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데올로기』1·2(2019), 『정신의 오디세이: 자유 의지의 역사』(2021) 등을 저술한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 이병창 회원이 영화와 소설, 철학 등 광범위한 문화 비평을 담아내는 코너이다.

나의 철학 일지(2)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나의 철학 일지(2)

1)

80년 봄은 논쟁으로 무르익었다. 복학생 그룹과 재학생 그룹의 논쟁, 이는 정치적으로는 즉각적인 정치 투쟁이냐, 대중적인 학내 민주화냐 하는 논쟁이었고, 철학적으로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이었다.

나는 현실주의자의 비판을 내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실주의는 옳았지만 낭만주의자로서 나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가 결여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때문에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나는 어느 날 한 선배가 나에게 선물로 준 석사 졸업 논문을 읽었다. 그 논문 제목은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헤겔 정신현상학 앞부분에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투쟁’을 설명한 것이었다.

석사 논문이니 아주 간략한 것이지만, 나는 이 논문의 내용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헤겔은 이 주노 관계에 대한 서술에서 노예가 어떻게 출현하는가, 그리고 노예가 어떻게 해방되는가를 정신적인 측면에서 그려냈다.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주인은 자유를 얻었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자 했던 노예는 자유를 잃었다. 향락에 빠진 주인은 거꾸로 노예에 의존하는 존재가 되었고, 거꾸로 노예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역사를 전복시키는 계급투쟁은 알다시피 물질적인 차원에서 힘의 관계이었다. 그런 힘의 관계에서 무언가 결여된 듯한 것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주어졌다. 헤겔에서 주노 관계의 전복은 정신적 투쟁이기 때문이다. 헤겔의 이런 정신적 투쟁이 마르크스의 물질적 계급투쟁보다 나에게는 더 깊고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독일어 원본인 훗셀의 ‘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이라는 책을 옆에 끼고 있었다. 내가 헤겔에 전념하게 된 데에는 그해 광주 이후의 정신적 공황 상태가 있어야 했다.

2)

80년 봄은 짧게 끝났다. 5.17 광주에서 자행된 군부의 폭력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이후로 아무도 다시는 웃음을 웃을 수 없었다. 젊음의 찬란함은 사라졌고 정신적 공황이 지배했다.

학교가 문을 닫은 여름 내내 나는 패배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다시 술에 빠져들었다. 8월이 지나면서 어느날 아침 술에 깨서 나는 더는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이때 나는 다시 선배의 논문에서 읽었던 헤겔의 주노 관계를 떠올리게 되었다. 거기서 정신적인 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나도 헤겔을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이 되면서 개학을 하게 되고 다시 대학원 연구실에 선후배들이 되돌아왔다. 당시 학교까지 집이 너무 멀었다. 무려 3시간이 걸렸으니, 나는 어느 선배와 대학원 연구실에 자고 먹고를 반복했다. 급기야 곤로와 담뇨를 가져왔고, 심지어 굴비 한 두름도 창문에 걸어 놓았다. 오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에서만 학교를 나섰다.

이때 어떤 후배가 헤겔을 읽자고 제안했다. 그 후배가 헤겔을 읽자고 했던 것은 나와는 다른 생각이었다. 그 후배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형님, 레닌이 말했는데, 헤겔의 변증법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헤겔의 논리학 책을 읽자고 했다.

그는 학부에서는 하이데거 역사철학에 관심을 두었으나, 광주 이후 헤겔로 전향했다. 나와 철학적 이력이 비슷하였기에 우리는 죽이 아주 잘 맞았다. 이렇게 해서 대학원 내에서 헤겔을 공부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당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직접 연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과학이고 그 고유한 철학은 헤겔의 철학이니, 철학도는 마땅히 헤겔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 모임이 유지된 논리였다.

헤겔을 읽는 모임의 수는 많지 않았다. 마침 어느 교수님이 해외 안식년을 떠난 후라, 교수님의 방이 비었다. 헤겔 논리학을 읽자는 후배는 그 교수님이 매우 아끼는 제자였다. 귀국한 교수님은 자신의 연구실이 담배꽁초와 술 냄새로 뒤범벅된 것을 보고 기절초풍하여 후배를 자신의 마음에서 추방하여 버렸다.

헤겔을 공부하면서 지도교수도 바뀌게 되었다. 다행히 역사철학을 하시던 이상철 교수님이 우리를 맡아 주셨다. 지금도 간염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이상철 교수님의 온화한 얼굴이 기억난다. 교수님이 좀 더 오래 살아 계셨다면 그 후 우리가 겪었던 많은 혼란을 그래도 덜 겪지 않았을까?

3)

9월 찬바람이 들면서 우리는 더욱 진지해졌다. 오직 헤겔만 안다면 역사를 들어 올릴 지렛대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아적인 신념으로 우리는 헤겔을 읽었다. 하지만 헤겔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헤겔을 전공하신 교수님도 없었다. 이상철 교수님도 역사철학을 전공하실 뿐, 헤겔을 아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무턱대고 우리끼리 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하루 내내 헤겔을 붙잡고 있었지만, 하루에 한 페이지도 못다 읽을 때가 많았다. 조금만 읽으면 졸려서 책상에 엎드려 잤고, 깨어나서는 우리의 부족한 머리 때문에 역사가 지체되는 것 같은 죄책감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나 어디서 헤겔을 이해하는 동아줄을 발견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헤겔 원전을 읽다가 도저히 안 되니, 헤겔의 해설서를 찾았다. 당시 많은 학생이 아마도 우리와 유사한 이유에서 헤겔 철학에 관심을 가졌으니 이런저런 헤겔 해설서가 영인되어 판매되었다. 헤겔의 해설서는 주로 서독에서 연구한 업적이었으며, 헤겔의 원전만큼이나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헤겔을 이해하는 데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런 해설서는 헤겔을 관념론자로서 해석하려는 딜타이, 가다머의 전통을 이어받는 것인데 마르크스의 철학을 헤겔에서 발견하려는 우리의 의도와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런 점에서 서독에서 흘러나온 헤겔의 해설서를 불신한다. 그러니 유일하게 가능한 길은 이해가 되든 안 되는 헤겔의 원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 씩 읽어 나가는 길 밖에 없었다.

이때 도움을 주신 분이 임석진 교수님이었다. 임석진 교수님의 박사 학위 논문을 번역한 후배가 매개되어, 임석진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은 자신이 겪은 유학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교수님은 마침 자신이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번역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를 격려해 주셨다.

우리가 임석진 교수님을 모시고 여러 번 술자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 헤겔이 책을 놓고 함께 세미나를 하거나 한 적은 없다. 누구는 이런 모임을 일컬어 일차 헤겔 학회라 하면서 나중에 임석진 교수님을 모시고 헤겔 연구자들이 조직한 헤겔 학회와 구분하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학회라는 이름을 들을 자격이 없으며, 그저 교수님을 모시고 술자리를 하면서 헤겔연구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나 충고와 격려를 들었을 뿐이다.

4)

헤겔을 연구하는 것은 내적인 어려움만은 아니었다. 외적인 어려움도 있었는데, 우리의 약간 비밀스러운(사실 비밀이라 할 것도 없었으나,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모이거나 공부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헤겔 공부는 곧 외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교수님들이 무척이나 의아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헤겔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배후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당시 운동권은 마르크스주의를 비밀히 학습하곤 했으니, 그런 모임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우리는 학내에서 갑작스럽게 긴장된 시선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철학적 토대를 발견하기 위해 헤겔을 연구한 것은 맞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직접 연구한 것은 아니다. 이런 긴장된 시선에서부터 학내에서 여러 불편한 관계가 출현했으나, 그런 것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으리라.

철학적으로 더 문제는 당시 철학계를 지배한 아카데미즘이었다. 한국 철학계에서 아카데미즘은 60년대 후반 귀국한 철학 교수, 주로 당시 유럽에 번성하던 언어철학을 공부한 교수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국내에서는 국내 박사 학위 과정이 제도화하면서, 아카데미즘이 출현하였다. 1980년대 대학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소위 졸정제 때문) 많은 학자가 등장한 것도 이런 아카데미즘의 발전에 기여했을 것이다.

아카데미즘이 강조했던 것은 철학적 언어를 엄격하게 사용하라는 것이었고, 철학적 연구를 논쟁의 방식을 통해 전개해야 한다는 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겔을 연구하던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식의 아카데미즘에 대해 반발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철학에서 역사와 삶을 구원하는 메시아적인 힘을 발견하려 했는데, 이런 관점에서는 언어는 오히려 시적인 무게를 지닌 것이어야 했으며, 철학적 연구는 역사를 들어 올리는 힘을 지닌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수업시간이나 논문 발표 시간에 아카데미즘을 강조하던 철학 교수님들과 우리는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어리석은 짓이었다. 당시 아카데미즘을 강조하는 교수님들도 나름대로 철학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그들은 선배 세대들이 전개했던 소박한 철학 인생관에 가까운 철학에 반발감을 느껴 철학을 이런 소박함에서 구원해 철저한 학문으로서 철학의 명예를 회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카데미즘에 경도한 철학교수는 그들의 선배들이 지녔던 인생관적 철학의 소박함을 다시 부활하려는 듯한 우리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나의 철학 일지(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나의 철학 일지(1)

1)

나는 최근 정신현상학을 전체적으로 소개하는 책을 냈다. EBS에서 주간하는 시리즈, 고전 해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정신현상학을 소개하는 책이다. 청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자면, 전체를 꿰뚫는 줄기를 잡아서 내용을 단순화하여야 했다. 그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대체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이 어떤 잭인가?

정신현상학은 정체를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절대정신이 자기를 드러내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헤겔 자신이 정신현상학의 서문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정신이 무엇인가? 대체 이 문제에 부딪히면 종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정신현상학의 전개과정은 헤겔 자신의 세계사의 과정과 그렇게 쉽게 상응하지 않으니, 과연 정신현상학이 역사적 과정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혼란은 절망감을 낳는다. 대체 내가 머리가 나빠서 헤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헤겔이 미친 철학자인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나는 점차, 대체 내가 왜 정신현상학을 놓지 못하고 대학원 시절인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무려 40년간이나 붙잡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헤겔을 공부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철학자의 비난을 한몸에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거슬러 올라가면 마르크스도 헤겔을 비난한다. 그는 스스로 변증법에 관해서는 헤겔을 계승했으나 이런 변증법을 헤겔의 관념론으로부터는 구출해야 한다고 믿었다. 현대에 이르면 헤겔은 이른바 동일성의 철학자로 비난된다. 그런 말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아도르노와 베르그송이나 들뢰즈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가 헤겔을 비판한다. 현대 분석철학에 이르면 헤겔은 언어의 마술에 사로잡힌 둔중한 철학자일 뿐이다.

나는 헤겔을 하면서 주변에 이런저런 철학을 하는 사람을 만나, 이런 비난을 듣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헤겔을 놓지 않았다. 물론 나는 40년간 헤겔만 공부한 것은 아니다. 나는 헤겔의 이해에서 절망감이 들 때마다, 헤겔을 내던지고, 다른 철학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연구한 대표적인 철학자만 해도 마르크스, 프로이드와 라캉, 영화 철학 등 상당하다. 그런데 그때마다 다시 헤겔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남들이 누구나 인정하고 거의 비난 조 또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는 헤겔주의자인데, 대체 나를 헤겔로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만든 그 힘이 대체 헤겔 그리고 정신현상학 어디에서 있단 말인가?

이런 고민을 밝히기 위해 나는 내가 헤겔을 왜 공부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헤겔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하는 일지를 작성해 보려 한다. 나의 철학의 일지가 되겠으나, 여기에 무슨 인생의 모험과 같은 인생샷은 없고 그저 머리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때로는 한심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번민만 나열될 뿐이니 흥미는 없을 것이지만, 후일 헤겔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니, 번잡한 얘기라도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2)

헤겔주의자로서 내가 탄생한 것은 1980년 봄이었다. 나는 당시 대학원에 처음 입학학 신입생이고 한참이나 어린 후배들과 더불어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 교정은 박정희 사후 전두환이 군부 권력을 틀어쥐고 국가 권력 장악을 위해 음모를 꾸밀 때였다. 그때 대학 교정에서는 전두환의 음모를 깨닫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막을 힘은 없었다. 학생들이나 재야 지식인들은 전두환의 음모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으나, 그것은 전두환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그해 4월이 되자 학생들의 저항 움직임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저항의 시위는 가속화되었다.

대학원에 들어갈 때, 나는 현상학이라는 철학적 방법론을 공부하려 했다. 나는 대학 시절 학부 졸업을 후셀의 현상학의 이념이라는 책을 읽고 썼으며,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현상학을 가르치시던 윤명노 교수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하였기에 그분의 밑에서 현상학을 공부하려 하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대학원에서는 윤명노 교수님을 대신하여, 한전숙 교수님이 현상학 강좌를 개설했기에 한전숙 교수의 문하생이 되었다.

현상학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진리를 직접 인식할 수 있다는 본질 직관이라는 개념에 있었다. 현상학은 이런 본질 직관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언어 의미론으로 들어가서 의미의 내재성과 초월성을 가르쳤는데, 당시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이 딱 거기에 들어 있었다.

내가 이처럼 현상학적 방법론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대학 시절부터 실존철학에 깊이 빠져들어 갔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니체의 책을 발췌하여 만든 ‘초인의 철리’라는 책)을 읽었고 대학 시절에는 조가경 선생의 실존철학을 옆에 끼고(당시 나의 영문과 친구는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옆구리에 끼고 있어서 나도 흉내 내려 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말에 심취했다. 내 마음속에서 저런 언어가 막힌 것 없이 술술 자유롭게 흘러나오기를 기대했다.

또 나는 문학자로서 사르트르를 흠모했으며 사르트르처럼 살아보려고 밤 새벽까지 술을 먹고, 오전 늦게까지 자기를(당연히 모든 아침 수업은 땡땡이다) 반복했다. 유감스럽게도 사르트르처럼 호텔에서 살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사르트르가 ‘현대’라는 비평지에 발표한 철학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중간 상태의 글을 좋아했다. 그가 쓴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은 나의 성서이었고 ‘존재와 무’라는 그 두꺼운, 엉터리 번역 책(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이다)을 이해하려고 고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끝에 역시 실존철학의 기본적 방법론은 현상학이니 현상학을 이해하기만 하면 모든 게임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현상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3)

그런데 그해 4월 교정이 시위로 흔들리면서 우리 철학과 대학원생들은 점심 때면 교정을 산책하면서 다양한 대자보를 읽었고 저녁이면 술자리를 가지면서 시국과 철학에 대해 이런저런 논쟁을 거듭했다. 그런 가운데 이미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저항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인 후배들과 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선배 층은 후배 층의 너무 세속적인 말투에 충격을 받았고 반면 그 후배 층으로부터 낭만주의자라는 비난을 뒤집어썼다.

그때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를 지금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후배 층이 나에게 낭만주의라는 비난을 했다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남겼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즈음해서 낭만주의의 한계를 점차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배 층의 비판은 이런 나의 자각이 마음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나는 나를 그렇게 비판한 후배 층에게 속으로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70년대 초반 학번이다. 우리 학번은 내가 대학 4학년 시절 75년 김상진 열사의 의거를 기리는 저항의 봉화를 올렸으나 당시 박정희 정권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되고 말았다. 나의 대부분 친구들음 감옥에 끌려갔고 나는 다행히 그런 군홧발을 피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졸업했고 군에 들어갔다. 그 일년 동안 나의 마음은 비참함으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독재 정권에 대한 무기력감에서 나는 한편으로 절망감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나는 술주정뱅이로 전락했다. 거의 매일 아침에서 저녁까지 나는 술집에 앉아 있었다. 수업은 전폐했고 생활을 위해 대학 4년 내내 끊을 수 없었던 아르바이트는 심지어 술을 먹고 가기도 했으니, 매번 쫓겨나다시피 했고, 다행히 다시 또 얻었다.

나는 지금도 대학 졸업식이 생각난다. 나는 부모님은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었던 것 같으나 나는 매정하게 졸업식 날짜와 장소를 알려드리지 않았다. 그때 졸업식에 박정희가 참석한다고 해서 보이코트 운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부터 술에 취해 졸업식장에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행복했다. 꽃다발을 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당시 대학 졸업생의 취업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옆에는 많은 가족과 애인을 데리고 있었다. 나의 세상에 대한 절망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날 벤치에 앉아서 졸업식을 하는 학생을 보면서 나는 내가 졌다고 생각했고 나는 무엇을 더하기도 싫었고 이 세상에 남아 있기도 싫었다. 나는 76년 대학을 졸업하자 군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79년 5월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때까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의 논리는 사르트르나 실존철학의 참여 개념에서 나왔다. 그 관성에서 현상학을 공부하기로 했지만, 참여 개념에 기초한 낭만주의적 저항은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참여에 기초한 저항 개념과 다른 논리를 깨달을 수는 없었다. 그때 형은 낭만주의자요 하는 비판은 얼어붙은 내 마음의 빙판을 깨트린 것이다.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2)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2)

4)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도 변화하게 된다. 작가는 원망감을 지니면서 냉소했던 아버지에게서 어릴 때 친밀했던 아버지를 되찾게 된다. 이런 태도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곧 작은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이다.

작품 속에 너무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 등장하여 잘못하면 지리멸렬할 수도 있었던 소설을 구해준 것은 바로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의 관계가 서로 뒤얽히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일 것이다.

작은아버지의 에피소드는 이야기 초반, 중반, 결말에 흩어져 등장하면서 상승하는 곡선을 그리고 있다. 처음 등장하면서 작은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아버지를 원망하는 고주망태였다. 작품 중반에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어린 작은아버지는 면 당 위원장인 아버지를 토벌군에게 자랑하면서 오히려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 그런 죄책감이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원망감으로 변한 것이다.

작품의 끝에 작은아버지가 다시 등장하여 아버지의 유골을 껴안고 울면서 마침내 둘은 화해하게 된다. 그런데 작은아버지와의 관계의 발전은 딸인 작가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매개하고 있다. 이 매개가 소설의 2/3 부분에서 출현하면서 소설적 갈등의 전환점을 이룬다. 그 매개는 곧 작가의 가출사건이다.

작가 역시 아버지에 대해 원망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원망감은 아버지 때문에 사회적으로 진출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되는 데, 작가는 그 때문에 공부를 폐기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나날을 보낸다. 아버지가 계곡 너럭바위에서 작가가 읽던 소설책을 낫으로 베어버리자 작가는 그 길로 집을 나선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끝없이 걸어간다.

이때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안 것인지(아마 어머니의 부탁이 있었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타고 작가를 따라와 돌아갈 것을 종용하지만 작가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때 작은아버지는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족 또는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길은 끝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으로서 삶의 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아버지도 이미 그런 탈출을 모색했지만 그래서 끝내 버리지 못했고, 아버지도 다른 빨치산과 달리 구박받을 줄 알면서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작가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 가족이라는 뿌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런 뿌리를 운명애처럼 인수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다시 되돌아선다.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작은아버지의 등에서 쉰내를 맡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 쉰내 같은 게 혈육인가 싶었다. 나를 데리러 오가느라 밴 그 쉰내가 정겨운 듯도 역겨운 듯도 했다.”

정겹기도 하고 역겹기도 한 것이 곧 사람으로서 삶이다. 바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자신의 결혼식이 취소된 사건을 다루는데, 남편 될 사람이 부모의 강압으로 가족이냐 여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작가는 자신이 결단을 내려 결혼을 취소함으로써 담담하게 모든 운명을 인수한다.

5)

작가가 집을 나서려다 돌아선 것이 이 소설에서 결정적인 정점이다. 이 정점 이후 작가는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친밀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되살리게 된다. 작가는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모습을 회상한다. 어느 날 밤에는 멀리 보이는 불빛을 가리키면서 아버지는 그곳이 응암동 외삼촌 집이라며 거기 외삼촌이 보인다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아버지가 말한 외삼촌을 찾는다. 작가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멀리 아른거리는 불빛 속에서 응암동 외삼촌의 모습을 찾으려는 딸의 모습을 그려낸다. 딸이 아버지 등 위에서 까치발을 하고 엉덩이를 들어 고개를 내밀어 “어디, 어디”하고 찾는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 응암동이란 곧 아버지의 말을 통해 작가에게 전해진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 유토피아는 이제 사상적인 유토피아는 아닐 것이다. 그 유토피아는 사람으로서 삶이 살아가는 구례와 같은 유토피아가 아닐까? 이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모습은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았으나 작가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이 유토피아의 대강을 그려내고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곧 클레멘타인의 노래이다. 딸을 홀로 남겨두고 금을 캐러 갔던 아버지는 금을 가지고 돌아와 보니 딸은 이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회한을 담은 이 노래는 작품 속에 반어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 의미는 곧 자기를 버려 두고 금을 캐러 떠난 아버지에 대한 딸의 원망[怨望]과 금은 없더라도 아버지가 자기 옆에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는 딸의 원망[願望]이다.

이 노래는 아버지를 통해 새로운 세대인 노랑머리를 한 소녀에게 전해진다. 작가는 아버지를 잃은 소녀에게 이제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가 약속한대로 미용사 시험에 합격하면 술을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 구례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아버지가 필요하다. 딸을 결코 홀로 버려 두지 않는 아버지 말이다. 그런 규범은 거꾸로 자식에게도 요구된다. 자식 역시 아버지에게 무조건적인 충직함이 요구된다.

이런 충직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윤학수의 에피소드이다. 윤학수는 지역사회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아버지가 겪은 빨치산의 투쟁사를 연구한다. 그런 학수가 어느 날 아버지의 뺨에 손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흥분하여 동네 경로당으로 쫓아간다. 그러면서 작가의 표현대로 불학무식한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손댄 사람을 찾아 혼내려 한다. 아버지는 이 사건 이후 처음으로 학수를 집에 불러 술잔을 내려준다. 학수는 이제 자식으로서 인정받은 것이다.

6)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아버지의 위장 자수에 대한 작가의 재해석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산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새벽 불빛이 켜진 동네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위장 자수를 하기 위해 산을 내려 갔을 때 “세상은 환한 불빛으로 아버지를 맞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환한 불빛은 곧 작가가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보았던 응암동의 아른거리는 불빛일 것이다. 이 불빛은 곧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인 구례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혈육의 쉰내가 정겹기도 하고 역겹기도 하게 피어나는 곳일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 즉 사람으로서 모습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삶을 그동안 무겁게 뒤덮고 있던 원망감을 벗어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을 괴롭힌 것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야 한다는” 작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 한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7)

많은 독자가 작가의 작품에서 감동하는 것은 작가가 제시하는 사상으로서 삶에 대립하는 사람으로서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상과 사람은 대립하는 것일까? 사상이 사람을 떠나서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게릴라가 민중에서 고립되어서는 한 시라도 존재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사상을 떠난다면, 그런 삶이란 어쩌면 고여서 서서히 썩어가는 연못과 같은 곳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딸을 혼자 두지 않는 아버지나, 불학무식하게 충직한 아들의 이면을 작가는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과 사상의 통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적어도 작가가 우리에게 그런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1)

1)

제목에 나온 ‘해방일지’라는 말의 의미를 내가 착각한 것 같다. 작가가 빨치산의 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에, ‘해방일지’란 해방 시기에 작가의 아버지가 겪은 경험을 적은 것으로 이해했다. 작품을 읽다 보니, ‘해방일지’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작가가 겪은 경험을 적은 글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여기서 해방이란 아버지가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이란 사슬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일 텐데, 아버지의 삶을 묶어 놓았던 사슬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작가는 작품의 전반부에서 빨치산이었던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당히 냉소적인 태도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혁명가로서의 진지함을 평생 잃지 않는다. 작가의 아버지는 평생 이념을 지키며, 전봇대처럼 꼿꼿하게 살다가 끝내 전봇대에 부딪혀 뇌진탕으로 돌아가신다. 작가의 어머니는 사회주의를 “가난한 자가 인간 대접을 받는 사회” 정도로 이해하면서도 성스러운 신념으로 간직하는 데 그것은 풋사랑에 지나지 않는 첫사랑을 평생 기억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작가의 냉소적 시각은 두 빨치산의 혁명적 사상이 지닌 허점을 놓치지 않는다. 작가의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의 후손이며 사회주의 사상을 몸으로 겪기보다는 문자를 통해 배운 의식만 앞선 사회주의자다. 이런 아버지는 농사를 짓지만, 노동은 건성으로 하며 평생 정치적인 관심을 잃지 않는다. 어머니 역시 국졸이지만 그 당시로 본다면 지적인 인텔리에 속한다. 부모님의 대화는 필수적인 것을 빼놓으면 대부분 정세 판단이나 과거 빨치산 체험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그래도 장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물론적 솔직함에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자기의 딸인 작가의 외모를 평가하면서 하의 상 정도로 평가한다. 작가 자신은 아버지 평가 덕분에 평생 외모에 관한 관심을 버리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해 졌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 아버지가 “사람 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라고 평가한다.

이런 빨치산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고립되어 있다. 이 고립된 모습은 빨치산을 아버지로 둔, 장례식장 황 사장과 그 아버지의 동지였던 어머니의 포옹을 작가가 그려낸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저 느닷없는 친밀감과 포용이 퍼스트 클래스에 탄 돈 많은 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의 이런 서술은 너무 신랄해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2)

작가는 빨치산의 딸로서 사회로부터 무거운 압박감을 느끼면서 이 때문에 부모를 원망한다. 작가는 가능한 한 부모와 사회, 모두에서 떨어져 살고자 하면서 소설가가 된다.

작가는 평생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를 알지 못했으나 아버지의 장례식을 겪으면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흩어져 있다가, 장례식을 거치면서 하나로 모여들어 마침내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아버지의 그러한 모습을 그려내고자 한다.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은 마치 볼레로의 음악처럼 조금씩 더 크게 나타난다. 처음엔 아버지의 지게에 꽂혀 있는 “빨갛게 익은 맹감과 연자주빛 들국화”의 형태로 나타났다. 아버지는 동네 자청 머슴으로서 온갖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영자의 암내를 치료하게 하여 결혼할 수 있게 해주며,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경희가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위기를 구해주기도 한다.

마침내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은 아버지가 살려준 순경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빨치산 시절 보급 투쟁에서 다락에 숨은 순경을 순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면서 목숨을 구해주었다. 후일 순경은 빨치산에 가담하겠다고 아버지를 찾아왔으나, 아버지는 오히려 쫓아 보내고 만다. 후일 다시 만난 순경이 그렇게 쫓아 보낸 이유를 묻자 아버지는 이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 짝은 사상도 읎고 신념도 읎는디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울 것이요.”

작가는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 눈에 뚜렷하게 들어왔다고 하면서, 처음으로 딸로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다.

3)

아버지의 옛날 모습은 곧 사회주의 사상의 혁명 전사로서 모습이었다. 이제 새로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람으로서 모습이다. 작가는 두 아버지의 모습을 사상과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여기서 작가는 사상과 사람을 대립시키면서 사회주의자가 사상에 사로잡혀 사람을 놓친 것이 아닌가 비판한다. 작가는 거꾸로 사람이야 말로 뿌리에 해당하며, 사상은 그런 뿌리에서 나온 가지에 불과하고 이런 가지는 아무리 잘려 나가도 뿌리는 영원히 남아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런 뿌리를 작가는 구례라는 장소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구례는 아버지의 고향이었으며 빨치산으로서 전장이었고 또 체포 이후 남들과 달리 돌아온 고향이다. 이곳은 아버지와 같은 빨치산도 살고 그런 빨치산을 토벌한 우익 박한우 선생과 같은 사람도 살고 있다. 월남전에 참전해 다리를 잃고 아버지 같은 사람에 대해 원망감을 지닌 목발 짚은 노인도 산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 세대의 후손들도 아버지의 전쟁에 유산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때문에 육사에 입학하지 못한 장손자 길수 오빠, 빨치산을 아버지로 둔 황 사장, 어머니의 레포였던 여 동지의 딸인 떡집 언니, 아버지를 존경하는 민주노동당 당원인 박동식, 아버지의 전쟁을 역사로 기록하려는 지역사회연구소 연구원 윤학수,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로서 아버지에 원망감을 지닌 작은아버지 등이 모여 산다. 이 속에는 아버지가 자신의 첫 부인의 남동생이나 여동생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어머니 첫 남편의 동생이 아내와 더불어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 구례는 마치 인연의 끈이 촘촘하게 엮여 있으면서 사람으로서 인간의 삶이 전개되는 장소이다.

“구례라는 곳은 어쩌면 저런 기이하고 오랜 인견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 감옥일지도 모른다.”

이 속에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


아니 에르노와 사건(2)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아니 에르노와 사건(2)

-두 작품 <단순한 열정>과 <사건>을 통해서

 

4)

<단순한 열정>에서 작가가 겪은 사건은 나이가 어린 유부남인 외국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사건이다.

주인공은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서서히 일상의 세계는 의미를 상실하면서 모든 것은 그 남자의 사랑과 연관된다. 남자와 만남이 정해지면, 주인공은 일체를 잊어버리고 남자와의 사랑을 위해 준비한다.

그러나 그 어떤 대화나 표현도 남자의 사랑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하다. 오직 육체적 관계만이, 남자의 성욕이 살아 있을 때만이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욕망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

“우리가 함께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아니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단순한 열정, 39쪽)

그러나 그 순간은 한순간이다. 남자가 떠난 이후 주인공은 남자가 아내나 다른 여자와 만나는 것을 상상하면서 질투에 빠진다. 주인공은 이 질투를 이기기 위해 마치 오연한 듯한 태도를 취해 본다. 또는 거꾸로 남자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혼자서 피렌체로 바캉스를 떠나지만, 이 모든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만약 그런 경우를[남자가 다른 여자와 차를 타고 가는 경우] 당하더라도 오만하고 무심하게 보이기 위해 짐짓 태연한 척 똑바로 몸을 펴고 걸었다. … 그가 분명히 다른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탈리앵 거리를 진땀을 흘리면서 걸었다.”(단순한 열정, 38쪽)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가 마치 글을 쓰듯이 피렌체에 나의 열정을 새겨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걸을 때나 박물관을 둘러볼 때나 A의 영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단순한 열정, 47쪽)

이미 예고된 헤어짐은 홀연, 아무 이유도 설명됨이 없이 일어난다. 외국인인 그 남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삶이 마비된다. 주인공은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는 고통과 죽음과도 같은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겪으면서 두 달이 지나자 작가는 이 사건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영원히 이 상태를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5)

두 사건은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죽음을 체험하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 날밤 청소년기부터 간직해 온 내 육체를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생기잇고 비밀스러운 성기가 달려 잇던 육체를….나는 전시되고 사방으로 벌려진 성기와 바깥으로 열어서 긁어낸 배를 갖고 있었다.”(단순한 열정, 69쪽)

다시 태어난 주인공에게 세상은 “너무나 의미가 많은 존재와 사물이 있는” 세계이며, 그러나 기존의 말로는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순수한 의식이 흥분된 상태에서” 보여지는 세계이다. 작가의 이런 말들은 마치 사르트르가 발견한 즉자의 세계를 암시한다.

작가가 사건을 통해 접한 세계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에서 들려오는 신성한 세계이다.

“그리고 합창이 들렸다. Wohin! Wohin! 거대한 지평이 열렸고 ….고통과 영원한 죽음 속에 녹아내렸다. 구원받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열정>에서 주인공은 열정이 사라지고 점차 일상의 세계가 돌아온다. 그러나 때때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잠시동안 거대한 고요함이 내 안에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 된다.”

여기서 ‘거대한 고요함’이란 앞에서 사건에 말한 ‘신성한 것’과 같은 의미이리라.

7)

작가는 두 가지 사건, 임신중절과 단순한 열정을 겪으면서 이 사건이 지닌 끔찍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존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사건의 흔적을 찾아서, 그 사건의 원형을 발견하려 한다.

이런 사건의 원형을 발견하기 위해 작가는 세심한 글쓰기 전략을 추구한다. 두 작품은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사건은 일어난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된다. 사건에 관한 인과적 설명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이 사건이 이미 일상의 세계 속에서 그 흔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는 사건을 입증해줄 자료인 일기나 사진과 같은 일차적 자료에 기초한다. 이런 일차적 자료는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기록된 것이기에 생생하기는 하지만, 주관의 감정적 개입이 심하며, 아직 사건의 본래 의미가 드러나기 전에 작성된 것이기에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작가는 일차적 자료를 따르면서도 일정한 시점 뒤에서 회고적으로 개입하여 재서술한다. 그 시점이란 곧 작가가 자신이 겪은 사건에서 끔찍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글을 써야 하겠다는 강박을 느꼈을 시점이다. 작가는 이런 회고 가운데서 사건과 무관한 사실을 제거하며 냉정하고 순수하게 사건을 드러내려 한다.

그 사건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낙태이며 불륜이며 작가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도전이며 모험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감정적 판단이 개입하니, 이는 사건의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관점과 감정적 판단을 서술에서 배제하려 하려 한다.

작가는 사건을 그 사건의 원형 그대로 순수하게 파악하려 한다. 그러나 그 원형은 주관적인 작가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에 있을 것이니, 작가는 다시 자신이 서술한 글에 주석과 보완을 더한다. 주석과 보완은 때로는 작품 속에 차별적으로 표시되지만 작품의 내용 속에 녹아 들어가서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 결과 때로는 작품의 지문이 어떤 서술시에 서술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작가의 글쓰기는 3차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글쓰기이다. 작가는 이런 글쓰기 방법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열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정당화되어야 할 실수나 무질서로 여겨질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거대한 열정 27쪽)

‘있는 그대로’란 곧 사람과 죽음을 초월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는 사건의 진실을 말한다. 그런 진실만이 사건이 지닌 끔찍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이다. 작가는 <사건>의 첫 페이지에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중적인 소원, 사건이 글쓰기가 되고, 글쓰기가 사건이 되는 것”


아니 에르노와 사건(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아니 에르노와 사건(1)

-두 작품 <단순한 열정>과 <사건>을 통해서

 

1)두 가지 세계

세계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일반적인 시선인데 주어 중심의 세계를 낳는다. 여기서 세계는 모두 어떤 주어가 지시하는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주어는 술어를 통해 다른 사물과 관계하며, 다른 사물로 변화해 나간다.

반면 술어 중심의 시선이 있을 수 있다. 이 시선에서는 세계는 술어로 이루어지며 이 술어가 다른 술어와 교차하면서 이런저런 사건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사랑은 죽음과 만나면서 사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생겨난다. 사랑은 질투와 만나면서 질투에 사로잡힌 사랑이 생겨난다.

사랑으로 죽어갔던 베르테르와 사랑으로 죽은 윤심덕은 동일한 사건의 반복일 뿐이다. 여러 술어가 상호 교차하면서 사건의 네트워크 공간이 이루어진다. 사랑과 환희, 죽음은 서로 교차하면서 사랑의 공간을 이룬다. 사건이 시간적으로 계열화하면서 어떤 대상이 출현한다. 나라는 존재는 일련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지점에 불과하다.

이미 어떤 사건의 공간 속에 있는 나에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그 사건은 기존의 나에게서 어떤 조짐을 보이다가 마침내 현실화한다. 사건은 더욱 두터워지고 무게를 더하면서 기존의 나를 파괴한다. 나는 갑자기 기존의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존재, 짐승이나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나를 사로잡고 마침내 나를 넘어서면서 나는 새로운 나가 된다. 이걸 사건의 전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

카프카는 이런 사건의 전개과정을 <변신>이라는 소설로 그려냈다. 이상의 작품 <날개>도 이런 사건의 전개과정을 그린 소설로 볼 수 있겠다.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 역시 이런 사건의 전개과정을 주제로 두 편의 소설을 썼다. 하나는 1991년 쓴 소설 <단순한 열정>이며 다른 하나는 1999년 쓴 소설 <사건>이다.

<사건>은 작가가 대학생 시절 1964년 2월 20일에 밤에 부딪혔던 사건을 다룬다. 작가는 1991년 자신이 겪은 단순한 열정을 글로 쓰면서 마지막에 1964년의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한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사건이 일어난 그 장소를 다시 찾아본다. 이 사건은 끊임없이 작가의 마음을 강박하면서 마침내 8년이 지난 다음 <사건>이라는 소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작가가 겪은 단순한 열정과, 그 원형으로서 그 사건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둘 다 끔찍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아름다움 때문에 작가는 이를 글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이를 신성한 것으로, 자긍심을 주는 것으로 기억한다.

“신성한 무엇처럼 [1964년] 1월 20일과 21일 밤의 비밀을 내 몸속에 간직한 채 거리를 걸었다. 내가 공포의 끝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끝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긍심을 느꼈다. …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 가려고 하지 않는 곳까지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긍심처럼 생각되었다. 이 감정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쓰게끔 이끌었다.”(사건, 75쪽)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단순한 혈정, 59쪽)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단순한 열정, 66쪽)

3)

작품 <사건>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은 작가가 대학생 시절 겪은 임신중절이라는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임신중절을 불법이었다. 작가는 “알코홀 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 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운명을”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을 피해 임신중절을 결심한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자 임신은 이제 이해할 수 없이 다가온,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이 사건은 이제 이름도 없어진다. 주인공은 이 사건을 그저 ‘그것’이라는 말로 부를 뿐이다.

처음에 이 사건은 아직 피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나타나지만 점차 그 두터움과 무게를 더하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닥쳐온다. 이 사건으로 주인공은 사회로부터 배제되며, 논문 작성이라는 자신의 과제에도 충실할 수 없다. 주인공의 삶은 혼돈에 빠져든다. 주인공은 이 혼돈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알지 못한다.

“시간은 내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모든 수를 써서라도 파괴해야만 했던,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사건, 21쪽)

“따라가야 할 길도, 따라야 할 표지도 아무것도 없었다.”(사건, 27쪽)

“이제 이념의 천국[여대생으로서 삶]에는 다가갈 수 없어 보였고 그 아래로 구토하며 진창에 빠진 내 육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사건, 33쪽)

주인공은 불법 시술을 받으며 마침내 자기 뱃속의 생명을 살해하여 변기에 버리는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 사건이 1964년 1월 20일 밤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주인공은 죽음과 심판을 경험한다.

“그리고 내 허벅지 사이에 그것을 꼭 끼고 복도로 걸어나갔다. 나는 짐승이었다.”(사건, 64쪽)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장면이었다.”(사건 65쪽) “그 밤은 삶과 죽음의 순수한 경험에서 폭로와 심판의 자리로 바뀌었다.”(사건 66쪽)

작가는 이런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 일체의 인과적 관계를 거부한다. 작품 속에는 인물이나 환경의 구체적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오직 사건이 출현하여 주인공의 마음과 삶을 엄습하는 모습만이 서술되어 있다. 사건은 마치 우주인의 침공처럼 한바탕 전쟁을 일으켰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나를 풀어주시오(2)-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나를 풀어주시오(2)-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저주 토끼를 읽고

6)

작가가 절망감을 탈출하려는 시도를 처음부터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작품마다 탈출을 기획한다. 그러나 탈출을 감행한 주인공의 시도는 번번이 전도되고 만다.  정보라 작가에게서 삶은 아이러니로 보인다.

아이러니 개념은 낭만주의 문학자 프리드리히 슐레겔에게서 미학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아이러니란 곧 어떤 것이 자기의 반대로 전락하는 것을 말한다. 슐레겔은 문학이 단지 세상사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를 파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슐레겔은 작가 자신의 아이러니를 말한다. 작가가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작품에서 작가를 대변하는 것은 곧 화자인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자기 부정이 슐레겔에서 아이러니 미학의 핵심이 된다.

정보라의 소설 곳곳에서 이런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작품 ‘머리’에서는 변기 구멍에 자신이 버린 머리칼과 배설물, 휴지 등으로 이루어진 머리가 커서 그 자신을 오히려 변기 구멍에 밀어 넣는다. 작품 ‘몸하다’에서는 배가 불러오자, 아이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거나, 마침내 아이의 아버지가 나타났으나 이번에는 아이가 물거품 같은 핏덩어리이다. 작품 ‘안녕 내 사랑’에서는 자신이 만든 반려 로봇이 수명이 다해 이를 폐기 처분하려 하자,  반려 로봇이 오히려 그를 찌르고 도주한다.

정보라 작품에서 아이러니는 세계의 아이러니만은 아니다. 심지어 주인공 자신의 아이러니로 발전한다.

정보라 단편집 ‘저주 토끼’를 대표하는 단편 ‘저주 토끼’를 보자. 할아버지는 자신의 친구 회사를 망하게 한 경쟁사 사장에게 저주 토끼 인형을 보낸다. 저주 토끼는 회사의 문서를 갉아먹고 나중에는 사장 손자의 뇌를 갉아먹는다. 사장과 그의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삼대가 죽으면서 경쟁사는 무너진다.

한편으로 보면 통쾌한 복수극이지만, 작가는 복수한 할아버지 역시 저주에 걸려 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죽어도 죽지 못한 채로 유령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화자인 나에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 끝없이 되풀이 말한다. 영원히 방랑하는 유령, 죽어도 죽지 못한 것처럼 잔인한 처벌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아이러니가 정점에 이른 것은 작품 흉터가 아닐까? 주인공은 돈벌이 수단으로 능력을 상실하면서 해방된다. 그는 숲 속에 사는 눈먼 여자를 만나 자신이 동굴에 갇히게 된 사연을 듣게 된다. 주인공은 눈먼 여자를 구하기 위해 그녀 대신 괴물에게 바쳐진 희생물이었다.

주인공은 그를 한없이 고통 속에 밀어 넣은 여자를 오히려 사랑하면서 만악[萬惡]의 근원인 동굴의 괴물을 처치하러 떠난다. 마침내 동굴의 괴물을 자신을 묶었던 쇠사슬로 쳐서 죽이고 돌아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눈먼 여자는 물거품이 되고 지금까지 그를 괴롭혔던 마을도 마을 사람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작가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만 그는 마을 전체가 그것의 존재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이 괴물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생존 본능이며 황금의 매력이다. 그것은 우리를 가두어 두는 괴물, 다름 아닌 ‘그것’이지만, 우리의 생존 자체가 사실은 그것에 의존해 있다는 것이다.

7)

저주 토끼라는 단편집에 실린 작품 가운데 가장 음울한 색채를 띤 것은 세 번째 작품인 차가운 손가락일 것이다. 이 작품은 동시에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어서 독자로서 작품을 이해하기 정말 어렵다. 작품 속의 시간도 순환적으로 흐른다. 전체적으로는 꿈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은 이 선생이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보니, 누군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는 차를 빠져나오라고 한다. 문을 미는 데 누군가의 손가락이 닿는다. 주인공은 그런 가운데서도 손가락에 끼였던 반지를 찾는다. 주인공에게는 아주 소중한 거다. 반지는 차밖에 있던 손가락이 전해준다.

차를 빠져나가니 바닥은 물컹거린다. 진흙 바닥 같다. 주인공은 손가락을 잡고 빠져나오며 손가락이 누군지 묻는다. 손가락은 자기가 같은 학교 동료 교사인 김 선생이라 한다. 손가락은 어떤 일이 주인공에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데, 매번 말이 바뀐다. 처음에는 동료 교사인 최 선생의 결혼식에 갔다 오다 사고 났다고 하더니, 다음에는 최 선생이 이혼하고, 퇴직해 시골에 내려가자 위로차 갔다 왔다 한다. 또 목소리는 최 선생의 장례식에 갔다 왔다고 한다. 꿈속의 장면으로 보면 이런 말 바꿈이 이해할 만하다. 오히려 이런 말 바꿈을 통해서 전체 사건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주인공은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소리는 불분명하고 마치 바람 소리같이 들릴 뿐이다. 자기를 김 선생이라고 하는 손가락은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손가락은 자기에 의존해서 따라오는 주인공을 비웃기 시작한다. “똑같이 사고 나도 누구는 끈질기게 살고 누구는 그 자리에서 그냥 죽고…”라고 말하든가, “살아 있을 때도 혼자였는데, 죽어버리고 나서도 계속 혼자면….”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손가락은 주인공 보고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자기를 따라온다고 비웃는다.

그러자 두려움을 느낀 주인공은 뛰어간다. 시간은 여기서부터 처음 사고장면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갑자기 땅이 다시 물컹하고, 정면에서는 차가 달려온다. 운전석에는 주인공 자신이 앉아 있고 운전대에는 자신의 것이 아닌 다섯 손가락이 자신의 양손 사이에 놓여 있다. 이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이 차를 운전하면서 그녀를 덮치고 있다.

그 후 첫 장면처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리면서 그 자신은 차에 갇혀 있다. 이때 차가운 손가락이 닿으면서 반지를 빼낸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그녀를 비웃는다. 차가 가라앉으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뼈가 부러지는 것을 느낀다.

꿈과 같은 시간이 역전된 상황 속에서 독자로서 혼란스럽지만, 최 선생의 남편을 빼앗아간 장본인이 바로 주인공 김 선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사고 가운데서도 반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장면이 꿈속의 상황이라면 교통사고로 보이는 이 사건은 주인공의 죄책감의 표현일 것이다.

주인공은 최 선생의 남편을 빼앗았고, 그 때문에 최 선생은 자살했고 주인공은 그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주인공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더없이 행복하다. 타인의 것을 뺏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절망적인 운명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재회’의 남자는 자기 손을 자기가 묶은 채로 목을 매달아 죽고 만다. 자기 손을 묶은 것을 혹시 자기 손으로 자기를 살릴까봐서다.  ‘재회’의 화자인 나는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폴란드로 다시 온다. 그리고 환상 속에서 그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 묻는다. 풀어줄까? 남자는 목이 매여 있어 대답할 수 없다. 눈을 깜박거림으로써 대답한다. 작가는 죽음을 통해서 외에는 이 삶의 아이러니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8)

아이러니는 단편 ‘즐거운 나의 집’에서도 나타난다. 주인공은 7년을 노력한 끝에 빚을 전부 갚고 도시 변두리에 4층 건물을 구했다. 행복의 출발점일 수 있는 이 건물은 그녀의 불행의 출발점이었다.

건물에서는 바퀴벌레가 나오고 동네 사람은 텃세를 부려 자동차를 해친다. 남편은 비어 있는 3층을 친구 회사에 세를 내주지만 회사는 망하고 사장은 도망간다. 알고 보니 남편은 실내장식을 하는 동아리 후배와 내연의 관계에 있다. 둘은 함께 교통사고를 죽는다.

그 모든 것을 그녀는 견딘다. 이런 불행을 벗어나는 길은 없다. 그래도 이 작품에서는 작가는 우리에게 약간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건물의 지하에 그녀의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실제는 아니다. 그 아이는 주인공이 보는 환영이다. 처음 아이는 희끄무레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이 심해 감에 따라서 아이는 무게를 지니고 촉감을 지닌 존재로 성장했다. 아이는 자물쇠를 가지고 논다. 자물쇠를 철컥하고 잠갔다가 다시 여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다. 그녀는 이 아이와 함께 지하실에 숨는다.

이상하게 다른 곳은 바퀴벌레와 쥐가 들끓었는데, 이 지하실만은 깨끗하다. 아마도 이 지하실조차 현실의 공간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아이 만큼이나 가상의 공간이다. 이 지하실은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주로 연극 무대에 쓰이는 의상이나 소품이다. 그렇다면 이 가상의 공간은 예술의 세계가 아닐까?

황금 물신주의 세계에 대립하는 구원의 세계를 작가는 환상과 예술 세계 속에 찾는다. 이 예술 세게 속에는 황금 물신주의가 파괴하는 가족이 살아 있다.

그러고 보면 이런 가족에의 희망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몸하다’에서도 주인공은 끝까지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는다. 비록 물거품 같은 핏덩어리를 낳고 울음을 터뜨리지만, 그녀가 아이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그 마음이 느껴진다.

‘모래와 바람의 지배자’라는 작품에서 초원의 공주는 모래바람에 파묻힌 황금 물신주의의 나라를 떠난다. 황금 배의 주인인 주술사는 공주에게 자신과 함께 황금 배를 타고 “영원히 시간의 지평선을 떠다니며” 살자고 한다.

하지만 공주는 황금의 배를 떠나면서 자기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거라고 말한다. 주술사는 그런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공주는 이렇게 말한다.

“알아요, 그러나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살아갈 테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그리는 가족의 세계는 황금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는 없다. ‘재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주인공이 말한다. 이게 이 단편집 전체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이제 내가 기다릴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욕실에 서 있었다. 누군가가 기적처럼 찾아와서 이 삶에 묶인 나를 풀어 주기를 기다리며….”

기적처럼 찾아온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가상의 공간, 예술의 공간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9)

우리의 생존 의지, 욕망이 우리를 가두는 괴물, 동굴, 바로 ‘그것’이다. 이 이율배반적인 삶에서 풀려날 길은 없는가? 기적 같은 그 순간은 오지 않을까? 이 글은 작가의 질문을 다시 던지면서 끝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를 풀어주시오(1)-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나를 풀어 주시오(1)-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저주 토끼를 읽고

1)

정보라의 작품은 우화나 설화, 동화, SF 형식을 취하고 있고 작품 곳곳에는 유쾌한 역설이 나 환상이 등장하므로 언뜻 가벼운 작품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들어있어 깊고 진한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 자신이 후기에 말한 대로 그의 작품 곳곳에는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절망감이 배어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전체 작품을 이해하는 한 마디는 “나를 풀어주시오”라는 말이 아닐까 한다. 이 말은 ‘덫’이라는 작품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나를 풀어 주시오”라는 말에서 나오는 ‘하오 체’는 지금은 일상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 과거에는 예컨대 장성한 아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용하는 말투였다. 또는 남편이 아내에게 말할 때 사용할 수도 있겠다. 이런 말투는 상대방을 높이며 동시에 상대방에게 부탁하면서도 자신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말투라고 분석할 수 있다.

요즈음 ‘주십시오’와 같은 ‘합시오 체’가 많이 사용되는데, ‘하오 체’는 이런 ‘합시오 체’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차이가 있다. ‘제안 사항 없음 자신이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부탁할 경우 사용한다. 반면 ‘하오 체’는 상대방이 자신과 매우 친밀한 존재라는 점이 전제될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투라 하겠다. 친밀하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가 바로 ‘하오 체’이다.

이런 ‘하오 체’ 말투는 이 단편집에 실린 ‘머리’와 같은 작품에 나오는 말투와는 반대다. 머리는 변기 구멍에서 나와서 주인공에게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머니와 머리 사이의 대화는 마치 사극에 왕과 대비 사이의 말처럼 들린다. 서로 존중하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런 거리감은 쉽게 반감으로 바뀌니 주인공과 머리의 대화는 곧 반말체로 바뀐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옷을 달라 하여 옷을 주지 않았느냐? 달라는 대로 다 주었으면 감지덕지하고 얼른 나갈 일이지 나더러 변기 속으로 들어 가라니 무슨 미친 소리냐?”

그러자 머리는 이렇게 답한다.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고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반면 “풀어주시오”라는 하오체는 거리감을 두고 있지만, 오히려 서로 친밀함을 드러내는 것이 이런 말투를 사용하는 주목적으로 보인다.

2)

‘나를 플어주시오’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이제 덫이라는 작품을 좀 더 들여다보자. 어느 남자가 겨울에 눈 덮인 산길을 가다가 덫에 걸린 여우를 보고 여우를 죽여 털가죽을 얻으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덫에 걸린 여우가 처음으로 이 말을 말한다.

여우가 사용하는 하오체에서 여우는 하나의 당당한 인격으로 인정되고 있다. 더구나 여우는 다가오는 남자를 존중하면서도 친밀한 존재로 보고 있다. 여우가 자신을 인격체로 간주하는 것은 이야기가 ‘오래전에 읽은 이야기’ 즉 전설이나 민담에 속하니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다가오는 남자는 여우에게 낯선 남자인데, 여우는 무슨 이유로 그를 턱없이 믿고 있는 걸까? 여우는 남자가 양식 있는 인간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여우의 발목 상처에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액체가 흐르는 것을 보고, 여우를 자신의 헛간에 가두어 놓는다. 이 단편 속에 ‘나를 풀어주시오’라는 부탁은 여러 번 변주되어 등장한다. 한번은 여우가 죽자 그 대신으로 갇혔다고 짐작할 수도 있는 딸의 입에서도 나온다. 딸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를 풀어주시오” 딸이 하는 말로서는 좀 서늘하다. 그래도 아직 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믿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의사를 불러 딸의 임신한 배를 가르려 했다. 이 말은 재산과 사람을 모두 잃고 뼈와 가죽만 남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마도 산 채로 죽어 있는 남자의 입에서도 나온다. 남자는 그를 찾아온 동네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를 풀어주시오” 약간 사무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동네 사람이니 이렇게 ‘하오체’를 사용할 수 있겠다.

딸과 쌍둥이인 아들의 입에서도 나온다. 아들은 자기 여동생의 피를 빨아먹고, 남자는 그 아들의 상처를 쑤셔 황금을 얻었다. 아들은 자기 여동생을 사랑해 임신시켰고 의사가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려 했을 때 뛰어들어서 아이를 구해 멀리 도망친다. 그리고 산속에서 죽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아들의 배를 갈라 금빛으로 빛나는 내장을 파먹으며 살아간다. 동네 사람들이 다가가자 죽은 듯했던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풀어주시오” 마지막 이 말에는 주어가 없다. 그 때문에 말 자체에 진지함이 사라졌다. 이미 상대를 믿지 않지 않는다는 의미가 강해진다.

이 말은 마지막으로 한번 반복되는 데, 이번에는 하오체가 사라진다. “플어….” 이젠 말을 하다 아예 멈추어 버린다. 더는 부탁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덫’이라는 단편에 반복되는 이 말은 점차 친밀함을 상실하고 의심이 강화된다.

3)

풀어달라는 말은 갇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대개 어딘가 갇혀 있거나 매여 있다. 단편 ‘흉터’에서 소년은 동굴에 갇혀서 한 달에 한 번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그것’으로부터 등골을 빨아 먹힌다. 소년은 자신이 왜 이 동굴에 던져졌는지, 자신의 등골을 파먹는 그것이 도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잔인한 고통 속에서 이 고통에서 풀려나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갇혀 있다는 주제는 마지막 작품 ‘재회’에서도 변주된다. 주인공이 광장에서 만난 폴란드 남자는 아마도 마조히스트로 보인다. 그는 자신을 묶어주고 그것도 자기가 바라는 대로 묶어 주기를 바란다. 남자는 그렇게 묶어주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에 주인공은 기꺼이 그를 돕는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지만 남자는 자신의 손을 묶어 놓고 목을 매고 죽었다. 주인공은 환영으로 그를 다시 만나서 이렇게 말한다. “풀어 줄까?” 목을 매고 죽은 남자는 말을 할 수 없고 다만 눈만 깜박거리면 응답한다. 풀어 달라는 말일 것이다.

작가는 이 남자를 풀어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래는 없었다. 그와 내가 알았던 모든 삶의 유형들은 전부 과거에 갇혀 있었다.”

갇혀 있는 상태에서 풀려나기를 기다리는 삶의 모습은 이 작품에서 여러 방식으로 재현된다. 이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은 폴란드의 어느 도시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 주인공은 광장을 가로지르는 할아버지를 본다. 남자는 매번 광장을 가로질러 같은 길을 반복한다. 환영이다. 나중에 나온 설명에 따르면 이 할아버지는 전쟁 중에 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그만 죽고 만 사람이다. 이 할아버지는 전쟁의 현장에 갇혀 있다.

이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남자의 할아버지 역시 갇혀 있다. 남자의 할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 준비한다. 배낭을 싸 두고 통조림을 쌓아 둔다. 할아버지는 과거의 기억에 갇혀 있다. 그것은 남자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풀어주었던 남자는 환영을 볼 수 있다. 남자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이 환영을 따라서 떠나갈 것을 두려워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묶어 두고 아들이 환영을 보고 말할 때는 매를 들어 때린다. 남자의 어머니 역시 갇혀 있다.

4)

작가는 이 작품 ‘재회’에서 무엇이 사람을 가두어 두는지를 말해 준다. 길지만 정보라의 삶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니 인용해 보자.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사람들, 그도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나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었거나, 사실은 모두 과거의 유령에 불과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생존본능이라는 것에 갇혀 있다. 사람들의 삶은 이 생존본능이 가장 격렬하게 발휘되었던 순간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사실은 과거의 유령일 뿐이다.

작가에게서 생존 본능이란 여러 방식으로 변주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황금에 대한 매혹일 것이다. 앞에서 든 단편 덫에서 주인공 남자는 황금에 사로잡혀 있다. 황금 물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황금 물신주의는 ‘모래와 바람의 지배자’라는 단편에서도 등장한다. 사막의 나라 왕은 황금의 배를 타고 사막을 오가는 주술사와 전쟁을 벌인다. 왕은 승리하지만, 마술사의 저주에 걸린다. 그 때문에 그의 아들인 왕자는 태어나자마자 눈이 멀었다.

초원에서 온 공주는 왕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왕자가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주술사를 찾아간다. 공주는 주술사의 해법을 따라 왕자의 눈을 뜨게 했으나 사막의 나라에 모든 사람이 걸려 있는 황금 물신주의 저주는 풀어내지 못했다.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눈먼 인간을 눈 뜨게 할 방법은 없다.”

이런 황금 물신주의는 또 다른 변주를 낳는다. ‘흉터’에서 ‘그것’이라는 변주이다. 동굴에 갇힌 소년은 처음에 ‘그것’의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점차 그가 깨달은 것은 ‘그것’은 거대한 부리를 가지고 있고 잿빛 날개와 파란 눈을 가진 존재였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오랜 궁리 끝에 동굴과 괴물을 탈출했으나, 그가 만난 것은 어쩌면 더 원초적인 동굴이다. 그는 돈벌이에 눈이 먼 대머리 남자에 끌려 다니면서 격투를 벌인다. 그는 이 새로운 동굴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그가 더 돈벌이의 수단이 되지 못하게 되자, 그는 버려지게 된다.

그렇다면 생존본능과 황금 물신주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삶을 벗어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 더는 황금을 생산하는 수단이 되지 못할 때 버려지면서 비로소 해방되는 것일까?

5)

“풀어주시오”라는 작가의 말투에서 짐작하듯이 사람을 가두고 있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친밀한 존재이며 가장 존중받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생존본능 자체, 황금에 대한 매혹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질상 황금에 대해 매혹을 느낀다.

황금의 매혹은 작품 덫에서 딸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들은 딸의 피를 먹을 때만 상처에서 황금을 흘린다. 남자는 딸을 여우처럼 가두어 둔다. 그런 딸은 투명하고 창백한 얼굴을 지닌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무감각하고 서늘한 병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또는 그 아름다움은 “달빛 아래 검은 숲과도 같은” 비밀스러운 매력을 발산했다.

딸의 모습에 대한 작가의 서술은 황금빛 자체에 관한 서술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황금빛이 가진 매혹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금빛 안개는 서늘하고 창백했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가까이 가고 싶어 졌고 가까이 가면 손을 담그고 싶어 졌다.”

이런 금빛 안개에 다가간 사람은 누구나 미칠 수밖에 없다. 사람을 가두고 있는 동굴은 바로 그 자신의 본성, 생존본능과 황금에 대한 매혹이다. 자기가 자기를 가두고 있는 한 이 동굴을 벗어날 길은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등골을 빨아먹는 ‘그것’의 모습이다. 그러니 누구도 자신의 본성인 그것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이 아닐까?

혹시 어둠 속에 쇠사슬을 바위에 부딪혀 내는 순간적인 빛이 하나의 구원이 되지 않을까? 아마 예술과 같은 것이 작가가 말하는 그런 순간적인 빛에 해당할지 모른다. 예술은 삶을 구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소년은 동굴을 나와 밤하늘에 별빛을 보면서 동굴에서 보았던 빛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 별빛은 “누군가 자신처럼 동굴 안에 갇힌 사람이 쇠사슬을 거대한 돌벽에 부딪치며 저 수많은 반짝이는 빛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말하듯이 이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별빛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게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외침인들 누가 들어주겠는가? 그게 공허와 어둠을 어떻게든 견디기 위한 놀이라면, 그처럼 허망한 놀이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소년은 밤하늘의 별빛조차 무심하게 바라보게 되는데, 작가의 절망감이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고 하겠다. 살아서 탈출할 길은 없다는 절망감이 정보라 작가의 작품 전체를 흐르고 있다.


달콤한 것들에 대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달콤한 것들에 대해

언제부터 인가 교외에 빵집이 들어섰다. 처음엔 시내 임대료가 비싸서 그런가 했다. 곧 알았지만 그게 카페의 일종이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빵을 함께 먹었다.

속으로 웃었다. 외국 사전에 가든의 의미로 고기집이 등록되었다고 한다. 빵집의 의미로 카페가 등록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어느 날 아이가 식사 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들었다. 내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빵이지? 아이의 말이 보통 빵집에서 파는 빵이 식사 빵이라 한다. 카페에서 파는 빵은 식사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카페에서 파는 빵은 카페 빵인가?

나도 카페 빵을 한번 먹어 보았다. 카페에 진열된 빵은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대개 아주 달콤한 빵이었다. 생각해보니 쓴 커피를 먹으면서 달콤한 빵을 곁들이는 것은 환상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스타벅스 이후 커피가 더욱 쓰게 되더니 급기야 이런 빵집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건 차가운 얼음에 뜨거운 팥을 얹어 먹는 팥빙수만큼이나 환상적이다.

처음에 한두 개 생기던 카페 빵집이 이제 어디서나 흔하게 등장한다. 이젠 시내에도 카페 빵집이 흔하다. 사람들이 그만큼 좋아한다는 거겠지.

철학 본능이랄까? 내게 의문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걸까?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이 시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것의 형태도 달라졌다. 우리 어릴 때는 단연 사탕이 인기였다. 요즈음 사람은 그 달콤함을 카페 빵에서 찾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시대에 사람들이 특히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달콤함은 문화의 다양한 형태에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배용준이 한류를 대표하는 인기 품목이었다. 배용준은 그 미소 속에 달콤함을 달고 다닌다.

방탄 소년단에 대해 내가 인정하는 것은 오직 그들의 노래가 버터에서 보듯이 달콤하다는 것뿐이다. 그들에겐 고통도 슬픔도 저항도 없다. 

게다가 막걸리는 왜 또 그렇게 달콤해졌는지? 

그 뿐만 아니다. 정치의 세계는 원래 건달들의 세계였다. 옛날에는 우락부락한 파이터 아니면 건들거리는 한량, 조삼모사식 달변의 인물이 정치를 지배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치인의 모습도 바뀌었다.

마치 연예인처럼 생긴 정치인이 등장하더니,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도 소확행이라고 한다. 작지만 확실히 행복하다는 것은 달콤함의 정의가 아닌가?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달콤함의 이면은 우울함이 아닐까? 우울할수록 더욱 달콤한 것이 그리워진다. 우울할 때는 쓴 술조차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이런 우울함은 환상에 대한 욕망을 낳는다. 그게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이미지 문화이다. 술과 달콤함, 영화, 이 세 가지는 내가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울함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우울함이란 상징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징조이다. 상징계가 무너지면 처음엔 달콤한 환상이 등장해 이를 메꾼다. 하지만 머지않아, 달콤한 환상은 무서운 박해자의 이미지로 대체된다. 그게 편집증이다.

이 시대 달콤함이란 편집증의 시대를 예고하는 전조가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이미 사람들은 무서운 박해자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포퓰리즘에 관해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포퓰리즘에 관해서

서평 -거대한 반격(파올로 제르바우도 저, 남상백 역, 다른 백년, 2022)

1)

필자는 어느 교수님의 소개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거대한 반격’인데, 무엇을 반격하는지 부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부제는 ‘포퓰리즘과 팬데믹 이후의 정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부정하고 등장한 것이 포퓰리즘이다. 저자는 코로나 위기 이후 포퓰리즘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더 근본적인 반격이 시작하고 있다고 보며, 이런 반격에 ‘거대한’ 반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저자는 영국의 문화 이론가이며, 킹스 칼리지 문화연구소 소장이고, 디지털 문화에 대한 분석과 강의를 해왔다. 저자는 트위터, 소셜 등에 기초한 정치 운동이나 정당 등에 대하여 저서를 발표했으며 이 가운데 포퓰리즘에 깊은 관심을 둔다.

저자는 반격에 중점을 두었지만 필자로서는 반격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에 대한 논의에 흥미를 느꼈다. 왜냐하면, 트럼프 현상에서 잘 보듯이 오늘날 정치에서 포퓰리즘이 상당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포퓰리즘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무너지면서 우파든, 좌파든 포퓰리즘이 압도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파 포퓰리즘 현상으로 미국의 트럼프,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이태리 북부동맹 지도자였다), 항가리의 빅토 오르반, 영국의 브렉시트파 등을 들고 있다. 이들은 공통으로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이들이 이주 노동자나 소수 집단에 대해 아주 강한 혐오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혐오감의 표출을 통해 몰락하는 하층 제조업 노동자로부터 심정적 지지를 끌어낸다.

또한, 이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몰락한 전통 제조업의 부활을 주장하면서 그 방법으로 중상주의적 보호 정책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이들은 구 자본가 계층의 지지를 받아, 구 자본가 계층과 하층 노동자의 정치적 블록을 형성한다.

저자는 좌파 포퓰리즘으로 미국의 샌더스와 민주사회주의자, 영국의 코빈, 차베스와 같은 21세기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 피케티 등 기본 소득론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이들에게 공통된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으나, 필자의 추측으로는 대체로 ‘소득 보전’ 정책이 곧 좌파 포퓰리즘의 핵심 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신유주의에는 두 측면이 있다. 그 하나는 대처, 레이건 정책에서 보듯 작은 정부, 노동 유연화인데 한마디로 저임금화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클린턴, 블레어 등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세계화, 금융 자본화다.

두 가지 가운데 좌파 포퓰리즘이 주로 반대하는 것은 저임금 정책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금융자본의 손해를 보전하자, ‘월가를 점령하자’는 선동적인 주장을 내세웠으나, 일시적인 것에 그쳤고 실상 신자유주의의 해체로 나가지는 않는다. 좌파 포퓰리즘은 다만 현상을 유지하면서 저임금 정책을 소득 보전 정책을 통해 보완하려 한다.

좌파 포퓰리즘의 소득 보전 정책은 프레카리아(precariat)의 심정적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 프레카리아는 불안정(precarious)와 프로레타리아의 합성어로,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확산한 불안정 취업자를 말한다. 비정규직, 실업자, 신분 저하된 대졸 취업자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의 또 하나 측면 즉 세계화에는 긍정적이다. 세계화를 주로 값싼 생필품 수입 체제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화로 무너지는 국내의 제조업을 대신하기 위해 이들은 소위 그린-뉴딜 정책을 내세운다. 즉 그린-뉴딜 정책을 통해 몰락한 제조업을 기후 위기나 환경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런 정책은 신중산층(전문기술 노동자 층)의 지지를 받으며, 좌파 포퓰리즘은 신중산층을 신자유주의 세력으로부터 탈취하여 프레카리아와 전문기술 노동자의 블록을 조직하려 노력하고 있다.

저자는 앞에서 보았듯이 소득 보전 정책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이런 정책이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정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소득 보전 정책은 케인즈 이론에 기초한 합리적 정책으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복지국가 시대에 이런 정책은 경제적 선순환을 일으키는 정부의 주요 정책이었다.

그런데도 저자가 이런 소득 보전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규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런 소득 보전 정책이 비현실적이고 따라서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정책이라 판단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필자가 나름대로 추론하자면, 소득 보전 정책이 감정적인 정책인 이유는 이 정책은 통화와 재정을 국가가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민족국가 시대에나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3)

대체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등장한 이런 정치적 세력을 저자는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포퓰리즘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이론적 문제로 대두된다. 무엇을 포퓰리즘이라 하는가?

저자는 여기서 구조주의 정치학자 에르네스트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론을 먼저 자신의 개념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제시한다.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London, 2015)’라는 책에서 포퓰리즘을 구조주의적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접합시키는 담론 동학”으로 규정하면서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이질적 요소를 결합하는 계기는 라캉적인 개념인 소위 ‘텅 빈 기표’인데, 이것은 상징적 구조가 몰락하는 구멍을 의미한다. 이런 텅 빈 기표를 채우기 위해 여러 환상이 중첩되니, 이런 텅 빈 기표는 정치적 영역에서 이데올로기가 접합되는 기표가 된다.

저자는 이런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분석을 형식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 분석에 의존한다. 저자는 여기서 대니 로드릭의 포퓰리즘 분석(‘포퓰리즘과 지구화 경제’,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policy1, 1-2, 2018)을 참조로 하는데, 대니 로드릭은 포퓰리즘의 경제적 토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로 금융자본이 지배하고 제조업이 무너지면서(이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금융 중심국의 처지에 한정된 것이지만) 한편으로 성장하는 금융 자본가와 몰락하는 제조업 자본가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흥 첨단 산업에 종사하는 전문기술 노동자 계층과 삶이 불안정해진 노동자 계급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하는 데 기초한다.

이런 사회 경제적 조건에서 결과적으로 이에 저항하는 새로운 인민 블록이 형성된다. 하나는 몰락하는 중소기업 자본가 계층과 몰락한 제조업 노동자(블루 칼러)의 블록이다. 이것이 우파의 포퓰리즘 블록을 이룬다. 반면 좌파 포퓰리즘 블록의 중심은 신자유주의 시대 등장한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는 프레카리아와 신자유주의의 저임금 정책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진 노동자 계층이다.

이런 경제적 기초 때문에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이 등장하는데, 그 구체적 내용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이다.

4)

라클라우의 주장은 텅 빈 기표나 환상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임으로써 포퓰리즘의 심정에 호소하는 이유는 밝혔다. 라클라우는 이런 텅 빈 기표가 사회의 상징적 구조에 구멍이 생김으로써 발생한다고 보지만 그런 구멍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분석하지는 않았다.

경제적 토대를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적 포퓰리즘 이론은 포퓰리즘을 합리적으로 분석한다. 즉 그런 포퓰리즘이 받아들이는 자들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합리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왜 주로 퇴행적이거나 공상적 정책을 통해 심정에 호소하는 것인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포퓰리즘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을 종합하면서 포퓰리즘이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 조건과 그것이 환상에 기초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였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포퓰리즘 설명은 종합적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포퓰리즘이 전체적으로 설명되는 것일까? 저자의 설명은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설명으로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저자의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모호하다.

5)

거대한 반격의 저자는 좌우파 포퓰리즘은 모두 심정에 기초한 포퓰리즘이라 분석하면서 그런 포퓰리즘은 2019년 이후 코비드 위기 이후 후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우파 포퓰리즘이 트럼프의 반응에서 보듯이 코비드 위기에 대해 음모론적으로 접근하면서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렸고 반면 좌파 포퓰리즘은 한때 재난 지원금이라는 형태로 자기를 실현하는 듯했으나 그것이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주택 가격상승)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라 한다.

저자는 이런 포퓰리즘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이념을 제시한다. 저자는 그것을 신국가주의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이 용어는 마치 나치즘을 상시시키는 용어라 필자는 이를 피하려 한다. 저자의 주장을 오히려 잘 설명할 수 있는 용어로는 자주 국가라는 개념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이런 자주 국가의 이념을 민족 국가의 귀환, 국가 소유와 공공경제의 확산, 평등한 세계화라는 개념으로 제시하지만, 필자로서는 이 자리에서 그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필자는 저자의 포퓰리즘에 대한 언급에 주목하고 싶기 때문이다.

6)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저자는 일정한 경제적 조건에서 감정에 호소하는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한다. 이런 판단은 그 정책이 환상적(퇴행적이거나 공상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환상적인지 아닌지, 이에 대한 판단은 과학성에 대한 판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이래 과학성을 객관적으로 판정할 기준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환상적이라는 판단은 이미 비판하는 자신의 관점을 전제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포퓰리즘을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포퓰리즘이 등장했다. 나치가 등장할 시기가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였으며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역시 당시 아르헨티나의 군부 정치 시대였다.

물론 간접적으로 또는 근본적으로는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 자체가 물질적 토대인 사회 경제적 조건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본다면 역시 민주주의가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이런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개념적으로는 숙고를 통한 합의에 기초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민주주의는 숙고보다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그 이유는 상업적 언론의 영향일 수도 있으며, 정치 지도자나 정당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본다면 의회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중산층이 지배하게 되어 있는데, 이런 민주주의는 불평등이 심화하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여 왔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시대 포퓰리즘이 등장했다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 시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린 원인은 무엇일까? 중상층의 붕괴, 불평등의 심화를 일차적으로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언론의 지나친 상업화와 더불어 SNS의 발달로 생겨난 정치 팬덤 현상,  정당보다는 개인적 지도자에 의존하는 경향 등을 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의문만 제기한 채로 이 글은 마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