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이럴 순 없어![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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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 있는 거야??!」(페터 쉐소우 글·그림, 한미희 옮김, 비룡소, 2007년)

들지도 못할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며, 그러느라 뒤에 한가득 먼지까지 거느리고 한 소녀가 공원에 나타난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소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키지 않고는 첫 장을 넘길 수 없다는 듯, 제목도 “이럴 수 있는 거야??!”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면 공원에서 소녀를 바라봤을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 우리는 무슨 일인지 몰랐어요. 갑자기 그 여자 애가 나타났거든요.

할머니들이 잘 들고 다님 직한 새빨간 가죽 가방을 끌고 소녀는 그렇게 공원에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대며 소리친다. “이럴 수 있는 거야??!”

몇 걸음 걷다가는 또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이럴 수 있는 거야??!”를 되풀이한다. 풀밭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던 사람들, 간식을 나눠 먹던 사람들, 뱃놀이를 하던 사람들 – 공원에 있던 누구나 놀란 건 물론이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묻는다.

 

“너 왜 그러니?”

작은 여자 애는 악을 쓰듯 소리쳤어요. “엘비스가 죽었어!”

아, 사람들은 소녀가 보인 모든 태도가 이해간다. 그리고 다들 엘비스를 추억하며 소녀를 위로한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었던 엘비스! 나도 엘비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런데 소녀의 표정은 풀리질 않는다.

“가수 엘비스가 아니야. 내 엘비스라니까!”

소녀는 엉엉 울며 가방을 열어 보인다. 그 안에는 노란 새 한 마리가 죽어 누워 있다. ‘소녀의 엘비스’다.

 

소녀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마음 아파하며 인사를 건넨다. “안됐다, 정말 안됐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심지어 개까지 “멍멍.” 그때 한 친구가 불쑥 말한다, “엘비스를 묻어 주자.”

이제 공원에선 경건한 장례식이 벌어진다. 촛불을 들고, 꽃을 들고, 향을 피운 장례 행렬. 엘비스를 묻은 무덤가에서 사람들은 소녀가 들려주는 추억을 듣는다. 가수 엘비스만큼이나 아름답게 노래했을 엘비스의 노랫소리도 소녀를 통해 듣는다. 모두들 조금 울고, 서로 꼭 끌어안는다.

아이들과 세상살이를 생각하며 만나다 보니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도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 재해나 전쟁으로 세계 어디선가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기사를 보기도 하고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이야깃거리가 아이들의 흥미를 잠시 돋우는 데 그치거나 심지어 지루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 때 무척 씁쓸하다. 아이들에겐 전쟁으로 죽어가는 또래 친구들 이야기보다 친구 집 강아지가 죽은 게 더 큰 사건이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이는 할아버지의 죽음보다 우리가 못 만나는 게 더 속상하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시려는데 아이는 전화해서 떼를 쓴다. “우리 수업 그냥 하면 안 돼요?”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느끼니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추상적이거나 먼 데 있지 않다는 걸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이들이 ‘나’에서 벗어나 ‘우리’와 ‘그들’을 보는 눈을 뜨는 게 ‘아름다운 성장’이라면 그 길이 만만치만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낀다.

어쨌거나 출발은 ‘나’다. 그러나 조금씩 ‘우리’와 ‘그들’로 건너가는 일, 그리고 그 안에 나도 있음을 발견하는 일.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 길을 찾고 싶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과 가까운 공원에라도 나가는 편이다. 나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많이 생각하는 쪽보다는 많이 느끼는 쪽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생각은 한계가 뻔하지 않을까. 반면 자연이 주는 느낌은 내 생각보다는 더 크고 깊을 터. 내가 설명하고 보여주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보고 느낄 테니까. 아이들도 밖으로 나가면 굳이 많은 얘길 나누지 않아도 좋아한다. 표정과 온몸으로 뿌듯한 수업을 했다는 확인 도장을 늘 찍어 준다.

예쁜 꽃을 보면 일단 꺾으려는 아이, 곤충을 발견하면 죽이려 드는 아이들이 있다.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날도 아이들과 공원엘 갔다. 막 공원에 들어서는데 이미 들떠 있던 두 아이가 개미를 발견하고는 마구 짓밟는다. 그 순간, 아이는 정말 신나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안 돼!”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개미네 동네에 놀러 와서는 개미들을 그렇게 죽이니 우리가 밖으로 나온 게 잘못이구나!” 별 생각 없이 장난 좀 치려 했을 뿐일 아이들은 금방 풀이 죽는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 수업을 할 때다. 수업하는 방에 파리가 들어왔는데 아이들은 피하려고 호들갑이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나는 ‘어른답게’ 적당한 도구를 써서 파리를 잡았다. 파리를 탁 내려치는 순간 한 아이가 소리친다. “안 돼요, 그것도 생명이잖아요!!” 또 다른 아이, “파리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요?!” 어이쿠, 이를 어쩌나. 파리님은 이미 돌아가셨는데!

지난주의 교훈을 금방 삶으로 실천하는 아이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엄청난 죄인이 되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이 제안한다. 파리 장례식을 해 주자! 아이들은 종이를 돌돌 말아 ‘파리관’을 만들고 파리에게 상황 보고서와 사과문을 썼다. 우리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편지와 함께 파리를 묻어주고 숙연하게 묵념까지 드렸다. 그 뒤로 아이들은 수업하다가도 종종 파리를 생각하고 그의 안녕을 기원하곤 했다.

또 생각나는 일. 아이들과 미술관에 갔다. 숲에 둘러싸인 미술관이어서 그랬을까, 미술관 밖은 말할 것도 없고 전시실 안까지 남생이무당벌레가 무척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이미 관람객에게 밟혀 죽은 놈들도 꽤 됐다. “얘들아, 바닥에 무당벌레가 엄청 많다. 조심해야겠어.” 우리는 결국 미술관에서 ‘딴짓’만 했다. 벌레를 밟을 새라, 발끝으로 걸으며 무당벌레 구경에 정신이 팔렸으니까.

그러다가 한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선생님, 벌레가 넘어져서 일어나질 못해요!” 뒤로 나자빠져 바동거리는 무당벌레를 발견한 거다. 얼른 벌레를 바로 놓아주고 나는 아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기특한 녀석! 그 뒤로 아이들은 너도나도 넘어진 벌레찾기에 빠졌다. “여기도요, 선생님!” 아이들이 부르는 대로 이리저리 겅중거리며 무당벌레를 바로 놓아주느라 얼마나 바쁘고도 신났던지.

그런데 이건 웬 일, 한번은 아이가 부르는 데로 가보니 이번에 바동거리는 놈은 무당벌레가 아니라 바퀴벌레다. 흠!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바퀴벌레도 얼른 바로 눕혀 주었다. 휘리릭 달려가는 바퀴벌레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말라비틀어진 도토리를 발견하고는 묻어주는 아이. 아스팔트 틈을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를 들여다본다고 오래 쭈그려 앉아 있는 아이.

황당하고 유치한 동화 같기도 하다. 나와 만나면서 아이들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감상주의자가 되는 건? 그런데 나는 아이들 그런 모습이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다분히 조장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모기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 ‘착한 선생님’이다. 아이들 믿음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실제로 파리, 모기도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꿈틀대는 벌레를 사랑하기는 나도 힘들다. 집에 나타나면 녀석들이 빨리 제 갈 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짝 들어서 밖으로 내놓거나, 영 징그러우면 한동안 못 본 척하며 나가길 기다린다. 아주 커다랗고 시커먼 거미가 목욕탕에 나타났을 때는 차마 집어 내놓을 수가 없어서 녀석과 꽤 오래 동거하느라 불편을 겪기도 했다.

지난 여름, 이사를 했다.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에서부터 집 담장까지, 담쟁이덩굴이 푸르게 덮여 있어서 무척 좋아했다. 베란다 앞으로 나뭇가지가 무성히 뻗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사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어느 날, 집 목욕탕에서 지네를 발견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여느 때처럼 녀석이 알아서 나가주길 바라며 그저 조심조심 지냈다. 혹시 방심할까 봐 목욕탕 문에 ‘벌레!’라고 써 놓는 정도의 조치는 취했지만.

며칠 뒤, 이번엔 내 잠자리에서 지네가 나타났다. 어렴풋이 잠이 들다가 어깨가 근질거려 툭 치고 보니 지네였다. 나는 순식간에 공포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었다. 꽤 깊은 밤이었는데 마루로 뛰쳐나가며 소리를 지르고 지르고 또 질렀다. 그날 밤 나는 온몸을 최대한 오그리고 소파에서 잤다. 녀석은 녀석대로 놀랐을 터, 급하게 내 어깨를 한방 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는 숨바꼭질 하듯 며칠을 내리 이불과 옷에서 나타났다.

집은 더 이상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들어올 수도 안 들어올 수도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네에 관한 정보를 속속 보내왔다. 지네는 높은 데를 잘 오르지 못한다기에 침대를 장만했다. 지네는 부드럽고 따뜻한 섬유를 좋아한단다. 밤마다 이부자락이 절대 밑으로 늘어지지 못하도록 돌돌 말고 자느라 잠을 깊이 자지 못했다. 지네는 밝은 데를 싫어한다 해서 한 달이 넘도록 밤에도 불을 못 껐다. 어두운 구석 어디선가 녀석이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고 그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지네가 축축한 담쟁이덩굴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아, 이놈의 아름다운 자연이 문제였던 거다. 그리도 좋아 보이던 담쟁이덩굴, 정원의 나무들, 자연이 어쩌고, 생명이 저쩌고, 존경하는 소로우와 니어링 부부 – 모두가 거추장스러웠다. 지네는 금슬이 좋아서 보통은 쌍으로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는 이 집에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우글거리고 있을 거란 공포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딱 내가 이사한 즈음이다!)부터 10월까지 지네는 무럭무럭 자란다나, 이런! 찬바람 부는 11월로 들어설 때까지 나는 사색이 돼서 지냈다.

지네와 맞닥뜨린 뒤 무척 많이 배우고 느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관념적이었는지. 내 ‘생명 사랑’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두 달 넘게 내 생활과 마음은 터무니없이 헝클어져갔다. 한편으론 지네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음 앞에서 “이럴 수 있는 거야?!” 외치던 내가, 지네를 만난 뒤부터는 스스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럴 순 없어!!”

나는 경험에서 지혜를 배우길 바란다. 그러나 경험주의자의 오류에 빠지고 싶진 않다. 「이럴 수 있는 거야??!」를 읽고 한 아이가 소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네가 사랑하는 새가 죽었으면 슬퍼해야지, 왜 화를 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 나 또한 어떤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거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고백성사를 하듯 아이들에게 지금 내 상황을 들려줬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평소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해법을 말해 준다. 지네에게 친절하게 편지를 써서 주자고!

 

우리 아이들이 당나라 때 한유(韓愈)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한유가 지방 관리로 부임했을 때 그 지역에 악어가 나타났다고 한다. 악어가 가축을 잡아먹고 농산물에 해를 입히자 농민들 시름이 깊었다. 악어를 쫓아내기 위해 한유는 어떻게 했을까? 글쎄, ‘악어문’을 써서 악어에게 줬다나.

내 이제 악어에게 약속하노니, 사흘 후까지 무리를 거느리고 남쪽 바다로 옮겨가서 천자께서 임명한 나를 피하라. 사흘에 불가능하거든 닷새까지, 그것도 안 되면 이레까지 할 것이다. 그때까지 옮겨가지 못한다면 이는 끝내 옮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천자께서 임명한 관리를 무시하여 옮겨 피하지 않거나, 어둡고 완악하여 백성과 물건에게 폐해를 입히는 것은 모두 죽일 만하니, 나는 재주와 기예가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 강한 활과 독화살을 잡고서 악어와 싸워 반드시 죽이고야 말 것이다. 악어는 후회하지 말라.

한유는 양, 돼지 한 마리와 함께 ‘악어문’을 물에 던졌는데 놀랍게도 그 뒤로 정말 악어가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써 준 ‘지네문’을 책상 위에 고이 펼쳐 놓고 있다.

김호경(어린이철학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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