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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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김재현(경남대 철학과 교수)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에 따른 더위와 추위, 장마와 태풍 등 자연이 주는 시련을 겪어야 하고 우리 인간들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힘든 상황과 고통을 겪고, 견뎌내면서 살아나간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

 

사진-강지은

사진-강지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 간다. 고통과 시련은 삶에서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는 우리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고통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자식,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을, 앞으로도 가슴 아픈 삶을 살아가야 할 유가족들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기성세대로서, 희생된 수많은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사고 중에 보여줬던 무책임하고 무력했던 선장 및 선원들, 해양경찰청 등 관련 기관과 정부의 한심한 대처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깊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런데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처구니없는 희생과 쓰라린 경험, 고통, 분노의 표출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 왔으며,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사회도 돈보다 생명가치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사회로 발전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억울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며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인간들은 한편으로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이나 사건들을 기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쓰라린 기억을 망각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왜냐하면 고통스런 기억 자체가 우리 삶을 힘들고 지치게 하며 또한 우울하게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쓰라린 경험들을 항상 오래도록 기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잊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으며, ‘현재(the present)’를 ‘선물(the present)’로 받아들여 하루하루 활기차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 생활의 ‘지혜’이며 ‘행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건들과 경험들도 있다. 특히 사회적, 역사적으로 함께 겪은 고통에 대해서,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될 사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렇다면 기억과 망각의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국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개인의 삶, 가족의 삶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지배받으므로 사회적 조건이나 구조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어떤 성격의 국가인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소외받고 힘없는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며,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국가)가 지배하는 사회에 사는 개인들은 돈과 권력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인정과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또한 전쟁 중인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심해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대형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불안전한 사회에서 개인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사회적 조건이나 사회구조가 우리 개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므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타자의 고통받는 모습에 대해 공감하면서, 자신도 그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자각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적 현실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보다 인간적이 되고 성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자각만으로는 힘겹고 부족하므로 여러 개인들이 함께 노력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전문)

 

개인들의 자각과 실천이 담쟁이 같은 연대와 네트워크로 모아질 때 거대한 벽도 조금씩 허물거나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들과 조직들의 사회적 연대를 토대로 사회와 국가는 보다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 등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세워야 하며, 원칙을 존중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사회시스템 차원에서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의 확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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