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와 정신분석 10-문 닫힌 세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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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와 정신분석 10-문 닫힌 세계

 

1)

1930년대 호퍼의 욕망 구조에서 실재계적인 특징은 여러 그림에서 드러난다.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고독한 여성의 모습이나 덮쳐오는 숲의 모습에서도 이런 실재계적인 특징이 드러나지만 문 닫힌 일요일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이 그림은 1926년 그려진 일요일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앞에서 자동기계(1927)라는 그림과 대조된다. 둘 다 검게 칠해진 닫힌 문을 배경으로 한다. 자동기계의 경우 닫힌 문 앞에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다. 반면 이 그림에서는 남자가 쭈그려 앉아 있다. 하지만 자기의 내면 속에 잠긴 모습 고독한 모습은 동일하다.

 

이런 고도한 모습을 지닌 인간조차 곧 호퍼의 그림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제 문이 닫힌 상점들이 나란히 서 있는 텅 빈 거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이전 남자나 여사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이제 이발소 표시등이 자리잡는다. 1930년 그려진 일요일 아침이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이나 앞의 그림이나 시간은 일요일이다. 일요일 그리고 아침이라면 한적하기는 하지만 고요하고 휴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야 할 것이다. 보통 일요일 아침은 밝고 따스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두 그림에서 지배적인 정조는 이와 거리가 멀다. 여기서 지배적인 정조는 오히려 불안이다. 검게 칠해진 닫힌 문 때문일 것이다.

 

2)

이런 그림은 같은 시기 그려진 고독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으스스한 숲의 덮칠 듯한 모습을 그린 그림과 같이 실재계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사실은 아래에 나오는 데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스파이더의 한 장면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크로넨버그가 호퍼의 그림을 보고 이런 세트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두 장면은 닮았다. 여기서 주인공은 어릴 때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살해당했다고 믿고 지금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시내 술집에서 만난 여급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가스관을 틀어 질식해 죽인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제 방금 병원에서 석방되어 작은 요양원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스파이더에 나오는 여러 장면은 주인공이 실재계적인 질환인 정신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느린 발걸음, 어눌한 말, 아무도 알아 보지 못하는 글자로 무언가를 가득 적어놓은 노트, 무엇보다도 바지 앞 섶에 감추어 놓은 양말 주머니가 그런 정신증을 잘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닫힌 문이란 곧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에 대한 은유가 될 것이다. 여기서 닫힘이란 곧 현실에 대해 닫혀 있다는 뜻이고 거꾸로 과거의 회상 속에 갇혀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 과거란 곧 자신이 어머니의 품 안에 있었던 시기로의 회귀이다. 그는 어머니 품 안에서 느꼈으나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쾌락 속에 빠져 있다.

 

그는 과거를 드믄드믄 회상하게 된다. 자신의 진짜 어머니는 죽고 지금 있는 실제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주 가던 술집의 여자로 생각한다. 소년은 자시가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려는 끈으로 거미줄처럼 자기의 방을 칭칭 동여맨다. 소년은 아버지가 다니던 술집의 여자가 자기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술집 여자를 무의식 속에서 치환해 버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접근할 수 없는 어머니를 술집 여자로 바꿈으로써 접근 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라는 의식이 남아 있어 그로서는 저항감을 느낀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술집 여자와 함께 자기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편집증적인 망상이다.

 

3)

아래는 호퍼의 그림 가운데 가장 이채를 띠는 그림이다. 1941년 ‘누드 쑈[girlie shaw]’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은 이 장면이 영화 스파이더의 주인공의 기억 속에 나오는 장면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한편으로 호퍼의 노골적 관음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노골적인 벌거벗은 여인은 누구나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 어렵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 그림 왼편 하단에 나오는 남자이다.

 

다른 관객은 무대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남자는 오히려 무대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의 옆에 악기가 보이는 것을 보아서 그는 반주를 맡은 악사 같은데, 무대에 등을 돌리고 반주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남자가 등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남자를 호퍼 자신으로 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은 무대 위에 나오는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해준다. 무대 위의 여자는 바로 호퍼 자신의 어머니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쇼걸로 대체했다. 그것은 무의식적 환상이다. 이제 그의 욕망은 해방되지만 하지만 의식의 잔재는 그를 괴롭히니, 그 때문에 등을 돌린다. 아마 영화 스파이더에서처럼 이 남자의 마음 속에는 그를 박해하는 편집증적인 지배자가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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