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라고 건네는, 개 이야기들[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한참 전부터 박기범의 그림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 그가 쓴 개 이야기들 – <새끼개>, <어미개>, <미친개>는 읽는 동안은 물론이고 읽은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아서, 말이 되든 안 되든 그 느낌을 나누고 싶었다. 박기범은 <새끼개>, <어미개>를 같이 냈고 몇 년 뒤 <미친개>를 썼다. 아이들과 이 책들을 볼 때는 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내가 읽어 주었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여운이 남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같이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보따리를 풀려고 하니 쉬 나오질 않는다. 요즘 자꾸 떠오르는 건 <미친개>다. 하지만 박기범이 책을 내놓은 순서대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네 마음을 알 수 있을까?
– 새끼개(박기범 글, 유동훈 그림, 낮은 산 펴냄, 2003년) ·어미개(박기범 글, 신민재 그림, 낮은 산 펴냄, 2003년)
[새끼개, 어미개 표지]
나는 형제가 다섯이다. 우리 어릴 때야 형제가 여럿인 집이 드물지 않기도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 형제가 없이 자란 터라 “딸, 아들 상관없다. 많이만 낳아라.”하시는 시어머니 말씀을 기분 좋게 따르다 보니 다섯까지 낳게 됐다고 어머니는 곧잘 이야기하신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 자식들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어릴 적, 개를 자주 키웠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작지 않은 어항에는 물고기들이 늘 뻐끔거리고 있었고 마당에 걸린 새장에선 새들이 종알댔다. 집 안팎으로 화초도 넘쳐났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언제나 꽤 많은 사람들과 동식물이 오글거리는 배경이 함께 있다.
한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나는 어떤 동물도 기를 엄두를 못 낸다. 어쩌다 선물로 받은 작은 화초도 무럭무럭 크도록 길러보질 못했다. 다른 형제들은 어린 시절의 배경을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와서는,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화초에 재미를 붙이거나 개를 기르기도 하는데 나는 같이 사는 사람도 동물도 화초도 없다.
일곱 살 때던가, 집에서 기르던 개가 없어졌다. 동네를 헤매며 개를 찾다가 자전거 뒷자리에 우리 개를 싣고 가는 아저씨를 봤다. “어, 아저씨! 그 개······” 어린 내가 웅얼웅얼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아저씨는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만 무심히도 휘리릭 내달아 가버렸다. 사람들이 개를 품에 안고 가는 걸 보면 이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새끼개> 책표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읽기도 전에 이미 슬펐다. 책을 읽다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자전거 뒷자리에 실려 끌려가던 어릴 적 우리 개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 같다.
새끼개는 엄마 젖을 뗄 무렵, 개 파는 가게로 팔려갔다가 아이가 둘 있는 집으로 가게 됐다. 아이들은 새끼개를 무척 좋아했다. 서로 개를 안겠다고 달려들었고, 비행기를 태운다고 높이 들고 윙윙거리며 맴돌거나, 여름날이면 시원한 물을 욕조 가득 채워서는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런데 새끼개는 아이들이 건네는 손길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태워주면 어지러웠고 목욕물은 몸서리나도록 차갑기만 했다. 새끼개는 ‘순돌이’라는 자기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점점 사납게 짖어댔다. 하지만 아이들은 겁먹은 개의 눈망울을 착한 눈빛으로 받아들였고 새끼개가 힘들어 그르릉거리면 장난을 거는 줄로만 알았다.
[<새끼개> 중에서]
새끼개는 답답하고 무섭고 힘들었다. 그는 자기를 가만 놔두라고 간절히 호소하느라 짖는데 사람들은 개가 왜 이리 거칠어지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어머니는 자꾸 병이 나고 사나워지는 새끼개를 결국 개 파는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게는 온갖 개들이 각자의 이유로 울어대는 소리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쿠워어엉, 커어헝. 커헝” 낯설고 불안한 새끼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목청을 돋우어 짖는 것뿐이었다.
하늘이 파랗게 좋은 어느 날, 가게 주인이 개장을 청소하는 틈을 타, 새끼개는 주인의 팔뚝을 물고는 급기야 탈출을 했다. 앞으로 내달리며 새끼개는 자유의 기쁨을 맛보지만 그것도 잠시, 떠돌이 생활은 쉽지 않았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몇 날 밤을 보내다가 새끼개는 저도 모르게 옛 주인이 살던 아파트 쪽을 향한다. 마침 먼발치서 두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두 아이는 새끼개 대신 새로 사온 개와 즐거이 노는 중이었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솟구친 새끼개는 두 아이를 향해 달려가다가 그만 차에 치이고 만다. 온 몸이 길바닥 위로 납작 뭉개진 새끼개. 파노라마처럼 지난 시간들이 스쳐간다.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새끼 개의 꼬리가 살랑 움직였지만 그뿐이다.
박기범은 <새끼개>를 쓰고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자꾸 자기 자신인 것만 같았다고 작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과 평화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인간방패 반전평화단이 되어 이라크로 달려갔다.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편지와 이라크 아이들의 답장을 직접 전해주는,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우편배달부 일을 기꺼이 했다.
박기범은 그가 겪고 느끼는 현실을 빼거나 보태는 것 없이 담담하게 풀어가는 편인데 놀랍게도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늘 마음에 물이 가득 고이는 느낌이다. <새끼개>는 박기범이 개의 눈을 빌어서 쓴 아주 섬세한 현실 고발이다. 아니, ‘고발’이란 말은 너무 세고 거칠다. 그의 문장은 결이 더없이 섬세하니까. ‘안타깝고 슬픈 현실 보고서’ 정도가 낫겠다. 어쨌거나 박기범은 현실 보고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연이어 쓴 개 이야기, 박기범이 꿈꾸는 화해의 이야기가 <어미개>다.
[<어미개> 중에서]
신문지나 종이 상자를 거두어 근근이 생활하는 할머니는 동물 병원 앞에 묶여 있던 떠돌이 개 ‘감자’를 데려와 같이 살고 있다. 언젠가 ‘어른의 흔적’을 보인 뒤로 감자는 수시로 새끼를 배고 낳는다. 그때마다 새끼들이 젖을 뗄 무렵이면 할머니는 새끼개들을 개장수에게 넘긴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전쟁으로 어머니도 잃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남편과도 헤어진 할머니. 이젠 자식들마저 멀리 떨어져 산다. 이런 할머니가 이별의 아픔을 왜 모를까마는 어려운 형편에다 좁은 집에서 감자가 낳는 새끼들까지 다 거둘 수는 없다. “감자야, 괜찮다. 언제 떼도 새끼는 떼는 게야. 때가 되면 다 어미 품을 떠나는 게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되고 새끼를 낳고 또 얼결에 이별의 인생을 배우면서 감자가 새끼를 배고, 낳고, 떼어내기를 일고여덟 차례. 그러면서 감자와 할머니는 같이 늙어간다. 사람보다 빨리 나이 들어가는 감자는 할머니와 친구가 될 만큼 늙은 ‘할망구 개’가 됐다. “할머니랑 살아서 좋아요.” “그래, 나도 너하고 사니까 이렇게 좋네.” 이제 둘은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안다. 감자는 나중에 죽으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도 좋으니 할머니와 헤어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몇 해를 더 살다가 어느 날 할머니는 잠든 채 깨어나질 않는다. 그리고 죽은 할머니 곁을 이틀 꼬박 지키던 감자도 숨을 놓는다. 지금 할머니와 감자는 나무로 다시 태어나, 같이 살자던 소원대로 서로를 향해 가지를 마주 뻗으며 살고 있다.
<어미개>가 나중에 쓴 작품이라지만 사건의 시점은 <어미개>가 <새끼개>에 앞서 있는 듯 보인다. 두 책을 읽다 보면 순돌이는 감자가 낳아 팔려간 새끼들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박기범은 <새끼개>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을 <어미개>를 쓰며 조금이나마 뛰어넘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나를 오래도록 뒤흔든 책은 아무래도 <새끼개>다. 뭐랄까, ‘비뚠 사랑’이나 ‘엇나간 소통’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해하기 힘든 슬픈 관계 같은.
어릴 적 잃어버린 개는 내 첫 ‘상실의 기억’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도 개나 다른 동물, 곤충을 기르는 아이가 제법 된다. 생명의 소중함이라든가 보살핌과 배려 같은, 긍정적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도 맞다. 그런데 내 경우를 보면 개와 같이 뛰놀던 즐거운 추억이나 그들을 보살피던 아름다운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웅크린 채 끌려가던 개, 어느 날 아침에 어항을 들여다보니 아프다는 언질도 없이 물 위에 둥둥 뜬 채 죽어버린 물고기 – 이런 기억만 깊고 흉한 상처로 마음 깊은 곳에 각인돼 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넘어서서 ‘반려동물’이란 말을 쓴다. 인간의 세상으로 그들을 데려와서는 먹이를 가공하고, 인간 생활에 맞춰 그들의 생리와 모양새까지 가공하면서 도대체 진정한 반려가 가능한 건지 나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녀석들이 행복할까. 녀석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물고기, 새, 개와 함께 ‘반려’를 기대하며 자라던 내 경험에서는 좋은 과정이 사라진 채, 녀석들 속을 몰라 답답하다가 결국은 하나같이 떠나버리는 마침표만 살아 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무겁고 당황스런 결말이다. 생각보다도 더 나는 겁이 많고 약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새끼개>를 읽고 쓴 글]
그러면서도 나는 사람들과 지내는 어떤 동물에게든 무척 친근하게 굴었다. 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마음을 들킨 적이 있는데 ‘똘똘이’때문이다. 똘똘이는 내가 시골에서 지낼 때 만났던 개다. 똘똘이네 집은 내가 오가던 길목에 있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다.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인사를 건넸다. “똘똘아, 잘 잤어? 나는 아침에 된장국 먹었는데 너는?” “나 밭에 갔다 올게. 넌 이제 뭐할 거야?” “나 막걸리 한 잔 했다~. 밤이 깊은데 왜 여태 안 자?” “똘똘아, 곧 비가 올 것 같다. 난 비오는 날 좋아해.” 이런 식으로. 내가 주책없는 수다쟁이라면 똘똘이는 무척 담백한 녀석이었다. 내가 뭐라고 주절대든 녀석은 거의 짖지도 않고 눈만 껌뻑이며 가만 앞을 응시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났을까, 그날도 나는 똘똘이에게 말을 걸었다. “똘똘아, 오늘 꽤 덥네. 점심 먹었어?” 녀석 앞에 쭈그려 앉으며 인사를 하는 참인데 똘똘이가 갑자기 내 얼굴로 바짝 다가서며 고개를 쑥 내미는 게 아닌가. 언제나 똘똘이의 다정한 응답을 기다리긴 했지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악!! 아니아니, 난 아직 너랑 뽀뽀할 생각은 없어!” 뒷걸음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만날 때마다 간이랑 쓸개랑 다 빼줄 것처럼 살살 녹는 목소리로 온갖 애교를 떤 건 나였다. 이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려는 똘똘이를 나는 순식간에 치한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내 고함소리에 우뚝 멈춰선 똘똘이는 천천히, 정말이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몸짓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운동 경기 중계나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을 천천히 돌리는 것하고 똑같았다. 똘똘이만큼 나도 나한테 놀랐다. 내 겉과 속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뭔가 사태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아니 똘똘아, 그러니까 내 말은······” 똘똘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외면한 얼굴을 절대 되돌리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날마다 똘똘이에게 빌었다. “똘똘아, 제발 화 풀어. 이리로 고개 좀 돌려 봐, 응?” “똘똘아, 나를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사실, 뽀뽀는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똘똘아, 제발 용서해 다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별별 사과를 다 해도 똘똘이는 내가 곁을 지날 때마다 꼭 외면했다. 빌고 또 빌기를 보름은 족히 된 걸로 기억한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똘똘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 주었다. 어찌나 좋던지, 고맙다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 뒤로는 똘똘이 앞에서 절대로 촐싹대지 않게 됐다.
사실 나는 ‘소통의 참맛’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는 사람이다 생각한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나는 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마음을 나누는 기쁨을 맛본다. 아이들이 무척 예민한 존재라는 것도 새록새록 배운다. 기분이 좋아서 내 눈과 입이 동그래지기 시작하기만 해도 아이는 금방 기쁜 표정으로 빛난다. 어떨 땐 아무 말 않고 곁에 앉은 아이 손에 내 손을 얹는데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는 걸 느낀다. 내 슬픔이, 기쁨이, 때로 안타까움이 아이 손에서 팔로 스르륵 달려가서는 순식간에 아이 마음으로 들어앉는 게 ‘보인다’.
하지만 아이 행동이나 표정에서 뜻을 찾지 못할 때도 많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아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잘 아는 게 먼저일 텐데 도무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다. 뭐든 그렇지만 특히 아이에 관한 한, 성급히 단정하기보다는 모른다고 유보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편 있다. 아이는 모든 가능성을 품은 존재니까.
지금은 중학생인 동우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처음 동우와 만났을 땐 자기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애기 같은 목소리를 내서 조금 놀랐다. 같이 시를 짓는 시간, 동우 시에는 별과 언덕과 고통이란 단어가 곳곳에 등장하며 무척 성숙한 느낌을 주는 시를 써서 나는 또 놀랐다. 동우는 말투를 쉬 고칠 수 없어서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을 게다. 그래서 우리와 만나며 위로를 많이 받은 것도 같다. 글을 같이 쓴 뒤로 친구들은 동우를 달리 보는 듯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도 자자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잘 부르려고 하질 않았다. 아주 나중에야 어렵사리 한번 듣게 됐는데 동우는 글로만 노래를 잘 하는 게 아니었다.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고음과 미성이 나오는지, 친구들 노래에 허밍을 넣는데 정말 일품이었다. 동우는 글노래, 입노래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동우네 모둠 이름은 ‘웃음바다’였는데 우리는 이래저래 웃을 일이 참 많았다.
‘웃음바다’ 친구들과 같이 음악을 듣겠다고 삐걱거리는 CD재생기를 들고 간 적이 있다. 기계가 고물이라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미리 걱정까지 털어놓고는 음악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기계가 헛돌기 시작했다. 어쩌지, 난감해 하는 순간 동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려가더니만 발로 거세게 CD재생기를 걷어찼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동우야! 기계는 때린다고 말을 듣진 않아!!” 평소 내 목소리에 비하면 강도가 제법 세서 심하게 나무라는 모양새가 됐다. 갑자기 뚝 멈춰 선 동우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때 나는 동우 행동이, 눈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가 앉은 동우는 그 전과는 달리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아무래도 잘못은 동우가 아니라 내가 한 것만 같은 불안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날 수업을 되짚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동우 행동은 거칠었을지 몰라도 사실은 그게 동우의 사랑 아니었을까? ‘너 왜 우리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우리 친구들이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하는 게 안 보여?’ 이런 마음으로 기계를 걷어찬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까 상황은 완전히 다른 빛깔을 띤다. 그리도 소심하던 동우가 하면 안 될 거친 행동을 한 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이 맞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내 기분도 덩달아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나무라듯 말했을 때 동우가 짓던 표정은 자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실망과 항변을 같이 담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다음 수업 때 “동우야, 내가 네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선생님 좀 도와줄래?” 조심스레 물었지만 동우는 끝내 아무 대답도 안 해줬다.
김호경(어린이 철학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