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11- 상징적 예술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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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11- 상징적 예술 형식

 

1) 고대 제국의 역사

헤겔은 예술의 형식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었다. 상징적 예술형식과 고전적 예술형식, 낭만적 예술형식이다. 각자에는 고유한 표현적 기호가 존재한다. 즉 상징과 현상 그리고 가상이다. 헤겔이 처음 미학을 강의했던 하이델베르그 시절 그는 예술의 역사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구분했을 뿐이다. 후일 베를린 시절에 이르러 그는 상징적 예술을 추가하여 예술의 역사를 세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헤겔이 상징적 예술형식의 시대로 잡은 시대는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 등 초기 도시국가에 기초하여 발전한 제국이다. 이 시대 사회는 자연적인 혈연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발전하고 있었다. 오늘날 보면 이런 발전 과정은 엥겔스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엥겔스에 따르면 이 시대 사적 소유가 발전하면서 부족이 해체되고 도시국가가 출현했다. 도시국가 내에서 부족은 지역으로 새로이 편성되었는데, 사적 소유가 더욱 발전하면서 상당히 평등했던 성원들은 분화하면서 왕과 귀족, 평민의 위계 질서가 출현했다.

 

도시국가 사이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노예가 생산을 담당하며, 부유한 귀족의 잉여를 바탕으로 사치품을 위한 원격지 무역이 출현하면서 다른 도시 국가에서 이주민이 들어왔다. 이주민은 처음에 비록 노예는 아니지만 아무 정치적 권리가 없었으나 점차 정치적 권리를 획득했다.

 

도시국가 사이에는 쟁패가 일어나 한편으로 연합이 이루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예화가 발생한다. 도시국가 사이의 연합조차도 상당히 불평등한 종속관계에 있었다. 그것이 곧 고대 제국이었다.

 

물론 헤겔이 엥겔스가 설명한 도시국가의 역사적 발전을 알았을 리가 없다. <역사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이 시대 역사를 서술하지만, 실제 역사는 거의 없고 오히려 종교에 관한 설명이 위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헤겔이 실제 역사를 탐구하여 쓴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시대 종교에 대한 해석을 통해 거꾸로 짐작한 역사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헤겔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인도의 베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앙 등을 해석하면서 이 시대고대 제국의 역사를 드러내는데, 심지어 그 가운데 페르시아와 인도, 이집트 사이에 일정한 발전 단계조차 설정한다. 그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대체로 본다면 도시 내부에서 시민의 자유와 도시 사이의 평등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제국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도시 내부에서는 강제적 억압 관계가 지배적이며 도시 사이에는 불평등한 종속 관계가 있었다. 강제성과 불평등성이 이 시대 국가의 기본적 원리 즉 이념을 이룬다. 헤겔은 강제적이며 불평등한 이념을 ‘무규정적 추상적 통일성’으로 규정한다.[1]

 

이 시대 이념은 절대정신의 세 형태인 예술, 종교, 철학 가운데 우선적으로 종교적 형태로 출현하니, 이 시대 신은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무한한 힘을 지닌 존재로만 인식되며, 개인은 그 앞에서 공포심을 느끼며 복종한다.  

 

2) 수수께끼적 상징

이 시대 예술은 종교에 비해서 보면 부차적이지만 나름대로 이념을 독자적으로 표현하니, 그 표현의 방식이 곧 상징[2]이다. 헤겔은 상징 속에 들어 있는 두 가지 계기를 구분한다. 상징에서 감각적 형상(기호)은 자기를 넘어선 어떤 이념(의미)을 지시하는데, 양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간주될 때 양자의 관계는 상징[3]으로 규정된다.  

 

처음에 양자의 일치는 전적으로 우연적으로 일치한다. 이런 우연적 일치는 외면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치를 말하는데 주로 문화적, 관습과 같은 자의적인 힘이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 이런 우연적 외면적 일치인데도 불구하고 상징은 일정한 문화 관습 내에 있는 사람에게 마치 직접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처럼 간주된다. 그에게 그 의미는 너무나 당연하여 마치 자연적으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누구나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것이라 하겠다. 이런 직접적 관계로부터 상징이 지닌 마술적, 신비적 성격이 출현한다.

 

그러나 양자가 지닌 자의적이며 우연적 관계는 그런 문화 관습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바로 드러난다. 그는 그 상징이 지시하는 의미를 찾기 힘들다. 그에게 상징은 그 의미가 감추어진 채 있으며, 그것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기호이다. 헤겔은 수수께끼 같은 상징의 대표적 예를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상징으로 본다. 페르시아에서 신의 상징은 곧 빛이다. 이것은 직접적인 통일성 즉 어떤 물질 중의 하나가 보편성 통일성을 지닌 것에 머무르고 있다.

 

헤겔은 인도에서 등장한 상징은 환상적인 상징인데, 이는 페르시아의 상징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본다. 여기서 페르시아에서 마치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였던 상징의 내부에서 기호와 의미가 분리되면서, 환상을 통해 두 가지를 다시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여기서 결합은 아직 종잡을 수 없는 혼동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형상의 규정성은 갑자기 반대의 것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은 턱없이 커졌다가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마계에 사는 것과 진배없다.”[4]     

 

이런 환상의 유희를 <역사철학강의>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꿈꾸는 인도인은 우리가 유한한 개체라고 부르는 어떠한 것도 되고 동시에 무한하고 무제한적인 보편자로 승화하여 신이 되기도 한다. 인도의 세계관은 극히 일반적인 범신론이고 더욱이 사고에 바탕한 범신론이 아니라 상상력에 바탕한 범신론이다.”[5]

 

3) 신의 죽음

상징주의 예술 형식이 발전하면서 의미와 상징의 우연적이고 외면적인 일치는 점차 본질적이고 내적인 일치로 발전하게 된다. 예술가는 의미와 형상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을 찾으려 한다. 즉 자신이 지시하는 의미와 유사한 어떤 성질을 가진 형상을 상징으로 선택한다. 이렇게 되면서 감각적 형상과 그 의미 사이에는 어떤 친연성[Verwandtschaft]이 출현하게 된다. 이런 친연성의 발견을 통해 상징은 ‘본래적 의미에서 상징’으로 발전하게 된다.

 

수수께끼로서 상징에서 본격적 상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흥미롭게도 헤겔은 신의 죽음이라는 상징을 거론한다. 이집트 신화에서 등장하는 오시리스의 죽음이나, 시리아의 아도니스의 죽음이라는 신화, 프리기아에서 출현해 나중 그리스 및 로마로 건너가는 대지의 여신 키벨레의 죽음과 같은 신화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헤겔은 처음 공포의 신이 인간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신의 죽음이라는 신화가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서 죽음은 신이 지닌 자연적 요소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종교적으로는 신의 죽음과 더불어 마침내 수수께끼 같은 의미를 지닌 신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신으로 발전하고, 예술적으로는 수수께끼 같은 상징이 본격적인 상징으로 바뀐다고 한다.  

 

본래적 의미에서 상징은 이집트에서 본격적으로 출현한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는 자연 속에서 정신이 출현하려는 충동이 솟구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충동이 여전한 자연의 힘에 갇혀 있어 이를 뚫고 나오지 못한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객관화하려는 무한한 충동을 갖는 아프리카적인 과단성이다. 그러나 정신 주위에는 철로 된 고리가 휘감겨 있어, 정신은 사상 안에서 자기 본질을 자유로이 자각하지 못하고, 정신의 본질은 단지 과제 또는 수수께끼로 내세워져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6]

 

헤겔은 이집트에서 본래적 상징의 출발점으로서 피라미드를 들고 있다. 피라미드는 곧 사자의 거처인데, 그것은 영혼이 불멸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영혼이 자연과 구별되는 독자적 실재임을 자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니, 육체는 미이라가 되어 영원히 보존된다.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상징이 인간의 육체와 동물의 얼굴을 한 동물 신인데 헤겔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물은 생기가 있고 합목적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과 달리 자각을 결여한 채 자기 자신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바로 이런 동물을 숭배한다는 것은 곧 이집트의 정신 즉 육체로부터 정신이 솟아나오지만 아직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집트에서 대표적 상징 중의 하나인 스핑크스는 동물의 몸을 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어 동물신의 단계보다 발전된 상징을 보여준다. 그만큼 인간의 자기 이해가 발전했으며 이를 통해 자유가 확산되고, 도시국가가 평등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결론

이집트의 예술 형식을 상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후기 신왕국 시대 예술 작품은 상징적 요소가 거의 사라지고 인체의 리얼한 모습이 출현한다. 물론 양식화되어 있으며, 생동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며, 재현적이라기보다는 구성된 것에 머무르지만 이미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 예술의 초기 형태와 닮아간다.

그렇다면 이집트 예술을 상징적 예술 형식 내에 가두어 놓는 헤겔의 관점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헤겔의 시대 구분을 엄격하게 볼 필요는 없다. 헤겔은 상징적 예술 형식의 예로서 이집트 초기 예술작품을 들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헤겔은 낭만주의 시대에 해당하는 기독교나 마호메트 교의 작품 가운데서도 상징적 예술을 발견한다. 다만 상징적 예술 형식은 고대 제국 시절 그 정신을 표현하니 그 시대 가장 많이 발견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만일 이집트 후기에 등장하는 리얼한 작품을 본다면 헤겔 역시 이를 고전주의 초기 정도로 해석했을 것이다. 역사철학강의를 보면 헤겔은 이집트 역사에서 정신의 충동이 솟구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니, 이집트 후기 예술은 이런 정신의 충동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철학강의>에서 고대 역사는 중국,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의 순서로 서술된다. 중국의 경우 황제가 출현했음에도 혈연적 가족 제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인도 역사에 대한 파악은 독특하다. 인도의 경우 자연적 부족은 해체되고 시민이 직업과 계급 즉 카스트제도로 재분배되었지만, 이런 카스트 제도가 자연 필연적인 것으로 고정되면서, 인도에서는

추상적인 통일, 정신적 통일이 결여되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다만 분화의 차이가 자연적이어서 유기적인 공동생활에서 하나의 영혼을 움직이거나 자유로이 만들어 내거나 하지 않고 영혼을 돌처럼 굳어지게 하고 그 경직성 덕분에..”(역사철학강의, 권기철 역, 동서문화사, 1978, 146쪽)

페르시아는 최초의 세계 제국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이 점이 조로아스터의 신인 빛이라는 상징으로 출현한다고 한다. 헤겔은 페르시아는 추상적 통일에 머무른다고 규정한다.

이집트는 추상적인 통일(정신)과 구체적 구별(자연)이 모순을 이룬다고 할 정도로 구체적 구별의 발전이 일어났다고 한다. 헤겔이 이집트를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집트에서 각 개인이 위계적 질서에 복종하면서도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구체적으로 법적인 권리를 들고 있다. 양자가 직접적인 통일을 이룰 때 고전주의 시대 즉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 시작하니, 이집트는 그 직전의 사회이다.

“[스핑크스의 모습은] 정신이 자연 위로 나와, 자연으로부터 떨어져서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질곡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워진 것은 아님을 나타낸다.”(역사철학강의, 197쪽)

[2] 괴테는 상징이라는 개념을 알레고리와 구분하면서, 알레고리가 이념과 그 기호 즉 감각적 형상 사이에 관습적인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면, 상징은 이념과 기호 사이에 직접적인 일치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상징에 대한 괴테의 용법은 20세기초 상징주의에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상징은 오히려 괴테가 말한 알레고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념과 기호는 관습적으로 일치하는데, 헤겔이 상징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도 이런 일반적 용법에 가깝다.

[3]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상징의 발전을 역사철학강의에서 순서와 달리,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의 순서로 서술한다. 헤겔은 각 제국에서 지배적인 상징의 유형을 구분한다.

[4] 미학강의 1, 456쪽

[5] 역사철학강의, 143쪽

[6] 역사철학강의,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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