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내 인생길 (2)[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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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산속 움막으로 쫓겨 가다.

몸이 아프거나 외로울 때는 어머니가 끓여주던 미역국이 먹고 싶다. 싱싱한 생선과 생미역을 넣고 끓인 뜨거운 국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힘이 솟았다. 어머니는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면서 안쓰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미역국에서는 언제나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행복한 일상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에게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할머니는 이야기 중간 중간에 어머니가 살아 계시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그 질문 뒤에는 “김선생도 아(아이)가 있제?”라는 또 다른 질문이 꼭 이어 나왔다.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얼굴도 알 수 없는 아들과 함께 수많은 마음 속 옹이 중의 하나였다.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소문은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갔고, 가끔씩 호기심으로 소문의 진위를 탐색하기 위해 오던 이웃들의 발길도 끊겼다. 할머니와 어머니 둘이서 살던 집은 세상 속의 섬이었다. 두 사람은 말을 잃어갔고, 하루 종일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음이 기정사실화 되자 할머니와 어머니는 살고 있던 집을 강제로 빼앗기다시피 팔고, 동네 뒷산 기슭에 있는 허물어져가는 움막 같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곳은 밤이 되면 더 무섭고 추웠다. 짐승의 울음소리도 무서웠지만, 누군가 와서 해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깊이 잠들 수도 없었다.

19살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초여름이었지만 부둥켜 안고 잠을 잤다. 산속 움막은 계절과 관계없이 밤만 되면 서늘한 바람이 여기저기서 들어왔고, 혹시 잠이 깊이 들었을 때, 누군가 와서 딸을 해칠까봐 어머니는 깊은 잠을 자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과 태어날 아이에 대한 불안감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냈다.

움막 주위 어디에도 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지만, 한센병에 걸린 할머니가 물가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씻을 물도 마실 물도 움막 가까이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산속에 흐르는 물줄기 가까이에 갈까봐 멀리서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서 새벽이나 저녁 무렵에만 우물로 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용케 알고 쫓아와 두레박을 뺏고 물통을 발로 차며 우물가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옷고름이 찢어진 채로 빈 물통을 들고 와 통곡하는 날이 많았다.

 

이래도 부모는 병든 자식이

그렇게도 좋을까

우물에 물을 뜨러 가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레박을 빼앗기며

양철통을 발로 차이고

온갖 학대와 멸시와 천대를 받고

돌아오면 모녀간에 부둥켜안고 울어

눈도 붓고 얼굴도 부었네.

<내 인생길> 부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다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숨결이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벌레도 풀의 이슬을 먹고 사는데, 나는 사람이다 하고 소리 질렀다. 나는 벌레도 아인기라.”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떨어져 내리더니 코끝에 걸쳐 있는 안경알에 고였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사람도 아니고 벌레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그 무엇이라고 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살 수 없는 한센인은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한하운, <나>)”과 같은 존재였다. “다만, 억겁을 두고 나누고 또 나누어도 많이 남을 벌(<나>)”받은 존재인 것이다. 오로지 남아 있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한하운, <삶>)”라는 처절한 싶은 현실뿐이었다.

한센병에 걸린 자신으로 인하여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할머니에게 자신의 병보다 더 견딜 수 없는 벌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으로(<내 인생길>)” 내달려도 마음의 고통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돌에 채이고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는 한센병의 진행을 도왔다. 병은 몸을 조금씩 잠식해왔지만, 뱃속의 아이 때문에 시중에 떠도는 약은 아무 거나 먹을 수 없었다. 한센병에 좋다고 인정된 약은 너무 비싸 사 먹을 수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절망이라는 마음의 병을 가지고 왔다. “차라리 이 땅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내 인생길>)” 자신으로 인해 곤궁한 삶을 사는 어머니를 보면서 할머니의 마음은 병들어 갔다. “배는 불러오제, 끼니거리도 구하기 힘들제, 우리 어무이는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며 산나물이고 열매고 갖고 와서 나 먹이기 바쁜기라.” 할머니의 숨결이 다시 가빠졌다. 눈시울은 붉게 물들고 맞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살아 있는데, 죽은 사람처럼 먹지도 마시지도 씻지도 못하고, 사람 가까이에 갈 수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 삶은 사는 것일까? 죽는 것일까?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현재 살아 있지만,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지난날을 말로 다 하지 못하고 깊은 한숨과 눈물과 떨림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6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할머니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과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차라리 자기가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가족이 함께 살던 큰 집에서 넉넉한 생활을 하며 편안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임신만 하지 않았더라도 어머니 곁을 떠났을 것이고, 그러면 어머니가 좀더 편안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회한도 컸다.

 

느삼태 찾아 이산 저산 헤매던 어머니

무더운 8월 여름에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조금씩 나오던 젖도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아이는 언제나 배를 곯았다. 어쩌다 살갑게 지냈던 사람들이 아이 낳은 것을 알고 살짝 갖다 놓고 가는 양식이 유일한 끼니거리가 되는 날이 이어졌다. 산 아래 사람이 사는 세상은 해방이 되었다고 기쁨이 넘쳤지만, 산기슭 움막에는 적막만 있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옷을 못 입혔제. 지도 산 목숨이라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는데, 젖이 안 나오는 기라.” 할머니는 이야기를 멈추고 긴 한숨을 쉬었다. “에미는 나병에 걸렸는데, 아는 괜찮더라. 참 우습제.” 많은 사람들이 전염될까봐 외면했는데, 정작 한몸으로 있었던 아이는 건강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해방이 되자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일본으로 급히 돌아갔다는 사실도 어렵게 찾아 온 친구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일본으로 가기 전에 할머니를 찾았노라고 친구는 전해주었다.

어쩌면 아이를 낳은 사실도 영원히 모를 것이라고 할머니는 짐작했다. 실제로 마쓰시타가 아이의 존재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할머니는 자신과 아이가 마쓰시타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자 병은 무서운 기세로 할머니를 덮쳤다.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한 산모와 제대로 울지도 않는 갓난 아기를 두고, 어머니는 하루 종일 산을 헤매고 다녔다. 한센병에 좋다는 느삼태를 구하기 위해 산꼭대기까지 오르내렸다. “허리에는 노끈을 드리우고 약초 망태기는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산 저산으로 헤매며(<어머니>)” 다녔다.

어머니는 오로지 느삼태를 구하기 위하여 어떤 날은 “엎어지고 넘어져” “머리 깨어 피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까치 밭길에 천 갈래 만 갈래 찢긴 옷”을 “바람에 휘날리”며 돌아오기도 했다. 느삼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내 한이야 내 한이야”하며 통곡했다. 어머니의 통곡 소리는 지금도 할머니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사모곡과 할머니의 두통

어머니가 당했던 고통의 근원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할머니는 “머리털 하나하나 뽑아서 어머니 신틀메를 삼아도, 뼈를 깎아 어머니 공덕탑을 세워도” 불효를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6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할머니의 가슴에 흐르고 있다가 한 편의 시로 재현되었다.

이 불효 여식

벌레만도 못한 인생

이것 무엇 보시고

당신께서는 그 높은 사랑

사랑으로 아낌없이

쏟아 부어 주십니까.

 

팔십 평생 살며

어머니 앞에

딸자식 자랑거리가 못되어

많은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받아가며

어머니 앞에 황송할 뿐인

이것이 내 인생길입니다.

 

어머니

끝끝내 당신은

나를 두고 눈물로

황승길 가셨나요.

아,

어머니.

<어머니> 부분.

시 <어머니>를 읊고 나자 할머니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이마에 열기가 있었다. 놀라서 화장대 서랍을 열고 약을 찾았다. 서랍 안은 몇 권의 공책과 전화번호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수많은 약봉지 속에서 두통약과 해열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약을 찾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말을 이어 갔다. 나는 돌아앉은 채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할머니의 말을 듣기만 했다.

“내가 오늘날까지 이거, 묵어 있던 거 몸 밖에 꺼내어 뭐할 낀고 싶다.”

“우리 어무이는 참 고왔다. 아버지가 좀 일찍 돌아가시고 해도, 남긴 것도 있고 논도 있고 먹고 사는 데에 넉넉했다.”

“봐라, 김선생. 약 안 먹어도 된다. 옛날 생각해서 머리 아프다.”

“어제 밤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더라. 마이(많이) 나서 마이 울었다. 그래 머리 아프다.”

할머니 옆에 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웃는 것뿐이었다. 할머니를 만나면 시를 읊기 전까지는 내가 많은 말을 하지만, 할머니가 시를 들려주고 그것을 받아쓰기 시작하면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치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쓰는 내 자신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할머니의 두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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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게재된 사진은 전호근 작 <벽>(2007)입니다.

#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세일러문의 국가[썩은 뿌리 자르기]

양정진(한국철학사상연구회)

1.‘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 이어 복지국가 열풍이 찾아왔다. (행성X와 혜성 엘레닌을 사랑하는 음흉한 나에게는, 정의론 중에서도 왜 하필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뇌내망상의 세계를 만들어낼 신나는 구실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정의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무지개의 끝에 숨겨져 있는 줄만 알았던 그 정의가, 복지국가라는 이름의 오색 빛깔 스펙트럼으로 공중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조지 레이코프 식으로 말하자면 과거 우리의 ‘엄격한 아버지’께서조차도 우리에게 복지국가를 실현시켜 주시고자 했던 것뿐이라고 그의 생물학적 딸이 주장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진보는 국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 자체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장치라고 폄하하던 과거의 태도를 버리고, 공공선과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로서 국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의 기획은 현실적으로 실패했으며 시장과 국가를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역사의 종말’ 론을 반복하는 경향으로도 나타난다. 내용상 딱히 새로울 것은 없는 주장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이 하필 샌델의 정의론 열풍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보인다.

2.복지국가, 좋다. 더 이상 아무도 크레인에 올라갈 필요가 없고 분신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온다면, 살갑게 돌봐 온 배추를, 소와 돼지를, 아이를 가슴에 묻지 않아도 된다면, 점심 먹을 시간 좀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면, 학생 신분이라는 게 사치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 그게 어떤 이름을 갖고 있든 대체 무슨 상관일까. 누구 말마따나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만 제대로 보장될 수 있어도, 최소한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가슴 벅찰 듯하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처절하게 행복한 상상들이 정의라는 관념과 연결될 때, 또 복지국가라는 이념이 정책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상황일 때, 이 상상들은 단일한 입장으로 좁혀지기가 쉽지 않다.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누구의 정의인가’,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를 물어야 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실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의가 더 우선인가’에 대한 세부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3.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단지 ‘현존하는 긴급한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앞뒤 자르고 무조건 진보가 뭉쳐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CPD)’을 제거해야 한다는 냉전 시대 미국의 논리와 닮아 있다. 미국은 바로 이 논리를 확장하여 9.11 이후 애국자법을 발효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과거에는 매카시즘으로, 현재에는 이슬람교도와 이민자들을 제물로 삼는 희생제의로 나타났다. 즉, 미국은 악을 제거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거했다.

악을 제거하겠다는 수단은 그렇게, 정의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제치고 스스로 목적이 된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은 용납된다. 선과 악의 이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악의 반대가 곧 정의라는 이 단순한 논리 안에서, 악의 제거를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은 악으로 규정된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지난 몇몇 선거에서 어떤 진보 정당은 악으로 규정되기도 했고, 또 어떤 진보 정치인은 ‘정치 생명이 끊어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제는 누가 진보인지, 무엇이 진보인지도 헛갈릴 지경이다. 이러한 이분법을 깨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복지국가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악만 일단 제거하고 나면 공공선과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 국가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은 혁명이 일단 성공하고 나면 이상적 사회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국경 따위 가볍게 뛰어 넘는 국내외 거대 자본 및 잃어버린 십 년을 보상 받고 그들만의 천년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점진적으로 공공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과연 정말로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쉽고 더 빠른 방법인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현재 이곳의 이 누더기 같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다음 선거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기다리고,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그냥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면서 죽든지 텅 빈 축사에서 목을 매든지 반도체 공장에서 암에 걸리든지 4대강 공사 현장에 묻혀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건지, 혹시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 감각이 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4.어차피 둘 다 이상적이긴 매한가지다. 더구나 둘 다 ‘그 이후’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마찬가지다. 둘 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이후의 세계를 합의하고 구성해나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를 바 없다. 어떤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어떤 것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최종 근거 따위는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혁명론자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현재 정치적 입장을 굳이 설명하자면 슬프지만, 무뇌형 변신박쥐라고 해야 적절하겠다.)

그러므로 국가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보다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은, 그리하여 시장과 국가를 자연화 하는 데까지 이르는 주장은, 그다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입장이 더 이상적이고 어떤 입장이 더 현실적인지가 아니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다 그냥 이상일 뿐이다. 이상으로서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이상을 꿈꿀 것인가이다. 즉, 문제는 정의라는 이념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는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를 논할 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5.이상이나 이념이 현실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이상이 현실에 대한 규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상을 갖는지에 따라, 현실을 얼마만큼 바꿔내야 할 것인지, 어디에서 만족하고 변화를 멈출 것인지가 결정된다. 개혁이 됐든 혁명이 됐든 변화의 최종 목적지를 설정해 주는 것이 바로 이상이다.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고 모두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가운데 이들 사이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이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일 것이다. 목적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수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여기서 물어야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이다. 각자가 취하는 이상, 각자가 설정하는 최종 목적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래서 그 최종 목적지에서 내버려지는 것은 누구인지를 물어야 한다. 시장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자신의 이상을 자본주의 내부에 설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상은 아무리 깜찍한 말로 포장해도 자본주의 체제 그 바깥으로 절대 나아갈 수 없다. 기껏해야 그러한 이상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에서는 단지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부유해졌는지, 빈곤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등을 통계적으로 제시하고 한 사람 당 한 표의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만족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목적지에서는 화폐 한 장 당 한 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잘 은폐되어야 하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좋은 삶이 곧 돈을 많이 가진 삶을 의미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것만 잘 은폐된다면 달리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해결되면 좋고 해결 안 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냥 해결될 때까지 열심히 대화해야 한다. 대화에 낄 수 없는 존재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를 대신 말해 주는 시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6.마이클 샌델의 공화주의적 정의론 역시 다르지 않다. 샌델이 정치를 도덕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도덕은 선거에서 보다 많은 표를 획득할 수 있는 도덕이다. <왜 도덕인가>에서 샌델이 미국 국민 전체의 의지이자 미국 국민이 원하는 도덕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설정하는 것은 선거의 결과인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국의 특수한 선거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선거에 반영되는 의지가 대체로 기득권층의 의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샌델이 말하는 도덕은 백인 남성 기독교인으로 대변될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의 공동선이지, 미국 사람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공동선일 수는 없다. 더구나 샌델이 묘사하고 있는 미국 내 인권 확대의 역사가 정치 엘리트 및 백인 남성들의 역사라는 점 또한 샌델의 정의가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를 드러내 주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9.11 테러 이후 누군가는 ‘예외상태’가 상례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또 누군가는 이슬람교도와 같은 특수한 사람들이 희생양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국제적 연대보다도 공동체의 정체성 및 이웃의 정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샌델의 논의는 단순히 개인과 공동체가 맺는 긴밀한 관계에 대한 윤리라고만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샌델이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 공공영역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순간에조차도, 샌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미국 중산층의 재산과 안위이지 빈곤 계층이나 유색 인종의 행복은 아니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7.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는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샌델의 정의론이 놓여 있는 미국의 역사적 맥락이나 사상적 맥락이 잘려나간 채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대기업에 심각하게 프랜들리한 정부가 샌델의 책을 선전하는, 샌델 자신조차도 경악할 만한 어이없는 상황이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미국에서 출간된 2009년에 같은 하버드대 교수인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라는 아이디어>도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센의 책이 보다 더 주목을 받았지만, 그러나 2010년 우리의 서점가를 점령한 것이 센델의 책이라는 사실은 자못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렇게 샌델 열풍을 타고 우리는 샌델이 해석해낸 공리주의와 샌델이 해석해낸 칸트와 롤스를, 샌델이 규정하는 정의와 공동선을 흡수하고 있다.

맥락이 잘려나간 샌델이 현재 활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방식은 ‘나의 주장은 곧 국민의 뜻’이라는 정치인들의 상투어구를 ‘나의 정의가 곧 보편적 정의’라는 새로운 미사여구로 바꿔놓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웃어넘길 수 있다. 두려운 것은 샌델의 논의가 ‘정의’를 공동체에 대한 ‘충직’이나 ‘애국심’과 결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인권에 대한 감각이나 타자에 대한 관용에조차 익숙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샌델의 개념은 공동체나 애국심을 강조하는 논리로, 국가를 신화화하는 논리로 도용되려 하고 있다. 샌델의 논의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은 잘려나가고 이 몇몇 개념들만이 자의적으로 남용될 때, 그 결과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강화, 또는 전체주의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8.때문에, 자신의 정의가 보편적 정의라고 외치며 정의의 이름으로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어떤 복지국가론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는 묻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수를 따르라는 말을 현실을 인정하라는 말로 바꿔치기하는 그 복지국가가, 합의를 실천하지 않고 합의를 종용하는 그 복지국가가, 과연 보편적 복지를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타박하는 복지국가가 민주주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만일 그 복지국가가 먹고사니즘을 내세우며 FTA를 밀어붙이고 삼성공화국을 연장시키는 국가라면, 새만금 간척지에 골프장을 세우는 것이 사회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국가라면, 나는 그 복지국가 절대 반대다. 머나먼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돕느라 자기 자식들의 눈물은 훔쳐 주지 않는 어머니가 제대로 된 어머니 맞냐는 샌델의 논의를 착실하게 따라, 해외 파병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복지국가라면 나는 반대다.

자본에 친절한 국가와 벌거벗은 존재[썩은 뿌리 자르기]

박종성(건국대학교 강사)

우리는 자본의 운동을 원활히 진행시키고자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는 국가가 벌거벗은 자들로 배제시키고 있는 존재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생존은 자본의 운동에서 야생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고용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업자의 증대, 사회보장의 축소, 생존권의 와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경쟁의 원리로 방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드러나는 혼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국가는 강권적인 태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자본의 운동을 통해 부의 사유화를 지향하며 폭력의 조직화를 실현시키 나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원리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현실에서 국가의 폭력성은 감소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금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현재의 국가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라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기존의 국가관에 대한 고찰을 동반한다.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 ‘국가’ 그 자체는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없는 비가시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국가가 비가시적인 존재라고해서 국가를 무시할 수는 없다. 국가라는 고유의 존재성은 “폭력과 관련된 운동”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국민국가가 추구하는 보편성은 동일성에 근거한 배제와 맞닿아 있다. 주민 전체의 동일성에 의해 국가의 폭력이 규범화되는 국민국가 형태에서는 폭력이 독선과 광신으로 귀결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주장들은 동일성에 근거한 배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G20회의장 무슬림 접근금지”, “동남아 마약상 같은 연예인” , “주요 20개국(G20) 회의장 반경 2㎞ 이내에 무슬림 애들 접근금지시켜야 한다. 혹시나 모를 테러를 대비해서 접근시 전원 사살해버려라.” , “외국 여자와의 국제결혼을 부추겨서 농촌에는 혼혈아들이 엄청나게 태어나고 있고, 이것은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에이즈나 성병 등의 정보가 전혀 없다. 이들은 범법자다. 체류 외국인으로서 기본적인 체류의 법을 어긴 준법정신의 기초가 심히 의심스러운 자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해 10월 한달 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인터넷 공개 블로그, 이미지, 댓글, 동영상 등을 모니터링한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 중에 모두 210건의 인종차별 사례를 수집했다고 5월 9일 밝혔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인터넷상의 인종차별적 표현을 개선하는 방안을 포함할 것을 권고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사회 의장에게는 인터넷상으로 인종차별을 하거나 이를 조장하는 표현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표명했다고 한다. 또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이 서로 다른 민족 간의 이해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우리 정부에 대해 교육·문화·정보 등의 분야에서 이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고 한다.

국민국가는 탄생/혈통을 내세워 국가의 구성원을 주장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동일화(identify)하는 인종주의와 관계 맺는다. 그런데 인종주의는 생물학적인 종으로서의 혈통뿐만 아니라 도덕, 신앙, 근면함, 범죄율의 높고 낮음, 문명이나 야만의 정도 등을 포함하는 문화적인 혈통도 포함한다. 인종주의는 민족주의보다 넓은 의미이다. 민족주의는 인종주의를 통해 민족적 동일성을 확립하는데 바로 여기에 배제의 제도화가 존재한다.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차이가 확인되는 것은 동일성이 구축되는 방식에 있는 것이다. 동일화의 과정은 차별화의 과정에 선행한다. 다시 말해 국민 공동체 밖에 존재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폭력을 자행하게 된다. 국민국가에서 평등주의는 국적이나 국민성이라는 특정한 동일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결국 보편적 인권의 개념에 저항한다. 보편적 인권 개념은 국가로의 귀속없이, 특정한 동일성을 가지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낭시에르가 말하는 ‘아무개와 아무개의 평등’, 즉 ‘근원적 평등 개념’이 현실적으로 요청되어야함을 의미한다.

민족/혈통에서 동일성에 의한 배제의 원리는 비단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는 자본에 친절한 국가의 성격으로 확장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는 이러한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다시 말해 국가는 자본의 운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벌거벗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본의 흐름을 보장하는 전제가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6월 12일로 158일째 농성을 진행 중인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투쟁이 바로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동일성에 의한 배제의 논리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가 안에 살면서 국가에 속하지 않고 배제된 존재들은 공동체의 외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12일 오후 4시 40분경 빈민촌인 포이동266번지(개포동1266번지)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7시간 만에 불은 진화되었고 96가구 중 74가구가 전소했다. 이곳은 1981년 정부가 도시 빈민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강제이주시키면서 형성된 빈민촌이라고 한다. 불법점유자가 된 주민들은 주민등록까지 말살당했고 지난 2009년 강남구청은 주민등록을 인정하고 현 주소지를 인정했다고 한다. 유성기업지회(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의 ‘주간연속2교대제 및 월급제 쟁취’를 위하여주간조가 2시간 부분파업을 하였다. 13일 현재 회사는 27일째 ‘공격적 직장폐쇄’를 했다. 파업 후 7일만에 경찰병력이 투입해 전부 연행했고, 노동조합의 지회장과 쟁의부장이 구속된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와 자본주의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와 생존권을 방치하는 국가의 형태는 자본의 축적을 쉽게 하기 위하여 자본 운동의 주도성을 강조한다. 결국 자본주의 실현의 모델은 고용 보호,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는 국가 형태, 즉 작게 보이는 국가는 자본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를 가혹한 폭력으로 제거해 나간다. 따라서 작게 보이는 국가는 가장 억압적인 국가일 수 있는 것이다. 소위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국가의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세계적인 운동 속에서 국가는 복지정책을 포기하는 모델로 전화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우리의 현실과도 그대로 일치하는 현상이다. 국가라는 단일성, 동일성 속에 들어오지 않는 불법체류자들의 삶 또한 동일성의 배제 논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국가가 공공부문에서 퇴각하는 것을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탈출로 파악하여 국가의 힘이 약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구보씨 여전히 소통을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12]

문성원(부산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구보씨가 이런 말을 처음 들은 건 대학교 때였다. 항상 재기가 넘치던 한 선배로부터였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쪽에 속할까를 짚어보기 마련이다. 모든 걸 둘로 나누어본다는 건, 얼핏 생각하기에도 단순하고 마땅찮은 특성이다. 양분법이나 흑백논리처럼 좋지 못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나는 둘로 나누어 보는 쪽이 아니란 말이야’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즉시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나는 둘로 나누는 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람을 양분하여 보는 사고방식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사실 이건 배중률(排中律)이라는 논리적 법칙을 활용한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A이거나 A가 아닌 것이지 이도저도 아닌 그 중간은 없다는 게 배중률이다. 이 A의 자리에는 어떤 것이 들어가도 괜찮다. 예컨대 모든 사람은 쥐를 닮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해 보자. 이것 역시 참인 진술이 되지 않는가.

물론, 쥐를 닮은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 있는 한에서 그렇다. 또 모든 사람이 쥐를 닮은 사람은 아닌 한에서 그렇다. 사람은 모든 걸 세 가지로 나누어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 가지로 나누어 보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있고 또 모든 사람이 다 사물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지 않는다면, 그 진술은 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종류가 있다는 말에는 그런 단서가 없어도 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미 사람을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으로서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의 예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짓말쟁이 역설의 반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런 말은 자기 배반적이 된다. 말한 사람도 사람이고 그래서 거짓말쟁이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상에는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의 예가 됨으로써 적어도 반쯤은 자기 말을 확증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사물을 둘로 나누어 본다면 이 말은 거짓이 된다. 그런 경우엔 세상에는 모든 걸 둘로 나누어 보는 한 종류의 사람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럴 리야 있겠는가?

사실, 이 말은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자신은 양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나머지 한 종류의 사례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런 다음, 자신이 양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 자체가 양분법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서 듣는 사람에게 머쓱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게 이 말의 전략이고 재미다. 배중률을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처럼, 이 말이 숨겨 놓은 함정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실제로 우리는 둘로 나누어 보는 사고에 익숙하다. 일단 세상은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나눠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아닌 것도 내게 좋은 것과 내게 나쁜 것, 내게 유리할 것과 내게 불리한 것으로 나눠진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흐리멍덩한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집중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그렇지,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면 도리 없이 내게 좋은 것과 나쁜 것 가운데 한쪽에 속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는 내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두 가지로 나눠지기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게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 보는 사고방식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런 물음에 대해 바로 나쁜 것이라고 대답하면 또 다시 함정에 걸려든다. 그런 대답 자체가 이미 모든 걸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보는 ‘나쁜’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분법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경우도 있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모든 걸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양분하여 보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적응의 산물이다. 자연적 삶 속에서는 어떤 것이 나에게 위험한 것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재빨리 판단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 새로 나타난 놈이 먹이인지 천적인지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간하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순식간에 당해서 거꾸러지기 십상이다.

세상에 어디 나쁘기만 한 것이 있겠는가. 또 어디 좋기만 한 것이 있겠는가.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이 있고, 나쁜 면이 있으면 좋은 면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여유 있는 상황에서나 부릴 수 있는 사치다. 야생의 삶에서는 빠른 판단과 빠른 대처가 생존을 좌우한다. 인류는 그 진화적 됨됨이가 형성되는 긴 시간을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야생이 아닌 문명 세계다. 여기서는 원초적인 이분법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랜 기간에 걸쳐 마련된 우리의 성향은 쉽게 지워지거나 통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번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은 보통 미워하거나 피하게 된다. 아, 그때는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고, 실은 저 사람에게도 괜찮은 면이 많아.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한번 구겨진 감정과 마음은 쉽게 펴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마음은 당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 사람과 닮거나 유사한 특징을 지닌 사람들에게까지 연장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건, 어떤 면에선 유용한 반응 양태다. 솥뚜껑을 자라로 오인한 건 우스운 꼴일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게 솥뚜껑이 아니라 자라였다면 어찌 하겠는가. 일단 경계하고 주의해서 열 번 오인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못해 한 번 물리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단, 이건 솥뚜껑처럼 숨어 있는 자라가 그렇게 드물지 않은 환경에서의 얘기다.

자라를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둥그런 물건만 봐도 깜짝깜짝 놀란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이런 증상이 심할 경우엔 교정이나 치료가 필요하다. 심각한 충격이나 피해를 당한 사람은 그런 일이 마음에 남긴 상흔을, 이른바 트라우마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아픈 기억과 관련된 즉각적인 반응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가 놓인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직접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나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쓴다. 감정적으로는 아직 개운치 않은 상대에게도 짐짓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고 심정의 쏠림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평가하려고 자세를 다잡는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의 본능적인 양분법을 극복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도 우리는 양분법이 지배하는 현상을 쉽게 목도하곤 한다. 인터넷만 열어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사안에는 대개 호오(好惡)의 입장이 선명한 댓글들이 달린다. 소위 악플들에는 노골적인 혐오나 증오의 감정들이 드러나고, 내편과 상대편이 전쟁터에서처럼 갈린다.

이것은 진화의 과정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잔재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일찍이 초기 포유류에서 물려받은 변연계(邊緣系)의 감정 회로를 신피질(新皮質)의 이성적 계산이 통제하지 못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서용선, TV토론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구보씨는 어제 TV에서 본 토론을 생각해 본다. 으레 그렇듯 그 토론에도 말 잘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최고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고 대부분이 대학 교수다. 대뇌 전두엽의 잘 발달된 신피질을 훌륭히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의견이 선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세상에는 다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상하게 양분법을 사용하는 사람과 투박하게 양분법을 사용하는 사람. 도대체 왜일까?

“구보야,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물어볼 만한 걸 물어보는 사람과 물어볼 만하지 않은 걸 물어보는 사람. 너 같은 철학자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안 물어봐도 잘 알겠지?”

드디어 Y가 이죽거린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다. 손톱으로 할퀴는 여자와 말로 할퀴는 여자. 아니, 한 종류가 더 있다. 손톱으로도 할퀴고 말로도 할퀴는 여자. Y는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 알고 있을까?

“하지만 Y야, 그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야. 또 철학자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난 나름대로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데, 마치 쓸데없는 걸 물어본다는 식으로 그렇게 무시하려 들면 곤란하다구.”

“엥, 진지하게 묻는 거라구? 설마… 나도 교수나 언론인 같은 지식인들을 많이 만나 봐서 알지만, 그네들이라고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건 전혀 아니거든. 문제는 자연이냐 문명이냐가 아니라, 또 감정이냐 이성이냐가 아니라, 이해관계라구. 그건 맑스 이래 상식이잖아. 네 얘길 듣고 있다 보면 이렇게 뻔한 사실이 사라지고 지엽적이거나 부수적인 게 중요한 문제처럼 등장해. 그게 바로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수법 아냐? 구보 너처럼 스스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알량한 논리나 지식이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치장해야 너네들의 존립 기반이 마련되지 않겠어? 하지만 봐.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쉽게 말을 바꾸고 논리를 뒤집어 가며 자신의 이익을 쫓아갔는지를. 그러니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거야. 이해관계를 쫓는 보통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 역시 이해관계를 쫓는 지식인 나부랭이들.”

“어, Y야, 너 오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왜, 무슨 일 있었으면 좋겠어?”

“네 말 하는 폼새가 좀 이상하잖아. 지식인 나부랭이라니…”

“그럼, 아니야?”

“Y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대화하자는 게 아니라 싸우자는 거라구. 감정이 실려 있는 말이잖아. 그래가지구는 소통이 안 돼. 기껏해야 자기만족적인 화풀이인 거지. 거기서 어떤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겠어?”

“에그, 또 소통이야? 구보야, 너야말로 참 이상하다. 소통을 내세우는 게 무슨 만병통친 줄 아니? 고상하게 웃는 낯으로 얘기해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많고, 침묵하거나 화내는 게 소통의 효과적인 방편일 때도 있어. 그러니까 구보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통이 있는 거야. 소통을 떠들지만 진짜 소통엔 관심이 없는, 무지하거나 교활한 가짜 소통과, 소통이라는 정해진 틀에 매이지 않고 감정이나 생각을 나누는 진짜 소통. 고상한 가짜와 투박한 진짜. 구보야, 너는 어느 쪽이니?”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5)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5)

글: 이정호 (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3. 고대 그리스인의 동성애 ? 소년사랑(1)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면 보통 동성애를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동성애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동성애와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동성애는 성인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의 사랑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주로 어른 남자와 소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형태의 동성애는 개념적으로 당시에 불려 졌던 그대로 소년사랑(paiderastia)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러한 양태의 동성애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성추행에 해당하는 아주 혐오스러운 것으로 비쳐지겠지만 고대 그리스 사회 특히 귀족들의 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일상적인 현상의 하나였다.

그렇다고 이러한 소년사랑이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 전체에서 그리고 전 시대에 걸쳐 하나같이 존재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소년사랑은 그리스의 초기 정착사가 보여주듯이 가장 강력했던 전시 동원 체제를 갖추고 있었던 스파르타에서 늘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남성 중심의 집단생활 속에서 남성들 간의 명예를 얻기 위한 경쟁적 욕구, 공동생활을 통해 드러나는 남성들 간의 교감 등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였을 것이고 그 후 점차 아테네 등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고대 그리스의 소년사랑은 성인 귀족들의 소년들에 대한 교육과정과 맞물리면서 특이하게도 발생 당시부터 일단 겉으로는 전시를 대비한 교육적 동성애의 면모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 또한 기본적으로 쌍방 간에 욕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나이든 성인 남자가 주도권을 쥐고 교육을 수반한 덕과 사랑을 베풀고 그에 따른 성적 쾌락을 얻으며, 젊은 소년은 나이든 쪽의 경험과 덕을 배우고 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그에 따른 ‘호의에 찬 친분’(philia)과 후원을 얻는 것이 통상적인 소년사랑의 양태였다. 그래서 그들을 부를 때 나이든 쪽은 “사랑하는 자, 에라스테스(erast?s)”라고 부르고 소년은 “사랑받는 자, 에로메노스(er?menos) 또는 파이디카(paidika)”라고 불렀다.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 (도기그림,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렇게 그들의 관계는 뚜렷한 구별이 있었다. 요컨대 사랑을 하는 건 나이든 성인 남성 쪽이다. 이처럼 “능동적인 성역할과 수동적인 성역할” 간의 구별은 성에 관한 고대 그리스적 사고의 일반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한시적인 것이었으며 이런 한시적인 관계가 끝난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이성애로 진전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가 갖는 이러한 고유한 특징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를 하면서 이성애를 병행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동성애는 용맹한 전사로서의 항시적인 젊음을 꿈꾸는 에라스테스의 열망과 성인 어른의 경험과 덕망을 배워 훌륭한 전사로서 성장하기를 원하는 어린 에로메노스의 욕구가 결합하여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에로메노스의 젊음이 종결되는 시기 즉 수염이 나는 시기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관계는 종결되고, 성인 남자는 이성애로 진행하고 소년은 성장하면서 점차 또 다른 에라스테스가 된다. 소년에 대해 사랑하는 쪽은 30-40세 의 성인어른으로서 여성과 결혼한 기혼자 일 수도 있고 나중에 결혼할 수도 있다. 소년이 수염이 난 후에도 동성애를 지속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에 나오는 파우사니아스와 아가톤 처럼 평생을 두고 동성애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오히려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그리고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현대와는 달리 고전기 그리스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혼과 그에 따른 결혼은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본적으로 전시동원체제인 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성들과 엄격하게 분리된 생활을 해왔고 혼기에 이르면 순전히 부모들이 정해준 14세 정도의 어린 여성과 결혼을 했으며, 결혼 생활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는 엄격하게 유지되고 활동 공간 또한 나뉘어져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결혼한 부부로서의 행복한 생활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결혼한 여성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출산과 가사,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였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연유로 고전기 고대 그리스에서 ‘낭만적 사랑’은 자유인 신분의 성인 남자들과 정부(情婦 hetaira)들 간에, 또는 그들의 남자 상대자들 간에(그렇게 흔하지는 않지만) 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른바 사랑에 대한 감정은 자유인 신분의 남자들 사이의 동성애, 즉 성인 어른과 소년 사이의 동성애 관계에서 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도 일반인 모두에게 허용된 것은 아니었고 명예로운 전사로서 성장해가길 욕망하는 일부 귀족 계층에 국한된 것으로서 이른바 그들만의 성(性)의 고급 영역이었다. 남성들의 생활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전사로서 성장해야한다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환경적 조건에 따라 남성들 간의 성애가 더욱 조장되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알몸으로 이루어지는 김나지움에서의 레슬링은 빛나는 젊음들끼리 육체의 아름다움을 관조하고 서로 접촉하는 대표적인 귀족 남성들의 특권적 경기이자 훈련과정이었다. 게다가「향연」에서 보여지듯 남성들만의 심포지온 자리에서 술을 나누며 교유하고 토론하는 것 또한 그러한 훌륭한 전사이자 책임 있는 귀족으로서 커가길 욕구하는 그들만의 상호 교육과정이자 동시에 그들만의 특권적 오락이었다. 요컨대 고전기 아테네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경기, 전투, 정치, 철학, 수사술과 같은 높은 신분의 활동들은 자유인 신분의 남성들의 특권이자 의무로서 오로지 그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물론 여성 특유의 활동들이 지니는 가치가 때때로 인정되기는 했지만, ‘덕(aret?)’과 ‘행복(eudaimonia)’에 대한 고대 그리스적인 개념은 남성들의 이러한 고급 활동들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그런 활동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 간의 성적 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나아가 휼륭한 전사가 되기 위한 기본과정으로 합리화되는 기본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향연」에서 일부 연설가들은 소년사랑과 ‘덕’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귀족적인 취향이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르러 대중일반에게도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나타나듯이 소년사랑의 문란상이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었고 그에 대한 비판과 법적인 통제 장치가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향연」에서 파우사니아스가 말하는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의 구분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기원전 4세기 마침내 고대 그리스 사회가 종말을 고하게 되면서 이러한 소년사랑의 관습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고대 그리스의 소년사랑에 대한 관심이나 그것을 다루는 글들은 장르에 관계없이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내용 또한 도덕적인 분노를 표명한 것으로부터 혹은 비정상인 호기심이나 그 탐미적인 아름다움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내는 것까지 천차만별한 양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소년사랑에 대해 어떤 관심과 시선을 갖든 간에 아래의 두 가지 사실만은 누구나 다 하나같이 인정하고 있다. 하나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소년사랑은 그리스인의 생활, 특히 귀족들의 생활에서 상당한 정도까지 퍼져 있었던 일상적 현상이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소년사랑 역시 아주 추악할 정도로 타락한 형태로부터,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소년사랑의 모습을 포함하여 대단히 고상하고 순수한 정신적 관계를 갖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소년사랑에 대한 그와 같은 다양한 양태들 중 일부를 관련 고전들을 통해 간략히 일별해보기로 하자.

우선, 비록 극의 내용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의 「새(Ornithes)」의 한 장면은 아테네 사람들이 소년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상적 의식의 한 단면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서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에우엘피데스(Euelpides)는 사람들이 안락하게 살고 있고, 소년사랑 또한 매우 번성해 있는 게으름뱅이들의 천국을 몽상하고 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소년을 아들로 둔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이 한 성인 귀족에 의해 사랑의 상대로 선택되지 않은 것에 모욕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비난을 퍼붓는 장면이 나온다.(139-142).

그래? 스틸보니데스, 너 참 잘 났다.
내 아들이 목욕을 하고 나서 김나지온을 나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인사도, 입맞춤도, 어디 데려갈 생각도 하지 않고,
한번 안아주지도 않는군. 당신 참 고루한 친구시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플라톤의 「법률」제1권(636C)을 보면 관능적인 소년사랑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플라톤의 비난 섞인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연로한 플라톤은 등장인물 ‘아테네인’의 입을 통해 남성과 남성 또는 여성과 여성 사이의 사랑 일체를 ‘자연에 어긋난’(para physin)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곳에서 플라톤은 미소년 가뉘메데스(Ganym?d?s : 트로이아 트로스왕의 미남 아들인 가뉘메데스는 그 미모 때문에 올륌포스로 납치되어 제우스에게 술을 따르는 작부(酌夫: oinokheus)가 되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20. 231-5 참고)를 인용하면서 크레타인들이 동성 간의 성적 쾌락을 공공연하게 비호하기 위해 마치 제우스가 소년 사랑이나 한 것처럼 그를 끌어 들이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하긴 테오그니스(Theognis)가 편찬한 책에 포함되어 있는 짧은 비가(elegeia) (1345-50)를 보면 그것을 쓴 작가 자신 스스로 소년사랑을 기쁨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크레타인들 처럼 자신의 경우를 아름다운 가뉘메데스를 납치한 제우스를 들어 미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전설적인 입법자 뤼크루고스(Lykurgos)가 정한 스파르타 법률에 대한 보고들은 소년사랑과 관련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스파르타의 법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소년을 육성할 책임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고대의 저작가들은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제도적 성격 때문에 소년사랑이 포함하고 있는 관능적 측면을 어떻게든 배제시키려고 애를 썼다. 예를 들어 크세노폰(Xenophon)은 사랑하는 사람과 소년 사이에서 관능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과 혹은 형제들끼리 서로 음행을 저지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고 단언하고 있다(「라케다이몬의 정치체제(de rep. Laced.)」2· 13). 그리고 플루타르코스는 소년사랑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소년사랑에 대한 규정을 어기고 잘못을 범한 자는 일생 동안 공적인 권리가 박탈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뤼크루고스의 생애」17 이하, 「라케다이몬의 정치체제」7). 후대의 소피스트로서 플라톤주의자인 튀로스(Tyros)의 막시모스(Maximos : 기원후 2세기)는 이것을 한층 더 이상화하여 스파르타의 남성은 단지 미소년을 아름다운 조각을 사랑하듯이 사랑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스파르타의 법률이나 그에 대한 견해들이 소년사랑에 대한 실제 행태들과 크게 달랐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소년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규정에 따라 도덕적인 절제를 보여주고 있는 사례들 또한 발견된다. 스파르타왕 아게실라오스(Agesilaos)는 스피트리다테스(Spithridates)의 아름다운 젊은 아들을 사랑했지만, 그 소년이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에게 키스 하려고 했을 때 소년을 밀쳐 냈고, 어떻게든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소년과 단둘이 있는 경우를 극력 피했다.(크세노폰 「아게실라오스」5·4) 그런가 하면 자기가 에라스테스로 받아들이지 않은 자가 설사 권력자일지라도 그에 대한 신체적 봉사를 굴욕적인 것으로 생각한 어느 미소년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데메트리오스의 생애」24) 용병 대장 데메트리오스(Demetrios)는 아테네에 머물면서 마치 폭군이나 된 것처럼 창녀나 소년들을 강제로 불러들여 무질서한 성적 쾌락에 빠져 있었다. 그는 데모클레스(Demokles)라는 미소년에게도 욕망을 느껴 사랑을 구했지만 데모클레스는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몸의 안전을 위해서 몰래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방탕한 데메트리오스는 데모클레스가 어느 사설 목욕탕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가서 그를 겁탈하려고 하자, 데모클레스는 달리 도망갈 길이 없다고 여기고 뜨거운 물이 끓고 있는 가마솥의 뚜껑을 열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밖에 소년들이 김나지움 즉 레슬링 경기장에서 알몸으로 경기를 하게 하는 관습 자체가 소년사랑을 확대시킨 큰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하는 글도 플라톤의 「법률(Nomoi)」(1· 636)을 비롯해서 키케로의 「투스쿨룸 대화(Tusc.)」(4·33)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키케로는 앞의 책에서 엔니우스(Ennius)가 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몸을 노출 하는 것은 추행의 시작이다”라고 하는 시행을 찬사를 담아 인용하고 있다. 물론 레슬링 훈련이 미소년들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어른 남성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려고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소년사랑을 비난하고 있는 플라톤은 수호자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하물며 여성들도 옷을 벗고 남성들과 체육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5권 452a, b). 분명 소년사랑의 발생 배경에는 그것과는 다른 원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소년사랑의 맹아는 일찍이 남성 중심의 전시 동원 체제를 항시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그리스 민족 대이동의 시대에서 부터 구해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 사회는 여느 고대 사회 못지않게 역사 이래 극히 남성 중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이 이상국가에서 여성도 남성과 성향에 있어 동류의 존재이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능히 수호자 계급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국가」5권 456a, b) 당시로서는 매우 놀랍고 대담한 생각이었지만, 두말할 나위 없이 플라톤 시대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역할은 오로지 가사와 아이들의 양육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 그리스의 성인 남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초래한 욕구 불만 때문에 헤타이라나 소년들에게서 성적 욕망을 해소하려고 했던 것일까?

(다음에 소년사랑 (2) 계속)

자거라투스투라 소설가 김숨을 만나다[자거라투스트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MEGA 사업단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자거라투스투라야, 왜 눈이 벌겋지? 요새 불면증이라도 생긴 거냐?

아니에요. 니체 아부지, 소설책 읽느라고요.

그 나이에, 아직도 소설을 읽느냐? 한심하다고 생각되지 않니? 니 친구들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데…넌 권력의지란 없느냐?

니체 아부지, 아부지가 말한 ‘권력의지’라는 것 때문에 철학자들이 죽을 지경이에요. 아부지를 위해 변명하느라고 말이에요. 저는 그걸 인간의 내면 속에서 솟구치는 자유로운 생명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해서, 사람들의 의심을 풀어주려 하지만, 솔직히 저 스스로 그 개념이 좀 수상하긴 해요.

뭐가 수상하다는 말이냐?

그럼, 니체 아부지, 토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에 나오는 음모적인 무정부주의자도 그런 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거라투스투라야, 니는 아직 도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구나. 네가 그 속에 들어가 앉은 것은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너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작은 욕망 때문이지. 나는 그런 사람을 ‘종말인’이라고 부른다.

니체 아부지, 자유로운 생명력이 보편적인 선을 지향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신학자 샤르댕은 그런 해석을 하고 있지만, 역시 신을 개입시키지 않을 수 없을 거 같아요.

보편적인 선이라는 굴레조차 내 던져 보렴. 그때는 이 세상이 또 다르게 보일 것이야. 왜 불교의 선사들은 백척간두에서 자기 몸을 던진다 하지 않니. 너도 그렇게 너를 버려 보렴.

니체 아부지, 솔직히 전 그게 두려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 자신이 아니라 겨우 교수직을 던지는 정도이죠. 그런데 아부지, 요새 아주 엄청난 소설가를 제가 발견했어요? 니체 아부지, 소설가 김숨이라고 알아요?

자거라투스투라야, 숨 막힌다. 이름이 왜 이렇게 숨 막히냐? 물론 예명이겠지만 너무 팍팍하게 지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알은 거지?

우연히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어요. 잘 아는 시인을 찾아갔더니, 그 자리에 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말없이 돼지고기를 굽기만 하고 전혀 먹지는 않더라고요. 그 침묵이 심상치 않아서 제가 지은 책하나 드리고, 그가 지은 소설책 한권을 받았죠. 장사치고는 제가 훨씬 이득이죠. 안 팔리는 책과 잘 팔리는 책을 교환했으니까요. 그 소설책 이름이 또 숨 막혀요. 『간과 쓸개?라니까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그런 거 말이냐? 그럼 풍자소설이겠네?

그렇지는 않아요. 대개 200년도 후반 미국발 금융위기 전후에 쓴 단편소설들을 끌어 모은 책이에요. 그 중 첫 번째 소설의 제목이 ?간과 쓸개?이고, 그 제목을 따서 책 이름으로 했어요.

소설책 한권 읽는다고 그렇게 눈이 충혈되었냐? 소설이야 그저 전철에서 읽으면 충분한 거 아니냐.

니체 아부지, 소설가 들으면 도끼 들고 나오겠어요. 김숨의 소설이 하도 재미있어서 그의 소설을 대부분 구했어요. 많이도 썼는데 지금까지 제가 구해 읽은 것은 『간과 쓸개』 말고도 『투견』, 『백치』, 『침대』가 있어요.

그래 자거라투스투라, 니가 보기에 어떻드냐?

놀라운 소설가예요. 뭐랄까 힘이 넘쳐요. 위에 말한 책 가운데 가장 빨리 나온 게 『투견』인데 (2005년 정도) 그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현실에 짓밟힌 채 무기력하게 그리고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어 든든한 리얼리즘의 바탕 위에 서있죠. 그런데 강열한 이미지들, 철학적인 사색들로 해서 투박한 힘이 느껴지죠. 여성 작가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예요. 그게 꼭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연상시킨다니까요.

아, 김숨이 여성 작가이냐? 나는 이름 때문에 정말 김기덕처럼 생긴 남자가 아닐까 했는데…

그런데 니체 아부지, 소설가 김숨에게 200년도 후반에 아마 2007-8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무언가 변화가 있어요. 그저 한번 쓱 훑어보았기에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예를 들어 혹 종교적인 개종과 같은 사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 김숨이 기독교인이란 말이냐?

그건 몰라요. 저는 한 번도 김숨과 예기한 적은 없다니까요? 아까 말했잖아요. 그저 말없이 돼지고기만 굽고 있었다니까요.

그럼 종교적 개종이란 무슨 말이냐?

아니 그와 유사한 사태라는 거죠. 니체 아부지, 말 귀를 그렇게 못 알아들어요?

알겠다. 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하라는 얘기지. 니는 나의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듣느냐? 자식이 애비한테 대드는 것을 나는 못 본다.

글쎄 소설가 김숨이 다루는 대상은 항상 그래요. 예를 들어 『백치들』에서는 IMF 사태로 직장을 잃은 백수들을 다루고 있죠. 어떤 사람들인지는 충분히 짐작되죠. 그런데 김숨은 이들을 묘사하면서 마치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마르케스가 시도했던 것처럼 마술적 리얼리즘의 기법과 비슷한 것을 구사해요. 그래서 마술적인 분위기가 백수들의 어두운 삶을 에워싸고 있죠. 그들의 패배와 그들의 무기력 속에 그들이 가진 간절한 소망이 그렇게 표현되어요.

음. 마르케스는 남미의 원시림의 느낌이 들지 않나? 김숨도 그런가?

그런 원시림의 느낌은 아니에요. 오히려 썩고 끈적끈적한 물웅덩이 느낌이 들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생명은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간과 쓸개』에 와서 소설가 김숨에게 또 다른 변신이 일어났어요. 물론 여전히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짓밟힌 하층민의 삶이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넘어서 거의 카프카적인 느낌이 들어요.

카프카라니?

그 중의 한편을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께요. 그러면 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거예요. ?모월 모일?이나 ?룸 미러?가 있는데, 그 중에 ?룸 미러?가 좋겠네요.

‘두 부부가 토요일 오후 차를 타고 구리에서 강변도로를 거쳐 파주로 가죠. 아내가 이 소설의 화자인데, 그들은 남편의 이모부의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죠. 남편의 이모가 20년 전에 죽은 이후, 남편은 이모부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해요. 당연히 왜 죽었는지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죠.’

‘차의 뒷자리에는 아이들(두 남자아이)이 타고 있는데 그들은 차를 타자말자 자고 있어요. 남편은 끊임없이 룸 미러를 힐끗힐끗 보면서 아이들이 깨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죠. 그건 화자인 아내도 마찬가지이에요.’

두 남자아이가 깨어나면 어떤 소동을 벌일지 짐작이 되죠. 그래서 차라리 그 아이들이 잠들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일 거예요. 그들의 삶은 그저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정도이죠. 니체 아부지, 짐작이 되요?

글쎄다. 그건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이나 알겠지 19세기 독일에 살았던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남편은 전에 아이들이 키우던 도마뱀을 죽이려 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박제가 된 새를 선물로 합니다.’

이게 바로 아이들을 재우는 방식이죠. 아마 도마뱀이 아이들에 내재하는 생명력이라면, 박제가 된 새는 이를 감시하는 초자아를 의미하겠죠. 어떻든 그 결과 이 중산층 부부는 평온하면서 질서 있는 삶을 살죠. 물론 거세된 삶이겠죠.

자거라투스투라야, 니가 해설까지 덧붙이지 말고, 그저 소개만 하렴. 그래야 나도 나름대로 감상하지 않겠느냐?

알겠어요. 해설은 자제하죠. 하지만 해설하지 않고 설명하는 법을 제가 몰라요. 아니면 직접 읽어보시죠.

알았다. 하여튼 계속해 보렴.

한강을 끼고 달리면서 그들은 아주 진부한 사건들을 만나죠. 관광버스를 만나는데, 그 버스 회사의 이름이 ’우주 관광‘이에요. 처음에는 빈차였는데 이상하게도 나중에는 사람이 가득 타고 있어요. 그 가운데 잠든 노인이 있는데 화자가 들여다보니 혀가 없어요. 또 살찐 돼지를 싣고 아마도 도축장으로 가는 트럭도 만나죠. 화자는 돼지들에게서 역겨운 냄새를 맡고 구역질을 느끼죠.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 같아요. 거세된 삶, 그것은 곧 죽음 속에 들어있는 삶이죠. 바로 이런 세계는 니체 아부지가 유럽의 종말로 묘사한 그런 삶의 모습이죠.

그런데 차가 자유로로 들어가면서 점차 지체되기 시작해요. 비구름이 몰려와서 날은 저녁처럼 어두워지죠. 주인공이 잠깐 잠들었는데 그 사이(꿈이지 아니면 생시인지 불분명해요) 강변을 질서 있게 나르던 새들이 위협적으로 나르더니 갑자기 살찐 돼지들을 공격해요. 그리고 뒤차에서 상향등을 켜서 비현실적인 빛이 그들의 차안에 비추어 들죠. 그래서 땅에서 기던 차가 갑자기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서부터 현실이 환상적인 세계로 바뀌는데 그런 변화가 꼭 카프카적인 세계 같아요. 하여튼 이런 일들은 무언가 다가오는 어떤 것을 암시하는 알레고리죠.

그래서 제가 소설가 김숨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짐작하는 거죠. 실제로 ?룸 미러?의 마지막에 무슨 일이 생겨요. 갑자기 차들이 정지해 버리고 사람들은 내려서 걸어가죠. 화자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싶어 내려서 사람들을 따라 걸어요. 사람들 중 어떤 여인은 딸을 안고 가는데 그녀의 긴 머리칼이 딸의 숨을 막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그냥 미친 듯이 걸어요. 주인공이 마침내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죠.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데?

아니 소설은 거기서 끝나요.

“그리고 마침내 내 눈앞에 펼쳐진 그 광경을 보았다. 지금쯤 내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났을지도 모르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하며…”

이게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에요.

그럼, 자거라투스트라 너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글쎄요. 모르죠.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 사건은 잠든 아이들을 깨어나게 할 만한 사건이라는 거죠.

그게 뭐냐?

글쎄요. IMF 사태 같은 거? 아니면 노무현의 죽음? 하여튼 아이들이 깨어난다는 것은 적어도 니체 아부지가 말한 생명력이 솟구친다는 뜻이겠죠. 죽음과 같은 현실을 깨뜨리는 그런 힘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긍정적으로 해석해요. 하지만 부정적일 수도 있죠. 그것은 소란과 폭동을 동반하는 것일 테니까요.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현재(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사랑, 배신 그리고 자살

송지선 아나운서의 투신자살이 5월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언론이 문제네, 악성댓글이 문제네, 우울증이 문제네, 야구선수 임태훈이 문제네 등등 말들이 많았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였을까? 자살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기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사실은 송지선에게 임태훈은 함께 한 사랑에 책임질 줄 모르는 혹은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송지선은 그가 그녀를 배신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의 예의 없는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

작고한 탤런트 최진실 역시 애정 관계에서 비롯된 배신감 때문에 자살을 했다. 결혼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조성민은 자신의 사랑이 식었음을 전했고 그의 사랑을 철석같이 믿었던 최진실은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의 실패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지 않다. 경제적 파탄의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만큼이나 사랑의 실패로 인해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애정의 문제로 슬픔에 잠기고 오랜 시간을 절망과 한탄 속에 ‘죽은 듯’ 혹은 ‘죽지 못해’ 살아간다. 평생 동안 바람피운 아버지를 원망하고 울분을 토했던 우리 엄마에서부터 실연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자리에 누워버린 내 친구까지.

이러한 사건을 두고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누가 잘못을 했는가. 원인이 무엇인가, 뭐 이런 것이 아니다. 사건의 진실이나 원인은 경찰이나 기자들이 더 잘 파헤쳐 줄 수 있고, 누가 얼마만큼 잘못을 했는가는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 시점에서 답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왜 이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강행하게 되었는가이다. 사랑의 실패는 왜 죽음까지도 불사하게 만드는가? 왜 그러한 사건은 삶의 의미와 생동감을 일거에 빼앗아 가는가?

나의 경험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반추해 볼 때 배신은 언제나 심리적 자존감의 파괴와 관련되어 있었다. 평생 바람을 피웠던 아버지를 향해 우리 엄마가 항상 했던 말은 “나를 어떻게 보고!”였고, 자신의 애인이 동거하는 여자 친구에 대해 숨겨왔음을 나중에 알게 된 한 학생은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고 괴로워했으며, 천청벽력과 같이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은 내 친구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렇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내 존재 전체, 나의 자존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다. 배신을 당한다는 것은 내 존재 자체가 거절되는 느낌이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그렇다면 왜 사랑은 이렇게 존재 전체와 관련된 사건이 되는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당사자의 존재를 뒤흔들고 삶의 의미마저 잃게 만드는가? 최근에 내가 본 한 권의 심리 에세이는 헤어짐이나 배신을 내 존재 자체가 거부되는 사건으로 보지 말 것을 권고한다. 자존심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아니 그럴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우선 사랑이 무엇인가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사랑을 “인정(recognition)”관계로 설명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뿐 아니라 연인, 친구 간의 사랑은 모두 내가 너를 그리고 네가 나를 구체적인 욕구를 가진 존재로 배려하고 정서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의미에서 인정의 행위라는 것이다. 호네트는 사랑이라는 인정관계를 두 사람의 절대적 합일상태로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 속에서 두 사람은 독립된 개체로 분리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절대적 공생기를 지나 상대적 공생기에 아이는 엄마를 환상 속에서 파괴한다. 그러나 아이의 파괴행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곁에 남아 아이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계속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환상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머니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고 이러한 독립된 어머니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정서적 합일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네트는 제시카 벤자민을 인용해 사랑을 “자기주장과 타자 인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정행위로서의 사랑이 실패할 때 왜 우리는 존재 전체가 뒤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실패와 더불어 우리는 사랑을 통해 획득한 자신감(Selbstvertraun)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의 사랑을 통해 나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욕구가 배려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이와 함께 자신이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다. 즉 우리는 구체적 타자에 의한 정서적 인정의 경험을 통하여 나의 구체적인 존재가 가치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의 정서적 인정, 즉 사랑이 철회될 때 우리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훼손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사랑의 실패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실패는 내 자존심과 자신감을 뒤흔든다.

이러한 존재의 상실감이 더욱 절망적인 것은 사랑이 바로 구체적이고 특별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행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심리학 에세이는 또한 이번에 사랑이 가면 아주 사랑이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하고 권고한다. 사랑의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은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의 실패를 통해 잃게 되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형성한 특별한 자신감과 자손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또 다른 사랑은 올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바로 그 사람과의 사랑, 그 사람의 정서적 인정, 그 사람을 통해 형성된 나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대체될 수 없다. 사랑이 끝나면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지우고 추억이 될 만한 물건들을 버리는 이유는 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형성했던 그 특별한 나를 지우기 위해서이다. 그런 나의 존재는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이렇듯 사랑의 실패가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것은 사랑이 나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구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패가 지독하게 절망적인 것은 그것이 대체될 수 없는 사람과 만들어낸 구체적이고 특별한 나의 존재의 의미를 한 순간에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그토록 의미를 부여했던 나 자신이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생각, 자존심이 한 순간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

참을 수 없는 사랑의 무거움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가볍게 수행된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은 쉽게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실패는 참을 수 없이 무겁다. 사랑이 깊을수록, 이별이 극단적일수록 사람들은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한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뒤흔든다. 이런 의미에서 호네트 역시 정서적 인정이 되지 못하는 상태가 윤리적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호네트는 아쉽게도 사랑이라는 인정형식이 구체적인 개인들 간의 특수한 관계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윤리의 문제로 확장될 수 없다고 본다. 개인적인 관계는 보편적 학문의 담론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호네트의 생각일 뿐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사랑이 학적 가치를 갖지 않는 에세이나 다룰 수 있는 주제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학문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사랑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생각, 나아가 감정에는 어떤 윤리적 잣대도 들이댈 수 없다는 생각이 어떤 끔직한 풍경을 만들어 냈는가? 우리는 방금 전까지도 사랑했던 사람을 내팽개치고 거리와 공론의 장으로 나와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다. 그가 혹은 그녀가 죽어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건 당사자가 겪어 내야할 개인적인 일이니까. 그래서 사회비판과 혁명에는 피의 냄새가 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일까? 내 인생길 (1)[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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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거울

인간에게는 부끄러움이 있고, 이 부끄러움 때문에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영원히 감추어 두어야 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면 삶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자신의 실상이 자신에 의해 가려져 스스로 소외될 때 우리는 기억 속에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기억이 쓰라린 경험과 함께 떠오를 때 위안은 문을 닫거나 눈을 감는다. 이러한 의지와 관계없이 고통스러운 기억은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의 삶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며, 마음 속 옹이를 단단하고 크게 키운다. 비록 그 옹이가 나의 고통이고 나의 삶을 잠식하는 것일지라도 그 상처를 잡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을 잡고 있어야 나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옹이는 작은 방 곳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초여름인데도 두꺼운 커튼이 작은 창문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방안 그 어디에도 사진이 없었다. 사진이 없는 작은 방, 과거와 단절된 채 현재의 시간만 있는 그 방이 할머니의 옹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화장품과 약병이 놓인 화장대의 거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 큰 거울 앞에서 할머니는 아마도 비켜가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비켜갔던 것일까. 그런 사이 옹이는 죽음처럼 단단하게 여물었을 것이다.

한하운 시인은 시 <자화상(自畵像)>에서 “한 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한 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얼굴은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모습이다.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얼른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이기에 그의 자화상은 옹이처럼 굳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일상에 언뜻 언뜻 비치는 모습은 한센병 이전의 처녀 적 고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할머니의 손은 머리카락을 뒤로 단정하게 쓸어 넘기고 있었다. 방안에 앉아 있으면서 치맛자락을 가지런하게 펼치기를 반복하고, 81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리를 펴고 있었다.

“피부가 참 고우셔요.”라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턱짓으로 화장대를 가리켰다. “저거 좀 비싸게 주고 샀다. 저번에 화장품 아지메가 와서 새로 나온 건데 좋다 카더라.” 화장대 위에는 요즘 드라마 전?후의 광고에 나오는 화장품 병이 세 개 놓여 있었다. 수줍게 웃을 때나 나의 이야기에 크게 웃을 때도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 고와서 슬펐다.

 

눈물

할머니가 19살 때 한센병은 찾아왔다. 할머니는 명랑하고 친구와 노는 걸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학교수업 중에서도 체육시간이 가장 좋았다. 여름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문득 다리의 피부가 부옇게 보였다. 처음에는 때가 끼었나 싶어 문질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의 눈에도 띌 만큼 부옇게 변하며 건조해져 갔다.

“땀이 안 나더라. 다른 사람들은 덥다고 땀을 닦는데 나는 땀이 안 나. 그때는 몰랐지. 한참 지나서 땀이 안 난다는 걸 알았제.” 혹시나 했지만 단순한 피부병일 거라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초여름인데도 계속 다리가 건조해서 어머니의 동백기름을 살짝 바르기도 해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얼굴까지 부옇게 느껴졌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체육 시간에 할머니는 혼자 그늘을 찾아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학교 가기가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날을 즐거워하며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며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이 많고

내 앞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닥치나

절망에 싸였다.

<내 인생길> 부분.

할머니는 자작시 <내 인생길>을 천천히 읊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중간 중간 쉬어가며, 한숨을 크게 쉬며 나지막하게 들려주었다. 한센 병 이전의 할머니는 유일하게 종아리를 드러내고 마음껏 뛸 수 있는 체육시간을 매우 좋아하고 기다렸다. 종아리를 스치는 바람의 느낌도 좋았다. 하지만 남의 눈에 쉽게 띄는 종아리는 이제 감추어야 했다.

다리의 피부색이 변하기 전부터 얼굴과 몸이 붓고 손발에 힘이 없었다. 사랑에 빠졌던 할머니는 임신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머니는 한의원에 가기를 권했지만 임신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갈 수 없었다. 할머니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감추는 것뿐이었다.

고녀 시절에 할머니는 남자를 만났고, 그리고 고녀 졸업반일 때 임신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일본 순사 부장의 아들이었기에 드러내놓고 말할 처지도 못되었지만,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너무 부끄러워 감추어야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지내는 위태로운 시간들이었지만 학교에 가는 것은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발의 감각이 무뎌지고 눈썹이 눈에 띠게 빠졌다. 세수를 하고 얼굴의 물기를 닦은 후 수건에 묻어있는 눈썹을 떼어내면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졸업이 다가오자 모두 사진을 찍는다고 들떠 있었지만, 할머니는 불러오는 배로 인하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만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심한 백내장과 오랜 기간의 한센병 투병으로 동공의 색깔은 검은 색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눈물은 맑고 투명했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쓸어내리던 손, 오랜 시간을 홀로 눈물 닦았을 그 손은 뭉툭했다.

무너질 가슴이 남아 있었던가. 할머니는 안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을 빼내어 치마 밑으로 감추었다. 할머니의 마음속 뜰은 텅 비어 있었다. 출입문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당에는 여름 햇살만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잡아주고자 하는 손마저 거부한 채 할머니의 눈물은 또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할머니의 감정이 살아있었음을 말한다. 60여 년 동안 누구에게도 열어서 보여주지 않았던 자기만의 뜰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할머니의 외로움은 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서 살아가는 곳이 세상인데, 그 곳에서 홀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불안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홀로 선 사람끼리 만나 둘(서정윤, <홀로서기>)’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가슴을 치며 울 수조차 없었던 할머니가 기대어 살아 갈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할머니는 임신을 하고, 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한센병에 걸렸던 것이다.

 

슬픔

외롭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이 비어있음을 말한다. 김소월은 <산유화>에서 청산에 홀로 피어 있는 꽃의 외로움을 노래했다. 청산과 꽃 사이에는 저만치 거리가 있듯이 사람이 있는 세상과 할머니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놓여 있어서 건너갈 수가 없었다.

몸의 이상과 불러오는 배를 누군가 알아볼까봐 방안에 숨어 지낼 때, 할머니에게 친구들은 가장 큰 위안이었다. 친구들은 거의 매일 찾아와 그날의 일들을 말해 주었고, 할머니와 마쓰시타 사이의 전령 역할을 해 주었다. 그때쯤 동네에는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친구들은 그 소문에 개의치 않았고, 할머니도 애써 부정했다.

소문은 점점 더 거세져서 언제나 학교를 마치면 할머니에게 와서 한 이불 밑에 같이 발을 넣고 어깨를 맞대며 웃고 장난치던 친구들이 하나 둘 찾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온 친구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서 다시는 올 수 없다고 했다. 여기 온 걸 알면 부모님으로부터 크게 혼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를 떠나갔던 친구들에 대하여 담담하게 말했다. “온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제. 그래도 친구들은 살짝 나와서 나하고 이불 밑에서 다리를 포개기도 하고, 아들이가 딸이가 농담도 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보고 니는 연애도 하고 좋겄다고 부러워했제. 갸들도 어쩔 수 없었는 기라.”

하지만 그 당시의 할머니는 친구나 동네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앞의 현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는 자신의 예감대로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슬픔이 끝없이 밀려 왔다. 그 슬픔의 눈물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 이렇게 땅 위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인간이 살고 있지만

내게는 나병이라는 걸 내립니까.

하나님도 원망하고 싶고

내 자신도 미워

차라리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내 인생길> 부분.

할머니는 자신을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게 더 좋을 뻔’한 존재로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 존재의 부정은 자기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 뜻밖에 찾아 온 나병은 할머니의 삶을 죽음과 같은 어둠 속에 놓이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었기 때문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육체적인 질병에 의해 마음은 병들어도 삶은 지속된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절망에 빠지게도 하지만, 또 한편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희망도 품게 한다. 이 때문에 눈물 속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를 만났을 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세상의 온갖 재앙과 슬픔이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희망이다. 인간은 불행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희망 때문에 더 절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희망이 있어서 고통을 견디기도 한다. 할머니에게 임신과 한센병은 더 할 수 없는 불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자기만의 옹이를 진주로 키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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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4)

이정호(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2. 아프로디테(2)

아프로디테의 힘이 erga gamoio 즉 성적인 결합과 관련한 일에서 분명하고도 위력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호메로스 찬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노래가 2편 실려 있는데, 그 중 긴 쪽은 가장 오래된 작품군에 속하는 것으로서 일찍이 기원전 7세기 이오니아 지방에서 불렸다.

아무려나 제우스는 제멋대로 사랑의 불길을 일으키는 아프로디테에게 진절머리가 나 버렸다. 그래서 제우스는 감당하기 힘든 그러한 사랑의 불길을 아프로디테 스스로도 한번 겪어 보도록 그 자신, 이 여신이 하는 일에 손을 댄다. 제우스는 우선 이다(Ida)산에서 소를 방목하고 있는 안키세스(Anchises)에 대해 격렬한 연정을 품도록 그녀의 마음속에 사랑을 이식했다. 그래서 파포스에 있었던 아프로디테는 우아한 여신들로 하여금 자신을 목욕시키고 향유를 발라 아름답게 몸치장하게 한 후, 스스로 이다산으로 달려가 안키세스를 뇌쇄시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아이네이아스를 낳는다. 그런데 아프로디테의 이다산행은 동물의 발정과 관련한 중요한 모티브와 묶여져 있다. 그녀가 이다산을 향해갈 때 늑대와 사자, 곰, 표범 등 산속에 있는 온갖 짐승들이 여신을 수행했는데, 여신은 그것을 아주 기뻐하여 그 짐승들에게 생식에의 충동을 불러 일으켰고 짐승들은 크게 발정하여 모두들 그늘 깊은 곳에 들어가 교미를 했다. 이런 연고로 아프로디테는 이다산의 대모신으로서 모든 동물들의 강대한 여주인(potnia t?r?n)이 된 것이다.

이 여신의 위세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뻗어 있는지는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아직 아르카익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토대로 성장한 시인이었던 만큼 그의 증언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가 3부작으로 계획한 작품 중 첫 편(나머지 두 편은 소실)에 해당하는 그 작품은 아이귑토스(Aigyptos)의 아들들의 난폭한 구혼을 피해 달아나는 다나오스(Danaos)의 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작중에서 시인은 여인들이 도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극의 전반부에서는 그 주된 이유가 구혼자들에 대한 딸들의 혐오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아예 결혼 자체를 피하려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상은 위대한 생명력으로서의 아프로디테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이 두 개로 나누어지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나오스의 딸들이 아르고스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마을 입구에서 그녀들을 맞이하고 다나오스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듯 퀴프리스(Kypris 아프로디테의 다른 이름)의 힘을 언급하고 있다.

 

과일도 다 익은 것은 자신을 지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짐승들과 사람들이 건드리니까. 왜 안 그렇겠니?

즙이 많은 과일을 먹어 보라고 온갖 길짐승들과

날짐승들을 퀴프리스가 초청하여, 과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지 못하도록 식욕을 돋우니 말이다.

(997-1002)

 

아이귑토스 구혼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다나오스의 딸들(Danaiden, Jan Frans Deboever 작)

다나오스의 딸들은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것을 변함없이 거부하고 있지만, 처녀신인 아르테미스에게 비호를 청하는 아래의 탄원 속에는 분명 결혼 자체에 대한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

 

정결하신 아르테미스여, 굽어 살피소서

이 일행을 가련히 여기시어 퀴테레이아(Kythereia 아프로디테의 별칭)가

우리를 결혼침상에 들도록 강요하지 않게 해 주소서

차라리 이 고통이 죽음으로 끝나기를

(1030-33)

그러자 시녀들의 제2의 코러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이것에 대답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퀴프리스를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요. 그녀는 헤라와 권세가 같고

제우스에 가장 가까워요. 변덕스런

여신이지만 그녀는 진지한 의식에 의해

경배를 받고 있어요. 동경,

무슨 요구를 하든 거절할 수 없는 설득이

사랑스런 어머니인 그녀와 함께 하지요.

아프로디테는 화합에게도, 사랑의 신들의

속삭임에도 역할을 주었지요

(1034-1042 이상 천병희 역 참고)

 

아프로디테가 건넨 마법의 띠를 두르고 제우스를 유혹하는 헤라 (작가 미상)

다나오스의 탄식과 달리 시녀들의 코러스는 반대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녀들의 코러스는 남자와의 성적 결합을 여인의 궁극적 성취로 이끄는 아프로디테의 위세를 재현하는 것으로 결혼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아프로디테를 무시하는 휘브리스(Hybris)임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스퀼로스가 3부작을 어떻게 끝맺음할 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3부작의 나머지 두 작품인「아이귑토스의 아들들」과 「다나오스의 딸들」은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는 없지만, 일부 남아있는 몇 가지 단편들을 보면 최소한 그 결말의 윤곽정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즉, 두 번째 작품인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에서는 딸들을 지키는 아르고스인과 그들을 추적하는 아이귑토스의 아들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다나오스의 딸들은 그들과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혼 첫날밤 딸들은 다나오스의 명령에 따라 가증스러운 남편들을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결혼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행로가 이것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작품인 「다나오스의 딸들」에 이르면 이후 다나오스의 딸들은 모두 살인의 죄로 재판에 회부되는데 이 때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그녀들을 도와주어 그녀들은 살인죄에서 벗어나지만, 그 후 그녀들은 결국 아프로디테에 의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결혼으로 다시 이끌리고 만다. 물론 남편을 죽인 다나오스의 딸들이 저승에 가서 독에 물을 채우는 벌을 받는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결국 그녀들의 새로운 결혼이 이 3부작의 결말이라고 한다면 여전히 이 작품에서도 딸들의 하나같은 탄원에 아랑곳함이 없이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전혀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이스퀼로스의 다른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desmotes)」를 보면(865) 다나오스의 딸 중 휘페르메스트라(Hypermestra)만은 다른 딸과 달리 다나오스의 명령을 거역하여 남편을 살해하지 않은 죄로 별도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도 사랑(himeros)을 위해 살해를 거부한 휘페르메스트라를 적극 비호하는 과정에서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드러난다. 현재 남아 있는 단편(fr. 44 N)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아프로디테 여신은 휘페르메스트라의 행동을 하늘과 대지의 결합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우주적 사랑(Eros)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로디테는 그 자리에서 휘페르메스트라를 비호하며 만물을 정복하는 사랑의 힘을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성한 하늘은 대지와 가까이 사랑하기를 갈망하여

결혼의 서약을 맺고 대지를 취할 수 있었다.

가로 놓인 하늘에서 큰 비가 쏟아져,

대지는 만물을 잉태하여 인간들을 위해

양이 먹는 풀과 데메테르가 지배하는 풍부한 곡물을 낳는다.

또 과일나무 열매들도 구름과 비가 인연을 맺어

영근 것들. 그 모든 것들 가운데 나 파라이티아(paraitia)가 있다

(단편 44 N)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아프로디테가 자신을 paraitia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paratia는 ‘원인이되 한 쪽을 맡고 있는 원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녀에게 결코 ‘전적으로 독자적인 원인’을 의미하는 panaitia라는 이름이 붙여질 수는 없다. 그 말은 제우스에게 사용될 수 있는 말이고(「아가멤논」1486행), 굳이 사랑과 관련한 경우라면 에로스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은 아프로디테의 위세가 비록 드높긴 해도 전적으로 주도적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는 위대한 생성을 이끄는 에로스의 공동 참가자로서 그녀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성적 결합을 통해 쾌락과 희열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들의 “신성한 결혼”(hieros gamos)에 담겨 있는 아프로디테적 의미를 간단히 음미해보기로 하자. 하늘과 대지의 신성한 결혼은 오랜 역사에 걸쳐 널리 알려진 신화이다. 에우리피데스가 그 없어진 비극 「크뤼십포스(Chrysippos)」에서 성스러운 결혼의 관념을 채택할 때, 그것은 꽤 독단적이긴 하지만 교훈적으로 들린다.

 

위대한 힘을 가진 대지(Gaia)와 제우스의 하늘(Ait?r)

하늘은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

대지는 부슬부슬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들여 가사적인 것들을 낳는다,

목장의 풀들과 여러 종의 짐승들을.

(단편839N)

 

이러한 “신성한 결혼”의 관념은 로마의 시인 웨르길리우스(Vergilius)의 「농경시(Georgica)」에서도 보여진다.

 

그 때,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은 열매를 맺게 하는 비와 함께

기쁨을 가득 채운 아내인 대지의 품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커다란 하늘은 광대한 대지의 몸과 결합하여 모든 생물을 낳아 길렀다.

이후 길이 없을 정도로 초목이 번성하고, 새들의 노랫소리 울려 퍼져

번식기에는 소 떼가 짝 짖기에 여념이 없고

밭에서는 곡식이 영근다.

(2.325-31)

 

또 아이헨도르프(Eichendorff)의 시에서도 신성한 결혼에 대한 태고적 신앙의 시적 여운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하늘이 대지에

살짝 입맞춤을 하듯이

대지 또한 꽃그늘 옅은 햇살 속에서

마냥 하늘을 꿈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호메로스의 시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이오니아풍으로 쓰여져 있다. 그의 시 가운데 지금까지 언급해온 종류의 관념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비록 “신성한 결혼”은 아닐지라도 가장 위대한 신들이 나눈 사랑의 한 때를 그린 장면이 몇 개 남아 있다. 헤라가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하여 마법의 띠(kestos himas)를 받은 후, 헤라가 벌이고 있는 「일리아스」제14권의 장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곳에서 헤라는 자신의 계략대로 침대에 누워 제우스의 팔에 안겨 있는데, 그 때 대지와 하늘이 두 위대한 신의 성적 결합에 참가하여 마치 그들의 신성한 결혼을 보여 주는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자 그들 밑에서 신성한 대지가 이슬을 머금은 클로버며

크로커스며 히야신스 같은 싱그러운 새 풀들을 두껍고 부드럽게

돋아나게 하니 이것이 그들을 땅 위로 높이 들어 올려주었다

그 속에 그들이 누워 아름다운 황금 구름을 두르니

그 구름에서 반짝이는 이슬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347-51. 천병희 역 참고)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 Palazzo vecchio ? Florence 소장 )

시인은 하늘과 대지의 결합이라고 하는 오래된 관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신들의 목가적인 사랑의 한 때를 위와 같이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아프로디테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주 생성에 관한 신화를 잠간 언급했는데 그 때 가이아(Gaia, 대지)와 우라노스(Ouranos, 하늘)의 결합은 우주 생성 이래 최초의 ‘신성한 결혼’답게 그에 상응하는 극렬한 성적 결합의 면모를 보여준다. 우라노스는 에로스의 힘을 얻어 너무도 열렬하게 가이아 온 몸을 한 치도 남김없이 꼭 맞게 덮치듯 끌어안고 있어서, 가이아는 우라노스에 가려 햇살 한 가닥조차 접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 또한 지상에 나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채 모두 가이아 속에 묻혀 지내야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들을 떼어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피조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빛과 공간을 되돌려 주는 것이 필요했다. 결국 가이아는 숨 막힐 듯한 괴로움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스스로 회색의 쇳물을 내서 그것으로 갈고리형 둥근 낫(harp?)을 만들어 자식인 크로노스(Kronos 시간)로 하여금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절단하게 만든다. 이로써 하늘과 땅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이른바 최초의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위해한 자신에게 미칠 후환이 두려워 자식들을 모두 삼켜버렸고 그 바람에 빛과 공간은 다시 열렸으나 아직 신들의 삶의 터전과 세상의 질서는 생겨날 수 가 없었다. 그러자 마침내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어머니 레아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형제들을 구해 비로소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 최초의 질서를 창조해낸다.

그런데 대지가 하늘에서 풀려나고 올륌포스 주신들에 의해 최초의 세상, 최초의 질서가 확립되어 가는 그 시간, 잘려진 우라노스의 생식기는 바다를 떠돌다가 퀴프로스섬에 이르러 그 불사의 살점에서 거품이 생기면서 아프로디테를 탄생시킨다. 우라노스의 거세를 통해 열린 세상에 아프로디테가 우라노스의 분신이자 자식으로 태어나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그 이후에 태어난 신들의 자손 모두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관능의 씨앗을 심어 놓는 순간이다. 인간의 관능적 사랑이 갖는 희열과 멍에, 생식과 파멸의 뿌리 깊은 이중성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인의 사랑 중 “소년사랑”을 주제로 다음에 계속)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3)

번역자 : 김남우 (정암학당)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공로임을 입증하고 난 이후 우신은 철학자들의 예상되는 반론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학문은 인류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기왕의 여러 학문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로부터 가장 환영받는 학문은 인류의 본성에 제일 가까운 것인 바, 어리석음에 제일 가까운 것들이다.]

이쯤 되면 철학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어리석음을 부여잡고 깨닫지 못하고 잘못 알고 속으며 무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철학자들이 왜 이것을 불행이라고 부르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양육되고 그렇게 가르쳐졌으니, 이것은 모두의 공통된 처지입니다. 새처럼 날지 못하기 때문에, 여타 가축들처럼 네 발로 걷지 못하기 때문에, 황소처럼 뿔로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가 불행다고 말한다면 모를까, 인류에게 주어진 본성을 불행하다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식의 논리라면 아름답긴 하지만 문법을 모르며 과자를 즐길 수 없기 때문에 말은 불행하다, 씨름에 도움이 못되기 때문에 황소는 불행하다 할 것입니다. 말의 입장에서 문법을 모른다고 해서 전혀 불행할 것이 없는 것처럼, 인간의 입장에서 어리석음은 하등 불행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천품인 까닭입니다.

그런데도 입씨름에 달통한 그들은 주작부언, 인간에게는 특별히 학문적 능력이 주어졌으며, 이에 힘입어 자연이 부여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연이 모기는 물론이려니와 들풀과 들꽃을 만들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렸건만 유독 인간을 만들 차례에는 졸다 실수하여 결국 인간에게 학문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그들은 마치 이를 사태의 진상인 양 설레발칩니다. 하지만 학문은 인류에게 분노한 신 테우트에 의해 만들어져 결국 인간들에게 끔찍한 파멸을 초래하였을 뿐 행복에 기여한 바가 없는 물건이며,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어떤 현명한 왕이 솜씨 있게도 글자의 발명에 반대하였던 것처럼, 행복을 위해 발명되었다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문은 인간 삶을 좀먹으며 기어 다니는 여러 병폐들 가운데 하나인데, 인간에게 모든 해악을 초래한 못된 정령들이 또한 학문을 창출하였는바, 못된 정령을 가리키는 희랍어 ‘다이몬’은 ‘현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학문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자연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시절, 그 소박했던 때를 황금시대라 하겠습니다. 당시 모두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 말고는 언어로 달리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던 때에 도대체 문법학이 왜 필요했겠습니까?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다툴 일이 없던 때에 도대체 논리학은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누구도 타인과 협상을 벌일 문제가 없던 때에 수사학은 무슨 아랑곳이며, 진정 부도덕이 존재하고야 이를 다스릴 선량한 법률이 생겨나는 법이거늘 하물며 법학은 있었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경건하였기로 불경한 호기심에 이끌려 자연의 비밀을, 천문의 조화와 운동과 영향을, 사물의 숨겨진 원리를 찾아낼 엄두도 내지 않았으며, 필멸의 인간이 주제에 걸맞지 않게 현명해지려고 하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늘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묻는 탐구의 광기가 아직 마음속에 자리 잡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황금시대의 순수함이 사라져 감에 따라 내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못된 정령들이 학문을 만들어 냈으나, 처음에는 학문 분야는 많지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를 배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뷜로니아 사람들의 점성술과 희랍 사람들의 백해무익한 경박함이 이를 600여개로 늘려 인생이 짊어진 십자가의 형벌만을 보태어 놓았습니다. 실제 문법 하나만으로도 인간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형극의 고통은 충분하고도 넘치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이런 학문들 가운데 그래도 가능한 한 대중적 상식에 접근한 것일수록, 그러니까 어리석음에 가까운 것일수록 더욱 큰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하여 신학자들은 밥벌이가 없어 굶주리며, 과학자들은 추위에 떨며, 천문학자들은 남우세를 받으며, 논리학자들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오로지 의사만이 만군 (萬軍)의 가치를 누립니다.1) 더욱이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무모하며 경솔할수록 명성이 높으며, 훈장을 단 고관대작들조차 그에게 큼직한 명예를 수여합니다. 오늘날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펼쳐 보이는 의학이란 수사학과 다를 바 없는 아첨술의 작은 분과에 지나지 않습니다.2)

두 번째 자리는 법률가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만, 어찌 보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습니다. 법률가라는 직업은, 철학자들이 대개 동의하여 조롱하는 것처럼, 이런 말을 내 입에 올리긴 싫지만, 멍청한 당나귀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당나귀들의 처결에 따라 크고 작은 문제들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그들의 재산이 점차 자라납니다. 그사이 신과 관련된 온갖 문서들을 샅샅이 파고들어 꼼꼼히 읽어보는 신학자는 콩을 쪼개 먹으며 벼룩과 이를 상대로 생사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음과의 친연성이 큰 학문일수록 그만큼 만고에 복되고 복되다고 하니, 따라서 일체 학문과의 거래를 끊고 다만 자연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자연은 인간이 주제넘게 범하지 않는 한, 오로지 스스로 완전합니다. 자연은 인공을 기피하며, 따라서 일체 학문적 위해를 입지 않은 것은 그만큼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묻거니와, 여러분은 학문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자연 이외의 누구도 따르지 않는 동물들이 나머지 다른 동물들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신체적으로 모든 감각들이 전혀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꿀벌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놀라운 삶을 살지 않습니까? 어떤 건축가가 있어 이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유사한 건물을 세울 수 있으며, 어떤 철학자가 있어 이들이 이룩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말은 인간적 정서에 가까이 서 있으며 인간들의 공동생활에 익숙해짐으로 해서 인간들이 겪는 재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창피를 당하는바, 경주에 참여해서는 ‘늘어진 배를 질질 끌고’ 전투에 참여해서는 승리를 찾아 헤매다 크게 상처를 입고 쓰러져 말 탄 사람과 함께 ‘입으로 대지를 깨물게’ 됩니다.3) 늑대이빨을 한 재갈, 가시 돋은 박차, 감옥과 같은 마구간, 가죽채찍, 작대기, 고삐, 마부 등, 말이 사나운 인간들을 흉내 내어 무참히 적들에게 복수하려다가 스스로 뒤집어 쓴 굴종의 비극을 내가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삶은 파리와 새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들은 인간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는 동안이나마 짧은 삶을 살면서도 오로지 자연에 따라 살아갑니다. 새장에 갇혀 인간의 언어와 소리를 배운 새가 타고난 빛나는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은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자연이 창조한 것은 학문적 가공이 꾸며놓은 것보다는 모든 측면에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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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메로스 <일리아스> 제 11권 514행과 플라톤, <향연> 214b에 인용되어 있다.

2)플라톤 <고르기아스> 463a이하에서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을 아첨술과 함께 거짓된 학문으로 여겼다.

3)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 11권 418행 이하. 베르길리우스는 전투에서 쓰러져 죽는 것을 ‘대지를 이빨로 / 입으로 깨물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호메로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