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거라투스트라, 오바마 빈 라덴을 만나다.[자거라투스투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MEGA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오바마 빈 라덴씨, 왜 그렇게 구석에 쭈그려 있지요? 한 나라 대통령이 말입니다.

당신 누구요? 난 오사마가 아니요, 오바마요.

아, 죄송해요. 난 짜라투스투라가 아니라 자거라투스트라요. 니체의 사생아. 들어 본 적이 있을 거요.

아니 금시초문이요.

그럼 멀지 않아 듣게 되겠지요. 주한 미국 대사관에 물어보시오. 대학교수치고 안식년을 미국으로 가지 않은 교수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나, 자거라투스트라요. 한국교수들이 왜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는 것인지,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오?

그야, 미국이 당신네 한국 교수들의 교수자격증의 고향이니, 안식하기에 딱 맞기 때문이 아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맹모삼천지교’ 때문이요. 말이 어렵지는 않겠지요? 이 나라에서는 영어 실력이 출세의 지름길이고, 부모된 자로 자식을 미국에 데리고 가는 것은 다 그런 맹모삼천지교 때문이요.

그럼 당신은 반미주의자라서 부모의 도리조차 포기한 거요?

무슨 말씀이요. 우리 친구 중에 미국에는 갔지만 라스베가스에 가지 않았다는 친구가 하나 있소. 그는 거기서 잭팟이 터지면, 교수가 도박했다고 신문에 날까 봐 가지 않았다고 해요. 나도 마찬가지요. 미국에 갔다가, 내가 유명해지면, 나보고 미국 갔다 왔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할 거 아니요? 그래서 미국에 안가는 거요.

한국 말에 ‘기우’라는 말이 있다 하더니, 꼭 당신보고 하는 말이군요. 당신이 유명해질까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기우에 해당되는 거요. 근데 왜 날 찾아 왔소. 내가 철학이나 하도록 한가한 줄 아시오?

하기는 당신이 바쁜 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당신이 하도 심해서 내 찾아왔소. 내가 투표권도 없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열렬하게 당신을 밀었던 것을 아시오? 그때 예비선거 시작하자말자, 힐러리 클린턴하고 당신이 TV토론에 나왔더군요. 힐러리의 요리 빼고 저리 빼는 약삭빠른 워싱톤식 정치 감각에 비해 당신은 우직하고 시원시원했어요. 이라크에서 철군하겠다는 단 한마디 명확한 약속 때문에 난 당신이 당선되기를 학수고대했소.

아, 그래요. 반갑소. 이번에 또 선거가 있는데, 한 번 더 부탁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절망했소. 어떻게 한 나라 대통령이 의자 구석에 마치 물에 빠진 쥐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 말이요?

아니, 내가 말하지 않았소? 이번 기습 작전을 지휘하는 장군에게 자리를 양보한 거요. 그것은 나의 실용주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신문에도 다 설명되었는데, 그것도 모르요?

그런데 나한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그것은 마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처럼 보입디다. 기습작전을 하고 혹 문제가 있으면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고 발뺌 하려 했던 거 아니요? 한 발은 이쪽에 넣고 다른 발은 밖으로 빼는 자세가 바로 당신의 자세 같아요. 당신이 그런 것은 다 옛날의 아픈 기억 때문이 아니요?

무슨 기억을 말하는 거요?

그 옛날 이란 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란 학생들이 미 대사관을 점령했지요. 그때 카터는 기습작전을 폈는데, 실패로 돌아갔어요. 사람들은 카터가 재선을 하지 못하고 끝내 단임으로 마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기습작전의 실패 때문이라 해요. 그 기억 때문에 이번에 기습작전 하면서도 당신은 안절부절 못하고 그래서 엉거주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거 아니요? 만일 실패하면 내가 한 게 아니라고 발뺌하려 했던 거지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내 말을 기억해요? 미국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 내가 빈 라덴을 제거한 후, 위대한 우리 국민들에게 한 바로 그 말, 말이요. 이거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오바마 빈 라덴 씨, 미 대통령 각하, 정말 그 말은 위협적이었어요. 전 세계 반미주의자들의 가슴을 벌벌 떨게 했어요. 미국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저항하지 않은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한 거요? 그래서 그의 시신을 아무도 모르는 바다에 수장해 버린 거요? 이 끔찍한 야만은 오사마 빈 라덴의 끔찍한 테러와 뭐 다를 바 있소? 마땅히 그를 데려와 재판을 한 이후 처형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당신네들이 체포해 재판하고 사형하지 않았소? 그게 정의의 나라 미국의 이미지에 맞는 게 아니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당신은 한국에서 백만 권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았단 말이요? 거기 보면 다 나오는데, 내가 또 설명해야 한단 말이요?

그 책은 나도 읽었소. 거기 보면 인류에게는 민주적인 합의를 넘어서는 어떤 공동적인 도덕이 있다는 거 아니요. 그런 도덕 속에 인권이 들어간다고 당신네들이 말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그런 인권에는 재판받을 권리도 포함되는 것이요. 당신네들은 봉건주의 시대에나 통하던 복수의 권리를 수행한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오사마를 재판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아요? 우선 오사마는 재판정을 자신의 테러리즘을 선전하는 장소로 삼을 거란 말이요. 히틀러가 뮌헨 폭동이 실패로 돌아가 체포된 이후 재판정에서 벌렸던 선전을 생각해 보시오. 정의로운 재판정을 불의의 선전장이 되도록 하는 것은 옳은 일이요? 자거라투스트라씨, 당신이라면 이런 끔찍한 부정의를 허용할 수 있겠소?

오마바 씨, 이슬람이 그렇게 무서워요? 아니면 이슬람을 탄압했던 당신네들이 스스로 무서운 거요? 오사마 빈 라덴이 재판정에 서면 그게 다 폭로될까 보아 그런 것 아니요? 당신들이 정의롭다면 재판의 결과 오히려 전 세계에 당신네들의 대의가 들어날 것 아니요? 그건 그렇다하고, 철학적으로 보아서 그것은 결과를 고려하는 논법이 아니요? 당신이 존중하는 마이클 샐던은 공동의 권리는 천부적인 것이어서, 결과와 무관하게 정의라 했어요. 그래서 그는 공동체주의자가 된 거요.

아니, 자거라투스트라 씨 책을 좀 열심히 읽어보세요. 거기 칸트를 논하면서 샐던이 뭐라 했나요? 이런 논의를 하지 않아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법칙이 있다 합시다. 내 친구가 강도를 피해 내 집으로 도망 왔어요. 그런데 강도가 찾아와서, 내 친구가 숨었는가 묻습니다. 그때 칸트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해요? 결과를 위해 거짓말할 수는 없소. 샐던은 이때 소위 회피 전술을 쓰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즉 내 친구가 집에 숨은 것은 아니라고 말이요. 집에 오기는 했지만 숨은 거는 아니라는 거지요. 물론 집에 왔다는 말은 빼고 뒤의 말만 하는 거지요. 그러면 결과의 위험도 피하고, 법칙도 지킬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샐던은 바로 이 회피 전술이 클린턴이 르윈스키 청문회에서 써먹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바마 씨, 그래서 당신은 이번에 회피 전술을 사용한 거구 만요. 재판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재판이 성립되지 않도록, 남몰래 살해해 버린 거군요. 그리고는 살해한 것은 아니고 다만 총을 발사했다고 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의 마지막 장면을 공개하지 않는군요.

나는 다시 강조하겠소. NCND요. 그게 나의 스승 마이클 샐던이 나에게 가르쳐준 비법이요.

오바마 씨, 굳이 당신들한테 철학이 왜 필요한지 궁금해요. 아니 거꾸로 우리 같은 철학자가 이 세상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당신네들의 기만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거요?

아니, 자거라투스트라 씨, 그게 내 물을 물음이요. 우리가 그냥 살게 놓아두면 안 돼요? 왜 당신네들 철학자들이 당신네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에 굳이 개입해서 우리로 하여금 궤변을 하도록 강제하는 거요?

그럼 오사마 빈 라덴을 수장한 것도 샐던 책에 나오는 거요? 사람들이 무덤에 묻힐 권리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로 보았소. 말하자면 인권인 셈이요. 궁금하면 『정신현상학』에서 ?인륜의 정신? 장을 보시오. 거기서 헤겔은 안티고네 비극을 다루면서 안티고네가 한 말을 새기고 있어요. 비록 조국에 대항한 역적이지만, 나의 오빠이고, 그래서 묻힐 권리가 있다고 하는 말, 말이요.

물론 우리 미국이 그런 기본적인 권리를 부정한 것은 아니요. 다만 바다에 묻었을 뿐이요. 그리고 그 바다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러니 인간으로서 묻힐 권리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우리 미국인들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요.

맞아요. 그런데 당신네들은 오사마의 무덤을 세우면 그게 성지가 될까 보아 수장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시체도 무덤도 찾을 수 없으니 말이요. 하지만 그건 생각해 보았어요. 바다에 수장하면 그 모든 바다가 성지가 된다는 것, 말이요? 전 세계의 바다가 얼마나 넓고 얼마나 많아요. 전 세계의 바닷물이 모두 오사마 빈 라덴의 피가 되고, 전 세계의 모든 소금이 오사마 빈 라덴의 살이 되는데. 그것도 당신네들이 결과를 고려한 거요?

자거라투스트라 씨 다시 말하건대, 미국은 할 수 없는 것이 없어요. 만일 그러면 미국은 전 세계 바다를 말려서 육지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렇게 흥분하지 마세요. 오바마 씨, 내가 좋은 제안을 하리다. 오사마 빈 라덴을 주검을 건져서 지금이라도 남극에 묻으세요. 설혹 남극이 성지로 되더라도, 오사마 빈 라덴 추종자들이 설마 남극까지 가겠소?

자거라투스트라 씨 재선이 되면 봅시다. 나도 재선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현실이 그런 거요.

알겠소. 오바마 씨, 당신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라요. 난 당신이 카터처럼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써먹고 버리는 카드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리고 재선이 되면 좀 분명하게 합시다. 먼저 그 천 년 먹은 여우 힐러리 클린턴을 해임하시오. 그는 여성주의의 이미지를 해치는 결정적인 본보기요.

 

 

 

 

 

[월례 발표회 참관기] 김성우 선생의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에 대하여

?[2011년 4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논문 제목: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발표자: 발표자: 김성우

 

철학은 선택 가능한가?

후기: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1.

항상 마음속으로 묻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철학도 선택이 가능한가(preferable) 하는 문제이다. 예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런 선택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은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런 소설이 싫어, 나는 카프카 유의 소설을 즐겨 읽지.”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의 경우 “리얼리즘 소설은 무언가 잘못 되었어, 소설이라면 카프카처럼 써야 마땅하지”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끼리 소설을 둘러싸고 얼굴을 붉힌 채 논쟁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서로의 태도를 존중하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상식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경우는 이런 선택가능성은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도 “나는 뉴턴의 물리학을 받아들이지만, 당신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받아들이더라도 상관하지는 않겠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이론들을 지닌 과학자들은 격렬한 논쟁을 거치더라도 끝내 결정적인 판단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조차 그들은 서로 돌아서서 상대방을 비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택가능성을 둘러싼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철학은 어디에 속하는가? 철학은 이런 점에서 예술에 가까운가 아니면 과학에 가까운가?

2.

필자가 이렇게 철학의 선택가능성의 문제를 이 자리에서 언급한 것은 이 글의 의도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본래 4월 30일 한철연 발표회에서 발표된 김성우 선생의 논문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의를 소개하는데 목표가 있다. 그런데 발표 이후 전개된 논쟁에서 필자에게 떠오른 가장 강력한 물음이 바로 앞에서 제기한 그런 물음이었다.

여기에 연유를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발표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발표자는 이 논문에서 매우 대담한 가설을 내세웠다. 알다시피 푸코의 사유는 단계적으로 변천(또는 발전)되어 왔다. 초기 그의 사유는 고고학의 입장이다. 고고학은 다양한 담론들의 배후에 인식의 개념틀(episteme)이 존재한다는 구조주의적 가정에 기초한다. 이런 가정에 따라서 작성한 대표적인 글이 바로 『말과 사물』이다. 중기에(1970년대 초반) 푸코는 담론을 발생시키는 인과적인 힘을 발견하려 했다. 이런 시도를 그는 니체의 용어를 빌려와서 계보학이라고 명명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곧 『감시와 처벌』이다. 말년에 이르러(대개 1980년대) 푸코는 자기 배려의 윤리학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그는 『성의 역사』와 같은 대작을 작성했지만 자기의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논자인 김성우 선생은 푸코의 사유는 ‘역사-비판 존재론’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 개념을 푸코가 말년에 작성한 글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규명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 시대 다양한 담론들의 전제가 되는 에피스테메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발생했는가를 추적하는 계보학의 개념을 재구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푸코의 에피스테메가 존재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그의 계보학이 역사-비판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계보학, 다시 말해 ‘역사-비판 존재론’이 푸코의 전반적인 사유를 묶어 낼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푸코의 계보학은 말할 것도 없이, 고고학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의 한 단면이며, 윤리학적 입장도 이 개념의 한 표현으로 본다.

김성우 선생이 ‘역사-비판 존재론’ 이란 개념을 끌어내어서 푸코의 사유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시도는 정말 새로운 시도였다고 보겠다. 푸코에 관심을 가져서 푸코와 관련된 이런 저런 글들을 읽어 본 적이 많던 필자조차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 참신함이 필자를 상당히 흥분시켰을 정도였다.

3.

그런데 김성우 선생이 계보학을 그저 계보학이라 하지 않고, ‘역사-비판 존재론’이라고 다시 명명한 이유는 영향 사를 밝히려는 데 있다. 그는 이런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을 하이데거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규정한다(또는 하이데거를 통해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영향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필자가 자꾸만 대답을 회피하려는 김성우 선생의 발목을 붙잡고 캐물어서 겨우 알아낸 바에 의하면(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아직 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체로 하이데거의 존재라는 개념이 푸코의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開示:eroeffenung)가 푸코에서 계보학적인 역사의 개념과 상응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대응시켜 놓고 보니, 푸코의 계보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사이에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푸코의 에피스테메 사이의 상응에는 일리가 있다. 둘 다 사물 또는 존재자를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존재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의 개시가 계보학적인 것일까? 푸코의 계보학은 우연적인 사건들이 얽혀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는 상당히 운명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과 운명은 통하는 바가 있다. 우연의 이면이 운명이라 본다면, 푸코와 하이데거의 주장은 서로 동전의 이면처럼 연관된다고도 하겠다. 사실 푸코의 계보학도 읽어보면 무언가 운명적인 것을 전제로 한 듯 보이며, 하이데거의 운명적인 존재의 개시도 그 출발점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본다면,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 개념은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영향의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하며, 잘못하면 푸코의 계보학에 대한 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성우 선생이 하이데거의 영향을 주장한다면, 이런 논점을 잡아서 양자의 유사성과 차이에 관해 더욱 천착해 들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김성우 선생의 논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비록 이런 영향 관계를 천착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연구 성과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 점은 아쉬운 측면이지만 앞으로 연구의 성과를 기대할만한 지점이라 하겠다.

4.

그런데 김성우 선생은 하이데거의 영향을 과장하면서, 푸코의 사상에서 구조주의적인 특징을 지워버리려 시도한다는 데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푸코는 후기 구조주의자라 알려져 왔다.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전기 구조주의는 구조를 일원적(unitary)인 것이며 불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화용(parole)적 측면을 개인의 실천에 속하는 우연적인 측면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에서 간과한 화용적인 측면에 더 주목하며 이런 화용적인 측면도 구조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파악한다. 또한 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구조는 가변적인 것이며, 다양체적(multiple)인 것이라 본다.

푸코가 출현할 당시 60년대 프랑스의 지성계는 구조주의가 지배할 시대였다. 구조주의는 그 이전 50년대 실존주의의 사상적인 지배력을 무너뜨리고 등장했다. 그래서 구조주의가 비판의 논적으로 삼았던 대상이 바로 실존주의였다. 그런데 푸코는 성장기에 분명 실존주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따라서 그런 실존주의적인 사유가 그에게 상당히 침윤되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푸코가 대학시절 당시 지배적인 구조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푸코는 구조주의에 서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후기구조주의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

따라서 푸코가 후기 구조주의로 넘어가는 데 실존주의의 영향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김성우 선생처럼 푸코의 구조주의적인 사유를 부정하고, 하이데거의 영향을 극대화한다면 이는 너무 과도한 주장이 아닐까? 왜냐하면 푸코 역시 그의 시대를 지배했던 구조주의의 힘을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논쟁은 푸코에게 미친 하이데거의 영향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데 집중되었다.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하이데거의 영향의 정도를 판정하는 결정적인 관건은 역시 하이데거의 존재 개시라는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이라는 개념 사이의 연관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개시성의 운명론적인 성격과 계보학의 우연론적인 성격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문제라 하겠다.

5.

그런데 논의를 비틀어 필자를 씁쓸하게 했던 것은 바로 푸코의 계보학이 비판하는 역사 개념이 곧 헤겔의 역사 개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푸코의 계보학이 우연론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것에 대립되는 운명론적인 역사 개념을 헤겔에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헤겔의 역사 개념이 운명론적일까? 오히려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이 더욱 운명론적이 아닐까? 그런데 푸코는 하이데거와 가깝다고 하고 반면 헤겔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면 이것은 무언가 착종된 생각이 아닐까?

이것은 철학적인 판단의 문제이다. 앞으로 더욱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것은 이런 생각이었다.

헤겔에 대한 철학적인 비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분석철학 등은 항상 헤겔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마르크스주의와 분석철학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철학과는 전혀 다른 철학적인 태도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는 철학도들이 헤겔을 비판하는 경우, 필자에게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그들의 헤겔 철학에 대한 이해는 구조주의자 알뛰쎄가 마르크스를 해석하면서 도입했던 헤겔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헤겔은 목적론자이면서 일원론자로 간주된다. 그게 바로 헤겔의 발전 개념이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헤겔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상세하게 논증하고 싶지 않으며 또 그런 자리도 아닐 것이다. 다만 필자는 사람들이 알뛰쎄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것이 헤겔의 진짜 모습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자신이 헤겔을 읽고 이해하면서 비판했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려낸 모습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문제 있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가지 필자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왜 사람들은 자기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항상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하는 것일까? 철학도 선택가능하다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항상 타자를 비판하면서 시작하려는 철학자의 태도에는 철학이 과학처럼 진리성의 기준을 갖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모더니즘 철학자들이라면 그들은 철학의 진리성을 믿으므로, 이런 논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철학자들 그래서 상대주의적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철학자들이 철학에서만은 유독 진리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설적이 아닐까?

소위 회의주의의 역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의주의가 자기 자신을 회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면 이런 회의주의의 역설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위는 ‘아래에서부터 위로’다.[썩은 뿌리 자르기]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대진대 강사)

“옛사람들은 백성과 더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즐겼습니다. 이 때문에 능히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백성이 그와 더불어 함께 망하고자 한다면 비록 화려한 관저와 아름다운 연못과 관상용 동물들이 넘쳐난들 어찌 홀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맹자(孟子)』「양혜왕장구 상(梁惠王章句 上)」)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맹자가 군주인 양혜왕을 찾아가 한 얘기다. 맹자는 양혜왕이 자신의 화려한 동산을 둘러보며 자랑스러워하자 고대 주나라 문왕(文王)의 예를 들어서 임금의 권위는 화려하고 웅장한 부차적인 것들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소통하고 백성과 함께 하는 바탕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위정자들의 정치행위와 권위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를 경계한 것이 요점이다.

이 대화의 내용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알려 전해지고는 있지만 과거나 현재의 인간이 사고하는 틀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인식의 방법과 대상은 무한히 변화하지만 그 인식하는 개체의 사고형태는 지극히 구태의연하다. 특히 역대 정치인들에 있어서는 더욱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권위적 인간을 거부하면서도 또 그러한 권위주의를 일상화하는 지도 모른다. 일종의 자포자기의 심정이랄까?

권위와 권력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념어는 아마 ‘권위(權威, authority)’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부류의 권위들을 만난다. 정치경제를 비롯한 일상의 사회생활이라는 하위분류에서부터 상위분류로서 문화적 심리구조 같은 관념화된 영역에까지 말이다. 따라서 권위라는 개념을 오로지 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는 불가하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여러 다른 뉘앙스로 쓰이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문?학술의 영역이나 미시적인 사회의 기능적이고 세세한 부분에 관여하는 전문영역에 있어서 권위는 순작용을 한다. 권위가 한 사안을 관통하는 일련의 과정에 개입하여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데 일조하는 대표모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사회구성원들의 승인을 받아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 정치, 행정 같은 국가와 관련한 권력의 형태에 있어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권위=권력(power)으로 인식한다.

사회학자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권위와 불평등』에서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권위라는 말은, 명령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신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 복종이 있음을 뜻한다. 만약 이 도덕적 요소가 없다면, 권위는 강제와 기만이 되고 말 것이다.” 고금(古今)을 통틀어 어떤 조직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구조적형태는 반드시 계급과 계층을 구분하게 되는데, 상층계급의 존립근거는 국가를 유지할 만한 도덕성이 충분하다는 피지배 하층계급의 승인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 때 발생하는 권위는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발생하여 위로 부여된 권위이다. 권력의 발생은 아래, 즉 민중으로부터 시작한다. 과거 중국 사회주의의 대중노선도 이와 같은 맥락이고 이런 슬로건은 『서경(書經)』에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는 문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지금 위정자들이 하고 있는 정치적 권위에 대한 기본 인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집권 말기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능력을 떠나 도덕성의 문제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전과사실은 각설하더라도 각 정부 요처의 기관장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준 위장전입, 투기, 탈세, 병역기피는 이제 기본이 됐다. 강남의 부자교회 장로출신 최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신이 용인하고 도와준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 이후 속속 드러나는 전시행정과 심지어 충청권 과학벨트와 관련하여 라디오 방송에서 “그 공약은 내가 지난 대선 때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해 했던 공약으로, 지금 공약대로 이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라고 발언했다. 자신의 대선 공약이 단순히 선거승리를 위한 옵션이라고 인정한 것인데 여기까지 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한마디로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도 문다. 권위를 상실했지만 오히려 남북한 위기상황을 통해 껍데기만 남은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한다. 경제위기를 들먹이고 전쟁위협을 등장시키는 것은 대중의 공포심리를 이용한 공포정치의 한 단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정권 초반부터 항상 강조했던 법과 규범의 준수를 통한 사회질서 확립은 상실한 권위를 스스로 강제하고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며 특히 국민에 대한 강요는 대중에 대한 국가 폭력과 마찬가지다.

‘아래에서부터 위로(自下而上)’

2011년 현재 대한민국 정권의 정치적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권위 아닌 권위가 계속 강요되는 뻔뻔한 현실에서 민중이 위정자의 권위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권력을 보장해주었다는 논설은 다시금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논설을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원목(原牧)」에서 밝힌 바 있다. “목민자(牧民者)가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이것은 다산의 문제제기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백성이 과연 목민자를 위하여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 무슨 목민자가 있었던가. 백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한 사람이 이웃과 다투다가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을 공언(公言)을 잘하는 장자(長者)가 있었으므로 그에게 가서야 해결을 보고 사린(四隣)이 모두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높이 모시고는 이름을 이정(里正)이라 하였고, 또 여러 마을 백성들이 자기 마을에서 해결 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준수하고 식견이 많은 장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마을이 모두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높이 모시고서 이름을 당정(黨正)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고을 백성들이 자기 고을에서 해결 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어질고 덕이 있는 장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고을이 모두 감복하여 그를 이름하여 주장(州長)이라 하였고, 또 여러 주(州)의 장(長)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를 이름하여 국군(國君)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나라의 군(君)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 이름을 방백(方伯)이라 하였고, 또 사방(四方)의 백(伯)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삼고는 이름하여 황왕(皇王)이라 하였으니, 따지자면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백성을 위하여 목민자가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지금의 수령(守令)이 옛날로 치면 제후들인데 …… 거만하게 제 스스로 높은 체하고 태연히 제 혼자 좋아서 자신이 목민자임을 잊어버리고 있다 …… 그리하여 ‘백성이 목민자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란 말이 나오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디 이치에 닿기나 하는가?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또 「탕론(湯論)」에서는 『맹자』를 인용하여 문제제기하고 자답한다. “탕왕(湯王)이 걸(桀)을 추방한 것이 옳은 일인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옳은 일인가. 이것은 옛 도(道)를 답습한 것이요 탕 임금이 처음으로 열어놓은 일은 아니다.” “그를 끌어내린 것도 대중(大衆)이고 올려놓고 존대한 것도 대중이다.” “한(漢) 나라 이후로는 천자가 제후를 세웠고 제후가 현장을 세웠고 현장이 이장을 세웠고 이장이 인장을 세웠기 때문에 감히 공손하지 않은 짓을 하면 ‘역(逆)’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른바 역이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하였으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한 것은 순(順)이고, 지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웠으니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운 것은 역이다.”

「원목」과 「탕론」은 아래에서 위로의 ‘자하이상(自下而上)’의 정치학 원론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다산이 비판한 것은 민중이 통제받고 제약받는 모순적인 현실은 고증하자면 잘못된 것이며 ‘자하이상(自下而上)’의 체제는 회복해야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군주와 같은 통치자의 존재는 아래에서 위로 추대된 존재로서 민중을 위한 필요성의 가치에 한정되어 있던 것이지, 결코 그 위치나 지위가 자신을 위한 전권(全權)행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내용이 다산이 제시한 주권재민적(主權在民的) 정치이념의 근거이다.

쓰르라미는 봄?가을을 모른다.

다산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 규정되고 강요된 ‘가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가짜 세상에서 사실상 국민의 동의를 상실하여 빈껍데기 권위를 가지고 강제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가짜가 국가권력의 정점에 있으니 암울하기 이를 데 없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진짜 이유는 집권 세력의 이익에 있다. 신문기사에서는 2011년에 무역수지 20억불 흑자가 예상된다고 떠들어대지만 지금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은 가계저축률이 높은 일본에 비해 엄청나게 떨어진다. 5월 9일자 뉴스에서는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용대출 금리는 인상되고 대출금리 감면 혜택도 없어져 이명박 정권이 확실히 규정한 이른바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도미노몰락도 예견되며 결국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탕론」의 마지막에서 다산은 『장자(莊子)』의 구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莊子曰 ??不知春秋) 여름만 살고 가는 쓰르라미가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은 알 턱이 없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 온 세상 전부인 줄 착각한다. 지금 가짜 권위를 차고 있는 자들이 그렇다. 변화는 없고 권력은 끝나지 않을 줄 안다. 그러면서 세상을 망치고 있다. 그런데 다산이 이 말을 마지막에 둔 것은 단지 위정자만 염두에 둔 비판이 아니다. 당시 전제군주제의 속류 지식인들이 식견이 고루하여 고금의 변화를 알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지식인들은 과연 나 자신이 가짜가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특히 대학교수의 경우 대학사회에서 알량한 보직교수의 유혹이나 개인의 대외적 명예, 금전적 이익 때문에 학문연구나 학생지도를 태만히 하면서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대학문화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대학의 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를 규정해 왔고 기반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 대학의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로 교수들이다. 평생직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교수사회는 투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가깝게는 대학재단 이사회, 넓게는 문화 보수세력의 첨병이기도 하다. 지식계층이라는 사회적 권위를 누리면서 사회에 대해 외면하거나 무책임한 낙관론만 내뱉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여름 한철을 온 세상으로 아는 쓰르라미는 아닌지 자문해야한다.

권위주의의 개념의 현재성 비판을 위해[썩은 뿌리 자르기]

강성국(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한국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권위주의라는 개념이 수사적 표현으로 한국처럼 폭넓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곳도 없을 것 같다. 권위주의라는 묵직한 개념을 학계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들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에 기인한다. 한국은 독립과 함께 현대적 정치체제(보다 정확하게는 대통령제)를 구성 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는 2차 대전 직후 전지구적 격변기였으며 한국은 체제간 대립의 최전방에 위치한 국가였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 시작해서 정적들을 숙청하는 폭력적인 정권 찬탈이 이루어 졌으며 박정희와 전두환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획득했다. 한국사회구성원들은 이러한 정치과정들을 통해 약 30년간 독재의 실재를 경험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재의 종식. 민주화.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를 거친 후 권위주의라는 개념은 한국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이 되었다. 물론 그 쓰임의 목적은 비판적이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권위주의라는 표현의 대상이다. 우리는 독재정권에서 경험했던 이미지들, 또는 효율성 위주의 정치과정을 경험할 때 정권을 향해 권위주의적이라고 말한다. 독재의 어렴풋한 기시감(旣視感)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적 반응으로 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지난 두 정권의 시기에 권위주의라는 말은 정부나 대통령을 향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헌데 2008년 이후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권위주의적 정부라고 한다. 이명박은 유권자들의 투표를 통한 정당한 절차를 거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독재로 규정할 수 있는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보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럼 도대체 이명박이 권위주의적이란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수백만 국민이 참여한 촛불정국을 거스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때문에?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 때문에? 밀실적인 협상과정을 거친 FTA(free trade agreement)들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의 물고를 튼 것은 한미 FTA의 추진과정이었고, 한미 FTA가 체결된 것은 노무현 정권 시기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이 없었던가? 2001년 대우자동차 사태는 경찰의 폭력이 심각했고 따라서 수많은 중상자가 나왔다. 2005년 농민대회에서 역시 폭력적인 진압으로 농민 2명이 사망했다. 그런데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탈권위주의적 정권으로 평가 받으며, 이명박 정권은 권위주의적으로 평가 받는다. 하나의 비극적 아이러니.

오늘 날 민주주의 제도들은 선출된 대표자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에게 일종의 제한된 독재적 지위를 부여한다. 이 독재적 지위는 다른 말로 민주적 정당성(legitimacy)에 기반 하는 권력, 즉 권위(authority)라고 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모든 정권은 이런 권위를 부여받는다. 노무현도 마찬가지였고 이명박도 그렇다. 그리고 위에서 간략하게 예를 든 것과 같이 정책을 추진하며 반대자들에 대한 관리수단으로서 동일하게 폭력을 동원하거나 관료주의적으로 정보를 통제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권위주의적이라고 평가 받는 것은 모순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의 근원은 무엇인가? 권위주의란 개념의 비판적 사용을 80년대 후반 한국의 민주화를 경험한 특정 세대와 그 세대에 기반 하는 정치집단들이 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권위주의적 정권은 단순히 정적(政敵)을 가리킨다. 그들은 정적들을 너무 쉽게 그렇게 호명하는데, 그럼으로써 그 정적에게는 너무 쉽게 권위주의의 온갖 폭력적, 또는 비민주주의적 이미지들이 덧 씌워진다. 또한 그럼으로써 자신들에게는 너무도 쉽게 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ism)의 투사적 이미지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들이 “권위주의적인” 그들의 적을 “권위주의적”이라고 비판하기에는, 위에서 드러나다시피 그들의 적과 자신들의 공통점이 너무 많다.

권위주의는 정치적 권위의 소유주체를 평이하게 비판하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다. 권위주의는 권위의 발생과 그 권위를 몰이성적으로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인식하는 태도, 그리고 그에 기반 하는 사회적 행위에 대한 비판적 개념이다. 즉 비판적 개념으로서 권위주의의 대상은 권력 주체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 대중 현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오히려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것은 권력 주체가 아닌 사회 현상으로서 권위주의 일 것이다.

과거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아도르노(T. W. Adorno)가 분석한 권위주의의 전형은 파시즘(fascism)으로 귀결되는 권위와 카리스마에 대한 대중들이 보였던 사회심리적 일체화 경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을 따른다면 한국에서 권위주의 개념을 전용하는 소위 민주화 세대라는 특정 세대와 정치집단은 오히려 권위주의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민주화의 상징에게 상식 이상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개념이 그들에게 전유되는 이상 권위주의 개념의 그 비판적 본질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비판적 개념으로서 권위주의 개념을 부활시키는 것은 권위주의의 현재성을 재설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권위주의는 과거의 전형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권위주의 현상을 경험한 사회에서는 그것이 또 다시 재현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권위주의는 경험으로서 극복되는, 통과 의례적 성격을 지닌 어떤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제 권위주의는 보다 은폐된 현상으로 존재하며 개인 내면에 내재된다. 부르주아 국가와 법체계는 항상 역사 속에서 경험된 가시적 폐해를 은폐시키고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기만적인 자기정화(self purification)과정을 반복해 왔다. 역사적으로 권위주의는 항상 자본주의 사회, 또한 각각의 해당 사회의 특수한 욕망에 기생했다. 권위주의의 현재성을 재설정 하는 것의 시작은 이 사회의 욕망, 즉 우리의 욕망을 보다 깊게 관찰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혜화, 동』-‘여성적’인 영화에 대한 단상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김 수 현(서울시립대학교 박사과정)

몇 년 전에 나는 하이메 로살레스(Jaime Rosales) 감독의 <고독의 편린>과 훌리오 메뎀(Julio Medem) 감독의 <혼란스런 아나>를 약간의 시간간격을 두고 보게 되었는데, 이 두 영화가 여성을 다루는 서로 다른 방식이 흥미로웠다.

두 영화는 다루는 소재나 주제에서도 차이가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에서도 차이가 났다. 특히, 나는 두 영화 중 어떤 것이 좀더 ‘여성적인’ 감수성에 맞는 표현형식일까에 대해 생각했었다. <혼란스런 아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어떤 불편함이 남았다. 반면, <고독의 편린>은 영화 속 그녀들의 삶에 공감하게 되면서 나의 마음 속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듯했다. 거칠게 말하면 영화의 진행 과정에서 <혼란스런 아나>는 관객을 몰입하게 하고 <고독의 편린>은 관조적인 시선으로 인물들의 삶을 지켜보게 만든다. <혼란스런 아나>가 ‘역사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조금은 추상적인 여성성을 보여준다면 <고독의 편린>은 ‘지금 여기’에서의 여성의 삶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혼란스런 아나>에서 여성은 ‘신비로운 존재’이거나 ‘성적 대상’이다. <고독의 편린>에서 여성은 힘겹게 삶을 꾸려가지만, 정작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 찾지 못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여성이다.

<고독의 편린>에서 여성들은 서로 소통하지도 못하며 서로를 위로하지도 않는다. 인물들의 대화는 허공을 맴돌며 그들 각자는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이야기한다. 인물들의 표정 변화도 극적이거나 급격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덤덤하거나 편안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그녀들의 고독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텅 빈 공간과 사물들이 인물들의 고독을 더 차갑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현란함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인물들의 고독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일견 딱딱해 보이고 덤덤해 보이며 때론 무표정하기까지 한 인물들의 표정 이면의 감정을 관객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혼란스런 아나>에서 여성은 무의식의 깊은 심연과도 같은 존재이다. 또한 죽음의 고통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존재다. 주인공인 아나는 모든 여성을 대신해 ‘고통으로서의 여성의 역사’와 만난다. 그런데 <혼란스런 아나>와 함께 한 심연으로의 여행은 사실 감독의 여성에 대한 사고를 따라가는 것과도 같다. 아나의 무의식 여행에 동참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 다음에 감독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여성의 이미지를 동원하여 여성이 처한 억압에 대한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혼란스런 아나>는 감독을 비롯한 남성이 생각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반복하는 듯 보였다.

이 두 영화가 특별히 여성 영화의 표현방식에 대해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영화를 볼 때, 감독들이 어떤 방식으로 여성이나 성을 묘사하는지에 대해 눈길이 가게 된다. 그렇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뒤로 한 채 영화전체의 구조나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중점에 두고 영화를 보게 된다. 또한 영화의 이미지나 그 이미지들의 배치 및 표현방식이 얼나마 ‘영화적’인가를 두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여성인 감독이 여성을 소재나 주제로 다루면서 여성문제의 현실을 잘 진단하고 보여준다면 ‘좋은’ 여성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어 보인다. 오히려 나는 영화의 표현방식과 감독이 인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성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여성적’이라 생각하는 영화에서는 여성을 대하는 담담하고 관조적인 시선 가운데 어떤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영화 속 그녀들이 삶에서 마주하는 이러저러한 사건을 겪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조금씩 치유하고 극복해가는 모습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혜화, 동>이 보여주는 ‘여성적인 것’

여성영화에 대한 이런 개인적인 고민이 있던 차에, 지난 3월에 본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은 다루는 소재와 주제, 그리고 표현방식이 내가 평소에 생각해 왔던 ‘여성적’인 영화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영화는 한 여성의 마음 속 상처를 관조적이고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주며 동시에 감정의 변화들을 보여준다. 또한 그 과정은 인물에게는 상처와 마주하여 치유하는 과정인데, 관객에게는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혜화, 동>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영화는 혜화와 그녀의 마음 속의 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주목하게 된 문제의식은 아이의 죽음과 그것을 둘러싼 보살핌으로서의 ‘모성성’이다. 가족을 둘러싼 해체와 파괴의 문제, 가족을 구성하는 일에 대한 문제의식도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몇몇 평자들은 이 영화에 대해 영화의 소재나 주제가 진부한 데 비해 영화의 화법이 흥미롭다고도 했다. 내가 주목했던 것도 한 여성의 삶과 그녀의 내면의 감정의 변화들을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1> 영화의 표현형식과 관찰하는 시선

혜화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버려짐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 우리의 주변에서 살고 있을 법한 여성이다. 유기견을 돌보며 사는 애견미용사인 스물 세 살의 혜화에게 5년 전에 자신을 떠났던 한수가 찾아와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 이 때부터 그녀는 5년전 과거와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고등학생이던 혜화와 한수는 서로 사귀었고 혜화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혜화는 학교를 그만두고 네일아트를 배우면서 둘이 함께 하는 미래를 준비한다. 혜화의 어머니는 혜화를 잘 보살피려 하고 그녀를 데리고 한수의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한수의 어머니는 한수의 장래를 걱정하며 혜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혜화는 혼자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는 몸이 약해서 태어나자마자 죽어 버리고 만다. 그런데, 한수는 그 당시 혜화의 어머니와 자신의 어머니가 함께 작성했던 입양통지서를 들고 와서 혜화에게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후 영화는 이 아이를 둘러싸고 미스테리한 플롯으로 전개된다. 혜화의 현재 삶에 과거의 기억들이 침투해 들어오면서 묻혀진 상처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혜화를 향한 한수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이 보여진다. 묻혔던 상처를 꺼내보는 혜화는 마치 고였던 감정이 흐르듯 혼란스런 감정의 변화들을 겪게 된다.

영화의 미스테리한 플롯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탈장된 개와 그들의 아이인데, 탈장된 개와 아이는 혜화의 ‘마음 속의 아이’를 상징한다. 이들이 과거 속 혜화의 집에서 사라진 그 강아지인지, 진짜 혜화의 아이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감독은 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실제로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혜화의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사실, 혜화와 한수의 아이를 둘러싼 미스테리는 한수의 건강하지 못한 마음 상태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그는 혜화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를 통해 다가가고자 한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혜화와 한수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입양통지서에 적힌 주소에서 한수가 본 아이는 다른 아이였음이 밝혀진다. 한수는 자신이 찾아갔던 집에서 그 아이의 부모들에게 사실을 전해들었어도 믿지 않는다. 결국은 혜화가 임신했던 당시에 태어난 자신의 조카(나연)가 자신들의 아이인 것처럼 혜화를 속이게 된다. 한수가 의도치 않게 꾸민 조금은 엉뚱한 일로 인해 혜화는 그 아이를 진짜 자신의 아이라 믿게 된다. 그리고 혜화의 집에서 세 사람은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혜화는 아이를 부모들에게 보내기 전에 씻겨주고 대화를 하면서 마치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에게 하듯 아이와 작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영화 속에서 아이와 탈장된 개와 함께 중요한 이미지는 폐허가 된 집터이다. 영화 초반에 혜화는 탈장된 한 유기견을 따라 폐허가 된 집터로 가게 된다. 영화 속에서 이 집터는 혜화와 한수가 자주 마주치게 되는 공간이며, 마치 잃어버린 그들의 아이와도 같은 유기견의 흔적을 끝없이 찾게 되는 곳이다. 폐허가 된 집터는 두 사람의 단절된 관계와 해체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한 편으로는 두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소재이거나 주제일 법한 이 영화의 이야기가 갖는 가장 큰 미덕은 감독이 신적인 화자가 되어 혜화의 마음 속을 설명하고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섣불리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은 주변에서 보게 되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고 궁금증을 품게 될 때,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의 미스테리적인 구성이나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들의 연결 방식은 이런 식으로 혜화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가 말을 아끼고 담담하면서도 건강한 캐릭터인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그녀의 아픔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2> 아이, 모성성 그리고 관계를 맺어가는 법

영화를 보다보면 특별히 혜화라는 인물의 건강하고 강인한 면모가 돋보인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지닌 실제 여배우만큼이나 혜화라는 인물도 맑고 깨끗해 보인다. 어떤 관객은 혜화라는 인물이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관용하는 어떻게 보면 성인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분명 그런 측면이 있지만, 나는 혜화의 강인한 면모는 그녀가 특별히 타자에 대한 감수성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녀의 강인함은 처음부터 영화에서 설정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을 치유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 생각한다.

혜화는 자신이 일하는 동물병원 원장의 아들(현웅)을 거의 3년 동안 돌봐왔다. 여섯 살인 이 아이를 향한 혜화의 시선은 흡사 자신의 잃어버린 아이라도 돌보듯 사랑스런 눈길이다. 혜화는 현웅이 잠들때까지 기다리다가 자신의 집으로 간다. 현웅은 시시때때로 혜화의 가슴을 만지기도 하며, 때로 혜화는 잠든 현웅이 자신의 가슴을 만지도록 놔두기도 한다. 또한 현웅이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고 할 때,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한편, 혜화는 유기견을 구조하는 일을 하는데, 입양되지 못한 유기견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와 키우고 있다. 그녀의 집에는 조금은 병이 든 것도 같은 유기견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혜화가 이렇듯 버려짐에 대한 감정에 민감하고 그만큼 또 보살핌에 대해 민감한 까닭은 그녀가 한 번 버려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지금의 어머니에 의해 길러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지금은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혜화를 냉대하지 않고 따뜻하게 잘 길러줬다. 혜화가 아이를 가졌을 때도 어머니는 혜화를 탓하지 않고 자신이 잘 도와주겠다고 말하였다.

혜화가 지닌 이런 면모를 보면서 나는 레비나스의 타자 개념과 ‘모성성’이란 말을 떠올렸다. 레비나스는 주체에 대한 책임을 넘어서 고통받는 타자, 헐벗고 굶주리는 타자를 위해 나를 내어주고 책임을 다하는 타자의 윤리학을 강조한다. 고아나 과부, 굶주린 사람 등 비참한 타인의 얼굴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받고 타인의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레비나스는 그런데 이러한 타인의 얼굴과의 마주침에 의한 고통의 경험이 나를 새로운 존재로 만든다고 한다. 그는 주체 안에 있는 이러한 타자성을 ‘내 안에 있는 타자’ 혹은 ‘동일자 안의 타자’ ‘내재 속의 초월’이라고 말한다. 내 안에 들어온 타자가 타자를 위해 짐을 짊어질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나를 키워내는 것을 일컬어 ‘모성성’이라 불렀다. 레비나스의 이러한 타자와 모성성 개념이 가지고 있는 다른 많은 함의들을 제쳐놓고 생각해 본다면 영화에서 혜화가 보여주는 유기견과 아이, 그리고 한수에 대한 태도를 ‘모성성’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모성성은 타자에 대해 민감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이 만들어낸 것이다.

혜화에게서 그녀의 모성성을 길러냈던 타자는 무엇보다도 죽은 아이이다. 덧붙이자면 그녀의 첫 번째 버려짐의 경험과 그런 그녀를 거두고 돌봐준 지금의 어머니가 있다. 또한 그녀가 어머니가 살던 집에서 함께 기르던 개가 낳은 강아지들과의 이별의 경험이다. 한수의 가족에게 외면당한 혜화는 오랫동안 기르던 개 혜수와 혜수가 낳은 강아지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한다. 기어코 가려 하지 않던 혜수를 억지로 새로운 주인에게 넘긴다. 그 때 아빠가 달랐던 꼬리가 노란 강아지는 어딘가에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한수의 집에서 거부를 당하고 절망감에 손목을 그으려던 순간에 그 어린 강아지가 집구석에서 나와 그녀의 품에 안긴 일이 있었다.

한편, 영화의 결말에서 혜화와 한수는 폐허가 된 집터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들을 구조하는 일로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 아직도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한수에게 혜화는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또 그 때 혜화가 찾아 헤매던 탈장된 그 개가 다시 나타나게 된다. 혜화는 어린 강아지들을 데리고 혼자 집으로 가다가 다시 후진하여 한수를 향해 가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이런 결론을 두고 관객들의 반응이 엇갈렸다고 감독이 전해주었다.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거나 회복되는 것과 상관없이 아이를 매개로 하지 않고 두 사람이 직접 마주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혜화가 보여준 ‘모성성’은 한수에게도 예외가 아닐 수 없다. 한수는 영화에서 계속해서 비겁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한수는 어머니, 누나와 함께 조금은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아마도 어머니와 누나의 보살핌을 받고, 그만큼 그녀들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면서 자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수는 혜화에게는 유학을 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집에는 가끔 들어오는 등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지난 5년의 시간을 보냈다. 군대를 갔던 것도 가족들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을 정도이다. 다리를 다쳐서 약간 절룩거리는 상태만큼이나 한수는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탈장된 개와 아이를 둘러싼 미스테리가 해결되면서 혜화의 감정도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혜화의 타자에 대한 보살핌의 ‘모성성’을 드러내고 또 한편 키워냈던 이 두 타자와의 만남 이후에 한수라는 또 다른 타자와의 관계를 물음으로 남기고 영화가 끝을 맺는다. 영화는 인물의 삶을 하나하나 지켜보게 하면서 나에게도 그녀의 마음 속에 차근차근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모성성의 문제가 어머니로서의 희생 이전에, 한 사람의 상처와 내면에 관한 것, 즉 삶의 일부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청춘의 서재]

신 정 순(홍익대학교 입학사정관)

새로운 날개짓을 위해

청춘의 서재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고민하다 문득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라는 옛노래가 떠올라 흥얼거려보았다. 청춘을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니 청춘은 정말로 꿈같은 봄날이기만 할까, 아니 오히려 이때가 풋사과마냥 풋풋하고 기운행동하는 시기라 역설적이게도 더 크게 흔들리고 방황하며 아파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참신한 열매를 창조해낼 수 있기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예찬하며 부러워하는 게 아닐까, 이 노래의 지은이 역시 그래서 청춘을 뭐든지 실현가능한 꿈나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어떨까!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기를 살아가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할 순 있지만, 대부분의 청춘들은 방황하고 아파할 그래서 이전과 다른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만의 특권을 뒤로한 채 무한경쟁 속에서 더 큰 자유와 물질들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한 처절한 날개짓에 몰두하고 있다. 청춘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시기인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언젠가 대학에서 <시각의 의미>라는 주제강의를 하며 교재로 활용했던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소개해야겠다고 맘이 들었다. 어쩌면 익숙한 시선(관점)을 전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민할 수 있는, 그리하여 목적중심의 또는 자본 중심적 인간관계망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에.

청춘의 의미가 그렇듯 세상만사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낳을 수 있다. 본다는 것은 결국 세계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또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주어진 대로 수동적으로 보지 말고 그것의 제작 의도 및 사회적 의미까지도 간파해내길 원했던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사고방식(또는 행동방식)을 취할 수 있는 새로운 ‘나’로 거듭나 새로운 의미(문화)까지도 창조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상호 관계회복을 위한 새로운 응시

미학에 입문한 뒤, 이성적 지혜를 발휘하여 거대문명을 발전시켜온 서구의 역사에 관해 다음과 같은 비판적 시선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시선은 서구 역사가 ‘나(인간, 이성)’ 이외의 다른 모든 것, 이른바 ‘타자(자연, 비이성적인 것 등)’를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하거나 대상(사물)화시켜 지배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비판한다.

존버거 역시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각의 재검토 과정을 통해 그러한 입장에 동의를 표한다. 그에게 대상(이미지 또는 사태)을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빛이 망막을 통해 시신경으로 전달되는 물리?화학적 의미로서의 시각이 아니라, 본다는 행위에 깃들인 사회적 의미를 파헤치는 ‘시각의 재검토’로써 이성 중심의 근대적인 또는 자본주의적인 삶(역사, 문화, 사회)의 의미를 묻고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다. 이 책은 I. 왜 동물을 구경하는가, II. 사진술의 이용, III. 체험된 순간들이라는 세 가지 큰 제목 아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제작?감상하는 사람의 시선 이면에 깊숙이 감추어진 사회적 의미를 파헤친 총 18편의 글을 담아 낸다. 이로써 <본다는 것의 의미>는 미학에 관한 훌륭한 교양서이자 미디어와 영상론을 다루는 기초 교재로써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평을 받게 된다.

그 중 I. 왜 동물을 구경하는가의 내용은 아무런 생각 없이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어린 아들 둘의 손을 잡고 동물원을 찾아 부모 역할을 다했노라 자부했던 또 언젠가는 내 어머니가 내게 해주었듯 내 아이들에게도 애완동물을 사주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겠노라 생각했던 내게 인간과 동물(자연)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존버거에 따르면, 동물원에서의 동물구경, 애완동물, 동물장난감 등은 우리가 생각하듯 동물을 반려자로 생각하는 인간의 친자연적인 태도 또는 동물에 대한 사랑의 의미라기보다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구체적으로 인간의 언어능력(상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근거로 동물을 단지 객체(대상 또는 기계)로만 바라보게 되었음을 뜻한다.

“동물은 이제 애완동물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에 흡수되거나, 구경거리에 흡수되어 언제나 관찰되는 대상에 머물고 만다.”

그는 말한다. 동물원은 박물관처럼 지식을 넓히고 일반인들을 계도하기 위해 만든 전형적인 소비자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근대 이전까지 동물과 인간이 인근에서 서로 독립된 삶을 유지해오며 평행자적 관계를 이루어오던 상황(만남)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일반인들을 위한 동물원은 일상생활에서 동물들이 사라져버리는 시기가 시작되면서 존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동물을 만나고, 관찰하고, 구경하기 위해 찾아가는 동물원은, 사실 그러한 만남의 불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경계가 되는 표시이다. 오늘날의 동물원들은 인간이 존재해온 것만큼이나 오래된 하나의 관계에 대한 묘비명인 것이다.”

이런 설명에 동심을 위한 때로는 끈끈한 가족애를 확인하는 동물원으로의 즐거운 가족 나들이를 뭐 그렇게까지 삐딱하게 바라봐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동물구경의 사회적 의미를 파헤치는 것이 단순히 인간과 동물(자연)의 관계 규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간의 관계까지도 예시해주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존버거는 동물에 대한 접근방식이 곧 인간에 대한 접근방식을 예시한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따라서 특히 산업?정보사회에서 제작된(특히 폭력성을 배가시키는 전쟁 관련된) 사진을 볼 때는 더더욱 단순 관찰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 이미지(사진)에 들어간 인간의 욕망까지도 읽어내 새로운 맥락(의미)을 재창조해낼 수 있어야한다고 II. 사진술의 이용 장에서 역설한다.

한편 근(현)대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근대사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많은 현대적인 사상가들 역시 동의하는 바인데, 그런 점에서 존버거를 따라 수행한 시각의 재검토(새로운 응시)는 곧 인간(이성) 중심의 근(현)대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자, 인간과 동물(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주체와 객체의 전복 체험 & 새로운 의미(문화) 창조

굳이 현학적인 고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두 번 쯤은 지나치게 이성 중심적인(목적지향적인) 삶을 살다 또는 과도한 자본시장의 논리에 치여 그로부터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현대 사상가들 역시 그 점을 고민해왔고 그 결과로 일종의 ‘되기’를,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몸을,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바라보는 나’로 분열된 주체를, ‘음악하는 소크라테스’를 그리고 경악과 놀람을 주는 예술 체험 및 실존적 체험 등을 강조해왔으며, 존버거 역시 <세케르 아흐메드와 숲>라는 글에서 주체와 객체의 전복이 일어나는 실존적(미적) 체험의 순간을 통해 그 단초를 마련한다.

III. 체험된 순간들에 소개된 티벳 화가 세케르 아흐메드의 그림 <숲속의 나무꾼>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다. 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이 그림의 원경에 자리잡은 너도밤나무가 뒤로 멀어지면서 동시에 앞에 있는 나무들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럴까? 화가가 너도밤나무의 잎들을 앞의 나뭇잎만큼이나 크게 그리고, 너도밤나무 줄기에 빛줄기를 쏟아 부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숲 가장자리와 오른쪽 덤불숲의 기괴한 사선이 만나는 지점에 삼차원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이 여전히 2차원인 그림 표면에 머무름으로써 공간적인 모호성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덤불숲을 살짝 가리면(없애면) 너도밤나무가 원경으로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그림은 원근법을 잘못 이해한 화가의, 이른바 일종의 학문적 실수 탓일까 아니면 설득력을 결여한 화가의 미숙함의 결과 탓일까?

존버거는 파리에서 작업하며 쿠르베와 바르비종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가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말하며, 숲속을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실제의 실존적 경험과 조화를 이루도록 그리고자 했던 화가의 남다른 세계관 덕이라고 설명한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말한다. 숲은 우리에게 단지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존의 삶에서 하나의 사건(만남)으로 체험하는 그리고 감상자에게까지 확장되어 주체와 객체의 전복을 체험하게 한다고.

“세케르 아흐메드는 숲을,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물로, 그리고 그가 파리에서 배웠던 것처럼 그것으로부터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하나의 존재로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 움직이고 있는 것은 숲이다. 자신의 현재 존재를 가지고 있는 숲은 나무꾼과 반대 방향으로, 즉 우리쪽을 향해 앞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에게 접근하고, 그에게 도달하며, 그에게까지 확장하는 지속적인 머물기이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이젠 굳이 글쓴이가 왜 모호한(양가적인) 세케르 아흐메드의 그림을 원근법에 위배되는 비논리적(비문법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실존주의적인 방식으로 읽어냈는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창작자의 세계관에 따라 회화의 표현이 달라지듯, 이제 회화를 감상할 때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의미(문화)를 창조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날개짓이라도 시도해보기를 권하며, 아울러 존버거의 말대로 프리미티브 화가들이 서툴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의 존재 체험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살아있는 감동을 주었듯이, 자신만의 눈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나에게도 청춘에게도.

영화로 사유하기 (3) : 쇼트(shot)

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모든 문제는 언제나 사람들이 쇼트 혹은 쇼트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아는데에 있다”는 파스칼 보니체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번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일단 이 문장의 의미는, 영화에서 모든 중요한 물음은 언제나 쇼트와 관련되며 그렇기 때문에 쇼트(들)을 이해하는 것이 영화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쇼트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카메라의 움직임, 쇼트의 크기, 길이 등을 파악한다는 것인가? 만일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건 누구든 측정하고 관찰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카메라 움직임, 쇼트의 크기와 길이 그리고 앵글 등을 파악하는 것은 영화 이해에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안다고 영화가 쇼트를 다루는 방식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특정한 움직임과 크기, 길이, 앵글을 가진 쇼트가 특정 영화의 특정 부분에 등장해야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쇼트를 다루는 방식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체 ‘쇼트를 다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또한 그것이 영화에서 어떤 중요성과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쇼트’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쇼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당한 개념 규정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쇼트를 다룬다는 말의 의미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쇼트’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우리는 대체로 그것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와 관련된 모든 곳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개념에 대해 정말 우리는 익숙한만큼 잘 알고 있을까? 영화 이론가, 영화사가, 영화 편집인, 영화 감독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영화학의 기본 단위를 쇼트로 정하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쇼트는 같은 개념도 아니며, 따라서 같은 기본 단위도 아니다. 프랑크 베버의 <영화미학용어사전>에 의하면, 쇼트란 카메라가 작동되는 순간부터 멈추는 순간까지 한 장면이나 사물을 연속적으로 촬영한 것이다. 이 정의는 연속적으로 촬영된 필름의 시간적 길이인 ‘테이크(take)’ 개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의내릴 경우 ‘미디엄 쇼트’, ‘롱 쇼트’, ‘클로즈 쇼트’ 등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이런 구분은 ‘하나의 쇼트는 주요한 등장인물들이 같은 프레임화와 각도하에서 카메라와의 거리에 따라 기록된 짧은 장면’이라는 <라루스 영화사전>에 제시된 공간적 정의로서의 쇼트 개념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일단 두 개의 개념 정의만 비교해 봐도 쇼트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의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두 가지 정의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적용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두 가지 개념 정의를 잘 결합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대답부터 하자면 ‘아니다’이다. 두 가지 개념 정의를 결합하면, ‘등장인물들이 같은 프레임화와 각도, 그리고 동일한 카메라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연속적으로 촬영된 필름 단편’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쇼트인가? 물론 이 정의에 부합되는 쇼트들도 있다. 하지만 이에 부합되지 않는 수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대체로 사람의 얼굴만 화면에 포착되었을 경우 클로즈 쇼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고다르의 영화 <그녀의 삶을 살다 Vivre sa Vie>의 한 장면처럼 얼굴이 아주 작게 화면의 하단에만 등장하고 화면의 다른 부분은 텅 비어 있다면 이 쇼트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혹은 책상 위의 유리잔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하여 카메라가 끊김없이 이동을 하여 미디엄 쇼트, 롱 쇼트 크기로 각기 다른 대상들을 포착할 경우, 이를 무슨 쇼트라고 부를 것인가. 이런 사태에 대해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은 ‘쁠랑세깡스(plan-sequence, sequence shot)’라고 불렀고, 이에 대해 장 미트리는 시간적 개념과 공간적 개념을 뒤섞은 말도 안되는 개념이라며 비판했던 사례 역시 쇼트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례들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몇몇 사례들만으로도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오던 쇼트에 대한 개념 규정들이 타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쇼트에 대한 시공간적 개념 규정들을 조합하는 것 역시 충분한 개념 규정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영화에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명하기 곤란한 쇼트들이 빈번히 나타난다. 또한 새로운 방식의 쇼트의 등장이 새로운 영화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이러한 사건들이 영화의 역사에서 비정상적 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체 쇼트 개념은 무어란 말인가. 어쩌면 고정된 의미로 쇼트를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임무 mission impossible’는 아니었을까. 혹은 쇼트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잘못 제기된 물음은 아니었을까.

쇼트 개념 정의에 대해 이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쇼트를 촬영상의 기술적인 요소들만을 가지고 정의하고자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물론 쇼트란 카메라가 그 앞에 있는 대상들을 촬영한 필름 단편임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쇼트는 단순히 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진 특정한 크기와 길이를 가진 필름 단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제시되는 영화 전체의 부분들로서의 쇼트이다. 영화를 촬영된 단편들의 집합의 측면에서 접근할 것인지 아니면 영화를 어떤 흐름을 가지는 하나의 전체로 접근할 것인지에 따라, 쇼트 개념의 이해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들뢰즈는 움직이는 이미지들로 관객에게 주어진 영화 전체라는 관점에서 쇼트에 접근한다. 아무리 정적인 영화라 하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영화는 없다. 대상의 커다란 움직임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이 없다 하더라도 아주 미세한 눈빛의 떨림이나 미묘한 빛의 움직임이라도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관객에게 운동으로서의 이미지, 즉 ‘운동-이미지’를 준다. 이 ‘운동-이미지’라는 개념은 베르그손의 철학을 바탕으로 들뢰즈가 제안한 개념이다. 운동-이미지 개념 자체를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쇼트를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 맥락에서의 이 개념의 의미는 베르그손과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선지식이 없더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인가가 운동한다는 것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지속을 함축하는 것이다. 즉 운동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고, 모두가 알다시피 영화는 특정한 길이의 시간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이 런닝타임이든 아니면 디제시스적 이야기의 시간이든 혹은 그것과 함께 호흡하는 관객의 시간이든 아니면 시간 자체에 대한 사유이든간에 말이다. 그래서 운동은 이러한 시간의 한 부분이지만, 이 부분은 시간의 흐름에서 무 자르듯 잘라내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인위적으로는 나누어질 수도 없고 굳이 나눈다면 그 본성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성격을 가진 부분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음악의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컷팅하여 핸드폰 벨소리로 지정했던 경험을 떠올려보자. 처음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좋아하는 음악이 울리니까 좋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겨워지고 듣기 싫어졌던 경험은 아마 누구나 해봤을 것 같다. 분명 좋아했던 음악인데 왜일까. 우리가 어떤 음악의 어떤 부분을 좋아했던 이유는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앞뒤 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부분이 마음에 충격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운동과 지속하는 전체와의 관계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음악에서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들과의 차이와 변화를 표현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동-이미지란 지속하는 전체의 어떤 변화를 표현하며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지속하는 전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들뢰즈는 쇼트를 운동-이미지라고 말한다. 운동-이미지로서의 쇼트는 데쿠파주(d?coupage: ‘오려내기’라는 의미의 용어로서, 시나리오를 분석하여 촬영대본으로 옮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영화 전체의 시나리오가 전제된 상태에서 쇼트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지시하는 것으로서,, 프레이밍뿐만 아니라 한 쇼트의 지속 시간, 미장센 등이 포함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데쿠파주에 따라 각 쇼트가 구성되고 촬영된다. 이런 맥락에서 데쿠파주는 단순한 커팅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에 의해 한정된 것으로서, ‘닫힌 체계에서 집합의 요소들 혹은 부분들 사이에서 세워지는 운동 규정’이다. 운동은 대상들 사이의 상대적인 이동 운동이지만 동시에 이 운동은 지속하는 전체의 절대적 변화를 표현한다. 이 두 측면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쇼트는 지속하는 ‘전체의 움직이는 단면(coupe mobile d’un tout)’으로서 전체의 변화를 표현하는데, 이 변화는 집합의 부분들 사이의 위치변경과 같은 상대적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쇼트 안에서의 대상들의 위치변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운동은 영화 전체의 질적 변화의 흐름을 드러내어 표현해 주어야 한다. 만일 어떤 쇼트가 이러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쓸데없는 쇼트이고, 편집에서 삭제되어야 할 쇼트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쇼트는 프레임(닫힌 집합)과 몽타주(열린 전체)를 매개하는 것이라는 정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쇼트는 이러한 추상적 정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측면을 끊임없이 오가는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구체적인 의미를 발견한다. 쇼트는 집합을 구성하는 대상들에 따라 지속을 하부 지속으로 나누면서 동시에 이러한 하부 지속들을 하나의 지속 안으로 재통합한다.

그런데 집합의 차원과 전체 지속의 차원을 끊임없이 오가면서 부분들을 전체의 지속에로 결합시키는 운동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의식(conscience)’이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우리가 이미지들 중 일부분을 지각할 때 개입되고 또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곁에 수없이 펼쳐진 이미지들 중 우리는 부분만을 지각한다. 지각에서 작동되고 있는 선택과 배제는 나의 필요나 관심 혹은 기억 등 주관적인 요소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관적 요소의 개입은 단순히 부과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미지들 중 일부분을 선택할 때 나의 지각에 의해 형성된 어떤 절단면이 형성되며, 그렇게 선택되어 베어내어지는 지각된 물질의 면이 물질적 우주 전체에서 분리되는 바로 그 순간 지각하는 의식도 발생한다.(여기에서 절단면이 쁠랑plan, 즉 쇼트이다. 프랑스어에서 쁠랑은 영어의 shot, plan, plain 등으로 번역되며, 그림에서 전경, 중경, 후경을 구분해서 말할 때의 경(景)에 해당된다.) 물질에 내재적으로 함축되어 있던 의식은 지각의 순간에 현실화되어 나타나며, 그 의식은 나의 몸을 꼭지점으로 둥글게 말려 들어가며 우리 의식의 내면을 형성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물질 역시 우주 전체의 지속에 약하게나마 참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물질에는 의식이 내재적으로 함축되어 있는데, 특정한 방식으로 지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물질의 흐름 중 일부를 나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범위로 한정하며 나를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지속과 대상의 지속이 만나 특정한 지속의 흐름이 형성되며, 특정한 리듬을 가진 지각된 물질 세계의 부분이 바로 쁠랑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쁠랑이란 나의 의식의 지속과 대상의 지속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특정한 지속의 리듬이고 그로부터 의식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 의식은 전체의 지속과 부분으로서의 쁠랑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나눔과 통합의 역할을 한다. 이 부분, 즉 의식으로서의 쁠랑(쇼트)의 의미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나와 세계가 만나는 지점으로 말이다.

들뢰즈는 영화에서 이러한 나눔과 통합의 운동을 하는 의식이란 감독도 주인공도 아닌 카메라라고 말한다. 감독이 아닌 카메라가 영화적 의식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사람이 카메라를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지각과 카메라의 지각은 다르다. 들뢰즈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적 지각에서는 시선의 정지, 정박, 고정된 점 또는 분리된 시점 등이 개입하지만, 카메라를 통한 영화의 지각은 정지들마저도 통합하는 오로지 즉자적인 진동일 뿐인 단 하나의 운동으로 연속적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지각이 나의 몸을 중심으로 만곡된 거의 순간적인 쁠랑들의 집합인데 비해, 영화의 지각은 지속적인 중심점의 재설정으로 인하여 연속적인 재중심화가 이루어지며 이는 탈중심화에 이르게 된다. 결국 감독이 미리 계산하여 쇼트를 구성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카메라의 지각 중심의 차이로 인해 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쇼트는 주관적 구성물의 범위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시각적 무의식’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보다 쉬울 것이다. 인간의 시각에서는 마치 무의식의 영역처럼 신체적 한계, 감정, 이데올로기 등에 의해 억압되어 보이지 않던 시각적 무의식의 영역이 카메라를 통해서는 드러난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들뢰즈의 영화적 지각이 인간의 지각과 다르다는 점이 좀 더 이해될 것이다.

카메라를 중심으로 데쿠파주된 움직이는 쇼트는 마치 의식처럼 영화 전체의 지속을 하부 지속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영화 전체로 재통합시키는 운동을 통해 영화 전체의 변화를 부분 속에서 표현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들은 영화 전체와 공명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해는 쇼트가 무엇인지의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을 가능하게 해준다. 영화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대상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개별 영화들마다 다른 방식의 쇼트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전체와 공명하며 대상들의 리듬을 포착해내는 쇼트가 영화의 분석단위로 등장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쇼트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인가. 들뢰즈는 ‘운동의 통일성’이 바로 쇼트를 규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쇼트의 통일성은 자신이 포함하고 있는 다양체에 의거하여 변이하지만, 동시에 그 상관적 다양체의 통일성이기도 하다. 결국 물리적으로 커트된 필름 단편 혹은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 등과 같은 기술적인 기준들은 더 이상 유효한 것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들뢰즈에 의하면 쇼트에 대한 기술적 개념 규정을 벗어나는 모든 쇼트들까지도 우리가 쇼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운동의 통일성 때문이며, 그는 운동의 통일성을 갖추고 있는 네 가지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첫째, 각도나 시점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카메라가 하나의 연속적 운동을 하는 경우이다. 여기에서는 카메라의 연속적 운동이 쇼트의 통일성을 보장해주는 경우를 의미한다. 둘째, 물리적으로는 구분된다 하더라도 쇼트들의 연결이 갖는 속성에 의해 쇼트들이 완벽한 통일성을 가질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통일적인 운동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 경우 여러 개의 쇼트로 나누어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유명한 예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서 카메라가 집의 담을 넘어 지붕의 천창으로 진행하다가 마치 창문을 뚫고 실내의 여자에게 다가가는 경우 두 개의 필름 단편은 하나의 완벽히 통일된 운동을 보여준다. 셋째, 시야심도(profondeur de champ)를 가진 쁠랑-세캉스의 경우이다. 이 경우는 그저 하나의 쇼트로 여겨질 경우도 있으나, 들뢰즈와 보니체르는 물리적인 쇼트들의 연결만이 몽타주가 아니라 한 화면 내에서 면들의 중첩이 깊이로 포개어져 있는 경우 역시 쇼트들의 연결로 이해하고 있다. 잘라 붙인 쇼트들의 수평적인 연결이 아니라, 한 화면 내에 수직적으로 쇼트들이 중첩되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공간의 깊이감이 깊게 나타나 있다고 이 중첩된 면들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의 가느다란 실에 의해 전경-중경-후경이 운동의 통일성으로 연결되었을 경우 하나의 쇼트로 파악할 수 있다. <시민 케인>에 많이 등장하는 심도 깊은 쇼트들이 그 예이다. ‘화면영역의 깊이는 세계로 열려진 지평선이 아니라 쇼트들의 배열’이라는 보니체르의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넷째, 평면적인 쁠랑-세캉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모든 공간적인 쇼트들이 여러 프레이밍을 통과하는 재화면잡기를 통해 구성되는 다양체로서, 이 경우 쇼트의 통일성은 완전한 평면성으로 나타난다. 마치 흐르는 듯 매끄러운 유형의 운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들뢰즈는 이렇게 네 가지 유형의 ‘운동의 통일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목록은 결코 완결된 목록이 아니다. 운동의 통일성만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유형의 쇼트들을 추가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경우에서 쇼트란 운동의 통일성의 차원에서 고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쇼트의 통일성은 단지 물리적으로 커트되지 않았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물리적으로 나누어진 쇼트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경우도 운동의 통일성이 있을 경우에는 하나의 쇼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몽타주는 쇼트들을 잘라서 이어붙인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야심도에 대한 설명에서 언급했듯이 수직적으로 화면 영역 안에 중첩되어 제시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쇼트와 몽타주는 실천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면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쇼트와 몽타주에는 이미 프레임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레임-쇼트-몽타주는 모두 지속하는 전체의 변화를 표현하는 운동 이미지의 두 경향성과의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 세 개념을 기술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저 추상적인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구체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구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쇼트가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 영화 미학적 단위로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다양체로서의 운동 이미지가 부분 및 전체와 맺는 관계 그리고 이 다양체가 가지는 운동의 통일성이라 할 수 있다.

쇼트를 운동의 통일성의 관점에서 파악하게 되면, 서명과도 같은 특정한 운동의 스타일을 통해 작품이나 작가를 분석해야 한다는 들뢰즈의 주장이 보다 분명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쇼트의 운동은 전체와 부분 사이를 오가며 분할과 통합을 행하는 영화적 의식이므로 쇼트를 분석하게 되면 전체가 부분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그러한 방식으로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단위로서의 쇼트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일 수 없다. 영화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미학적 단위로서의 쇼트는 전체의 변화를 표현하는 운동의 관점에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운동의 통일성에 따라 쇼트를 규정하는 것은 영화 분석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운동의 통일성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통해 재정의된 쇼트 개념은 영화 분석의 중요한 기본 단위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또한 쇼트란 영화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을 어떠한 흐름을 가진 것으로 파악했는지를 포착한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있는지, 그 사유의 궤적을 이해하게 해 준다. 특히나 다른 시각 예술들이 성취해 낼 수 없었던 운동의 흐름과 운동의 단편들을 통해, 카메라-의식이 그것이 속해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쇼트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은 쇼트야말로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면서 동시에 영화적 특수성을 통한 사유방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가끔 영화를 보다가 마주치는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핸드폰이나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기 위해,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캡춰하는 경우가 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그토록 아름답던 장면의 느낌이 확 죽어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처음엔 내가 잘못된 지점을 캡춰해서 그런걸까 의심하면서 여기저기 다시 캡춰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뭘까.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화의 경우 당연히 움직임과 정지는 너무 다르니까 그렇겠지라고 이해가 되지만, 실은 내가 캡춰하려 했던 영화들은 빠른 속도감은 커녕 나뭇잎만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상당히 정적인 영화들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어떤 장면이 너무 좋다고 느낀 것은 단순히 훌륭한 미장센 때문만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어떤 대상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그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총체적으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 특정한 시간 속에서 어떤 대상과 같이 호흡하고, 움직이고,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쇼트는 바로 그러한 대상의 흐름을 절단해서 우리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화면으로는 그 움직임과 시간의 느낌들을 결코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옆의 사진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단편 영화 <엉클분미께 보내는 편지 A Letter to Uncle Boonmee>의 한 장면이다. 너무나도 멋진 장면이었는데, 정지화면으로 캡춰한 순간 그 호흡, 빛, 공기가 다 사라져버렸다. 이 장면의 호흡은 영화를 직접 봐야지만 알 수 있다. (온라인 상영관 주소 : http://www.animateprojects.org/films/by_date/2009/a_letter_to)

영화의 역사를 훑어보면 알 수 있듯,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쇼트는 기술적인 규정들로 한정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지니며 나타나곤 했다. 새로운 쇼트의 등장에 뒤늦게 이론가들은 쇼트 개념을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할지를 놓고 논쟁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논쟁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쇼트들은 계속해서 출현했다. 이제 보니체르의 “모든 문제는 언제나 사람들이 쇼트 혹은 쇼트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아는데에 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윤곽이 그려진다. 결국 영화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화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사유했는지를 쇼트들이 다루어진 방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영화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쇼트가 무엇이며 각 영화마다 쇼트가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파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화적 사유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이리라.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한흥수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가슴에서 여전히 펄떡이는 유년의 기억들

두 아이의 아빠로 힘든 사회생활 속에서도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흐릅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작은 농촌 마을 이었습니다. 집 뒤에는 나지막한 청산이 있고, 마을 넘어 드넓은 논이 있고, 논을 지나면 역내라는 맑은 샛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7명의 또래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틈만 나면 놀 것을 찾아 온 마을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여름이면 우리의 즐거움은 단연 물고기 잡이였습니다. 수로에 얼망을 놓고 친구들이 물고기를 몰면 그 조그만 얼망 가득 붕어, 매기, 미꾸라지가 펄떡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물고기를 산에 가지고 가서 어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한 친구는 집에서 몰래 양은솥을 가져오고, 한 친구는 고추장을 가져오고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는 친구는 삭정을 모아 불을 피웠습니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아도 어찌나 맛있던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 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속에 군침이 흐릅니다.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를 애완동물로 키우다

나는 유독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애완동물을 키우지만 옛날에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짐승을 잡아다 집에서 키웠습니다. 기억에 남는 애완동물은 새매였습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포획 및 사육이 금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법도 없었고, 나 또한 죄가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새매는 높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새끼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대로 둥지를 한번 쑤시고 어미매가 날아오면 도망가고 또 쑤시기를 반복했더니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네 마리를 집에 가져가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를 주며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네 마리는 모두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왔는데 두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어머니께 따져 물었더니 동네 아저씨가 참새를 쫓는다고 두 마리를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급히 매를 찾아 논으로 갔더니 매의 날개는 잘려있고 끈에 묶이어 허수아비 마냥 참새를 쫓고 있었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두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새매는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더니 다음 날부터는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마을은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살아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유년시절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자연생태계를 몸으로 배우고, 친구들과 싸우면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마을에서 서리하다가 걸려 도둑질의 나쁨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책에서 말했듯이 지나고 보니 마을은 공동체였습니다. 아이들 끼리 어울려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다 물에 빠지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구조했고, 서로 싸우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꾸중을 했으며 예의범절 또한 마을 어른들의 몫 이었습니다. 이런 마을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발전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만 기억하고 모든 가치를 부와 명예로만 생각하고 소중한 아이들에게서 추억을 빼앗고 학원으로만 몰고 있습니다.
저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승강기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고 계단에는 아이들이 피운 양담배가 수북이 쌓여 있고 아파트 뒤편 구석진 곳에는 깨진 술병과 먹다 남은 안주가 너저분하게 놓여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지친 마음을 손쉽게 풀 수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져 듭니다. 게임 속에서도 여전히 경쟁은 시작됩니다. 지친 마음을 쉬려고 시작했던 게임은 어느새 더욱 심신을 피로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란 똑똑한 아이들이 다스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사회일까요, 무한 경쟁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사회일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아이들에게 이제는 우리 부모에게 선물 받은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날개를 잃고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박원순 작가는 마을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사라져 가는 마을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저절로 느껴지는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 전북 임실의 치즈마을, 환경 농업공동체를 실현시킨 경북의성의 쌍호공동체마을 등 책에서 소개된 모든 마을들은 의식 있는 몇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참여로 인해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마을이 사라지면 우리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미래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소중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서는 농어촌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되고,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도 마을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구해야 됩니다. 어른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아파트 주민끼리 서로 인사하고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마을 공동체로 만들어 우리가 잊고 지내던 품앗이 문화를 되살려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부터 변해야 합니다. 너무 자녀들을 경쟁에 밀어 넣지 말고, 아이들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공동체 문화가 정착 되어야 아이들의 범죄도 사라지고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아름답던 유년시절을 추억하며 날개를 잃고 아무런 생각 없이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다시 한 번 사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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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다섯째 글로서 박원순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검둥소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3)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3)

이정호(방송대)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1)

우리는 지금까지 에로스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이제 사랑과 관련한 두 번째 위대한 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 대해 살펴보자. 이 여신의 영역은 「일리아스」제5권에(428행 이하)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제우스는 분수도 모르고 지상의 전투에 간여했다가 손에 상처를 입은 귀여운 딸 아프로디테를 위로하며 이렇게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내 딸아 전쟁에 관한 일은 네 소관이 아니란다. 너는

욕정 가득한(himeroenta) erga gamoio나 맡아 보아라, 전쟁에 관한

모든 일은 아레스와 아테네가 염려할 테니.

 

1.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아프로디테가 케스토스 히마스를 걸치고 있다. 폼페이 벽화 AD 1세기경. 나폴리 고고학박물관 소장

여기서 erga gamoio를 “혼사(婚事)”라고 번역할 경우 그것은 본래의 의미를 곡해하는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결혼의 신이 아니다. 보통 gamos(gamoio는 gamos의 소유격)는 ‘결혼’의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전적으로 아프로디테 여신의 영역 즉 “성적 결합(die geschlechtiche Vereinigu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딧세이아」의 한 구절은 그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22. 444 이하). 오뒷세우스는 그 부분에서 구혼자(mn?st?r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한 이타케의 불한당들)들과 음란한 짓을 저지른 부정한 하녀들을 끌고 가 죽음으로 죄값을 치루게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날이 긴 칼로 한 명도 남김없이 그들을 찔러 죽여라. 구혼자들이 하자는 대로 은밀하게 몸을 섞으면서 느꼈던 ‘아프로디테’를 그들이 잊을 때까지” 여기에서 여신의 이름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단적으로 성적인 쾌락이고 그것이야말로 사실 이 여신의 고유한 관심 영역이다. 그리고 “아프로티데의 일”의 의미를 갖는 아프로디시아(aphrodisia)라는 말 역시 오직 양성간의 성적인 결합에 한정하여 쓰이는 말이다.

여신의 세력범위가 매우 명료하게 드러나는 예는 「일리아스」의 또 다른 한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14. 214 이하) 헤라(Hera)는 제우스를 잠자리로 끌어들여 트로이아 성벽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로부터 제우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으려 하지만 이 결혼의 여신은 사랑을 유혹하는 데는 별로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로디테에게 남성을 욕정에 빠트리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를 청하고 아프로디테는 그것을 받아들여 이른바 “아프로디테의 띠”라고 불리우는 케스토스 히마스(kestos himas)를 헤라에게 건네준다. 이러한 끈을 걸친 예로서는,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도시 키슈(Kish)와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Susa)에서 출토된 기원전 3000년경의 풍요의 여신의 나체상과, 폼페이의 벽화에 정부 아레스(Ares)와 함께 그려진 유명한 아프로디테의 그림이 있다. 이 끈에는 영험이 확실한 마법의 무늬가 자수(刺繡)되어 있었다(kestos라는 형용사는 그것을 가리킨다). “그 안에는 애정(philot?s)과 욕정(himeros) 그리고 아무리 사려 깊은 자일지라도 그 마음을 호리는 사랑의 밀어(oaristus)와 유혹(parphasis)이 깃들어 있었다”(14. 216-7) 헤시오도스도 아프로디테의 몫으로 정해진 명예로 처녀의 밀어(partheniou oaros), 미소(meid?ma), 속임수(exapat?), 달콤한 희열(glykeros terpsis), 애정, 상냥함(meilichios)을 들고 있다.(「신들의 계보」205)

이처럼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비록 중첩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에로스가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된 갈망이라면, 아프로디테는 그 갈망의 한 구현으로서 욕정에 불타는 erga gamoio 즉 ‘성적 결합’을 의미한다. 에로스는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에서처럼 정신적인 것에로의 상승을 이끄는 힘으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아프로디테를 사랑의 정신화와 연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곧 살펴보겠지만 이 두 개의 신격이 가리키는 영역은 상당부분 실질적으로 중첩이 되어 나타난다. 아프로디테 역시 활동하는 영역으로 보자면 따로 제한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2.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탄생, 퀴프로스섬에 닿은 아프로디테. 보티첼리 1485년,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소장

많은 신들이 그렇듯이 아프로디테도 처음부터 그리스의 신은 아니었다. 그녀는 소아시아 남쪽 퀴프로스섬의 신으로서 퀴프리스(Kypris)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그녀는 퀴프리스 신앙의 중심지였던 파포스(Paphos)에서 우상으로서 숭배되고 있었고 원추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역사(Historiae)」2·12) 이와 비슷한 예는 페니키아의 화폐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화폐에 원추형의 모습으로 새겨진 뷔블로스의 아스타르테(Astarte)신 역시 고대 셈족의 풍요와 생식의 여신이었다. 이것 또한 아프로디테가 오리엔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여겨지는 주된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리스 원주민들이 대모신(Große Mutter)으로 섬기던 여신들 중 한 명이 아프로디테의 원형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아프로디테의 숭배에 오리엔트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의 주요 신들이 여명기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지역의 문화들이 융합해서 생긴 결과라는 사실에 충분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튼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개념상 서로 매우 가깝고 중첩되는 부분도 많아서 양자는 차츰 밀접하게 관계를 갖게 되었다. 호메로스는 아프로디테를 제우스와 디오네(Dione)의 딸로 그리고 있지만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에서 그녀의 탄생을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왕위 계승 신화와 연결 짓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그와 유사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힛타이트 신화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신들의 계보」에서 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에 의해 낫으로 잘려진 우라노스의 생식기가 오랫동안 바다를 떠다니다 불사의 살점 때문에 생긴 거품으로부터 태어났다고 그려지고 있다. 헤시오도스는 이 부분에서 아프로디테가 남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를 들어 아프로티테를 ‘남근을 좋아하는 신'(philommedea)이라고도 불렀다. 탄생 후 아프로디테는 퀴프로스섬에 닿아 아리따운 여신의 모습으로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그녀가 땅에 발을 딛자마자 모든 것들의 생식욕구를 지배하는 여신답게 여신의 날씬한 발밑에는 사방으로 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그녀가 태어나서부터 신들의 종족에게 갈 때까지 그녀와 동행하고 있는 신들이 곧 에로스와 애욕의 신 히메로스(Himeros)이다. (「신들의 계보」187-202).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는 제사에서도 종종 일체화되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북쪽에서 기원전 5세기 때의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신전에 새겨진 증언에 의하면 이 신전은 그들 두 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에로스와 아프로디테의 동행은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프리즈(Ostfries)에 조각된 신들의 모임에서도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발랄한 아름다움에 빛나는 알몸 소년의 모습을 한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무릎위에 앉아 있다.

시인들이 뮈케나이의 여러 가지 호사스런 궁정 생활의 특색을 도입하여 올륌포스 신들을 시가로 그려냈을 때, 아프로디테 역시 확고한 지위를 갖는 신으로 그려졌다. 이 여신을 포함해서 올륌포스신들은 인간들처럼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면모도 풍기면서 제멋대로 행동하곤 하지만 그 신들 모두는 자주 상궤를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위대하다. 아프로디테는 이다(Ida)산상에서 벌어진 미모경연(Sch?nheitswettstreit)에서 파리스(Paris)가 자신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 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그 보답으로 파리스에게 헬레네(Hel?ne)를 안겨 주고 그 후로도 줄곧 파리스를 돌봐 주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제3권에서는 연적사이인 메넬라오스(Menelaos)와 파리스의 결투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만약 아프로디테가 수세에 몰린 파리스를 노골적으로 가로채 짙은 안개로 감싸 향기로 가득 찬 그의 방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그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의 호의는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양모를 빗질 하는 노파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마치 중매쟁이처럼 향기로운 옷자락을 흔들며 헬레네를 파리스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도록 유혹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에 담겨진 이 장면은 고뇌에 찬 한 여인의 정신적 깊이를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헬레네는 이미 자신이 남편 메넬라오스와 조국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그것을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유혹하는 노파가 다름 아닌 아프로디테인 것을 알아차리자 이내 정부인 파리스의 잠자리로 이끌고 가려는 그녀의 제의를 야멸차게 거절한다.

3.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비너스와 마르스) 보티첼리 1483, 런던국립미술관 소장

“아프로디테님! 당신이나 그를 위하여 애태우며 지켜주세요. 그러시면 언젠가는 그가 당신을 아내나 노예로 삼을 날이 올 거에요. 아무튼 나는 그리 가서 그의 시중을 들지 않겠어요. 그랬다간 모든 트로이아 여인들이 나를 욕할 거에요. 그렇잖아도 나는 마음이 한없이 괴로워요”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크게 격분하여 그녀를 거칠게 몰아 부친다. “나를 자극하지 마라, 무모한 여인이여! 내가 성내는 날에는 너를 버릴 것이며, 지금 내가 너를 격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그 만큼 너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 너는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 양쪽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일리아스」408-417) 올륌포스신들의 전횡은 요컨대 협박(Drohung)에 있다. 이 무서운 협박에 헬레네는 이내 겁을 먹고 어쩔 수 없이 하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트로이아 여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여신의 뒤를 따라 파리스에게 간다. 이 장면에서 만큼 협박이 극적이고도 효과적으로 표현된 예는 그리스 문학 전체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음울하고 무서운 장면 뒤에는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는 또 하나의 상황을 보며 환호하는 이오니아 정신이 가득 넘쳐난다. 방안에서는 아프로디테의 의도대로 파리스와 헬레네가 호사로운 침대에 누워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고, 밖에서는 메넬라오스가 불구대천의 적인 파리스의 빈 투구만을 손에 쥔 채, 파리스를 찾기 위해 야수처럼 무리들 사이를 미친 듯이 뛰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오뒷세이아」 제4권에는 텔레마코스(Telemachos)가 아버지 오뒷세우스를 찾아 가는 길에 스파르타 궁정에 들렀다가 다시 메넬라오스에게 돌아와 그의 아내이자 정숙한 주부로서 살아가고 있는 헬레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그리스 서사시의 등장인물들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것을 언제라도 신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헬레네도 그 장면에서 트로이아에 몰래 잠입한 오뒷세우스를 자기가 숨겨주고 뒷바라지까지 했노라고 변명조 섞인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뒷세우스 그분이 트로이아 사람들을 죽이자….나는 마음이 흐뭇했어요. 내 마음은 벌써 오래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돌아서 있었고, 아프로디테님이 그 때 나에게 불어넣은 미혹(at?), 그러니까 내 딸과 우리 부부의 침실과 그리고 지혜로나 외모로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 남편을 버리고, 사랑하는 조국을 뒤로 한 채 저 땅으로 달려가면서 가졌던 그 미혹들을 지금은 후회하고 있거든요”(260-264). 이에 메넬라오스는 언제 헬레네가 파리스와 놀아났던가 싶은 말투로 “부인, 그대가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kata moiran) 말이오”라고 말하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그녀 자신이 결코 결혼의 신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오뒷세이아」의 제8권에서 음유시인 데모도코스(Demodokos)가 노래하고 있는 것은 이 여신의 부정한 행동이다. 그녀는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와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는 쇠를 다루는 기술에서는 따를 자가 없는 대가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절름발이 장애자였다. 그런데 그가 집을 떠나 있던 어느 날 당당한 체구의 전쟁의 신 아레스가 아프로디테를 찾아와 갖은 선물을 주며 그녀를 유혹하고 마침내 잠자리를 같이 한다. 헬리오스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헤파이스토스는 화가 나서 침대 기둥 주위와 위로 도망칠 수 없는 올가미를 거미줄처럼 둘러쳐 놓았고 결국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몰래 잠자리를 같이 하려다 그 올가미에 걸려든다. 이 소식을 들은 헤파이스토스는 노여움으로 가득하여 집으로 돌아와 그 가소로운 광경을 보라고 신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그러자 부끄러워 집에 남은 여신들을 빼고 많은 신들이 그곳에 몰려와 그 광경을 보고서는 모두 웃음을 금치 못한다. 이 기묘한 장면을 읽어가면서 어떤 독자들은 어떻게 하면 신들의 노래에서 그 추잡함을 거두어 내고 읽을 것인가를 고민할지도 모르지만 이어지는 신들의 대화를 듣고 나면 고민 자체가 금새 무색해진다. 우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아폴론(Apollon)은 남동생인 헤르메스(Hermes)에게 너는 이와 같이 강력한 사슬에 묶여 꼼짝 못한다 하더라도 침대위에서 황금의 아프로디테와 함께 자고 싶으냐고 묻는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지체 없이 “그랬으면 오죽 좋겠소!”라고 말하면서 “설사 이 보다 3배 이상의 많은 사슬들이 나를 감고있다 해도 그리고 신들과 모든 여신들이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나는 황금의 아프로디테 옆에 눕고 싶소이다”라고 대답한다. (266-342). 그러자 많은 신들이 다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그러한 광경 앞에서 유독 포세이돈만은 웃지 않고 헤파이스토스에게 아레스가 신들 앞에서 합당한 벌금을 낼 것이고 자기가 그것을 보증할테니 아레스를 풀어주도록 간청한다. 결국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의 간청을 받아 들여 그들을 풀어주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군말 없이 반대방향으로 헤어져 자기들이 살던 곳, 즉 아레스는 트라키아로,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성역인 퀴프로스섬 파포스로 돌아간다. 퀴프로스섬의 우아의 여신들인 카리테스(Charites)들은 돌아온 아프로디테를 정성껏 목욕 시키고 영생하는 신들의 살갗을 뒤덮고 있는 불멸의 기름(elaion)을 발라주고 휘황찬란하고 사랑스런 옷을 입힌다. 이와 같이 데모도코스의 노래는 신들의 속내는 물론 관능의 신 아프로디테 여신 또한 그 황홀한 광채를 털끝만큼이라도 손상하지 않은 채 온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다시금 드러내면서 끝이 난다.

신화 속에 나타난 신들과 인간들의 이러한 모습들 모두 고대인들의 삶의 반영으로서 신화가 표상하고 있는 뿌리 깊은 인간 본성의 중층적 층위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 아프로티데(2) 다음에 계속)

세상과 다른 꿈, 조선 선비 9인의 사상을 읽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안세환 (보령 책 익는 마을 회원)

 
인터넷 서점 새 책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라는 제목을 볼 때 당시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걸어갔을 그들을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을 했든, 타의에 의해서 선택을 했든 그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 길을 걸어갔을 꼿꼿한 선비의 모습을 제목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5권의 새 책이 택배로 배달이 되는 시간에 마침 우리 ‘보령 책 익는 마을’ 박종택 촌장과 다른 몇 분이 오셔서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었다. 새 책들을 펼쳐 가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마을 분들은 이 책이 마음에 든다고 독후감을 쓰라고 한다. 여러 분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것으로 볼 때 제목에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를 살펴보니 ‘세상과 다른 꿈을 꾼 조선의 사상가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세상과는 다른 사상가들의 삶이 녹아져 있다. 그들의 생각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이 책에는 모두 아홉 명이나 되는 인물들을 아홉 장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김시습, 서경덕, 박세당, 정제두, 이익, 유수원, 홍대용, 이벽, 최한기가 그들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 보다는 대강의 삶의 언저리를 살펴보는 수준에서 읽어 볼만한 책이다. 나는 여기에 나오는 아홉 명을 다 설명할 수는 없고 김시습, 이익, 최한기 세 사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매월당은 공명과 지조 사이에서 고뇌한 ‘광인’으로 제목을 삼고 있을 만큼 지조의 사람이다. 그에게는 두 평가가 있다. ‘신세 망친 인간’과 ‘지조를 지킨 사람’이라는 평가이다. 전자가 주로 일상적인 삶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지식을 담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평가이다. 그는 21살 때(1455년)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노와 슬픔에 찬 통곡으로 3일간 지내다가 공부하던 책과 원고들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그리고는 유랑의 길로 들어서는데 어떤 때는 분뇨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다. 그 후 설악산에 있는 오세암에 들어가 삭발을 하고 기인의 삶을 산다. 경주 남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쓰고, 호를 매월당으로 한다. 마지막 2년은 부여의 무량사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쳤다.

그의 기행을 살펴보면 어느 날 한강변을 지나다가 보니 한명회가 압구정 근처 한강변에 정자를 한 채 지어 시 한 수를 걸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그 시구는 이렇다.

靑春扶社稷 청춘부사직 젊어서는 나라를 붙들었고

白首臥江湖 백수와강호늙어서는 강호에 누워있구나

이 시의 작자가 한명회임을 알게 된 김시습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붓을 들어 표현하는데, 扶를 危로, 臥를 汚로 살짝 바꾸어 놓았다.

靑春危社稷 청춘위사직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했고

白首汚江湖 백수오강호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는구나

정말 촌철살인의 위트가 번뜩인다.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인 노년의 한명회를 향하여 이처럼 온 세상에 시원함을 줄 수 있는 인물이 김시습이다. 오늘날 이런 기개로 세상을 향하여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권력에 붙어 온갖 영화를 누린 한명회를 보는 김시습의 눈에는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강호를 더럽히는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에 한명회가 알고는 펄펄 뛰었지만 광인처럼 지내는 김시습을 어쩌지는 못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한명회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세상에서 돌아가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나보다.

매월당은 제법 많은 분량의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특히 도연명을 좋아해 그에 답하는 화도시(和陶詩)를 66편이나 남겼다. 또한 그의 소설 『금오신화』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여겨지고 있다. 단편소설 정도지만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이라는 5편이 실려 있는데, 앞의 세 편은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뒤의 두 편은 지옥과 용궁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신유학이라고 하며 주자에 이르러 완성을 본 성리학을 더욱 완성시켰는데, 그의 이기론을 보면 개개의 현상만을 인정하는 이기일원론자 같기도 하고, 보편과 현상을 다 함께 보는 이기이원론자 같기도 하다. 오늘날 학자들 간에 그의 이기론을 두고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다.

성호 이익(1681-1763)

먼저 영풍(獰風)이란 시를 보자.

野老竅窓疑不出 야로규창의불출 시골 늙은이 밖을 엿볼 뿐 나갈 엄두 못 내고

書生推沈?無言 서생추침묵무언서생들은 자다 일어나 아무런 말이 없다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엄청나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밤중에 지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하늘에서는 뇌성벽력이 일어 땅을 흔들 정도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하여 염려는 되지만 밖에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방에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이익은 관직에 나가는 청운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첫 시험에서 주어진 형식대로 쓰지 않은 것 때문에 2차 시험에 나가지 못했고, 또 친형이자 스승인 이잠이 사형당한 일이다.

그 아픔을 뒤로 하고 재야에 묻혀 농사와 교육에 종사하면서 학문연구에 몸을 바치기로 한다. 시골 초가의 방안에 앉아 그가 접할 수 있는 넓은 세계로 문을 열어 놓고 학문을 한다. 철학, 정치, 사회, 역사, 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가 그의 관심에 들어와 있다. 부친이 청나라 사행길에 구입한 많은 서구 관련 책들을 읽고 서구에 열려진 진보적인 유학자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그의 주장 중에 6두(?)라는 것이 있다. 여섯 개의 좀이 있다는 말이다. 노비제도, 과거, 문벌중시, 잡기와 무당, (일부의) 승려(승적으로 인해 병역기피가 많았기에), 게으름 등을 말하는데 없어져야 할 사회의 악으로 보고 있다. 성호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입장에서 정책을 펴도록 주장을 한다. 이런 주장들은 대부분 성호사설에 들어 있다. 그에게 늘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도 있다. 절대적인 존경의 마음을 가진 인재들을 제자로 둘 수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조선 후기 이름을 떨친 윤동규, 안정복, 신후담, 권철신 등이 그의 제자였고,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게다가 여든셋까지 살았으니 그 시대에 장수한 셈이다.

성호사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옛 글과 자신의 글을 뒤섞어 책을 만들었기에 후대의 정약용은 올바른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런 중립적 사유가 있기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내용이 실천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익이 제기한 부정부패, 빈부의 문제와 개선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혜강 최한기(1803-1877)

혜강 최한기는 1980년대 이후에 관심과 연구가 부쩍 늘었다. 혜강의 학문은 넓고 깊다. 그가 남긴 1천여 권의 저서는 최남선이 탄복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니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그는 개성 출신인데 ‘개성상인’과는 거리가 먼 저술가로 평생을 바쳤다. 그는 비싼 돈을 들여 북경에서 들어온 책들을 샀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책을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을 한다.

‘가령 이 책 중의 사람이 나와 같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천리라도 불구하고 찾아가야만 할 텐데 지금 나는 아무 수고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책을 구입하는 것이 돈이 많이 들기는 한다지만 식량을 싸가지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야 훨씬 난 것이 아니겠나.’

성리학자들에게 주공이나 공자는 성역의 존재다. 그들을 비평하는 것은 금기다. 그런데 혜강은 주공이나 공자에 대해서도 반대의 입장에 설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기측체의 서’에서 오직 두 성인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려는 맹점을 지적한다. 나라의 풍속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도 그들 두 사람이 남긴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며 변통할 줄 모른다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했다. 하기는 최근인 1999년에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내었다가 유학자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탄을 받았는가? 하물며 19세기의 사람임에랴!

그의 책 『신기통』과 『추측록』 두 권을 묶어서『기측체의(氣測體義)』라는 이름으로 중국 북경의 서점가인 유리창에서 발간이 되었는데, 이것은 수입일변도인 조선에서 중국으로 수출이 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혜강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미래에 대해 열려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문호가 닫혀 있었던 시대에 많은 책들을 통하여 배우고, 수많은 책을 저술하면서 시대를 앞서 나갔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자주 쓰는 용어 중에 ‘운화’란 말이 있다. 운화는 운동, 운행, 운영 정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상업에 있어서 나와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업을 운영하는 것이 곧 이익을 보는 최상의 길이니 그 길을 따르라고 한다. 이런 시각은 비단 상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 이익이 되어야 하고, 사회에서도 서로 이익이 되는 보편적인 방법이 최상임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 하며

저자는 독특한 사상의 길을 걸어갔던 아홉 명을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작은 책에 담다 보니 가볍게 그 분들의 정신보다는 삶을 이해하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고, 나 또한 다 다룰 수 없어 세 분만 들어 그야말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았다. 특히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e시대와 철학> 사이트에 글을 싣는다는데, 철학 쪽보다는 우리 선조들의 삶에 조명을 하게 된 셈이어서 의도에 상충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철학책 중에서 선정할 걸’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위안을 삼는다.

여러 사람들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면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해의 정도가 문제이다. 저자의 생각과 글 속에 나타나는 의미를 내가 얼마만큼 아느냐가 관건이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읽을 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해의 정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여기며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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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넷째 글로서 이종호 님의 <나는 불온한 선비다>(위즈덤하우스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