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한철연] 10월 철학자의 서재 live 안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선생님들과 독자님들께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1부입니다.

10월 월례 발표회를 공지합니다. 10월은 철학자의 서재 live로 진행합니다.

진행은 버틀러의 저서 『혐오 발언』을 가지고 유민석 선생님이 하십니다.

“혐오와 혐오 발언”은 일베, 메갈리안 등의 활동이 촉발시키고 쟁점화되며 최근 한국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주제인만큼 회원 선생님들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시 : 10월 21일(금), 오후 6시

* 장소 : 한국철학사상 연구회

* 주제 : 버틀러의 『혐오 발언』 –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은 가능한가”

* 진행 : 유민석 선생님(서울시립대)

 


<아래는 유민석 선생님이 보내주신 철학자의 서재 live 내용 개요입니다>

법학자들과 운동가들은 혐오 발언이 말하는 것 뿐 그것이 행하는 것에 근거하여 혐오 발언에 대한 금지를 종종 추구해왔다 (랭턴, 1993).
그들에 따르면 혐오 발언은 일종의 언어적인 따귀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 ‘그냥 말’이 아니며(매키넌),
수신자의 복부를 강타하고 종속적인 지위로 못박아 두거나(마츠다),
열등한 자로 서열을 매기고, 그들을 향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발언 불가능하도록 침묵시킨다(랭턴).

그러나 말은 의도된 대로 항상 행위하지 못한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주디스 버틀러는 잠재적으로 고통을 주는 말을 심문하고 수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말에 대한 반복에 위치시키면서 (1997)
“아무도 상처를 반복하지 않고서는 상처를 극복할 수 없다”(p.102)고 주장했다. (Eichhorn 2001)

『격분하기 쉬운 말Excitable speech』에서 버틀러는 포르노와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은 어떤 형태의 법적 제재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반인종주의 이론가들을 비판한다.
버틀러가 인용하는 이론가들―레이 랭턴, 캐서린 매키넌, 그리고 마리 J. 마츠다―는 모두 발화의 규제에 대한 “평등equality” 논증의 어떤 형태를 제공한다.
즉 만일 말이 억압된 집단 구성원을 종속시키고, 주변화하거나 피해를 준다면, 말은 규제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J. L. 오스틴의 언어 행위 이론을 사용하면서 그리고 말의 열린 본성을 강조하면서, 버틀러는 이러한 논증들을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버틀러는 그 같은 규제는 그렇지 않았다면 혐오 발언을 “재의미화resignigying”하고 “재상연restaging”함을 통해
이러한 말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켰을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를 실행하는데 반대할 것을 조언한다. (Schwartzman 2002)

혐오 발언이란 무엇이며, 혐오 발화자는 누구일까?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은 가능한가?
버틀러는 어째서 혐오 발언에 대한 발화수반행위론에 반대하며,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나 처벌을 반대하는가?
주디스 버틀러가 『혐오 발언 Excitable Speech』에서 개진한 발화효과행위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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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오시는 길 : 2호선 합정역 2번출구, 도보10여분, 태복빌딩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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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연] 2016년 9월 월례발표회 안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선생님들께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 1부입니다.

세상을 삶아 먹을 듯했던 여름의 기세가 하루 아침에 꺾이고 거짓말처럼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학술 활동에 탄력 붙으시길 바랍니다.

9월 월례 발표회를 공지합니다. 9월에는 남기호 선생님께서 헤겔 관련 연구 논문을 발표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가을의 정취를 한철연에서 헤겔과 함께 즐겨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회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10월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도 기대하실만 자리일 것입니다)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6년 9월 월례회 공지

*일시 : 9월 23일(금), 오후 6시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발표자 및 논문 제목: 남기호 선생님(제주대)

: <매개된 직접성의 변증법 – 헤겔의 『철학백과요강』(1827) 예비개념을 중심으로>

*논평자: 이정은 선생님 (연세대)

 

<논문 개요>

본 발표는 『철학백과요강』 재판 예비개념 부분에서 전개된 헤겔의 변증법을 객관적 사유의 구조로서 분석한다.

헤겔에게 논리적인 것이란 존재와 직접적으로 매개된 객관적 사유규정들이다.

먼저 칸트 이전의 순진한 형이상학에서 객관적 사유규정은 대립 의식 없이 직접적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이 사유규정은 유한한 것으로서 다른 객관적 사유규정과 대립된 것으로 밝혀진다.

그 다음으로 순진한 경험론과 비판 철학은 객관적 사유규정들을 자신들의 타자와의 대립 속에서 매개된 것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타자와 대립된 매개는 제약된 유한성을 의미한다.

끝으로 형이상학화하는 경험론 내지 직접지의 철학은 이러한 매개 자체에 대립하는 무한한 직접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유한자와 분리된 공허한 비약으로 귀착한다.

이에 반해 매개 자체의 지양을 통해 설정되는 직접성은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객관적 사유의 변증법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객관적 사고의 세 발전 입장들은 각각 논리적인 것의 추상적 오성적 측면, 변증법적 부정적-이성적 측면, 사변적 긍정적-이성적 측면에 해당한다.

본 발표는 이렇게 칸트 이전 볼프 형이상학, 칸트의 비판철학 그리고 야코비의 직접지의 철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헤겔 변증법의 기본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직접적 규정의 매개와 이 매개 자체의 지양을 통한 직접성의 무한한 긍정적 규정 가능성의 관점에서

헤겔의 객관적 사유의 변증법은 매개된 직접성의 변증법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 10월 철학자의 서재 Live 예고

일시 : 10월 21일 (금) 오후 6시

진행 : 유민석 선생님(서울시립대)

주제: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

유민석 선생님은 버틀러의 <혐오 발언>의 역자이십니다.

근래 대한민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현상이 각종 혐오 발언과 페미니즘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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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민주주의 권리 주체의 대응 매뉴얼’은 존재하는가? [철학자의 서재]

외부 필자가 우리 한철연과 인연이 많은 알렙 출판사에서 나온 새책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김영수 지음, 알렙, 2016)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 권리 주체의 대응 매뉴얼’은 존재하는가? 

송진완(논술개그 실장)

http://cafe.naver.com/nonsulgag/588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나는 20여 년 전에 친구따라 신림동에서 고시공부를 한 적이 있다. 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용하다는 학원가를 전전하며 각종 고시과목의 족집게 강의를 듣는게 일상이었던 시절이다.

고시과목이 주로 ‘법’과 관련이 있다보니 찾아듣던 학원 강의도 대부분 헌법, 행정법, 민법 등이었다. 그런데 내가 법학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헌법’과 ‘행정법’의 특징과 차이점이 기억에 남는다. 헌법 강의 교재인 각종 [헌법학 원론]들은 그 압도적인 두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루는 내용은 매우 추상적이다. 주로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와 역사상 헌법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소개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그에 반해 행정법 책은 두께는 조금 얇아도 그 내용은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법체계가 매우 논리정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시공부 시절 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는바, ‘행정법은 국가의 것이고, 헌법은 국민(‘인민’이 더 정확한 용어겠지만…)의 것이다’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을 조금 더 자세하게 다듬으면 다음과 같다.

국가는 국민을 (합법적으로) 통제하고 착취하기 위해 ‘합법적이고 논리정연한 매뉴얼’ 즉, 행정법 체계가 필요했지만, 국민에게는 ‘두리뭉실하고 관념적인 권리장전’ 즉, 헌법학 원론만을 제공함으로써 권리의 작동체계가 매뉴얼화 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위와 같은 거친 논증의 핵심은 결국, 현실 민주주의는 국가에게만 유독 유리한 지형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현실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면에도 똑같은 문제가 놓여있지 않은가? ‘당’은 체계적인 착취매뉴얼을 갖고 있지만 ‘인민’에게는 고작 ‘인민의 이름으로’라는 선언뿐이지 않은가. 공산주의라는 말이 경제시스템을 정의하는 차원일 뿐이지 공산주의 국가도 대부분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이상, 권력과 권리의 불균형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균형은 독재왕정이 민주공화정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만하는 ‘현상’인가?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알렙출판, 2016)의 저자 김영수 교수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권력의 주체인 국가에게 ‘전가의 보도’인 행정법이 있듯이, 권리의 주체인 국민도 ‘관념적인 선언’ 이상의 ‘체계화된 권리 매뉴얼’을 연구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여년 전에 어느 고시생이 발견한 ‘행정법과 헌법 체계 사이의의 불균형 현상’은 정치학자인 김영수 교수에 의해 매우 세련된 진보적 민주주의 이론으로 ‘의식화’된다. 다음을 보자.

“(중략)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민주 국가에 살고 있는가? ‘민주 국가’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단 한번이라도 고민해 보신 적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이런 질문을 케케묵은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이미 민주화된 국가에서 ‘민주’가 무엇이고, ‘국가’가 무엇인가를 왜 고민하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되묻는 질문 속에 자기 스스로를 ‘무지의 폭력자’로 만드는데도 말이다. (중략)”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머리말 중에서

권리의 주체인 우리가 ‘헌법학 원론’에서 강제된 좁은 의미의 ‘선언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천적인 민주주의 매뉴얼’을 가져야 한다고 자각하는 순간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자각이 무엇인지 짚어주고 자각 이후의 행동강령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1부. 현상 : 민주주의 배반하는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원초적 자각을 촉구한다. 시민혁명 대신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민주주의의 선언적인 본질조차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드시 자각해야만 하는 현실 현상을 제시한다.

[2부. 허상 : 행복을 짓밟는 국가, 국가를 소유한 가난뱅이]는 구체적 자각을 촉구한다. ‘헌법학 원론’이 가리고 있는 현실 민주주의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부. 상상 : 민주주의 상상하는 민주주의]는 방안을 제시한다. 권리 주체인 국민이 행정법 체계에 대항할 수 있는 고성능 무기를 고안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금까지는 진보적 시민단체에게나 어울린다고 치부하고 외면해왔던 생소한 개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필수적인 실천적 개념으로 전환된다.

우리가 권력 주체로서 착취의 매뉴얼을 꿈꾸지 않는 이상, 우리가 권리 주체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민주주의 권리 주체 대응 매뉴얼’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책이 그 꿈의 길잡이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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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알렙 출판사

 

[서평] 해방 후 3년: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해방 70년-분단 70년이 되는 해에 ‘해방 후 3년’을 돌아보는 이유

조한성, 『해방 후 3년: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생각정원, 2015

 

 

조배준(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분단과 전쟁으로 귀결된 ‘가능성의 역사’

1945년 이후 육십갑자가 지나고 십년이 더 흘렀다. 당시 한반도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날’은 일제로부터 ‘해방(解放)’되었다는 환희를 느끼기에 충분했지만, 점령군이 된 강대국들 사이에서 민족의 미래를 온전히 우리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감도 엄습했을 것이다. 식민지 상태를 벗어났더라도 진정한 주권을 확보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까지 예상되는 수많은 난관을 짐작해보면 그들에게 진정한 광복(光復)은 요원했으리라. 그런데 정부는 올 해가 ‘광복 70주년’임을 강조하면서도 그 숫자가 동시에 ‘남북분단의 역사’를 가리킨다는 것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8.15 해방 이후 정확히 3년이 되는 날에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즉 적대적 분단시대가 도래하기까지 한반도의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이념들의 정글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암울한 식민지 터널의 끝에서 염원하던 해방이 도래했지만, 우리는 왜 분단이라는 또 다른 터널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처럼 독립의 완결과 분단의 극복은 서로 중첩되고 연결된 역사적 과제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남아 있다. 친일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에서 후대 세대에게 민족국가의 진정한 독립을 운운하기가 어렵다면, 진정한 광복 역시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되는 한 완수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한국만의 관점에서 거칠게 요약하자면 ‘건국․압축성장․민주화’의 과정이겠지만, 한반도 전체로 보자면 그것은 곧 ‘분단․전쟁․적대적 대립’이 낳은 구조적 산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통일된 민족 국가의 건설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 다른 두 체제로의 분단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해방 후 3년’은 남북이 각각 성공한 ‘건국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분단으로 귀결되고 만 ‘실패의 역사’이다.

그런데 이 책의 필자(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는 그 실패의 역사에서 ‘가능성의 역사’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는 “해방 후 3년은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었고,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었”던 시기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 해방공간의 이야기 속에서 미래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안에 일치된 노선이나 어떤 합의점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마다 신봉하는 가치를 절대시하고 너무나 다른 민주주의‘들’을 말했으면서도 그 실패의 역사에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지향했던 강렬한 열망이 숨어 있다. 그런 점에서 그 혼돈의 과정은 각 민족 지도부의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또는 점령군의 전횡과 억압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곳곳에서 야만적 폭력이 횡행했지만, 적어도 당시는 개인적 삶과 정치공동체의 혁신을 함께 꿈꿀 수 있을 정도의 희망은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조국을 ‘헬(hell) 조선’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젊은이들이 태반인 2015년의 한국에서 그 시대가 품었던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위한 희망”은 간절하게 그리운 것이다.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율 세계 최저’로 대변되는 오늘날 한국 청년 세대들의 절망적 시대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는 단지 정권교체로 일어나는 역사적 진보나 퇴행의 수준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인민들과 정치공동체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미래 전망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통합을 말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뜬 구름 잡는 얘기로 간주되고, 국가 시스템은 위급한 상황에서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주고, 정치는 혐오나 냉소의 대상이 되어 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른바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 찬란한 ‘광복 70년’의 해에 한국현대사의 출발점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7인의 민족지도자, 그들의 선택과 분열의 한계

필자는 해방 후 정치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7명의 민족지도자들, 즉 여운형, 박헌영, 송진우, 김일성,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 어떤 정치적 열망 혹은 야망을 표출하며 새로운 국가의 건설로 나아가려 했는지를 추적한다. 필자는 이 7명의 언급 순서는 “해방 후 활동을 개시한 순서나 귀국한 순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하는 각 세력의 제반 조건 및 활동 방향의 배경과 그 결과를 요약하며,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종료 시점까지 즉, 분단으로 가는 폐쇄회로에 갇히기 전까지 그들의 ‘차이’를 강조한다.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을 미리 준비하며 자주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국내에서 노력했던 여운형, 일제강점기 한국 최고의 공산주의 이론가이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였던 박헌영, 국내 우파 민족주의 세력을 대표하던 송진우, 항일무장투쟁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이름을 떨치던 소련군 장교 출신의 젊은 지도자 김일성, 미군정의 적극적인 후원을 이끌어내며 급부상하고 있었던 이승만, 임시정부를 이끌며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세력을 대표하던 김구, 중도우파 입장을 대표했던 김규식의 존재는 오늘날의 한반도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을 대변한다.

물론 이 책은 서술 과정에서 때로는 논리적 비약이나 압축을 부득이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제한된 분량의 대중교양서에서 각 인물들의 성취와 한계를 분명히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보다 저자가 더 경계하고 있는 점은 ‘해방 후 3년’은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시각이다. 냉전의 서막을 알리며 한반도에서 맞붙은 두 강대국 사이의 힘겨루기 속에서 어떻게 분단을 피할 수 있었겠냐는 논리이다. 미소의 분할 점령과 모스크바 3상회의, 미소공동위원회 등 세계 질서 재편의 흐름 속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도 그저 강대국 입장의 대리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비록 그 ‘세계 체제의 규정력’이 막강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해방 후 3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미․소가 만든 세계 질서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면서 하나하나 소중하게 만들어간 역사”라고 강조한다.

여러 단체와 조직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상을 지향하며 난립하며 경쟁하던 당시 상황에서 저자는 민족통일국가가 수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점으로 정당통일운동과 정부통합이 시도되었던 해방 이후의 4개월여 시간을 꼽는다. ‘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라는 상설 회의기구가 만들어졌던 데에서 보듯이 당시 단일한 정치적 의결기구를 건설하기 위한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좌우익으로부터 조정자 역할을 위임 받게 된 이승만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우익인사로만 채우면서 이 정당통일운동의 성과와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그 후 중경 임시정부와 조선인민공화국의 좌우익 ‘통일합작운동’이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큰 뜻으로 화합하지 못하고 단기 정략적인 입장만을 내세운 각 세력의 태도로 인해 역시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또한 신탁통치에 대한 격렬한 입장의 대립 이후 한국민주당, 국민당,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이 참여한 ‘4당 합의’도 우익 정당들의 중도이탈로 수포로 돌아갔다. 여운형과 김규식으로 대변되는 좌우세력이 다시 만났던 ‘좌우합작운동’에서도 박헌영이 주도한 좌익 세력의 비타협적인 입장은 걸림돌이 되었다.

이처럼 통합된 힘을 창출하지 못했던 연속된 분열과, 지리멸렬하게 소멸해 버린 자생적 정치역량의 표출 가능성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민족의 역량이 결집될 수 있었던 기회의 상실을 탄식한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공전되면서 ‘예정된 미래’로서의 분단이 다가올 때,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쳐 합의를 종용했다면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각 세력의 합치된 의견이 단일한 정치력으로 승화되었다고 해서 극동지역에서 맞붙은 세계체제의 강고한 규정력을 극복할 수 있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역사적 성과는 이후의 분단 극복 과정과 통일의 전망을 위해서 중요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추측해볼 수 있다. 당시 이념적 대립을 넘어 민족적 합력이 단기간이나마 창출될 수 있었다면, 외세의 영향이나 체제의 통합보다 사람들 사이의 통합이 분단 극복의 과정에서 최우선이라는 민족적 가치가 명징하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자마자 미소의 동아시아 전략에 종속된 극단적 이념 지향의 미로 속에서 전선의 최전방이 된지 2년도 채 안 되어 잿더미가 되었다.

 

대한민국 탄생 시기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이런 점에서 해방 후 3년은 오늘날 세습 통치와 수령론에 근거한 극단적 폐쇄사회인 북한 체제와, 반세기 넘게 친일친미기득권 세력의 후예들이 건국세력의 적통을 참칭하며 여타의 다른 세력을 ‘좌빨종북’으로 매도하는 한국정치사의 근원적 모순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건전한 보수 민족주의 세력, 열려 있는 사회주의 세력, 중도좌․우 세력 등이 한반도의 정치 지형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되고, 극단적인 체제경쟁과 적대적 군사대치가 각 통치 세력들에게 활용되기도 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3년간의 정치적 진통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공간의 정치 지형이 응축하고 있던 공화의 이념, 민주주의의 다양한 논리들의 스펙트럼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공화’와 ‘민주’의 개념이 아주 제한적이고 편향적인 의미로 축소되어 통용되는 문제의 극복과도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분단의 지속 과정에서 두 체제가 적대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키워 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분단은 우리 삶과 국가의 특징적 ‘변수’로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한 제반 조건으로 간주되기 일쑤이다. 북한을 불가해한 타자로 대상화시켜 ‘통일대박론’의 도구적 가치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간편한 사고방식이며, 분단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문제와 통일을 연결시킨다는 생각은 아주 낯선 생각인 것이다.

물론 필자가 다소 민족 개념을 엄밀하지 않게 남용한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이 책만의 아쉬움이 아니라 계속 함께 고민할 화두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저자의 서술 의도를 다시 한 번 옮겨 본다. “해방 후 3년의 역사에서 우리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고, 역사의 가능성을 돌이켜보는 것”을 통해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의 가능성’을 확인하자.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선택은 어떤 역사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대학에 적을 둔 일반 학자들이 연관성 높은 기존의 논문을 아주 포괄적으로 엮어 출간하면서 전문학술서를 표방하는 데 비해, 민족지도자들의 ‘선택’을 비교적 공정한 시각에서 비교하면서도 선명하게 유지된 필자의 문제의식은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올 해에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부활이 가시화된 요즘,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탄생’이 어떤 역경과 희생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강조하며 그것을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객관적이냐’의 문제가 다시 뜨거운 논쟁 속에 휘말릴 것이다. 해방 후 3년, 어렵게 탄생했고 숱한 과제를 안고 있던 당시 신생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싸움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싸움이자 분단과 평화통일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한, 지지부진하더라도 결국은 국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신생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앞에 놓인 운명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발전, 친일세력과 기획주의자들에 대한 과감한 역사적 청산, 봉건적 잔재와 부정부패를 일소한 시민사회의 발전, 부가 독점적으로 세습되지 않는 민주적 경제발전, 한반도 평화의 유지와 민족통일의 달성. 이 과제들은 비극적이게도 70여년 전과 다름없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숙제이며,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앞에 놓인 문제들이다.

해방 후 3년

[서평] 판문점 체제: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를 위한 지구사적 탐구

판문점 체제: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를 위한 지구사적 탐구 

김학재, 『판문점 체제의 기원: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 후마니타스, 2015.

 

 

조배준(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1. 한국전쟁과 한반도 분단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오늘날 판문점은 한국전쟁의 기억과 고통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장소이자, 어느덧 70년이 된 남북분단과 60년 넘게 지속되는 정전체제의 당위성을 강화시키는 현장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다. 한반도의 적대적 분단체제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의 장벽’을 더욱 단단하게 쌓아왔는가. 지금까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전쟁’의 준비와 발발에서 시작되어 ‘정전’ 상태의 지속으로 해명되는 프레임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의 기득권 세력은 늘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과거의 전쟁을 적대적으로 기억하게 만들고,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을 강압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체제 내부를 단속하고 강화시켜왔다. 그런데 판문점으로 상징화되는 분단체제와 한국전쟁의 성격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전쟁의 기원’이 아닌 ‘평화의 기원’을 고찰해볼 수는 없을까.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나가면서 한국전쟁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결론에 이르러서는 뒤르켐의 생각에서 기초하는 ‘연대로서의 평화’를 제안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 전임연구원인 김학재의 박사논문인 이 책은 이처럼 한국전쟁을 보다 거시적 안목에서 바라보면서 한반도의 분단 지속을 재인식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지구사(Global history)의 관점에서 유엔의 활동 및 국제법, 그리고 근대 자유주의의 기획 안에서 한국전쟁의 추이와 분단 체제의 성격을 추출해내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미국이나 유엔은 한국전쟁을 잊고 있지만, 한국전쟁에서 고착화된 한반도의 정전 및 분단체제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변국을 비롯한 당대의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 물론 저자는 세계와 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민족사의 틀을 벗어나 세계의 주요 흐름을 총체적인 맥락 속에서 인식하는 지구사의 위치에서 이 문제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포착은 한국전쟁 및 정치사연구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한반도 분단 상황의 극복에도 참신한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논자는 한국전쟁에 관한 이러한 시각을 한반도 문제의 재인식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한․중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타개하고 실질적인 협력과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지평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처럼 ‘전쟁의 기원’이 아니라 ‘평화의 기원’이라는 기획이 중요한 이유는 논자가 보기에 무엇보다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성찰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의 우리 삶의 방식과 체제의 유지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역사 속의 한국전쟁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는 현재의 문제이자 평화로운 미래를 희망하기 위한 현실적 과제로 한국전쟁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 및 결과에 주목했던 1세대의 연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그 전쟁의 결과가 근대적 자유주의 기획의 영향권 안에서 어떤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20세기의 세계사와 한국사의 접점을 새롭게 구상해보기 위해서도 이 연구는 가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초석을 놓았다고 할만하다. 바로 이러한 지점들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한 소장 연구자의 이 도전적인 박사논문에 석학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으리라.

 

2. ‘판문점 체제’의 성격과 실천적 과제

저자는 아시아 패러독스의 핵심 기반 중 하나인 ‘한국전쟁 군사 정전 체제’를 뒤집어 인식하여, ‘판문점’으로 표상되는 전쟁의 위협을 오히려 ‘하나의 특수한 평화체제로서 판문점 체제(Panmunjom regime)’라고 부르고 있다. 냉전의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 판문점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전복하여 기존의 것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재사유하는 전략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껏 지속된 ‘판문점 체제’는 겉으로는 정전을 표방하면서도, 속으로는 서구의 자유주의 진영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서 만들어낸 기이한 평화 기획으로 재사유된다. 그래서 이 개념은 전쟁이 종식된 것이 아니라 잠시 중단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냉전적 적대관계를 60년 넘게 보존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은 역사적으로 희귀한 현상”이라고 지적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기 위해서 도출된 것이자, 민족사의 딜레마가 세계사적 맥락과 연계되기 위한 이론적 발판이 된다. 즉 특수한 역사적 사례를 보편적 세계사 안에 위치시키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와 세계사의 접점을 마련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지속시키는 한국전쟁과 정전체제를 세계에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일종의 보편적 개념화 전략을 취한다. 외국의 학자들이 백낙청의 ‘분단체제’나 박명림의 ‘53년 체제’란 개념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공통 지반’으로서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의 정전체제를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래서 ‘제네바 체제(1954)’나 ‘반둥 체제(1955)’와 함께  ‘판문점 체제(1953)’가 비교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적이고 특수한 ‘사례’의 고유명사에서 출발했지만, 그 저변에는 “근대적 자유주의의 변질과 냉전체제의 구축”이라는 세계사적 맥락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내셔널 히스토리’를 ‘글로벌 히스토리’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가’에만 주목하는 것을 벗어나, ‘왜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연장선인 정전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자와 후자가 만나서 공유할 수 있는 이론적 지평의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판문점 체제’란 유럽의 역사가 전쟁 과정을 통해 수립했던 ‘베스트팔렌 체제’부터 ‘베르사유․샌프란시스코 체제’처럼 냉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평화 체제였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판문점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배경을 미국이 취하고 있는 국제 전략의 선회 속에서 인식한다. 냉전 초기에 미국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려는 ‘홉스적 평화 기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면에서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 우려되는 오늘날에는 다시 국제법이나 규범들을 강조하는 ‘칸트적 평화 기획’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례로서 저자가 들고 있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하거나 보급하고 있는 미국이 주도하여 유엔에서 2013년 4월 ‘재래식 무기’ 수출을 억제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협약에 118개 회원국들이 서명한 사건이다. 과도한 비용이 드는 재래식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 첨단 무인 무기의 개발과 압도적인 정보력의 우위를 통해 국제 질서의 패권을 유지하면서, 칸트적인 수단도 적절히 활용하여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판문점 체제는 “그 협약에 찬성한 미국, 반대한 북한, 기권한 중국”의 태도에 의해 요동치면서도 굳건히 지속된다. 전쟁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첨예한 갈등 지대인 한반도는 주변 국민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체제는 평화를 지향하는 칸트적 기획과 홉스적 기획 사이의 갈등과 공존이라는 기묘한 관계로 유지된 ‘모순적 체제’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판문점 체제는 처음부터 국제법과 국제기구 및 여러 국가들의 기획과 협상의 산물이며, 당시에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현재까지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존속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 저자는 판문점 체제의 성격을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 6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불안하고 유동적인 임시 군사 정전 체제”이다. 판문점 체제는 국가 사이의 권력이 균형을 이룬 질서도 아닐뿐더러, 당사국 사이의 타협으로 체결된 불완전한 평화 협약 체제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지 주변 강대국들이 기존 질서에서 얻어 온 이해관계의 강박에 의존하며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국제적 보편성이 결여된 협소한 군사 동맹 체제”이다. 판문점 체제는 칸트식 국제 연방이 가지는 권위와 홉스식의 세계국가의 힘에 의존한 질서 구축이 모두 실패한 후, 더 이상의 소모전을 막기 위해 마련된 군사적 동맹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셋째, 자유주의적 제도를 물신화한 “냉전적 반공-자유주의 체제”이다. 판문점 체제는 정치 이념이자 공화국의 운영 원리로서의 자유주의에 의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우월한 문명론으로 격상시키고 다른 모든 대항․대안 이념들을 문명/야만의 이분법으로 배제하는 극우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체제라는 것이다. 넷째, “동아시아 사회의 요구를 회피하고 유예시킨 탈정치적 군사․경제 질서”이다. 판문점 체제에서는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된 이후에 청산할 문제와 전후 처리할 문제 같은 한국전쟁 당시 표출된 다양한 갈등과 모순이 민주적 정치 과정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묵살되었고, 그것들은 단지 군사와 경제라는 특화된 기능에 근거한 양자 관계들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리된 평화와 특수한 발전주의 기획의 상징”이다. 판문점 체제는 보편적 평화와 정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양자 군사동맹 체제의 결탁이라는 아주 제한된 평화와 적대적이고 경직된 체제경쟁을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결과물로서 판문점 체제의 이러한 성격은 이 체제가 서구 자유주의 사상에서 두 가지 평화 구축 모델인 칸트의 안정적인 영구 평화 체제도 아니고, 홉스 식의 국가 간 타협에 의한 불완전한 평화 협약 체제도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즉 국제 연방 체제의 ‘권위’에 근거하지도 않고, 패권국가의 ‘힘’이 수립한 체제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판문점 체제’는 유럽의 보편적 국제 질서와는 구별되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특수한 성격, 즉 저자가 ‘동아시아 패러독스’라고 지적했던 “지역 전반에 걸친 불안한 권력 균형 상태”를 확대재생산하는 원형이 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불안하고 협소한 일시적 평화 상태를 좀 더 완성된 평화 체제로 전환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판문점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목표는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아래의 다섯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시 군사 정전 체제인 판문점 체제는 전투의 부재를 의미하는 부정적 의미를 벗어나, 평화를 지향하고 적대성을 완화하는 긍정적 의미를 통해 적극적 평화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경쟁적 군사 동맹 체제 간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공동 안보 기구가 수립되어야 한다. 셋째, 탈정치적이고 일방적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 포괄적 합의에 기반한 동아시아 협의 체제가 필요하다. 넷째, 적대적이고 배제적인 냉전 자유주의 체제와 배제적 민족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외주의와 인정 투쟁을 넘어 평화와 정의의 보편성을 고양시켜야 한다.”

 

3. 한반도 분단의 극복과 동아시아의 실질적인 평화를 위해

이러한 인식 위에서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할 새로운 평화의 기준은 기존의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권위에 의존하는 칸트적 방식이나, 내전에 대항해 안보를 강조하며 파워게임을 강조하는 홉스적 방식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이제 필요한 평화 전략은 “교류와 접촉을 통해 관계와 사회를 형성하고, 관계의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며 사회정의라는 가치의 달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평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권위의 부재’를 통해 판문점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자유주의의 기만적 이념을 넘어서, 뒤르켐이 강조했던 ‘연대’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강력한 국가의 건설이나 보편적 국제법의 구축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분업이 활성화되면서 발전하는 사회적 연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간의 갈등과 평화의 문제로 사태를 인식하는 ‘정치철학적 고려’에서 사회 자체에서 평화의 동력을 구상하는 ‘사회철학적 성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뒤르켐은 개인들을 규합하는 전통적 민족주의 또는 다른 집단의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만으로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서로 연대 의식을 가진 기관들이 충분히 접촉하고 그 소통의 과정을 지속하면서, 공통의 규범을 형성해가면 어디에서도 ‘아노미’ 상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 내부의 연대를 강화하여 자연스럽게 완전한 평화를 요구하는 상태를 상정하는 뒤르켐에서 연유한 이 새로운 평화 전략은 한국전쟁이 초래한 판문점 체제의 ‘평화’가 얼마나 반사회적․반연대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최종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시했던 “자유주의적 평화 추구에서 사회적 연대를 통한 평화 추구로 그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방향은 단지 한국전쟁의 종식과 한반도 분단의 극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연대 네트워크’의 구축을 지향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뒤르켐을 빌려와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결국 국가 간 연대와 국가 내부의 사회 연대가 동시에 파괴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차원에서 지역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붕괴된 사회적 연대의 현실이 오늘날의 판문점 체제를 영구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만든다. 논자도 저자의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며 남북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인식적 지평을 공유한다면, 남북이 그 동안의 이념적․제도적․무의식적 분단을 극복해나가는 진정한 통일에 다가갈 수 있고, 그 모든 통일의 과정이 동아시아 평화 구축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변화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전망을 해본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유엔은 국제적 참전과 정전협상의 핵심적인 당사자이지만 60년 넘게 이 불안한 체제의 특성을 방치해왔다. 저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위한 한국의 정전협상에 관한 유엔의 공식적인 해석은커녕, 향후 연구와 국제 활동을 위한 관련 자료의 취합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의 조건이다. 그래서 냉전 이후 끊임없이 지속된 미국의 국제관계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과 앞으로 더욱 첨예해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고려하자면, ‘유엔을 통한 해결 노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과연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는 의문스럽다. 앞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동시에 보면서 또 다른 국제관계의 굴레에 다시 종속된 채 한반도 평화 체제의 구축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보편적 평화와 보편적 정의에 대한 지향의 부족으로 인해 판문점 체제가 내포하고 있던 부정적 유산들이 고착화”되는 것을 우려하지만, 논자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문제가 된 것은 아시아적 가치와 제도에 대한 보편적 차원의 인식이 부족했던 점이 아니라, 냉전시대의 종식 이후에도 한국정치외교사에 관해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기를 주저했던 주류 학계의 편협함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한쪽에서는 미국 중심적․의존적 시각을 보편적 관점으로 수용하는 입장이오히려 과잉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도하게 축적된 민족주의적 입장을 대항 담론으로 구축하게 되었다. 결국 전향적인 역사 인식이 국가의 실천적 지향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에 관한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물론 ‘특수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적 차원으로 문제를 확장하기 위한 ‘보편성’의 추구가 자칫 또 다른 종속적 시각에 매몰될 우려가 있는 것은 비단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근대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 자체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험한 ‘근대’의 비극과 그것에서 연유하여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이 고난의 역사가 단지 우리 민족국가의 불완전함과 정치적 주체의 무능력함에서만 연유한 것이 아니라, 서구적 합리성이 내포하고 있던 역사적 모순들의 비극적인 중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은 한국의 미래 세대가 전 지구적 연대 속에서 추구해나갈 평화를 상상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자극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판문점 체제’라는 창을 통해 광복-분단 70년을 맞이한 오늘날의 한반도가 그 동안 각자의 체제 유지를 위해 활용했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다소 단적으로 말하자면, 남북이 구축해 온 분단체제는 모두 판문점 체제, 즉 근대 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실패가 폭로된 이 기이한 국제질서에 편승하고 기생한 결과였다. 서울시 한 가운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보듯이 그 동안 한반도의 두 국가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기념하며, 공포와 증오의 정치, 안보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 기존 체제를 존속시켜 온 사회였던 것이다. 평화를 전쟁의 가면쯤으로 여기는 것을 당연시해 온 남북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벗어나, 미래의 남북 지도자와 인민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보편적 전망’의 출발은 한반도의 분단 문제가 단지 ‘통일로 인한 경제적 손익계산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평화 구축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데 있을 것이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1

 

 

<철학, 죽음을 말하다>[철학자의 서재]

<철학, 죽음을 말하다>[철학자의 서재]

 

 

박종성(호원대학교 외래교수)

 

[철학자의서재]가 “이시대와 철학”에서 새롭게 연재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제때에 죽도록 하라!

 

 

죽음이라는 삶의 그림자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리는 계절이다. 우리는 그 앙상한 나무를 보며, 떨어진 낙엽을 보며 지나간 시간을 다시금 느끼며 자신의 삶으로 시선을 옮긴다. 생명을 다한 것은 죽음이다. 생명을 다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죽음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시선은 다시금 나의 삶에 대한 성찰로 전환된다. 그런 계절이다. 상황이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일까? 물론 가을이 되고, 겨울이 와야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과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 속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음은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올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너무나 가슴이 저미는 세월호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일 것이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피할 수도 없는, 모두가 직면하고야 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가 역대 독립영화 최고 관객수를 넘어서 300만을 넘었다. EBS <다큐 프라임> ‘데스’에서도 죽음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죽음이란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죽음이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너무나 많은 참사와 사고가 많았던 한 해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다시금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의 태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철학, 죽음을 말하다>(산해, 2012)는 11명의 학자들이 11명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죽음에 대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면에서는 11명의 철학자들을 모두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 필자의 가슴에 남은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머지 글들은 독자가 음미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음미한 맛은 모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죽음을 말하다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 소화시킨 철학자들의 죽음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현세적 삶을 중시하여 죽음을 무시하거나 내세적인 것에 충실하여 현세적 삶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에게 철학은 무지를 자각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잠자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 철학인 것이다. 무지의 자각은 논박(elenchos)을 통해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당혹스러운 상태(aporia)에 처하게 하여 무지를 자각하는 과정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죽음은 죽을 운명의 인간이 죽음을 대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이다. ‘죽음의 수련’은 결과적으로 삶의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시작은 죽음을 사유하는 것이다. 죽음의 사유는 플라톤에게서도 영혼의 돌봄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에게 영혼은 죽지 않은 것이며 생명의 원리인 반면, 육체는 물질적이고 죽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의 본래성은 지성적인 능력이고 육체의 본래성은 감각적인 앎이다. 그런데 영혼의 본래성을 방해하는 것은 성적인 즐거움, 육체적인 즐거움, 소유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처한 삶의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이고 소유욕을 증대시키며 체제를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삶의 환경이다.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은 이렇듯 욕망의 체제로 굴러가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죽음에 대한 사유에서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에게? 인간 행위의 동인은 이기주의(Egoismus), 악의( Bosheit), 그리고 동정( Mitleid)이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인간은 맹목적인 삶의 의지(Wille)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의지, 욕망 때문에 번뇌, 고통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삶의 의지를 물질적 부, 돈에 두고 있다면 그것은 맹목적 의지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맹목적 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의지의 긍정인 것이다. 나아가 이 맹목적 삶에의 의지의 부정은 인간애(caritas)이다. 인간애는 ‘그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말고 오히려 네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을 도우라’를 의미한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인간은 동정(Mitleid)을 가진 자이다. 동정은 타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에 참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삶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이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끊임없는 욕망을 부추기고 무한 경쟁으로 삶을 옥죄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인간애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또 다시 현실의 변혁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맹목적 의지의 부정은 삶의 구원(Erl?sung)이기 때문이다. 또한 맹목적 의지의 소멸은 일상세계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실존의 변화를 실현하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Erl?sung)이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는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제때에 죽도록 하라, 타자의 얼굴과 만나라

니체(Nietzsche)는 인간을 신체(Leib)적 존재로 이해한다. 이것은 이원적 해석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개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성과 육체, 그리고 힘의 의지(Der Wille zur Macht)가 공존하는 총체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에게 삶의 목적은 초인(Der ?bermensch)인데, 초인은 고정될 수 없는 인간, 현 상태의 유지(erhalten)가 아니라 지속적인 상승(steigen)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이는 힘의 의지(Der Wille zur Macht)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초인은 자신을 넘어서고 극복하는(?ber-sich-hinaus-gehen, sich-?berwinden) 자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sich-schaffen)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다. 이는 인간 개개인이 구현해야 할 실존적 이상이다. 니체는 “제때에 죽도록 하라”,“그러나 결코 제때에 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제때에 죽을 수 있겠는가?”라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다. 제때 삶을 사는 것은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거나 삶의 열등함으로 인해 죽음을 의욕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야 할 때 살려고 하지 않거나 그냥 죽지 않는 것이며,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긍정하며 사는 것, 이것이 니체가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니다. 이것이 제때에 죽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세월호 참사는 제때 죽지 못하게 만든 사회적인 죽음이다. 제때에 죽지 못한 삶, 다시 말해 제때에 살지 못한 사회적 죽음인 것이다. 이 모든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타자의 죽음은 레비나스(Levinas) 철학에서 중요한 내용이다.

레비나스는 죽음은 인식론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학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존재론은 존재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존재 근거와 존재 방식을 탐구하는 것인데, 죽음은 존재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 영역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타자가 철학의 제1원리이다. 타자와 죽음의 철학은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문제의식이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다. 언제나 타자의 죽음은 나의 죽음을 앞선다. 그가 보기에 존재론적 철학은 ‘타자’를 ‘자아’의 영역으로 환원하여 자아의 지배하에 두는 ‘자아’ 우위의 철학이다.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것처럼 죽음 현재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속하며, 따라서 선취를 통해 앞질러가서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현재의 미래’가 아니다. 미래의 죽음을 현존재 안으로 들어온 죽음으로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의 타자성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은 윤리적 접근이며 이는 타자와의 만남, 타자의 얼굴과의 만남이다. 기아 빈곤, 전쟁, 테러, 어린이 여성, 노약자들은 타자의 얼굴이며, 이들의 얼굴은 “제발 저를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제발 저를 죽이지 마세요!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사회적인 죽음,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타자의 얼굴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과제이자 책무일 것이다. 국가는 이 타자들의 얼굴에 얼마만큼 응답하고 있는가! 지금의 현실에서 그 답은 부정적이다. OECD 34개 국가 중 죽음의 질 지수가 최하위인 현실에서 죽음의 사유는 더 긴요하게 요구된다. 지난 9월에 이미 3명의 노동자가 월성 핵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어제 27일에 노동자 3명이 질식사하였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국가에서 제때 죽을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은 제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삶의 변혁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생명보다 이윤을 더 큰 가치로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죽음으로 질주하는 타자의 얼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이다. 즉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현재를 즐기고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를 즐기고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와 국가는 타자의 얼굴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회와 국가는 변혁되어야 한다. 제때에 죽도록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타자의 얼굴과 만나야 한다!

 

 

 

푸꼬의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철학자의 서재]

푸꼬의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철학자의 서재]

 

류종렬(철학아카데미)

 

[철학자의서재]가 “이시대와 철학”에서 새롭게 연재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성의역사1성(sex)에 관한한 의학(생물학)적으로 지식이 지배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지라도 성관심(sexualit?, 애정관심)은 지식과 권력에 연관 속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포함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애정관심은 남녀만의 것도 아니고, 한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나나니 벌과 난초, 도착자들) 사람과 사물 사이에도 있다. 푸꼬의 철학적 여정을 보면 애정관심의 문제거리는 지식과 권력과는 다른 차원임을 알 수 있다. 왜 성관심은 지식과 권력이 아닐까하는 문제거리를 나는 막대자석에 비유한다. 근세철학이 맘과 몸, 영혼과 신체의 관계를 두 시계처럼 서로 다르지만 같이 갈 수 있는 것으로, 학문적 표현으로 평행론이라거나 번역가능성이거나 한쪽으로 환원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또는 그보다 더 높은 하나로 치환가능한 것쯤으로 여긴다. 좌석은 남극과 북극이 둘 다 같은 힘(역량)을 표현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관을 맺는다. 두 방식은 방향만이 반대일까? 간단히 막대자석을 반으로 잘라보라, 그러면 두 개의 성(sex)처럼 따로 남성과 여성처럼 남극과 북극이 따라 현존할까? 잘라진 반토막은 또 다시 두 개의 극을 갖는다. 하나의 관심을 잘라낸다고 다른 하나로서만 존속할 것이라고 사유될 수 없고, 상대적인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생성한다. 다른 표현으로 기의(한 극)가 활동하는 순간, 기표(다른 극)는 만들어진다, 즉 생성한다. 부정성을 거쳐서 지양이라기보다 부정성도 실재성이며 단지 배제된 관심으로 무시되었을 뿐이며, 이는 여성, 소수자, 이석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둘 사이에 평행도 번역도 환원도 아닌 방식으로 생성한다는 가정은 인간의 사유를 모독하는 것일까?

우리가 푸꼬에게 다시 물어볼 수 없지만, 그의 학문적 여정을 다시 보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들뢰즈을 빌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로서는 지식의 고고학을 탐구 해 나가면서 보니, 지식이 권력의 행사와 같은 보조를 맞추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보기에 푸꼬는 과거를 탐색하는 고문헌학자에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지도제작자를 이행하였는데, 당시의 주변 학자들이 그에게서 ‘신의 죽음’보다 더한 ‘주체의 상실’을 보았다고 할 때, 푸꼬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왜 다른 사람들이 주체의 부재로 읽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권력의 행사에서 피권력자(배제자)는 주체가 아니게 되고, 지식이 개별자의 것이 아니면 인간조차도 배제자(소외자)가 된다. 은연중에 지식의 총체로서 상층이라는 기표를 인정하게 되면, 당연히 거기에 대응하는 기표로서 개인 또는 인민은 기표의 권능을 지닐 것이라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대응도 평행도 아니고, 그의 비판자들 말대로 개인은 피지배자로 놓이게 되어 아니러니에 빠진다.

푸꼬는 지식과 권력처럼 성관심에서도 같은 관계가 성립하는지에 대해 그의 3부작의 첫 작품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La volont? de savoir, 1976)>에서 고민하면서 시작한다. 억압 기제로서 권력을 성관심에 관한한 그 작동(기술방식)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당연히 지배 기술(techn?)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여긴 것에서 문제거리를 보았다. 그런데 성에 관해서만은 그 억압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것은 과거 서양에서는 고백문화가 전부가 아닌가 한다. 성관심은, 성을 다루듯 기계적 장치로만으로도, 생물학적으로 둘 사이의 상대적 연관을 맺는 매체로서도, 그리고 정치적 쟁점으로서 규제와 규율의 강화에서도 인구조절의 정책에서도 설명될 수 없는 다른 것이 있다. 역사의 구체적 고문헌을 파고 들어가 보면 통제와 규율보다 더 많은 성관심을, 권력의 그물에 잡히지 않은 더 많은 애정관심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애정 관심은 자기의 목표 추구처럼 일정한 완성에 이르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확장의 추구, 즉 회오리 같은 추구로서 자기완성의 길로 가는 과정이라는 소크라테스적 욕망과 더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푸꼬는 첫 권을 쓰고서(1976년) 그 자신이 6가지 주제를 다룰 것이라고 예고했다. 1. 앎의 의지 2. 살과 신체, 3. 어린이들의 십자군, 4. 여성, 어머니, 히스테리, 5. 도착자들, 6. 인구와 종족 이다. 이러한 방향은 수정되지 않을 수 없었고, 긴 시간(8년)을 고민하여 두 권(제2권과 제3권, 1984년 그가 죽기 직전에)을 내면서 스스로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지식의 진보라는 방향, 권력의 표출이라는 방향과 달리 셋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즉 “자기와 관계가 어떤 형태와 양태들을 취하는 지”를 탐구하는 “주체”의 문제로 전환이다. 들뢰즈가 푸꼬를 존경하여 쓴 <푸꼬(1986)>의 제2부 ?위상학?에서 “다르게 사유하기”라는 용어를 부각시켰듯이, 푸꼬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에, 어떻게 그리고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알려고 하는 것”(제2권 번23쪽)에서 주체의 진솔한 위상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애정관심에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번역가능하지 않는 상대를 만날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푸꼬는 이 상대를 제3권에서 ?자신과 타인?이라는 소제목에서 타인들의 범주들로 다룬다. 우리는 그의 저술의 순서에 따라서 타인과 관계 이전에 제2권에서 자기의 설정을 먼저 다룬 이유를 짐작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바깥의 대상이다. 인간이라는 상대도 바깥으로 두었을 때 지식을 통한 지식에 의한 지배는 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철학을 주지주의철학이라 부른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에 대한 지배 또는 배려에서도 대상으로 위상을 설정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의 다이몬,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에서 기억, 베르그송의 지속은 같은 고민이었을 것이다. 인격에 관한한 대상화(기표)이전에 자기 현존(인격성, 기의)이 먼저이고, 게다가 이 현존을 타자처럼 대상화로 다루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묻기를 하다 보니 아이러니로, 다른 사람은 고민을 하다고 오류가 있더라고 믿자 하며 넘어가고, 또 한 사람은 운동하고 있는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기나긴)? 과정 전체를 “하나”로 위상을 정하자고 한다. 이 하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으며, 하나가 자기 삶의 선택을 다른 하나(분신, 아바타, 기표)로 표출한다. 이런 생각은 주지주의에 대립되는 본성주의(le Naturalisme, 자연주의)라 하자. 푸꼬는 우선 그러한 방식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볼 것이고, 자기 위상의 설정으로 주체화의 양식의 길 즉 자기완성의 길에 주목하였다. 그다음으로 다루어야 할 것으로 크리스트교 안에서 자기완성의 길일진 데 애석하게도 다음 차례로 남겨 놓고 죽었다.

자기완성을 애정관심에서 보면 네 가지 개념을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우선 아프로디지아, 쾌락의 개념. 그것을 통해 우리는 성적 행동에서 무엇이 ‘윤리적 실체’로 인식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다음으로 크레시스, ‘활용’의 개념. 이 개념을 통해 우리는 쾌락의 실천이 도덕적 가치를 부여 받기 위해 따라야 했던 복종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엔크라테이아, ‘제어’의 개념. 이 개념은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세우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져야만 하는 태도를 정의해준다. 마지막으로 소프로쉬네, ’절제’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성의역사2 수행 중에 있는 도덕적 주체를 특징짓는 것이다.”(2권 51쪽) 여기서 성관심의 쾌락, 극기, 절제에 관한한 조화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고대 철학의 주제인 듯하지만, 제2권의 주제인 “쾌락의 활용”에는 다른 의미가 들어있다. “때에 맺게”(카이로이스) 이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얼핏 때에 어긋나게 라는 니체의 ‘반시대’를 떠올일 수 있다. 반시대도 부정성이 아니라 실재성이므로,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은 48%의 부정성이, 51.6%만큼이나 시대의 적절함이며 때에 맞음이기도 하다. 여기서 언급은 카이로이스가 자기 배려에 중요한 계기이다.

그는 고문헌학자답게 성관심과 자기 배려를 다룰 세 가지 기술(techn? 조절 방식)을 다룬다. 스스로를 자신의 육체에 대한 적절한 결합과 배려의 기술로서 양생술,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가축과 노예처럼 여성에 대해서도 통제와 지배의 기술로서 가정관리술, 대리자로서 자유로운 활동을 예비하는 소년을 스스로 지혜를 갖추어가는 기술과 훈련으로서 연애술, 세 부분을 학문적으로 다룬다. 이런 내용을 검토하고 나서, 주체의 진정한 활동은 사랑행위로부터 사랑의 본질로, 명예의 문제로부터 진리의 사랑으로 가듯이, 타인과 관계에서도 불균형으로부터 일치로 나간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자유인들이 중요시한 연애술 중에서 소년애도 덕목의 발현으로부터 지혜로 이행을 여러모로 검토한다. 그 성관심에는 즐거움을 활용하고 그것에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는 자기 극복의 노력이 필요하며 또한 그 훈련이 중요하다. 소년은 장차 자유시민이 되기 부족하여 종속되거나 넘쳐서 독재적이 되어서 안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언제나 절제(소프로쉬네) 또는 조화(아르모니아)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성관심의 문제가 플라톤의 소클라테스의 연애술(사랑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은 것으로, 사랑의 권장은 문제에 답을 찾는 것이라기보다 문제거리의 꺼풀을 벗기는 과정이다. 욕망의 실현은 자기의 꺼풀을 벗는 것으로 자기에 대한 자기 스스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답을 모른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찾아가는 소크라테스의 여정일이지 모른다.

“자기 속에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의 방식은,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에서처럼 지속하는 기억의 총체가 무매개적으로 실재함을 다루는 것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처럼 꿈을 분석하여 무의식을 실재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도 또 다른 한 방식일 것이다. 현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긍정성으로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부정성의 실재성으로 전환. 푸꼬는 이 여정을 고대의 아르테미도로스의 <꿈 해몽>을 통해 방법을 들여다본다. 꿈은 질서를 주체에 맞는 상태로 표현하기보다, 어쩌면 떠돌이 거지(부족한 자)의 일시적 표현같이 우의적이고 신탁적인 경우가 더 많다 점이다. 푸꼬는 이 책을 빗대어, 꿈의 해석이 윤리적 형식을 갖추게하는 측면이 있다기보다, 고대 꿈의 해석을 통해 성관심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방식을 본다. 그 속에는 애정 관심들이 지속성을 지니고 상관성을 정리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에, 어둠에 있는 아페이론이 자기 생성으로서 시뮬라크르로 등장하는 실재성이 “자기 관심”이 아닐까? 우리가 보기에 푸꼬에서 애정관심에 관한 자기 설정, 자기의 역할과 훈련, 그리고 자기극복 등을 제2권에 다루었던 것도, 자기에 대한 관심 즉 “자기 배려”(제3권의 제목이다)때문일 것이다.

푸꼬의 관점을 맘과 몸 연관에서 보면, 몸은 외적 표현(표시, 시뮬라크르)이라면, 맘은 내면의 본성(자연)으로서, 자연 속에서 자기 배려라는 ‘달리 사유’는 푸꼬를 깊이로(심층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 그 내면의 본성이 물질적(유물론)이고 자연적(자연주의)이며, 이것의 외화된 표현(껍질)이 물체로서 형식(형상론)이며 표상적(주지주의)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물론과 형상론은 전도된 것으로 나타난다. 소위 말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관심은 ‘자기에 대한 관심’은 개인 하나에 대해 전념하는 것이 아니성의역사3라, 자기와 연관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전념을 말하는 것으로, 사유(맘)와 실천(몸)은 분리되지 않은 밀접한 관계로서 다룬다. 이 주제들 잘 들여다보면, 사실은 소크라테스의 욕망의 탐구와 사회적 실천의 양면성(이원성이 아닌 이중성)을 함께 하는 바로 자기의 배려이다. 즉 소크라테스의 앎과 함(지행합일)을 구체적 실천의 지표로 삼은 것은 스토아학파일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오이케이오시스(O?k?iosis ο?κε?ωσι?, 헌신)는 살아있는 존재가 자기에 속하는 것. 즉 자기 존재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소개된 번역어는 헌신이지만, 푸꼬의 번역의 “자기 배려”가 더 적당할 것 같고 나아가 “자기 치유”도 같은 의미이다. 소크라테스가 당대에 지식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 배운 것도 자기의 배려이며, 그들을 찾아가서 논쟁 끝에 피상적 지식을 넘어서 지정한 지식(총체적 배려, 인민들 삶의 절제, 도시 전체의 정의 등)에 추구는 ‘자기 치유’의 방식이다. 성관심도 개별적으로 답을 얻듯이 쾌락을 얻는 것도 아니고, 타인과 논쟁에서 이기듯이 성적관계도 이기는 것도 아니고, 수사학이나 논변술로서 자기 자랑과 허풍이 아니라 자기 극복이자 지식 추구이듯이, 성관심도 얻거나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훈련으로 자신의 극복에 있으며, 도시와 개인의 조화로운 절제 이듯이 성관심은 상대의 자유와 완성하려는 인격의 배려에 있다. 이 점에서 푸꼬는 고대의 소년애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 여성과 노예는 가정관리의 대상이니 제외하고, 자유 시민으로 자라 도시를 담당할 소년에게는 자신처럼 소년(타인)을 배려하여, 그도 자기의 인격완성의 노력과 지혜를 소년(타인)에게 전하는 사랑과 배려가 필요하다. 즉 소년애의 사랑은 타인의 자유와 지혜 추구의 길이 된다. 푸꼬는 제3권을 쓰고 다음 4권에서 크리스트교 사랑을 쓴다고 했지만, 여기서 어느 정도 만족했으리라. 즉 주체의 탐구는 주체의 자기 배려, 자기 훈련과 자기 극복, 그리고 회오리처럼 점점 커져가는 방식으로 자기 탐구의 확장은 성관심의 문제거리들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지식과 지혜들의 추구욕망과도 같은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푸꼬는 “주체”를 다루면서, 은연중에, 진솔한 지식의 탐구로서 “철학”을 밝히게 되었다. 주체의 주체화 과정이 “철학”이며 욕망의 추구이며 애정관심을 포함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누구나를 배려하는 “자유”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푸꼬는 역사적 고문헌을 통해 새로운 지도그리기가 이쯤에서 자유를 향한 주체의 위상을 그려 놓지 않았을까?

띠리(Bruno Thiry)는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에서 “윤리적 요청에 따라서 그 자체로 ‘사유 속에서 자기의 훈련’을 만족 시키며, 한 사상가는 자기가 [현재] 있는 것과 다른 것이 되면서도 자기에 충실하게 남는다. [자아의 이중화 현상을 이어가는] 푸꼬는 이런 것을 그의 고유한 이름으로, 철학, 이라 부른다.”고 평했다. 나로서는, 맘과 몸의 이중화의 부조화를 끊임없이 조화롭게 만들기(생성)하는 노력과 훈련 그리고 배려가 삶이며, 그 표면의 시뮬라크르 등장이 ‘철학’이라 본다. 푸꼬는 말년에 인격의 이중화 작업을 깨닫고서 철학의 진정한 아이러니를, 소크라테스처럼, 맛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의 습관을 버려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6-2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의 습관을 버려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6-2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지금의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문제는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공부하기 싫다고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낮게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도 철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이 하고 싶은 생각 방향이나 행동 방향은 늘 자신에게 편한 방식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고 싶은 대로의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대로의 행동은 그 행동에 맞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하려면 ‘그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투입해야 한다. 좋은 시험성적을 원하면 ‘시험공부’라는 원인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코넬 대학 존슨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행동과학과 교수(?2014 Samuel Curtis Johnson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

코넬 대학 존슨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행동과학과 교수(?2014 Samuel Curtis Johnson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가 이렇게 머리 쓰면서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편한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놓고는 자신에게 이로운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런 것을 두고 철학에서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고 한다.

소망적 사고란 생각을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는 것을 말한다. 마땅히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이유 없이 자신의 소망에 따라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의 방식은 대체로 소망적 사고인데, 철학은 이 소망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소망적 사고를 해도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소망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망적 사고를 하면 일단 마음은 편해지지만 이후에 지속적으로 불편이 야기되고 합리적인 해결이 안 되어 문제가 더 장기화되기 때문에 소망적 사고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소망적 사고는 결국은 나를 더 힘든 길로 몰아가고 말기 때문이다.

(출처: http://skyfm.tistory.com)

(출처: http://skyfm.tistory.com)

어느 날 로또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 온 사람이 나를 불편하지 않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 어딘가에 나만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소망적 사고이다. 오히려 로또가 되는 것은 번개 맞는 확률보다 낮고,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 온 사람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생각패턴과 행동패턴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 혹은 그녀를 헌신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한 나만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소망적 사고의 문제를 타인과 갈등을 겪을 때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갈등상황에서 우리는 ‘그 사람은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그는 그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데, 결과는 나의 행동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고 그의 행동은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나는 그의 마음에 맞게 행동을 바꾸고, 그는 나의 마음에 맞게 행동을 바꾸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에 맞게 내 행동을 바꿀 의사가 없다. 거꾸로 내 행동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상대방이 야속할 뿐이다.

우리는 내 행동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방이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마음에 들어해달라고 요구하면 화를 내게 된다. “도대체 너는 왜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그리도 안 해주느냐?” 하면서 원망을 한다.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굉장히 원망하면서도 자신은 그 사람의 마음에 맞게 행동을 변화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우에는 자신이 행동하는 대로 상대방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수용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중논리이다. 자신에게 적용하는 논리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논리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이중논리를 구사한다고 한다.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수용해줄 의사가 없다.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는 식이기 때문에 이중논리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논리를 마음 편하게 구사하면서 상대방은 마땅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바꾸어야 하고 또 마땅히 내가 하는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을 겪는다는 것은 내가 하는 행동과 상대방의 마음, 상대방의 행동과 나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내 행동에 맞추거나 내 행동을 상대방의 마음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 편이 쉬운가? 상대방의 마음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다.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동뿐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동이지 상대방의 마음이 아니다.

바랄 수 없는 것과 바랄 수 있는 것을 잘 구분해야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려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원인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해오던 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결과,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이 하기 쉬운 행동을 해놓고서는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기를 비합리적으로 소망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지해온 습관대로 행동하면 그동안 겪어왔던 결과만 다시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나의 행동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은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길 바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해야 유효한 고민, 필요한 고민을 할 수 있다.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면, 바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바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쓸모없는 바람을 가지는 것을 그만 중단하게 된다.

바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바랄 수 없는 것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면 그 바람의 정도가 약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에 여러분의 6살짜리 조카가 “저는 맛있는 건 많이 먹고 싶은데, 화장실은 정말 정말 가기 싫어요.”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화장실에 가야 또 다음에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위와 장을 비우게 될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여러분은 그런 허황된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논리적 불가능성을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쓸모없는 바람에 덜 휘돌리게 되기 마련이다. 바랄 수 없는 것이 왜 바랄 수 없는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나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느라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어느 설문조사에서 남자들은 세련되면서도 검소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세련되려다보면 소비를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검소하기는 어렵다. 남자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감각이 좋아서 저렴한 비용에 세련되게 하고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세련되려면 옷이며 액세서리 구두 등을 다양하게 착용해보고 감각을 키워야 하는데 검소하게 한다고 해도 얼마나 검소할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지기는 실로 어려운 것이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여자가 성격이 안 좋다면? 결국 남자들은 그 세련되고 검소한 사람이 성격도 좋고 외모도 좋고 데이트비용도 내며 애교까지 많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여자들이 책임감 있고 소신 있으며 나에게만 다정다감하고 그러면서도 근육질에 키까지 큰 남자친구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임감 있고 소신이 있으면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설사 자신의 여자 친구라 할지라도 그 원칙을 어길 경우 비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여자친구에게만 다정다감하겠는가? 여자친구에게 다정다감한 사람은 다른 여자에게도 다정다감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다정다감함의 특성을 한 명에게만 발휘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발휘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은 나에게 만족할까? 내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그 사람은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원하기 마련이다. 바랄 수 없는 것은 바라지 않을 수 있도록 생각을 조절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은 효과적으로 잘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길이다. 바라봤자 되지도 않는 일을 바라느라 정작 필요한 일은 하지 못하는 우매함은 이제 그만 날려 버려야 한다.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의 습관을 버려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6-1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의 습관을 버려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6-1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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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 1828년 ~ 1910년)은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사진출처: www.hemovac.com)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 1828년 ~ 1910년)은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사진출처: www.hemovac.com)

 

고뇌 없는 인생은 발전이 불가능하다. 고뇌야말로 정신이 향상되어가는 과정이다.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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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 그 스트레스를 조절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조절을 위한 방안을 강구해내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는 경우이다. 스트레스 관리에서 문제가 되는 유형의 사람은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에너지를 쓰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때는 그게 힘든 줄도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는 견뎌내야 한다는 확고한 전제 때문에 힘들거나 말거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소리가 된다. 이는 자기 자신의 상태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 인식의 특성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은 항상 상황이 벌어지는 T1시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그 시점이 지난 T2시점에서야 이루어진다. 상황이 벌어지는 시점에는 당황해 ‘이게 뭐지?’ 하다가 상황이 종료된 시점에서야 ‘아 그렇구나!’ 하고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나 자신이 스스로를 ‘내가 이러이러하다’고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어렵게 말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기 어렵다. 타인에 대해서는 파악이 쉽다. 저 사람이 지금 이러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사태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편향적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구나 하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에 대해서는 그러한 객관적 파악을 하기 힘들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객관으로 두고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메타차원(상위차원)에서 자신에 대해 인식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현재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의 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일이 벌어진 시점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즉 제대로 된 인식은 사건 발생 시점이 지나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로마 신화에서 미네르바와 항상 함께 다니는 신조(神鳥)인 부엉이를 말하는데 지혜의 상징이다. (출처:wikipedia)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로마 신화에서 미네르바와 항상 함께 다니는 신조(神鳥)인 부엉이를 말하는데 지혜의 상징이다. (출처:wikipedia)

그래서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어서야 난다.”고 말했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을 지칭한다. 헤겔의 이 말은 ‘인식은 항상 한 발 짝 늦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일이 벌어지는 당시에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어떠한 문제에 얼마만큼이나 스트레스 받는지를 파악하지는 못하면서 타인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상당히 객관적으로 인식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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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견디는 데에만 골몰하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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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의 스트레스에 대해 전해들을 때 보이게 되는 반응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뭘 그런 것 가지고 스트레스 받느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나와는 다르게 반응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뭘 그걸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느냐 생각하지만 오히려 진실은 ‘그러한 것에 스트레스 받는 것이 그 사람의 특성이다’라는 것에 가깝다. 그 사람으로서는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서 받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도 그것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지만 그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존재방식 때문에 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는 저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의문을 보이는 반응이다. 이 경우 ‘그 사람은 왜 그런 스트레스의 근원을 빨리 해결하지 않고 계속 견디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스트레스를 우선 견디려고 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서야 자신이 그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어떻게 살았는지가 스스로도 의심스러워지게 되곤 한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지금 그 때로 돌아가 그렇게 다시 하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할 자신이 없는 그런 일들을 헤쳐 나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너무 힘든 것 아니냐?”고 말해주면 그 때서야 ‘정말 이게 힘든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 남들도 힘들어할 일이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기도 한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나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힘들었을 일이었구나, 힘들어한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떤 때는 누구나 힘들 일이었다는 사실에 억울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었던 일을 내가 겪어내야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인내력이 부족하거나 어떤 나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힘들었다면 모르겠지만 누가 그 일을 겪어도 그 일은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내가 왜 그러한 일을 겪었어야 했는지 억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여하간 스스로 어떤 일에 얼마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남들 같으면 받지 않을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고, 남들 같으면 많이 스트레스 받을 일인데도 잘 넘기는 경우가 있다. 본인이 너무 견디려는 사람은 아닌지 혹은 너무 견디지 않는 사람은 아닌지 살펴보자. 너무 견디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좀 쉽게 쉽게 살아라.” 하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너무 견디지 않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 때문에 못살겠다. 생각 좀 하면서 살아라.” 하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하면 안 된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못 보는 나의 모습을 봐주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 세 명이 똑같이 말하면 그 말을 들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나보다 더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그 말을 들어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 말이 고통스럽다는 것 자체가 그 말이 진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너무 견디려고만 해서도 안 되고, 스트레스를 너무 견디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그 정도를 알 수 없다면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자.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견디나요, 아니면 너무 안 견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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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만 해도 안 되고 남 탓만 해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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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타인의 잘못은 무시하고 자신의 잘못에만 골몰하면 열등감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없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 실수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편이 낫다. 그런데 이럴 경우에 남 탓을 하고 싶은 심리구조상 남 탓을 자꾸 하고 싶게 된다. 내 탓은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생각이 잘 안 나지만 남 탓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생각나는 법이다. 물론 우울증을 앓는 경우에는 반대가 된다. 내 탓만 생각나고 남 탓은 생각나지 않는다.

건강한 인식은 내 탓과 남 탓을 현실에 맞게 하는 것이다. 내 잘못이 어느 정도이고 남의 잘못이 어느 정도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남 탓을 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이고 내 탓을 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파악해놓고 나면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면 되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변화시킬 수 없음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두고 왜 변화되지 않느냐고 원망해봐야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두고 변화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주어진 환경과 타인의 행동은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환경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이러저러한 요청은 할 수 있지만 내가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는 없다.

생각해보라. 내 행동도 내가 고치기 힘든데 남의 행동이 나의 말에 의해서 고쳐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힘드니까 우리는 자꾸 남이 변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 편이 나에게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 돌아가는 방식은 이렇게 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방식이다.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은 수용하면 된다는 말이 너무 맞는 말이라서 진부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에서 철학카운슬링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변화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을 나의 욕망에 맞추어 비틀어서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을 두고 변화되기를 바라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렇게 바라기만 하고 있는 편이 나의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우매한 일이다. 변화시킬 수 있는 나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으면서 변화시킬 수 없는 남만 붙잡고 통사정하는 우리 마음의 비논리를 잘 직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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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의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철학자의 서재]

신기욱의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철학자의 서재]

이병수(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역사적으로 각인된, 우연한, 경쟁적”이라는 분석틀

 

▲ (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창비 펴냄) ⓒ창비

▲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창비 펴냄) ⓒ창비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창비 펴냄)는 미국에서 한국학 연구의 중심인물로 활동하고 있는 스탠포드대학교 신기욱 교수의 2006년 저서(『Ethnic Nationalism in Korea: Genealogy, Politics, and Legacy』)를 2009년 창비에서 번역 출간한 책이다.

저자 신기욱은 서문에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혈연에 기초한 단일민족주의 내지는 의식”이며 “한국인의 단일민족주의를 이해하지 않고는 20세기 한국사회와 정치의 변화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한 저자는 단일한 민족의식이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가를 질문하면서 그 역사적 형성과정을 확인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집합적 정체성들 가운데 어째서 공통의 혈통을 강조하는 종족적 민족주의로 귀착했느냐를 탐문한다.

요컨대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를 혈연에 기반을 둔 종족적 민족주의로 보면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 그리고 기능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한국 민족주의의 억압적, 배타적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되면서 민족주의 논쟁이 전개되었지만 한국 민족주의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실증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서구의 민족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19세기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근현대사의 구체적인 전개과정에 기반을 두고 한국 민족주의를 논하고 있다. 서구의 민족이론에 더불어 한반도 근현대사의 역사적 경험들을 동시에 섭렵함으로써 이론적 고찰과 경험적 자료의 활용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주류 민족이론들의 한반도적 적합성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는 특히 민족의 기원에 대한 원초주의적 견해와 근대주의적 견해의 한계점들을 극복하려는 저자의 시도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견해를, 첫째 단일한 혈통을 자연적이고 운명적으로 간주하는 원초주의적 견해, 둘째 한민족을 조선왕조 말기에 도입된 근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는 근대주의적 견해, 셋째 두 입장을 논박하며 서구와는 다른 한민족의 역사적 경험의 특수성(장기간의 중앙집권적 국가 등선재하는 역사적 유산)을 강조하는 견해 세 가지로 정리한다. 그는 세 입장이 모두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면서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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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민족 형성의 “결정적 요소”로 보는가? 저자에 따르면 우연한 민족의 구성에서 결정적 요소는 경쟁적인 정치의 결과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분석틀을 “민족은 특히 대내외의 논쟁적인 정치의 결과, 역사적으로 각인되고 구조적으로 우연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구조의 산물”로 요약한다.

요컨대 저자의 입장은 전근대적 유래를 지닌 종족적 유산의 규정력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역사적 각인) 위의 두 번째 견해와 차이가 나며, 그 규정력을 약화시켜 우연적으로 본다는 측면에서(우연한 상황) 세 번째 견해와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 역사적 각인과 우연한 상황을 정당화하는 민족 형성의 결정적 요소가 “이중적인 경쟁적 논쟁”이다.

그는 민족개념이 처음부터 혈통에 기반을 두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면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종족적으로 되어가는 역사과정을 이중적 경쟁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민족은 인종, 계급 등 초민족적인 집단 정체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민족개념에 대한 여러 해석들 가운데 종족적 민족개념이 경쟁에서 이겨 지배적인 것으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즉, “20세기에 인종지향적인 한민족 개념이 출현하고 지배하게 된 것은 민족세력과 초민족 세력 사이의 논쟁과 민족 개념에 대한 논쟁이라는 이원적 논쟁과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민족적인 것과 초민족적인 것의 경쟁, 민족개념 자체를 둘러싼 경쟁이라는 이중적인 경쟁의 틀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저자의 “역사적으로 각인된, 우연한, 경쟁적”이라는 분석틀은 매력적이지만 그 분석틀의 성공 유무는 일차적으로 이런 이중적 논쟁이 한반도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과 합치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적 사실과의 합치 여부보다는 이 책의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규정과 “종족성과 시민성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관점,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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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적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선 저자는 종족적 민족주의를 혈통에 바탕을 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족개념에 대한 우리의 통념적 이해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현재 우리의 종족성이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는 강한 혈통주의적 특징(더불어 대한민국 중심주의)을 지닌 재외동포재단법에서 찾을 수 있다.

 

“‘재외동포’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이거나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거주,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재외동포재단법, 제2조)

 

▲ 단재 신채호

▲ 단재 신채호

그러나 식민지 시기 민족담론은 아직 혈통적 단일성에로 한정된 민족주의적 지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학자들은 다종족설을 상식으로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다종족 구성, 주종족 주도론’은 일찍이 한말에 신채호가 ‘독사신론’에서 말한 바 있다. 단일한 혈통에 기초한 민족이라는 ‘단일민족론’은 해방 이후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이는 해방 후 국내외적 정세가 민족분단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운데 단일민족은 결코 분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혈연을 중심으로 한 단일민족설보다는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종족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종족적 민족주의의 성격이 강하다고 표현할 경우, 그것은 혈연보다는 풍속·습관과 같은 문화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를 뜻하는 방향에서 사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다음으로, 저자는 종족적 민족주의를 통해 20세기 한반도에서 등장한 다양한 민족주의를 통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족성의 전일적 지배를 강조하는 저자는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적 현상을 획일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를 종족적 민족주의와 동일시하는 과도한 환원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백남운, 이광수, 김일성, 박정희의 민족주의는 혈연에 기반을 둔 종족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등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자기완결적인 논리구조를 갖추지 못한 채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이차적 이데올로기이며, 진보성과 아울러 침략성의 양면성을 갖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민족주의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특징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해방 후 한반도에는 남북한 각각의 국가에 의해 주도된 두 개의 국가주의적 민족주의, 그에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민중이 주체가 된 민중주의적 민족주의 등 다양한 민족담론이 존재한다.

이처럼 종족적 민족개념은 사회주의, 자유주의, 국가주의와 모두 결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종족적 민족개념이 마치 불변적으로 지속되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정치적, 이념적 지향성을 무시한 채 혈연적 종족성이라는 유사성을 근거로 20세기 한반도에 등장한 다양한 민족주의를 통시적으로 적용, 평가하는 시각은 역사적 다양성을 배제하는 과도한 환원주의로 여겨진다.

셋째, 저자는 종족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능을 축복이자 저주인 “양날의 칼”로 설명하면서 서구의 주요 민족주의 이론들의 한반도적 적합성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스 콘 이래 서구의 민족주의 연구자들은 정치적 민족주의를 시민적, 통합적, 건설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 종족민족주의를 위험하고,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보는 강한 전통이 있다. 저자는 유럽적 경험에 바탕을 둔 이러한 이분법적인 본질주의 시각이 한국의 종족 민족주의가 지닌 다양하고 복잡한 역할과 기능을 간과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한반도 역사에서 종족 민족주의는 일제하 반식민주의의 기능을 했고, 남북의 근대화 과정에서 통합적 기능을 수행했으며, 나아가 통일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두 체제의 부드러운 통합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축복) 그러나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중요한 정체성들을 억압했고, 자유주의의 빈곤을 초래했으며, 남북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저주)

그러나 “양날의 칼”의 비유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 곳곳에 되풀이해서 종족 정체성의 부정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시민적 민족정체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혈통 중심의 민족 개념을 재고해야 한다. 외국인 이주민과 혈통을 떠나 민주국가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적 민족 정체성’이 필요하다.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 논리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시민 정체성과 종족 정체성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종족 정체성의 양면적인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도처에서 시민적 정체성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 과연 저자가 한스 콘 이래의 본질주의적 시각을 제대로 극복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문제는 종족성과 시민성이 결합될 수 없다는 그의 관점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종족성과 시민성의 결합을 위하여

 

‘민족’은 순전히 언어, 역사 등의 문화적 단위로도, 순전히 정치적 단위로도 정의될 수 없으며, 양자가 결합한 범주로 이해될 수 있다. 민족의 역사는 정치공동체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지만, 민족은 정치 공동체로 환원되지 않는 종족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현실에서 모든 민족은 종족적 특성들과 시민적 특성들을 동시에 갖게 마련이다. 종족성과 시민성은 서구의 민족국가에서도 한 번도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양자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종족성을 배제하고 시민성을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지닌 한계는 분명하다. ‘시민 민족주의’에서와 같이 시민성을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전략이 현실적 차원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는 종족적인 기반에 의한 동기부여 없이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연합은 추진력을 갖고 실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족적 민족”(ethnic nations)과 “시민적 민족”(civic nations)의 구분 시도는 우리 학계의 민족논의에서 종족적 민족개념이 한국 민족주의의 성격을 강력히 주조(배타성과 획일성)했다는 점만 부각시키는 경향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종족성이 중요한 행위의 원천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 어떤 정치적 행위를 낳는 것은 아니다. 종족성은 당대의 정치적 조건과 불가분하게 엮여 있으며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결합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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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여러 민족주의의 정치적, 이념적 지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족적 민족개념이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예컨대 지배세력의 공식적 민족 개념과 1980년대의 민중적 민족주의는 “민족의 종족적 토대에는 동의했지만, 민족에 대한 정치적 개념이 전혀 달랐”다. 정치적 민족 개념이 달랐을지라도 종족적 민족성의 토대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직 정치적 양상만이 논쟁의 대상이었을 뿐, 양자는 동일한 종족적 개념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족성과 정치 공동체가 한 번도 일치해 본적이 없는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는 특정 민족주의 개념의 지배를 위협하는 근본 요인이자 시민적 민족과 종족적 민족의 이분법의 적용불가능성을 보여준다. 20세기 한반도의 종족 정체성은 특정한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서 다양하게 변용되었다. 따라서 남북 그리고 디아스포라는 기존의 민족 정체성 모델에 딱 들어맞게 이해될 수 없다. 문화적 다양성과 민주적 권리를 강조하는 시민적 정체성이나 혈연 언어 전통 등을 강조하는 종족적 정체성은 그 어느 것도 20세기 한반도 역사에서 진행되어온 다양한 국적, 법적 지위, 언어차이, 관습의 현지화 등 민족 정체성의 다양한 변용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민족 정체성은 종족적 요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해당 거주국(남과 북 그리고 해외 디아스포라)의 정치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남과 북은 과거의 문화전통 가운데에서 각자의 정치 경제적 체제에 맞는 국민적, 인민적 서사들을 교육과 언론매체를 활용한 국가주의적 기획 아래 동원하였다. 분단은 남북 모두 민족 내부의 적대적 타자라는 의미를 상대에게 부여하였고, 민족 서사와 민족 문화의 정체성에 균열을 가져왔다. 북은 사회주의 대가족 제도를 주장하면서 한민족의 혈통을 강조해 김일성에 대한 충효 그리고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를 위한 도구로 민족주의를 활용했다. 남 역시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대한민국 민족주의’가 강화되어왔다. 해외 디아스포라 역시 해당 거주국의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서 종족 정체성의 상당한 변용을 겪었다. 거주국 정치 경제 체제의 객관적 조건에 제약되면서 디아스포라는 자신의 생존과 적응을 위해 특정 전통을 선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종족 정체성을 재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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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개인의 자유와 시민적 성장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민족 이해에서 종족성을 배제하려는 논리는 한반도와 해외 디아스포라의의 복합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면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민족을 정치 공동체로만 규정할 경우, 중국 조선족은 중국민족이며,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조선인은 일본민족이며,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필리핀 이주 여성은 한국 민족이며, 북한 주민은 한 때 같은 민족이었지만 정치 공동체가 상이한 이상, 더 이상 한국 민족이 아니게 된다. 이런 논리가 복합적 정체성 때문에 실존적 고민과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남과 북의 주민 그리고 디아스포라 당사자들에게 과연 납득될 수 있을까?

▲ 1998년 월드컵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응원 중인 붉은 악마ⓒhttp://blog.gwangju2015.kr/trackback/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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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민족은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며, 종족적 민족은 피해의식과 인종주의적 폐쇄성을 지닌다는 이분법적인 접근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교차하고 있는 종족 정체성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정치 경제 공동체를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종족성을 부인하고 시민적 연대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성과 시민성을 결합하려는 사유이다.

종족적 정체성과 정치적 정체성의 결합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한반도의 종족 정체성이 특정한 정치 경제적 조건 속에서 다양하게 변용된 사실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20세기의 한반도 역사에서 비롯된 종족 정체성의 다양한 변용들을 단일 정체성으로 통합해야 할 정체성의 분열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민족 개념을 사유하는 출발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민족개념을 사유한다는 것은 단일한 민족국가를 추구하는 기존 민족주의의 틀이나 민족국가를 해체하는 탈민족주의의 틀이 아니라, 식민주의적 억압과 남북의 적대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는 자주적 민족국가를 지향하면서도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담은 정치 공동체를 사유하는 사회 철학적 과제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다. 달리 말해 이는 남과 북이든 특정 공동체에 의한 민족개념의 일방적 전유가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적 틀을 넘어 남과 북 그리고 디아스포라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전망과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