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붉은 울음 [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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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1. 세상이 참말로 험하다

 

이사는 수 없이 다녔다. 아니 이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살다가 떠나가라면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만나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울
▲ 에비슨이 촬영한 나병 환자(1900년대 초). ⓒ동은의학박물관산의 집단촌은 초가집이었지만 방이 있었고, 비도 피할 수 있었다. 거친 식량이었지만, 관청에서 나오는 배급품도 있었기에 굶주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웃 동네 사람들의 원성에 못 견뎌 한센인들은 흩어져 다른 지방으로 옮겨졌다.

할머니는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지명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순서는 정확하지 않은 듯했다. 같은 지명을 다시 말하고, 서로 다른 지역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마이 옮겼다. 60년, 50년 전에 다니던 데는 가물가물한다. 험하대이. 세상이 참말로 험하다.”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었던 서러움을 세상이 험하다는 말로 표현했다.

할머니는 울산 집단촌을 나와 부산으로 온 것은 기억하지만, 부산의 첫 지명은 기억하지 못했다. 입안에서 계속 맴도는 듯 말을 할듯할듯 하다가 결국 기억하지 못했다. 부산에 와서 처음 살게 된 곳은 그리 큰 공동체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센인들이 모여 산다는 말이 돌자 여기저기서 한두 명씩 때로는 가족이 들어와 함께 살면서 마을의 규모는 커져 갔다. 울산에서도 그러했지만, 마을이 커지고 한센인들이 늘어나면 주변 사람들의 핍박은 거세진다.

구걸도 힘들었고, 마치 한센병이 공기를 타고 전파되는 것처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비한센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한센인들의 삶을 더욱 더 힘들게 했다. 그들은 주거 공간이 다르고, 주거지가 많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도 같은 지명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비한센인들에게 한센인들은 없어도 되는 존재를 넘어 없어야 할 존재들이었다.

“거기서 용호동으로 갔제. 그래도 거(용호동)가 괜찮았다. 좀 살았던 것 같네.” ‘좀 살았던 것 같네’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순간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사셨어요?” “아매 2~3년 살았제. 하모. 그때는 마이 살았던 거제.” 용호동에서는 양계를 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밤낮없이 일만 했다. 바닷가 바람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한센인들의 삶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2. 세상이 그런 기라

 

2004년도에 우연히 용호동 한센인 집단촌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 45도에 가까운 경사로에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산을 뒤에 두고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던 그 판잣집들은 철거 중이었다. 지금은 부산 용호동을 대표하는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기 위하여 한센인들의 집이 무너지고 있는 광경을 그날 나는 보았다.

창문 대신 비닐이 쳐져 있는 집들의 대부분이 반쯤 무너지고 부서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오륙도가 보이는 그 곳 바닷가에서 노인 대여섯 명이 무표정하게 우리 일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산과 집단촌 사이에 나 있던 도로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옷가지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방문들이 부서져 널브러져 있는 광경은 참으로 처참했다.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그때 용호동 바닷가에서 보았던 노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갈 곳이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있던 그 노인들은 전기도 수도도 끊어진 그 곳에서 바다만 보고 있었다. 노인들 곁에 남아 있는 것은 햇살뿐이었다. 할머니의 젊은 날이 그러했으리라. 바다를 바라보며 ‘지금’을 벗어나고 싶었으리라. 바다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비켜서지 않고 바다를 보고 지은 집들에는 한센인들의 소망이 깃들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사람이 살 수 없던 척박한 환경이어서 한센인들은 집단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산 밑에 천막을 치기 시작했고, 한센인들이 늘어나면서 천막을 하나씩 지어 내려 간 것이 바닷가에까지 닿았을 게다. 세상이 바뀌어 그 곳이 천혜의 자연을 지닌 산책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센인들은 오래 전에 강제로 쫓겨 와 살기 위해 구걸하고 한편으로는 닭을 키우고 비탈을 개간하여 천막을 판자로, 다시 판자의 일부가 스레트로 바뀌었지만,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자연은 그대로 보존되었고, 그 곳은 이제 부자들이 도시의 오염을 벗어나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적지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자연을 보존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한센인들은 그 곳을 떠나 다시 어딘가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용호동은 왜 떠나셨어요?” “휴우, 거기는 살기가 괜찮았다. 바람이 마이 불고 추워도, 산나물 있제, 계란 팔제. 계란은 파는데 남는 기 너무 없는 기라. 그래 사람들 사이에 말이 많았제. 그기 그렇다. 처음에는 그렇다가 좀 있으모 꼭 말썽이 생기는 기라.” “처음부터 있었던 사람, 나중에 들어 온 사람, 일 안 하고 잘 묵는 사람, 세상이 그런 기라.”

 

3. 아픈 줄 모른께 그리 살았제

 

할머니는 최초의 정착인이 아니었다. 이미 한센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에 할머니가 들어갔으므로 내부의 갈등으로 떠나야 할 사람도 할머니와 함께 들어갔던 사람들이었다. 닭을 키워 계란을 팔았으나, 직접 시장에 가서 팔 수는 없었다. 자연히 외부에서 계란을 가지러 오는 사람이 필요했고, 마을 내부에서 그 중개인을 상대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오해와 의혹에 의한 갈등이 자주 발생했다.

공동체 내의 누군가가 좀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은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는 피해의식을 불러왔다. 이러한 갈등 끝에 시시비비가 붙었고, 일의 잘잘못을 떠나 공동체는 분열되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용호동을 떠나야 하는 쪽이었다. 같은 한센인이지만 그 갈등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이 마을과 길 건너에 있는 마을은 용호동에서 서로 반목하던 사람들끼리 나뉘어져 정착한 곳으로 현재도 실제 거리보다 심리적인 거리가 더 멀어 보였다. 할머니를 만나기 이전에 먼저 길 건너에 있는 마을을 방문했었다. 그 곳에서는 개인적인 접촉이 불가능했다. 나와의 만남을 가져보겠다는 사람도 마을 대표의 한 마디에 연락처도 없이 뒤돌아섰고, 나는 마을 안으로 아예 들어서지 못했었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부산의 또 다른 지명은 신암이었다. 신암이라는 지명은 기억하지만, 그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없었다. 단지 많이 힘들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신암에서 강제로 이주 당해 간 곳이 을숙도였다. 할머니는 을숙도에서의 생활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을숙도에서의 생활은 몸은 고단했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웠다. 한센인들이 이주하기 전부터 섬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원주민들과 한센인들은 서로의 생활 영역을 존중하며 생업에 열중했기 때문에 마주 칠 일이 거의 없었다. 섬이었지만 누군가의 핍박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한센인들은 어떤 일이든 했다. 원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집중한 반면, 한센인들은 섬에 지천으로 널린 갈대와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었다. 갈대와 싸리나무는 젊은 남자들도 맨 손으로 꺾어 다듬기 어려운 식물이다. 그럼에도 한센인들은 불편한 손으로 갈대와 싸리나무를 꺾어서 구부리고 다듬어 빗자루로 엮었다.

그 빗자루는 뭍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사 갔다. 함께 사는 것은 거부했지만, 한센인들이 만드는 빗자루는 다른 빗자루보다 견고하고 성능이 좋았기 때문이다. 빗자루도 한센인들이 뭍으로 직접 나가서 팔 수는 없었다. 작은 나룻배에 싣고 강 가운데로 가면 뭍에서 나룻배를 타고 온 사람에게 넘겼다. 그 길만이 당시 을숙도에 살고 있던 한센인들의 생계수단이었다.

“김선생, 말도 마라. 온 손은 상처투성이고 피도 마이 났다. 피 나는 줄도 모르고 했다. 한참 하다 보면 그것들(갈대와 싸리나무) 군데 군데 피가 묻어 있는 기라. 그래 보모 온 손에 피라. 아픈 줄 모른께 그리 했제. 아팠으면 그리 했겄나” 한센인들이 돈을 벌어 삶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것이 빗자루를 만드는 것이기에 그들은 그 일에 최선을 다 했다.

 

4. 한센 환자들, 그가 그리 역사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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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의 나환자촌. ⓒ동은의학박물관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어디에서도 정착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쓸쓸한 얼굴을 보며,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김정한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래톱 이야기>는 중학교 교사인 화자가 낙동강 하구 명지의 조마이섬에 사는 건우네 집을 가정방문하여 알게 된 조마이섬의 내력과 그 섬을 지키려다 감옥으로 가는 건우 할아버지인 갈밭새 영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마이섬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지배했고, 지금은 유력 인사가 사유지로 하려는 곳이다. 갈밭새 영감은 정부에 의해 이주해 온 한센인들을 몽둥이, 쇠스랑 등으로 쫓아내다가 팔을 다쳐 흉터도 지니고 있다. 오래 전부터 살았으나 아무도 자기 땅을 가지지 못한 몇 안 되는 조마이섬 사람들을 대신하여 갈밭새 영감이 유력 인사와 싸웠으나 결국은 감옥으로 가고, 건우는 학교에 다시는 오지 않았다.’

내가 들려주는 소설을 집중하며 듣던 할머니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그긴 갑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할머니는 <모래톱 이야기>의 무대인 조마이 마을은 처음 듣지만,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고 반색을 하며 오래된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자신의 이야기를 떠나서 자기가 알고 있는 사건과 유사한 내용의 소설을 들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강한 호기심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긴 갑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가. 요쯤(여기쯤)은 바다고 또 한 쪽은 땅인디, 한센 환자들이 거기 살려고 했제. 그런데 주민들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데 너거가 왜 오노 하고 막았다. 살라고 하는 한센 환자들하고 못 들어오게 하는 사람들 하고 크게 싸웠제.” 할머니가 사는 을숙도에서 벌어진 사건은 아니었지만, 그 사건은 한센인들 사이에 회자되었기에 할머니는 <모래톱 이야기>를 그 사건과 연관하여 생각하는 듯 했다.

할머니가 회상하는 그 강변에서 한센인들과 주민들과의 투쟁은 처절했다. “환자들이 거서로 천막을 쳐놓고 살았던 모양이라. 천막을 쳐 놓고 집에 대창을 해가지고 싸우다가 안 되가 저거가(원주민이)…….그래가 술로 받아가지고……. (한센인들에게)술로 얼마나 먹여 놨던가, 한센 환자들이 술 먹고 그 마 잤삤어. 자는 여개(사이에) 그 사람들(원주민)이 와가지고 (천막에)불로 붙였어. (한센인들을)다 죽여 삘라고 불로 붙였는데 그서 튀나오는 사람 창 갖고 찔러 죽이고, 온 가족들하고 그 식구들하고 저쪽에 있고, 요쯤을 점령하면 (한센인)가족들도 욜로 올 수 있는 기라.”

할머니는 그 사건을 설명할 때, 두 팔을 벌려 한쪽팔로는 “요쯤은 바다고”, 다른 팔로는 “한쪽은 땅이고”라는 몸짓으로 그 강변의 지형이 길쭉했음을 온 몸으로 나타냈다. “그래 갖고 젊은 청년들 마이 죽었다. 그때 그래 많이 죽고 그래 갖고 요새 겉으면 한센 환자들 얼마나 많은 줄 아나 그냥 안 있다. 데모를 하든가 무슨 수를 내도 몇 만 명 되는데 그때만 해도 옛날이 되논께네……말도 못하고, 그리 되니까네 군수도 말로 못 하겠다 쿠고.”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언어도단의 절벽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온 몸을 파고드는 한기를 느끼며 바라본 할머니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표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할머니는 “한센 환자들 그가 그리 역사가 깊다.”하면서 긴 한숨을 쉬고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많은 한센인들이 죽었고 다쳤지만, 어떤 보상도 없었다.

요산 김정한은 <모래톱 이야기>의 조마이섬이 가상의 공간이라고 말했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다와 인접한 실제 낙동강변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산은 곳곳을 직접 다니며 알게 된 사실들을 사회 비판적인 안목으로 소설화한 작가이다. 어쩌면 낙동강 주변을 탐색하다 한센인들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 있었던 참혹한 사건을 듣고 <모래톱 이야기>을 집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모래톱 이야기>가 발표된 1960년대의 사회적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실제 사건을 그대로 소설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조마이섬에서의 한센인들과 원주민들과의 갈등을 소설적 장치로 남긴 것이 아닐까 한다. 할머니는 그 강변의 정확한 지명을 묻는 나에게 “생각이 날락말락 한다. 하도 오래된 이야기고. 하기사 나도 쫓기는 건 매 한가진데”라며 기억을 애써 더듬었지만, 그 당시의 사건만 정확하게 되풀이 했다.

 

5. 해와 하늘빛이 서러워

 

젊은 한센인들이 살기 위하여 투쟁하다 목숨을 잃었지만, 그 사건은 그대로 시간 속으로 묻혀 갔다. 할머니는 끝내 그 곳이 낙동강 어디쯤인지 아니면 부근 다른 지역인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으나, 사건의 정황은 기억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이 많은 시간이 지나 다시 현실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시인 서정주는 오래 전 항간에 떠도는 말들을 그대로 시에 옮겨 놓아 세간의 오해와 편견으로 인한 한센인들의 고통과 설움을 묘사했다. 비한센인들은 그들의 관념에 사로잡혀 한센인들을 배척했다. 두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알아야 할 진실을 알지 못하는 세인의 어리석음은 ‘오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것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구분지어 나누어 버린다. ‘나’아니면 ‘너’가 되는 것이다. ‘우리’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도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됨을 애써 모른 척 한다. ‘나’와 ‘너’ 사이에 절대로 넘어 설 수 없는 선을 그어 관용과 이해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나는 오만과 편견에 가득 찬 세상 속에서 병든 몸으로 시간을 헤쳐 나온 생명의 강인함을 마주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상념에 잠긴 옆모습에서 이름도 없이 살다 간 수 많은 한센인들의 슬픔을 만나고 있었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살고 싶다는 그들의 작은 소망을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달빛 아래에서 ‘꽃처럼 붉은 울음’을 울었던 그들이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소생하고 있었다.

 

 

『국가』 제 1 권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논의

올바름에 대하여 Ⅱ

 

가만히 듣고 있던 트라시마코스가 분노를 참지 못하며 논의에 끼어든다.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올바름이 무엇인지 진정 알고 싶다면 묻기만 하지 말고 누군가가 하는 대답을 논박하고서 뽐내려고만 하지 말고 직접 대답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적절히 대처하며 결국 트라시마코스가 직접 말을 하도록 만든다.

 

(1) 트라시마코스의 1정의 : 올바른 것은 강한자의 편익 이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다. 338c

 

(2) 소크라테스의 검토 : 강한자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강한자인 팡크라티온 선수 같은 자를 말하는 것이냐? 338d

 

(3) 트라시마코스의 1정의 수정 : 나라마다에 있어서 힘을 행사하는 것은 지배하는 쪽이며,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서 각 정권은 자기의 편익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것이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다. 즉 올바른 것은 통치자의 편익이다. 로 수정된다. 339

 

(4) 소크라테스의 반론 : 올바른 것이 편익이 되는 것이라는 점은 동의하나 다른 것은 더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하며 통치자들은 전혀 실수를 하지 않는 자들인지 실수를 하는 자들인지 묻는다. 트라시마코스가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자들이라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어떤 것은 그들이 옳게 법을 제정하고 어떤 것은 옳지 못하게 제정한다. 옳게 제정한다는 것은 자신e들의 편익이 되는 것들을 제정하는 것이지만, 옳지 못하게 제정하는 것은 편익이 못 되는 것들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그것은 통치자의 편익뿐만 아니라 편익이 못 되는 것도 이행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된다. 339d~339e

 

(5) 트라시마코스의 반론 : 어떤 사람이 실수를 저지를 때, 그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강한자로 부를 수가 없다. 엄밀한 뜻으로 말 한다면 어떤 전문가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그가 통치자인 한에 있어서는, 실수하지 않으며 실수를 하지 않는 자로서 자신을 위한 최선의 것을 제정하게 되고, 다스림을 받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이행해야 한다. 따라서 올바름은 강한자의 편익이라는 것이 정당하다. 340c~341a

 

(6) 소크라테스의 반론 : 엄밀한 뜻의 의사는 돈벌이를 하는 사람인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인지 묻는다. 트라시마코스는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키잡이는 선원들의 통솔자인지 선원인지 묻자 트라시마코스는 다시 선원들의 통솔자라고 대답한다. 그들이 키잡이로 불리는 이유는 항해를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선원들에 대한 통솔에 관한 기술 때문이다. 고로 기술도 원래 각각(선원들)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기술은 엄밀한 의미에서 온전한 것 정확한 것이기에 그 기술 자신에 대한 편익을 생각하기보다 그 기술이 관여하는 대상에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한다. 고로 어떤 통솔을 맡은 사람이든 그가 통솔자인 한은(통솔의 기술을 가진 자는)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통솔을 받는 쪽 그리고 자신이 일해 주게 되는 쪽에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한다. 341d~342e

 

(7) 트라시마코스의 재반론 및 정의 추가 :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보모가 있었는지를 언급하며 새로운 반론을 제기한다. 양을 치는 이들이나 소를 치는 이들이 양이나 소한테 좋은 것을 생각하며 이것들을 살찌게 하고 돌보는 것이 주인한테 그리고 자신들한테 좋은 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양이나 소를 위한 것이 아님을 언급하며 통치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임에 있어서 올바름 올바른 것은 실은 남에게 좋은 것을 하는 것이고 자신에게는 해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자는 가장 행복하게 되고 반면에 올바르지 못한 짓이라고는 아예 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가장 비참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343b~344a

 

(8) 소크라테스의 반론 : 목자가 양을 살찌우는 것은 그가 목자인 한, 양의 최선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며 목자가 돈벌이를 하는 사람처럼 그것을 팔 것을 염두에 두고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양을 치는 기술에 있어서 그 기술이 맡아 돌보도록 되어 있는 대상을 위해 최선의 것을 제공토록 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그 기술이 최선의 것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이미 충분히 갖추어 갖고 있기 때문이다. 345c~345e 그리고 통치자들이 자신해서 통치를 맡는 것이 아니며, 그들은 통치를 맡음으로 인해서 보수를 요구한다. 이 점에 있어서 통치술 자체만으로는 통치를 하는 자들에게 이득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타술을 통해서 건강하게 되었다고 조타술을 의술로 부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노동을 하는 자가 건강해졌다고 해서 보수획득술을 의술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전문가들이 각각의 기술들을 활용해서 이득을 보는 것은 보수 획득술을 추가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되는 것이다. 즉 의술은 건강을 생기게 하나 추가되는 보수 획득술이 보수를 생기게 한다. 또한 다른 모든 기술도 이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제 기능을 하며 각각기 맡도록 되어 있는 그 대상을 이롭도록 한다. 그리고 그 기술에 보수획득술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그 전문가가 그 기술로 해서 이득을 얻는 일이 없다. 고로 통치술만으로 통치자가 이득을 얻는 것이라는 주장이 반박된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맡아 남의 나쁜 일들을 바로 잡으려 하지는 않고 보수를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그 일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이 벌이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일을 맡지 않음으로 받는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이며 자신들이 통치를 맡게 되는 것은 그런 벌을 두려워함으로써 부득이하게 맡게 되는 것이다. 고로 ‘올바름은 강자의 편익이다.’ 라는 주장이 논파 된다. 345c~347e

 

(9) 트라시마코스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 1 : 올바르지 못한 사람의 삶이 더 훌륭하고 올바른 사람의 삶이 훌륭하지 못하다는 두 번째 주장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올바른 사람은 저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능가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같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능가하려 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올바르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올바른 사람에 대해서도 능가하려 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시가에 능한 사람과 시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 시가에 능한 사람은 분별력이 있고 훌륭하나 시가를 모르는 이는 분별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가에 능한 사람은 리라를 조율할 때 현을 죄거나 늦춤에 있어서 역시 시가에 능한 다른 사람을 능가하고자 하거나 능가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음이 드러난다. 반면에 시가에 능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능가하려 함이 인정된다. 그리고 전문지식이 있는 이는 지혜롭고 지혜로운이는 훌륭함이 인정된다. 고로 훌륭한 이(올바른 이)는 자기와 같은 사람(올바른 사람)에 대해서는 능가하려 하지 않을 것이나 같지 않은 사람(올바르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능가하려 함이 드러난다. 여기서 올바른 사람은 지혜롭고 훌륭한 이를 닮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못되고 무지한 이를 닮았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도출되며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이 논파 된다. 348a~350d

 

(10) 트라시마코스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 2 : 다음으로 올바르지 못함이 올바름보다 더 유력하고 강하다고 했던 트라시마코스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이 이어진다. 9)에서 논의 되었던 데로 올바름이 지혜이며 사람의 훌륭함이라면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 보다 더 강할 것이 쉽게 드러날 것 같다고 한다. 올바르지 못한 나라가 있어서 다른 나라들을 부당하게 굴복하게 하여 예속화하고 실제로 그렇게 많은 나라를 속국화 해서 갖고 있다는데서 출발한다. 그러한 올바르지 못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도 강하게 될 그 나라가 올바름 없이도 그런 힘을 지닐 수 있게 되었는지 아니면 올바름을 갖추어야 되는지가 올바름은 지혜라는 이전 논의의 결론을 통해 올바름을 갖춰야만 하는 것으로 쉽게 귀결이 난다. 그렇다면 나라 같은 어떤 집단이 올바르지 못하게 뭔가를 공동으로 도모할 경우에 자기들끼리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 일(다른 나라를 예속시키는 것과 같은 올바르지 못한 짓)을 도모하지 못할 것이 확인된다. 고로 자신들끼리는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며 이 올바르지 못함이 서로 간에 대립과 증오 및 다툼을 가져다주나 올바름은 합심과 우애를 가져다주기 때문임이 확인된다. 이로써 두 사람의 사이에서도 한 사람의 안에서도 올바르지 못함은 갈등이 생기게 되어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도록 만들게 된다. 고로 올바르지 못한 이들은 아무것도 서로 어우러져 해낼 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고로 일종의 올바름이라도 깃들어져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올바르지 못함이 한 개인 안에 깃들이게 되었을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갈등이 생기게 하고 한 마음이 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도록 만들 것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올바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이 되게끔 만들고 말 것이라는 것으로 올바르지 못함이 올바름보다 유력하고 강하다는 논의는 논파된다. 351a~352b

 

(11) 트라시마코스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 3 : 마지막으로 올바르지 못한 이들이 올바른 자들보다도 또한 더 훌륭하게 살며 더 행복하다는 것을 검토한다. 이 논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신중하게 논의를 시작한다. 눈에 맞는 기능이 있고, 귀에 맞는 기능이 있는 것처럼 어떤 기능이 부여되어 있기도 한 각각의 것에는 훌륭한 상태 또한 있다는 것이 합의된다. 그렇다면 눈의 훌륭한 상태 또한 있고 귀의 훌륭한 상태 또한 있다. 그렇다면 그 특유의 훌륭한 상태에 의해서는 그 기능이 제 할 일들을 훌륭하게 수행하게 되지만, 나쁜 상태에 의해서는 나쁘게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는 접이 합의된다. 또 그것이 자기의 훌륭한 상태를 빼앗겼을 때에는 자기의 기능을 잘못 수행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같은 이치를 적용시킬 수 있으므로 혼(psyche)에는 돌봄, 잘사는 것 등등의 기능이 있는데 이 혼에도 훌륭한 상태가 또한 있다고 말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혼이 고유의 훌륭한 상태를 빼앗기고도 자신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지 못함은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그런데 앞의 10)번 논의에서 한 사람에서의 올바름을 논의 할 때 올바름은 혼의 훌륭한 상태 그리고 올바르지 못함은 혼의 나쁜 상태임에 이미 동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사람은 혼의 훌륭한 상태를 지녔으므로 그것의 고유한 기능인 잘 살게 될 것임이 필연적이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혼의 훌륭하지 못한 상태를 지녔으므로 고유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니 잘 살지 못하게 될 것이 필연적이게 된다. 그러니까 올바른 사람은 행복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것이 입증되며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이 논파된다. 352d~354a

 

마무리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내기도 전에 그것은 내버려둔 채로 그것이 나쁨이며 무지 인가 지혜이며 훌륭함인가에 대한 검토만 착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올바르지 못함이 올바름보다도 더 이득이 된다는 주장에 반박하느라 올바름이 무엇인지 고찰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고로 올바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일종의 훌륭함인지 아닌지 그것을 지닌 자가 불행한지 행복한지 알게 될 가망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하며 1권이 마무리 된다. 354b~354c

조화로운 삶-스콧 니어링[청춘의 서재]

조화로운 삶-스콧 니어링[청춘의 서재]

 

박지용(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혁명가의 삶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다. 노예혁명가 스파르타쿠스,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로베스 피에르, 파리코뮌의 극좌파 블랑키,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전사 체 게바라. 이 외에도 한참을 더 열거할 수 있는 이들 혁명가의 삶에는 혁명을 위한 열정과 저항의 파토스가 있다. 혁명가를 혁명가이게끔 하는 어떤 종류의 뜨거움이 있다. 이들 혁명가의 뜨거움이 대중의 심장을 끓어오르게 하고 진동시킨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몸이 분노로 떨려야 혁명은 일어난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살펴 본 혁명들은 저항하기 힘든, 압도적으로 거대한 체제를 적으로 삼고 있다. 폭력 혁명으로 전복된 체제는 폭력으로 반동화되며 이 과정에서 폭력의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지난한 폭력의 역사는 프랑스 대혁명의 경우 파리코뮌의 몰락까지 근 1세기의 달하는 근대사에서 집약된다.

그런데 전술한 것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가 있다. 이 혁명의 다름은 ‘그게 무슨 혁명이야’라는 반응을 낳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피를 뜨겁게 하지 않는 냉철한 사유의 혁명, 적과 마주대해 무력으로 싸우지 않는 혁명, 그럼에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명. 혹시 깊은 산 속에서 일으키는 자아의 혁명을 말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짐짓 의심할 수 있다. 이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는 스콧 니어링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실천에 철두철미했다는 의미에서 그의 삶은 다른 의미에서 혁명적일 수 있다. 이 혁명은 정치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지는 않으나 체제의 전복을 다르게 실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체제의 부도덕성에 대한 분노라는 반대급부의 소진적인 감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냉철한 사유와 삶의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작은 혁명에 관한 모범적인 사례이다. 이 혁명은 자본주의적 삶을 거부하고도 삶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을 현실화시킨 그의 삶 자체이다. 어찌보면 니어링의 삶과 사상은 정치적인 투쟁이나 분노의 파토스와는 거리가 멀다. 비록 그가 미국 좌파 운동에 깊숙이 관여했을지라도 그의 학문적인 성찰이나 계획에 대한 집착은 혁명적 파토스와는 다른 대조적인 모습이다.

자본주의가 수탈하는 인간의 삶과 자연의 가치를 조화시키고 복원시키기 위하여 그가 선택한 것은 자연에 기초한 삶이었다. 노동에 대한 철저한 계획과 자연에 대한 신뢰와 지식이 있다면 삶은 더욱 풍요로울 수 있다는 점을 그는 20년 동안의 전원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계획과 연구의 필요성은 자손대대로 농부로 살아온 이웃과의 대조에서 잘 드러난다. 이웃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어설픈 농부인 니어링보다도 못한 결실을 낳는다. 계획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관성대로 살아온 삶을 살게 되지만, 삶과 일을 계획하고 통제할 경우 더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된다는 교훈이 남는다. 물론 이러한 보편적인 행위 원칙들은 전원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혁명운동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점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대도시에서의 정치 투쟁을 포기하고, 전원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한 그들의 삶이 혁명에 대한 발상의 새로움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버몬트의 전원생활에서 니어링 부부가 추구한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생활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농사를 짓고 작물을 키우는 목적은 자본축적이 아닌 단순히 먹고 사는 데 있었다. 이윤이 없는 생활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농사를 지어서 전혀 남는 것이 없는 바는 아닐테지만 남겨서 돈을 모아두고 그 돈으로 또 뭔가를 해서 또 남기고 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자본주의적 삶의 태도이자 생활 습관일 따름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또 이 감정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치부하면서 불안을 벗어나려는 축적의 몸부림에 허덕인다.

그런데 니어링은, 마치 성경의 한 대목처럼 ‘자연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라는 배포 큰 태도를 보인다. 사실 우리 주변의 모습을 볼 때, 불안한 삶을 더욱 불안하게 느끼게 하고 또 달래주는 것이 모두 그로부터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은퇴 후의 삶? 실직 후의 삶? 미리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비하고 또 축적해야 한다는 외침은 실상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불안한 삶에 대한 위안은 자본의 축적과 투자로만 달래질 수 있지만 그도 녹록치는 않다.

20년의 삶 동안 니어링 부부는 스스로의 자기평가 속에서 그들의 선택이 정당했다는 점과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삶이 극복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삶의 부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농업공동체는 니어링의 제안에 따라 그 영향력이 커져갔다. 대안이라는 말 자체는 제한적인 가치를 갖는다. 말 그대로 대안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혁명가가 목가적 전원생활에 도취한 것일 뿐이라거나, 혁명의 의미를 부정하고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킨 혁명의 변절자라고 섣불리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성공적으로 제시된 대안은 또 다른 대안의 가능성으로 확산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극복 가능한 것인가? 이 질문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정작 자본주의적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그러한 삶의 가능성에 대해 다수의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해 보인다.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으로서, 하나의 대안적 사례로서 니어링의 삶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작은 혁명인 것이다. 실상 두려운 것이 자본주의 이후의 삶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상실감 혹은 공허감은 아닌가. 니어링은 도시를 떠나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보험과 저축이 없어도 삶은 만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체질적으로 충돌을 통한 돌파보다 우회함을 선호하는 성격들이 있다. 혁명에 대한 열정보다는 냉철한 분석과 진단을 선호하는 경향들도 각기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목표는 같으며, 그들이 공유하는 적대전선은 자본주의이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농촌에 가서 살아볼까라는 생각에 그치지 말고, 니어링이 전해주는 사례를 예시로 삼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독일어 원전강독연습 강의계획서

독일어 원전강독반 강의계획서

담당 : 서유석

목표 : 독일어 문법 학습 및 원전강독 기초능력 배양

기간 : 2012년 4월 21일 – 9월 말(총 24주)

시간 :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1시

장소 : 한철연 세미나실

 

<학습내용>

1. 문법 학습

– 독어 기초 문법(초급, 중급 수준) 학습

– 낯선 독일어, 독일 문화 친숙하게 하기 : 독일문화, 독일역사 짬짬 감상 및 강의

– 강독을 위한 독일어 학습에 초점

 

2. 원전 강독 연습

– 독일어 문법 일정단계 이른 후 시작(13주차부터 예정)

– 대상 텍스트

현재 <독일이데올로기>(Marx/Engels) 1부를 염두에 두고 있으나

수준과 관심을 고려하여 변경 가능.

가급적 현대 표준 독일어에 가까운 텍스트 선정 예정

 

<교재>

Tangram aktuell 1 (Lektion 1-4) : 기본교재

– 1. 교재 : Tangram aktuell 1 (Lektion 1-4) Kursbuch +Arbeitsbuch

– 2. 학습장 : Tangram aktuell 1 (Lektion 1-4) ?bungsheft

– 교보에 판매(인터넷 구매 가능) : 가급적 오디오 CD함께 구매

 

기타 문법학습 필요한 자료(유인물) : 한철연 제공.

독일문화 소개 자료(독일외무부 제작 자료, 비디오 자료 등) : 한철연 제공.

희랍철학 고전읽기 강의계획서-아리스토틀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읽기와 해석

담당선생님: 김재홍

 

1> 주별 강의 계획

1강(6월 2일): ‘행복’이란 무엇인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10권

 

2강(6월 9일): ‘탁월성(덕)’이란 무엇인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2,3,4권

 

3강(6월 16일): ‘정의란 무엇인가’와 ‘자제력 없음이란 무엇인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6권

 

2. 주교재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김재홍, 이창우, 강상진 옮김), 길 2011.

 

희랍철학 고전읽기 강의계획서-아리스토틀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읽기

담당 선생님: 김진성

1. 강의 개요

<형이상학>은 변화하는 세계에서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영원불변의 존재(神)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주제들 중 다음의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발췌하여 강독하면서 <형이상학>의 내용을 개괄하고자 한다.

 

2. 주별 강의 계획

1강(6월 23일): ‘철학’이란 무엇인가?

– 철학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철학은 다른 학문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다.

? 강독: <형이상학> 1권(Α) 1-2장, 6권(Ε) 1장

 

2강(6월 30일): ‘존재’란 무엇인가?

– 철학이 탐구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 강독: <형이상학> 4권(Γ) 1-2장, 5권(Δ) 7장

 

3강 (7월 7일): ‘모순’이란 무엇인가?

– ‘대립’ 개념을 분석하고, 모든 것들에 보편타당한 근본원리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 강독: <범주들> 10장, <형이상학> 4권(Γ) 3장

 

3. 주교재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김진성 옮김), 이제이북스 2007.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김진성 옮김), 이제이북스 2008.

 

* 강독에 필요한 부분을 복사해서 강의 때 드리겠습니다.

 

 

희랍철학 고전읽기 강의계획서-국가론 편(플라톤)3-6주차

희랍철학 고전 읽기: 3주~4주차 강의계획서

담당 선생님: 김인곤

<3주차>

1. 소피스트적 정의관 비판(I권_336b~II권_367e)

①트라쉬마코스의 정의관(“정의는 강자의 이익) 비판(336b~354c)

②글라우콘의 정의관(협약주의 정의관) 비판(357a~367e)

2. 플라톤의 정의관 : 이상 국가 건립을 통한 정의 개념 확립(367e~434d)

①-1국가 수립의 기본원리(369b~374e)

 

<4주차>

①?2. 수호자의 자격과 임무(375a~376e, 421d~427c)

②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 : 혼의 세 부분과 국가의 세 부류(427c~455b)

③이상국가의 실현 가능성 : 철학과 정치권력의 통합(471c~487a)

 

**두 사람이 소 주제 하나씩 나누어 맡아서 준비해 오면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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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철학 고전 읽기: 5주~6주차 강의계획서

담당 선생님: 김주일

4) 506d7~521c10(6권~7권) : (좋음의 형상,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

5) 543a1~580a9(8권~9권) : (정체의 형태와 개인의 성향)

5-1) 543a1~555b2(명예지상정체, 과두정체)

 

6주차 :

5-2) 555b3~580a9(민주정체, 참주정체)

 

– 과제 : 5주차에는 ① 좋음의 형상과 선분의 비유, ② 동굴의 비유, ③ 명예지상정체

6주차에는 ① 과두정체(5주차에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6주차로 넘김),

② 민주정체 ③ 참주정체를 매주 한 주제를 두 사람씩 맡아 발제해 오면 되겠음.

발제는 줄거리가 아니라 논의 중심으로 논의 구조가 드러나게 해오기 바람.

희랍철학 고전읽기 강의계획서-크리톤 편

플라톤 <크리톤> 읽기

담당: 이기백 선생님

1. 강의 개요

<크리톤>을 읽으며 소크라테스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과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원칙을 살펴보고, 그가 과연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했는지, 혹은 그런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 주별 강의 계획

4월 21

<크리톤>과 관련된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일부를 읽고(당일 자료를 줄 것임)

<크리톤> 43a-49e 부분을 읽을 것임.

 

4월 28

<크리톤> 49e-54e 부분을 읽고,

시민불복종 문제와 관련한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소논문을 읽으며 검토할 것임.

 

3. 주교재

플라톤, <크리톤>(이기백 옮김), 이제이북스

 

 

작은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의무급식이야기[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수진(학부모)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새댁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올해는 우리 아이가 무상급식이 안된다는 데요, 얘기 들으셨어요?”

“아니, 왜? 작년엔 받았잖아. 학교에서 별소리 못 들었는데”

“유치원하고 중등은 지원이 없구, 초등만 준다는데요. 지역신문에 났어요.”

 
ⓒ오마이뉴스학교에서 학부모 운영위원을 하고 있고 지역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일을 하다 보니 종종 학교 문제에 관한 문의 전화를 받곤 한다. 느닷없는 전화를 끊고 이래저래 알아보니 참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에 3개월간(9월-12월) 유치원 만5세가 경기도교육청 예산 지원으로 의무급식(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급식비를 100% 지원해주었으나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지자체에서 40%(약 1억 8천만 원)을 부담하고 경기도 교육청이 60%(약 2억7천만 원)을 분담하여 의무(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시에서는 예산부족이라는 이유로 대응자금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예산편성안함). 해당 교육청에 알아보니 교육청 담당 장학사가 여러 차례 시장을 찾아 갔으나 거절하였다고 한다.

우리시가 예산부족으로 내세운 대응투자금 40%는 정확히 1억 8천 6십 8만 8천 원으로 우리시 전체예산의 0.04%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 돈이 없어서 2억 7천 만원을 날려버리고 급식비를 내고 밥을 먹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중학교에도 똑같이 적용 돼서 중학교에도 우리시만 급식비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이런 사실을 주민의 의사를 묻는 공청회나 의견수렴의 절차 없이 시가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지역신문 귀퉁이에 난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영문도 모르고 당할 일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아줌마들 사이에서 오가고 난 후 유치원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서 시청에 문의 전화를 하고 민원을 내기로 했다. 다른 시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보조를 받아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데 왜 우리시만 못한다고 하는지 민원을 내니 돌아 온 답변 은 더욱 가관이다. “예산이 부족하다”, “일방적인 도교육청의 밀어붙이기 행정이었다”며 수요예측이 가능했던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도 않은 채, 학부모들에게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3월말에 추경예산을 잡는 시의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학부모들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유치원은 공립과 병설 유치원 학부모들이 연락을 해서 까페를 만들고 시청 앞에서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중학교 학부모들은 학부모회 회장들이나 학부모운영위원이 긴급하게 연락을 해서 회의를 열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임’을 만들어 서명 작업과 일인시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모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이 워낙 좁은 까닭도 있지만 그동안 학부모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는 마련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인구 20만이 되지 않는 경기도의 작은 중소도시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지역이였다가 일명 신도시가 들어오면서부터 도농복합지역으로 바뀐 곳이다. 그렇다보니 신도시로 이주한 입주민과 기존 지역민과의 의식차도 있고 생활차이도 있다.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농촌지역에 가까워 시청에 들어가면 지역 토박이 성씨(姓氏)를 쓰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일 정도였고 공무원들이 어찌나 권위적이던지 민원을 넣으러온 시민들에게 불친절은 기본이고 고압적 자세로 업무를 봐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서울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은 수시로 민원을 내고 전화를 걸어 공무원과 싸우는 일이 잦았고 시를 상대로 소송을 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게 됐고 많지는 않지만 지역공동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지역에서 일을 하다보면 답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워낙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라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거의 대부분 보수당 당원들이고 이들은 자기의 생각 없이 무조건 당의 입장으로 말한다. 무상급식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나 올라오는 말들이 서슴없이 시의원입에서 튀어 나온다.

예를 들면 ‘무상급식 하느라 예산이 전부 애들 밥먹는데 들어가서 시에 돈이 없다. 그래서 아직 도로를 못 만든다’라고 아파트 대표자들을 불러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야기 한다. 참고로 그 도로는 10년째 공사 중인 곳이다. 무상급식은 작년부터 이루어 졌는데 그전에는 왜 그 도로를 완성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니냐, 뭐 그렇다는 얘기지 어떻게 그걸 일일이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한다. 또 어떤 시의원은 ”무상급식하면서 급식질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맛이 없어 밥을 못 먹는다고 하더라“란 이야기도 한다. 학부모회 일을 하기 때문에 급식실 영양교사들을 만날 일이 있어 그 분들에게 물어보면 ”의무(무상)급식을 하고 나서는 예산이 안정화 돼서 오히려 급식질이 좋아졌다’고 한다. 무상급식을 하기 전에는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예산이 불안정하고 급식비를 못낸 아이들까지 먹여야 하므로 예산이 늘 부족했었다고 했다.

의무(무상)급식을 놓고 헛된 곳에 돈을 쓴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장의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듣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각자 자기가 사는 곳에서 서명 작업을 받기로 하고 헤어진 중학교 학부모회 회장님들은 그 후 다시 모이질 않았다. 학교 측에서 정치적 문제가 개입된 것 같으니 학부모들에게 그 모임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순수한 행동이 아니라 무상복지, 무상급식이라는 정치적 문제라나 뭐라나.

그렇다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 모임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뜻있는 학부모들이 계속 활동하기로 해서 일인릴레이시위도 계획대로 진행됐고 서명 작업도 받아서 제출했다.

우리시에서 의무(무상)급식은 아직도 예산편성을 기다리는 중이나 유치원생은 곧 편성이 돼서 의무급식을 먹게 될 것 같고, 중학생은 좀 더 시위가 필요할 듯하다.

3월이라 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지하철역 앞에서 일인시위에 참여하게 된 나는 지나가시면서 ‘수고하십니다’ 한마디 해주시는 아저씨들이 있어 가슴이 따뜻했고, 일인시위 한다고 아침부터 일부러 지하철역까지 나와 준 아줌마들이 있어 어깨가 으쓱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참고로 12년 2월 현재 경기도교육청 소속 30개 시군교육청 가운데 14개시(대부분 경기외곽지역)에서 대응투자을 하지 않아 의무급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4월까지 몇 개의 시가 대응투자 예산을 세워 이후 집행할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