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1)

헤겔 미학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논제는 예술의 과거성 테제일 것이다.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운 시절과 중세 후기의 황금시대는 사라졌다[sind voruber].” (미학강의1, 30쪽)[1]

“최상의 규정이라는 면에서의 예술은 우리에게 과거의 것[Vergangenes]으로 존재하며 또 그렇게 남아 있다. 이로써 예술은 우리에 대해 진정한 진리와 생명성도 역시 상실했으며[verloren], 예전의 필연성을 현실 속에서 주장하여 한층 높은 지위를 점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표상 속으로 그 자리를 옮겼다.”(미학강의1, 30쪽)

 

이런 구절에서 헤겔은 ‘사라졌다’ ‘과거의 것’ ‘상실했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소위 예술의 과거성[vergangen] 테제가 출현하게 되었다. 예술의 과거성 테제는 고전주의 시대인 그리스 예술작품에서 미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고전주의의 미적 작품은 예를 들어 그리스 조각 작품에서 보듯이 예술의 내용인 이념을 이상화 된 감각적 현존을 통해 표현한다. 이렇게 이상화 하는 가운데 고전적인 아름다움 즉 조화와 비례가 갖추어진다. 이 조화나 비례는 아름다움의 정점이었다.

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예술의 퇴락이다. 낭만주의 예술작품 가운데 인정할 만한 게 있다면 고전주의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르네상스 시절의 종교화나 괴테의 고전주의적 작품이 그렇다. 그 외에는 뭐 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성 테제는 예술의 시대는 그리스 고전주의 이후 지나갔다고 주장한다. 

 

2)

이 과거성 테제는 헤겔 미학 강의 텍스트 자체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2] 이 논쟁에서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과거성 테제를 찬성하는 사람은 곧 헤겔이 그리스 예술을 이상화하는 고전주의자라고 보고 위의 말을 과거성 테제로 해석한다.[3]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헤겔의 위의 말은 헤겔 미학을 편집한 편집자 호토의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성 테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힘들다. 굳이 낭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의 탁월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헤겔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네델란트 풍속화를 칭찬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으며, 더구나 회화나 음악, 시문학은 낭만주의적 예술 장르라고까지 주장한다. 중세 이후 낭만주의 예술을 부정한다면,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고전과 핵심적 예술 장르를 버려야 할 지경이다.

 

3)

호토가 헤겔을 왜곡했는지는 제쳐두고 위에서 언급된 ‘지나갔다’는 헤겔의 발언조차도 엄밀하게 살펴보면, 과거성 테제로 해석하기 어렵지 않을까? 위의 구절에서 ‘최상의 규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예술’이 사라졌다고 할 때, ‘최상의 규정’이라는 말의 의미가 문제가 된다. ‘최상의 규정으로서 예술’은 고전주의 미학자들이 믿듯이 그리스 예술이 인류의 최고 예술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과거성 테제가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예술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헤겔은 그리스 시대는 예술이 종교나 철학을 제치고 절대정신을 대변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판단의 구체적 근거로 그리스 신화조차도 호머의 서사시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과거성 테제는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그리스 시대가 지나갔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후 그리스 시대보다 더 탁월한 예술이 나오기도 했지만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자격에서 예술은 이제 철학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스 시대,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헤겔은 이 시대 예술의 내용이 되는 신은 곧 민족신이라고 규정한다. 민족신은 그 이전 자연신의 단계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각 민족에게 고유한 개별적 신이다. 개별적이라는 것은 곧 감각적인 것과 같은 말이니 헤겔은 그리스 신이 개별 신이기에 외적인 감각적 현상으로 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신 자신이 민족신으로서 감각적으로 현상하므로 감각성에 머무르는 예술이 이 시대에 종교를 제치고 지배적인 절대정신이 된다. 하지만 이런 민족신을 이해하는 데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다는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산수 정도는 초등학생이 가장 잘한다는 뜻이다.

 

4)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 시대에도 예술이 여전히 ‘진리와 생명성’을 주장하려면 이 시대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 문제가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 시대 예술은 근본적인 난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헤겔의 역사관에서 중세 이후 근대까지 이어지는 주관성의 시대이다. 이 시대 예술이 곧 낭만주의 예술인데 낭만주의 예술의 내용이 되는 것은 유일하며 보편적인 기독교 신이다. 그 신은 감각적 현실을 초월하는 신이다. 이 신은 우상숭배금지의 원칙에서 보듯 자신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신이다.

초월적 유일 보편 신을 어떻게 감각적 예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을까? 헤겔이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을 특징성에 두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특징성란 곧 셰익스피어의 희극의 주인공이 지닌 것과 같은 권력욕(맥베스) 질투(오델로) 등 주관적 성격을 말하는데, 이런 특징성 자체가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특징성이 예술의 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추가 예술의 원리가 된다는 주장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추가 예술의 한 요소는 몰라도 기본 원리로 인정되기는 어렵다.[4]

설혹 괴테나 실러의 고전주의적인 작품에서 보듯이 그리스적 예술작품의 흉내를 내더라도, 우선 우수꽝스럽다. 미켈란제로가 예수의 모습을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 표현했을 때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낭만주의적 인물이 기독교적 신을 표현하는 한에서는 여전히 우상숭배 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니, 아마도 후일 성상 파괴 운동에서 보듯이 교도의 도끼 아래 파괴되고 말지 않을까?

그렇다고 예술이 감각을 떠나 개념을 사용하거나 불립문자와 같은 방식으로 수수께끼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을까?

 

5)

헤겔은 낭만주의가 표현하는 신이 초월적 신일뿐만 아니라 인격신이라는 데서 모든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인격신이라는 말은 곧 신이 우리 눈앞에 자신을 직접 계시한다는 말인데, 계시된 신의 존재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신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무상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은 그가 곧 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의 탄생과 죽음은 신의 인격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기서 감각적 예술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즉 낭만주의 시대 예술은 신의 인격성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현상이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헤겔은 이를 곧 가상이라 규정한다.[5] 낭만주의 예술의 근본적 원리는 바로 감각적 가상이다.

헤겔은 예술은 이념의 가상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가상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낭만주의 예술에 와서이다. 이집트 예술은 신을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으로 표현한다. 그리스 신은 이상화 된 현상으로 출현한다. 낭만주의 시대 신은 자기 부정이라는 가상을 통해 출현한다. 예술의 개념 즉 이념의 가상이라는 개념은 상징과 현상을 거쳐 가상에 이르러 자기를 실현한다. 그러니 헤겔에서 예술은 고전주의가 아니라 낭만주의에서 완성된다고 하겠다.

 

5)

예술이 낭만주의에 와서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술이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에 대한 유일한 표현이거나 최고의 표현은 아니다.

인격신은 가상을 통해 표현되더라도, 감각적으로 표현되는 한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수의 탄생과 죽음은 사실 신이 현현하는 모습인데, 인간의 눈에 그저 자연적인 탄생과 죽음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서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경우이다. 헤겔이 예술이 ‘진리와 생명성을 상실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감각성이 지닌 이런 한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시대에 헤겔은 인격 신을 표현하는 절대정신의 대변자로서 자격을 철학에 넘겨준다. 철학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자기반성적인 사변적인 개념을 통해 인격 신을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심지어 예술은 진리를 알고 있는 철학의 반성 대상이 되어 그 자리를 앞에서 인용 귀절에서 말했듯이 ‘표상 속으로 옮기니’ 여기서 ‘예술에 대한 학문’으로서 미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죽은 왕의 후궁처럼 구중 궁궐에 숨어 지내야 한다 말은 아닐 것이다. 우선 철학이 인격신을 사변적으로 표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변적 개념에 기초한 철학은 헤겔 철학에 와서야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 추상적 사유에 기초한 철학 즉 근대철학보다는 차라리 예술이 낫다. 왜냐하면 예술은 비록 한계는 가지지만 가상을 통해 인격신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변철학이 등장하여 인격신을 표현하더라도, 이런 사변철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말했듯이 사변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사변철학보다는 예술이 훨씬 쉽게 인격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낭만주의 시대 끝에 이르러 사변철학이 등장하고 마침내 인격신의 비밀이 대중적으로 폭로된다면 예술은 어떻게 되는가? 헤겔은 낭만주의 예술형식의 발전 끝에 예술 자체의 종언을 제시한다. 이것은 흔히 과거성 테제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논제이니 추후 살펴보기로 하자.


[1] 헤겔, 미학 강의 1, 이창환 역, 세창, 2020

[2] 헤겔은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학을 처음 강의한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1821 겨울, 1823년 1826년 1828년 겨울 네 번에 걸쳐 강의했으나 자신의 강의를 출판하지 못하였다.

1831년 헤겔 사후, 헤겔 강의록 출판의 흐름 속에서 헤겔의 미학강의도 출판되었다. 미학강의는호토[H. G. Hotho]가 처음으로 1835년 편집하여 불멸자의 친우판 전집으로 발간했고 1842년 개정했다. 호토는 헤겔 자신의 베를린 시대 23년 강의 수고와 자신의 필기록을 대조하여 편집했다.

20세기 초 헤겔 부흥운동 중 1911년 이후 라슨 판 전집이 발간되는 가운데 라슨이 1931년 미학강의를 재편집하였다. 라슨은 1826년 강의의 필기록을 참조로 하여 호토의 판을 살펴본 결과, 호토가 생략하거나 표현을 왜곡한 부분이 다수 발견되어 재편집하였으나, 서문과 1부의 발간에 그쳤다.

그 이후 이어지는 헤겔 전집에서는 즉 70년대 수어캄프 판이나 펠릭스 마이너판까지 모두 호토판에 기초하였다. 1971년 부브너[R. Bubner]는 호토판을 불신하면서 라슨이 편집한 것을 재편집하여 미학강의를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안네마리 게트만 지페르트는 호토 판을 불신하면 강의 필기록에 기초하기를 주장했다. 니콜라스 헤빙[Nicholas Hebing]이 편집하여 2015년 발간된 헤겔 서고 판(펠릭스 마이너 출판사)은 제목조차 미학 강의가 아니라 예술철학 강의[Vorlesungen ueber die philosphie der Kunst]로 바꾸었고, 호토의 편집을 불신하고 강의 필기에 기초하여 편집조차 21년(미학), 23년(예술철학), 26년(예술철학). 28년(미학) 강의록이라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현재 한국에서 번역된 두행숙 번역판(나남, 1996)이나 이창환 번역판(세창, 2022)은 모두 1970년 발간된 수어캄프 판 미학강의를 번역한 것이다. 헤겔의 강의 필기록은 개별적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서정혁은 미학강의-베를린 1820/21(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한동원은 헤겔 예술철학(미술문화, 2008), 권정임은 헤겔 예술철학 1826년 강의(세창, 2023)을 출판했다.

[3] 이 논쟁에서 최근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을 들라면 G. S 안네마리를 들 수 있겠다. 그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호토판 미학강의는 헤겔을 왜곡했다. ②여기서는 헤겔을 고전주의자로 간주하면서, 고전주의 예술작품에서 미의 이상은 완성되었다고 본다. ③중세 이후 고전적 이상의 잔재가 남아 있으니 르네상스 종교화와 고전 음악 정도이다. ④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특징적인 것에 몰두하는데 이는 미적 이상으로부터의 후퇴이다.

안네마리는 호토판 헤겔미학을 혹독하게 평가하면서, 헤겔의 미학강의에 관해서는 학생들이 남긴 필기록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1826년 강의 필기록에 주목하는데, 이에 따르면 헤겔의 미학적 관점은 앞에서 제시된 것과 전혀 다르다.

①고전주의 시대 예술이 표현하려는 절대정신은 민족신이었으나,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은 기독교적 신 즉 내재하는 신이다. ②헤겔 미학에서 상징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는 이념이 현존하는 방식의 차이를 주장한다. 각각에 고유한 미적 이상이 존재한다. ③고전주의는 미적 이념이 아름답게 현존하는 방식을 말한다. 낭만주의에서 미적 이념은 이념과 감각적 현존이 불합치하는 추의 방식으로 출현한다. ④구체적으로는 예를 들어 쉴러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윤리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좌절되면서 범죄자로 전락한다.

[4] 그러나 헤겔에서 낭만주의 예술 형식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호토의 헤겔 미학강의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안네마리조차도 이 점에서 분명하지는 않다. 그는 고전주의가 아름다운 감각적 현존을 제시했다면 낭만주의 예술형식은 추의 형식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무엇이 예술에서 추일까? 안네마리는 미가 이념과 감각적 형식의 조화, 합치라고 한다면, 추는 이념과 감각적 형식 사이의 부조화라고 한다. 하지만 이념이 어떤 형식이라도 갖는다면, 미와 추를 논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 신은 이념은 아예 감각적 형상화가 거부되니, 무엇이 미이고 추인지를 알 수 없다. 

중세 고딕 신상을 보면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은 왜곡되고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절 신의 모습은 그리스 조각상처럼 이상화되어 있다. 전자가 낭만주의 예술이라면 후자는 낭만주의 예술이 아니란 말인가?

[5] 가상[Schein]이나 현상[Erschein]이나 똑 같이 빛난다[scheinen]는 말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상은 직접적인 것에 머무르며, 가상은 자기부정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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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강해(55)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55)

 

III. 본론 2 : 정의의 실현 조건 – 철학과 철학자 왕(제5권-제7권)

  1. 난관과 고려 사항, 가능성 : 3개의 파도(449a-474c)

 

  1. 두 번째 파도(1) : 처자의 공유(457b-461d)

 

[457b-461d]

* 양성의 평등한 역할과 관련한 첫 번째 파도를 넘어선 후에 소크라테스는 두 번째 헤쳐 나가야 할 파도로서 이른바 처자의 공유 즉 수호자 집단에서 배우자 공유의 문제를 제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수호자φύλαξ들과 여성수호자φυλακίς들이 모든 일을 공동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가능하고δυνατά 이롭다ὠφέλιμα는 점에서 우리의 주장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 후 바로 처자의 공유 문제를 꺼내든다.(457b-c) 처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여자들 모두가 이 남자들 모두에게 공유되어서κοινός 어떤 여자도 어떤 남자와 사적으로ἰδίᾳ 함께 살지 않으며 아이들도 공유되어서 어떤 부모도 자식들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어떤 아이도 부모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457d)

* 이에 글라우콘은 그 가능성과 이로움 모두에 대해 의심을 표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겠지만 이로움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가장 크게 좋은μέγιστον ἀγαθὸν 것임은 논쟁ἀμφισβήτησις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457d)

* 그럼에도 글라우콘은 가능성과 이로움 모두 많은 논쟁이 불가피하니 가능성과 이로움 모두에 대해 논의해주길 요구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이로움에 관한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가능성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유익함도 이야기하겠다고 말한다.(457e) 다만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이 허락만 한다면 게으른 사람들이 혼자 걸어 다니며 자신만의 생각의 잔치를 벌이곤 하듯이 지금은 그것들이 가능하다고 가정하고서, 그것들의 구체적인 방책이 무엇이고 그것의 실제 운용이 나라와 수호자들에게 어떤 근거에서 가장 이득이 되는지를συμφορώτατ᾽ 이야기하겠다고 말한다.(458a-b)

* 글라우콘이 그것을 허용하자 소크라테스는 우선 배우자 공유의 문제가 통치자에 의해 어떻게 법제화되고 실제로 운용되는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1) 남자들을 선발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가능한 한 그들과 본성이 같은ὁμοφυής 여자들을 선발하여 주거와 식사를 공동으로 하고 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체단련이나 그 밖의 양육을 받으면서 함께 지내게 한다.(458c) 그렇게 어울리다 보면 이들은 타고난 필연성 즉 성적인 필연성ἐρωτικός ἀνάγκη에 의해 서로의 교합μίξις으로 이끌리게 된다.(458d)

2) 그런데 행복한 이들의 나라에서는ἐν εὐδαιμόνων πόλει 이 서로의 교합이 무질서하면 경건한ὅσιος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짝짓기γάμος는 최대한 신성한ἱερός 짝짓기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이로운 짝짓기가 신성한 짝짓기이다.(458e)

3) 가장 이로운 짝짓기는 동물들의 경우에서 제일 나은 새끼를 얻으려고 할 때 그리 하듯이 인간 종τὸ τῶν ἀνθρώπων γένος의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한창때ἐξ ἀκμαζόντων 혈통 좋은 자들끼리 짝짓기를 해야 최고의ἄκρον 통치자들을 얻는다.(459a-b)

4)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의사가 환자를 위해 약 처방을 할 때 그러하듯이 통치자들이 과감하게 처방을 해야 하는데 그 처방은 곧 거짓ψεῦδος과 속임수ἀπάτη이다. 즉 통치자들은 피통치자들의 이로움을 위해 거짓과 속임수를 많이 써야 한다. 짝짓기와 아이 낳기παιδοποιία의 영역에서 그것은 ‘옳음’τὸ ὀρθὸν이고 그 크기 또한 특히 작지 않다.(459c) 왜냐하면 가장 뛰어난 남자와 여자들끼리 최대한 자주 관계를 갖게 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막아서 우수한 자손들을 낳아 무리ποίμνιον가 가능한 한 최고의 상태가 되고 수호자 집단ἀγέλη τῶν φυλάκων 또한 가능한 한 가장 내분이 없는ἀστασίαστος 상태가 되게 하려면 이 모든 일이 통치자들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459d-e)

5) 그리고 이러한 속임수는 축제나 제의 몇을 법으로 정해서 거기에서 신랑νυμφίος과 신부νύμφη들이 만나도록 하되 짝이 맺어질 때마다 그 못난 사람들이 통치자가 아니라 운τύχη을 탓하도록 교묘한κομψός 제비뽑기κλῆρος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460a) 그리고 이때 그렇게 맺어지는 짝짓기에 어울리는 찬가들도 지어야 하고 짝짓기의 수가 얼마가 되게 할지도 정해져야 한다. 전쟁이나 질병이나 그런 모든 것들을 잘 고려해서 가능한 한 남자들의 수를 동일하게 유지하도록 하고,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나라가 큰 나라도 작은 나라도 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6) 그리고 전쟁이나 그 밖의 영역에서 뛰어난 이들에게는 특전γέρας과 상ἆθλον 특히 여자들과 잠자리συγκοίμησις를 같이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ἐξουσία를 아낌없이 주어 이런 자들로부터 씨를 받아σπείρωνται 가능한 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아이를 기르고 양육하는 관리들ἀρχαὶ을 두어야 한다.(460b)

7) 이때 뛰어난 자들의 자식들은 그들이 받아서 양육소σηκός로 데려가 나라의 어떤 구역μέρος에 따로 떨어져 거주하는 보육인τροφός들 손에 맡기고 못난 자들의 자식이나 그렇지 않은 자들의 자식이라도 불구인ἀνάπηρος 경우에는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ἀπόρρητος 은밀한ἄδηλος 장소에 적절하게 감추어κατακρύψουσιν 두어야 한다. 그리고 엄마들이 젖이 불면 양육소로 데리고 가되 자기 자식이 누군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고 그 밖에 힘든 일은 유모나 보모에게 넘겨주도록 해서 엄마들을 돌보게 해야 한다.(460c-d)

8) 여자는 20살부터 시작해서 40살까지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고, 남자는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한창때 25세를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 55살까지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460e)

9) 만약 이와 달리 이들보다 나이가 많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이 공동체τὸ κοινὸν를 위한 출산에 끼어들어 몰래 태어난다면 그 아이는 그러한 제사θυσία와 기원εὐχή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무절제ἀκράτεια를 수반한 어둠σκότος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다.(461a) 그리고 아직 아이 낳는 시기에 있는 남자라도 통치자의 주선을 거치지 않고 적령기의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 동일한 법이 적용된다. 그가 나라에 신성하지 않고 공인되지 못한 서출νόθος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461b)

10) 그러나 그 여자들과 남자들이 아이 낳을 적령기를 벗어나면 자식이나 손자, 부모뻘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 그들이 원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해도 되되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만일 태아나 아기가 생긴다면 그런 아이에게 양육이 없을 것임을 알게 해야 한다.(461c)

11) 이 경우 짝짓기가 이루어진 후 열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달에 태어난 자식들은 누구든 그들 모두의 아들이나 딸이고 그들은 아버지가 되고 마찬가지로 얘들의 자식들은 손자 손녀가 되고 그들은 다시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 그리고 이들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자식을 생산하던 시기에 태어난 자식들은 모두 형제와 자매라고 불러야 한다. 이들끼리 교합은 금지되며 다만 남매지간의 경우는 제비뽑기가 그렇게 나오고 퓌티아 사제가 승인할 경우 동침이 허락된다.(46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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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에서 ‘교합’μίξις 2)에서 ‘짝짓기’γάμος란 말은 각각 ‘성교’와 ‘결혼’으로도 옮길 수 있는 말이다. 이들의 짝짓기는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축제와 제의를 동반하는 신성한 결혼 의례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 4)에서 거짓과 속임수가 ‘크기가 작지 않은 옳음’인 이유는 장차 수호자가 될 우수한 자손들을 출산할 수 있는 방책이자 무엇보다도 그들의 내분을 막을 수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내분을 막고 결속을 이루는 것은 나라의 ‘최대선’τὸ μέγιστον ἀγαθὸν이다.(462a) 곧이어 밝혀지겠지만 처자 공유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이로움 또한 나라의 내분을 막고 결속을 이루는데 있다.

* 5)에서 ‘한 나라가 큰 나라도 작은 나라도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나라의 인구를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지만 이곳은 수호자 집단과 관련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다소 어색하다. 수호자 집단은 전체 인구 비중에서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423c에서 나라 전체의 크기와 관련해서 이미 같은 말을 했음을 고려하면 아마도 생산자 계층의 인구수도 당연히 통제 대상임을 전제하고 한 말일 것이다. 우수한 수호자들에게서 ‘가능한 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언급도 앞의 언급과 다소 상충하지만, 이 말은 기본적으로 전체 인구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우생학적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 6)에서 ‘아이를 기르고 양육하는 관리들ἀρχαὶ’ : 여성의 역할에서 가사 노동의 분리는 기본적으로 계급사회에서 특권 여성이 노예들에게 고생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에 따라 육아 및 가사 노동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가사 노동은 별도의 관리들 즉 분업에 따른 전문적인 직업군에게 위탁된다. 여성의 사회참여에 따라, 가사 노동이 분리되고 또 그에 따라서 가사 노동이 일정한 직업군으로 전문화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양태와 일정 부분 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서의 가사 노동은 공적 노동으로 그 대가가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무려나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비록 소수 집단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여성과 가사 노동의 분리가 제도적으로 관철된 최초의 사회이기도 하다.

* 7)에서 ‘못난 자들의 자식과 불구자’ : 불구로 태어난 아기들을 유기하는 것(apothesis)은 당대 아테네의 일상화된 관습이었다. 그러나 영아유기는 이유를 불문하고 용납해서는 안 될 반인권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못난 아이들’의 경우 어떻게 했는지는 여기서 불분명하다. 다만 <국가>의 주장을 요약하고 있다는 <티마이오스> 19a의 내용에 따르면 ‘못난 자들의 자식들은 도시의 다른 영역으로 은밀하게 분산하여 키우되 아이들이 자라나는 동안 항상 그들을 지켜보면서 가치 있는 아이들은 다시 올려보내고 거꾸로 우수한 자들의 자손도 열등해질 경우 아래로 내려보내는 것’으로 나온다. 이때 ‘도시의 다른 영역’ 또는 ‘아래’가 의미하는 것은 앞서 건국 신화 부분에서도 살폈듯이 생산자 계층 또는 그들의 생활 영역이라 할 것이다. 요컨대 이상 국가에서는 불구가 아닌 한 이른바 못난 아이들도 양육과 교육의 결과에 따라 우수해질 경우 다시 수호자가 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나라의 분업적 구성원의 하나로 그에 적합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 11)의 내용은 처자의 공유가 분명 가족의 해체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가족의 공동체적 확장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플라톤은 곧이어 처자 공유의 이로움을 다루면서 이기적 가족주의의 해체가 가져다주는 장점을 공동체의 확장 차원에서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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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이상국가에서 법으로 정해야 할 처자 공유란 그 내용이 ‘남성 수호자들과 여성 수호자들 모두가 서로 배우자가 되고 태어난 아이들 또한 그들 모두의 자식으로 공유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룬 양성의 평등에 관한 첫 번째 문제처럼 가능성과 유익성의 측면에서 두 번째 문제 즉 처자 공유의 문제를 다루려고 하지만 글라우콘은 가능성은 물론 유익성도 의심스럽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유익성과 관련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가장 크게 좋은 것’이어서 그 문제는 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가능성만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이로움마저 논쟁거리가 된다는 말에 가능성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우선 처자 공유의 유익성에 대한 논의부터 꺼내든다. 이로써 소크라테스가 맞이한 두 번째 파도는 크게는 처자공유의 문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처자 공유에 어떤 이로움이 있는가의 문제로 구체화 되고, 처자 공유의 가능성의 문제는 이상적인 정치체제 자체의 가능성의 문제로 슬그머니 확대되면서(472b) 소크라테스가 해명해야 할 세 번째 파도를 구성하게 된다. 첫 번 째 파도보다 두 번째 파도가 그리고 두 번째 파도보다 세 번째 파도가 더 큰 난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면 처자 공유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이러한 서두적 논의는 내용적으로 처자 공유의 문제를 비롯해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기하는 정치체제 전반의 실현 가능성에 관한 문제가 그 어느 문제보다도 궁극적으로 플라톤이 해명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처자 공유의 유익함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글라우콘에게 ‘게으른 사람들이 혼자 걸어 다니며 자신만의 생각의 잔치를 벌이곤 하듯이’ 일단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마음껏 이야기하겠다고 요청하는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이 장면은 논거가 비교적 분명한 유익함을 전면에 세워 처자 공유 주장의 정당성을 우선 확보해두려는 플라톤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유익성에 반비례하여 그 가능성의 문제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함께 보여준다. 그것은 처자 공유의 이로움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분명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야 함에도 소크라테스가 엉뚱한 주제를 끌고 들어와 이리저리 그 논의를 미루면서 시간을 끄는 장면(466e-471)에서도 더 분명하게 확인된다. 제법 지루하다고 할 정도로 길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 장면은 결국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의도적인 논의 지연을 알아차린 글라우콘의 항의를 접하고서야 끝이 나고 그제에서야 비로소 세 번째 파도인 처자 공유의 가능성의 문제가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요컨대 이러한 장면 구성들은 모두 처자 공유의 문제가 유익함에 있어서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지만, 그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플라톤이 생각하기에도 얼마나 어렵고 난감한 주제인지를 플라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이 또한 처자 공유 문자의 문제를 바라보는 플라톤 나름의 긴장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학적 장치인 것이다.

* 사실 첫 번째 파도인 양성평등의 문제의 경우는 아테네 사회현실에서는 힘들었을지라도 최소한 시대 현실에 따라 가능할 수 있고 그 자체로 발전적 변화로 평가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파도인 처자 공유의 문제(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가 아닌 전적인 배우자 상호 공유)는 아테네 사회현실에서는 물론이고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어떤 사회에서 현존했었던 적도 없을 정도로 어느 시대 그 누구에게도 그 자체로 실현 가능성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특히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크게 중시되는 오늘날의 경우 그것은 용납 여부는커녕 아예 말조차 꺼내기 힘들 정도로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이 제시하는 처자 공유의 문제는 그 자신도 비록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그 구상 자체만으로도 오늘날 수많은 비평가의 혹독한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플라톤 이상국가의 제반 구상을 여러 측면에서 해명하고 옹호하려는 플라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최소한 이 처자 공유의 문제만큼은 누구도 예외 없이 가장 크고 심각한 난관이자 어떻든 피하고 싶은 곤혹스러운 주제로 받아들여 진다. 플라톤 저명한 주석가 앤너스도 해당 논의 부분에서 처자 공유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 방식으로 일거에 터무니없는 제안으로 아예 도외시하고 있다. (J. Annas(1981) 181-184쪽 참고)

* 플라톤의 처자 공유 문제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듯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아래와 같이 다각적인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그 개요는 아래와 같다.

1) 플라톤은 하등동물에 대한 유비에서도 보듯이 동물의 품종 개량에 기울이는 것과 동일한 관심을 수호자 집단의 우생학적 개선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물의 품종 개량이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듯이, 인간의 우생학적 개량 역시 인간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처자의 공유가 국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 집단에 의해 특정 계층에게 강제의 형식으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그의 구상에는 전체주의 내지 국가주의적 이념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2) 게다가 비록 통치계급에 한정되긴 할지라도 결혼과 출산 및 양육이 철저히 국가 소수 권력자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기초한 정교한 제도에 의해 통제됨으로써 개인의 인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 또는 사적 영역에서의 행복 추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사실 개인 간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과 성적 욕구는 통제할 수 없는 본능으로 플라톤도 인정하고 있다. 정교한 속임수를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것이 조작된 것임이 드러날 경우 그 불만족이 초래하는 위험의 크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그 속임수가 ‘크게 옳은 것’이라고 주장한다.(459c) 당사자보다도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이 그들의 행복에 충분히 더 부응할 정도로 지고의 지혜를 갖고 있으며 또 그들에 의해서만 그 지혜의 구현이 담보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을 뒷받침하는 지고의 지혜가 과연 존재하는지 검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소수의 사람에 의해 그것이 구현될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어디에도 없다. 정반대로 그러한 믿음은 실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정치적 폭압과 불행을 초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구상은 최소한 형식에서 나치가 국가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자행한 우생학에 기초한 폭력적 인종주의와 구조적으로 차이가 없다.

3) 실제 역사적인 사례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고 설사 대의명분이 선하다 해도 ‘사랑 없는 정의는 잔인’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주체적 욕망과 개개인의 특수한 정황 그리고 비합리적 감성을 배제한 채, 오직 소수 권력의 독단과 형식적인 정치 이성에 기초해 정치적 실천 방안이 수립될 경우 그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수준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적 사실로 충분히 경험하고 확인했다. 처자의 공유 문제는 플라톤의 이성주의가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고려 없이 극단적으로 형식화되고 정당화할 경우, 얼마나 참담하고 위험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 그러나 플라톤의 처자 공유가 우리에게 안겨다 주는 엄청난 당혹감과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용납 여부와 무관하게 비록 어렵긴 하지만 구상 차원에서나마 플라톤이 그러한 제안을 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이 일정 부분 존재했음을 살피는 것 또한 <국가>의 이상적 구상 전체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 일단을 살피면 아래와 같다.

1) 우선 플라톤이 살던 아테네 당대에는 결혼 당사자들에게 ‘개인적 사랑이나 성적 욕망에 기초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관념 자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관념은 근대 개인주의가 확립된 이후에 생긴 것일 뿐 고대인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고대 아테네 남성들에게 결혼은 이곳에서 플라톤이 언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에서 그저 출산을 위한 짝짓기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고 성적인 욕망은 이른바 창녀로 불리는 여성들과의 성매매나 소년애를 통해 충족되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결혼 또는 결혼 상대조차 당사자가 아닌 부친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그 결정의 배경에는 최대한 명문 집안 내지 가문과의 혈연 동맹을 통한 이권 확보에 대한 고려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국가>에서는 그 가부장적 권력이 소수의 국가 권력으로 대치되고 결혼이 소규모 가문 수준의 구성이 아니라 나라를 수호하는 공동체 수준의 구성과 처자의 전면적인 공유로까지 크게 확대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혼 당사자들 모두 기본적으로 후계의 생산 말고는 ‘개인적 사랑이나 성적 욕망에 기초한 자유로운 선택’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결혼과 관련한 이러한 고려들은 오늘날에서조차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집안 어른이나 부친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정혼(定婚) 관습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처자의 공유 차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논평이나 비판을 가하지 않고 다만 처자 공유라는 공동체적 가족의 확장이 플라톤의 기대와 달리 결코 혈연적 애착의 증대로 귀결되지 않음에 대해서만 비판을 가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II, i-vi)

2) 그리고 우생학에 기초한 플라톤의 구상은 – 특히 나치 인종주의의 야만성과 연계되면서 – 그야말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그려진 폭력적 동물 사육과 품종 개량에 버금가는 위험천만한 발상으로, 아예 언급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비판받고 있지만, 우생학적 관념 자체는 오늘날 인간의 건강한 삶과 복지를 위한 의제로 현대과학 전반에 걸쳐 다각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죄악시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가족계획과 관련한 안전하고 효과 높은 피임약의 개발, 결혼 당사자들의 건강진단서 교환, 우수하고 건강한 정자를 확보하기 위한 정자은행의 노력, 태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등은 모두 일정 부분 개인들의 우생학적 고려, 또는 유전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최근 급속하게 발전을 이루고 있는 유전자와 줄기세포 연구 분야를 들여다보면 인간 유전학에 기초한 기술과학의 발전 차원에서 질병의 치료와 삶의 복지를 위한 우생학적인 관점이 유의미하게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그러나 그러한 유전공학적 시도가 확장 발전하는 현대적 상황 자체가 갖는 위험 또한 상존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간 본래의 생물학적 생태적 자연 상태를 인위적으로 수정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오용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를 추동하는 배후에는 자연의 생태적 환경을 거스르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생학적 고려와 그에 따른 유전공학의 발전이 오늘날 불가피한 현실로 상존하는 한, 그것을 추동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이성적인 통제와 관리가 필연적으로 다시 요구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우생학적 구상에 대한 주된 비판 근거로서 자리 잡고 있었던 인간의 자연적 욕망에 대한 이성적 개입과 통제가 이제는 거꾸로 왜곡된 인간 욕망을 바로 잡는 철학적 기초로 다시 소환되는 것이다.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어떻게 왜 발생했고 그것이 과연 인간과 자연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성적으로 따져 묻고 그것에 대해 어떠한 지향을 지니고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이성적으로 모색하고 그에 맞추어 이성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플라톤 이성주의의 핵심적이고도 일관된 정신이기 때문이다.

4) 다만 문제는 그것을 따져 묻고 모색하며 실천하는 플라톤 이성주의의 실천 주체가 최소한 정치영역에서만은 이른바 소수 철학자 집단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곳에서도 우생학적 판단과 실행은 오로지 그들 소수에 의해서만 기획되고 통제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플라톤의 왕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비참함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역사적 경험을 안겨 준 나치와 스탈린의 독재정과 연계되면서, 시민 대중과 개인들의 권익이 아닌 국가 전체와 소수 권력층의 이익만을 위한 이른바 국가주의 내지 전체주의적 폭압체제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연구의 진전에 따라 오늘날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비평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들을 제외하면 플라톤의 철학자 왕정이 비록 왕정의 구조는 갖고 있으나 그 체제를 시민 대중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국가전체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전체주의적 폭압체제로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본 강해에서도 플라톤의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가 국가주의 내지 전체주의가 아니라 철학자왕 자신들을 포함하여 각기 다양한 본성의 계발을 통해 행복을 획득하는 개인들의 집합으로서 이른바 공동체주의에 있음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일관되게 피력해 왔다. 플라톤 <국가>의 고전적인 주석가인 네틀쉽도 이 부분에 주해를 달면서 플라톤의 철학자왕정이 지향하는 개체성과 공동체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다소 길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추상 속의 개인, 문자 그대로 모든 타인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개인들의 공동체가 아닌 그런 공동체란 없으며, 남자든 여자든 개인에 의해서 공유되지 않는, 그들이 살고 있지 않는, 그런 공동의 삶이나 관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개체성이란, 그 참다운 의미에서 보면, 이 공동의 삶이나 이익에 참여함으로써 감소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적 봉사에 헌신하는 공복(公僕)이란 그 봉사 때문에 개인이 되기를 중단한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가장 이익적인 구두쇠가 자신의 일에 ‘자기 자신’을 최대한 집어넣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산다고 말할 정도로 공동의 이익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던져 넣을 때, 그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개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개체성은 더욱 위대한 것으로 살아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플라톤이 보고 있었던 것은 개체성의 말살이 아니라 ‘공동체 정신’을 통하여 개체성을 가능한 최상의 정도로까지 끌어 올리는 일이었다.‘(R. L Nettleship(1925) Lectures on the Republic of Plato. <플라톤의 국가론 강의> 김안중, 홍윤경 역, 교육과학사 2010. 182쪽)

 

* 아무려나 일부 집단의 처자 공유가 구상으로라도 일정 부분 가능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주장의 강도와는 다르게 그것의 현실적 가능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실제로 플라톤은 세 번째 파도에서 그 가능성의 문제를 슬그머니 이상 국가 일반의 실현 가능성의 문제로 전환하고 있는 데다 그마저 꼭 그것의 실현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다만 본(本)으로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한 걸음 물러서고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실제로 <국가>의 이상적 구상이 실물로서 현실화된 것이라 평가되는 <법률>에서 첫 번째 파도인 남녀평등은 일정 부분 구체적인 제도로 반영하고 있지만, 이 처자 공유의 문제는 전체를 통틀어 아예 한마디 언급조차 안 하고 있다.

* 그럼에도 플라톤은 이제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에 대해서만은 아주 구체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언급하려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처자의 공유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비록 의심스러울지라도 만약 그것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법제화된다면 그것이 나라에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를 해명하는 방식으로, 최소한 자신이 왜 처자의 공유 문제를 이상 국가를 구성하는 매우 중대한 과제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철학적 정당성의 일단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어지는 논의는 현실적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이성적 사고 차원에서 그가 내세우는 처자의 공유가 과연 어떤 목적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요컨대 이 부분은 내용적으로 처자 공유 자체에 관한 논의라기보다는, 다만 그러한 구상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정치철학적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담아내는데 방점이 있다. 특히 이 부분은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체제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해설은 다음 강해에서 다루기로 한다. -끝-

* 다음 주제 : 2. 두 번째 파도(II), 처자 공유의 궁극적 목적 : 나라의 결속, 고통과 기쁨의 공유[461e-466d]


 

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1)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들어가자 마자, 미학이라는 학1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지금 대학에 미학과가 있으니 굳이 그 가능성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미와 유사한 멋이나 맛의 학문이 가능할까? 물론 맛의 기술과 멋의 디자인이 전공[discipline]으로서 가르쳐지고 있으니, 학문이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헤겔에게 물어보았다면 아마 맛과 멋의 학문은 없다고 했을 것이다. 왜 헤겔은 멋이나 맛에는 학문이 성립하지 않지만 미에는 학문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2)

헤겔은 미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두 가지를 거론한다. 우선 예술은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맛과 멋처럼 일종의 잉여라는 주장이다. 예술은 진지함이 결여된 유희, 오락에 가까우니, 이를 위해 학문적 연구의 노고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예술이 쓴 약에 감초를 넣듯이 예술이 감성과 경향성을 통해 이성과 의무의 부담을 덜어주니 그런 봉사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대표적으로 쉴러 같은 철학자는 예술은 진리를 감성적인 것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그런 주장이 못마땅하다. 헤겔이 보기에 이는 이성과 의무가 지닌 순수성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헤겔은 예술이 유희나 오락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예술의 신성함을 옹호한다. 즉 종교나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에 속하는 등근원적인 것이라 한다. 예술은 절대정신의 감각적 현존으로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만 종교와 철학과 차이를 가질 뿐이다.

절대정신의 표현 방식에서 시대에 따라 예술, 종교, 철학 가운데 어느 하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스 시대 절대정신은 주로 예술을 통해 표현되었으니, 그리스 신화는 헤시오도스와 호머의 예술작품을 통해 창조됐으며 철학은 아직 예술의 생동성과 풍요로움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게 되면 예술은 기꺼이 장식이 되고, 오락과 유희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헤겔은 예술에 너무 과도한 가치를 부여했을지 모르겠다. 반면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예술이 그 자체로 사회의 혁명이며 인류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을 신성시했다. 반 고흐의 예에서 보듯이 그들은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내던지기도 했으니 헤겔의 주장에 눈물지을지 모르겠다.

헤겔은 왜 예술에 절대정신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을까?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점은 문제로만 제기하고, 미학이 불가능하다는 두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4)

두 번째 주장은 미학이 필요하더라도 다루어지는 대상의 성격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미적 작품은 공통적으로 감각적 질료적 성격을 가진다는 데서 나온다.

예술작품에는 이런 성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축이나 조각 회화 음악은 물질적 수단을 이용하니 말할 것도 없다. 비물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도 추상적인 것을 지칭하는 개념적 언어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감각적 언어가 사용된다.

예술작품의 질료가 되는 감각적 자연은 개별적이며 우연적으로 움직이다. 더구나 예술 작품은 자연적 산물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산출되는 판타지로 가득 차 있다. 판타지는 자의적이니, 어떤 법칙적 규제도 이성적 목적에서도 벗어난다. 이런 예술작품에서 학문의 기초가 되는 규칙적인 것이나 합목적적인 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그러니 예술작품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자격 자체를 갖지 못하지 않을까?

사실 예술에 관한 많은 담론은 그저 주변적인 사실에 대한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언제 누가 어떤 동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누구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고, 뒤에 어떤 영향을 남겼다고 얼마에 팔린다는 둥, 자질구레한 사실을 많이 알수록 훌륭한 비평가로 행세하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약간의 주관적 감상이 덧붙여지는데, 좋았다는 감탄을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하는가가 훌륭한 비평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작품이 감각적 질료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미학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의 감각적 질료는 예술의 내용인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경험적 실재인 자연산물과 같이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우연과 혼돈의 지배 아래 있겠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자기 스스로를 통해서 자기를 부정하면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가상2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예술작품의 가상성은 하나의 암시에 지나지 않으며 표면적으로 작품의 감각적 질료적 성격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예술작품은 항상 수수께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럼에도 예술작품은 어떤 경우라도 이런 암시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가상이다.

역설적이지만 헤겔은 예술작품의 가상성 때문에 미학의 가능성이 펼쳐진다고 본다. 예술작품의 자기 부정성을 통해 진리인 절대정신이 드러나니,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우연성을 벗어나 필연성으로, 경험적 실재를 넘어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예술작품이 단순한 감각적 자연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 부정적인 가상이므로 오히려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5)

이런 점에서 헤겔은 예술작품을 역사와 비교한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는 역사의 의미 즉 시대정신이 드러나 있다. 마찬가지로 감각적 예술작품에는 작품의 의미 즉 절대정신이 드러난다.

동시에 헤겔은 두 가지를 엄밀하게 구별한다. 역사의 경우 예를 들어 나폴레옹에게서 보듯이 구체적 사건을 일으키는 행위자는 자기 행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행위 했을 뿐이다. 그 행위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적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에서 작가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자각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자기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의 의미를 새겨놓는다. 그 때문에 작품은 가상성을 띠게 되는데, 관객이나 독자는 작품의 감각적인 측면을 따라가더라도 그 작품 속에 놓여 있는 작가의 암시에 따라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작가가 작품 속에 어떻게 그런 암시를 새겨놓는가 하는 방식이 곧 장차 미학이 다루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방식이 곧 예술작품의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이룬다. 헤겔의 미학 강의는 곧 이런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전개하는 데 있다.

 

6)

절대정신과 가상성이라는 두 개념은 헤겔 미학의 핵심 개념인데, 미학의 가능성을 설명하다 어느덧, 헤겔 미학의 기본 개념을 언급하게 되었다. 그 의미는 앞으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오늘날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테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하자.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헤겔 당시보다 더 심각하게 제시한다. 헤겔 당시에는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부정된 적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후기구조주의의 등장 이후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회의되고 있다. 미의 영역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진리나 가치가 사라졌으며, 예술은 기꺼이 오락이 되고 여흥이 되었다. 예술은 삶의 풍요한 잉여가 되기를 지향한다. 예술은 상품화되었다. 이런 사태 앞에서 미의 가치를 논하고 미와 진리의 관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해진 것이 아닐까?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 전성기를 누린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자체가 위기에 부딪히면서 다시 진리와 가치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나고 예술을 신성시했던 모더니즘이 부활한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헤겔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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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와 정신분석 7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7

 

1)

앞에서 언급한 서로 대조되는 두 그림은 당시 호퍼의 관음증과 노출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나르시시즘과 더불어 상상적 동일화의 증상이다. 호퍼에게서 등장하는 관음증과 노출증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지만 항상 그림의 모델은 조로 보인다. 

 

물론 조와 다른 인상을 주는 여성도 있지만, 사실 그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조라고 해도, 그 의미는 다르다. 여성은 실제 조가 아니라 호퍼의 어머니이거나, 호퍼 자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아래 그림을 보자.

 

결혼하기 전 1921년 그려진 또 하나의 그림을 보자. 역시 방안에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창가에 있기는 하지만 창 밖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녀는 재봉틀에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붉은 벽을 배경으로 옆모습으로 관찰되고 있다. 붉은 색 바탕에 흰색과 노란색이 섞여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긴 머리와 눈부신 흰 속옷을 입고 있다. 왼쪽에 화장대가 보이는데, 화장대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다.

 

일에 몰두하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은 자기 내에 되돌아가 완결된 안정적인 모습이다. 그녀가 란제리 차림으로 있다는 것은 지금 호퍼가 숨어서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장대의 거대한 크기를 생각해 보면 역시 팔루스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 안에 반쯤 들어와 있다. 그림의 시선은 관음증적이지만 노골적이거나 자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마치 아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이는 일에 몰두한 어머니가 자신을 보아주기를 갈망한다.

1921년 뉴욕 실내라는 작품이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검은 방문을 배경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손 동작을 보건대 아마도 드레스를 꿰메는 것으로 보이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 아직 결혼 전이니 아내 조의 모습은 아니다. 힌트는 앞에 걸려 있는 반쯤 만 보이는 희미한 사진에 있을 것 같다. 그 사진 속의 인물을 정확하게는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남자의 얼굴이다. 사진 속의 남자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바라본다. 호퍼의 관음증적 시선을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보인다.

2)

이어서 같은 해 그려진 에칭화를 보자.

 

제목이 ‘저녁의 바람’이다. 여성의 신체 모습이나 머리칼의 모습은 결혼 전인데도 조와 닮았다. 결혼 전이니 조를 모델로 하기보다, 호퍼가 늘 마음 속에 품은 여성의 모습이다. 긴 머리칼과 약간 작은 키, 약간 마른 살집, 이 특징은 결국 호퍼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저녁이니 햇빛은 없다. 창문 밖은 이미 약간 어두울 텐데, 호퍼는 이 부분을 생략하여 마치 환한 그러나 달빛처럼 은근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왼편에 탁자가 보이고 그 위에 팔루스적 형상을 지닌 주전자가 어둠 속에 흐릿하게 놓여 있다.

 

여성은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는 순간인데, 밖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커튼이 상당히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바람이 상당히 세게 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성의 마음이 내면에서 느끼는 욕망을 의미할 것이다.

 

욕망에 흔들리는 여성의 모습, 그것은 ‘아침 11시’에 등장한 여성의 모습과 같이 노츨증적인 증상을 드러낸다. 두 여성은 모두 벌거벗고 있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거기에 있는 것은 자신의 시선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 있어야 할 것 즉 자기를 바라보기를 바라 마지 않는 어떤 시선이다. 여성은 안타까이 그 시선을 기다리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여성은 호퍼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3)

호퍼의 상상적 동일화의 증상은 점차 절망에 빠지면서 자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더 이상 그는 이제 자기 밖을 보지 않는다. 자기 속의 내면에 갇히게 된다. 20년대보다 30년대 호퍼의 그림은 더 절망적이고 주인공은 거의 자폐적이다. 이는 30년대 미국의 대공황에서 받은 심적인 타격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호퍼 자신의 욕망 구조에서의 절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1931년에 그려진 그림이다. 호퍼는 여행을 좋아해 여행을 암시하는 소재를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의 제목이 ‘호텔 방’이니, 이 여성도 여행을 떠나왔을 것이다.

 

벽 기둥을 가운데 두고 그림은 둘로 나뉘어진다.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보면 캄캄한 밤이다.

그림 오른편에 소파는 녹색인데, 호퍼의 그림에서 자폐적인 모습은 자주 이런 녹색으로 표현된다. 여름의 밝고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가 소파에 걸쳐있지만, 가방은 풀지도 않은 채 닫혀 있다.

 

왼편에는 침대가 있고 여성이 걸터앉아 있다. 그녀는 호퍼가 좋아하는 긴 머리와 달리 파마머리다. 여성은 내의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내의가 붉은 색인데 상당히 에로틱하다. 아마침대로 올라가 잠들기 전일 것 같다.

 

그녀는 어떤 접힌 종이, 아마 브로셔를 펼쳐 읽고 있다. 여행 안내서나 기차 시간표일까, 아니면 호텔의 안내문일까? 그녀의 얼굴빛으로 보면, 그녀는 이 브로셔를 읽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손에 들고 있을 뿐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둡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누구를 만나러 왔으나, 만나지 못한 것일까? 더욱 놀라운 것은 실내등의 빛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밝은 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다. 마치 성스러운 듯한 빛이 그녀를 감싸지만,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 같다. 이 밝은 빛과 참담한 그녀의 얼굴 사이의 대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4)

여행이란 어딘가에 있을 그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창 밖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모습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 실재를 찾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창 밖에서 찾는 것에 멈추지 않고 행동에 나서 여행을 떠난다. 어딘가에 그것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낯선 도시에 이르러 그녀는 절망에 빠진다. 지금껏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음 속으로 생각하지만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찾으려는 그것 즉 실재는 실제로는 없다는 말인가? 절망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의 대상으로 되돌아 가려 한다.

 

그녀를 에워싼 그 환한 빛은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내부 기억에서 나오는 빛일 것이다. 이 그림에서 그녀의 생각에 잠긴 모습은 이제 한 걸음 더 나가면, 기억에 사로잡힌 자폐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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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자와 그의 소유』(막스 슈티르너 지음/ 박종성 옮김, 부북스, 2023, 2쇄-수정증보 개정판) 추천사 모음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유일자와 그의 소유』(막스 슈티르너 지음/ 박종성 옮김, 부북스, 2쇄-수정증보 개정판) 추천사 모음

  • 2023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

 

국내 최초로 슈티르너의 독일어 원전을 번역하여 화제가 된 박종성 번역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가 2쇄를 내면서 내용을 수정증보하고 책 표지를 새롭게 바꾸어 펴냈습니다. 지난번 표지와 달리 이번에는 슈티르너의 얼굴을 추정하여 그린 초상화를 넣었습니다.

2쇄를 내면서 동료 연구자 및 철학 전공자들이 이 책에 대한 많은 추천사를 써주셨습니다. 아쉽게도 2쇄 개정판에는 담지 못했기에 지면을 통해 글들을 소개합니다. 지금 소개드리는 추천사는 책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 각자의 눈으로 슈티르너 철학에서 발굴할 수 있는 의미, 사상사적 의의와 가치, 그리고 앞으로의 철학적 지향까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슈티르너는 모든 ‘권위’를 거부한다. 종교, 국가, 법, 이데올로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인간’, ‘인간의 본질’ 같은 개념조차 “정신을 빼앗긴 사람”의 헛소리라고 거부한다. 반역적 언사와 파격적 은유로 일관되어 접근이 쉽지 않고, 통상의 사상사에서는 언급조차 안 되는 책이다.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은가! 이 책이 그 많은 문인과 사상가(Camus, Oscar Wilde, Husserl, Habermas, Herbert Read, Emma Goldman, M. Buber, Jacques Derrida…)의 애장 도서목록에 있거나 그들에게 직간접 영향을 미친 이유, 또 현대 주요 사조(니체, 아나키즘,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의 한 원류(源流)로 평가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서유석(호원대학교 교수)

 

♦ 현대인은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시스템, 구조, 조직, 국가에 의해 압도되며, 민족, 인민, 프롤레타리아트, 국민, 대중, 다시 말해 ‘그들’의 익명성 속에서 ‘나’의 고유함과 독특함이 사라진다. 나치주의와 같은 국가민족주의가 새로운 극우 포퓰리즘으로 부활하고 있고, 스탈린주의와 같은 국가사회주의가 인민을 통제하고 있다. 거대 자본과 플랫폼 기업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중을 쥐어짜고 있다.

막스 슈티르너는 각자의 유일한 개성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평등한 연합을 꿈꾼 아나키스트이다. 그는 모든 권위로부터의 해방을 원하는 자유인이다. 그의 책에서는 분자혁명을 이야기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유목주의를, 한나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의 참다운 민주주의로 내세운 이소노미아를, ‘세계공화국’을 외치는 가라타니 고진의 어소시에이션을, 제국에 맞서 다중민주주의를 제시한 네그리와 하트의 아나키즘을 예견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의 도전과 그에 대한 대안적 사상을 그려볼 수 있다.

―김성우(상지대 파인드칼리지 교수)

 

♦ 파스칼은 우리의 세계가 우리의 이성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숨은 신’(Deus absconditus)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라 말한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나의 의지에 따라 단독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믿지만 사실상 이 세계가 만든 어떤 믿음의 틀에 사로잡힌 육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은 오인 혹은 환상에 불과하다. 슈티르너의 책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바로 그러한 환상에 대한 비웃음이자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우리를 얽매고 있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을 말하는 책이다. ‘유일자’(der Einzige)는 그러한 비웃음과 저항의 근거가 되는 ‘나’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종교적, 도덕적, 법적 기준 또는 국가관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인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슈티르너가 보는 ‘나’는 ‘구체적인 나’로서 그 어떤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추상화될 수 없는 ‘나’이다. ‘나’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며 유일하다. 또 그러한 유일자의 자유며 생명, 주권은 나 자신에게 고유하며 나만이 소유(Eigentum)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 ‘인종’, ‘국민’ 등 보편 추상화된 이름으로 규정하거나 도덕과 규범 등을 적용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 대한 폭력일 수밖에 없다.

슈티르너의 책이 ‘사나운 책’이라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것이 설령 신이든 국가이든 또는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라 믿어왔던 것이든 ‘나’의 유일성을 침해하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기성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일탈이고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에 ‘잘못’(tort)이다.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 변화의 물줄기는 그 잘못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독해가 까다롭고 도발적인 제안에 순간 멈칫하게 만들지만, 지금의 ‘나’가 그리고 ‘우리’가 더욱 자유로울 수 있는 철학적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벅찬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김종곤(건국대학교 교수)

 

♦ 슈티르너로 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우리의 시선을 과거 한반도로 돌려보자. 그리 멀진 않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적 강점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 지난 1920년대 일군의 혁명적 운동가들이 낯선 인물들을 식민지 조선의 담론장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맑스, 크로포트킨 등과 함께 막스 슈티르너의 이름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 필요한 서구 변혁이론의 적극적인 소개와 수용 속에서 막스 슈티르너도 그렇게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물론 당시의 사상사적 흐름 속에서 다양한 범사회주의 이론들이 맑스주의로 전일화된 것도 분명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무산자 계급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한 슈티르너의 외침은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민중의 궁핍한 생활을 가져온 봉건잔재와 식민지적 모순의 타파, 나아가 지배계급의 타락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한 적극적인 개혁 등의 시대적 요구 등이 슈티르너 철학의 소개를 불러 온 근본적인 이유였다.

그럼 다시 우리의 시선을 2023년 한반도로 가져오자. 과거 100여 년 전 식민지 조선에 울려퍼진 슈티르너의 치명적인 제안은 그 생명력을 조금도 손실치 않은 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전세계적으로 만연한 자본주의의 억압성 심화, 동아시아를 짖누르는 신냉전과 분단체제의 폭력성 존속, 한국사회 내부의 혐오와 적대심 증폭 등은 자유로운 주체의 존립을 가로막는다. 진정한 나로 결코 살아갈 수 없게 된 우리들의 실존은 이미 특정한 시기와 세대를 넘어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결코 절망만을 할 수 없다. 반격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우리들에게 이미 100여 년 전부터 그 반격을 가능할 수 있게 하는 철학적 사유가 존재했음을 상기하자. 슈티르너의 철학을 오직 단 한가지의 단어로 집약시킨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유’일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슈티르너 철학은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 필요한 철학적 사유이다. 슈티르너와 함께 유일자의 자유로운 발걸음을 시작하자.

―박민철(건국대학교 교수)

 

♦ 올해 내가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몇 번씩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느낀 점은 슈티르너의 사상은 이 시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무력한 청년들의 정신세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 그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르다. 나는 나답게 살 것이다. 어떤 조직이나 대중의 취향에 맞춰서 살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가능성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역시 내 안에 어떤 힘을 숨어 있는지 나 스스로도 모른다’고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읽으면 더 많이 나답게 되고, 한 개인으로 살아 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슈티르너의 말처럼 개인은 언제나 자신을 드높임으로써만 개인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다. 이 책을 통해서 개인은 더 많이 개인이 되고, 개인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늘 그 누구도 이용당하지 않는 유일한 개인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읽으면서 막스 슈티르너에게 감동을 받아, 그를 통해서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은 최악의 상태다. 슈티르너가 원하는 것이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위대한 유일자가 되는 것이며,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각자의 독특한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샤오체텐(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 석사)

 

♦ 바야흐로 무기력의 시대이다.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개개인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모든 동력을 잃었다. 더 이상 새로운 종류의 움직임을 상상하긴 어렵다. 곧 해변을 덮칠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저항이나 탈주라는 행위가 과연 가능할까? 비명을 지른다고 한들 들리기나 할까? 모두들 불안해하면서도 휩쓸려 가기만을 기다린다.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통제와 폭력에 맞서 각자 자기 자신만의 영토를 확립해야 한다. 그것은 생존이라는 기본권과 연결되기에 오늘날 세계에 던져진 사람들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에서 드러나는 막스 슈티르너의 가르침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훌륭한 동기부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다고 파도를 잠재울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은 어쩌면 파도가 사실 환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그 의구심의 이름은 희망이다. 그리고 환영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순전히 나와 당신에게 달려있다.

―곽장훈(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 위대한 철학자는 불멸한다. 오늘날 우리 언어로 행해진 ‘막스 슈티르너’의 부활은, 시대와 사회의 문제가 슈티르너를 요청하고, 또 슈티르너가 그 문제에 적절한 답을 던지기에 행해졌을 것이다. 그의 유일자 사유는 대중으로 묶어진 채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과제와도 조응한다. 현대인들은 분명히 ‘나’임에도 동시에 ‘어떤 것’으로 포섭되는 탓에, 자유롭지도 안정되지도 못한다. 이에 그는 나를 얽매는 환상들을 파괴하라 말한다. ‘우리’는 자유로워진 ‘제각각의 나’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이 사회에는 ‘나 자신’은 물론 내 곁의 ‘유일한 나’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해 혐오와 차별이 만연해 있다. 드디어 슈티르너 번역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 그가 부르짖은 ‘유일한 나’들과 그들의 ‘자유로운 연합’의 세계를, 그리고 서로 다르기에 소중한 ‘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답하는 ‘애정과 이해의 세계’를 꿈꿔볼 때이다.

이 저술은 그가 얼마나 ‘시대를 초월한 인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시대가 열광하는 현대 철학자들의 지적 풍토를 누구보다도 앞서,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참된 해방과 자유를 꿈꿔본 이에게, 슈티르너의 사유에 빠져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공간과 시간을 넘어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게 되는 분들이 많다. 물론 막스 슈티르너도 이에 해당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연구와 번역으로 후속 세대의 꿈을 돕고 응원해주시는 박종성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

―안성혁(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그대는 생각 세계의 중심”이라는 슈티르너의 말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세계는 내가 보는 대로 구성된다는 것을 인정하면 내가 가진 욕망을 더 분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이끄는 어떠한 관념이 있다고 전제하면 나는 의사 결정을 할 때에 내 욕망이 반영된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계가 각자의 경험지평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에 모두가 나와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식의 오만함을 보일 가능성도 낮아지겠죠. 결국은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상이 부재함에 따라 각자의 속성이 존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논리에서 생각해 볼 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하게끔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구성될 필요가 있으니 ‘개성 존중’의 유용성을 의심하는 독자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독일어 원전 번역본으로는 이 책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새흰(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아나키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 슈티르너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가 드디어 독일어 원문 번역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이 책을 우리에게 전해준 박종성 번역자와 마르크스 공부를 함께하며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을 때만 해도, 그저 슈티르너는 낯설고 위험하며 공상적인 사상가라는 편견도 가졌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책에서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을 정리해 역사 유물론을 확립하면서 당시의 독일 철학 이데올로기가 관념과 망상을 걷어내면 모든 현실적인 억압과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헛된 기대 속에서 그저 급진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비판의 대상이 바로 슈티르너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이제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를 꿈꾼다면, 과연 그때의 연합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슈티르너처럼 고유한 유일자인 개인들을 억압하는 국가 같은 질서(아르케)에 대항하면서도, 그 고유한 유일자 개인들이 공동으로 함께할 수 있는 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나키즘은 물론 이런 억압의 아르케를 드러내며 저항할 것을 촉구한다. 그럼에도 이때 각각의 고유한 유일자 개인들은 아르케에 사로잡히지 않은 그 어떤 무언가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창조해낼 수 있을까? 이제 슈티르너와 마르크스의 지향점을 함께 고민해 볼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은 우리들에게 비로소 이런 논의를 시작할 발판을 마련해 줄 것이다.

―조은평(건국대학교 철학강사)

 

♦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를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슈티르너는 이 책에서 당대의 종교, 철학, 정치 사상에 대한 전면적 거부와 비판이라는 무자비함을 보인다. 현존하는 모든 정신의 지배와 감히 맞서 싸우려는 탓에 주류 사상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언더독, 슈티르너의 급진성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지켜보고 싶은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슈티르너의 유일자 철학은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꿰뚫는데, 그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실천으로 나아간다. 슈티르너는 개개인이 비동등하다는 사실로써만 동등한 유일자임을, 따라서 이미 그의 바깥에 있는 관념에 복종하는 대신 진정으로 자기의지에 의해서만 살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삶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과 같다. 우리 존재는 발 디딜 곳 없이 위태롭게 휩쓸리고 있고, 작은 섬이라도 발견하면 당장 그곳으로 헤엄쳐 가고 싶을 것이다. 이처럼 존재의 근원적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안전한 곳에 머무르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고정된 관념의 섬에 우리 존재를 가두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다. 유일한 개인으로서 살아갈 용기를 얻고자 하는 나와 비슷한 청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고주연(건국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 철학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부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마음 한편에, 아니 요즘 식으로는 뇌구조 한편에 결핍이란 단어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자기가 갖지 않은 어떤 것을 사상가를 통해 채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슈티르너의 주요한 사상적 궤적으로 아나키즘이나 헤겔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언급하지만, 내가 보는 그의 사상의 기본은 실존주의다. 내가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不惑의 깔딱 고개를 넘길 거부하는 슈티르너의 자기 고백서로 읽은 이유다. 不動心의 숙제는 而立을 지난 모두가 꿈꾸는 유일한 마음이지 않은가.

“나는 사랑하기로 되어 있다.” 아울러 나는 슈티르너의 글 속에서 괴테를 본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을 니체가 죽였다고 생각하는데, 일찍이 현정복음 1장에는 “…괴테가 마침내 신을 피해 동정녀 그레첸을 통해 헤겔과 쇼펜하우어를 낳고…쇼펜하우어가 베를린에 사로잡혀 갈 때에 슈티르너를 낳고 슈티르너가 열두 아들을 낳았으니 그 다섯째가 니체다.” 라고 쓰여 있다. 헤겔을 신학과 어떻게든 연결하려 애쓰는 애비 애미도 모르는 연구자들은 반성하시라. (코찡끗) MY oNe and Only LOVE를 떠올리는 제목에 혹해서라도, 『유일자와 그의 소유』라는 책을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의 같은 30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나면 유일이라는 단어와 소유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實感할 것이고, 그의 우유를 팔아주지 않은 사람들을 나와 함께 원망할 수 있으리라.(나는아직비쥬얼30대) 내가 아는 번역자는 매우 의지가 약하고 의존적인 인물인데, 이 어렵고 주체적인 작업을 그가 해냈다. 남은 것은, 슈티르너가 상하기 전에 얼른 많이많이 파는 일. 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럼, 이 빌어먹을 “끊임없는 자기광고(Werben)를 위하여 건배!”

―인현정(이화여자대학교 철학강사)


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478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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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와 정신분석 6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6

 

1)

앞에서 1924년 호퍼가 조와 결혼한 이후, 호퍼와 조의 욕망 구조는 상상적 동일화의 관계로 규정했다. 이 상상적 동일화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핵심은 자기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관계이다. 이 나르시시즘은 자기를 어머니가 사랑하는 대상, 즉 팔루스로 간주하는 것인데 호퍼의 등대 그림이 그런 나르시시즘을 잘 보여준다.

 

상상적 동일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습이 소위 부인이라는 모습이다. 이는 한편으로 자기가 어머니의 사랑 대상이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이를 부인하며, 자기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믿음과 부인은 끊임없이 전전반측하면서 주체를 이원적으로 분열시킨다.

 

이런 부인의 모습은 상상적 동일화의 여러 증상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페티시즘이나 조울증이며 그에 못지 않게 관음증과 노출증 역시 이런 부인의 기제에 속한다.

 

2)

등대 그림과 같은 시대 즉 1920년대 호퍼의 그림에는 그의 관음증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방안의 여성을 그린 그림이다. 이런 그림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밖에서 창문을 통해 방안의 여성을 들여다보는 그림이다. 다른 하나는 방안의 여성이 창문 밖으로 그림 안에는 등장하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림이다. 대표적으로 아래 두 그림을 비교해 보자.

 

 

이 그림은 1928년 그려진 ‘밤의 창문’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시선은 창 밖의 어둠 속에 머무른다. 그 시선은 창을 통해 밝은 빛이 비치는 방안을 들여다본다. 방안은 아찔하도록 밝은 노란 빛이 반사하고 있고 그 가운데 붉은 가운을 입은 여성이 마치 냉장고에 무언가를 꺼내는 듯한 등을 구부린 채 서 있다.

 

오른쪽 창문을 통해 보이는 물체는 형태가 모호하여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여성이 입은 가운과 같은 색조인 밝은 붉은 색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놀라운 것은 왼쪽 창문에서 흰색의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보통은 바람이 밖에서 방안으로 부는데 이 커튼은 방 안에서 밖으로 흔들리고 있다. 커튼의 흔들림은 마치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유혹한다.

 

그 때문에 붉은 가운을 입은 채 등을 구부린 여성의 모습은 에로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면서, 관음증의 대상이 된다. 관객은 어둠 속에서 숨어서 숨을 삼키며 방안의 여성을 들여다볼 것이다.  바로 이 관객의 시선은 원래 호퍼의 시선이 아니었던가?

 

3)

 

이 그림은 1927년의 ‘아침 11시’라는 작품이다. 앞의 그림과 제목부터 대조된다. 앞의 그림이 깊은 밤이라면, 이 그림은 늦은 아침이다. 여기서 아침의 밝은 햇빛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바람은 잔잔한 듯 커튼의 창가에 그저 늘어져 있을 뿐이다. 짙은 푸른 색 소파에 앉은 여성은 벌거벗은 채, 창 밖을 바라본다. 이 여성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방안은 붉은 색, 푸른 색, 노란 색 등이 어울려 상당히 생동적이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벌거벗은 여성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왼쪽의 탁자 위에 있는 전등이다. 여성의 나체를 에워싼 밝은 색과 불이 꺼진 전등의 어두운 붉은 색이 대조되며, 여성의 신체가 지닌 크기에 비해 본다면 전등의 크기가 상당히 과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과장된 실내등의 모습은 전형적으로 팔루스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뒤의 그림에서 여성의 체형이나 머리칼의 모습을 볼 때 모델이 아내인 조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의 그림에서는 여성의 뒷모습만 보이지만 신체의 체형은 상당히 젊은 여성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기의 집에 있는 아내 조의 모습을 집밖에서 시선으로 그린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몇몇 해석자가 설명한 것처럼 호퍼가 고가 전철을 타고 가다가 창문을 통해서 본 낯선 여성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림에서 시선의 위치가 고가 전철보다 높아서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4)

두 가지 그림이 모두 아내 조를 모델로 하였지만 실제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고 하겠다. 앞의 그림은 관음증적인데, 관음증의 표면적 대상은 다르지만 그 대상의 궁극적 의미는 곧 자신의 어머니이다. 그는 지금 프로이트가 말한 원초적 장면을 훔쳐보고 있다. 그는 이 장면을 보고 또 보지만, 그는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본 장면을 그는 스스로 은폐하기 때문이다. 즉 부인의 기제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뒤의 그림에서 여성은 자신을 노출하고 있다. 관음증의 대상은 오히려 은폐된다. 이런 은폐가 시선을 자극한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벌거벗은 여성은 관음증의 대상이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노출증의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그림 속의 인물은 자신을 누군가의 사랑의 대상으로 보여주려 한다. 즉 자신의 육체를 무기로 타인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그림 속의 여성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 밖의 무엇인가는 그녀의 시선의 대상이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그리고 바라보기를 바라는 어떤 타자이다. 이 타자는 누구일까? 여성의 노출증에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처럼 남성인 호퍼가 그린 여성이라면, 이 여성은 호퍼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호퍼는 그림 속의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런 동일시는 앞에서 ‘여름 실내’라는 작품에서 침대에서 미끌어 떨어진 여성에서도 등장했다. 호퍼는 연애에서 실패한 자기를 이 여성에 투영하였던 것이다. 그림 속의 호퍼가 그 자신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이 벌거벗은 여성의 뒤에 놓여 있는실내등이 암시하지 않을까?

이 여성이 곧 호퍼 자신이라면 자신을 바라보아 주기를 그토록 바라 마지 않는 대상은 곧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그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창 밖에서 그 시선을 찾고 있다. 어딘가 있겠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는 없다. 여기서도 부인의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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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남기호 지음|도서출판 길|2023년 10월 20일) [한철연 소식]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남기호 지음)

 

지난 2023년 9월 4일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故 남기호 회원의 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남기호 회원은 2008년 독일 보훔대에서 청년 헤겔의 인륜성(Sittlichkeit·지틀리히카이트) 개념을 다룬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제주대 철학과를 거쳐 연세대 철학과에 재직하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헤겔을 중심으로 한 독일철학 연구자로 한철연에서 연구협력위원을 맡아왔고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2022년 11월 ‘『정신현상학』으로 『볼데마르』 읽기’란 주제로 월례발표회를 진행(유튜브 동영상 링크)하는 등  여러 차례 헤겔과 야코비를 주제로 학술지 『시대와 철학』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며 월례발표를 진행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한 야코비에 대한 독보적이고 꾸준한 연구의 결과가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근대 독일철학의 중요한 연결 고리이자 방향타 역할을 했던 야코비의 철학이 재조명 되길 바라며, 연구자 남기호의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서로 널리 읽히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남기호 선생님의 영면을 기리며.

아래 책 소개 기사와 간략한 책 소개 및 목차를 안내합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전문은 해당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아래 링크참조)

♦ 책 소개 기사

[책&생각] 독일 고전철학 발흥 밑불 된 야코비 신앙철학 (한겨례, 2023.10.20.)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12888.html

 

책소개

학문적 이성의 한계와 경계를 냉철하게 직시한 철학자, 야코비”

계몽의 비판적 자기반성을 통해 독일 고전철학을 살찌우다”

“야코비 철학은 존재하는 직접적이고 단순한 것을 포착하려는 소박한 철학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단순한 것을 이해하려는 순간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해를 위해 개념으로 이름 붙이거나 지칭하는 순간. 우리 머릿속의 단순한 것은 더 이상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머릿속에서 개념의 일차 폭력을 행한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이 개념을 쪼개고 다른 개념과 비교하고 결합하는 등의 복잡한 지적 작업을 한다. 단순한 것은 더 이상 흔적조차 없는 잔해 속을 파헤치면서 개념들의 퍼즐 작업을 유희하는 것이다. 야코비는 이러한 지적 폭력의 상황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머리를 통해서든 마음을 통해서든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지적 이해를 위해 해체하기 이전의 바로 저 존재자의 참모습이라 역설하면서 말이다. 이에 주목하려는 야코비의 철학은 그저 소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한없이 진지해지려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목차

제1장 야코비의 멘델스존 비판 25
1. 논쟁 과정 25
2. 무한자와 유한자 30
3. 이성의 자유와 공중제비(Salto mortale) 38
4. 정화된 스피노자주의와 참된 철학 47
5. 숨겨진 내막과 인격신 59

제2장 야코비의 칸트 비판 69

1. 계몽의 이성 69
2. 비평과 부족한 만남 72
3. 신앙과 실재론적 인식 78
4. 칸트 비판과 이성의 독재 86
5. 인식과 자유로부터의 비약과 실재론의 붕괴 99
6. 실재론의 가능성 108

제3장 야코비의 피히테 비판 115

1. 종교의 시대 115
2. 피히테의 도덕적 세계질서 119
3. 야코비의 살아 있는 신 132
4. 마음의 이별 148

제4장 경건한 기만과 건강한 비학문(非學問)

1. 학문의 관심 155
2. 감성과 자연 159
3. 오성과 학문 164
4. 이성과 계시 171
5. 자유로운 신앙철학과 악의 문제 181

제5장 야코비의 셸링 비판 189

1. 논쟁 배경 189
2. 기만적 이성 192
3. 이신론적 자연 198
4. 무신론적 학문 205
5. 학문과 유신론 214

제6장 셸링의 야코비 비판 221

1. 대종교 재판 221
2. 학문적 유신론 224
3. 유신론적 자연철학 230
4. 이성과 신앙의 관계 237
5. 공중제비 또는 제자리 뛰기 246

제7장 헤겔의 야코비 비판 253

1. 정신의 철학 253
2. 절대적 유한성 257
3. 유한한 무한성 264
4. 체계를 향한 정신 273
5. 화해의 첫걸음 280

제8장 야코비의 헤겔 비판 287

1. 믿음과 앎 287
2. 무차별적 절대자 290
3. 유한한 이성 297
4. 매개의 지양과 아쉬운 만남 305

야코비의 생애와 저술들 315

♦ 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2704&start=pnaver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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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남기호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보훔 대학에서 청년 헤겔의 인륜성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 철학과 교수와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를 거쳐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있었다. 칸트, 야코비, 피히테, 셸링, 헤겔을 비롯해 독일 근현대 철학의 주요 인물들과 그 관계를 다루는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또한 헤겔의 철학을 ‘학문과 세계의 발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개선되는 열린 체계’로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치밀하게 탐구해왔다. 주요 논문으로 「헤겔 인정이론의 구조」, 「형식논리와 헤겔의 변증법」, 「세계시민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단서조항」, 「자유로운 죽음의 방식: 헤겔의 자살론」, 「우주론적 신 현존 증명의 사변적 의미」, 「칼 슈미트의 국가론에서의 리바이어던: 그 정치적 상징의 오용과 홉스의 정치철학적 의의」 등이 있다. 저서로 『철학자의 서재 2』(공저, 알렙, 2012),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공저, 오월의봄, 2012), 『현대 정치철학의 테제들』(공저, 사월의책, 2014), 『헤겔과 그의 적들: 헤겔의 법철학, 프로이센을 뒤흔들다』(사월의책, 2019), 『독일 고전철학의 자연법』(도서출판 길, 2020)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헤겔: 생애와 사상』(한스 프리드리히 풀다, 용의숲, 201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 계몽』(호르스트 슈투케, 푸른역사, 2014) 등이 있다.

최근작 :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독일 고전철학의 자연법>,<헤겔과 그 적들> 등, 총 8종

소탐대실(小貪大失) [천 하룻밤 이야기]

소탐대실(小貪大失)

2023. 10. 08. 한로(寒露)

    어떤 교인이 북(北)에다 퍼부어주는 집단이야 말로 악마같은 집단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악마와 교류하자고 하는 이들이 나쁘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른 어떤이는 매년 수조의 돈으로 무기를 사들이면서, 북에 비해 남(南)이 국방비를 많이 쓰면서도 자주국방을 하지 못하는 것은 위정자가 악마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자에게 어느 악마가 실재로 악마이냐는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전자는 정치이야기는 그만하자고 한다. 정치의 ‘정’자가 나오면 정치 이야기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북에 퍼부어 준다는 말은 정치와 다른 입장인 척 말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그만하자고 하는 그 논리방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자처럼 자기가 먼저 자기 판단을 말해놓고, 다른 견해를 말하면 그만하자는 사고방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제 눈에 들보를 보지 않고서 남의 눈에 티끌을 나무라는 격인데, 나로서는, 그가 남을 비판하여 말해 놓고서, 그의 견해와 다른 견해를 함께 논의해보자는 데는, 이미 그가 맞고 남이 틀리다는 그 고약한 사고가 중세 종교재판의 사고일 것인데, 왜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는가?

    플라톤 전문가였던 박홍규 교수는 철학이 있는 자료들을 모두 다 놓고서, ‘어떤 이론이든 학설이든 자료에 근거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자료들을 삶에서 통 털어서 함께 보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수학,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그리고 인간과학들인 역사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이 있다고 길게 언급하면서, ‘새내기들이 그거 언제 다 해요, 하나 하기도 힘들고 바쁜데, 철학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 아닌가요? 그래, 머리가 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고 있다고,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 하나에서만 답을 찾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여럿을 함께 다루는 방식을 추론적 사유라 부르고, 하나가 다른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방식을 추리적 사고라고 한다. 전자에는 경험의 총체를 추론하여 다루지만, 후자에서는 논리의 선후에 맞는 추리만을 한다. 전자에서는 ‘이다’에서 답이 있다고 여기고, 후자에서 ‘있다’에서 답을 찾기 위해 합의하고 계약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우리 입말에는 ‘이다’와 ‘있다’가 구별이 있지만, 서양 언어들에서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그리고 각국의 언어에서 분화하면서도 여전히 두 가지 사이의 구별이 모호하여 학문을 규정하는 방식이 늦게서야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들 한다.

    현대사에서 현실에는 패거리(카르텔)가 있다고들 한다. 카르텔의 설명하는 ‘이다’에서는 상식을 기반으로 순서와 배열이 먼저 있다고 공상하고, 반면에 ‘있다’는 자료들을 현실의 평면위에서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자료들의 분류와 배치에서 각자의 견해와 삶의 방식이 나올 것이다. ‘이다’는 현실이 아니라 상징의 배열로서 다루고, ‘있다’는 실재적 삶에서 무작위에 가까운, 어쩌면 무권위의 배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잘 모른다는 것은 무작위의 자료들을 어떻게 된 배치인지 배열인지를 먼저 알 수 방식이 없다는 것이다. 산과 계곡, 들과 강처럼 자연이 나누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nature humaine, 인간본성)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이 어떠한 방식들로 풀어놓았을 것 같은데, 그 본성(자연)을 다룬다는 것은 어렵다. 자연의 배치와 배열을 요즘은 수학적으로 복잡계라고 한다. 복잡계는 ‘있다’를 다루는 것이지, 산술학과 기하학처럼 정해진 단위로 ‘이다’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있다’로서 현실은 두께를 가진 덩어리와 같다. 그럼에도 긴 역사 속에서 간략하게 보면, 3세대가 사는 두께도 평면이라 부를 정도로 얇은 층일 뿐이다. 열여덟 쯤에서 젊은이, 장년, 노년의 3세대가 현실의 평면의 각 층들이다. 이 평면들이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길고 깊은 두께로서, 고조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각각의 질서와 배치가 있었다고 한다. 시대의 평면을 겉으로 보아 단절과 새 질서로 보이지만, 깊이의 흐름은 연속적이고, 인간의 자연(본성)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과정이었고, 맑스주의자가 말하듯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따라 깊이[심층(深層)]의 흐름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역사라 한다. 영혼의 자연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그 표출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왕조 시대 다음으로 식민지 나라에서 국가주의가 이식되면서 겉모습이 바뀌고, 깊이에서 흐름은 겉모습에 짓눌려 없는 것처럼 여겼으나, 백성, 중생, 대중, 시민, 인민으로 불리는 삶의 노력들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국가주의의 권력은 법률로서 정하고 있다고 여긴다. 오랜 관습과 전통의 흐름위에 변전하는 법률과 위계가 있건만, 얇은 평면위에서 심층은 법률의 권력에 눌려서 평면의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식민지 지배에서 법률을 누가 만들었던가 라고 생각해보면, 인민의 제헌헌법이 아니었고, 제국주의의 법률이었다. 그 법률에 의해 해방 이후에도 부역자들은 권력으로 남아 있다가 미국 제국주의로 넘어가서도 식민지 정치에서도 숭미파로 자처하면서 상층으로 남아있다. 권력은 겉으로 계속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이 터전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방식을 만들고 있다. 그 방식이 남쪽에서 여러 번의 봉기와 항쟁으로 혁명을 해보려고 했으나, 인민이 원천이면서 최종심급인 법률을 만들지 못했다. 국가주의에 이익을 챙기는 사적이익의 추구자들은 왕조시대에도 식민지시절에도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도 여전히 상층이다. 이들이 헌법을 수정하며 몇몇 공화국들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들은 과거의 미덕이었던 청백리도 아니고 사변적(통감, 거울에 비추기) 사유도 하지 않았다. 사적 이익, 돈을 위계의 꼭대기로 만들었다. 그 권력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상층만이 누리는 방식을 만들면서, 앞선 시대의 덕목들조차도 악처럼 취급하려들었다. 홍범도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찌하여 공직에서 수십억 대 돈을 벌고, 97만원의 접대를 받아도 귀양 가거나 사약을 받지 않는가라고 하면, 그들은 그것이 구시대의 방식이고, 지금은 능력이 있으면 공무도 맡고, 돈도 번다고들 한다. 그것도 공공의 일을 하면서 말이다. 상층이 사적 축적을 당연시 하는 나라. 이들은 그래도 개인의 이익이 곧 나라의 이익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를 비호해주는 이들이 있지 않는가? 인민 대중을 개돼지 취급하며, 상층의 논리를 만들어준 것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묻지 않는 듯하다. 그 상층은 일제의 마름들이었고, 미국이라는 제국의 주구인데, 현 정부는 일본의 주구가 되기를 자청하는 듯하다. 그 상층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인민의 피와 땀을 팔아버린다는 점에서, 과거 산업시대의 매판과는 다른 정보시대의 매판인 것 같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나라와 터전조차 팔아치울 듯한, 이 소탐대실을 권력이 자행하고 있다. 이 귀결에는 세월의 경과 속에서 두께 있는 평면의 요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요동은 자연의 필연성에 의해서이며, 이름하여 복잡계와 같다. 생태계 뿐만 아니라 영혼도 복잡계이니, 개인의 특이성도 복잡계이다.

    국가주의의 등장 배경을 보면 유일신앙에서 교리(도그마, 독단)와 이론(체계)의 변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신앙자체로서는 이론적으로든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실재로는 없다. 인간 사유와 추론의 발달 과정에서, 또는 유일신앙의 사고는 평결과 계약에서 이익과 잉여를 취할 궁리로 만들었고, 이런저런 논의들 중에서 신앙에 맞는 것을 추리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어서, 철학적 이론을 유비와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신앙자들을 현혹하여 그 집단의 제도적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은 삼위일체성립에서 스콜라철학까지의 과정이 증거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처단, 화형, 잠수 시켰음에도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잘났다고 무오류라 한다. 신앙의 무오류와 체계의 완전성이 있기나 한가? 그들은 권세라고 한다. 이런 권세를 누린 방식을 국가라는 단위로 옮겨서 권력으로 변신시켰다. 이로부터 유일신앙은 권력의 뒤에서 권세를 누렸고 누리고 있다. 성직자들과 교회들이 가난한 자에게 아카페를 실행하지 않고서, 왜 부를 축적하고 있는지를 되물어보면 알 것이다. 학문들 각각이 제자리를 잡기에 어려웠던 것은 권세의 독단이 거대한 힘을 발휘하였고, 천문학으로부터 물리학, 화학으로 차차 독단이 무너지면서 19세기 후반에서야 달리 말하기가 등장하였다. 그 유일신앙이 권세를 누린 것은 중세의 종교재판과 마남(녀)사냥의 방식에 있었다. 마남사냥을 본따서, 현대에 와서는 사상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악의 축만들기, 빨갱이 만들기를 하며 악마사냥을 하고 있다. 이런 전도된 사고를 뒤집으면 악의 축을 만드는 자들이 악귀같은 자들인 셈이다. 자기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선량한 의도를 가진 자들을 물속에, 불속에 넣어버렸지 않았던가. 일제는 독립운동을 종교재판 같은 보안법을 만들었고 해방 후에도 이런 권력은 마남사냥처럼 보안법을 휘둘렀다. 그 권력과 권세의 사고는 ‘있다’는 현실의 평면보다 ‘이다’라는 논리의 단면으로 재단하여 판결하고 심판하려 든다. 인민이 죄종심급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암묵적 카르텔이라기보다더 구체적으로 논리적 사고에서 동일성을 유지하였으며 서로는 유비와 알레고리로서 교환하고 있다. 이 악귀들은 그들이 저지른 악남(惡男)사냥에 대해 회개하지도 않았고, 공동체 또는 공공의 삶의 실천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산업시대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실천으로 나가는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이다. 규소시대에는 아직 미지수인 것이 복잡계와 같다.

    서양의 중세이든 동양의 왕조시대이든, 정해진 학문의 틀 밖으로 나가서 사유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서양에도 동양에도 틀 밖의 사유를 하는 별종(anomalie)은 여전히 쭉 있어왔다. 별종이 어쩌면 인간의 자연(본성)을 온자연(Nature) 속에서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있다’에 관한 자료들(la donnée, les données)을 다루려고 했는데 비해, 비유와 알레고리에 젖은 하늘나라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이다’의 사고에서는 자료들(le donné, les donnés)을 상징처럼 다룬다. 전자에서는 자료들을 함께 다루어야 하기에 특이자, 개별자, 일반자, 관념자(이데아)의 성격들과 그것들의 능력과 기능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는 1, 무한, 하나, 통일, 전체, 완전이라는 ‘하나’를 ‘이다’로서 다루었는데, 이들 모두는 ‘이다’의 ‘1’(하나)에 대한 추리로서 동일성의 귀결들로 향하고, 비유와 알레고리를 통해 동일성의 최상위 ‘1’을 완전하게 절대적이라 추리한다. 이 양자의 경우에, 전자에서는 실재적으로 사실상 ‘차히’를 다룬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 추리상 또는 논리상, 벩송의 용어로 ‘권리상’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동일자에 대한 유비적 표현이고, 이를 종교적으로 옮기면 하나님 논리(로고스)와 같은 알레고리가 성립한다고 믿는다. 이런 후자의 주장자들의 철학적 배경에 이데아들과 원자들이라는 것의 요술적 조립방식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진리’라는 용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동일성의 ‘하나’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 추리들이 계열들이 파라독사임들을 그들도 알게 되었다. 현실에서 생활하고 실천하는 ‘진리인 것’은 그나마도 인민의 평결에 의해 또는 제헌의회에 의해 합의되고 계약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유 대 사고의 차이에서 논리적 사고자들은 권력과 권세의 대열들에서, 이제 이 사고자들도 누려보고자 늦게서야 이 양자 속에 개입하였다. 19세기 말에 현상을 통해 상징을 재현화하는 논리실증주의가 그러하다. 그들은 이 논리의 ‘진리’가 부의 축적을 가져다주고, 삶의 편리와 향유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이런 관련을 비유적으로 하면, 상징의 배치를 놀이로 삼아 그 놀이를 노름으로 여기듯이, 또는 투자를 투기로 바꾸어 부를 누리고자하는 속셈을 드러냈다. 학문이 인류의 자유와 평화가 아니라 개인의 영달과 부의 축척의 부속물이 되었다. 권력이 공공이 아니라 사적 지배로 바뀌고, 신앙의 권세가 인민에가 아니라 성직자의 부의 축적과 출세의 수단과 같이 된 것도 세상의 현실이었다. 이 탐만치에 빠진 카르텔에, 진리추구의 논리분석이 예속의 길을 택한 것이다. 진리에는 부의 축적도 명예도 권력과 권세도 없다. 신앙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실에서는 진리에 맞는 실천에서 ‘훌륭타’에 있다. 이들은 훌륭타는 버리고, 타인보다 더 많이 ‘안다’ 또는 더 높은 정도의 진리를 ‘안다’는 것을 주장한다. 마치 천사의 계급이 18등급이나 되고 그 등급을 따라 올라가 1등급을 넘는 인식(안다)에서 신의 세계로 들어간 듯이 말하는 이들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추리자들 또는 논리자들이 권위를 누리고자, 권력과 권세에 야합하여 만든 것이 -마치 사적 이익의 축적과 확대라는 지본 시장에 투자가 아니라 투기판을 만들 듯이- 학문의 세계에도 위계를 정하듯이 다단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진리라는 이름으로, 지식의 실천을 투기로 노름으로.

    권력, 권세, 권위가 서로 암묵적으로 또는 내밀하게 패거리를 만들어 악귀로서 서로 투합하여 만든 것이, ‘진리를 안다’이다. 복잡계도 모르면서. 투자한 것만큼, 아니 수배 또는 수십배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들 한다. 이들에게 대중, 민중, 인민은 그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좋게 말해서 권력 다단계나 종교 다단계를 학문적으로 비유하여 최고 상위의 축적을 정당화하는 것을, 그 ‘안다’는 진리를 자기들만이 안다고 한다. 그런 학문을 하면서, 신앙을 지니면서, 권력에 가담하면서, 지식분자는 권력과 권세에 예속하는 또는 종속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이 자랑의 끝이 하늘의 ‘일’(하나), 이데아의 ‘일’자를 안다는 것이다. 그 지식의 진리에서 논리상의 근거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 판결, 심판이다. 그러나 그 명제를 누구도 증명하지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이는 벩송이다. 이 명제는 ‘이다’의 선전제의 논리이지 현재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의 현실도 아니다. ‘이다’의 허상을 믿는 탐만치에 빠진 자들이 인간과 자연, 지구와 생태계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제 눈의 들보를 보지 않고 남의 눈에 티끌을 문제삼아 악마로 모는 카르텔 속에서 치열하게 악마사냥을 하면서, 이익과 향유를 즐기려 한다. 그들은 허상이라고 하지 않고 재현(표상)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다’에는 현실과 실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돈, 돈, 즉 자본에 예속하여 마름, 주구, 예속으로 자처하는 사고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다단계를 하듯이, 계급이 올라서 상위로 올라가는 것을 명예로 삼게 하는 국가권력 위에, 돈도 벌고 지위도 높이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종교권세가 뒷바침하고 있다. 게다가 현실 평면을 잘라서 단면으로 사고 하게하는 논리 속에서, 또한 놀이 속에서, 나아가 놀음 속에서 “진리”가 있다고 하는 권력에 아부하는 학자들에게도 있다. 말하자면 파라노이아 극한에서 무오류를 배워서, 무소불위로 행사하려는 자들에게 미친 악귀들이 있다.

    이런 추리와 논리 추구를 따르는 이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판단 속에서 그 자신은 속하지 않는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 명제 자체가 그들 논리자의 표현으로 파라독사이다. 그럼에도 파라독사를 진리로 믿는 자, 믿게 하는 자, 믿고 권력추구에 줄서는 자, 이들은 인간의 자연(본성)에게, 자연의 생태계에게 빚지면서도 사적이익에 목매고서 소탐대실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민을 제국의 황금알을 낳는 거북이로 만들면서 말이다.

    인민은 권력이든 권세이든 권위이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 모든 자료들의 기원적인 이유(raison)이고 근원적인 토대이다. 게다가 인민의 합의와 계약은 최종평결이다.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인민을 어린 자식이라는 알레고리로 만들고 인민의 평결은 인민재판이라 유비로 만든다. 인민이 세상의 평결을 하기에 대혁명에서 제헌의회가 있었고, 반동들이 들어섰을 때는 비밀 계절사, 그리고 민중단체, 나중에는 프롤레타리아 정당 등을 만들었다. 인간의 자연(본성)에서 창조와 생성의 노력에 대해, 빨갱이니 반역이니 악마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악을 감추기 위해, 마남(魔男)사냥 때처럼 상대를 (브루노처럼) 산채로 화형에 처넣으려는 악귀같은 자들이다. 자연(본성)은 수십억년전 지구 생성의 그 때도 지금도 복잡계이며, 그 복잡계에서 생성한 생명체도, 인간의 영혼도 복잡계이다. 이를 완화된 표현으로 인간 세상사를 들뢰즈가 “다양체”라고 불렀다. 한 인간의 일생도 다양체이다. 다양체의 두께 있는 평면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혁명적이다.

(4:05, 56UKG), (4:36, 56UKH) (5:08, 56UKHH)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는 정치 [시대와 철학]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는 정치

 

정동훈(성공회대 대학원)

 

모두의 주목을 받은 화제의 보궐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조금 이른 중간평가를 해도 적절할 것 같다. 처음 이 글을 쓰려고 했을 때 생각보다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지? 라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다. 비판할 주제가 너무 많아서 1주에 3번씩 글을 써도 6개월은 버티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마 6개월이 지나기 전에 6개월 치를 새로 쌓아줄 것이다. 악재를 더 큰 악재로 잊게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만큼이나 엉망이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첫날부터 지금까지를 평가하면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는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 좌측이다 보니 보수 정부의 정책 내용에 찬성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나 나의 성향이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보수 정부의 정책이라도 정책 결정의 맥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보수 정부라면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정책들이 있다. 이해가 어려운 경우에는 보통 보수당원인 지인들에게 설명을 부탁하고 들어보면 의사결정의 맥락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은 보수당원들에게 물어봐도 이해할 방법이 없다. 보수당원이나 관계자들도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본인의 소속정당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들이 임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구태여 예시를 나열하지 않아도 아마 문득문득 떠오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는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집권을 했던 세력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지고 통치를 했다. 예를 들어 현재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파키스탄은 군부의 성향이 폭력적이지만 주변국과의 분쟁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역시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이 이어져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이 집권세력이 가지는 최소한의 합리성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국제정치는 물론 국내적으로도 분야를 불문하고 제대로 설명이 가능한 정책이 거의 없다. 몇몇은 자신들이 내세운 주장을 어떻게든 관철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있다. 최근 치러진 보궐선거가 가장 시의성 있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에서 유죄로 판결이 나와서 보궐선거를 진행하는데 거기에 그 원인이 되는 인물을 다시 출마시켜놓고 그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심지어 승리를 바라는 모습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공화정 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번영까지 일구어낸 선진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연이어 일어나는 현실은 매우 불행하다. 심지어 한국이 공화정이 아니라 왕정이었더라도 집권세력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을 남발하는 현실은 집권세력은 물론 최종적으로 국민에게도 득 될 것이 전혀 없다. 정말로 안타까운 지점은 이보다 더 비합리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평가가 무색하게 며칠이 지나면 더 비합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패턴의 반복이 윤석열 정부의 현재라는 것이다. 앞으로 개선의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많은 이들의 평가가 그렇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치는 수준이 낮아지고 국민은 고통받는다. 더욱 충격적인 진실은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아직도 3년이 넘게 남았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합리적 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우리 공동체에 비합리적 이해가 팽배해질 것은 자명하다.

호퍼와 정신분석 5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5

 

1)

앞에서 20년대 후반 호퍼의 욕망 구조에 대해 언급했다. 다리, 망사르 집, 등대 그림 등에서 보듯이 실재로 가는 길은 차단되었고 그는 이에 대응하여 상상계적인 동일시를 통해 실재로 다가간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는 호퍼의 생애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했을 수도 있는 신혼기였다. 호퍼는 1924년 9월 같은 동료 화가인 조(Josephine Nivison)과 결혼했다. 그리고 1925년 삽화가로서 상업적 활동을 포기하고 그림에 전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의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그가 상상계적인 동일시에 빠졌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호퍼 자신의 전기를 통해서 그의 욕망 구조를 짐작해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호퍼의 생애에서 그런 부분에 관한 연구는 없다. 그런데도 몇 가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그의 부모이다.

 

2)

호퍼의 부모는 침례교도로서 상당히 경건한 삶을 했다고 알려진다. 부모는 결코 강압적이지 않았고 그림에 대한 호퍼의 관심을 격려해주었다. 그럼에도 호퍼의 부모의 청교도적인 태도는 호퍼에게 강한 영향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호퍼는 1906 이후 3년간 파리에서 생활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파리로 온 예술가들은 파리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의 무정부적인 삶에 휩쓸려 들었다. 호퍼는 파리의 인상주의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파리의 예술가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부모가 정해준 집과 미술관을 오가며 혼자서 인상파의 그림을 습득했다고 알려진다.

무엇보다도 그가 나중에 자신이 살았던 집과 유사한 집을 그리면서 이름을 청교도라고 붙인 데서 이런 청교도적 영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은 흰색 나무 판넬로 이루어진 단순한 맞배 지붕 형태이며, 이런 집은 후일 호퍼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3)

호퍼의 그림에서 파리 시절 초기에는 거의 유일하게 인상파적으로 밝고 경쾌하며, 붓터치가 자유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파리 이전 습작기에서나 1909년 그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어느 때나 그의 그림은 무겁고 어두우며 이제 붓터치를 알 수없이 평면화 된 색채가 지배하게 된다. 파리 시절 이 경쾌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어두워졌을까?

그가 막 미국으로 돌아왔던 시기에 그린 그림 ‘여름 실내(Summer Iinterier: 1909)’는 그의 마음에서 무언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이 그림에서 왼편의 짙은 갈색의 침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은 상당히 밝은 색조를 이루고 있다. 그 한 가운데 이불보와 함께 침대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진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상의만 걸치고 하의는 벗은 모습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숙이고 있어 얼굴은 윤곽만 보이지만 오뚝한 콧날이 인상적이다. 얼굴은 검게 칠해져 마치 뒤로 묶은 머리카락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녀는 무언가 충격을 받았으며,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내팽개친 모습이다.

 

4)

대체 이 여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꿈을 꾸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듯하다 볼 수도 있는데 상의를 걸치고 있다는 것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녀를 덮친 이후 갑작스럽게 떠난 것인가? 검은 얼굴은 그렇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침대를 제외한 나머지 밝은 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목은 ‘여름 실내’인데, 이 제목으로 보면 호퍼의 삶에서 여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호퍼가 실연 이후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 호퍼는 독일에서 온 한 여성을 사귄 것으로 알려진다. 호퍼는 그녀에게 상당한 애착을 느낀 듯한데, 그녀는 호퍼에게 깊은 감정은 없었고, 그러기에 쉽게 떠나고 말았다. 한 두 번 편지 교환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더 이상 관계는 발전하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그림을 보면, 그림에서 미끌어진 여성은 호퍼 자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호퍼는 독일계 여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호퍼가 육체적으로 무기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호퍼의 무기력은 호퍼에게 여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심적으로 억압하는 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 그는 상당기간 극복할 수 없는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그의 친구 Walter 는 말한다. 

“[그는] 며칠 동안 이젤 앞에 앉아서 불행감을 느끼며 손가락을 들어 주문을 깰 수도 없는 상태에서 살았다”

 

5)

여기서 호퍼의 욕망 구조를 추측해 보자. 호퍼는 청교도 가정에서 심적 억압을 느꼈다. 그것은 거꾸로 그만큼 그의 마음의 표면 아래서 실재의 욕망이 일렁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절만해도 그의 의식계는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어둡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온한 상태였다.  파리 시절 호퍼가 앞에서 말한 연애에 빠졌을 때, 그의 욕망 구조는 가장 안정적이었다. 이때 경쾌하고 밝은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호퍼의 실연은 그에게 심적인 충격을 주었고 그 때문에 그럭저럭 유지되어온 그의 상징세계는 균열하면서 이런 균열의 틈 속으로 마그마와 같은 욕망, 실재에 대한 욕망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분출하는 실재에 대한 욕망 앞에서 그가 취한 태도가 곧 상상적인 동일화이다. 1925년 그려진 ‘철로 가의 집’에서 기괴할 정도로 솟아 있는 망사르 집이 실재에 대한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1927년 ‘등대 언덕’에서 그려진 솟구친 등대는 상상적 동일화를 의미한다.

그의 욕망 구조가 상상적 동일화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 1924년 호퍼는 조와 결혼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이미 42살이고 동갑이니 호퍼보다 조가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호퍼와 조의 관계는 욕망 구조의 측면에서 본다면 부부의 욕망 관계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하지 않는 점이 눈에 뜨인다. .

 

6)

호퍼와 아내의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호퍼의 친구인 사진가가 1960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 집은 호퍼가 바닷가 South Truro에 그가 직접 지은 집이다. 이 사진에서 호퍼는 무척이나 확대되어 있고 반면 조의 모습은 뒤쪽에 아주 조그마한 크기로 등장한다. 마치 그의 등대 그림에서처럼 거대한 조는 위압적이다.

이 그림을 보면 호퍼는 마치 압도적인 가부장적 존재이고 반면 조는 그에 종속되어 존재감 자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의 진정한 의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조가 뒤에서 아이와 같은 호퍼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호퍼는 아이와 같고, 조를 어머니처럼 따른다. 조가 없으면 호퍼는 짜증을 내면서 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호퍼는 사춘기 소년이 항상 그렇듯이 자기 자신을 압도적 힘을 지닌 존재로 확신한다. 하지만 그의 확신은 그의 배후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니, 이 관계를 라캉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곧 상상적인 동일화의 심적 구조에 속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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