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완성하려는 자, 여백을 즐겨라 [청춘의 고전 시즌2]-⑥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⑥

??? 일시: 2012. 6. 9.?(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삶을 완성하려는 자, 여백을 즐겨라

– 팔대산인의 묘석도(猫石圖)와 선불교 –

 

강연: 황희경(영산대 교수)

 

‘돌다움’이란 없다

간혹 돌 모으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 있다. 수석이 취미인 사람들이다. 돌을 모은다니 의아스러운 취미다. 돌의 무엇이 사람을 매료시키는 것일까? 그들은 ‘돌’의 무엇을 보는 것일까? 그런데 의아스런 일이 하나 더 있다. 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돌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다. 돌을 두고 보는 일도 낯설지만, ‘돌을 그린다’ 함도 익숙한 광경은 아니다. 과연 무슨 뜻이 ‘돌’에 담긴 것일까?

한국 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 KT&G 상상마당 공동 주최로 이루어지는 <청춘의 고전> 여섯 번째 시간, 황희경 교수(영산대 교수)는 뜻밖에도 ‘돌’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삶을 완성하려는 자, 여백을 즐겨라’라는 주제로 돌 하나에도 뜻을 담아 그린 한 예술가의 삶을 재조명하며, 청중을 정감 넘치는 그의 작품세계로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돌의 멋을’ 전달함에 운치 있는 시 한 편을 직접 낭송함으로써 직관적인 이해와 감동을 선사하였다. 소개된 시(작자 미상)는 다음과 같다.

“물에 돌이 없으면 맑지 않고
산에 돌이 없으면 웅장하지 않고
성에 돌이 없으면 예스럽지 않고
궁전에 돌이 없으면 화려하지 않고
정원에 돌이 없으면 빼어나지 않고
사원에 돌이 없으면 신령스럽지 않고
집에 돌이 없으면 아취가 없고
인간은 돌이 없으면 편하지가 않다.”

이 시를 통해서 황희경 교수가 강조한 것은 ‘돌의 멋과 정신’이다. 돌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래서 당연시 여겨지는 사물이지만, 어느 순간 강하게 자신의 멋을 표출한다. 차가운가 하면, 성곽에 이끼 낀 돌은 시간을 적시고 사람의 마음을 울어낸다. 까슬한가 하면, 계곡물에 쓸려간 돌 표면이 부드럽기만 하다. 절 마당에 놓인 석탑은 세속을 건너고, 산꼭대기 바위는 흘러가는 능선도 멈춰 세우는 기상이 있다. 자연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고귀한 정취를 드러내는 돌이다. 제각각인 모양에서, 서로 다른 역할과 쓰임새로부터 다채로운 멋이 나지만 언제까지나 자연 일부로 남아 있기에 돌은 질박하다. 그렇다면 왜 서로 다른 형태의 멋인가?

돌의 본질을 꿰뚫어 황희경 교수는 그 진정한 미(美)를 이렇게 표현한다.

“돌에는 진짜 돌이라는 것이 없다. 무엇이나 그 나름대로 묘미가 있다.”
“돌이라는 것에는 어떤 전형적인 모습도 없다. 인생이 꼭 어떠해야 하는 것도 없다.”

그는 “멋진 돌이 따로 없다”고 한다. 원래 “‘돌다움’이라고 하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황희경 교수는 “인생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같은 모양의 돌이 없고 우리네 인생도 저마다 다르다. 돌 모양이 분방하듯 인생에도 정답이 없다. 모두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 다른 묘미가 있다. 자유 미(美)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과 자연의 간격이 결코 멀지 않다.

고양이와 고양이의 그림자

황희경 교수는 돌에 자유미와 친숙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동물의 경우, 그 중에서도 고양이가 더욱 그러한데, 특히나 “불교에서 고양이는 승려들에게 인간의 자유로운 경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고양이의 이미지는 자는 것 같지만 깨어있는 상태,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언제라도 쥐를 잡을 수 있는” 예리함과 여유의 상징이다. 덧붙여 그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고양이의 상징은 또한 희로(喜怒)의 감정을 극복한 고요의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자세’로써 승려들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도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상태가 아닌가 한다.”

한편, 황희경 교수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추구함에 있어 경계해야 할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에는 남천 선사와 조주 선사의 선문답을 예로 든다. 그 일화를 요약하자면, 어느 날 절에 아름다운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절의 승려들은 그 고양이가 자신의 것이라고 직접 데려가 키우겠다고 야단을 피운다. 그런데 이 모습을 남천 선사가 보고 승려들에게 말한다. “너희 중에 누가 도를 말하면 이 고양이를 살릴 것이고, 말하지 못하면 고양이를 참할 것이다.” 아무도 답하지 못하자 선사는 고양이를 베어버린다. 남천 선사는 뒤늦게 찾아온 제자, 조주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묻는다. “만약 그 자리에 네가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조주의 답은 이러했다. 신던 짚신을 머리에 거꾸로 쓴 채 뒤돌아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남천 선사는 그 모습을 보고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미물의 생명도 중시하는 불교에서 선사가 목숨을 벤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논란이 있다. 이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남천 선사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황희경 교수는 “속세를 떠났음에도 본말이 전도된 승려들”의 자세를 남천 선사가 바로잡아주려 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조주의 행동을 두고 그는, 남천 선사가 바로 잡고자 했던 ‘뒤바뀐 뜻’을 조주가 알아차리고서 풍자적으로 신을 ‘거꾸로’ 신은 것이며, 그때가 마침 늦은 저녁이기도 하여 유머 있는 인사로 방을 나간 것이라고 해석한다.

때로는 어떤 신념, 어떤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취미생활이더라도 본질을 잊거나 치우치게 되면 집착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돌이 형태 없는 자유로움이라면, 그것은 그냥 돌이 아니다. 돌이 따르는 길이 자유라면, 사람이 따르는 길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가짐조차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본래의 의미는 흐려지게 된다. 또는 돌의 참다운 의미를 모르고 고가의 수석수집에 급급해할 수도 있다. 애초에 매달리는 마음, 진실의 그림자 같은 그 마음마저도 끊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길일까?

‘바위 위에 앉은 고양이’ ? 팔대산인(八大山人)

황희경 교수에 의하면, 앞서 말한 불교적 화두를 염두에 두면서 고양이와 돌 바위를 한 폭의 그림으로 그린 화가가 있다. 이 두 대상의 자유미를 살려 따뜻한 그림으로 승화시킨 중국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 본명은 주탑)이다. 그러면 팔대산인(八大山人, 1626~1705년)은 어떤 인물인가? 황희경 교수가 소개한 바로 그는 명나라 말기에 황족으로 태어났다. 19세 때,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그는 거짓으로 벙어리 행세를 하다가 23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출가한다. 무려 30년간 승려생활을 하고 세상으로 환속한 때가 그의 나이 쉰다섯.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청나라 관청의 경계는 계속되고, 그 때문에 한동안 미치광이 행세를 다시 하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정말로 정신발작을 일으킨 적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 팔대산인의 ‘바위 위에 앉은 고양이'(猫石圖)

팔대산인은 “중국 문인화의 최고봉”이라 불리지만, 특이하게도 여기 <묘석도>에는 “글자 하나가 없다”. 다만 그림에서처럼 두 마리의 고양이가 바위에 상하로 자리한다. 그런데 고양이의 등선이 놀랍게도 바위의 곡선과도 어긋나지 않고 있다. 즉, 서로 다른 존재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를 가리켜 황희경 교수는 “동물과 자연이 교류하는 하나의 세계”라고 말한다.

그림 안에는 이러한 조화로움뿐 아니라 화가의 초월적인 자유미도 엿보인다. 두 마리의 고양이 중에 아래 위치한 고양이는 바위 사이에 잠자듯 저자세로 앉아있고 다른 한 마리는 바위 위에 두드러진 자세로 앉아있다. 어찌 보면 위에 있는 고양이가 아래 있는 고양이를 예의 주시하는 모양새이지만, 아래에 있는 고양이는 눈을 감은 채이다. 황희경 교수는 “아래의 고양이가 괴로운 세상을 잊고자 하는 팔대산인의 심정”을 대변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묘석도>의 고양이는 화가의 ‘사의’(寫意, 대상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화가의 생각이나 심정을 표출하는 것)를 나타내지만, 또한 감상자의 관점에 따라 “언제, 어떤 일이나 상황에도 투영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그림의 “해석은 열려 있다”.

무관심한 정감으로 온기 있는 세상을 그리다

‘순수한 광기’와 천재성을 지닌 화가, 팔대산인. 그는 평생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산수, 소나무, 포도, 과일, 난 꽃, 연꽃 등을 비롯하여 물고기와 새우, 고양이, 병아리, 오리(가족), 공작, 학, 독수리 등 그가 그린 작품 수는 언급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림의 수만큼이나 표현된 느낌도 다양한데, 어떤 그림에서는 연꽃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이 느껴지고, 또 다른 그림에서는 연꽃을 “먹으로 그린 것인데도 마치 춤추는 색을 보는 듯하다”. 물론, 홀로 있는 까마귀에게서 인간적인 쓸쓸함과 고독감도 전해진다. 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의 설움이나 비통함도 느껴진다. 어떤 그림에서는 메추라기가 화내는 분노의 상황도 볼 수 있고, “관직의 권세를 빗대어 거절의 의미로 그린 공작 그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생동감 있고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에 대조적으로 날카로운 눈매를 한 물고기 그림도 있다.

특히 몸의 형태가 마름모꼴로 표현된 물고기 그림이 주목할만한데, 이 그림을 가리켜 황희경 교수는 “선이 간략하고 힘차며 여백까지 잘 활용한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그림은 자신감 있고 대담하지 않으면 그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팔대산인이 71세 때 그린, 연못 위에 흐드러지게 핀 연꽃 그림은 “그가 희로애락을 초탈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는 평정심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황희경 교수는 팔대산인의 예술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세간에 살아간다는 것, 한 살, 한 살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떠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고독함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을 팔대산인도 자연을 통해 그림으로 드러냈다. 그의 그림은 간략하면서도 여백이 많고 생략적이며, 조용한 듯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과 움직임이 있다. 이런 종합적인 아우라가 있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세월과 나라를 넘어서 비슷한 감동을 준다.”

팔대산인은 친숙한 동물과 자연을 접하면서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감을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중국의 반고흐라 불린다”고 한다. 광기에 시달려 자신의 귀를 자르기도 했던 인상파 화가, 반고흐. 그러나 그의 예술적 광기는 어둡게 색칠된 밤이 아니라 오히려 환하고 분명한 밤을 그리고 희미한 별빛이 아니라 오히려 밝게 생동하는 별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의 <해바라기>는 단순히 피고 지는 여러 송이의 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모습으로 여정을 따라 사는 인간적인 해바라기다. 또한 꽃병과 책상의 가는 경계선과 작품 전체에 흐르는 노란색 톤은 서로 다르지 않은 생명성을 포용한다. 고흐의 강렬한 색감이나 그가 깨달은 고요한 심정이 팔대산인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풍부한 정감”과 “깊이 있는 평화로움”에 닿아있는 것이다.

마라톤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세상을 온기 있게 바라본 그들, 황희경 교수의 관찰처럼 그들은 보이지 않는 ‘여백의 미’를 즐길 줄 알았다. 이는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바쁘게 무언가를 쫓아가듯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가 한 번쯤은 되새겨 보아야 할 ‘자유미’다.

?후기: 김은하(건국대 외래교수)

아우라의 몰락과 예술을 통한 정치 [청춘의 고전 시즌2]-?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

?? 일시: 2012. 5. 26.?(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아우라의 몰락과 예술을 통한 정치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강연: ?현남숙 교수(가톨릭대 초빙교수)

?

역사의 비극과 정치적 금기

세상에는 나라별, 종교별, 풍속별, 대륙별로 수많은 금기가 존재한다. 말과 행동의 복잡성에 따라 그리고 제약 정도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정치적 금기는 좀 더 다양하고 민감하다. 역사와 얽혀있는 까닭이다. 예컨대 우리는 아직 ‘왜놈’이나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으며, 정치적인 패러디와 풍자 코미디는 여전히 사정이 어렵다. ‘조선족’이란 말도 본래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으로 가야 했던 ‘한민족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적 갈등을 함께 내포한 말이 되었다.

유사한 방식으로 독일에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금기가 있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말을 공공장소에서 언급하는 일이다. 만약 외국인이 레스토랑이나 카페 같은 장소에서 이 단어를 무심코 꺼내게 된다면, 좋았던 분위기도 순식간 겸연쩍어질 수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빚어진 나치주의 극복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서둘러 바뀐 지 어느덧 67년째, 그사이 세대교체가 두 번 이루어졌지만, 전쟁의 여파는 아직 남아 있다. 도대체 핍박받던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길래 치유되는데 수세대가 걸리는 것일까? 행여 인종주의적 만행에 반대한 독일인은 그 어디에도 정말 없었던 것일까?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그때, 독일에는 두 인물이 있었다. 나치들에게 추격당하다 끝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유대인 철학자 발터 벤야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히틀러 정권에 저항해 시대적 양심과 용기를 지킨 독일 화가 존 하트필드이다. 이번 상상마당 청춘의 고전은 현남숙 교수(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가 찾아낸 이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 발터 벤야민

이날의 주제는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존 하트필드의 <괴링, 제3제국의 사형집행인>”. 현남숙 교수는 첫째, 벤야민의 생애와 복제 기술에 바탕을 둔 영화이야기를, 그리고 둘째로 하트필드가 사용한 몽타주 기법의 사진 예술에 관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벤야민은 1892년, 베를린의 부유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가 하면, 독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치고 박사학위도 취득한다. 그 후에 모스크바로 여행 떠나기도 하는데, 그때가 1926년이라고 한다. 1939년, 급기야 독일 전쟁이 발발되자 벤야민은 프랑스의 한 수용소에 감금되게 된다. 다행히도 여기에서 그는 석방의 기회를 잡아 1940년, 파리를 거쳐 스페인으로 길을 향한다. 나치의 감시를 피해서 백두산보다도 높다는 피레네, 1년 내내 눈이 남아있다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간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안타깝게도 스페인 국경까지였다. 그만 그의 입국이 거기에서 좌절되어버린다. 목숨을 걸고 이 고개, 저 고개 넘어 산맥도 헤쳐왔건만 법륜 스님의 말처럼, 사람이 죽어가는데 국경선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좌절의 순간, 벤야민은 다른 한쪽에서 나치가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현남숙 교수에 의하면, 벤야민은 어려서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실제 그의 삶 대부분에 ‘가난’이라는 꼬리표가 따랐다고 한다. “그는 궁핍한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소장하고 있던 클레의 작품, <새로운 천사>를 파는가 하면, 변변한 연구지원도 받지 못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높은 도시 물가마저도 부담되어 더 싼 곳으로 이사해야 했는데…….” 이즈음에 스쳐 지나간 현남숙 교수의 자문 같은 말이 인상적이다. 연구자는 “과연 제도권에 속해야 공부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의 삶을 짚어보면서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고분 없는 이야기는 가만히 새겨 볼 만하다. 왜냐하면, 벤야민은 한 인간이 더는 제도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라는 제도권에서 배척당했고 동시에 독일이라는 국가적 제도권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당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나치를 피하기 위한 목숨을 건 탈출도 좌절되었다. 이는 당시 모든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라가 없으면 민족도 없고 세계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의 예술화’에 맞선 ‘예술의 정치화’

1940년을 전후로 독일인은 유대인의 대학살과 핍박에 침묵으로 동조하였다.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다 뺏기고도 도망 다니는 도둑인 양 취급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벤야민은 민족을 넘어 ‘인간’을 바라봄으로써 자신만의 철학을 개척한다. 그가 마지막까지 홀로 고투한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현남숙 교수는 벤야민의 철학을 세 가지 구도로 규정한다. 즉 ‘정치-예술-기술’이 그것이다. 벤야민에게 정치는 나치주의라는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철학 속에서 그가 본 예술은 해방으로 가는 자유의 문이었다. 기술은 예술의 기술이다. 그 예로 현남숙 교수는 당시 ‘획기적으로 부상한’ 영화와 사진 예술을 든다.

그는 영화와 사진 매체를 가리켜 “기술복제라는 특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투쟁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감독은 영화적 장치효과와 카메라 및 편집기술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기술복제 덕분에 똑같은 영화를 여러 곳에서 그것도 원하는 때에 감상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술은 무엇인가를 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방능력에서 비롯되었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주술적 측면이 강한 종교적 예술작품들이다. 동물모양의 석상, 삼족오 벽화, 무당의 머리장식, 목각인형 등이 이에 속한다. 예술의 전환점은 종교로부터의 독립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모방적 기술의 발전은 그리스의 청동기술로, 판화, 인쇄기술을 거쳐 사진, 영화와 같은 복제기술로 변모해간다. 벤야민은 이 변화 과정이 결국 예술로 하여금 태곳적 아우라(분위기, 느낌)를 잃게 하고, 감상할 때의 직관 방식에도 변화를 준다고 보았다.

그러면 복제된 기술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예술은 그 이전의 것과 무엇이 다를까? 벤야민은 이전의 예술이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강조하는 ‘제의가치’를 갖는데 반해, 현대 예술은 ‘전시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박물관에 가서 전시된 수많은 진품을 만날 수 있다. 설사 전시장에 가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진이나 비디오를 통해서 얼마든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에 전시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 시대 사냥도와 같은 벽화는 과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평면적인 그림이었다. 하지만 1900년대 초 나오기 시작한 영화와 인쇄물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으면서 보는 것 이상의 어떤 촉각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비교적 관점에서 현남숙 교수는 기존의 예술과 영화예술을 이렇게 정리한다. “기존 예술은 감상자의 반응을 예측하면서 작품으로 관객을 끌어당기거나 관조 또는 침잠을 유도하였다. 반면 영화는 정신분산(Zerstreuung, distraction)을 유도하여 거꾸로 예술작품이 관객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함께 보는’ 영화는 정말 누가 웃으면 같이 웃게 되고 누가 울기라도 할라치면 뭔가 모르게 나도 같이 슬퍼진다. 그것은 곧 “집단적 자기조직화가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조건화되는 집단관람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영화에는 관객들이 함께 느끼는 분위기가 있고 ‘일치하는 비평과 감상’이 존재한다.

이로부터 영화는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된 인간 본연의 정서를 회복할 희망의 씨앗이 되어준다. 폭력으로, 그것도 집단으로 마비된 인간의 무관심을 부술 수 있는 예술, 인간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에 충격 줄 수 있는 희망이라면, 영화는 자유의 문을 향해 열려있다. 현남숙 교수의 말대로 벤야민은 나치의 ‘정치의 예술화’에 맞설 수 있는 ‘예술의 정치화’를 모색했고 영화가 그러한 희망을 실천할 수 있는 매체로 본 것이다.

나는 왜 예술 생산자가 되어야 했는가? ? 존 하트필드

벤야민이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 나치의 ‘정치의 예술화’에 반대하는 길을 찾았다면, 미술의 영역에서 그러한 실천을 한 사람은 존 하트필드이다. 사실 존 하트필드라는 이름은 미국식 이름이다. 원래 헬무트 메르츠벨트라는 독일이름이 있었지만, 그는 히틀러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이름도 바꿔가며 ‘행동하는 베를린 다다’로 활동한다. ‘다다’란 무엇인가? 현남숙 교수에 의하면 하트필드의 ‘다다’는 ‘독일의 반파시즘, 반전, 반예술, 반자본주의 체제’에 바탕을 둔 사진몽타주(photomontage)를 가리킨다. 아래 그림은 그 한 예로서 몇 장으로 오려낸 사진과 글자(텍스트), 드로잉 기법으로 섞어 만든 사진몽타주이다. 여기에는 하트필드의 거침없는 저항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쥬

<괴링: 제3제국의 사형집행인>, 1933

<괴링: 제3제국의 사형집행인>은 하트필드가 원래 신문, 잡지에 “기존 관념을 전도시키기” 위해 표지로 집어넣은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는 그런데 하나의 아픈 사연이 담겨있다. 도끼를 들고 있는 괴링은 독일 나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1933년, 나치가 독일에서 독재 권력을 확립해 가던 즈음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이 불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나치는 이 화재를 공산당원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이 화재사건을 빌미로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독일공산당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하트필드는 이 작품에서 사건의 진범을 정작 괴링으로 묘사한다. 하트필드는 이 사건을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본 것이다.

하트필드가 시도한 일련의 사진몽타주들은 나치를 비판하는 선전활동의 대담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베를린 다다’라는 전시회를 열어 카탈로그와 출판물까지 제작하는가 하면,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장소를 프라하로 옮기고 결국에는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활동을 전개해나간다.

 

▲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쥬

그렇다면 벤야민은 하트필드의 사진몽타주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현남숙 교수에 의하면, “벤야민은 사진몽타주야말로 예술과 기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예술적 기술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그는 사진몽타주의 방법이 “하나의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벤야민의 다다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다다이즘의 혁명적 관점은 예술을 그 진실성의 관점에서 점검해 보았다는 데에 있다. 다다이즘은 입장권, 실패꾸러미, 담배꽁초 등을 합쳐 정물화를 만들어낸다. 일상생활의 사소하기 짝이 없는 진실한 파편들이 회화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치 책갈피에 찍혀있는 살인자의 피묻은 지문이 텍스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책의 표지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은 존 하트필드의 작품만 봐도 그렇다.” ?벤야민, 『생산자로서의 작가

현남숙 교수에 따르면, 하트필드는 자신을 ‘예술 생산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예술은 생산적 도구가 아니다. 그런데 그는 사진의 조각들을 조립하면서까지 생산자의 길을 자처하였다. 또 전통적으로 유럽 철학은 인간의 본성을 ‘이성’으로 규정짓는 학문으로 통한다. 그런데 벤야민은 사진이나 영화를 미학의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감성적 학’이라는 미학의 본연에 충실한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벤야민과 하트필드의 금기적 행보는 멈춰진 역사를 움직이게 하고 지금도 우리의 역사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후기: 김은하 (건국대 외래교수)

꺾인 줄기, 패인 나무에서 생명을 말하다 [청춘의 고전 시즌2]-④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④

??? 일시: 2012. 5. 12. (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꺾인 줄기, 패인 나무에서 생명을 말하다

– <세한도>에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와 『주역』-

강연:? 조민환 교수 (춘천교대)

 

 

꺾인 줄기, 패인 나무에서 생명을 말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는 강원도 정선 두위봉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평 용문사에 1,100년 된 은행나무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두위봉 주목나무가 1400년 된 것으로 밝혀졌다. 천 년 이상 살아온 나무도 놀랍지만, 아프리카 바오밥 나무의 수령은 최고 5,000년가량 된다. 인류사로 어림잡아도 5,000년이라는 시간은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만년을 넘게 산 나무가 있다면 과연 믿어지는가?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그런 나무가 있다. 무려 12,000년 이상을 산 이 소나무의 이름은 ‘므두셀라’. 그는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모습으로 5,000년, 고목의 모습으로 아직도 7,000년째 살고 있다. 줄기가 죽은 듯 보이지만, 여전히 잎이 나고 해마다 1cm씩 성장한다.

우주에 호응하는 법을 깨친 것일까? 오래 산 나무들이 견뎌온 시간은 기적을 넘어선다.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지혜가 있는 것만 같다. 세월을 간직한 나무 대부분은 잎이 풍성하지도 않고 줄기가 곧지도 않다. 심지어 고목의 색은 검고 가지들은 꺾여 흉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무의 중심 줄기마저도 거센 비바람에 둥글게 패이고 버티다가 결국 꺾이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바위틈에 자라거나 땅 위에 누워 자라기도 한다. 심하게 아플 때면, 알 수 없는 혹주머니 하나 다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벌레의 등살에 차가운 시멘트로 덧칠되기 수차례, 세월이 길수록 나무색은 짙어지고 나이테는 조금씩 늘어난다. 이것이 긴 세월을 이겨낸 나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 노송 ⓒ조민환

5월 12일, 상상마당을 찾은 조민환 교수는 나무의 이 당연한 자연스러움에 주목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명의 원리를 찾아 옛 그림들을 주역으로 풀어낸다. 흥미롭게도 그가 강연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그림과 사진은 그래서 푸르고, 바른, 평이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줄기가 부러지거나 움푹 패여 보기만 해도 힘겨운 모습이었다.
김정희,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 23.7*108.2cm, 조선시대(19세기), 한국 개인 소장조민환 교수는 이러한 노송의 모습이 특히 추사의에 자세히 묘사되었다고 본다. 원래 사제간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유명하지만,에서의 노송은 자연의 강인한 정신도 담고 있다. 얼핏 보기에 힘없고 초라해 보이는 노송이 꺾이고 휘어져도 생명을 멈추지 않는다.

▲ 김정희 <세한도>,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 23.7*108.2cm

“가지가 잘리고 옆으로 휜 나무는 고난을 극복하며 위로 자라려 한다. 하지만 위로부터 몰려온 풍파로 말미암아 다시 엄청난 고통의 시기를 보낸다. 나무는 닥친 시련을 또 다시 극복해야만 하는 생명의 연속성을 보여준다”고 조민환 교수는 말한다.

처음에 노송 줄기는 옆에 있는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위로 곧게 뻗어 있었다. 그러나 너무 바른 탓인지 거센 풍파를 이겨낼 힘이 없어 꺾이고 만다. 이제 노송의 다른 줄기 하나가 굵게 자라지만, 다시 몰려온 풍파에 휘어지고 이도 힘에 부쳐 점점 가늘어진다. 시련이 계속될 때마다 아래로 향하는 줄기, 그럴 때마다 다시 솟구치는 새로운 줄기. 이렇게 굽이치길 몇 차례, 마침내 노송에게도 희망의 봄은 싹튼다. 그런데 이 봄은 사그라질 줄 모르는 봄이다. 가지 끝에 난 희미한 솔잎들은 겨울이 되어도 생명으로 거듭난다. 마치 추사의 인생길처럼 말이다.

고단함 속에 숨어있는 강인함, 이름없는 수많은 고목과의 가지가 간직한 기적의 힘이다. “가지는 미약하지만, 나무는 그 미약함을 새로운 생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조민환 교수의 말대로 바로 여기에서 그 기적의 힘이 발현되고 있다.

끝자락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힘

자연이 보여주는 강인함은 생명력의 회복 또는 극복에 있다. 꺾일듯 꺾일듯하지만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있어 고목 줄기는 생명 줄기로 재탄생한다. 조민환 교수는 이러한 만물의 이치가 주역의 ‘지뢰복괘’(地雷復卦)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여긴다.

‘지뢰복괘’는 땅에 우레 같은 힘이 솟구치는 형상이다. 맨 위에 음 세 개가 땅을 상징한다면, 맨 아래에 양 하나가 봄을 채비한다. 홀로 애쓰는 양의 움직임은 우레의 놀라운 힘을 상징한다. 양의 기운으로 비로소 음의 기운이 다하니 절기로 따지면, 동지(음력 11월, 양력 12월 22일)다. 고난과 어둠이 다해야 양이 회복(復)하므로 이 괘는 머지않아 언 땅에 봄이 올 형세다. 추위의 절정이 지난 후 봄의 기운이 싹트는 것처럼, 우레의 힘은 땅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뚫고 올라온다. 봄이 오기까지 하나의 ‘양’(_)이 고된 시련을 희망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지뢰복괘’는 미미한 작은 기적으로부터 큰 기적으로 변해가는 생명의 ‘길’(吉)한 이치다.

불사조 같은 자연의 강인함 ? 사군자

자연의 강인함은 주역 사상뿐 아니라 인간의 예술혼에도 담겨있다. 조민환 교수는 사군자를 고난과 역경을 품어낸 자연정신이 예술로 승화된 것으로 본다. 가장 쉬운 사군자의 예가 5만 원권 지폐 뒷면에 담긴 매화와 대나무이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 같지만, 사실 이 그림은 이정의와 어몽룡의가 겹쳐졌다.
월매도(왼쪽)와 풍죽도(오른쪽)대나무의 상징은 푸른 잎과 곧은줄기다. 여름날 대나무가 가장 시원하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한편 이른 봄부터 피어나는 매화는 봄의 전령사다. 설사 눈이 내리더라도 꽃을 피운다. 그래서 풍기는 향기가 더욱 그윽하고 청아하다.

대나무는 땡볕 더위에도 마르지 않고, 매화는 강추위에도 여지없이 자신의 생명력을 뿜어낸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그들은 어두운 시간을 인동초처럼 감내해야 했다.와는 바로 그런 시절의 그림이다. 바위 위에 단단히 서 있는 대나무, 그는 매서운 북서풍을 맞이함에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매화나무는 상한 밑동 아래로부터 가지 세우는 일을 밤에도 그치지 않는다. 둥근 달이 그의 고독한 일을 알고 찾아와 가지 끝을 향해 길을 내준다. 그들은 고난을 의미 있게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사군자의 굳건한 정신은 여러 그림 중에서도 특히 추사의에 절묘하게 녹아있다.

▲ 추사 김정희ⓒ간송미술관

난초는 환경에 좌우됨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은은한 향기와 청초한 자태를 간직한다. 선비들은 그런 난초의 고고하고 순수한 정신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런데 추사의은 다르다. 난초의 줄기들은 섬세하고 세련되게 그려지지 않았다. 필선이 너무 단순한 나머지 무성하게 자란 잡초 같다.

또한, 이 그림에서 점들은 여기저기 들쑥날쑥 찍혀있다. 겨울에 얼어붙은 줄기일까? 이 난도 향기를 풍길 수 있을까? 그림에서 꽃 모양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줄기 대부분이 진한 먹색으로 강하게 그려졌다. 묵색의 명암대비가 뚜렷하다. 흐릿한 색의 문양들은 마치 잡초 같은 난 줄기를 둥그렇게 감싸는듯하다. 난 줄기는 일반적으로 얇고 긴 선모양으로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추사의 것은 바늘처럼 삐쭉삐쭉, 억세고 거칠다. 그런가 하면 난 아래 글자들은 난초가 뿌리 내린 땅을 연상시킨다. 윗줄에 있는 글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보면, 조민환 교수의 말대로 흙표면이 고르지 않은 언덕모양이다.

그는 이런 추사의 미학을 ‘문자 예술’이 보여주는 ‘화제의 조형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조형미가 추사의 필법에 어우러져 있다고 말한다. “온산 눈 덮혀 가득하고 강물은 얼어서 난간 되었네. 손 잡힐 듯 부는 봄바람에 어찌 하늘 뜻 모르리오.” 조민환 교수가 말한 바로 이 화제에 ‘간’(干)자는 원래 아래 획이 짧은 것이지만, 위에 획보다 길게 표현되었다. 다시 말해 위, 아래가 뒤바뀐 것이다. 한겨울 돌덩이처럼 단단히 얼은 얼음이 온 세상을 길쭉하게 누은 듯 뒤덮은 형태라고 그는 해석한다. 추위가 극에 달해 쇠하려는 순간, 사람의 손끝(人)에서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고 싹이 솟아날 태세다(春). 즉, 양기가 위로 치켜 올라가는 모양새다. 바람(風) 속에서도 벌레들은 벌써 봄을 감지하고 땅 위로 나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봄소식에 이내 어깨춤이 절로 나 (乃), 마음이 미소 짓는다 (心).

추사의 문체 하나하나에는 그림의 까닭이 담겨있다. 그에게서는 글과 그림의 경계가 무너져 화제의 형상미가 생동한다. 보이지 않는 힘은 난의 굵은 힘이다. 어두운 땅속에 묻혀있는 ‘양’(_)의 기운이 아지랑이 되어 피어난 천심(天心)이다. 그래서 ‘천심난도’다. 난이 꽃 필 때까지, 고목에서 새싹이 날 때까지 어려운 시간 동안 자연에는 고난을 ‘아는’ 지혜가 있다. 이것이 곧 조민환 교수가 이번 강연을 통해서 전하고자 한 ‘지뢰복괘’의 숨은 뜻은 아닐까.

후기: 김은하 (건국대 외래교수)

자본론을 읽자[자본론 강독]-①

자본론을 읽자[자본론 강독]-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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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 : 이재유, 김선이, 김성심, 나태영, 박종호, 신재길, 신준하, 윤지미, 최혜진

정리 : 신재길(2012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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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도 교육강좌 후속 세미나로 [자본]을 읽고 있습니다. 세미나 팀에서 매번 정리하여 웹진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자본론’은 유럽사회의 변화에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친 책으로 성경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소련이 몰락하자 사람들은 자본론이 틀렸다고 생각했으며 자본론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맑스의 자본주의 이론이 틀렸다는 생각이 거의 상식화 되었을 때, 1997년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가 몰아쳤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러한 세계적 경제위기는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인식이 분명해지자 자본론은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나 자신의 경우에도 2008년 이후에 자본론을 읽어 보고자 했으나, 혼자는 어려워 하지 못하다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자본론 읽기 모임이 만들어져 참여하게 되었고 이 지면을 빌려 자본론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대체로 개념 정리를 기본으로 하고 자본론 읽기 모임의 후기로 간추려보고자 하나, 철학과 경제를 아울러 일반 경제관련 책들에 비해 어려운 자본론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의욕을 앞선다. 맑스는 자본론이 노동자들에게 많이 읽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무기가 되기를 염원했지만, 나 자신만이라도 새롭게 변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정리하고자 한다.

 

제 1 편 상품과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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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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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실체, 가치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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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론의 연구 대상과 방법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집적’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부터 시작한다.”(자본 1권,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p87)

 

이 문장은 자본론 본문의 첫 시작 문장이며,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다.

그러나 바로 이 첫 문장부터 어려움에 봉착한다. 먼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낯선 용어가 앞길을 막아선다. 아마도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구조와 원리를 밝히는 것을 자본론의 최종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 또한 맑스의 이야기를 따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조와 원리에 차차 접근해보도록 하자.

다음으로 경제학의 연구대상인 ‘부’에 대해서 보자. 경제학은 예술도 아니고 정치도 아닌 ‘부’가 그 연구대상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보통 ‘부’하면 돈을 생각하지만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는 ‘상품’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돈을 ‘부’로 보는 우리의 생각이나 상품을 ‘부’로 보는 맑스의 생각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돈이란 상품의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상품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돈은 우리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상품을 살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돈에 집착한다. 해고되거나 취직할 수 없으면 생존자체가 위협받게 되어 우리는 돈을 얻기 위해 우리자신도 상품으로 판다. 모든 것은 상품이 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상품은 우리의 삶의 현실을 대표한다. 맑스는 이런 상품이 무엇인가 묻고 그 답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맑스는 ‘상품’에서 출발하여 어느 곳에 도달할 것인가?

 

하비는 자본론에서 ‘나타나다’에 주목한다. 영어의 appear, 독일어의 erscheinen 는 그 명사형들이 철학용어로 ‘현상’을 뜻한다. 현상이란 “감각, 직관,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물, 과정 등의 외적인 성질의 총체”라 한다(철학대사전, 동녘). 현상은 본질적인 징표뿐만 아니라 비본질적인 징표도 나타낸다고 한다. 학문은 바로 사물의 현상에서 출발해서 사물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라는 주어진 현실에서 상품이라는 현상을 포착한다. 상품을 현상으로 본다는 것은 상품의 외적인 성질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자본주의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으로서 이 상품이라는 현상을 통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길을 갈 것인가? 맑스는 상품의 ‘분석’으로 간다고 한다. 분석이란 “전체를 그것의 부분들로, 한 체계를 그것의 요소들로, 사유에 의해서나 또는 실제로 분해, 해체, 해부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 인식 절차”이다(철학소사전, 동녘). 분석이란 말 그대로 나눈다는 것이다. 나눈다는 것은 단순화시킨다는 의미다. 어떤 문제가 복잡해서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충고 한다. 문제를 단순화시키라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단순화가 ‘분석’의 핵심이다. 문제가 복잡하면 그 문제를 여러 단계나 작은 문제들로 나누어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을 끄집어내어 풀어가면 명확하게 문제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해결의 대안도 보인다. 그래서 맑스는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맑스는 단순히 ‘분석’의 도구만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맑스의 ‘분석’은 ‘추상’을 위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맑스는 상품을 ‘분석’하여 상품의 본질을 추상화 한다. 자본론 전체를 아울러 맑스는 반복적으로 대상을 ‘분석’하고 ‘추상’하여 다시 그 추상화된 대상물을 ‘분석’한다. 마치 한 고비 넘어가면 새로운 지형(=추상)이 나타나고 그 곳의 길(=분석)을 찾아 올라가면 또 다른 지형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공리체계(이진경의 ‘자본을 넘어 자본’ 참조)와는 완전히 다르다. 공리란 어떤 이론체계의 기본명제 내지 근본명제로 이로부터 새로운 정리들이 연역된다. 따라서 공리는 보통 증명 없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제로 출발하고 무모순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체계이다. 즉 공리체계는 모든 추론이 전적으로 논리적 연역의 결과일 것이 요구된다. 이는 현실의 경험이나 분석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맑스는 상품이라는 현실을 ‘분석’하여 노동가치를 도출해 낼 때, 맑스의 ‘분석’은 무모순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웹진이 페이지를 옮겨 이사를 하는 도중입니다〈ⓔ시대와 철학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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