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 뱀파이어가 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문성원(부산대)

아벨 페라라 감독의 영화 <어딕션>(1995)은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철학과 관련해서 특기할 만한 영화다, 라고 구보씨는 생각한다.

우선 여주인공 캐서린(릴리 테일러 분)이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철학과 대학원생으로 나온다. 철학을 전공하는 인물이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대개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철학교수나 철학과 학생은 어딘지 어설프고 몽상적인 캐릭터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캐서린은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녀에게 철학은 배경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 특히 현실의 참혹한 모습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실질적 통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월남전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들로부터 시작한다. 중간엔 홀로코스트의 장면들도 비춰진다. 이 악행은 어디에서 비롯하며 또 누구의 탓인가?
영화가 내놓는 답은 ‘중독’(어딕션)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악에 물들어 있고 악행의 공모자인데, 중독에 의해 무감각해져 있을 뿐이다. 평범한 미국 시민이 낸 세금이 월남 전쟁을 위해 쓰였고 또 이라크 전쟁을 위해 쓰이지 않았는가. 우리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우리도 이미 약자를 침탈하고 핍박하는 데 알게 모르게 한 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이런 면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뱀파이어를 끌어들인다. 어느 날 캐서린은 뱀파이어에 물려 뱀파이어가 된다. 그녀는 괴로워하지만 중독된 자신의 욕망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당당하게 맞서 대항하지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목을 내맡긴 탓이다.

“나를 똑바로 봐. 그리고 말해. 꺼지라고. 애원하지 말고, 당당히 말을 해.”

“제발, 제발…”

“겁쟁이. 너도 공모자야.”

이 영화에 따르면, 우리는 비겁함 때문에 중독된다. 아니, 이미 중독되어 있지만 비겁함 때문에 이를 직시하고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뱀파이어임을, 남의 피를 빨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길, 부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귀결이나 메시지는 사실 상투적이고 진부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 영화를 요약하고 마는 것은 아마 이 매력적인 흑백 영상물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그 영화 별루야. 지나치게 사변적이라구. 네 말대로 흑백으로 찍었기에 망정이지 칼라 영화였다면 진짜 어색했을 거야. 무엇보다 웬 설명조의 대사가 그렇게 많아. 니체에, 키에르케고르에, 사르트르에, 포이어바흐에, 또 뭐야, 결정론이 어쩌구, 윤리적 상대주의가 어쩌구, 게다가 영원이니 구원이니…어휴, 그럴 바엔 차라리 논문을 쓰지.”

“어, Y야, 그래도 이 영환 평이 좋았다구. 통찰이 훌륭하잖아. 뱀파이어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고. 박찬욱의 <박쥐>가 깐느에서 상 받을 때, 사람들이 비교하여 거론했던 영화가 이거라구. 괴로워하는 뱀파이어의 모습이 닮았거든. 뱀파이어의 이빨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든지, 주사기로 피를 빼서 흡혈한다든지 하는 것도 이 영화에 먼저 나와. 말하자면, 우리를 뱀파이어로 해석하는 작업의 선구라는 거지.”

“그것도 웃겨.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왜 뱀파이어니? 그렇게 보는 건 사람들을 저주받은 운명으로,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놓는 거야. 그러구선 거기다 회개니, 용서니, 구원이니, 온갖 그럴싸한 말들을 들이대는 거잖아. 전에 어떤 다큐 보니까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입에 돌을 물린 채로 파묻힌 유해가 발굴됐는데, 그게 흡혈귀 취급을 받고 죽은 여자 유골이라는 거야. 뭐, 죽은 자가 피를 빨아먹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거라나… 기가 막힐 일이잖니? 그거 마녀 사냥의 일환 아냐?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도니까 뒤집어씌울 희생양이 필요했던 거고, 그래서 애꿎은 사람들을 뱀파이어로 몰아서 죽인 거라구. 그러니까 구보야, 그 뱀파이어에 대한 집착 좀 집어쳐. 재수 없다구.”

“근데, Y야, 그렇게 단선적으로 볼 필욘 없지 않을까. 네 말대로 뱀파이어엔 원래 그런 면이 있어. 뱀파이어는 경계 밖으로 밀어내야 할 경계 외적 존재였던 거야. 하지만 그건 체제 내적 관점에서지. 그런 견지에서는 뱀파이어 같은 괴물이 체제의 선이나 순수와 대비되는 악과 오염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거야.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봐. 이제 그런 체제 자체가 문제거든. 더 이상 문제를 밀쳐내 바깥의 적에게 덮어씌울 수 없단 말이야. 그런 식의 호도(糊塗)로는 위기만 더 키울 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구.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 밖으로 밀어냈던 악이 반향(反響)하여 내적인 것으로 삼투(?透)하기 시작해. 내부의 균열과 재평가가 생겨나고 말이지. 우리가 밀어냈던 그 악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는 것 아닐까? 우리의 배타(排他) 자체가 그 악의 주술(呪術)이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반성이 일어나는 거야. 그리고 그 반성은 선악의 구분 자체에까지 이르게 되지. 말하자면 이런 거야. 이전의 배타가 ‘악’을 내던지고 그럼으로써 바깥을 지시하는 것이었다면, 적어도 그렇게 지시된 바깥의 일부는 그 배타의 악을 열어젖히는 힘을 담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전환에는 당연히 뱀파이어도 포함된다구. 그렇지 않겠어? 가령 들뢰즈가 뱀파이어를 다루는 걸 좀 봐. 거기에는 자연스레 ‘악’의 문제가 결부되는 거야. 물론 그 ‘악’은 이제 더 이상 기피의 대상이 아니지. 일종의 전도(顚倒)가 일어나니까 말이야.”

“구보야, 내 생각엔 네가 뱀파이어 같애. 뭐? 전도? 맞아, 딱 그래. 전도된 뱀파이어. 옛날 뱀파이어는 너처럼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았거든. 거칠든 부드럽든 그저 조용히 물어뜯었지. 차라리 그게 더 나았는지도 몰라. 요즘 뱀파이어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야. 뱀파이어 이빨이 정말 ‘이빨 까는’ 이빨이 된 거 같아. <박쥐>의 송강호도 봐. 첨부터 중얼중얼, 무슨 기돈지 뭔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되뇌고, <어딕션>에서 그 여자도 아주 연설을 하잖아. 거기 나오는 치들은 다 그래. 중간에 남자 뱀파이어로 나오는 그 배우, 이전 영화들에선 꽤 괜찮더만, 이번엔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결국은 닥치고 피 빨아먹을 거면서. 하여튼 말 많은 것들은 재수 없어. 대체 무슨 영화를 이미지가 아니라 말로 만들려 드냐.”
“Y야, 그게 전형적인 체제 내 수법이야. 말이 막히면 말 많다고 내치는 거. 말로 대응이 안 되니까 하는 얘기거든. 이를테면, 말 많은 놈은 빨갱이라고 하는 식이지. 실은 자기네가 허용할 수 있는, 또는 허용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는 거야. 아니, 그렇게 화 내지 마. Y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거니까… 여하튼 그래서, 금지된 말이거나 파열된 구멍에서 나오는 말이 흡혈하는 피가 되고, 또 그런 말의 전달 수단이 뱀파이어의 이빨이 되는 거야. 물론 이 뱀파이어는 이제 내부의 뱀파이어지. 밖에서 들어오고 안에서 발산(發散)하는 괴물?물려서 전염되는 흡혈의 욕망이 바로 그 발산의 이미지라구. 예컨대 <나꼼수>를 봐. 그게 일종의 내화(內化)한 뱀파이어의 모습일지도 몰라.”

“구보야, 넌 그냥 말만 많은 게 아니야. 네 말은 아예 말이 안 돼. 아까 넌 비겁함 때문에 뱀파이어가 된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나꼼수>가 뱀파이어라면, <나꼼수>가 비겁하다는 거잖아. 그럼 그치들이 만날 외치는 ‘쫄지 마!’가 비겁의 신호라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이 그래?”

“하, Y야, 비겁은 문젯거리인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의 일면이야. 우리가 이런 사회를 허용한 거라구. 말하자면 이명박을 뽑은 건 우리란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이미 뱀파이어인 거야. 흡혈의 욕망을 지닌 존재인 거지. 그런데 이런 걸 자각하지 못하면, 우리는 뱀파이어란 마치 우리 밖의 존재인 것처럼, 우리가 밀쳐내야 할 괴물에 불과한 것처럼 착각을 하게 돼. 그게 바로 전통적인 뱀파이어의 이미지라구. 그걸 Y 네가 싫어하는 위정자들이 줄곧 써먹어왔던 거고. 거기에 습관처럼 파묻히는 것, 그게 바로 중독이야. 자각하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중독, 그것이 정말 위험한 거지. 스스로가 뱀파이어인 줄 모르는 뱀파이어. 이게 비겁의 산물이야.

그렇지만 일단 우리가 이런 점을 깨닫고 절감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지. 이때 뱀파이어의 전화(轉化)가 일어나는 거야.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돼. 무엇이 거기에 얽혀 있는지도. 그래서 전통적 뱀파이어에게 거울을 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햇빛도 마찬가지지. 두려움, 이걸 완전히 떨칠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은 기성(旣成)의 체계가 항상 준비하고 부추기는 것이거든. 생각해 봐. 자각이니 절감이니 하는 말은 쉽지만, 그건 언제나 대가를 치르는 거야. 내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햇빛에 살이 타는 미래를 예감하는 것이지. 자기 현시(顯示)와 자기 소외(疏外)와 자기 파괴를, 적어도 나의 근본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거라구.

‘쫄지 마’라는 구호는 그러니까 내화한 뱀파이어의 증식 수단인 셈이야. ‘씨바, 쫄지 마’, 이것은 비겁을 돌파하여 균열을 비집는 내파(內破)의 구호고, 또한 두려움을 넘어, 그렇지만 아직도 두려움 가운데서 흡혈을 약속하는 구호지. 흡혈이라고 하면 다들 끔찍해 하는데, 왜 계속 이런 말을 쓰느냐고? 그건 한편으론 끔찍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실상 끔찍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 끔찍함의 이면에는 효율이 도사리고 있어. 피의 이미지와 상징성을 생각해 봐. 그건 엑기스, 곧 정수(精髓)고, 순환이고 전달이야. 또 흥분이고 두려움이지. 피는 안에서는 활기지만 밖으로 터져 나오면 두려움의 대상이 돼. 흡혈이란 그 활기와 함께 두려움을 먹는 거야. 그렇잖아? ‘쫄지 마’는 쫄 필요가 없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구호라구.”

“잠깐, 구보야. 너 아직도 할 말 많이 남았지?”

“아니, 거의 다 했어. 몇 마디만 더 하면 돼.”

“그럼, 그 몇 마디 아껴 뒀다 다음에 해. 내가 한 마디만 할께.”

“치, 뭔데?”

“넌 말이야, 구보야, 내가 보기엔, 덜떨어진 말로 꼼수 부리는 뱀파이어 같애. 말꼼수 뱀파이어, 어때? 그래두 말꼼수라니까 어감은 귀여운 데가 있지?”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우리가 가족일 수 있을까?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현남숙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another year, 가족의 미래?

이번 겨울 아주 추운 어느날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스크린에 올라오는 제목은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이었다. “another year”? 제목만 보아서는 신년에 잘 아울리는 영화 같았지만 아니었다. 첫 장면부터 불면증 환자가 등장한다. 불면증 치료를 받으러 온 중년 여성은 약만 원할 뿐 의사나 상담사와 대화를 거부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삶”이라고 답하면서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음으로는 다른 삶을 원하지만 머리로는 삶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another year”는 변화를 바라지만 변화가 쉽지 않음을 아는,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변화에는 소통, 환대, 행복 등 여러 항이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난 가족이란 코드가 자꾸 들어왔다. 어떤 단위로,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 것인가에 관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 인식은 어제와 같을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another year”는 어쩌면 아직 기록되지 않은 가족의 시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족인 자와 아닌 자가 함께 보낸 사계절

제도적으로 혈연 중심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 이외의 자들에게 문턱이 높은 폐쇄적 관계이다. 하지만 심리적 존재들인 우리에게 꼭 그렇지 많은 않다. 멀리 사는 가족, 마음이 상한 가족, 서로를 통제하는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한 혈연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이 보내는 사계절로 유비되는 인생의 이야기다.

#봄. 톰과 제리 부부 그리고 제리의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메리의 삶이 대화 속에 교차되어 그려진다. 제리는 심리치료사이고 남편 톰은 지질학자로 둘 다 타인을 잘 배려하는 인물이다. 부부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며 성공보다는 행복을 가꾸며 산다. 한편 이들의 주변을 맴도는 메리는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내면은 우울한 여성이다. 젊은 날 유부남과의 사랑에 상처받았고 지금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지만 좁은 집에 월세를 내며 사는 가난한 중년의 독신 여성이다. 메리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가족과 집과 대화가 있는 이들 부부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름. 톰과 제리의 아들 변호사인 조가 등장하지만 이 집의 문턱은 아직 친구들에게 열려있다. 한편 톰의 오랜 친구 켄도 등장한다. 켄 역시 메리처럼 독신이다. 젊어서는 직장 동료들간의 유대와 클럽에서의 여가로 고독할 새도 없었지만 이제는 동료들도 하나둘 떠나고 클럽에서도 반기지 않아 어디에도 갈 곳 없는 외로운 신세다. 고독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켄은 메리에게 수작을 걸어 보지만 메리는 늙고 뚱뚱한 켄에게 관심이 없다. 대신 톰과 제리의 아들인 조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표현한다. 메리는 이들의 진짜 가족이 되기를 꿈꾼다.

#가을. 톰과 제리 부부의 ‘정상’ 가족은 견고해지고 메리는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인생의 수확기인 가을, 조가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정상’ 가족의 결실을 맺으려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하필 이날 메리가 방문한다. 메리는 조의 여자 친구에게 질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을 들켜버리자 메리는 더 이상 넒은 의미에서의 가족도 될 수 없게 된다. ‘정상’ 가족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가족의 타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제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실망스러웠다”고 언급하고 톰은 메리를 다시 초대할 수 없으리라는 암시를 한다.

#겨울. 톰과 제리의 집에 출입을 암묵적으로 금지당했던 메리가 다시 찾아온다. 가을까지만 해도 생기가 있었던 메리는 아끼던 차도 견인당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한 최악의 날, 늙고 초췌하고 무엇보다 절박한 모습으로 이 집의 문을 두드린다. 부부는 부재중이고 최근 부인을 잃은 톰의 형이 메리를 맞는다. 메리는 안타깝게도 톰의 형에게조차 자신이 그를 보살펴주겠다고 말한다. 메리는 다시 이들의 진짜 가족이 되고 싶은 것이다. 메리에겐 사랑의 감정보다 정서, 대화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농장에서 돌아온 부부는 메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직장에서 왜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느냐는 메리의 질문에 “여긴 내 가정이야”라고 말로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표현한다. 제리는 메리에게 전문적 상담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메리는 “단지 너와 이야기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메리는 식탁에 앉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시선을 받지도,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다. 행복한 톰과 제리 가족의 대화를 배경으로 카메라는 환대받지 못한 메리의 불안한 시선을 쫒는다.

가족의 역사를 갖지 못한 자들

톰과 제리 부부는 대체로 타인을 환대하는 좋은 이웃이다. 하지만 그들이 메리를 맞는 방식의 근저에는 혈연중심, 성별분업 중심의 전통적 가족 가치가 놓여있다. 톰과 제리처럼 가족을 가진 자와 메리와 켄처럼 가족을 갖지 못한 자의 관계에서 관계의 주도권은 대개 톰과 제리처럼 가족을 가진 자가 잡는다. 감독은 이러한 관계를 카메라의 중심 공간을 톰과 제리의 집에 맞추고 초인종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선별하는 것으로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 방식이나 감정으로도 드러낸다.

메리의 말은 늘 초점없고 삶에 필요한 정보에 취약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나 상처를 노출시킨다. 이에 반해 부부의 말은 어딘가 정리되어 있으며 관습적이며 교훈적이다. 제리는 메리에게 “성인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말의 스타일만이 아니라 대화의 방향도 일방적이다. 메리는 제리에게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어, 나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제리는 “나는 괜찮아”라며 메리의 대화 상대가 되기를 거부한다. 늘 메리만 자신의 결핍을 말한다.

톰과 제리의 ‘정상’ 가족의 규범은 메리에 대한 감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리는 처음에는 메리에 대해 자신만 행복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메리가 아들 조에게 사심을 품은 것을 안 이후로는 급격히 변한다. 실망감으로 바뀌다 급기야는 심리치료를 요하는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염려로 바뀐다. 죄책감, 실망감, 병리적 염려는 대등한 관계에서의 배려나 공감이 아니다. 뭔가 도덕적으로 더 규범에 가까운 자가 갖는 우월한 감정인 것이다.

무엇이 톰과 제리 부부와 메리의 관계를 비대칭적으로 만들었는가? 영화의 한 대사가 자꾸 떠오른다. 제리가 메리의 상태를 걱정하던 어느 날, 톰은 난데없이 역사 이야기를 꺼낸다. “나이가 들수록 역사가 더 의미있어 지는 것 같아“라고. 이에 제리는 “우리도 역사의 일부가 될테지”라고 응수한다. 이 대목은 가족에 관한 오래된 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들린다. 톰과 제리의 시간은 표준적 가족 서사에서 생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아들 조를 낳았고 삶의 중심적 서사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에 맞게 인생의 사계절을 보냈다.

하지만 결혼하지 못한/않은 메리와 켄의 삶의 서사는 근대 이후의 전통적 가족 서사에 엮여들지 못한다. 독신들의 삶은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과 세대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표준적 가족의 공식적인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메리와 켄도 그들 나름대로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드러내지 않는다. 메리와 켄의 시간은 이 사회에서 역사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에 관한 프로파간다의 이면

톰과 제리의 가족은 비교적 개방적이지만 이들 역시 전통적 가족, 기능적 가족, 혈연중심의 제도화된 가족 중심의 가치에 따라 산다. ‘이모’처럼 간주되던 메리가 조에게 관심을 갖는 ‘해프닝’을 겪자 이들은 일시에 가족의 문턱을 높인다. 톰과 제리의 가족은 타자에게 열려있고 환대하지만 그 개방성과 환대는 어디까지나 조건부이다. 결정적인 순간 ‘정상’ 가족의 가치로 돌아간다. 내 가족의 역사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너에게 가족의 문턱을 낮춰줄게, 너를 넓은 의미의 가족으로 환대할게!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정상’ 가족의 견고함은 페미니즘이 상상하듯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메리칸 뷰티>, <바람난 가족>, <후라이드 그린 포테이토>, <안토니아스 라인>, <퀼트>, <메종드 히미코> 그리고 <가족의 재탄생>까지. 영화로만 보자면 가족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정상’ 가족과 그 타자들의 출입의 문턱도 낮아졌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혼, 재혼, 노년 등의 이유로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꾸리거나, 평생 독신으로 정상 가족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방식은 가족 중심의 통합 서사에 작은 자리나마 엮여들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세상의 모든 계절”은 매우 솔직하다. 감독은 보수적인 정상가족의 가치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의 다양한 가족(families)의 가치를 설득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이든 어떤 면에서는 현실의 갈등이나 상처를 봉합하는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대신 현재의 가족, 결혼, 삶의 양태의 상황에서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는 불편한 지점들을 노출시킨다. 가치나 이념으로 봉합되지 않은 실존하는 존재들의 삶의 모서리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인간은 앞으로도 대체로 ‘정상’ 가족의 형태로 살아갈 것이다. ‘정상’이 갖는 미덕이나 편안함 등 이점도 많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상 가족으로 살아가지 못하는/않는 ‘정상’ 가족의 타자들의 삶의 방식도 그들이 ‘타자의 타자들’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 한 인정되어야 한다. 가족의 타자에 대한 형식적 인정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각자 섬을 쌓고 사는 분리주의적 인정은 인정이 아니다. 상호 문턱을 넘나들며 가족에 관한 큰 서사와 작은 서사가 엮여 함께 삶의 역사를 만들어갈 때 서로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거라투스트라, 새해 달력을 사러 시장에 가다.[자거라투스투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MEGA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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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거라투스트라는 신성한 새해를 맞이하면서 기이하게도 옛날에 쑥스러웠던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였다. “너는 어째 그 흔한 선물하나 받아오지 못하느냐?” 어머니가 명절날이 되면 이렇게 늘 안스러워 하시기에 언젠가 명절을 앞두고 자거라투스트라가 꾀를 하나 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자거라투스트라는 주변의 친구들을 불러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다들 처지가 비슷한 지라 자거라투스트라의 제안에 흔쾌히 동조하였다. 다음날 각자 자기 돈으로 자기 집에서 제일 필요한 물건을 사서 선물로 포장하였다.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그 선물을 자기 집에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냈다. 선물이 도착한 날 자거라투스트라는 놀란 어머니 앞에서 짐짓 “아, 이 친구가 뭘 이런 걸 다 보냈지”라고 중얼거리면서, “거 참 하는 일도 바쁠 텐데…” 하고 한마디 슬쩍 밀어 넣었던 것이다. 마치 그 사람이 정부나 학교에서 제법 높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대견해 하시는 모습과 만족스러워 하는 웃음을 보면서 자거라투스트라는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쳐진 것을 기뻐했다.

남들은 흑룡이 솟는다고 웅성대는 새해가 되자 자거라투스트라에게 이런 쑥스러운 옛날 일이 떠 오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도대체 새해가 되었는데도 달력을 하나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새해가 되면 세상에 흔한 게 달력이 아니었던가? 무슨 회사나 어느 기관이다 해서, 약간이라도 떵떵거리는 직장이라면 새해가 되기 전에 달력 하나는 꼭 찍어서 돌리곤 했다. 자거라투스트라가 선물은 하나도 못 받아도 그래도 달력만큼은 이리 저리 많이 얻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지천으로 방안에 굴러다니는 달력을 발로 차면서, 어디서 보냈는지도 굳이 확인하지 않은 채 이런 달력들이 너무 귀찮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심지어 달력을 보내주었던 친지들이 약간 시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저가 아직 그런 떵떵거리는 직장에서 안 떨려 나고 잘 다닌다는 그 말이지? 그래 잘났다.” 이렇게 자거라투스트라는 속으로 악다구니를 쓰면서 보낸 사람의 정성을 애써 무시하곤 했다. 그만큼 발로 차였던 것이 달력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자거라투스트라는 새해가 되면 이렇게 받은 달력 가운데 몇 개를 골라, 방방이 새 달력을 걸어놓는 것이 마치 한 해를 새로 맞이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겼다. 이렇게 새 달력을 걸어놓으면 그때는 마치 방마다 지난 해 쌓였던 먼지들과 액운 그리고 업보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새방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 달력의 깨끗한 빛은 방마다 환하게 빛났다. 불교 용어에 ‘정구업진언’이라는 말이 있는데 업을 씻어내는 주문이라는 뜻이다. 달력이야 말로 그런 진언이 아니었을까? 때로 달력 속에 자거라투스트라가 좋아하는 그림이라도 찍혀 있으면 날자 부분을 잘라 버리고 그림 부분만 따로 스크랩해서 벽이나 책장에 걸어놓아 두기도 했다. 달력에 찍힌 그림들은 원본보다야 훨씬 못하겠지만 색상이나 정밀도에 있어서 그림책으로 인쇄된 것보다는 훨씬 수준이 높았으니, 그런 그림이 실린 달력을 보면 탐내면서 이미 얻은 다른 달력과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도대체 올해는 걸어놓을 달력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리고 어디서도 새해 달력을 보내 주지 않은 것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주소를 잘못 아는 것인가? 여전히 학교 쪽으로 달력을 보낸 것일까? 아니면 이제 자거라투스트라가 더 이상 별 볼일 없으니 그까짓 달력 하나라도 굳이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달력에 관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달력이 없으니 갑자기 온갖 망상들이 머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거라투스트라는 새해 벽두부터 마치 스핑크스 앞에 부딪힌 것처럼 ‘달력 실종 사건’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2

문제는 달력 없이 지내는가 아니면 달력을 시장에 가서 사기라도 해야 하는가 하는 양자 결단의 문제였다. 물론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기는 하다. 새해 달력을 누군가 보내오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아직도 달력을 얻을 수 있는 데 부탁을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자거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아는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을 세어볼 필요도 없이 이런 선택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과거에 달력을 기꺼이 보내주었던 친지들이 거의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하고 말았다는 것은 새해가 지나도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까지 달력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 냉엄한 현실이 거꾸로 잘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이제 새로운 세대들이 달력을 찍어 돌리는 직장을 얻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아직도 자거라투스트라 주변에는 달력을 찍는다는 그 떵떵거리는 직장을 지닌 젊은 세대들이 없었다. 더구나 달력을 찍는 직장은 사실 이제 한국에서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에는 달력을 찍어 돌리곤 했던 직장들도 올해는 경기가 경기인 만큼 쓰임새를 줄이니 아마도 달력을 찍어 돌리는 것이 제일 먼저 줄여야 할 일인 모양이다.

달력을 걸어놓은 것이 자기 직장의 광고로서 효과가 많을 텐데, 그래 아낄게 따로 있지 달력을 안 찍다니.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아도 달력만큼은 국민의 수대로 찍어서 여기 저기 보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건 단순히 광고 때문만은 아니지 않는가? 그건 한국에서 잘나간다는 직장의 사회적 의무가 아닐까? 그럼 가난한 국민이 새해의 달력까지 시장에서 사야한다는 말이냐? 자거라투스트라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아가 났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명박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취하면서 죽어나간 것은 서민이요, 온갖 혜택을 다 본 것은 소위 대기업 아닌가? 그런데도 그래 달력하나 못 찍겠다는 말이지!

속으로 부아는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자거라투스트라는 더 이상 달력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포기하고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달력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거라투스트라에게 또 하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한때 김치를 사기 위해서 시장 바닥을 돌았던 기억이다. 지금처럼 마트가 발달하기 전이다. 그때는 시장에 가면 김치를 쌓아놓고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어서 자거라투스트라는 그들로부터 김치를 구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남자가 김치를 사러 간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하는 수 없어서 시장에 가서 김치 파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때면 번번이 다른 손님(대개 젊은 여성이거나 젊은 주부들이다)들이 김치 아주머니를 둘러싸고 김치를 사려는 것을 발견하고, 자거라투스트라는 발걸음을 돌려 시장을 한 바퀴 다시 돌았다. 그리고 멀찌기 곁눈으로 김치 아주머니에게서 손님이 없는 것을 보고 또 다가가면 어느새 또 어떤 손님이 나타나서 자거라투스트라의 발걸음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자거라투스트라는 김치 하나를 사기 위해 그렇게 몇 번이나 시장을 돌았던 씁쓸한 기억이 났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만일 자거라투스트라가 시장에(아직은 달력 파는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가서 달력을 사기 위해 이리 저리 쌓인 달력을 뒤적거리면 누군가가 분명 자거라투스트라를 보지 않을까? 그러면 그 중 어떤 사람은 “저 놈은 틀림없이 그런 달력을 찾는 중일 꺼야. 왜 있잖아? 그런 거 말이야. 소주 회사나 내의 회사 같은 데서 나오는 달력 말이야. 틀림없어, 생긴 거를 보니…”라고 생각할 것이 아닐까? 또 다른 사람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거다. “아이구, 저런, 오죽하면 달력을 사러 나왔을까? 그래 사돈의 팔촌, 초등 중증 고등 대학 동창 중에 한국에서 대기업이나 주요 기관에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지? 그런 사람 하나만 있어도 달력 사러 나오는 일은 없을 거다. 입고 있는 꼬라지 보니 집안이 안돼 보이기는 하네.” 뭐 이렇게 사람들이 자거라투스트라를 비웃을 것을 생각하니 굳이 비싼 돈(아직 얼마인지 정말 모른다)을 들여서 달력을 사러 가야할지 자거라투스트라로서는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달력 없이 지내면 어떨까? 대체 달력을 방방이 걸어 놓는 게 무슨 악취미인가? 무슨 그림을 걸어놓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입춘방문도 아니고, 무슨 부적도 아닌데 그걸 왜 방방이 걸어놓는가 말이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시계도 안 차고 다니더라. 혹 결혼한 사람이 ‘이 사람은 결혼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결코 넘보지 마시오’를 표시하기 위해 남자는 시계를 차고 여자는 반지를 차고 다니기는 하지만, 요새 시계가 어디에 쓰일 데가 어디 있을까? 핸드폰에 시계가 너무나도 편리하고 정확하지 않느냐. 마찬가지이다. 핸드폰에 달력이 있고 다이어리도 일정표도 있으니, 굳이 방안에 걸린 달력을 쳐다볼 이유가 없지 않을까?

솔직히 자거라투스트라도 지난 일 년 동안 달력을 쳐다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유독 달력을 볼 때는 일 년에 몇 번 되는 제삿날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새해 달력을 걸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달력에 제삿날을 표시하는 것이다. 제삿날이 모두 음력으로 되어 있어 표시해 놓지 않으면 금방 까먹고 지나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제삿날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차라리 제삿날을 평소에는 결코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달력에 빨간 줄로 여러 번 동그라미를 쳐놓기만 하면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여튼 그런 일이 없다며 정말 달력 쳐다 볼 일은 없으니, 제삿날도 핸드폰에 입력시켜 놓고 올해부터는 달력 없이 한 해를 지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렇게 자거라투스트라는 곰곰이 달력이 없는 삶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다. 시계를 찾고 다니라고 강요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내게 노동시간을 빼앗기 위해 자본가가 강요하는 것이다. 시계를 찬다는 것은 그러므로 노동자가 되었다는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때는 시계를 찬다는 것이 성공의 징표이기도 했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달력을 걸어 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회이다. 이 사회는 수많은 기념일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그 기념일이 사회적 시간을 조직하는 매듭 점들이다. 삼일절과 육이오, 개천절과 유엔 데이, 그리고 크리스마스 등. 그러니 달력이 없다면 우리는 사회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된다. 나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달력을 이제 우리의 공간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시간으로부터 제거할 필요가 있다.

 

3.

이렇게 한참이나 생각하던 자거라투스트라는 결국 달력을 사러 나가기로 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없었다. 오직 달력을 거는 것이 지금까지 한 해를 맞이하는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무슨 의식처럼 해돋이를 보러 간다. 자거라투스트라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새해 첫날 부산 해운대 앞바다로 떠오르는 해를 보러 갔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까지 구름에 가려 구름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기는 했지만 정말 바다에서 황금빛 꼬리를 끌면서 떠오르는 해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번 그렇게 의식처럼 해를 보러 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달력을 거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나의 의식을 지킨다는 것은 아마도 인간만의 일일 것이다. 인간만이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풍습을 갖듯이 인간만이 그 자체로서는 의미 없는 자연적인 시간에 일 년을 만들고 다시 달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죽은 사람을 매장하고 달력 만드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소멸해가는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달력은 어디서 사는 것인가? 적어도 마트에 달력이 없다는 것은 자거라투스트라도 알고 있다. 매주 한 두 번은 마트에 들리면서 어디에 어느 물품이 있다는 것을 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달력은 문방구점에서 파는 것일까? 그것도 신년카드처럼 책방에서 파는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 달력을 파는 가게가 따로 있지 않을까? 언젠가 명동 거리에 벽에 펼쳐진 좌판대에서 달력을 본 듯도 하다. 도대체 달력은 범주적으로 어디에 분류되는가? 언젠가 바늘을 구하기 위해서 고민했던 분류의 문제가 희망찬 흑룡의 해, 새해 벽두에 자거라투스트라의 두통을 발생시키고 있다.

『맹자』, 그 읽기의 역사 [맹자와의 대화 3]

전호근 / 김시천 대담

과거의 <맹자>, 현대의 <맹자>

김시천: 전통 사회의 통치자들에게 <맹자>는 상당히 파격적인 책으로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맹자>의 주석자 가운데는 왕안석(王安石)처럼 정치적 실력자인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체로 사대부(士大夫) 즉 통치계급의 성원이면서 동시에 문인(文人) 혹은 오늘날의 지식인에 해당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전 연구는 주로 대학의 상아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 또는 학술적 연구로서 다루어집니다. 이러한 연구의 성격 변화는 고전의 성격 자체에 상당히 다른 특성을 갖게 만듭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차이점을 느끼고 계신지요?

전호근: 이른바 ‘강단철학’을 말하는 것이죠. 저는 <맹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보는데, ‘맹자철학’이 대학 강단에서 학술적으로만 다루어지다 보니까 한계를 많이 드러낸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논어>의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은 굉장히 생동감이 넘치는 부분으로 전통학자들이 활발하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강단에서 연구자의 입장에서 다루다보니 그야말로 “책상머리에서 공부하는 학이시습지”로 해석되는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맹자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죠.

<맹자>의 가장 유명한 주장 가운데 하나는 역시 그의 ‘성선’(性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인간 본성을 다루는 것은 덕치(德治)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 즉 기본적으로 정치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를 생각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말을 꿰어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이 입증이 될 리가 없지요. 입증이 되지 않으니까 어떤 경우에는 맹자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바로 이런 문제들은, 강단철학에서 비롯되는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맹자>를 강의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맹자>의 판본, 조선의 <맹자대전>

김시천: 다른 책들에 비해 <맹자>는 판본상의 논란은 비교적 적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가 썼는가에 대한 논의는 약간 있는데, 일반적으로 세 가지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맹자 자신이 썼다는 송대 학자들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죠. 그리고 만장(萬章)이나 공손추(公孫丑)와 같이 맹자의 제자가 썼다는 한유(韓愈)의 주장이 있고, 세 번째가 맹자와 제자들이 함께 썼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판본은 어떤 판본인가요?

전호근: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이래 <사서대전>본 <맹자>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영락대전>본이라고 하는데,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죽은 뒤 영락제(永樂帝, 1360~1424)가 왕이 된 뒤에 대규모 사업을 벌여 편찬한 책입니다.

판본과 관련하여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관련된 유명한 고사가 있어요. 어느 날 <맹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백성들이 가장 소중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존재이다”(盡心下)라는 부분에 이르게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주원장은 몹시 화를 내며 <맹자> 책을 불태워버리라고까지 명령합니다. 그 때 전당이라는 신하가 “맹자를 위해 죽는다면 오히려 영광이다”라고 하며 저항하니까 할 수 없이 다른 신하에게 <맹자절문>을 짓게 만들어서 그것으로 시험을 치르도록 합니다. 즉 <맹자>의 절반 정도를 날려버린 것이죠. 전체 260개의 장중에서 80개의 장을 빼버린 것입니다. <맹자>의 내용들이 전제군주들에게 얼마나 위험스럽게 비쳐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 후 한동안 <맹자절문>이 유행하다가 영락제가 황제가 되고 나서 호광(胡廣)이라는 학자에게 <사서대전>을 편찬하게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맹자대전>으로서, 우리가 흔히 읽는 <맹자집주>는 주자의 집주이지만 후대의 학자들이 주자의 집주를 다시 해석한 방식으로, 맹자 원문과 주자의 주석과 그것을 다시 해설한 ‘소’를 붙인 것이 <맹자대전>본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부터 간행되어 유행하던 것을 조선에서 그대로 가져와서 내각본으로 각인해서 읽었던 것입니다.

김시천: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한학(漢學)을 하는 분들이 처음 접하는 책이 바로 그 <사서대전>이지요. 저도 한문 공부를 할 때 처음 샀던 책이 바로 영인본 <대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날의 한국철학도 ‘조선유학’의 연장에 있다고 볼 측면도 있겠군요.

전호근: 그런데 중국의 것과 조선조의 것에는 판본상 차이가 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방점’을 찍어서 끊어 읽기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맹자가 양 혜왕을 만났는데” 다음에 방점을 찍고 그리고 다음 구절이 시작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내각본 <사서대전>에는 그런 방점을 다 빼버렸습니다. 서지학자들 주장으로는 중국에서 찍은 방점을 조선시대 학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모두 빼버린 것이며, 이는 한심한 일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문제의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중국 판본은 모두 목판본이었습니다. 목판본의 경우 점과 같은 것은 그냥 하나 그려 넣으면 되는 단순한 일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금속활자 본을 썼습니다. 금속활자에서는 점을 하나 넣으려면 따로 하나를 새겨 넣어야 했습니다. 점이 붙은 글자를 따로 새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점을 생략하고 외관상의 미를 고려하여 아름다운 글자만 새겨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나온 내각판 <사서대전> 본은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옛 선인들의 <맹자> 읽기

김시천: 그렇다면 판본이 아니라 주석서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희의 <맹자집주>외에 여러 가지 주석서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평소 <맹자> 주석서 가운데 ‘왕안석’의 것을 읽어보고 싶은데 실종되어 아쉽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것을 제외하고, <맹자>의 주석서 가운데 가장 눈길이 가는 주석서를 몇 가지 고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호근: 우선 가장 이른 후한(後漢)의 조기(趙岐, 108~201)주를 꼽을 수 있죠. 조기는 당시에 상당히 명망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나 원소와 같은 시대 인물입니다. 당연히 맨 처음 주석이므로 <맹자장구(孟子章句)>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래 <맹자>는 7편이 아니라 11편이었다고 하는데, 조기가 4편을 맹자 자신의 기록이 아니라고 해서 외편으로 빼버렸습니다. 이 외서에 해당하는 내용은 ‘성선변(性善辯)’, ‘문설(文說)’, ‘효경(孝經)’, ‘위정(爲政)’ 네 가지였는데 조기가 이들을 제외하고 7편으로 묶어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판본이 정해진 것입니다.

저는 <맹자>를 맹자가 직접 썼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본문을 읽어보면 맹자가 직접 쓰지 않고 한 다리 건너 쓴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거든요. 자기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필치를 보면, 다른 사람이 받아 적었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맹자가 직접 썼다고 보는 것이 글을 보는 입장에서 내린 판단입니다.

조기의 <맹자강구>에 이어 또 신주(新注)라고 할 수 있는 주희의 주석이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맹자집주>를 말합니다. 그리고 청나라 때의 초순(焦循)이 쓴 <맹자정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맹자요의>도 의미 있는 주석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다산의 것보다 초순의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시천: 다산의 <맹자요의>보다 오히려 초순의 <맹자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전호근: 다산의 <맹자요의>는 맹자 전체를 완전히 주석한 것이 아닙니다. 초순의 <맹자정의>는 맹자 전체를 망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고주나 신주에서도 보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청나라 때 수많은 고증학자들의 견해를 볼 때 다산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산도 자기 시대에 철저했지만 <맹자> 부분에 있어서는 초순이 더욱 자기 시대에 철저했다고 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는 아직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살고 있다. [맹자와의 대화 2]

전호근 / 김시천 대담

 

지금의 승자독식사회가 ‘전국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김시천: 세 번째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졌네요. 가만히 들어보면 국내에서 맹자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듯합니다. 오히려 최근 서구학계에서 맹자와 순자의 ‘심성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우리 현실에서 맹자가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민주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요즘에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에 관한 담론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와 관련하여 전통 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맹자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서 별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전호근: 지금 우리 시대에 각광받는 책이 자기계발서나 경영서, <손자병법> 경영서 같은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손자병법>은 간단하게 말하면 바로 “강자에게는 약하고, 자에게는 강하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런 식의 자기계발과 경영, 처세술이 확산되는 사회에서는 맹자 식의 자기계발과 경영이 설 자리가 없어지겠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맹자가 가치 있다고 봐야겠죠.

 

김시천: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전국시대’(戰國時代) 즉 전쟁이 판치는 세상에서 널리 인기를 얻었던 책을 지금도 널리 읽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 또한 전국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해요. 당시는 국가간의 전쟁이라면, 우리는 개인간의 살벌한 군비 경쟁, 스펙 경쟁이지요. ‘승자독식사회’라는 말은 ‘전국시대’라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와 비교할 만한 사례의 하나로, 20세기 중국 역사에서 ‘한비자’를 들 수 있습니다. 한비자는 역대 중국에서 내내 환영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 ‘비림비공’운동이 일어나면서 재평가되어 비로소 철학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4, 5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만한 점은, 오늘날 우리가 고대 중국철학사를 서술할 때 한비자가 대등한 ‘제자백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른바 ‘객관적으로’ 서술합니다. 저는 이러한 서술 방식과 달리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백가’는 모두 좋은 책인가?

김시천: 아마도 이런 생각은, 전호근 선생님을 만나 ‘맹자’를 재발견하게 된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맹자’가 민주주의 사회에 가장 적합한 사상가임에도 불구하고 천대받고 있는 상황이 통탄스러운데, 왜 현실에 접목시키기에 가장 좋은 사상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학문적 관심이 적고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호근: 맹자가 살았던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맹가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당시 천하의 모든 군왕들이 다른 나라를 쳐서 빼앗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여겼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생각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존중받았겠죠. 그런 사람을 바라고 양나라 혜왕(惠王)도 맹자를 초빙했던 것인데, 맹자와 같은 사람이 와서 혜왕도 상당히 당황했을 겁니다.

맹자는 자신이 살았던 당시에도 물론 공동체의 이익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끝없이 ‘이익’(利)을 부정하고 ‘인의’(仁義)를 강조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의 시대도 바로 맹자가 살았던 시대와 같은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김시천: 선생님의 이야기는 저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제자백가가 모두 ‘고전’이므로 모두 의미가 있다는 식의 해석과 평가는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책이 팔리는 것을 보면, <손자병법>과 <맹자>가 팔려나가는 숫자는 비교가 안 됩니다. 손자병법이 처세서로 몇 십만 부씩 팔리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논어> <맹자>를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일종의 ‘투쟁’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전호근: 사실 <손자병법>과 같은 책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부하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사랑의 목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만 하고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면 그것은 쓸 데 없는 사랑이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간관을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판매를 늘리는 데 직결되죠.

 

김시천: 우리 사회에서 얼마 전에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의 이야기와 같은 것 같습니다. 저는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첫 장을 읽다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케인이 휩쓴 마을에서 상인들이, 물건의 예전 가격을 너무 올려 폭리를 취하는 상황을 두고서, 어떤 가격이 적정하고 바람직한가에 대한 도덕과 정의의 문제를 토론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요. 내가 살던 동네에 불이 나서 모두 타버려 당장 급한 것들을 사러 수퍼에 갔더니, 수퍼마켓의 주인이 가격을 몇 배씩 올려 폭리를 취하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이 상황은 가격과 공정거래를 논하기 전에 이미 삶의 극한 상황이고, 그것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상황을 논의하는 것이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학문적 논제가 될 만 할까요? 그것은 이성의 후퇴이고, 도덕성의 상실이며, 인간성 파괴의 상황입니다.

제가 볼 때 <정의란 무엇인가>의 그 이야기는, 얼어붙은 지성이자 병든 지성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소설가 장정일 선생님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런 통렬한 비평을 하기도 했지요! 무엇이 정말 논의할 만한 문제인지를 판단해내는 것이 지성이고, 그것을 기르기 위해 읽는 것이 고전이라는 입장에서 저는 전호근 선생님이 정상적인 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자, 철학과 정치의 사이에서

김시천: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맹자’의 일화는 ‘맹모삼천지교’입니다. 심지어 ‘맹부삼천지교’라는 영화까지 나올 정도로. 그렇지만 근대 학문을 받아들이면서 <맹자>는 일반적으로 철학책, ‘맹자’는 철학자로, 혹은 세밀하게 ‘윤리이론가’로 말합니다. 저는 이런 방식의 평가에 대해 불만이 많은데, 이런 분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호근: 우리가 철학자라고 할 때 철학자의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맹자’를 철학자라고 하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윤리이론가라는 측면에서만 철학자를 바라본다면 저도 똑같이 맹자를 그런 식으로 분류하는 것을 반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莊子)가 공자나 맹자의 유가사상을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내면의 덕이 훌륭한 사람이 성인이고, 덕이 있는 사람이 밖으로 천하를 다스려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성외왕을 실현했던 사람은 공자 이전 사람으로서, 요임금, 순임금, 탕임금, 우임금, 문왕, 무왕과 같은 이들은 자기가 왕이었기 때문에 직접 다스리기만 하면 되었죠.

그러나 공자부터는 임금이 아니므로, 어떻게 해서든 현실에 있는 임금을 교화시켜서 자기가 바라는 정치를 구현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그냥 철학자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죠. 그럴 경우에는 ‘정치가’라고 해야 합니다.

반면 철학의 영역 속에 정치를 포함시킬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성선설’을 기본적으로 정치담론으로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철학의 폭이 넓어지겠죠. 그렇지만 만약 철학의 폭이 넓어지지 않고 윤리에 국한시킨다면 맹자를 철학자라고 분류하는 것 자체가 맹자를 너무 협소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산 정약용도 맹자의 평생 목적이 ‘백리흥왕지도’라고 표현했습니다. 백 리의 영토만으로 ‘왕도’를 일으킨다는 것이죠. 천 리 이상이 되어야 ‘패도’로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지, 백 리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백리흥왕지도라는 정치적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과제였다면 그런 경우에 맹자는 ‘정치인’으로 분류해야 하겠죠.

저는 철학이라는 개념에서 ‘정치’를 배제하고 나아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특히 사회철학 영역에서 바라볼 때에는 정치는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두 근대인이 아니었다

김시천: 기존의 유학에 대한 평가는, 정치는 윤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규정 방식은, 유학이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폐쇄하는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우선성이 있을 때 윤리는 당연히 정치가 지도받아야 될 원리가 되고, 거꾸로 읽는 것이 오히려 맹자를 제대로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포함하여 전통적인 ‘주석’과 오늘날의 철학 및 다양한 담론들을 다루는 ‘학술적 연구’ 사이에 괴리감이 형성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고전 연구를 하시면서 맹자에 대한 다양한 주석들을 접하며 느낀 점과, 현대학자들이 근대적 방식으로 맹자를 연구하는 것에서 어떤 차이점을 느끼시나요?

 

전호근: 전통적 주석이라는 것은 우연히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전해진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명저’가 전해집니다. 그런 주석가들을 통해 맹자를 바라보면 이들은 자기 앞사람들의 견해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전통 주석가들의 탁월성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오히려 그런 철저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앞선 시대의 결과물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그런 논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고 또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문헌의 섭렵 범위라든지, 텍스트를 장악하는 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이 안타깝습니다. 다만 전통 주석가들의 경우에는 우리가 말하는 ‘근대’라는 초유의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이상한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다산도, 연암도 ‘근대’라는 표현은 썼지만 ‘근대인’은 아니었거든요. 그들의 글쓰기나 주장 속에 근대를 지향하고 중세를 깨뜨리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이 결코 근대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전혀 엉뚱하게 보기도 하고, 시대를 잘못 읽기도 하고 역사성이 취약하기도 했습니다. 중세적인 학문 관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이 꽤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제도권에서 학문을 하게 되면 역사나 연대의 전후, 시간의 흐름과 같은 제도권의 훈련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 방식은 전통 시대의 학자들이 지금 시대의 학자들을 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장일단이 있기는 한데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전통 주석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일본이나 중국의 권위 있는 학자가 얘기하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분위가 있는데 이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10)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10)

이정호(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4. 플라톤의 에로스(4)

플라톤의 에로스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하면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이 남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를 이해할 때에 늘 따라다니는 의문들이다. 가장 먼저 플라톤의 에로스와 몸의 아름다움과의 관계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흥미롭게도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을 정신적인 것으로 올라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플라톤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의 또 한사람의 제자 스펫토스(Sphettos) 출신 아이스키네스(Aischines)도 <아스파시아(Aspasia)>라는 대화편에서 플라톤에 앞서 그런 말을 했다. 그래서 기곤(Olof Gigon)은 “플라톤이 아이스키네스의 아스파시아를 넘는 대항 인물로 디오티마를 구상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디오티마는 소크라테스에게 아름다운 몸에 대한 황홀한 응시로부터 이데아의 관조에 이르기까지의 단계적 행로를 가르쳐주고 있는데 그것의 배경에는 일정부분 몸과 영혼의 유사성이 깔려 있다. 왜냐하면 에로스의 진정한 본질을 계시 하는 부분(206B)에서 디오티마는 에로스는 “몸에 있어서 그리고 영혼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 안에서 출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은 그렇게 했을 지라도 에로스의 오름길에서 몸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에 바로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최고 관조 단계에서 디오티마는 “아름다움(kalon)”과 “좋음(agath?n)”을 하나로 일치시키고 있는데 이 경우 좋음과 일치하는 아름다움 또한 영혼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디오티마가 오름길의 출발선에 몸의 아름다움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은 없지만, <향연>의 그 부분만으로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모두 몸의 아름다움에 대해 결벽스러울 정도의 거부감을 가졌다는 일반의 오해를 풀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몸의 아름다움은 비록 영혼의 아름다움보다는 하위의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과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것이자 좋은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아름다움과 좋음을 동일시하는 부분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이러한 동일시는 아름다움과 좋음을 하나로 묶은 kalokagathia라는 개념으로 그리스인들의 사유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피치노(Marsilo Ficino)는 <에로스에 대해서 혹은 플라톤의 향연>이라는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름다운 몸에서 반사되는 신성(Gottheit)의 빛! 그 빛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신의 모습인양 찬미하고 외경심을 가득 품은 채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 뫼리케(M?rike)의 말도 여기에서 빠뜨릴 수 없다.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그러나 몸의 아름다움이건 영혼의 아름다움이건 플라톤적인 에로스와 아름다움의 결합, 아름다움과 좋음의 결합이 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키케로(「투스쿨룸 대화」4.70)는, “우애로 위장을 한 그런 사랑(소년사랑을 말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iste amor amicitate)”라고 불쾌한 듯 되묻는다. 그것은 보기 흉한 젊음이나 아름다운 늙음이 좋은 조합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 후에도 취급하게 되지만 로마 제정기의 작가 루키아노스(Lukianos)의 <사랑에 대해(Erotes)>(23,33)라는 책에서도 저자는 에로스와 좋음, 아름다움과 도덕적인 가치를 동일시하는 것을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키케로(기원전 106-43)

사실 플라톤이 아름다움과 좋음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최고의 단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여전히 연속적이고도 경계가 불분명한 무규정적인 현실의 위계에서는, 설령 가장 뛰어난 몸의 아름다움을 가졌다 해도 미미하게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일 수 없다. <향연> 210b의 언급은 그 결정적인 부분이다. 그곳에서 디오티마는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로부터 영혼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고 가는 길을 화제로 삼으면서 설사 누군가 몸의 아름다움을 아주 미미하게만 가지고 있어도(smikron anthos) 영혼이 아름다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은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영혼의 아름다움의 절대적 우위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플라톤은 <향연> 끝부분에서도 일상의 생각을 독특한 방식으로 역전시켜 빛나도록 아름다운 알키비아데스로 하여금 실레노스와 같이 보기 흉한 소크라테스에게 숨 막힐 정도의 사랑의 고백을 토해내게 함으로써 그 우위성을 뒷받침한다. 우리는 <파이드로스>의 결론 부분도 상기해야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땅의 신들에게 내적인 아름다움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플라톤적인 에로스가 어디까지나 남성의 아름다움에만 주목하는 남성중심의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에로스론은 어쩌면 원천적인 한계를 갖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디오티마가 비의의 단계적 오름길에서 가장 낮은 단계를 묘사할 때마다 무차별적으로 그저 아름다운 몸(soma)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 몸이 소년사랑의 당사자들인 남성들의 몸을 가리키는 것임을 감안한다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플라톤 스스로 이미 여성의 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아예 논외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혐오나 기피의 대상까지는 아니긴 하지만 플라톤이 이성에 대해 무관심했음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빌라모비츠(Wilamowitz)도 그의 플라톤에 관한 책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플라톤이라는 인물에게 있어서 여성은 전 생애동안 어색한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가장 중대한 결함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향연>에서 가장 최고의 인식단계로 이끄는 사람이 물론 예언가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한 명의 여성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리고 <국가>에서 보듯이 여성을 이상국가의 수호자 그룹에 포함시킨 것은 그리스 로마 사상가를 통틀어 플라톤 밖에 없었을 만큼 매우 특별한 점이라 할 것이다. 하기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한 여성이 오랫동안 제자로 생활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다가 남장을 하고 몰래 들어와 있었던 것이라 하니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려나 플라톤의 에로스론에서 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고려가 어느 정도였는가는 흥미로운 관심사이긴 하지만, 에로스의 해석과 관련한 그리스 논쟁사의 핵심은 플라톤에 와서야 비로소 에로스가 육체적인 아름다움의 영역으로부터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대한 관조와 헌신의 영역으로 고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오름길의 단계에서 일상의 활동(epit?deumata)속에서 일상인의 눈에 비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적인 인식을 그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에로스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살아 숨 쉬는 에로스이되, 종국에 가서는 그 일상을 뛰어넘어 다시 일상을 고양된 정신적 가치와 의미로 승화, 견인해내는 에로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마법에 걸려 죽어가던 프쉬케를 에로스(=큐피드)가 구출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
The Abduction of Psyche, 1895 / Bouguereau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플라톤 자신도 몸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출발점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에로스가 포함하는 필요 불가결한 부분으로서 그의 단계적 오름길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플라톤이 대체로 성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시대 특히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했던 소년사랑과 그 관능적인 측면에 대한 그의 혐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의 논의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정신에 대한 플라톤의 경도가 몸에 대한 무조건적이고도 엄숙주의적 혐오와 거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플라토닉 러브’는 정신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지 몸에 대한 사랑을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고대의 저작가 중 유독 부부간의 사랑에 새로운 광채를 부여했던 플루타르코스(Plutarchos)가 다름 아닌 아주 열렬한 플라톤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도 단순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향연>을 통해 드러나는 플라톤의 에로스론은 형식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 에로스는 인간을 어떤 종류의 불멸에로 인도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소크라테스를 그런 에로스의 구현체로 보여줌과 동시에 알키비아데스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진면모를 드러냄으로써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두말할 나위 없이 그 배경에는 어떠한 삶이 살만한 삶인가하는 문제와 삶과 앎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플라톤 철학의 근본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의 에로스론은 ‘지혜사랑 즉 철학(philosophia)으로 이끌기 위한 권유(protr?ptikos)’에 그 근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 고통에 찬 인간상 – 작가 미상

어쨌거나 고대 그리스의 에로스는 플라톤에 이르러 관능의 옷을 벗고 정신적인 가치로 고양된다. 플라톤이 이룩한 이 에로스의 정신에로의 고양은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 이룩한 “성의 해방”에 역행하는 고루하고도 반동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서양지성사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른바 끊임없는 전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헬레니즘 시대의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몸은 이미 자기의 것이 아니었다. 전란의 시대에 몸이 부딪친 이러한 극한의 고통과 절망은 영육 분리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켰고, 파괴될 대로 파괴된 공동체에서 파편화된 개인은 부지불식간에 영혼과 정신에서나마 자기를 보존하거나 구원받지 않으면 안 될 초월의 시대, 종교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인의 사랑은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에로스를 거쳐 은총으로서의 사랑과 그 구원의 은총을 베푼 기독교적 초월신에 대한 사랑으로 넘어간다.

라게르보르크(Lagerborg)가 플라토닉 러브에 관한 그의 저작 서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요엘(Karl Joel)의 말을 끝으로 플라톤의 에로스에 관한 우리의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플라톤은 하나의 힘, 영혼을 견인하는 힘이자 하나의 방향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유의 방향일 뿐만 아니라, 심정의 방향(Gem?tsrichtung)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도저히 뿌리 뽑을 수 없는, 늘 새롭게 끊임없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끝)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과연 다른가? [맹자와의 대화 1]

전호근 / 김시천 대담

 

혁명과 성선의 사상가, <맹자>와 만나다!

김시천: 요즘 전통 고전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동아시아 고전과 관련하여,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대화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처음으로 모신 선생님은 <맹자> 강의로 유명한 전호근 선생님입니다. 안녕하세요? 2012년을 맞이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호근: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e시대와 철학>의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시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맹자>인가요? 저는 선진(先秦)의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상가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렇게 잘 읽혀지는 고전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맹자>를 강조하고 중시합니다. 왜 그런가요?

전호근: 제가 만난 사람들은 아마도 <맹자>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96년부터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맹자>강의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 <맹자>강의를 열면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텍스트의 재미로 본다면 사마천의 <사기> 그 중에서도 <사기열전> 강의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한 편, 한 편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소설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서 그런 강의를 하면 많은 분들이 오실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사기열전> 강의할 때보다 <맹자>강의를 할 때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맹자>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고전을 직접 읽어보려고 왔다고 볼 수 있죠.

김시천: 그건 일반화할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맹자>는 우리에게 ‘혁명’(革命)이나 ‘성선’(性善)과 같이 가장 무시무시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움 사상을 펼친 사상가였지만, 그 유명세만큼이나 그가 현실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오랫동안 <맹자>강의를 해오셨는데, 선생님의 강의에 모인 일반 시민들의 <맹자>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전호근: 제가 강의하던 <맹자>는 주희가 정리한 <맹자집주>본으로 하는 강의였습니다. 그 <맹자집주> 맨 앞에 ‘서설’이 나옵니다. 서설을 강의할 때에는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맹가열전’부터 시작하는데, 그 맹가열전을 통해 맹자가 어떤 사람인가 밝혀지면 강의 들으러 온 분들이 놀랍니다. 실제 그 분들이 생각했던 맹자와 사기열전에 소개된 맹자와 다르기 때문이죠.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좌파(?) 사상가, 맹자

전호근: ‘사기열전’에 소개된 ‘맹가열전’은 137자밖에 안되지만 명문입니다. 참고로 ‘공자세가’에 소개된 공자의 전기는 8천 자 가까이 됩니다. 노자는 1천 50여 자 정도 됩니다. 장자도 235자입니다. 그런 것과 비교해볼 때 맹자는 130여 자밖에 되지 않으니 제대로 기록하였다고 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죠. 그런데 그 137 자가 명문이어서 맹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바로 드러납니다.

김시천: 글자 수를 세어 본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군요. 그럼 ‘맹가열전’을 들은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전호근: 실제로 강의가 진행되면 이른바 맹자의 ‘혁명론’도 나오고 토지 균분론과 같은 ‘정전제’(井田制)도 등장하고 합니다. 한 마디로 정전제는 토지 재분배론입니다. 토지를 생산수단으로 하는 농경 사회에서 공정한 분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므로, 이런 것을 현실에 맞추어서 강의하면, 강의를 듣는 분들이 상당히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00년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좌파에 대한 공세가 강하게 드러났던 2002년,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제가 <맹자> 강의를 하다가 ‘좌파’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보고 좌파라고 하길래 저는 맹자로 도망갔죠. 제가 좌파가 아니라 아마도 맹자가 좌파인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죠.

김시천: 저도 언젠가 어떤 선생님의 맹자 발표에 관한 논평을 하면서, 맹자가 말하는 주장을 오늘의 정치와 관련해서 보면 ‘좌파’에 가깝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역사 내내 맹자만큼 좌파였던 사람도 없었던 듯한데… <맹자> 강의를 하면서 ‘좌파’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선생님의 심정은 어땠나요?

전호근: 그런 경험을 하면서 ‘선생님’의 권위가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념 공세 앞에서는 선생님이고 뭐고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좌파라는 공격을 받고나서 이런 경험에 대해 동료나 선배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더 재미난 경험도 했었죠. 어떤 분께서 “나는 사회철학 전공자인데 나는 강의하면서 좌파라는 공격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수치로 여긴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맹자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 그런 강의를 통해 바뀌는 지점이 되었고, 제가 가감 없이 맹자를 있는 그대로 강의한 것이 그분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갖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의 맹자에 대한 관심이 반갑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시천: 저 역시 그런 점을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이념적 성격에 대한 검증이 더 치열했던 중국의 경우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던 듯 싶네요. 대륙 중국에서 1949년부터 1960년대 중후반까지 ‘전통 계승 논쟁’을 하면서 선진 시대 제자백가에 대해 수없이 평가가 변화했습니다. 1920년대에 ‘사람 잡아먹는’(食人) 교주로까지 몰렸던 공자조차 ‘좌파’까지는 아니어도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묵자(墨子)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회주의 중국에서 그런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한 인물이 ‘맹자’였습니다. 그 시기의 중국학계의 <맹자> 연구를 다룬 한 외국의 학자는, 당시 <맹자>를 다룬 논문이 단 3편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회주의 중국에서조차 ‘좌파’로 끌어 들이지 못한 <맹자>를 강의하면서 ‘좌파’라는 말을 들으셨다니, 참 흔치 않은 일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이 곧 정치 담론이다

김시천: 우리 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는 쉽게 이해가 됩니다.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맹자>에 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도덕형이상학’에 입각한 ‘심성론’과 통치론으로서의 ‘왕도정치’(王道政治), 동아시아의 독특한 역사관으로 이해되는 ‘치란’(治亂) 사관에 집중되어 있었던 듯 합니다.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구분이긴 한데, 왠지 <맹자>의 정신이 잘 드러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호근 선생님의 <맹자>는 매우 독특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시민 청중들이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좌파’라고 말한 것 아닐까요? 선생님이 <맹자>에 가장 주목하는 점은 어떤 것인지요?

전호근: 저는 기존의 <맹자>에 관한 연구가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도덕형이상학이나 성선론, 왕도정치론 모두 유의미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맹자의 그런 사상들이 왕도론, 혁명론, 성선론으로 다 각각 따로 분리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서로 아귀가 척척맞듯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성선’을 주장했느냐 아니면 ‘성악’을 주장했느냐에 관해 논란이 있지만, 저는 당연히 성선설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공자도 ‘덕치’(德治)를 주장했기 때문에 ‘성선설’이 아니면 덕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선한가, 아닌가가 핵심이 아니라 ‘덕치’를 정치 이념으로 제시하려면 ‘성선’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시천: 그렇습니다. 흔히 <노자>나 <장자>에 대해서 학자들이 평가할 때에도 노자나 장자는 아마도 성선설을 지지할 것이라고 해석하곤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노자나 장자는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신뢰가 없었지요.

전호근: 반면 순자나 한비자, 그리고 진시황을 도왔던 이사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아예 ‘덕치’의 싹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덕치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맹자의 ‘성선론’도 기본적으로 정치 담론으로 봅니다. 그리고 ‘왕도론’과 같이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것이 바로 ‘왕도론’이자 ‘덕치’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맹자를 사회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고 변혁의 철학자로 바라볼 때 맹자에 대한 온전한 시각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사회에서도 수많은 전제 군주들이 바로 그런 점을 맹자에게서 빼려고 노력했거든요.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위험했고, 그것이 맹자가 노렸던 점이었습니다.

김시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시면 어떨까요?

전호근: 물론 맹자의 사상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맹자>에서 양혜왕(梁惠王)을 만나 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가득하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들이 가득한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시체들이 널려 있다!” 이 말은 맹자가 당시 전제 군주들에 대해 가졌던 기본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이라고요. 성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하고, 토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하므로 사람의 시체가 성과 들판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고 맹자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시천: 그 부분은 저도 기억납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대화 장면이기도 하지요! 양혜왕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맹자가 이렇게 묻지요.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을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맹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갑니다. “칼날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당시의 뛰어난 실력자 양혜왕의 앞에서 말하는 맹자의 태도는 오늘날과 같은 현대의 삶에서 보아도 대담하고 대범합니다.

전호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극명한 대비입니다. 살진 고기와 백성의 굶주린 기색, 살진 말과 굶어죽은 백성들의 시체! 이런 식의 극명한 대비는 우리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맹자> 뿐만 아니라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같은 작품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이죠. 오렌지 농사가 유례없는 풍년을 기록했는데도 아이들은 비타민이 부족해서 각기병에 걸려 죽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런 극명한 대비를 통해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당위성과 뜨거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맹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맹자를 그런 변혁의 철학자로 바라볼 때 <맹자>가 온전하게 이해되고, 그런 입장에서 바라볼 때 ‘성선설’도 ‘왕도론’도 이해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과연 인류의 훌륭한 유물일까?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임명옥 (책익는 마을 주민)

 

런던의 대영박물관

4년 전에 나는 런던에 한 달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엄마와 아이와 나까지 세 여자가 짐을 꾸려 남동생 가족이 사는 런던에 갔던 것이다. 엄마는 아들이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 하셨고, 나는 당시 5학년이었던 아이에게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나 자신에게는 내가 여태까지 배우고 누려 왔던 서구 문물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런던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거의 다 돌아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대영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문화유산이었고, 그 곳에 전시된 유물은 너무나 많고도 흥미진진했다. 이집트 관에는 로제타석을 비롯한 미이라와 석상, 오천 년 전에 만들어진 그림 문자 히에로클리프가 전시되어 있었고, 앗시리아 관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들어낸 쐐기문자와 돌로 조각한 벽화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그리스 관에는 네레이드 신전을 그대로 옮겨 놓은 아름다운 이오니아식 기둥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대리석 조각들이 이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장엄함과 생동감을 뿜어 내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리스 로마, 이슬람, 중세 유럽, 동남아시아와 한국, 일본, 중국, 아프리카에 걸쳐 옛 시대의 유물들이 석상과 도자기, 타일과 모자이크, 벽화와 그림 등의 형태로 남아서 박물관을 견학하는 많은 이들에게 인류가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나는 이 박물관을 네 번 찾아 갔는데, 갈 때마다 이전에는 보지 못 했던 새로운 유물들이 눈에 띄어 보고 또 봐도 재미가 있고 흥미로웠다.

 

런던의 내셔널갤러리

두 번째로 좋았던 곳이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였다. 이 미술관 역시 건물 자체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웅장함과 장엄함을 띠고 있었는데, 그림의 규모는 자그마치 2,300여 점이고, 그것도 13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인류의 문화를 빛낸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나는 이 미술관을 런던에 있는 동안 세 번 방문했는데,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구경하다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흐 그림은 7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노란색 유화 물감이 한 잎 한 잎 해바라기 잎이 되어 액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붓터치가 마치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비극적인 삶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렘브란트 그림 중에서는 그의 자화상 두 점이 인상적이었다. 젊었을 때의 자신만만하고 부유했던 모습과 나이 들어서 가난해지고 인생살이에 지친 모습이 그려진 대조적인 두 그림이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자꾸만 찾게 되는 그림이었다. 루벤스의 그림은 그리스 신화나 고대 로마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을 그린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나를 매혹시켰다. 거대한 그림의 크기가 주는 웅장함과 그림의 내용에서 상상되는 이야기가 생동감과 화려함에 더해져 나는 루벤스 방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그의 그림을 넋을 잃고 감상하곤 했었다.

 

웨스터민스터 사원

그리고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비롯한 솔즈베리 성당과 성 폴 성당이 있다. 우리 나라의 문화 유산이 불교의 영향으로 절집이 많은 것에 비해 서양 건축 문화의 원동력은 단연코 성당이라 할 것이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웨스터민스터다. 천 년 정도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영국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루는 장엄함과 화려함을 함께 갖춘 곳이며 뉴턴이나 세익스피어,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의 외양을 볼 것 같으면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양식의 첨탑이 건물 꼭대기를 균형 있게 장식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과 함께 숙연함이 느껴지게 만들고, 사원 정문에는 성인들을 돌로 새긴 부조가 가득 해서 섬세함과 미려함이 조화를 이루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부 역시 신의 영광을 찬미하고 숭배하기 위한 아름다운 장식과 석조물들로 가득하다. 가운데는 예배를 보는 장소이고, 양 옆으로는 옛 시대 영국의 위엄과 발전을 이룬 유명인들의 관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인 건물 분위기는 몇 백 년 전 돌의 느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전통이 살아 숨쉬는 듯한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사실 영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빅벤이나 성당들,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고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들이 부를 적나라하게 과시하는 것 같아 시샘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고대 이집트나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침략자의 자기 과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런던에서 산다면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부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런던이 마음에 들었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 도시였다.

 

훌륭한 문화유산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읽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널리 소개하고 대중화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다. 저자를 통해 나 역시 우리 문화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 국토를 박물관이라 생각하고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삶과 서양 문물에 익숙하고 서양식 교육에 전염되어 우리 것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태도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려서 나는 공교육을 통해 민요나 아악보다 성악이나 기악곡을 더 많이 배웠고, 단원이나 혜원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를 더 많이 접했다. 이황이나 이이의 철학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더 자세하게 배웠으며, 홍대용이나 정약용보다 뉴턴이나 다윈과 같은 과학자에 대해 더 상세하게 배웠다. 또한 초가집과 기와집은 불편해 하고 양옥이나 아파트의 편리성에 더 일찍 눈을 떴다. 서양식 합리주의와 효율성에 힘입어 우리 문화는 불편하고 고루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관심은 그저 서양의 역사와 문화, 서양 것에 대한 호기심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내가 배워온 서양 문화의 원류를 찾아보고 싶어 런던에 갔었고, 나의 지식과 생각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근원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의 문화유산이 한없이 부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이 불편했다. 서양의 박물관이라는 것이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식민지 삼아 부를 축적하고, 그를 기반으로 남의 나라 유물을 약탈해 오거나 도둑질 해 온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나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크고 화려하고 장엄하고 사치스러운 게 도적질의 결과라면,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소박하고 검박하며 질박한 문화유산이 훨씬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장엄하고 웅장하며,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서양의 건축물보다 단아하고 고상하며 자연친화적인 우리의 건축물이 훨씬 더 인간적일런지도 모르겠다.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인류의 문화유산이 일반 백성들의 고혈 속에서 혹은 식민지 백성들의 힘겨운 시름 속에서 탄생했다면 그게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나는 생각해 본다. 무조건 크고 높고 거대하게 짓는 건축물들이 후세 사람들의 눈요기 거리가 되기 위해 혹은 그 당시 지배 계층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고통으로 물들인다면 그건 과연 인류의 훌륭한 유물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잃어버린 보물찾기

저자가 140여 쪽을 할애해 설명한 경복궁에 대해서도 장엄함이나 웅장함보다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건축물은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경복궁뿐만 아니라 순천 선암사에 대해서, 거창의 서원과 정자들에 대해서, 부여의 유물과 유적지에 대해서 산뜻한 비유적 표현과 깔끔한 문장으로 읽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식당 아주머니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다. 문화유산은 유형적인 것도 있겠지만, 무형적인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내와 유머와 노동과 놀이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싶은 저자의 의도가 행간에서 읽히는 것 같아 나는 사람들과 저자의 만남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경복궁을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여태껏 나는 근정전 어좌 뒤의 병풍에 일월오악도가 그려진 지도 몰랐고, 월대에 석견이 조각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 영재교에 천록이 있어 메롱,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줄은 더더구나 몰랐다. 저자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다음 번 경복궁에 갈 때는 좀 더 자세히 궁을 보고 보인 만큼 많이 느꼈으면 싶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고장 보령의 유적지 성주사터와 가까이에 있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절집 무량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전통 문화에 대한 어떤 분위기도 느끼지 못 하고 사는 나에게 성주사터와 무량사의 5층 석탑과 극락전은 보물찾기처럼 내가 잃어버리고 사는 나의 정체성이 생각날 때마다 들춰 보며 찾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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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유홍준 지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작과 비평 펴냄>에 관한 임명옥 책익는 마을 회원의 글입니다.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강남 아줌마들도 열광시킨 안철수의 매력

–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서울시장니 대권주자니, 요즘 누구나 한 번쯤은 안철수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을 것이다. 대안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까지도 그의 이름을 들먹였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다. 오죽하면 원희룡은 근심 가득한 어조로 “강남 아줌마들조차” 안철수를 선호한다고 했을까.

사람들은 처음에 안철수가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안철수의 정치적 행보는 이러한 이원적인 도식에 맞추어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안철수를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의 욕망을 잠깐 자극하다 지나가는 바람으로, 체계적 정치조직을 갖지 않기에 언젠가는 식어버릴 허상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평가는 왜 강남 아줌마들“조차” 안철수에 열광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즉 이런 식의 평가는 그가 보여주는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그의 매력이 강남 아줌마들에게도 먹혀들어갔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강남 아줌마들은 그가 좌파이기 때문에 혹은 우파이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 같지 않다. 그는 아직 체계적인 정치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여성 정책’에 대해 이렇다할만한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강남 아줌마들이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간 안철수의 매력에 빠져있다. 이 글에서 내가 묻고 싶은 그가 이들에게 불러일으킨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미감이 무엇인가이다. 안철수라는 인간이 보여주는 어떤 미감이 강남 아줌마들까지도 열광시켰던 것인가?

우선 “강남 아줌마”라는 호명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들이 헉 소리 나게 값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막대한 수입을 올리거나 그런 수입을 보장하는 남편을 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부를 둘러싼 생존의 경쟁에서 이겨 승리를 쟁취한 사람들이다. 이를 대물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이기에 이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결국 이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맹모삼천지교 이상의 것도 감수하며 값비싼 과외비도 마다하지 않는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의 전형적 어머니상(?)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무한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그들의 목표라면 이들은 왜 안철수를 자녀교육의 본보기라고 말하는가? 안철수는 자신의 이윤을 증폭시키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신이 일구어 온 기업 경영권을 사원들에게 넘기고 이제 자기 재산의 절반마저도 사회에 기부하려 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맘만 먹으면 정말 많은 것을 독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가진 것을 내어 놓는다. 그는 기술뿐 아니라 재산을 무상 분배했다. 그런데 왜 적지 않은 강남 아줌마들은 안철수에 열광하는가?

그의 매력은 외모에서 나오는가? 물론 청년들은 그를 “귀요미”로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그의 외모는 그저 평범하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화려한 학력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학자와 기업가로서의 성공 때문인가? 물론 그것은 경쟁의 승리와 더불어 얻게 될 부와 명예의 조건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자 그의 강한 생존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심장한 지표이다. 돈을 많이 가진 기업가들이 정치에 입문하여 대중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곧 그들의 부가 곧 그 인간의 강인함으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안철수에게 집중되었던 열광의 현상을 설명하는 결정적 지표일 수는 없다. 학벌 좋고 돈 많은 정치가들은 수두룩하지만 이들이 모두 열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미감이 이들을 자극하였는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들을 자극한 미감이 바로 그의 이타적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여준 나눔의 정신은 인간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최상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독점할 수도 있는 기술을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하였으며 이윤창출을 위해 쓸 수도 있었을 귀한 시간을 청년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썼다. 그는 대부분의 부자들이 그렇게 하듯 벌어놓은 돈을 과시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위용을 널리 알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부를 기꺼이 사회적으로 환원하였다. 이러한 이타적 행동 자체가 결국은 이기적인 속성에서 발생한 것 아니냐, 혹은 그러한 전략 자체가 더 많은 부나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는 소유나 과시적 소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가를 어필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타적 행위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이타적 행위가 곧 강인함의 표식이라는 점은 진화생물학자 토르 뇌레트라네르스에 의해 잘 설명된 바가 있다.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에 나오는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의 예부터 생각해 보자. 뇌레트라네르스에 따르면 다윈은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을 보면서 생존의 문제와 관련된 자연선택론만으로는 이러한 진화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연선택론의 관점에서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은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생존을 방해하는 핸디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윈은 성선택이라는 또 하나의 진화기제를 도입하게 된다. 수컷 공작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생존에 방해가 될 만큼 아름다운 깃털을 발전시키고 이러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강인함을 어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선택을 받고자 하는 인간들이 혹은 남성들이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감행하게 되는 어려운 일이란 무엇인가? 뇌레트라네르스는 흔히 이러한 강인함의 표출이 부의 과시적 소비, 문화적 지적 활동, 이타적인 행위 등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부족장의 포틀래치나 사치스런 선물, 부자들이 즐겨하는 과시적 소비는 성적 선택을 받기위해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내 보여주려는 남성들의 짝짓기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전략에만 머물지 않는다. 뇌레트라네르스에 따르면 훌륭한 문화나 학식을 보여주는 행위,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 등은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며 이러한 점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이타적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그러나 성적 파트너에게 자신의 강인함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이다.

뇌레트라네르스는 성선택의 과정에서 진화한 이타적 인간을 호모 제네로수스(the generous man)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호모 제네로수스는 생존의 문제 따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가장 진화된 성선택의 결과이다. 물론 바야흐로 우리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역시 이러한 강인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이론에 따르면 성적 파트너에게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진화된 전략은 이타적 행위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강남 아줌마들의 안철수 사랑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소위 강남 아줌마들은 이기적인 이해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타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강력한 존재를 선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뿐 아니라 호모 제네로수스에도 열광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안철수의 명성은 그가 무한 경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타적 행위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호모 제네로수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뇌리트라테르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그간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 어떤 미감을 불러일으켰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선택의 기제를 여성과 남성의 짝짓기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추종자 혹은 대중의 관계에도 적용해보자. 어떤 방식으로 정치인들은 강인함을 증명하고자 했는가? 한 때 소위 돈 많은 정치인들, 높은 학력과 가문을 자랑하는 정치인들은 돈과 명예의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강함을 어필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온갖 부패상은 갖고 있던 성적 미감마저도 없애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의 강함은 대중을 번식시키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만 비추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물론 이들과 달리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을 위한 이타적 행위를 중시하는 정치인도 있다. 노동자를 위해 인생을 바친 노동 활동가들이나 소위 좌파를 자칭하는 정치인들은 전형적으로 이타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역부족이다. 이들은 민중을 구하려했을지는 몰라도 가족은 거의 방치한 경우가 많았으며, 생존을 감수하는 강인함을 보여주기보다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에 전념하였다. 적어도 강남 아줌마들의 시각에서 이들이 보여준 이타심은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쥐뿔도 없는 것들이 타인을 위하는 만용을 부린다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었다.

나는 안철수가 보여준 나눔의 행위는 이들의 이타적 행위와는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안철수는 성공한 기업가이자 학자로서 나눔의 행위를 수행했다. 이것은 없는 사람의 나눔이 아니라 있는 사람의 나눔이다. 그는 이미 맘만 먹으로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는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전자가 증명된 강인함이라면 후자는 증명되지 않은 강인함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번식을 위해 가장 강한 수컷을 선택하고자 하는 강남 아줌마들에게 안철수의 나눔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이지 않았겠는가?

이 글에서 나는 없는 사람의 나눔이 있는 사람의 나눔에 비해 덜 아름답다거나 덜 강인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강남 아줌마들의 시각에서 안철수의 나눔 행위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번식을 보장해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전달되었다는 점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이기적인 시각에서조차 안철수의 이타심은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정치적 미감이다.

똥구멍이 항문이 되면 병이 낫는다? [청춘의 서재]

– 에펠리 하우오파의 『엉덩이에 입맞춤을』(서남희 옮김, 들녘)

윤은주(숭실대)

소통을 가로막는 낯선 글자들

언젠가 교정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을 하나 보았다. “교무처장님, 뭥미?” 난생 처음 보는 글자가 주는 당황스러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나중에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알아보니 대충 “교무처장님 뭐하는 것입니까?”라는 뜻이었다. 나름 신세대적 사고를 한다고 우겨대는 나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는데, 하물며 연배가 높은 교무처장님이 저 글자의 뜻을 이해하셨을까? 질문이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알 수 있게 써야 할 것은, 더구나 글이란 상대와 소통을 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쓰면 그건 글이 아니라 그저 해석할 수 없는 외계어일 뿐이다.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였다면 현수막에 그런 외계어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뭥미?”, 그것은 “나는 당신과 소통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거부의 의미를 담은 음절들의 나열일 뿐이다. 물론 “그런 쉬운 단어도 모르세요?”라며 학생들이 세대 차이를 들어 한 마디 거든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자기들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소통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문득 뭐든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이 떠올랐다. 우리말이 그리 대단한 글인가?

최근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한글 창제와 그 반포를 둘러싸고 세종 이도와 성리학 대표인 밀본 정기준 사이의 갈등과 쟁투를 보여주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그것이다. 신하들 앞에서 마구잡이로 상소리를 해대는 세종의 모습은 광화문 광장에서 근엄하게 우리를 보고 계신 그 분이 아닌 다른 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상소리를 하는 임금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글을 반나절 만에 깨우치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가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글자라고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던 평민이나 천민 계층의 사람들이 쓱쓱 한글로 자기 생각을 써내려가는 모습이란 과히 놀라움의 극치이다. 아, 언어 수학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위대한 조상님들이여! 요즘 아이들도 이런저런 학습지에 이야기책으로 한글을 깨치는데 꽤 긴 시간과 노력이 든다고 하는데, 그리 쉽게 익히고 사용하다니. 조상님들이 뛰어난 것일까, 우리가 어리석은 것일까, 그것도 아님 그만큼 한글이 쉬 배울 수 있게 만들어진 우수한 글자였던가?

뭐든 소리 나는 것이라면 다 적을 수 있게 너무 잘 만들어진 한글 덕에 ‘뭥미’라는 글자가 나왔을 수도 있으리라. 요즘 신세대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듣거나 보고 있으면 해괴망측한 것들도 있으나 그 모든 것들을 쉽게 적어낼 수 있는 한글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뛰어난 한글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새로 생겨날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갈 것이다. 다만 그 단어가 모두가 받아들일 만큼의 소통어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말 그대로 “뭥미?”하며 의사 불통의 시간을 한참동안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통의 시간, 그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이 글자적 혼란스러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까?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똥구멍과 항문의 차이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글자가 그저 소통의 도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기본 줄거리는 한글을 반포하려는 세종과 그것을 막으려는 성리학자들 간의 갈등이다. 성리학자들은 왜 한글 반포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것일까? 그것은 글자가 가져다주는 권력을 피지배 계층과 나눠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글자를 독점하면 권력이 된다. 즉 글자를 알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만이 권력을 점할 수 있다. 문민의 나라, 이 땅에서 글자를 안다는 것은 힘을 가진다는 것이며,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라틴어 미사를 고집하였던 것을 기억해보자.

글자는 곧 권력이다. 그래서 글자를 누가 어떻게 알고 쓰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글자는 권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글자는 권력을 독점하는 기제가 되지만 사적 영역에 들어서면 자신을 지키는 기제가 된다. 더구나 글자는 신성한 그 무엇으로 신성시하여 높이 받들면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이제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권력은 알겠는데, 약이라니?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치유의 능력을 가진 글자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무슨 소설? 바로 에펠리 하우오파의 소설 『엉덩이에 입맞춤을』이다. 아, 위대한 글자의 힘이여!

『엉덩이에 입맞춤을』은 파푸아뉴기니 출신으로 피지에서 인류학자로 살고 있는 에펠리 하우오파의 소설이다. “피지? 그곳에도 소설가가 있던가?” 하며 놀라움을 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는 이야기가 있을 터이고, 그것을 줄거리 삼아 소설 한 편 만들어지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인류학자가 쓴 소설이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다양한 문화적 관습과 생각들을 보여주는 인류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핵심은 낯선 땅의 문화적 충격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적 충격, 즉 어떤 글자를 선택하고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추앙하느냐에 따라 삶의 고통도 치유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떠오른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똥구멍과 항문의 차이.” 점잖지 못하게 똥구멍이라니 말을 삼가라는 고상한 누군가의 질타가 잠시 들려오긴 하지만 다들 속으로야 항문이라 하지 않고 똥구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세종대왕 왈,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쓰는 것, 그것이 바로 한글이다. 그러니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다. 똥구멍과 항문.

왜 똥구멍이라고 말하면 지저분하거나 질이 낮은 것으로 생각할까? 그것은 우리가 글자에 부여하는 자격 내지 의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기 몸이든 세상이든 쓰고 남은 것들이 배설되어 쌓이는 곳은 더럽다고 외면하려든다. 쓰레기가 모여 있는 곳, 배설물이 나오는 곳, 그곳만큼 악취가 나고 부패한 곳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몸의 찌꺼기가 마지막으로 배설되는 그곳, 똥구멍을 말하는 것 자체가 더럽고 냄새가 난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아프면? 그곳에서 지독한 고통이 시작되면 삶 자체가 고통 속에 묻혀 버린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곳이 아프다고 입 밖으로 내뱉기가 민망스럽다. 그럼에도 하루 빨리 고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 오일레이 역시 그 똥구멍에 탈이 났다. 가뜩이나 섹스를 즐기는 그가 그곳이 탈이 났으니 아마도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었던 오일레이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곳을 고치려고 애를 쓴다. 그가 사는 곳이 아직 현대 문명이 발달한 곳이 아니기에 의학 기술의 힘을 빌리기보다는 주술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많은 도토레(일명 주술사)들을 만나 다양한 민간요법을 써보기도 하고 돈을 들여 도시로 나아가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보기도 하지만 도대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이 바부를 만나면서 고통도 멈추고 치유되기 시작했다. 언제? 바로 똥구멍이 아니라 “항문”이라 칭하면서 부터이다.

“똥구멍과 항문”, 모두 같은 배설 구멍을 가리키는 글자인데 무슨 차이가 있어, ‘똥구멍’하면 낫질 않고 ‘항문’하니까 낫는가? 이것이라 단언하기엔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가 아니지만, “똥구멍”이 되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쓰레기들이 배설되는 곳이 되지만, “항문”이 되면 배설을 통해 몸을 항상 청결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신체 부위로 모든 행동의 결과들이 집적되는 곳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곳은 단지 배설의 통로만이 아니라 인간 몸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관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늘 “똥구멍”을 외쳐 되는 오일레이의 고통을 멈추게 한 바부는 그곳을 “항문”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곳은 이제 더러운 것이 나오는 구멍이 아니라 인간 삶에 있어서 중요한, 그래서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부분으로 바뀐 것이다. 치료할 수 있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글자, 그 글자를 우리가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고통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의미가 세상을 바꾸다

이것은 단지 글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더럽고 악취 나는 문제에 대해 특별한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한 외면하려 든다. 또한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혹은 빈곤층이나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를 정상인 혹은 일반인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 혹은 자신과는 다른 무엇을 가진 사람들을 멀리하거나 외면하려 든다.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태도,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태도 등.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손해를 입히려고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려 든다. 사탕과 꿀로 그들을 달래기도 하고, 채찍과 몽둥이로 괴롭히기도 하고, 아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거나 도려내고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방법도 소용은 없다. 왜냐하면 많이 가진 자가 있으면 하나도 가진 게 없는 자들이 있는 것이고,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있으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부가 똥구멍을 항문이라 바꿔 부른 것처럼,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냥 사람, 장애가 있건 없건 그냥 사람, 피부색 서로 달라도 그냥 사람, 그냥 사람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글자의 의미를 바꾸고 그 의미만큼 서로를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 모두가 이 세상을 구성하는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 여기는 것, 그것이 고통을 없애고 치료를 하는 근본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세상을 세세하게 나누는 글자들을 바꿔보자. 존중하고 이해하는 글자들로, 그렇게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오일레이가 고통에서 벗어나듯 우리도 세상의 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