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철학자 이병창의 신간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인터뷰] 철학자 이병창의 신간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재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동아대 이병창 명예교수(철학과)가 신간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도서출판 말)를 펴냈다. ‘철학자 이병창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비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주로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에 앞장 선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과 지식인의 위선과 이율배반성을 담고 있다.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는 이병창 교수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년 동안 발표한 글을 모은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사무실에서 이병창 교수를 만나 다양성과 관용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자들이 국가적 폭력을 옹호하고, 배제전략을 선택한 철학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이병창 교수와 만나 인터뷰한 일문일답이다.

 

▲ 친노가 문제다! 왜 친노가, 왜 유시민이, 왜 진중권이, 왜 자유주의자들이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동조하고, 묵인했던 것일까? 헤겔과 라캉 연구자인 이병창 교수는 그 근본 원인을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철학적 한계에서 찾는다. ⓒ 고소미

▲ 친노가 문제다! 왜 친노가, 왜 유시민이, 왜 진중권이, 왜 자유주의자들이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동조하고, 묵인했던 것일까? 헤겔과 라캉 연구자인 이병창 교수는 그 근본 원인을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철학적 한계에서 찾는다.
ⓒ 고소미


 

– 평소 영화에 대한 철학적 글쓰기를 많이 하셨는데, 혹시 좋아하는 여배우가 있나요?
“<테스>, <파리 텍사스> 등에 나온 나타샤 킨스키를 좋아해요. 백치미가 좋아요.”

– 의외네요. 지적인 여배우를 좋아할 거 같은데. 특별히 좋아하는 철학자가 있나요?
“대학시절엔 사르트르를 무척 좋아했죠. 70년대엔 젊은이들 사이에 실존주의가 유행했거든요.”

– 오랫동안 철학적 글쓰기만 해오다 현실참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 때 민노당에 가입했어요. 그야말로 당비만 내는 당원이었고, 모임에 참여한 적도 없지만, 나름 큰 맘 먹고 결단을 내린 것이었죠. 망해가는 당에 조약돌 역할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 2012년 5월 진보당 사태 일어났을 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게시판에 ‘유시민의 논리와 이정희의 논리’, ‘사상의 심사위원 진중권 교수에게’처럼 지식인, 언론을 실명 비판하는 글을 많이 올리셨는데,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내가 평소 정치 문제에 앞장서던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글을 쓴 것처럼 나는 박해받는 자의 편에 서는 게 지식인의 사명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 스스로 유대인이라 선포했고, 나에게 돌을 던지라고 외쳤죠.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한 논리, 핏발선 발언들, 성급한 판단이 엿보여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실천이 중요한 때였다고 봐요.”

– 이번에 펴낸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은 지난 2년 동안 쓰신 글 중에 주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앞장선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에 대한 비판을 골라서 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는 누구를 가리키나요?
“민주 진보 세력 내에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가담했던 자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했어요. 그들 가운데 대표자 격인 유시민은 참여민주주의라는 상표를 즐겨 달고 다녔고, 그들은 때로는 ‘친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죠.

이런 특징은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의 개념에 부합하는데, 그래서 나는 이들을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로 규정했죠. 미국에서는 클린턴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죠. 르윈스키 스캔들도 그에게는 왠지 잘 어울리잖아요.”
 

▲ 철학이 문제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친노가 문제다’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병창 교수 친노를 넘어서고, 참여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들의 철학적 배경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 최진섭

▲ 철학이 문제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친노가 문제다’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병창 교수 친노를 넘어서고, 참여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들의 철학적 배경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 최진섭


 
– 교수님께서는 책에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합의 개념에는 진리라 는 것은 없으며, 진리와 허위는 구별될 수 없다. 진리와 허위가 구별되지 않으니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도 구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진리의 해체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대전제이다”라고 밝히셨는데, 그렇다면 진리와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모더니즘의 입장을 취하는 건가요?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와 가치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포기했어요. 객관적인 진리 그 자체에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여러 대안들이 남아 있다고 봐요.

헤겔의 변증법적 진리론은 아직도 남아 있는 가능성 중의 하나죠. 진리나 가치에 대해 우리는 물론 겸허해야 합니다. 절대적 진리는 없겠죠. 그렇다고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진리의 개연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절대적 진리가 오만한 진리라면 이런 진리는 겸허한 진리일 것입니다.

변증법은 겸허한 진리, 겸허한 가치를 제시하는 이론이에요. 변증법은 기본적으로 대상이든 사람이든 낯선 타자와 대화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며, 낯선 타자와의 모순과 대립을 인정하고 이를 포용하는 진리론입니다. 변증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반성을 통해 진리에 이르려 해요.”
 

▲   책표지. ⓒ 도서출판 말

▲ <굿바이 친노!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책표지.
ⓒ 도서출판 말


 

–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국내정치 상황도 그렇고 혼돈 그 자체입니다. 사상적으로는 어떤 대안을 모색하시나요?
“내가 대안을 제시할 능력은 없지만 신자유주의는 전망이 없는 건 확실해요. 김대중, 노무현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장점만 누리다가, 노무현 말기부터 위기가 본격화됐죠. 이명박의 토건주의, 박근혜의 가짜 복지주의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어요. 새로운 가치를 합의해낼 필요가 있는 상황입니다.

진실과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진보진영의 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해요.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자, 친노가 거듭나는 첫걸음은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대한 반성에 있다고 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가능하다면 원래 명예 퇴직할 때의 계획처럼 철학 서적을 매년 한 권씩 펴내고 싶어요. 올 여름엔 박헌영의 사상에 대해 정리한 책을 쓸 계획이고요.”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며[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며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으로 나라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한민국의 흥보 효과를 생각하고 있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시한 야권은 대한민국의 부정의를 알리고 세월호 문제를 풀어주었으면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에 대해 별로 호의적인 사람도 아니고, 또 일 개인을 영웅처럼 숭배하는 분위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교황 방문을 그저 외국의 한 사절이 오는가보다 하는 정도로 데면데면하게 생각한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부도덕하고 불평등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이탈리아 정치의 암적 존재인 마피아를 파문하고 또 한없이 고통받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교황의 모습은 종교 지도자 이전에 인간적으로도 존경할만하다.

 

나는 모든 것을 물질의 운동으로 믿는 소박한 유물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체 유심조를 순박하게 믿는 유심론자도 아니다. 아마도 유물론과 유심론의 절충이거나 양극단의 화합을 요구하고 중용을 찾는, 그래서 대개는 건전한 이성의 봉쌍스에 기대는 사람 정도가 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배척하지도 않고, 숭배하지도 않는다. 또 종교를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종교 역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인간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형식(Lebensform)으로 이해해도 좋다. 나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때로는 모든 종교에 대해 싸잡아 비판할 수 있는 거리 유지에 도움이 된다. 내 수업을 듣던 어떤 신심이 굳은 학생은 나의 이런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한 번은 창조 과학과 전도와 관련된 책 두 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종교에 한번 젖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 내 학생의 부모인 목사에게 내 딸을 좀 인도해 줍사고 데려간 적도 있다. 내 딸도 한 1년 열심히 다니더니 나를 닮아서 그런지 그 다음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산을 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다름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탐방하는 일이다. 그래서 유명 산천의 도처에 있는 웬만한 절들은 다 가봤고, 사찰마다 미묘한 분위기와 풍경의 차이 등을 좋아한다.

 

내가 결정적으로 유물론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종교의 발생과 진화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설명하지만, 나는 종교를 결정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한다. 하나는 종교의 초월과 관련한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종교가 던지는 메시지와 관련되어 있다. 종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의 유한성을 깨우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늪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는 바울의 고백은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음을 통렬히 고백하고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아침 이슬과 같고 파도 거품과 같다는 금강경의 한 구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 종교는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감각적이고 가시적이고 현세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의 이 삶에 대한 우리의 단단한 시야를 끌어 올려 저 너머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현실 도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초월에 대한 자각은 현재의 삶을 보다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에 대한 자각, 초월에 대한 의식은 현재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고, 또 무엇을 지향할 것인지를 깨우쳐준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 너머의 어떤 절대자는 이런 유한자들의 불평등과 부정의, 부도덕 등을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하나의 지침이다. 맑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폄하하고, 과학적 실증주의나 유물론이 비등할 때마다 종교를 전근대적이고 미신적이라고 부정해왔지만, 종교가 갖는 이런 초월에 대한 인간의 지향성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고등 종교의 메시지는 한 결 같이 사랑과 자비 등과 같이 더불어 사는 인간들 간의 관계의 덕목을 중시한다. 이런 사랑과 자비는 빈부와 남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이점에서 본다면 종교는 근대의 평등이나 인권 사상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평등과 인권의 사상을 선취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가 산상수훈을 할 때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현실 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혁명적 메시지이다. 신은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불평등한 신분과 권력관계를 넘어서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런 예수의 모습이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구원과 희망, 혹은 해방의 선지자로 보였고, 기존 권력의 지배자들에게는 반역을 꾀하는 혁명가로 비춰졌을 것이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불교의 자비의 정신, 혹은 유교의 인(仁)의 사상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점에서 모든 고등 종교는 이 세계 안에서 인간들이 다른 어떤 조건이나 제약, 차이 등을 넘어서 서로 더불어 사는 지혜를 깨우쳐 주고 있다. 나는 현실 세계 안에서의 종교의 가장 큰 얼굴은 사랑 그 자체라고 본다. 그런데 꼭 근본주의가 아니라도, 종교의 이름을 걸고 증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를 우리는 부지기수로 본다. 종교가 현실 세계에서 하나의 권력이 되고, 이 권력 다툼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선봉장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종교는 내면의 확신을 지지해주고 정당화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하고 무서울 수 있다.

 

사실 종교가 현실 권력으로 변질되는 데는 종교 자체에도 원인이 있다. 예수나 석가, 혹은 마호메트나 공자와 같이 최초의 선지자의 메시지가 전달될 때는 사랑과 진리, 그리고 초월 등의 메시지는 선지자 자신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선지자가 죽고 나서 그의 메시지가 후대로 전달될 만큼의 생명력을 갖추려면 몇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선지자를 따르는 제자들 집단이다. 이런 제자들 가운데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도 있고, 이 제자들의 제자들도 있을 것이다. 순전히 스승의 가르침을 전달하려는 이런 제자들 혹은 신자들의 집단이 후대로 가면서 전문화된 사제 집단으로 관료화될 수 있다. 그 다음 선지자가 죽고 나면 그의 가르침의 원형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일종의 교리를 정립하는 것인데, 이것은 경전으로 완성된다. 경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단을 배척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렇게 정립된 교리가 초기 선지자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대변하는지의 여부는 다를 수도 있다. 교리가 만들어지고 사제집단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동시에 필요하다. 성당이나 교회, 그리고 사찰이 그 경우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등 종교가 역사적으로 등장하고 제도화되는 과정에서는 이 세 가지가 필수적으로 구비되는 것이다. 즉 선지자의 순수한 가르침이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역사화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종교의 세속화라 할 이런 모습을 실정성(Positivit?t)이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실정성은 최초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현실 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교리는 도그마(Dogma)로 화석화되고, 사제집단은 관료화된 기생집단이 되며, 교회는 세속 세계의 부와 권력의 집산지가 된다. 다시 말해 종교의 본질 중의 하나인 초월과 사랑의 정신을 망각한 채로 세속 권력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패한 종교는 종교를 가장한 현실 권력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런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등 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번에 내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신자들이 아닌 사람들까지 열광하는 데는 교황이 보여준 종교의 본래 정신과 본질을 그에게서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은 바티칸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비판하고 경고한다. 오늘날 대안 없이 절대 강자들의 놀음 터로 변한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논리에 대해 그는 거침없이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하고, 흔히들 말하는 낙수효과나 파이효과에 대해 “그릇과 파이만 키운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 벌써부터 교황의 이런 행보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교황을 마르크스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자로 낙인찍고 있다. 종교의 본래 정신으로 현실 자본주의나 기타 사회적 모순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얻어낸 제정분리와 탈 주술화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새로운 중세 화를 염려하기도 한다. 물론 교황식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오늘날 자본주의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비신자인 일반인들까지 교황을 반기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이 현실권력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종교의 참다운 정신인 만인 평등의 정신과 사랑을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을 교황의 거침없는 행보에서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교황의 정신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 땅의 곳곳에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며, 나아가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위정자들과 고삐 풀린 한국식 신자유주의가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 <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1

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1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장)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는 통상적으로 개인주의 사회라고 불린다. 과거 백인이 흑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현재의 백인 후손이 왜 흑인 후손에게 사과하거나 흑인에 대한 우대정책에 동의해야 하는 것일까? 이 백인은 자신이 흑인 노예를 부리고 산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우리는 왜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고 메달이라도 따면 같이 기뻐하고 부당하게 메달을 빼앗기면 같이 분노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의 불공정한 행태를 비판하는 입장이라도 막상 외국에 나가서 한국 대기업의 로고를 볼 때 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일까? 싸이의 음악적 성공에 나의 가슴이 뛰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히 개인주의 차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개인주의 외에 국가주의=민족주의가 현대 사회의 또 다른 기본 특징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1. 개별화와 전체화

푸코는 현 서구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정치적 합리성을 탐구한다. “정치적 합리성은 서구사회의 역사 전체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 왔으며 또 자신을 드러내 왔다. 그것은 처음에는 사제 권력이라는 사상에, 그 다음에는 국가 이성이라는 사상에 의존해 왔다. 그것의 필연적인 효과는 개별화와 전체화이다. 이 두 효과 중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정치적 합리성의 뿌리 그 자체를 공격함으로써 자유가 온다.” 푸코가 보기에 계몽주의의 과업은 이성의 정치권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권력 증대는 두 방향으로 발달한다. 즉 국가로 정치 권력이 중앙집권화되어 가는 방향과 개인들을 다루는 권력 기술의 출현이다. 대부분의 푸코 연구가들은 푸코가 “현대적 국가 양식과 그것이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도출되었는지에 관한 연구는 소홀히 하고 지배가 생산력과 착취의 관계, 그리고 국가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즉 그가 두 방향 중 후자의 측면인 권력의 개별화 형태에만 강조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비판은 일면적으로 사실이긴 하지만 푸코의 진정한 의도를 못한 데서 생겨난다. 푸코는 국가가 가장 두드러지고, 가공할 인간통치의 형식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는 앞 인용문에서 밝혀졌듯이 개별화하고 동시에 전체화시킨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국가와 개인을 별도로 세우고 국가와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상충하는 것으로 보고 국가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는 전략은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근대 권력 구조들이 개별화시키고 또한 동시에 전체화시키는 이런 종류의 정치적 ‘이중구속’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동시대의 국가나 국가기관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국가와 그리고 국가에 관련되어 있는 개별화의 유형 둘 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핵심문제 생각한다. 그리고 둘 중에서 후자 즉 개별화의 유형이 더 많이 은폐되어 있고 간과되어 있으므로 이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2. 한국의 특수한 이념, 유교적인 가족주의

윤리나 도덕은 역사를 초월한 영원불변의 이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현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명멸해 가는 역사적인 생명을 지닌다. 이는 시대가 변화하면 윤리와 도덕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특정한 도덕이나 윤리는 특정한 사회적 조건하에서만 타당하기 마련이다. 윤리는 그 성격상 보편적 구속력을 요구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보편성은 어디까지나 칸트적 의미에서의 윤리적 요청이지 사실적 의미의 진리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급격한 사회변동과 관성을 지닌 윤리 의식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는 전통적인 농업중심주의 사회에서 근대 공업사회로 변화했고 다시 미래의 정보사회로 돌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농업중심사회를 이끌어오던 기존의 가부장중심의 윤리와 이를 정당화한 유교의 윤리가 형해화된 채로 잔존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윤리적 담론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전통적인 윤리의 의의와 가치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이에 대해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존재하는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과연 이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윤리가 현재 우리가 앓고 있는 서구 합리적이고 개인주의(=국가주의) 사회적 딜레마와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다가올 미래 사회의 윤리적 기초가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변을 할 수 있으려면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들과 이 전통 윤리가 과연 연관되어 있는지를 먼저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 문제들과 전통 윤리가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전통윤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들 사이에 연관이 없다면 이 문제들을 발생시킨 병인(病因)과도 같은 윤리를 이 문제들에 대한 치료제로 쓸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전통 윤리의 윤리적 기획과는 다른 윤리적 기획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2.1.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 연고주의

그러면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고 한 공동체로서의 우리 민족을 갈가리 찍게 만든 병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이 병들을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라는 큰 범주에 따라 구분하면 우리 사회 내적인 증상과 외적인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인 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성(integrity)과 관련되고 외적인 것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과 관련된다. 통합성이나 정체성은 모두 자아와 타자의 상호작용과 상호인지를 전제한다. 우리의 통합성은 연고주의 더 자세히 말하면 혈연에 기초한 가족이기주의, 학연에 기초한 학벌이기주의, 지연에 기초한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이 삼연(三緣)주의로 생겨난 우리 사회의 ‘진입 금지’는 다수의 구성들의 생존과 존엄을 손상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여 구성원들 사이에 그 틈을 메울 수 없는 갈등의 심연을 만들어 왔다. 이는 구성원들이 한 공동체라는 상호인식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집단 정체성 확립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같은 사회의 구성들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사회와 다른 사회 사이의 갈등에서도 확인된다. 우리의 대외 의식은 우리보다 선진한 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우리보다 후진적인 나라들에 대한 졸부의식으로 드러난다. 이 또한 우리의 정체성 설정과 자아와 타자와의 상호인정에 문제가 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2.2. 유교의 차별애

우리 사회의 잘못된 집단 정체성과 통합성에 유교와 가부장 윤리가 기여한 바는 없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 유교 윤리의 특징을 살펴보자. 유교 윤리의 특징을 살피려면 우선 고대에 유교와 대립되던 학파인 묵가가 유교 비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묵자]의 ?겸애(兼愛)하편?에서 別(따로 노는 것)과 兼(함께 하는 것)을 구분한다. 그는 겸을 가지고 별을 비판한다. 이 비판의 대상이 바로 유교이다. 그는 유교를 별사(別士)라고 부른다. 별사란 별애를 주장하는 선비이다. 별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내 어찌 자신을 위하는 만큼 적을 위하고 벗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만큼 위할 수 있을까?” 반면에 겸(함께)을 주장하는 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자신을 위하는 것만큼 친구를 보살펴 주어야 하겠으며, 친구의 어버이도 나의 어버이같이 위하여야겠다.” 이 주장은 겸애(더불어 사랑함)를 의미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묵가의 사랑은 겸애이고 유교의 사랑은 별애(차별적으로 사랑함)로 뚜렷하게 대비된다.

과연 묵가의 비판대로 유교의 사랑이 별애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원시 유교의 핵심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맹자의 논의를 살펴보자. 맹자는 양주학파와 묵가를 비판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생각한 유학자이다. 맹자는 이 양자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양씨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것은 왕이 없는 것이요, 묵씨는 겸애를 주장하니 이것은 아비가 없는 것이다. 아비도 없고 왕도 없으면 이는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 …… 이러한 사악한 설이 백성을 기만하고 인의(仁義)를 막히게 하였다.”1) 맹자의 묵가에 대한 비판은 겸애를 주장하면 자신의 아버지의 존재를 무화시킨다는 점이다. 겸애는 자신의 아버지와 다른 이의 아버지의 구분을 없애고 만다. 이는 유교가 바탕으로 하고 있는 仁의 정신에 어긋난다.

유교의 인의 출발점은 친함親이다. 즉 가장 친한 관계인 아버지와 아들 간에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사랑의 감정이 바로 인이다. 인을 중심으로 하는 공자의 가족주의적 도덕은 주나라의 봉건제를 기본으로 하여 세워진 것이다. 주나라 봉건제는 천자는 아버지고 제후는 아들이라고 하는 혈연의식이 그 봉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몇 대가 흐르자 그 혈연의식이 희박해져 가족주의의 정신이 상실되고 각 나라가 패권을 추구하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공자에게는 이러한 난세를 구하는 길은 단지 하나. 주나라 초기 봉건제의 정신이었던 가족주의 도덕을 부흥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 주초의 가족주의 도덕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실로 천하의 정치는 이미 가족주의 도덕의 이념을 상실해 버렸다. 그러나 개개의 가족이나 촌락에는 여전히 가족제의 정신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이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서 그 가족애가 미치는 범위를 점차로 확대하여 이것을 하나의 나라에 미치게 하고 나라들의 모음인 천하에 확대하면 된다.2) 이는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까지 미친다.”라는 원리에 따르고 있다. 이러한 공자의 정신을 표준화한 것이 四書 중의 [大學]이다.

[대학]의 첫 부분은 3강령과 8조목으로 되어 있다. 3강령은 ‘明明德’과 ‘新民’과 ‘止於至善’이다. 명명덕이란 군자의 내면에 본유적으로 있는 밝은 덕을 밝힌다는 것이다. 이는 修身을 의미한다. 즉 좋은 통치자가 되어 왕도정치를 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덕을 수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수양된 덕을 바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는 것이 바로 新民이다.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덕으로 감화하는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기본으로 해서 유교의 이상인 대동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도덕적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止於至善’이다. 이 삼강령은 유교의 기본 원리인 ‘修己治人’을 방법론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한 것에 불과하다. 이 삼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조목이 바로 8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8조목의 순서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이다. 이는 도덕적 수양을 통해 가족주의 도덕을 내면화한 것이 덕이고 이 덕을 집, 국가, 세계로까지 확장하는 발산의 논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논리의 문제점은 가족의 양적 확대가 국가가 되며 국가의 양적 확대가 천하가 된다는 추론 위에 도덕을 조직하였다. 이 경우 천하도 국가도 질적으로는 가족을 기본틀로 하는 가족의 확대형태가 된다. 여기에 조응하여 가족생활에 고유한 개인도덕도 그 영역을 공간적으로 연장함으로써 그것이 바로 사회도덕이 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사회도덕은 개인도덕 안에서 해소된다. 이러한 유교의 윤리적 기획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공공정신의 발달을 가로막는다.3)

유교의 윤리가 가족과 비가족을 구분하는 차별애임은 앞에서 인용한 묵자 비판에서 행한 맹자의 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가족과 비가족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와 권위를 없애는 결과는 낳을 뿐이다. 이는 유교의 도덕적 기초인 仁이 성립할 근거를 말살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요약한다면 공자의 인은 가족애를 출발점으로 한다. 이는 그가 주나라 초기 가족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의 소생을 이상으로 삼은 데서 기인한 당연한 결론이다. 인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의 부모형제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가족에 대한 사랑을 국가에, 그리고 국가들의 모임인 천하에 확장하는 것이 유교의 윤리적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속성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다음의 말을 인용해보자.

본디 인류애는 가족애나 애국심과 같은 특정의 집단에 대한 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애는 그것이 아무리 순수하다 해도 본질적으로 에고이즘의 확대라는 성격을 면할 수 없다. 에고이즘을 가진 애는 항상 ‘미워함’과 가깝다고 하는 사실 의해서 간단히 판별할 수 있다. 모성애는 어머니의 자기희생 위에 성립하지만, 그것은 이웃집 자식에 대한 미워함이 쉽게 생긴다. 따라서 모성애의 본질은 확대된 에고이즘이다. 애국심은 적국에 대한 증오심과 쉽게 연결된다. 따라서 애국심을 제아무리 양적으로 확대해도 인류애는 될 수 없다. 인류애는 가족애나 애국심과 같은 특정애의 애를 확대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는 없다. 도리어 그 완전한 부정 위에 성립한다. 이 점은 인류애를 역설한 종교를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자비의 가르침을 설명한 불교는, 불도의 수행자를 ‘出家’라고 부른다.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탈출함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므로 ‘出國’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또 박애를 역설한 예수도 마찬가지이다.4)

특정한 집단에 대한 사랑과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서로 질적으로 틀릴 뿐만 아니라 인류애는 특정한 집단에 사랑을 부정할 때에만 생겨난다. 이와는 달리 유교의 윤리는 특수성의 양적 확대에 불과하므로 진정한 의미의 보편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추상적 보편성의 수준에 도달한 서구의 근대 보편주의적 윤리적 기획이 유교에 대한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가?

 

-주석-

1) [孟子; 勝文公下 9]

2) 森三樹三郞, [중국사상사], 임병덕 역 (온누리, 1990), 41쪽.

3) 赤?忠 외, [중국사상개론], 조성을 역 (이론과 실천, 1987), 380-1쪽.

4) 森三樹三郞, [중국사상사], 임병덕 역 (온누리, 1990), 64-5쪽.

 

 

<상속자들>과 『논어』 <벙커1> 2

<상속자들>과 『논어』 <벙커1> 2

오상현(숭실대)

 

알림 : 『논어』 번역은 황희경 선생님의 번역이거나?필자가 수정한 것들이 섞여있습니다

들어가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또는 때맞춰)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논어』 「학이」 (0101)

 

1. 증삼(曾參) / 자여(子輿) / -49

질문 : “선생님, 저는 은상이와 갈라서게 된 탄이가 깨지고 다치면서 망가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효(孝)와 충(忠)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상속자들> 속 은상이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착한 것’과 ‘착하기만 한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마천 『사기』

공자는 그가 효도에 능통하다고 여겨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는 『효경(孝經)』을 지었으며 노나라에서 세상을 마치었다.

“나의 몸과 터럭, 그리고 피부마저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효경』 1장.

[인물 엿보기]

증자가 말하였다. “부모의 상을 아주 진지하게 처리하고, 조상의 제사를 정성스럽게 모시면(愼終追遠) 사람들의 덕성이 한결 돈후해질 것이다.”? (0109)

증자가 병이 들어 제자들을 불러 놓고 말하였다. “(이불을 걷고) 내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깊은 못가에 서 있듯, 얇은 얼음판을 밟고 가듯 전전긍긍 조심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와서야 이런 걱정을 면하게 되었음을 알겠구나, 제자들아!”? (0803)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가 있지 않았는가? 선생님에게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010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증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 있다(吾道一以貫之).” 증자가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다른 제자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서(忠恕)일 뿐입니다.”? (0415)

◎ 충(忠)의 의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도 굳건하지 않게 된다. 진실함(忠)과 신의(信)를 위주로 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며, 잘못을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0108)

“아름다운 자두꽃이 봄바람에 휘날리는구나.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대의 집이 멀고도 멀구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사랑(思)하지 않는 것이니 (사랑한다면) 먼 곳이 어디 있으리요?”? (0931)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떻게 해야 하겠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려야 하고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0319)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臣臣, 父父子子)” 경공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양식이 있다 한들 내가 먹을 수 있겠소?”? (1211)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신하가 신하다울 수 있고,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야 자식이 자식다울 수 있습니다.(君君臣臣, 父父子子)” 경공이 (알아듣지 못하고)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양식이 있다 한들 내가 먹을 수 있겠소?”? (1211)

자공이 여쭈었다. “공문자는 무슨 이유로 문(文)이라는 시호(諡號)로 불리게 되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됨이 민첩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 그런 까닭으로 문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0515)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만약 무도한 자를 죽이고 (선을 행하는) 좋은 사람을 친근하게 대한다면 어떻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선생께서 정치를 하면서 어찌 살인의 방법을 쓰려고 하십니까? 선생께서 착해지고자 하면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착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도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도덕은 풀입니다. 풀은 바람이 불면 반드시 따라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1219)

◎ 효(孝)의 의미

맹무백이 효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오직 자식의 병만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0206)

자유가 효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날은 효라는 것을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개와 말도 그 정도쯤은 한다. 공경하지 않는다면 (개나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020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길 때 (만약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은근히 완곡하게 간해야 한다. 부모가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더라도 더욱 공경하여 어기지 말 것이며 수고스럽더라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0418)

◎ 충(忠)과 효(孝)의 관계(?)

공자가 말씀하셨다. “효성스럽구나, 민자건이여.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한〕부모 형제의 〔칭찬의〕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1104)

계씨가 민자건을 비(費)라는 땅의 현장(縣長)으로 삼고자 하였다. 민자건이 (사신으로 온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를 대신해서 잘 거절하여 주시오. 다시 나를 부르는 일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 가에 가 있을 것이오.”? (0609)

◎ 착한 것과 우둔한 것의 차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게 되고(恭而無禮則勞), 삼가면서 예가 없으면 두려운 일이 많게 되고, 용감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정직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각박해진다. 군자가 친족들을 후대하면 백성들 사이에 어진 기풍이 생겨나고, 옛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박절하게 된다.? (0802)

어떤 이가 말하였다. “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공정함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는 것이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143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미생고를 솔직하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얻으러 갔더니 이웃에서 얻어다가 주는구나.”? (0524)

 

2. 안회(顔回) / 자연(子淵) / -30

질문 : “선생님, 아시겠지만 저는 평생 없이 살아서 그런지 겉치레에 엄청난 돈을 써대는 그들이 내내 못마땅했습니다. 형식적인 겉모습에 치중하기 보다는 그 안에 내포된 내용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미 약혼식을 치렀던 탄이와 라헬이가 안타까웠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약혼반지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마천 『사기』

안회는 29세의 나이에 백발이 되었으며 젊은 나이에 죽었다. 공자는 그가 죽자 매우 애통해했다.

[인물 엿보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이야기해 보았는데 (내 말을) 어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것 같더니, 그가 물러간 뒤에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면 (내 말 뜻을) 잘 발휘하고 있으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020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어질구나(훌륭하구나), 회(안회)여! 다른 사람들은 한 그릇의 밥(一簞食)과 한 표주박의 물(一瓢飮)로 가난한 마을에 사는 것을, 그 고생을 견디어 내지 못하는데 회는 (가난 속의)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회여!”? (0611)

공자께서 광 땅에서 구금당했을 때 안연이 뒤처졌다가 나중에 도착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선생님이 계시거늘 제가 어떻게 감히 죽겠습니까?” (1122)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1108)

애공이 물었다. “제자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好學)”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제자가 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는)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고(不遷怒)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는데(不貳過) 불행히 일찍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그 후로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0603)

◎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으로 짠 관을 쓰는 것이 예이지만 요즘은 실로 짠 것을 쓰니 검소하다. 나도 대중이 하는 바를 따르겠다. (당)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인데 요즘은 (당) 위에서 하니 이는 교만한 일이다. 비록 대중이 하는 바와 어긋나지만 나는 아래에서 절하겠다.”? (090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라고 예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옥이나 비단을 바치는 것을 말하겠는가? 악(樂)이라고 악이라고 말하지만 종이나 북을 치는 것을 말하겠는가?”? (17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면적인) 질박함(質)이 (외면적인) 문채(文)를 이기면 조야하고, 문채가 질박함을 이기면 겉만 화려한 것이다. 문채와 질박함이 고르게 잘 조화를 이룬 뒤에라야(文質彬彬) 군자라 할 수 있다.”? (0618)

◎ 홍동백서(紅東白西)를 허하라.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아주 애통하게 곡을 하셨다. 따르는 사람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지나치게 애통해하십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내가〕너무 애통해하고 있는가? 이 사람을 위해 애통해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 애통해하겠느냐?”? (1109)

임방이 예의 근본을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질문이여! 예는 사치스럽기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사(喪事)는 (절차를 알아) 쉽게 치르는 것보다 차라리 (진정으로) 슬퍼해야 한다.”? (0304)

 

3. 단목사(端沐賜) / 자공(子貢) / -31

질문 : “선생님! 부자라고 꼭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조선의 선비들 중에는 처자식이 쫄쫄 굶고 있는데도 골방에 박혀서 글공부만 했던 한심한 후학들이 있었답니다. 그따위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남편과 아비 노릇도 못하면서 군자가 어쩌고 천하가 어쩌고는 거짓입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줄곧 말씀하신 공부가 앉아서 책만 보는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마천 『사기』

자공이 한번 나섬에 노나라를 존속시키고 제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오나라가 망하고 진(晉)나라가 강국이 되었으며 월나라가 패자가 되었으니, 즉 자공이 한번 뛰어다님으로써 국제간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10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각 큰 변동이 생겼던 것이다.

자공은 시세를 보아 물건을 매매해 이익을 챙기는 것을 좋아해 때를 보아서 그때그때에 재물을 굴리었다. 그는 남의 장점을 드러내주는 것도 좋아했으나 남의 잘못을 숨겨주지도 못했다. 일찍이 노나라와 위(衛)나라에서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금(千金)을 쌓아두기도 했다.

[인물 엿보기]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괜찮기는 하나, 가난하면서도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서 ‘자르는 듯(如切), 다듬는 듯(如磋), 쪼는 듯(如琢), 가는 듯(如磨)이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두고 한 것이겠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야, 비로소 너와 『시경』을 논할 수 있게 되었구나. 지난 일을 일러 주었더니 앞으로 올 일을 이해하는구나.”? (0115)

자공이 말하였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장 속에 감추어 두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찾아 팔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물건 볼 줄 아는)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0913)

공자께서 자공에게 말씀하셨다. “자네와 회(안회) 가운데 누가 나은가?”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회와 같기를 바라겠습니까? 회는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알고, 저는 한 가지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녀석만 못하지, 너나 나나 그만 못하지.”? (0509)

자공이 정치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비를 충분히 하고(去兵), 백성들이 믿도록(民信之矣) 해야 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부득이하게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비를 버려야지.” 자공이 말하였다. “부득이하게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 (남은)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려야지.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無信不立).”? (1207)

자공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논평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는 참으로 똑똑하구나. (그러나) 나는 그럴 겨를(시간)이 없다.”? (1429)

◎ 돈 버는 게 나쁜 것인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하고 귀해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가난하고 천해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걸 피하지 않아야 한다. 군자가 인을 버리면 어찌 군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군자는 밥 먹을 동안에도 인에서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갑자기 황급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이같이 해야 하며 넘어지는 순간에도 이같이 해야 한다.”? (040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독실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죽어도 도를 지키고 보전해야 한다. (그러나)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면 나와 일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숨는다.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미천한 것은 치욕이요,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부유하거나 귀한 것도 치욕이다.”? (081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가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 잡는 사람이라도 해 보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0712)

◎ 진짜 공부란? / 위기지학과 위인지학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학인은 (진정한) 자기를 위해 공부했는데 지금의 학인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142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15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들아, 집에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공손해야 한다. 삼가는 마음으로 뱉은 말은 지키고, 편 가르지 말고 사랑하여라. 또한 어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도록 하여라. 이렇게 행하고도 혹여 남는 힘이 있다면(行有餘力), 비로소 (그때) 공부하여라.”? (010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또는 때맞춰)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 (0101)

 

4. 중유(仲由) 자로(子路) / -9

질문 : “선생님, 저는 탄이 아빠나 영도 아빠, 그리고 라헬이 엄마나 효신이 엄마가 아이들에게 무조건 자기 말에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에 화가 좀 났습니다. 자기들은 부모이고 어른이니 무조건 옳다고 믿나 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의 태도입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부모님께 곱디고운 모래 한 줌, 눈가에 뿌려볼 용기가 왜 없을까요?”

사마천 『사기』

자로는 성질이 거칠고 용맹을 좋아하며 심지(心志)가 강직했다. 수탉의 꼬리로 관을 만들어 쓰고 수퇘지의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찼다. 공자의 제자가 되기 전, 한때는 공자를 업신여기며 폭행하려 했다. 그러나 공자가 예로써 대하며 조금씩 바른 길로 인도해주자, 뒤에 유복(儒服)을 입고 폐백을 드리고서 문인들을 통해서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공자가 위나라에서 난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아, 유(由)가 죽겠구나!”라고 탄식했는데, 이윽고 과연 그가 죽었다. 공자는 그가 죽은 뒤 “내가 유를 얻은 뒤로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험담이 나의 귀에 들리지 않았는데······”라고 탄식했다.

[인물 엿보기]

자로는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충분히 실행치 못했으면 더 듣기를 두려워했다.? (0514)

공자께서 남자(南子)를 만났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옳지 않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062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두 마디의 말(片言)로 재판의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유(자로)일 게야.” 자로는 승낙하는 일을 지체한 적이 없었다.? (1212)

◎ 지나친 용기는 위험하다.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이) 써 주면 나아가 행동하고, 버리면 재주를 감추고 들어앉을 수 있는 자는 오직 나와 너만이겠지.”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맨주먹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강물을 건너다가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큰 일을 당하여 두려워할 줄 알고 미리 계획을 세우기를 좋아하여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 (07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주장한) 도가 행해지지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닷가를 떠다니고자 한다. (그때)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 유(자로)일 게야.”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용기 좋아하는 것이 나보다 낫다. 다만 사리에 맞게 헤아릴 줄을 모른다.”? (0507)

자로가 여쭈었다. “군자는 용기를 숭상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로움을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적질을 하게 된다.”? (1723)

◎ 변화무쌍한 군자가 되거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君子不器)”? (02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해서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다. 단지 의로움만(義)을 좇을 뿐.”? (0410)

공자께서는 네 가지 잘못이 없으셨다. 미리 억측하지 않았고(毋意),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으며(毋必), 고집이 없었고(毋固), 내가 꼭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毋我).? (0904)

 

5. 공자가 들려주는 세상사는 법 3가지

◎ 단 하나의 규칙 – 서(恕)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 가운데 평생 동안 실천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라는 말일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1524)

◎ 일단 시도하라. 포기는 그 이후에 생각하라.

염구가 말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사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모자라서 (못하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중도에 그만두게 마련이지만 지금 너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자기 한계선을 긋고 있구나.”? ?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0612)

◎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잊지 말아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그 가운데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 그중에 선한 사람을 택해 따르고, 선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 반성해) 고쳐야 한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0722)

사마우가 근시하면서 말하였다.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홀로 없구나.” 자하가 말하였다. “나는 ‘생사와 부귀는 천명에 달려 있다.’고 들었다. (한 사람의) 군자로서 진지하게 행동하여 잘못이 없고, 공손하게 남을 대하여 예의가 있으면 사해의 동포가 모두 형제가 될 것이니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근심하겠는가?”?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120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子曰, “德不孤, 必有隣.”? (0425)

 

나가며…

안연과 계로(자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각자의 뜻한 바를 말해 보거라!” 자로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벗들과 함께 쓰다가 낡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기를 원합니다.” 안연이 말하였다. “저는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자 합니다.”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노인에게는 편안하게 해 드리고, 벗에게는 믿음을 주고, 젊은이는 품어주고 싶다.”? 顔淵季路侍. 子曰, “?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 與朋友共, ?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0526)

 

 

군대 폭력 백서를 만들자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군대 폭력 백서를 만들자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 같은 글이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2095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윤일병 폭행치사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멀쩡한 아들을 나라를 지키라고 군대를 보냈더니 군 내무반에서 몇 달 동안 조직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사망했다니 부모 심정이 어떻고, 현재 군대에 있거나 앞으로 군대를 보내게 될 부모들은 또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국방의 의무는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그래서 20세 이상의 신체 건강한 성인남자라면 누구든 이 의무를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대한민국은 6.25 남북 전쟁을 경험했고, 현재도 평화상태가 아닌 휴전상태이기 때문에 남북간의 대치와 긴장이 적지 않다. 때문에 한국에서 군대의 역할은 사회의 어떤 부문 이상으로 막중하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런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행과 사망사건, 자살과 의문사 사건, 그리고 탈영병들의 총기 사건 등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다. 군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혁을 다짐하지만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 십 년 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윤일병 치사 사건을 이야기하다 보니 군대를 수 십 년 전에 제대한 내 대학동기들의 카톡방에서는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체험담들이 올라오고 있다. 폭력의 체험이 그만큼 생생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몇 안 되는 사례지만, 나는 이런 사례들을 계기로 군대 폭력 백서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첫번째 사례> 신** 현직 대학 교수?

“아마 우리 동기들 모두 비슷한 군대 시절 어두운 기억이 있겠지만 나도 80년 입대해서 **훈련소 조교로 근무할 때 고참의 술 외상값 20여만원을 대신 갚기를 거부했다고 10여명의 조교가 저녁부터 점호도 열외당한 채 그 병장 동기들로부터 4시간여 집단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결국 내가 술취한 병장의 군화에 얼굴을 맞아 입술이 찢어져 집합은 끝났고 나는 의무실로 후송되어 열 바늘 이상을 꿰맸고 그 흉터는 아직도 내 얼굴에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를 마친 증거로 뚜렷히 남아있다. 사실 구타보다 내가 더 실망했던 것은 사고 후 헌병대와 보안부대에서 사고조사 과정이었다. 조교가 입술을 열 바늘 꿰맸고 타박상의 흔적이 온몸에 있고 당시에도 엄격한 구타금지 지침이 있었기에 의무장교가 신고를 해서 헌병대와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나왔지만 구타금지 목표달성을 염려한 연대참모 장교들의 강력한 회유와 압력으로 나는 청소 중 넘어졌다고 진술하였고 수사관들은 내 온몸의 멍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단순 사고로 종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끼어들어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과 절망감으로 인한 마음의 아픔이 구타로 인한 몸의 통증보다 몇 배는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사건을 보며 무려 30년도 전의 군대문화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지만 우리세대가 보다 나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기를 아직도 기대해본다.”

 

이 동기는 군대의 악습과 관련한 집단 폭력도 문제지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의 문제점을 적고 있다. 군내의 불투명한 사고 처리 과정은 조직적인 은폐로 이어진다. 그동안 군대 내의 수많은 의문사, 자살 사건들에 대한 재조사도 필요하다. 따라서 사고 처리와 관련해서는 군 감찰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군 외부의 민간 인사가 참여하는 전문 조사기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백서 이야기를 했더니 내 동기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덧붙이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사진-오마이뉴스

“취지에 적극 동감하며 내경험 관련하여 첨언하면. 첫째 군대 내 폭력 등 사고 보다 투명하지 않은 사후 조사과정이 더 문제다. 즉 사고 관련하여 관리책임 문책 등의 불이익이 두려워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군대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폭력근절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고, 둘째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니 구성원 모두가 작더라도 개선을 향한 노력을 해야 할 듯. 내 경우 말년 병장의 외상술값을 후임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그 당시 그 부대에서의 관습이었으니 이를 거부한 것이 폭력사고를 유발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물려받고 물려주는 악습을 되풀이 했을 테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지 모를 일 아니겠나. 외상값 대신 내 주고 물려주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도 적은 금액도 아니었고 젊은이의 순수함이 군대에 와서 오염되는 것 같아 그냥 몸으로 때운 셈이지 ㅠㅠㅠ”

 

<두번째 사례> 박** 기업임원 은퇴

?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우리들의 모습이야. 나 역시 모종의 사건에 본의 아니게 개입되어 쇠파이프로 얻어맞다가 정신 줄을 놓고 회복실로 실려 간 일부터,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구타를 여러 번 당했는데 어떤 때는 부대 내에 있으면 맞아 죽겠다 싶어 무단이탈 을 한 적도 있었네. 다 지난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네. 그러나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맞으면서도 끝까지 내 몸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삶에 대한 본능에 따라 처신하고 대응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네. 덕분에 제대할 때 앞 이빨 세 개를 포세링하고 나왔는데 군대서 공짜로 하는 대신 실험케이스로 그중 이빨 하나를 새로운 신경치료방법을 적용하다 실패해서 나중에 그걸 뜯어내는데 접착제가 얼마나 강한지 이빨 세 개가 통째로 빠질뻔 한 적도 있었다네. 각설하고 제대 후에 꾸는 가장 큰 악몽이 다시 입대하는 거라는데 나 역시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네. **이나 **나 다 나처럼 대부분의 우리 동기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하네. 그러면서도 잠시라도 윤일병 사건에 대하여 남의 일처럼 생각한 시간이 있는 듯하여 반성이 된다네. 아무쪼록 다양한 개선방안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서 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원하네.”

 

내가 백서로 만들자고 하니까 그는 처음에 자기 사례는 빼줬으면 한다고 말한다. 개략적으로 뭉뚱그려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체험만이라도 충분하다고 하니까 그는 더 심한 경험을 이야기해주면서 동의를 해준다. “스트레이트 100대라는 구타도 당해 봤지. 가슴 한 복판 동일한 위치에 정확히 100대를 주먹으로 맞는 구타 방법인데 맞고 나면 아파서 기침도 못하고 죽은 피가 흘러서 하체까지 피멍이 드는 그런 매도 맞고 버텼지. 한번은 참겠는데 두 번째는 진짜 죽겠더라. 그래서 다음 번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엉겨 붙어 끝장낸 적도 있었지.” 정말 일반인은 상상하기도 힘든 폭력이다. 이런 체험을 다시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동기의 이런 이야기가 참으로 용기 있는 고백이라 생각한다.

 

<세번째 사례> 홍** 대기업 임원?

“요즘 군대내 폭력 문제가 집중 터져 나오고 있는데 나도 4학년 1학기 마치고 79년 10월 **훈련소로 입대하여 군복도 입기 전에 민간인 복장의 장정시절에 내무반에서 3시간 넘게 폭행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날밤 불안, 설렘, 호기심 등 복잡한 심정으로 조신 있게 있던 중인데 느닷없이 옆 내무반 고참 하사가 들어와서 어깨안마를 하라고 했지요. 난 그저 투닥 투닥 두드렸는데 “이 새끼가 안마를 하나 구타를 하나”하면서 확 일어나서 째려보면서 ‘엎드려 뻗쳐’부터 마구시키는데 내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니까 그때부터 본격 때리고 차기 시작하여 7시부터 10시까지 폭행을 당했지요. 난 폭행당하면서도 그놈 얼굴을 정면 응시하면서 “아 저놈이 악마의 화신이구나.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고 속으로 이를 갈았지요. 지금도 그놈 얼굴을 기억합니다. 10시 취침나팔 때문에 폭행은 멈췄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11-12시, 1-2시, 3-4시에 걸쳐 3회 불침번을 서도록 지시하면서 그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내일 아침 전체 벌주겠다고 협박하여 골병든 몸으로 잠도 못자고 불침번을 3회 서게 되었지요. 동료장정들이야 공포감에 침묵했지만 우리 내무반장 병장은 왜 가만히 있었는지, 그 비굴함과 무책임감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 폭행하사는 정**, 군번은 얻어맞으면서 외웠는데 지금은 잊어 버렸네요. 제대를 1주일 앞두고 외부 산으로 싸리나무 작업을 나갔다가 고생하고 와서 화풀이했다고 나중에 들었지요. 다음날 의무대로 신체검사 가서 군의관한테 신고했고, 의무대장 면담을 요청해서 의무대장실에서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고 폭행자 정**을 처벌하고 방치자 내무반장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대장 대위가 불려와 내가 보는 앞에서 의무대장 중령한테 워커발로 조인트 까이고 나서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고향 초를 한 갑 주면서 피우라 하고 커피까지 직접 타주었지요. 악마 정하사가 바로 와서 내 온 몸을 안티프라민과 무슨 약으로 바르면서 하는 말이 “너가 항복하지 않고 계속 개기면서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아서 너가 무서웠다. 그리고 반성문 쓰라 할 때 쓰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거기서 그쳤을 텐데” 하면서 도로 나를 원망하는 투여서 기가 막혔지요. 법대로 군사재판을 받게 할 것을 계속 주장했지만 중대장이 **대 ROTC 말뚝인데 남한산성 군 형무소로 갈 경우 자기도 옷 벗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여 자대영창 최고인 15일 영창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문제 제기하지 않기로 했지요. 계속되는 가슴 통증을 느끼며 본격 훈련받던 중에 여호와의 증인으로 총 들기를 거부하여 영창 갔다 온 동료에게 정** 하사 영창 생활을 물어봤더니 그 새끼 하는 말이”제대 말년에 재수 없게 똥 밟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반성하지 않아서 아주 괘씸했던 기억이 납니다.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나올 때 소원수리제도가 있었는데 그때 중대장과의 약속을 지켜 아무런 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악마의 화신 정**을 지금 만나도 뺨 때기 때려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동기는 자신이 당한 부당한 폭력을 교훈으로 삼아 자신이 상급자가 되었을 때 그런 폭력을 없앴다고 한다. “내가 확 바꾼 게 아니라 내 입대 당시 구타금지가 실시되고 얼차려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일부에서 구타가 근절되지 않았던 게지. 그 때도 군 인권뿐만 아니라 군 전력 차원에서 구타금지를 강력 실시하긴 했었지. 그래서 구타 행위가 적발되면 처벌하였어. 내가 입대하니까 유신군대라 하면서 구타 없는 군대라고 홍보하더군. 그전에는 구타가 일반화되어 있었고 당연시 되었다더군. 내가 **3사관학교 병원 부대에 배치되어 일부 잔존하는 구타까지도 고참되었을 때 근절시켰다는 게야. 물론 나는 자대 배치 이후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었고 얼차려만 받았지. 만기 제대가 아닌 교련 혜택 6개월 단축 제대로 병장 고참 기간이 짧았긴 해도 그 기간만큼은 확실히 금지시켰네.” 이 동기의 경우를 보면 군내 폭력 문제는 책임자의 의지와 문화 개선 등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폭력을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상급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네 번째 사례> 이** 현직 기업 대표?

“ㅎㅎ**가 고생 많았구나.^^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하사로 수용 연대에서 차출되어서 훈련도 그렇고 자대에서도 병들과 싸우고 선임하사들한테 터지고. ㅠㅠ?

근데 빠따는 치면 안 되겠더라구. 내가 선임되면서 빠따를 안치니 제대 이틀 남겨놓고 후배들이 계곡에서 벌거벗은 채 슬레트 깔고 돼지고기 구워먹으면서 쏘주를 같이 하는데 빠따 한 대씩 맞아 보겠다는거여…술김에 그랬겠지만 속으론 이런~미친 놈 있나? 그러면서 벌거벗은 몸에 한 대를 때렸어…그랬더니 피가 근육 속에 터져 번지는 게 눈에 확 들어오는 거야…?

군복위로 때리니 그런걸 모를텐데 몇 십대씩 맞었을 땐 몰랐던거지. 암튼 폭력은 없어져야지..”?

 

이 동기의 경우는 농담삼아 빠따를 쳤을 때의 경험을 적어 주었다. 폭력은 피해자 못지않게 가해자에게도 충격과 고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런 사례도 있다. “내 동갑 외사촌도 자대에서 머리를 가격당해. 의병 제대 했고. 거의 집안 망하다시피 했고. 얼마 전 죽었지. 원호 대상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집안 마다 그런 사연들 하나쯤 있지.” (오**, 현직 대학교수) 군대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경우, 게다가 원호 대상으로 지정되지 못했을 경우, 그로 인해 한 집안이 붕괴되는 경험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모든 고통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다섯번 째 사례>?

윤일병 사건에 대한 단상 김** 현직 변호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어느 한 청년이 2달 동안 매일 폭행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어버린 최근 사건에 대해 세상이 시끄럽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지휘, 통솔라인의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해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여러 언론들이 북과 장구를 치고 있다. 이미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윤일병은 2달 동안 폭행을 당해 죽음에 이르는 시간동안 왜 항거하지 않았을까? 가해자들의 상급자에게 직보함으로써 군대 내의 폭력 상황에 대한 저항을 왜 하지 않았을까? 아마 윤일병도 이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했겠지만 저항해도 별 수 없다고 스스로 체념했을지 모른다.?

돌이켜 나의 군대생활을 회상해 본다.

내가 79년 1월에 육군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사단 ***연대에서 성스러운 병역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인 1980년에 전두환을 간접방식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위원선거가 있었다. 당시 주소지 동사무소에서 부재자투표용지가 오지 않은 30여명의 사병들 때문에 100% 투표율을 달성할 수 없다고 열이 받은 인사장교가 관련자 모두를 연병장에 모아놓고 뺨 한대씩 후려친 일이 있었다. 나도 그중에 끼어 있어서 느닷없이 뺨맞으면서 왜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뺨맞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억울해 했다가, 그 자리에서 인사장교가 나눠준 2박3일 휴가증을 받아 쥐고 병영을 나설 때엔 뺨맞고 휴가 나온 것이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도 했다. 그에 보답(?)하느라 서울에 있는 동사무소까지 가서 투표용지를 받아 결국 ***연대 100% 투표율 달성에 기여한 사실도 있었다. 이 때만 해도 군대에서 상급자로부터 폭행당하는 것에 대해 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때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은 상병시절에 10여명의 헌병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일을 겪고서야 나는 뒤늦게 저항했다. 내가 폭행당해야 할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했음에도 헌병들은 내가 끝까지 변명한다면서 30분이 넘도록 내게 무자비한 집단린치를 가했다. 내 눈은 밤탱이가 되고, 입술과 코는 터져서 피범벅이 되었으며, 허벅지와 등짝은 군화발로 짓이겨져 퍼렇게 멍이 들어 내 온몸은 완전히 망가졌었다. 사건의 내용인 즉, 당시 나는 ***연대 암호병이라 통신대 소속으로서 그 날 전화교환대 야간당직을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지켜야 하는 불침번이었는데 내 앞 불침번이 잠들었다가 나를 깨우지 않고 그대로 잠자다가 헌병대장의 전화를 받지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헌병들이 조사하다가 내 당직시간에 상황이 벌어진 문제를 두고 나를 추궁했으나, 앞 당직이 나를 깨우지 않아서 당직을 못 선 것이니 내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다가 나는 10여명의 헌병들에게 그야말로 개같이 얻어맞았던 것이다.

나 혼자만이 거처하는 암호실에 돌아와서 서럽게 울다가 이대로 참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나는 보안대장을 찾아갔다.?

연대암호병인 나는 2급 군사비밀에 해당하는 난수표 암호자재를 취급하기 때문에 보안대 관리 하에 있었다. 나는 보안대장에게 내가 헌병들에게 당한 일을 모두 이야기했고, 국가의 중요 군사비밀을 취급하는 암호병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헌병들에게 개취급을 당하여 자존심이 심히 손상된 나의 심정을 전달했다. 내 얘기를 들은 보안대장은 그 자리에서 문제의 헌병들을 보안대로 당장 오라고 소집시키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완전히 작살내버렸다. 내가 30분 동안 얻어 터졌다고 했더니 보안대장은 엉망이 된 내 몸을 그들에게 보여 주면서 10여명의 헌병들을 1시간동안 몽둥이찜질 및 군화발로 짓이기며 그야말로 아작을 내버렸다. 헌병들은 모두 반죽음이 되어 기어서 돌아갔다.

그 다음날 헌병대장(수 년 동안 진급 못한 고참 대위)이 나를 부르더니 내게 협박을 했다. 나 때문에 헌병들이 보안대장에게 아작이 났으니 앞으로 내가 제대할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서 반드시 내 호적에 빨간 줄이 가게끔 영창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준법생활을 철저히 하여서 결국 그의 호언장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때였고 고참 대위인 헌병대장은 준위 계급인 보안대장에게 직접 항의하지도 못하고 만만한 내게 화풀이만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는 121연대에서 사병들에게 그 위세를 떨던 헌병들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

왜 윤 일병은 저항하지 못했을까가 나는 정녕 안타깝다.

내년에 군입대해야 하는 내 아들에게 나는 오늘도 권했다. 맞아 죽을 때까지 2달동안이나 그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불의에는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소한 불의에 매번 시시콜콜 따지지는 말라는 친절한 말도 덧 붙인다.

세월호 사건, 윤일병 사건 등등 이성적 사회로서의 합리적 상태가 아닌 모든 비정상 사건들에는 가해자인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이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가해자를 비난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도, 또 세월이 흐르고 나면 다시 비슷한 사건들이 어김없이 되풀이 되고야 만다.

이 사회에 해 끼치는 자들에 대한 질타는 역사에도 항상 있어 왔기 때문에, 그러고도 또다시 되풀이 되는 추잡한 모습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가해자들에 대한 질타만으로는 안 되고,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이 사회 구성원 각자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내 일이 아니라며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다가 내게 구체적인 불의로 닥치고 나서야만 비로소 뒤늦게 정의에 대한 관심을 쏟고 소리치는 것은 위선이다.

위선이다.

위선이다.

이 사회가 아직도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정의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나와는 직접 이해 관계없는 일로 외면해온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나라를 방문하는 날이 다가온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이 동기는 부당한 이유로 무지막지하게 당한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한 경험을 통해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이 사회 구성원 각자가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폭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는 분명 필요하겠지만, 보통 사람 이상의 용기를 주문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이런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면 두려움 때문에 저항할 의지를 상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 그럼에도 폭력을 감수하고 묵인하기 보다는 강하게 저항하고 폭로하는 것이 폭력을 재발하는 데 훨씬 도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몇 안 되는 사례지만 충격적일만큼 끔찍스럽다. 수 십 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 고통의 체험이 너무 뼈저린 탓에 지금 들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오래 전의 이야기이고, 지금의 군 폭력 행태는 그 때와 다르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또 이런 사례를 적시하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왜 오래 전 이야기까지 들추어서 군을 음해하려고 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것처럼 군대는 국민을 외적으로부터 지켜주는 신성한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이런 군대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군대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집단이 된다면, 그런 군대는 결코 강한 군대가 될 수가 없다. 군대 폭력 문제는 일회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폐쇄적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의 시정되지도 않고 있다. 그러니 오죽하면 윤일병처럼 맞아죽던지, 아니면 육군 22사단의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인 임모 병장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이번 기회에 군대 폭력과 의문사, 자살, 총기 사건 등에 관한 백서같은 것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이런 백서가 군의 민주화와 개혁을 이루고, 국민의 군대와 강한 군대로 재탄생하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런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공개하는데 동의해준 내 동기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미래로 가는 길이다[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8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미래로 가는 길이다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 같은글이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2597

 

새민련이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부결했다. 박영선 비대위 대표 측도 재협상이나 추가협상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간과정이야 어떻든 잘한 선택이다. 유가족과 국민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임의로 합의 처리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비대위 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바로 여당과 합의한 박대표의 입지점이 대단히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새민련 내부에서도 그렇고 여당과의 협상 입지도 좁아졌다. 유가족과 참사 대책위의 시선도 좋은 편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예측 가능했음에도 왜 박대표가 협상안에 합의했냐는 점이다. 박대표의 현실 인식이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이른바 세월호 피로증을 앓고 있고, 조만간 교황이 방문하고 얼마 안 있어 추석으로 이어지면서 더는 이 상황을 끌어가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명분을 고집하기 보다는 일단 조사위를 유리하게 구성해서 진행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은 결정적으로 불가능하다.

 

첫째, 세월호는 정치인들이 입맛에 맞게 요리할 수 있는 의제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 그동안 교통사고니 시체 장사니 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불법적, 비도덕적 관행으로 인한 안전과 구호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과 국민들이 죽어간 사건이다. 이와 관련한 의혹도 부지기수로 생산되고 있다. 해경과 안행부의 조기 대책, 유병언의 도피와 관련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관계, 유병언의 죽음의 진실의 문제, 박대통령의 7시간 행방의 문제, 세월호 주인과 관련한 국정원의 관계, 향후 대책 수립과 제도 정비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적당히 덮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세월 호 참사는 시대적 과제이고 역사적 문제이다.

 

▲http://www.jabo.co.kr/ 16일 침몰한 세월호(전라남도 수자원과 제공)

▲http://www.jabo.co.kr/
16일 침몰한 세월호(전라남도 수자원과 제공)

둘째, 사안이 중차대하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같은 상태로 있을 수 없다. 9.11사태를 경험한 미국이 안전과 테러와 관련해 Before 9.11/After 9.11로 시대 구분을 하는 것처럼, 대한민국도 세월호 참사와 그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Before 4.16/After 4.16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역사의 향방이 그렇게 짜여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만일 정치인들이 안일하게 세월호 문제를 여타의 다른 사건 정도로 무마하려고 하면 할 수록 이 문제를 처리하는 사회적 비용과 시간, 그리고 국론 갈등 등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 특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지혜가 필요하다. 하물며 야당 대표가 적당 수준에서 합의해 처리할 수 없다. 지난 80년대 한국 사회가 광주의 희생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큰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사회적 진통을 겪었는가를 교훈삼아야 한다.

 

셋째, 박 대표는 세월호 정국이 오래 가다 보니 이른바 항간에 나도는 세월호 피로증과 같은 현실주의적인 인식을 했을지 모른다. 세월호의 여파는 경제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들에 깊은 충격으로 남아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피로증은 여권 핵심이 세월호 참사를 일반 국민들과 분리시키려는 고도의 책략 중 하나이다. 참사가 발생한지 120일이 되었지만 정치권에서 해결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 간에 국론 갈등도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력하고 무능한 야당은 문제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여권의 분리 전략에 말려든 셈이다. 이런 분리전략은 이미 80년도에 전두환 군사정권이 성공적으로 써먹은 경험이 있다. 피로증은 문제가 답보 상태에서 갈등만 심화될 때 나온다. 해결의 책임은 현 정부를 꾸려 나가고 있는 여권의 책임이고 순전히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지난 120일간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과연 이렇게 무능한 대통령이 있을까 할 정도이다. 세월호가 서서히 수장되는 골든 타임에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오죽하면 청와대에서 실종된 7시간이 논란이 될 정도이다. 배를 버리고 도망 나오는 선장들과 선원들을 보고 살인자라고 역정을 내고,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특별법과 특검을 약속해 놓고서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유병언을 검거하라고 닦달만 했지 정작 그의 시신은 유골이 돼서 일반인에 의해 발견되었을 뿐이다. 지금 이 무능한 대통령은 청와대 가신들의 뒤로 숨어 있을 뿐이다. 여의도 정치의 실종을 개탄하면서 민생을 이야기할 때 보면, 과연 대통령이 현 정국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대통령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한국 사회가 지난 97년의 금융위기를 비교적 빠른 시간에 잘 헤쳐 나온 데에는 정권교체와 김대중이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고, 국민들이 믿음을 갖고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후유증들이 없지 않았지만, 커다란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의 과단성 있고 지혜로운 행동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가 박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지도자의 역할이다. 세월호 피로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약속도 식언하는 믿지 못할 대통령, 세월호 참사의 역사성도 인식 못하는 멍청한 대통령, 난맥처럼 얽혀 들어가는 세월 호 정국을 방치만 하고 있는 무책임한 대통령이자 무능한 대통령 때문이다.

 

넷째, 아마도 박대표가 협상안을 성급하게 받아들인 데는 보궐선거에서의 참패로 인해 야권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참패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월호 정국에서 김한길/안철수로 대표되는 야당의 무기력한 대응과 잘못된 공천, 호남 정치인들의 안이한 판단 때문이다. 국민이 야당에게 원하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국민은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는 강한 야당,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비전 있는 야당, 참사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을 원했다. 야당이 참패한 것은 그런 모습과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대표가 이전 대표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반복하면서 현 정국을 돌파할 여력이 없다고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야당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이고 정치인으로서 역량이 의심스러운 모습이다. 그의 협상안은 8월 11일 새민련 의원총회에서 바로 부결되었고, 재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박대표의 입지도 더욱 좁아졌고, 때문에 현 시점에서 박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제한되어 있다. 먼저 박대표는 유가족과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협상안은 물 건너갔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다시 좌고우면한다고 혼선을 일으키면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 지금의 협상 정국 돌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표직이 아닌 의원직 총 사퇴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협상 정국의 단축을 위해 대통령과 직접 협상을 유도해야 한다. 지금 정국을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대통령의 결단 뿐이다. 다른 어떤 해결 방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같이 대통령에게 막중한 권한이 실려 있는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는 생활 정치, 민생 정치의 물꼬를 트는 역할도 대통령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여의도에서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말을 하기 전에 그들이 정치를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그 물꼬는 세월 호 문제를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온갖 갈등과 분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은 세월 호 정국으로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 물꼬를 트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들이 피로증에 걸려 분열되고 있다. 이 물꼬는 오직 성역 없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마련하는 일에서만 풀 수 있다. 대통령은 여당만을 위한 대통령이 아닌 국정의 총책임자이다. 요즘 항간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명량]은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 대첩에 관한 영화다. 장군이 말하지 않던가?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고. 박대표도 그렇고, 박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면 여권에 엄청난 부담이 되리라고 생각을 해서 막고 있다면 그건 오산이다. 정권의 생명은 약간 연장될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구태와 관행, 분열과 갈등 속으로 실종될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죽으려는 자세로 푼다고 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대통령, 역사에 기록되는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이런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정치적 지혜를 요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 대표도 안이한 현실 인식에 안주해서 살려고 하면 그의 정치 생명은 오래갈 수 없다. 우리는 과거 그런 정치인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박 대표도 이미 한 차례 경험하지 않았는가? 정치인들의 인기는 아침이슬과 같고, 물거품과 같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뢰감과 책임감이 있는 정치인이다. 그가 죽으려 한다면 반드시 박 대표의 죽음의 길에 국민이 같이 동반할 것이고, 죽어가는 야당도 국민이 다시 살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조건 없이 만들어라![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7

세월호 특별법을 조건 없이 만들어라!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 같은글이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19987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로 시작된 유가족 단식 농성이 벌써 21일을 넘겼다. 평소 단식을 하지 않던 사람이 이 더운 날에 거리에서 이 정도로 단식을 한다면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벌써 몸 상태가 현저하게 나빠져 외부 접촉을 막고 있다고 한다. 유가족들의 이런 상태를 걱정한 시민들이 현재 광화문에서 연좌 농성에 진입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정권은 무엇이 두려워서 특별법 제정을 막고 있는 것이고, 도대체 무능한 야권은 무엇이 힘들어서 계속 머뭇거리고만 있는 것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생으로 저 바다에 수장시킨 것도 원통한데, 그 부모들까지 나서 이렇게 배를 곯아 가며 청원해야 하는가? 특별법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이 아닌가? 우리 국민은 그 당시 대통령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참으로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비통해하면서 흘린 눈물이라고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이 있고서 벌써 100일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을 뿐, 원통한 부모들만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루 하루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이 국민들은 언제까지 대통령의 무능한 판단과 느려 터진 결정으로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당신들은 참으로 유가족들이 거리에 쓰러져 다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미 죽은 아이들의 혼이 구천에 떠돌면서 원통해하는 데도 당신들은 그런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특별법은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정략적 산물이 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현 정권 만의 잘못도 아니다. 물론 사고 책임의 직접적 당사자들과 책임 범위 안에 있는 관료들의 문제는 중차대하다. 하지만 관피아와 해피아 같은 문제들은 지난 수 십 년 간 한국사회가 앞만 보며 달려 오면서 누적된 문제들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일은 현 정권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풀어야 할 역사적인 과제이다. 성역없는 수사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현정권의 책임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대한민국, 우리 자손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올곳이 세우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를 이렇게 역사적 과제로 생각한다면 도대체 당신들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정권은 유한하지만 우리 민족과 후손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영원하다. 그런 국가를 바로 세우는 문제에서 왜 당신들은 정권의 안위만 생각하고, 정략적으로만 문제를 보는가? 대통령은 이미 오래 전에 정권에 기초한 권력의 무상함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은 그런 권력의 무상함을 또 다시 경험하고 싶은가, 그리하여 세월호 문제를 정략적 미봉책으로 해결하려다가 자자손손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하나의 오점으로 남고 싶은가? 당신들은 역사가 두렵지 않은가?

 

사진-민중의 소리

사진-민중의 소리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백일이 훨씬 지났고, 그 부모들의 단식도 21일이 지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한 치의 걸음도 내딛고 있지 못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조사가 늦어지고 대책 수립이 지연되다보면 그냥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럴수록 부모들의 원한의 감정은 하늘을 찌르고,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의 골도 메우기 힘들 정도로 깊어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를 미룰수록 항간에 떠도는 세월호 관련 의혹들은 더욱 비등할 것이고, 그 모든 화살은 정치권과 청와대로 향하게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그 여파는 경제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들에 깊은 충격으로 남아 우리 사회의 발목을 더욱 더 과거에 묶어두게 될 것이 아닌가?. 이 모든 책임은 정부의 수반이고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무능한 판단에 있다는 것을 결코 모른단 말인가? 대통령은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대일 관계에서 과거사 청산을 따지고, 대북관계에서 진정성과 신뢰를 문제 삼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불행한 문제들이 청산이 안 되고, 서로 간에 신뢰가 부재하다면 결코 미래의 발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대통령이 왜 세월호 참사를 가볍게 생각하는가? 왜 그것을 조삼모사 식의 정략적 판단으로 호도하려고 하는가? 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의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했던 이야기를 뒤집어 버리려고 하는가? 세월호 참사로 야기된 문제들을 조사하고 최소한 미래에 다시 반복되지 않을 정도의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은 한 치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대통령은 참으로 모른단 말인가? 혹여 대통령은 지난 보궐선거의 압승 결과를 믿고 이제는 세월호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안이하게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만일 대통령이 선거결과를 그렇게 이용하려 한다면 이제 국민들은 무능한 야당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정치권 전반을 불신하는 엄청난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정치인들은 벌써부터 보상금을 가지고 유가족들을 회유하고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의 목숨값을 가지고 흥정을 하려 하겠는가?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 부모들의 비통한 마음을 위로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원한의 감정만 심으려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정치가 아니겠는가? 아, 어떻게 이다지도 어리석은 정치인들을 우리 손으로 뽑았단 말인가? 정녕 대통령은 정치 전체가 불신되고,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이 막심해지는 시대의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는 분명히 적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만약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권력들 앞에서 좌절과 절망을 느끼고, 그들을 더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국민과 대립하는 국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헌신짝 취급하는 국가, 국민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거나 위로하지 못하는 국가, 국민의 원한 감정만 자극하는 국가, 그런 국가가 과연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그런 국가가 언제까지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조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라. 봄날에 화창하게 핀 꽃같은 아들과 딸들이 수학여행을 간다고 집을 나선지 몇 시간이나 되었는가? 그런 그들이 배에 갇혀 구조의 손길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상태로 서서히 저 차가운 바다로 수장된 모습을 지켜본 부모들의 비통한 심정을 어떤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기가 막히고, 너무나 황당해서 말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컴컴한 바닷 속에서 시신이라도 거두어주기를 바라는 영혼들이 있는데, 그런 부모들이 무얼 그렇게 심한 걸 원한다고 하는가? 시체장사를 한다고, 자식팔아 영화를 누리려 한다고, 심지어 유가족 충이라는 막말까지 들어가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 대단한 것인가? 그들은 단지 정확한 진상규명이고, 그것을 위해 성역없는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수사권을 가지고 수사를 하더라도 음해하고 저항하는 세력들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그 결과를 가지고 법원의 공정한 판단을 받는다는 것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그런 판단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무수한 장애들이 또 다시 앞을 가로 막을 터인데, 그런 사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면서 유가족들의 가슴은 한 없이 타들어갈 터인데, 어찌 국민의 녹을 받고 있는 국회와 국정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은 첫 단추를 꿰는 일에서부터 이토록 유가족의 애를 태우는가?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우리들의 어린 자식들이 구조의 손길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수장되어갈 때, 다들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던 마음으로 돌아가자. 그 때 누가 좌우를 따졌고, 여야를 따졌고, 진보와 보수를 따졌는가? 그 수장되어가던 순간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던가? 구조의 손길을 펼치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할 골든 타임을 놓친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자책하고 분노를 했던가? 그 시간을 놓치고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었던가? 그 시간을 놓치고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여했고, 얼마나 많은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었는가? 그 시간을 놓치고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고통스러워했는가? 그 시간을 놓치고서 국민 경제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있는가? 그런데 다시 우리는 그 시간을 놓쳐 국민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역사에 오점을 남기고, 미래의 대한민국의 기틀을 흔들어 놓으려고 한다. 이 땅의 정치인들이여, 그리고 대통령이여. 당신들은 또 다시 그런 골든 타임을 놓치고, 외면하고, 무시함으로써 역사의 죄인이 되려 하는가? 국민은 더는 그런 어리석음을 보고 싶지 않다. 다시 한 번 호소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정략적으로 바라보지 마라. 역사의 눈을 의식하면서 조건없이 신속하게 처리하라. 그래서 더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라. 더는 국론을 분열시키지 마라. 더는 국민들이 이 고통 속에서 한 없이 좌절하지 않게 하라. 비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간절히 부탁한다. 부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고통을 생각하라. 부디 갈라진 국론을 하나로 합칠 것을 생각하라. 부디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라. 부디 역사의 눈을 생각하라. 정권은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유구하다는 것을 생각하라.

 

죽음에 대한 단상(斷想)-2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죽음에 대한 단상(斷想)-2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3.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질 이파리처럼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고 나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별로 다르지 않다. 모든 종교는 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사후 세계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는 데서 탄생한다. 모든 예술은 이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의식을 미학화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데서 탄생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는 철학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철학은 종교나 예술과 다르게 합리적 언어로 서술하고 논증하려 할 뿐이다. 고대 문헌들 가운데 이 죽음과 관련해 빼어난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플라톤의 『파이돈』이라는 작품이다. 초기 플라톤의 작품은 대부분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행적과 관련되어 있다. 청년들의 정신을 타락시키고 신을 모독한다는 죄로 고발을 당한 소크라테스가 법정으로 가다가 제사장 에우튀프론을 만난다.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고소하러 가는 그와 경건과 불경의 문제를 토론한 작품이 『에우튀프론』이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가 배심원인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자신의 행위를 변호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 『변명』이다. 빌어도 시원찮을 소크라테스는 도리어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당신들의 영혼을 살피라고 충고한다. 괘씸죄까지 더해져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갇힌다. 당시 감옥의 소크라테스는 바로 사형을 당하지는 않는다. 외국으로 나간 아테네의 배가 들어올 때까지 사형선고를 유예 받는다. 이때 돈 많은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인 크리톤이 소크라테스를 감옥에서 탈출시켜 외국으로 망명시키려고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벌인다. 여기서 잘못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이 『크리톤』이다. 그런데 사형을 받기 바로 전날 밤에 마지막으로 파이돈이 스승을 설득하러 들어갔다가 나눈 대화가 ‘죽음’에 관한 유명한 작품인 『파이돈』이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인간의 영혼이 무엇이고, 이 영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자못 날카로운 논증을 통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 이유가 아니라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몇 가지를 적어보자.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영혼과 육체는 본래 다른 존재이다. 정신과 육체를 별개로 보는 이원론의 시작이다. 영혼은 비물질적이고 단일하고 죽지 않는 것이다. 복합물이 아니기 때문에 나누어지지 않으며, 파괴되지도 않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도 않는다. 육체는 그 정반대이다. 육체는 물질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생멸을 반복한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등장하는 ‘에르(Er)의 신화’를 보면 영혼은 본래 이데아의 세계에 거주한다. 이 영혼이 이승으로 넘어오면서 망각(레테Lethe))의 강물을 마시면서 이데아의 세계의 기억을 상실하고 육체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플라톤을 거부하는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그를 패러디해서 정 반대로 표현한다. “영혼이 육체의 감옥이라고”. 육체의 감옥에 갇힌 영혼은 빠삐용처럼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그 때 도와주는 것이 철학이다. 때문에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이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다. 육체가 죽을 때 비로소 영혼은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본래 고향인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생각은 얼마나 기독교적인가? 이 철학의 수업을 받은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를 그리스에 전파하는데 어울린다고 본다. 아우구스투스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따라 ‘신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의 두 세계로 나누는 기독교의 역사철학을 정립한다. 기독교의 몸을 빌린 플라톤의 철학이 중세 천년을 지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감옥으로부터 탈출시키려고 온 파이돈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자신이 감옥을 나갈 수 없는 이유, 그리고 결연히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한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난 해방이고,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영원한 자유의 시작이다. 이보다 더 큰 확신이 있을까? 이처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탈옥을 시킨단 말인가? 몽매한 제자들은 그저 이 뛰어난 스승의 말에 설득당하고 감복할 뿐이다. 하지만 치밀하고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을 놓치지 말 일이다. “나도 그 세계를 직접 가본 것이 아니라 전해들은 것이네, 그래서 꼭 내 말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네…이렇게 믿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라 하겠으나, 그 모험은 아름다운 것일세”(플라톤, 『파이돈』) 그렇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직접 경험한 바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신화를 전달한 것이고, 다만 그 신화가 그럴 듯해서 그것이 옳다고 확신한 것이며, 이러한 확신이 강해질수록 더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모든 이야기, 신화와 설화, 종교와 이성의 논증 등은 다만 이러한 완벽한 무지에 기초해 있을 뿐이다. 그 세계는 우리가 경험한 것도 아니고, 합리적으로 논증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죽음뿐이겠는가? 영혼은 어떻고, 세계의 유무한성은 또 어떤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창조주라고 하는 신의 존재는 또 어떤가?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신 존재 증명을 둘러싸고 무수한 논쟁을 벌였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논쟁은 사상누각에 불가할 뿐이다. 근대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데카르트 조차 이런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쓴다. 사유하는 자아(코기토)를 새로운 세계의 원리로 정립했지만, 여전히 이 자아를 보증서줄 절대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 나온다. 신은 개념상 완전한 존재이고, 완전하기 때문에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의 ‘합리적 심리학’에서 제시한 신 존재 증명 비판은 그런 논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밝힌다. 관념 속의 백 탈러(당시 독일 화폐)와 실제 내 호주머니 속의 백 탈러는 다르다. 관념 속의 신은 현실 속의 신이 아니라고. 존재는 신이라는 완전성의 개념에 속하는 술어가 아니라고.

 

이런 오래된 형이상학적 문제들의 약점은 경험적으로 검증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학이 발달하고 실증주의적 세계관이 비등할 때, 형이상학의 존재는 끊임없이 위협을 당한다. 근대 경험론의 유명한 회의주의자는 신학과 형이상학에 관련된 모든 책들은 백해무익하므로 불쏘시개로나 쓰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먼 옛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철학의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자처한 20세기 비엔나 서클(Vienna Circle)의 논리실증주의자들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가지의 명제만이 있다. 하나는 의미 있는(meaningful) 명제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 없는(meaningless) 명제이다. 무엇이 의미 있는 명제인가? 경험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명제와 참과 거짓이 확실한 논리적인 명제가 그렇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다.”는 명제가 전자에 해당되고, “3*5=12”라는 명제는 후자에 해당된다. 전자는 참인 명제이고, 후자는 거짓 명제이다. 이와 다르게 경험적으로 검증도 안 되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명제는 무의미한 명제이다. 가치와 관련된 도덕 명제나 검증이 불가능한 영혼의 불사나 신의 존재와 같은 형이상학적 명제와 신학적 명제는 무의미한 명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명제들은 그저 ‘개소리’나 다름없이 무의미한 명제이다. 그들은 이런 ‘검증이론’(Verification theory)을 가지고 철학의 오랜 아포리아들을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철학은 이제 종언을 고해야 하는가? 철학은 그들의 도발적인 주장 이래로 더 이상 그런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가? 과학이 발달하면 영혼에 관한 오랜 갈증이 해소되고, 신에 관한 물음을 더는 하지 않는가? 이런 말만 덧붙이겠다. 비엔나 서클의 수장인 모리츠 슐릭은 강의를 하다가 학생의 권총을 맞아 죽고, 그 서클 멤버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고. 개를 오래 키워 본 경험으로는 개소리에도 미세한 변별이 있고, 그 차이에 무수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4. “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 도를 닦고 기다리겠노라.” 월명은 죽은 누이와 극락세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착한 누이가 선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극락왕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때문에 자신도 선한 삶을 살고자 도를 닦고,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죽음은 그냥 죽음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후의 세계에서의 보상과 징벌의 문제는 이승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죽음은 곧 삶의 문제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이는 받아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받는다는 사실의 문제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이 불공평하고 부 정의한 세상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그것은 사실 명제인가? 그것은 소망에 불과하지 않은가? 착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상을 받고, 나쁘게 사는 사람이 과연 벌을 받고 있는가? 하지만 잠시 눈을 돌려 세상을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보라. 과연 그런가고. 오히려 이기적이고 사람들을 이용하려 들고 나쁜 짓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도 누리고 그러지 않는가? 착한 사람들은 그저 멍청하게 당하기만 하고 어렵게 살고 있지 않는가? 이런 현실 속에서 착하게 살라고?

 

『사기열전』을 쓴 중국의 유명한 사마천은 그 책을 이런 물음으로 시작한다. “과연 하늘에 道가 있는가?” 백이와 숙제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수양산으로 들어간 충절의 정치인이다. 그들은 주나라의 무왕이 통치하는 곳에서 나는 어떤 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 결국은 굶어 죽었다. 양심과 절개를 지킨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하게도 굶어 죽은 것뿐이다. 반면 유명한 악인 도척은 온갖 악행을 일삼고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병장수까지 한다. 그는 사람의 생간을 매일같이 먹었다고 한다. 얼마나 악인이면 공자까지 그를 교화하러 들어갔다가 손을 내두르고 물러날 정도이다. 『장자』의 잡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물론 사실은 아니고, 다만 유가를 패러디하기 위해 노장(老莊) 쪽에서 만든 이야기이리라. 사마천은 선인과 악인을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과연 하늘에 도가 있는 가고 묻는다. 만일 도가 있다면 당연히 선인은 상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더 빈발하지 않는가? 그러니 다시 한 번 묻는다. 과연 하늘에 도가 있는가? 이런 물음을 던진 사마천의 내력이 있다. 그는 이릉(李陵) 장군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사건에서 이릉을 변호하다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남자로선 치명적인 거세의 궁형(宮刑)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다른 대신들처럼 비겁하게 이릉의 등에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솔직하게도 진실과 소신을 지킨 것이고, 그 대가는 너무도 비참했다. 그런 참담을 견디지 못해 자살까지 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그 억울함을 누대에 남은 명저 『사기』를 쓰는 일로 대신한 것이다. 때문에 그가 이 『사기열전』을 시작하면서 던진 물음은 너무나 절실한 윤리적 물음이다. “과연 하늘에 道가 있는가?” 과연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이것은 당위이고 요청이다. 적어도 선하게 살아야 한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오래 된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숱한 종교와 철학이 등장한다. 불교는 인과응보를 이야기한다. 선인선과고 악인악과라는 것이다. 선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고 한다. 금생의 복이 없다면, 그것은 전생에 나쁜 업을 지었기 때문이다. 내생의 복은 금생의 선업을 쌓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이 인과응보론이 교조화되면 현실 합리화의 논리로 변질될 수도 있다. 다 과거의 인연이고 업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여자로 태어난 것,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 가난한 것 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 극락과 연옥, 천국과 지옥은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도록 유도한다. 선한 자가 복을 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사후 세계의 심판을 이용한 징벌과 보상이다. 하지만 사후 세계나 심판자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그것은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한 타율적 강제이다. 이런 공포와 강제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행위란 단지 연민과 동정심으로 행하는 행동인가? 이런 감정을 갖고 선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루소나 흄과 같은 근대의 많은 계몽 사상가들은 이런 동정심을 통해 가난한 자와 병약한 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공리주의자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면 그것이 도덕적이고 선하다고 말한다. 행위의 동기와 상관없이 좋은 결과만 있으면 도덕적이며 선하다고 보는 것이다. ‘돼지의 쾌락’이라 비난 받는 면이 없지 않지만, 공리주의자들의 견해는 사회 정책적 차원에서 사회를 개량하고 개선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칸트는 이런 접근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무엇이 도덕적이고, 왜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짐승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길이다. 개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한 소를 도덕적이라고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동물들의 행위를 도덕적 행위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덕은 인간에게 고유한 행위가 아닐까? 인간의 행위 중에서 동물의 행위와 비슷한 행위를 제한다면 도덕적 행위가 남지 않을까? 무엇이 동물의 행위이고, 무엇이 인간의 행위인가? 애완동물을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동물도 감정이 있다. 어떤 때는 인간보다 더 정서적으로 반응을 잘 한다. 이런 감정은 항상 그 감정을 유발한 원인이 있다. 기쁘게 하는 것, 슬프게 하는 것, 화가 나게 하는 것, 사랑하게 하는 것 등 모두가 어떤 원인이 있어 그것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고, 그 각각에 대응하는 감정이 나타난다. 이런 감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감정은 원인과 결과의 고리에 갇혀 있다. 편의상 우리는 이것을 ‘~때문’(because of)의 산물이라고 하자. 인간은 항상 ~ 때문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지며, 동물도 그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칸트는 숭고한 도덕을 이런 동물적 감정에 정초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감정은 비루하고 비천하기 때문이다. 도덕은 자유로운 존재의 자유로운 행위에 기초해 있다. 타율적 강제나 외부의 공포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노예의 도덕일 뿐이다. 나중에 니체는 원한(르쌍티망) 감정으로 타자를 부정하는 행위를 ‘노예의 도덕’으로 보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고귀한 도덕을 ‘주인의 도덕’으로 본다. 그리스의 자유인들에게는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안에 목적을 갖는 행위가 정치적 실천(Praxis)이다. 정치는 자유인들만의 활동이다. 반면 타자를 위해 봉사하고 행위의 목적을 타자에게 두는 것은 비천한 여성이나 노예가 담당하는 노동(Arbeit)이다. 이점에서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은 자유의지를 가진 자의 덕목이다. 자유인의 도덕적 행위는 외부의 원인에 종속되거나 타율적 강제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 안에 행위의 동기를 가지는 행위이다. 편의상 이런 행위를 ‘~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행위라고 하자.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손해가 남에도 불구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착한 마음으로 착한 행동을 하는 것, 그것만이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자. 밤에 산을 넘던 사마리아 장사꾼은 강도의 피해를 입고 신음하는 사람을 만난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무섭고 떨리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갖는 두려움과 떨림은 모든 생명체의 자연스런 보호 본능이자 감정이다. 당연히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합리적(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산속에서 이런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 또한 똑 같은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강도는 주변에서 똑같이 노릴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서 감정적인 반응이나 이성적인 계산은 똑 같이 이유(~ 때문에)를 들어 빨리 도망가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사마리아 인의 착한 마음(선의지)은 이런 이유를 넘어선다. 그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강도를 당할 수 있다는 합리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부상당한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덕의 뿌리는 감성이나 이성이 아닌, 전사들의 용기와 같은 의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인간은 순응하는 인간이 아닌 용감한 인간이다. 그렇다. 도덕이란 이런 선의지에 기초해 있다. “이 세계에서 또는 도대체가 이 세계 밖에서까지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의지뿐이다.”(칸트, 『윤리형이상학기초』)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결과에 대한 고려나 계산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인간의 착한 마음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의지는 의무감이다. 의무란 무엇인가? 의무란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이며, 도덕은 이런 선의지에 기초해 있다. 마땅히 법칙에 따르는 행위, ‘마땅히 ~해야 한다’의 명령에 따르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 명령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타율적 명령이 아니다. 자유로운 인간 스스로 부여한 규범이자 명령, 곧 자기 입법이고 자율(autonorm)이다. 때문에 이런 도덕법칙을 따를 때 그는 비로소 자유롭다. 자유로운 인격의 왕국에 거주하는 인간이 따르는 보편적 도덕 법칙이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이다. “마치 너의 행위의 (주관적) 준칙(maxim)이 너의 의지를 통해서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 하라.” “너의 인격에 있어서나 어떤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나 인격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취급하고, 단지 수단으로서 만은 결코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 하라.”(칸트, 『실천이성비판』)

 

이런 칸트의 생각이 너무 추상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려 하다 보면 늘 손해를 볼 뿐이고, 결국 선인보다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칸트는 결과의 유 불리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인간이므로,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우리가 선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이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땅히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적 행동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의지의 선택은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무수히 많은 이유와 유혹에도 불구하고, 또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이루어지는 힘든 인간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도덕적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힘든 선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무리치는 예수처럼, 오직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왕궁의 호사로운 삶을 박차고 나간 석가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 공자처럼 사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그렇지 않다. 마땅히 도덕 법칙에 따라 살아가려는 인간은 이미 성인의 반열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가 아니다. 인간은 소가 아니다. 인간은 이미 성인(聖人)이다. 이런 성인을 어떻게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겠는가?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우리는 이런 인간들의 ‘목적의 왕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종교는 이런 인간들 속에 감추어진 신성(神聖)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당신이 이미 부처라고, 인간이 곧 하늘이라고.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떠한가? 그 세계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어떠한가? 그 세계에서 목적으로 대접받는가, 혹은 수단과 소모품으로 취급되는가?

 

죽음은 모든 것을 무화하는 절대 부정이다. 그래서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럽고, 모든 것과 단절되는 두려움이다. 이 생사의 문제 앞에서는 다른 어떤 문제도 가볍다. 부귀와 권력도 이 앞에서는 한 없이 무력해진다. 성서의 온갖 이야기, 팔만 사천의 법문조차 이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낱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 인간 문명이 쌓아 올린 온갖 지식과 기술, 그리고 과학조차 이 절대 부정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죽음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생각의 극단으로 끌고 간다. 죽음은 삶의 무게조차 사소하게 만든다. 죽음 앞에 서면 우리는 삶을 더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다. 과연 어떤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생각한 죽음에 대한 단상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읽어보자. 어떻게 다가오는가?

 

生死路隱 죽고 사는 길이

예 이샤매 저히고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나는 가나다 말도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니르고 가나닛고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라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닙다이 이리저리 떨어질 잎처럼

한 가재 나고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논 곧 모다온뎌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으 彌陀刹애 맛보올 내 아아! 극락에서 만날 나는

道 닷가 기드리고다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끝>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를 시작합니다[ⓔ시대와철학 알림]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를 기획하며

 

 

4기 연구협력위원회 학술 1부에서 연락드립니다. 금번 2014년 2학기부터 월례발표회를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운영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까지 월례발표회는 전문적인 논문 발표 형식을 취해 왔는데요, 그 덕분에 오랜 기간 동안 한철연 회원 간의 깊이 있는 학술 교류를 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철연이 여타 전공 학회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서 새로운 월례발표회 형식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하는데 고민이 모아졌습니다. 한철연은 단일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인 여느 학회와 다르게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모임이다 보니, 전문적인 논문 발표 형식을 갖는 기존 월례발표회가 회원들 간의 학술 교류를 활발하게 하기에 제한이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번 2학기에는 독서토론 모임의 형식을 취하는 월례발표회를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방식은 추후에 진행하면서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우선은 하나의 책을 정하고, 그에 대한 발제자를 정해서 독서 토론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모임의 이름은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로 정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 주신 연구위 부장님들께 감사드립니다.

<8월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발표자 : 조은평(건국대 외래교수)
철학자의 서재 :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일 시 : 2014년 8월 20일(수) 오후 3시 ~ 5시 30분
장 소 : 태복빌딩 302호 한철연 강의실

무지한스승

 

 

 

 

 
<무지한 스승>(자크 랑시에르 지음, 궁리 펴냄)

[프레시안]에 게재되었던 발표자의 서평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5218

8월 이후 일정
* 9월 19일(금) 김우철 선생님,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10월 24일(금) 진은영 선생님, 8월 진은영 신간 『문학의 아토포스』
*11월 21일(금) 강경표 선생님, 장하석의 『온도계의 철학』
*12월 한철연 정기 학술대회 관계로 월례발표회는 다음 달로 순연

● 2학기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시작 시간은 저녁 7시 30분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다루었으면 하는 책이나 주제가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yhseo2001@hanmail.net

학술 1부 드림

 

놀이의 해방적 본질: 나는 왜 밤새 놀아도 또 놀고 싶은가? <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4

놀이의 해방적 본질:?나는 왜 밤새 놀아도 또 놀고 싶은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4

 

강경표(중앙대)

 

1.?피로사회?-?우리에겐 박카스뿐인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밥을 먹고,소파에 눕는다.?마누라 눈치가 없을라치면 발도 안닦는다.?리모컨을 찾아 뉴스를 틀고 뒹굴뒹굴하다 잠이 들 때도 많다.?총각 때는 술자리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드물다.?아니 사실 두렵다.?속된 말로,?체력이 달린다.

“철학은 사소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대학 첫 강의 때 들었다.?그리고 지금은 그 말을 학생들에게 되풀이하고 있다.?과연 그럴까??반문해 본다.?미안하다!?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했다.?철학은 사소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할 수는 있다.?그러나 시작뿐이다.?사유의 치열함 속으로 한 걸음 내딛는 그 순간부터 철학자의 치밀한 사유를 따라가는 과정이 나도 버겁다.?그래서일까? “피곤하다”는 말을 할 때가 많다.?특히 마누라한테.

값이 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무실을 방문할 때 피로회복제를 사가는 경우가 많다.?그 피로회복제에는?“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의 피로를 알고 있다”는 묵시론이 깔려 있다.?무엇 때문에 당신이 피곤한지는 모른다.?중요한 것은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한병철은『피로사회』에서 그것을?“성과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기”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괜찮아~?잘 될거야~”라는 노랫말처럼?‘긍정성의 과잉’?이 강요되고 강도 높은 자기 관리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사노라면,?만성적으로 피곤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가 인간의 본질이라 믿으며 살아간다.?게으름에는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고,?성실함은 당연시 한다.?당신의 성실함에 박카스를 권한다.?당신의 성실함에 보내는 작은 찬사다.?그러나 디오니소스(Dionysos)1)는 도취와 광기,?그리고 술이다.?회식 자리가 광란으로 치닫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필요한 이유다.?밤새 놀아도 더 놀고 싶다.?놀이(play)가 인간만의 본질이기 때문일까??아니다!?놀이가 삶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5-1-1

 

2.?놀이를 잊은,?그래서 동물만도 못한 삶

시간을 돌려보자.?당신이 성실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재미가 있어서 성실하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바로 어린시절-노는게 생활이었던 때였다.?노동과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놀이가 곧 노동이고 놀다보니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다음날도,?그 다음날도 놀면 됐다.?그것으로 족했다.?사실 당신은 놀이(play)로부터 성실함을 배우고 끈기도 길렀다.?그러나 이젠 어른이다.?놀면 안 된다.?놀면 백수고,?낙오자,?루저일 뿐이다.?간혹 놀기만 해도 되는 사람이 있긴 하다.?돈이 많은 경우에는 놀아도 된다.?그러니 대부분의 어른들은 놀 수가 없다.

놀이를 인간만의 본질로 규정한 사람들도 있다.?바로 호모루덴스(Homo Ludens)다.?그러나 우리 주변에 호모루덴스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사실 놀이가 인간만의 본질이라는 것도 틀린 것이다.?동물도 놀기 때문이다.?동물의 놀이와 인간의 놀이가 차이가 있다면,?동물은 커서도 잘 놀지만 인간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인간이 놀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로 한정된다. 그마저도 어른보다 더 바쁜 요즘 아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노는 것을 잊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다.?놀이를 망각하라!?당신이 꿈꿔야 하는 것은 집,?자동차,?재테크뿐이다.?길어진 수명에 대비해야 하며,?노동하는 육체를 위해 건강을 챙겨야 한다.?당신이 정규직이라면 정년을 향해 달리면 되고,?비정규직이라면 정년을 찾아 달려가면 된다.?그렇게?65세까지는 놀지 말고 살아야 한다.?그러나 이런 삶의 지속은,?놀아야 할 때 놀이를 망각했기 때문에 순간순간 당혹스러운 문제로 다가온다.?당신은 아이처럼 노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아이와 놀아줄 수 없다.?나이가 들어 노동시장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면 어떨까??놀면서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우리도 노는 법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최소한 노동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3.?노동?Vs?노동

고전에서 노동과 관련한 글귀를 찾아보자.?일반적으로 노동은 기피의 대상이지만 기원전?7세기 헤시오도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하지 않으면서 사는 사람은 일벌이 모은 꿀을 먹기만 하며 그 수고를 착취하는 꼬리 뭉툭한 게으른 수벌과 기질이 같다.?이런 사람은 신도 인간도 인정하지 않는다.?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을 적당한 순서에 따라 받아들여 제철에 나는 곡식으로 곳간을 가득 채워야 한다.?사람은 노동을 통해 번식하고 부유해진다.?신들이 보기에도 일하는 사람이 더욱 사랑스럽다.?노동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지만,?노동하지 않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다.?일하는 사람은 부를 차지해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헤시오도스『노동과 나날』中-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만약 내가 철학하는(philosophieren)?일을 한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비웃을 것이다.?내가 생각해도 우습다.?전문적으로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그런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다른 질문을 해보자.?구걸은 노동일까??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그러나 조지 오웰은 생각이 달랐다.

거지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하지만 대체 노동이 뭘까??인부는 곡괭이를 휘두르며 일한다.?거지는 화창한 날씨에나,?궂은 날씨에나,?하지정맥이 툭툭 불거져 나와도,?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려도 문밖에서 일한다.?구걸도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노동이다.?물론 무익하기는 하지만 그럴싸한 노동 중에도 무익한 활동은 많다.?……?현실적으로 보면 거지는 수중에 들어오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느 사업가와 다르지 않다.?거지는 대부분의 현대인에 못지않게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단지 부자가 될 수 없는 노동을 선택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다.

-조지 오웰『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中-

철학하는 것도 노동이다.?누군가는?‘잡다한 생각을 하는 것이 무슨 일인가 놀이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사실 철학자들이 치밀하게 생각을 탐구하는 것은 꽤나 머리 아픈 일이면서도 부자가 될 수 없는 노동 중 하나일 뿐이다.

 

4.?놀면서 일할 수 있는 회사 그러나 사실은 놀이 착취

놀면서 일하는 회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델의 회사들이 있다.?미국의 구글이 그렇고,?한국에도 제니퍼소프트가 그렇다.?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회사를 부러워한다.?최소한 노동시간만이라도?35시간으로 줄어든다면,?야근만 없다면,?주말 근무만 없다면,?우리는 더 놀 수 있지 않을까?

부러움을 뒤로 하고,?잠시 고민을 해보자.?대량생산체제에서 우리는 항상 노동 착취를 당해왔다.?지금은 금융자본과 함께 신용을 착취당하고 있다. 당신은 신용을 담보로 학자금 융자를 받았고,?전세자금 융자를 받았다.?그리고 당신은 그 신용을 지키기 위해 다시 당신의 노동을 팔고 있다.?놀면서 일하는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구글과 같은 회사는 새로운 착취의 유형을 보여줄 뿐이다.?놀면서 일한다는 회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칸트는?“놀이가 상상력의 바탕”이라고 말한바 있다.?놀이는 상상력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당신에게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원하기에 놀이(play)를 권할 뿐이다.?지금은 구글과 같은 회사가 적기 때문에 놀면서 일하는 것이 부러워 보일 수 있다.?놀이와 일을 병행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꿈의 직장이라고 불릴 수 있다.?그러나 많은 회사가 구글과 같은 형태가 된다면 놀이 착취도 본격화될 것이다.

 

5.?놀이의 해방적 본질 그리고?『에코토피아 뉴스』

놀이란 무엇인가??놀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하고 놀이를 정의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놀이를 연구하고 정의한다고 해서 놀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놀이는 현상으로 나타날 뿐이다.또한 감정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우리가 놀이를 통해 얻는 것은 즐거움이며,?때로는 그 즐거움에서 해방감을 느낀다.?나는 놀이의 본질은 놀이의 무목적성에 있다고 생각한다.?놀이에는 목적이 없다.?단지 즐거우면 된다.목적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합리적·?논리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놀이는 촘촘하게 짜인 이성의 그물을 벗어나게 해준다.?그 그물에서 벗어날 때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도 반짝하고 빛나는 게 아닐까?

문제는 놀이를 우리의 삶으로 어떻게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가에 있다.?우리가 놀이를 삶에 두는 방식은 취미생활이다.?이런 방식의 놀이가?‘불금’을 즐기는 것보다 좀 더 건전해 보일 수는 있다.?그러나 이것도 결국 노동을 위한 활력을 재생산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나도 이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일과 놀이와 삶이 하나가 되는 시대를 살 수 있을까??희망을 품으면서도 아직은 절망적이다.『에코토피아 뉴스』의 글귀로 이 감정을 대신한다.

“아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당신은 우리와 함께일 수 없습니다.?당신은 전적으로 과거의 불행한 시대에 속하므로 우리의 행복조차 당신을 지치게 만들 겁니다.?다시 돌아가세요.”

-윌리엄 모리스『에코토피아 뉴스』中-

 

-주석-

1) ?디오니소스를 로마 신화에서는 바카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