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거라투스트라, 벌교에 가다(1) [자거라투스트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MEGA 사업단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자거라투스트라는 오래 전 선배님과의 한 술자리에서 전남 보성 벌교읍에 가보자고 약속했다. 선배님 말씀으로 거기엔 홍암 나철 선생의 생가가 있다는 것이다. 자거라투스트라는 처음에 시원스럽게 약속했지만, 사실 꼭 가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도대체 벌교라면 저 멀리 남쪽 바다 끝이 아닌가?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땅 끝’이라지? 다행히 선배님이 술자리에서의 약속이라 생각하신 듯 독촉하지 않으니 자거라투스트라도 그런 약속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여름방학도 끝나갈 무렵, 선배님과 우연히 다시 술을 먹는데, 나철 선생 이야기가 또 나왔다. 선배님이 최근 ‘한국현대사상사’를 쓰셨는데 거기 나철 선생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이다. 자거라투스트라는 나철 선생을 계룡산의 신흥종교의 어떤 교주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는데, 선배님의 말씀 가운데는 은근한 존경심이 감추어져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거라투스트라는 방학 동안 꼬박 집에만 붙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핑계 삼아 시원한 바다 바람이나 쏘이자 싶어, 그럼 바로 떠나가자고 했다. 선배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 뒤 말을 자르고 그러자고 하는 바람에 마침내 자거라투스트라는 벌교까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약속한 날 아침에 자거라투스트라는 세미나가 있어 그걸 다 마치고 떠나려니 벌써 오후 3시였다. 서두르면 순천 근처 갯벌까지 갈 수 있겠지? 거기는 꼬막 천지인데, 꼬막안주에 소주 한잔이면 그까지 간 보람도 있겠네. 이렇게 생각하니 자거라투스트라는 어릴 때 소풍 떠나는 심정으로 되돌아 간 듯했다.

떠나자마자 자거라투스트라는 선배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형, 나철 선생은 왜 자결했대요?

자기의 숨을 스스로 막는 선도의 수행법이 있는데 폐기법이라 해. 나철선생은 그렇게 돌아가셨어. 구월산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국문학자 김두봉을 비롯한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수행했는데, 드디어 1916년 8월 14일이 되었지. 그날 선생은 앞으로 사흘간 혼자서 수행할 것이니 누구든지 들어오지 말라 하셨지. 사흘이 되어도 아무 기척이 없자, 제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자진 하셨지.

그러면 유서는 없었어요?

있지. 순명시를 남기셨어. 동포의 참혹한 고통 보면서 “이들의 죄를 대신 받겠다.”고 기록하셨지. 즉 원래 죽어야 할 자, 즉 일제겠지. 일제를 대신해서 죽으니, 한을 조금이라도 풀라는 뜻이지. 동포들 보고 나의 몸뚱아리를 씹어 먹으며 자신들의 분을 풀라는 것이지. 기가 막힌 자살시이지?

한을 풀라는 것이에요? 아니면 내가 죽었으니, 너희도 죽음을 무릅쓰라는 거예요?

흠, 그런데 대종교는 1909년 음력 1월 15일 중광절에 창시되거든. 처음에는 단군교라 했는데, 일부 세력이 오히려 친일 쪽으로 빠지면서, 1910년 8월 5일에 들어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지. 그러다가 1914년 5월 13일 만주 화룡현 청파호에 본부를 옮겨. 그는 이미 일제의 대종교 탄압을 예상한 듯해. 정말로 1915년 일제는 종교통제안을 발표해서 대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위장된 독립운동단체라면서 탄압하기 시작했지. 1916년 나철 선생의 자진은 일제의 이런 종교 탄압에 대한 항의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튼 그러면서 예언시도 남겼는데, 앞으로 북방의 이리와 남방의 원숭이가 싸울 것이고, 그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예언하셨대.

북방의 이리나, 남방의 원숭이가 무엇을 의미해요?

글쎄, 어떤 사람은 소련과 미국을 의미하고, 그래서 남북전쟁을 예언했다고도 보지. 순 억지지. 남방의 원숭이라면 당장 일본을 생각해야 할 게 아닐까? 그러면 러일 전쟁 또는 소일 전쟁을 예견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선배님과 차안에서 대화하는 동안 자거라투스트라는 자기도 모르게 대화에 빠져 길을 놓쳐 버렸다. 허둥지둥 길을 다시 찾아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고속도로에 들어가는데 그만 모든 진이 빠져 버렸다. 게다가 서울 천안 사이의 길은 항상 그렇듯이 지체와 정체를 거듭했다. 자거라투스트라는 차를 몰면서도 생각에 골몰했다. 그의 생각은 자진한 나철 선생의 운명과는 거리가 지극히 먼 생활상의 긴박한 문제였다. 본래 순천 갯벌에서 한잔 하려던 기획은 시간상 불가능하다. 그러면 오늘은 어디에? 자거라투스트라의 머리에 갑자기 지리산이 떠올랐다.

형, 온천해 볼래요? 시간상 오늘은 구례까지 밖에 못가요. 내일 아침 거기서 바로 순천으로 가는 고속화도로가 있으니까 벌교엔 내일 갑시다. 또 온천 랜드 가면 멋진 찜질방이 있어요. 제가 지리산 갔다가 내려와서 잤던 적이 있거든요.

찜질방에 잔다는 것에 대해 선배님은 거부 반응이 없어 보인다. 값이 싸기는 하지만, 찜질방에는 코고는 놈, 잠꼬대 하는 놈, 이가는 놈들이 많아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닌데….

천안에서 전주 쪽으로 빠지자 도로는 갑자기 텅 빈 듯했다. 이걸 차별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축복이라 해야 하나? 자거라투스트라는 애매함을 느끼면서도 텅 빈 도로 위에서 엑셀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이미 8월 말, 날은 차의 속도만큼이나 빨리 저물어 갔고 날이 저무는 만큼 차도 빨리 달려갔다. 어느새 구례 그리고 지리산 온천 랜드이다.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찜질방을 찾아 갔다. 찜질 방 옆에 자그마한 주막이 있어 자거라투스트라는 선배님과 막걸리를 굽고 삼겹살을 비웠다. 주막의 주모가 이 한 여름에 온천을 찾아온 우리들을 이상한 듯 쳐다본다. 정말 온천 랜드는 텅 비어 있었다. 아울러 찜질방도 거의 선방 수준이다. 자거라투스트라는 한없는 고요를 배게 삼아 꿈도 없는 잠을 달게 잤다. 새벽에 깨어나 보니 어렴풋한 새벽 빛 속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배님이 구례 화엄사를 본 적이 없다 하기에 거기 홍매화가 있는데, 딴 것은 볼 것이 없고 그 매화는 꼭 보아야 한다고 우기면서 선배님을 모시고 갔다. 화엄사 앞에서 아침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관광지도를 전해 준다. 선배님이 그 지도를 보더니 갑자기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단다. 매천사라는 곳이다. 한말 선비 매천 황현이 순국하신 곳이다. 선배님은 밥을 먹다 말고 이 기막힌 우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매천 황현, 그리고 홍암 나철은 모두 왕석보라는 선비의 제자였어. 왕석보가 바로 구례 출신이야. 우리가 우연히 들른 이 근처 어디일꺼야. 그러데 왕석보의 제자로 또 한 분이 있지. 그 분이 바로 해학 이기라는 분이야. 매천은 광양 사람이고, 해학은 김제 사람이지. 그리고 나철은 벌교 사람이고, 모두 이 구례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어. 이 지리산 자락의 구례가 그들의 정신적 고향인 셈이지.

형, 왜 하필이면 구례인가요?

글쎄, 그걸 몰라. 이 근처에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건 나도 모르지. 뭔가가 있는 것은 틀림없어.

그렇네요. 화순에 운주사라는 곳이 있는데 좀 신비해요. 이 근처는 미륵의 전설이 얽힌 곳이 많아요. 김제 금산사도 그렇구요. 소위 장소라는 개념으로 이 동네를 좀 연구할 필요가 있겠네요.

그런데 세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면 다 달라. 매천은 전통 성리학을 고집하신 분이지만 양명 쪽도 가까이 하신 것 같아. 나철은 개혁주의자 반계 유형원을 사숙하고, 김윤식의 문하에서 활동했으니까, 실학 쪽을 계승한다 보아야겠지. 그런데 이기는 폭이 넓었어. 나중에는 진화론을 수용하여 신민론자 또는 자강주의자가 되지. 그런데 셋 다 자결했다는 데 공통적이야. 해학이 가장 일찍이 1909년 곡기를 끊고 자결하고, 이어서 매천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아편을 먹고 자결하고, 마지막으로 나철이 1916년 숨을 막아 자결했어.

거참 형, 같은 선생의 제자들이 모두 자결했다니, 놀랍군요. 스승이 철학을 자결 연습으로 가르치신 게 아닙니까? 소크라테스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자결할 때 남긴 말도 비슷한가요?

매천 역시 절명시를 남겼어. 그런데 핵심은 인간 세상이 지식이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이었지. 약간 지식인의 책임감을 보이기는 하지만 절명시 치고는 좀 신세타령 투야.

해학 이기의 유언에 대해 묻기 전에 아침 식사가 끝났다. 우리는 곧바로 화엄사의 홍매화를 찾아갔다. 화엄사의 분위기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잘 어울렸다. 꽃이 진 홍매화는 각황전 옆에 서 있었지만,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고 그 스스로도 그런 고독을 즐기는 듯했다.
각황전의 돌사자 석등 오른 쪽 뒤편에 보이는 나무가 화엄사 홍매화이다. 봄이 되면 눈부신 매화가 피어난다.화엄사를 나와 자거라투스트라는 매천사로 가보았다. 다행히 GPS덕분에 힘들지 않고 찾을 수 있었으나, 이 시대 누가 매천을 찾으리. 매천사의 문은 두꺼운 열쇠로 잠겨 있었다. 사당 문이 열리면 순국하신 선생님께 절이나 하고 돌아갈까 하여 안내인을 찾으나 안내인도 보이지 않는다.
매천사의 사당을 담장을 넘어 찍어 보았다.

하는 수 없이 자거라투스트라는 서둘러 나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벌교로 간다. 일사천리로 간다는 말이 정말로 실감난다. 텅 빈 거리는 속도 제한도 없어 정말 달리기 좋다. 차는 곧 순천을 벌교에 다다른다. 벌교 근처에 이르러 비로소 자거라투스트라는 선배님에게 물었다.

나철 선생의 고향이 벌교읍 어디쯤인지 알아요?

선배님은 태연하게 말한다.

벌교읍에 가면 알 수 있다 했어.

아니 이럴 수가 아뿔싸. 자거라투스트라는 후회가 막급이다. 선배님만 믿고 나철 선생에 관해 전혀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떠났던 것이다. 급하게 GPS를 누르는데 나철, 홍암, 대종교 그리고 심지어 자결 등 아무리 집어넣어도 GPS는 묵묵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