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불안한 시대의 단상 [썩은 뿌리 자르기]

김정철(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그야말로 불안의 시대이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모두 열심히 일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삼키며 덩치를 키워왔다. 신자유주의는 그 결정판이라 할 만 하다. 서점에 널린 자기개발서에는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장밋빛 미래가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그들이 말하는 승리의 방정식 뒤에는 ‘경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다른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 속에, 패배자들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목표를 이루더라도 당장 승리한 현실을 지키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연히 승리자도 불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한 편에는 패배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공을 위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실패자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경쟁률 증가를 멈출 줄 모르는 공무원 입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불안’의 시대에 ‘안정’은 점점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꿈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서 당장의 생활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을 열심히 만들고 좋아하는 글을 써도 힘겨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은 분명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꿈’ 역시 ‘돈’에 따라 줄을 세운다. 사람들은 꿈을 좇는 그들이 얼마나 행복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돈 안 되는 일에 미쳐 있는 철없는 사람들로 취급할 뿐이다.

이는 TV의 드라마만 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상위 몇%에 해당하는 재벌과 그들의 가족은 이미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된지 오래이다. 행복의 열쇠를 ‘돈’이 쥐고 있는 한, 드라마 속의 재벌가 주인공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활수준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눈앞의 불안을 단숨에 제거할 사람은 재벌가의 사람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보통사람들이 재벌을 만날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 불안의 원인

불안은 불확실한 요인에서 비롯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불확실한 요인들을 변덕스런 재능과 운, 고용주와 그들의 이익, 세계경제 등으로 나누어 말한다. 재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운도 마찬가지다. 운은 찾아올 수도 있고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의 생계는 고용주가 지급하는 소득에 달려 있다. 그러나 고용주는 이익을 추구하려 하고, 이익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개인의 생계는 불안해진다. 고용주도 불안하기는 똑같다. 세계 경제의 불안이 주요 원인이다. 그러니 불안의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불안의 해결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시장 기능에 의존하여 복지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다. 이미 사회는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가정은 구성원을 보살피는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무조건적인 경제 성장의 추구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줄 거라는 믿음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현 정권의 대선 홍보문구였던 747 공약은 이미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되어버렸다. 상당수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군 가파른 성장이 영원할 수는 없다. 이제는 무엇이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인지 고민할 때가 온 것이다. 세계 경제 위기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의 복지국가 담론의 열풍은 이렇게 불안이 팽배한 사회에서 보편적인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담겨있다.

– 사회복지의 개념과 고대 동아시아 세계

복지란 무엇일까? 글자만 살펴보면 그냥 ‘행복’이고, 사전에서도 ‘행복한 삶’이라고 정의한다. 복지제도의 대상은 누구일까? 당연히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가치이지만,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들이 있다. 이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사회복지’이다. 위켄덴(E.Wickenden)의 정의를 보면 더 명확하다. “사회복지는 주민들의 안녕에 기본적이라고 생각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사회질서가 더 잘 기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조 조치들을 확실하게 해주거나 강화시켜주는 법들, 제도들, 혜택들과 서비스를 포괄한다.”

정치의 근본이 백성의 기본적인 삶의 충족이라는 견해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도 존재했다. 제나라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창고가 가득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입고 먹는 것이 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 백성들이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나는(군주는) 그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백성들이란 가난과 비천함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주어야 한다. 백성들이란 위험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백성들이란 자신이 죽고 후대가 끊기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이 수명을 누리고 후대를 잇도록 화육해야 한다.”(“倉?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民惡憂勞, 我佚樂之. 民惡貧賤, 我富貴之. 民惡危墜, 我存安之. 民惡滅絶, 我生育之.” 『管子』 「牧民」) 정치의 주체가 군주로 한정되어 있던 춘추 시대 인물의 말이지만 현대의 복지국가론에 비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예절이나 명예도 우선 기본적인 삶을 충족되고 나서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주관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최소 조건은 먹고 사는 문제의 충족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예기』에서 공자는 유학의 이상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큰 도(道)가 행해지는 세상에서는 천하를 공(公)으로 여긴다. 현인을 뽑고 능력자에게 일을 주어, 믿음을 키우고 화목을 닦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인은 말년을 잘 마칠 수 있게 하고 젊은이는 잘 쓰일 수 있게 하며, 어린이는 잘 자랄 수 있게 하고, 홀아비 과부 고아 무자식 노인과 장애인은 모두 부양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남자는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시집갈 곳이 있게 한다… 이것을 대동이라고 한다.” (“大道之行也, 與三代之英, 丘未之逮也, 而有志焉. 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修睦, 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 男有分, 女有歸… 是謂大同.” 『禮記』「禮運」) 큰 도가 행해지는 세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떠한 차별이나 소외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학의 이상향은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관이나 또 다른 세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행복도 이 세상에 있고, 불행도 이 세상에 있다. 대동의 세계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땅 위에서 이루어진다.

맹자의 말은 한결 더 구체적이다. 그는 백성들에 대해 “일정한 수입(恒産)이 없으면 평상심(恒心)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곧 관중의 말과도 유사하다. 선비는 학문과 수양을 통해 일정한 수입이 없어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지만, 평범한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 기본적인 삶이 충족되지 않으면 평상시의 마음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맹자는 누구나 같은 넓이의 농지를 분배받아 경작을 하고 세금을 내는 형식의 정전론(井田論)를 내세워 기본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균등 분배와 조세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주의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맹자가 제시한 이상향은 모든 법도가 잘 이행되었던 주(周)나라를 내세워 한 말이다. 그러나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임무는 오늘날 복지국가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의 담당자가 군주에서 의회 정치로 바뀌었을 뿐이다.

최근 복지의 선별과 보편 논쟁은 가치보다는 재원 확보의 측면에 더 중심이 쏠려 있다. 선별과 보편은 다른 말로 풀어보면 차별과 평등 문제이다. ‘선별’이라는 말은 결국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만든 제도라도 사각지대는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기준에 의한 ‘자격미달’은 상황에 따라 커다란 박탈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복지의 뜻이 행복이라면 행복을 누려야할 권리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서구의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구에서 ‘복지국가’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나치 독일의 ‘전쟁국가’ 또는 ‘권력국가’와 대비하여 연합국 측의 전후 재건 목표로 ‘복지국가’를 내세우면서 등장했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 발생하는 빈곤문제 해결에 관한 논의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구빈법을 제정했고, 19세기 말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 세력의 성장을 막고 중상층 노동자들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결국 복지제도의 시작은 기존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 보수언론들은 이 사실을 들어 복지의 원조가 보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지제도가 시작되는 시점만을 살폈을 뿐, 현대적인 의미의 복지국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대 복지국가는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이하 사민주의)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사민주의는 독일사회민주당에서 베른슈타인이 제기한 수정주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뒤 그 틀을 갖추었고, 1951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결성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이념적 좌표를 세웠다. 선거와 민주 등 기존 장치들을 사회주의 실현의 도구로 삼는다는 점에서 혁명을 앞세우는 사회주의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민주의는 노동운동의 확대?발전과 더불어 발전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

– 한국의 복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의 복지 상황은 어떠한 특징을 갖는가? 앞서 말한 서구의 사례와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복지정책은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는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노동정치의 영향을 받았다. 그 뒤 IMF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분배와 관련된 복지정책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OECD 가입국 가운데 GDP 대비 복지예산 비율은 여전히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복지는 장기적으로 보편복지 시스템을 지향할 필요가 있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의 기반이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지 논쟁에서 어떤 정책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은 그들 각각의 지향과 방법을 살펴야 가능하다. 첫째 재정 확보 방법을 명확하게 살펴야 한다. 물론 현재 국가재정 구조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도 복지 수준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일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보편 복지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증세에 대한 부분이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 똑같은 공약인데, 재정확보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않다면, 현재 보편 복지론을 공격하는 주요 근거인 일본과 남미의 복지병 사례를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우리는 겉으로는 ‘친서민’을 외치면서 실상은 전혀 다른 정권을 경험하고 있다. 진정한 포퓰리즘은 허울뿐인 복지다.

둘째 기존 경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개혁에 대한 의지를 살펴야 한다. 현행 복지제도만 바꾼다고 해서 바로 복지 전체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반드시 조세 개혁과 다른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증세도 기존 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강행하게 되면 당장의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비정규직 일자리가 넘쳐나고 당장의 처지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늘어난 세금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제도의 개혁은 기존 시스템이 가진 맹점을 보완하는 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맹자는 노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 일과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북해를 넘는 일에 빗대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경우(不爲者)와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경우(不能者)를 구분했다. 한국 정치는 해방 이후 줄곧 일부 편중된 정치세력의 주도 아래 역사를 거듭해왔고, 그래서 다른 형태의 정치 경험은 매우 부족하다. 게다가 당장 먹고살기 급급하기에, 정치판을 연예계 가십거리만도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시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맹자의 말은 당시 통치권자인 군주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 그의 말은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허망하게 앉아만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해당된다. 우리는 할 수 있는데 그동안의 경험만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현실에 체념하면서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 결국 정치 주도 세력의 변화도 우리에게 달려 있고, 연대로 힘을 실어주는 일 역시 우리에게 달려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할 이유가 없다. 북유럽 복지국가 건설의 원동력이 노동 운동의 결집과 세력화였다는 점을 우리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문화복지 실현이 가능한가? [썩은 뿌리 자르기]

박선정(한신대학교 대학원 노동정책 및 사회정책(협) )

2011년 상반기 우리나라는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술렁였다. 첫 번째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 사이에 일어난 인디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럼’의 이진원씨와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씨, 이 두명의 젊은 예술 작가에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 두명의 예술가는 21세기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믿지 못 할 생활고로 인해 세상을 마감했다. 이러한 사건은 ‘예술은 배고프다’, ‘배고파야 예술한다’, ‘예술이 노동이냐?’ 등 아직 예술을 직업이나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산업은 고도로 발전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지만, 그것의 기회나 분배가 결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유명한 성악가이자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인혜교수의 제자 폭행사건이다. 처음에는 수업과정에서의 과도한 폭력행사로 시작하였지만,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들이 인터넷을 통해 드어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예술계 내의 만연한 비리와 권력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두가지 사건으로 만 봐도 우리사회에서 문화?예술의 현실이 얼마나 상업적이며 비민주적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문제와 달리, 문화의 향유를 권리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 되면서 문화복지라는 큰 틀에서의 지원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1년 업무보고를 통해 ‘희망대한민국’ 프로젝트(157개사업)로 1,600만명에게 공연관람 등 문화예술 프로그램 지원, 국립박물관 무료관람, 문화?관광?체육바우처로 3년간 소외계층 78만여명에게 혜택 (문화바우처 74만명, 여행바우처 2만여명, 체육바우처 2만3천여명), 문화취약계층 대상 공연관람 지원, 5,436개 초?중?고교에 예술강사 4,156명, 1,200개 사회복지시설에 예술강사 850명 지원으로 393만명 교육 혜택 등의 문화복지 정책들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책들이 실제로 문화소외계층에게 문화권을 얼마나 실현 시킬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실질적인 효과성을 제외하고도, 우리 사회 안에서 예술가들이 경제적 이유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권력적 구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문화권의 실현이 과연 어떠한 의미인지 좀 더 고민해 봐야한다.

2009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발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이 ‘없음’(37.4%), ‘201만원이상’(20.2%), ‘101~200만원’(13.8), ‘51~100만원’(10.8%), ‘21~50만원’(6.9%), ‘10만원이하’(5.1%), ‘11~20만원’(2.6%)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지 않고 사회일반적인 시각으로만 보더라도 평균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예술과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과 그로인해 여러 가지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화상품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8년 발표된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최종소비지출에서 오락문화에 지출하는 비용은 2000년 약23조에서 2007년 33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상품과 그에 따른 소비는 늘고 있는데, 문화예술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예술관련 노동자는 기본적인 소득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매우 비상식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 향유의 질은 누가 얼마나 좋은 문화상품을 어떠한 비용으로 소비했는가와 등가 한다. 이는 상품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예술은 살아남기 어려우며, 비용을 치룰 수 없는 사람은 문화를 일상적으로 향유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를 생산하는 예술가는 당연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문화를 상품으로만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품으로 개발되지 않는 문화는 접근조차 어렵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상품을 재화로 생산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시키기 위해 권력구조에 굴복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문화?예술을 둘러싼 사회의 문제들은 문화상품의 생산과 유통, 소비라는 사회시스템과 모두 연결되어있다. 이것은 문화?예술 분야의 시장화가 예술가들의 사회보장과 사회구성원들의 문화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매우 단순한 정책논리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문화를 자체적을 생산하지 못하거나 구매를 통해서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러한 상품을 지원해 주면 되는 것이고, 시장에서 낙오된 예술가들은 그 대상자가 시장안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단기적으로 지원하면 되는 것이다(하지만 지원을 거치고도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여쩔 수 없는 일이다.). 문화예술의 시장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사회가 진정한 문화권을 실현하게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문화는 근본적으로 다양해야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다른 취향을 갖고,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좋은것이라고 강요되어서도 안되며, 일방적으로 선택된 것이 주어주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에서 다양한 문화가 건강하게 생성되고 유통되어야 한다. 이는 예술노동자들에 노동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 사회안에 예술 노동자들이 기본권을 보장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 질 수 있다. 다양한 문화가 생성되었다면 그것을 우리사회의 구성원이 균등하게 접근할 수 있게 유통시켜야 한다. 이는 시장을 문화?예술의 시장화의 문제에서 오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정책을 통해 진정으로 우리사회의 문화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와같은 문제를 반드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것 이다.

문화는 인간이 진화하여 공동체를 이룸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탄생했고 발전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삶에서 단지 본능적으로 요구되는 욕구이외에 의미를 찾는 존재이며 문화는 이러한 의미추구를 하도록 하는 핵심적 기능을 갖고 있는 만큼 삶에서 불가분의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서 정체성과 사회적 귀속감을 갖게 되고, 삶의 가치나 윤리적 규범을 익히며, 창조적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갖는다. 따라서 문화는 반드시 사회적 성격을 가지며, 사람들이 공유하고 함께 누리는 삶의 터전으로 역할을 한다.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독점하기 보다는 공유하고 향유 할 때 문화는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슈퍼우먼(Super Women)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썩은 뿌리 자르기]

나래(한신대학교 대학원 노동정책및사회정책(협) 대학원생)

올해도 어김없이 참아온 ‘그 날’

개나리가 먼저 꽃을 피우기 전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날이 찾아왔다. 그 날은 바로 올 해 3월 8일에 103주년을 맞이하는 ‘3.8 세계여성의 날’이다.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등의 요구로 시작된 세계여성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 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싸운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봉기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대륙까지 번졌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물가가 오르자 ’주부들의 봉기‘는 점점 빈번해졌고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로 퍼져나갔다. 여성노동자들은 시장의 상품 진열대를 부수거나 사악한 상인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계비용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성의 참정권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나아가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정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집단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으며 이 날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주의당과 노동조합에 가입을 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날은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즉 여성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에 있어서 여성의 날은 필수적인 날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1908년에 시작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여성 선거권 부여 등의 요구는 현재 전부 보장되고 있는가? 103번째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현실을 둘러봐야 한다. 목숨을 건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진정한 여성해방을 맞이하였는지, 아니면 더 어두운 오늘을 맞이하였는지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슈퍼우먼일 수밖에 없다?

2009년에 방영된 모 기업의 주유소 광고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 정책의 목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광고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는 가정 일도 잘하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고, 나이가 들수록 늘어지는 살과 늘어나는 주름을 열심히 가꾸고, 남편 내조도 잘하고, 직장에서 일도 열심히 하는 슈퍼 우먼(Super Women)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 명의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역할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문제는 그냥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슈퍼 우먼(Super Women)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과 같은 매체에서도 남편과 자식들밖에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구태의연해보이고 한물 간 등장인물 캐릭터 같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과 독자를 감동하게 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상은 비단 이 광고에만 국한 되는 내용일까? 그렇지 않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페미니즘 여성작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공지영 작가가 출연을 했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고 그동안 숱하게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보다 세 번의 이혼경력과 성이 다른 세 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밝혀지며 본인이 원하던, 원치 않던 여성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여성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에서 공지영 작가는 이야기한다. 자신이 긴 공백 기간을 접고 다시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하는 세 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녀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작품보다 이혼경력으로 더 유명해졌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다시 펜을 잡아야했던 그녀 역시도 이 시대에서 슈퍼 우먼(Super Women)임을 스스로 자처해야했던 여성인 것이다.

이처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교묘하게 결합한 한국 사회는 한없이 희생적인 어머니의 상과 노동자로서도 충실하게 기능하는 유능한 노동자의 상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결국 국가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교육 문제와 보육의 문제, 여성의 노동권 등에 대한 부분을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이명박 정부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스스로 슈퍼우먼(Super Women)임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투쟁은 10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들은 어떤 상황일까? 한국에서 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되었고, 민주노조가 창설되었고,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된 오늘날이지만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 성희롱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09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금양물류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은 1908년 여성 노동자들이 외쳤던 요구가 정책적인 변화만을 가져왔을 뿐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그 형식적인 정책들 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회사명만 수차례 바뀐 회사에서 14년동안 일을 했던 여성피해자는 금양물류의 남성 조장과 소장에게 수차례에 이르는 문자, 전화통화 성희롱부터 피해자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어깨와 팔을 주물럭거리는 등의 육체적 성희롱을 당해왔다. 결국 성희롱 사실을 알린 피해자는 사측으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혼 후 세 명의 아이를 양육해야했던 피해자는 그동안 회사에서 당했던 성희롱 사실을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하여 제보하였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는 등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사를 알리고 징계해고를 철회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에서는 이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07년부터 시작해 투쟁 1,000일을 훌쩍 넘긴 재능투쟁부터 진보교육감인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실제론 임시강사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경기도임시강사투쟁, 하루 10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도 한 달 75만원이라는 저임금과 임시직 또는 간접고용 형태로 불안정한 조건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던 홍대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은 103주년을 맞이한 3.8 세계여성의 날에도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성장과 고용, 복지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2020 국가고용전략

작년 10월 이명박 정부는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을 위한 2020 국가고용전략’을 내놓았다. 경제위기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 등에 따른 인구구조 위기에서 벗어나 성장과 고용이 동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추진배경 아래 일자리 희망 5대 과제에 따른 고용 정책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 정책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목표로 다양한 추진방안이 계획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공공부문 영역을 시작으로 민간부문까지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과 육아휴직과 연계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 확대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이러한 정책은 여성들의 해방을 앞당겨 주는 정책들인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고용전략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수없이 문제가 되었던 저임금, 비정규직, 간접고용 형태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여성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져야하는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국가고용전략에서 핵심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저임금과 단시간, 불안정한 노동정책은 여성 노동자들 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인 남성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되어 모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물가와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교육비 등을 부담하기 위해 집안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과거의 여성과 어머니들에 대한 상은 이제 구태의연한 이미지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가정에 도움이 된다면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은 물론이고 성희롱을 참아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진정한 대안이 아닌 자본의 배를 더욱 불려줄 자본의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 삶의 권리를 위해 여성, 이제는 행동이다!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요구, 여성 참정권 요구 등을 내세우며 시작된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은 소름끼치도록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그것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1914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여성노동자의 날에는 여성노동자들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짜르의 독재 권력을 몰아내자는 요구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103주년 3.8 세계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들 역시 이명박 정부의 반여성적 노동 정책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자본주의 사회에 전면적으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가치와 철학을 담은 요구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3.8 세계여성의 날을 150년째 맞이하더라도, 200년째 맞이하더라도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폭력에 노출 될 것이다.

103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외친다! “노동과 삶의 권리를 위해 여성, 이제는 행동이다!”

영화로 사유하기 (2) : 프레임

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영화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일단 영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좀 더 예민하게 생각해 주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의미’이다. 영화의 경우 ‘의미’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생각하는 바는 ‘언어로 전달될 수 있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물론 이 이야기(서사)도 의미에 포함된다. 하지만 동일한 서사를 다루고 있는 너무나도 많은 판본들이 서로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이다. 영화의 의미가 이야기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다음 후보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주제이다. 주제를 파악할 때에는 당연히 여러가지 인문학적 이해가 동반된 해석이 중요하지만, 영화 텍스트의 문제로 한정하여 생각해 보자면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텍스트 이해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살인죄를 지은 여자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여자 주인공이 그런 죄를 저지르게 되는 상황을 누구의 시점에서 보여주느냐에 따라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연민을 느낄 수도 있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시점(point of view)과 초점화(focalisation)의 문제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1인칭 시점이냐, 3인칭 시점이냐, 또한 그 시점이 관찰자인지, 전지적 작가인지에 따라 상황에 대한 이해와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달라진다. 하지만 시점과 초점화는 영화적인 방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에서 발달된 방식이다.(물론 영화에서의 시점은 문학의 경우와 유사성과 차이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문제는 이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이를 영화적 사유라고 부르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야기나 주제의 측면에서 영화를 접근하게 되면 문학보다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경우 영화는 대략 2시간의 런닝타임 동안 모든 것을 보여주고 말해야 한다. 분량이 더 길다고 더 수준 높은 예술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야기나 주제에 대한 보다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탐구는 영화보다는 장편 문학 작품에 보다 더 적합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문학과는 다른, 혹은 문학에는 없는 영화적인 측면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답하자면 ‘보여주기’, 즉 ‘시각적인 이미지의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가에 따라,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의미를 포함하여 언어로 표현해내기 힘든 의미까지도 제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원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카메라로 보여줄 때를 생각해 보자. 초원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고정 카메라에 익스트림 롱 쇼트로 보여주는 경우(20초)와 빠른 편집으로 넓은 초원을 카메라가 빙 둘러가며 빠른 속도로 보여주고 그 후 그 나무를 풀쇼트로 보여주고 이어 클로즈업으로 나뭇잎들을 보여주는 경우(4초), 언어화시킬 수 있는 의미는 두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넓은 초원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이야기는 두 경우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포함한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처음 장면은 정적이고, 두번째 장면은 동적이라는 것 외에 어떤 점을 통해 의미의 변별성을 언어화시킬 수 있겠는가. 영화의 경우 서사나 이야기 혹은 대사 등을 통해 구체적인 의미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혹은 의미로 구체화되지 않을 때에도, 이미 감각이나 지각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비언어적 의미의 중요한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그에 해당되는 이미지가 영화적 사유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예를 통해서 그러한 감각을 생산하는 것은 프레임, 쇼트, 몽타주와 같은 영화의 기본 메커니즘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임부터 생각해보자. 우리가 영상을 접하는 경우 언제든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프레임이다. 일상적으로는 창문틀이나 문틀을 비롯해서 그림의 액자와 같은 틀(frame, cadre)을 의미한다. 영상의 경우 TV나 모니터의 틀 같은 물리적인 틀거리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런 틀이 없는 경우 이미지의 한계지점을 말하기도 한다. 혹은 틀거리 안에 포함되어 등장하는 이미지의 내용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이론가 자크 오몽이 행한 프레임에 대한 세가지 구분이 바로 이것이다. 대상-프레임(cadre-objet), 한계-프레임(cadre-limite), 창문-프레임(cadre-fenetre)이 각각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이렇게 프레임을 구분지었지만, 사실 한계-프레임과 창문-프레임은 모든 경우 동시에 작동된다. 프레임은 이미지의 한계를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한계가 어디인가에 따라 프레임 안에 담기는 이미지의 내용물이 달라져 의미작용이 달라진다. 강의실 장면을 프레임 안에 담는 경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위주로 프레이밍하는지 혹은 뒤에서 자거나 딴 짓 하는 학생들까지 프레임에 모두 담을지에 따라 이미지가 함축하는 내용은 명백히 달라지게 된다. 그보다 좀 더 까다로운 경우는 이미지의 내용물은 동일한데 이미지의 구성(composition)의 측면에서 다른 경우를 들 수 있다. 화면의 각도와 배치 등에 따라 언어로 명백하게 의미를 분절해내기 힘든 차이들이 나타난다.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는 프레임이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명상할 수 있는 틀’이라고 말한다. 사각형의 틀을 설정함으로써 모든 원근법이 결정되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와 의미가 시작되는 곳이 프레임이다. 다니엘 아라스가 분석하는 르네상스 회화에 등장하는 원근법적 구성은 치밀한 계산을 통해 이루어지며, 관객 역시 한참 동안을 들여다보며 사유해야 의미를 파악해 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의 경우와는 사뭇 차이가 난다. 회화는 움직이지 않는 화폭 위에 그려진 고정된 이미지이고, 영화는 움직이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이미지가 움직이기 때문에 관조와 침잠을 통한 사유는 쉽지 않다. 하지만 원근법이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생성해내고, 우리의 시선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회화의 방법론을 참고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아라스가 행한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1433~1434)에 대한 분석을 참고해 보자. 이 그림은 수태고지라고 하는 성육화의 신비를 원근법적 구성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맨 처음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전경에 위치해 있는, 기둥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천사와 성모 마리아이다.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말들이 기둥 근처에 금빛 글씨로 쓰여 있다. 천사의 말 전부와 마리아의 거의 대부분의 말은 다 알아볼 수 있게 쓰여 있으나, 마리아의 말 중 성육화의 바로 그 순간을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fiat mihi secundum(제게 이루어지도록 하소서)’만 쓰여 있지 않다. 기둥 뒤에 가려져 있는 것도, 기둥 색이랑 글씨 색이 비슷해서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말은 이미 예수를 상징하는 도상학적 기호인 기둥으로 화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림 전체의 중심 부분으로 우리의 눈이 이끌려간다. 그림의 정중앙에는 동정녀 마리아의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문 안 쪽으로는 어두운 방에 있는 붉은 커튼과 침대 모서리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침대가 놓인 바닥면을 건물과 비교해 보면 침대는 구도상 그렇게 높게 놓일 수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동정녀의 몸의 신비는 원근법으로 측정가능한 모든 기준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원근법적 측정을 일부러 벗어나게 묘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둥에 이어 두번째로 성육화의 신비가 묘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번째로 관객의 시선이 이끌리는 곳은 기둥들로 이루어진 건물들로부터 찾아낼 수 있는 소실점이다. 이 소실점은 마리아와 천사가 있는 공간 바깥의 어두운 잔디밭과 맨 위쪽에 작게 묘사된 아담과 이브의 동산의 경계 지점쯤에 위치한다. 우리의 시선을 모아주는 원근법적 중심점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환기시키고 있고, 성육화의 신비를 통한 예수의 탄생은 구약에서의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대속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에덴 동산에 쫓겨나는 사건과 신약의 수태고지라는 사건이 성서적으로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화가의 해석까지도 파악하게 만든다.

위의 예에서 보듯, 프레임과 그로부터 규정되는 원근법적 구성은 관객의 시선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도하며, 그에 따라 특정한 의미작용들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는 푸코의 분석으로 더 유명한 그림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간단히 시선의 작용만 이야기하자면, 그림을 맨 처음 볼 때 우리의 시선은 화면의 전경에 위치해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대각선의 중심에 위치하는 화려한 옷을 입은 공주에게 이끌린다. 그리고 그 주변의 인물들로 시선은 옮겨 다니게 된다. 먼저 공주의 시선과 화가의 시선이 관람객인 나와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며, 이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일지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화가의 손에 들려 있는 파레트와 캔버스의 비가시적인 뒷면 덕분에 우리는 더욱 증폭된 궁금증을 안고, 그림 내의 원근법적 중심점 근처로 시선을 이동시키게 된다. 결국 소실점 근처에 위치한 거울 속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왕과 왕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림 바깥 관람자의 자리에 원래 왕과 왕비가 있었고, 희미하게만 처리된 그들의 존재가 이 그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시선의 교환과 유희의 시작점임을 알게 된다. <시녀들>에 대한 푸코의 시선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저 유명한 논의는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프레임이 원근법적 구성의 출발점이며, 원근법적 중심화 작용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림을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끔 조직화하는 기본 원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의 이미지는 회화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회화의 경우와 동일하지 않다. 회화의 경우 비교적 오랜 시간 그림의 구성을 살펴보고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을 이끄는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오랜 시간 들여다 본다고 이미지가 제시하는 모든 의미가 명시적으로 사유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감각이 그림에 존재하고, 어쩌면 그런 부분들이 그림을 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의 경우는 그림보다 더 모호할 수밖에 없다. 관객은 영화 속 이미지를 영화에서 제시해주는 만큼의 시간 동안만 볼 수 있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장면도 지나가버리면 더 이상은 못 본다.(물론 비디오, DVD, 파일 등으로 영화를 개별 관람할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만,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경우 관객은 수동적으로 보여주는 만큼밖에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관객은 나의 시선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화면 전체에서 무엇을 위주로 이미지를 선별해서 보았는지를 의식화하거나 기억해내기 어렵다. 이러한 영화 이미지의 운동성은 움직이는 매 순간 화면의 중심을 변경시키기 때문에 중심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서사 영화의 경우 이미지들 역시 주인공이나 중심 사건을 시선의 중심부에 배치함으로써 중심화된 방식을 유지한다. 또한 내러티브 장치를 통해 중심성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측면이 이미지의 운동성으로 인한 탈중심화 경향을 상쇄시킨다. 내러티브라는 명시적으로 중심화된 의미망이 개별 이미지들을 연쇄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영화 속 사건이나 인물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미지들은 내러티브처럼 명시적으로 중심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시선이 어떤 방향으로 조직화되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관객은 감각적인 인상 혹은 의미만을 수용하게 된다. (서사가 분명한 영화의 경우 이미지는 서사의 중심화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서사를 강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서사가 약하거나 깨어져 있는 경우 이미지들은 더욱 탈중심화된 경향성을 보이는 방식으로 서사에 호응하며 서사를 더욱 약화시킨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서사와 이미지의 차원이 불일치 혹은 균열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서사의 중심성을 이미지가 약화시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영화의 경우 서사적 층위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감각적 의미가 구성되어 있고, 이는 관객의 사유에 명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언어로 분절화될 수 있는 수준으로 명시적이지 않지만, 분명 이미지의 차원에도 관객의 시선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하는 감각적 구성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영화 관객에게는 명시적인 의미 대신 ‘충격’과도 같은 감각의 덩어리들이 전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영화의 프레임은 관객에게 영화의 감각적인 의미와 사유를 전달하는 틀로서 기능하게 되고, 관객의 내부에서는 그 감각의 충격에 의해 사유가 일깨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의 경우에도 감각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회화적인 구성방식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영화의 이미지가 화면 바깥 관객의 뇌세포 이미지들에게 충격을 전달하고, 그것이 관객 내에서 자동기계적으로 사유를 촉발한다고 들뢰즈는 주장하였다. 영화 이미지가 전달되는 가장 기본적인 통로로 프레임을 들 수 있는데, 들뢰즈는 프레임을 포화/희박의 경향성, 화면틀의 기하학적/역학적 구성, 이미지들의 기하학적/역학적 결합, 중심이탈 프레임, 외화면의 문제 등으로 구분지어 이야기한다. 포화/희박은 프레임 안에 정보를 주는 구성 요소들이 얼마만큼 담겨 있느냐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인데, 중요한 점은 내용물이 많이 담겨 있느냐 혹은 적게 담겨 있느냐가 아니다. 포화이든 희박이든 정상성의 정도를 벗어나는 경향성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적당히 담겨 있을 경우 관객은 그로부터 정보를 파악하여 언어적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적거나 너무 많아서 거의 아무런 정보도 읽어낼 수 없는 경우(화면이 유리잔 속 우유의 하얀색만을 보여주거나 너무 많은 수의 사람들이 화면 가득 등장할 경우 화면 속에서 결국 까만 점들 이외에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게 된다), 이미지를 다른 방식으로 독해하게 된다.

화면틀의 기하학적/역학적 구성, 이미지들의 기하학적/역학적 결합, 중심이탈 프레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들뢰즈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목록에 다른 목록들을 계속 덧붙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계속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방식의 화면 구성이나 쇼트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분류하고 있는 프레임의 목록들은 원칙적으로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구분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앞에서 설명한 포화/희박의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다른 목록들에서도 역시 이미지들이 정상성을 벗어나는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 용어로 표현하여 정상성이라는 중심화의 범위를 벗어나 이미지의 탈영토화를 만들어내는 경우, 이미지는 그저 보거나 서술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기능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들뢰즈에 따르면 이 다른 방식이란 이미지가 프레임 안에 닫힌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 혹은 전체로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프레이밍된 이미지를 닫힌 방식으로 읽는다는 것은 결국 그 내부에 주어진 구성 요소나 결합 방식에 따라 마치 언어로 기술하듯 의미나 서사를 유추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전체로 열려있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화작용을 벗어나 영화에서 보여지거나 말해지지 않은 그 너머의 것, 즉 지속하는 전체를 향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영화의 서사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를 드러냄을 말한다. 바로 이 열린 전체의 존재가 이질적인 외화면의 존재이유가 되기도 한다. (열린 전체는 운동 그리고 지속에 대한 논의와 관련하여 설명되어야 하지만, 이번 호에서는 영화적인 방식으로만 한정하였고, 그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쇼트를 다루는 다음 호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완벽히 현전하고 있는 것이 외화면이다. 외화면은 프레임의 상-하-좌-우-앞-뒤 6군데에 있다고 말해진다.(노엘 버치의 구분)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등장인물의 출입이나 외화면 사운드에 의해 그 공간들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언제든 화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다. 화면내 공간과 동질적인 3차원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이런 외화면을 동질적인 외화면이라고 부른다. 앙드레 바쟁이 영화적 외화면이라고 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중요성이 있는 외화면은 이질적인 외화면이다. 이는 화면영역 바깥으로 동질적으로 펼쳐져 있는 3차원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이고 정신적인 4차원, 5차원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에 빈번히 등장하는 클로즈업 같은 경우 주인공은 그저 현실적인 옆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향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주인공의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사유가 향하는 다른 차원의 정신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외화면 공간의 경우 서사적 의미 내에서 납득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서서 사유하는 전체를 향해 열려 있다.

들뢰즈에 따르면 나쁜 영화는 현재만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 좋은 영화이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까지 관객이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액션 오락 영화를 보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들뢰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주인공과 더불어 그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듯 함께 긴장하고, 즐거워하고, 같이 몸을 움찔거리며 온통 정신을 집중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그 모든 것은 함께 끝난다. 영화에 대해 더 생각하거나 음미할 것도 없고, 런닝타임 이전이나 이후의 인물의 삶 따위는 더 이상 관객의 관심사가 아니다. 더 생각할 여지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스트레스 해소 잘했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영화, 감동적인 영화를 보았을 때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 영화가 끝나도 그 여운이 오래 남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타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좋은 영화는 보이고 들리고 말해진 것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과 그에 연결된 관객의 사유와 삶, 그 모두를 포함한 거대한 삶 전체를 향해 열리게 되는 것이 바로 비정상적인 프레임의 다른 기능, 이미지의 다른 방식의 독해가 의미하는 바이다.

의미작용과 더불어 그를 넘어서는 감각적 사유까지 전달할 수 있게 하는 프레임은 쇼트로부터 따로 떼어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모든 이미지, 모든 쇼트에는 프레임이 전제되어 있고, 모든 프레임은 언제나 쇼트에 동반된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프레임만을 독립적으로 논의해 보았다. 하지만 프레임은 앞의 논의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영화 전체와의 관련성 하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쇼트, 몽타주와 상호 전제된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프레임이 제공하는 시각적 의미작용과 감각적 사유의 가능성은 영화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사유하는 하나의 기본적인 방식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번역자 : 김남우 (정암학당)

[연재를 시작하며 :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이 출간된 지 500년이 되었다. 이를 새롭게 번역하여,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현재 권위 있는 라틴어 원문은 1979년 암스테르담에서 편찬된 <에라스무스 전집 opera omnia Desiderii Erasmi Roterodami> 제 4편 제 3책이다. 지금 널리 읽히고 있는 <우신예찬>의 우리말 번역들은 우리 인문학의 서양고전 이해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문학전집으로 시장을 장악하려는 거대 출판사들의 경쟁 때문에, 편집자들의 침묵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번역들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우신예찬>은 칭송 연설문이다. 연설자는 우신 (愚神)이며 따라서 어리석음의 신 스스로가 자신을 칭송하고 있다. 자화자찬은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그래서 더욱 우신에게 어울린다. <우신예찬>을 이해하는 주요개념어는 ‘어리석은 현명함’이다. 현명하다는 명성을 허울 쓴 어리석음은 허다하다. 이런 것들을 우신은 자신의 업적으로 나열하며 스스로를 칭송한다. 따라서 <우신예찬>은 풍자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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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에 우신이 등장하여 이제부터 자신이 연설을 하겠다고 말한다. 일인칭 ‘나’는 우신을 가리키며 우신은 여성 신이다.)

이제 본론으로 말머리를 돌리겠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내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어떤 별칭을 덧붙여야 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자들’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신이 신자들을 호명하는데 이보다 더 나은 별명이 있겠습니까? 각설하고 내가 어떤 핏줄에서 생겨났는지가 여러분에게나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이에 나는 무사이 여신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나의 아비는 카오스도 아니요, 오르쿠스도 아니요1), 사투르누스도 아니요, 이아페토스도 아니요2), 그런 쉬어빠지고 늙수그레한 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내 아비는 풍요인데, 물론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반대하고, 더 나아가 유피테르도 분노하겠지만, 이분이야말로 바로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입니다. 내 아비가 고개를 끄떡이기만 하면, 예나 지금이나 신성한 것이나 세속적인 것이나 뒤죽박죽 모든 것들이 뒤엉키고 맙니다. 내 아비는 자신의 뜻에 따라 전쟁, 평화, 국가, 의회, 재판, 민회, 결혼, 계약, 동맹, 법률, 예술, 축제, 엄숙,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만사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이나 모든 일을 주재합니다. 내 아비의 재물이 없었다면 시인들이 신성을 가졌다고 노래한 수많은 신국 (神國)의 백성들은 고사하고, 좀 더 과감하게 말하자면, 선택받은 위대한 신들마저3)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혹은 존재한다손 결단코 찬밥이나 다름없는 형편없는 대접을 받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누군가 내 아비를 성나게 만든다면, 설령 팔라스일지라도 그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내 아비에게 재가를 받은 사람이라면 번개를 던지는 위대한 유피테르의 목에 밧줄을 걸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가문과 혈통에서 태어났음을 자랑으로 여긴다.’4) 그런데 유피테르가 성깔 있고 험상궂은 팔라스를 낳을 때처럼 그렇게 내 아비는 나를 제 머리에서 끄집어내지는 않았는바, 실은 매력적인 만큼 모두들 가운데 제일 명랑한 요정인 ‘청춘’으로부터 나를 얻었습니다. 내 아비는 저 유명한 절름발이 대장장이가 태어날 때처럼 슬픔5) 가운데 그녀와 결합한 것이 아니며, 이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인 일이었는바, 우리 호메로스의 말마따나 ‘사랑의 동침’ 가운데 결합하였습니다. 풍요가 나를 낳았으되, 여러분은 내 아비를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요와 혼동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 아비는 당시6)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요처럼7) 이미 곧 관에 들어갈 만큼 기력은 쇠잔하고 앞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시력마저 미약해진 분이 아니었으며, 아직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건장한 청년으로 열정에 달아올랐답니다. 이는 내 어미 ‘청춘’ 때문이었으나, 물론 신들의 잔치에 참석하여 누구보다 많이 마셨고 어느 것보다 독하게 마신 신주 (神酒) 탓이기도 했습니다.8)

<중간생략 : 우신은 자신의 탄생장소에 관해 언급한다.>

나는 크로노스의 아드님이 염소를 유모로 두었던 것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두 명의 아리따운 요정들이 젖 먹여 나를 키웠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바쿠스의 딸 ‘만취’와 판의 딸 ‘무지’였습니다. 이 둘을 여러분은 나를 수행하는 일행들과 하인들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랫것들의 이름을 여러분이 알고자 하신다면, 하늘에 맹세코 여러분은 오로지 희랍어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쉽게 구분할 수 있는바, 눈썹을 치켜뜨고 있는 아이는 ‘자아도취’입니다. 여기 눈웃음을 지으며 연신 손뼉을 치고 있는 아이를 여러분은 보실 터인데, 이 아이의 이름은 ‘아부’입니다. 여기 꾸벅거리며 반쯤 졸고 있는 아이는 ‘망각’이라고 불립니다. 여기 깍지를 끼고 양쪽 팔꿈치를 괴고 있는 아이는 ‘태만’입니다. 여기 장미꽃으로 다발을 엮어 두르고 온몸 여기저기에 향수를 바른 아이가 ‘환락’입니다. 여기 불안하게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아이는 ‘경솔’이라고 부릅니다. 여기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혈색 좋은 몸뚱이를 가진 아이는 ‘음란호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 계집몸종들과 더불어 여러분은 두 명의 머슴들을 보실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광란축제’라고 부르며, 다른 하나를 ‘인사불성’이라고 부릅니다.9) 나는 말하거니와, 이와 같은 하인들의 충실한 도움을 받아 나는 세상만사가 내 명령에 따르도록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군주들 또한 내게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방금 나를 낳은 부모, 나를 키운 양육자들 그리고 나를 따르는 일행들에 관해 들었습니다. 이제 감히 여신이라는 이름을 도용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분 귀를 기울여 들어주시기 바라오니, 내가 얼마나 커다란 이익을 신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가져다주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널리 내 신적 역량이 미치고 있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혹자가 분명히 적어놓은 바, 죽을 운명의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신이라는 증거일진대, 포도주 혹은 식량 또는 유사한 어떤 유용한 것들을 인간들에게 가져다 준 이들을 신들의 의회에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만백성들에게 온갖 것들을 넉넉히 나누어주는 내가, 그런 내가 어찌 모든 신들 가운데 최고신이라는 이름을 얻고 또 그렇게 여김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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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계의 신이다.

2)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아버지다.

3)올륌포스 신들을 의미한다.

4)호메로스, <일리아스> 제 6권 211행.

5)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정당한 결혼관계로부터 태어난 자식이다. 이에 비해 ‘사랑의 동침’이라는 말은 흔히 정당한 결혼관계 이외의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슬픔’은 정실부인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6)우신의 어미인 ‘청춘 Iuventa’(희랍어로는 Neotes)은 키케로에 따르면 신들의 잔치에서 잔에 술을 따르는 신이다 (키케로, <투스쿨룸의 대화> 제 1권 26, 65). 하여 ‘풍요’와 ‘청춘’은 신들의 잔치에서 서로 만났으며, 여신은 ‘풍요’를 위해 넘치도록 술을 따라 주었을 것이다.

7)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작품 가운데 <부 (富)의 신 Plutos>이 있는데, 희랍어에 비추어 우신의 아비인 ‘풍요’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8)이 이야기는 플라톤 <향연>에서 소개된 ‘에로스’의 출생 신화와 닮아 있다. 에로스의 아버지는 ‘풍요의 신’이며, 어머니는 ‘빈곤의 여신’이다. ‘빈곤의 여신’은 신들의 잔치에 구걸하러 왔던 차, 신주 (神酒)에 취해 잠이 든 ‘풍요의 신’과 결합하여 에로스를 낳는다.

9)하인들의 이름에 붙어 있는 희랍어 이름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아도취 philautia’, ‘아부 kolakia’, ‘망각 lethe’, ‘태만 misoponia’, ‘환락 hedone’, ‘경솔 anoia’, ‘음란호색 tryphe’, ‘광란축제 komos’, ‘인사불성 negretos hypnos’.

내 마음 속의 ‘아Q’를 보내며 [책 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보령 책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연재를 시작하며

박종택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

아큐(阿Q)형!

오늘 날짜로 형에게 이별을 고하고자 편지를 씁니다.

형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중국 루쉰(魯迅) 선생님의 소개로 정식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그 후로 형과의 우정 어린 만남은 친밀성을 넘어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 형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것은 ‘책익는 마을’에 이주하게 된 때부터였습니다.

아Q형,

오랜 동반자적 우정을 나누던 내가 갑자기 이별을 고하니, 분하고 괴이함을 넘어서 나의 속내와 ‘보령 책익는 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저도 우리 지역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발적인 독서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들이 모여서 책을 읽다니 별일이다’ 놀랍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책익는 마을’에 가입하기 전부터 매달 ‘독서토론회’에서 선정된 책을 한 권 더 사서 내미는 보령소방서 강윤규 계장의 권유가 부담스러울 즈음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의 저자 이권우님을 모시고 열린 ‘저자초청토론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회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원진호 내과원장이 시민 누구나 참석가능하다기에 저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독서량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올바른 책읽기가 아니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으며 독서토론이 편견을 타파할 수 있는 시선형성에 좋다는 말씀을 듣고서, 가끔씩 욱하는 성격과 보수적 성향, 술에 취하면 극우로 돌변하는 특이 체질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저자초청토론회’를 참관 했었지만 ‘책익는마을’에 가입을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시절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수업을 빼먹는 장기를 갖고, 단 한 번도 세미나에 참석한 사례가 없었던 역사적 사유로 토론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영업을 하다 보니 사업설명회나 브리핑, 워크숍, 심포지엄, 포럼 등은 나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지 못하며 살아온 관계로 독서토론에 대하여 막연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자초청토론회’로 잘못 인지하고 참석했던 ‘독서토론회’에서 큰 재미를 찾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성인들의 책읽기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만 집중하게 되고 기존에 형성된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책 내용을 재단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습니까? 형님의 ‘정신승리법’도 그렇지 않습니까?

‘책익는 마을’에서는 특정 분야에 치우친 개별적 독서를 넘어 서기 위하여 각 모둠 별로 정회원의 순서를 정하고 다음 달 발제자가 자신이 선정한 책을 정회원 모두에게 선물하고 한 달 후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설정한 의제로 독서토론회를 진행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즈음하여 제 심신상에도 변화가 왔습니다. 신문구독을 끊고 TV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 어언 15년에, 책을 구매 해 본 것이 10년을 넘어선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 달라는 아이가 생긴 것입니다. 혼자 사는 阿Q형님 생각에 결혼을 미루었는지 나의 처지나 능력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었는지 마흔세 살의 늦은 나이로 2006년 초에 결혼하여 그해 12월에 얻은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나도 하기 싫었던 것을 시키는 아버지가 되지 말고, 독서를 통하여 나 스스로 자아존중감을 갖고 아들을 존중하며 아들과 함께 걷는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궁벽한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대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볼 때 덮어 둘 수 없는 위기감과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내가 지향해야 할 진실한 삶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또 내가 칠팔십의 나이에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책익는마을’에 전입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익는마을’에 전입해서도 3개월간의 준회원 기간은 물론 정회원이 되고나서도 ‘책익는마을’ 카페에 글 한 번 못 올렸던 것이 나의 타고난 성격이었겠지만 阿Q형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형님과 저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되었고 저에게 첫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형님과의 전투에 나서기 위하여 10년 만에 책을 주문하였습니다. 토론의 그 날을 기다리며 저는 제가 지니고 있던 무기를 갈고 다듬고 신식 무기 구입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날의 전장에서 멀리 서구에서 저를 도우러 달려온 마키아벨리의 도움으로 소규모의 승전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전투 이후 저는 희망에 들뜬 마음으로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카페에 글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두 번째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최후 결전을 위하여 형님의 일대기를 다룬 『아Q정전』과 『삼성을 생각한다』 두 권의 책을 연관 지어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저마다의 아Q와 맹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만 형님을 내 마음의 영지 밖으로 몰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형님 측의 세력이 확연히 약화 된 것은 형님도 인정할 것입니다. 지난 8월 대천한화콘도에서 펼쳐진 ‘보령인문학페스티벌’에서 강사로 모신 12분의 교수님과 방명록에 성함 남겨 주신 180명의 우군 덕택에 1박 2일의 전투에서 아Q형님의 힘은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물론 형님의 힘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힘이 강성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에 강력히 저항하고 형님을 극복하기 위하여 작년 12월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카페에 글을 남기기 시작한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운영위원도 아닌 저에게 촌장의 자리를 마련해준 속사정이야 지금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내 마음속에 웅크린 악마들과 비루한 노예들, 패배감에 물든 전사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취임을 하였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보령 책익는 마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열성을 다해 온 황선만 전 촌장, 운영위원을 비롯한 마을 선배님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마을 일을 살필까 합니다.

무능한 저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위하여 각 모둠별로 도움장이 신설되었습니다. 토론문화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운영위원회에서 계획한 사업을 실무적으로 진행할 분들이 모인 것입니다. 식상해 질 수도 있는 독서토론회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고, 초청 저자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내일을 함께 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제부터 마을 분들은 <e시대와 철학>이라는 웹진에, 선별된 한 편의 글을 송고해야 하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전해 받은 후 서평을 쓰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유월이 오면 2박3일의 일정으로 대천해수욕장에서 이진남 교수님이 이끄는 ‘철학온’과의 연합MT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연합MT는 ‘철학온’ 회원들과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들이 섞여서 저자초청토론회와 독서토론회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철학온’에 철학을 전공하신분이 많다는 이야기에 긴장하는 회원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논리의 철학은 부족할지라도 부딪히며 살아온 삶의 철학이 있다”, “좋은 문학작품은 변화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믿음을 준다.”고 하셨던 이권우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작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8월이 오면 1박2일간 대천해수욕장에서 한여름의 ‘인문학페스티벌’을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도움장들의 행사진행과 운영위원들의 후원과 열기가 넘치는 마을 분들의 열정으로 보령시의 열린 시민들과 함께 또 멀리서 찾아주시는 분들을 모시고 책, 정, 술을 함께 하겠지요.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서평/특별기고]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이 책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현대 정신의학이 다양한 문화의 자생적 문제해결능력을 무시하고 미국문화의 잣대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태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거식증, 외상후장애증후군(PTSD),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서구에서 발견되고 분류되고 관리되어 온 대표적 정신질환이 홍콩,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일본에서 퍼져나가는 양상을 세심히 관찰해 보여준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토착문화의 자생력을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홍콩과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어서 특히 관심이 간다.

아마 현대의학이 인류를 참혹한 질병의 고통에서 구해준 은인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질병 판매학>,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의 주머니를 털었나> 등 현대의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기는 했어도 의학이 인류구원의 보루라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아직 굳건하다. 이 책들은 제약회사가 처방권을 가진 의사를 합법적으로 또는 탈법적으로 매수해 불요불급한 처방을 남발하도록 조장한다고 폭로한다. 실제로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제약회사가 의사나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리베이트의 문제가 여러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 있었던 의사들의 파업은 의약분업을 통해 약품의 유통마진을 줄이려는 정부와 의사집단의 이해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문제를 이렇게만 보면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조정과 합의가 해결책이다. 실제로 의사파업은 힘에 따라 이해관계를 재분배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를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 찾아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축적해 가는 삶의 지혜, 즉 공동체마다의 문화다. 그런데 미국의 의사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낸 정신질환분류(DSM)에는 서양과 다른 세계관과 삶을 담을 공간이 없다. 따라서 서양의 정신의학은 서양인의 삶에서 형성된 정서와 문제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의 삶을 재단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거식증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날씬한 외모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이 이 병의 원인이라는 서양식 설명은 실제 사례와 거의 들어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DSM은 특정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증상을 포함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화병’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서양의 교향악에 국악 가락 한 소절을 집어넣는다고 그 음악이 국악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문화적 불협화음에 관한 것이다.

문제를 이해관계보다 더 큰 문화의 틀 속에서 찾아낸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로써 우리는 의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의학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대두된 여러 학문 중 하나인 의료인류학의 접근법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아서 클라인만은 대만에서의 정신병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길을 열었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서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화적 폭력일 뿐 아니라 현지민을 새로운 의료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어 사회경제적으로 수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식증과 정신분열병의 사례가 주로 문화적 폭력에 대한 것이라면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의 사례는 주로 문화적 폭력이 경제적 수탈의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은 각각 서구식 훈련을 받은 심리상담사와 거대 다국적 제약기업의 큰 시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현지인들을 서양인처럼 앓게(미쳐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처럼 미쳐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현지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시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인들의 몸과 마음이 되어버린 그들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반성의 부재다. 이 책의 초점은 전자에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도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것은 의료인류학이 갔던 경로이기도 하다. 최초의 의료인류학자들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식민지와 후진국에서는 건강에 관한 각종 미신과 토착신앙 때문에 서양의학이 잘 수용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위해서는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연구해야만 했다. 그런데 후진국의 신앙과 거기에 바탕을 둔 토착의학을 연구하다보니 비교분석을 위해 같은 방법으로 서양의학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문화적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서양의학의 전제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학의 보급을 위해 시작된 연구가 이제는 오히려 서양의학의 문제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이다. “다른 문화의 믿음들을 깊이 탐구하면 우리 자신의 문화적 편향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정신의학이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내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지만, 거꾸로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서양의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상에 대한 과도한 의료화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자동적으로 습득된 문제해결 능력을 무력화하여 오히려 병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프랑스의 정신의학이 식민지 알제리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양상을 비판한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진단명을 쓰지 않지만 50대 이상 세대라면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이라는 서양에서 발명되고 수입된 증세에 익숙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증상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은 우울증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고 아마 그 발병을 더 촉진시켰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건에서 생존한 승조원에 대해 실시했다는 외상후장애증후군 치료는 과연 어떤 문화적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혹시 치료를 빌미로 틀에 박힌 가치를 주입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 반성 외에 우리들 자신의 본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문화에 길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 책은 이 점을 상기시켜 준다. 대중은 문화적 권위의 지지를 받는 틀 속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 문화적 권위가 교회였지만 근대 이후 급속히 과학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본과 소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히스테리 환자들은 이 분야의 문화적 권위였던 의사 샤르코가 진단하고 분류하고 기술한 그대로의 증상을 겪었다. 오늘날의 소년소녀들은 TV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외모와 행동과 소비패턴을 규범으로 삼고 닮으려 한다. 그래서 성형과 미용과 다이어트의 열풍이 분다. 이것은 “무의식이 감정의 고통을 당대에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의 결과다. 이렇게 문화적 기대와 개인적 경험이 상호 작용하고 우리의 생물학적 몸은 문화적 경험과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몸과 문화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생물-문화적(Bio-Cultural) 현실이다.

21세기의 문화적 권위인 자본은 바로 그 생물-문화적 현실을 파고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자율적 문제해결 노력이 아닌 약품의 소비가 규범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확대되면 모든 사람이 그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의 구성요소가 된다. 책 속에 인용된 애플바움의 말처럼 “완벽한 건강이라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중에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가진 자유의 도구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고삐를 넘겨주고 말았다. 과학의 객관성, 의료의 윤리와 공정성,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맹세를 스스로 지키는 한에서 의학에 자율성을 부여할 특권은 이제 그들 손에 있다.”

의료인의 전문가로서의 자율성과 대중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환자가 의약품의 소비자가 아닌 자기 건강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을 바꿀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 책이 의료와 관련된 모든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자거라투스트라, 삼성 미술관 리움에 가다 [자거라투스트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MEGA 공동대표)

니체 아부지, 삼성 미술관 리움에 가보셨어요?

나야, 독일 촌구석에 사는데, 어찌 그런 데를 다 가보겠냐? 니는 천방지축으로 쏘다니니 그런 데를 다 갔다 온 모양이구나.

예, 아부지. 이번이 두 번째예요.

자거라투스트라야, 니도 삼성 국물을 좀 마시려고? 아서라, 니 차례까지 오겠냐?

아니 아부지, 그래도 제가 아부지 얼굴에 먹칠하겠어요. 처음에는 건축 공부하러 갔었어요. 그때 한참 건축 공부하고 있을 때인데, 글쎄 삼성 미술관에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이 집결되어 있다 하더 라고요.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직접 가보기로 했죠. 그런데 그때에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어요. 미리 예약하고 와야 한 대요. 그래서 아이고, 내 팔자에 재벌 미술관에 들어가 보겠냐 하고선 돌아섰지요.

그럼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갔더냐?

예, 신통하게도 이젠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있대요. 김용철 변호사가 무언가를 폭로한 이후 삼성한테 유일하게 변한 게 그거라고 하더 라고요. 재벌 미술관이 서민에게 개방된 거죠.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어요. 솔직히 좀 떨렸어요. 제가 입성이 형편없으니, 혹 그 때문에 입장을 거부당할까 봐서 말이요. 다행히 집어넣어 주더 라고요.

그래? 그 안이 어떻더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밖에서 보면 세 개 건축이 있거든요. 그게 안으로는 이어져 있어요. 아부지도 들어서 아시겠지만 전부 세계적인 건축가예요. 이런 사람들을 이어놓은 것은 삼성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하겠죠. 우선 이태리의 포스트모던 건축가 마리오 보타, 들어보셨어요?

야, 인마, 자거라투스트라야, 아비는 건축에 관심이 없다. 아비는 음악을 좋아하지. 그런데 음악에 비하면 건축이 어디 예술이냐? 그건 그저 물질 덩어리에 불과해. 그래서 헤겔도 건축을 예술 중에 제일 천박한 예술로 꼽지 않았니?

역시 아부지는 아직 19세기이군요. 요즈음 건축이 얼마나 찬란한데요? 건축을 영화에 비교하는 글도 있어요?

예끼, 이 놈, 지가 써놓고 슬쩍 자랑하다니. 그런데 포스트모던 건축이라는 게 무어냐?

니체 아버지, 그건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마리오보타만 가지고 말한다면, 주변이나 역사, 문화의 맥락을 고려한 건축이라는 거죠. 모더니즘은 이런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든요. 모더니즘 건축은 자기완결성을 추구했었지요.

그러면 마리오 보타가 삼성 미술관에서 고려한 맥락은 무어지?

글쎄요. 아부지, 그게 아리송해요. 좀 억지로 연결시키자면 미술관이 위치한 남산의 성곽의 형태를 건물의 지붕 선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실제로 보이는 것은 성곽이 아니라 거대한 하이야트 건물이죠. 시꺼먼, 흉측한, 남산을 파괴하는, 박정희 시대 특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건물이죠. 더구나 미술관 지붕 선에서 발견하는 것은 꼭 한국적인 성곽이라 할 수는 없고, 로마적인 성곽처럼 보여서, 전체적으로 마리오 보타가 이태리에서 지은 건축을 그대로 하나 수입한 것처럼 보입니다.

쯧쯧, 뭐 이렇게 생각하려무나. 차용을 통해 패러디한 거라고.

뭐, 어쨌거나, 겉모습은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니, 한 가운데 로톤다라고 있어요. 뒤집어진 원추형 로톤다인데, 그 주위로 계단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창문으로 아래쪽이나 위쪽을 쳐다보는데 그런 체험이 운동감을 주었어요. 건축이 시각이 아닌 감각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증거지요.

원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하여튼 아부지, 그 외에도 해체주의 건축가 렘 쿨하스의 건축도 있어요. 그는 네덜란드 사람이죠. 삼성 미술관에서 가장 앞에 있는 건축물이 그가 지은 거죠. 밖에서만 보면 저건 나도 짓겠다 싶었는데, 그래서 별 감동을 못 받었죠. 그런데 이번에 안에 들어가 보니 아, 역시 해체주의자구나 하고 감탄했어요.

궁금하구나, 그게 뭐지?

건물 안에 또 건물이 있는데, 그 속에 있는 건물은 잘 보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부양하는 돌덩어리, 어때요? 멋있죠? 물론 착각을 이용한 거죠.

거 참 재미있구나.

그래요. 건축이란 게 원래 무게의 예술인데, 그걸 전복시킨 거죠. 하지만 솔직히 기분 나쁜 게 렘 쿨하스가 지은 서울대 미술관 건축(관악 캠퍼스)하고 이 건축이 너무 닮았거든요. 두 건축이 연대도 비슷하게 지어졌어요. 건축의 다양성과 깊이는 서울대 미술관 건물이 더 탁월하죠. 그래서 서울대 미술관 짓다 남은 아이디어로 삼성 리움 건축을 지은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렘 쿨하스나 삼성 미술관 관계자가 들으면 팔짝 뛸 이야기죠.

얘야, 자거라투스트라야, 확인할 수 없는 비난은 삼가 거라.

예, 죄송해요. 실제로 그럴 리가 있겠어요. 다만 그런 인상을 받는다는 거죠.

하여튼 조심하래도.

예, 알겠어요. 그리고 니체 아부지, 장 누벨의 작품도 있어요. 장 누벨의 이름이 나오면 건축을 아는 사람들의 가슴이 황홀해지죠.

장 누벨이라? 그는 어떤 스타일로 짓는데?

그의 건물은 전체적으로는 모더니즘의 본래적인 입장으로 돌아간 듯해요. 원래 모더니즘 건축이 처음 출발할 때(1920년대)는 과학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통해 인상적인 표현을 추구했거든요. 나중에(1940년대) 모더니즘은 기능주의로 타락하고 말았죠. 특히 장 누벨은 건축물의 입면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운동성을 추구했어요. 그런 점에서 초기 모더니스트들이 운동성을 추구했던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예를 들어 파리에 있는 아랍 문화원 건물의 입면에는 수많은 카메라 조리개가 모여서 한편으로는 아랍식 전통 건물의 타일의 형태를 만들죠. 또 다른 한편에는 이 카메라 조리개가 빛의 양에 따라서 조였다가 풀어지면서 건물 안에 찬란한 빛의 예술을 전개하죠.

그러면 삼성 미술관 건물에는 장 누벨이라는 사람이 어떤 건물을 지었지?

마리오보타의 건물 옆에 있는 철판이 녹슨 건물처럼 보이는 건축을 그가 지었어요. 밖의 모습은 기둥을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사각형 입방체로 만들어 인상적이기는 하죠. 그런데 이 비슷한 건축을 그는 어디 딴 데 또 한 번 지어 놓았더 라고요.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외면적인 모습은 너무 비슷해요.

음, 좀 실망스러운데..

세월이 지나면 녹슨 것이 진행되니까 입면이 바뀌죠. 그런 점에서 운동성을 추구한다는 장 누벨의 태도가 잘 표현되었다고도 하겠어요.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정경이 하나 있어요. 건축의 모서리가 유리 창문으로 되어 있어서 다가가 보았죠. 그랬더니 놀랍게도 맞은 편 옹벽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더 라고요. 녹슨 철근으로 상자를 만들어 옹벽을 따라 축조해 놓았어요. 거칠고 황량한 느낌을 주죠. 그런데 그 앞에 살아있는 대나무를 심어 놓았어요. 그 대비가 동양의 선적인 경지를 보여주는 듯해요.

오호, 자거라투스트라, 니는 행복했겠네? 그런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체험했으니 말이야.

그런데 말이에요. 아부지, 개별 건물들은 틀림없이 세계적인 작가의 탁월한 작품인데, 문제는 그것들이 모여 있으니 뭔가 답답한 거죠.

자거라투스트라야, 무슨 말이니?

그래서 제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답답함의 정체를 풀기 위해 고민해 보았죠. 그리고 이런 결론에 이르렀어요. 이건 너무 교과서적이잖아. 자 보자, 모더니스트 장 누벨, 포스트모더니스트 마리오 보타, 해체주의자 렘 쿨하스. 그러면 교과서에 나오는 순서 그대로이네. 한 가지가 빠졌는데 그게 뭐지? 아, 초현실주의가 빠졌군. 이렇게 생각하면서 밖을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초현실주의적인 조각 작품이 하나 거기 버티고 있더 라고요.

그게 뭐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마망(엄마)’인데, 거대한 거미이죠. 이건 설명 안 해도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성적인 상징이라는 것을 잘 알겠죠. 그러니 완벽하죠. 삼성미술관이란 건축사의 교과서예요. 아주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이 좋아하는 교과서 그대로이죠. 니체 아부지, 단정하고 바르게 살아가지만 답답하고 고루한 모범생들 말이에요. 삼성 리움 미술관은 그런 학생이예요. 그런 학생들은 모든 것을 잘 알지만 다만 느낌은 없죠.

자거라투스트라야, 그걸 ‘삼성’이라 한단다. 너도 KS마크라면서, 그러니 ‘삼성’ 아니냐?

 

구보씨 계속 소통을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문성원(부산대, 철학)

자연은 정녕 불인(不仁)한가. 천지불인(天地不仁)의 글귀를 되새겨보게 하는 요즘이다. 하기야 인(仁)이건 불인(不仁)이건, 인간사의 문제고 인간의 생각이지, 자연이야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더라도 우리는 알아서 자연을 섬겨야 할 처지다. 그 품에 깃들여 사는 건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방적 소통관계라 할 만하다. 어쩌면 소통이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소통이란 서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주체가 있을 때라야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그런 의도적 주체로 여길 수 없다면, 자연과의 소통이란 소통이라는 말의 비유적 확장에 불과할 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추구(芻狗)로도 여기지 않는다. 지푸라기 개 운운하는 것 역시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 자연에 대한 섭섭함이 배인 인간의 반응일 뿐이다. 물론 이런 반응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존 그레이(John Gray)라는 유럽의 학자는 Straw Dogs라는 책을 지어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비판했다(이 책은『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지푸라기 개, 추구(芻狗)의 함의는 무엇보다 이렇게 인간의 겸손함을 깨우치는 데 있는 것 같다.

(일본 대지진의 참상)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자연과의 소통을 자연을 매개로 한 인간의 소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하다. 자연을 통한 인간들 사이의 소통이거나 인간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자연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자연을 염두에 두고 삶의 태도를 다져야 한다. 우리의 하찮음을 자각한 위에서 문명의 위세를 뽐내더라도 뽐내야 하지 않겠는가. 지진은 막을 길이 없더라도, 지진의 위험을 염두에 두고 건물도 짓고 산업시설도 만들어야 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위험이 발생했다면, 거기에 맞추어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 대책마저 뛰어넘는 재앙이 닥쳐온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거야 할 수 없는 일이다. 페름기에 있었다는 엄청난 기후변화나 백악기말에 있었다는 유성 충돌과 같은 사태가 닥쳐온다면, 현재의 인간 능력으로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태를 지레 우려하여 미리 손을 묶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겸손을 넘어서는 짓이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다시 짚어볼 만한 것은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라는 식의 발상이 갖는 한계다. 맑스가 젊은 시절부터 내세웠던 이 명제는, 윤구병 선생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만드는 문명’의 소산이다. 워낙 만든다는 것은 일단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활동이기에, 이런 모델에 따르는 사고방식은 자칫 폐쇄성과 전체성을 띠기 쉽다.

‘자연의 인간화’가 만듦의 능동성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자연화’는 자연에 의한 인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이고 열린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연이란 인간에 의해 변형된 자연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교호작용은 결국 인간이 주도권을 쥔 활동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한 한, ‘인간의 자연화’는 인간이 환경을 매개로 스스로의 본성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귀결에 이르게 된다. 크게 보면, 인간이 세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세계를 스스로 의식한다는 서양 근대 문명의 틀, 이른바 자기제작과 자기의식의 도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구보씨는 아직도 맑스의 『경제학 철학수고』며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을 처음 읽었을 때의 흥분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 나이에 그 내용은 충격이고 매혹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이제 막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맑스의 테제들은 우리가 이르지 못한 합리적 사회의 이상(理想)과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구보씨가 이제 와서 보니 맑스가 틀렸다거나 과거 맑스를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사상이 있는 법이며, 그런 점에서 맑스의 사상은 나름의 역할을 한 셈이다. 어떠한 사상도 자기 시대를 넘어설 수 없다면, 맑스의 사상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만드는 문명’이 한창이지만, 그 한계에 대한 지적은 이미 진부해졌다. 현대 철학의 주요한 흐름이 이 만드는 문명의 자기폐쇄성을 공격해온 지도 오래다. 목적을 설정하고 설계도를 만들고 수단을 마련하고 공정을 시작하여 제품을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큰 성과를 낳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모델을 일반화하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면에서 자연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 따지고 보면, 사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그러나 제작 또는 생산이 모델로 자리 잡은 상황에선,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이 모델에 따라 해석되고 처리된다.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나 이데올로기, 지식도 생산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재료에 생산수단을 가해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과정은 각 영역마다 다르겠지만, 그 기본 형식은 비슷하다. 사람도 교육을 통해, 훈련을 통해, 일정한 형태로 생산되는 생산물로 취급된다.

물론 모두가 균일하지는 않다. 공산품에도 여러 규격과 품질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여러 종류와 등급이 있기 마련이다. 때로 불량품이 나오는 것처럼 일탈적인 사람들도 나타난다. 그런 불량품을 처리하는 곳도 있다. 감옥이나 병원 따위가 그런 곳이다. 여기에도 나름의 생산과정이 작동한다.

이런 식의 ‘만드는 문명’에서는 역사도 인간의 생산물로 취급된다. 그 생산을 계획하는 것이 꼭 인간의 개별적 의식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개개의 인간이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손’이나 ‘일반의지’일 수도 있고, ‘시대정신’이나 ‘이념’일 수도 있으며, ‘역사법칙’일 수도 있다. 어떻든 이 생산의 틀이 작동하는 것은 인간 집단에 의해서다. 그러니, 이 구조를 잘 파악만 한다면, 결과를 예상할 수도 있고 그 과정을 앞당길 수도 있다. 역사가 정말 일종의 만들기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사실, 근대 이후의 세계에는 이런 모델이 실제로 적용되어 온 셈이다. ‘만드는 문명’은 ‘기르는 문명’을 압도하고 잡아먹었다. 이제는 농작물도 가축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소통은 이 생산 과정에 종속되어, 그 수단의 일부로 취급받는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이런 모델을 잘 따르는 모범적인 사례다. 만드는 공정, 그것도 급속한 만들기의 훈련 속에서 만들어진 CEO 대통령을 내세워, 만들기로 온 땅과 물을 덮는 데 여념이 없다. 소통은 이런 만들기의 효율에 봉사하는 한에서만 유의미한 것으로 대접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생산이 놓이는 곳에는 언제나 그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그 생산을 조건 짓는 바깥이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아무리 이 바깥을 차단하거나 무시하고 싶어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생산의 모델이 설정한 폐쇄성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다.

현대 철학은 이런 생산의 모델이 불완전한 것임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모든 폐쇄적 체계는 불완전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애를 써왔다. 물론, 그 실질적 동기는 현실에서 드러난 생산 모델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환경 문제가 그렇고, 공장식 사회주의의 실패가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환경 문제를 단순히 관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잘못일 것이다. 그런 생각은 결국 자연을 우리의 통제 안에 놓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환경 문제가 생산의 단위를 좁게 설정하고 그 생산과정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 탓에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럴 경우, 이제는 그 단위의 범위를 넓혀 하나의 공장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더 나아가 하나의 지구에 이르기까지 생산이 작용하는 영역을 확장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맞는 생각일까?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지반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다시 고려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네 말은 우리가 ‘기르는 문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야?”

Y가 못 참고 마침내 끼어든다. 그만하면 오래 참았다. 구보씨는 이런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차피 우리는 우리가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지 않는가.

“아니, 꼭 그런 뜻은 아니야. 다만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지. 사실 그건 기르는 문명의 장점이기도 해. 사람들이 곡식을 재배하는 데 힘을 쏟으면서도, 그 곡식을 내가 만든 것이라고 여기진 않았잖아. 자연의 생장에 조금 힘을 보태고 이용할 뿐이라고, 그래서 결국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자연이라고 보았거든. 생각해 보면, 그게 옳은 태도 아닐까?”

“하지만, 구보야, 먹여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죽이기도 하는 게 자연이었지.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굶어죽고 휩쓸려 죽고 했던 것 아냐? 거기에 비하면 지금 형편이 훨씬 낫다는 건 분명해. 지진과 같은 재앙이야 예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는 거구. 아니, 어떻게든 지진 피해를 줄이고 있다는 면에서도 오늘이 낫잖아.”

“근데, Y야, 당장 원자력 발전소 문제를 생각해 봐. 나는 이게 단순한 관리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는 거야. 사람들은 흔히 원전 사고가 관리나 설비의 문제라고들 하지. 이를테면 미국의 드리마일 원전은 사고로 핵연료봉이 녹아내렸는데도 격납장치 덕택에 방사능 피해가 없었지만, 소련의 체르노빌은 그렇지 못했다는 거야. 그러나 지금 일본의 상황을 봐. 우리가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 그러니까 어떤 장치도 관리만 잘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위험하다는 거지. 이건 결국 철학의 문제고, 현실적으로는, 원전과 같은 생산물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구.”

“나도 원전은 너 못지않게 반대해. 그런데, 그건 위험한 면이 있는 줄 알면서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그것도 일부 사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건설하니까 반대하는 거야. 정말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면 원자력 발전소건 핵융합 발전소건 그런 걸 만드는 게 왜 문제가 되겠어? 근데, 구보 네 얘기는 좀 다른 것 같아. 그건 마치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자연을 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처럼 들려.”

“섬긴다구? 글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 또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라는 거야.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연에 의존해 산다는 점을 잊지 말자는 거지. 말하자면, 자연과 우리 문명의 비대칭성을, 자연의 우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야. 그게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이고, 정확히 말하면 자연에 대하여 우리가 우리의 태도를 가다듬는 소통방식이라는 얘기지.”

“자연의 우위? 겸손? 그런 게 과연 문제를 해결해 줄까? 그거 사실은 일종의 도피거나 무책임한 태도 아냐? 차라리 더 안전한 발전장치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거나 지진을 예측할 수 있는 연구에 진력하는 게 현실적이고 제대로 된 태도일 것 같은데… 구보야, 미안한 말이지만, 내겐 여전히 너네들 철학자 얘기가 좀 공허하게 들려. 이것도 소통 부족이나 소통의 잘못 탓이니?”

“…..”

“엥, 구보야, 또 그런 얼굴 하지 말고, 일단은 내 얘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지. 그게 네가 곧잘 말하는 대로 타자를 대하는 기본적 태도가 아니겠어? ㅎㅎ…”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삼우반, 2003[청춘의 서재]

윤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오웰이 이 책을 쓰기까지

영국인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6.25~1950.1.21)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 2010. 이하 『위건 부두』)에서 자신이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 ‘특권 계급 출신이지만 돈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론상으로는 상류층의 에티켓과 관습, 문화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영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류로서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살아야 하는’ ‘피곤한 신분’이었다. 또 자신을 ‘부르주아의 완충재 같은 계급’이라고도 표현했다.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입학했다.

에릭이 이튼스쿨을 다니던 때는 1917년부터 1921년까지이다.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에릭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유례없이 혁명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위험한 진보 작가의 책이라 분류되었던 것들을 모두 읽고 자신을 막연히 사회주의자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정말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했고 노동계급이 인간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며 책을 통해서나 그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할 뿐이었지 실제로 그들 가까이 갈 때는 여전히 그들을 혐오하고 경멸했다고 고백한다. “돌이켜보건대 그 시절 나는 시간의 절반은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하는 데 쓰고 그 나머지는 버스 차장의 무례함에 분을 터뜨리느라 허비한 것 같다”(『위건 부두』, 191쪽)

이튼을 졸업했지만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았던 그는 1922년 미얀마(구(舊) 버마)로 건너가 5년 동안 ‘인도 제국 경찰의 일원’으로 일했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였다. 이튼 시절, 젊은이들에게 1차 대전 참여를 부추기기만 한 기성세대의 비겁함과 또 전쟁을 무능하게 지휘했던 노년층에 코웃음을 치며 기성세대가 내세우는 정통성과 권위에 반항을 했다지만 이튼에서 전수받은 대영제국의 국민이라는 교육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진 못했나 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도 식민지의 관료였다. 그러나 에릭은 – 수입이 많고 안정된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권층 노릇하기 쉬운 – 식민지의 경찰직을 선택하고 나서야 제국주의의 실상과 마주친다.

1927년, 휴가를 받고 영국에 도착한 에릭은 제국의 경찰 노릇을 그만하겠다고 결정한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직을 떨쳐낸 에릭은 희망했던 작가가 되기 위해 1928년 친척이 살고 있는 파리로 옮겨와 습작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미얀마에서 보냈던 시간들로 인해 괴로웠다.

“나는 5년 동안 압제의 일원으로 복무했고 그만큼 양심의 가책이 컸다. 잊히지 않는 숱한 얼굴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법정에 선 피고들, 사형수 감방에서 최후를 기다리는 죄수들, 나에게 윽박질당하던 부하와 냉대당하던 늙은 농부들……내가 느낀 죄책감은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5년 동안이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위건 부두』, 200쪽)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당시에는 실패만이 유일한 미덕처럼 보였다.”(『위건 부두』, 201쪽)

“그렇지만 나는 노동 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실업에 관한 통계를 본 적은 있었으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부끄러울 것 없는’ 빈곤도 최악의 수모를 당한다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위건 부두』, 202쪽)

“그들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였으며 그런 그들이야말로 내가 접촉하고 싶었던 부류였다. 그때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번듯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었다…… 일단 그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일 테고 그러면 죄책감을 얼마간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이 불합리한 생각인 줄은 당시에도 알았다.”(『위건 부두』, 203쪽)

파리의 접시닦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하 『밑바닥 생활』)은 바로 그 속죄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는 파리와 런던에서 경험했던 밑바닥 생활을 가족과 친지들이 알고 당황할까봐 필명을 만들어 1933년 1월 9일 책으로 엮어낸다. 전체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던 ‘조지 오웰’이란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유럽의 두 도시의 하층민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르포르타주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작품의 전반부는 1929년 늦가을의 파리 생활을 주로 반영했고 후반부 영국생활은 1928년 겨울에서 1931년 여름 사이에 그가 직접 체험하거나 간접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했다.”(『밑바닥 생활』, 286쪽)고 한다. 오웰도 이렇게 말한다. “거기 적은 일들은 재구성되긴 했어도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위건 부두』, 205쪽)

1929년 10월 뉴욕 증권 시장의 폭락 여파가 유럽에도 번져나갔다. 1931년, 영국에서도 대공황이 시작되었고 4명 중 1명이 실직자로 전락한다. 약 300만 명 정도가 실직했으며 실업수당으로 겨우 기아와 노숙을 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더불어 기아와 노숙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빈곤은 이웃의 일로 번져갔다. 암울하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오웰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의 생활을 파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침부터 욕설이 들리는 여관에 거처하면서 밑바닥 사람들의 언어와 일상들을 빠짐없이 체험한다. 겨우 연명할 일거리인 영어 교습이 끊기고 난 뒤부터는 그야말로 진짜 밑바닥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사귄 친구(보리스)의 도움으로 호텔의 접시닦이가 된다. ‘노예의 노예’라는 접시닦이 일은 부르주아의 완충재 역할을 하는 ‘하급 상류중산층’ 오웰의 계급적 이중성을 무너뜨렸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끊임없이 서두르고, 장시간 노동과 탁한 공기를 견디는 것이다. 그들은 이 생활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급료로는 한 푼도 모을 수 없고, 일주일에 60시간에서 100시간의 노동이 다른 일에 훈련할 시간을 남겨주지 않기 때문이다.”(『밑바닥 생활』, 102쪽) “그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놓는다.”(『밑바닥 생활』, 152쪽)

오웰은 밑바닥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살아있는 글들로 20세기 초반의 빈민층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하급 상류층으로 살았던 그가 최하류층을 겪으며 쏟아내는 빈민층의 생활과 노동 강도에 대한 비유들도 당시 노동 현장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오웰의 글은 무겁게 흐르다가도 번뜩이는 재치를 보인다. 오웰의 묘사에 흠뻑 빠져들어 마치 내가 호텔 지하 일터에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껄껄 웃게 하는 풍자와 해학들을 만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과장스럽거나 요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학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어느새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것이 오웰 글의 묘미인 것 같다. 노동자들의 고단한 생활과 환경이 곧 나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 진실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썰’>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와 같은 수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내 이웃에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꾸려가야 할 노동자이든,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이든 아직도 궂은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을 넘어서기 위해 첫차를 타고 막차를 기다린다. ‘언젠가는 나도 돈을 모으면……’

런던의 부랑인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런던에 있는 친구에게 직장을 부탁했던 오웰은 선천성 정신박약자를 돌보는 일이 생겼다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프랑스를 떠나지만 런던에 도착해서야 그 일이 어그러진 것을 알게 된다. 만일 지금처럼 그때도 휴대폰이 있었다면 부랑인 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위건 부두』에 따르면 오웰은 이미 부랑인 생활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 기간을 거쳤다.

오웰은 부랑인들과 일상을 함께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방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앞서 부랑인들과 섞이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묘사한다. 오웰은 자신의 상류층 언어 습관에 신경을 쓰면서 첫눈에 신분이 들통이 나 염탐자로 오해 받고 부랑인들에게 거부당할까봐 긴장했지만 그저 그들과 같은 차림새 하나만으로도 부랑인의 무리에 낄 수 있었다고 한다. “옷은 즉시 나를 새로운 세상에 들여놓았다.”(『밑바닥 생활』, 168쪽)

그렇게 즉시 부랑인이 된 오웰은 그들을 따라 구세군 구호소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최악의 구호소는 있지만 완전한 구호소는 어느 곳에도 없을 뿐더러 최소한을 갖춘 구호소도 없다는 사실을 영국민에게 알린다. 외부와 단절된 구호소 안의 참담한 환경들이, 일다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부랑인들의 허기진 현실이, 그에 따른 무기력함이 오웰의 ‘기록’을 통해 밝혀진다.

부랑인들은 부랑하도록 법률로 강제되어 있다. 구호소에는 하루밖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부랑인은 당시의 법률 상황에서는 부랑하든지 굶어죽든지 해야 하므로 부랑인이 된다. 오웰은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악폐들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제시한다. 런던에서 사용하는 속어와 욕설들을 따로 정리한 장도 있다. 또한 당시 파리와 런던의 물가까지도 잘 기록해 놓았다.

영국 사회의 한 면을 기록한 오웰의 이 책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구호소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일조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웰의 선택

지금 우리 사회는 창의성을 강조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을 발휘해야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과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지 않은 채 떠올린 상상력과 창의력은 허술할 뿐이다. 편견과 획일성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만일 오웰이 밑바닥 생활에 관해 글을 쓸 때 귀동냥에만 의지했다면 그렇게 생동감 있는 표현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현장 체험은 상상력과 글재주를 더욱 빛나게 했다. 호텔 작업장과 구호소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이유도 오웰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리스’를 친구로 사귀지 못했다면 속죄 행위의 하나로 여긴 접시닦이 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오웰이 속죄만 하고 그 상황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허울뿐인 공리주의(최대다수의 최대행복)를 낳은 나라의 극빈자 상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 혹은 보고 문학이라고 하는 ‘르포르타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과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이다. 오웰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란 주제를 선택하였고 노동환경과 노동자 의식의 관계, 상류층과 하류층의 의식 등을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당시의 사건과 사실들을 충실히 묘사한다. 오웰의 밑바닥 생활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자신의 빈곤한 상황에만 집중하지 않고 최하류층의 열악한 상황과 그들의 환경에서 비롯되는 비열함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를 견디게 하는 최소한의 경비들도 꼼꼼히 적고 있다.

르포계에서는 ‘취재력이 곧 표현력’이란 말을 한다. 이것은 현실의 모습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심층적으로 포착해야 한다는 것으로, 상상력만으로는 창의성을 키울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열정이다. 언제나 그릇된 압제자에 저항하고, 언제나 옳은 피압제자와 연대하려는 열정. 그 열정은 르포를 완성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마치 그것은 열정이 준비한 선물과도 같다.

오웰은‘실패만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성공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으로 간다. 그러나 끼니를 며칠씩 거르고, 접시를 닦고, 부랑인과 함께 떠돌면서도 상류층의 징표인 ‘h’발음을 없애지는 못한다. 하지만 노동계급과 최하층민에 대한 편견은 오웰에게서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하류층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열심히 일하지만 늘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질곡을 이해하게 된다.

진정한 르포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를 변화하게 하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밑바닥 생활』, 284쪽)

나는 오웰이 이후의 다른 작품 속에서도 파리와 런던에서 있었던 최하류의 생활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읽게 되면 속죄로 시작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런데 혹시 “왜 최하류층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사회, 한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의 의식주 상태를 보면 그 사회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