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 <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2
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2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장)
3.?서구의 추상적 보편주의적 윤리적 기획의 문제점
서구의 추상적 보편주의가 구체화된 자유주의적 윤리적 기획은 로크로부터 시작한다.?로크는 처음에는 규범 윤리학의 차원에서는 자연법에 의거한 도덕 규범의 구속력을 자연 신학적 방법으로 세우고자 했다.?그는 이 문제가 인식비판의 필요성을 함축한다고 생각해서?『인간지성론』에서 수학에 모델을 둔 증명 윤리학을 기획한다.?그러면서도 그의 윤리학의 전제는 창조자로서의 신과 신의 작품인 인간이다.5) 다시 말해서 그의 이성 윤리학도 기독교적 세계상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성 윤리학은 도덕 인식론을 기반으로 하는데 문제는 이 도덕 인식론이 그가 가상디로부터 물려받은 도덕 심리학(쾌락주의)과 갈등과 일으킨다는 데에 있다.?쾌락주의와 도덕 규범의 구속력이 비록 신의 영원한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매개되지만 이는 처음부터 이질적인 두 요소간의 진정한 매개가 될 수 없다.?인간의 이기심(이해타산=합리성)과 수학과 같이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도덕 규범의 구속력과 준수(도덕성)는 애초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래서 그는 증명 윤리학적 기획에 합당한 체계를 형성하지 못하고6) 다시 계시 윤리학(예수는 메시아였다)에 호소한다.?그는 철저하게 기독교적 틀 안에서 이성적인 도덕 철학을 기획했지만 이성은 이기심을 조절하고 억제할 수 없었다.?한편 그는 실제 행위(prudence)나 정치 기술의 차원에서는 광신주의자들과 독단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지식의 한계를 정하면서 개연성에 기반을 둔 신념의 윤리학(처세술까지도 포함하는 넒은 의미의 윤리학)과 독사의 정치학을 주창한다.?하지만 이때의 이성은 확실한 도덕 규범이나 원칙을 알지 못하므로 이익을 계산하는 도구적 이성에 머물고 만다.
과연 이성이 수학과 같은 필연성과 보편성을 지닌 도덕 규범을 정초할 수 있는가??아니면 현대의 합리성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쾌락 계산의 수단으로 이성이 전락할 수밖에 없는가??로크는 전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후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부정한다.?하지만 로크의 자신의 생각대로 도덕 규범을 정초했는가??이에 대해서는 논자는 부정적이다.?로크는 도덕 규범과 관련해서 전형적인 합리론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그는 도덕 규범을 수학을 모델로 정초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기획은 두 가지 문제를 지닌다.?첫째로 도덕 규범은 수학과 그 성격이 다르다.?대체로 수학은 문화의존적이지 않지만 규범은 문화의존적이다.?따라서 수학의 윤리학에 대한 적용은 내용 없는 공허한 절차적 보편주의로 끝나고 만다.?그리고 수학의 논리적 필연성만으로는 도덕 규범의 구속력을 확보할 수 없다.?논리적 필연성과 윤리적 의무(obligation)는 서로 무관하다.?이런 이유로 로크는 기독교적인 심판하는 신을 그 의무의 원천으로 삼게 된다.?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을 감성에 기반을 두고서는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러한 도덕의 문제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 속하고 만다.?이성은 이해관심(interest)과 신앙 사이에서 머뭇거릴 뿐 도덕 규범을 정초할 수 없다.
계몽주의 윤리학적 기획(이성적 윤리학 정초)이 붕괴된 지금 그 대안이라고 자유주의 윤리학자들이 제시했던 논리 실증주의의 이모티비즘이나 현대화된 칸트주의인 절차주의 윤리학도 문제가 있다.?전자는 윤리학의 이셩적인 형식을 부정하고,?후자는 도덕이란 공허한 형식에 불과하다고 본다.
4.?자본=네이션=국가
오늘날 세계화가 이루어지면 국민국가(네이션=스테이트)가 위기에 처하고 궁극적으로는 해체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그러나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처럼 생산 양식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발전 단계를 구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가라타니 고진은 교환 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본다.?이런 관점은 도리어 근대적인 국민국가가 원래 자본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역설한다.?일례로 국민국가는 세계자본주의 안에서 양극화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마찬가지로 네이션은 공동체와 평등성을 지향한다.?스테이트는 다양한 규제나 세금에 의한 재분배와 같은 정책을 추구한다.?이런 방향으로 네이션과 스테이트 모두 자본주의적 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한다.?이렇듯 자본주의 경제,?네이션,?국가의 세 가지 교환 양식들이 서로 대리보충이라도 하듯이 접합되어 있다.?그는 이를?‘자본=네이션=국가’의 세계체제라고 부른다.7)
그에 의하면?『정치경제학 비판 강요』에서 마르크스가 제시한 다섯 가지 사회구성체의 분류가 여전히 유효하다.?그러나 생산양식에서가 아니라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사회구성체는 세 가지 교환양식(호수reciprocity,?약탈-재분배,?상품교환)의 접합으로 형성된다.?다만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접합의 방식과 정도에 따른 것이다.?다시 말해서 지배적인 교환양식에 따라 사회구성체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씨족적 사회구성체는 호수(농업공동체 내부에서의 증여적인 상호시혜)가 지배적이다.?아시아적,?고전 고대적,?봉건적 사회구성체는 약탈-재분배(봉건국가)가 지배적이다.?자본주의적인 사회구성체는 상품교환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시민혁명(부르주아혁명)?이후 국민주권이 성립된 이후에도 절대왕정의 실체인 상비군과 관료기구가 살아남아,?여전히 약탈-재분배라는 교환양식이 근대국가의 핵심이 된다.?또한 비록 농업공동체는 상품경제에 의해 해체되지만 호수적 교환도 계급 대립과 모순을 넘어선 네이션이라는?‘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로 살아남는다.?이렇게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결합체(매듭)로 존재한다.8)
이와 같이 생산양식 대신에 교환양식으로 세계사를 본다는 것은 경제결정론처럼 경제를 하부구조(토대)로,?국가나 네이션을 상부구조로 보는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다.?화폐나 신용의 세계도 경제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환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국가나 네이션이 비록 경제적인 의미의 교환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의 교환에 해당한다.9) 이런 점에서 화폐에 의한 상품교환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실제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보로메오 매듭)로 이뤄져 있다.
헤겔?『법철학』의 힘은 이 보로메오 매듭을 구조적으로 파악한 데 있다.?그래서 국가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내셔널리스트(민족주의자)도 자신의 논거를 헤겔에서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또한 헤겔에 근거해서 각기 서로를 비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헤겔은 이런 매듭이 근본적으로 네이션이라는 형태를 취한 상상력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잊었다.?그래서 칸트와 마르크스와 달리 헤겔에게서는 이런 매듭이 지양될 가능성을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10)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은?“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역사적 필연성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면 헤겔적인 작업에 머무는 게”되므로 이 삼위일체의 구조(보로메오 매듭)를 넘어서기 위해 다시?“마르크스의 헤겔비판으로 돌아가 볼”?필요성을 강조한다.11)
마르크스의 작업은 헤겔의『법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그러나『자본론』에서 그는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밝히고 있지만,?국가나 네이션의 고찰을 결여하고 있다.?이런 이유로 마르크주의자들이 국가를 소홀히 여기거나 반대로『자본론』?이전의 국가론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12) 그러나 초기 마르크스로 되돌아갈 것 필요는 없다.?왜냐하면『자본론』에서 헤겔 비판이 진정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자본론』의 관점에서『법철학』를 재고하는 것이 긴요하다.?즉 자본만이 아니라 국가나 네이션을?‘경제적’인 구조로 파악해야 이러한 삼위일체의 고리로부터 나가는 출구가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13)
그런데『법철학』의 이러한 삼위일체에 대한 서술은 영국과 같은 선진국을 제외하면 오히려 앞으로 실현될 것에 대한 예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오늘날에도 여전히 실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는 국가나 민족도 있다.즉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의 형성은 결코 쉽지 않다.?이 점을 이해할 때 이탈리아에서 그람시가 지도한 레닌주의적 공장 점거 투쟁이 파시스트에 의해 분쇄된 것은 파시스트가 내건 내셔널리즘의 마법 때문이다. 14) 레닌은 원래 네이션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통일 시장을 필요로 한 데서 기인한 것이므로 사회주의에서는 소멸된다고 본 것이다.?그러나 동구권이나 제3세계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민족해방운동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도리어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데는 파시즘과는 다른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에 호소했기 때문이다.?스탈린의 소련이 쉽게 국가주의로 전환되고 소련에 대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내셔널리즘으로 대항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막연한 인터내셔널주의를 외치는 사회주의의 덫이 된 데는 마르크스주의가 이러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의 존재를 간과했기 때문이다.15)
5.?새로운 공동체 윤리의 실마리
유교의 가족주의 윤리는 공적인 영역의 윤리가 발달하는 것을 막고 혈연,지연,?학연에 기초한 우리의 진입금지 사회를 조장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뿐만 아니라 우리의 배타적 애국심만을 조장하여 사대주의와 졸부주의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윤리적 에토스를 기르는 데 장애가 되었다.?그래서 한때『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이다.?우리의 모든 문제를 유교의 윤리적 기획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물론 발생학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사회의 최대의 해악인?三緣주의를 극복하고 사적인 집단 윤리의식 대신에 공공적인 윤리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특정한 집단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유교의 윤리의 부활로는 부족하다는 것은 명백하다.?그렇다고 해서 추상적 보편성 즉 자유주의적 인권에 기반을 둔 서구 근대의 자유주의적 윤리적 기획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유교와는 반대로 서구의 근대 윤리는 원자론적인 사고 방식에 기본을 두고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실패했다.
서구의 근대적 자유주의적 인권 개념은 추상적 동일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이 추상적 동일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수다.?수는 모든 것의 질적인 차이를 배제하는 추상화를 통해 기본 단위를 설정하고 이 추상적인 기본 단위(하나)를 기계적으로 결합하여 생겨난 것이다.?유럽의 근대 철학에서는 이 수가 개념의 모델이 된다.?다시 말해서 수를 모방할수록 그 개념은 개념다운 것이 된다.?반면에 수를 모방할 수 없는 개념 즉 추상적 동일성에 기반을 둘 수 없는 개념은 객관성을 결여하여 과학적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이러한 사정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계몽의 변증법』에서 극적으로 제시한다. “수로 환원될 수 없는 것,?그리고 결국 하나로 될 수 없는 것은 계몽주의에서는 가상으로 인식된다.?현대 실증주의는 그것을 시의 영역으로 추방한다.?동일성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러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암호이다.?신들과 특성들의 파괴가 계속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16)
근대적 인권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사회상의 핵심은 수가 마치 추상적으로 동일적 단위(하나)를 전제하듯이 사회도 추상적으로 동일적인 단위인 개인을 전제한다.?개인에 해당하는 라틴어 인디비둠(individuum)은 원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톰(atom)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인 기본 단위를 의미한다.?단순 관념의 순열과 조합을 통해 복합 관념이 만들어지듯이 개인들이 합쳐져서 사회가 생성된다.?이 때 개인은 수의 하나와 마찬가지로 동질적인 추상적 동일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이 개인은 형식적으로 동등한 자유로고 평등한 성격을 부여받는다.?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세계가 바로 로크가 말하는?‘자연상태’이다.17) ‘자연상태’는 아직 정치사회(로크는 이 정치사회 즉 국가를 시민사회와 동일시한다)를 형성하기 이전의 사회다.?자연상태’와?‘시민사회=정치사회(국가)’라는 개념들은 분명히 개인을 전통과 권위에서 해방시켜?‘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인’?존재자로 상정한 것은 인류의 보편적 성취의 한 단계를 구성한다.?하지만 변증법적 시각에서 보면 이는 아직 추상적 단계(헤겔)이고 기만적 단계(마르크스)이다.
이러한 서구의 추상적인 인권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변증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양적인 사고에서는 특수애인 가족애와 학교애 그리고 지역애 더 나아가서 국가애가 보편애인 인류애에 대립할 뿐 진정한 양자의 통일을 모색할 수 없다.?이는 보편애를 강조하는 서구 근대의 자유주의적 인권 개념뿐만 아니라 특수애를 강조하는 유교의 윤리관에도 해당한다.?유교식의 사적인 윤리와 서구 자유주의식의 공적인 윤리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이러한 윤리를 새롭게 기획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대립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양자의 상호작용과 상호침투를 강조하는 화엄불교의?‘相卽相入’의 관계론적인 존재론이 요구된다.?즉 개인의 실체성과 공동체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연관되어 있고 각 단계의 공동체가 서로 중층구조를 이룬다고 보는 화엄의 존재론은 각 계기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재의 조건으로 삼는 상호공존을 주장할 수 있다.?이 상호공존의 관계론적 존재론으로부터 배타적인 자기 정체성과 통합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를 도출할 수 있다.
새로운 윤리적 태도는 자아와 타자의 상호 존재가 서로 존재론적인 조건을 구성하므로 자아와 타자의 상호 인정을 요구하게 된다.?이 상호 인정은 상호 관용18)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이러한 상호 인정과 상호 관용의 태도를 통해 세계시민의식을 형성해야 유교적인 배타적인 가족애와 국가애를 인류애로 전환시킬 수 있다.?그리고 상호 인정과 관용을 통해서 추상적 동일성에 기반을 서구의 권리 담론의 배타성(권리는 반드시 독점과 배제를 수반한다)을 극복할 수 있다.?이방인의 배제가 아니라 이방인(가족이 아닌 사람,동문이 아닌 사람,?타지역 사람,?외국인,?소외된 사람 등등)에 대한 사랑은 바로 권리 담론의 원자론적 존재론으로도 유교의 가족주의적 공동체적 존재론으로도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이방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원칙은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종교적인 기초를 통해서도 확보될 수 없다.?왜냐하면 현대는?‘탈마법화된 사회’(베버)로서 종교의 서사가 중세처럼 정당화의 권위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도리어 화엄의 관계론적인 상즉상입의 변증법적인 존재론이 이 원칙에 대한 가치 형이상학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앞으로 우리는 이방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윤리적 태도와 이의 기초로서의 관계의 존재론을 통해서 고아 수출 일위라는 치욕적 가족중심주의와 선거 때만 횡행하는 지역몰표라는 망국적 지역감정과 학연에 의한?‘서울대 공화국’이라는 지위와 가치의 독점현상을 극복하고 세계시민의식이라는 세련된 매너와 태도를 지닌 윤리적 에토스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러한 윤리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푸코가 지적한 것처럼 전체화와 개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서구의 정치적 합리성과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그러면서 동시에 기존의 유교적인 차별성과 서열성을 극복해야 한다.
-주석-
5)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로는?James Tully,?A Discourse on Property(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0), pp. 35~43을 참조.
6)?그런 이유로 로크의『인간지성론』에 나타난 증명 윤리학에 대한 논의는 규범 윤리학으로 나가지 못하고 메타 윤리학적 논의에 머물고 만다.
7)?『세계공화국으로』, 16쪽.
8)?『세계공화국으로』, 49쪽.
9)?『트랜스크리틱』, 459쪽.
10)?『세계공화국으로』, 182쪽.
11) 가타리니 고진,?『세계사의 구조』, 조영일 옮김,?도서출판?b, 2013, 19쪽.
12)?『트랜스크리틱』, 449쪽.
13)?『트랜스크리틱』, 466쪽.
14)?『트랜스크리틱』, 467쪽.
15)?『트랜스크리틱』, 468쪽.
16) ?M. Horkheimer und T. W. Adorno,?Dialektik der Aufkl?rung?(Suhrkamp, 1984), p. 24.
17)?이 자연상태에서 모든 개인은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한다(『통치론』, 4절~6절).?이 자연상태에서는 재판의 권위를 지닌 공동의 우월자(재판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와 구별된다(같은 책, 19절).
18) ?“윤리 주체의 확대와 관련된 덕목으로 말하자면,?단체나 조직의 윤리로의 확대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상호존중의 덕을 길러 나가야 하며,?새로운 의미의?‘관용’의 형성이 필요합니다. 18세기에는 그것은 남의 종교를 용인하는 것으로 확대되었습니다.우리는 한걸음 더 나가 타인의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에 대한 용인으로까지 그것을 확대해 가는 것이 공존의 원리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비로 여기에서 새로운 덕으로서의?‘이방인에 대한 사랑’이 성립합니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간은 무원칙이 되고,?서로 헐뜯는 정도를 낮추어 일시적으로 타협을 즐길 뿐이며,?머지않아 이해를 달리하여 서로 다투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때문에 휴머니티(인간성)에 입각한 보편적 윤리의 가능성의 근거로서,?가치의 형이상학의적 사색을 심화시켜야 합니다.”?이마미치 도모노부,?『에코에티카』,?정명환 역?(솔, 1994),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