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의 좌절, 51%의 승리? ; ‘어머니 박정희 혹은 박근혜 앓이’ 사성제(四聖諦)-② [시대와 철학]

48%의 좌절, 51%의 승리?; ‘어머니 박정희 혹은 박근혜 앓이’ 사성제(四聖諦)-②[시대와 철학]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2) 집제(集諦): 왜 앓게 되었는가?

 

‘연가시’ 재난

 

경제 성장이라는 꿈은 사실 잘 살아보겠다는 욕망, 부자 되겠다는 욕심을 점잖게 이른 말일 뿐이다. 솔직히 우리가 바란 것,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나와 내 주변만의 풍요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사회야 어찌되든 나만 풍요로우면 된다는 욕망은 성장에 대한 맹목적 기대를 낳게 한다. 우리의 욕심이 오늘의 재난을 불렀다. 수구 세력은 우리 안에 내재한 자기 보존의 맹목적 욕구를 부채질하여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중의 욕심을 이렇게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사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자기보존 욕구는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에 대한 순수(?)하고도 능동적인(?) 욕망과는 다르다. 부자가 되길 바라는 서민들의 마음은 사실 ‘더 가난해지지 않겠다’ 혹은 ‘다시는 가난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이토록 필사적으로 빈곤을 거부하게 되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을까? 구제금융 위기 이래 형성된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가 그것이었다. IMF의 요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식민지 경험과 그것으로 유발된 전쟁의 악몽을 연상케 했다. 도처에서 발생하는 해고, 도산, 실업, 가정 해체는 처절했던 전후 사회 빈곤의 트라우마를 되살렸다. 신자유주의적 산업 구조화가 낳은 빈곤은 과거의 빈곤과 동일시되었다. 현재의 실업에서 그들은 적빈했던 과거의 지긋지긋한 악취를 맡았다. 토굴 같던 초가집, 주린 배를 움켜쥐며 잠든 밤, 동생을 위해 희생했던 누이의 뒷모습, 가난 때문에 접은 꿈의 불길한 체취가 그들의 코끝에 느껴지자 21세기의 현재는 어느새 과거의 그날이 되고 말았다. 개인적 근면과 성실만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재난을 이겨낼 수 없었다. 밤새워 일을 해도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도무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외쳤다. ‘저기 가난을 물리친 그분이 오신다!’ 돌아보니 잊고 있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래, 그가 있었지. 그는 우리를 이만큼 살게 한 사람이었어.’ 너도 나도 그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까이 보니 어느 기업인이기도 한 듯싶다. ‘하지만 대수랴. 또 다시 풍요를, 또 다시 가난에서의 해방을….’ 갈증에 허겁지겁 그가 제공하는 물을 마시고 그가 이끄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보았다. 마치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영화 속 인물들 같이 그가 제공하는 성장의 꿈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하지만 빈곤에 대한 공포와 부에 대한 갈증은 더해만 갔고 인간으로서의 삶은 멀어져만 갔다.

이렇듯 박정희 신드롬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가 유발한 빈곤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놓여있다. 박정희 신드롬의 최대 수혜자인 기득권 세력은 이 신드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그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입장에서 신드롬의 전염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 박정희 혹은 박근혜 앓이’를 하며 태극기를 쥐고 거리로 나가는 이들은 현재가 두렵고 미래가 불안한 서민들이다. 그렇다면 서민 대중의 현재적 빈곤을 막고 복지 시스템을 구비하면 이 현상이 해결될까?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를 수정하고 복지국가 모델을 도입하면 박정희 신드롬은 소멸될까? 일정한 성과는 있겠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 박정희 혹은 박근혜 앓이’의 심층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내면화된 개발 및 성장주의적 사고방식, 자기 생존의 생활양식이라는 ‘연가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면 이 ‘연가시’는 언제든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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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삶의 요구

 

따지고 보면 한국 사회에서 자기 생존 및 이익 보존의 욕구를 상대화하고 일정하게 거리를 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정치적으로 진보적 지향을 갖든 보수적 입장을 취하든 상관없이 정도 차이만 있을 뿐 거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욕구는 정치적 이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몸에 익어버린 생활 방식 혹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이와 같은 생존과 안정의 절대적 추구라는 욕구를 어떠한 과정을 통해 내면화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조국을 건설과 개발을 통해 다시 일으킨 성장의 역사 속에서 새겨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적 수탈과 전쟁의 참상은 한반도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았다. 전래의 가치와 인륜 구조는 무너졌고, 오직 생존과 이익의 안정적 확보만이 급한 과제였다. 국가도 이웃도 그 누구도 나와 내 부모 형제의 가난과 생명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았다. 국민 대중은 국가로부터 이미 여러 번 버림받은 기억이 있었다. 임금과 벼슬아치들은 백성을 버리고 나라를 팔아버렸으며, 정부는 국민을 속이고 한강다리를 건너버렸다.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매국노와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잘난 지식인과 애국지사들도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는커녕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만 벌이다가 온 천하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믿을 건 오직 나 자신의 노력과 힘뿐이었다. 전후 국민 대중의 의식 한 켠에 반지성주의적 평등의식과 지식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자리한 까닭에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존재한다. 이러한 반지성주의적 평등 문화는 군부정권에 대한 맹목적 지지, 비판적 문제 제기와 논의 문화에 대한 거부로 이어져 민주적 정치문화의 정착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혼돈과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자생존과 자력갱생의 준칙으로 무장해야만 했다. 먹이는 오직 투쟁하면서 스스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강력한 적자생존의 윤리와 자조(自助)의 준칙을 체화하면서 사람들은 집을 고치고, 돈벌이에 나섰다. 치 떨리는 가난의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온 힘을 기울였다. 식민지의 수탈과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들에게 나라란 생명의 보존과 안정된 삶을 제공하는 보호소의 의미를 지닐 뿐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민 대중의 상식에 깃든 정부의 존재 이유는 개인의 노력에 의해 성취 가능한 필연적 삶의 요구를 문제없이 해소하는 것에 있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요구는 지극히 당연하며 문제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필연적 삶의 요구는 상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당시 사람들은 필연적 삶의 요구를 충족시켜준다면 어떤 정부가 와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 대중이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에 적극적 반대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내면에 강력하게 자리한 필연적 삶의 요구 때문이었다. 필연적 삶의 요구는 양식을 갖췄다는 지식인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상계]의 많은 필자들이 쿠데타를 환영하거나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그들의 의식에 가난의 질곡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필연적 삶의 요구가 그들의 내면 속에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사적 개인으로서의 자기 실존

 

박정희 정권과 국민 대중 간의 관계는 무척 이중적이다. 둘 사이에는 호응과 협력의 역사도 있지만, 긴장과 반목의 역사도 존재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둘의 역사는 한 가지 요소가 두 개의 상이한 모양으로 표출된 반응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적 개인으로서의 자기 실존의 주장이다.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조국의 근대화라는 프로젝트는 국가에 대한 불신과 자력갱생의 준칙이 몸에 익은 국민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협조적이거나 조건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민 대중이 박정희 정권의 프로젝트에 손을 빌려준 것은 전국가적 근대화라는 사명에서라기보다는 이러한 사업에 협조하는 것이 개인적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에 효과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국민 대중은 사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박정희 정권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이 공권력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사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공적 시민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사적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는 한국인들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설명해준다. 전략적 제휴는 박정희 정부가 필연적 삶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한다. 박정희 정권의 붕괴 과정은 이러한 거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고지된 ‘계약 해지’의 속성을 지닌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저항은 사적 삶의 욕구 혹은 필연적 삶의 욕구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사적 개인들의 반발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반면에 국민과 박정희 정권이 호응과 협력의 역사를 이루어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박정희 정권이 국민들의 갈급한 요구였던 필연적 삶의 요청에 대해 일정한 반응과 응답을 보였다고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은 결코 허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경부고속도로, 중화학공업단지, 포항제철 등의 토건사업과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국민 대중은 필연적 삶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실제적 경험을 얻게 되었다.

건설과 경제 발전의 과정은 국민들에게 당당한 사적 개인으로서의 존재 가치의 확인이라는 실존적 경험도 부여해줬다.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 밖에 없었던 나라에서 단기간 동안 경제를 일으킨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못 먹고 못 배운 자신들이 오직 육체의 근면과 성실을 통해 이 커다란 업적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식민지와 원조 경제의 경험에서 얻은 열패감 및 자기모멸 의식을 떨쳐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경제 건설과 근대화의 과정은 강제적 동원에 의해 폭력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강제와 강압의 결과 얻은 성과물이 개인적으로는 자기 긍정의 에너지로 작동하는 측면도 있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새마을운동은 자기 노력에 의해 고난을 극복하는 긍정적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를 농촌과 같이 소외된 영역에도 제공해주었다. 물론 새마을운동은 조국 근대화와 패배주의적 정신의 일소라는 순수한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971년 대통령 선거로 감지된 도시 지역 국민의 이반을 농민층의 지지로 견제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기획된 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은 농민 지지의 안정적 토대를 확보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날림으로 모방함으로써 진행되었다. 당시 과다 생산된 시멘트를 농촌에 선별적으로 보급하면서 박정희 정권은 농촌에서의 건설 사업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농민들은 비협조적이었으나 새마을을 건설하기 위한 활동에 차츰 열성을 보였다. 열패감과 상실감에 시달렸던 농민들은 이 과정에서 일정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발견하였다. 마을 공동체를 위해 함께 일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은 공동체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 가치가 인정되고 찬사 받는 경험을 획득할 수 있었다. 공동체에서 모범일꾼으로 인정받는 경험은 그들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이 경험 속에서 자기의 삶과 인격이 고양되는 기쁨을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쁨을 지속하기 위해 그들은 새마을운동을 위한 자기희생과 적극적 협력을 자발적으로 감행하기도 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개발과 성장의 역사에서 자기 정체성 및 자기 실존을 확인했다. 그들은 조국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자기 인생이 빛나고 있음을 경험했다. 높은 빌딩과 쭉 뻗은 도로, 번듯하게 단장된 시골 마을은 사적 실존의 자부심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작업 결과물이었다. 이 집단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대중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를 건설한 진정한 국민으로서의 자격과 존재 가치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자기 경험의 역사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경제 건설 과정의 참여가 온전한 국민 자격의 획득을 의미하며, 경제 건설 과정이 곧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적 공동체의 건설 활동과 동일하다고 해석하게끔 만든다. 그들에게 건설하고 개발하지 않는 사회란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고 실존적 자기 회의를 유발한다. 건물이 올라가는 등의 성장을 체감할만한 물리적 경험이 없으면 많은 한국인들은 이내 불안에 휩싸인다. ‘가난이 다시 오지 않을까?’, ‘나의 삶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생산 활동이 아니면 내 존재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한국인은 ‘필연적 삶’의 집단운동에 몰두한다. 박정희를 개발 경제의 영웅으로만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숭배하는 박정희 신드롬은 사실 우리 몸과 정신에 깊숙이 훈습된 ‘필연적 삶’의 욕구와 생활방식에서 비롯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청춘의 서재]

, 에드워드 사이드, 김석희 역, 살림 2001.

김운하 / 소설가. 건국대 몸문화 연구소 연구원

인생을 다룬 소설이나 전기를 읽는 것은 타인의 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생이라는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거기서 기쁨과 슬픔, 실패와 방황과 좌절, 꿈과 현실의 마찰과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고뇌들, 예측 불가능한 행운과 불운들을 읽으며 인간적인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는 굳센 의지와 신념, 치열하거나 심오한 사유가 드러내 주는 인간성의 고귀한 높이에 찬탄하며 경외심을 품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 온다.

돌이켜 보면, 나는 젊은 시절에 전기류를 더 많이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해 크게 후회스럽다. 대학에 다니던 80년대, 그 암울하고 잔인한 시대를 살아가며, 오직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바깥의 문제에만 온통 몰두한 나머지 정작 한 개인으로서 ‘나는 무엇인가?’ 이라는 실존의 문제에 관해선 사실상 거의 도외시해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자아 정체성의 문제라고 불러도 좋다. 혹은 삶의 정체성 문제라고 해도 상관 없다. 나는 마치 무조건 물에 뛰어들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기만 하면 그것이 수영인줄로만 아는 사람처럼, 세상이라는 바다에 겁 없이 몸을 던져 넣었다. 그런 이유로 내 청춘의 방황은 남들보다 더 길어졌고, 더 힘들었고, 더 우스꽝스런 한 편의 연극 같은 것이 되고 말았던 것 같다. 만일 내 청춘기에 타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기록들을 거울삼아 더 깊이 좀 더 자주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토록 무모하고 어리석게 좌충우돌 하지는 않았을까?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커튼 Le Rideau』이라는 책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그는 특히 젊은 사람들의 특징을 방황이라고 보는데, 방황 가운데서도 특별한 방황이라고 쓰고 있다. 청춘의 방황이 하필 왜 특별하단 말인가? 그 이유는 청춘은 방황하면서도 방황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방황하기 때문이다. 또 이중적인 의미에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청춘은 인생을 산 경험이 너무 짧기 때문에 아직 삶과 세상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둘째 아직 삶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거기에 딱 한 가지만 더 덧붙이고 싶다. 가엾게도 청춘은 자신이 이중적인 무지에 빠져 있다는 그 사실조차 모른다. 쿤데라는 청춘의 방황을 방황 자체로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오직 청춘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후에 거리를 두고 뒤를 돌아보게 될 때다.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길을 잃고 헤매는 방황과 표류의 긴 시간의 끝에서야 겨우 그런 모든 경험들이 갖는 의미를 뼈아프게 이해하게 되었으니. 내가 처음『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원제 Out of place)』을 읽으며, 무엇보다 그 책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이따금 나 자신이 한 줄기 흐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체처럼 충일하고 단단하고 안정된 자아라는 개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정체성보다는 한 줄기 흐름이 나는 더 좋다….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보다 거기서 엉뚱하게 벗어나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된 것은 그만큼 내 인생에 불협화음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

어쩌면 이 한 문장에 에드워드 사이드가 자서전에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이드의 자서전은 독특하게도, 어린시절부터 삼십대 초반 청춘의 나이에서 끝난다. 그는 백혈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던 중인 94년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하여 5년만인 99년도에 가서야 힘겹게 책을 끝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책이 되었다. 2003년 9월, 백혈병이 끝내 그의 삶을 다른 세상으로 데려갔다. 68년 동안의 한 생이 그렇게 마감되었다. 치명적인 병과 싸우는 와중에도 2000년에는 이스라엘의 무력사용에 항의하기 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달려가 레바논 국경의 이스라엘군 초소에 돌을 던지며 시위를 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그는 이 회고록을 쓴 가장 중요한 이유로 “현재의 생활과 당시의 생활 사이에 가로놓인 시간과 공간의 간격에 다리를 놓고 싶은 욕구였다.” 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간격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따지고 가치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초연하고 객관적으로, 오직 명백한 사실들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쓰고 있다. “영원히 지나가버린 역사와 상황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지만 추억이나 대화를 통해 이따금 되살아날 뿐 기본적으로 회상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역사와 상황은 또 얼마나 허약하고 덧없는 것인가를 새삼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시간과 이야기의 관계에 대한 평소의 내 생각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한한 시간조차도 기억과 이야기가 아니라면 무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남긴다는 것. 인간의 삶은 비록 시간 속에서 허망하고 덧없이 사라져 가는 것이지만, 이야기를 통해 망각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 삶은 절대적인 소멸이 아닌 어떤 지속성을 얻게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시간과 죽음을 의식하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고 근원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사이드는 고통스런 병상 위에서 이 책을 기록해 나갔지만, 지나온 먼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망각의 위험에 처한 기억의 간격들에 글쓰기라는 수단으로 연약한 구름다리를 놓으면서 삶이 가져다 주는 여러 곤란들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얼마나 삶을 사랑했는가를 다시 깨달았다고 썼다.

사실 에드워드 사이드란 이름은 무엇보다 그가 1978년에 발표한 책『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Western Conceptions of the Orient)』이라는 저서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 책에서 그는 동양은 서양보다 열등하다는 사고방식의 유럽-서구 중심적 음모와 편견의 역사적 기원을 밝혀 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그 책 이후 서구에서나 한국 같은 비서구 사회에서도 역사와 세계를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 나 역시 그의 책을 읽고 나 자신의 무의식 속에 깊이 틀어박혀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새삼스레 다시 깨닫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이후 서구 문화와 제도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으며 서구인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을 자신도 모르게 마치 우리 자신의 것인 양 내면화 해왔던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그가 맞서 투쟁하고자 했던 오리엔탈리즘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움직이는 책’ 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의 책『오리엔탈리즘』은 사실 끊임없이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 자신의 삶의 편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도 그런 인간적인 면들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영국 치하의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으로 출생했다. 1947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가족들은 모두 이집트로 이주했고, 1950년대 말에그는 혼자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의 가족은 아랍인이지만 무슬림이 아닌 기독교를 믿는 집안이었다. 이집트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아버지 덕에 윤택하게 살았고, 프린스턴과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의 교수로,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실천적인 지식인으로 명성을 얻게 되지만,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인이자 카톨릭 세례를 받은 미국 국적을 가진 그의 삶은 늘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자신이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며, 경계인일 뿐이라는 불안은 젊은 시절 내내 그를 사로잡았다. 그에게 팔레스타인은 평생 이중적인 감정을 안겨주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해결되지 않는 슬픔과 이해할 수 없는 분노의 근원” 이었던 그 문제는 회고록을 쓰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그에게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분열된 감정, “비통한 느낌과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슬픔을 자아” 내는 원천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자아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혼란스런 균열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묘하게도 영국의 한 왕자 이름에서 딴 에드워드라는 이름과 사이드라는 아랍식 성이 조합된 그 이름에서조차 그가 평생 살게 되는 그런 ‘경계인’ 적인 삶의 정체성이 마치 운명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는 자신을 경계인으로 생각했고, 또 끝까지 한 명의 경계인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조화를 이루는 민주주의 국가를 꿈꾸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쳐 투쟁했다. 억압과 배제가 없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들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꿈꾸며 온몸을 던져 그 꿈을 위해 싸웠다. 제국주의나 서구 중심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했지만, 삶과 인간성을 억압하는 어떤 권위나 권력, 경계 짓기에도 순응하길 거부하는 비타협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자서전에서 고체처럼 단단하고 안정된 자아나 정체성이란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에 한 줄기 흐름, 끊임없이 경계를 벗어나 바깥에 머무르려는 도저한 흐름의 연속으로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나 자신도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어떤 통일된 단일한 정체성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정체성이란 것을 현재 주어져 있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 혹은 창조를 통해 형성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낯선 미지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난 시절의 모든 방황과 표류를 수락하고 긍정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방황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형성하고 실패와 오류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고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인용했던 12세기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의 한 문장을 기억한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결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런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끝까지 당겨진 활처럼 팽팽한 긴장감, 집중력, 위험의 감수, 이 모든 것을 견뎌낼 의지와 신념이 필요하다. 내가 사이드의 자서전에서 새삼 발견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세상 뿐 아니라 자기에게조차 이방인이 되길 거부하지 않았던 한 정신의 편력.

웹진이 페이지를 옮겨 이사를 하는 도중입니다〈ⓔ시대와 철학 알림〉

웹진이 페이지를 옮겨 이사를 하는 도중입니다〈ⓔ시대와 철학 알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이사를 마치고 정상적 가동이 되어야 했지만 악성코드로 인해 몇 번 작업을 다시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현재 4백건이 넘는 기사들을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복사 뜨기를 해서 메모장에 옮긴후 다시 그것을 웹진에 넣는 지루한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성코드로 인해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습니다. 중요한 시기에 웹진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점 회원 및 독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사작업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다시 정상화 할 수 있도록 편집위원회는 노력하겠습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들[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2002년 개봉한 영화에는 175센티미터의 늘씬한 키에 군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예쁜 여주인공 기네스 펠트로가 등장한다. 뭐 이렇게 예쁘고 날씬한 배우들이 헐리웃에만 있나? 우리나라에도 널렸다. 내 주위를 둘러보면? 한국 여성의 유전적 특성상 175센티미터의 키를 자랑하는 이는 거의 없다. 대신 날씬한 여성들은 많은 편이다. 특히 학회 분과에서 같이 공부하는 후배들은 뭘 먹고 사는지 하늘하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세미나를 하고 나면 왠지 모를 우울감에 시달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 나와 비슷한 40대의 넉넉한 체형도 얼마든지 널렸다. 아이 한 둘 낳고 운동량 부족한 주부들에게 운동이 왠말인가? 남편 직장보내고, 집안 살림에 재테크에 아이 학원 챙겨 보내기까지. 핑계같지만 정말 시간이 없다. 티비에 나오는 유명한 의사들의 말씀. 체중감량을 원한다면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라. 그걸 누가 모르나? 그래서 나를 비롯한 전세계의 주부들은 다이어트 식품에 주목한다. 이쯤에서 이야기의 대상폭을 문명화된 사회에 사는 현대인으로 넓히는 것이 좋겠다. 사실 다이어트니 살빼기니 하는 것들은 문명화된 삶의 고질적인 현대병 아닌가.에 나오는 조에족이 다이어트 식품 찾는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현대인은 바쁘다. 학생은 학생대로 바쁘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바쁘고 주부는 주부대로 바쁘다. 황혼을 느긋하게 즐겨야 하는 노인들도 요즘은 생계를 위해서 바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늘씬하고 예쁜 여성을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 주인공 잭 블랙에게만 그렇게 보인다는 설정이다. 영화에서 실제 여주인공의 모습은 136킬로그램의 여성이다. 그런데 잭 블랙에게는 그 여성이 완벽한 여신의 모습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최고의 몸매를 가진 여자와만 데이트를 하려는 잭 블랙은 번번이 연애에 실패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고장난 엘리베이터에서 자기의욕고취 전문가를 만나 최면에 걸리고 만다. 전문가는 잭 블랙에게 여성의 외모가 아닌 내면만을 보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만난 여성이 너무나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기네스 펠트로였던 것이다. 그는 애인이 앉는 의자가 박살이 나고 속옷 가게에서 고른 팬티가 낙하산만 해도 개의치 않았다. 눈 앞의 애인이 너무나도 날씬하고 예쁜데 뭐 그런 사소한 일들이 대수이겠는가.

뚱뚱한 = 못생긴

그런데 사랑에 위기가 닥친다. 잭 블랙이 최면에서 깨어나 버린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남성 여러분은 어찌하시겠는가?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장담 못할 것들이 영화에서의 해피엔딩이다. 특히나 여성에게 현실은 더더욱 암울하다. 2006년 개봉한 한국영화에서 주인공 김아중은 암울한 현실의 상징 그 자체이다. 믿었던 애인에게 사기 당하고 결국 자살의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 주인공은 성형을 선택한다. 그녀가 여러 번의 연애에 실패한 이유는 단 하나 뚱뚱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뚱뚱하다’와 ‘못생겼다’는 결코 동의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의 동급의 가치로 둘을 연관지어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이목구비가 남들에 비해 좀 뚜렷하지 못하고 비율이 안 맞아 못생겼을지라도 크게 나무라지 않는다. 타고 난 걸 어쩌겠는가? 그런데 그것도 요즘은 곱게 바라보아 주지 않는다. 돈만 주면 성형외과에서 어느 정도는 잡아주니. 하지만 뚱뚱한건 도대체 동정받을 만하지도 않고 오히려 지탄의 대상일 뿐이다. 게다가 못생겼다는 덤까지 받는다.

미디어에 비치는 뚱뚱한 여성 혹은 남성을 떠올려보자. 뭔가 성격이나 직업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고 결코 주인공은 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최근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살빼기 프로젝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부들의 시청이 많은 아침 방송에서 단편적으로 편성하던 프로그램들이었는데 최근엔 케이블 티비를 필두로 살빼기 프로젝트 그 자체가 목적인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물론 외국 케이블 채널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들이었고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었다.

초고도 비만인들을 선정해서 운동 과정과 살이 빠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눈물이 나는 감동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얼마 전 우연히 케이블 티비에서 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초고도 비만일 때의 실물크기 사진을 세워놓고 쉽게 사람 모습이 떨어져 나가게 설치해 놓았다. 20킬로그램을 뺀 비만 여성이 그 사진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모두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그 옆에는 빨래비누를 20킬로그램만큼 쌓아 놓고 그 만큼이 여성의 몸에서 빠져나간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

그 빨래비누만큼의 부피, 지금의 몸보다 컸던 과거의 사진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몸에서 불필요했던 부분들이 빠져나간 것이다. 다시 말해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나에게서 나갔다.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인류는 모두 내 것이 아닌 것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구분했다. 인간의 정신은 신체와 분리되어 순수한 영혼이 되었다. 이러한 영혼은 불멸성을 가지며 분리불가능하고 파괴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는 이 세상 어떤 자연 만물과도 다르지 않는 성질을 지닌 것으로 설명된다.

근대의 자연학에서 보면 신체는 수학적으로 양화될 수 있으며 외부의 원인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데카르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기계적 운동이며, 이 운동은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계론적 자연관에서 생명체와 비생명체, 유기체와 무기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인간의 신체든 자연사물이든 자연법칙에 따르는 기계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 이후 근대 세계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육체와 육체의 분리

그러나 현대 또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데카르트의 인간에 대한 설명에 역사적인 획을 긋는다. 데카르트의 영혼과 신체는 다시 결합한다.에서 기계족들이 매트릭스라는 가상공간을 만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육체만 살려 놓고 인간을 사육하니 오래 살지를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든 가상공간이 매트릭스이고 거기에서 인간은 정신활동을 하며 통 속에 있는 육체를 지속시킨다. 결국 인간이라는 특별한 존재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서는 결코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육체와 육체가 분리되는 경험을 우리는 하고 있다. 긴장은 하지 마시라. 피와 살이 튀는 하드고어 영화에서 보는 육체의 분리는 아니니.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이라도 해본 사람, 뱃살 대신 초콜릿 복근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 모두 육체의 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내 안에 있는 지방은 전적으로 질이 나쁘고 결코 나와 화해할 수 없는 내 안의 나이다. 내 안에 너는 있을지 몰라도 내 안에 있는 지방은 존재하지만 존재할 자리가 없다.

내게서 분리되어야 하는 나는 자본주의와 대단히 친숙하다. 자본주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드는데도 무척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라지게 하는데도 훌륭한 도움을 주고 있다. 스마트폰 앱은 전국의 맛집을 친절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깔끔한 시설에 가격마저 저렴한 피트니스 클럽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나보다는 내안의 나를 더 사랑한다. 이제 미디어는 눈부신 배우들만 영상에 담지 않는다. 자기 몸을 부담스러워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담아낸다.

미디어는 거식증에 걸린 해골같은 모델들도 담아내고 어린나이에 뱃살공주가 된 초등학생도 담아내며 20~30킬로그램씩 눈에 띄게 살을 제거할 수 있는 초고도비만의 사람들도 담는다. 왜냐하면 모두 훌륭한 시청률과 광고료를 보장하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들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몸무게를 밝히며 카메라 앞에 나선다. 나 역시 오늘도 내 안의 나를 내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휴먼다큐를 찍는다. 물론 감독은 자본주의 선생이다.

강지은(건국대 강사) /

당신은 친절하신가요?[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1. 당신은 은행원입니다. 주 업무는 대출상담이지요. 그런데 오늘은 대출 조건에 맞지 않는 할머니 한 분이 당신을 곤란하게 하고 있네요. 수입, 담보 등 대출 규정을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로 대출을 해 달라고 조르고 있어요. 상황이 어려운 건 알겠지만, 규정에 맞지 않는데 저라고 도리가 있겠어요? 그러니까요 할머니, 제발 다른데 가서 알아보시라고요!!!

#2. 당신은 운전 중입니다. 마침 신호 대기 중이라서 차도 한 가운데에 서 있지요. 그런데 맞은편 인도가 좀 소란스러운 것 같아요. 한 여자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지 도와 줄 사람을 찾고 있는 듯해요.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 온 한 무리의 남자들―서넛은 되는 것 같아요―이 여자를 잡아 마구 때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그냥 가던 길을 가고 싶어요.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의 일에 연루되는 건 귀찮기만 할 뿐이잖아요? 그런데 이놈의 신호가 참 기네요. 또다시 도망친 여자가 이번에는 당신 쪽으로 달려오는 것 같아요. 당신은 차 문이 잠기었는지 다시 확인을 합니다. 아, 마침 신호가 바뀌었어요. 재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어요.

#3.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아침부터 누군가 당신의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지난 번 운전 중에 보았던 그 여자가 결국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군요. 경찰들은 당신이 유일한 목격자이니, 증인 출석을 해 달라고 하고 있어요. 용의자는 있는데 물증이 없다나요? 다른 목격자들도 있을 텐데, 경찰은 왜 하필 당신을 찾아왔을까요. 당신은 이 모든 상황이 그저 귀찮고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아, 마침 어린 시절 친구가 고향에 한 번 내려오라고 전부터 전화며 편지며 해대던 게 생각났어요. 그래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며칠 푹 쉬다 오는 것도 괜찮겠어요.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위의 상황에 처한 인물은 해원. 위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해원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신경 쓸 생각도 없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그런 인물이다. 이런 저런 상황이 복잡하던 차에 거의 해고 통보와도 다름없는 휴가를 받게 된 해원은 고향에 잠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마침 친구 복남이 오래 전부터 고향에 한 번 내려오라며 전화며 편지며 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원은 고향 무도에 가게 되고, 친구 복남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타인의 외면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섬, 무도

복남, 복남의 딸, 복남의 남편(만종), 복남의 시동생, 복남의 시고모, 그 외에 친인척 관계로 여겨지는 할머니들 세 분, 치매에 걸려 하루 종일 이름 모를 풀만 씹어대시는 할아버지 한 분, 이렇게 아홉 명이 무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 전부이다. 이 섬에서 해원이 목격하는 것은 시동생의 성적 학대와 남편 만종의 폭력, 그리고 마을의 모든 중노동을 견디며 살고 있는 복남의 삶이다. 사실 복남이 해원에게 그토록 고향에 한 번 내려오라고 사정했던 이유도, 복남에게 있어 해원은 섬을 떠날 수 있게 해줄 유일한 외부의 끈이었기 때문이다. 복남은 중노동과 학대, 폭력, 멸시 등 모든 억압을 참고 살아왔지만, 자신의 딸이 만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자 딸을 위해 섬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실제로 딸이 성폭행을 당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딸이 유난히 아빠에게 집착을 하고, “가슴이 커야 남자한테 사랑받는다”는 식의 말을 하는 등, 복남이 의심 할 만 한 정황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해원은 복남의 의심에 대해 “너 미쳤니?”라고 말하며 사실을 확인해보려 하지 않고, 도시로 데려다 달라는 복남의 부탁에 대해 ‘도시에서의 삶도 여기랑 별반 다르지 않으며, 떠나는 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복남을 억압, 착취, 이용하는 마을의 질서가 해원의 방관으로 유지되는 순간이다.

무도에서는 법도 효력이 없다. 복남은 해원의 도움 없이 마을에서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복남의 계획은 이내 발각이 되고, 복남은 섬을 떠나기도 전에 만종에게 붙잡히고 만다. 바닷가에서 마을까지 질질 끌려오면서 복남은 만종에게 계속 구타를 당하고, 누구 하나 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다. 보다 못한 딸이 아빠에게 매달리지만 폭력은 멈추지 않고, 그러던 중 내던져진 딸은 돌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다. 사건을 조사하러 경찰이 왔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놀다 넘어진 것이라고 둘러대며 오히려 복남이 돈을 훔쳐 달아나려 했다고 고발한다.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 본 해원도 자신은 그 시간에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경찰을 돌려보낸다. 무도에서는 법도 무용지물, 부정의로부터 복남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복남은 태양을 노려보다 복수의 ‘낫’을 든다.

방관도 죄다

무도에서 복남에 대한 폭력 및 모든 학대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그것을 정당화하는 마을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엔 남자가 있어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그늘에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다.”, 등등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마을의 할머니들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마을의 유일한 남자인 만종 형제를 떠받들면서 복남을 억압?착취한다. 어떻게 보면, 마을에서 만종 형제는 일종의 신이요, 할머니들은 신을 모시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집단이고, 복남은 그 피해자인 것이다. 복남은 해원을 통해 그 억압구조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해원의 방관과 무시로 그것은 좌절되었다. 딸의 죽음은 복남에게 자신을 보호해 줄 사회적 장치 또한 없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딸이 죽은 후 여느 때처럼, 아니 여느 때보다 더 일을 많이 하던 복남이 감자를 캐던 손을 멈추고 한동안 태양을 노려보다가, “너무 참으면 병난다”고 태양이 그랬다면서 자신에게 “가해자”였던 마을 사람들에게 낫을 휘두르는 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남의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억압을 당해오던 한 사람이, 자신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달리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믿었던 사람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심지어 어떤 사회적?법적 장치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즉 복남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만일 해원이 복남의 말을 들어주었더라면, 만일 해원이 경찰에게 딸의 죽음에 대해 목격한 그대로 말해주었더라면, 복남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복남은 이제 해원을 쫓는다. 난 이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난 잘못한 것도 없고 그저 보고 있었을 뿐인데 왜 나까지 죽이려 하는 거냐고 원망하는 해원의 물음에 복남은 대답한다. “넌 너무 불친절해.”

넌 너무 불친절해.

무도에는 가해자인 마을 주민들이 있었고, 피해자인 복남이 있었다. 타지에서 온 해원은 그 구도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복남을 외면하는 순간 그녀 역시 가해자가 되었다. 어떤 부정의가 저질러지고 있을 때, 그것을 방관하는 것은 그 부정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것이다. 부정의를 방관하는 것, 그것은 부정의를 저지르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그 구도 속에 나는 없다고,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만, 부정의의 피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부정의를 방관하는 순간, 나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다.

서울로 돌아온 해원은 경찰서를 찾아가 용의자를 지목한다. 영화 초반 폭행 치사 사건의 범인을 밝혀낼 수 있도록 증언을 해 준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 끼어드는 것도, 누군가가 내 삶에 끼어드는 것도 싫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삶에 끼어들고 연루되는 것은 싫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버섯처럼 툭 튀어나온 홀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의 삶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나와 상관없는 일,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도에서 살아남은 해원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조주영(서울시립대 박사과정) /

미용 성형, 외모지상주의? 자기 배려?[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현대 사회에서 몸은 문화를 전달하는 하나의 매체로 활용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사회적 의사소통 장치로서의 제스처, 보디랭귀지를 표현하는 것 등의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신체 튜닝’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미용성형은 외모지상주의의 산물”이라는 여성주의 비판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압구정동에 가본 일이 있는가? “성형은 압구정으로!”이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늘어선 성형외과들은 이 시대 성형에 대한 우리의 행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이슈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대세였던 것 같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성형은 자연성에 위배되는 인위성이고 비정상성이라고 그래서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다. 때문에 혹 성형을 하더라도 드러내놓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보톡스, 턱 깎는 수술, 눈 트임 수술, 코 높이기, 가슴 성형 등의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비만 치료, 피부 관리, 날씬한 몸, 다이어트, 거식증, 폭식증 등의 단어 역시도 익숙하며, 이들은 오히려 현대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개념인 것처럼 이해된다. 얼굴을, 몸을 고치는 데 얼마가 들었다는 이야기부터 앞으로 어디를 어떻게 더 고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조차도 흉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내 애인이 성형을 한다면 혹은 하였다면, 내 기분이 어떠한가?”는 질문이 심심치 않게 T.V. 버라이어티 쇼에 등장하였지만, 이제 이런 질문들은 식상하다. 성형을 하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고,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로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몸은 이제 더 이상 주어진 대로 그저 보존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이용하여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흡입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여대생의 이야기, 쌍꺼풀 수술 이후 부작용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했다는 어느 여자 승무원의 이야기도 심각한 수준에서 논의되지 않고 그저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자기 배려로서의 미용 성형

한 두 해 전, 몸짱 열풍을 일으킨 아줌마가 있었다. 주인공은 결혼 10년 차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삼십대 후반의 여성이다. 그 나이 대에 유지하기 어려운 신체적 조건인 162센티의 키에 50킬로그램의 몸무게, 게다가 탄탄한 근육을 지닌 몸매는 그 여성을 ‘봄날 아줌마’‘몸짱 아줌마’로 호칭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중년에도 20대의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지어졌다는 ‘봄날 아줌마’의 호칭은 한 때 전국을 강타한 화제의 이름으로 떠올랐다.

잘 관리된 몸짱 아줌마의 몸매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감탄의 대상이 되었고, 한국 사회에 몸매 관리 열풍을 일으키며 지방 흡입 수술, 유방 확대 수술 같은 몸매 관리 열풍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서 자기 관리를 잘한 주체적인 여성의 전형으로도 이해되었다. 젊음을 유지하거나 회복함으로써 단지 노화된 얼굴에 대한 거부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재기획하는 주체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처럼 얼굴 가꾸기, 외모 만들기 등이 하나의 트랜드가 되어 버린 지금, 성형을 단지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기 위한 욕망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미용 성형의 문제는 단지 외모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꽤나 설득력 있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의 사람들은 성형을 여성들이 자아와 맺는 관계성과 관련된 실천이라는 것에 입각한다. 미용 성형을 예뻐지기 위함으로만 이해하면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실제로 성형을 하는 여성들의 삶과 몸의 서사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거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성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쁨과 설레임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단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몸을 혹사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날 위해 무언가를 투자하는 것이며 나만을 위해 계획하고 돈을 쓰는 것이라는 주체적 의식이 담겨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미용 성형을 자기 주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미용 성형을 하는 여성들이 구사해내는 다양한 서사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이들은 몸을 자신이 배려해야 하는 일차적인 대상으로 이해하는 소비문화의 담론 안에서 성형을 통해서 자기를 사랑하며 주체적으로 인식할 줄 아는 여성들이며, 이들이야말로 당당한 자기 배려를 하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신체 변형 행위 자체를 무조건 혐오하던 전통적 시선은 점차 사라지고 미용 성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담론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속에서 성형을 하는 여성들의 선택과 결정을 이해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모습으로 재현하기 위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하는 하나의 새로운 긍정적인 담론 구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응의 몸짓인 미용성형

미용 성형이 그것을 선택하는 자아에게 자신감과 주체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고 보고 미용 성형을 선택하는 여성들의 구체적인 경험과 서사에 주목해보는 것은 미용 성형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통찰 지점을 준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은 몸을 주체 스스로가 온전히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쟁적이다. 미용 성형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유와 수술 선택이 과연 전적으로 개인 내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미용성형이 진정한 주체성의 발현인지 등의 문제는 좀 더 꼼꼼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성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외모는 어디에서 오는가? 외모의 기준 역시도 스스로의 내면에서 산출되는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무리 그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외부적 압력의 또 다른 방식일 뿐이며, 그것에 저항하거나 대항하는 몸짓이 아니다. 수잔 보르도는 미용 성형에 대한 자기 배려 담론이 여전히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외모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한다. 사실 많은 여성들이 못생겼다고 간주되는 외모로부터 벗어나고 늙어서 도태되었다고 여겨지는 외모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외모를 성취함으로써 자신감, 자기 배려의 느낌 같은 것을 받으며 심리적 쾌락을 갖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미용 성형을 통해 얻게 된다는 허구적이고 불안정한 자기 주체성일 뿐이다.

잘 생긴 외모, 못생긴 외모의 구분은 누가 마련하는 것인가? 키가 작은 사람은 루저라는 의식, 뚱뚱함과 날씬함의 상반된 가치, 이들은 누구의 권력과 연결되어 있는가? 왜 많은 사람들이 못생김, 작은 키, 뚱뚱함을 열등감으로 느끼는가? 왜 외모가 항상 우리의 자신감과 연결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어디로부터 부여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아름다운 외모를 찾는 것을 자기를 위한 투자라고 간주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를 지닌다.

왜냐하면 성형 미용을 통해 획득된 외모는 일시적인 자신감일 수는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여성을 몸으로 환원하는 것이며, 성별 권력 관계를 재생산하는 가부장적 권력을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미용 성형을 선택하는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자신감, 자기 배려라는 효과는 진정한 자기 사랑, 자기 배려가 아니라 가부장 사회가 부여하는 단일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향해 끝없이 질주해야만 하는 불안정한 심리일 뿐은 아닌가? 또한 그것은 가부장제 의해 통제되는 억압적 쾌락이며 거짓 주체성일 뿐인 것은 아닌가?

김세서리아(성신여대 연구교수) /

키스방, 성 서비스의 경계를 협상하다[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하이-테크 서비스/하이-터치 서비스

지구화와 함께 도시의 노동은 생산자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의 주요 건물들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법률, 금융, 광고, 컨설팅, 의료, 회계와 같은 서비스업의 간판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생산자 서비스업에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관점은 성별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는 서비스업의 또 다른 측면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은 노인 돌보미, 베이비시터, 가사 도우미, 마사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여성들은 성 서비스업이라는 고도의 신체적 접촉이 요구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맥다웰은 여성들의 서비스 노동이 갖는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하이-테크 서비스(high-tech service)와 하이-터치 서비스(high-touch service)개념을 구분하였다. 전자가 생산 서비스와 관련된 전문 기술, 지식 노동의 특징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육체적, 정서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소비자 서비스 노동의 특징을 보여준다. 즉 하이-터치 서비스는 오늘날 여성의 노동에서 여성의 몸 뿐 아니라 몸 위에 작용하고 있는 친밀 감정, 성적 판타지, 사회적 욕망까지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하이-터치 서비스”의 부상과 함께 사람들은 육체적, 감정적, 성적 친밀성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국가나 자치 기구에 의해 주도되었던 사회복지 사업은 가사 혹은 돌봄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서비스 노동으로 만들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마사지 업종의 출현은 긴밀한 신체적 혹은 성적 접촉을 전제로 하는 서비스가 시장에서 거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러나 과연 어디까지의 접촉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성 서비스업 특히 직접적인 성기 접촉을 포함하는 매춘은 거래되어도 좋은 것인가? 키스방은 매춘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키스방과 성적 욕망의 경계 협상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자는 최근 확대되고 있는 키스방 서비스에 주목하고자 한다. 키스방에 대한 분석은 성적 욕망이 경제, 법률, 도덕이 정해놓은 성 서비스의 경계를 어떻게 협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유흥가 및 대학가 주변 어디든 키스방 전단지가 난무한다. 잘 아시다시피 노래방이 노래를 할 수 있는 룸과 시설을 대여하는 업종이라면, 키스방은 주로 남성 고객이 젊은 여성 매니저와 제한된 성적 접촉 특히 키스를 즐길 수 있도록 주선하고 이를 위한 룸과 시설을 제공하는 업종이다.

우선 키스방의 등장은 사람들이 국가적 혹은 사회적 제도에 의해 규정된 성 서비스의 경계를 어떻게 피해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과 함께 한국의 법은 직접적인 성교 및 유사 성행위를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 노동이 불법적인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그러나 성 서비스의 거래는 종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업주들은 법망을 피하면서 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는데 이중에 하나가 바로 키스방이다. 업주들은 법의 단속을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직접적인 성교가 금지되어 있음을 고객에게 공식적으로 분명히 알리고 있다.

둘째로 키스방 서비스는 경제위기 이후 업주들과 구매자들이 성적 욕망의 실현방식을 어떻게 협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업주들은 키스방 확대가 저렴한 이용료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매춘이나 대딸방이 한 타임에 7-8만원, 안마시술소가 16-18만원임을 감안할 때 4만원하는 키스방은 저렴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키스방의 확장은 남성 고객의 성적인 욕망이 반드시 성교라는 하드코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가벼운 신체 접촉, 연애감정 등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 포털 웹사이트 Daum의 “지식”코너에서 “왜 키스방을 선호하는가”를 묻는 한 네티즌의 질문에 닉네임 Amati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달고 있다. “남성 또는 여성의 욕구가 오르가즘에만 국한된 것이라면, 님말 그대로 해당업소를 찾으면 되지만, 사람마다 개개인의 취향은 모두 다릅니다. 성인물의 장르도, 새도-매저키즘(SM), 페티시, 갱배앵(Gang-Bang) 등 다양하죠.”

마지막으로 키스방의 등장은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여성들의 생활고 및 소비 욕망이 순결주의와 어떤 방식으로 타협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생활고로 인해 혹은 값비싼 소비재를 사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든 여성들은 매춘과 달리 키스방 서비스가 남성의 성기를 만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순결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준다고 말한다. 한 인터뷰에서 매니저 박양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여자들 치고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키스로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규범의 잣대만을 들이댈 것인가?

그렇다면 성적 친밀성을 사고 파는 하이-터치 서비스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오랫동안 사회이론가들은 성 서비스뿐 아니라 친밀성 자체가 상품화되는 것을 가차 없이 비판하였다. 이들은 전통적 도덕의 관점에 따라 친밀성과 경제적 거래를 서로 대립적인 영역으로 구분하고 서로 다른 원리가 작동하는 두 영역이 상호 교차될 때 무질서, 혼란 그리고 도덕적 타락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19세기 경제 전문가들은 “가정”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면서 시장의 팽창이 친밀한 사적 관계를 냉혹하게 손상시켰다고 비판하였으며, 최근 비판이론가 레미 리프킨은 “‘초자본주의(hypercapitalism)’의 세계는 돈과 정보의 즉각적인 전달과 함께 본래의 인간적 관계를 위한 시장거래의 대용을 악화시키고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춘을 비판하는 반-매춘 페미니스트들 역시 이러한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왜 특히 성 서비스가 상품화되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이유 역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들은 여성들이 매춘과 같은 하이-터치 서비스에서 일방적인 쇼핑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친절함이나 우정과 같은 친밀성과 달리 성적인 친밀성의 거래는 특히 경제적, 문화적 권력을 갖지 못한 여성에게 강요되고 있으며 특히 매춘은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과 착취의 극단적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결혼 중개업에서 룸살롱, 와인 바 혹은 키스방에 이르는 다양한 성적 거래들이 매춘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조건 하에서 특정 성 거래가 도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허용되었는지, 역사적으로 성적 욕망의 거래가 어떻게 협상되어왔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이 관점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성교가 있든 없든 모든 성적 친밀성의 거래가 비난되고 불법화되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의 인터뷰에서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성기에 직접 자극을 주지 않는다는 법의 맹점을 이용해 윤락업소가 자극 아이템만 바꿔 늘어 가는 실정에서 돈을 내고 여성에게 육체적 향응을 받는 모든 행위가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계 협상의 방식과 전략들

그러나 문제는 성적 욕망이 혹은 현실적으로 협상되고 있다는 데 있다. 성 서비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어떻게 성적 욕망의 경계가 어떻게 협상되는지, 키스방의 등장과 함께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젤라이저의 참신한 제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에 따르면 다양한 친밀성의 경계는 어떤 관계에서 어떤 매개물에 의해 무엇이 거래되는가에 따라 부단히 구분되고 협상되어왔다. 즉 사적 관계에서든 시장적 관계에서든 친밀성은 항상 거래의 논리와 함께 했지만 사람들은 관계, 매개, 거래의 매치에 따라 친밀성 관계의 다양한 종류를 구분하는 데 몰두해 왔으며 그 구분법에 따라 특정한 친밀성의 거래를 인정하거나 비난해 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법은 성 서비스가 결혼 관계 내에서 이루어질 때 혹은 혼외 관계라도 그것이 다이아몬드 반지와 같이 돈과는 다른 상징적 매개물을 통해 교환될 때는 허용하였다. 상업적 관계 역시 세부적으로 구분되었다. 20세기 초에 있었던 “향응(treating)”이란 노동계급의 여성이 애인 뿐 아니라 초면인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성적 행위에 대한 댓가로 재정적인 보조와 증여를 받는 것이었다. 젤라이저에 따르면 향응 역시 결혼 관계 밖에서 진행되는 친밀성의 거래형태이지만 사람들은 이들이 받는 대가가 돈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점에 주목했고 이를 통해 허용적인 향응과 불법적인 매춘을 구분했다고 한다.

키스방이 제기하는 협상의 문제는?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키스방은 상업적 관계에서 선물이 아닌 돈을 매개로 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키스방은 성교가 아니라 키스와 같은 가벼운 육체적 접촉과 연애관계에서의 친근감 같은 것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춘과 구분될 수 있다. 키스방의 서비스는 대딸방의 서비스와도 구분된다. 대딸방이 손을 통한 성기접촉을 제공한다면 키스방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이러한 유사 성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키스방의 등장과 함께 협상되어야 할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매춘이나 대딸방과는 구분되는 키스방에서의 성서비스를 사회적으로 허용할 것인가이다.

물론 키스방의 협상 전략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키스방의 법적 허용을 반대하는 법조계, 언론계, 여성계의 담론은 키스방이 매춘이나 대딸방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키스방 서비스가 결국 성교와 다름없는 행위임을 강조하기 위해 키스방에서 성교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키스방을 매춘과 구분하고자 하는 업주들과 고객들은 키스방은 매춘과 다른 “건전한” 거래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협상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이 문제에 대답하기보다는 키스방이 성 서비스의 경계를 협상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유교적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지구화가 교차하고 있는 도시공간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성적 친밀성 거래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를 허용할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관습적 한계 내에서 친밀성의 거래방식, 매개물, 관계의 매칭을 새롭게 협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이현재(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