배층의 지배력 확대에 대한 계속되는 합리화는 우리의 성찰을 무디게 만들고 거기에 동조하게 한다. 무의식으로 쫒아 가게 만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조장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나 세습적 신분제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얼기설기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근현대는 성찰을 통한 과거 극복에 실패했고 그 폐단이 고스란히 현재화된 문제점이 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의식의 개진이 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자화상은 엄마의 젖가슴만 인식한 채 성인이 되어서도 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페티시즘을 안고 살아가는 형상이다. 자신의 생존과 자본의 연결을 인간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이 그 중심에 서있어야 안정된다. 오늘 우리가 항상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사실 외부에서부터 왔다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시대적인 아픔도 분명 존재하고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현실의 시대착오적 발상은 결국 우리 안에서 돌파해야 한다. 이미 사회의 중심 권력의 자리는 선점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중심화의 신화는 서로가 실현 불가능한 사안임을 인식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중심의 배타성은 심각해질 것이다. 작은 부분부터 사회적 공동체의식을 확립시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생적인 공동체문화의 태동이 중요하다. 공동체적 국가가 아닌 지배력에 의존하는 국가체제가 상존하는 한 고대 동양의 정치철학을 대변하는『서경(書經)』의 “한쪽과 한 당파에 치우침이 없으면 왕의 도가 탕탕(蕩蕩:사악함이 없이 관대하고 큼)하며, 한 당파와 한쪽에 치우침이 없으면 왕의 도가 평평(平平)하며…(無偏無黨王道蕩蕩, 無黨無偏王道平平…)”라는 공평의 통치철학에도 근접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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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에서 국민대분회장을 맡고 있던 황효일씨가 2011년 가을학기에 부당하게 해고되었지만 국민대 교내에서 시위를 열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하여 부당해고에 맞서왔다. 국민대 학생들은 ‘황효일 교수님 해고를 반대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항의하는 뜻을 펼쳐왔고 결국 대학본부는 2011년 7월 8일 부당해고를 철회했다.” 최근의 이 사건은 대학사회가 얼마나 경직되고 배타적인 사회인지를 증명함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와 노력이 현실 문제 개선에 큰 힘이 됨을 증명했다. 반대로 상위계층인 교수와 비정규직 하위계층인 강사의 현실적 차이와 자본의 위력은 강사들이 노조를 외면하고 대학 측의 입장에 고분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이유인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 비자(visa)계급을 말하다 [썩은 뿌리 자르기]

강경표(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원곡동 이야기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한참을 가다보면 안산역에 도착한다. 안산역을 나와 지하도를 건너서 잘 보이지도 않는 2번 출구를 찾아 나오면 그 곳에 원곡동이 있다.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예전에는 외국인 거리라고 하면 이태원을 먼저 떠올렸다. 코쟁이 백인들이 돌아다니는 곳, 백인이 아닐라치면 미국인이 활보하던 곳, 우리나라를 지켜준다던 미군이 놀던 곳 이태원은 그런 동네였다.

원곡동에도 외국인이 있다. 알록달록한 얼굴들만큼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곳, 노동자의 쉼터이자 생활의 터전이다. 토요일 저녁 해질 무렵이면 우즈벡 식당 노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중앙아시아 아저씨들부터 팔뚝만한 꽈배기를 몇 개씩 사가는 중국 아줌마, 식당 유리창에 붉은 글씨로 개 구(狗)자를 멋지게 써놓은 조선족 동포들, 카레 냄새가 향기로운 인도 식당과 먹기 힘들만큼 원래 맛을 고집하는 베트남 식당, 너무나 당당하게 차려입은 짧은 치마가 민망해 쳐다보기도 힘든 동남아 언니들까지 그들의 삶이 있는 그곳이 바로 원곡동이다.

힘들고 허전한 하루를 위로받기 위해 모국에 있는 가족과의 짧은 통화를 기다리며 슈퍼 앞에 차려둔 국제 통화용 전화기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고향 이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까지… 주말의 원곡동은 그렇게 활기차 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새벽녘 입김을 불며 나가본 안산역 옆 공터 주차장 인력 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어슴푸레 비치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칼날처럼 나누어진 구획. 한국인, 우리의 동포인 조선족과 고려인, 그리고 외국인들. 인력시장으로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 누군가 구획을 넘어 오갈라치면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들. 일용직 노동자의 경쟁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하루 품삯이 한국 사람은 일당 7만원, 동포들은 5만원, 나머지 외국인들은 3만원으로 정해지고 비싼 한국 사람보다는 말 통하는 동포들이 우대를 받는 곳, “저 힘든 일 좋아합니다, 잘 합니다”라는 색다른 억양의 큰 목소리가 몇 번 들리고 나면 봉고차들의 부르릉거림과 함께 거리는 금방 한산해 진다. 오늘도 조선족 때문에 힘센 중앙아시아인들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한국 사람들은 무거운 어깨를 뒤로하고 조선족을 욕하며 자리를 뜬다. “새끼들 그냥 짱깨 땅에나 있지…”

– 비자계급

살인미수 혐의의 재미교포는 14년 동안 강남에서 학원장을 할 수 있지만 재중동포인 김산(본명 장지락)의 외손자는 7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목수로 일한다. 행정상의 착오일까? 행정상의 착오라기 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 길다.

지난 해 황유복 교수(베이징중앙민족대 교수)는 “해외 거주 한인을 싸잡아 재외동포라고 부르는 것은 크기와 색상, 재질을 구분하지 않고 구슬을 손에 잡히는 대로 꿰는 격”이라며 아예 동포와 교포를 구분해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2010.10.04). 황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한시적으로 거주하는 한국인은 ‘재외국민’, 거주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경우는 ‘재외교포’,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거주국의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는 ‘재외동포’라고 부른다. 사전적인 정의 따르면 ‘동포’란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고 ‘교포’란 ‘다른 나라에 아예 정착하여 그 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는 동포’를 지칭하는 말로 동포의 외연이 교포 보다는 크다. 사실 동포와 교포라는 단어는 병행해서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교수가 동포와 교포를 구분하자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재미동포 재일동포라는 말은 사용해도 재중동포, 재러동포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조선족 고려인이 그들의 이름이다. 동포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들을 동포로 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 정부 또한 “재외동포 참정권”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재외동포를 국적에 따라 차별할 뿐만 아니라 지원에서도 많은 차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자 문제만 해도 재중동포?재러동포와 재미동포?재일동포가 비자를 받는 방식이 다르다. 법이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동포는 대한민국에 들어오기조차 힘들다. 재미동포와 재일동포가 받을 수 있는 F-4비자는 단순노무를 하는 사람에게는 발급되지 않지만 이 비자 취득자는 가족을 동반할 수 있다. 재중동포나 재러동포가 받는 H-2비자는 3D 직종에 근무하는 방문취업비자로 가족을 동반할 수도 없다. 더 황당한 사실은 F-4비자를 받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못해도 되지만 H-2비자를 받는 사람들은 실무 한국어 시험을 치러야 할뿐만 아니라 쿼터제로 비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H-2비자는 대상 국가의 경제적 수준을 고려하여 정해진다. 결혼을 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면 재중동포와 재러동포뿐만 아니라 원곡동에 거주하는 약 57개 나라의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비자가 H-2비자다. 그나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C-3비자(관광이나 친지 방문)로 들어와 불법으로 체류하며 이상한 기획사를 통해 E-6비자(수익이 따르는 예술 활동 및 전문 방송 연기자)를 받아 강제로 몸을 팔거나, 외국 학생 유치라는 명목으로 판매되는 유학프로그램을 통해 D-2비자(유학생)를 이용해 들어와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은 모르는 한국비자의 종류는 9종 94개다. 즉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재외교포 포함 외국인들을 94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자 취득 자격을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나누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 민족계급론

국적에 따른 국가의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눈이 그것이다. 스스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재미동포나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눈과 재중동포 또는 재러동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지는 않은가? 또는 백인과 황인, 흑인을 보는 눈이 다르지는 않은가?

생태학의 선구자쯤으로 알려진 에른스트 헤켈은 1905년 그의 저서에서 인종과 민족을 4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1)원시 민족 또는 미개인, 2)야만족 또는 반(半)미개인, 3)문명민족, 4) 문화민족이 그것이다. 또 다른 분류인 <인종과 민족의 계통수>라는 1902년 분류표를 보면 한국계도 그 표에 포함이 되어 있다. 혹시 여러분들은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몽고인종에서 분리되어 한국?일본계열이 되며 일본인 보다는 열등한 민족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중국은 몽고인종에서 분리된 인도차이나계열로 우리와는 계열이 다르지만 약간은 더 높은 위치에 있다. 물론 우리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는 민족들도 많다. 이러한 분류는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1900년대 초 당시 일본과 독일간의 친분관계와 우리나라의 사회상황을 생각해 보면 일본인 아래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현대에도 민족에 대한 이러한 차별적 분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이다. 이런 차별적인 대우가 우리에게 가해진다면? 더욱더 크게 분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가 차별적이다. 백인을 보는 눈과 흑인을 보는 눈이 다르며,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일본인과 동남아시아인을 보는 눈이 다르다. 물론 재미동포와 재중동포를 보는 눈도 다르다.

‘다문화 가정’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서 외국인들끼리 살면 외국인 가정일 뿐이다. 우리가 지칭하는 ‘다문화 가정’이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에 한정된다. 그러나 백인 여자와 결혼한 한국인은 그럴듯해 보이고, 동남아시아인과 결혼한 한국인은 없어 보인다. 한국 여성이 동남아시아 남자와 결혼하면 따가운 시선은 배로 가해진다.

‘다문화 가정’에 다문화는 없고, 언어?생김새?풍습은 다르지만 우리 문화에 동화되어 가는 외국인들만이 칭송을 받는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는 주체가 우리 자신이면서도 다문화 가정을 꾸린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수용할 것을 교육하며, TV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한국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싸늘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스스로 계급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한민족이 일등시민이다. 나머지는 국적과 피부색, 한민족과의 연관성,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계급이 나누어진다. 일등시민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비자를 발급받는 순간부터 계급이 생긴다. 그 계급은 안산의 원곡동이라는 작은 동네에서조차 임금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 다시 원곡동 이야기로…

대학 초년 뭣 모르고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 다니던 시절 이문열의 <구로 아리랑>이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치졸하기 짝이 없는 그 글이 생각나는 것은 ‘구로’라는 동네 배경과 공순이라 불리던 언니들 때문일 것이다. 소위 공순이라고 불리던 순박한 언니들의 삶을 생각해 본 것도, 내가 누리는 경제적 혜택이 대기업들의 회장 덕분이 아니라 밤낮으로 고생하며 일한 언니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이 때쯤이다.

빈곤의 상징이었던 구로동과 가리봉동은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 단지로 변신했다. 그 많던 공순이 언니들은 우리의 엄마 아빠가 되어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많은 공장을 돌리던 일손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원곡동, 안산 원곡동에는 우리의 언니 오빠들을 대신해 공장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을 위해 일하는 근로자는 아니지만 우리를 대신해 대한민국의 경제가 돌아가도록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돈을 버는 목적은 각자 달라도, 사용하는 말과 생김새?국적은 다를지 몰라도, 그들이 우리 경제의 바닥을 지탱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방가? 방가!’라는 영화가 있다. 취업을 하지 못한 한국인이 부탄 사람으로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해 겪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원곡동이다. 이 영화는 재미있지만 슬프다.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노동자에게는 민족이 없다. 노동을 통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언제나 평등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비자 발급 제도는 계급을 만든다. 아니 이미 계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도다. 거기에 우리의 차별 섞인 눈빛까지 더해진다. 원곡동이라는 국경 없는 마을에도 계급을 가르는 비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