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김영오 선생의 단식을 반대하는가?”[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나는 왜 김영오 선생의 단식을 반대하는가?”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오히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유민의 아빠 김영오 선생만 37일이라는 초인적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듯하다. 그이의 얼굴, 그이의 눈빛을 바라 볼 때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어떤 숭고함의 비극을 느낀다. 그는 법제정이 이루어지 지지 않는 한 죽음도 불사하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오늘 여야는 재협상을 통해 다시 합의안을 끌어냈다. 지난 번 합의안에 비해 특별히 주목할 사항은 1-1. 항목이다. 즉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 중 국회에서 추천하는 4명 중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

 

사진-민중의 소리

사진-민중의 소리

이 합의안에 대해 김영오 선생을 위시한 유가족들은 당장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유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정국은 다시 화해와 타협이 불가능한 파국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김영오 선생도 목숨을 거는 단식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과 유가족들의 반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단식을 지지할 수도 없고 허용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예민한 정국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 제시하는 몇 가지의 이유는 내가 충심으로 제시하는 것들이다.

 

첫째로, 선생의 뜻은 숭고하지만 생명까지 파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자는 법을 죽음을 담보로 만들 수 없다. 선생의 결연한 입법 의지는 지금까지의 단식으로도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에게는 죽은 딸만이 아니라, 앞으로 잘 키워야 할 딸도 있다. 그 딸에게는 언니가 죽은 것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아빠의 똑같은 모습을 대한다면 그것은 도저히 부모로서 보여줄 모습이 아니다. 아빠의 그런 행동은 진정성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가족이라는 큰 인륜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 개인의 목숨이 이 사회의 미래를 다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져도 안 된다. 세상의 질서는 개인의 진정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단식은 도저히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약자가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표현하는 마지막 수단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불사하고 생명을 내 던지는 수단이 된다면 더 큰 인륜을 파괴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인륜적 질서가 있다. 이 인륜적 질서가 파괴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는가? 개인의 진정성은 새로운 독단일 수 있고, 광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특별법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특별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입법이 되어도 그 법에 따라 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조사를 하느냐가 있고, 조사의 결과를 가지고 법원에서 다툴 때도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 모른다. 또 그 판단의 결과를 가지고 실행에 옮길 때도 수많은 방해와 공작이 있을 것이다. 싸움은 특별법 하나로 단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첫 단추 하나에 모든 것을, 특히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걸 수는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장소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 때마다 성숙한 국민의 비판 정신으로 장애물을 관철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특별법이 만능열쇠인 양 여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지나치게 법을 물신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파 간에 타협을 해야 할 때이다.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두 번째 합의안이 나왔다. 정치는 타협이고, 법은 그 타협의 산물이다. 이미 협상에 들어갈 때부터 성역 없는 수사권이 아닌 특검추천권을 쟁점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는 합의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 정도의 문제로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할 수는 없다.

 

셋째, 법은 도덕이나 종교가 아니다. 도덕과 종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절대 선을 취하는 근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법은 정치 세력 간에 타협할 수밖에 없고 차선책일 수밖에 없다. 국가는 이런 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체제이다. 아무리 숭고한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한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특별법이 유가족들의 뜻에 못 미친다고 하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의지와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것은 유가족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야권의 정치적 역량의 한계이고, 세력이 불리한 탓이다. 그것은 입으로만 비판을 외칠 뿐 실질적인 변화의 역량 구체에는 관심 없는 이 땅의 양심 세력들의 한계 탓이다. 이런 부족한 역량과 불리한 세를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독단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민주주의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법은 그 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지의 산물이다. 특별법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의지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은 도덕이나 종교처럼 최선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의 입법을 원하면서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의 정신을 보인다면, 그것은 이 나라를 도덕 국가, 신정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순결한 도덕과 종교의 정신이 잠시 우리 정신을 위안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법을 제치고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최종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그 법은 정치 세력들 간에 타협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길래 어떤 철학자는 그 시대의 법은 그 시대의 국민의 정신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야 간의 합의안에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와 새정련 내부에서도 다시 반발이 크다고 한다. 유족들의 반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는 유가족들을 세월호 정국의 최전선으로 내밀어서는 안 된다. 그이의 끝없는 단식을 볼모로 현 정세에서 이룰 수 없는 조건을 더는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죽음을 불사한 단식을 영웅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나쁜 것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새정련 내부에서 타협안을 거부하는 의원들의 비겁함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당신들의 무능함으로 현실 정치의 주도권도 내주고, 세월호 정국도 지지부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풀어야 할 것을 풀지 못한 탓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볼모로 잡힌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진정으로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전에 의원직 총사퇴를 하라. 그 길만이 실종된 정치를 되살리고, 벼랑 끝에 선 유가족들을 살리는 것이다. 이제는 도덕과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나서야 할 때이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단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모아진다. 이 세계 안에, 그리고 이 세계 밖에서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내 던지는 순간, 이 사회는 더 위험한 나락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부디 이제 그만 단식을 중단해주길 바란다. 선생의 숭고한 뜻을 가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니체 : 초인의 삶, 범인의 삶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6

니체 : 초인의 삶, 범인의 삶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6

연효숙(연세대)

 

 

1. 니체는 누구인가?

1) 니체, 망치를 든 해체의 철학자

망치를 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니체를 떠올릴 때 우리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되는 말이다. 망치를 든 철학자는 망치를 갖고 무엇을 부수어 버리려고 했을까? 소크라테스 이래 면면히 내려 온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 권위의 위엄으로 무장된 전통 도덕, 구원을 약속한 기독교의 교리 등이 니체가 무너뜨리려고 했던 것일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이미지는 굉장히 파격적이고 과격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권위와 위엄의 허황된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니체는 앞서 간 선구자요 해방자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전통 철학의 중심적인 가치와 권위에 도전하고 해체하려고 했던 니체는 서양 근대까지의 전통 철학의 문을 닫고, 새로운 현대를 열고자 했던 개척자이다.

니체는 1844년 프로이센 제국(지금의 독일)의 뢰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루터파 목사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그는 어머니, 누이 동생, 할머니 등 여성들에 둘러 싸여 성장했다. 나움부르크에서 김나지움을 다닌 후, 1858년 프로테스탄트 학교인 슐포르타에서 고전학, 종교, 독일 문학 등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이 때의 교육이 그의 그리스 이해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1864년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으나 오래다니지 못하고, 고전학과 문헌학에 뛰어난 라이프치히 대학의 리츨 교수 아래로 들어가 학업을 진행하였다. 라이프치히에 머물면서 니체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책을 발견하고 큰 충격과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니체는 이 기간 동안에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인 바그너의 음악에도 심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바그너와의 끈질긴 인연이 생겨나게 되었다.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 문학학 교수 자리가 비었을 때, 니체는 리츨 교수의 강력한 추천으로 박사학위를 가지지 않은 채, 26세에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어 및 고전 문학 원외 교수로 위촉되었고, 1년 후 27세에 바젤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이후 라이프치히 대학은 그간 니체가 쓴 몇몇의 뛰어난 논문 등의 학문적 업적을 고려하여 박사학위 취득 시험도 부과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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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질병과 치유의 철학자

바젤 대학에 재직하면서 니체가 펴낸 최초의 저서인 [비극의 탄생(음악의 정신으로부터 의)](1871년)에서부터 그의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1878년부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저술하기 시작한 니체는 1879년 무렵 건강이 악화되고 대학의 임무에 염증을 느끼게 되어, 34세의 나이에 대학을 사직했다. 그 이후 니체는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의 휴양지 등을 방랑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니체는 이 방랑 기간에도 여러가지 질병으로 시달렸으며, 지독히 외롭고도 고독한 생활 속에서 병마에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와중에도 니체는 쉬지 않고 여러 책을 서술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저들이 거의 이 기간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들이 [아침놀],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 등이다.

1888년, 여러가지 질병으로 계속 시달림을 받아 오던 니체는 잠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자?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속도로 여러 권의 책을 연이어 써 냈다.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니체 대 바그너], [이 사람을 보라] 등의 명저들이 이 기간에 쓰여진 책이다. 니체는 1년 후인 188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의 거리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 오는 마차의 말을 붙들고 니체가 탄식을 했다는 유명한 장면이 바로 이 순간이다. 그는 바젤의 정신 병원에 보내졌고, 1900년 56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어머니와 누이 동생인 엘리자베스의 간호를 받았으며 11년간 거의 회복 불가능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였다.

니체의 생애 중 그가 시달린 병마와 관련하여 그를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 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자크 로제는 [니체 신드롬]에서 니체가 평생에 걸쳐 앓아 왔던 병력들을 추적하고 있다. 니체는 지독한 근시였으며 늘상 편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유럽의 여러 휴양지들을 돌면서 글을 썼던 니체에게 편두통은 그의 작업을 여지없이 중단시킨 불청객이었다. 게다가 니체는 여러가지 만성적 정신 장애에 시달려, 조울증, 뇌연화증으로 고통을 받아 왔다고 한다. 그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책들을 써 낸 니체의 자신의 병을 초극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의 힘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2.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1) 니체 사상의 형성 가운데 [차라투스트라]가 차지하는 위치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이는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1889)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년), (이하 [차라투스트라]로 약칭)의 저서에 부친 부제이다. 이 책은 그만큼 니체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면서도 또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 책이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쓰여진 두 권의 책, [아침놀](1881), [즐거운 학문](1882)을 같이 참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책을 읽어 보면 [차라투스트라]가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예언서인가? 잠언인가? 철학책인가? 우리는 니체! 하면 [차라투스트라] 이 책을 쉽게 떠올릴 만큼 이 책과 니체는 밀착되어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여느 철학서와는 다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고 이 각각에 20개 정도의 독립된 이야기가 있고, 앞에 10개 단락으로 된 긴 머리말이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주제가 망라되어 있으며, 전혀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인 철학책과도 거리가 있다.

2) [차라투스트라]의 탄생 배경

[차라투스트라]가 쓰여지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은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 스스로가 밝힌 내용이다. “이제 나는 차라투스트라의 내력을 이야기하겠다. 이 책의 근본 사상인 영원회귀 사유라는 그 도달될 수 있는 긍정 형식은 – 1881년 8월의 것이다 : 그것은 ‘인간과 시간의 6천 피트 저편’이라고 서명된 채 종이 한 장에 휘갈겨졌다.” 니체는 실바프라나 호수의 숲을 걷고 있었는데, 그 근처에 피라미드 모습으로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 옆에 니체는 멈춰 섰으며,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마치 번개에 맞은 듯이 이 책은 번뜩이는 영감을 받으며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 니체는 이렇게 썼다. “그 때의 오전 오후의 두 산책길에서 [차라투스트라] 1부 전체가 떠올랐다. 특히 차라투스트라 자신이 하나의 유형으로서 떠올랐다 : 정확히는 그가 나를 엄습했다…..” 이 얼마나 극적인가? 니체를 엄습한 차라투스트라, 왜 차라투스트라는 니체를 찾아 왔을까.

이 책의 등장 인물이자 주인공은 물론 단연 차라투스트라이다. 그는 10년간 산 속에서 명상을 마치고 새로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내려 온다. 이는 마치 예수가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갈릴리 호수로 구도자의 길을 떠난 후 40일 간의 명상을 거친 후 다시 돌아 오는 장면과 겹치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유사성은 중요하지 않다. 차라투스트라가 니체를 왜 찾아 왔는지, 그는 누구인지, 우리에게 무엇을 설파하려고 왔는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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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신의 죽음이 선고된 것일까?

1) “신은 죽었다”의 의미는?

우리가 니체에게서 또 하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신은 죽었다!” 이 말의 출처 역시 [차라투스트라]에 있다. 왜 신은 죽었으며, 이 신은 누구인가? 왜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하는 것일까? 이 신은 분명 서양인들이 우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기독교의 신이기도 하고, 서구 형이상학의 진리의 이름을 지닌 표상이기도 하다. 이 신은 이제 니체가 살았던 근대 말, 서양 문명의 위기에 더 이상 의미의 지표가 되지 못한다. 아니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서도 니체는 이러한 낡은 가치의 표상의 중심에 있는 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우리의 창조 의지를 꺾는 신을 일종의 억측으로 생각하고 신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서도 죽어야 함을 말한다. “신은 일종의 억측이다. 나는 이 억측이 너희의 창조 의지를 뛰어 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0쪽)

“신은 올곧은 것 모두를 왜곡하고, 서 있는 것 모두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일종의 이념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유일자, 완전자, 부동자, 충족자 그리고 불멸자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 모두를 나는 악이라고 부르며 인간 적대적이라고 부른다.”([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1-142쪽)

2) 영원회귀의 사상

[차라투스트라] 이 책의 핵심 사상은 그가 자신의 저서 [이 사람을 보라]에서 밝혔듯이, ‘영원회귀의 사상’이다.? 이 영원회귀란 무엇을 뜻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삶은 계속 반복해서 살아져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 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가 다시 찾아 올 것이다.”([이 사람을 보라], 341)

폴란드계 프랑스인으로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클로소프스키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관련한 매우 독창적이고도 희귀한 해석을 담은 [니체와 악순환]을 썼다. 클로소프스키는 왜 제목에 ‘악순환’을 넣은 것일까? 클로소프스키는 니체의 영원회귀에서의 반복은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 항상 다른 것을 가져 오는 순환이라는 맥락에서 ‘악순환’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 현대인의 삶은 흔히 다람쥐쳇바퀴 도는 삶이라 비유되고 그날이 그날인 시큰둥한 날들의 연속이라면, 니체는 우리에게 이러한 낡은 삶을 버리고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반복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4. 위버멘쉬(초인)1)란 누구인가?

1) 정신의 세가지 변신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제1부에서 ‘세 변화에 대하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차라투스트라], 세 변화에 대하여, 38쪽) 여기서 정신의 세 변신, 즉 낙타, 사자, 어린아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낙타는 스스로가 삶을 견뎌야 할 고통으로 생각하고, ‘삶은 고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착하면서도 인내심이 많은 동물이다. “짐깨나 지는 정신(낙타)은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짊어진다.” 그러나 이 낙타로 정신은 만족할 수 없다. 정신은 다른 변신을 꾀한다. 정신은 사자로 변한다. 사자가 된다는 것은 정신이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이 사자는 자신이 섬겨온 주인을 찾아 나서며, 마지막 신에게 대적하려 하여, 신의 한 형태인 용과 일전을 벌인다. 마땅히 해야 함을 할 줄 알고, 창조된 모든 가치를 아는 사자,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를 강탈하는 사자가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자는 어린 아이의 순진 무구와 망각을 알지 못한다.

“어린 아이는 순진 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공경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차라투스트라], 세 변화에 대하여, 40쪽)

그래서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나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노라.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41쪽) 이렇게 정신의 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초인이 되기 위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2)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

왜 신이 죽었다고 차라투스트라는 외쳤는가? 이는 낡은 형이상학적 가치와 도덕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자가 차라투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선하다는 자와 정의롭다는 자들을 조심하라! 그런 자들은 자기 자신의 덕을 창안해 내는 사람들을 즐겨 십자가에 못박아 처단한다. 홀로 있는 자들을 저들은 증오한다.”([차라투스트라],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105쪽) 이러한 위선자들이 지닌 덕에 대해 차라투스트라는 경멸을 보내고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것을 외친다. “고독한 자여, 너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며, 그 때문에 너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그 같은 경멸을. 사랑하는 자는 창조하려 한다. 경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경멸할 까닭이 없었던 자가 어찌 사랑을 알겠는가! …. 형제여, 눈물로 간청하노니 너의 고독 속으로 물러서라. 나는 자기 자신을 뛰어 넘어 창조하려 하며, 그 때문에 파멸의 길을 가는 자를 사랑한다.(106-107쪽)

니체는 우리의 창조 의지를 억누르는 신이 일종의 억측임을 강조하고, 신에 앞서 위버멘쉬를 창조해 낼 것을 말한다. “너희가 세계라고 불러온 것, 그것도 너희에 의해 먼저 창조되어야 한다. 너희의 이성, 너희의 이미지, 너희의 의지, 너희의 사랑이 세계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정, 너희의 행복을 위해, 깨친 자들이여!”([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1쪽)

왜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부르는가? 기존 가치, 우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이 우상 파괴를 서슴치 않는 사람이 바로 니체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의 불과 같은 창조 의지는 언제나 새롭게 나를 사람들에게로 내몬다. 망치를 돌로 내모는 것이다. 아 너희, 사람들이여. 돌 속에 하나의 형상이, 내 머리 속에 있는 많은 형상 가운데 으뜸가는 형상이 잠자고 있구나! 아, 그 형상이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보기 흉한 돌 속에 갇혀 잠이나 자야 하다니! 이제 나의 망치는 저 형상을 가두어두고 있는 감옥을 잔인하게 때려 부순다. 돌에서 파편이 흩날리고 있다. 무슨 상관인가”([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3쪽)

3) 삶을 사랑하는 자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역설한다. [차라투스트라]에서 나타나는 생명과 삶을 소중히 하는 태도는 이 책의 준비격이기도 한 [즐거운 학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생의 한가운데서 – 아니다! 삶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나는 삶이 더 참되고, 더 열망할 가치가 있고, 더 비밀로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위대한 해방자가 내게 찾아온 그날 이후로! ….”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삶을 아름답게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니체는 삶에 대한 사랑을 ‘운명애’(amor fati)라고 불렀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창조하는 자가 있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 하며, 많은 변신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허다하게 있어야 한다.”([차라투스트라], 행복한 섬에서, 142쪽) 창조하는 삶을 위해 고통을 겪는 자. 우리는 이러한 위버멘쉬가 될 수 있을까? 또 우리 시대는 위버멘쉬를 진정 필요로 하는가? 혹은 나는 위버멘쉬가 되고자 하는가? 위버멘쉬가 될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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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인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1) 건강한 삶, 병든 삶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강에 유독 집착이 심한 현대인들에게 니체가 들려 주는 건강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니체는 건강([즐거운 학문], 5부 마지막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위대한 건강-우리 새로운 자, 이름없는 자, 이해하기 어려운 자,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미래의 조산아인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목적을 위해 하나의 새로운 수단을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건강을, 이전의 어떤 건강보다도 더 강하고 더 능란하고 더 질기며 더 대담하고 더 유쾌한 건강을 필요로 한다.” 무슨 뜻일까? 건강은 니체가 늘 소중히 생각하는 생명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 건강을 니체는 위대한 건강으로 말하고 있다. 위대한 건강이란, 건강을 막연히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 지속적으로 획득하고 계속 획득해야만 하는 것으로 니체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위대한 건강이란 ‘영원회귀의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왜 그런 것일까? 보통 사람들은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죽어 사라지노라, 한순간에 나 무로 돌아가리라. 영혼이란 것도 신체와 마찬가지로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니.’ 그대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러나 나를 얽어 매고 있는 원인의 매듭은 다시 돌아오리라. 돌아와 다시 나를 창조하리라! 나 자신이 영원한 회귀의 여러 원인에 속해 있으니. … 나는 더없이 큰 것에서나 더없이 작은 것에서나 같은, 그리고 동일한 생명으로 영원히 돌아 오는 것이다. 또다시 만물의 영원한 회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말이다.:([차라투스트라],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366쪽)

니체가 말하는 건강은 어떤 하나의 기준에 매어 있는 건강함의 표준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건강 상태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을 찾는 것,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건강’이다. 영원회귀라는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건강을 찾는다는 것은 ‘인간적인 것’으로 규정된 하나의 정체성으로부터 떠나서, 그 ‘떠남’을 통해 새로운 건강의 신체를 얻는 것을 말한다.

2) 정신보다 신체의 본성을 아는 삶

우리의 삶 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신체를 천시하고 정신의 우월성을 믿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얘기가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신체를 경멸하고 정신력을 믿는 것은 정신과 신체의 본성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혹은 정신/신체의 이분법적 사유의 극단적인 폐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반성적으로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양 사상의 오랜 전통 속에서 볼 때,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델포이의 신전의 경구인 ‘너자신을 알라’에서 따 온 로고스의 강조, 즉 이성의 힘을 실어 주는 전통은 그 이래로 굉장히 불균형적인 전통을 형성해 왔다고 비판한다. 즉 이성의 각성을 통해 신체의 힘과 생명력은 망각되고 억압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신체는 이성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무력한 근육 덩어리란 말인가. 우리는 신체를 너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나 나의 말을 하련다. …. ‘나는 신체이자 영혼이다’라는 어린이의 말을 전한다” 니체가 보기에 사람들은 어린이보다도 더 신체와 영혼의 본성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깨어난 자, 깨달은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 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차라투스트라],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51쪽)라고 말한다. 이러한 니체의 신체와 영혼의 본성에 대한 언급은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 사상의 정신과 영혼, 이성 우위의 오래된 전통을 획기적으로 뒤집는 말이다. 우리는 신체가 정신에 마치 딸려 있는 부속물인 것처럼 생각해 왔던 것인데, 니체가 보기에 이것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 오히려, “신체가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 떼이자 목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 차라투스트라가 던진 말을 들어 보면 분명히 이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이여, 너희는 너희가 저지르는 어리석음과 너희가 하는 경멸에서조차 이렇듯 너희의 자기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들의 자기, 그가 스스로 죽기를 원하여 생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차라투스트라],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53쪽). 그렇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는 신체에 생명의 힘이 있다는 것을, 신체의 일부분이 작은 이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자신의 생명을 몰락시키는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몰락시킴으로서, 이성과 정신의 우위를 고집하는 자는 더이상 자신의 이성을 뛰어 넘어 새로운 창조를 할 수가 없고, 위버멘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3) 위버멘쉬의 삶이란?

그렇다면 위버멘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해야 위버멘쉬가 될 것인가. 니체는 앞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이 사자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렇다. 니체에게는 어린아이의 삶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가치를 보았다. 이제 더 이상 얽매이는 규범적 삶이 얼마나 무상한가를 우리는 본다. 유희를 즐길 줄 알고 규범에 목매지 않는 삶은 마치 주사위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를 연상시킨다. 삶에는 어떤 규약과 도덕이 있는 필연성이 없다고 니체는 역설한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선언한다. “신은 죽었노라”고. 그리고 또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항해 이렇게 말한다.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차라투스트라], 16-17쪽) 나는 사람인 나를 극복하고, 나를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이 새롭게 창조된 자가 위버멘쉬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하길, “보라,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이 대지의 뜻이다. 너희 의지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다. 새로운 생명이기도 한 대지의 뜻에 충실할 때 위버멘쉬가 된다.

이 위버멘쉬의 이미지는 다양하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예언에 힘입어 위버멘쉬를 번갯불로, 광기로, 구름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물방울로, 자유로운 정신과 심장을 가진 자로 그린다. 이 위버멘쉬는 특정한 누구도 아니고, 아무도 아닌 사람이기도 하다. 즉 누구도 위버멘쉬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초월자를 의미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나도 위버멘쉬가 될 수 있을까? 초인의 삶과 범인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주석-

1) 최근 들어 니체 전공자들은 초인(超人)을 독일어 ‘위버멘쉬(?bermensch)’로 그대로 쓰고 있다. 위버멘쉬를 초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을 따른 것인데, 위버멘쉬를 초인으로 번역할 경우, 초인은 ‘인간을 초월한다, 넘어선다’라는 의미를 갖기 쉬워 오해의 소지가 있어 위버멘쉬로 그대로 번역한다고 한다.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9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김재현(경남대 철학과 교수)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에 따른 더위와 추위, 장마와 태풍 등 자연이 주는 시련을 겪어야 하고 우리 인간들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힘든 상황과 고통을 겪고, 견뎌내면서 살아나간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

 

사진-강지은

사진-강지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 간다. 고통과 시련은 삶에서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는 우리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고통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자식,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을, 앞으로도 가슴 아픈 삶을 살아가야 할 유가족들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기성세대로서, 희생된 수많은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사고 중에 보여줬던 무책임하고 무력했던 선장 및 선원들, 해양경찰청 등 관련 기관과 정부의 한심한 대처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깊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런데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처구니없는 희생과 쓰라린 경험, 고통, 분노의 표출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 왔으며,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사회도 돈보다 생명가치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사회로 발전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억울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며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인간들은 한편으로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이나 사건들을 기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쓰라린 기억을 망각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왜냐하면 고통스런 기억 자체가 우리 삶을 힘들고 지치게 하며 또한 우울하게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쓰라린 경험들을 항상 오래도록 기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잊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으며, ‘현재(the present)’를 ‘선물(the present)’로 받아들여 하루하루 활기차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 생활의 ‘지혜’이며 ‘행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건들과 경험들도 있다. 특히 사회적, 역사적으로 함께 겪은 고통에 대해서,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될 사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렇다면 기억과 망각의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국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개인의 삶, 가족의 삶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지배받으므로 사회적 조건이나 구조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어떤 성격의 국가인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소외받고 힘없는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며,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국가)가 지배하는 사회에 사는 개인들은 돈과 권력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인정과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또한 전쟁 중인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심해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대형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불안전한 사회에서 개인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사회적 조건이나 사회구조가 우리 개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므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타자의 고통받는 모습에 대해 공감하면서, 자신도 그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자각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적 현실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보다 인간적이 되고 성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자각만으로는 힘겹고 부족하므로 여러 개인들이 함께 노력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전문)

 

개인들의 자각과 실천이 담쟁이 같은 연대와 네트워크로 모아질 때 거대한 벽도 조금씩 허물거나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들과 조직들의 사회적 연대를 토대로 사회와 국가는 보다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 등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세워야 하며, 원칙을 존중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사회시스템 차원에서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의 확립이 필요하다.

 

 

법은 항상 바람직함이 될 수 있는가?(1)[대안도덕교과서]-5

법은 항상 바람직함이 될 수 있는가?(1)[대안도덕교과서]-5

 

 

김종곤(건국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1. 법과 바람직함

 
키케로(Marcus Tulliut Cicero)는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고 했습니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거기에는 어떠한 규범적 질서가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입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쓴 「토템과 터부」라는 책을 보면 그가 미개인이라 부르는 사람들 조차 금기(禁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벌을 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키케로의 말은 오늘날뿐만 아니라 원시부족 사회에까지 적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규범적 질서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지탱해주는 힘으로서 ‘바람직함’이라는 것이 늘 따라 다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우리의 질서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아 그 질서를 정당화합니다. 이렇듯 질서와 바람직함은 하나의 몸처럼 결합되어 있으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규제합니다.

키케로(BC106~BC42)

키케로(BC106~BC42)

‘규제’는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행위와 금지된 행위를 구분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말을 행위에만 해당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 ‘기준’에 대한 우리의 생각(관념)역시 규제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어떤 것은 바람직하고 또 어떤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바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떠올려보고 나름의 답변을 준비해보세요. ‘왜 우리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가?’ 어떤 대답을 하였는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보다 환경미화와 위생을 위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훨씬 낫고, 또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대답 보다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즉, 불법(不法)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물론 전자의 대답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후자, 즉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대답이 나름 타당하게 보이는 다른 대답보다 많은 경우에 있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떤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었을 때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다시 말해 법이 그렇게 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의존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마마보이 혹은 파파보이를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놀림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에 따라 행동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다시 말해 주체성을 상실하였다는 점에서 그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왜 바람직한가? 혹은 왜 바람직하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그 답변을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혹은 ‘규정하지 않고 있다’로 대답하는 것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무조건 따른다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즉, 주체적인 판단을 결여하고 단지 믿는 것을 따르는 것과 같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법을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기에 법은 바람직함을 판단함에 있어 최고의 기준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이를 ‘법 물신’이라 한다. 물신(物神, Fetish)이라는 말은 포르투칼어로 ‘가짜의’ 혹은 ‘허위의’, ‘인위의’라는 의미인 feiti?o로부터 파생된 단어입니다. 1700년대 대항해시대에 아프리카 등을 방문한 포르투칼인들이 그곳의 원주민들이 어떤 사물을 숭배하는 풍습을 보고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미개한 것으로 폄하시켜 이렇게 전한 것 입니다. 어쨌든 물신을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면, 예컨대 마을 입구의 큰 은행나무가 그 마을 혹은 종족을 수호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그것을 신성시하는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무는 생명이 있을지언정 정신은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나무에 기도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마치 그것이 어떤 정신이 있는 것, 혹은 영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믿는 미신처럼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물신은 그 어떤 것이 신(神)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서 원래 그것이 가진 속성들을 뒤집고 전도시키는 힘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 물신’은 이와 같이 법을 어떤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그 자체를 숭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법이 인간보다 우선시 되고 물신화될 때 그것은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문제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주제로 다루는 SF영화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이러한 영화에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휴먼노이드 처럼 인간과 흡사하거나 구분이 안 되는 외모와 유연한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는 로봇이 등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로봇은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영위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은 로봇이 존재하는 목적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 아무리 인간보다 신체적·연산능력이 뛰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하며 인간 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몰아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인간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이는 인간과 로봇의 자리가 바뀐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이 있어야 할 창조주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인 로봇이 인간의 세계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외’입니다.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봅시다. 법은 로봇과 같이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산물입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 혹은 국가 간에 접촉하고 교류를 하면서 대다수 때로는 일부가 규범화 시켜야겠다고 필요성을 느낀 다음 나왔다는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법의 내용을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폐기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명령하는 바데로 움직이는 것은 로봇이 오히려 인간에게 명령을 하고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소외’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SF영화에서는 로봇에 대한 공포, 즉 소외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늘 인간들은 로봇에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법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때로는 국회에서 어떤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려고 할 때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편안하게 법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그것이 인간 세계의 외부에서 떨어진 것처럼 그리고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다시 말해 항상 옳은 것인 마냥 우리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법 그 자체가 정당한지 아닌지는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은 이 논의가 법 그 자체가 폐기되어야 한다거나 모든 법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상 법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왜 우리는 이처럼 법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을까?’, 나아가 ‘왜 우리는 우리의 삶과 맞지 않거나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법에 대해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으로 출발합니다. 그냥 가볍게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준법(遵法)정신을 강조하는 의식적인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문제로 돌리기에는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단지 의식이라는 생각의 차원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2. 법과 이데올로기

 
몇몇의 맑스주의 법철학자들은 법을 지배층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이데올로기(Ideology)적 지배 수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맑스(Karl Marx)의 입장과는 사실상 다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생각을 왜곡시켰는지 아닌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법을 의식적 차원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가져가는 것이 위에서 우리가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법을 절대적인 바람직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식의 문제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선 맑스가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그것을 맑스주의 법철학자들은 어떻게 법과 연과지어 그것을 의식적 차원에서 다루어버렸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에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 한다”고 말합니다. 즉, 어떠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조건이 그 사람의 의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또 의미가 있다고 할지라도 복지정책은 대체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기에 자신은 그 혜택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빈곤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보입니다.

하지만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상반돼 보이는 말을 합니다. “한 시대의 의식은 지배계급의 의식이다.” 이렇게 되면 어떠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의식은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그의 사회적 조건보다는 그 사회에서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의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는 얼핏 보면 두 말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저소득층은 대다수 사회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이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맑스에게 있어 이 둘은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강자가 지닌 의식의 힘이 사회적 위치에 의해 형성된 의식보다 더 강해서 장악력을 가진다면 결국 그것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예를 통해 말하자면, 저소득층은 자신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함으로 인해 삶의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이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강하게 비판하기 보다는 개인의 문제나 가족의 문제로 돌려버립니다. 사회적 강자에게는 그 사회의 구조가 별 문제될 바가 없기에 가난한 것은 곧 개인의 노력부족이나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자와 같이 사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사회적 강자의 의식을 마치 자신의 의식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의식은 ‘가짜 의식’ 혹은 ‘허위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스에게 있어서 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는 곧 ‘허구’이며 ‘환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몇 맑스주의 법철학자들은 법을 한 사회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강자들이 그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법은 바람직함이라는 허위적인 의식을 가지게 만든 것으로 이해합니다. 간단히 말해 법은 항상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머릿속에 주입시켰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법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기구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기에 결단력 있게 거부하면 그만이야!’라고 선언하면, 다시 말해 의식적으로 거부하면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규제하는 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즉, 생각만 고쳐먹으면 법 물신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합니까? 아니 그럴 수 있습니까? 다음과 같이 말해봅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한 것은 국가가 국민들의 위생적인 삶의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 해서 그 의무를 다하고 이를 통해 국민에게 어떠한 의무를 지움으로 해서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려는 계획이야! 그러니까 나는 자유롭게 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싶을 때 아무 곳에서나 버릴거야’ 어떻습니까? 이는 용기나 자신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의식적으로 법이 바람직함과 상관이 없는 것이므로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이 우리를 괴롭힌다면 법물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법을 의식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의식의 차원을 넘어선 영역에서, 다시 말해 마음 한 구석은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함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법은 단지 우리의 생각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인터뷰] 철학자 이병창의 신간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인터뷰] 철학자 이병창의 신간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재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동아대 이병창 명예교수(철학과)가 신간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도서출판 말)를 펴냈다. ‘철학자 이병창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비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주로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에 앞장 선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과 지식인의 위선과 이율배반성을 담고 있다.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는 이병창 교수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년 동안 발표한 글을 모은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사무실에서 이병창 교수를 만나 다양성과 관용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자들이 국가적 폭력을 옹호하고, 배제전략을 선택한 철학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이병창 교수와 만나 인터뷰한 일문일답이다.

 

▲ 친노가 문제다! 왜 친노가, 왜 유시민이, 왜 진중권이, 왜 자유주의자들이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동조하고, 묵인했던 것일까? 헤겔과 라캉 연구자인 이병창 교수는 그 근본 원인을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철학적 한계에서 찾는다. ⓒ 고소미

▲ 친노가 문제다! 왜 친노가, 왜 유시민이, 왜 진중권이, 왜 자유주의자들이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동조하고, 묵인했던 것일까? 헤겔과 라캉 연구자인 이병창 교수는 그 근본 원인을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철학적 한계에서 찾는다.
ⓒ 고소미


 

– 평소 영화에 대한 철학적 글쓰기를 많이 하셨는데, 혹시 좋아하는 여배우가 있나요?
“<테스>, <파리 텍사스> 등에 나온 나타샤 킨스키를 좋아해요. 백치미가 좋아요.”

– 의외네요. 지적인 여배우를 좋아할 거 같은데. 특별히 좋아하는 철학자가 있나요?
“대학시절엔 사르트르를 무척 좋아했죠. 70년대엔 젊은이들 사이에 실존주의가 유행했거든요.”

– 오랫동안 철학적 글쓰기만 해오다 현실참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 때 민노당에 가입했어요. 그야말로 당비만 내는 당원이었고, 모임에 참여한 적도 없지만, 나름 큰 맘 먹고 결단을 내린 것이었죠. 망해가는 당에 조약돌 역할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 2012년 5월 진보당 사태 일어났을 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게시판에 ‘유시민의 논리와 이정희의 논리’, ‘사상의 심사위원 진중권 교수에게’처럼 지식인, 언론을 실명 비판하는 글을 많이 올리셨는데,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내가 평소 정치 문제에 앞장서던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글을 쓴 것처럼 나는 박해받는 자의 편에 서는 게 지식인의 사명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 스스로 유대인이라 선포했고, 나에게 돌을 던지라고 외쳤죠.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한 논리, 핏발선 발언들, 성급한 판단이 엿보여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실천이 중요한 때였다고 봐요.”

– 이번에 펴낸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은 지난 2년 동안 쓰신 글 중에 주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앞장선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에 대한 비판을 골라서 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는 누구를 가리키나요?
“민주 진보 세력 내에서 마녀사냥과 종북몰이에 가담했던 자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했어요. 그들 가운데 대표자 격인 유시민은 참여민주주의라는 상표를 즐겨 달고 다녔고, 그들은 때로는 ‘친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죠.

이런 특징은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의 개념에 부합하는데, 그래서 나는 이들을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로 규정했죠. 미국에서는 클린턴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죠. 르윈스키 스캔들도 그에게는 왠지 잘 어울리잖아요.”
 

▲ 철학이 문제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친노가 문제다’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병창 교수 친노를 넘어서고, 참여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들의 철학적 배경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 최진섭

▲ 철학이 문제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친노가 문제다’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병창 교수 친노를 넘어서고, 참여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들의 철학적 배경인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 최진섭


 
– 교수님께서는 책에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합의 개념에는 진리라 는 것은 없으며, 진리와 허위는 구별될 수 없다. 진리와 허위가 구별되지 않으니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도 구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진리의 해체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대전제이다”라고 밝히셨는데, 그렇다면 진리와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모더니즘의 입장을 취하는 건가요?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와 가치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포기했어요. 객관적인 진리 그 자체에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여러 대안들이 남아 있다고 봐요.

헤겔의 변증법적 진리론은 아직도 남아 있는 가능성 중의 하나죠. 진리나 가치에 대해 우리는 물론 겸허해야 합니다. 절대적 진리는 없겠죠. 그렇다고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진리의 개연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절대적 진리가 오만한 진리라면 이런 진리는 겸허한 진리일 것입니다.

변증법은 겸허한 진리, 겸허한 가치를 제시하는 이론이에요. 변증법은 기본적으로 대상이든 사람이든 낯선 타자와 대화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며, 낯선 타자와의 모순과 대립을 인정하고 이를 포용하는 진리론입니다. 변증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반성을 통해 진리에 이르려 해요.”
 

▲   책표지. ⓒ 도서출판 말

▲ <굿바이 친노! 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책표지.
ⓒ 도서출판 말


 

–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국내정치 상황도 그렇고 혼돈 그 자체입니다. 사상적으로는 어떤 대안을 모색하시나요?
“내가 대안을 제시할 능력은 없지만 신자유주의는 전망이 없는 건 확실해요. 김대중, 노무현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장점만 누리다가, 노무현 말기부터 위기가 본격화됐죠. 이명박의 토건주의, 박근혜의 가짜 복지주의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어요. 새로운 가치를 합의해낼 필요가 있는 상황입니다.

진실과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진보진영의 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아메리카노 자유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해요.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자, 친노가 거듭나는 첫걸음은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대한 반성에 있다고 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가능하다면 원래 명예 퇴직할 때의 계획처럼 철학 서적을 매년 한 권씩 펴내고 싶어요. 올 여름엔 박헌영의 사상에 대해 정리한 책을 쓸 계획이고요.”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며[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며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으로 나라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한민국의 흥보 효과를 생각하고 있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시한 야권은 대한민국의 부정의를 알리고 세월호 문제를 풀어주었으면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에 대해 별로 호의적인 사람도 아니고, 또 일 개인을 영웅처럼 숭배하는 분위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교황 방문을 그저 외국의 한 사절이 오는가보다 하는 정도로 데면데면하게 생각한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부도덕하고 불평등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이탈리아 정치의 암적 존재인 마피아를 파문하고 또 한없이 고통받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교황의 모습은 종교 지도자 이전에 인간적으로도 존경할만하다.

 

나는 모든 것을 물질의 운동으로 믿는 소박한 유물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체 유심조를 순박하게 믿는 유심론자도 아니다. 아마도 유물론과 유심론의 절충이거나 양극단의 화합을 요구하고 중용을 찾는, 그래서 대개는 건전한 이성의 봉쌍스에 기대는 사람 정도가 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배척하지도 않고, 숭배하지도 않는다. 또 종교를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종교 역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인간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형식(Lebensform)으로 이해해도 좋다. 나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때로는 모든 종교에 대해 싸잡아 비판할 수 있는 거리 유지에 도움이 된다. 내 수업을 듣던 어떤 신심이 굳은 학생은 나의 이런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한 번은 창조 과학과 전도와 관련된 책 두 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종교에 한번 젖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 내 학생의 부모인 목사에게 내 딸을 좀 인도해 줍사고 데려간 적도 있다. 내 딸도 한 1년 열심히 다니더니 나를 닮아서 그런지 그 다음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산을 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다름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탐방하는 일이다. 그래서 유명 산천의 도처에 있는 웬만한 절들은 다 가봤고, 사찰마다 미묘한 분위기와 풍경의 차이 등을 좋아한다.

 

내가 결정적으로 유물론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종교의 발생과 진화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설명하지만, 나는 종교를 결정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한다. 하나는 종교의 초월과 관련한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종교가 던지는 메시지와 관련되어 있다. 종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의 유한성을 깨우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늪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는 바울의 고백은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음을 통렬히 고백하고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아침 이슬과 같고 파도 거품과 같다는 금강경의 한 구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 종교는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감각적이고 가시적이고 현세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의 이 삶에 대한 우리의 단단한 시야를 끌어 올려 저 너머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현실 도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러한 초월에 대한 자각은 현재의 삶을 보다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에 대한 자각, 초월에 대한 의식은 현재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고, 또 무엇을 지향할 것인지를 깨우쳐준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 너머의 어떤 절대자는 이런 유한자들의 불평등과 부정의, 부도덕 등을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하나의 지침이다. 맑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폄하하고, 과학적 실증주의나 유물론이 비등할 때마다 종교를 전근대적이고 미신적이라고 부정해왔지만, 종교가 갖는 이런 초월에 대한 인간의 지향성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고등 종교의 메시지는 한 결 같이 사랑과 자비 등과 같이 더불어 사는 인간들 간의 관계의 덕목을 중시한다. 이런 사랑과 자비는 빈부와 남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이점에서 본다면 종교는 근대의 평등이나 인권 사상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평등과 인권의 사상을 선취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가 산상수훈을 할 때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현실 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혁명적 메시지이다. 신은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불평등한 신분과 권력관계를 넘어서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런 예수의 모습이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구원과 희망, 혹은 해방의 선지자로 보였고, 기존 권력의 지배자들에게는 반역을 꾀하는 혁명가로 비춰졌을 것이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불교의 자비의 정신, 혹은 유교의 인(仁)의 사상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점에서 모든 고등 종교는 이 세계 안에서 인간들이 다른 어떤 조건이나 제약, 차이 등을 넘어서 서로 더불어 사는 지혜를 깨우쳐 주고 있다. 나는 현실 세계 안에서의 종교의 가장 큰 얼굴은 사랑 그 자체라고 본다. 그런데 꼭 근본주의가 아니라도, 종교의 이름을 걸고 증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를 우리는 부지기수로 본다. 종교가 현실 세계에서 하나의 권력이 되고, 이 권력 다툼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선봉장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종교는 내면의 확신을 지지해주고 정당화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하고 무서울 수 있다.

 

사실 종교가 현실 권력으로 변질되는 데는 종교 자체에도 원인이 있다. 예수나 석가, 혹은 마호메트나 공자와 같이 최초의 선지자의 메시지가 전달될 때는 사랑과 진리, 그리고 초월 등의 메시지는 선지자 자신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선지자가 죽고 나서 그의 메시지가 후대로 전달될 만큼의 생명력을 갖추려면 몇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선지자를 따르는 제자들 집단이다. 이런 제자들 가운데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도 있고, 이 제자들의 제자들도 있을 것이다. 순전히 스승의 가르침을 전달하려는 이런 제자들 혹은 신자들의 집단이 후대로 가면서 전문화된 사제 집단으로 관료화될 수 있다. 그 다음 선지자가 죽고 나면 그의 가르침의 원형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일종의 교리를 정립하는 것인데, 이것은 경전으로 완성된다. 경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단을 배척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렇게 정립된 교리가 초기 선지자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대변하는지의 여부는 다를 수도 있다. 교리가 만들어지고 사제집단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동시에 필요하다. 성당이나 교회, 그리고 사찰이 그 경우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등 종교가 역사적으로 등장하고 제도화되는 과정에서는 이 세 가지가 필수적으로 구비되는 것이다. 즉 선지자의 순수한 가르침이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역사화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종교의 세속화라 할 이런 모습을 실정성(Positivit?t)이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실정성은 최초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현실 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교리는 도그마(Dogma)로 화석화되고, 사제집단은 관료화된 기생집단이 되며, 교회는 세속 세계의 부와 권력의 집산지가 된다. 다시 말해 종교의 본질 중의 하나인 초월과 사랑의 정신을 망각한 채로 세속 권력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패한 종교는 종교를 가장한 현실 권력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런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등 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번에 내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신자들이 아닌 사람들까지 열광하는 데는 교황이 보여준 종교의 본래 정신과 본질을 그에게서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은 바티칸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비판하고 경고한다. 오늘날 대안 없이 절대 강자들의 놀음 터로 변한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논리에 대해 그는 거침없이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하고, 흔히들 말하는 낙수효과나 파이효과에 대해 “그릇과 파이만 키운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 벌써부터 교황의 이런 행보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교황을 마르크스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자로 낙인찍고 있다. 종교의 본래 정신으로 현실 자본주의나 기타 사회적 모순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얻어낸 제정분리와 탈 주술화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새로운 중세 화를 염려하기도 한다. 물론 교황식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오늘날 자본주의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비신자인 일반인들까지 교황을 반기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이 현실권력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종교의 참다운 정신인 만인 평등의 정신과 사랑을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을 교황의 거침없는 행보에서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교황의 정신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 땅의 곳곳에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며, 나아가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위정자들과 고삐 풀린 한국식 신자유주의가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 <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1

근대적 시민의 애국주의-나는 왜 싸이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5-1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장)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는 통상적으로 개인주의 사회라고 불린다. 과거 백인이 흑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현재의 백인 후손이 왜 흑인 후손에게 사과하거나 흑인에 대한 우대정책에 동의해야 하는 것일까? 이 백인은 자신이 흑인 노예를 부리고 산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우리는 왜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고 메달이라도 따면 같이 기뻐하고 부당하게 메달을 빼앗기면 같이 분노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의 불공정한 행태를 비판하는 입장이라도 막상 외국에 나가서 한국 대기업의 로고를 볼 때 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일까? 싸이의 음악적 성공에 나의 가슴이 뛰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히 개인주의 차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개인주의 외에 국가주의=민족주의가 현대 사회의 또 다른 기본 특징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1. 개별화와 전체화

푸코는 현 서구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정치적 합리성을 탐구한다. “정치적 합리성은 서구사회의 역사 전체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 왔으며 또 자신을 드러내 왔다. 그것은 처음에는 사제 권력이라는 사상에, 그 다음에는 국가 이성이라는 사상에 의존해 왔다. 그것의 필연적인 효과는 개별화와 전체화이다. 이 두 효과 중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정치적 합리성의 뿌리 그 자체를 공격함으로써 자유가 온다.” 푸코가 보기에 계몽주의의 과업은 이성의 정치권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권력 증대는 두 방향으로 발달한다. 즉 국가로 정치 권력이 중앙집권화되어 가는 방향과 개인들을 다루는 권력 기술의 출현이다. 대부분의 푸코 연구가들은 푸코가 “현대적 국가 양식과 그것이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도출되었는지에 관한 연구는 소홀히 하고 지배가 생산력과 착취의 관계, 그리고 국가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즉 그가 두 방향 중 후자의 측면인 권력의 개별화 형태에만 강조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비판은 일면적으로 사실이긴 하지만 푸코의 진정한 의도를 못한 데서 생겨난다. 푸코는 국가가 가장 두드러지고, 가공할 인간통치의 형식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는 앞 인용문에서 밝혀졌듯이 개별화하고 동시에 전체화시킨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국가와 개인을 별도로 세우고 국가와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상충하는 것으로 보고 국가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는 전략은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근대 권력 구조들이 개별화시키고 또한 동시에 전체화시키는 이런 종류의 정치적 ‘이중구속’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동시대의 국가나 국가기관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국가와 그리고 국가에 관련되어 있는 개별화의 유형 둘 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핵심문제 생각한다. 그리고 둘 중에서 후자 즉 개별화의 유형이 더 많이 은폐되어 있고 간과되어 있으므로 이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2. 한국의 특수한 이념, 유교적인 가족주의

윤리나 도덕은 역사를 초월한 영원불변의 이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현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명멸해 가는 역사적인 생명을 지닌다. 이는 시대가 변화하면 윤리와 도덕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특정한 도덕이나 윤리는 특정한 사회적 조건하에서만 타당하기 마련이다. 윤리는 그 성격상 보편적 구속력을 요구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보편성은 어디까지나 칸트적 의미에서의 윤리적 요청이지 사실적 의미의 진리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급격한 사회변동과 관성을 지닌 윤리 의식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는 전통적인 농업중심주의 사회에서 근대 공업사회로 변화했고 다시 미래의 정보사회로 돌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농업중심사회를 이끌어오던 기존의 가부장중심의 윤리와 이를 정당화한 유교의 윤리가 형해화된 채로 잔존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윤리적 담론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전통적인 윤리의 의의와 가치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이에 대해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존재하는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과연 이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윤리가 현재 우리가 앓고 있는 서구 합리적이고 개인주의(=국가주의) 사회적 딜레마와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다가올 미래 사회의 윤리적 기초가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변을 할 수 있으려면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들과 이 전통 윤리가 과연 연관되어 있는지를 먼저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 문제들과 전통 윤리가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전통윤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들 사이에 연관이 없다면 이 문제들을 발생시킨 병인(病因)과도 같은 윤리를 이 문제들에 대한 치료제로 쓸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전통 윤리의 윤리적 기획과는 다른 윤리적 기획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2.1.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 연고주의

그러면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고 한 공동체로서의 우리 민족을 갈가리 찍게 만든 병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이 병들을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라는 큰 범주에 따라 구분하면 우리 사회 내적인 증상과 외적인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인 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성(integrity)과 관련되고 외적인 것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과 관련된다. 통합성이나 정체성은 모두 자아와 타자의 상호작용과 상호인지를 전제한다. 우리의 통합성은 연고주의 더 자세히 말하면 혈연에 기초한 가족이기주의, 학연에 기초한 학벌이기주의, 지연에 기초한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이 삼연(三緣)주의로 생겨난 우리 사회의 ‘진입 금지’는 다수의 구성들의 생존과 존엄을 손상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여 구성원들 사이에 그 틈을 메울 수 없는 갈등의 심연을 만들어 왔다. 이는 구성원들이 한 공동체라는 상호인식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집단 정체성 확립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같은 사회의 구성들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사회와 다른 사회 사이의 갈등에서도 확인된다. 우리의 대외 의식은 우리보다 선진한 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우리보다 후진적인 나라들에 대한 졸부의식으로 드러난다. 이 또한 우리의 정체성 설정과 자아와 타자와의 상호인정에 문제가 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2.2. 유교의 차별애

우리 사회의 잘못된 집단 정체성과 통합성에 유교와 가부장 윤리가 기여한 바는 없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 유교 윤리의 특징을 살펴보자. 유교 윤리의 특징을 살피려면 우선 고대에 유교와 대립되던 학파인 묵가가 유교 비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묵자]의 ?겸애(兼愛)하편?에서 別(따로 노는 것)과 兼(함께 하는 것)을 구분한다. 그는 겸을 가지고 별을 비판한다. 이 비판의 대상이 바로 유교이다. 그는 유교를 별사(別士)라고 부른다. 별사란 별애를 주장하는 선비이다. 별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내 어찌 자신을 위하는 만큼 적을 위하고 벗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만큼 위할 수 있을까?” 반면에 겸(함께)을 주장하는 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자신을 위하는 것만큼 친구를 보살펴 주어야 하겠으며, 친구의 어버이도 나의 어버이같이 위하여야겠다.” 이 주장은 겸애(더불어 사랑함)를 의미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묵가의 사랑은 겸애이고 유교의 사랑은 별애(차별적으로 사랑함)로 뚜렷하게 대비된다.

과연 묵가의 비판대로 유교의 사랑이 별애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원시 유교의 핵심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맹자의 논의를 살펴보자. 맹자는 양주학파와 묵가를 비판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생각한 유학자이다. 맹자는 이 양자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양씨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것은 왕이 없는 것이요, 묵씨는 겸애를 주장하니 이것은 아비가 없는 것이다. 아비도 없고 왕도 없으면 이는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 …… 이러한 사악한 설이 백성을 기만하고 인의(仁義)를 막히게 하였다.”1) 맹자의 묵가에 대한 비판은 겸애를 주장하면 자신의 아버지의 존재를 무화시킨다는 점이다. 겸애는 자신의 아버지와 다른 이의 아버지의 구분을 없애고 만다. 이는 유교가 바탕으로 하고 있는 仁의 정신에 어긋난다.

유교의 인의 출발점은 친함親이다. 즉 가장 친한 관계인 아버지와 아들 간에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사랑의 감정이 바로 인이다. 인을 중심으로 하는 공자의 가족주의적 도덕은 주나라의 봉건제를 기본으로 하여 세워진 것이다. 주나라 봉건제는 천자는 아버지고 제후는 아들이라고 하는 혈연의식이 그 봉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몇 대가 흐르자 그 혈연의식이 희박해져 가족주의의 정신이 상실되고 각 나라가 패권을 추구하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공자에게는 이러한 난세를 구하는 길은 단지 하나. 주나라 초기 봉건제의 정신이었던 가족주의 도덕을 부흥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 주초의 가족주의 도덕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실로 천하의 정치는 이미 가족주의 도덕의 이념을 상실해 버렸다. 그러나 개개의 가족이나 촌락에는 여전히 가족제의 정신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이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서 그 가족애가 미치는 범위를 점차로 확대하여 이것을 하나의 나라에 미치게 하고 나라들의 모음인 천하에 확대하면 된다.2) 이는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까지 미친다.”라는 원리에 따르고 있다. 이러한 공자의 정신을 표준화한 것이 四書 중의 [大學]이다.

[대학]의 첫 부분은 3강령과 8조목으로 되어 있다. 3강령은 ‘明明德’과 ‘新民’과 ‘止於至善’이다. 명명덕이란 군자의 내면에 본유적으로 있는 밝은 덕을 밝힌다는 것이다. 이는 修身을 의미한다. 즉 좋은 통치자가 되어 왕도정치를 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덕을 수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수양된 덕을 바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는 것이 바로 新民이다.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덕으로 감화하는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기본으로 해서 유교의 이상인 대동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도덕적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止於至善’이다. 이 삼강령은 유교의 기본 원리인 ‘修己治人’을 방법론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한 것에 불과하다. 이 삼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조목이 바로 8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8조목의 순서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이다. 이는 도덕적 수양을 통해 가족주의 도덕을 내면화한 것이 덕이고 이 덕을 집, 국가, 세계로까지 확장하는 발산의 논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논리의 문제점은 가족의 양적 확대가 국가가 되며 국가의 양적 확대가 천하가 된다는 추론 위에 도덕을 조직하였다. 이 경우 천하도 국가도 질적으로는 가족을 기본틀로 하는 가족의 확대형태가 된다. 여기에 조응하여 가족생활에 고유한 개인도덕도 그 영역을 공간적으로 연장함으로써 그것이 바로 사회도덕이 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사회도덕은 개인도덕 안에서 해소된다. 이러한 유교의 윤리적 기획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공공정신의 발달을 가로막는다.3)

유교의 윤리가 가족과 비가족을 구분하는 차별애임은 앞에서 인용한 묵자 비판에서 행한 맹자의 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가족과 비가족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와 권위를 없애는 결과는 낳을 뿐이다. 이는 유교의 도덕적 기초인 仁이 성립할 근거를 말살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요약한다면 공자의 인은 가족애를 출발점으로 한다. 이는 그가 주나라 초기 가족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의 소생을 이상으로 삼은 데서 기인한 당연한 결론이다. 인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의 부모형제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가족에 대한 사랑을 국가에, 그리고 국가들의 모임인 천하에 확장하는 것이 유교의 윤리적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속성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다음의 말을 인용해보자.

본디 인류애는 가족애나 애국심과 같은 특정의 집단에 대한 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애는 그것이 아무리 순수하다 해도 본질적으로 에고이즘의 확대라는 성격을 면할 수 없다. 에고이즘을 가진 애는 항상 ‘미워함’과 가깝다고 하는 사실 의해서 간단히 판별할 수 있다. 모성애는 어머니의 자기희생 위에 성립하지만, 그것은 이웃집 자식에 대한 미워함이 쉽게 생긴다. 따라서 모성애의 본질은 확대된 에고이즘이다. 애국심은 적국에 대한 증오심과 쉽게 연결된다. 따라서 애국심을 제아무리 양적으로 확대해도 인류애는 될 수 없다. 인류애는 가족애나 애국심과 같은 특정애의 애를 확대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는 없다. 도리어 그 완전한 부정 위에 성립한다. 이 점은 인류애를 역설한 종교를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자비의 가르침을 설명한 불교는, 불도의 수행자를 ‘出家’라고 부른다.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탈출함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므로 ‘出國’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또 박애를 역설한 예수도 마찬가지이다.4)

특정한 집단에 대한 사랑과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서로 질적으로 틀릴 뿐만 아니라 인류애는 특정한 집단에 사랑을 부정할 때에만 생겨난다. 이와는 달리 유교의 윤리는 특수성의 양적 확대에 불과하므로 진정한 의미의 보편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추상적 보편성의 수준에 도달한 서구의 근대 보편주의적 윤리적 기획이 유교에 대한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가?

 

-주석-

1) [孟子; 勝文公下 9]

2) 森三樹三郞, [중국사상사], 임병덕 역 (온누리, 1990), 41쪽.

3) 赤?忠 외, [중국사상개론], 조성을 역 (이론과 실천, 1987), 380-1쪽.

4) 森三樹三郞, [중국사상사], 임병덕 역 (온누리, 1990), 64-5쪽.

 

 

<상속자들>과 『논어』 <벙커1> 2

<상속자들>과 『논어』 <벙커1> 2

오상현(숭실대)

 

알림 : 『논어』 번역은 황희경 선생님의 번역이거나?필자가 수정한 것들이 섞여있습니다

들어가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또는 때맞춰)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논어』 「학이」 (0101)

 

1. 증삼(曾參) / 자여(子輿) / -49

질문 : “선생님, 저는 은상이와 갈라서게 된 탄이가 깨지고 다치면서 망가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효(孝)와 충(忠)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상속자들> 속 은상이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착한 것’과 ‘착하기만 한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마천 『사기』

공자는 그가 효도에 능통하다고 여겨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는 『효경(孝經)』을 지었으며 노나라에서 세상을 마치었다.

“나의 몸과 터럭, 그리고 피부마저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효경』 1장.

[인물 엿보기]

증자가 말하였다. “부모의 상을 아주 진지하게 처리하고, 조상의 제사를 정성스럽게 모시면(愼終追遠) 사람들의 덕성이 한결 돈후해질 것이다.”? (0109)

증자가 병이 들어 제자들을 불러 놓고 말하였다. “(이불을 걷고) 내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깊은 못가에 서 있듯, 얇은 얼음판을 밟고 가듯 전전긍긍 조심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와서야 이런 걱정을 면하게 되었음을 알겠구나, 제자들아!”? (0803)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가 있지 않았는가? 선생님에게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010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증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 있다(吾道一以貫之).” 증자가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다른 제자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서(忠恕)일 뿐입니다.”? (0415)

◎ 충(忠)의 의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도 굳건하지 않게 된다. 진실함(忠)과 신의(信)를 위주로 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며, 잘못을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0108)

“아름다운 자두꽃이 봄바람에 휘날리는구나.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대의 집이 멀고도 멀구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사랑(思)하지 않는 것이니 (사랑한다면) 먼 곳이 어디 있으리요?”? (0931)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떻게 해야 하겠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려야 하고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0319)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臣臣, 父父子子)” 경공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양식이 있다 한들 내가 먹을 수 있겠소?”? (1211)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신하가 신하다울 수 있고,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야 자식이 자식다울 수 있습니다.(君君臣臣, 父父子子)” 경공이 (알아듣지 못하고)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양식이 있다 한들 내가 먹을 수 있겠소?”? (1211)

자공이 여쭈었다. “공문자는 무슨 이유로 문(文)이라는 시호(諡號)로 불리게 되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됨이 민첩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 그런 까닭으로 문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0515)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만약 무도한 자를 죽이고 (선을 행하는) 좋은 사람을 친근하게 대한다면 어떻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선생께서 정치를 하면서 어찌 살인의 방법을 쓰려고 하십니까? 선생께서 착해지고자 하면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착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도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도덕은 풀입니다. 풀은 바람이 불면 반드시 따라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1219)

◎ 효(孝)의 의미

맹무백이 효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오직 자식의 병만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0206)

자유가 효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날은 효라는 것을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개와 말도 그 정도쯤은 한다. 공경하지 않는다면 (개나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020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길 때 (만약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은근히 완곡하게 간해야 한다. 부모가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더라도 더욱 공경하여 어기지 말 것이며 수고스럽더라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0418)

◎ 충(忠)과 효(孝)의 관계(?)

공자가 말씀하셨다. “효성스럽구나, 민자건이여.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한〕부모 형제의 〔칭찬의〕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1104)

계씨가 민자건을 비(費)라는 땅의 현장(縣長)으로 삼고자 하였다. 민자건이 (사신으로 온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를 대신해서 잘 거절하여 주시오. 다시 나를 부르는 일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 가에 가 있을 것이오.”? (0609)

◎ 착한 것과 우둔한 것의 차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게 되고(恭而無禮則勞), 삼가면서 예가 없으면 두려운 일이 많게 되고, 용감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정직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각박해진다. 군자가 친족들을 후대하면 백성들 사이에 어진 기풍이 생겨나고, 옛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박절하게 된다.? (0802)

어떤 이가 말하였다. “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공정함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는 것이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143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미생고를 솔직하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얻으러 갔더니 이웃에서 얻어다가 주는구나.”? (0524)

 

2. 안회(顔回) / 자연(子淵) / -30

질문 : “선생님, 아시겠지만 저는 평생 없이 살아서 그런지 겉치레에 엄청난 돈을 써대는 그들이 내내 못마땅했습니다. 형식적인 겉모습에 치중하기 보다는 그 안에 내포된 내용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미 약혼식을 치렀던 탄이와 라헬이가 안타까웠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약혼반지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마천 『사기』

안회는 29세의 나이에 백발이 되었으며 젊은 나이에 죽었다. 공자는 그가 죽자 매우 애통해했다.

[인물 엿보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이야기해 보았는데 (내 말을) 어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것 같더니, 그가 물러간 뒤에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면 (내 말 뜻을) 잘 발휘하고 있으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020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어질구나(훌륭하구나), 회(안회)여! 다른 사람들은 한 그릇의 밥(一簞食)과 한 표주박의 물(一瓢飮)로 가난한 마을에 사는 것을, 그 고생을 견디어 내지 못하는데 회는 (가난 속의)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회여!”? (0611)

공자께서 광 땅에서 구금당했을 때 안연이 뒤처졌다가 나중에 도착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선생님이 계시거늘 제가 어떻게 감히 죽겠습니까?” (1122)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1108)

애공이 물었다. “제자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好學)”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제자가 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는)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고(不遷怒)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는데(不貳過) 불행히 일찍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그 후로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0603)

◎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으로 짠 관을 쓰는 것이 예이지만 요즘은 실로 짠 것을 쓰니 검소하다. 나도 대중이 하는 바를 따르겠다. (당)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인데 요즘은 (당) 위에서 하니 이는 교만한 일이다. 비록 대중이 하는 바와 어긋나지만 나는 아래에서 절하겠다.”? (090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라고 예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옥이나 비단을 바치는 것을 말하겠는가? 악(樂)이라고 악이라고 말하지만 종이나 북을 치는 것을 말하겠는가?”? (17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면적인) 질박함(質)이 (외면적인) 문채(文)를 이기면 조야하고, 문채가 질박함을 이기면 겉만 화려한 것이다. 문채와 질박함이 고르게 잘 조화를 이룬 뒤에라야(文質彬彬) 군자라 할 수 있다.”? (0618)

◎ 홍동백서(紅東白西)를 허하라.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아주 애통하게 곡을 하셨다. 따르는 사람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지나치게 애통해하십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내가〕너무 애통해하고 있는가? 이 사람을 위해 애통해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 애통해하겠느냐?”? (1109)

임방이 예의 근본을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질문이여! 예는 사치스럽기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사(喪事)는 (절차를 알아) 쉽게 치르는 것보다 차라리 (진정으로) 슬퍼해야 한다.”? (0304)

 

3. 단목사(端沐賜) / 자공(子貢) / -31

질문 : “선생님! 부자라고 꼭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조선의 선비들 중에는 처자식이 쫄쫄 굶고 있는데도 골방에 박혀서 글공부만 했던 한심한 후학들이 있었답니다. 그따위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남편과 아비 노릇도 못하면서 군자가 어쩌고 천하가 어쩌고는 거짓입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줄곧 말씀하신 공부가 앉아서 책만 보는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마천 『사기』

자공이 한번 나섬에 노나라를 존속시키고 제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오나라가 망하고 진(晉)나라가 강국이 되었으며 월나라가 패자가 되었으니, 즉 자공이 한번 뛰어다님으로써 국제간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10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각 큰 변동이 생겼던 것이다.

자공은 시세를 보아 물건을 매매해 이익을 챙기는 것을 좋아해 때를 보아서 그때그때에 재물을 굴리었다. 그는 남의 장점을 드러내주는 것도 좋아했으나 남의 잘못을 숨겨주지도 못했다. 일찍이 노나라와 위(衛)나라에서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금(千金)을 쌓아두기도 했다.

[인물 엿보기]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괜찮기는 하나, 가난하면서도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서 ‘자르는 듯(如切), 다듬는 듯(如磋), 쪼는 듯(如琢), 가는 듯(如磨)이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두고 한 것이겠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야, 비로소 너와 『시경』을 논할 수 있게 되었구나. 지난 일을 일러 주었더니 앞으로 올 일을 이해하는구나.”? (0115)

자공이 말하였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장 속에 감추어 두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찾아 팔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물건 볼 줄 아는)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0913)

공자께서 자공에게 말씀하셨다. “자네와 회(안회) 가운데 누가 나은가?”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회와 같기를 바라겠습니까? 회는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알고, 저는 한 가지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녀석만 못하지, 너나 나나 그만 못하지.”? (0509)

자공이 정치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비를 충분히 하고(去兵), 백성들이 믿도록(民信之矣) 해야 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부득이하게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비를 버려야지.” 자공이 말하였다. “부득이하게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 (남은)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려야지.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無信不立).”? (1207)

자공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논평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는 참으로 똑똑하구나. (그러나) 나는 그럴 겨를(시간)이 없다.”? (1429)

◎ 돈 버는 게 나쁜 것인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하고 귀해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가난하고 천해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걸 피하지 않아야 한다. 군자가 인을 버리면 어찌 군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군자는 밥 먹을 동안에도 인에서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갑자기 황급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이같이 해야 하며 넘어지는 순간에도 이같이 해야 한다.”? (040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독실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죽어도 도를 지키고 보전해야 한다. (그러나)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면 나와 일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숨는다.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미천한 것은 치욕이요,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부유하거나 귀한 것도 치욕이다.”? (081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가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 잡는 사람이라도 해 보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0712)

◎ 진짜 공부란? / 위기지학과 위인지학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학인은 (진정한) 자기를 위해 공부했는데 지금의 학인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142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15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들아, 집에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공손해야 한다. 삼가는 마음으로 뱉은 말은 지키고, 편 가르지 말고 사랑하여라. 또한 어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도록 하여라. 이렇게 행하고도 혹여 남는 힘이 있다면(行有餘力), 비로소 (그때) 공부하여라.”? (010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또는 때맞춰)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 (0101)

 

4. 중유(仲由) 자로(子路) / -9

질문 : “선생님, 저는 탄이 아빠나 영도 아빠, 그리고 라헬이 엄마나 효신이 엄마가 아이들에게 무조건 자기 말에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에 화가 좀 났습니다. 자기들은 부모이고 어른이니 무조건 옳다고 믿나 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의 태도입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부모님께 곱디고운 모래 한 줌, 눈가에 뿌려볼 용기가 왜 없을까요?”

사마천 『사기』

자로는 성질이 거칠고 용맹을 좋아하며 심지(心志)가 강직했다. 수탉의 꼬리로 관을 만들어 쓰고 수퇘지의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찼다. 공자의 제자가 되기 전, 한때는 공자를 업신여기며 폭행하려 했다. 그러나 공자가 예로써 대하며 조금씩 바른 길로 인도해주자, 뒤에 유복(儒服)을 입고 폐백을 드리고서 문인들을 통해서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공자가 위나라에서 난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아, 유(由)가 죽겠구나!”라고 탄식했는데, 이윽고 과연 그가 죽었다. 공자는 그가 죽은 뒤 “내가 유를 얻은 뒤로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험담이 나의 귀에 들리지 않았는데······”라고 탄식했다.

[인물 엿보기]

자로는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충분히 실행치 못했으면 더 듣기를 두려워했다.? (0514)

공자께서 남자(南子)를 만났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옳지 않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062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두 마디의 말(片言)로 재판의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유(자로)일 게야.” 자로는 승낙하는 일을 지체한 적이 없었다.? (1212)

◎ 지나친 용기는 위험하다.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이) 써 주면 나아가 행동하고, 버리면 재주를 감추고 들어앉을 수 있는 자는 오직 나와 너만이겠지.”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맨주먹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강물을 건너다가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큰 일을 당하여 두려워할 줄 알고 미리 계획을 세우기를 좋아하여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 (07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주장한) 도가 행해지지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닷가를 떠다니고자 한다. (그때)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 유(자로)일 게야.”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용기 좋아하는 것이 나보다 낫다. 다만 사리에 맞게 헤아릴 줄을 모른다.”? (0507)

자로가 여쭈었다. “군자는 용기를 숭상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로움을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적질을 하게 된다.”? (1723)

◎ 변화무쌍한 군자가 되거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君子不器)”? (02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해서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다. 단지 의로움만(義)을 좇을 뿐.”? (0410)

공자께서는 네 가지 잘못이 없으셨다. 미리 억측하지 않았고(毋意),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으며(毋必), 고집이 없었고(毋固), 내가 꼭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毋我).? (0904)

 

5. 공자가 들려주는 세상사는 법 3가지

◎ 단 하나의 규칙 – 서(恕)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 가운데 평생 동안 실천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라는 말일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1524)

◎ 일단 시도하라. 포기는 그 이후에 생각하라.

염구가 말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사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모자라서 (못하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중도에 그만두게 마련이지만 지금 너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자기 한계선을 긋고 있구나.”? ?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0612)

◎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잊지 말아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그 가운데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 그중에 선한 사람을 택해 따르고, 선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 반성해) 고쳐야 한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0722)

사마우가 근시하면서 말하였다.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홀로 없구나.” 자하가 말하였다. “나는 ‘생사와 부귀는 천명에 달려 있다.’고 들었다. (한 사람의) 군자로서 진지하게 행동하여 잘못이 없고, 공손하게 남을 대하여 예의가 있으면 사해의 동포가 모두 형제가 될 것이니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근심하겠는가?”?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120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子曰, “德不孤, 必有隣.”? (0425)

 

나가며…

안연과 계로(자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각자의 뜻한 바를 말해 보거라!” 자로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벗들과 함께 쓰다가 낡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기를 원합니다.” 안연이 말하였다. “저는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자 합니다.”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노인에게는 편안하게 해 드리고, 벗에게는 믿음을 주고, 젊은이는 품어주고 싶다.”? 顔淵季路侍. 子曰, “?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 與朋友共, ?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0526)

 

 

군대 폭력 백서를 만들자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군대 폭력 백서를 만들자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 같은 글이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2095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윤일병 폭행치사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멀쩡한 아들을 나라를 지키라고 군대를 보냈더니 군 내무반에서 몇 달 동안 조직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사망했다니 부모 심정이 어떻고, 현재 군대에 있거나 앞으로 군대를 보내게 될 부모들은 또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국방의 의무는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그래서 20세 이상의 신체 건강한 성인남자라면 누구든 이 의무를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대한민국은 6.25 남북 전쟁을 경험했고, 현재도 평화상태가 아닌 휴전상태이기 때문에 남북간의 대치와 긴장이 적지 않다. 때문에 한국에서 군대의 역할은 사회의 어떤 부문 이상으로 막중하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런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행과 사망사건, 자살과 의문사 사건, 그리고 탈영병들의 총기 사건 등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다. 군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혁을 다짐하지만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 십 년 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윤일병 치사 사건을 이야기하다 보니 군대를 수 십 년 전에 제대한 내 대학동기들의 카톡방에서는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체험담들이 올라오고 있다. 폭력의 체험이 그만큼 생생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몇 안 되는 사례지만, 나는 이런 사례들을 계기로 군대 폭력 백서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첫번째 사례> 신** 현직 대학 교수?

“아마 우리 동기들 모두 비슷한 군대 시절 어두운 기억이 있겠지만 나도 80년 입대해서 **훈련소 조교로 근무할 때 고참의 술 외상값 20여만원을 대신 갚기를 거부했다고 10여명의 조교가 저녁부터 점호도 열외당한 채 그 병장 동기들로부터 4시간여 집단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결국 내가 술취한 병장의 군화에 얼굴을 맞아 입술이 찢어져 집합은 끝났고 나는 의무실로 후송되어 열 바늘 이상을 꿰맸고 그 흉터는 아직도 내 얼굴에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를 마친 증거로 뚜렷히 남아있다. 사실 구타보다 내가 더 실망했던 것은 사고 후 헌병대와 보안부대에서 사고조사 과정이었다. 조교가 입술을 열 바늘 꿰맸고 타박상의 흔적이 온몸에 있고 당시에도 엄격한 구타금지 지침이 있었기에 의무장교가 신고를 해서 헌병대와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나왔지만 구타금지 목표달성을 염려한 연대참모 장교들의 강력한 회유와 압력으로 나는 청소 중 넘어졌다고 진술하였고 수사관들은 내 온몸의 멍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단순 사고로 종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끼어들어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과 절망감으로 인한 마음의 아픔이 구타로 인한 몸의 통증보다 몇 배는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사건을 보며 무려 30년도 전의 군대문화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지만 우리세대가 보다 나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기를 아직도 기대해본다.”

 

이 동기는 군대의 악습과 관련한 집단 폭력도 문제지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의 문제점을 적고 있다. 군내의 불투명한 사고 처리 과정은 조직적인 은폐로 이어진다. 그동안 군대 내의 수많은 의문사, 자살 사건들에 대한 재조사도 필요하다. 따라서 사고 처리와 관련해서는 군 감찰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군 외부의 민간 인사가 참여하는 전문 조사기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백서 이야기를 했더니 내 동기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덧붙이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사진-오마이뉴스

“취지에 적극 동감하며 내경험 관련하여 첨언하면. 첫째 군대 내 폭력 등 사고 보다 투명하지 않은 사후 조사과정이 더 문제다. 즉 사고 관련하여 관리책임 문책 등의 불이익이 두려워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군대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폭력근절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고, 둘째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니 구성원 모두가 작더라도 개선을 향한 노력을 해야 할 듯. 내 경우 말년 병장의 외상술값을 후임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그 당시 그 부대에서의 관습이었으니 이를 거부한 것이 폭력사고를 유발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물려받고 물려주는 악습을 되풀이 했을 테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지 모를 일 아니겠나. 외상값 대신 내 주고 물려주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도 적은 금액도 아니었고 젊은이의 순수함이 군대에 와서 오염되는 것 같아 그냥 몸으로 때운 셈이지 ㅠㅠㅠ”

 

<두번째 사례> 박** 기업임원 은퇴

?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우리들의 모습이야. 나 역시 모종의 사건에 본의 아니게 개입되어 쇠파이프로 얻어맞다가 정신 줄을 놓고 회복실로 실려 간 일부터,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구타를 여러 번 당했는데 어떤 때는 부대 내에 있으면 맞아 죽겠다 싶어 무단이탈 을 한 적도 있었네. 다 지난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네. 그러나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맞으면서도 끝까지 내 몸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삶에 대한 본능에 따라 처신하고 대응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네. 덕분에 제대할 때 앞 이빨 세 개를 포세링하고 나왔는데 군대서 공짜로 하는 대신 실험케이스로 그중 이빨 하나를 새로운 신경치료방법을 적용하다 실패해서 나중에 그걸 뜯어내는데 접착제가 얼마나 강한지 이빨 세 개가 통째로 빠질뻔 한 적도 있었다네. 각설하고 제대 후에 꾸는 가장 큰 악몽이 다시 입대하는 거라는데 나 역시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네. **이나 **나 다 나처럼 대부분의 우리 동기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하네. 그러면서도 잠시라도 윤일병 사건에 대하여 남의 일처럼 생각한 시간이 있는 듯하여 반성이 된다네. 아무쪼록 다양한 개선방안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서 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원하네.”

 

내가 백서로 만들자고 하니까 그는 처음에 자기 사례는 빼줬으면 한다고 말한다. 개략적으로 뭉뚱그려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체험만이라도 충분하다고 하니까 그는 더 심한 경험을 이야기해주면서 동의를 해준다. “스트레이트 100대라는 구타도 당해 봤지. 가슴 한 복판 동일한 위치에 정확히 100대를 주먹으로 맞는 구타 방법인데 맞고 나면 아파서 기침도 못하고 죽은 피가 흘러서 하체까지 피멍이 드는 그런 매도 맞고 버텼지. 한번은 참겠는데 두 번째는 진짜 죽겠더라. 그래서 다음 번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엉겨 붙어 끝장낸 적도 있었지.” 정말 일반인은 상상하기도 힘든 폭력이다. 이런 체험을 다시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동기의 이런 이야기가 참으로 용기 있는 고백이라 생각한다.

 

<세번째 사례> 홍** 대기업 임원?

“요즘 군대내 폭력 문제가 집중 터져 나오고 있는데 나도 4학년 1학기 마치고 79년 10월 **훈련소로 입대하여 군복도 입기 전에 민간인 복장의 장정시절에 내무반에서 3시간 넘게 폭행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날밤 불안, 설렘, 호기심 등 복잡한 심정으로 조신 있게 있던 중인데 느닷없이 옆 내무반 고참 하사가 들어와서 어깨안마를 하라고 했지요. 난 그저 투닥 투닥 두드렸는데 “이 새끼가 안마를 하나 구타를 하나”하면서 확 일어나서 째려보면서 ‘엎드려 뻗쳐’부터 마구시키는데 내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니까 그때부터 본격 때리고 차기 시작하여 7시부터 10시까지 폭행을 당했지요. 난 폭행당하면서도 그놈 얼굴을 정면 응시하면서 “아 저놈이 악마의 화신이구나.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고 속으로 이를 갈았지요. 지금도 그놈 얼굴을 기억합니다. 10시 취침나팔 때문에 폭행은 멈췄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11-12시, 1-2시, 3-4시에 걸쳐 3회 불침번을 서도록 지시하면서 그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내일 아침 전체 벌주겠다고 협박하여 골병든 몸으로 잠도 못자고 불침번을 3회 서게 되었지요. 동료장정들이야 공포감에 침묵했지만 우리 내무반장 병장은 왜 가만히 있었는지, 그 비굴함과 무책임감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 폭행하사는 정**, 군번은 얻어맞으면서 외웠는데 지금은 잊어 버렸네요. 제대를 1주일 앞두고 외부 산으로 싸리나무 작업을 나갔다가 고생하고 와서 화풀이했다고 나중에 들었지요. 다음날 의무대로 신체검사 가서 군의관한테 신고했고, 의무대장 면담을 요청해서 의무대장실에서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고 폭행자 정**을 처벌하고 방치자 내무반장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대장 대위가 불려와 내가 보는 앞에서 의무대장 중령한테 워커발로 조인트 까이고 나서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고향 초를 한 갑 주면서 피우라 하고 커피까지 직접 타주었지요. 악마 정하사가 바로 와서 내 온 몸을 안티프라민과 무슨 약으로 바르면서 하는 말이 “너가 항복하지 않고 계속 개기면서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아서 너가 무서웠다. 그리고 반성문 쓰라 할 때 쓰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거기서 그쳤을 텐데” 하면서 도로 나를 원망하는 투여서 기가 막혔지요. 법대로 군사재판을 받게 할 것을 계속 주장했지만 중대장이 **대 ROTC 말뚝인데 남한산성 군 형무소로 갈 경우 자기도 옷 벗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여 자대영창 최고인 15일 영창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문제 제기하지 않기로 했지요. 계속되는 가슴 통증을 느끼며 본격 훈련받던 중에 여호와의 증인으로 총 들기를 거부하여 영창 갔다 온 동료에게 정** 하사 영창 생활을 물어봤더니 그 새끼 하는 말이”제대 말년에 재수 없게 똥 밟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반성하지 않아서 아주 괘씸했던 기억이 납니다.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나올 때 소원수리제도가 있었는데 그때 중대장과의 약속을 지켜 아무런 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악마의 화신 정**을 지금 만나도 뺨 때기 때려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동기는 자신이 당한 부당한 폭력을 교훈으로 삼아 자신이 상급자가 되었을 때 그런 폭력을 없앴다고 한다. “내가 확 바꾼 게 아니라 내 입대 당시 구타금지가 실시되고 얼차려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일부에서 구타가 근절되지 않았던 게지. 그 때도 군 인권뿐만 아니라 군 전력 차원에서 구타금지를 강력 실시하긴 했었지. 그래서 구타 행위가 적발되면 처벌하였어. 내가 입대하니까 유신군대라 하면서 구타 없는 군대라고 홍보하더군. 그전에는 구타가 일반화되어 있었고 당연시 되었다더군. 내가 **3사관학교 병원 부대에 배치되어 일부 잔존하는 구타까지도 고참되었을 때 근절시켰다는 게야. 물론 나는 자대 배치 이후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었고 얼차려만 받았지. 만기 제대가 아닌 교련 혜택 6개월 단축 제대로 병장 고참 기간이 짧았긴 해도 그 기간만큼은 확실히 금지시켰네.” 이 동기의 경우를 보면 군내 폭력 문제는 책임자의 의지와 문화 개선 등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폭력을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상급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네 번째 사례> 이** 현직 기업 대표?

“ㅎㅎ**가 고생 많았구나.^^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하사로 수용 연대에서 차출되어서 훈련도 그렇고 자대에서도 병들과 싸우고 선임하사들한테 터지고. ㅠㅠ?

근데 빠따는 치면 안 되겠더라구. 내가 선임되면서 빠따를 안치니 제대 이틀 남겨놓고 후배들이 계곡에서 벌거벗은 채 슬레트 깔고 돼지고기 구워먹으면서 쏘주를 같이 하는데 빠따 한 대씩 맞아 보겠다는거여…술김에 그랬겠지만 속으론 이런~미친 놈 있나? 그러면서 벌거벗은 몸에 한 대를 때렸어…그랬더니 피가 근육 속에 터져 번지는 게 눈에 확 들어오는 거야…?

군복위로 때리니 그런걸 모를텐데 몇 십대씩 맞었을 땐 몰랐던거지. 암튼 폭력은 없어져야지..”?

 

이 동기의 경우는 농담삼아 빠따를 쳤을 때의 경험을 적어 주었다. 폭력은 피해자 못지않게 가해자에게도 충격과 고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런 사례도 있다. “내 동갑 외사촌도 자대에서 머리를 가격당해. 의병 제대 했고. 거의 집안 망하다시피 했고. 얼마 전 죽었지. 원호 대상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집안 마다 그런 사연들 하나쯤 있지.” (오**, 현직 대학교수) 군대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경우, 게다가 원호 대상으로 지정되지 못했을 경우, 그로 인해 한 집안이 붕괴되는 경험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모든 고통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다섯번 째 사례>?

윤일병 사건에 대한 단상 김** 현직 변호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어느 한 청년이 2달 동안 매일 폭행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어버린 최근 사건에 대해 세상이 시끄럽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지휘, 통솔라인의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해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여러 언론들이 북과 장구를 치고 있다. 이미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윤일병은 2달 동안 폭행을 당해 죽음에 이르는 시간동안 왜 항거하지 않았을까? 가해자들의 상급자에게 직보함으로써 군대 내의 폭력 상황에 대한 저항을 왜 하지 않았을까? 아마 윤일병도 이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했겠지만 저항해도 별 수 없다고 스스로 체념했을지 모른다.?

돌이켜 나의 군대생활을 회상해 본다.

내가 79년 1월에 육군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사단 ***연대에서 성스러운 병역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인 1980년에 전두환을 간접방식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위원선거가 있었다. 당시 주소지 동사무소에서 부재자투표용지가 오지 않은 30여명의 사병들 때문에 100% 투표율을 달성할 수 없다고 열이 받은 인사장교가 관련자 모두를 연병장에 모아놓고 뺨 한대씩 후려친 일이 있었다. 나도 그중에 끼어 있어서 느닷없이 뺨맞으면서 왜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뺨맞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억울해 했다가, 그 자리에서 인사장교가 나눠준 2박3일 휴가증을 받아 쥐고 병영을 나설 때엔 뺨맞고 휴가 나온 것이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도 했다. 그에 보답(?)하느라 서울에 있는 동사무소까지 가서 투표용지를 받아 결국 ***연대 100% 투표율 달성에 기여한 사실도 있었다. 이 때만 해도 군대에서 상급자로부터 폭행당하는 것에 대해 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때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은 상병시절에 10여명의 헌병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일을 겪고서야 나는 뒤늦게 저항했다. 내가 폭행당해야 할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했음에도 헌병들은 내가 끝까지 변명한다면서 30분이 넘도록 내게 무자비한 집단린치를 가했다. 내 눈은 밤탱이가 되고, 입술과 코는 터져서 피범벅이 되었으며, 허벅지와 등짝은 군화발로 짓이겨져 퍼렇게 멍이 들어 내 온몸은 완전히 망가졌었다. 사건의 내용인 즉, 당시 나는 ***연대 암호병이라 통신대 소속으로서 그 날 전화교환대 야간당직을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지켜야 하는 불침번이었는데 내 앞 불침번이 잠들었다가 나를 깨우지 않고 그대로 잠자다가 헌병대장의 전화를 받지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헌병들이 조사하다가 내 당직시간에 상황이 벌어진 문제를 두고 나를 추궁했으나, 앞 당직이 나를 깨우지 않아서 당직을 못 선 것이니 내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다가 나는 10여명의 헌병들에게 그야말로 개같이 얻어맞았던 것이다.

나 혼자만이 거처하는 암호실에 돌아와서 서럽게 울다가 이대로 참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나는 보안대장을 찾아갔다.?

연대암호병인 나는 2급 군사비밀에 해당하는 난수표 암호자재를 취급하기 때문에 보안대 관리 하에 있었다. 나는 보안대장에게 내가 헌병들에게 당한 일을 모두 이야기했고, 국가의 중요 군사비밀을 취급하는 암호병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헌병들에게 개취급을 당하여 자존심이 심히 손상된 나의 심정을 전달했다. 내 얘기를 들은 보안대장은 그 자리에서 문제의 헌병들을 보안대로 당장 오라고 소집시키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완전히 작살내버렸다. 내가 30분 동안 얻어 터졌다고 했더니 보안대장은 엉망이 된 내 몸을 그들에게 보여 주면서 10여명의 헌병들을 1시간동안 몽둥이찜질 및 군화발로 짓이기며 그야말로 아작을 내버렸다. 헌병들은 모두 반죽음이 되어 기어서 돌아갔다.

그 다음날 헌병대장(수 년 동안 진급 못한 고참 대위)이 나를 부르더니 내게 협박을 했다. 나 때문에 헌병들이 보안대장에게 아작이 났으니 앞으로 내가 제대할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서 반드시 내 호적에 빨간 줄이 가게끔 영창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준법생활을 철저히 하여서 결국 그의 호언장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때였고 고참 대위인 헌병대장은 준위 계급인 보안대장에게 직접 항의하지도 못하고 만만한 내게 화풀이만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는 121연대에서 사병들에게 그 위세를 떨던 헌병들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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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윤 일병은 저항하지 못했을까가 나는 정녕 안타깝다.

내년에 군입대해야 하는 내 아들에게 나는 오늘도 권했다. 맞아 죽을 때까지 2달동안이나 그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불의에는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소한 불의에 매번 시시콜콜 따지지는 말라는 친절한 말도 덧 붙인다.

세월호 사건, 윤일병 사건 등등 이성적 사회로서의 합리적 상태가 아닌 모든 비정상 사건들에는 가해자인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이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가해자를 비난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도, 또 세월이 흐르고 나면 다시 비슷한 사건들이 어김없이 되풀이 되고야 만다.

이 사회에 해 끼치는 자들에 대한 질타는 역사에도 항상 있어 왔기 때문에, 그러고도 또다시 되풀이 되는 추잡한 모습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가해자들에 대한 질타만으로는 안 되고,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이 사회 구성원 각자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내 일이 아니라며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다가 내게 구체적인 불의로 닥치고 나서야만 비로소 뒤늦게 정의에 대한 관심을 쏟고 소리치는 것은 위선이다.

위선이다.

위선이다.

이 사회가 아직도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정의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나와는 직접 이해 관계없는 일로 외면해온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나라를 방문하는 날이 다가온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이 동기는 부당한 이유로 무지막지하게 당한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한 경험을 통해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이 사회 구성원 각자가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폭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는 분명 필요하겠지만, 보통 사람 이상의 용기를 주문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이런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면 두려움 때문에 저항할 의지를 상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 그럼에도 폭력을 감수하고 묵인하기 보다는 강하게 저항하고 폭로하는 것이 폭력을 재발하는 데 훨씬 도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몇 안 되는 사례지만 충격적일만큼 끔찍스럽다. 수 십 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 고통의 체험이 너무 뼈저린 탓에 지금 들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오래 전의 이야기이고, 지금의 군 폭력 행태는 그 때와 다르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또 이런 사례를 적시하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왜 오래 전 이야기까지 들추어서 군을 음해하려고 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것처럼 군대는 국민을 외적으로부터 지켜주는 신성한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이런 군대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군대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집단이 된다면, 그런 군대는 결코 강한 군대가 될 수가 없다. 군대 폭력 문제는 일회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폐쇄적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의 시정되지도 않고 있다. 그러니 오죽하면 윤일병처럼 맞아죽던지, 아니면 육군 22사단의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인 임모 병장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이번 기회에 군대 폭력과 의문사, 자살, 총기 사건 등에 관한 백서같은 것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이런 백서가 군의 민주화와 개혁을 이루고, 국민의 군대와 강한 군대로 재탄생하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런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공개하는데 동의해준 내 동기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미래로 가는 길이다[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8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미래로 가는 길이다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 같은글이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2597

 

새민련이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부결했다. 박영선 비대위 대표 측도 재협상이나 추가협상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간과정이야 어떻든 잘한 선택이다. 유가족과 국민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임의로 합의 처리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비대위 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바로 여당과 합의한 박대표의 입지점이 대단히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새민련 내부에서도 그렇고 여당과의 협상 입지도 좁아졌다. 유가족과 참사 대책위의 시선도 좋은 편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예측 가능했음에도 왜 박대표가 협상안에 합의했냐는 점이다. 박대표의 현실 인식이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이른바 세월호 피로증을 앓고 있고, 조만간 교황이 방문하고 얼마 안 있어 추석으로 이어지면서 더는 이 상황을 끌어가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명분을 고집하기 보다는 일단 조사위를 유리하게 구성해서 진행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은 결정적으로 불가능하다.

 

첫째, 세월호는 정치인들이 입맛에 맞게 요리할 수 있는 의제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 그동안 교통사고니 시체 장사니 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불법적, 비도덕적 관행으로 인한 안전과 구호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과 국민들이 죽어간 사건이다. 이와 관련한 의혹도 부지기수로 생산되고 있다. 해경과 안행부의 조기 대책, 유병언의 도피와 관련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관계, 유병언의 죽음의 진실의 문제, 박대통령의 7시간 행방의 문제, 세월호 주인과 관련한 국정원의 관계, 향후 대책 수립과 제도 정비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적당히 덮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세월 호 참사는 시대적 과제이고 역사적 문제이다.

 

▲http://www.jabo.co.kr/ 16일 침몰한 세월호(전라남도 수자원과 제공)

▲http://www.jabo.co.kr/
16일 침몰한 세월호(전라남도 수자원과 제공)

둘째, 사안이 중차대하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같은 상태로 있을 수 없다. 9.11사태를 경험한 미국이 안전과 테러와 관련해 Before 9.11/After 9.11로 시대 구분을 하는 것처럼, 대한민국도 세월호 참사와 그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Before 4.16/After 4.16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역사의 향방이 그렇게 짜여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만일 정치인들이 안일하게 세월호 문제를 여타의 다른 사건 정도로 무마하려고 하면 할 수록 이 문제를 처리하는 사회적 비용과 시간, 그리고 국론 갈등 등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 특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지혜가 필요하다. 하물며 야당 대표가 적당 수준에서 합의해 처리할 수 없다. 지난 80년대 한국 사회가 광주의 희생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큰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사회적 진통을 겪었는가를 교훈삼아야 한다.

 

셋째, 박 대표는 세월호 정국이 오래 가다 보니 이른바 항간에 나도는 세월호 피로증과 같은 현실주의적인 인식을 했을지 모른다. 세월호의 여파는 경제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들에 깊은 충격으로 남아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피로증은 여권 핵심이 세월호 참사를 일반 국민들과 분리시키려는 고도의 책략 중 하나이다. 참사가 발생한지 120일이 되었지만 정치권에서 해결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 간에 국론 갈등도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력하고 무능한 야당은 문제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여권의 분리 전략에 말려든 셈이다. 이런 분리전략은 이미 80년도에 전두환 군사정권이 성공적으로 써먹은 경험이 있다. 피로증은 문제가 답보 상태에서 갈등만 심화될 때 나온다. 해결의 책임은 현 정부를 꾸려 나가고 있는 여권의 책임이고 순전히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지난 120일간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과연 이렇게 무능한 대통령이 있을까 할 정도이다. 세월호가 서서히 수장되는 골든 타임에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오죽하면 청와대에서 실종된 7시간이 논란이 될 정도이다. 배를 버리고 도망 나오는 선장들과 선원들을 보고 살인자라고 역정을 내고,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특별법과 특검을 약속해 놓고서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유병언을 검거하라고 닦달만 했지 정작 그의 시신은 유골이 돼서 일반인에 의해 발견되었을 뿐이다. 지금 이 무능한 대통령은 청와대 가신들의 뒤로 숨어 있을 뿐이다. 여의도 정치의 실종을 개탄하면서 민생을 이야기할 때 보면, 과연 대통령이 현 정국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대통령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한국 사회가 지난 97년의 금융위기를 비교적 빠른 시간에 잘 헤쳐 나온 데에는 정권교체와 김대중이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고, 국민들이 믿음을 갖고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후유증들이 없지 않았지만, 커다란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의 과단성 있고 지혜로운 행동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가 박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지도자의 역할이다. 세월호 피로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약속도 식언하는 믿지 못할 대통령, 세월호 참사의 역사성도 인식 못하는 멍청한 대통령, 난맥처럼 얽혀 들어가는 세월 호 정국을 방치만 하고 있는 무책임한 대통령이자 무능한 대통령 때문이다.

 

넷째, 아마도 박대표가 협상안을 성급하게 받아들인 데는 보궐선거에서의 참패로 인해 야권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참패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월호 정국에서 김한길/안철수로 대표되는 야당의 무기력한 대응과 잘못된 공천, 호남 정치인들의 안이한 판단 때문이다. 국민이 야당에게 원하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국민은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는 강한 야당,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비전 있는 야당, 참사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을 원했다. 야당이 참패한 것은 그런 모습과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대표가 이전 대표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반복하면서 현 정국을 돌파할 여력이 없다고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야당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이고 정치인으로서 역량이 의심스러운 모습이다. 그의 협상안은 8월 11일 새민련 의원총회에서 바로 부결되었고, 재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박대표의 입지도 더욱 좁아졌고, 때문에 현 시점에서 박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제한되어 있다. 먼저 박대표는 유가족과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협상안은 물 건너갔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다시 좌고우면한다고 혼선을 일으키면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 지금의 협상 정국 돌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표직이 아닌 의원직 총 사퇴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협상 정국의 단축을 위해 대통령과 직접 협상을 유도해야 한다. 지금 정국을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대통령의 결단 뿐이다. 다른 어떤 해결 방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같이 대통령에게 막중한 권한이 실려 있는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는 생활 정치, 민생 정치의 물꼬를 트는 역할도 대통령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여의도에서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말을 하기 전에 그들이 정치를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그 물꼬는 세월 호 문제를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온갖 갈등과 분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은 세월 호 정국으로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 물꼬를 트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들이 피로증에 걸려 분열되고 있다. 이 물꼬는 오직 성역 없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마련하는 일에서만 풀 수 있다. 대통령은 여당만을 위한 대통령이 아닌 국정의 총책임자이다. 요즘 항간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명량]은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 대첩에 관한 영화다. 장군이 말하지 않던가?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고. 박대표도 그렇고, 박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면 여권에 엄청난 부담이 되리라고 생각을 해서 막고 있다면 그건 오산이다. 정권의 생명은 약간 연장될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구태와 관행, 분열과 갈등 속으로 실종될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죽으려는 자세로 푼다고 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대통령, 역사에 기록되는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이런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정치적 지혜를 요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 대표도 안이한 현실 인식에 안주해서 살려고 하면 그의 정치 생명은 오래갈 수 없다. 우리는 과거 그런 정치인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박 대표도 이미 한 차례 경험하지 않았는가? 정치인들의 인기는 아침이슬과 같고, 물거품과 같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뢰감과 책임감이 있는 정치인이다. 그가 죽으려 한다면 반드시 박 대표의 죽음의 길에 국민이 같이 동반할 것이고, 죽어가는 야당도 국민이 다시 살릴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