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12-숭고에 관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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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12-숭고에 관해

 

1) 상징에서 숭고로

헤겔은 상징적 예술 형식을 다루면서 1절에서 그 핵심적 개념인 상징의 개념을 다루지만 이어 2절에서는 숭고 개념을 다룬다. 3절은 비유론 일반을 전개한다.

 

헤겔의 미학강의에서 어느 장이든 항상 1절은 개념을 다루고 2절이 본론에 해당하며 3절은 그 영향을 다루니, 헤겔이 숭고 개념을 상징적 예술 형식 2절에서 다루었다는 것은 그만큼 숭고가 상징적 예술 형식에 핵심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상징 개념은 필연적으로 숭고의 개념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 점을 다루기 전에 숭고 개념에 관한 논의의 차원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것은 헤겔의 숭고 개념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것으로 보인다. 

 

2) 칸트에서 숭고의 감정

미학에서 숭고의 개념은 칸트에 의해 종합된 이후 쉴러로 전개되었으나 그 후 논의에서 사라졌다.그 후 20세기 들어 모더니즘 예술이 등장하면서 숭고 개념이 다시금 관심의 대상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료타르는 아방가르드 예술에 나타나는 숭고미에 기초하여 포스트모던 시대의 숭고 개념을 전개하였다.

 

숭고 개념에 관한 논의의 차원은 주로 숭고의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숭고의 감정은 고통과 쾌감이 혼합된 감정으로 간주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감정을 공포와 연민의 혼합으로 규정한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숭고의 미학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비극의 미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겠다.

 

우선 버크는 근대에 들어와 숭고 개념을 탐구한 출발점에 해당한다. 그는 숭고를 감정의 차원에서 다루면서 칸트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 인간은 어떤 위험에 처해 고통을 겪다가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쾌감을 느끼면서 숭고의 감정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숭고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룬 철학자는 칸트이다. 그는 심미적 감정과 숭고의 감정을 구분했는데 양자는 모두 미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에게서 미적 판단은 이중적인 판단이다. 미적 판단은 한편으로 구성적 판단과 대립하는 반성적 판단이라는 인식적 과정을 전제하며 그 위에서 어떤 감정이 출현하는 감정적 판단을 내린다. .

 

심미적 감정의 경우 미적 판단의 기초가 되는 반성판단은 대상에 대한 상상력의 작용(즉 수동적, 재생적 상상력)을 통해 주어진 대상이 오성의 개념 속에 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상력의 작용이 자유로울수록 이로부터 욕망의 쾌감과 구분되는 순수한 쾌감이 출현한다. 이 쾌감이 곧 심미적 감정이다.

 

그에 반해서 숭고 감정의 경우, 그 전제가 되는 반성적 판단 자체가 이중적이다. 먼저 대상에 대해 상상력이 작용하더라도, 적절한 개념을 찾을 수 없다. 대체로 양적 크기가 무한하거나(수학적 무한) 질적인 규정이 무규정적인 경우(역학적 무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상상력이 거듭 발동하더라도 상상력이 개념을 찾는 데 실패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로부터 나오는 감정은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에 그칠 것이다[1].

 

칸트는 상상력이 주어진 대상에서 신과 같은 이성적 이념을 발견하는 순간이 여기서 출현한다고 한다. 즉 어떤 것이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어떤 것이 규정되지 않는 것을 지시한다는 생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2] 이 점을 칸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구상력[종합적 상상력]에 대하여 초월적인 것은(직관의 포섭에서 구상력은 이 초월적인 것에까지 추진된다) 말하자면 구상력이 그 속에 빠져버릴까 두려워하는 심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초감성적인 것에 관한 이성의 이념에 대해서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합법칙적이요, 구상력의 그러한 노력을 일으키는 것이다.”[3]

 

이 순간 판단하는 주관은 쾌감을 느끼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고통과 새로운 쾌감이 뒤섞인 숭고라는 감정이 출현한다.

 

칸트의 숭고 개념은 쉴러에게 전달된다. 쉴러는 숭고의 개념을 칸트와 마찬가지로 설정하는데 다만 마지막에서 칸트가 이념이라고 한 것을 도덕법칙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쉴러에서 숭고의 감정은 도덕법칙이 주어진 대상에서 실현되는 도덕적 감정을 의미하게 되었다. 쉴러는 이를 격정적 숭고라 규정하면서 이를 그리스 비극와 현대 비극을 포괄하는 비극론의 토대로 삼았다.

 

3) 료타르에서 숭고

숭고의 개념이 미학에서 다시 주목 받게 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료타르에 와서이다 그는 칸트의 숭고 개념에 기초해서 20세기 중반 아방가르드 예술을 해석했다. 그가 그 대표적 작품으로 들고 있는 것이 바넷 뉴먼의 작품들이다.

 

그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리얼리즘적인 예술이 지닌 재현의 체계를 해체했다고 한다. 리얼리즘은 재현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재현은 이미 어떤 사유의 구조를 전제로 하여 나오므로, 재현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보여줄 수 없다. 재현은 구조적 제약 때문에 그 구조 밖의 대상을 시야에서 배제하며 진리를 왜곡한다.

 

재현의 근저에 놓인 사유 구조는 은폐되어 있으므로, 재현이 마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자아낸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대상의 재현 속에서 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재현의 한계를 폭로하고 재현 자체를 해체했다.

 

아방가르드는 재현을 해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아방가르드는 재현의 체계 속에서 억압되고 드러나지 않았던 순수한 대상 즉 사건이 재현을 해체하면서 드러나게 될 것으로 믿었다. 그 순수한 대상은 칸트의 물 자체처럼 다만 있을 뿐이며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이지만 동시에 진리를 암시하는 빛이 된다. 이런 점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은 해체의 고통과 동시에 진리가 암시되는 쾌감을 혼합하는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료타르는 20세기 초 모더니즘 발전 선상에서 등장한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배태되는 것으로 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와 마찬가지로 재현의 체계를 해체하는 데 다만 아방가르드가 그 해체를 통해 진리를 암시하는 빛을 발견하려 했던 것과 달리 재현의 체계를 해체하는 것 자체로 머무른다.

 

료타르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드르처럼 진리의 빛을 찾아 현시할 수 없는 것을 현시하려는 엘리트적인 예술을 추구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재현을 해체하면서 그 너머 무엇을 현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예술을 다만 해체에 머무르게 하려는 것, 그런 고통을 즐겨 인수하려는 삶을 료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숭고라고 명명한다.

 

4) 헤겔에서 숭고의 개념

칸트에서 료타르에 이르기까지 숭고의 개념은 감정의 차원에서 규정되었다. 숭고는 두 가지 감정 즉 불쾌와 쾌감의 혼합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불쾌의 감정은 대상의 무한성, 해체를 전제로 하며 쾌는 이념과 초월적 진리에서 나온다.

 

헤겔의 경우 숭고의 개념은 감정에 기초하지 않는다. 그는 숭고를 기호로서 예술작품이 그 의미에 해당하는 이념과의 상징적 관계에서 찾는다. 이런 상징적 관계는 본질적으로는 단절되어 있으며, 이런 단절은 수수께끼적인 힘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이런 단절을 넘어서려는 가운데 유사성을 통한 매개를 찾아 본래적 상징이 출현하지만, 본래적 상징을 통해서도 의미와 상징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상징이 표현하려는 의미는 추상적이며 무규정적인 이념인 한에서, 상징을 통해서 그 이념에 도달할 길은 없기 때문이다. 상징적 예술이 발전하면서 의식적으로 양자를 일치시키려는 필사적인 시도가 등장하게 되니, 이것을 헤겔은 곧 숭고라 한다.

 

칸트나 료타르처럼 숭고를 감정의 차원에서 찾는다면, 숭고의 예술은 어느 시대나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나 현대의 비극도, 18세기 낭만주의나 20세기 모더니즘도 숭고의 감정이라는 차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은 숭고를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기호와 그 의미 사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그 의미가 추상적이고 무규정적인 이념인 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하므로,  헤겔은 숭고의 예술을 역사적으로 상징주의 시대로 한정한다. 물론 고전주의 시대나 낭만주의 시대에도 감정적으로는 쾌와 불쾌가 뒤섞인 감정이 있지만 이런 예술형식에서 기호와 그 의미 사이의 관계(현상이나 가상으로서 예술)는 상징주의 시대(상징적 예술)와 다르므로, 이런 예술은 숭고의 예술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에서 고대 비극이나 근대 비극은 비록 감정적으로는 숭고감을 주지만 이런 예술이 숭고의 예술은 아니다.

 

칸트의 숭고 개념과 헤겔의 숭고 개념이 이처럼 구별되지만, 칸트에서 숭고감의 전제가 되는 반성판단은 헤겔에서처럼 기호적 관계로 재해석할 수 있다. 즉 어떤 무규정적인 것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신)를 지시하는 것으로 된다면, 여기서 무규정적 대상과 규정할 수 없는 존재 사이의 관계는 상징적 기호의 관계가 된다. 그렇게 본다면, 헤겔의 숭고 개념이 나오니, 칸트와 헤겔의 차이가 멀지는 않다고 하겠다. 헤겔은 감정적 차원을 부차적으로 보는 반면, 칸트는 감정적 차원을 본질적으로 본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5) 숭고의 두 가지 방식

칸트나 료타르에서 숭고의 감정이 출현하는 대상은 무규정성을 지니거나 해체적인 것에 한정된다. 그러나 헤겔은 기호와 이념 사이의 관계 속에서 숭고의 개념을 찾으려는 가운데, 숭고의 개념을 이원화한다.

 

헤겔은 숭고의 예술을 긍정적 숭고와 부정적 숭고로 이원화한다. 전자는 곧 범신론적 상징인데, 여기서 신은 자연의 감각적 형상을 통해 표현되지만, 이 형상이 신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유사한 감각적 형상을 반복하거나 감각적 형상을 과장한다. 헤겔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나는 흐르는 물속의 맛이며, 태양과 달 속의 광채이며, 성전 속의 신비로운 낱말이며, 남성 속의 남성성이며, 대지 속의 순수향이며, 불꽃 속의 광채이며, 모든 존재 속의 생병이며, 고행자 안의 고행이며, 생명체 안의 생명력이며, 현자 안의 지혜이며, 광명체 안의 광채이니라.”[4]

 

헤겔은 이런 숭고한 상징의 정점에서 유대교와 마호메트교의 종교적 문학예술이 출현한다고 본다. 유대교와 마호메트교는 신은 초월적이며, 추상적 무규정적이므로 구체적 형상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도 지시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유대교와 마호메트교는 신을 형상화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신은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으니, 그것은 언어적 표상을 통해서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유대교나 마호메트 교에서 신은 구체적 형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나이다.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베인 바가 되어 시들고 마나이다. 우리가 그처럼 빨리 소멸되니 주께서 노하시어 우리가 그처럼 갑자기 사라지니 주께서 근심하나이다.”[5]

 

헤겔의 긍정적, 범신론적 숭고와 부정적 초월적 숭고는 칸트가 구분했던 두 가지 숭고 즉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와 비교될 수 있다. 긍정적 숭고는 감각적 형상을 무한히 반복하는데,수적 무한성 역시 동일한 크기의 반복이니, 같은 의미를 지닌다. 또한 칸트의 역학적 숭고는 규정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그것은 신에게 부정적인 방식으로 도달하려는 헤겔의 부정적 숭고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1] 버크는 실재하는 위협에서 고통을 느낀다고 했지만 칸트는 이런 위협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의 발동을 통해 합리적으로 규정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위협으로 생각했다. 

[2] 전자는 상상력의 포섭[apprehension]의 운동이며 후자는 상상력의 총괄[comprehension]의 운동이며 달리 말하자면 전자는 전진의 운동이라면 후자는 역진의 운동이다.

[3] 칸트, 판단력 비판, 이석윤 역, 박영사,1974, 125쪽

[4] Krischna, Bhagawadgita56, Lect. VII, Sl. 4 ff. 헤겔 미학강의 1, 496쪽 재인용

[5] 시편, 104편, 5-7절. 헤겔 미학 강의1, 508-5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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