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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노동이야기]- ⑤

인간의 대지[노동이야기]- ⑤

이 재 원(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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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도의 품삯으로 고정되다

아파트 주차장 공사 현장이다. 바닥 슬래브에 이미 기둥(하스라)을 심었다. 양 옆 지상에 노출되는 주차장 거푸집을 완성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공장에서 하스라를 완성한 형태로 가져와서는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제 자리에 심고 난 후 슬래브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남은 부분은 램프(지하 주차장 자동차 길)로, 앞으로의 공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지상에서 보(하리)와 슬래브를 짜,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완성된 형틀에 이어 짜 맞춘다. 하리와 슬래브를 바닥에서 짜서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다는 발상은 아주 새로운 노동 방식으로, 크레인이 널리 보급되면서 시작되었다. 자재를 일일이 사람이 들어 올려 짜 맞추던 예전 방식에 비해 공기가 무척 단축된다.?

오늘 새벽, 목수 일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 용역에 갔다. 소장이 말했다.?

“십만 원 받고 목수 조공 갈래요? 내일은 팀(목수) 보내 줄 테니 …”

나는 두말 않고 고개를 끄떡였다. 서울 용역에서 철근공이라는 성정동 사람과 나, 둘이서 현장에 ‘팔려’ 나갔다. 철근공은 나이가 많았다. 그는 평생 철근 공을 했으나, 일당 1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늙어서 (누가 써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현장에 기존 팀원 7명이 있었다. 현장은 산세 좋고 주변은 탁 트인 남향이었다. 지세가 사람을 편하게 하는가보다. 마음도 쾌적했다. 광 씨가 지휘를 하고, 김 군, 성정동, 나를 포함한 네 명이 하리 통을 짰다. 현장에서 치수 표준은 mm단위이다. 7400길이에 높이 450의 하리 통이다.

ⅰ) 90 각재(오비끼)를 600 길이로 잘라, 900 간격으로 바닥에 배열한다.

ⅱ) 90×50 각재(투바이)를 올려 ⅰ)과 못으로 고정한 후, 이음새를 50×50 각재로 연결한다.

ⅲ) 각 파이프를 1 위에 올려, 움직이지 않도록 파이프 양 옆에 빗 못으로 박아준다.

ⅳ) 400으로 자른 합판을 ⅱ)의 위에 올려, 투바이에 30만 물리도록 작은 못으로 박은 후, 굵은 못(8cm)을 ⅰ)과 ⅱ) 부분에 겹쳐 박는다. 반대쪽도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때 합판 양 끝 부분을 투바이에서 80이 남도록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 80 부분을 이미 완성된 슬래브 하리에 올려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ⅴ) 눕힌 양 모서리에 45cm×120cm 폼을 7장 올려붙인다.

ⅵ) 3cm 삼각형 멩끼를 ⅳ)의 안쪽 아래, 코너 부분에 박는다.

ⅶ) 패널 아래쪽에 구멍을 뚫은 다음 6번 반생이를 꽂아놓는다. 철근 작업 후 반생이를 조일 것이다.

 

못 박기 시작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팔목이 아팠다. 오래 일을 안 한 탓에 근육이 놀랬다. 굵은 못이 나뭇굉이에 걸려 잘 들어가지 않았다. 두 손으로 망치질하는데, 성정동이 말했다. “거 뭐야, 두 손으로, 츳…”

괘씸했다. 두 손으로 못 박는 기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손 망치질은 콘크리트 못 등 단단한 곳에 못 박을 때 요긴하다. 이 기술은 절 지으며, 한 자짜리 대못을 함마로 때려 박을 때 익혔다. 두 손으로 망치질 하는 목수는 드물다.

처음에는 김 군을 “애기야”라고 불렀다. 고등학교 막 졸업한 앳된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출산을 앞 둔 애기아빠였다. ‘애기가 애기를 낳는군.’ 그가 하리 통 밖에서 안으로 손을 넣어 멩끼를 박았다. 그것이 무척 불편한 자세이다. 내가 하리 통 속으로 들어가서 박았다.

그토록 식욕이 당기는 점심은 오랜만이었다. 평소에는 풋내 때문에 잘 먹지도 않던 봄채소 무침(김치)은 달디 달았다. 밥과 생선 두 토막, 국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식사 끝낸 후 현장 불 옆에 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팀원들이 왔다. 재료가 떨어져, 오전 작업이 끝이란다. 내일도 데마찌란다.

 

서울용역 소장이 4만 5천원을 주며 말했다.

“내일 꼭 나오세요, 그런데 목수 맞아요?”

“네.”

소장이 재차, “정말 목수 맞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옛날 목수, 오야지급, 다른 일 하다가 작년부터 목수일 하기 시작 했어요” 라고 덧붙였다. 소장이 다시, “내일 꼭 나와요, 나는 사람을 이리저리 돌리지 않아요, 한 현장만 보내요”, 라고 했다. “그거 좋네요.”

매일 이곳저곳 팔려 다니면 항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주변 환경이 익숙해 질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밤새 잠을 설쳤다. 소장의 ‘목수 맞느냐’는 말이 스트레스를 주었다. 오랫동안 일 안한 탓에 복잡하게 현대화된 공정을 따라잡기 힘들다. 시스템 동바리 등, 작업해 보지 않은 일을 만나면 눈치껏 해야 한다. 말이 눈치껏이지, 누가 핀잔이라도 준다면 참고 일하기 어렵다. 밤 새 꿈을 꾸었다. 새벽에 일어나 생각했다. 먹고 사는 것이 이토록 힘든가?

아침 일찍, 서울 용역에 갔다. 전에 함께 일했던 김 씨를 만났다. 그의 말은 나를 더욱 겁먹게 만들었다. ‘현장에서 일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장이나 기사가 득달같이 용역회사에 전화한다. 왜 이런 목수도 아닌 사람을 보냈느냐… 그러면 온 동네가 시끄럽다. 자기도 어떤 사람 소개했다가 우세만 당했다.’

온양 터미널 현장에 여덟 명이 갔다. 어제 함께 일했던 평 반장과 씨와 이 씨도 함께 갔다. 지하 3층을 올리는 중이었다. 땅 속 깊숙한 곳에 현장이 있었다. 목수 작업은 깔끔했다. 그러나 일 분량이 많지 않았다. 하리 통을 다 만들어 올리고 땜빵만 남아 있었다. 땜빵도 30여 군데 뿐이었다. 여덟 사람이 일 할 분량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 몇 명이 사무실로 커피 마시러 갔다. 사무실 기사가 말하더란다. ‘목수 네 사람만 보내라 했는데, 이처럼 많이 왔느냐. 데스라 네 명만 올리겠다. 알아서 하라.’

함께 간 목수들이 웅성웅성 말이 많은 와중에 평 반장이 자기는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도 그 뒤에 줄을 섰다. 이 씨를 포함해 셋이 돌아왔다. 평 반장의 진단인 즉, 서울 용역 소장이 터미널 현장을 ‘잡으려고’ 시위차 목수를 많이 보냈다고 했다.

이 씨가 버스표를 샀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차 한 잔 하라고, 내 거처로 그들을 이끌었다. 길을 가면서, “회사에서 일해도 돈을 잘 받을 수 있느냐, 예전에는 돈 받기가 어려웠다”라고 물었다. 이 씨가 어두운 얼굴로, “돈 받기 어려우니까 다들 용역회사에 나가는 건데…” 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뻔 히 일당에서 10프로를 떼이며 용역회사에 나가 일 한다. 이 씨의 표정은 이런 사정에 대해 말하는 셈이다. 평 반장은 매일 일당을 지급하는 식으로 목수들을 데려다 쓴다고 했다.

평 반장은 한껏 내 거처를 부러워했다. 그는 1천만 원에 20만원 월세를 산다. 그러나 그는 실질적으로 많은 돈을 굴린다. 적어도 목수 일당 서너 달을 줄 수 있는 돈이다.

평 반장이, 용역회사 거치지 말고 자기 팀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그날그날 10만 원씩 주마, 곧 다음 현장으로 옮긴다, 그 때 돈을 올려 주겠다.’ 나는 늙은 철근공의 말을 생각했으며, 지방에 가서 일 할 경우 생기는 경비를 생각했다. 나도 평 반장에게 제안했다. ‘계단을 시켜다오.’ 계단은 일이 많은 대신 무거운 것을 나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육체의 부담이 적다. 이어 말했다. ‘대신 자주 와서 치수 잘 맞추고 있는지 질문하고 감독만 해 주라.’ 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참 어렵네.”

 

2. 돈 떼어먹고 도망간 두목노동자

 

오전에는 하스라 통을 마저 끝낸 후, 오후에는 슬래브를 짰다. 슬래브 칫수 가로 7400, 세로 3600 넓이의 슬라 13개를 짜야 한다.

ⅰ) 바닥에 6m 강관 파이프 두 개를 깔고, 6번 반생이 네 개를 그 아래에 끼워놓는다.

ⅱ) 시다 오비끼를 3000으로 9개를 잘라, 강관 파이프에 적정 간격으로 배열한다.

ⅲ) 시다 오비끼 양 옆과 중간에 900×500 각재와 사각 파이프를 올린 후, 가네(직각)를 만든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직각이 틀어지면 슬래브 짜 맞춤이 어려워진다.

ⅳ) 이 위에 합판 을 300씩 밀어낸 다음, 각재 위에 못으로 고정한다.

ⅴ) 합판(세로 910, 가로 1820) 세 장을 세로로 늘어놓고, 870으로 잘라 붙이면 3600이 된다. 이어서 합판 아홉 장과 합판 땜빵 12를 끼워 넣으면 7400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반생이를 합판 위로 올려 빼 놔야 한다. 그래야만 반생이에 크레인 고리를 걸어, 들어 올릴 수 있다.

 

?이재원

오늘 노동자들의 화제는 단연 돈 떼어먹고 도망간 ‘창수’라는 목수 오야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 씨가 도망간 오야지를 변명했다. 창수 씨는 매일 하청회사(협력회사라 부른다)에 데스라(일일 공수)를 올렸다. 인원수만 올렸다. 그런데 하청회사가 돈 계산하면서 갑자기 일 한 노동자 명단을 내어놓으라 했다. 창수가 명단이 없다고 하자, 하청회사가 돈을 안 주었고, 창수 씨만 독박 쓰고 도망갔다는 것이 요지였다. 새빨간 거짓이지만, 참고 분석해 보면 이렇다.

ⅰ) 건축법 상 원청회사가 협력회사에 일감을 주면, 협력회사는 도급(재하청)을 주어서는 안된다. 원청회사는 관리자만 두고 있다.

ⅱ) 하청회사도 건축 담당 기사와 관리자만 고용하고 오야지들에게 재 하청을 준다.

ⅲ) 목수를 투입하는 큰 오야지가 따로 있다. 그가 재하청업자이다. 큰 오야지는 평 씨처럼, 여러 명의 두목노동자를 불러 일을 시킨다. 창수 씨는 작은 규모의 재 하청업자였다.

 

창수 씨의 경우,

ⅰ) 하청회사가 창수 씨로부터 데스라를 받을 때 노동자 명단이 아니라 인원수만 받았다면, 애저녁에 돈을 떼어먹으려 한 짓이다. 임금 못 받은 노동자가 노동부로 가서 하소연한다 해도 일 한 증거가 없으니, 노동부에서도 막막할 것이다.

ⅱ) 창수 씨가 회사 데스라에 노동자 명단을 올렸다면, 그는 돈 받아 도망갈 셈이었다.

둘 다 동일한 원인이 있다. 하청과 재하청의 고리가 그것이다. 그런데 다시 의문점이 더 생긴다. 창수 씨는 어떻게 하청회사에서 노임을 한꺼번에 받아, 개별 노동자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했을까? 그리고 원청회사는 왜 이것을 묵인했을까?

도급노동을 주지 말라는 법도 애매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특허 노동의 경우는 도급노동을 허용한다. 또한 누군가 내부 고발해서 도급노동을 하청 준 것으로 법정에 섰다 하자. 재하청 준 협력회사는 벌금을 내는 것으로 끝이다. 임금을 못 주었다 치자. 하청 업자는 ‘돈이 없어서 못 주었다, 돈 벌어서 임금 주겠다, 지금까지 받은 돈은 자재비 등등에 썼다’, 라고 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청회사는 유한 책임만 지고 있다. 공사에서 손해 보았다면 자기 돈을 털어 보상할 이유가 없다. 하청회사에 중요한 것은 공사에 대한 책임뿐이지 임금이 아니다. 또, 하청회사가 재 도급 업자에게 임금을 준 것도 애매하다.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진다면, ‘관례상 오야지에게 노동자들 임금을 주어왔다, 오야지가 노동자에게 다시 돈을 주는 것이 관례다’, 라고 하면 그 또한 처벌 방법도 기준도 없다. 도둑놈들이 행세하는 세상이니, 기회만 있다면 도둑들이 생길 것이다.

 

3. 기계와 함께 하는 노동

오전에는 하리 통을, 오후에는 슬래브를 제 자리에 위치시켰다. 크레인이 하리 통을 매달아, 이미 작업해 놓은 슬래브 양 옆에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지상에서 하리와 슬래브를 짜서 들어 올린다니, 사람들 참 똑똑하다.

평 반장이 슬래브를 크레인에 매달아 현장으로 유도하면 양 옆에 한 사람씩 서서 하리 통을 잡아 제 자리에 위치시킨다. 크레인이 잡시 멈춰 선 사이, 슬래브 아래에서 하리 통 아래에 삿보도(철제 지주대)를 받친다. 슬래브를 짜면서 베갯목에 대못을 박아 놓았다. 우선은 하리 양 끝을 받친 후, 중간을 받치고, 나머지를 받친다. 네 명이 삿보도 작업을 했다. 광 씨가 진두지휘를 하고, 김씨, 김 씨 친구 조공, 그리고 나 넷이서 작업했다. 크레인은 계속 하리를 날라왔고, 우리는 바삐 작업을 서둘렀다.

요령들이 없어 힘들게 삿보도 작업들을 한다. 삿보도 아랫부분을 직선으로 제 자리에 위치시킨 후, 속 강관을 끄집어 올려 베개목 못에 끼운 후, 겉 강관과 핀으로 연결한 후, 나사를 돌려 적절한 높이로 올리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작업하면 무척 힘들다. 요령을 부리면 작업이 조금 쉽다. 삿보도 아랫부분을 제 자리에 위치시킨 후, 삿보도를 비스듬히 하여 속 강관을 뽑아내,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 수직으로 세운 후 못에 걸리도록 들어 올리면 조금 힘이 덜 든다. 중력 법칙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어렵기는 여전하다. 고개를 위로 향하고 작업하는 통에, 팔과 다리, 허리는 물론 목까지 아프다. 광 씨가 잠시 쉬는 시간에, 삿보도 받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일 듯 하다고 말했다.

점심 먹으러 가면서 목을 아래로 숙이고 걸어갔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정 벽화를 그리면서 항상 고개를 쳐들고 일했다. 그는 고개(목)가 아파, 쉴 때나 평상시에는 고개를 숙이고 다녔더란라.

오전에 하리 통 여섯 개를 걸었다. 오후에는 슬래브를 정치시키는 작업이다. 생 떽쥐베리의 아름다운 소설 『인간의 대지』에는 노동자로서 부럽기만 한 노동들이 나온다. “사막에 간다는 것은…하나의 샘을 우리의 종교로 만드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듯 사막에 샘을 파는 행위이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물을 깃기 위해서는 며칠을 걸어야 하며,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아낸다 해도 “낙타 오줌이 섞인 흙탕물이 나올 때까지” 모래를 파내야 한다. 그 샘을 찾기 위하여 “청춘이 스러지는 것을 겁내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사막에 사는 이가 유럽의 수풀 우거진 샘을 보고는 말했다. 인간의 노력 없이 모든 풍요로움을 허락하는 신이란 “속이는 신”이다(6,사막에서).

노동자로서 더욱 부러운 장면이 있다. “하룻밤 동안 인간을 얼음덩어리로 만드는 안데스 산” 속에 불시착했다가 일주일 만에 살아 돌아온 기요메가 말한다. “동료들은 내가 걷고 있는 줄로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나를 믿는다. 그러니 만약 내가 걷지 않는다면” 나는 동료의 기대를 저버리는 “못난이다”.

조립식 노동, 삿보도를 받치는 노동에는 동료가 없다. 잠시잠깐 쉬면서 함께 모여 담배를 피운다. 그 뿐이다. 다시 흩어져, 불연속적이고 분리된 존재로 노동한다. 노동의 영감도, 창조성도 없다. 끝없는 노역으로서의 노동만 존재한다. 고독한 인간이 삿보도 사이에 끼여 있다. 생 떽쥐베리는 대지에 선 인간 노동의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우리가 이런 도구들을 통해서 찾아내야 하는 것은 자연, 정원사나 항해사, 혹은 시인의 자연”이다(3, 비행기). 시인의 노동, 정원사의 노동이라니, 얼마나 황홀한가. 그는 대지와 결혼할 것이다.

 

4. 진화의 과정과 의사의 노동

슬래브 작업을 마치자, 그 다음 날 부터는 일이 쉬웠다. 벽체 반생이를 조이거나 도리잡기, 즉 건물의 수직과 수평, 일직선이 되도록 형틀을 잡아주는 작업 등이었다. 평 반장 팀은 원래 옆 건물로 가서 작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곳 공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곳 주차장 공사를 돕고 있다. 따라서 일감이 많지 않았다. 하루건너 하루 일 하는 식이라서 노동자들 불만이 많았다. 나는 몸을 만들 기회이므로 대체로 만족했다. 무릎이 아파, 쉬는 날 병원에 갔다. 의사가 말했다. “관절에 변형이 시작되었네요. 노동을 해야 하지만 관리의 차원에서 병원 자주 오세요.”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중력법칙을 이기고 두 발로 서도록 진화해 왔으니, 관절 변형이 오는 것도 진화의 과정이지.’

옛날 목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젊었을 때 일 안하고 노는 것이 보약 한 첩과 같다.’ 물론 일을 많이 하면 관절이 빨리 달아 없어질 것이다. 덕수가 전화로, “힘든 일은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나는, “일하든 안하든 나이 들면 관절은 사그라지게 마련이야. 힘든 일이든 쉬운 일이든 크게 문제 안 돼. (다 진화의 과정에 있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 와중에,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의사를 만났다. 어금니를 뺏다. 마주대하는 이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 편 어금니가 이가 솟아날 것이다. 여러 의사들에게, ‘솟아나지 않을 방법’을 문의하고 다녔다. 하나같이 임플란트를 하라고 했다. 아니면 빠진 옆 이를 삭감하여, 브릿지 형식으로 어금니를 하나 달아내라 했다. 이를 삭감한다고 생각하자 우울해졌다. 임플란트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 죽을 먹고 살거나, (이가 새로 솟기를 기다릴 참이다). 발품을 팔고 다닌 끝에,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의사를 만났다. 솟아날 이를, 맞물리는 치아가 있는 옆 이와 한데 묶어놓는 것이다. 그 분의 노하우인데 공개해서 어떨는지… 만약, ‘기술이 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공개한다 해도 기꺼워하시리라.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 “저기…”[철학자의 서재]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 “저기…”[철학자의 서재]

마투라나·바렐라의 <앎의 나무>

김광식(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은 어디쯤 있을까 / 소리 없이 내 맘 말해 볼까 / 울어보지 못한 내 사랑은 어디쯤 있을까 / 때론 느껴 서러워지는데 / 비 맞은 채로 서성이는 마음의 날 불러 주오 나즈막히 / 말없이 그대를 보며 소리 없이 걸었던 날처럼….

김광석이 부른 노래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이다. 이 노래처럼 말하지 못하는 사랑을 안고 비 맞은 채로 서성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여학생을 사랑했지만 ‘그저 그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가’ 없었던 남자, 광식이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어느덧 중간 시험 때가 다가왔다. 그때는 민주화 시위 때문에 수업을 빠지는 경우가 많아 시험 때 노트를 빌려 복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에게 노트를 빌리기로 결심을 했다. 드디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노트를 빌렸고 돌려주며 데이트를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저기…” 그녀는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고 나는 안절부절 못하다 결국 고맙다는 말만 하고 다시 돌아섰다. 또 다시 멀리서 바라보는 일이 이어졌고 기말 시험 때가 되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노트를 빌렸고 고맙다며 초콜릿을 건넸다.

“저기…” 머뭇거리며 다음 말을 차마 못 잇던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저, 다음 학기에 고급 과정을 들을 건데, 같이 들을래요?” 나는 뜻밖의 제안에 고마워하며 돌아섰다. 고대하던 다음 학기가 시작되었고 그녀를 다시 만났다. 수업은 고급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지만 우리들의 진도는 제자리에 맴돌기만 했다. 멀리서 바라보고 노트를 빌리고 돌려주고, 또 멀리서 바라보고 노트를 빌리고 돌려주고.

“저기…” 나는 끝내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와 사랑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녀도 다음 학기에 수업을 같이 듣자는 제안을 할 수가 없었다. 최고급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로 남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몸이다

 

현실 속 광식이와 같은 사랑을 하는 남자가 또 있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년)라는 영화 속 광식이다. 그 또한 7년 동안이나 “저기…”만 되뇔 뿐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현실 속 광식이든 영화 속 광식이든 광식이가 자신의 삶을, 아니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는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거다. 그녀와의 사랑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그 어리석은 생각만 딱 한 번 고쳐먹으면 그 사랑이 이루어졌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광식이 어느 날 아침 내 연애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그날부터 당장 365일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나눌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고맙습니다. 저기 커피 한 잔 어때요?” 라고 차마 잇지 못한 뒷말을 이어 사랑을 이룰 수 있었을까?

어느 날 아침 단 한 번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광식이가 카사노바 광태가 될 수 없다. 삶이나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단 한 번 고쳐먹는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삶이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이 아니라 사는 방식이, 달리 말하면 머리가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것이 몸에 밴 몸의 성향이 우리의 삶이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흔히들 머리로 행동을 선택하여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은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행동을 선택하여 세상을 살아간다. “커피 한 잔 어때요?”라고 뒷말을 이어야 한다고 머리로 생각은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몸이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 거다.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아직 몸에 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다고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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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마투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최호영 옮김, 갈무리 펴냄). ⓒ갈무리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쓴 <앎의 나무>(최호영 옮김, 갈무리 펴냄)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설명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앎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을 안다’고 할 때의 앎과 ‘~을 할 줄 안다’고 할 때의 앎이 있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의 앎이 앞의 것이고, 자전거‘를 탈 줄 안다’고 할 때의 앎이 뒤의 것이다. 앞의 것이 정보 지식이고 뒤의 것이 행동 지식이다. 하지만 정보 지식은 그것을 찾거나 만들거나 저장하거나 되찾을 줄 아는 행동 지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앎은 행동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 지식에 초점을 맞춘 행동 이론은, 행동이란 머릿속 정보 지식을 실현하거나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행동 지식에 초점을 맞춘 행동 이론은 행동을 몸에 밴 행동 지식이 실현되거나 표현되는 것이라고 본다. 정치 행동을 포함한 문화 행동도 마찬가지다. 정보 지식에 초점을 맞춘 문화 이론은 문화 행동을 머리 밖으로 표현된 정보 지식, 곧 텍스트라고 본다. 하지만 행동 지식에 초점을 맞춘 문화 이론은 문화 행동을 몸에 밴 행동 지식, 곧 행동 방식이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정보 지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식 이론을 행동 지식으로 방향을 돌리고자 한다. 그들은 행동 지식으로 문자 그대로 지식과 행동의 일치, 즉 ‘지행합일’을 이루고자 한다. 옛말에, 제대로 알면 그대로 행한다고 했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단지 머릿속 정보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몸에 밴 행동 지식으로 알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것은 지혜라고도 하고, 덕이라고도 한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인간의 문화 행동이 정보 지식의 표현이 아니라 몸에 밴 행동 지식의 표현인지를 그 생물학적 뿌리로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그들은 신기한 두 가지 앎의 현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첫 번째 현상을 직접 체험해보자. “왼쪽 눈을 감은 채 (아래 그림)의 십자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 약 40센티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얼굴을 앞뒤로) 움직여보라. 그러면 꼭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검은 점이 그림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26쪽)

두 번째 현상도 몇 가지 장치만 준비하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붉은색과 흰색의 두 광원을 가지고 (오른쪽 그림)과 같이 꾸며보자. (…) 전구에다 지름이 같은 마분지관을 씌우고 (…) 얇고 비치는 붉은색 종이를 필터로 쓰면 된다. 그런 다음 손 같은 것을 원뿔꼴의 빛 속에 넣고 바닥에 비친 그림자를 살펴보자. 그림의 세 개 상황 가운데 (위의 손 그림자와 중간의 오른쪽 손 그림자)는 청록색으로 나타난다.” (28쪽)

외부 세계에는 분명히 ‘있는’ 점을 우리는 어떻게 ‘없는’ 것으로 보며, 외부 세계에는 ‘없는’ 청록색을 우리는 어떻게 ‘있는’ 것으로 보는 걸까? 도대체 외부 세계에 대한 앎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이 현상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우리의 특수한 인식 ‘행동’의 구조나 방식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우리의 앎을 결정하는 것은 외부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행동 (방식)이다. ‘그곳에 아무 것도 없다’는 앎은 곧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볼 줄 아는’ 인식 행동 방식(행동 지식)의 산물이며, ‘그곳에 청록색이 있다’는 앎은 곧 청록색이 있는 것으로 ‘볼 줄 아는’ 인식 행동 방식(행동 지식)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앎이란 우리의 인식 행동 방식, 곧 행동 지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36쪽) 행동 지식이 곧 앎이며, 앎은 곧 행동 지식이란 말이다.

우리의 인식 행동 방식 또는 구조가 우리의 앎을, 또는 우리가 아는 세계를 구성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들의 앎의 이론을 구성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그들을 20세기의 칸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더 나아간다. 우리의 앎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앎 또한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생명체의 앎과 우리의 앎은 근본에서 같다. 생명체든 우리든 어떤 세상(환경) 속에서 자신의 행동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행동’할 줄 알면’ 그 세상’을 안다’고 말한다. 신경계나 뇌의 발달은 그 행동 방식의 신축성과 다양성을 늘렸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장한다. “앎이란 곧 효과 있는 행위다.”(39쪽)

머릿속 앎이 아니라 몸에 밴 앎으로 행동을 한다

 

“생물을 특징짓는 것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52쪽) 생명체의 효과적인 행동은 자신의 세상(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생산하는 일이다.

자신의 환경과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를 생산하는 그 일은 몸에 밴 고유한 행동 방식이나 구조(행동 지식)에 따른다. 단세포 생명체조차도 몸에 밴 자신의 행동 구조에 따라 환경으로부터 나트륨이나 칼슘은 받아들이고 세슘이나 리튬은 받아들이지 않을 줄 안다.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명체도 몸에 밴 자신의 행동 방식에 따라 먹이가 다가오면 가짜 발로 감싸서 잡아먹을 줄 안다.

그들에 따르면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뿐만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특정한 방식의 행동을 하는 것은 머리로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배고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몸에 밴 특정한 행동 방식(행동 지식) 때문이라고 한다.

아메바가 먹이를 감싸자는 생각을 해서 먹이를 잡아먹지 않듯이, 사람도 팔자 모양으로 걷자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걷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팔자 모양으로 걷지 말자고 생각을 해도, 그때만은 어찌어찌 되는 듯해도 똑바로 걷는 방식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어느새 팔자 모양으로 돌아와 있다. 자전거 타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탈 줄 아는 행동 방식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타는 방법을 머리로 아무리 외운다고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아메바와 사람의 행동이 같을 수 있을까? 사람의 행동 가운데 걸음걸이나 자전거 타기와 같이 습관에 의해 형성된 무의식적인 단순한 행동만 그렇고 고도로 발달된 복잡한 문화적인 의식적 행동은 주인인 머리가 내린 명령을, 즉 머리가 복잡한 정보를 의식적으로 처리하여 만든 생각을 하인인 몸이 단순히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명체의 단순한 행동으로부터 다세포 생명체를 거쳐 인간의 복잡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진화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 신축성과 다양성만 늘어났을 뿐, ‘머릿속 앎이 아니라 몸에 밴 앎에 의해 행동을 한다’는 생명체 행동의 기본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과정이 책의 전부다. 여기서는 그들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한 가지 과학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지금 왼손을 들어보라. 왼손을 들겠다는 의식적인 생각을 몸이 단순히 수행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당신이 왼손을 든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 명령을 내린 것이다. 왼손을 들겠다는 의식적인 생각은 몸이 스스로 내린 명령이 의식이라는 스크린에 비쳐진 것에 지나지 않다.

미국의 생리학자 벤저민 리벳독일의 생리학자 한스 코른후버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에게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무 때나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했다. 실험 대상자들이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겠다고 생각한 순간과 실제로 손가락을 움직인 순간은 거의 일치했다. 하지만 뇌파 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손가락을 움직이기 0.8초 전에 이미 특정한 뇌파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의식적인 뇌가 생각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적인 뇌가, 즉 몸이 스스로 명령을 내린 것이다. 무의식적인 뇌가, 즉 몸이 스스로 내린 명령을 손가락이, 즉 다른 몸이 수행한 것이다. 의식적인 생각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라 주인인 몸이 스스로 내린 명령을 의식이라는 스크린에 비쳐 알리는 앵무새 대변인의 역할을 할 뿐이다. 고도로 발달한 문화적인 의식적 행동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는 무의식적인 몸이고, 그 시나리오를 생각이라는 영화로 만들어 보여주는 영화감독이 바로 의식적인 뇌인 거다.

그러므로 이야기 흐름을 바꾸려면, 스크린에 비쳐진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 영화가 아니라 먼저 시나리오를 바꿔야 하는 거다. 아무리 착하게 살자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고쳐먹어도 착하게 사는 방식이 몸에 배어, 다시 말해 덕이 쌓여 무의식적인 몸이 스스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착하게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애 근육을 단련시켜라

 

얼마 전에 투표가 있었다. 착하게 사는 방식이 몸에 배지 않은 사람은 투표를 안 하고 놀러 가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도 투표장에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투표장에 갔다고 하더라도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사람을 찍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는 다른 사람을 찍었을 가능성이 많다. 생각 따로 행동 따로다.

투표 근육을 단련시키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을 한 번 고쳐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아예 생각이 몸에 배도록 몸을 만들자는 거다.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그렇게 강조했던, 마투라나와 바렐라가 인지 철학으로 정당화했던 ‘덕의 철학’을 역설하는 거다.

아직도 말하지 못하는 사랑을 안고 비 맞은 채로 서성이고 있는가? 아직도 사랑했지만 그저 그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 설 수가 없는가? 당신의 인생을, 아니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생이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그러한 행동 방식이 몸에 배도록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들만 잔뜩 늘어놓은 연애 지침서만 읽고 있지 말고 “저기…커피 한 잔 어때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연애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당신의 연애 근육은 튼튼한가?

 

이반 일리히,『절제의 사회 Tools for Conviviality』를 읽고…/지미정 [보고 듣고 생각하기]-①

이반 일리히,『절제의 사회 Tools for Conviviality』를 읽고…/지미정 [보고 듣고 생각하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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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정(한철연회원)
이반 일리히의 상생 사회를 위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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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2년 봄에 차를 팔았다. 차 안에서 우연히 들은 라디오 방송의 사연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젊은 아내가 남편을 설득해 차를 판 사연이었다. 부부는 치솟는 기름 값과 교통체증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했으며 기껏해야 주말에 마트나 나들이를 할 때만 자동차를 사용했다. 그러나 자동차를 보유하기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자동차 할부금과 보험료, 세금 그리고 유지비와 보수비를 따져보니 자신들의 소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했다. 세대 당 한 대의 자동차 보유를 당연히 여기는 요즘 시대에 그녀의 지혜로운 선택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가까운 거리도 차로만 움직이고도 늘 시간에 쫓기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소비에 의존했다. 나는 차를 팔고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차 없는 생활의 이로움을 발견하며 만족하며 살아간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이반 일리히(I. Illich)의 영향이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리히는 오스트리아 철학자며 로마 가톨릭 수사였다. 그는 서양 문화의 제도들이 우리의 교육, 의료, 노동, 에너지 사용, 교통 그리고 경제 발달에 미치는 효과를 비판했다. 일리히는 인생 후반기에 얼굴에 자라는 암 때문에 고통 받았으나 전문적인 의료에 따르기보다 전통적인 방법들로 치료했다. 그는 종양에 의한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기적으로 아편을 피우기도 했으며, 일리히는 종양이 진행 초기일 때,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의사와 상담했지만 종양을 제거하면 말하는 능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듣고 종양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다. 일리히는 그 삶을 자신의 운명이라 말했다.

▲이반 일리히 지음 박흥규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일리히는 『상생 도구 Tools for Conviviality』에서 우리 사회가 부정의한 이유는 극소수에게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히의 ‘도구 tools’와 ‘상생 conviviality’ 개념은 앞으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간단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일리히는 “현대 기술이 관리자managers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서로 연결된 개인에게 봉사하는 사회”(Illich, p.?)를 ‘convivial’하다고 말한다. 관리자는 기업의 사장을 의미한다. 즉 현대 기술은 기업의 사장이 돈을 벌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많아지게 하는 도구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서로 연결된 개인”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면 일리히가 정치를 어떤 뜻으로 사용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리히에게 정치는 “에너지나 정보의 동등한 투입이 아니라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최대의 산업적 산출의 분배”(Illich, p.?)를 다루어야 한다. 정치는 투입이 아니라 산출과 관련한다. 산출의 분배를 최대화하는 것이 정치의 목표다. 분배의 최대화는 곧 돈 많이 버는 것이고, 그렇다면 ‘convivial’은 사장이 아니라 개인들이 돈을 많이 벌게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먼저 도구의 근본 독점을 비판하고 일리히의 ‘도구 tools’와‘convivial’ 개념을 분석한 후, 일리히가 제시한 대안들을 평가한다. 일리히가 상생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제시한 구체적인 정치 대안은 이상적이고 전 근대적이라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지구 환경과 생태 문제를 단순히 자연에 대한 존중과 인간과 자연의 화해 또는 조화라는 추상적인 답에서 찾는 것은 문제에 대한 원인을 잘못 분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일리히의 사상은 산업 도구의 근본 독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상생 사회를 위한 개인의 노력이 무엇인지를 일깨우고 사회 개혁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더 구체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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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본 독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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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히에 따르면 과도하게 효율적인 도구가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관계를 조장하도록 응용하면 도구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을 파괴하면서 환경을 부패시킨다. 또 도구는 사람들이 스스로 할 필요가 있는 일과 기성품이 필요한 일 사이의 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 후자의 파괴는 근본 독점을 낳는다. ‘근본 독점’이란 “하나의 상표가 지배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유형의 제품이 지배적인 것을 의미한다.”(Illich, p.55) 예를 들어 코카콜라가 아니라 탄산수들이 음료 시장을 독점하고 식혜나 수정과 같은 전통 음료와 차를 음료시장에서 배제하는 것이 근본 독점이다. 자동차도 이런 방식으로 교통을 독점한다. 자동차는 도시 이미지를 만드는데, 미국은 이미 1970년대에 도시의 자동차가 도보와 자전거의 이동을 배제했고, 대만에서는 자동차가 하천 교통을 배제했다. 이와 같이 한 상표의 자동차를 많이 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에 의해 도보, 자전거, 배 등의 다른 교통수단이 배제되는 것이 근본 독점이다. 학교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공부에 대해 근본 독점을 확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인가 대안학교나 서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으로, 즉 ‘무교육자’로 낙인찍혀 검정고시를 통과하지 않으면 교육 받은 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의료 행위도 학교 교육을 받은 의사일 경우에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일리히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이 배제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근본 독점이 생기며 이 근본 독점이 강제적 소비를 강요함에 따라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한다고 보았다. 또 “근본 독점은 거대 제도가 공급하는 표준 제품의 강제 소비를 수단으로 강요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회적 통제를 만든다.”(Illich, p.56) 거대 제도가 만든 강제 소비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아이를 낳는 곳은 병원이 아니고 가정이었다. 간호사 경력이 있는 산파는 아이를 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때 드는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비용만으로 출산이 가능했다. 그리고 산모의 산후 관리도 지금처럼 큰 규모의 조리원에서 이루어질 필요 없이 가족의 도움으로 집에서 조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분만을 위해서도 병원에 하루나 이틀 입원을 해야 하고, 입원 절차에는 각종 검사가 따르며 그에 대한 부담도 소비자가 진다. 이것은 의료 제도가 개인에게 강제하는 것이지 개인이 필요에 의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집에서 아이를 낳는 산모들이 있지만 그녀들은 성가시고 불편한 방송 기자의 호기심 가득한 취재에 응해야하는 불필요한 관심을 감수해야 한다. 또 분만을 돕는 산파를 구하기도 어렵다.

장례 문화도 근본 독점을 낳았다. 멕시코에서는 한 세대 전(일리히가 책을 쓴 1973년을 기준)까지도 묘지를 파는 일과 죽은 자를 축복하는 일 외에는 모든 장례 준비를 가족이 했다. 가족이 모여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죽은 자를 보내는 슬픔을 터뜨리며 기분을 풀기도 하고, 죽음이라는 숙명과 삶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멕시코의 모든 장례 절차는 패키지 상품이 되었고, 장의사가 하는 장례 의례는 법률로 강제해서 장의사들이 시신을 통제하는 근본 독점을 낳았다.

일리히는 치유하고, 위로하며, 이동하고, 배우고, 집 짓고, 죽은 자를 묻는 일과 같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이 사람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 의존하면서 상품에는 제한적으로 의존한다면 우리는 풍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스스로 가능한 활동은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를 부여”(Illich, p.58)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사용가치를 부여하는 자유로운 활동을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타고난 능력을 포기하고 우리를 대신해 ‘더 좋은’ 무엇과 우리의 능력을 교환할 때 근본 독점은 성립한다. 근본 독점은 가치를 산업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새 것들’의 희소성과 소비 수준에 따라 사람을 계급화 하는 틀을 만든다. 근본 독점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정의는 가치 있는 서비스 비용을 증가시켜 특권을 차별적으로 부여하고 자원에 대한 접근 권리를 제한하여 사람을 의존하게 만든다. 최근에 장례 대행업체 가운데 일부는 상당히 고가의 장례 예식 상품을 유족에게 권한다. 부자가 아니고는 이용할 수 없는 고가의 장례 예식은 결국 서비스에서 차별화 전략으로 또 다른 특권 의식을 낳으며 일부 계층만이 누리는 서비스 자원이 되고 만다. 우리가 근본 독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 독점은 다원적으로 진행해 강제된 모든 것들에 대한 우리가 가진 인내의 한계를 파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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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생 도구?
1) 도구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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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히에게 도구의 범위는 넓다. “나는 (…) 단순한 기자재만이 아니라, (…) 거대한 기계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 생산시설도 포함시키고 교육, 건강, 지식, 의사결정을 생산하는 것과 같이 만져서 알 수 없는 상품의 생산 체계도 포함시킨다.” (Illich, p.22)

일리히에게 ‘도구 tools’는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마련한 장치인 ‘수단’을 의미한다. 그는 합리적으로 고안한 모든 장치를 하나의 범주로 포섭할 수 있기 때문에 도구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기술 도구만이 아니라, 학교의 교과 과정이나 결혼 법 같은 의도적으로 형성한 사회적 고안물도 도구에 속한다.

일리히에게 ‘도구’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인간을 위해 일하는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함께 일하는 도구’다. “인간을 위해 일하는 도구인 기계는 사람들을 더욱 교묘하게 프로그램화된 에너지 노예로 만들지만, 인간과 함께 일하는 ‘도구’는 개인이 갖는 에너지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만들 수 있는 도구”다.(Illich, P.10) 동력 도구 가운데 몇 가지는 인간 에너지의 증폭기 역할을 한다. 가령 소가 쟁기를 끌지만 사람도 소와 함께 일하고 그 성과는 인간과 동물의 힘이 결합해 얻어진다. 전기톱과 기중기도 같은 방식이다. 반면에 제트기를 조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간 에너지는 제트기 출력에 의미 있게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트기는 프로그램화된 에너지 노예 인간을 위해 일하는 ‘산업 도구’며 인간과 함께 일하는 소, 쟁기, 전기톱, 기중기는 ‘상생 도구’라 부른다. ‘상생 도구’는 사용하는 각자가 상상력을 발휘해 환경을 풍요한 것으로 만들 수 있게 최대의 기회를 부여한다. 도구는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상생을 진작시키는데 전화는 구조적으로 상생 도구다. 왜냐하면 관료는 사람들이 전화하면서 이야기한 개인 비밀을 간섭하거나 보호할 수는 있어도 전화로 서로 말하는 내용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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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3월 월례발표회-윤구병선생님 출간강연회[ⓔ시대와철학알림]

3월 월례발표회-윤구병선생님 출간강연회[ⓔ시대와철학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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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술1부입니다.?

3월 월례발표회는 윤구병 선생님 <철학을 다시 쓴다> 출간 강연회입니다.

<철학을 다시 쓴다>는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의 철학 강의입니다.

강연회를 통해 ‘있음과 없음’의 존재론으로부터 ‘함과 됨’의 실천론을, 어떻게 쉬운 우리 말로 철학 할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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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는 윤구병 선생님의 강연과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집니다.

책은 당일 20% 할인 된 가격에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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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철학을 다시 쓴다-있음과 없음에서 함과 됨까지>(보리)

발표: 윤구병

사회: 김성민(건국대)

일시: 3월 8일 금요일 오후 6시 태복빌딩 202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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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게 좋은 거고, 없을 것이 있거나, 있을 것이 없으면 나쁜 게 아닌가요?’ 이렇게 참과 거짓이 쉽게 가려지고, 좋음과 나쁨이 뚜렷이 드러나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참 세상’과 ‘좋은 앞날’을 꿈꿀 수 있습니다. 이 거짓 세상을 바꾸어 좋은 세상 만들 수 있습니다. ‘억압’ ‘착취’ ‘탐욕’, ‘전쟁’ ‘증오’ ‘이기심’은 모두 있는 놈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힘센 나라’에서 들여 온 몹쓸 것, 몹쓸 짓, 없을 것들이고, 없애야 할 것들입니다.

이른바 ‘지배계급’은 ‘언어의 폭력’을 ‘제도화’해서 ‘이데올로기적인 국가 기구’를 만들어 내는데, 이 일에 부림을 받는 이들은 ‘인문학’을 앞세우는 ‘지식인’들이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식민지 지식인’들이라고 부르는데, 이이들은 열에 아홉이 ‘폭력적인 국가 기구’의 앞잡이들입니다. 말로는 ‘민주화’를 부르짖어도, 이이들이 입 밖에 내는 말들을 들으면 ‘아니올시다’. 세 살배기, 다섯 살배기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을 가려낼 수 없는 이들이 어떻게 바른 생각을 일깨울 수 있고, 거짓에 맞서 좋은 앞날을 가꿀 올곧은 뜻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책머리에서>)

선생님이 말해요…[2013년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선생님이 말해요…[2013년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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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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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8세를 위한 철학캠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내 안의 편견을 깨어내는 여정’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철학캠프 강의를, 더군다나 ‘에로스’에 대한 강의를 제안 받았을 때 나는 난감하고 곤란했다. 아니 왜 하필 에로스야? 나더러 18세와 에로스를 논하라니! 이번 철학캠프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이 시련을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더니, 나에게는 이번 캠프가 시련 그 자체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강의준비와 1박2일의 캠프를 통해 이러한 소감이 내 안의 편견에서 기인한 것들이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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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에로스에 대하여 나 스스로도 편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강의에 대해서는 당연히 만족스러움 보다는 부족함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학문적 소득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다시금 가부장적 결혼제도와 이성애중심주의적 사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어 일종의 충일감(充溢感)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어서 기뻤다. 다만 강의에 참여한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주지 못하여 토론이 풍부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캠프에서도 일정에 쫓겨 이러한 부분이 충당되지 못했기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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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는 생각보다도 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논산 상상마당 측의 매끄러운 진행 덕에 즐거웠다. 특히 최원혁(랩퍼 빌로우)선생님께서 뻣뻣하고 어색한 참여자들을 배려, 독려하면서 정말 재밌고 알차게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셨다. 다만 캠프 프로그램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면,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설문지에 이성애중심주의적 질문들이 들어가 있었고, 그래서 은연중에 그러한 이성애중심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강사진들도 그 점에 대해 적절히 반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사실 이번에는 캠프 이전에 캠프 프로그램에 대해 긴밀하게 회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만약 다음 캠프가 진행된다면 그때에는 프로그램의 세밀한 내용까지는 아니라도 전반적인 철학캠프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 사전에 공유해서 이런 부분을 조율하고,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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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내가 1박2일 동안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앞서 설명했듯 내 안의 편견을 극복하고 온 것이었다. 나는 캠프를 통해 내가 ‘18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일종의 ‘꼰대근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이 단순히 계도와 지도의 대상이 아님을 내가 청소년일 때 그렇게 강하게 주장했으면서도, 정작 성인이 되고나니 나도 청소년들과 수평적 관계임을 깨닫지 못했다. 내 경험과 내 지식,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조력자로서 아이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로서 주입시키려는 알량한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꼰대’의 모습은 18세 때 내가 절대 닮고 싶지 않던, 되고 싶지 않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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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자각과 반성, 즉 내면의 아이스 브레이킹이 이루어지자 나에게 캠프는 그저 극복해야할 ‘시련’이나, 일이 아닌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모험’이자 refresh의 시간이 되었다. 그림처럼 눈이 내리던 논산 상상마당을 떠나오면서 앞으로 나의 삶에 이러한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내 안에 18세 때의 그 순수한 열정이 타올랐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말해요…[2013년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학생들이 말해요…[2013년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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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떡처럼 맛있는 철학하기 – 이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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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엄마가 18세의 철학캠프를 추천해 주었을 땐 어렸을 때 읽어본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하고 18세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고 또 결정적으로 캠프를 간다는 말에 신나게 신청했다.

사실 처음에는 어렵고 딱딱한 철학을 어릴 적 한번쯤은 읽어본 그리스신화를 통해 이야기한다고 18살 학생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첫날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내가 처음에 의문점을 가졌던, “학생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단박에 깨 버렸다. 강의의 수준이 생각보다 너무 높았고 학생들의 질문하는 수준이라던가, 자신의 주장을 말할 때 나는 속으로 ‘내가 오기엔 수준이 너무 높구나.’ 싶었다. 내가 철학에 관심이 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창피할 정도였다. 사실 첫 강의가 끝나고 여기를 계속 와야 하나, 그냥 다니지 말까 싶었는데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음 강의내용을 공부하고 가면 내 주장을 펼칠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강의를 이해할 수는 있겠다 싶은 마음에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과연 뭐가 핵심일까 생각해봤다. 지금 후기를 쓰면서 느낀 거지만 매 강의마다 내주는 과제물의 완성도에 대한 경쟁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원래 적극적으로 책을 찾아서 예습을 해가고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논술문도 잘 쓰려고 노력해봤고 선생님의 칭찬도 받고 싶었고, 나름 칭찬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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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고 캠프만을 남겨두었을 때. 무척 기대했다. 거기서의 강의내용은 어떨지, ‘나는 철학자다.’ 는 어떻게 진행될지, 거기서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논산 상상마당에 도착하자마자 “역시 상상마당” 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이쁜 건물들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강당에서 방 배정을 받았을 때 방애들끼리 어색할 거 같아서 내가 먼저 장난을 걸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두 개의 강의를 더 듣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을 마치고 내가 기대하던 ’나는 철학자다‘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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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자다의 주제는 지금까지 들었던 강의내용들을 가지고 형식에 상관없이 주제를 뽑아내어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는 캠프에서 들은 강의중 하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주제로 뮤지컬을 만들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온지라 시작은 매우 순조로웠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시나리오가 주제에 맞지 않아서 밤을 새운 끝에 완성을 했다. 그리고 발표일 당일. 다른 조들의 작품성을 보고 우승은 못할 거 같아 우리가 준비한 것 만 보여주자고 생각하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물론 우승은 다른 팀이 가져갔지만 우리 조는 만족하며 잘 끝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버스에 타기 직전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정말로 장관 이였다. 모두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놀다가 집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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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철학이라는 장르는 오래되어 딱딱해진 쑥떡 같은 맛이다. 철학책들이 단어도 어렵고 풀어서 나온 책이 많이 없다보니 읽기가 힘든 반면 소설책, 문학책들은 달콤한 케이크 같은 맛이다. 요즘에야 많이 단어들을 풀어서 쓴 철학책들이 많지만 아직까지도 어렵다는 편견이 많다. 그런데 꼭 오래되어 딱딱해진 쑥떡이 맛이 없기만 할까? 쑥떡도 쑥떡 나름의 맛이 잇기 마련이다. 이번 철학캠프는 ‘철학’ 이라는 딱딱한 쑥떡을 ‘신화’라는 주제로 데우기도 하고 꿀에 바르기도 해서 좀 더 맛있게 먹게 해준 것 같다. 많은 인연들을 만나게 해주고 매주 기대되는 방학을 만들어준 상상마당과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그리고 2조 친구들에게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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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나, 철학하는 나 – 소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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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한 열여덟 살의 청춘들에게는 저마다 별처럼 빛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향한 도전이 값지면 값질수록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그럴 때 일수록 어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운명이 부여한 시련의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지혜와 의지를 보여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운명의 필연적 법칙에 굴복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선택한 대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대응을 고찰해 봄으로써 우리 청소년들은 고난에 굴하지 않는 자유의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나온 교수님들과 함께 소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저의 후기는 조금 남다를 수 있습니다. 철학 강의에 대해 대부분의 청강자 분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예를 들며 최대한 철학적으로 후기를 써내려가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강의에 대한 흐름보다는 저만의 색다른 깨달음으로 승화시켜서 후기를 쓰는 것은 본래의 제 스타일이므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온라인 신문사인 프레시안에 게재된 (함께 들었던) 몇몇 학생들의 후기를 보니 다들 생각이 깊고 훌륭한 작문능력을 구사한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칠칠맞게 저만의 기록물도 잊어버렸고 벌써 2주가 되어가는 시점이어서 그들보다 더 길고 생생하게 쓰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짧고 굵게나마 당시를 회상하며 깨달았던 점 혹은 그 강의들로부터 제가 얻을 수 있었던 점들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날(2013.1.2)의 제목은 ‘보다 자유롭게 꿈꾸기 위해(오이디푸스왕: 운명의 시련)’이었습니다.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알고도 그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그에 맞서 그것을 훤히 밝혀 드러내는 오이디푸스의 실존과 자유정신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처음에는 ‘실존과 자유정신’이라는 가장 핵심적이었던 강의 속 주제에 대해 ‘뭐 별거 있을까. 내가 아는 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와 같은 식으로 단순히 생각했지만 계속 강의를 듣다보니 점차 그 생각이 바뀌어 갔습니다. 당시 느꼈던 주제의 핵심은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고통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는 영웅적인 자세를 갖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제대로 된 이룸을 위해서라면 죽음마저도 (최후의 순간까지)두려워하지 않았던 오이디푸스의 자신감을 보고 저 자신에 대해 한 번 되돌아보며 더 자신 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2013.1.9)의 주제는 ‘우리가 사랑에 눈뜰 때(에로스와 프시케: 사랑의 시련)’이었습니다. 사랑의 신 에로스와 인간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신화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성급한 열정과 단순한 욕망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한 사랑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와 준비가 필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연인들의 완전한 합일은 그저 결혼을 통한 가정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만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통해 성숙한 사랑, 진정한 합일의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랑’이라 하면 단순히 ‘남녀가 애정행위를 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강의를 들은 뒤에는 처음의 그 생각이 정말 단순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좀 더 폭넓은 관점으로 ‘사랑’을 바라보는 법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로 180도 달라진 사랑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셋째 날(2013.1.16)의 주제는 ‘나의 존재감 드러내기(테세우스: 자기 증명의 시련)’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네 번의 강의 중 가장 적극적으로 (수업이 아닌)소통해주셨던 강의로 기억에 남습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첫 장을 장식하는 테세우스는 그리스 건국의 시조입니다. 그러나 그의 출발은 미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는 먼 친척이자 자신의 우상인 헤라클레스를 본받아 모험의 길을 나섭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공동체 속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외부자의 강박과 아버지의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는 아들의 초조함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업적을 통한 자기 증명과 그것의 ‘말로’에 대해 성찰해봤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 좀 더 구체적으로 저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일종의 ‘나를 찾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동반자 내지 교훈자’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18세를 위한 철학캠프[강의]가 왜 신화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것인지도 (이 강의를 통해 제대로)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신화의)정의’에서 도출된 것 이었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세계와 사물에 대한 궁금증을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들을 통해 풀어낸 이야기’로서, ‘논리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며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신화의 중요한 네 가지 원리인 ‘반복’, ‘확대’. ‘재생산’, ‘유명’은 철학과 유사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언젠가 다시 철학을 공부할 때에도 신화와 함께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넷째 날(2013.1.23)의 주제는 ‘모험 속에서 나를 찾다(오디세이아: 모험의 시련)’이었습니다. 주제처럼 ‘모험의 의미’가 강조된 강의였습니다. 물론 모험의 의미는 한 사람이 간단히 정의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저만의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모험’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신화 속 인물들이 썼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공통된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모험을 떠난 뒤에는 ‘변화’가 생기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저도 모험의 경험이 있어 쉽게 공감이 가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험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저도 앞으로 모험의 기회가 생기면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 모험에서 깨달아갈 점을 생각하며 그 모험을 즐길 생각입니다.?

매주 한 번씩 도합 네 번의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의[청춘의] 시기가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살아가도록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번 강사님들께서 자신이 원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하기위해서는 당장 앞에 보이는 대학만을 보지 말고 꿈을 찾으라는 식으로 강조하셔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저 자신의 가슴 속에 품었던 혹은 품고 있는 꿈을 향해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자세를 취하면서 하루하루 꿈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철학적으로 해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매주 한 번씩 신화 속 철학이야기를 들은 뒤인 1월 26일(토요일)과 1월 27일(금요일)에는 짧게나마 교육효과를 더 확실시하기 위해서였는지 논산 KT&G상상마당으로 1박2일간의 캠프를 떠났습니다. 처음엔 캠프를 이루고 있는 주요 내용이 ‘철학’인지라 약간 막막했었지만 막상 캠프에 가보니 철학이라는 학문이 나와 관련이 많은 학문이라는 것을 각인 받았을 정도로 흥미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캠프일정 중 있었던 골든벨 대회에서 저희 팀이 1등을 했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기쁩니다. 조원 모두가 최선을 다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캠프에서는 등수보다도 캠프참가자 모두가 열심히 참여했느냐가 훨씬 중요하지만 그 동안 배웠던 내용을 기대 이상으로 많이 맞추었다는 것에서 스스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머지않은 훗날, 고대사 속 우리나라의 위상을 통해 (외교, 교육적으로)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인 저에게 있어 이번 캠프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알아온 역사와 철학과의 긴밀성이 그 때 제가 [훗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할 한국사 알림이로 활동하게 될 때]역사 뿐만 아니라 철학을 접목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또 한 번의 연결고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캠프운영을 위해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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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고 싶은 철학캠프 – 이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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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솔직히 주제가 철학이라는 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거의 엄마가 수업을 들어보라는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오게 됐는데, 첫 강의를 듣자마자 제가 흔히 알던 고리타분한 철학, 심오한 철학 등등 그런 선입견을 깨게 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수강한 사람들이 분위기가 좋아서 수업할 때 지루하고 어색하지 않아서 좋았고 마지막 캠프강의 때는 아쉽기까지 했네요.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가고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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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퍼의철학 – 정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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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철학 캠프는 솔직히 많은 기대를 하고 갔다. 나는 진로도 철학과 쪽으로 잡았고, 요즘 철학책을 읽으며 공부도 하고 있던 시기라 이 철학캠프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참여하였다. 역시 캠프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처음 강의부터 매우 흥미로웠고, 특히 두 번째 강의는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비물질적인 것(감정)에 대한 강의를 하였기 때문에 더 좋았다. 처음에 이 철학캠프 일정지를 보았을 때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신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라 지식도 많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터라 매일 졸면서 돈 낭비라도 할까봐 근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로 신화는 재미있었고 스펙타클했다. 그리고 이 캠프에서 가장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논술이었다. 나는 외고에 다니는지라 우리 학교에서는 글을 매우 못 쓰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 캠프에서는 나의 글에 대해 칭찬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조차 상 한번 못타봤던 나에게는 신세계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철학이라는 분야가 내가 좋아하고 배경지식도 많은 터라 학교나 백일장에서 썼을 때보다 더 잘 썼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확률이 높다. 여하튼 이 논술과 비평 프로그램은 매우 괜찮았던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논의를 펼칠 수 있는 장이었으며, 문제점 또한 찾을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활동이었다.

일박이일 캠프에 대해 말한다면 소수로 짜여진 조별활동과 조별 기숙 생활이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을 트거나 생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조별로 다니고 생활하면서 조별멤버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번잡하게 여러 사람과 면대하고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면 분명 가벼운 인연에서 끝났을 것이다. 또 만족스러웠던 것은 캠프 진행자 최원혁 지도자 분이 정말 재미있었다. 힙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랩퍼인 최원혁 선생님에게 더 호감이 갔고, 진행도 매우 훌륭히 해주셔서 즐거운 캠프가 되었던 것 같다.

만약에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4기가 개설된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고 5기까지도 참여하고 싶다. 정말 알차게 잘 짜여진 교육 강의 겸 캠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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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도 오고 싶은 철학캠프 – 조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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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신문광고에서 봤었다. 신문 1/4쯤 크기정도로 <18세를 위한 철학캠프에 초대합니다>라고 적혀진 문구였다. 철학과를 희망하고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혹’했다. 게다가 그리스 로마신화와 관련해서 철학을 풀어낸다니. 소녀감성을 지닌 나는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엄마를 충동질했다. “엄마, 나 이거 해보고 싶어.” 18살, 예비 고3에게 홍대의 문은 그때 열렸다. 너무 충동적으로. 그 뒤로 홍대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내가 고3이라는 압박과 길치라는 사실과 개학 전날이 캠프가 끝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방바닥을 허우적거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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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버스는 나를 떠났다. 신청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첫날 강의를 들으러 갔다. 경기도 광주 촌에서 홍대까지는 3시간이 걸렸고 상상마당 코앞에서 40분을 헤맸고(…만세 내 길치 정신!) 첫날 화려하게 지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고 흥미로웠다. 어렵게 철학자 이름을 꺼내면서 ‘이 사람은 어떤 철학자고 어떤 연구를 했다’의 나열식 교육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철학자와 그의 연구가 등장하는 수준이고 주로 신화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또 철학이 아닌 것도 아니다. 확실히 철학적이다. 운명에 대한 생각, 사랑에 대한 관점, 자아를 찾는 여행, 진정한 모험에 대한 고찰, 신화와 철학의 관계, 그리고 영화에 응용되는 철학까지.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게 도와준다. 철학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우리 일상에 친근감 있는 학문인지 깨달은 것 같아서 확신이 생겼다. 난 철학을 하고 싶다. 이미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그것을, 의미를 찾는 그것을, 행동을 되새김질할 수 있게 도와주고, 상상력과 생각을 풍부하게 하는 그것을 공부하고 싶다.

캠프는 더 재밌었다. 낯을 조금 가리는 나는 캠프가 매우 많이 걱정되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애들과도 친해지고 조를 이루고 새벽까지 자지 않고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신이 났다.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잠을 안자도 지치지 않고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신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철학을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재구성한 다른 조의 발표가 너무 좋아서 인정하게 되었다. 등수를 매기고 한 줄로 세우는 학교 교육과 다르게 보상받지 않아도 즐거운 공부다. 선생님들과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 진로,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들보다 나는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학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좁은 촌인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내게 세계를 넓혀주었다. 19살이 된 나는 동생들이 더 많았는데,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멋있었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공부하기 위해 이런 캠프에 참가하고 꿈을 꾸는 동생들이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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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기대와 염려와 응원을 등에 업는 수험생이 되는 해 겨울. 내 세상은 더 넓어졌고 생각은 깊어지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보았다. 1박2일 캠프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새로운 의욕이 생겼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캠프에서 만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 나도 멋지게 꿈을 꾸는 사람이 되어서. 철학뿐만 아니라, 아주 많이 큰 ‘무엇’을 배우고 간다. 선생님들, 수능 끝나고 20살에 다시 와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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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갈면 봄이 오리라![철학자의 서재]

칼을 갈면 봄이 오리라![철학자의 서재]

황종희의 <명이대방록>

진보성(대진대학교 강사)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지금은 잠시 몸을 추스르고 기다릴 때

 

사람은 누구나 추위가 맹위를 떨칠 때에는 움츠리고 다음에 곧 찾아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게 된다. 내가 볼 때 대부분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몸과 정신이 성장한다. 이 말을 규명할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나의 경험이 그렇고 내 주변인들과 감각적으로 교유한 결과가 그렇다.

2012년 말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대선이 끝나게 되면 유권자의 반은 내가 지지한 후보가 ‘됐다’는 일종의 안도감에 기뻐하고 나머지 반은 심할 경우 ‘멘붕’ 상태로 스스로를 방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희망과 절망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종류의 안경을 쓴 사람이건 간에 곧 이 안경도 다시 벗어던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서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뽑은 사람이 됐으면 돼서 그만이고, 안 됐으면 안 됐기 때문에 그만’이라는 식의 생각은 일개 정치인에게 나의 삶 전체를 맡기고 나중에 찾아가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위험한 태도다. 우리는 어떤 정치인을 일단 선출하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가 포함된 집단의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유권자들의 희망과 절망의 태도는 맹목적인 희망이 되고, 더 무거운 절망이 된다.

그 동안의 역사에서 봐왔듯이 어떤 권력도 국민의 동의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다고 판단하면 모든 정책과 행보는 정치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두고 민중이라는 정치적 대상은 일상이라는 사회의 영역 안에 철저히 가두어 버린다.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강을 만들어 절연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선거 때만 민주’라는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 달성된 적 없는 민주라는 개념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선거만 끝나면 민주주의를 잠깐 경험했다는 찰나의 환희를 기억하며 축제를 마무리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민주주의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당선자에게 정치적 기반은 주었지만 아직 권력의 전부를 양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은 당선자를 지지했던 사람이나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 모두 정치권의 행보를 찬찬히 지켜봐야 할 입장에 있다. 비판적 성찰을 통해 그가 민주적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지 간을 봐야 한다. ‘대통합’이라는 말, 마치 어린 백성이 전제군주의 즉위식을 희망에 들뜬 마음으로 축하하듯 다함께 힘을 모으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아직도 대한민국이 왕조국가인가? 국민 모두 선거 국면에 휘둘려졌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능력을 내적으로 고양시킬 때이다.

황종희의 역저 <명이대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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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희 지음, 김덕균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그런 면에서 17세기 중국의 대학자 황종희(黃宗羲, 1610~1695)가 쓴 <명이대방록(明夷待訪綠)>(황종희 지음, 김덕균 옮김, 한길사 펴냄)은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명말청초라는 시대적 혼란기를 살다 간 황종희가 존재론적 의미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히 규정한 후 그것을 기반으로 정치에 대한 원칙론적 견해를 풀어낸 정치사상서이다. 중국의 근현대 사상가들이 극찬한 책이고 황종희를 두고 ‘중국의 루소’라고 명명하기도 했지만 간혹 비현실적인 책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그만큼 저술 당시와 이후 오랜 시간을 두고 평가될 만큼 파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책이기도 하다.

물론 <명이대방록>에는 현대의 사회ㆍ정치 상황과의 괴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황종희가 가졌던 문제의식과 날카로운 통찰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부분이 분명 많이 있다. 특히 이 책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저자의 태도는 바로 권력에 대한 칼날 같은 비판의 날을 항상 꼿꼿이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황종희가 이 책을 썼을 당시 중국의 내부 상황은, 한족이었던 명왕조가 이민족인 청왕조로 교체되던 시기였고 패망으로 치닫던 명왕조의 부조리한 상황과 사회 전반의 모순이 표면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책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원칙적인 대안 의미를 제시하고 방책을 주장하는 내용이 많다.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에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자신의 염원은 물론, 그 염원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와 정치, 경제 부분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담았다.

책 제목에 보이는 ‘명이(明夷)’라는 말은 <주역> 64괘(卦) 중 하나로서 36번째 위치하는 ‘명이괘(明夷卦)’에서 따온 말이다. 이 괘의 모양새는 땅을 상징하는 ‘곤(坤)’이 위(?, 坤上) 에, 해와 빛을 상징하는 ‘이(離)’가 아래(?, 離下)에 위치한다. ‘명이’라는 말은 땅 아래에 해가 있는 형상이니 밝은 태양이 땅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明入地中 明夷”) 괘의 의미는 “빛이 가려지면 현자의 명철함이 해를 입어 어려움에 처하게 되니 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정도를 지켜 참고 인내하며 재능을 감추고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효사(爻辭)가 상징하는 의미 중에는, 절대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인내하면서 저항 세력끼리 은밀한 규합을 이루고 옳지 못한 권력에서 벗어나야 하며 바르지 못한 정치는 결국 망한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명이대방록>의 구성은 정치개혁론이 주를 이룬다. 원군(原君)·원신(原臣)·원법(原法) 등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지배력을 상징하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 법이라는 국가운영 근거에 대한 원칙적인 개혁론을 전개한다. 이런 면에서 황종희는 민중의 혁명성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던 맹자(孟子)를 닮았다.

황종희는 <명이대방록> 서두에서 맹자가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혼란해진다”(一治一亂)고 한 말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고 하며, “왜 삼대(三代) 이후에는 혼란만 있었고 다스려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있다. 황종희는 또 다른 저서 <맹자사설(孟子師說)>(이혜경 옮김, 한길사 펴냄)에서 그 원인을 통치자에게 돌리면서 통치자가 ‘불인(不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인은 의서(醫書)에 기(氣)가 관통하지 않아 ‘손발이 마비된 것’을 말한다고 정자(程子)가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서 불인한 통치자는 백성,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 가족만의 독락을 획책하다가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는 통치자이다. 기론과 관련하여 황종희는 “기가 운행하는 모든 것은 동체(同體)”라는 우주론적 해석으로 확대한다. 바로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근거하는 것이다.

황종희는 인간이 자기의 ‘개인적인 것(自私)’과 ‘주관적인 이기심(自利)’으로 나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통치자인 군주가 공리(公利)를 추구하게 되면 오히려 개개인들의 자사와 자리를 만족시키며 승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최고 권력을 가진 자가 사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종희는 “천하에 큰 해가 되는 것은 군주뿐”이라고 했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군주는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자로서 그 존재가치가 규정된다고 볼 수 있다.

군주는 객이고, 백성이 주인이다

황종희는 ‘원군(原君)’ 편에서 고대 성왕(聖王)이라고 불리는 통치자들을 거론하면서 “옛날에는 천하의 백성이 주인이고, 군주가 객이 되어 무릇 군주는 일생 동안 천하를 위해 경영했는데, 지금은 군주가 주인이고 천하 백성이 객이 되어서 무릇 천하의 어느 곳도 평안하지 못한 것은 군주만을 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우리는 ‘군객민주(君客民主)’라는 슬로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기존 동양의 유가 정치철학에서 보이던 전형적인 ‘군주민본(君主民本)’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현대의 민주와는 거리가 있지만 기존의 민본과는 차별되는 급진적 민본주의로서 ‘민주적 민본’이라 부를 만하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기존에 있던 아래의 것과 위의 것을 전도시킨다. 이미 황종희는 이자성의 농민봉기군에 의한 명왕조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민중의 힘을 무시하고서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기는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황종희의 급진적 민본주의가 당시로서 파격적인 면을 분명 갖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정치개혁과 사회 재편성의 주인공은 합리적인 엘리트로서 자신과 같은 사족계층이 담당해야 한다는 의식도 노출한다. 이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지닌 태생적 한계성에 의해 국민의 실질적 주권행사는 시기적으로 분할되어 한정되어 있고 여전히 정치적 주체는 따로 있다. <명이대방록>의 관점을 현대에 적용했을 때 드러나는 한계점이고 그 연장선에서 똑같은 고민이 현대에도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황종희는 ‘원신(原臣)’ 편에서 잘못된 통치 권력에는 협조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 사실 청왕조는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을 회유하는 정책을 펴서 그들을 양지로 끌어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황종희는 청왕조의 지속적인 요청에 어떠한 관직도 수행하지 않았다. 과거 명나라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면도 있었지만 <명이대방록>이 명왕조의 회복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쓴 저술임을 생각하면, 그의 이런 생각은 자신이 정치적 노선에 진출하는 것과 그 당위성, 그리고 물러나 처신할 때의 합당함을 증명하는 출처의리(出處義理)와 관계가 있다.

황종희는 명태조가 맹자의 “민이 귀하고 다음이 사직이고 군주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는 말을 폐기하고 재상까지 폐지했던 사실에서 환관이 득세하여 사족 계급은 물론 백성까지 고통스럽게 만든 상황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학교, 서리, 환관에 대해 언급한 편에서 그의 이런 생각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바라는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며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을 통해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모순과 잘못된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정도(正道)를 회복하는 입장에서 ‘너희들이 알고 있던 그것은 원래는 이런 것이야’라고 외치는 듯하다. 물론 구호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주장과 정밀한 근거를 갖추고 있기에 비중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황종희는 명왕조의 유산을 지니고 있던 지식인이었지만 청왕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학자로 기억될 수 있던 점은 바로 어떠한 권력에도 협조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정치권을 가만두지 않고 간섭해야만 하는 유학자 본연의 자세에 충실했던 점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사대부로서 가지고 있던 책임감은 황종희가 말한 민주를 놓고 보면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개념의 측면에서 민주의 주체는 사회구성원 개인들이 그 적임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정치권에 대한 태도는 매우 당당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황종희가 당시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참여에 있어 실질적으로 제외되었지만 끊임없이 지배 권력에 대해 견제하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던 점은, 현대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지만 또 소외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정치권과 관련하여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조언하는 바가 크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와 민주사회를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현재의 우리는 과연 황종희가 말한 ‘군객민주’의 그 민주조차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황종희가 경제개혁론에서 주장했던 지방분권적 통치는 민 자체의 의식이 개선되거나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던 주장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의식이나 개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의식도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치권에 대해 생각하고 발언하며 자기 삶의 자유와 여가를 확장하는 기회를 유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파가 모든 것을 움츠리게 만드는 이때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은 비록 시기적 간극이 넓은 책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 현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명이의 시기에 새로운 개혁의 시대를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기에 절실하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이고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公)’의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의식의 지침서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될 것이다.

지금 혹 봄을 기다리는 동안 정말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이괘’의 풀이처럼 그럴 때일수록 ‘연대’와 ‘의지’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묘(妙)를 느껴야 할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연대하고 의지해야 할 것이 민중과 민중이라는 점이다. 정치권과 권력은 비판의 대상이지 평생 단심(丹心)으로 종사(從事)할 대상이 아니다. 지지하고 응원했지만 권력을 획득한 정치권력에게는 그 순간부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 황종희처럼 말이다. 지금은 모두 그 칼날을 갈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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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범죄자=짐승’? 당신도 폭력의 공모자![철학자의 서재]

‘외국인 범죄자=짐승’? 당신도 폭력의 공모자![철학자의 서재]

주디스 버틀러의 <불확실한 삶>

조주영(서울시립대학교 박사 과정)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1.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별다른 일 없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날이었기에 수다도 금세 시들해졌고, 우리는 각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그만 집에 가는 게 좋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만 난데없이 눈물이 났다.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우는 나를 보며 친구는 몹시 당황했고, 당황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눈물의 이유를 찾아야 할 텐데, 이유라고 할 만한 게 당최 없는 것이다.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나는 애꿎은 책을 탓했다. 책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짜증도 나고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난 거라고,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주디스 버틀러의 <불확실한 삶>(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펴냄)이다. ‘최악의 저자 상’을 받을 정도로 문체가 까다롭기로 악명이 자자한 버틀러이니만큼, 책이 어려워서 짜증이 났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질질 짜면 어떻게 하냐는 둥, 서른 넘어 주책이라는 둥 핀잔을 주고받으며, 나와 친구는 그렇게 그 순간을 넘겼다.

그런 일이 있었던 지도 벌써 며칠이다. 그 사이 어찌어찌 마지막 장까지 넘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삶>은 이해불가인 채로 있다. 그럼에도 감히,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울었던 그날, 하필 읽고 있던 책이 그 책이었고, 책을 덮기 전 “삶이 애도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전혀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할 것이고 주목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65쪽)”라는 문장이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왔고, 눈물이 터져 나온 건 아마도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라면 이유다.

2.

그 문장의 무엇이 나를 그토록 울컥하게 만든 것일까? 겨우겨우 책을 읽고 난 뒤 이걸 확 던져버릴까 하다가 마침 그 일이 생각나서, 그 문장을 다시 찾아보았다. 삶이 애도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전혀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할 것이고 주목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자격”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때문인 것 같다.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 같아”라든가, “내가 과연 이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라고 말할 때처럼, 어떤 자질이나 능력, 조건 등을 평가할 때 “자격”이라는 낱말을 쓰는 게 아니던가? 혹시나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자격(資格)
【명사】
1.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
2.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

역시,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의미다. “자격”이라는 낱말은 “과연 그럴 만한가?”를 물을 때 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주디스 버틀러 지음, 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펴냄). ⓒ경성대학교출판부

그래서인지 “삶으로서의 자격”이라는 구절이 영 마뜩치 않다. 삶에 대해 자격을 운운하는 게 과연 말이나 되는가? 삶의 자격을 따지는 것은 누군가의 삶은 살 만한 삶이고 누군가의 삶은 살아서는 안 되는 삶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판단 자체는 가능할 수 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묻는 것, 그것이 삶으로서의 자격을 따지는 거라면, 삶에 대해 자격 운운하는 것도 말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찜찜하다. 삶에 대해 자격을 논할 수 있다고 치자. 어떤 삶이 자격을 갖춘 삶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판단의 권위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너에게는 삶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너의 삶은 살 만한 삶이 아니다. 너는 살아서는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자격”은 누가 갖는 것인가? 그러한 “자격”을 갖춘 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군가 내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상황을 그려보았다. 나만의 상상이니 조금은 낯간지러워도 남에게 귀감을 주는 삶으로 평판이 자자한 그런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으련만, 한낱 가십거리밖에 안 되고 있는 그런 상황이 먼저 떠오른다. “걔 아직도 여전하다며?” “어머 어머, 그 나이 처먹도록 뭐 하고 살았다니?” 수군수군 수군수군.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거나, 큰 죄를 지었다거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면서도 누군가 내 삶을 비웃지는 않을까,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을까,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이 빠진다.

아마도 스스로가 “일반적인 삶의 패턴“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에 “일반적인 삶의 패턴”이라고 할 만한 게 과연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평범한 삶, 보통의 삶이라고 여겨지는 삶의 모델은 분명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사회지표를 나타내는 통계청 자료만 봐도 어떤 삶이 보통의 삶인지가 금방 드러난다. 2012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 여성”은 29.1세에 결혼을 하고, 30대 초반에 첫 아이를 낳는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5세~29세가 71.4퍼센트로 가장 높고, 30세~39세는 “결혼·육아 등으로” 55퍼센트 대 수준으로 크게 하락하였다가 40대 초반부터 다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여성인구가 증가한다.

“평균 여성”의 삶에 비추어 보자면, 30대 초반인 나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어야 하며,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거나 휴직을 한 상태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집에서 용돈을 받아쓰는 처지였다. 지금이야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고 있지만, 매달 40만 원의 월세는 아직도 부모님께 의존하고 있다. 아이는커녕 아직 결혼도 안 했고 향후 몇 년 안에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평균 여성”의 삶에서 동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자립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괴감을 키우고 스스로 위축된다. 삶에 떳떳하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이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내가 꿈꾸는 “다른 삶”을 위한 준비 기간이 긴 것뿐이라고 자위해보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 “다른 삶”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들키기 싫어 괜히 센 척을 해본다. 내 삶이 아무리 비루해도, 그건 당신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뭐람! 너나 잘 하세요!

3.

“자격”이란 말에 너무 발끈한 나머지, 정작 <불확실한 삶> 얘기를 못했다. 이 책은 버틀러가 2001년에 일어났던 전대미문의 사건인 9.11 이후에 쓴 다섯 편의 논문을 묶은 것이다. 9.11은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매스컴을 통해 사건의 현장을 본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도 충격공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폭력으로 기억되고 있다.

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여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던 건 선정적으로 보도를 한 언론의 탓도 크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 다른 이들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다른 사람의 변덕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12쪽)”이 그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도 분명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든 예기치 못한 폭력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다. 내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나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고, 그로 인해 나는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픔에 젖게 만들기도 한다.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버틀러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슬픔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며,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논문 중 특히 2장의 논문 ‘폭력, 애도, 정치’에서 그 주장이 강하게 드러난다. 어떤 슬픔은 국가적으로 인정받고 확장되는 반면, 어떤 슬픔은 사유할 수도 애도할 수도 없는 것이 된다. 세계 무역 센터의 희생자들은 말 그대로 “무고한 희생자”로 애도되고 신성하게 된다. 반면 미국의 “공정한 전쟁”에서 살해된 이들은 알려지지 않고, 따라서 애도되지 않는다. 애도될 수도 없다.

어떤 삶은 애도할 만한 것이고, 어떤 삶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인가? 누구의 삶이 삶다운 삶인가? 목적의 왕국의 성원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할진데, 어째서 누군가는 애도되고 누군가는 애도 받지 못하는 걸까?

“세계 무역 센터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에 겪었던 일에 대한 복잡다단한 보도는 영혼을 압도하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들이다. 그 보도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강렬한 동일시를 생산한다. 그러나 이 서사들이 어떤 인간화하는 효과를 갖는지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통해 내가 의미하려는 것은 단순히 그런 서사가 간신히 죽음을 모면한 사람들과 나란히 사라진 삶 역시 인간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보도들이 그 장면을 무대화하고 그러한 애도가능성 안에서 ‘인간’을 확립하는 서사적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인터넷에 올라오고 주로 이메일 접촉을 통해 유포되었던 몇몇 보도를 제외한다면 어딘가에서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된 아랍인들의 삶을 다룬 서사를 공적 매체에서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애도할 수 있는 삶이 어떤 조건하에서 확립되고 유지되는지, 어떤 배제의 논리를 통해서, 그리고 어떤 삭제와 탈명사화(denominalization)의 실천을 통해서 그렇게 되는지를 물어야 한다.(69~70쪽)”

이런 대답이 가능할 것 같다. 애도가 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설명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애도가 차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배타적인 “인간” 개념을 생산하고 유지시킨다.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에 대한 반응과, 우리가 외국인들에게 가하는 차별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특히 그 범죄가 살인 등의 강력 범죄였을 경우 그 사람은 인간 이하의 짐승으로 묘사된다. 특정 개인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외국인 범죄”로 기술됨으로써 불특정 외국인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가중된다. 특히 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들, 비슷한 인종의 사람들은 모두 “한층 강화된 감시의 대상이 된다(71쪽).”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애도될 수 없기에 인간이 아니며, 인간이 아니기에 애도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불안과 공포를 쉽게 그들에게 돌릴 수 있다.

“그 결과 아무런 형태도 없는 인종차별주의, ‘자기-방어‘의 요청에 의해 합리화되는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게 된다.(71쪽)”

4.

예기치 못한 폭력에 언제든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자체로 공포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 존재의 한 측면이 드러나게 됐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상처받기 쉽다는 사실이다.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살아가면서 상처를 피해가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상처받기 쉽다는 취약성,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는 이 취약성이 우리를 “우리”로 묶어주는 건 아닐까? 이 취약성으로부터 배타적이지 않은 “인간” 개념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앞에서 나는 “평균적인 삶”에서 먼 삶을 산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고백했다. “자격”이라는 단어에 너무 꽂힌 나머지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상상의 나래도 펼쳤다. 하지만 그때 그 눈물의 의미를 이제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 어쩌면 삶으로서 인정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피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는 취약성, 폭력에 대한 공포. 이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훅 밀려온 것이다.

언제든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러나 애도될 수 없는 삶은 삶이 아니기에, 그 삶에 폭력이 가해진다고 한들 그것은 “폭력”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자기-방어’의 요청에 의해 합리화되는 인종차별주의”가 쉽게 만연하듯이 말이다.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 폭력을 당했는데 나의 삶이 삶다운 삶이 아니어서 그 폭력이 폭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분명 폭력을 당했는데, 누구도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생각을 해보자. 끔찍하지 않은가!

이런 공포와 슬픔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해지는데, 버틀러는 바로 그 슬픔을 정치를 위한 자원으로 만들자고 말한다.

“슬픔이 전시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열거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제공하려고 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의식적인 설명을 종종 방해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자율적이고 강한 자신감에 차 있다는 바로 그 생각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맺은 관계의 속박에 묶여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50쪽)”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나 자신이 결코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나의 운명이 당신의 운명과 근원적으로나 최종적으로나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를 횡단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반대 논증을 할 수 없는 관계성이다(49~50쪽).” 이러한 관계성, “우리의 근본적인 의존성과 윤리적 책임감을 이론화하는 데 중요한 관계적 끈(49쪽)”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인간 공통의 취약성”이다.

인간 공통의 취약성은 “나”의 형성에 선행하는 조건, “우리가 붙잡고 논쟁할 수 없는, 처음부터 우리는 벌거벗은 상태였다는 조건이다.(61쪽)” 이와 같은 조건으로서의 인간 공통의 취약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윤리적인 책임감, 즉 “우리가 직접 겪은 것과 같은 폭력으로부터 다른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맹세하게 만들 원칙(60쪽)”이 나오는 것이다. 슬픔이 정치를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슬픔을 통해 인간 공통의 취약성에 대한 인식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버틀러는 자신이 제안하고자 한 것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 폭력과 공모하는 우리, 상실에 대한 우리의 취약성과 그 결과로서의 애도의 과제, 이런 조건에서 공동체의 토대를 찾는 것, 이 모두와 연관이 있는 정치적 삶의 차원을 고려하자(45쪽)”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슬픔이 정말 정치를 위한 자원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속 시원히 대답까지 해주면 좋으련만, 버틀러는 역시나 친절하지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 가지, 다른 사유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의 슬픔, 나의 불안, 나의 공포, 이 모두가 떨쳐버릴 수 없는 나의 취약성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을 외면하거나 제쳐두는 대신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보자. 그것이 다른 사유를 위한 첫걸음일 테니까.

<철학자의 서재>가 강연으로 다시 태어납니다[ⓔ시대와철학알림]

?<철학자의 서재>가 강연으로 다시 태어납니다[ⓔ시대와철학알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는 강남논현도서관과 함께, 매월 한 권의 고전을 같이 읽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2월과 3월의 책과 주제를 공지합니다. 책으로만 만나는 <철학자의 서재>에서 강연으로 만나는 <철학자의 서재>를 기대합니다.

일상에 지친 당신을 위한 책 천국 <철학자의 서재>

1강 2/26 (화)
주제 :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도서 : 헤겔의 ”역사 속의 이성”
강연 : 김성우 교수

2강 3/19 (화)
주제 : 착한 시민이 괴물이 되는 악의 평범함
도서 :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강연 : 한길석 교수

– 날짜 : 1강-2/26(화), 2강-3/19(화)
– 시간 : 저녁 7시~9시
– 대상 : 관심있는 분 누구나 30명
– 장소 : 논현정보도서관 3층 강의실 (학동역 6번출구)
– 문의 : 02-515-1178

* 매월 찰학자와 함께 한권의 책을 읽습니다. 읽어 오시지 않더라고 수강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