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개 [내게는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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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래전 어딘가에 써놓았다가 처박아 둔 것이다. 세월의 변화를 감안하여 조금 손보았다. 재활용은 좋은 것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말을 입에 올리고 있을까?

말 많은 인간을 내지 않는 집안의 자손인 나는 일상생활에서 되도록이면 입을 많이 놀리지 않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공교롭게도 나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전공했다-

 

그러다보니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화에서 무척 고전한다. 최소한의 대답만 하는 나를 아주 거만하거나 버릇없는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건 터무니없는 오해인데, 왜냐하면 그럴때의 나는 다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중이거나, 상대방과의 화제를 찾기 위해 머릿 속에서 이런저런 대화의 상황을 백여수 정도 까지 진행시키는 중이거나, 아주 가끔 정말 상대방을 상종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새는 세번째의 경우가 증가세다.-

그래서 친구가 점점 적어진다.

있어도 멀어지는 중이다.

그 결과 말 수는 더 적어지고, 운동부족이 된 내 혀는 점점 뚱뚱해지고 있다.

한번은 내가 하루동안 무슨 말을 했는가 적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게 고작 “밥 줘”, “얼마여요?”, “응”, “아니”, “끊어” 뿐이었다.

 

혹자는 가족과 대화는 안 하는가고 짐짓 의아하게 생각할 테지만, 나에게는 가족이 없다.

가 아니고, 내가 밤 늦게 집에 가면 나의 모친께서는 붓글씨 쓰기에 여념이 없으신고로 나는 할 수 없이 가만히 모친의 곁에 앉아 불을 끄고 떡을 썰 운명밖에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떡을 잘 못 썰면 다시 도서관으로 쫓겨가야 한다. 참고로 난 한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오늘은 <타임>지에 ‘영향력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황우석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앵무개를 만들어 달라고 얘기해봤다.

나의 불행한 사정을 조용히 오랫동안 귀 기울여 주시던 황교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 황수관입니다.”

 

앵무개란 앵무새와 개의 교접종으로 나의 심각한 ‘대화결핍에 의한 공황 장애 및 과대망상을 동반한 조울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만들기 어려운 유전자 변형 생물이다.

처음에 나는 나의 심각한 ‘대화결핍에 의한 공황 장애 및 과대망상을 동반한 조울증후군’을 치료하는 데에는 애완동물이 제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되도록이면 말하는 동물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현재 애완도 가능하며 말까지 할 수 있는 생물이라면 대표적으로 앵무새가 존재하는데, 불행하게도 나는 새라는 새는 모두 무서워하는 ‘조류 공포증’을 지니고 있으므로 앵무새는 결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앵무새는 무척 크며 발톱도 무지막지하게 굵고 부리는 거대하며 덩치도 꽤 나간다. 섣불리 앵무새를 키웠다가는, 분명 어느 천둥번개 치는 밤 앵무새는 커다란 발톱과 무지막지하게 날카로운 부리로 허술한 새장을 찢어발기고는, 더할 나위없이 연약한 모습으로 잠든 나를 습격하고 말테고, 다음날 난 하의가 벗겨진  변사체로 발견될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왜 하의가 벗겨져 있는지는 끝내 미스터리로 남겨지기를 바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앵무새를 키우기 위해서는 키다리 존 실버나 플린트 선장 혹은 갈고리 후크 같은 이들의 직군에 있거나, 그것에 걸맞는 몸집과 정신세계를 지녀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나는 그런 직업 세계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무척 만족하는데다가,  뱃멀미에도 약하고, 카리브해는 커녕 캐리비안 베이에 가 본적도 없으니-생각해 보니 한 번 가봤는데,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추억이 생각나서 가보지 않은 곳으로 선포한다- 앵무새를 애완하기 위한 조건은 아무래도 만족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남은 대안은 유전자 변형을 거친 동물의 개발인데, 앵무새와 개를 조합한 앵무개는 분명 말도 할 줄 알테고 재롱까지 솔찮이 부릴 테니 나의 긴 이름의 증후군을 치유하기에는 무척이나 적합한 대안이라 하겠다.

 

더군다나 앵무개만 데리고 다니면 나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될 것이며, 영화와 CF와 앨범 판매와 게임으로 온갖 돈을 움켜쥐게 될 것이고, 앵무개가 수명을 다한다고 해도 미리 들어놓은 보험은 죽음에 의한 손해를 해소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희한한 동물에 의한 성공은 미국의 콜로라도주에 실재했던 머리 없는 닭 마이크에서 이미 증명되었으니 앵무개의 개발은 분명 대박이다. 그러니 난 생계를 위해 공부를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앵무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바티칸의 아르헨티나인 교황을 제거해야 하고,

황수관 박사의 방해를 따돌리고 황우석교수에게 소대신 개와 앵무새를 연구하도록 설득해야 하며, 그렇잖아도 희귀한 앵무새를 잡으러 돌아다녀야 한다. 물론 앵무새 보호 단체와의 전쟁은 필수다.

 

특히 마지막 조건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와 뉴기니아 등지의 지방 군벌들과 친분을 쌓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사업에도 관여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홍콩과 상해의 삼합회와 충돌을 일으킬 것이며, 중국에서의 조직간의 충돌은 어느덧 나비 날개에 실려 미국 해안가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킬 것이고, 미국 전역은 재해로 인해 온갖 난동과 범죄에 휩싸일 것이고, 이를 본 미대통령은 ‘기왕지사 또 전쟁하자’며 ‘불량국가들’과의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이런 고난을 뚫고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설적인 킬러 카를로스와 검은 9월단과 붉은 여단과 알카에다와 블랙팬더단과 벵갈의 호랑이단, BF단, 스펙터, 닥터이블, 아수라백작, 파란해골 13호, 친구, 양은이파 등등의 비동맹세력과 광범위하고도 집중적인 연대가 필요할 텐데…

 

문제는 이 많은 사업을 하려면 수 많은 사람들과 오만가지 언어로 수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또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말 없는 의사소통행위이론가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채식주의자 조스가 있다-, 나의 일명 ‘대화결핍에 의한 공황 장애 및 과대망상을 동반한 조울증후군’은 앵무개를 만들기도 전에 자연 치유될 것이며,

 

일단 치료가 된 마당이니 이제는 앵무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위의 무지막지한 집단들에게 알리면, 나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오백만번쯤 후회하게 되는 신세가 될 것이고, 흥분한 황수우석 교수팀은 앵무개를 만들다가 우연히 발견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려 워킹데드의 세상으로 만들 것이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쳇, 앵무개 하나 만들기 되게 힘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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