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적절함의 가치를 조롱하다[시대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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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 시대-적절함의 가치를 조롱하다[시대와 철학]

유현상(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불편한 진실-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과잉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라도 지나치면 칭찬을 듣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안겨 준다. 나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늘 몸 둘 바를 모르게 하고 칭찬하는 이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상 어느 정도의 칭찬이 적절한지는 늘 칭찬의 대상자 자신이 정확하게 알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과잉이 야기하는 문제는 비단 칭찬에 관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기야 ‘과잉’이라고 하는 표현 자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법한 자태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 이외의 과잉을 경험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수많은 과잉의 숲에서 숨 쉬고 있다. 문제는 과잉의 상태가 긍정의 요소마저 부정적 상황으로 치닫게 만든다는 점이다. 친절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프렌차이즈 식당에서는 주문을 받을 때 종업원들이 거의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는 듯이 자세를 낮추어 주문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친절의 과잉으로 느껴져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 겪는 불편함은 서비스 혹은 친절의 과잉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 중 아주 사소한 점에 불과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사자들도 자발적이기보다는 고용주의 요구에 따른 것이기에 편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친절이든 칭찬이든 적절함을 잃어버릴 때 그것은 즐거운 감정의 형성에 기여하기보다는 찜찜한 뒷맛을 남기기 마련이다. 최근에 벌어진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 사건이나 전화 상담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는 친절 과잉 사회의 폭력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과잉의 ‘감정노동’에 도사린 이중의 착취

 
최근 각종 언론에서 우리나라의 생산성 향상율 저하가 경제 성장을 더디게 한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특히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뒤진다는 보도는 서비스 산업 종사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빌미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1차적으로는 기업의 생산성 강화 노력을 촉구하는 근거로 작용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 강화로 이어질 개연성도 결코 낮지 않다. 특히나 서비스 산업의 최일선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분석이다.
 

그림출처: http://hook.hani.co.kr/archives/33293


 
감정노동의 문제를 대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열악한 근무 조건에 시달리는 감정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를 다루는 기사들 대부분이 이른바 몰상식한 고객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기업 임원에 의한 대한항공 여승무원 폭행사건에 대한 보도에서도 몰상식한 가해자의 행위와 대한항공의 대응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의 과잉의 근본적인 책임은 자본에 있다.
 
소비자들이 감정노동자들을 향한 과도한 친절 요구에도 분명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잉의 서비스에 익숙해진 결과이지 소비자가 먼저 요구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서비스 경쟁이라고 하는 경영방침이 종업원들에게 지나친 감정노동을 강요하고 소비자들의 태도는 그러한 대우에 익숙해진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소비자가 먼저 밥 먹으러 가서 무릎 꿇고 주문 받는 서비스를 기대했을 리 없고, 허리 깊숙이 숙이는 절을 요구하는 고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의 서비스는 고용주들이 친절을 명백히 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우리가 이만큼이나 극진하게 서비스를 제공했으니 소비자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못박아두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동일한 제품이 백화점에서 훨씬 비싸게 판매되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도 극진한 친절 비용까지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상 그러한 서비스의 제공자는 기업이 아니라 일선의 감정노동자이다. 그러므로 감정노동의 착취는 자본이 노동자들의 감정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면 감정노동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으로 자본의 전형적 노동 착취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또한 소비자들로부터는 선택의 여지없이 불필요한 비용까지 지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비자에 대한 착취 구조마저 도사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마치 과대 포장으로 제품 가격을 부풀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여러 겹의 질곡

 

현재 우리나라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그리고 감정노동으로 분류되는 직종들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전문성을 요구하지도 않고 진입 장벽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역으로 말하면 노동 강도가 세고, 저임금일 가능성이 높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신분의 불안전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필연적으로 여러 겹의 질곡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한다.
 
우선 감정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가 산업의 영역에서 강고하게 전이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여성의 노동을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산업화 시대에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종사했던 상황이 서비스업으로 전환되었을 뿐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또 다른 질곡은 고용주와 소비자 어떤 쪽으로부터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장치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감정노동자들에게 고용주의 권력과 소비자의 권리는 이중의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 자체가 이미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공하는 감정노동자의 인격적 지위는 원천적으로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노동자들은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의 소외에 더해 고객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소외까지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점은 감정노동이 근본적으로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에게서 겪는 자기 소외를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자신의 본래 감정과 정서를 어느 정도는 감추어야 한다는 점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가장된 감정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견딜 수 없는 질곡이며, 지속적으로 자존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트레스 이상의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의 억압은 일상을 왜곡한다

 

과도한 친절에의 요구는 일상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존칭 사용의 왜곡이다. 고객에 대한 지나친 존칭 사용의 관례가 이제는 상품에 대한 존칭으로 굳어지고 있다. 티셔츠 한 장을 구매하려는 순간에 우리는 매장 직원으로부터 “그 제품은 세일중이세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상품에 존칭을 붙이면 우리는 그 상품을 떠받들어 사야 한다는 말인가? 누군가가 일부러 그러한 어법을 사용하라고 가르친 적은 없을 텐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마치 군대에서 말을 할 때 ‘다’, ‘나’, ‘까’로 문장을 맺으라고 하는 어법을 요구한 결과 “다음 주에는 제가 휴가를 가지 말입니다.”와 같은 어색한 표현이 굳어지고 있는 현상과 같다. 존칭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모든 말에 존칭을 붙이는 식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산업 구조에서의 비중이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급속하게 확대되는 추세에서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보호책 마련은 서비스 산업 생산성 향상보다 시급한 문제이다.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단지 감정의 착취만이 아니라 미래마저 착취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그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격적 존중의 태도를 훈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산업 사회에서처럼 노동자들이 그러했듯 감정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기 전에 국가와 사회가 먼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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