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철학 일지(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나의 철학 일지(1)

1)

나는 최근 정신현상학을 전체적으로 소개하는 책을 냈다. EBS에서 주간하는 시리즈, 고전 해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정신현상학을 소개하는 책이다. 청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자면, 전체를 꿰뚫는 줄기를 잡아서 내용을 단순화하여야 했다. 그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대체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이 어떤 잭인가?

정신현상학은 정체를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절대정신이 자기를 드러내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헤겔 자신이 정신현상학의 서문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정신이 무엇인가? 대체 이 문제에 부딪히면 종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정신현상학의 전개과정은 헤겔 자신의 세계사의 과정과 그렇게 쉽게 상응하지 않으니, 과연 정신현상학이 역사적 과정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혼란은 절망감을 낳는다. 대체 내가 머리가 나빠서 헤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헤겔이 미친 철학자인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나는 점차, 대체 내가 왜 정신현상학을 놓지 못하고 대학원 시절인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무려 40년간이나 붙잡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헤겔을 공부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철학자의 비난을 한몸에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거슬러 올라가면 마르크스도 헤겔을 비난한다. 그는 스스로 변증법에 관해서는 헤겔을 계승했으나 이런 변증법을 헤겔의 관념론으로부터는 구출해야 한다고 믿었다. 현대에 이르면 헤겔은 이른바 동일성의 철학자로 비난된다. 그런 말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아도르노와 베르그송이나 들뢰즈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가 헤겔을 비판한다. 현대 분석철학에 이르면 헤겔은 언어의 마술에 사로잡힌 둔중한 철학자일 뿐이다.

나는 헤겔을 하면서 주변에 이런저런 철학을 하는 사람을 만나, 이런 비난을 듣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헤겔을 놓지 않았다. 물론 나는 40년간 헤겔만 공부한 것은 아니다. 나는 헤겔의 이해에서 절망감이 들 때마다, 헤겔을 내던지고, 다른 철학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연구한 대표적인 철학자만 해도 마르크스, 프로이드와 라캉, 영화 철학 등 상당하다. 그런데 그때마다 다시 헤겔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남들이 누구나 인정하고 거의 비난 조 또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는 헤겔주의자인데, 대체 나를 헤겔로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만든 그 힘이 대체 헤겔 그리고 정신현상학 어디에서 있단 말인가?

이런 고민을 밝히기 위해 나는 내가 헤겔을 왜 공부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헤겔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하는 일지를 작성해 보려 한다. 나의 철학의 일지가 되겠으나, 여기에 무슨 인생의 모험과 같은 인생샷은 없고 그저 머리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때로는 한심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번민만 나열될 뿐이니 흥미는 없을 것이지만, 후일 헤겔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니, 번잡한 얘기라도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2)

헤겔주의자로서 내가 탄생한 것은 1980년 봄이었다. 나는 당시 대학원에 처음 입학학 신입생이고 한참이나 어린 후배들과 더불어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 교정은 박정희 사후 전두환이 군부 권력을 틀어쥐고 국가 권력 장악을 위해 음모를 꾸밀 때였다. 그때 대학 교정에서는 전두환의 음모를 깨닫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막을 힘은 없었다. 학생들이나 재야 지식인들은 전두환의 음모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으나, 그것은 전두환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그해 4월이 되자 학생들의 저항 움직임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저항의 시위는 가속화되었다.

대학원에 들어갈 때, 나는 현상학이라는 철학적 방법론을 공부하려 했다. 나는 대학 시절 학부 졸업을 후셀의 현상학의 이념이라는 책을 읽고 썼으며,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현상학을 가르치시던 윤명노 교수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하였기에 그분의 밑에서 현상학을 공부하려 하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대학원에서는 윤명노 교수님을 대신하여, 한전숙 교수님이 현상학 강좌를 개설했기에 한전숙 교수의 문하생이 되었다.

현상학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진리를 직접 인식할 수 있다는 본질 직관이라는 개념에 있었다. 현상학은 이런 본질 직관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언어 의미론으로 들어가서 의미의 내재성과 초월성을 가르쳤는데, 당시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이 딱 거기에 들어 있었다.

내가 이처럼 현상학적 방법론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대학 시절부터 실존철학에 깊이 빠져들어 갔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니체의 책을 발췌하여 만든 ‘초인의 철리’라는 책)을 읽었고 대학 시절에는 조가경 선생의 실존철학을 옆에 끼고(당시 나의 영문과 친구는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옆구리에 끼고 있어서 나도 흉내 내려 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말에 심취했다. 내 마음속에서 저런 언어가 막힌 것 없이 술술 자유롭게 흘러나오기를 기대했다.

또 나는 문학자로서 사르트르를 흠모했으며 사르트르처럼 살아보려고 밤 새벽까지 술을 먹고, 오전 늦게까지 자기를(당연히 모든 아침 수업은 땡땡이다) 반복했다. 유감스럽게도 사르트르처럼 호텔에서 살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사르트르가 ‘현대’라는 비평지에 발표한 철학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중간 상태의 글을 좋아했다. 그가 쓴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은 나의 성서이었고 ‘존재와 무’라는 그 두꺼운, 엉터리 번역 책(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이다)을 이해하려고 고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끝에 역시 실존철학의 기본적 방법론은 현상학이니 현상학을 이해하기만 하면 모든 게임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현상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3)

그런데 그해 4월 교정이 시위로 흔들리면서 우리 철학과 대학원생들은 점심 때면 교정을 산책하면서 다양한 대자보를 읽었고 저녁이면 술자리를 가지면서 시국과 철학에 대해 이런저런 논쟁을 거듭했다. 그런 가운데 이미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저항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인 후배들과 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선배 층은 후배 층의 너무 세속적인 말투에 충격을 받았고 반면 그 후배 층으로부터 낭만주의자라는 비난을 뒤집어썼다.

그때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를 지금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후배 층이 나에게 낭만주의라는 비난을 했다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남겼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즈음해서 낭만주의의 한계를 점차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배 층의 비판은 이런 나의 자각이 마음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나는 나를 그렇게 비판한 후배 층에게 속으로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70년대 초반 학번이다. 우리 학번은 내가 대학 4학년 시절 75년 김상진 열사의 의거를 기리는 저항의 봉화를 올렸으나 당시 박정희 정권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되고 말았다. 나의 대부분 친구들음 감옥에 끌려갔고 나는 다행히 그런 군홧발을 피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졸업했고 군에 들어갔다. 그 일년 동안 나의 마음은 비참함으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독재 정권에 대한 무기력감에서 나는 한편으로 절망감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나는 술주정뱅이로 전락했다. 거의 매일 아침에서 저녁까지 나는 술집에 앉아 있었다. 수업은 전폐했고 생활을 위해 대학 4년 내내 끊을 수 없었던 아르바이트는 심지어 술을 먹고 가기도 했으니, 매번 쫓겨나다시피 했고, 다행히 다시 또 얻었다.

나는 지금도 대학 졸업식이 생각난다. 나는 부모님은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었던 것 같으나 나는 매정하게 졸업식 날짜와 장소를 알려드리지 않았다. 그때 졸업식에 박정희가 참석한다고 해서 보이코트 운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부터 술에 취해 졸업식장에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행복했다. 꽃다발을 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당시 대학 졸업생의 취업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옆에는 많은 가족과 애인을 데리고 있었다. 나의 세상에 대한 절망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날 벤치에 앉아서 졸업식을 하는 학생을 보면서 나는 내가 졌다고 생각했고 나는 무엇을 더하기도 싫었고 이 세상에 남아 있기도 싫었다. 나는 76년 대학을 졸업하자 군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79년 5월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때까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의 논리는 사르트르나 실존철학의 참여 개념에서 나왔다. 그 관성에서 현상학을 공부하기로 했지만, 참여 개념에 기초한 낭만주의적 저항은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참여에 기초한 저항 개념과 다른 논리를 깨달을 수는 없었다. 그때 형은 낭만주의자요 하는 비판은 얼어붙은 내 마음의 빙판을 깨트린 것이다.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2)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2)

4)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도 변화하게 된다. 작가는 원망감을 지니면서 냉소했던 아버지에게서 어릴 때 친밀했던 아버지를 되찾게 된다. 이런 태도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곧 작은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이다.

작품 속에 너무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 등장하여 잘못하면 지리멸렬할 수도 있었던 소설을 구해준 것은 바로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의 관계가 서로 뒤얽히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일 것이다.

작은아버지의 에피소드는 이야기 초반, 중반, 결말에 흩어져 등장하면서 상승하는 곡선을 그리고 있다. 처음 등장하면서 작은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아버지를 원망하는 고주망태였다. 작품 중반에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어린 작은아버지는 면 당 위원장인 아버지를 토벌군에게 자랑하면서 오히려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 그런 죄책감이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원망감으로 변한 것이다.

작품의 끝에 작은아버지가 다시 등장하여 아버지의 유골을 껴안고 울면서 마침내 둘은 화해하게 된다. 그런데 작은아버지와의 관계의 발전은 딸인 작가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매개하고 있다. 이 매개가 소설의 2/3 부분에서 출현하면서 소설적 갈등의 전환점을 이룬다. 그 매개는 곧 작가의 가출사건이다.

작가 역시 아버지에 대해 원망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원망감은 아버지 때문에 사회적으로 진출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되는 데, 작가는 그 때문에 공부를 폐기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나날을 보낸다. 아버지가 계곡 너럭바위에서 작가가 읽던 소설책을 낫으로 베어버리자 작가는 그 길로 집을 나선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끝없이 걸어간다.

이때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안 것인지(아마 어머니의 부탁이 있었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타고 작가를 따라와 돌아갈 것을 종용하지만 작가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때 작은아버지는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족 또는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길은 끝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으로서 삶의 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아버지도 이미 그런 탈출을 모색했지만 그래서 끝내 버리지 못했고, 아버지도 다른 빨치산과 달리 구박받을 줄 알면서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작가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 가족이라는 뿌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런 뿌리를 운명애처럼 인수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다시 되돌아선다.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작은아버지의 등에서 쉰내를 맡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 쉰내 같은 게 혈육인가 싶었다. 나를 데리러 오가느라 밴 그 쉰내가 정겨운 듯도 역겨운 듯도 했다.”

정겹기도 하고 역겹기도 한 것이 곧 사람으로서 삶이다. 바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자신의 결혼식이 취소된 사건을 다루는데, 남편 될 사람이 부모의 강압으로 가족이냐 여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작가는 자신이 결단을 내려 결혼을 취소함으로써 담담하게 모든 운명을 인수한다.

5)

작가가 집을 나서려다 돌아선 것이 이 소설에서 결정적인 정점이다. 이 정점 이후 작가는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친밀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되살리게 된다. 작가는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모습을 회상한다. 어느 날 밤에는 멀리 보이는 불빛을 가리키면서 아버지는 그곳이 응암동 외삼촌 집이라며 거기 외삼촌이 보인다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아버지가 말한 외삼촌을 찾는다. 작가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멀리 아른거리는 불빛 속에서 응암동 외삼촌의 모습을 찾으려는 딸의 모습을 그려낸다. 딸이 아버지 등 위에서 까치발을 하고 엉덩이를 들어 고개를 내밀어 “어디, 어디”하고 찾는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 응암동이란 곧 아버지의 말을 통해 작가에게 전해진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 유토피아는 이제 사상적인 유토피아는 아닐 것이다. 그 유토피아는 사람으로서 삶이 살아가는 구례와 같은 유토피아가 아닐까? 이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모습은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았으나 작가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이 유토피아의 대강을 그려내고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곧 클레멘타인의 노래이다. 딸을 홀로 남겨두고 금을 캐러 갔던 아버지는 금을 가지고 돌아와 보니 딸은 이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회한을 담은 이 노래는 작품 속에 반어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 의미는 곧 자기를 버려 두고 금을 캐러 떠난 아버지에 대한 딸의 원망[怨望]과 금은 없더라도 아버지가 자기 옆에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는 딸의 원망[願望]이다.

이 노래는 아버지를 통해 새로운 세대인 노랑머리를 한 소녀에게 전해진다. 작가는 아버지를 잃은 소녀에게 이제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가 약속한대로 미용사 시험에 합격하면 술을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 구례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아버지가 필요하다. 딸을 결코 홀로 버려 두지 않는 아버지 말이다. 그런 규범은 거꾸로 자식에게도 요구된다. 자식 역시 아버지에게 무조건적인 충직함이 요구된다.

이런 충직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윤학수의 에피소드이다. 윤학수는 지역사회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아버지가 겪은 빨치산의 투쟁사를 연구한다. 그런 학수가 어느 날 아버지의 뺨에 손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흥분하여 동네 경로당으로 쫓아간다. 그러면서 작가의 표현대로 불학무식한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손댄 사람을 찾아 혼내려 한다. 아버지는 이 사건 이후 처음으로 학수를 집에 불러 술잔을 내려준다. 학수는 이제 자식으로서 인정받은 것이다.

6)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아버지의 위장 자수에 대한 작가의 재해석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산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새벽 불빛이 켜진 동네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위장 자수를 하기 위해 산을 내려 갔을 때 “세상은 환한 불빛으로 아버지를 맞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환한 불빛은 곧 작가가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보았던 응암동의 아른거리는 불빛일 것이다. 이 불빛은 곧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인 구례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혈육의 쉰내가 정겹기도 하고 역겹기도 하게 피어나는 곳일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 즉 사람으로서 모습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삶을 그동안 무겁게 뒤덮고 있던 원망감을 벗어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을 괴롭힌 것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야 한다는” 작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 한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7)

많은 독자가 작가의 작품에서 감동하는 것은 작가가 제시하는 사상으로서 삶에 대립하는 사람으로서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상과 사람은 대립하는 것일까? 사상이 사람을 떠나서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게릴라가 민중에서 고립되어서는 한 시라도 존재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사상을 떠난다면, 그런 삶이란 어쩌면 고여서 서서히 썩어가는 연못과 같은 곳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딸을 혼자 두지 않는 아버지나, 불학무식하게 충직한 아들의 이면을 작가는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과 사상의 통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적어도 작가가 우리에게 그런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사상과 사람: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1)

1)

제목에 나온 ‘해방일지’라는 말의 의미를 내가 착각한 것 같다. 작가가 빨치산의 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에, ‘해방일지’란 해방 시기에 작가의 아버지가 겪은 경험을 적은 것으로 이해했다. 작품을 읽다 보니, ‘해방일지’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작가가 겪은 경험을 적은 글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여기서 해방이란 아버지가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이란 사슬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일 텐데, 아버지의 삶을 묶어 놓았던 사슬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작가는 작품의 전반부에서 빨치산이었던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당히 냉소적인 태도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혁명가로서의 진지함을 평생 잃지 않는다. 작가의 아버지는 평생 이념을 지키며, 전봇대처럼 꼿꼿하게 살다가 끝내 전봇대에 부딪혀 뇌진탕으로 돌아가신다. 작가의 어머니는 사회주의를 “가난한 자가 인간 대접을 받는 사회” 정도로 이해하면서도 성스러운 신념으로 간직하는 데 그것은 풋사랑에 지나지 않는 첫사랑을 평생 기억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작가의 냉소적 시각은 두 빨치산의 혁명적 사상이 지닌 허점을 놓치지 않는다. 작가의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의 후손이며 사회주의 사상을 몸으로 겪기보다는 문자를 통해 배운 의식만 앞선 사회주의자다. 이런 아버지는 농사를 짓지만, 노동은 건성으로 하며 평생 정치적인 관심을 잃지 않는다. 어머니 역시 국졸이지만 그 당시로 본다면 지적인 인텔리에 속한다. 부모님의 대화는 필수적인 것을 빼놓으면 대부분 정세 판단이나 과거 빨치산 체험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그래도 장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물론적 솔직함에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자기의 딸인 작가의 외모를 평가하면서 하의 상 정도로 평가한다. 작가 자신은 아버지 평가 덕분에 평생 외모에 관한 관심을 버리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해 졌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 아버지가 “사람 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라고 평가한다.

이런 빨치산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고립되어 있다. 이 고립된 모습은 빨치산을 아버지로 둔, 장례식장 황 사장과 그 아버지의 동지였던 어머니의 포옹을 작가가 그려낸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저 느닷없는 친밀감과 포용이 퍼스트 클래스에 탄 돈 많은 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의 이런 서술은 너무 신랄해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2)

작가는 빨치산의 딸로서 사회로부터 무거운 압박감을 느끼면서 이 때문에 부모를 원망한다. 작가는 가능한 한 부모와 사회, 모두에서 떨어져 살고자 하면서 소설가가 된다.

작가는 평생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를 알지 못했으나 아버지의 장례식을 겪으면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흩어져 있다가, 장례식을 거치면서 하나로 모여들어 마침내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아버지의 그러한 모습을 그려내고자 한다.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은 마치 볼레로의 음악처럼 조금씩 더 크게 나타난다. 처음엔 아버지의 지게에 꽂혀 있는 “빨갛게 익은 맹감과 연자주빛 들국화”의 형태로 나타났다. 아버지는 동네 자청 머슴으로서 온갖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영자의 암내를 치료하게 하여 결혼할 수 있게 해주며,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경희가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위기를 구해주기도 한다.

마침내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은 아버지가 살려준 순경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빨치산 시절 보급 투쟁에서 다락에 숨은 순경을 순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면서 목숨을 구해주었다. 후일 순경은 빨치산에 가담하겠다고 아버지를 찾아왔으나, 아버지는 오히려 쫓아 보내고 만다. 후일 다시 만난 순경이 그렇게 쫓아 보낸 이유를 묻자 아버지는 이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 짝은 사상도 읎고 신념도 읎는디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울 것이요.”

작가는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 눈에 뚜렷하게 들어왔다고 하면서, 처음으로 딸로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다.

3)

아버지의 옛날 모습은 곧 사회주의 사상의 혁명 전사로서 모습이었다. 이제 새로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람으로서 모습이다. 작가는 두 아버지의 모습을 사상과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여기서 작가는 사상과 사람을 대립시키면서 사회주의자가 사상에 사로잡혀 사람을 놓친 것이 아닌가 비판한다. 작가는 거꾸로 사람이야 말로 뿌리에 해당하며, 사상은 그런 뿌리에서 나온 가지에 불과하고 이런 가지는 아무리 잘려 나가도 뿌리는 영원히 남아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런 뿌리를 작가는 구례라는 장소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구례는 아버지의 고향이었으며 빨치산으로서 전장이었고 또 체포 이후 남들과 달리 돌아온 고향이다. 이곳은 아버지와 같은 빨치산도 살고 그런 빨치산을 토벌한 우익 박한우 선생과 같은 사람도 살고 있다. 월남전에 참전해 다리를 잃고 아버지 같은 사람에 대해 원망감을 지닌 목발 짚은 노인도 산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 세대의 후손들도 아버지의 전쟁에 유산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때문에 육사에 입학하지 못한 장손자 길수 오빠, 빨치산을 아버지로 둔 황 사장, 어머니의 레포였던 여 동지의 딸인 떡집 언니, 아버지를 존경하는 민주노동당 당원인 박동식, 아버지의 전쟁을 역사로 기록하려는 지역사회연구소 연구원 윤학수,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로서 아버지에 원망감을 지닌 작은아버지 등이 모여 산다. 이 속에는 아버지가 자신의 첫 부인의 남동생이나 여동생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어머니 첫 남편의 동생이 아내와 더불어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 구례는 마치 인연의 끈이 촘촘하게 엮여 있으면서 사람으로서 인간의 삶이 전개되는 장소이다.

“구례라는 곳은 어쩌면 저런 기이하고 오랜 인견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 감옥일지도 모른다.”

이 속에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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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김성우: 빼앗긴 자유, 도둑맞은 공정
2/03 한길석: 참을 수 없는 ‘법치‘의 얄팍함
2/10 한상원: 법/권리의 주체는 누구인가? – 법치국가 담론이 놓치고 있는 것들
2/17 김종곤: 법률적 권력과 국가권력
2/24 전주희: 노동법은 어떻게 노동권을 허물었는가

♦ 수강신청: https://wp.me/pa0lZX-1Ir

♦ 강의 안내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제63회 정기학술대회 영상 [한국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 세션2 한국근현대사상의 심화와 확장: ‘동학운동’에서 ‘신생철학’까지

세션2
1부 13:00~15:00
◎ 1부 사회: 이병태(경희대)
● 발표 1: 13:00~13:40
– 발표: 김정철(한국국학진흥원) ‘대종교의 역사적 주체에 관한 연구 – 한얼과 아(我) 개념을 중심으로’
– 토론: 박병훈(서울대)
● 발표 2: 13:40~14:20
– 발표: 박영미(한양대) ‘최시형 동학에서 ‘民’ – 깨뜨림 같음 다름의 근대 읽기’
– 토론: 유현상(상지대)
● 발표 3: 14:20~15:00
– 발표: 윤태양(성균관대) ‘근대 전환기 신지식인들의 복고적 탐색의 한 경로에 대한 연구’
– 토론: 김우형(연세대)
2부, 3부(종합토론) 15:15~17:40
◎ 2부 사회: 이병태(동아대)
● 발표 4: 15:15~15:55
– 발표: 송인재(한림대) ‘『사상계』 정치담론의 지형’
– 토론: 진보성(방송대)
● 발표 5: 15:55~16:35
– 발표: 조배준(경희대) ‘윤노빈의 『신생철학』과 한울의 관계론 : 고통으로서의 분단과 행위로서의 삶’
– 토론: 배기호(중원대)
◎ 3부 사회: 이병창(동아대)
● 종합토론: 16:50~17:40
————————————————-
○ 주제: [한국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
○ 시간: 2022년 12월 3일(토) 12:30~18:00
○ 장소:
– 세션1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50307
– 세션2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50308
○ 주최: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주관: 성균관대학교 교양기초교육연구소
○ 후원: 한국연구재단

1부 동영상 링크 주소: https://youtu.be/WQroWb-1eiI

2부, 3부 동영상 링크 주소: https://youtu.be/AupgjEAb0NQ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제63회 정기 학술대회 영상 [한국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 세션1 한국근현대사상의 방법론 탐색: ‘전통’과 ‘근대’ 그리고 서양사상의 주체적 수용

세션 1
1부 13:00~15:00
◎ 1부 사회: 연효숙(연세대)
● 1 발표: 13:00~13:40
– 발표: 김문용(고려대) ‘신채호 상고사학의 사상성격에 대한 비판적 검토’
– 토론: 송호전(한국교원대)
● 2 발표: 13:40~14:20
– 발표: 이종란(조선대) ‘최남선의 근대 지향에 따른 전통사상 재구성의 방법론 고찰’
– 토론: 류시현(광주교육대)
● 3 발표: 14:20~15:00
– 발표: 김제란(고려대) ‘한용운 서양사상 수용 방법론에 대한 재검토’
– 토론: 유흔우(동국대)
2부, 3부(종합토론) 15:15~17:40
◎ 2부 사회: 김재현(경남대)
● 4 발표: 15:15~15:55
– 발표: 김교빈(성균관대) ‘정인보의 감통의 철학과 그 근대적 의미’
– 토론: 한정길(한림대)
● 5 발표: 15:55~16:35
– 발표: 이종철(연세대) ‘류영모의 인간관과 근대의 문제’
– 토론: 전호근(경희대)
◎ 3부 사회: 김재현(경남대)
● 종합토론: 16:50~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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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한국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
○ 시간: 2022년 12월 3일(토) 12:30~18:00
○ 장소:
– 세션1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50307
– 세션2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50308
○ 주최: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주관: 성균관대학교 교양기초교육연구소
○ 후원: 한국연구재단

1부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gIZUaXR9Zi8

2부, 3부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ohC67ZHeSFw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2년 가을 제63회 정기 학술대회(12월 3일) [한국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 스케치영상 및 개회식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2년 가을 제63회 정기 학술대회 개회식(12:50~13:00)
– 개회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박정하)
– 축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 김교빈)

○ 주제: [한국근현대사상의 비판과 재구성]
○ 시간: 2022년 12월 3일(토) 12:30~18:00
○ 장소:
– 세션1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50307
– 세션2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50308
○ 주최: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주관: 성균관대학교 교양기초교육연구소
○ 후원: 한국연구재단

동영상 링크 주소: https://youtu.be/Dt4fMfk444Y

동영상 링크 주소: https://youtu.be/A3IBbQumeT8

아니 에르노와 사건(2)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아니 에르노와 사건(2)

-두 작품 <단순한 열정>과 <사건>을 통해서

 

4)

<단순한 열정>에서 작가가 겪은 사건은 나이가 어린 유부남인 외국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사건이다.

주인공은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서서히 일상의 세계는 의미를 상실하면서 모든 것은 그 남자의 사랑과 연관된다. 남자와 만남이 정해지면, 주인공은 일체를 잊어버리고 남자와의 사랑을 위해 준비한다.

그러나 그 어떤 대화나 표현도 남자의 사랑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하다. 오직 육체적 관계만이, 남자의 성욕이 살아 있을 때만이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욕망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

“우리가 함께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아니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단순한 열정, 39쪽)

그러나 그 순간은 한순간이다. 남자가 떠난 이후 주인공은 남자가 아내나 다른 여자와 만나는 것을 상상하면서 질투에 빠진다. 주인공은 이 질투를 이기기 위해 마치 오연한 듯한 태도를 취해 본다. 또는 거꾸로 남자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혼자서 피렌체로 바캉스를 떠나지만, 이 모든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만약 그런 경우를[남자가 다른 여자와 차를 타고 가는 경우] 당하더라도 오만하고 무심하게 보이기 위해 짐짓 태연한 척 똑바로 몸을 펴고 걸었다. … 그가 분명히 다른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탈리앵 거리를 진땀을 흘리면서 걸었다.”(단순한 열정, 38쪽)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가 마치 글을 쓰듯이 피렌체에 나의 열정을 새겨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걸을 때나 박물관을 둘러볼 때나 A의 영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단순한 열정, 47쪽)

이미 예고된 헤어짐은 홀연, 아무 이유도 설명됨이 없이 일어난다. 외국인인 그 남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삶이 마비된다. 주인공은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는 고통과 죽음과도 같은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겪으면서 두 달이 지나자 작가는 이 사건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영원히 이 상태를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5)

두 사건은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죽음을 체험하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 날밤 청소년기부터 간직해 온 내 육체를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생기잇고 비밀스러운 성기가 달려 잇던 육체를….나는 전시되고 사방으로 벌려진 성기와 바깥으로 열어서 긁어낸 배를 갖고 있었다.”(단순한 열정, 69쪽)

다시 태어난 주인공에게 세상은 “너무나 의미가 많은 존재와 사물이 있는” 세계이며, 그러나 기존의 말로는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순수한 의식이 흥분된 상태에서” 보여지는 세계이다. 작가의 이런 말들은 마치 사르트르가 발견한 즉자의 세계를 암시한다.

작가가 사건을 통해 접한 세계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에서 들려오는 신성한 세계이다.

“그리고 합창이 들렸다. Wohin! Wohin! 거대한 지평이 열렸고 ….고통과 영원한 죽음 속에 녹아내렸다. 구원받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열정>에서 주인공은 열정이 사라지고 점차 일상의 세계가 돌아온다. 그러나 때때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잠시동안 거대한 고요함이 내 안에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 된다.”

여기서 ‘거대한 고요함’이란 앞에서 사건에 말한 ‘신성한 것’과 같은 의미이리라.

7)

작가는 두 가지 사건, 임신중절과 단순한 열정을 겪으면서 이 사건이 지닌 끔찍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존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사건의 흔적을 찾아서, 그 사건의 원형을 발견하려 한다.

이런 사건의 원형을 발견하기 위해 작가는 세심한 글쓰기 전략을 추구한다. 두 작품은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사건은 일어난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된다. 사건에 관한 인과적 설명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이 사건이 이미 일상의 세계 속에서 그 흔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는 사건을 입증해줄 자료인 일기나 사진과 같은 일차적 자료에 기초한다. 이런 일차적 자료는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기록된 것이기에 생생하기는 하지만, 주관의 감정적 개입이 심하며, 아직 사건의 본래 의미가 드러나기 전에 작성된 것이기에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작가는 일차적 자료를 따르면서도 일정한 시점 뒤에서 회고적으로 개입하여 재서술한다. 그 시점이란 곧 작가가 자신이 겪은 사건에서 끔찍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글을 써야 하겠다는 강박을 느꼈을 시점이다. 작가는 이런 회고 가운데서 사건과 무관한 사실을 제거하며 냉정하고 순수하게 사건을 드러내려 한다.

그 사건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낙태이며 불륜이며 작가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도전이며 모험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감정적 판단이 개입하니, 이는 사건의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관점과 감정적 판단을 서술에서 배제하려 하려 한다.

작가는 사건을 그 사건의 원형 그대로 순수하게 파악하려 한다. 그러나 그 원형은 주관적인 작가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에 있을 것이니, 작가는 다시 자신이 서술한 글에 주석과 보완을 더한다. 주석과 보완은 때로는 작품 속에 차별적으로 표시되지만 작품의 내용 속에 녹아 들어가서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 결과 때로는 작품의 지문이 어떤 서술시에 서술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작가의 글쓰기는 3차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글쓰기이다. 작가는 이런 글쓰기 방법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열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정당화되어야 할 실수나 무질서로 여겨질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거대한 열정 27쪽)

‘있는 그대로’란 곧 사람과 죽음을 초월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는 사건의 진실을 말한다. 그런 진실만이 사건이 지닌 끔찍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이다. 작가는 <사건>의 첫 페이지에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중적인 소원, 사건이 글쓰기가 되고, 글쓰기가 사건이 되는 것”


아니 에르노와 사건(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아니 에르노와 사건(1)

-두 작품 <단순한 열정>과 <사건>을 통해서

 

1)두 가지 세계

세계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일반적인 시선인데 주어 중심의 세계를 낳는다. 여기서 세계는 모두 어떤 주어가 지시하는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주어는 술어를 통해 다른 사물과 관계하며, 다른 사물로 변화해 나간다.

반면 술어 중심의 시선이 있을 수 있다. 이 시선에서는 세계는 술어로 이루어지며 이 술어가 다른 술어와 교차하면서 이런저런 사건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사랑은 죽음과 만나면서 사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생겨난다. 사랑은 질투와 만나면서 질투에 사로잡힌 사랑이 생겨난다.

사랑으로 죽어갔던 베르테르와 사랑으로 죽은 윤심덕은 동일한 사건의 반복일 뿐이다. 여러 술어가 상호 교차하면서 사건의 네트워크 공간이 이루어진다. 사랑과 환희, 죽음은 서로 교차하면서 사랑의 공간을 이룬다. 사건이 시간적으로 계열화하면서 어떤 대상이 출현한다. 나라는 존재는 일련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지점에 불과하다.

이미 어떤 사건의 공간 속에 있는 나에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그 사건은 기존의 나에게서 어떤 조짐을 보이다가 마침내 현실화한다. 사건은 더욱 두터워지고 무게를 더하면서 기존의 나를 파괴한다. 나는 갑자기 기존의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존재, 짐승이나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나를 사로잡고 마침내 나를 넘어서면서 나는 새로운 나가 된다. 이걸 사건의 전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

카프카는 이런 사건의 전개과정을 <변신>이라는 소설로 그려냈다. 이상의 작품 <날개>도 이런 사건의 전개과정을 그린 소설로 볼 수 있겠다.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 역시 이런 사건의 전개과정을 주제로 두 편의 소설을 썼다. 하나는 1991년 쓴 소설 <단순한 열정>이며 다른 하나는 1999년 쓴 소설 <사건>이다.

<사건>은 작가가 대학생 시절 1964년 2월 20일에 밤에 부딪혔던 사건을 다룬다. 작가는 1991년 자신이 겪은 단순한 열정을 글로 쓰면서 마지막에 1964년의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한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사건이 일어난 그 장소를 다시 찾아본다. 이 사건은 끊임없이 작가의 마음을 강박하면서 마침내 8년이 지난 다음 <사건>이라는 소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작가가 겪은 단순한 열정과, 그 원형으로서 그 사건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둘 다 끔찍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아름다움 때문에 작가는 이를 글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이를 신성한 것으로, 자긍심을 주는 것으로 기억한다.

“신성한 무엇처럼 [1964년] 1월 20일과 21일 밤의 비밀을 내 몸속에 간직한 채 거리를 걸었다. 내가 공포의 끝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끝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긍심을 느꼈다. …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 가려고 하지 않는 곳까지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긍심처럼 생각되었다. 이 감정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쓰게끔 이끌었다.”(사건, 75쪽)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단순한 혈정, 59쪽)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단순한 열정, 66쪽)

3)

작품 <사건>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은 작가가 대학생 시절 겪은 임신중절이라는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임신중절을 불법이었다. 작가는 “알코홀 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 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운명을”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을 피해 임신중절을 결심한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자 임신은 이제 이해할 수 없이 다가온,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이 사건은 이제 이름도 없어진다. 주인공은 이 사건을 그저 ‘그것’이라는 말로 부를 뿐이다.

처음에 이 사건은 아직 피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나타나지만 점차 그 두터움과 무게를 더하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닥쳐온다. 이 사건으로 주인공은 사회로부터 배제되며, 논문 작성이라는 자신의 과제에도 충실할 수 없다. 주인공의 삶은 혼돈에 빠져든다. 주인공은 이 혼돈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알지 못한다.

“시간은 내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모든 수를 써서라도 파괴해야만 했던,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사건, 21쪽)

“따라가야 할 길도, 따라야 할 표지도 아무것도 없었다.”(사건, 27쪽)

“이제 이념의 천국[여대생으로서 삶]에는 다가갈 수 없어 보였고 그 아래로 구토하며 진창에 빠진 내 육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사건, 33쪽)

주인공은 불법 시술을 받으며 마침내 자기 뱃속의 생명을 살해하여 변기에 버리는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 사건이 1964년 1월 20일 밤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주인공은 죽음과 심판을 경험한다.

“그리고 내 허벅지 사이에 그것을 꼭 끼고 복도로 걸어나갔다. 나는 짐승이었다.”(사건, 64쪽)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장면이었다.”(사건 65쪽) “그 밤은 삶과 죽음의 순수한 경험에서 폭로와 심판의 자리로 바뀌었다.”(사건 66쪽)

작가는 이런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 일체의 인과적 관계를 거부한다. 작품 속에는 인물이나 환경의 구체적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오직 사건이 출현하여 주인공의 마음과 삶을 엄습하는 모습만이 서술되어 있다. 사건은 마치 우주인의 침공처럼 한바탕 전쟁을 일으켰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고(故) 김우철 교수의 「『자본』의 변증법적 모순구조」(1993)에 대한 논평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노동력 소유자의 주체는 노동력 사용자의 주체인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본을 이해하는 열쇠이다.1

 

박종성(건국대, 한철연 회원)

♦ 이 글은 『시대와 철학』 제33권 4호(2022년 겨울호, 12월 31일 발간)에도 기고글로 동시 게재합니다.

 

이 글은 고(故) 김우철 교수의 「『자본』의 변증법적 모순구조」(1993)2에 대한 논평이다. 먼저 김우철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첫째, 『자본』에 적용된 변증법적 방법의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본다. 이 두 가지 문제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변증법적 모순과 형식 논리적 모순의 구별, 변증법과 유물론의 관계(‘중층적 모순’)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자본의 내적 논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본의 내적 논리 규명의 이론적 과제는 본질과 현상, 추상과 구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는 모순이라는 주제로 압축된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의 긍정적 이해 속에서 그것의 부정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모순의 인식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우철 교수는 둘째, 『자본』의 서술에서 ‘논리적 모순’의 지위를 살펴본다. 맑스가 자본의 일반 정식, 즉 ‘화폐-상품-화폐’(좀 더 분명히 말하면 화폐’일 것이다. – 논평자)를 처음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이 자본의 모순규정을 주장한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할 수도 없고 또 마찬가지로 유통에서 발생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해야 하는 동시에 유통에서 발생해서는 안 된다.”

 

위 인용문은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 형식 논리학의 모순은 ‘A는 (A인 동시에) A가 아니다’ 혹은 ‘A는 B인 동시에 B가 아니다.’ 위 인용문은 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자본의 모순규정은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3으로 위 문장의 논리적 모순은 해소된다. “사용가치 자체가 가치의 원천”인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에 주목해야 한다. 화폐-노동력의 교환은 가치법칙을 따르는 동시에 따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화폐-노동력의 교환은 가치법칙을 따르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이지만 화폐-노동력의 교환은 가치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력의 ‘사용가치’이다. “노동력이 그 자체 상품이 되고 이 특수한 상품의 경우 자신의 교환가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용가치가 바로 교환가치를 창조하는 힘이라는 데서 생겨난다.” 그러니까 노동력의 가치 크기는 자신이 사용되는 데서 창조되는 가치 크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화폐-노동력의 교환에서 가치법칙(등가교환)을 따르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인 반면, 가치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은 노동력의 ‘사용가치’, 곧 생산과정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가치이다. 따라서 위 인용문은 현상적으로 ‘A는 B인 동시에 B가 아니다.’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A’는 B이고 A”는 B가 아니다.’의 구조이다. 즉 자본의 ‘논리적 모순’은 새로운 탐구로 이행하기 위한 문제 제기이다. 노동력의 가치와 사용가치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전제하지 않으면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상호제약 관계이다. 그러니까 교환과정에서 등장하는 ‘상품’은 가치를 갖지 않고서는 사용가치로 실현될 수 없으며 또 사용가치를 갖지 않고서는 가치로 실현될 수 없다.

노동력의 사용가치(A’)와 가치(A”) 사이에는 상호제약적, 내적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용가치와 가치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결국, 변증법적 모순은 형식논리의 언어로 충분히 표현될 수 없다. 다시 말해 A’와 A”의 내적 통일성은 동일성(A)으로 환원될 수 없고 단순히 상호 무관한 것들(A와 B)도 아니다. 그래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모순을 정식화한다.

 

“공속해야 할 내적 필연성과 상호무관한 자립적 존재는 이미 모순의 기초이다.”

 

그래서 자본의 모순은 궁극적으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와 사용가치가 상호종속적인 동시에 상호자립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왜 노동의 이중성(사용가치, 가치)은 상품교환 사이에서 모순으로 정립되는 것인가?

김우철 교수는 이러한 점을 살펴보기 위해 셋째, ‘상품의 모순과 그 전개과정’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사용가치와 가치의 모순이다. ‘가치’는 상품을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위선으로 가득 찬 매우 기묘한 물건”으로 만든다. 그러나 “가치 대상성에는 한 조각의 자연 소재도 들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인가? “노동생산물의 가치 관계는 노동생산물의 물리적 성질이나 그로부터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절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서 그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는 사물들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상품가치 속에 표현되고 있는가? 구체적 유용 노동은 상이한 형태인 추상적 인간 노동(교환의 기초, 사회관계의 기초)을 매개로 해서만 사회적 성격을 인정받는다.

이제 모순의 실현과 해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용가치로부터 가치가 완전히 자립된 형태인 화폐는 자신의 고유한 기능(가치척도, 유통수단, 지불수단)에서 볼 때 인간의 자연적 욕구를 위한 사용가치를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모든 생산자의 사회관계를 매개하는 보편자가 바로 화폐이다. 화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화폐는 그 자신 상품으로서 어느 누구의 사유 재산으로 될 수 있는 외적인 물체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힘이 개인의 사적인 힘으로 된다.”

따라서 자본의 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화폐-상품-화폐’에서 사용가치와 가치의 상호공속성은 가치에 대한 사용가치의 종속으로 의미가 바뀐다. 그래서 화폐는 “과정 전반을 포괄하는 주체”이자 자기 매개적 주체이며, 자신의 대립물을 자기 바깥에 갖지 않는 ‘절대자’이다. 이제 화폐는 한편으로 살아 있는 노동을 지배하는 가치, 곧 과거 노동이 자본가 속에서 인격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는 단순한 대상적 노동력, 곧 상품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하여 김우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논의를 결론짓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오로지 자본의 통제와 주도 아래에서 발휘되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자본의 내재적 생산력처럼 나타난다.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 소유자의 사회적 지배력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물신주의, 이것이 바로 자본이 이룩한 업적이다.”(209쪽).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 소유자의 사회적 지배력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노동력 소유자의 주체는 노동력 사용자의 주체인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자본을 이해하는 열쇠일 것이다. 자본 소유자의 사회적 지배력으로 전도된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력을 다시 전도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박종성 지음

가치가 삶의 목적인 이곳에서

사용가치가 삶의 목적인 그곳으로

 

사용가치 자체가 가치의 지배를 받는 곳에서

사용가치 자체가 가치의 원천인 곳으로

 

추상적 인간 노동이 사회관계의 기초가 되는 곳에서

구체적 유용 노동이 사회관계의 기초가 되는 곳으로

 

추상적 인간 노동을 매개로 해서만 구체적 유용 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인정받는 곳에서

추상적 인간 노동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구체적 유용 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인정받는 곳으로

 

노동력의 가치가 사용가치를 종속하는 곳에서

노동력의 가치와 사용가치가 서로 함께 하는 곳으로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

사물들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는 곳에서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

인간들의 관계라는 현실적 형태를 취하는 곳으로

 

판매를 위한 구매가 유통과정인 곳에서

구매를 위한 판매가 유통과정인 곳으로

 

자본으로서의 화폐가 지배하는 곳에서

화폐로서의 화폐가 지배하는 곳으로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지배하는 곳에서

산 노동이 죽은 노동을 지배하는 곳으로

 

모든 생산자의 사회관계를 매개하는 보편자가 지배하는 곳에서

 

그렇지 않은 곳으로,

 

그곳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고(故) 김우철 교수(1960 ~ 202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