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신화, 그 불편함에 대하여[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무한 경쟁 시대의 모성

왜 나는 요즘 여성주의(페미니즘)에 시큰둥하는가? 여성주의의 가치로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패배주의에 빠졌기 때문에? 여성주의에 힘을 보탰던 진보의 목소리를 사그라지게 만든 지금의 상황 때문에? 미래를 짊어질 젊은 층이 스펙 쌓기에 여념 없고 정치적인 무관심을 넘어서서 아예 보수화되는 듯한 모습이 목도되기 때문에? 혹은 여성주의를 못난 여성들의 푸념거리로 치부해 버리는 냉소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에?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주의적 열정이 시들어버린 지금,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무기력감이 여전한 즈음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더웠다. 가마솥 더위, 불볕 더위, 찜통 더위에 부엌에서 가스불을 켜고 매일 밥해 먹는 것은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이었다. 당장 부엌문을 닫아 집안 살림 다 팽개치고 북극이든 남극이든 줄행랑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예전에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 제목인 『밥벌이의 지겨움』이 나에게는 정말 엄마 노릇하기, 주부 노릇하기의 지겨움으로 다가 왔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이 삼복 더위에 어땠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어머니상은 언제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자신을 지워가면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감수하는 엄마이다. 이러한 어머니상은 당당한 현대 여성의 모습이 주류인 이 시대에 박물관에나 전시되고 말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성장한 현대 여성들은 이러한 어머니와 다른 것일까? 희생의 대명사였던 전통적 어머니와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요즘의 현대 엄마들은 모성에서 과연 차이가 있을까? 무한 경쟁 시대, 자식을 살아남게 하기 위해 현대의 엄마들은 더 지독한 모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 모성 이데올로기는 표나지 않은 채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막강한 모성 이데올로기는 미래를 바꿔 보려고 몸부림치는 여성주의자들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철옹성, 산성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무한 경쟁 시대, 내 자식만 잘되고 남의 자식은 어떻게 되더라고 상관없다는 막가파식의 모성 이데올로기가 나를 숨막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한 모성을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나는 주변에서 별로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강한 모성과 강한 엄마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살벌한 경쟁의 시대, 그리고 무능한 엄마를 질타하는 사회.

나는 왠지 엄마가 주인공이거나 제목인 것은 나도 모르게 외면해 버리고 마는 의식적, 무의식적 습성이 있다.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상표로 포장된 많은 드라마, 소설, 영화에 경계심을 갖게 된다. 왜일까? 이러한 것들이 모성 신화를 부추길 것이 뻔해서, 왠지 ‘엄마’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눈물샘에 자극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에? 누구나 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다 엄마가 있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엄마는 영원한 소재가 되고 있다.

잃어버린 모성 신화를 찾아서

작년 2009년 인터넷에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은밀하게 독자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의 경우, 출판사들이 앞다퉈 베스트셀러를 만들려고 요란한 광고를 해 대는 것과는 달리, 독자들 스스로가 자기 고백, 고해 성사 식으로 『엄마를 부탁해』를 읽은 소감을 인터넷에 토해 낸다는 것이다. 이런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엄마를 부탁해』는 10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사가 영 마땅치가 않았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커녕, 이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의 미묘한 심리가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은, 어떤 마음의 뒤틀림이 있었다. 흥! ‘엄마’라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감동적인 상징이 우리의 정서를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 것일까….. 하는 꽁한 마음이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그 책을 읽지 않고 계속 피해 다녔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 책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었던 것일까? 왜 나 혼자서 그 책에 대한 일종의 마녀사냥(?)을 해대고 있었던 것일까?

예전에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문단에서는 신경숙 특유의 지독히도 섬세하고 내면을 긁는 문체를 놀라와 했다. 나는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는 그다지 감응을 얻지 못했는데, 우연히 손에 넣은 『외딴 방』을 읽고서는 신경숙의 또 다른 신선한 충격과 감동의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방학 때 미뤄 놓았던 숙제를 해 내야 하는 의무감에서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드디어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다. 내가 산 책은 벌써 137쇄를 거듭하고 있었으니, 137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는 소리가 된다.

이 책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한 줄의 문장으로부터 시작한다. 1인칭인나, 3인칭인 그, 그녀가 아니라, 2인칭 ‘너’가 등장함으로써 일단 독자의 호흡을 확 밀어 당긴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로 시작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로 막을 내린다. 소설 속에서 엄마는 아버지, 장남, 장녀 등 가족들의 무관심과 방치로 이미 실종된, 존재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만 가족들의 기억의 편린 속에서만 엄마는 아련하게 혹은 선명하게 떠올려질 뿐이었다.

우리의 현실에서 엄마는 언제나 당연히, 우리가 호출하면 금방 달려 와 줄 존재로 각인된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엄마의 존재를 무시하고 망각한다. 엄마에 대한 이러한 미안함, 죄책감이 독자들을 다 한꺼번에 엄마의 실종 사건의 공범으로 만든다. 독자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엄마를 부탁해』를 한 번 손에 넣고 읽기 시작한 독자는 쉽게 책을 놓지 않는다. 이 독자들이 이 소설의 조용한 신드롬에 일조한 것이다.

이렇게 처연한 심정으로 이 소설을 읽었을 많은 다양한 독자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좀 불편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엄마의 희생적이고 감동적인 모습보다는, 엄마를 희생양으로 삼아 만들어지는 ‘모성 신화’의 혐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하필 힘빠지는 이 시절에 ‘엄마를 부탁해!’ 일까 하는 짜증도 섞여 나왔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매우 강한 엄마이다. 현대의 젊은 유능한 엄마와 속성은 다르지만, 마치 가제트 형사처럼 부엌에서 뚝딱 어떠한 것도 만들어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의 모습과 닮아 있다. 다만 가끔 끝없이 이어지는 농사일과 부엌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항아리 뚜껑들을 신나게 깨서 풀고, 헛돈 들여 다시 사는 일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슬쩍 웃음이 나오는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나는 『엄마를 부탁해』의 신드롬 현상을 조망하는 몇몇 평론들을 읽어 보았다. 이 소설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대체로 남성 평론가들은 이 소설 속의 감동어린 엄마의 모습을 그린 작가의 노고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반면에 여성 평론가들은 조금은 인색하게 엄마의 감동을 담거나, 엄마 바이러스, 엄마라는 유령, 엄마에 대한 비판적 읽기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모성의 의미를 재평가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서 이 책을 읽고 올린 독자들의 댓글을 대강 주욱 훑어 보았다. 이 소설의 그 엄청난 독자들의 반응을 일일이 다 점검할 수는 없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알 듯도 했다. 이 책의 독자들은 누구인가? 그야말로 다양한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중년층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오기도 했다. 장남, 장녀인 중년층은 유년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눈물을 훌쩍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마도 장남 콤플렉스, 장녀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들이 불러낸 엄마 바이러스가 전염이 되어 엄마의 유령이 출몰하고 실종된 엄마를 애도하면서 자신 속 깊이 엄마에 대한 죄의식을 씻어 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모계 사회로의 회귀인가?

한국 사회 현대 여성의 모성성은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결별했는가? 혹시 현대판 새로운 모성 신화가 창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우리는 엄마라는 유령을 신격화해서 모성 신화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고달프고 힘든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엄마를 희생양으로 삼는 교묘한 공범자들은 아닌가? 엄마라는 영원한 고향을 아우라로 만들어 엄마를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권이 무너진 사회 속에서 여전히 우리들은 누군가 의지하고픈 도피처를 찾는 것일까? 아버지 없는 사회에서 이제 대신 어머니를 내세우고 있는가? 그러나 이 방법은 좀 비겁한 것은 아닐까? 전통적인 어머니를 불러내, 그 어머니를 희생양으로 세우고 그 희생양 속에 죄의식을 떨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엄마를 부탁해』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피에타상의 성모마리아에 비유되는 어머니. 짐짓 모성 신화의 냄새가 나지 않은가. 불편하다. 성모마리아의 온화함 속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권위의 상징인 대타자를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 피곤한 시대에 영원한 안식처로 인식되는 어머니 품! 고단한 일상 때문에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본능 회귀가 있는가?

왜 『엄마를 부탁해』에 많은 독자들이 빠져 드는가? 권위적인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뭔가 허전해 하는 것일까? 우리는 피에타상에 각인되어 있는 성모마리아, 희생의 화신인 어머니를 다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신드롬 현상에 심드렁하다. 새로운 모계 사회로 가고픈 대중들의 열망을 슬쩍 엿보았기 때문일까?

여성주의자들은 미래 어떤 사회를 희망하는가? 대중은 어떤 사회를 희망하는가? 여성주의자들은 가부장제가 하루바삐 멸망하기를 희망한다. 대중의 바람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고단함과 불안함을 보듬어 줄 새로운 권위인 대타자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열망이 새로운 모계 사회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모계 사회로의 회귀! 여성주의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달갑지 않다.

시중에 여성주의자들은 모계사회로의 회귀를 반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듯하다. 이것은 전혀 오도된 일임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 드센 여성들의 이미지를 한껏 받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부권을 패스받아 새로운 강권한 모권 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러한 일은 나도 뜯어 말리고 싶다. 어떤 신화도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 어떤 우상도 내세우지 않는 사회, 이러한 사회가 진짜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아닐까?

여성주의에 시큰둥한 요즘, 그래도 나는 모계 사회로의 회귀를 꿈꾸지는 않는다.

연효숙(연세대) / adin@admin.com

‘OO녀’에 대한 ‘꼴페’의 단상[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요즘 여자애들 왜 이래?

전국민의 일촌화에 힘쓰는 모 사이트 뉴스 페이지에 가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남녀가 편을 갈라 싸운다. 남성들은 요즘 여성들이 자기들 편의에 따라 남녀평등을 부르짖었다가도 남성들에게 남성다움을 요구하는 이중인격자 된장녀 혹은 꼴페(꼴통 페미니스트의 줄임말)라고 비난하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직장생활 가사노동 육아까지 도맡아 하느라 괴로운데 남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비난한다.

만약 그 기사가 여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그 내용에 상관없이 댓글의 단골 메뉴는 군가산점제와 출산, 가사 분담, 명품과 된장녀 등이다.

이 싸움에 적극적인 건 남성 쪽인데, 남성들은 온갖 성폭력적 언어와 욕설까지 섞어가며 여성들을 이기적이고 개념 없고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에는 ‘OO녀’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젊은 여성에 대한 비난이 보다 강화되고 가시화되는 듯하다. 비난을 당하던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은 이제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존재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된장녀, 루저녀, 군삼녀, 개똥녀, 발길질녀에 월드컵 열기를 타고 응원녀까지 도덕적 비난을 받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인터넷 뉴스와 게시판을 장식하고 있다. 기본적인 상식이나 예의를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주거나 (특히 남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젊은 여성들에 대해 사람들은 “요즘 여자애들 왜 이래?”라고 묻는다.

왜 젊은 (특히 비혼의) 여성들이 비난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단순히 여자들이 잘못을 더 많이 저지르기 때문일까? 혹시 이 현상의 이면에 다른 맥락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행위를 한 여성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성이라고 그만한 ‘나쁜 짓’을 안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응당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요즘 여자들한테 왜 이래?”

‘OO녀’ 비난: 성별화된 윤리

어떤 행위의 당사자가 남성일 경우에는 대체로 그 ‘악’의 수위가 높아서 법적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OO남’이라는 별명을 붙여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 비난을 가할 필요성이 낮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잔혹한 살인사건의 가해자나 조직폭력 가담자들은 거의 남성이며,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가해자도 대부분 남성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정치인과 자본가도 대부분 남성이다.

이들 역시 강도 높은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법을 통해서 처벌을 할 수 있고 시민들이 나서기 전에 국가와 언론이 공론화를 하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도덕적 비난이 처벌을 대신할 필요가 없게 된다.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OO녀들은 대부분 법적 처벌이 곤란한 행위를 했지만, 공공질서를 해하거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관습 또는 가치를 따르지 않은 경우이다. 개똥녀나 패륜녀가 그랬다.(*개똥녀 사건 당시인 2005년에는 처벌 근거가 없었다. 이제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의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 의무화되어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발길질녀나 고양이 학대녀는 상황이 다르다. 남성이 벌건 대낮에 길거리에서 여성을 때리거나 임신한 여성에게 심각한 폭력을 휘둘러 유산에 이르게 한 사건들은 적지 않지만, ‘발길질녀’ 사건처럼 공론화되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그 가해 남성에게 따로 별명을 붙여주지도 않았다. 또 많은 남성들이 고양이나 개와 같은 동물들을 심각하게 학대하고 죽이는 사건이 여러 번 있었지만, ‘고양이 학대남’이라는 말이 떠돌았던 적은 없었다.

법적 처벌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동일한 유형의 행위에 대해서 그 행위 주체의 성별에 따라 비난과 낙인찍기는 그 방식과 강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OO녀’ 현상을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일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통해 처벌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어떤 행위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과 그 판단에 따른 비난의 방식이 이처럼 성별화되어 있다고 한다면, 필자가 당장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OO녀 현상을 여성의 변화와 이에 대한 남성들/남성적 사회의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소위 순종적이어서 그동안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젊은) 여성들의 비도덕적 행위가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남자들의 비도덕적 행위는 워낙 빈번해서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지만, 남성에 비해 공공질서를 잘 지켜왔고 또 폭력과 관련해서는 주로 피해자였던 여성들이 규칙을 어기고 가해자가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이 가하는 ‘폭력’의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 남성들은 거의 공황에 빠지고 적극적이고 거칠게, 그리고 발 빠르게 이에 대응한다. 된장녀와 루저녀에 대한 비난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제 된장녀라는 말은 행위 당사자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여성들을 싸잡아 이르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된장녀와 루저녀는 OO녀의 유형 중 남녀 간의 대립적인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들인데, 이들의 죄목은 간단히 말해 ‘남성감정상해죄’이다.

이들의 ‘잘못’은 사실 불분명한데, 왜냐하면 방송에서 표현한 자신들의 생각이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뿐,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된장녀는 돈 많은 남자를 노골적으로 밝힌 죄, 루저녀는 남성의 외모를 능력과 결부시켜 평가한 죄 때문에 비난을 당했다.

페미니스트로서 이 여성들의 사고방식에 결코 동의할 수도 없고 남성들이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이해할만하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남성들의 반응은 사실 좀 호들갑스럽다. 텔레비전에서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쇠고기 돼지고기처럼 부위별로 평가하고 여자는 예쁜 게 곧 착한 거라고 말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예쁘기만 하면 왕자님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어리고 젊은 여성들을 거울 앞에 묶어두는 것은 가부장제이고, 그 거울에 비친 여성의 모습이 바로 된장녀 아닌가? 전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이 매일 겪어내는 일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 말 몇 마디에 남성들은 상처를 받고 화가 나고 인격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이 보여주는 분노의 가장 큰 이유는 외모와 능력 면에서 이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그렇듯이) 특정한 젠더 역할과 이상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들의 분노가 정당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궁금한 것은 각종 OO녀들에 대한 비난의 이유가 아니라, 그런 현상이 최근 몇 년 간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혹은 심리적 맥락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성/ 여성적인 것의 배제와 편집증적 남성 주체

OO녀 비난 현상은 단순히 여성들이 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거나 여성들의 비도덕적 행위가 사회 구성원들의 비난 말고는 달리 처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여성의 ‘타자화’와 관련된다.

여성의 타자화는 이중적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사회와 문화는 여성을 배제한 채로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며, 나아가 이 가부장제 질서는 여성/여성적인 것이 남성/남성적인 것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자를 열등한 것으로 취급한다. 이 질서에서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여성으로서 존재해야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남성이 가진 것을 갖지 못했다는 의미이거나 또는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의 차이이다.

OO녀 현상은 최근의 일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남성과 유사한 행위를 하고서도 늘 더 비난받고 낙인찍히며 나아가 특별한 이름을 부여받아왔다.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은 타락한 ‘윤락녀’로 불려왔지만, 남성인 성구매자들에게는 어떤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다. 또 다른 양상도 있다. 똑같이 록밴드를 좋아해도 남자애들이 좋아하면 마니아, 여자애들이 좋아하면 그루피라고 한다. 스포츠 신문이나 자동차 관련 잡지들을 사서 읽는 남자들은 패션잡지를 읽는 여자들만큼 할 일 없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남자들이 술판을 벌여놓고 나라걱정을 하면 그저 뉴스에서 귀동냥 한 걸 그대로 읊어도 토론이지만, 여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일상의 희로애락을 나누고 덜어낼 때 그것은 쓸데없는 수다가 된다.

여성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문화적 현상들과 여성들의 욕망은 저급한 것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그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젠더 정체성으로부터 길러진 것이든 아니면 진정한 여성 고유의 것이든 또는 그 둘 사이에서 개별 여성들이 겪게 되는 갈등과 협상과정으로부터 선택된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여성들을 낙인찍거나 가치절하하는 것은 남성중심의 문화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최근에 좀 달라진 점이라면 소위 요즘 여성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젊은 여성들은 더 이상 순종적이고 조신하고 착하지 않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했거나 독립하기를 원하며 자신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생각을 감추기만 하는 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달라진 여성들의 모습을 페미니스트 주체라고 일반화할 수도 없거니와 앞에서 본 OO녀들은 오히려 남성중심 문화의 폐해를 무의식적으로 모방한 경우라고 말 하는 게 오히려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라도 우리는 여성들이 ‘히스테리’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주장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였을 때 히스테리가 여성의 병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자유롭게 말 할 수 없는 여성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히스테리아의 위치에 있었다. OO녀들의 욕망이 비록 ‘진정한’ 자기 욕망, 혹은 여성적 주체의 욕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들이 발화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작은 변화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남성들은 이런 변화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변화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 그동안 감춰져 있던 징후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편집증이다. 사실 편집증에 걸리는 것이 주로 남성이라는 점은 그렇게 유명하진 않다. 편집증은 과도한 나르시시즘의 극단적인 경우의 하나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망상을 갖는 증상을 보인다. OO녀 현상에서 어쩌면 남성들의 편집증적 징후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들의 변화에 남성들은 과도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나르시시즘적인 남성 주체가 자기를 중심으로 구성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그 문화 자체를 위태롭게 할 때, 남성 주체는 그 주체의 자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낌으로써 엄청난 피해의식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은 그저 망상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대개의 남성들이 편집증적 징후를 보일 뿐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항의가 단지 몇몇 여성들에 대한 맹비난에서 그치지 않고, 남녀 모두에게 압박을 주는 젠더 정체성의 가부장적 규정들을 바꿔내자는 주장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은 역시 너무 큰 바람인 것일까?

황주영(서울시립대) /

나는 강간을 당했지만,말하지 않을 것이다[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지난 5월과 6월 두 번에 걸쳐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라는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한 번은 NGA(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월례상영회에서, 또 한 번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의 독립다큐멘터리 정기상영회에서였다. 두 상영회 모두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져서 감독의 영화작업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고민들을 생생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또한 그 자리에 모인 관객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공감하면서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지난날의 나의 성폭력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화 속 그녀들과 감독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면서 나는 아픈 기억들을 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되새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 포스터

모자이크 없는 버라이어티 쇼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는 “모자이크? 음성변조? 그딴거 재미없어! 껍질을 벗고 나온 유쾌발랄한 수다”, “벌거벗고 세상과 마주하기. 피해자가 아닌 ‘독립생존자’로서의 목소리”를 모토로 내걸었다. 감독은 2005년 우연히 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생존자말하기대회’에 촬영을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뉴스미디어에서는 사건 자체가 부각되는 데 비해 ‘피해자’들이 자신의 입으로 성폭력 경험을 얘기하는 것에서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도 별반 다르지 않게 느꼈던 이런 경험들을 담아내서 영화를 만들기로 하였다. 영화 속 인물들의 생존담과 인터뷰, 평범한 남녀의 인터뷰, 성교육과 성문화 관련 다양한 이슈들, 뉴스와 사건들의 삽입 장면 등은 우리 시대 성문화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이러한 ‘보여주기’와 ‘말하기’를 통해 바로 우리가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 : 우리 시대 성문화의 현재,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

영화가 시작되면 성폭력사건에 관한 뉴스 방송 화면을 보면서 감독이 분노를 터뜨리다가 합기도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전체의 발랄한 분위기와 맞닿아 있으며 세상을 향한 감독의 ‘하이킥’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은 이 장면에 대해 질문을 많이 던졌다. 감독은 “운동을 하는 것이 호신술과 실제로 상관없으며, 자신의 몸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성폭력 경험에 대해 당사자인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또한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한 여성화가가 하는 말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생존자말하기대회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경험을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얀 스크린천에 새겨진다. “나는 강간을 당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만난 네 명의 인물들의 삶에 들어간 카메라는 그녀들이 성폭력 경험을 다시 기억해내고 말해가면서 건강하게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들의 목소리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인터뷰는 우리 시대의 남녀의 성적인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건강한 성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시도들도 보인다. 감독은 인물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목소리들을 함께 배치하고 있다. 동시에 에필로그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나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만난 매이는 당시 성폭력 사건 재판이 진행 중에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작은 말하기 모임에 처음 갔을 때 놀랐다고 말한다. 자신도 나름대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의연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발랄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그녀들은 피해당한 여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공간을 찾아간 감독은 그녀들의 얘기가 살아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카메라에 그 공간을 담을 수는 없었다.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그녀들이 하는 말들은 검은 스크린에 자막처리가 되어 나온다. 하지만, 그녀들의 수다가 유쾌하고 발랄한 만큼이나 자막도 유쾌하고 발랄하다. 심지어 “당했어요”라는 말이 검은 스크린에 새겨질 때도 그 말은 무섭고 어둡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발랄하게 느껴질 정도다.

생존자 말하기 대회

성폭력상담소에서 2003년부터 진행한 생존자말하기대회는 처음엔 비공개였지만, 지금은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작은말하기 모임은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는다.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는 중에 그 공간에 생존자인 당사자 외에 여성학 연구자나 활동가가 참여해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은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이 타자화되거나 대상화되는 느낌이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었다. 안전한 자리라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경우는, 모든 여성이 생존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여성이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속 인물 중 한 명인 보짱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런 얘기들이 알려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짱은 2007년 생존자 말하기대회에서 자신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운동단체에서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조직의 논리와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사건화하기도 힘들고, 또 사건화되었을 경우에 가해자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 등 다른 사건들보다 복잡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보짱의 말은 그런 문제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남자같은 존재로 남학생들과 막역하게 어울려 지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여자임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자신이 여자로서 남자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여자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현재 그녀는 여성학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감독이 내레이션을 통해 말하는 것처럼, 그녀가 여성학에 몰두한 이유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외부의 외침으로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인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의 두 부류 – 남자와 생존자

그렇다면 이러한 성폭력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통념처럼 ‘남성의 어쩔 수 없는 성욕, 여성의 잘못된 행실’로 인해 일어나는 것일까? 달빛시위 장면에서는 ‘왜곡된 성문화와 가부장제, 그리고 부당한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발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녀들이 외치는 구호는 발랄하고 유쾌하다. 이를테면 “야한 옷이 무슨 상관 (술 마신 게 무슨 상관)? 성폭력은 가해자 탓!, 보호가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 밤길이 위험하면 니들부터 들어가라!”는 구호들.

감독이 인터뷰한 중년의 한 남성은 여성들의 노출이 성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또 다른 한 남성은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안 좋은 부분이 여자쪽이 무거웠던 것은 사실인데, 그게 억압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나도 이 말에 실소가 나왔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은 이 말에 특히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달빛 시위 장면을 보여주면서 감독은 말한다. “나 역시 이 사회에서 생존자임을 깨닫게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남자와 생존자.”

“아들아 축하해, 첫 사정.”

한새는 성교육 강사이다. 그녀와의 인터뷰, 그녀가 성교육을 하는 장면,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키우는 장면 등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한새는 생존자 말하기 대회에서 20년 동안 잊혔던 기억을 꺼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성교육 강의를 하던 중 자신 안에서 감쳐져 왔던 것들이 올라와서 강의를 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존자 말하기와 작은 말하기, 성교육 강의를 해 나가면서 서서히 바뀌어 갔다고 한다.

그녀는 중학생인 아들에게도 성에 대해 건강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새의 아들은 성에 대해서 비교적 건강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보여준다. 아들은 학교 답사를 다녀왔다가 엄마에게 도자기로 된 성기를 선물로 사왔다. 한새는 아들이 처음 사정을 했을 때 파티를 열어주었고, 아들이 자기에게 축하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그녀가 강의하는 학교에서는 유쾌한 분위기로 성교육이 진행된다. 하지만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태도는 다르다. 남학생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재미있게 반응한다. 여학생들은 한새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오히려 거침없고 솔직하게 말한다. 한 여고생은 여학생들조차 ‘걸레’라는 말을 쓰는 것을 비판하면서 “똑같은 몸이고 사람인데 왜 그런 말을 여자한테만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남자들의 인터뷰는 그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성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주로 야동을 보고 자란 남자들에게 각인되는 것은 여자는 (야동에서와 같은) 그 행위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오양비디오가 나왔을 때, 한 인터넷 회사의 가입률이 증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콧구멍을 후비는 것으로 남녀간의 성관계를 이해했다는 한 남성의 얘기는 잘못된 성지식이 불러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한새는 자위에 대해서도 원래 죄책감을 갖고 있었으나 자신이 성교육 강사를 하면서 교육을 받던 중 그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보지, 그리고 전시하기’라는 제목으로 한 대학의 성문화 연구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그린 성기가 전시된 장면에 대한 여학생들의 반응은 “민망하다, 창피하다”는 것이다.

수업을 들은 한 여학생은 이러한 수업내용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것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이라면서 그림이 알려지거나 신상이 공개되는 게 두렵다고 말한다. 감독은 여기서 “은밀함은 안전을 요구한다. 그런데 안전이 깨졌을 때 해야 할 많은 얘기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성폭력 –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기억

자비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봉사를 시킨 발랄하고 유쾌한 여성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야한 놀이를 하던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대화 중 “사촌들이 문제야”라며 깔깔거리며 말하지만, 이는 실제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가까운 사람, 잘 알고 있는 지인의 경우에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감독은 어린 시절 사진들을 스크린에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말하지 않은 비밀들, 기억들을 떠올린다. 겹겹이 감춰진 이야기들.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다시 자신에게 질문한다. 야한 놀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비는 그 당시 야하다는 것은 알았으나 성폭력이 뭔지는 몰랐던 것 같다고 말한다.

성숙한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괴롭혔던 자신들의 경험담을 남자들은 아무렇잖게 말한다. 반면에 여자들의 경험담은 어떠한가?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남자들은 대개는 “다 어렸을 적 일인데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 당시의 경험이 전혀 성희롱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남자들 대부분은 여자들이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지만 여자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뒤늦게 그것이 폭력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한다.

해맑은 표정을 하고 눈을 반짝이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감독은 어디까지가 놀이이고 어디까지가 섹스인지 질문한다. 해맑은 아이들이 장차 자라서 성인이 되어가면서 성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올바로 획득하고, 그래서 남녀 모두가 건강하게 성적인 욕망을 항유할 수는 없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해맑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 누구에겐 추억거리고 누구에겐 잊고 싶은 기억이 되는 현실이 슬프다.

2008년 달빛시위 장면.밤길을 사수하라!밤길이 위험하면 너희먼저 들어가라!

의도는 없었지만 순간 욕정 때문에…

하지만 “예전 기억을 논할 것도 없이 지금 벌어지는 현실만으로도 벅차다.”는 감독의 말처럼, 당장에 성폭력 사건이 벌어질 경우는,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영화 촬영 중 성폭력 사건이 진행중이었던 매이의 가족들은 가해자측과 합의를 해 버렸다. 영화 속인물들과 감독은 신나는 록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전사들처럼 재판장으로 향한다. 매이의 가해자는 군인이라 재판은 군부대 법무부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들은 헌병대가 군부대 앞에서 신분증을 받는 순간 이미 위축되기 시작한다.

재판정의 재판과정은 목소리만 녹음되어 있다. 변호사의 말은 여전히 낡은 잣대로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 성폭력 사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가해자가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순간 욕정’에 의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가해자를 변호한다. 재판이 끝나고 그녀들은 약간은 풀죽은 듯한 모습으로 군부대를 떠난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가부장제적인 잣대로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피해자들이 더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요즘에 특히나 더 심각해지고 있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에 대한 토론회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한 여성 토론자는 아동의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 처녀막 파열을 증명하라는 재판부의 판결이 있었고, 아이의 부모는 죽어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면서 낡은 법제도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성폭력 사건이 다뤄지는 과정에서 우리사회의 보수적이고 낡은 통념들을 보여주는 문구와 기록들, 뉴스 헤드라인 등이 화면 속에 비춰진다. 그리고 사회의 권력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에 관한 뉴스 장면이 보인다.

성폭력 뚫고 하이킥!

이러저러한 성폭력 경험을 한 여성들은 그 경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겪게 된다. 인터뷰를 했던 여성들은 그녀들이 성폭력 경험으로 인해 받게 됐던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토로한다. 어떤 이는 그 경험들로 인해 성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고도 말한다.

성폭력 사건으로 후유증을 치루고 있지만 작은 말하기 모임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자신도 씩씩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매이는 예전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옥탑방에서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간다. 아무리 씩씩한 그녀지만 밖에서 택배기사가 “000씨”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맞아, 택배기사는 멍청하게 택배요! 이러지 않아. 저렇게 이름을 부르지”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녀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한 가운데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합기도 체육관에서 격투를 벌이는 감독의 모습이 비춰지는 가운데, 그녀는 말한다. “많은 여성을 만났다. 그녀들의 삶이 내 삶과도 맞닿아 있는 것을 알았다. 난 여자다. 그래서 도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영화를 마칠 때쯤에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카메라를 허락했다. “우리의 공간은 좁고 안전을 요구하겠지만 생존을 위한 말하기를 넘어 버라이어티한 욕망을 세상 밖으로 쏟아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감독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앞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여성주의 담론의 가능성

두 번에 걸친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분명히 강조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성폭력에 대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성은 은밀하고 위험한 것이며, 여성의 성은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성에 대한 왜곡된 통념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인식을 넘어서 여성의 성과 몸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인식하고 통제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과 동등하게 말해지거나 하나의 목소리(보편적 여성)가 아닌 각기 다른 개인의 경험을 담아낸 목소리를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서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낸 시도는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감독의 내레이션을 통해 진행되는 영화는 성폭력과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성과 관련한 여성의 경험은 몸의 경험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테제는 프랑스의 여성주의 철학자인 이리가레의 논의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이리가레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전유하였는데, 그녀는 라깡과는 달리 상징계(담론)가 상상계(담론이전)에 의해 변화될 가능성을 강조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몸의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되는 해부학적 운명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성적인 경험의 차이(존재론적 조건의 차이)는 여성주의적인 적극적인 담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여성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다양한 경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담론화할 때 가부장적으로 왜곡된 상징계가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성폭력은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말은 성폭력 경험이 아무것도 아닌 경험이라는 말이 아니라 성폭력에 붙어 있는 왜곡되고 부풀려진 가치들로 인해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발언할 수 없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한편 감독은, 영화를 본 남성관객들이 많이 불편해 한다고도 말했다. 그녀는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진행하니 불편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이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워왔는가. 이 영화는 당연한 사고들에 대한 문제제기이다.”라며 영화가 여성의 목소리와 시선을 담아낸 영화임을 분명히 강조했다.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는 한 편의 독립다큐멘터리이지만 어떤 여성주의적 담론이나 이론 못지않게 여성의 목소리를 가장 적극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하나의 ‘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실제 생존자들을 만나고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영화를 만들어간 점에 있어서, 영화 속에서 생존자들의 모습과 현재 진행 중인 성문화의 현실을 가로질러 보여주는 점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40여 차례에 걸친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당대 여성주의적 담론의 가장 적극적이고 강렬한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가장 끔찍한 경험이자 말하기 힘든 은밀한 영역일 수도 있을 성폭력의 경험을 보다 진솔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드러내면서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겪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성폭력 경험을 자신의 온전한 삶의 경험으로 보다 건강하게 만들어 나간다.

고통을 벗어나 ‘독립적 생존자’로 유쾌하게 살아가기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 여성은 통상적인 남성의 환타지를 반영한 어머니나 창녀로 ‘재현’되곤 했다. 감독은 관찰자로서 여성에게 거리를 두고 여성을 재현해 왔다. 영화 속 시선이 여성의 목소리에 가까운 경우든, 남성의 시선을 더 많이 담아내는 경우든, 여성은 피해자나 고통받는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는 소재나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이후에 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개인적인’ 목소리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담론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들이 들려주는 목소리와 감독의 끈질긴 문제의식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독립적 생존자’로서 유쾌하고 발랄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비슷한 경험을 했을 피해자에게는 당당한 생존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주며 우리들에게는 왜곡된 성문화와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 ‘작은 말하기 모임’이 들려주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의 작은 목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현재도 많은 관객들과 만나면서 여성주의적 담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김수현(서울시립대학교) /

가족과 사회와 여성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MB 정부와 한국의 가족.

가족문제와 관련하여 MB 정부 최대의 쟁점은 출산과 육아이다. 이는 곧 가족, 여성의 문제이며 대한민국 가족의 현실을 반영한다.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가 밝힌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인 1.22명이다. 언제 1.0명 이하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국가의 출산율은 그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그만큼 국가 경쟁력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출산율 관련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가관이다. 낙태의 문제는 여러 가지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갖는 문제이므로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권리 중에 하나가 낙태의 문제이며, 원치 않는 임신이나 미성년자의 임신 같은 경우 무조건 낙태를 못하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MB정부는 출산율 하락을 저지할 목적으로 낙태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2월 3일엔 불법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를 ‘프로라이프’라 자칭하는 산부인과 의사협회가 고발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한가지 어이없는 출산율 관련 MB 정책은 초등학교 조기입학에 관한 것이다.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긴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겨 육아 비용을 줄이고 청년들이 조기에 사회 진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2009년 11월 25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의 각 교육청이 2009년부터 ‘3월 1일부터 익년 2월말까지’인 초등학교 취학연령 기준일을 ‘1월 1일부터 12월 31일’로 고쳐 입학생을 받은 사실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숙고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과거에 일찍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부모는 7세 입학을 반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학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에 일찍 진출하는 것보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유아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학교에 가서는 학습내용을 빈틈없이 따라가고, 동갑네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란다. 청년실업 대란의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사회진출을 늦추기 위하여 휴학을 반복한다.

정부의 인사들이 가정에서 직접 아이를 먹이고, 놀아주고, 학원 보내고, 학교에 보내 보았다면 쉽사리 뱉을 수 없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다. 어느 부모가 아이 유치원비 절약하는 좋은 길(?)이 생겼다고 만5세아를 학교에 보내고 아이를 더 낳겠는가. 스펙 쌓아야 한다며 학원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이제 만5세로 낮아진다. 현실적으로 아이가 학교에 간다고 부모의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는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양육을 맡아주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12시 20분이면 학교에서 밥먹고 집에 온다. 맞벌이하는 부부는 아이가 혼자 하교하고 학원갈 걱정 때문에 이제는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는 경우마저 생기고 있다.

가족과 사회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 가족의 고립된 현실이라고 볼 수 없다. 가족은 여러 방면에서 사회와 맞닿아 있다. 가족과 사회의 구체적인 관계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해방이론가면서 가족에 관한 정치철학적 입장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미셀 바렛과 매리 매킨토시는 가족주의와 가족중심주의를 구분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가족중심주의(familism)는 정치적으로 가족옹호 이념을 유포하는 것, 가족 자체를 강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familialism)는 가족의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을 본떠 만들어진 이념을 말하기도 하고, 여러 사회 현상을 가족과 비슷하게 만들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또 더불어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가족을 유지 강화시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족이 없으면 국민의 재생산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 국민이 없으면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가족은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는 가족을 기본 단위로 하여 여러 가지 복지제도를 만들고 혜택을 준다. 미디어는 국가의 이러한 정책에 발맞추어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가족중심주의이다.

한편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기업 홍보물에서 ‘○○가족’이라는 말은 가족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적인 작업의 장에 사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전 직원 모두가 회사를 내 집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라는 의도로 이러한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회사의 직원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게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작업장에 적용시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기업의 계산이 깔려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사회는 가족과 상당히 유사한 면을 보인다. 우선 가족 안에서의 남녀 역할은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 고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도식이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이러한 도식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전통사회는 사실 바깥일 집안일의 구분이 확실한 사회구조가 아니었다. 여성이 담당한 직조(織造)는 국가 생산력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바깥일 집안일이라는 구도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난 후에 굳어진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구도가 자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집안일이라고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요리하고 청소하고 환자를 간호하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느질하고 봉사(서비스)하는 일들이다. 남자가 하는 바깥일은 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입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화폐를 벌어들이지 못하는 여성들의 집안일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 과거보다는 오늘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그 영역은 ‘집안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서, 건물 청소부, 간호사, 선생님, 식당종업원 등등의 직종은 거의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만큼 여성들의 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렇게 여성들의 일에 사회가 내리는 가치평가는 낮으며 그에 비례하여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이 지불된다. 이렇게 고정화된 남녀 역할에 대한 편견은 인간불평등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가부장주의와 사회구조

가족과 사회의 유사성을 좀 더 확대 적용해보자. 가족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주의는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평등부부, 평등가족이 많이 확산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주의는 가족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가부장주의는 한 가족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가부장(남성)이 그 집안의 실권을 쥐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모든 일이 처리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부장제에서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남성은 여성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여성이 하는 일은 남성과의 정당한 분업 속에서 가치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하위에 속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상위에 속하는 사람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차별을 받기 마련이다. 이러한 가부장주의가 사회에 적용됨에 따라 여성이 하는 직종은 당연히 낮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임금차별을 받지 않는 여성의 공직 진출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여성은 여전히 직급이 낮은 5급 미만에 90퍼센트 이상이 몰려 있다. 또 직장 내에서 남성과 여성은 승진의 기회에서 차별을 받는다.

물론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뒤져서 승진을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전담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 때문에, 회사는 근무평가에서도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근무 환경도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을 위해 조성되지는 않는다. 회사가 육아에 도움이 되는 조건을 직장 내에 마련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출퇴근 시간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데려 오는 시간에 맞춰 조정해 주지 않는다. 사회가 정한 시간표에 맞추어서 일하지 못하는 여성은 가족 안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가부장을 위주로 가족의 일들이 구성되는 위계적인 모습과 사회가 구성되는 모습은 매우 친화성을 갖는다. 위계적 구조가 효율성은 갖겠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가족,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이렇듯 가족과 사회는 많은 측면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가족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되고 사회의 문제는 곧 가족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출산율의 문제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바닥을 친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은 낙태 금지도 아니고 초등학교 조기 입학도 아니다. 출산에 따르는 가장 실질적인 문제, 즉 유치원 무상교육, 현실적인 육아 보조금이 필요하다. 또 공교육에서 특기교육까지 해결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의 질적, 양적 성장만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출산율은 높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형제와 자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개인 여성에게 개개의 가족에게 지우는 것은 잘못되었다. 여성의 건강은 곧 아이의 건강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라 사회의 아이이다.

철학자들이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렸지만,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어쩌면 마르크스가 말한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러한 장소는 있다. 바로 가족이다. 아버지가 되었든 어머니가 되었든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을 하고 온 가족은 그 노동의 대가를 필요한 만큼 쓴다. 유토피아는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꿀 권리가 있다. 가족과 사회는 친밀성을 지녔다. 다만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친밀성이 두드러졌을 뿐이다. 가족의 이러한 유토피아적 이상을 사회에 실현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강지은(건국대학교) / admin@admin.com

영화로 사유하기 (1) :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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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만일 가능하다면 어떤 형태의 사유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90년대 이후 마치 유행처럼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이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의 연구자들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영화가 기존의 모든 예술을 재매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 더불어 대부분의 인문학 연구 영역들을 재매개하는 성격을 가지는, 말 그대로 ‘하이브리드’한 성격을 가진 예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 방식이지만, 그러한 방식들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한 사유방식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사회의 변화, 기술의 변화 그리고 영화(영화 자체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여러가지 문화적, 제도적, 관행적 변화를 포함)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와 동영상, 비디오 등을 포함하는 유사 영화들에 대해 개입하고 언급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적절하며 의미있는 발언일 수 있을까. 대상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패턴으로 개입하는 사유 방식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학문의 경우는 일단 제쳐두고, 철학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영화의 주제나 캐릭터, 스토리 등을 소재로 삼아 철학자들의 난해한 개념을 구체화시켜보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으로 이루어진 영화에 대한 철학의 개입 방식일 것이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Matrix)’를 통해 호접몽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보드리야르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혹은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통해 인간의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논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교양 강의에서 많이 사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파이트 클럽(Fight Club)’의 경우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떠올랐고, 프롬의 이론을 적용하면 영화에서 쉽게 이해가지 않던 부분들이 너무나도 선명히 의미를 드러내곤 했다. 현대 사회와 소외 그리고 집단과 폭력의 문제를 졸리지 않게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데이빗 린치의 영화들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꿈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너무나도 훌륭한 보조자료 역할을 해줬고,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설명하기 위한 너무나도 자극적인 도입부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와의 접합 지점을 찾아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로 영화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문학이나 다른 인문학 영역의 개입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영화의 활용은 여러 긍정적인 측면들을 지닌다. 영화를 좀 더 진지한 분석과 탐구 대상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또한 난해한 이론들에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게 만들거나 어려운 철학 이론들이 얼마나 이 세상의 불가해한 모습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감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앞서 말했듯 필자 역시 아주 많은 영화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덜 졸게 하면서 어려운 이야기들을 강의 시간에 전달해 왔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묻고 싶다. 이런 방법들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인가 아니면 영화를 ‘소재’로 사유를 진행하는 것인가.

먼저 이에 대한 대답부터 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영화를 소재로 삼아 사유에 도움을 얻는 방식이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식 또한 긍정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음은 이미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새로운 사유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알고 있던 철학 이론들의 생생한 사례들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적용하여 풀어낸 것일 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유를 전개한 것은 아니다. 들뢰즈에 따르자면 철학적 사유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대상 속에서 발견해내는 재인식(recognition)이 아니다. 주어져 있는 사유의 틀을 넘어서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과 사유 방식들을 창안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유라고 한다. 그래서 들뢰즈의 주장에 따르면 필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영화에 대해 개입한 방식은 매우 거칠게 말하자면 영화를 착취한 것일뿐, 진정한 사유와는 거리가 먼 견해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존의 방식들과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영화로 사유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들뢰즈의 주장을 차치하고서라도 대체 왜 새로운 영화적 사유가 필요한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모두들 현재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 이미지는 영화나 사진을 포함하는 기계적으로 생산된 이미지를 의미한다. 길거리를 걸어다니건, 집안에서 쉬고 있을 때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때건, 심지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이미지들은 넘실댄다.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고, 선형적이라기보다는 비선형적 특성을 가지는 이미지들이 예전 책과 글이 차지하던 자리를 꿰찬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관적이고 비선형적인 이미지들을 전통적인 논리로 이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언어의 논리와는 다른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가 어떤 방식으로 직동하고 있으며, 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미지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전 사유 방식을 적용하여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거나 혹은 부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전철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동영상들(moving images) 속에 파묻혀 산다. 특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비약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은 특정인들에게만 허락된 한정된 범위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산하고, 수용하고, 공유한다. 예전 극장에서만 혹은 텔레비젼 모니터를 통해서 보던 영화는 어쩌면 지나간 시대의 상징일런지 모른다. (여전히 이 방식 또한 다수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사회적 위상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동일하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영화는 어두운 극장을 나와 길거리로, 모바일 기기 속으로, 동영상 공유사이트, 개인 블로그와 같은 사이버 공간 속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변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저 예전과 같은 방식의 영화만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더 넓은 영역의 영화(이런 맥락에서 ‘확장된 영화’라는 이름을 붙혀본다)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확장된 영화들은 많은 경우 줄거리, 캐릭터와 같은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이전과 같은 사유 방식으로는 이제 수많은 우리 주변의 확장된 영화에 대해 더 이상 의미를 풀어낼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와버린 것 같다.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 그것은 영화를 소재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이미지 자체의 논리를 따라 그 사유의 궤적에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화적 사유에 참여할 것인가. 물론 미리 정해져 있는 정답이 있다거나, 유일한 하나의 방식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에서 우리가 정말 새롭다거나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영화들의 공통점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적 사유는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적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 이미지의 논리를 사유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로 우리를 열어놓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로 사유하기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이 유일하거나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는 이야기는 아님을 전제한 상태에서 말이다. 니체의 말처럼, 확신은 거짓말보다도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변화하는 와중에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영화의 기본적인 메커니즘들을 통해 영화적 사유의 궤적을 추적해보는 것이 앞으로의 연재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영화 이미지, 프레임, 쇼트, 몽타주, 서사, 시점 등의 기본적인 영화 개념들이 어떠한 사유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따라가 보고자 한다.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대상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피하면서 새로운 개념화를 끌어내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오류와 오해들로 짜여진 부끄러운 생각들이라고 나중에 분명 후회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변화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중이라고 오류가 없으라는 보장도 없으며, 나중에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지금 상태에서의 사유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용기를 내어보고자 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자가 의지하는 사상가는 들뢰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영화에 대한 상당히 두꺼운 두 권의 책을 썼다. 사실 만만치 않은 책이다. 여전히 읽을 때마다 숨어 있던 새로운 문장들과 새로운 의미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래서 나의 들뢰즈의 영화책에 대한 독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결코 완결될 수도, 완전해질 수 없는 들뢰즈와 영화에 대한 나의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 개념들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정식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물론 그의 영화책을 읽기 위해서는 들뢰즈의 철학과 특히 베르그손에 대한 그의 해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제시될 것이다. 마치 들뢰즈 사진 속의 이미지처럼, 영화와 철학이 거울을 마주한 채 서로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철학이 영화적 사유에 개입하기를 희망한다.

기본적으로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주로 들뢰즈 영화책의 이론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이론을 현재에로 확장하고자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의 영화들과 그에 대한 사유들이 담겨있는 그의 영화책은 그 이후 대략 30여년 동안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변화는 그 이후 너무나도 바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뢰즈의 사유를 변화에 열어놓는 것은 아마도 들뢰즈 자신이 가장 원하는 사유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변화와 생성, 창조의 철학자인 그의 사유를 그의 죽음 이후의 시간에까지 열어놓는 것은, 설사 그의 이론을 변형시킨다 하더라도 가장 들뢰즈적인 사유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존의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열어놓고 있는 시대이다. 열려있으며 새로운 연결접속이 무한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시대에 대한 사유를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와 영화에 대한 사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뢰즈 자신의 시대에서보다도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들뢰즈의 영화책은 그저 영화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들은 영화를 통한 사유를 보여주며, 그 사유가 향하는 곳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며, 그에게 영화란 이 세계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관계와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 관계와 시선들이 영화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영화의 메커니즘들에 대한 개념화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들뢰즈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영화와 그것이 속해있는 세상은 어떤 색채일지를 보고자 한다. 상당히 편협한 방식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솔직히 어쩔 수 없다. 상당히 좁은 우물이지만, 파고 내려가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깊이 파내려간 다른 우물과 만날 것이라 믿으며, 이 우물을 통해 내 우물 속의 물만이 아니라, 저 땅속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다양한 물들이 좁은 내 우물을 통해 지상으로 나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기대와 두려움을 주절거리는 것으로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는 없다[생각vs생각]

행복전도와 자살의 역설-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의 자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혼란을 넘어 “행복하라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나”, “당신의 책을 모두 버렸다”, “행복전도사 자격이 없다”는 등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의 자살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심지어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일치를 느끼는 이유는 남에게는 행복한 삶을 살라고 말하고서는 정작 자신은 불행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다는 생각은 외부관찰자의 판단일 뿐이다. 당혹스러움은 당사자의 관점과 외부관찰자의 관점을 혼동한 데서 비롯되었다.

고통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는 메저키스트의 행동을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행위로 보는 것은 외부관찰자의 관점일 뿐이며 당사자의 관점으로부터 보면 그것 또한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도 스스로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다.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와 불행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행복을 얻는 소극적 행위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바보의 행복 또한 마찬가지다. 작은 다이아몬드보다 커다란 빵을 선택하고 행복해하는 바보를 외부관찰자는 불쌍하다고 동정한다. 당사자는 마냥 행복한데 말이다. 작은 다이아몬드보다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선택한 강아지는 어떨까? 외부관찰자로서 우리는 그 강아지도 불쌍하다고 동정할까? 노무현이 야합적인 3당 합당을 비판하고 꼬마민주당을 고집했을 때, 낙선이 불 보듯 뻔한 출마를 스스로 선택했을 때, 살아서 당당하게 결백을 밝히는 대신 부엉이 바위를 선택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는 없다. 행복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인지생물학자인 움베르또 마뚜라나(H. Maturana)에 따르면, 외부관찰자는 관찰자 스스로 설정한 특정한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으로 관찰되는 행동을 인지적이거나 지능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 행동의 긍정적 효과를 행복이라고 본다면, 바보는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교환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으므로 그 행동은 불행을 스스로 선택한 어리석은 것이다. 반면에 강아지는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사용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인 행동을 했으므로 이는 행복을 스스로 선택한 똑똑한 행동이다.

노무현은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권력의 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으므로 그의 행동은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강아지뿐만 아니라 바보도 스스로 설정한 사용가치라는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을 했고, 노무현도 스스로 설정한 정의의 가치라는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을 했다. 모두들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그녀가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초연하게 맞서라”고 말한 데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해놓고 스스로는 불행으로부터 도망갔으니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게다. 그런데 그녀는 불행으로부터 단지 벗어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불행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한 것일까? 이 두 가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앞의 것은 불행을 단지 불편해하는 경우이며, 뒤의 것은 불행을 무서워하는 경우다. 그녀는 어떤 경우였을까?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초연하게 맞서라”라는 그녀의 말이 진실이었다면 그녀는 불행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몹시 불편했을 뿐이다. 그녀가 유서에서 “죄송하다”고 말한 이유는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서가 아니라 불편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벗어나려 한 데 있을 것이다.

마틴 하이데거(M. Heidegger)는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는 것을 실존적 결단이라고 한다. 물론 하이데거의 이 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죽음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면 공포를 느끼지만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면 불안을 느낀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삶에 집착하여 종교인이나 의사를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걸하지만,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삶의 무반성적인 태도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실존적 의미를 찾게 된다. 삶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에도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실존적 삶을 살게 된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모든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최윤희씨가 전도한 행복의 비밀이 아닐까? 바보가 마냥 행복한 이유는 삶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우리가 바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가 권력에, 아니 삶과 죽음에조차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최윤희씨의 자살은 그녀가 전도하며 다닌 “모든 불행은 집착으로부터 온다.”는 깨달음을 몸소 실천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당혹감이나 배신감 또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그 행복의 비밀을 아직 몸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최윤희씨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속삭인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어요?”

김광식(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

중국의 신자유주의 대 신좌파[생각vs생각]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추상에서 구체로

1980년대의 개혁개방, 이와 더불어 분출된 사회와 사상운동의 활력 속에서의 중국 지식인을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대다수는 ‘피안’(마오쩌둥의 실험)이 이미 치유 불가능한 위기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제는 대다수가 그 피안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강을 건너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지식계는 거의 옆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갔을 뿐, 잠시 멈추어 자신의 다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대오 중 물살에 휩쓸린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지식계는 1989년의 갑작스러운 사건(천안문 사태)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1990년대의 거대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직면한다. 열정과 추상이 휩쓸고 간 직후 그들에게는 좌절된 현실, 새롭게 직면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구체적인 전망이 요구됐다.

1990년대 초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에 다시금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중앙정부는 정치적으로 더욱 강하고 집중된 권력을 행사했고, 경제적으로는 전에 없는 고도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대내적으로 시장화가, 대외적으로는 세계화가 심화되었으며 사회적 모순은 점점 첨예해졌다. 그러나 이를 정치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술계는 정부와 발맞춰 1980년대의 ‘급진주의’에 대한 비판과 국학 부흥을 주도했고, 대중문화와 상업문화의 확산이라는 현상을 두고 진행된 ‘인문정신’에 관한 토론 이후 경제와 정치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공정책, 정치개혁에 관한 이론적 토론들을 통해 점차 선명하게 두 진영으로 분화되어갔다.

현대화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사회주의로서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중국 공산당의 기본 방침으로 공인된 1992년 이후 시장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중심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중국에서 널리 주목받기 시작한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해가려는 노력 속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회적 모순을 어떤 이들은 건전한 시장경제로 나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중국판에 불과하며 그 성과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제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제출한다. 이는 사회가 새롭게 재편해가는 과정에 대한 매우 상반된 인식으로 전자의 견해는 ‘신자유주의(또는 자유주의)’로, 후자의 견해는 ‘신좌파’로 불린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동의하며 중국의 현대화는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현대화와 그 궤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의 문제는 개혁과 시장화가 자발적으로 아래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추동된 것이어서 시장이 권력체제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성숙하고 규범화되지 못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에게 많은 역할을 맡긴다면 시장 자신의 발전 요구와 규율, 그리고 사람들의 이성적 노력에 의해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적 민주와 정치적 민주를 이룰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민주의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이후 민주와 시장경제가 분리됐던 사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공정(公正)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불공정문제의 해결방법은 첫째 진정한 시장, 진정한 자유경쟁을 실현하고 규칙을 공정하게 하여 모든 사람이 준수하며 권력을 시장에서 축출하는 것이고, 둘째 법제를 완비하는 것, 즉 합법적인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입법을 통해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법률에 의해 부패를 처벌하고 국유재산의 유지를 방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시장경제 개혁의 미명 아래 권력이 사회적 재부를 약탈하는 것을 반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벗어나는 개혁과 공정에 대한 요구를 반대한다. 전자는 중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고, 후자는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신좌파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들에게서 시장과 이에 기반 한 공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나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9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의 논쟁이 본격화된다. 이를 촉발시킨 것이 신좌파로 분류되는 왕후이(汪暉)의 논문 「당대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이다. 논쟁의 배경에는 중국 사회 모순의 첨예화 뿐 아니라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다.

신좌파는 세계화는 중국 사회 밖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중국 사회에 이미 내재된 문제로, 정치권력과 시장계획의 관계, 새로운 사회에서의 빈곤과 불공정의 출현, 구권력의 네트워크와 새로운 시장 확대의 내적 연계들이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다시 사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왕휘는 이로부터 만들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현대화를 서구의 현대화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되며, 서구 자본주의의 현대성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반현대적인 현대성’ 즉 서구의 현대화 과정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토대로 현대성을 토론하고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화 또는 현대성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서 신자유주의와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인다.

그러므로 중국의 ‘개혁’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부가 집중되는 과도기적 자본주의가 아닌 정치와 경제적 민주를 확대하여 분배의 공정과 평등을 보장하고 빈부의 차가 무한히 확대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개방’은 자본의 논리를 무조건 받아들여 국제 자본주의 체계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신좌파는 신자유주의가 추상적인 ‘시장’ 개념으로 중국 사회와 세계의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그 사회의 경제가 정치와 맺고 있는 내적 관계를 은폐하면서, 맹목적적인 시장주의로 평등의 가치를 거세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정치변혁의 필요성과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기본적인 호소를 희석시킨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모두 시장 경제를 긍정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공정을 자유로운 시장의 ‘경쟁과 효율’에 맡길 것을, 신좌파는 ‘공정과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비판과 견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과거와 함께 가기: 전통의 재인식 대 역사의 재인식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들이 각각 자신들의 과거, 신자유주의는 전통을 신좌파는 모택동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재인식하려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일부는 현대화의 길은 반드시 중국의 전통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화를 위해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오히려 가치체계의 해체와 문화 동일성의 상실을 이끌어 현대화 과정을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유교를 포함하여 합리성을 가진 문화전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들의 견해는 아시아 공업문명의 눈부신 발전의 원인이 유교문화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교부흥론자’, 전통 가치의 비판적 계승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비판계승론자’, 전통의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전통의 창조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서체중용론자’와 유사하다.

전통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1910년대 신문화운동과 1980년대 문화열 시기의 전통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지향했던 자유주의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통을 폐쇄적이고 정형화된 유물이 아닌 개방적이고 연속적인 유기적 생명체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전통에 주목하도록 하였을까? 첫째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전면적인 서구화론자’, ‘부르주와 자유화의 주범’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꼬리표로 인하여 위축되고 탄압받기보다는 전통과의 화해를 도모하기로 한다. 둘째는 서구의 자유주의를 중국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통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전통 속에서 이에 부합하는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유주의 속에 있었던 전통과 서구화의 오랜 불화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일단락된다.

신좌파는 1980년대 이후 대다수가 부정했던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그들이 중국이 추구해야 할 현대성을 ‘반현대적인 현대성’으로 설정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반식민지적 지배 아래에서 현대화를 모색했던 중국은 현대화운동에 있어서 서구의 현대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받았으며,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현대화에 대한 비판을 수렴하며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것이 곧 ‘반자본주의적인 현대성’이었다.

왕후이는 마오쩌둥은 공사제(公司制)와 집단경제방식으로 중국 경제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분배제도에서 자본주의 현대화가 초래한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피하려 했으며, 공유제(公有制) 방식으로 전체 사회를 국가의 현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조직하여 개인의 정치적 자주권을 박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기구가 인민주권을 억압하는 것에 깊은 반감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마오쩌둥 사회주의가 심각한 역사적 모순을 드러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부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그 안에 담겨있는 ‘반현대적’인 내용은 반드시 새롭게 성찰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좌파의 입장이다.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공정과 평등’이라는 반자본주의적 현대성의 내용이 지금의 중국에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개혁 이후의 사회주의는 개혁 이전의 사회주의가 지니고 있었던 ‘반현대적’ 특징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며 사회적 불평등은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다. 세계화되고 독점적인 시장경제에 빠르게 편입되어가고 있는 중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와 같은 긍정적인 사회주의적 요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계몽과 현대성을 모색하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 그 가운데서도 신좌파의 주장은 적어도 자신들의 모색을 위한 치열한 비판과 성찰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계몽’과 ‘현대성’의 문제는 중국의 지식인에게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지식인에게, 그리고 과거에서만 아니라 현재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주제다.

19세기 서구의 물리적 힘에 의해서 근대를 시작하게 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은 필연적으로 동일한 계몽과 현대성을 목표로 갖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립, 국민국가의 건설, 봉건질서와의 단절 등은 강조되었지만 모든 인간의 법적 평등, 개인의 해방과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은 억압되었다.

서구의 계몽과 현대성은 적어도 스스로 변화하고 충돌하는 긴장 속에 있었지만, 우리에게 계몽과 현대성은 불변하며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그러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절대적인 목표였다. 항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질책했을 뿐 계몽과 현대성이 우리에게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 앞에는 지금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의 지배가 심화되어가는 현실이 놓여 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뒤쳐지지 않게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어떤 이들은 이 현실을 뛰어넘으려 모색한다. 중국의 신좌파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지나치게 그 일면만 관찰되고 있는 계몽과 현대성을 재검토하고, 마오쩌둥 사회주의를 재평가하고,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이는 오랫동안 중국에서의 계몽이 보여준 무비판적인 서구화를 반성하고, 현대성에 내재된 모순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중국의 현실적 역사 속에 존재함을 성찰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계몽은 이미 그 속에 스스로를 계몽시켜야 함을 함의하고 있으며, 현대성은 이미 그 속에 새로운 시대의식으로서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계몽과 현대성은 스스로, 그리고 시대와 끊임없이 긴장하고 각성하며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박영미(한양대 강사) /

무모함과 소심함을 넘어선 솔직함[생각vs생각]

전통, 찬양할까? 내칠까?

최근에 출판된 나의 저서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에 대해서, 한 기자는 나를 어떤 다른 저자의 “무모함”에 비교하여 “소심함?”으로 평가하였다. “저자는 소심하였다”가 아니라 ‘?’를 동원하여 “소심한 걸까?” 라는 의문 제기의 방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좀 더 원색적인 발언이나 내용을 기대하였던 듯하다.

예컨대 “공자가 죽어야…” 혹은 “공자가 살아야…” 류가 아니어서, 재미난 구경거리가 한 판 벌어졌을 법도 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또한 『공자, 페미니즘을 말하였다』라고 왜 좀 더 강력히 발언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왜 좀 더 화끈하게 공자를 내다 팔지 않았는가 하는 은근한 질책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같은 저서를 두고 아주 다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하다”를 “말하였다”로 자체 이해하면서, 공자가 언제 페미니즘을 논한 적이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 격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논조는 공자와 유교는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여성 억압적이며 계급적 한계를 지니는 것인데, 이것이 페미니즘 논의와 어떻게 한 자리에서 거론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공자와 페미니즘, 유교와 페미니즘을 함께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유교 안에서 현대적인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것은 또 다시 공자를 살리려는 보수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전통 사상을 거론하는 데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방식은 이처럼 찬양할까? 내쳐 버릴까?의 둘 중 하나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둘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폐기시켜 버리거나 다른 한 편에 완벽한 승리를 안겨 주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 안에서는 가치폄하 하는 논쟁 방식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의도만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한쪽이‘전통은 과거일 뿐이고, 전통은 아무 것도 아니며 그래서 폐기되어야 할 뿐이고’라고 말하면, 다른 한 쪽은‘현대는 문제투성이일 뿐이고 그래서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현대는 타락의 소치일 뿐이고’로 응수한다.

이 둘에게서 서로 만날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그들은 소통, 화해, 융화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논리만이 통하며, 전통의 만능을 찬양하거나 혹은 전통의 무능을 한탄하는 둘 중 하나의 방식만을 논의하고자 한다.

상호성과 ‘한국적’ 상호성

최근 차이의 철학, 다문화주의 등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서구를 보편으로 간주하는 것, 그래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전통을 무시하는 태도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 또 서구라는 잣대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 속한 전통에서 발전된 목소리를 배제하게 된다고 고발하기도 한다.

상호문화성을 통해서 서로 다르고 때로는 이질적인 철학들 사이의 만남과 매개 – 타자성, 차이, 낯선 자의 해석학, 다문화성, 상호문화성, 초문화성 – 에 대하여 관심 가져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작업,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는 현실을 겪으면서 중심성을 배제하고 문화의 상호성을 논의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호문화성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도 ‘어떻게’ 상호성을 개발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서구’에 기반해서 ‘우리’의 문제를 말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그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촌화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별도의 ‘우리’를 설정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기에 상호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한국적’ 상호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그저 중심성을 비판하고 상호문화성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상호성을 마련하는 데 과연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상호성을 개발하는 것은 단일한 하나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 발 딛고 있는 현실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자신이 현재 어디에 어떻게 발 딛고 있는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화두가 되는 것이며, 전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전통에 대한 거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전통과 현대, 이들을 한 자리에 놓고 거론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그 때에도 그 둘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한 채로 남아 있기 쉽다. 전통 사상의 개념과 용어들을 현대 사회에서 사용하는 데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개념과 용어들을 재활용하는 작업은 비록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호성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단일한 단어를 찾는 것보다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주된 과제에 충실할 수 있는 또 다른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보는 것이 때로는 더 유용한 방식일 수도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과 그것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전통을 완벽하게 분리해내기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영역의 일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질문은 그 자체로서 우문일 수 있다.

전통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전통은 있고 그 전통은 어떻게든 해석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현실은 있고 현실의 부정성은 어떻게든 해소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즉 우리 내부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남을 도울 수도 없다. 전통과 현대에 대한 어렵고도 지난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관심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남의 말과 생각을 빌어서 사회 변혁을 이루어보겠다는 무모한 모험을 시도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전통과 현실을 한꺼번에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함과 소심함을 넘어서서 솔직하게 전통을 바라보기

제주도 한라산의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코스의 길이 있다. 서북쪽 코스인 어리목 등반, 서남쪽 코스인 영실산 길, 동쪽 코스인 성판악 길, 북쪽 코스인 관음사 길 등이다. 영실산 길은 영실 기암의 경관이 좋으나 등산길이 짧아서 등산꾼들에게는 그다지 선호의 대상이 아니란다. 성판악 산길은 활엽수가 우거져 삼림욕 하기는 좋으나 그 때문에 주변경관을 온전히 감상하기는 어렵다. 한편 관음사 길은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여 오르기가 수월치 않으나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각자 자기에게 익숙한 길을 따라, 혹은 자기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정상에 오르면 된다. 동쪽에 사는 사람이 북쪽 코스를 선택하거나 북쪽 사는 사람이 동쪽 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어쩌다 특별히 하는 등산이 아니라면, 일상 속에서 늘 등산을 할라치면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기 쉬운 코스를 택하는 것이 편리하고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논의하는 데 거기에 전통을 거론할 필요가 있는 이유 혹은 상호문화성을 논의하는 데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필요가 있는 맥락을 나는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로부터 나에게 익숙한 개념을 가지고 낯선 방식으로 차이, 만남, 관계, 상생, 융화를 말할 수 있는 철학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허나 이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해석의 방식이 반드시 ‘낯선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인, 익숙한 방식으로는 새로운 논의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즈음에서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에 대한 서평을 다시 떠올려 보고, 그것을 바로잡아 보자. 공자가 비록 페미니즘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에서 여성주의 사상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상상하고 유희하는 것은 소심함? 이 아니라 솔직함! 이라는 것이다. 공자 사상의 이러저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새로운 패러다임 구성, 새 판 짜기의 맥락에 재활용하는 전략은 소심함 혹은 무모함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긍정성과 부정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사상과 그것의 현대적 해석의 노력에는 전통과 현대라는 시공간적 간극을 이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이는 그들 간의 차별화된 개념과 그 범주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개념이 어떤 방향의 철학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충실한 해명이 요구된다. 또한 이러한 해명의 작업은 단순히 전통을 답습, 찬양하거나 혹은 비판, 거부하는 방식으로써가 아니라 과거의 문제들을 현실적 안목에서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서리아 (성신여대) /

안토니오 네그리 – ‘제국’ 그리고 ‘다중’ [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⑮

안토니오 네그리 – ‘제국’ 그리고 ‘다중’ [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⑮

 

강사 : 박영균(건국대학교 HK교수)
후기 : 조배준(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비물질노동’과 ‘삶-정치적 노동’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강좌 열다섯 번째 시간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정치철학자이자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를 박영균 건국대학교 HK교수의 소개로 만나보았다. 박 교수는 네그리의 주요 3부작인 <제국>, <다중>, <공통체>를 중심으로 그의 요동치는 삶 속에서 이러한 대표작들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의식은 어떤 것인지 수강생들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에 따르면 네그리는 젊은 시절부터 현실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대단히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실천적인 좌파 활동가였다. 또한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들뢰즈와 가타리 같은 프랑스 좌파 철학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마르크스주의를 정립한 독창적인 이론가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그가 제시한 주요 개념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 입장과의 차별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네그리는 우선 현 단계 자본주의 양식이 ‘산업사회’에서 ‘네트워크사회’로, 노동의 성격도 ‘산업노동’에서 ‘비물질노동’으로, 그리고 변혁의 주체도 ‘노동자계급’에서 ‘다중(multitude)’으로 그 중심이 변화했다고 파악했다. 이것은 기술적 양식의 변화가 사회적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인데, 네그리는 지배적인 생산부문을 중심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업과 원료 채취가 중심이던 첫 번째 패러다임에서 제조산업과 내구재 제조가 중심인 두 번째 패러다임으로, 다시 공장을 벗어난 서비스와 생산의 정보화가 그 특징인 최근의 경향으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 비물질적인 것을 생산하는 ‘비(非)물질노동(immaterial labor)’에 대해 네그리는 <제국>에서 다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설명했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이 사회와 노동의 모든 실행 및 관계를 다시 규정하는 경향’, ‘문제를 해결하고 명시하며 전략적으로 중개하는 활동’ 즉, 상징적이고 분석적인 서비스, ‘신체적이고 정서적으로 인간과 접촉하고 상호작용하더라도 만질 수 없는 노동의 결과물들-안심, 행복, 만족, 흥분, 정열 등-을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비물질적인 정동노동(affective labor)’ 등이 점차 확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4년에 출간된 <다중>에서는 네그리는 위의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 측면이 약화되고 나머지 측면이 보다 강조된 비물질노동 개념을 제시했다. 그것의 “또 다른 주요 형태를 (감정과 정서가 중심인) ‘정동적 노동’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편안한 느낌, 웰빙, 만족, 흥분 또는 열정과 같은 정동들을 생산하거나 처리하는 노동이다.”

네그리는 이렇게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에 산업노동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아이디어, 이미지, 지식, 정보, 소통, 관계, 정동적 반응 등과 같은 비물질적 생산물들을 창출하는” 새로운 노동이 질적으로 우위에 선 사회에선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산업과 노동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 또한 보다 정보화되고 지적이며, 소통적이며, 정동적인 공간으로, 또한 “분산된 네트워크들의 무수한 불확정적인 관계”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영균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비물질노동 헤게모니의 강화는 “곧 비물질노동 그 자체가 삶 자체를 생산하는 노동의 전면화, 즉 ‘삶-정치적 노동(biopolitic labor)’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삶-정치’란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들의 경계가 무너지고 “생산의 다양하고 특이한 형태들 사이에 충분한 공통적인 토대, 상호작용 그리고 소통”의 가능성이 제공되는 새로운 지평을 말한다. 기존의 물질적 생산이 사회적 삶의 수단을 창출했다면, 비물질적 생산은 사회적 삶 자체와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을 생산하기 때문에 삶-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의 공통되기 – ‘사적 소유’, ‘노동가치론’, ‘착취’ 개념의 와해

네그리는 현대자본주의가 탈근대적인 생산양식 속에서 근대적인 경제-정치 시스템을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사적 소유’ 개념이 점차 해체되고 있는 것인데, 소비자와 생산자가 분리되어 소비자가 단지 생산된 상품을 화폐를 통해 구입하고 소비하는 기존의 방식에 머물지 않고, 이미 생산세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은 이제 공동체가 함께 하고 있으며 생산하는 동안 그 공동체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규정되고 있다. 박영균 교수는 페이스북의 시장 가치는 마크 주커버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며, 최신 컴퓨터 게임은 수많은 유저들이 먼저 사용해보고 버그를 발견해내고, 개선사항을 건의하는 등 온갖 시행착오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완제품으로 시판된다고 설명했다. 네그리는 “상품을 사용하거나 점유하여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를 처분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로서의 사적 소유 개념은 점점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네그리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가치론’도 해체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다중>에서 삶-정치적 생산은 시간의 고정된 단위로 양화될 수 없기 때문에 측정불가능한 것이며, 자본이 결코 우리들의 삶 전체를 포획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이 노동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가치를 언제나 초과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과 가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수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네그리는 잉여가치론과 토대-상부구조라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 핵심이 되어왔던 틀에서도 모순을 발견하고 이제는 그것을 해체하여 재구성할 것을 주문한다.

네그리는 마찬가지로 ‘착취’라는 개념 또한 자본과 개별 노동 사이에 종속된 전통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서 “공통된 것의 강탈(약탈)로 간주해야”한다고 말한다. 가치의 생산을 공통된 것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듯이, 노동시간이 정확히 시간으로 측정될 수 없는 사회에서 “공통된 것이 잉여가치의 장소”가 되었다면 착취 역시 공통의 생산물을 강탈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언어, 아이디어, 지식, 이미지의 생산은 공통적으로 생산된 것이 사적 소유로 변환된 것이다.

박영균 교수는 병의 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서 발견된 유전적 정보를 통해 추출된 새로운 물질이 막대한 부를 얻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더라도, 그 개인은 결코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최근의 특허권, 저작권, 지적재산권의 아이러니에 대해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주민공동체에서 생산된 전통적인 지식이 혹은 과학공동체에서 생산된 지식”이 하루아침에 사유재산으로 둔갑하는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 네그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통적인 특징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도 자본이 여전히 통제력을 행사하여 부를 뽑아내는 모호한 논리를 화폐와 경제의 금융화가 요약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금융자본의 이윤들은 공통된 것을 강탈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일 것이다.”

한편 (유럽중심적 관점이긴 하지만) 생산양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도적으로 안정화시키던 국가나 시민사회의 구조와 제도들도 30년간 계속된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점차 붕괴되고 있다. 또한 경제나 정치의 분리가 모호해지고 경제가 정치를 흡수하여 더 이상 제도적 장치나 정치가들을 통해 국가가 세계경제 변동을 예측하고 관리하고 통제할 수도 없게 되었다. 곳곳에서 정치와 경제가 부조응하고 그 괴리가 심화되고 전면화되지만, ‘국가에 의한 소유권의 보장 시스템’은 법적 권위를 통해 더욱 강고해지기도 한다. 더불어 시민사회가 약화되고 훈육사회가 쇠퇴하는 등 이 모든 것들은 “근대의 사회적 공간들에 놓여 있던 홈 패임을 매끄럽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 계급은 세계적 이주와 탈출을 선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제 통제사회의 네트워크들이 생겨난다.”

 

‘제국’에서 ‘다중’으로

▲ 박영균(건국대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네그리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국가주권에서 제국주권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목도하면서,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전 지구적 주권을 주장하는 제국에 의한 내전으로 파악하고 마이클 하트와 함께 집필을 시작하여 8년 뒤에 <제국(Empire)>을 출간했다. 여기서 그는 전 지구적 지배양식의 변화를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라는 말로 요약했다. 제국주의가 국민국가 사이의 지배관계를 뜻했다면, 제국은 국민국가의 한계와위기의 공백 속에서 출현하여 국민국가가 갖고 있던 공적 기능과 치안을 국제적 관계 속에서 대신 담당하려는 것을 뜻한다. 기존의 국민국가들이 경제적 교환의 전지구화와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점차 자국 내에서 그 주권적 권위가 쇠퇴하고 역할이 축소되었기 때문에 “민족국가와 국제기구들을 자신의 마디로 포섭한 초국적인 네트워크 주권인 ‘제국’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네그리는 이 제국을 여러 주권들의 합성체이면서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한 지배장치이면서 사법적 구성체”로 파악한다. 그래서 네그리가 보기에 미국의 이라크전은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초국적인 자본의 네트워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제국 전쟁’라는 것이다.

그런데 네그리는 이 ‘제국’의 출현이 다름 아닌 ‘다중의 활력이 작동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말한다. 여기서 잠깐 그가 말하는 ‘다중’의 개념을 살펴보면, 먼저 영원성의 관점에서 보는 ‘존재론적 차원’과,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역사적 차원’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존재론적 차원의 다중은 “역사적 힘들의 복합적 상호작용에서 이성과 열정을 통해 스피노자가 절대적이라고 부르는 자유를 창조하는” 늘 있어 왔던 존재이다. 이러한 다중 없이는 사회적 존재를 생각할 수 없으며 이들이 가진 활력이 운동을 생산한다. 그런데 네그리는 이 활력을 현행적인 것(the actual)으로 바꾸는 것을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권력이란 것은 늘 다중을 모두 포섭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다중 개념의 두 번째 차원인 ‘역사적 다중’은 “아직 아닌 다중(the not-yet multitude)”으로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다중이다. 이 다중은 “정치적이며, 이들을 제국의 출현 조건들을 토대로 해서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다중의 출현을 고민할 때, 이제 중요한 것은 삶-정치적 조건들의 발생과 국민국가의 위기 속에서 출현한 제국 이후가 된다. ‘제국적 네트워크’에 반대하는 ‘대항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제한된 국지적 자율성을 겨냥하는 기획으로는 제국에 저항할 수 없다. ……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가 자본의 전지구화에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을 가속화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 전지구화는 틀림없이 대항적 전지구화와 만날 것이며, 제국은 틀림없이 대항제국과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생명력이나 인간의 정서와 느낌마저도 자본의 탐욕 아래 놓인 이 상황에서 자본의 외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을까? 박영균 교수는 “다중은 자본에 포획되지 않는 외부에서 삶 자체를 생산하는 삶-정치적 노동을 통해 노동의 공통되기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다중 속에 융합되는 형상들-산업노동자들, 비물질적 노동자들, 농업노동자들, 실업자들, 이주자들 등-이 구체적인 장소에서 삶의 독특한 형식들을 대표하는 삶-정치적 형상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다중의 반란은 “부를 기초로 해서만, 즉 지성, 경험, 지식, 욕망 등의 잉여를 기초로 해서만 나타나며, 각 투쟁의 강렬함을 높이고 (전염병처럼) 다른 투쟁들로 확산되는 방식-투쟁들의 국제적 순환-으로 가동된다.” 박영균 교수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례들로 19세기 중반 카리브해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노예 반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유럽과 북미 전역 산업노동자들의 반란, 20세기 중반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를 가로질러 만개했던 게릴라 투쟁과 반식민지 투쟁, 1968년 노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반제국주의 게릴라 운동들의 전지구적 투쟁, 1990년대 후반 지구화 문제를 둘러싸고 출현했던 1999년 시애틀 투쟁 등을 들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2008년 봄과 여름의 촛불집회와 광장에서의 기억도 다중의 향연으로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삶-정치와 삶-권력의 투쟁

앞서 말했듯이 노동가치-잉여가치에 의해서만 작동할 수 없는 세계에서, 자본의 가치증식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큰 경제외적 강제는 ‘정치권력’이다. 오늘날 현대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것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에 의한 힘이 아니라, 경제 외적인 권력인 ‘정치’의 힘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자본주의적 요소처럼 보이는 ‘지대화된 이윤’과 ‘강탈로서의 축적’ 같은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비호하는 것은 국가인데, 국가는 여기서 “하나의 기업으로, 다중들의 생산활동을 포획하는 정치적 다이어그램의 하나로 기능한다.”

네그리는 이런 점에서 현대사회는 더 이상 푸코와 들뢰즈의 ‘훈육사회’-노동자로 호명되는 주체의 훈육-이 아니라 ‘통제사회’로 전환되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은 더 이상 ‘노동력으로서의 노동’만이 아니라 ‘생명활동’이며, ‘삶-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통제’라는 시스템을 요청하게 된다. 오늘날의 권력은 이런 통제, 일상적이고 미시적이며 기술적인 감시들과 결합되어 있는 ‘통제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 통제사회를 강화하는 것은 “고용과 소득의 불안이라는 이중의 불안정성”이다. 박영균 교수는 “오늘날의 도시는 불안이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이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어떠한 안정된 기반도 없는 예측가능성이 상실된 곳”이라고 말했다.

박영균 교수는 이런 불안의 총체화 속에서 대안과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조정환의 <인지자본주의>의 내용을 빌려와 ‘삶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노동의 힘’을 통해 ‘거대한 전환의 내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인지란, “인식 주체 바깥에 있는 어떤 저 세계의 표상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어느 한 세계를 끊임없이 산출하는 일”이며, 새로운 세계를 산출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힘이다. 그런 점에서 ‘삶-정치’와 ‘삶-권력’은 “생산적인 것의 비물질화와 인지화”가 낳는 다중의 역능을 두고 벌이는 전쟁터의 두 세력이며, 그런 점에서 오늘날 “삶-정치와 삶-권력의 투쟁”이 전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삶-정치’적 관점은 한편으로는 경제결정론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의 자율성론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관계, 즉 상품관계와 자본관계 그 자체 때문에 공통적인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수동성과 예속, 슬픔의 정서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라면, 그 전복적 역량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박영균 교수는 “따라서 문제는 다중이 ‘인지자본주의에서 그 정점에 이른 이 사회적 인지능력을 어떻게 자본관계의 지배로부터 벗겨내어 공통된 삶의 에너지로 전화시킬 것인가’”라고 말했다.

 

다중의 반란

물론 이 ‘다중’이라는 주체에 대한 동시대 좌파 학자들의 비판은 다양하다. 다중은 “양가적이고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으며, 그들의 특이성은 통일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동과 상충되며, 헤게모니적인 힘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무기력하다.” 또한 다중은 “현대자본주의의 향락에 근거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며, 자신들의 욕망의 권리만을 주장하면서 “결단과 선택을 회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네그리가 바라보는 다중은 본성상 혁명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치적 조직화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되는 주체들이다. 박영균 교수는 다중에 대한 비판과 불신의 일부는 ‘정치적인 것’을 여전히 헤게모니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네그리의 다중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통일성이나 지도자 없이 공동 행동을 할 때 만들어”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다중이 혁명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장은 정치학과 윤리학, 봉기와 제도, 레닌의 기동전과 그람시의 진지전이 구분될 수 없는 탈근대적인 지점에서이다.

근대적 세계에서의 저항이 직접적인 또는 변증법적인 힘의 대립을 의미했다면, 탈근대적인 저항은 애매하거나 삐딱한 자세에서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제국에 대항하는 전투는 삭제와 태만을 통해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주는 어떤 장소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의 장소를 철거하는(비우는) 것이다.” 네그리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 공간은 “노동, 생산, 금융, 그리고 부의 재분배를 다수의 사람들이 참가해서 함께 관리해가는 체제를 만들어가는” 절대민주주의로 나아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의제와 3권 분립 등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가 부패한 것은 부정부패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치제도와 국가권력이 집행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뉴욕의 월가에서, 유럽 각지에서, 북아프리카와 아랍에서 말이다. 설계나 통제가 아닌, 중앙의 지도나 맹목적인 신뢰가 없는, 새로운 투쟁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군중은 비로소 “독자성을 가진 자율적인 개인의 집합”인 다중이 된다. 그 때 그들은 단순한 대중이나 군중이 아니라 불안정하지만 독자적이고 자율적이며 유연한 개인-공동체이다.

무릇, 자책을 관두고 분노의 능력을 회복하면,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기 시작하면, 억눌린 생각과 의사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다중의 역량이 스스로 발현된다. 박영균 교수의 말처럼 다른 무엇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닐까? 조금 더 받기 위해, 조금 더 편하기 위해 어색하게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며 데모하는 것이 아니라, “캠프를 차리고 생활 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공동토의하고 있는” 그 현장에, 나와 공동체의 관계가 최대한 좁혀지기 위해 협력하는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 움트지 않을까? 그 새로운 정치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가치나 원리로 작동할 것이다. 통치나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고 누리기 위해 조직되는 정치가 그것이다. 네그리가 말한 다중의 능력도 바로 이러한 가치를 생산하는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본은 보기보다 약하고, 다중은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본은 다중에 의존하고 있고, 자본의 명령과 권위에 저항하는 다중의 의해 끊임없이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총체성:자유로 가는 길[생각vs생각]

“‘포괄적으로 보는 사람’(ho synoptikos)은 ‘변증술에 능한 자’(dialektikos)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이가 아니기 때문이네.”(플라톤, 『국가』)

전체는 비진리인가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곧 전체”라고 제시하며 변증법적인 총체성의 개념을 존재론적 원자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실체존재론과 근대의 경험주의, 그리고 선험적 형식주의(경험주의의 변형태 중 하나)를 비판하는 토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대학살과 스탈린의 강제수용소를 경험한 이후 보수적인 학자 진영이나 진보적인 학자 진영이 이 개념을 집중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 개념과 아울러 변증법 자체의 학문성과 실천성까지 모두 의심하고 심지어 폐기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로써 변증법적 총체성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전체주의라는 현실적 정치체제와 필연적 연관성을 지닌 것처럼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을 아도르노는 “전체는 진리가 아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표현한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며 개인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실증주의나 분석철학과 같은 경험-형식적 합리성의 철학(대표자로는 포퍼, 그의 반증주의는 전형적인 과학주의임), 그리고 소비에트 공식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정치적으로 새로운 진보를 제시하기를 열망하는 네오맑스주의(대표자로는 아도르노)나 포스트모던주의(대표자로는 리요타르)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다.

새로운 좌파적 실험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주자인 리요타르는 변증법의 ‘총체성’ 개념과 거대 담론을 비판하며 차이의 활성화를 통한 작은 담론을 대안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전체와 하나에 대한 동경(변증법적인 총체성-인용자 주), 개념과 감성의 화해에 대한 동경, 명료하고 의사소통가능한 경험에 대한 동경을 실현하기 위해 지나친 대가를 치렀다. …… 그리하여 서술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하고, 충돌하는 차이를 활성화하고 그 이름의 명예를 구원하라.” 이 글에서 변증법적인 총체성은 다양성을 배제하고 차이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한편 정치적 보수주의자인 포퍼는 자유주의의 기초가 되는 개인주의라는 정치철학적 관점과 자신의 과학적 탐구의 방법인 “시행착오”의 방법을 기초로 해서 변증법적 총체성을, 그 총체성의 역사적 발전적 과정의 필연성을 일종의 예언자의 망령으로 규정한다. 포퍼는 변증법적 총체성을, 역사적으로 전개된 과정 전체를 필연적으로 규정하는 일종의 ‘역사법칙주의’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법칙주의는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하나의 역사발전법칙으로 설명하고, 특히 미래를 이 법칙에 따라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퍼는 변증법적 역사진행과정의 총체를 점성술의 예언 차원으로 격하시키면서 동시에 변증법 자체도 ‘전(前)과학적이자 전(前)논리적인 사유방식’으로 규정한다. 그는 변증법을 “어떤 발전 또는 어떤 역사적 과정이 어떤 전형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변증법적 3박자 이론으로 정의한다. 이 전형성이 바로 역사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론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결정론의 형태가 헤겔에서는 개념적 필연성으로, 마르크스에서는 경제적 필연성으로 나타난다.

포퍼는 필연성에 기반을 둔 변증법이 철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정치이론의 발전에서도 불행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에는 그 진행 과정을 필연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역사에는 의미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포퍼에 의하면 “미래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으며 우리들은 어떤 역사적 필연성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필연성에 기초한 전체 과정으로서의 변증법적 총체성은 예언적 환상에 불과하고 이로부터 인류의 자유를 구속하는 정치적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개인화는 전체화를 동반한다

그런데 포퍼와 리요타르가 공격하는 내용과 방식은 달라도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즉, 현대 정치에 출현한 전체주의적 요소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정치공동체와 이성국가를 강조하는 변증법에서 기원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전체주의의 기원이 아니다. 도리어 자유주의가 전체주의의 출현에 책임이 있다. 현상적으로 보기에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전체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의 치료제로 추천되기도 한다.

이러한 혼동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대 정치를 ‘개별화’와 ‘전체화’가 맞물려 진행되어 온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푸코). 일례로 ‘개인의 권리’와 ‘인격의 자유’에서 쓰이는 ‘권리’와 ‘인격’ 모두가 개인적인 차원에 속하는 개념들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차원에서 법적인 토대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개념들은 이미 자신들 속에 사회적, 더 나아가서 정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개인’이라는 개념도 추상화된 단위, 즉 국가나 사회로부터 추상화된 결과이지 이것들의 선행 원인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개인’, ‘권리’, ‘인격’ 모두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개별화와 국가화(전체화)가 별개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가 성립(전체화)하면서 개별화가 함께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개별화는 추상적 직접성의 단계로서 이미 전체화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개념들 속에 이미 전체화의 요소가 전제되어 있음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는 절대로 어떤 정치적 지배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이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담론 형식인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홉스의 절대주의적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가 기원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홉스의 정치철학이 근대성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철학에는 자유주의의 핵심인 도구적 합리성(욕망을 계산하는 이기적 인간의 합리성)과 이 합리성의 주체인 이기적 개인(이는 갈릴레이의 분해와 결합의 방법에 의해서 시계가 분해되어 부품으로 쪼개지듯이 개인도 사회가 그 요소로 분해되어 나타난 단위이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그의 철학이 욕망하고 투쟁하는 시민사회의 철학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시민사회의 갈등과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홉스는 국가라는 괴물(홉스가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나오는 괴물 이름이다)을 고안한다. 그는 시민사회가 국가라는 절대 권력체 없이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통찰한 것이다.

이를 로크는 국가의 목표가 ‘재산의 보호’에 있다고 함으로써 분명히 한다. 재산 이론을 통해서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자신이 전제한 평등한 권리를 불평등한 권리로 변형시킨다. “시민사회(=정치 사회)는 이미 자연 상태에서 불평등한 권리를 생기게 한 불평등한 소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건설된 것이다.”(맥퍼슨) 이는 자연 상태인 시민사회의 재산은 국가의 법률적 보호 없이는 안전할 수 없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로크의 소유 개인주의(자유주의)는 국가와 법률의 강제를 필요로 한다.

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과 성격뿐만 아니라 근대 정치철학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가 지적한 대로 근대 정치적 합리성이 ‘개별화’와 ‘전체화’를 동시에 진행시킨 점을 통찰해야 한다. 또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주장한 것처럼 계몽주의는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자유주의 이념의 학문적 형식인 경험-형식적 합리성(논리실증주의에서 잘 구현된 합리성)에서 잘 드러난다.

이 합리성은 처음부터 배제의 논리를 구사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로부터 역사와 실천이성이 배제된다. 그리고 형이상학을 신화로 해체한 경험-형식적 합리성(계몽주의)은 자신이 다시 신화가 된다. 이러한 역설적인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개인주의 외에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계몽주의의 합리성이 신화와 탈마법화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듯이 자유주의는 자유와 지배(자유로부터 생겨난 지배)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다.

이 테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최소 국가론을 주장하므로 국가를 목적으로 두는 전체주의(국가 권위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는 나치즘과 파시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치즘과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핵심적 주장인 ‘시장의 자기조절능력’의 무능에 대한 우파적 입장의 해결책으로 역사에 등장한다(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이것들은 시장 사회의 공격적 요소에서 기원한 시장주의의 실패작이다. 또한 이러한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케인즈의 복지국가와 자유주의의 최소국가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적대적인 두 집안의 극단적인 대립이 아니라 자유주의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두 가족이 대립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효율성을 신뢰하는 것이고 복지국가론은 시장이 낳은 문제를 시장주의로 보완한다는 수세적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의 위기와 현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등장한 공세적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자본을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시도한다. 이처럼 초국적화된 자본의 본질적 운동은 수세에 있을 때는 국가라는 기구를 이용하고 공세에 있을 때는 국가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권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자신의 개념 안에 권력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의 특징은 권력을 실체화하지 않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의 그물망(예컨대 통치계약)으로 엮는 동시에 (예컨대 수용소 또는 파놉티콘 안에서) 권력의 개별화를 행한다. 로크의 ‘권리’, ‘인격’ 개념과 벤덤의 ‘원형감옥(파놉티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실제로 자유주의는 원자적 개인주의 더 나가 소유 개인주의로, 그래서 소유한 자의 자유와 소유하지 못한 자의 종속으로 귀결되며, 이 종속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억압적 권위주의로 귀결된다. 이러한 소수만이 자유로운 자유주의적 국가의 권위주의로부터 해방되고 만인이 자유로운 이성국가나 코뮌주의를 건설하려는 철학적 입장들이 등장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비억압적 총체성을 기획하는 정치적 오르가논으로서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이 역사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변증법이 정치적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오해받는 역사적 이유

이처럼 정치적 전체주의의 기원이 자유주의임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적 총체성이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오해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탈린 소련의 수용소(굴락)와 중국의 인권 탄압이라는 역사적인 불행한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스탈린 소련은 동구 몰락에서 보듯이 근본적으로 변증법과 사회주의의 원래 이념에서 변질된 근대 (도구)이성과 계몽 기획의 어두운 얼굴에서 기인한 것이다.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동구의 몰락은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에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복지국가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구소련 모두 근대성과 자유주의의 핵심인 도구적 합리성(경험-형식적 합리성의 형태 중의 하나)을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구의 몰락은 근대성의 위기의 표현이며 그 근대성의 헤게모니적 지배권을 지닌 자유주의의 몰락(월러스틴의 테제)이다. 자유주의가 이러한 몰락에 직면하여 공세를 편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의 과학적 논리인 실증주의는 이러한 근대성의 어두운 얼굴을 무시하고 근대성을 일방적으로 찬양하지만, 변증법은 근대성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본다. 변증법이 이 중에서 하나만을 주장한다면 이는 계몽을 찬성 아니면 반대하라는 ‘계몽의 협박’에 말려드는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지배적 변증법은 근대의 성과만을 지나치게 미화한 비변증법적인 사유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탈린주의는 비변증법적 요소, 더구나 자유주의적 요소(형식적이고 도구적인 합리성), 즉 계몽의 변증법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성 일반(유럽의 근대성과 그의 대표적 형태인 자유주의 철학)이 변증법보다 훨씬 더 이 이데올로기적 괴물의 탄생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동구의 몰락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 진행의 한 계기일 뿐이다.

근대성 일반(그 핵심으로서의 자유주의)이 위기에 봉착한 지금, 변증법적 사고의 폐기가 아닌 복권이 필요하다. 이러한 복권으로 인해 역사성에 기반을 둔 개념적 ‘노동’과 공시적인 것과 통시적인 것의 전체를 포착하려는 ‘총체성’을 향한 사유의 노동이 작동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근대성의 성과와 한계가 잘 드러날 것이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고 표현된 것에 순종하고 분쟁들을 일방적으로 종식시키는 논리적 전체주의도 아니며 더 나가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당이나 지도자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복종시키고 억압하는 정치적 전체주의는 더욱 아니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파편화되고 복잡한 현대 사회의 전체의 모습을 그려보려는 진리에 대한 용기 있는 자의 학문적 시도이다.

반대로 총체성이라는 내적 연관성을 지니지 못한 채 자유주의자들처럼 고립되고 분열된 단위들의 상호소통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아니다.

이와는 다르게 변증법은 서로 내적으로 연관된 전체라는 관점에서 서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전체 인류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그 생생한 대립적인 총체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로써 변증법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소외된 목소리를 활성화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갈등 속에서 조화하는 자유와 해방의 논리이자 정치의 오르가논이 된다. 다시 말해서 변증법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오르가논이 된다.

변증법은 초역사적 추상적 공간이 아닌 현재의 역사적 조건을 원자화된 그림이 아니라 내적 연관성이라는 총체성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변증법은 미래를 예언하는 사이비 과학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적 조건을 성찰하고 그 현실에서 무르익은 이념적 차원을 드러내는, ‘서술’과 ‘비판’의 기능을 하는 ‘황혼 무렵에 날아오르는 올빼미’이다.

김성우(상지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