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노동이야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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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노동이야기]-①

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예전에 살던 집, 팔려고 내어 놓았으나 팔리지 않는 집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구식 6층 아파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쩐지 편안하다. 씽크대와 가스렌지, 그리고 컴퓨터 책상을 빼고는 휑하게 비어있다. 배낭을 내려 집을 꺼내고, 거실에 텐트를 쳤다. 가을이 깊었다. 실내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침구가 없다. 배낭에서 옷을 있는대로 꺼내 입었다.
들어오면서 사온 맥주를 마셨다. 제과점에서 산 호떡을 안주 삼았다.
추석 전에도 여기 와서 머무르면서 목수 일을 했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대공장이 들어서는 이곳은 일감이 많다. 빈 집에 온 이유도 일 다니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 봐야만 이 집에서 머무르며 계속 일할 수 있을지 알 것 같다.
해미와 고북 일대에는 공장이 없었다. 몇 년 전 홍성군에서는 경사라도 난 듯이 대기업인 Y전기 공장을 이곳에 유치하기로 했다는 계획을 홍보했다. 지역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고 군수와 회사 간부가 계약서에 서명하는 사진이 실렸다.
Y전기에 일하러 다닐 때 어떤 목수가 말했다.
“공장이 들어오면 그 동네는 끝난거야.”
그는 환경오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Y전기에 일하러 갔던 날들을 잊을 수 없다. 아파트형 기숙사를 짓는 공사는 지하층을 마무리한 다음, 1층을 건설하고 있었다.
첫날은 하스라 통(기둥 거푸집)을 짰다. 오랫만에 하는 목수 일이었다.
기둥 폭은 80×80cm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다.
ⅰ) 기둥 위치를 표시해 놓은 먹 선에 미리 반장이 맞추어 놓은 수평 표시까지 네모도(수평표시 높이까지 바닥에 나무 각재를 높여주는 작업)를 깔아준 다음,
ⅱ) 측면 표시 먹선에 맞춰, 120×60cm 크기의 폼(철재 테두리에 합판을 댄 형틀재)을 을 세워 준다.
ⅲ) 세운 폼 양 옆에 아웃 코너(120×꺾어진 20cm의 철판 형틀)를 핀으로 고정시킨다.
ⅳ) 폼을 네 면에 세우면 우선 기초 형틀이 완성된다. 기둥 높이가 400cm이므로 높이에 맞춰 폼을 세워 올라간다.
이 때
ⅴ) 기둥 중간에 타이(중력에 의해 거푸집 변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정해주는 철로 된 띠)로 폼과 폼을 연결시켜준다.
부분적인 작업이긴 하지만, 유능한 목수의 머릿속에는 부분과 부분을 합쳐, 건물이 완성되는, 이른바 구상력이 있다. 구상력이야말로 정교하게 집을 짓는 꿀벌보다 목수가 우월하다는 증거이다.
남쪽에서는 폭풍이 올라온다는 기상청의 보도가 있었다. 바람이 몹시 강했다. 나와 두 사람은 하스라통(기둥 거푸집)을 짜고, 몇몇은 야기리(벽체를 세우기 위한 형틀의 한쪽 면)를 크레인으로 떠서 세우는데 소란하기 짝이 없었다. 바람이 이토록 강한데 크레인을 쓰다니, 일하는 사람이나 시키는 사람이나 조심성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 켠 무섭기도 했다. 하나 짜 놓은 하스라통도 바람에 날려 넘어갈까 무서웠다. 나는 하스라 통 네 귀퉁이에 2미터 강관파이프로 지주대를 세웠다. 내가 짠 것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짜 놓은 것도 모두 지주대를 세우는데, 반장이, “그거 하지 말고 하스라통 짜” 라고 이르고는 부리나케 걸어갔다.
기둥 하나를 완성하고 두 번째 하스라통 짜기는 쉽지 않았다. 철근을 근 8미터 높이로 세워 놓았다. 이것이 기울어져, 수직이 안 맞으니 하스라 통 안에 넣을 타이(콘크리트 타설시 중력에 의해 형틀에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양 옆 기둥 형틀을 고정시키는 쇠로 된 띠장)를 밀어내는 바람에 도통 핀을 끼울 수 없었다. 철근을 바로잡고 간신히 끼우려는데 이번에는 외부 폼 코너가 맞지 않았다. 다른켠에서 하스라 통을 짜는 최씨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현장에서 선임자의 경험은 중요하다. 잘 모르는 것은 무조건 물어봐야 한다. 최씨는 내가 짜던 하스라통에 올라갔다. 그가 잘 맞지 않는 타이와 씨름하는 사이, 나는 다른 기둥을 짜는 작업 준비를 했다. 빨리 일하는 요령은 미리 준비해 놓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한참 후 최씨가 하스라 통에서 내려왔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니, “외부 코너가 잘 안 맞는다. 긴 코너를 잘라서 다시 짜야한다”고 했다. 재료 새 것을 잘라 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청회사 사장이 볼라치면 크게 봉변당할 수도 있다. 형틀 재료값이 무척 비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점심 먹으러 식당 쪽으로 갔다. 못주머니를 벗어놓고 그들 뒤를 따라 갔다.
일 할 걱정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했다. 이빨까지 아팠다. 남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거나 드러누웠다. 나는 하스라 통 앞에 앉아,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했다.
한 시가 되면 일 시작한다. 나는 아웃코너 온 장(2미터 40센티)을 전동 커터를 사용하여 반으로 잘랐다. 하단 네 개는 잘 맞는 것으로 짜 올렸고, 2단 두 개는 잘 맞지만 다른 두 개가 맞지 않았다. 다른 것에 비해 조금(약 1cm) 컸다. 따라서 잘 맞는 사이즈의 코너를 두 개 준비하면 된다.
일하기 전, 기둥을 완성할 재료들을 모두 준비해 놓았다. 아웃코너와 폼, 타이, 핀 등속을 준비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가 작업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어갔다. 그 누군가는 작업 재료는 풍족하지 않고, 빨리 일은 맞춰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은 가지만, 뭐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는 늙었고, 일을 잘 못하는 조공이다. 함께 일하는 목수가 빨리 재료를 구해 오지 못하면 그에게 핀잔 할 것이다.
자른 재료는 잘 맞았다. 참 다행이었다. 짜고 있는데, 반장이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
“빨리빨리 좀 짜. 이거 짜고, 저기 저것도 마무리 해. 목수 맞어?”
괜히 주눅 들었다. 오랜만에 하는 통에 일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도 많다. 처음 보는 재료도 있었다. 바싹 꼬리를 내리고 다른 사람들이 짜다 만 하스라 통을 노바시(하스라 통 도면 높이까지 올리는 일)했다.
목수 일은 시간이 잘 간다. 일이 잘되면 잘 되는대로, 일이 잘 안되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통에 하루가 금새 지나간다. 일이 끝날 때면 나도 모르게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를 흥얼거린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하루가 갔다는 뜻이다. 시몬느 베이유, 젊은 나이에 요절한, 김나지움 교수를 하다가 르노 자동차에서 일한 그이는 작업대에서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했다. 일하는 하루 지나간 것이 그토록 고맙고 즐겁다. 사실 따지자면 귀중한 하루인데, 그 날이 지나간 것을 이토록 반가워하다니 역설이다.
용역회사로 가는 승합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우리를 태워준 목수가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렸다. 무심코 앞에 올라탔던 나는 혼비백산했다.
이씨가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 고향 근처 창리에서 왔다. 인사를 나누면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씨는 용역회사에 왔을 때 반짝반짝 빛나는 군화(워커)를 신고 있었다. 나중에, 자기의 전직이 밤무대 연예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승용차 기름값이나 운행 거리를 비교해 보고는 아예 창리 집으로 가지 않고 찜질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씨가 찾아낸 식당이 〈밴댕이집〉이었다. 여주인은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그러나 손님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그녀는 고향이 이곳이었다. 여성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으되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고향의 언어를 잊어버리고 타향의 사투리를 쓴다는 것은 그녀의 인생 역정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노동자라는 것을 짐작한 듯, 일당을 물어보던 그녀는 무척 놀래는 듯한 표정을 했다. 식당이 일당만큼 벌리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오해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일당을 한 달 30일 곱하기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 나가는 목수도 일 년에 200일밖에 일할 수 없다. 하물며 늙은 노동자인 내가 일하는 날이라야 1년 60일이 고작일 것이다.
이씨는 여주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는 소주를, 나는 막걸리와 맥주를 먹었는데, 여주인에게 와서 맥주 마시기를 청했다.
몇 일간 Y전기에서 일했다. 일을 다니는 와중에 반장이 노인 김씨와 손을 맞춰 일하라고 지시했다. 그 날은 속고(철근 콘크리트 보를 올릴 밑받침틀) 세 개를 자고, 벽체 눈썹(벽체와 천정 사이를 콘크리트로 보강하기 위한 작업)을 빼라고 했다.
김노인은 성미가 급했다. 하리 길이를 재는데, 마구 설쳐 댔다. 내가 하는 일이 어설퍼 보였는지, 데모도(조공) 대하듯이 이것저것 시켰다. 군말없이 그가 요구하는대로 기계톱 다이로 가서 합판을 45 센티로 잘라오고, 하리 받침목을 준비했다. 김노인은 걷는 것을 불편해 했다. 멀리 있는 기계톱 다이까지 갔다 오는 것은 그에게 힘든 일이다.
속고 세 개를 짠 후에는 눈썹을 뽑기 위해 벽체의 미진한 곳을 마무리했다. 마구리통(벽체 형틀 양 측면을 고정해주기 위한 판넬)을 붙이고는 형틀이 벌어지지 않도록 타이로 이어, 핀으로 고정시켰다. 그 때 뚱뚱한 목수(울산이 집이라 했다)가 와서 잠시 자기를 도와달라 했다. 무심코 따라가, 그와 함께 야기리에 타이와 핀을 설치하는데, 김씨가 나에게 와서 아주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이씨, 이리로 와요. 우리 둘이 반장이 시킨 것을 해야 한단 말이오.”
나는 울산 목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김씨에게 사정한다.
“조금만 도와주면 돼요. 좀 봐주세요.”
김씨는 굽히지 않았다.
“안돼요. 반장이 우리 두 사람에게 이것을 하라 했단 말이요. 이씨, 이리 오소. 일 못했다고 쫓겨갈 참이요?” 라고 했다. 뚱뚱한 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일했다. 잠시 후 뚱뚱한 이가 다시 왔다. ‘반장에게 나를 데려다 쓰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를 도와 벽체 타이 핀을 꽂았다. 뚱뚱한 이도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일하고 있었다. 근데도 기어코 나를 데려왔는가, 궁금해서 물으니 “저 사람은 빨리 벽체 폼 짜야 돼요”라고 했다.
김씨의 말이 사실인가 보다. ‘일 못해서 쫓겨간다’는 말이 능률을 못 올리면 쫒겨간다는 뜻인가 보다.
몇 일 후 김씨는 용역 소장으로부터 14만원에서 12만원으로 일당 조정한다는 통보를 들었다. Y전기 건설 현장 소장이 목수 몇 명을 찍어 일당을 조정하겠다고 알려왔다.
김씨는 속상해 했다. 나는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 그냥 다니세요. 12만원 받으면 적어도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잖아요. 편히 일할 수 있잖아요. 걍 다니세요.”
나는 김씨가 왜 일당을 깎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몇 일 전 여러 명이 크레인으로 속고를 들어 올린 후, 도면 먹선에 맞춰 올리는 일을 했다. 김씨와 내가 한 조가 되어 김씨는 나에게 아시바 대(철재 지지대)를 주면, 나는 그것을 받아 우마(1mm 높이의 발판) 위에서 속고 아래에 밭치는 일을 했다. 김씨는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속고를 올린 후, 김씨와 나는 속고 위에 폼을 받는 작업을 했다. 대개는 지상에서 속고를 콘크리트 보 원형대로 짜서 크레인으로 올린다. 그러나 이번의 작업은 지상에서 완성하기 곤란할 정도로 높이를 맞추기 여려운 면이 있었다. 폼을 눕히면 높이가 부족하고, 폼을 세우면 속고 바닥까지 약 30cm가 뜨게 된다. 이래저래 난감한 반장은 속고만 올린 후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서 보의 양 측면에 폼을 대고 못을 박아 완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폼을 사람 손으로 들어올리기 어려우니, 한 열 장씩 포개 싼 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속고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 폼 받기이다.
4m 높이의 40cm 넓이의 공중에서 크레인으로 집어올린 폼을 받아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 나 할 것 없이 자세가 어정쩡할 수밖에 없다.
그 다음에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속고 양 옆에 도면 높이대로 폼을 못으로 밖아 고정시키는 작업을 했다. 이 역시 무거운 폼을 가누어 못 박기 쉽지 않다.
현장소장이 어디선가 작업을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몇 명을 찍어내, 일당을 깎았다.

빈 집에서 자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온통 옷을 끼워 입고 가디건을 덮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찌뿌둥했다. 일하러 가기 싫었다. 그러나 빈 집은 마음이 편안했다. 배낭에는 등산장비와 반찬이 들어있었다. 꺼내어 찌개랑 밥을 해 먹었다. 주인 몰래 다락방에서 살던 〈나가사끼〉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누구든 자기가 살던 집에 들어가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텐트를 접고 짐을 꾸리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경상도로 내려가세요. 팀장의 전화번호를 메세지로 보내겠습니다. 내려가서 (팀장에게) 전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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