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잉쯔의 고민

여러분은 혹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온 경험이 없나요?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아마 누구라도 바짝 긴장하게 될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만 봐서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천사같이 고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예쁜 얼굴로 상냥하게 웃는 아가씨가 실은 유괴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려면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실제 행동을 봐야 합니다. 걸핏하면 남을 괴롭히고 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쁜 사람일 테지요. 반대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정말 사람의 행동만 보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 같은 행동을 두고도 누구는 좋다 하고 누구는 나쁘다고 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니까요.

한번 우리나라 대통령의 예를 들어 볼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해 왔는지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행동, 같은 사람을 놓고 좋다, 나쁘다는 생각이 갈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황금빛 붉은 태양이 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태양은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하잖아요? 나는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겠고요.”

이 말은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라는 중국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잉쯔가 한 말입니다. 잉쯔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여자아이입니다. 그리고 잉쯔가 말을 건네고 있는 사람은 마을 어귀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낯선 아저씨입니다. 잉쯔는 이때 모르고 있었지만, 실은 이 아저씨는 도둑이랍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값비싼 물건을 이미 여러 번 훔쳤고, 그래서 경찰이 뒤쫓고 있는 사람이지요. 저지른 행동만 놓고 보면 이 아저씨는 분명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다시 생각해 봅시다. 혹시 이 아저씨가 좋은 사람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다시 말해,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데도 나쁜 행동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여러분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거짓말은 일반적으로 나쁜 행동이지만, 때로 좋은 마음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염려하여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숨긴다면 바로 그런 경우지요.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상황에 따라서는 살인조차 좋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생각해 보세요. 안중근 의사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일본의 지도자 이등박문을 살해했습니다. 이 행동은 어디까지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로운 마음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사람의 행동만 갖고 섣불리 좋다, 나쁘다를 단언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잉쯔가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저씨에게는 잉쯔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짜리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은 해마다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는 아주 뛰어난 학생입니다. 품은 뜻도 커서, 학교를 졸업하면 바다 건너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아저씨는 직업도 없고 무척 가난했답니다. 더욱이 늙은 어머니까지 보살펴야 하는 처지라서 동생을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늙으신 우리 어머니는 희망 없는 나를 위해 우시다가 눈이 멀었단다. 어머니는 지금 내가 개과천선해 집을 잡히고 그 돈으로 조그만 장사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계시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모르신단다. 오직 책만 들고파는 내 동생은 나를 좋은 형이라고 생각하지. 당연하지, 내가 제 학비를 대니까. 지금 난 동생 유학 뒷바라지해 줄 생각밖에 없단다. 그러니 나 좋은 사람 아니냐? 잉쯔, 네 생각에 나는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아저씨가 왜 도둑이 되었는지 이제 짐작이 가나요? 아저씨는 동생의 유학을 돕고 눈먼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기 위해 도둑질에 나선 겁니다.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나쁜 행동을 한 거지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보통 좋은 마음에서 좋은 행동이, 나쁜 마음에서 나쁜 행동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좋은 마음에서 나쁜 행동이 나온 걸까요?

사실 아저씨의 경우를 잘 살펴보면, 두 가지 생각 또는 두 가지 도덕이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지요. 아마 다른 사람들 같으면 두 가지 도덕을 다 잘 지키는 일이 어렵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일푼인 데다가 직업도 없는 아저씨로서는 둘 다 잘 지킬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하나를 저버리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을 가리켜 흔히 딜레마(dilemma)라고 부릅니다. ‘도덕적 딜레마’는 어떤 행동을 선택하든 간에 어떤 도덕을 어길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내 친한 짝꿍이 다른 친구의 물건을 훔치는 걸 내가 봤다고 해 봅시다. 이 경우 나는 짝꿍의 행동을 못 본 척하면 나쁜 행동에 가담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사실을 폭로하면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우정과 정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저버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잉쯔가 만난 아저씨도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두 가지 도덕이 충돌하더라도 더 중요한 상위의 도덕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 도덕을 선택하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가족의 안위를 돌보는 일보다 공공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므로, 가족을 위해 도둑질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요. 물론 일리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느 도덕이 더 우선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의 경우, ‘나라를 구해야 한다’와 ‘살인하면 안 된다’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상위의 도덕으로 보았을까요? 문제는 안중근 의사의 대답과 간디의 대답이 같은 것일 리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해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없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요. 옛날 중국에서는 죄 지은 부모를 자식이 고발하면 오히려 자식을 사형에 처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국법보다 효도가 훨씬 더 중요한 도덕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러지 않지요. 그러나 옛날의 도덕보다 오늘날의 도덕이 더 옳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어느 도덕이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하는가는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쉴 새 없이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하고 판단하지만, 그 판단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확인할 길은 사실 없습니다. 생각이 같고 판단이 같은 사람을 얼마든지 많이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의 판단과 대립되는 다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란 없습니다.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 문제, 사형 문제, 낙태 문제, 환경개발 문제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이런저런 이유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뉘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어느 쪽 판단이 옳은가를 입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서로가 끊임없이 상대쪽을 설득하는 과정, 그래서 자기쪽이 다수파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잉쯔의 고백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잉쯔가 만났던 아저씨는 결국 얼마 못 가 경찰에 붙잡히고 맙니다. 그러나 잉쯔는 경찰에 끌려가는 아저씨를 먼발치에서 보면서도 아저씨가 결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수평선을 자세히 보면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듯이, 사람 사는 일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쉬 구별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김우철(한우리독서토론논술 연구실장) / admin@ad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