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주술은 나의 일상에 숨어있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박종택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

 

방사능비가 내리는 아침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그건 희곡의 제목이고 나는 날씨에 따라 변하는 존재로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비가 오는지의 여부 정도는 몸으로 느낀다. 그것은 때로는 슈퍼컴퓨터와 인공위성에 의지한 일기예보 보다 정확하다. 늙어서 그렇다고?

개구리가 많았던 시절, 개구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울고, 제비가 낮게 날면 농부들은 논의 물고를 터놓았고, 어머니는 아침에 종달새가 높이 나는 것을 보고는 2km 거리에 있는 학교로 향하는 나의 등하교 길을 걱정하지 않으셨다. 기상과학을 공부하지 못한 나의 어머니와 농부들의 예측이 미신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개구리의 피부가 습도에 민감하고 대기의 기압에 따라 새와 헬리콥터의 비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비를 느끼며 일어나서 일본 원전사고와 오늘 강우의 연관성에 관하여 인터넷을 검색한다. 결론은 ‘인체에 해롭지 않으니 비 맞지 마십시오.’라는 전문가의 유능한 견해다. 어느 신문사를 막론하고 본질 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기사화 할 뿐이다. 넝마를 시간과 돈을 주고 구매하는 현실이다. 물론 나는 넝마를 돈 주고 사지는 않지만 가끔은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아이가 응아가 급하다고 할 때마다, 그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며 신문을 활짝 편다. 물론 이쯤에서 오감을 넘어 예지 능력과 예감이 발달한 분이라면 식사직전에는 이런 ‘응아’ 이야기가 나오는 글은 절대 읽지 않으리라 믿는다. 각설하고 화장실에 앉아 배설의 쾌락을 만끽하며 시원한 결정을 내린다. 강우에 의한 방사능 피폭의 유무에 관계없이 하루 종일 불안해할 수도 있는 아이 엄마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기 위하여 아이의 유치원 등원을 거부한다. 오늘 하루 더불어 놀아줄 아이들과 집단놀이가 사라지게 됨을 예감한 아이가 아빠에 집착하며 출근을 저지한다. 나는 자본주의와 느림의 미학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 전쟁놀이를 선택한다. 점보블럭으로 성을 쌓고 나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아이는 파워레인저 가면을 쓴 뒤 매복과 기습을 반복하던 두 시간 동안의 전쟁에서 아이를 두 번 울리고 밥상 앞에서 평화협정을 제안한다. 경제 논리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나의 행동은 혀를 찰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오늘 아침의 두 시간은 훗날에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며 회고할 때 감미로운 행복으로 기억되는 좋은 시간이리라 믿는다.

 

점심시간에 본 미술작품에 대한 소고

친구와 함께 방사능 낙진이 우려되는 빗속을 뚫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살림집을 개조한 식당의 방을 보니 사방에 집주인이 취미로 그렸다는 그림이 가득하다.

함께 한 친구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교단에 섰다가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했던 관계로 이야기 소재가 궁색하지 않다.

“이 분은 대범한 사람은 아닐걸. 여백을 두려하는 것을 보니 소심하고 꼼꼼하되 사람은 좋을 것 같아.” 라고 말을 건넨다.

“학식이 많지는 않으나 시골 선비 같은 사람일걸. 정통 미술을 가르치려면 힘 좀 들어야 할 걸.” 하고 말을 받는다.

잠시 후 음식을 내어 온 주인장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까 둘이서 나누었던 대화와 다를 바 없이 ‘굽히지 않되 불친절 하지는 않은 소박한 분’이시다. 점심을 맛있게 들고 나서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료증과 명분 없는 봉황무늬 새겨진 감사패 무리를 살펴보고 밖으로 나온다.

친구가 끽연을 즐기는 사이 어제 마신 주님의 은총으로 발길이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을 살펴보니 생각해서 꾸민 물건들이 치워 버려야 시원 할 상황이다. 이 식당에 걸린 여백 없는 그림들과 주인에게서 느낀 인상, 오직 한 기관에서 발행한 수많은 수료증, 화장실의 불필요한 물건들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점심시간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물을 보면서 생물학적 시각으로 보이는 그 자체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몰고 식당을 벗어나면서 오만방자하게 오늘날의 미술을 들었다 놓는다. 기능은 있지만 예능은 없고, 학력은 있으되 학식은 없고, 수업은 있으되 교육은 없는 자들이 미술교육의 전방에 서서 유해한 방사능을 살포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현실의 출처는 미대 입시제도에서 그 근본을 찾고 싶다. 홍익대 미대가 수년전부터 입시 제도를 변경하기는 했지만 미대 입시의 실기고사는 석고 데생이 중심이다.

오늘날 석고 데생으로 미대 입시를 치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미대 지망생들은 고등하교 내내 석고상만 바라보다 대입 실기고사를 치르게 되고 대학은 석고 데생의 숙련공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양성된 기능공이 강단에 서게 되면 ‘美術’의 개념부터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술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뛰어난 상상력과 발상의 참신함이지 기능이 아니다. 기능은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전시장에 서서 <무제>라는 제목 앞에서면 경멸과 분노를 느낀다. 그 작품을 제작한 본인도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의도를 품고 진행되었는지를 모른다면 핵물리학자가 방사능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정신병자가 변기를 묶어 끌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만든 사람도 무엇인지 모르는 <무제>에서 관람자가 뭔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런 노력은 정신적 피폐를 불러오는 악성 방사능이다. 그림 자체에 제작 의도와 의미, 그리고 상징이 결여 되어 있다면 미술작품이 벽면의 벽지만도, 화장실 벽의 타일만한 의미도 없다는 말인가? 왜 대개의 사람이 미술에 관해서라면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 젓게 만드는가?

실제로 미술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술만큼 눈에 보이도록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예술이 없는 데도 미술은 뜻 모를 개념들과 추상적 관념만이 난무할 뿐이다. 각종 전시회도 그들만의 잔치로서 유파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축하를 받고 그들의 찬사를 듣는 행사일 뿐이다. 일반인들에게 곤혹스런 그림을 걸어 놓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것은 잔칫집에 오기 전에 먹을 것을 싸서 오든가 굶으라는 논리다.

 

내 주변 그림과의 주술적 소통

점심식사로 목구멍에 풀칠을 한 후, 나의 직업인 풀칠을 위하여 작업장으로 돌아온다. 나는 현재 표구(일본말이다. 우리말로는 장황, 장배, 표장, 배첩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어(死語)에 가깝다.)와 액자(이것도 일본말이다.) 제작으로 인해 진정한 풀칠을 하며 산다. 고객이 그림 선택의 조언을 구하면(어차피 듣지 않을 것이면서), 자신의 눈을 믿고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라이벌인 부자 친구의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은 잊으라고 권한다. 그 친구가 돈이 많은 것이지 안목이 높은 것은 아니니까.

 

그럼 전시장에서 그림을 감상 할 때 어떻게 보아야 잘 보는 것인가?

아내를 고를 때 옆집 남자의 눈으로 고르고, 남편을 고를 때 위층 여자의 시선으로 골랐는가? 마음으로 보라, 자기중심으로 보라, 내 영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라. 좋은 것은 좋고, 좋지 않은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모든 작품에 동일한 시간을 배려하지 말라. 모든 친구와 똑같이 친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는가? 마음이 이끄는 작품에게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자. 이성이 마음에 들 때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바라만 보았는가? 친구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가? 전시장에는 큐레이터와 작가라는 친구가 그대를 돕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다.

 

그림 구매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옷을 구매할 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게 된다. 그 옷을 입으면 단아해 보이기 때문에, 또는 듬직해 보이기 때문에, 섹시해 보이기 때문에, 경쾌해 보이기 때문에, 세련되어 보이기 때문에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까닭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옷이란 편하고 따뜻하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이 옷 색상은 더워 보여, 이 옷 스타일은 추워 보여’ 정도는 따져보기 마련이다.

그림 구매도 말 그대로 구매다.

우리는 과시용으로 더운 나라에 살면서 밍크코트를 구매하고 3,000켤레의 구두를 사서 모았던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즐기고 느끼기 위하여 그림을 구매하는 것이다. 자신의 눈이 가장 현명한 감식안이다.

 

야심한 밤, 칼을 빼어든다

방사능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밤이다.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집어 든다. 수일 전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사훈으로 정했는데, 서예작품 보다는 독특하게 서각작품으로 걸고 싶다는 주문이 있었다. 그 주문에 따라 표피적인 감각과 알량한 수준의 손재주로 나무를 판다. 내 얄팍한 생각으로는 나무속에 숨어 있는 글을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서각작품인데, 나의 재주는 글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나의 감각과 감성이 부족하니 마부작침의 자세로라도 각을 해야 할 텐데 시장논리가 작용하여 도끼를 가는 것이 아니라 도끼날만 갈고 만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작품의 상업성, 작품의 환금성이라는 단어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몇몇 친구들은 나를 보고 작가가 아닌 잡가(雜家)라 부른다. 고객에게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고 가액(價額)과 임금을 받는 상업성이 뚜렷한 잡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 하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어차피 요즘 세상은 작품의 질과는 별 상관없이 풍부하고 번뜩이는 상상력과 감각적 문장을 구사하고, 세련되고 현란한 말재주를 소유한 사람이 작가여.”

“예술은 하나의 형식이나 내용으로 정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야. 예술의 불확실성이 또 다른 예술적 행위를 이끄는 원동력이야.” 하며 내 귀도 못 알아들을 소리를 내 입으로 중얼거린다.

각이 끝나고 아크릴 물감을 짜기 시작한다. 원래 의도는 금분을 사용할 예정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시장성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몰아낼 시간이다. 간단히 날려 칠하고 인테리어 수준으로 마무리 한다. 이 때 쯤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려야 한다.

“의뢰하신 분께서 원청회사가 부도나는 통에 여러 번 사업에 실패하시고 ‘이번이 마지막 재기의 기회일 것 같다’고 했으니 기를 돋우는 주술적 의미에서 강렬한 빨강색을 써 봤어.” 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 그런데 왜 이 순간 ‘예술은 사기다.’ 라는 백남준씨의 말이 떠오르는 거지? 그건 그렇고 어제 술 마신 것이 24시간도 넘었는데 왜 서각 하는 내내 방귀가 계속 나오는 거야? 일본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의 영향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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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김융희 지음, <예술, 주술적 세계와의 소통>(책세상 펴냄>에 관한 박종택 책익는 마을 촌장의 글입니다.

비극에서 희망을 줍는 광대, 안병대 [청춘의 서재]

연효숙 (아주대 연구교수)

 

어두운 무대 한 귀퉁이, 비탄에 잠긴 여배우가 핀 조명을 받으며 주저앉아 있다. 삶의 전부라 여겼던 연인과 이별한 뒤 반쯤 정신을 놓은 듯 보인다. 힘없이 혼잣말을 내뱉던 여배우는 점차 분노와 허탈감, 애증과 모멸감에 몸을 떨며 격앙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격한 대사를 토해내다 끝내 실신하는 장면이 이 연극의 절정이다. 나는 여배우로 분장한 딸의 눈에서 순간 ‘번쩍!’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배우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 안 돼.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야지.. 조바심으로 입이 마른다. 절규하며 쓰러진 여배우, 그리고 암전.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이어지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끝내 눈물 흘리지 않은 채 슬픔과 고통의 연기를 해낸 딸이 자랑스러웠다.

 

청년 ‘햄릿’을 만나 평생의 인연 ‘셰익스피어’를 끼고 살다.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안병대 씨의 말처럼 ‘연극은 지독한 중독’이다. 무대 중독에 빠져 지내던 딸과 가슴 졸이며 함께 울고 웃었던 어미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어린 십대의 딸이 혹독한 연습을 견뎌내며 수없이 오르내리던 무대, 그것은 땀과 눈물과 고행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적 같은 체험이었다. 한바탕 꿈을 꾸듯이 나를 잊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펼치고 나면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져 내리는 무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곳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날개 없이도 날아다닐 수 있는 꿈과 상상의 세계이다. 그 무대에 서 본 이, 그 무대를 만들고 꾸민 이, 무대에서 함께 호흡해본 모든 이들은 기꺼이 이 중독에 함께 빠져든다.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며 조용한 발걸음을 이끈 저자는 어느새 훌쩍 무대 위로 뛰어올라 광대로 변신해 있었다.

이 책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독한 인연은 운명’인가 보다

안병대 씨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대학시절 야학활동을 하며 만난 ‘햄릿’은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에 금방 잡히지도 않았고, 연하기도 강하기도 달기도 쓰기도 떫기도 맵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날 이후 30년 동안 껴안고 산 셰익스피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독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햄릿’을 만나 처음 맛 본 인생의 온갖 맛과 냄새와 감촉은 청년 안병대에게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으로 각인되었을지 모른다. 유한하고 변덕스런 인간과의 첫사랑이 아닌 자기 생애의 첫 궤적을 뚫고 들어온 강렬한 체험이기 때문에. 나무 주걱으로 엉덩이를 맞아가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땀과 눈물로 익히고 올라선 소녀의 첫 무대, 나의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헌납해 버린 문고판 명작선 50권과의 만남, ‘햄릿’을 만난 저자의 떨림이 나의 추억 속에서도 파문을 일으킨다.

 

원형극장의 회전 무대 관람하듯 입체적인 내용 전개, ‘희망’의 다른 이름, 셰익스피어 비극

저자는 셰익스피어에게 고리타분한 학술적 접근으로 다가서지 않고 400년이란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연출가이자, 배우, 작가, 관객의 입장에서 친근하게 소개한다. 특히 ‘성격 비극’이라 명명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세계로 이끌면서 황홀하고 거친, 그렇지만 발을 빼고 싶지 않을 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숲으로 과감히 이끈다.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독자에게 저자의 이 같은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친근하다. 마치 무대 전체가 회전하는 원형 극장에 앉아 무대의 뒷면까지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관객의 속마음을 꿰뚫는 노련한 솜씨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중세 연극에 빠져들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다’라는 프롤로그의 소제목에서 저자가 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몰입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총 37편의 희곡, 4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를 남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작품 중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4편의 비극을 추려낸 저자는 꿈을 빌어 셰익스피어의 말을 옮긴다. “우주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은 완전한 선이지만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언제나 선이 이길 수는 없다” 지뢰처럼 널린 악에 의해 선도 함께 폭발하고 폐허가 된 우주는 새로운 선의 질서로 다시 세워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법칙을 전하면서 저자는 선이 제물로 바쳐지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토록 강렬한 비극의 세계가 슬프지만 우울하지 않고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어서 비극에 사로잡힌다고 덧붙인다. 나는 이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비극이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셰익스피어는 도대체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본 것인가, 악한 존재로 본 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이끌고 저자는 다시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직접 답을 찾아보라고.

 

‘햄릿’, 중세를 걷어내고 고통스런 인간의 삶 투영하다

‘햄릿’은 표면적으로는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존재론의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엄숙한 소명을 스스로 짊어진,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114쪽)였던 ‘햄릿’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진실인가를 묻는 자였다. ‘햄릿’은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아서 세상의 악에 맞서 복수를 꿈꾸다 허망하게 쓰러지는 유약한 청춘으로 그려진다. 그는 세상도, 여자도 모두 역겨울 뿐만 아니라 복수를 꿈꾸더라도 마음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완벽주의자이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고뇌하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그는 그대로 중세시대의 인간이며, 셰익스피어 자신이기도 하다. 16세기 중세의 화두는 ‘신’에 맞서는 ‘인간’의 성찰이 아니었는가. “마음속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고 엉뚱한 생각일랑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지 마라.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시비판단은 삼가야 한다”(83쪽)는 ‘플로니어스’의 대사가 운명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는 ‘햄릿’을 조롱한다. ‘햄릿’은 인간의 비극이 ‘신’과 ‘인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원형이다. 저자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고통스런 삶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고통의 삶이 ‘시지프스’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의 삶 자체라고 덧붙인다.
‘죽이고 사랑하리라’ 핏빛 사랑의 파국, 천성만 남은 ‘왕’과 ‘광대’는 다를 바 없다

“앞으로는 슬픔이 사랑에 따르리라

사랑은 의심에 사로잡혀

시초는 달콤해도 끝내는 쓴맛으로 변하리라” (<비너스와 아도니스> 1136-1138행)

비너스의 구애를 뿌리치고 죽음을 맞은 아도니스가 자줏빛 아네모네로 핀 것을 보고 비너스가 한 예언이다.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한 저주는 없을 것이다.

‘죽이고 사랑하리라’는 ‘오셀로’의 소제목은 비너스의 저주보다 더 짙고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긴다. 사랑 자체가 인간을 짧은 행복과 긴 슬픔, 그리고 때때로 피할 수 없는 비극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믿으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걷어치운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질투와 의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인 ‘오셀로’, 한순간의 광기에 휩싸여 평생토록 사랑한 아내를 목 졸라 죽인 철학자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98~1990)가 문득 겹쳐진다.

흑인 장군이었던 ‘오셀로’의 불같은 성격이 지고지순한 백인 아내 ‘데스데모나’와의 역설적인 사랑을 비극으로 몰아갔지만, 오히려 이들의 파격적인 사랑을 등불 삼아 현대인의 얕고, 약은 사랑을 들추어보게 된다. 나이도, 신분도, 조건도 뛰어넘은 이들의 사랑은 끝내 간교한 ‘이아고’에 의해 파멸의 쓴맛을 보았지만 21세기의 사랑은 시작부터 달콤하지도, 조건을 뛰어넘지도 않기에 방해받지 않고 안전하게 이어진다. 쓴맛을 보지 않는 사랑의 씁쓸함이 더 오래 남는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파탄에 빠지는 가장 불우한 왕 ‘리어 왕’이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사랑하는 부모에 비해 효도하는 자식이 턱없이 희소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오죽 충성스런 신하, 효도하는 자식이 없었으면 ‘충효’라는 덕목을 유교의 첫째가는 가치로 내세웠을까하는 삐딱한 시선이 생기기도 한다. 백두난발을 하고 광풍 속을 미쳐 날뛰는 ‘리어 왕’을 보면서 죽을 때까지 오래 오래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한 희망을 보는 듯해 서글퍼졌다. ‘늙음’은 약한 인간을 더욱 비굴하고 나약하게 만드는데, 그것조차 인정하지 못한 ‘리어 왕’은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하고 나이 먹은 댓가를 가혹하게 받은 셈이다.

“모든 것을 다 주고 타고난 천성만 남았으니, 왕이나 광대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195쪽)라고 조롱하는 광대의 목소리, “노인이 쓰러지면 젊은이가 일어서는 법이지”(206쪽)라고 내뱉는 에드먼드의 대사가 인생의 비정함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숨도 멎지 않은 부모의 곁에서 물려받은 재산 다툼으로 혈안이 된 자식들을 보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양의 ‘양심’과 이리의 ‘욕망’을 지닌 나약한 인간, 무사는 시대를 바꾸고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

어느새 ‘맥베스’를 공연하는 극장으로 우리를 인도한 저자는 셰익스피어와의 대화로 압도해나간다.

 

셰익스피어에게 묻는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가 없답니다.”

또 묻는다.

“희망은 없습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양심이 있습니다.”

악마 맥베스가 웃는다. (269쪽)

 

저자는 또 맥베스에게 묻는다.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것인가요?”

“양심은 양처럼 온순하고 욕망은 이리처럼 사납소” (276쪽)

왕의 살해에 동참하여 함께 손에 피를 묻혔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맥베스’. “인생이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무대 위에 있는 동안은 뽐내고 떠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읊조린다. 인간의 생에 대한 통찰이 저절로 묻어나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가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무대 위에서 뽐내며 떠드는 인간의 유형을 ‘무사’와 ‘광대’ 두 유형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무사는 세상을 움직이나 광대는 무사를 움직인다. 무사는 시대를 바꾸지만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는 말로 에필로그를 장식한 저자, 그는 진정한 ‘광대’를 꿈꾸는 자이며, 위대한 ‘광대’였던 셰익스피어를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참담한 비극 속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광대’

인간을 꿈의 세계로 이끄는 무대, 그 무대를 제멋대로 활보하며 주인공을 빛나게도 하고, 날카로운 유머와 조롱을 날리며 관객을 손안에서 쥐락펴락하는 ‘광대’. 세상을 무대로 삼고, 인간을 배우이자 관객으로 삼아 4백년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광대 셰익스피어를 만나게 한 또 한 사람의 광대, 그는 저자이다. 무겁고 암울하고 참담한 비극을 소재로 한 무대를 순회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보게 한 저자의 수고로움이 광대에 버금간다.

주인공인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악한 여자들을 등장시켜 페미니스트들을 열 받게 했을 법한 중세인 셰익스피어의 한계는 동시대 조선에서 횡행하던 ‘여인잔혹사’를 떠올리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 오히려 중세도, 근대도, 현대도 한참 지난 21세기 한국에서, 강요된 술 접대와 성 접대로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의 속절없고 어이없는 이야기는 과연 몇 등급의 비극에 속하는지 셰익스피어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 여배우의 복수는 ‘햄릿’의 복수보다 더 실현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이집트의 독재자 ‘카다피’를 보면 아직도 세상은 ‘무사’의 차지인 것만 같고, 일본이 당한 참혹한 비극 앞에서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망설여진다. 이 악물고, 두 눈 질끈 감고 버텨도 더욱 모질고 독해지기만 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장악하는 비극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어 기어이 ‘희망’을 끄집어내라고 말해 주는 셰익스피어가 그립다.

나에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갖는 의미란? 6-① [色 다른 책읽기]

김택중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강사)

 

어린 시절의 화두 ‘진화론’

명색이 서평이니만큼 서평 대상 도서에 대한 소개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아마도 보편타당한 전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진화’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내 어린(어리석은) 시절, 화두나 다름없었던 것이 바로 이 ‘진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득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글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려 하는 점,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미리 양해 구하고자 한다.

나름 철이 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어렸던 고등학생 시절, 그 때까지 세상살이에 무슨 심각한 불만이 없던 나에게도 마침내 ‘의문’이라는 것이 하나 생겼더랬다. 딴에는 꽤 진지한 의문이었는데, 생물 교과서를 읽다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이 실려 있음을 포착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즉, 19세기에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생물은 오직 생물을 통해서만 이어진다는 생물속생설이 확립된 뒤로 자연발생설은 폐기되었다는 설명에 이어 그 유명한 ‘밀러-유레이 실험’이 소개되더니 생명의 기원은 결국 자연발생적이라는 자가당착적인 내용이 등장했던 것이다. 앞에서는 자연발생설을 실컷 오류라고 선언해 놓고 바로 뒤에서는 다시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니?!!

물론 지금은 이 앞뒤 맞지 않는 모순된 설명이 모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도대체 이 모순을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혜성처럼 내 앞에 출현한 것이 소위 ‘창조과학’이었다. 집안이 3대를 이어 내려온 통짜배기 기독교도(신교도) 집안이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자연히 습득한 기독교 문화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간 알게 모르게 신앙의 갈등을 겪었던 나로서는 과학적 증거가 기독교 신앙과 성경 기록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이 제2의 복음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요컨대 창조과학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된 ‘밀러-유레이 실험’은 거짓과학일 뿐이므로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사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도 책에서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듯이 신앙은 신앙 차원에서, 과학은 과학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19세기 말 개항 이후 수입된 기독교의 주류가 하필 ‘성경 무오류성’을 끔찍이도 챙기는 미국 보수교단들의 기독교였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면 발단이었다. 이들 교단은 성경의 기록이 모두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신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므로 내용상에서도 오류가 전혀 없다는 이른바 ‘성경 문자주의’를 개인 신앙의 진실성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으로 삼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경의 문자적 기록에 집착했다. 그러므로 신이 세상을 창조했음을 엄숙한 어조로 선포하는 성경의 첫 장에서부터 벌써 이들은 굳이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과학적 사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듯이 개항 이후 20세기에 접어든 뒤로도 한국에서 진화론 자체가 본격적인 학문적ㆍ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로 진화론은 우파적인 진보주의의 자장 안에서 장려되기까지 했으며, 서양 문명의 압도적인 우세 가운데 기독교도들에게조차 자명한 과학적 사실로서 불가피하게 수용되었다. 반면 성경 무오류성 신학에 기초한 기독교 보수교단들은 20세기 초 미국의 성경 문자주의자들, 즉 근본주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분리주의 노선을 선택하여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개인 신앙을 추구하는 쪽으로 후퇴해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이 역전되어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도들이 공세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즈음이었다.

 

창조과학에서 과학으로

1980년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일단의 한국 기독교도 과학자들이 미국 창조과학계의 대부 격인 헨리 모리스 등의 영향 아래 창조과학의 세례를 듬뿍 받고 귀국한 시기였다. 이들에 의해 성경 문자주의는 과학이라는 날개를 달고 의도치 않은 재부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접적으로는 미국의 창조과학계를 주도한 이들 상당수의 신학적 성향이 문자주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이─물론 선량한 의도에서 비롯되었겠지만─전국의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간증 형식을 빌려 정력적으로 창조과학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기독교도 대중은 이들의 공세적인 ‘과학적 간증’을 경청하면서 크게 안심하였고, 안심하면 할수록 거꾸로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와 오해의 폭은 넓어져만 갔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과학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창조과학이 나름의 방식으로 한국의 과학계에 기여한 바가 있음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간 자명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던 생물 진화를 한 번쯤 의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본의 아니게 창조과학측이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진화론은 창조과학자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공식 석상에서 단 한 차례도 부정되었던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창조과학이라는 종교적 프리즘을 통해 비로소 재조명되었고, 또한 각성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이는 그만큼 한국 학계의 진화론에 대한 이해 수준이 피상적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1988년 국내의 한 TV 패널토론에 출연하여 진화론측 토론자들에게 맹공을 퍼붓고 이들을 수세로 몰았던 창조과학자들의 전투적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럼에도 어쨌든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유사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사실로써도 쉽게 반증이 된다. 즉, 창조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독교도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도여야만 창조과학을 수용할 여지가 생긴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자청해서 창조과학을 수용하거나 나아가 창조과학자가 된 사례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진화학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비기독교도나 무신론자의 입장을 취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전혀 없다. 성경 문자주의를 신봉하지만 않는다면 설사 기독교도라 할지라도 무리 없이 진화학자나 진화론자가 된 사례를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생물학자 전방욱이 바로 그러한 한 예이다.

창조과학측이 공격했고 무디어진 검이나마 지금도 여전히 휘두르며 공격하고 있는 진화론은 기실 알고 보면 허버트 스펜서류의 우파적 논리, 즉 사회진화론으로 각색된 일종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 찰스 다윈이 구상하고 제시했던 진화론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러나 창조과학측은 현재도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사회적 해악의 진원지로 진화론을 지목하면서 찰스 다윈과 진화론을 분별없이 비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창조과학이 이처럼 사회 전면에 등장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미국과 한국 밖에 없다. 미국도 그러하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까닭은 창조과학이 대체로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회의 세에 편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 걸쳐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에는 노골적인 근본주의 경향 대신 미국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복음주의라는 한층 세련되고 완곡해진 형태의 신학 사조가 등장하였다. 미국에서 이 복음주의는 레이건 공화당 정부의 집권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미국 사회의 기류를 타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복음주의가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를 기독교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형태로 발화되었다. 다소 느슨한 방식으로 전개된 이 비공식적이고 범교파적이었던 개혁 운동의 지도자들은 그간 사회, 즉 세속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교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적극적으로 사회를 수용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나아가 이들은 학문의 각 분야 또한 기독교의 시선으로 접근해 들어가 재해석하고자 했는데, 이 때 신앙의 과학적 정당성이라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 우연히도 창조과학이었다. 이는 복음주의자들의 상당수가 국내 창조과학의 출발점인 ‘한국창조과학회’와 어떤 식으로든 연계되어 있었던 데에 기인한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가 내부적으로 진화론 대신 창조과학을 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도들 상당수가 결과적으로 자연과학적 상식에 무지한 무리가 되어 갔다면, 그 사이 한국의 진화학계는 서구 학계의 논의들을 흡수하면서 차분히 내실을 다져 나갈 수 있었다. 이 책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사실상 그러한 내실화의 한 열매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진화 담론을 주도해 왔던 서구의 학자들이 아닌 한국의 각 분야 학자들이 찰스 다윈과 진화론을 소화해낸 상태에서, 그간 리처드 도킨스 같은 전투적 진화론자들의 논리를 지나칠 정도로 편식해 온 한국의 독자 대중에게 ‘변화(다양성)’와 ‘우연(무목적성)’을 핵심으로 한 진화론의 과학적ㆍ사상적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다. 다만 대담 형식의 책이므로 진화론이나 주변 학문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하기엔 다소 미흡하다는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다.

 

생명에 대한 존중

나는 애초 창조론에 대한 변증을 목적으로 진화론에 다가선 위인이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종교의 굴레를 벗어난 지금, 창조론은 아스라한 과거의 추억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사실 성경에 근거한 부동의 진리를 앞세워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완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자연의 일부 메커니즘을 초자연적 존재, 곧 신에 의탁하여 그때그때 해소하려는 입장이 과연 과학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지 나로선 의문이다. 그러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수사학적 차원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와 그닥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전지전능한 성경의 창조주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비유하는 나의 이러한 발언이 창조과학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을 전제로 한 과학’이 더 괴이하고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이는 ‘창조과학’이 ‘지적 설계’로 옷을 바꿔 입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과학적 설명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계속 변한다. 변하지 않고 정체돼 있으면 그건 이미 과학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정설에 기초하여 계속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과학 활동이 아니라 포교 활동에 해당한다. 창조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진화론은 변해 왔고, 지금도 논쟁을 거듭하면서 계속 변하고 있다. 이렇듯 진화의 메커니즘을 풀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 류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과학의 ‘자연주의’적 접근 방식은 지극히 정당하다.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동양철학자 김시천이 적절히 언급했듯이 자연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으로 보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자연주의 말이다.

끝으로, 주제넘은 짓 같지만 의학과 생물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진화의 메커니즘이든 창조의 과학화든 그 해명에 몰두하고 있는 분들께 바라는 것 한 가지 조심스레 언급하고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내 경험상 진화론자든 창조론자든 생명 현상을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개인적인 편견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공학 분야를 전공하신 분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진화론의 입장에 선 분들은 부지불식간 유물론에 기초하여 사람의 몸을 기계로, 창조론의 입장에 선 분들은 부지불식간 영육 이원론에 기초하여 사람의 몸을 썩어 없어질 것으로…. 그러나 내가 보기에 생명 현상이란 그렇게 쉽게 단정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생명 현상에 경이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가지는 놀라운 생명력과 인내력 때문이다. 자신의 탐구 대상에 대한 존중은 학자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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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섯 번째 책은, 최종덕 교수가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철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과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펴냄)으로 김택중(인제대 의대 연구강사), 강경표(중앙대철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백준수(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진화론, ‘좌우’의 두 날개로 날다 6-② [色 다른 책읽기]

강경표 (중앙대 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진화론에도 색깔이 있고 좌우가 있다!

과학에도 색깔이 있다. 정치판에서나 등장하는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가 과학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고, 아니면 과학계도 좌파, 우파를 따진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색깔이 없을 수는 없다. 과학이 항상 중립적이라면 그야말로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못하다. 특히 진화론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거의 독학으로 진화생물학을 공부해 왔다. 철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대학원에서 진화생물학 공부와 관련된 도움을 받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책 읽기부터 시작했다. 국내?외 여러 서적들을 읽으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국내의 진화생물학논의가 상당히 우(右) 편향적이라는 점이다. 한쪽으로 쏠린 저울의 균형을 위해서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진화생물학 논의도 있어야만 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야 말로 이 사회가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라는 책에 ‘진보적 혹은 좌파적 진화론 인문서(人文書)’ 라는 별칭으로 불러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식의 별칭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진화생물학에는 좌우라는 두 가지 입장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입장 차이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어쩌면 진화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정치적 논의가 포함된 진화생물학을 구분하는 일은 지금까지는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중의 관심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진화생물학 관련 서적들의 인기 속에 짭짤한 수익과 명성을 즐거워하며 진화생물학이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화생물학의 좌우 논쟁은 70년대 E. O. 윌슨의 <사회생물학>이라는 책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 책에서 생물학은 유전학이나 분자생물학 같은 생물학에서 분화되어 발전한 학문 영역을 아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분석하는 사회과학도 생물학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개체란 유전자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파격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한편 그 당시 미국에는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의 영향으로 생물학계에도 이념적으로 좌파를 선언하는 학자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R. 레빈스, R. 르원틴, S. J. 굴드가 대표적인데 레빈스와 르원틴은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기존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고, 다윈의 진화론과도 모순된다고 비판하면서 ‘변증법적 생물학’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 중 가장 잘 알려진 학자인 굴드는 생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고도 불리는데, 대중적 글쓰기에 능했던 그는 여러 종의 대중과학서를 통해 사회생물학이 지닌 정치적 위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진화생물학을 서구로부터 수입하고 연구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정치적 위험성을 알리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는 못했다. ‘제 얼굴에 침 뱉기’라도 되는 듯 흉이 될 만한 것들을 숨기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치장을 그만두고 반성의 첫걸음으로 좌우의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때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의 좌파 진화생물학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작은 논쟁의 불씨를 당기다

내가 보기에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은 이러한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난 국내의 첫 저술이다. 물론 지금까지 색깔 있는 번역서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국내 학자가 펴낸 책으로서는 최초라고 본다. 5인의 특색 있는 학자들이 3년의 세월을 보내며 완성한 이 책은 분명 진화생물학 좌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최종덕, 임지현, 전방욱, 강신익, 김시천이 대담한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에 대한 첫 반응도 역시 이러한 색깔이 주목되어 나왔다. 2010년 8월 23일 출간 직후 나온 장대익 교수의 비판적 서평이 그것이다.

장대익 교수는 “진화론 제자백가… 다윈의 선택은?”(프레시안 2010. 8. 27)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좌파 진화생물학 진영에 대한 포문을 연다. 이 글에서 장대익 교수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진화론 논쟁이 이념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런지 이젠 좀 그런 비판에 무덤덤해지는 것 같아요”라는 말로 이 책이 가진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고 한다.

물론 장대익 교수의 비판적 서평에는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가 가진 문제점들 또한 비교적 잘 지적되어 있다. 일일이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이 완성되기까지 3년 동안 감수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러운 정도의 오기와 근거가 불명확해 보이는 수치들 그리고 논리적 비약이 있는 사실 관계들은 이 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정도는 아니다. 또한 지적한 내용들은 내가 보기에 모두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장대익 교수의 서평을 보면서 기대했던 것은 최종덕, 강신익 두 학자와의 열띤 논쟁이었다. 나만의 기대인지는 몰라도 이 기회를 통해 우로 치우친 진화생물학이 이와 다른 입장의 진화생물학이라는 무게 추에 의해 균형 잡힌 진화생물학으로 한국 사회에 뿌리내렸으면 하는 희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후학으로서 선배 학자들의 멋진 토론을 보았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그런 논쟁은 없었다. 하지만 논쟁의 불씨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 생길 수 있었다는 의미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성과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또 다른 좌파를 위하여

좌파 진화생물학이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 진영과 불편한 대화를 시작할 쯤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문제는 마르크스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문제는 이 책의 구성이 야기한 문제일 수도 있다. 실상 최종덕 교수는 과학철학자이고 임지현 교수는 역사학자이며, 전방욱 교수는 생물학자, 강신익 교수는 의철학자, 김시천 선생은 동양철학자이다. 대담집이라는 특성과 함께 5인의 각기 다른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과 결부된 진화론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구성이 다채롭기는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진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임지현 교수와 최종덕 교수의 대화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라는 시대 상황으로부터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임지현 교수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빅토리아 시대 이야기는 필자 본인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언급된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또 다른 이들이게는 불편한 점이 있었나보다. 유범현 선생은 “진화론, 변화의 과학이 세상을 말하다”(레프트21 40호 2010. 9. 11)라는 장문의 서평을 통해 “이 책의 대담자들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진화론 이해를 왜곡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 것은 분명 이러한 맥락의 반응이다.

대학 때 잠시 접해본 마르크스의 몇몇 서적들로, 나로서는 감히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좌파=마르크시즘’이라는 절대 공식이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또는 한국의 좌파들에게 마르크스가 상당히 신성시되는 상황에서 두 대담자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가 한국의 좌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 ‘좌파적 진화생물학 인문서(人文書)’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내 입장에서, 좌파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게다가 마르크스를 잘 알지 못하는 내게 임지현 교수의 논의들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면서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유범현 선생의 서평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임지현 교수가 유범현 선생의 서평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새로운 시도가 주는 즐거움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실 최종덕 교수와 강신익 교수가 ‘생태주의적 진화론’을 논한 부분과, 김시천 선생과 동아시아 전통 담론과 진화론적 사유가 함께 논의되는 부분이었다.

진화생물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도브잔스키는 “진화를 빼고 나면 생물학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진화생물학을 처음 접하던 시절 이 말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생물학에서 진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큰 것인지 그 당시에는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강신익 교수의 의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와, 아직은 조금 거칠게 보이는 ‘생태주의적 진화론’이라는 개념은 도브잔스키의 말 만큼이나 묘한 매력이 있다. 사실 나는 ‘생태주의적’ 이라는 수식어가 이미 진화생물학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극적으로 수식어를 붙임으로해서 진화의 지평이 좀 더 명확하고 균형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생태’ 라는 말을 통해 개체의 진화생물학이 아닌 전체의 진화생물학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단연 동양철학자 김시천 선생과의 대담 부분이다. 과학이나 서양학문을 전공한 다른 대담자들과 달리, 과학자도 아니고 서양 학문을 연구한 학자도 아닌 김시천 선생의 대담을 보며, 나는 인문학자의 길을 다시금 생각한다. 학문의 기준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구조로 양분된 사회에서 김시천 선생의 시도가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교육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생각을 바꾼 터였다. 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느 날 한국철학사에 관한 저술을 읽다가 목차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없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국철학사에는 한국의 현대철학이 없었다. 실학에서 끝나버린 한국철학사, 그 때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서양의 현대 철학자가 지껄이는 뜻 모를 소리를 부러워하며 책을 읽어대고, 지껄여봤지만 정작 내가 속한 사회의 현대철학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현실을 마주한 순간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김시천 선생의 대담을 유심히 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동양철학에 대한 파격적인 재해석과 당당함, 진화론과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나가려는 의지, 이것이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통해 본 김시천이다.

 

진화론, 이제 좌우의 두 날개로 날 수 있었으면!

내가 다윈을 만난 것은 10여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 윤리를 전공하고 싶어 석사과정을 시작했지만 본의 아니게 ‘칸트 철학’을 전공하면서 혼자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진화생물학 공부를 시작했다. 순수한 인문학도인 내가 거의 독학으로 해 온 공부이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장님이 코끼리 잘못 더듬으면 밟혀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석사를 마칠 무렵 공부에 대한 심한 회의가 들었다. 그 와중에 학교 공부와는 거의 별로도 읽기 시작한 몇 권의 책들 중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이라는 책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진화생물학 내부의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거리를 두게 된 것이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현재도 나는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주된 관심사는 진화론적 윤리학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공생, 협력 같은 공진화와 그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한 가지 고백하고 싶은 것은, 나의 공부과정에서 중요했던 그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라는 책의 번역자가 전방욱 교수라는 사실을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를 읽고나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전방욱 교수가 번역한 여러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하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당시 전방욱 교수의 번역서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공부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최종덕 교수를 굴드의 추종자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내가 최종덕 교수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저서를 통해서였다. 석사논문의 주제를 칸트의 공간 개념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리학에서 말하는 공간 개념에 관한 책들을 보게 되었고, 그 중 하이젠베르크의 얇은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의 번역자가 바로 최종덕 교수였다. 실제로 최종덕 교수는 물리학을 공부한 후 독일에서 양자역학에 관한 철학적 연구로 학위를 취득한 학자이기도 하다. 석사 이후 굴드의 책을 포함한 진화생물학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덕 교수가 독일 유학시절부터 진화론을 연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최종덕 교수는 자의든 타의든 한국 땅에서는 ‘좌파적’ 입장의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간에 내가 보기에 최종덕 교수는 최소한 자신이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의 깨끗하지 못했던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라는 과거를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몇 안 되는 지식인이다. 또한 진화생물학의 논의가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좌파 진화생물학의 무게 추의 역할을 이 땅에서 해 주고 있다는게 나의 소견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는 과학저술이면서 인문학 저술이다. 또한 대담자의 전공이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견해와 통찰이 녹이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무척 어려운 책이다. 또한 아직까지는 좋은 서평보다는 비판적 서평이 앞서는 글이기도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책이지만 진화생물학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불씨가 되어, 우리 학계와 사회에서 진화론의 넓은 담론 영역에서 좌우의 균형이 잡힌 학문적 논의가 살아날 수 있는 계기의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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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여섯 번째 책은, 최종덕 교수가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철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과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펴냄)으로 김택중(인제대 의대 연구강사), 강경표(중앙대철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백준수(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아니! 이런 만남이 있을 줄이야 6-③ [色 다른 책읽기]

백준수 (인천석남초등학교 교사)

 

인문학은 어떻게 진화론과 만나는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교훈을 담고 있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한다.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영화 중 제목으로 세인들의 이목을 끈 영화도 많다. 영화 제목이 참신하거나, 충격적이거나. 필자가 보기에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같은 영화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제목에서 풍기는 영화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지고, <마더>라는 영화는 제목을 <엄마>로 하지 않고 영어로 정한 것이 감독의 의도가 있음을 관객들은 쉽게 눈치 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방법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책 제목을 통해 지은이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책을 선택하는 독자도 많이 있다. 최종덕 교수가 네 학자와 대담하여 펴낸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가 그러한 경우라고 여겨진다. 책 제목만 보고도 책을 펴낸 의도와 내용이 명확하게 다가온다. 특히 “진화론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부제는 독자들의 시선 끌기에 더 효과적이다.

최종덕 선생은 진화론을 논의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진화론을 논의한 이유는 현대 생물학을 배우려는 게 아니라 그 사유구조의 인문학적 접근법을 찾는 데 있을 거예요. 우리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에서 어떻게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바로 궁극적인 방향이겠죠” (399쪽)

한국의 인문학을 대표할 만한 학자들이 진화론의 과학적 이해와 인문사회학적 의미를 비교 분석하여 밝히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동양철학도 진화론과 만날 수 있다니!

특히 동양 철학을 전공한 김시천 선생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비교한 부분은 매우 이채롭다. 서양 과학을 동양철학 입장에서, 그것도 과학 관점이 아닌 철학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점이그러하다. 다만, 진화론적 사유와 동양철학적 사유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 알의 작은 씨앗 속에 싹이 트고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는 생명의 잠재성이 담겨 있듯이, 인간 성선의 바탕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씨앗이 적당한 습기와 햇빛을 받지 못하면 온전한 나무가 될 수 없듯이 사람도 성선을 완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321쪽)

“고대 중국인의 사유 속에는 논리적 진리체계보다는 모든 사람이 경험적으로 공유하는 공통의 은유 체계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통해서 고대 중국적 사유를 복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죠. 그런 점에서 생물학적 사유구조와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322쪽)

동양철학 사유의 독창성이 자연현상에 은유하여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고 하여, 동양철학과 진화론의 유사성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진화론, ‘겸손의 과학’을 가르치다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은 유한한 생명의 시간 동안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왜 인간이 병에 걸리게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타당하다. 진화의학은 질병과 건강이 서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존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의 질서에 근거한 주장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자연을 정복하려 하거나, 종속시키려 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돌아오는 재난의 부메랑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강신익 선생이 주장하는 과학에 붙여야 할 수식어가 겸손함이어야 한다는 것은 의미 있다. 진화의학을 ‘겸손의 의학’이라고 한다면, 과학을 통해 이뤄낸 성과로 인간 스스로 오만함에 빠지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으리라.

“진화의 관점이 미래의 생명을 살리는 일과 직결된다는 것은 생각이 중요하죠. 다만, 진화의 방향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과학의 증세라고 봐요. 진화는 이상적인 상태를 향해서 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니까요.”(204쪽)

강신익 선생의 촌철살인 같은 말에 6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태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때 우리 사회는 감식안이 전혀 없었다. 사이비 학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혹세무민을 자행하고 있었다. 진화의 관점을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면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적 사유방식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창이 된다고 본다.

 

과학이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전방욱 선생은 황우석 사태는 과학이 사회적 가치를 왜곡한 전형적 사례라고 갈파한다. 유전자를 통해서 진화라든가 인간의 본성, 사회 현상을 해석하려는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체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면 인간 에 대한 존중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지금보다도 더 극단적 자본주의가 팽배해진다면 과학윤리에 기반을 둔 생명존중 사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 자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전방욱 선생은 진화론과 진보의 개념은 다르다고 말한다. 다윈의

[월례발표회 참관기] 김원열 선생의 ‘진보대통합에 대한 성찰과 대안’ 에 관하여

?[2011년 6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진보대통합에 대한 성찰과 대안
발표자: 김원열

 

김원열 선생의 ‘진보대통합에 대한 성찰과 대안’ 에 관하여

후기: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1.

한철연이 단체로서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국사회의 운동에 많이 기여해 왔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더구나 다양한 분파들의 활동에 각기 연계되면서도, 한철연 속에 심각한 분파적 갈등이 없이 서로 친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남들은 이것이 너무 혼란스럽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필자는 오히려 거꾸로 생각한다. 그런 분파적인 개입들 때문에 한철연이라고 내부 갈등이 없을 수 있었겠나? 하지만 그런 갈등을 잠재우면서 내부적인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철연 회원들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무엇이 바로 한철연의 철학이 아닐까?

한철연은 단순히 사회운동의 분파들의 통합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상이다. 사회철학 전공자들이 주축이 되어 출발했으나 한철연은 철학의 통일전선을 이룬 것은 이미 초창기에서부터이었다. 다양한 철학이 한철연 속에 함께 어울려 풍요함을 마련해 주고 있다. 고대철학, 실존철학, 동양철학,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최근의 탈포스트주의(라캉, 지젝) 등. 더구나 한국철학계의 고질 중의 하나이었던 지연과 학연의 한계도 그동안 과감하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한철연의 성과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필자는 거침없이 대답하고 싶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이를 넘어선다는 것, 그게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이라면 한철연이 바로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차이를 모른다면, 그것은 아직 잠들어 있는 무규정적인 동일성이다. 차이를 상대적인 차이로서만 인정한다면, 그것은 무기력한 무차별성이다. 한철연의 철학은 차이가 차이로서 조화를 이루는 통합이 아닐까? 마치 다리가 없는 사람과 눈이 없는 사람이 함께 가듯이 말이다.

2.

최근 이런 한철연의 철학이 후퇴하는 조짐을 보여 필자는 안타깝다. 사회 운동의 분파적 갈등이 한철연 내부에 서서히 축적되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가 서로 대화를 단절시키고, 서로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듯하다. 비웃음처럼 보이는 엷은 미소들이 떠돈다. 한철연과 더불어 활동해 오던 많은 철학도(비사회철학전공자)들이 어느새 멀리서 한철연의 활동을 관망하는 듯하다. 그런 둔중한 움직임의 반면에서 한철연 내부에는 특정한 경직된 목소리가 강하게 들려온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아직 충분히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우선 생각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사람들이 심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들고 싶다. 원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한쪽이 목소리를 높이면 다른 쪽은 슬금슬금 기어들어가게 마련이다. 그 결과 한철연의 움직임이 둔중해 진 것이 아닐까? 이제 이명박 정권 초기의 충격을 사람들이 많이 극복한 듯하다. 멀지 않아 경직된 듯한 목소리가 줄어들 것이고 다시금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고 활기 있게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필자는 이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런 점에서 한철연이 다시금 다양한 분파, 다양한 철학들 사이에 활발한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침 한철연의 월례발표회에서 분열된 진보세력의 통합을 위한 움직임과 관련해 발표회를 마련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철연 운영위에서 갑자기(?) 필자를 이 자리의 사회로 임명했다. 무조건적인 통합론자 중의 하나인 필자에게 기꺼이 사회를 맡긴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선택이 아닐 수 없어 필자는 며칠이고 고민해 왔다. 사회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저 하늘에 맡기고 사회에 임하기로 했다.

3.

필자의 기대와 달리 한철연 내부에서 이런 토론에 대해 냉담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참여인원이 기대와 달리 소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필자는 짐작할 수 있다. 통합을 거부하는 마음은 통합에 대한 토론도 거부하려 하겠지. 이런 짐작은 필자의 선입견일까? 그만큼 우리들의 마음이 서로 상했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 철학도들이 남의 얘기를 들어줄 생각도 못할 만큼 편협해졌단 말인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너무 아득하다는 느낌 때문에 필자는 암담해졌다.

발표자 김원열 선생은 ‘진보 통합 시민회의’의 공동대표이라서 그런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합의 움직임을 일어난 그대로 정리하여 주었다. 발표문의 내용은 그런 진행과정에 대한 보고서에 가까웠다. 그런 가운데 김원열 선생은 통합의 필요성과 방식에 관한 시민회의의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설명해 주었다. 김원열 선생의 발표에 따르자면 통합의 필요성은 바로 선거승리라는 목표와 직결되어 있었다. 선거에 참여한다는 것은 합법적인 진보정당의 불가피한 요구이고, 여기서 최대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권에 대항하는 단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 즈음해서 이루어지는 선거연합은 불안정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이룰 수 없다. 따라서 보다 안정적인 단합이 필요한데, 이 과정을 발표자는 두 단계로 상정했다. 하나는 바로 진보대통합이다. 이것은 아마도 계급(또는 민중)적인 단결을 목표로 하는 통합이다. 여기서 핵심은 곧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다. 물론 이 통합은 양자를 넘어서는 모든 진보주의자의 대통합을 목표로 한다. 이런 통합을 전제로 하여, 장차 일종의 ‘인민전선’(정치적 공동책임 즉 정책연대와 공동정부)을 형성하는 것이 다음 단계의 과정으로 상정되어 있는 듯하다.

인민전선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르주아 민주 세력(민주당)이 자신의 헤게모니에 한계를 느낀다는 말이 된다. 거꾸로 그만큼 민중세력이 정치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멀지 않아서 민중세력이 부르주아 민주 세력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역사적으로 서구는 이미 20세기 초에 이런 헤게모니의 이동을 겪었는데, 이제 한국사회도 이런 이동의 기점에 서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진보세력의 대통합은 헤게모니의 이동을 촉진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긴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4.

김원열 선생의 발표의 중점은 이 두 과정 가운데 우선적인 과정인 진보대통합에 있고,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결합에 있다. 재결합에서 논의의 중점은 널리 알려진 대로 두 가지라 한다. 하나는 북한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소위 패권주의의 문제이다. 김원열 선생은 이런 문제에 관한 충분한 통의가 이루어졌고 일정한 합의가 가능했으며, 남은 문제는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잘되어 갈 거라는 예상이다.

결론적으로 김원열 선생은 앞으로 진보통합의 관점을 세 가지로 제안했다. 하나는 단순하게 분열된 두 집단의 통합을 넘어서 모든 진보세력이 통합되는 대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장기적인 전망 하에서 통합이 이루어져야 공고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상층 지식인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이런 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열 선생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이순응 선생의 논점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순응 선생은 통합이 선거승리라는 어쩌면 진보주의자들의 전체 목표에서 부차적인 과정에 불과한 것에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를 의심한다. 설혹 이를 받아들이더라도, 선거승리를 위해 진보세력이 대중들로부터 정권을 위임받을만한 신뢰와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묻는다. 다시 말하자면 진보세력이 단독으로 승리할 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칙과 이론의 차이를 가진 진보의 두 세력 사이의 통합은 가능하겠는가 묻는다. 원칙이 없는 선거승리를 위한 통합이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이순응 선생의 논점은 다양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문제는 어쩌면 단순하다. 이미 진보의 승리를 위한 혁명적인 코스에 대한 논의나, 단독적인 선거 승리의 가능성에 관한 논의는 오래 전에 정리(해결이 아니라, 일단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순응 선생 자신도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문제는 거래를 통한 통합이 원칙이 없는 통합이라서 불안정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김원열 선생이 이미 통합의 장기적인 전망이라는 개념으로 암시했다. 다만 김원열 선생은 이런 장기적인 전망이란 현재로서는 오직 통합 이후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오히려 당면한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통합의 필요성이 통합을 더욱 현실적으로 할 것이라 본다.

결국 논점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겠다. 이론적인 차이를 가진 세력들끼리 통합이 가능한가하는 문제이다.

5.

필자는 사회자로서 이번 토론에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원칙 없는 통일이 가능한가하는 문제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필자가 제기했던 문제를 말해 보자. 먼저 전제할 것은 필자도 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손에 잡힌다면 답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하늘은 답이 없는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 것이니까.

사실 민중운동이 출현한 이래로, 민중세력의 두 집단이 부딪혀 왔다. 노동자와 농민, 프롤레타리아트와 소부르주아지의 대립이다. 이런 대립은 한편으로는 식민지에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며, 합법적인 현실주의와 혁명주의의 대립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당 내 엘리트층인 지식인층과 조직적인 대중의 대립이다. 이는 또 조직적으로 민주주의와 집중주의의 대립이기도 한다.

민중운동의 역사를 보면 이런 대립이 모든 역사에서 점철되었는데, 두 집단 사이에 대립이 없다면 그것도 무기력한 정당이 되며,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된다면 그 후유증은 파국적인 된다. 레닌 시대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마오 시대 소비에트노선과 인민민주주의노선의 대립도 그런 일환이다. 유감스럽게도 일제 시대 한국에서의 사회주의 역사는 이런 대립을 극복하지 못한 채 분열되어 결국은 종파주의 전락하고 말았다.

필자는 어떻게 본다면 지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과의 대립도 이런 오랜 역사적 분열을 이어받는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이런 분열이 각각의 집단 속의 구성원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 운동 자체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문제는 원칙적으로 분열은 불가피한데 그것을 극복하여 통합을 이루지 않고서는 민중운동은 한 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피한 원칙적 분열 앞에서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는가? 이런 자가당착적인 모순적인 문제가 우리 앞에서 심각한 철학적인 문제로 나서게 된다. 일제시대 조선공산주의자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필자 역시 고민스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6.

다행하게도 토론은 심각한 상처 없이 그저 문제를 자각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문제를 문제로 안다는 것만 해도 소크라테스가 늘 철학의 제 일보로 여기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이미 철학에서의 제일보는 디디게 되었다. 철학이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그 전에 역사가 움직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지면 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통합에 대해 낙관적이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민중운동의 통합이지 진보의 통합인가?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민중의 개념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진보신당이 나오면서 갑자기 민중 개념이 사라지고 진보라는 개념이 이를 대체해 왔다. 그런데 진보란 이념의 차원이 아닌가? 역사는 계급의 역사라는 관점을 지킨다면, 필자는 진보라는 말 대신 다시 민중이라는 말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경우 비로소 민중계급의 다양한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이념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평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청춘 [청춘의 서재]

김민수(건국대학교 강사)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오후, 내 초라한 서재의 맨 위 칸에 있는 오래 묵은 시집을 꺼내들었다. 오월의 철쭉이 작열하는 태양에 녹아 꽃대마다 축 늘어진 그 시절에 내 마음 속에 톱밥난로를 지펴주던 한편의 시, 대구의 어느 산자락의 병동에서 만난 전라도의 어느 문과대학을 다니던 국문학도가 암송하며 읊어주던 ‘沙平驛에서’(곽재구, 창작과비평사, 1983)라는 시를 펼쳐본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내리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가 본 시인은 참으로 따뜻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의 시에는 철과 철이 맞부딪쳐 쨍쨍 거리는 험한 세상 속에서도 한 송이 꽃, 한 포기 풀과 같은 생명이 살아 있으며, 온갖 거짓 구호가 난무하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울림이 있었다. 시인은 어두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며 잊혀져간 사람들 – 동명동 청소부 박득세, 권투선수 김득구, 스무살 첫사랑 영자, 대인동 창녀들, 엄경희, 조경남, 그리고 어머니 – 등을 하나 둘 씩 호명하며 그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 땅에 하찮게 널려 있는 들쑥 꽃, 칡 꽃, 달맞이 꽃 등과 돌각담, 소고기국, 개똥벌레 등을 그의 시에 담으며 그것들의 살아 있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뼈아픈 이 땅의 역사를 가슴에 품으며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시인은 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 “이 땅의 어둠 위에 닻을 내린 / 많고 많은 풀포기와 별빛이고자”(절망을 위하여) 했으며,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날을 기다리며,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 물먹은 풀꽃 한 송이”(바닥에서도 아름답게)이고자 했던 참으로 맑은 시인이었다.

빨리 가고자 하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낯설은 간이역 대합실에서 톱밥난로에 의지해 추위를 녹이는 사람들이 막차를 기다리는 풍경은 지금은 잊혀진 추억이 되었다. 완행열차가 사라지고 쾌속으로 달리는 고속열차가 생겨난 지금은 밤낮 없이 바쁘게 사람들을 이리저리 실어 나르고 있다. 정거장도 없이 직행으로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 보는 차창 밖의 풍경은 사물을 정지시켜 볼 수 있는 우리 눈보다 더 빨리 지나간다. 빨리 지나가는 풍경에 익숙해진 우리 눈은 우리 곁의 사람들과 사물들도 무심코 지나친다. 보다 깊게, 보다 자세히 보고자 하지 않으며, 지나가는 것은 숫제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우리의 생활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을 빨리 잊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아마 우리의 시대가 떨쳐 버렸으면 하는 아픔과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춘이 시대의 아픔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때라면, 시인은 그 아픔을 언어로 옮기는 사람이다. 청춘이었던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체험하며 그것을 따뜻한 언어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막차를 기다리는 간이역 대합실에서 시인은 송이눈이 내린 창밖 풍경을 보며, 톱밥난로에 의지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본다. 고단한 삶에 지친 꾸벅꾸벅 조는 사람과 쿨럭쿨럭 기침앓이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 모두들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라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난로에 의지해 시린 손을 녹이며 침묵하고 있다. 세파에 시달려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말없는 표정과 몸짓을 시인은 그의 언어 속에 담으며 내면에 담긴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한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청춘의 시절은 저마다의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자기를 발견하고자 여행하는 시기이다. 고향을 떠나온 청춘이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삶의 애환은, 산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때론 술에 취한 듯 살아가며, 가끔은 하루의 노동을 바꿔 마련한 봇짐 하나 들고 떠나왔던 곳을 찾아 간다. 나를 기억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여행을 떠나는 청춘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의 모든 곳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고향일 것이다. 억압하는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 청춘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희망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만만하지 않고, 세상이 녹녹하지 않기에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사는 청춘은 세상을 향해 외치며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청춘이라면 마땅히 침묵보다는 세상을 향해 소리쳐 외치는 것이 어울리지만, 고단하고 긴 여행에 지친 청춘들은 희망보다는 체념을 먼저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청춘들을 향한 세상의 숱한 교훈들은 그것이 인생이라고 가르친다.

고향을 떠나 타지의 변방을 돌고 있는 나는 조그만 간이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청춘이다. 지나간 상처의 흔적이 아물어 아픔과 고통이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갈 즈음에 나의 청춘의 여행도 서서히 끝날 것이다. 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가슴 치는 아픔과 고통이 머리 위로 올라가기 전까지 일 것이다. 그 때 즈음이면 내면의 할 말은 가득해도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의 아픔과 고통이 머리 위로 옮겨 가면서 청춘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지만, 때때로 찾아오게 될 두통은 나의 아픈 청춘이 잊지 말고 자신을 기억하라고 보내는 메시지일 것이다. 언젠가는 햇볕이 밝게 드리우는 고향의 언덕으로 창을 내고 맑은 냇물을 떠서 차를 다리고 즐겁게 손님을 맞이할 것이라는 약속을 잊지 말라는 청춘의 메시지. 그 약속을 지킬 때 즈음이면 아마도 지금 빠지고 있는 나의 머리칼도 다시 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때가 되면 언젠가 단오 날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듯이 나는 나의 아픈 청춘을 흐르는 시냇물에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청색의 화려한 줄무늬를 달고 고속열차는 어디로 급히 가는지. 오늘도 차장들은 고단함에 지쳐 힘겨운 청춘들을 불러 줄 세우고 한 가득 열차에 담아 기적 소리도 없이 달린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고속열차는 어디쯤에 저 청춘들을 내려놓고 마지막 숨 가쁜 기적을 울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오후, 내 서재가 있는 창밖으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짙은 색으로 뒤 덥힌 급류를 유영하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나뭇가지와 풀들을 본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아직 다하지 못한 나의 청춘과 이별해야 할 것 같은 나는 대합실이 사라진 간이역을 생각하며 아직 오지 않은 막차를 기다린다. 시인이 톱밥난로 속으로 던진 한줌의 눈물의 의미를 기억하며.

위키리크스! 너는 누구냐?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원진호 (책 익는 마을 회원 / 원진호내과원장)

같지만 다른 책

나는 우연한 기회에 다루는 대상이 같은 두 가지 책을 읽게 되었다. 그것은 최근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비밀정보자료 공개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이다. 한 책은 지식갤러리에서 나온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이라는 제목이고, 다른 한 권은 21세기북스에서 나온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앞 책의 저자는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이다. 그는 위키리크스 창시자인 줄리언 어산지와 함께 초창기부터 활동했고 다니엘 슈미트라는 가명을 쓰면서 주로 독일지역을 담당하고 대변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어산지와 불화를 겪고 조직을 탈퇴하며 쓴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에서 풍기는 바와 같이 그 간 비밀에 쌓인 위키리크스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을 자세히 밝히는 한편 어산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또 다른 책의 저자는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인데 이들은 독일의 슈피겔 기자들이다. 그들은 위키리크스의 활동을 지켜보고 혹은 작업에 참여하면서 폭로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와 반응까지 저널리스트답게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니엘의 책은 조직의 내면을, 슈피겔기자들의 책은 조직의 외연을 보여준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두 책을 동시에 읽어 가면서 저자들의 주장을 쉽게 자기화하는 오류를 피해 갈 수 있었고, 위키리크스가 갖는 정치, 사회적 의미를 풍부하게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핵티비스트들의 존재

먼저, 위키리크스를 통해 나는 핵티비스트(hactivist = hacker + activist)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보통 해커는 남의 컴퓨터에 무단으로 들어가 정보를 빼앗는 범죄적인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다. 액티비스트는 ‘정치운동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권력에 대항하여 민주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해커가 자신의 기술을 진보적인 정치활동에 쓰면 핵티비스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말로 ‘디지털 정치 활동가’쯤 되는 이들은 ‘의사 표현의 자유와 투명성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정보의 공유와 투명성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 기밀문서의 대량유출을 통한 열린 통치의 실현’을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줄리언 어산지도 처음에는 해커로 활동하다가 호주 법원에서 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십대 때에 ‘국제전복자들’이라는 해커집단을 만들어 유인 우주선에 핵물질을 탑재하는 프로젝트에 반대하여 NASA의 전산망을 공격하는 디지털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원조 해커 스티븐 레비의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이라는 책에는 ‘해커선언문’이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컴퓨터를 위시하여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모든 것에 대한 접근은 무제한적이고 완전해야 한다. 둘째, 모든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 셋째, 해커는 권위를 불신하고 권력분산을 촉구해야 한다. 넷째, 다른 해커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그 활동에 의거해야 하며 외모, 연령, 인종, 성, 사회적 지위에 따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컴퓨터를 이용하여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명한 해커인 홀란드는 타인의 데이터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것과 공적인 데이터는 최대한 활용하되 개인 데이터는 보호하라는 것을 덧 붙였다고 한다.

어산지나 다니엘도 핵티비스트로 성장하면서 이 선언문을 강령처럼 받아들였을 거라 추측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핵티비스트가 되려고 했을까? 그들 정도의 능력이라면 편하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산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누구나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을 무언가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일에 써야 해요. 위키리크스는 제게 바로 그런 일입니다.”라 했다. 다니엘 슈미트도 책에서 위키리크스를 만나기 전에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한마디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화려하고 넉넉했지만 뭔가 빠진 것처럼 허전한 삶이었다. 삶의 의미, 모든 걸 다 버려도 좋을 만큼 내가 열정을 갖고 풀어갈 과제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서들을 좋아했던 거 같다. 핵티비스트들의 정신세계가 어떠한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위키리크스와 유엔 인권헌장 제 19조

위키리크스의 활동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요구에 부합한다는 면에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절차와 과정으로서의 형식 민주주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언제든지 이용 당하고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또 다른 민주주의의 가치인 견제와 균형을 실현하기 위해 분권과 감시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최근에 나온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 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2001년 9.11테러이후 서방 국가 특히 미국은 국민에 대한 감시와 정치, 외교, 안보정책 분야에서의 비밀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견제를 해야 할 메이저 언론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효과적으로 정부와 권력자들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고, 이런 시점에 위키리크스의 출현과 행동은 민주주의 추를 균형 있게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었다. 주류 언론과 의회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에서도 한국판 위키리크스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의 공개정책이 반미적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비밀외교로 그들의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자료를 공개하는 것뿐이다. 모든 국가의 비밀, 억압적 정권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 입장이다. 책에서는 “이것은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정치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 고객들의 명단을 공개하거나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를 폭로하기도 한다. 독일정부가 기업체에 수백만 유로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비밀 문건을, 그리고 사이비종교집단에 대한 자료를 폭로하기도 한다.

그들의 활동이 위대한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엔인권헌장 제19조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모든 인간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해서 국경과 무관하게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받고 전달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는 공개해야 된다. 위키리크스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시스템이냐? 사람이냐?

어산지는 06년 10월 위키리크스 도메인을 등록하고 네 명의 친구들과 활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내부의 기밀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들을 통해 권력의 비밀을 까발리는 전 세계적 활동’을 꿈꾸었다. 위키리크스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밍 기술로 정보원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들은 서로 한 장소에 모이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한 메일 교환과 채팅을 통해서 작업을 한다. 그들은 집단지성을 통해 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언론에 유포한다. 어산지는 무서운 집중력과 헌신성으로 그 활동의 중심이 되어 간다. 초창기 활동에는 사람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책임도 일의 진행도 그래야 뭐가 되어도 된다.

다니엘은 07년 09월에 합류하고 어산지가 손 못 대는 조직내부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는 08년, 09년에 걸쳐 서버를 관리하고 조직과 재정을 정비한다. 언론을 상대하고 후원금을 받아낸다. 언론자유무역항 아이디어를 아이슬란드 정치권에 제안하기도 한다. 다니엘은 조직적인 사고로 위키리크스의 시스템을 세워 나간다. 그래야 커가는 조직을 지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제까지 사람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은 진리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 불화가 싹트기 시작한다. 불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사소한 일상의 태도와 말투다. 다니엘은 회의 때마다 늦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어산지가 싫었다. 항상 진지하고 깔끔한 다니엘에게는 개인위생이 불량한 어산지가 신경 쓰였을 것이다. 어산지도 항상 툴툴거리고 자기가 위키리크스의 주인인양 -물론 본인은 그랬다고 하지는 않지만- 행세하는 다니엘이 미웠을 것이다. 사람이 미워지면 사소한 것 까지도 미운 법이다.

불화의 두 번째 이유는 조직운영에 대한 입장차이었다. 어산지는 적어도 위키리크스는 자신의 것이며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후원자, 지원자. 부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니엘은 모든 정책은 조직내부에서 끝장토론을 통해 결정을 해야 하고 그것이 안 될 때는 가위바위보라도 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어산지의 대표성은 부정 안하지만 자신은 옆에 서 있는 2인자이지 뒤에 서 있는 2인자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이 둘은 어산지의 성폭행사건이후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다니엘은 위키리크스에서 10년 09월에 탈퇴하고 오픈리크스를 만든다. 결국 시스템과 사람의 문제가 둘을 갈라놓았다고 나는 본다. 다니엘은 시스템으로, 어산지는 사람으로 가려 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조직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과 시스템의 문제는 항상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키리크스라고 해서 벗어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갈등의 불씨

사실 위키리크스는 시작부터 갈등의 불씨가 내재되어 있었다. 조직이 커지고 외압이 강해지고 책임성을 요구하는 시점이 되면 드러나는 모순들이 있다. 그들의 공개 활동 원칙은 모든 자료를 검열 없이 올라오는 순서대로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라온 자료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문제가 있다. 위키리크스가 유명해지면 역정보를 흘려 교란을 시키거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이용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손을 대게 되고 어떤 자료를 취합할건지에 대해서 선택이라는 권력이 작동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고발자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하여 자료에 대한 오염을 배제한다는 위키리크스의 입장에 위배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자료 공개 시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보호문제가 있다. 실제로 케냐 경찰의 청부살인을 폭로한 인권활동가들이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의 폭로에는 정보원들이 노출되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또한 처음에는 자료의 검토와 공개를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의 집단지성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사실 양질의 결과가 나오지 않음을 알고 언론들과 제휴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언론과 제휴를 맺을 것인가로 도마 위에 오르게 되고 어산지의 독단으로 다른 조직원들과의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독단으로 하다 보니 뒷거래에 대한 의심도 동반하게 되었다.

 

“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

지금까지 위키리크스의 정체성은 아직 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 단순한 문서보관소 일수도 있고 또 하나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곳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키리크스가 이전의 다른 폭로단체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은 ‘민주적 공공성과 최선의 제보자 보호를 위한 인터넷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향후 진화하는 위키리크스의 모습과 오픈리크스처럼 비슷한 형태의 폭로단체들과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명심해야할 말이 있다. 그 말대로만 된다면야 위키리크스는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리 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글귀다.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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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지식갤러리)와 마르셀 로젠바흐, 홀거 슈타르크의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21세기북스)를 함께 다룬 글입니다.

나는 백성이 아니옵니다. 노비이옵니다 5-① [色 다른 책읽기]

이재민 (너머북스 대표)

 

조선의 백성이길 거부한 노비의 법정 투쟁기

1586년 나주 관아의 노비소송을 서사 구조로 하는 『나는 노비로소이다』(임상혁 지음, 너머북스 펴냄)를 따라가 보면, 조선시대의 사법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 절차를 통해 당시 체제가 빚어내는 반목의 양태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윽고 불화의 핵심에 선 조선시대 ‘노비제’를 만난다. 흔히 조선전기는 ‘노비송(奴婢訟)’, 후기는 ‘산송(山訟)’이라는 표현처럼 조선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노비제의 질곡이 주요한 내적 모순으로 존재하였다. 조선시대 송사를 매우 역동적으로 다룬 이 책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조선시대 노비의 실체를 찾는데 있다.

다물사리와 구지, 허관손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자손을 사노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벌이는 법정투쟁기는 조선시대의 노비제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혹독한 질곡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조선시대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3분의 2에 이른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도 과연 오늘날 자기 조상이 노비였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노비의 역사적 실체를 찾는 것은 나의 최근 역사책 기획의 관심 중 하나이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생부와 양부로부터 660구가 넘는 노비를 상속받았으며, 유명한 어부사시사의 고향인 보길도 부용동의 원림을 조성하는데 노비 700여명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상층이 아닌 소박한 생활을 영위한 양반이라 하더라도 노비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양반에게 있어 ‘봉제사’는 일상의 일부라고 하나, 이것이 집안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일년내내 선산을 관리하고 수시로 벌초하며, 묘사 준비와 실제 제사를 지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조상을 모시는 일에 노비가 동원되었다. 생업인 파종에서 추수까지 농사일은 기본이고 험한 땅을 개간하거나 묵은 논밭을 갈아엎기도 하는 등 농지도 일구었다. 노비는 상전의 수행원이었고 심부름꾼이었으며 통신수단이기도 했다.

무반 노상추의 68년 동안 쓴 일기를 통해 조선후기 가족의 실체를 다루어 주목받은 바 있는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문숙자 지음, 너머북스 펴냄)에는 가족과 재물의 경계에 선 노비의 모습이 생생이 묘사되어 있다. 노비 점발이 도망한 1726년 2월 12일 노상추는 일기에 ‘그의 죄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썼다. 6개월 뒤 점발을 찾아내 벌을 준 뒤 그는 점발을 ‘죽을 만큼’ 때렸다고 기록했다. 일기에서 스스로 ‘죽을 만큼’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응징의 정도가 어땠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기의 또 다른 기록이다. 비부(婢夫) 한선이 노씨가의 계집종인 아내 손단을 데리도 도주한 것은 1779년 2월 7일이었다.

노상추는 단호하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부부는 길바닥에서 굶어죽는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듯하다”고 했다. 나에게 의지해 살던 노비 부부가 나를 떠나서, 그리고 전국에 깔려 있는 나와 내 지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벗어나 살아갈 방법은 도저히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노비들은 모든 양반의 지배를 받는 존재였다. 거주지를 벗어나 멀리 도망간다 하더라도 양반의 광범위한 네트워크 안에 있었고, 양반들의 연망(聯網)은 노비의 관리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다시 『나는 노비로소이다』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2장에 소개하는 “또 다른 노비소송, 나는 양인이로소이다”에서는 노비제 고수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양반과 그들의 모순에 찬 면모를 볼 수 있다. 이 소송은 허관손이란 인물의 제소로 시작된다. 그는 지방의 아전이었으나 그의 장모의 아버지가 ‘사노’였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 모두 노비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는 장모의 아버지가 보충대에 입속하였으므로 양인의 신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서출자녀인 경우 보충대 입속을 통해 양인이 되는 길이 있었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송의 상대는 『미암일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상층 양반 미암 유희춘이었다.

1544년 강진현에서 유희춘의 어머니, 최씨가 승소한다. 1551년에는 반대로 허관손이 승소하고, 1564년 최씨 사후 미암의 누나가 다시 제소하여 승소한다. 1566년 허관손이 사헌부에 상소했으나 패소한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관료 유희춘을 상대로 한 아전 허관손의 30여년이 넘은 투쟁은, 결국 1568년 3월 임금이 행차하는 길에 엎어지며 억울함을 호소하며 – 이를 ‘상언’이라 한다 – 해결하려 했지만 현직 관리의 영향력을 넘지 못하고 패소하고 만다.

이 책이 밝히는 흥미로운 사실은 허관손이 양인이라 증명하려 했던 방식대로 유희춘은 자신의 얼녀 네 명을 양인으로 속량시켰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희춘이 허관손에게 승소한 그 시점인 1568년부터 자신의 서출자녀들을 보충대에 입속시키고 대가를 지불하여 노비의 신분에서 풀려나게 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미암은 8년에 걸쳐 천첩 자식들을 모두 속량한 뒤 외친다. “얼녀 네 명이 모두 몸을 씻어 양인이 되었다. 어찌 이리 기쁜지!”(미암일기초 5권 230쪽) 내적 갈등이나 모순적 의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유희춘과 허관손의 쟁송 사례에는 당시 최고 지식인이 가진 의식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얼녀들에 대해서는 속신을 시키려 그처럼 안타까워하면서도 허관손의 후손에 대해서는 면천의 기회를 박탈하고 만 셈이다.

이 글의 앞머리에서 노비 몇 ‘구’라 했다. 조선시대에 노비를 생구(生口)라 부르고 수효를 셀 때도 한 구 두 구 식으로 세었던 것은 그들을 가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비제도가 전근대적인 노예제였다는 것은 노비 매매가 일상적이었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비 매매는 국가적으로 공인되었는데 <경국대전>에서는 노비의 값을 말 한 필과 비슷하게 매겨놓고 있다. 농지의 확대로 노비 수요가 많아진 조선 중엽에는 말 한 마리가 포목 2필일 때 노비 1구의 가격이 포목 6.5필로 급등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양인은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스스로를 팔아 노비가 되기도 하였다. 하층민의 경우 흉년이 들거나 하여 먹고살기 어려워지면 당장에 굶어죽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를 원했고, 양반들은 손쉽게 노동력 또는 재화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양자간의 거래가 빈번했던 것이다. 잠깐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노비도 다른 신분처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자식이 각각 서로 다른 주인에게 소속되어 있다면 그 가계가 안정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상전이 각각의 노비를 내다팔기라도 하면 그 가족은 어떻게 될까? 그들의 가족은 안정성이 없고, 가계가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계를 잇는 일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노비로소이다』의 핵심 모티브가 되는 이지도 대 다물사리 노비소송은 시작부터 특이했다. 원고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하고, 피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고 반박한다. 당시 노비의 신분을 다투는 소송에서는 자기는 노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그 연유는 극적인 반전 속에 드러난다. 책을 보시면 이내 알게 되지만 양인 신분인 다물사리가 성균관에 관비로 투탁한 것이었다.

독자들은 소송 당시 다물사리의 나이가 여든 살이었는데, 그처럼 노쇠한 여인이 대담하게도 성균관에 투탁하여 신분을 숨기고 상대편의 소송에 맞서려 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다물사리의 뒤에는 그의 사위인 구지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 또한 사노비로서 자기 자식들을 어떻게든 사노비의 사슬에서 끌어내 관노비로 만들어 조금이라도 나은 처우를 받게끔 하려 했다. 그리하여 이지도의 집안의 허술한 틈(저자 임상혁은 이지도의 아버지가 이유겸임이라고 추정하는데 당시 이유겸은 살인 혐의로 숨어 지내는 중이었다)을 노려 자기 장모로 하여금 투탁하도록 하는 꾀를 내고 지방 관아의 노비빗리와 공모하여 문서를 조작하기도 했던 것이다.

다물사리와 구지의 기구한 사연은 조선시대 노비제도가 얼마나 혹독한 질곡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시대 절반의 사람은 노비 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존재였다. 노비제는 양반제의 필수도구였던 것이다. 양반의 또 다른 이면이자 상충되는 존재였던 노비, 그 역사적 실체 찾기는 『나는 노비로소이다』가 던진 새로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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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다섯 번째 책은,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너머북스 펴냄)으로 허정화(자유평론가), 이재민(너머북스 대표)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연구서 5-② [色 다른 책읽기]

허정화 (자유평론가)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짜진 연구서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나는 노비로소이다』앞의 소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다면 조선시대 노비의 이야기인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자신을 규정하는 것. 예를 들어, 나는 여인입니다. 나는 변호사입니다. 나는 시민입니다. 등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짓는 문장은 무엇인가 강력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준다. 그런 점에서 제목은 독자로 하여금 책장으로부터 책을 뽑아 들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소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은 노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 당대 소송에 관한 연구서다. 책은 1584년 선조 19년 나주 관아의 이지도(원고)와 다물사리(피고)의 소송으로 시작된다. 임상혁은 머리말에서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랐지만 픽션은 아니기에 모든 글월과 낱말이 세부적인 역사의 사실과 부합하는지 재삼 검토 해가며 진행했다.”(14)고 한다. 그러한 작가의 의도는 일반적인 노비 소송, 즉 노비이기를 부정하고 양인이기를 주장하는 사건이 아닌 자신이 노비임을 증명하고자 소송을 제기한 다물사리 사건으로 글 문을 열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설처럼 읽히기를 원하는 작가는 또한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만 보여주다가 잔득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실마리도 못 찾고 좌불안석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 사건의 전모를 밝히듯이 다물사리가 노비이기를 주장하게 된 배경과 소송의 결론을 책의 마무리에 배치한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소설로 시작해서 연구서를 읽다가 다시 소설을 한 권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나 법과 거리가 먼 전공과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만만히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소송으로 보는 언어 변천사

문학서를 편식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법률 용어들보다는 일상화 된 언어들에 관심이 더 가고, 그 언어의 질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은 파생어와 이두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척(隻)이란 피고를 가리키는 말이다’(52)로부터 ‘척지지 말라’는 말이 나왔고 ‘다짐결송’에서 지금의 ‘다짐’의 의미가 생겼다는 정보는 재미있는 공부였다. “이두의 글자상 의미는 서리들이 쓰는 표기법”(110)이며 “각종 공문서와 거래서에 이두가 쓰였다.”(111)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두식 표현들이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는 데 있는 한계를 극복한 선조들의 지혜였으며 역시 그 중심은 귀족 양반들이 아니라 하층 관리(아전)들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고을 사족의 향청에 서리들의 조직은 질청이라 할 수 있다. 作(작)을 질로 읽는 것도 이두식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질청은 아전들의 집무처인 건물이다.”(116)라고 하며 “질은 요즈음 삽질, 걸레질처럼 행위나 행동을 뜻하고, 나아가 훈장질과 같이 업무나 일의 의미까지 갖는다.”(205)고 말한다. 여기에 좀 덧붙이면 접미사 ‘질’은 행위나 직업을 하찮다는 의미로 전달하고 싶을 때 주로 쓰이고 있다. 이는 과거에 쓰였던 순 우리말이 긍정적이 어감보다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변화된 하나의 증거인데 접미사 ‘살이’ 또한 그렇다. 다물사리가 담+울+살이(152)에서 변화되었다고 추정되는 데 ‘살이’는 ‘살림살이’처럼 ‘살다’의 명사형이지만 ‘시집살이’라는 단어에서 보여주듯이(시집살이라는 표현은 여자들이 결혼해서 사는 형편이 좋을 때보다 힘들 때 주로 쓰인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의미에 더 많이 쓴다. 이는 순우리말보다 한자를 고급어로 인식하는 사대주의적인 사고에서 온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일제를 거쳐 일상으로 사용되었던 우리말들이 점점 협소화되어 접두사나 접미사, 조사로서의 기능이 주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계속되는 용어 해석 – 읽기의 고단함

이 책이 소송으로 보는 조선 사회이다 보니 수많은 그 시대의 소송과 관련된 용어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다. “소지라는 것은 관청에 내는 신청서이다. 다라서 여러 종류의 신청이 있을 수 있으며, 그 가운데 판결을 구하는 소지를 제출하게 되면 그것이 소장이 되는 셈이다. 소지를 제출하는 행위, 곳 소를 제기하는 것을 고장이라 한다. 소지는 발괄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이 연명하여 올리는 경우를 등장, 수령의 판결에 불복하여 감사나 어사에게 올리는 소지를 의송이라 한다. 소지를 접수한 관청은 그에 대한 처분을 내리게 되는데, 대개 소지의 여백에다 직접 써 주었다. 이를 제김 또는 제사라 한다.”(102) 이런 문장들을 읽고 있으려면 건너 뛰어 읽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진다. “『사송유추』의 편제는 소송이론적으로 앞서간 모습을 보인다. 곡 소송요건과 실체법규를 구별하는 편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흠결되었을 때는 원칙적으로 본안 심리에 들어갈 것도 없이 소를 각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관에 관계된 사항인 1)상피, 소 각하 사유를 중심으로 2)단송, 소송 수리에 관한 3) 청송은 소송요건에 관계되어 보안 심리 전에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므로 앞쪽에 배열되었다.”(126)는 애써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실제로 건너 뛰어 읽듯이 했다. 사실 법률 용어가 일상어와 너무 괴리감이 커서 법제도에 대한 이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공포감이나 두려움(법이 신격화되는)을 가지게 하는 것이 크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소송으로 보는 사회 : 현대와 비교

분쟁이 있어야 법이 생기는 것이다.(198) 조선 시대에 노비와 관련된 소송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노비 제도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드러내며 신분제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면 지금 시대에 가장 많은 소송은 무엇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법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 민사 소송 중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물었다.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 임금 지급 청구 소송,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 이라고 한다. 보니 민사 소송은 거의 재산 분쟁이다. 맞다. 현대는 재산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또한 서민들에게 있는 것은 전세금이 전부고, 일해서 받는 임금이 전부인데 그것을 잃었을 때 생계가 위태로워지니 소송을 할 수 밖에 없다.

다물사리의 사건은 결국 사노비가 앙역의 부담이 없는 공노비를 해볼 양으로 벌인 소송이었다. 가난한 양인은 부유한 노비보다 사는 게 못하기도 했고, 사노비보다는 공노비의 일이 힘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요즘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고용이 불안정한 기업에 취직하기 보다는 비교적 기업보다 안정적이고 경쟁이 심하지 않은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이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글쓰기의 고단함

특이하게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머리말이었다. 글쓴이 임상혁이 책을 쓴 계기와 쓰기까지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는데 어찌나 솔직한지 그 심정이 절로 마음에 다가왔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해, 세월이 해가 바뀌어도 책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장님은 더 독촉할 기운도 없을 지경이었지요.”(13) 라고 말하는 지점에선 석사 논문을 너무 심사숙고하다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한 내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모든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만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지금 쓰는 글이 그것의 정형이다) 글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떻게 생각하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면 뚝딱 나올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텍스트가 주는 가치에 대한 고민, 쓰고자 하는 내용의 자료 준비에서 정리와 배치, 읽는 독자에 대한 배려, 문장을 짓는 기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실제 자판을 두드리는 노동력. 등이 없으면 한 줄의 문장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투적일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크게 흥미를 가지기 힘든 소송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조선이라는 사회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쓰고자 한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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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다섯 번째 책은,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너머북스 펴냄)으로 허정화(자유평론가), 이재민(너머북스 대표)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