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 다시 동물을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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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구보씨는 11월을 좋아한다. 늦가을에 마음을 주는 것이지만, 달로 치자면 11월이다. 왜냐구? 그냥이다. 따지자면 이유야 많겠지만, 그런 건 아마 사후(事後)에 가져다붙이는 핑계들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뭔가 한 가지 들어야겠다면, 찰기와 집착이 덜어진 이즈음의 투명한 햇살이 11이라는 숫자를 닮아서라고 해 두자. 그것이 기껏 ‘빼빼로 데이’를 연상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11은 평행의 숫자만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클리나멘(clinamen)의 기호다. 물기 마른 나뭇가지에 욕심 없이 내려앉는 햇살들처럼 비스듬히 만나고 합쳐지는 편의(偏倚)의 움직임이 11월에는 배어 있다. 왜냐구? 그것도 그냥이다. 그래도 뭔가 이유가 필요하다면 새로움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떨구는 자연의 눈부심 때문이라고 해 두자. 올해는 더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것이 혹 연말의 선거를 염두에 둔 이미지는 아니냐구? 글쎄, 그렇게 보고 싶다면야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어떻든 11월은 대지(大地)와 몸을 섞는 낙엽의 계절이다.
그러나 이런 너스레로 구보씨가 늦가을의 정취를 상찬(賞讚)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엄혹한 겨울을 앞둔 그 전조(前兆)의 안타까움이 어떻게 기꺼움과 그토록 쉽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눈앞에 닥칠 어려움을 하찮게 여길 만큼 여유로운 처지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추위와 굶주림은 이제 옛날 일이 되었는가? 구보, 네게는 바야흐로 장기 불황으로 빠져드는 이 세상의 찬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우리의 얄팍한 구보씨는 누구 못지않게 그런 세태에 민감하다. 그나마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이 철학이어서 그 경박함이 약간 감해지고 있음을 언제나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 터다. 그럼에도 구보씨는 철학의 유행사조들을 이런 세태에 견주어 평가함으로써 자신의 얄팍함을 정당화하려 할 정도로 뻔뻔하기조차 하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구? 역시 경박한 얘기다. 불황기에는 불황기의 철학이 뜬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철학에 불황의 철학이 어디 있고 호황의 철학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은 사유가 묵직한 사람들의 견지다. 대부분의 훌륭한 철학자가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철학도 부침(浮沈)을 겪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불경기를 바라고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나, 불가불 불황을 겪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줏대 있는 인간이더라도 자신이 놓인 조건의 제약 속에서만, 또 그 제약에 따라 사고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사고의 결과가 세간에 영향을 미치는 강도와 양상은 더욱 더 그 환경적 조건과 관련이 깊다.
오늘의 철학적 환경은 흡사 11월과도 같지 않은가, 라고 구보씨는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에겐 11월이 아름답게 비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구보씨는 가벼울지언정 긍정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모든 긍정은 세상으로부터 유혹을 느끼는 데서 시작되며, 아름다움이란 이런 유혹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그래서 긍정적 삶은 이제 시작하는 현재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비롯하는 것이므로.
하지만 11월의 황량함이 아름답다는 건 난센스거나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 아닐까? 게다가 만일 시작점이 진정 아름답다면, 거기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도리어 어려운 일이 되지 않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름다움에 대한 해묵은 오해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멈춰 있어야 하는 어떤 지점, 우리가 움켜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어떤 지점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행복이라는 말이 흔히 그러하듯 우리를 기만하는 표면적 이미지일 따름이다. 아름다움이 유혹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궁극의 도달점이거나 목표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움직임을 부추기고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어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의 느낌이 굳이 있어야 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조금 천박하게 말해, 아름다움에는 늘 대가가 있는 법이다. ‘팜므 파탈’은 아름다움의 중요한 면모를 드러내 준다. 애써 묵직하게 말해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삶의 아름다움은 늘 위험을, 때로 치명적인 운명을,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그림자를 배경으로 삼는다. 우리를 분리 이전과 이후의 심연으로부터 끌어내는 감각이 아름다움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은 인간만의 감각이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고개를 내미는 모든 생명체는 그런 힘을 발휘하기 위해 아름다움을 필요로 한다. 하얗고 차가운 겨울이 절박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며, 스산하고 매정한 늦가을이 처연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까닭이다.
아무튼 11월의 철학, 불황의 철학은 한편으로 동물의 철학이다, 라고 구보씨는 지레 생각해 본다. 왜냐구? 글쎄, 이것도 그냥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 붙일 수 있겠지만, 우선은 구보씨의 동물적 감각이 그렇게 지시하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사실 따지고 보면, 구보씨가 이전에 입에 올렸던 벌거벗음이나 이제 내세우려는 동물성이나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문명의 치장 한 꺼풀 아래를 겨냥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다만, 요즘 같은 늦가을과 불황의 정취 속에서라면,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벌거벗음을 재삼 거론하여 한기(寒氣)를 불러들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지난 번에 잠깐 언급했던 아감벤이건 또 말년에 몇 년간 동물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던 데리다건 동물성을 긍정적으로 거론하는 현대 철학자들이 대개 걸고넘어지는 상대는 역시 하이데거다. 하이데거가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존재뿐이라고 하면서 동물과 인간을 확연히 구분했던 탓이다. 그에 따르면, 동물이 살아가는 세계는 주어진 환경에 얽매인 빈한한 세계다. 반면에, 인간은 스스로 세계를 형성하는 존재고,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세계 속에 존재한다. 대지 위의 우뚝 세워진 세계, 그것은 인간만의 세계다.
이런 생각은 보기에 따라 몹시 자의적이고 폭력적이다. 도대체 하이데거가 동물의 처지를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하이데거 철학의 주안점이 고정된 규정에 매인 이른바 존재자위주의 사유를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는 인간의 사유를 중심에 놓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긴, 인간이 인간의 사유를 벗어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그렇더라도 하이데거의 문제는 인간의 삶과 사유의 우월함을 적극적으로 전제하고 인정했다는 데 있다.
최근 우리말로도 번역된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을 쓴 마크 롤랜드는 인간의 세계가 다른 동물의 세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의 지능이 인간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단지 인간과 동물은 다른 지능을, 다른 용도로 발달된 지능을 지녔을 뿐이다. 이를테면 늑대는 늑대가 살아가는 방식에 적합한 지능을, 원숭이는 원숭이가 살아가는 방식에 적합한 지능을 지닌 것이고, 그 점은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집단의 다른 구성원의 마음을 읽고 기만할 줄 알지만, 늑대가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에는 그러한 기능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도 이런 차이를 쉽게 위계화하여 다른 동물을 낮추어 보는 것은, 인간이 거둔 짧은 기간의 성공에 도취해서, 각기 다른 방식의 삶이 지닌 자연사적 무게를 무시하는 것이다.
마크 롤랜드는 전문적으로는 몸과 마음의 관계를 주제적으로 다루는 구보씨 또래의 철학자지만, <동물의 역습> , <SF철학>과 같은 보다 대중적인 책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늑대와 함께 살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철학자와 늑대>라는 특이한 책을 썼다. 그렇다고 그가 야생 상태의 늑대와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개를 키우듯 늑대를 키웠고 그 늑대와 같이 생활했다. 늑대와 같이 달리고 장난치고 여행했으며, 심지어 강의실에도 늑대를 데리고 다녔다. 가족처럼,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가까이 지냈던 셈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그가 제시하고 싶어 한 것은, 늑대가 인간 못지않게 매력적이고 멋진 존재이며, 사랑할 만한, 심지어 존경할 만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브레닌이라는 이름의 늑대를 키우고 사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롤랜드에 따르면, 그것은 늑대가 “인간의 영혼 속에 오래도록 잊혀져 왔던 깊은 구덩이를 파내기 때문”이다. 벤야민의 표현을 빌면, “구원의 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얘, 구보야, 나 많이 참았거든. 하지만 어쩌지? 이젠 네 횡설수설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어. 11월이 어쩌구 낙엽이 어쩌구 하다가, 불황이니, 동물이니, 늑대니 되는 대로 주절대더니, 이젠 뭐, ‘구원의 밤’이라구? 네 스스로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ㅎㅎ, Y야, 물론이지. 말이 되고말고… 어어, 그렇게 화내지 말구 조금만 더 들어 봐. 내가 금방 설명해 줄께. 늦가을이라는 게 뭐야? 시련을 앞둔 계절 아냐? 그걸 요즘의 불황이랑 연결 짓는 게 뭐가 이상해?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랑 연결할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동물성에 관해 생각하는 건, 이렇게 시련에 크게 봉착한 문명이라면 어차피 밟게 되는 반성의 수순이라구. 그 동안 버텨온 자만심에 대해 반성할 때, 그게 천상을 향한 기도로만 뻗치지 않는다면, 또 갈 곳이 어디겠냐? 그나마 이렇게 동물성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건 이제껏 쌓아둔 문명의 여유가 뒷받침되기 때문이야. 정말 급하고 절박하면 구덩이를 깊게 파볼 여유조차 없을 거거든. 늦가을 즈음해서, 매섭고 추운 눈보라가 몰아치기 전에, 우리의 됨됨이를, 우리의 소이연(所以然)을 깊이 있게 되씹어 보는 거야. 그게 말하자면 ‘영혼의 구덩이’인 셈이지. 영혼이란 우리가 동물과 함께 가지는 것이거든. 영혼을 뜻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와 애니멀(animal)의 어원적 근친성을 생각해 봐. 그리고 ‘구원의 밤’이란, 우리가 이렇게 근원적으로 파고들어갈 때 닿게 되는 깊이와, 그것에 따르는 간곡한 바람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어. 사실 새로운 날은 밤에서 비롯하는 거잖아.”
“헐, 그렇게 갖다 붙이면 연결 안 되는 게 어딨니? 그 정도면 박근혜와 잔 다르크도 이어 붙일 수 있겠다.”
“박근혜와 잔 다르크? 어, 그건 새로운 얘기가 아닌데? 예전에 한나라당 주성영이 ‘박근혜는 잔다르크다’ 그런 적이 있어.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말이지.”
“내 말이 그 말이야. 너, 그 주성영이 성매매 의혹으로 지난 번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했다가 얼마 전에 새누리당 유세지원단장이 된 거 알아?”
“어, 그래? 정말 웃기는군. 사람이 없는 건가, 아부가 힘이 센 건가… 그런데, 가만, 이상하네… 지금 Y 네 말은, 내가 주성영 같은 인간하구 비슷하다는 거야?”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하지만 알게 뭐야, 그 깊은 ‘동물성’에서 보면 상통하는 면이 있을지도…풋, 구보야, 그렇다고 표정까지 그렇게 야수 흉내를 낼 필요는 없잖니?”
스마트하게 혁명을?; 6월 항쟁과 촛불에 대한 철학적 성찰[한철연 교육강좌]-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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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하게 혁명을?; 6월 항쟁과 촛불에 대한 철학적 성찰
강사 : 박 영 균(건국대 HK교수)
후기 :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일반적으로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수립된 체제를 ‘87년 체제’로, 1997년 IMF 위기 이후에 형성된 사회 구성의 결과물들을 ‘97년 체제’로 일컫는다. 87년 체제의 특징은 군부 독재의 소멸과 대통령 직선제 등의 형식적 민주화의 구현이다. 97년 체제의 특징은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도입이었다.
1970년대 한국 경제는 정부의 지도로 전개되었다. 대외 자본을 도입해 국내 경제를 키우는 이른바 ‘종속 파시즘 체제 전략’은 중남미나 한국이나 구조적으로 동일했다. 그러나 한국이 성공한 이유는 대외 자본을 국내 생산 체제의 건립으로 전용한 데에 있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자립적 자본 축적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가 노동 세력 및 자본 세력 모두를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파쇼 체제의 면모는 여전했다. 특히 한국 정부는 기업의 돈줄을 쥐면서 자본을 통제하는 관치 금융 체제 전략을 취함으로써 민간에 대한 우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 그렇지만 정부의 지원을 통해 자본 세력은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했으며, 대단위 사업장의 등장으로 인해 거대 산업 노동자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둘은 훗날 정부에 대항하는 두 가지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력에 저항하던 중심적 세력은 대학 운동권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1980년대에 도입된 소위 과학적 맑스주의(칼 카우츠키류의 속류적인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로 무장하면서도 동시에 지사적 순교자 의식을 지니면서 저항 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생은 예비 지식인이고 이른바 지식인은 노동자의 생산물을 거저먹는 이들이므로 그들의 삶을 위해 모든 생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던 것이다. 이렇게 저항하던 운동의 결실을 보게 된 시기가 바로 1987년 6월이었다. 당시 대학 운동 세력은 일정한 조직 역량을 바탕으로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87년 항쟁은 조직적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벤야민이 말하듯이 마치 ‘메시아처럼 재림’한 폭발적 사건이었다. 항쟁의 역량이 갑작스레 증가한 이유는 사무직 노동자들로 대표되는 일반 시민의 참여에 있었다. 일반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서울시 한 복판을 점령하자 파쇼체제는 6?29선언으로 후퇴했다. 이후 시위 군중의 수가 감소하면서 변혁의 동력은 갑작스레 사그라들었다. 항쟁 국면은 7, 8월의 노동자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어용화된 한국노총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조직된 노동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거대 사업장을 필두로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형국을 취했다. 노동자 총파업의 결실로 전노협이 건설되었다.
87년 항쟁 이후 변혁의 동력이 꺼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6월 항쟁 이후 형성된 형식적 민주 체제로 인해 사람들은 제도 정치권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또한 민주화 이후 형성된 자유로운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 및 향락의 욕망을 발산하도록 돋구었다.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자본은 소비자의 이러한 욕구를 시장에 연결시켰다. 사회주의 패망 이후 이 물결은 전국민의 의식을 휩쓸면서 변혁의 열망을 잠재웠다. 이 속에서 진보 세력 구성원 중 많은 이들이 이탈했으며 제도권 정치 혹은 신사회운동으로 전환했다.
1997년 이후 사회의 대결 구도는 민주 대 독재의 대결이 아니라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구획된다. 이러한 구도에서 민주주의의 강화와 더불어 평등적 가치의 수립이 강하게 도입되었다. 6월 항쟁 이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민주적 사고가 자리잡았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존감과 자부심을 형성시킬 수 있었다. 각자가 민주적 시민으로서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면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촛불은 시민들의 이러한 의식 속에서 발현된 현상이다. 촛불은 단지 광우병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굴욕적 태도가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상처를 문화적으로 치유했다. 최류탄과 몽둥이를 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맞서던 힘의 공간이 공연 및 토론의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했다. 조직적 투쟁과 점거를 가능케 했던 87년의 지도부는 촛불 시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는 각자의 욕망을 해방시키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자본 등에 의해 조성된 수동적 욕망이 아니라 자신이 발현시킨 능동적 욕망이었다.
변혁의 가능성을 여전히 모색하던 이들은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맞춰서 새로운 논의로 시선을 돌렸다. 최근 진보적 지식인들이 들뢰즈식 맑스주의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전에는 지배 세력에 의해 조성된 이데올로기를 분쇄하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소비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된 이후에는 진보적 지식인들도 욕망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욕망의 해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외적으로 주어지는 욕망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능동적으로 우러나오는 욕망에 주목했다. 이것은 향락적 말초적 단기적 욕망과는 다른 자기 존재를 순수하게 드러내는 존재론적 욕망이다. 존재론적 욕망은 소비 자본의 욕망과 대결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자기 존재의 진정한 욕망이다. 소비자본주의는 다양한 개별적 욕망을 화폐 축적의 욕망으로 환원시킨다. 이 환원된 욕망에 저항하면서 자기 존재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실현시키면서 해방감을 만끽하게 하는 욕망에 이를 때 우리는 진정한 해방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현재적 의미는 상당히 값지다.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적 노력의 부담을 지나치게 높게 부과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기 욕망을 형성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단순히 자기 개인의 자체적 존재의 욕망을 파편적으로 펼치는 형태는 피상적 인간 관계의 형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진정한 자기 욕망을 찾기 위한 시도가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것을 형성하는 폐쇄적 형태로 전개되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욕망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획 및 조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욕망의 대의적(representative) 구현을 제안해 본다. 각자의 욕망을 네트워크화하여 전체적 비전을 창출해서 욕망의 길을 일정하게 선도하는 인물, 제도, 조직을 실현시키는 과정도 존재론적 욕망을 구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새로이 요구되는 해방의 가능성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후기
87-97-08로 이어지는 우리의 최근 역사를 정치 사회적으로 뿐 아니라 철학적 배경으로 곱씹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변화된 우리의 생활과 생각을 어느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들은 비슷한 사람들이 갖는 ‘다른 방식’-구조(국가)- 자율체(다양성)에 관심이 많은데,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좋았고, 과거지사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80년대 후반 90년대를 회상케 해주는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흩어진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 중심축을 꿰는 곶감의 중심 막대기(?) 역할을 한 것같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각는 자본을 더 대우해 주는 국가라 생각합니다. 국가를 잘 이용해서 집단의 희망을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민을 위해 일하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존재론적 욕망이 생명의 힘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 믿고 있는(싶은)데, 선생님은 그것이 더 큰 고통, 지고의 삶의 경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견을 가지신다. 욕망의 대표적 실현, 재현을 위해 기획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아직은 공감하기 어렵다!!!
사이버 세계의 이상적 구축은 가능할까요? 민중이 현실에서 반응하는 양식이 비대면의 세계로 간다면 장점의 측면 뿐 아니라 단점의 측면도 하이퍼리얼화 시키지 않을지에 대한 의문을 안고 갑니다.
6?10, 노동법 총파엽, 촛불 집회가 가지는 관계성과 성격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에서의 정당의 역사성과 정당의 성격 분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실체가 모호한 춧불집회에 대해서 향후 어떤 형식의 혁명을 규정 또는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사회가 변화하면 또 다른 변혁을 위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유로 존 떠나라!” 칸트의 대답은…[철학자의 서재]
/1 Comment/in old & goodys, 철학자의 서재 /by cabeza[철학자의 서재] 임마누엘 칸트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박지용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유럽 재정 위기 속 민족과 민중
“그리스는 유로 존을 떠나라!” 유럽 선진국의 상당수 사람들은 아마도 그렇게 외치고 싶겠지만 당당하게 소리 내어 외치지는 않는다. 축적된 세계의 부를 최전선에서 누려오면서, 스스로 계몽된 시민이라 생각하는 자의식과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내심 그리스가 그냥 알아서 유로 존에서 나가줬으면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달 독일에서 계속 미루어 왔던 유럽안정화기금(ESM)이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합헌이라는 결정이 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정 지원에 대한 독일 국내 정치의 논의가 얼마나 뜨거운지는 충분히 알려져 있다. 재정 지원을 둘러싸고 진행된 독일의 국내 정치 상황은 아무래도 기독교민주당(CDU)과 자유당(FDP)을 위시한 보수 정당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다.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SPD)은 슈뢰더 집권 이후 줄곧 진보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실패해왔다. 그런 와중에 자유당(FDP)은 시장과 정치가 분리되어야 하며, 금융 시장에 대한 정치적인 개입이 재정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는 자유주의적 원칙을 피력해왔다. 재정 위기를 둘러싸고 이렇게 정치적인 입장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다시 유로화 통합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복고주의 입장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독일과 프랑스에서 절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정치적으로는 극우주의가 득세할 수 있는 형세인 것이다. 그리스에서 극우 정당인 황금새벽당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작금의 국가 부도 위기의 책임이 선진 유럽 국가들에 있다는 책임 전가 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유럽 재정 위기는 단지 경제 문제를 넘어서 정치의 위기를 낳을 소지가 산재해 있다.
정치와 경제가 물고 물리는 상황에서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은 “유로화가 망하면 유럽이 망한다”고 밝힘으로써 유로 존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유로화를 살리는 것이 유럽을 살리는 길인가? 유럽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유럽의 미래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화폐 통합과 유럽의 공동체
최근 독일 ZDF 대담 프로그램에서 사회민주당(SPD)의 정신적 지주이자 독일의 진정한 정치인이라 추앙받는 헬무트 슈미트는 유럽 위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간명하게 밝혔다. 방송 내내 그는 그에게만 허용된 담배를 물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이 유로의 마지막까지 남아야 할 이유는 역사적인 책임에 기인한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이 점에서 독일이 떠안아야 할 특별한 역사적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슈미트가 언급한 이 대담한 발언은 왜 독일인들이 그에게 큰 존경심을 보이는가를 알게 한다. 게다가 방청객으로 참석한 많은 청년들에게 “너희 할아버지의 일에 너희들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교훈조로 훈계했고, 청년들도 현자의 지혜를 대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인들은 그들의 잘못된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어 현명해진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슈미트는 궁극적으로 “유럽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비전을 구체적인 정치적인 의제로 삼는 것이 보다 높은 유럽의 진보”라 말했지만,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정치적 과제가 되기 어렵다. 지금 상황에서는 눈앞에 닥친 발등의 불을 끌 응급처치를 찾는 것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 왜 유럽은 화폐 통합을 시도했는가? 슈미트도 지적하고 있는 바, 유럽의 선택은 규모의 경제학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달러화의 위력과 급성장 일변도의 위안화, 이에 대한 대항마로서 유럽은 뭉쳐서 유로화로 통합함으로써 몸집을 키우려는 결정을 내렸다. 이념적으로 유럽 통합은 과거보다 진일보한 지평의 자유를 선택했지만, 실상은 그저 경제 통합을 통한 몸집 부풀리기가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만약 유럽의 통합이 그저 화폐 통합만을 위한 것이고 또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면, 이 형세는 그야말로 기괴한 모양이 된다. 화폐는 단일한 경제 체제의 몸을 관통하는 혈액과 같은 것인데, 작금의 유럽 통합은 한 몸에 정치체의 머리가 여럿 달린 메두사가 된 것이다. 머리가 여럿이니 몇 개가 잘린다 해도 생물학적인 생명을 유지시키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잘린 머리는 자신을 자른 머리를 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이 머리들을 안정시킬 기제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의 위기는 곧 정치의 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은 유럽 스스로의 자율적인 자기 결정, 다시 말해 정치적인 선택이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럽은 경제 통합만을 주요 의제로 고려한 채 통합을 정치적으로 선택했을 뿐 경제 통합이 파생시킬 정치적인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급한 불이 어떻게 꺼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향후 유럽이 나가야 할 미래에 대한 정치적인 고민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 상황에서 유럽이 앞으로 어떤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할 때, 칸트의 정치사상은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유럽의 미래와 칸트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지구 반대편 변방의 한 철학자가 주제넘게 세계의 중심 유럽에 대해, 그것도 유럽의 미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 사건에 대해 견해를 가진 사람은 세계 시민이다. 그 사건이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도 나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자유를 칸트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라 했다.
칸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공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용기가 발휘되는 데에는 분노의 감정이 결부된다. 나의 일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부당한 사정에 분노하는 것이 바로 학자(배운 사람)로서 간주되는 세계 시민의 용기인 것이다.
칸트는 그 이전에는 아무도 분노하지 않았던 타인의 부당함에 대해 분노했다.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감내해야 했던 부당함에 대해, 칸트가 보여준 분노는 배운 사람에게 요구된 용기라는 미덕이다. 칸트는 당시 가까운 나라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에 대해서나 대서양 건너 미국 독립에 대해 세계 시민적 견지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던 것이다.
1795년 출간된 칸트의 저작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오진석 옮김, 도서출판b 펴냄)는 정치적 주제를 담고 있고 있으며, 평화에 대한 철학자의 관점이 개진되어 있다. 우선, 칸트의 정치철학은 근대 자연법 사상과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된다. 홉스, 로크, 루소로 이어지는 계약론적인 전통은 칸트 정치철학의 핵심을 이룬다. 이 저작에서 드러나는 칸트만의 차별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칸트는 홉스가 제안한 ‘자연 상태로부터 계약을 통한 사회 상태’라는 발상을 수용하지만, 홉스와 달리 평화가 법적으로 강제된 안정을 통해 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칸트에 있어서 정치란 ‘실행하는 법학’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러한 칸트의 이해 방식에 많은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가령 시민 사회 혹은 경제적 영역(자본주의와 시장)을 정치적인 고려 대상으로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궁극적으로 정치의 의미와 역할을 도덕 철학의 협소한 영역으로 제한했다는 비판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철학은 정치의 철학적인 원리를 보편적으로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 홉스가 제안한 평화 상태는 국가 내 내전을 강제하는 모델인데 반해, 칸트는 궁극적으로 더 넓은 차원에서 다시 말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국가들 간의 평화 상태 즉 국제법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저작이 나오게 된 배경을 보더라도, 프로이센이 프랑스 혁명 정부를 인정하고 평화 조약을 맺은 바젤 조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가들 간의 전쟁은 전쟁 시기 중에서라도 잠정적으로 전쟁 이후에 체결될 평화를 염두에 두고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평화는 실제적인 경험으로부터는 입증할 수 없는 이념적인 것이다. 곧 인류의 역사는 끝없는 흥망성쇠, 전쟁과 평화가 교차된 것이므로 전쟁이 전혀 없는 완전한 평화라는 것은 이념적인 수준에서 요청되는 것이다. 칸트가 그려본 영원한 평화를 위한 최소 조건은 모든 나라들이 공화적인 법적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 외에도,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환대’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칸트는 세계 시민 사회의 철학자로 격상되고 있다. 국가들 상호 간에 전쟁이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평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시민권은 서로 간에 전쟁이 없다는 소극적인 원칙을 넘어,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두렵고 이질적인 이방인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제를 담는 적극적인 원칙이다.
역으로는 뿌리 깊은 공동체에 접근할 때, 스스로 적으로 간주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칸트가 말한 세계 시민으로서의 권리인 것이다. 이 권리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위해 모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이것 없이는 평화도 달성될 수 없다. 이 권리는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손님으로 대우받을 것을 요구할 정도로 적극적이지는 않으며 그저 상호 간의 방문을 허용하는 정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상업적인 교류를 위해 바다 건너 희소 자원을 교류하려고 방문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에 방문하려 할 것이다. 육상 생물인 인간이 지구 위에 발붙일 땅을 가질 때 살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경제적 기반이 붕괴 직전인 그리스에서 많은 사람들은 삶을 찾아 자신이 발 딛을 땅을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더 안정된 나라에서 찾을 것이다.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네오 나치는 평화의 적이며, 인류와 인간성의 적이다. 그들을 기꺼이 환영할 마음과 여력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을 공동체의 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독일의 지성이자 존경받는 정치인 헬무트는 과거의 독일의 교훈을 통해서 미래의 독일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말하고 있는 바와 일치한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서 유럽의 미래, 평화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구보씨, 동물을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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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굳이 개냐 고양이냐를 따지자면 구보씨는 개 쪽이기보다는 고양이 쪽이다. 생긴 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은 아파트처럼 밀폐된 공간에서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늘었는데, 개는 하루만 혼자 두어도 곤란하지만 고양이의 경우는 혼자서도 며칠 정도는 잘 견딘다고 한다. 구보씨도 그렇다. 소란스럽고 번잡한 것보다는 차라리 홀로 있는 게 낫다고 여긴다. 아마 철학자라면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개를 닮은 철학자라고 하면 영 이상하지만, 고양이를 닮은 철학자라고 하면 어째 그림이 그려질 법도 하지 않은가.
하긴 때로 세상엔 개 같은 철학자가 없진 않았다.
(내용이 대단치는 않지만, 이런 책도 있다.)고대(古代) 그리스의 유명한 견유학파(犬儒學派), 곧 키니코스학파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그때의 ‘개 같음’은 개떼처럼 몰려다니면서 욕망의 대상을 약탈하거나 구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는 시끄럽게 짖어대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위계에 따른 협박과 아부의 몸짓을 과시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대로, 견유학파의 ‘개 같음’은 온갖 누추함을 마다않고 인위의 번쇄(煩?)를 갈가리 찢어버리는 자유로움에 있었다. 그러니까 견유학파에서조차 사교성은 철학자의 특성이 아니었던 셈이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세속의 그 무엇에도 굽히지 않는 자존과 고독의 품위가 있었다. 그것은 개보다는 오히려 고양이 족속들에 더 어울리지 않는가.
그렇다고 구보씨가 호랑이나 사자를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표범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살쾡이라면 또 모르겠다.
“얘 좀 봐, 여전히 웃겨. 너처럼 배나온 살쾡이가 어디 있니?”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이크, Y다. 드디어 그녀가 돌아왔다. 오랜 여행 탓인지 약간 야위고 피부가 그을린 게 야생성이 더 강해진 모습이다. Y야말로 살쾡이 같다.
“글쿠 말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지, 애꿎은 짐승들은 왜 끌어들이니? 니들 철학자들이 언제 동물들을 제대로 대접해 준 적이 있기나 하니?”
아니, 그건 오해다. 철학자들도 나름으로 동물에 민감하다. 당장 니체와 말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1889년 토리노. 니체는 마부의 채찍질에도 꿈쩍 않는 말에게 달려가 목에 팔을 감으며 흐느낀다. 그 후 니체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는 마지막 말을 웅얼거리고, 10년간 식물인간에 가까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영화 ?토리노의 말?은 이런 내용의 해설자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토리노의 말? 중 한 장면)이 영화는 헝가리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벨라 타르가 작년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이제 영화는 그만 만들겠다고 하더니,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는 뉴커런츠 분야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니체는 말에게 동정(同情)과 공감(共感)을 표시했고, 벨라 타르는 이 공감을 모티브로 삼아, 요즘 유럽에서 다시 유행을 맞은 종말론적 분위기를 인상적인 흑백 화면과 강렬한 폭풍의 음향 속에 담아냈다.
니체가 말의 목을 껴안았다는 1889년은 히틀러가 태어난 해다.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도 그 해에 태어났다. 1989년에는 동구의 사회주의가 몰락한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동물이 철학자에게 공감하는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철학자가 동물에게 공감을 보이는 일은 확실히 있다. 벨라 타르는 여기에 주목한다. 강한 공감은 위기에서 비롯하고, 거꾸로 강한 공감의 표현이 위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근본적인 위기와 동물적인 공감, 꽤 그럴싸한 연결이 아닌가.
(벨라 타르)종말이 근본적인 종말이면 인간과 동물에 너나가 있을 수 없다. 반면에 ?혹성탈출? 식의 종말이라면 그것은 인간 지배의 종말일 따름이다. 그런 종류의 위기에서는 오히려 동물과 인간의 구별이 더 두드러진다. 공감이라고 해 봐야 그건 인간 위주의 공감이어서, 인간과 닮은 원숭이가, 곧 인간의 편인 원숭이와 인간의 적인 원숭이가 문제될 뿐이다. 위기의 심각성에 따라 공감의 양상과 범위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역시 종말론적 분위기에 편승해 요즘도 자주 언급되는 칼 슈미트에 의하면, 누가 동지인지는 누가 적인지에 따라 정해진다. 무엇이 우리랑 같은 부류인지는 무엇이 우리를 위협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적어도 사회적 반향이 있는 공감의 폭과 경계는 이런 적대와 위험에 따라 그 윤곽이 그려지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동물이 공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라 해도 보통은 인간적 감정의 연장일 뿐이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 우리는 우리의 적에 대해 때로 이렇게 외친다. 그런가 하면, 우울하고 서글픈 기분으로 주저앉아 있을 때 개나 고양이가 옆에서 살랑거리면 우리는 거기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래, 니들이 인간보다 낫지…”
그러나 니체가 두들겨 맞는 말에 대해서 느꼈던 연민과 공감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껏 우리 주변에 미치기 마련인 친근성의 테두리를 넘어선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낯선 말을 위해 니체는 뛰어든다. 그전부터 말에 애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니체가 말을 아끼던 애마(愛馬) 신사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도 그는 말의 목을 껴안고 흐느낀다. 거기에는 비일상적(非日常的)인, 그러나 보편의 심장을 꿰는 울림이 있다.
벨라 타르가 이 보편성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영화의 흑백 화면과 어울리는 수도사적 꼿꼿함의 전통이 깔려 있다. 그것은 물론 서구의 전통이고 기독교적 전통이며 히브리적 전통이다. 아니, 니체가? 기독교의 신을 부인했던 바로 그 니체가 기독교의 전통과 연결된다고? 당근이고 말밥이다. 적어도 신이 살아있었음을 인정해야 그 신이 죽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니체 자신이 목사의 아들이었으며 기독교적 죄의식과 평생 싸움을 벌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니체의 신은 죽었는가? 글쎄… ?토리노의 말?은 무엇보다 유럽의 절망감을 드러내 보인다. 영화의 무대는 황량한 벌판의 외딴 집에 고정되어 있다. 영화의 중간에 등장한 집시들은 마부의 딸에게 미국으로 같이 가자고 꼬드긴다. 그들은 한바탕 소동을 피운 뒤에 물러가지만, 집시 노인네가 건네주고 간 책에는 성소(聖所)가 더럽혀졌으며 회개의 의식(儀式)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집시들이 퍼 마시고 떠난 우물은 말라버린다. 방종(放縱)한 약탈자인 미국은 아직 승리자로 군림해 있는데 꼿꼿한 품위의 유럽은 처연하게 종말을 맞이한다는 말인가?
벨라 타르보다 더 성가(聲價)가 있는 유럽의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 역시 작년에 종말론적 작품을 내놓았다. 그 영화 ?멜랑콜리아?에서는 아예 지구가 낯선 별에 부딪혀 박살나 버린다. 여기에도 동물로는 말이 등장한다. 종말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무력함을 함께 나누기에는 말만한 상대가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때에도 말은 인간의 세계를 그려내는 주변적 역할을 넘어서지 못한다.
(조르조 아감벤)동물을 종말론과 관련해 전면적이고도 주제적으로 다룬 이로는 『호모 사케르』로 유명해진 조르조 아감벤을 들 수 있다. 그의 책 『열린 것』(이태리어 원본은 2002에, 영어번역본은 2004년에 나왔고, 우리말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보기에 따라선 니체 식 말목 껴안기의 연장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감벤이 다루는 종말론은 ?토리노의 말?에 비해서도, ?멜랑콜리아?에 비해서도, 니체의 흐느낌에 비해서도 그 절실함이 덜하다. 그것은 아마 10년 전의 이탈리아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에 패배한 것을 빼놓고는 심각한 위기나 절망에 부딪히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조르조 아감벤, 『열린 것』워낙 서구의 전통에선 종말이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되지 않는다. 종말은 새로운 시작인 까닭이다. 부활과 구원이 종말이라는 사건과 함께 하지 않는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 여기서는 새로워진다. 아감벤은 『구약』의 ?이사야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그때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사자 새끼가 함께 먹으며 어린 아이들이 그것들을 돌볼 것이다.”(11장 6절) 종말에 이르면 인간과 동물은 전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 이제까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동물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가 사라진다. 말하자면, 완전한 ‘신’(新;神)세계에서 동물과 인간의 공감이 완성되는 것이다.
“구보야,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횡설수설하더니 삼천포로, 아니, 영 엉뚱한 데로 빠지잖아. 동물 얘기하다가 종말이니 뭐니 하는 것도 이상한데, 이젠 아주 천당으로 올라가니? 내가 뭐랬니? 이것저것 괜히 주워섬기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지. 대체 하고 싶은 말이 있기나 한 거니? 그 동안 내가 없을 땐 어땠는지 정말 궁금하다, 얘.”
“어, Y야. 그래두 내 말에 맥락은 있는 거야. 철학자들이 근래에 동물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니까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게 기본적으로 인간 삶과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에서 온다는 거지. 종말론이라는 게 다름 아닌 그런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하는 거고 말이야. 물론 이런 생각들이 주로 서구적인 것이긴 하지만, 뭐, 오늘날의 주된 삶의 패턴이 서구적인 것이니까…”
“그런데 아감벤이 철학자 맞아? 역사학자 아냐?”
“뭐, 미학이나 문헌학적 작업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학자라고 해야겠지. 내가 말한 책에도 그림이나 옛 문헌에 대한 얘기가 다방면으로 많이 나오긴 해. 그러나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는 건 하이데거의 인간관과 동물관이고 거기에 대한 비판이야. 그리곤 벤야민의 견해를 일종의 대안 비슷하게 제시하지.”
“너처럼 횡설수설한단 얘기야?”
“쯔.,. Y야, 내 말도 횡설수설 아니라니까…”
“그럼, 대답해 봐. 아까, 니체가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고 말했다고 했지? 그게 무슨 뜻이야?”
“글쎄… 그건 아마 자신의 작업이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혔다는 뜻이 아닐까. 동물과 공감하는 차원까지 내려가서야 절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래서 니체의 그 말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거겠지. 종말론이라는 게 기존의 질서를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 뒤집어야 된다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래? 그럼, 구보 넌 언제, ‘Y야, 난 바보였어. 그 동안 횡설수설했구나.’ 하고 말할 건데?”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한철연 교육강좌]- 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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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
강사: 이병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후기: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분단 이후 남북 관계의 기본 특성은 적대성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적대는 군사 및 이념적 적대와 생활 문화적 적대로 대별된다. 생활 문화적 적대는 남북 주민들 간에 자발적으로 동의된 적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 구성원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적대성이라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같은 동족임에도 남북 국민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껄끄럽고도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적대감이 무의식 속에 내면화된 상태라면 분단은 이미 사회과학적 사태가 아니라 인문학적 고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우리 몸과 마음의 분단이라는 차원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홉스봄의 ‘역사적 국가 historical state’ 개념을 활용해 분단 적대성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역사적 국가란 혈연, 언어, 문화, 정치, 역사적 동일성이 구조화된 국가 상태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삼국은 천여년 이상 영토 경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각자의 역사적 국가 상태를 구성해왔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이런 상태가 붕괴되면서 한반도는 망국, 이산, 분단이라는 현실에 휘말렸다. 과거 한국인들은 한반도라는 일정 공간 내에서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던 역사적 국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현재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적 상태는 재중 동포, 재일 동포, 재러 동포 등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엄밀히 보자면 남과 북 국민들 모두가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있다. 오랜 역사적 국가 상태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불일치 현상은 일종의 치욕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민족 구성원들은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통일된 역사적 국가 상태를 희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서로를 증오하는가? 서로의 정부를 가짜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을 어머니, 국가를 아버지라 해보자.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두 아버지(두 개의 정부)를 둔 민족의 자손이 되었다. 남북은 서로를 가짜 아버지의 자식으로 치부하면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여기에 분단 적대성의 원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적대성의 근저에는 강력한 동질화의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전망하는 동질화의 상태가 상이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화해를 통한 동화는 거부하고 있다. 각자가 상대방을 자기 모습대로 동화하려드는 왜곡된 욕구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적대는 더욱 심해진다. 한국전쟁은 훼손된 민족 국가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던 왜곡된 몸부림이었다. 동질화의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전개될수록 적대 행위는 심화되고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무의식 속에 강하게 각인된다.
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 트라우마, 이산 트라우마, 분단 트라우마라는 세 가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현실의 불행한 대립의 역사는 이 트라우마를 이성적으로 치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트라우마화된 적대성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화해의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대방과 내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민족 공동의 서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전자를 인정의 노력이라 한다면, 후자는 민족통합서사를 이룩하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인정의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고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대립하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멈추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에는 자신의 관점을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태도가 여전하다. 이것은 일종의 전술적 고려 속에서 나온 인정의 태도에 불과하다. 세력이 비등하므로 억지로 상대방을 인정할 뿐이다.
또 다른 인정의 노력은 타자의 인정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현재적 상태의 변화를 감수함을 의미한다. 남한만 옳고 북은 고쳐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보기에는 각자의 체제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자기 체제의 문제점을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족통합서사의 구축은 과거의 통합된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복고주의나 보수적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반도 구성원들은 식민, 이산, 분단을 겪으면서 각자 상이한 문화, 의식, 역사, 생활양식을 구성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민족 공통의 서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잊혀진 과거에서 결합의 흔적을 찾다가는 혈통적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다. 현대사에서 공유한 역사적 수난을 바탕으로 하여 남, 북, 해외동포 등의 각 구성원들이 구성한 문화적 성과물들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남북 교류의 확대와 지속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질문1) 탈북 주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탈북인의 절반은 자신을 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체제적 정체성은 포기했으나 북에서 형성한 공동체, 풍습의 정체성은 고수하고 있다. 상이한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공통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분단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로서의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 탈북인을 같은 동포로 보고자 하는 것은 단지 혈연적 동일성의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질문2) 체제 세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삼대 세습은 분단 구조가 낳은 독특한 체제이다. 분단 구조는 북한 혼자만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삼대 세습 제도를 유발시키거나 그것을 지속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책임에 대해서는 남한도 자유롭지 않다. 삼대 세습은 현대적 사고에서는 비상식적 사건이다. 그러나 비상식적 사건의 극복은 비난과 조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습 문제를 낳은 분단 구조에 대한 면밀하고도 성찰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후기
남북 문제를 민족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로 대비해서 고찰해 볼 수 있는 심층 강의라고 본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민족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제기하신 민족적 트라우마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단 이후 국가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이 다른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가 폭력이 개인의 폭력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이의 인정을 넘어서 타자성에 대한 이해로 남북 체제를 바라보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길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기존의 통일에 대한 생각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기존 이념과 국가가 하나가 되는 통일 개념이 잘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소통과 교류를 중시하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통일 개념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민족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 폭을 많이 넓혔습니다.
구보씨 사회적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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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구보씨는 명색이 사회철학 전공자지만 딱히 ‘사회적’이진 않다. 오히려 자신이 그다지 사회적이지 못하다는 걸 의식하다 보니 사회적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게다가 한편으론 사회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부족한 사회성이 메워질 거라는 헛된 기대도 있지 않았을까… 하여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해서 다 사회적인 건 아니다. 그래서 칸트도 인간의 사회성을 일러 ‘비사회적 사회성’이라 하지 않았는가.
임마누엘 칸트칸트가 그런 표현을 쓴 데는 당시 부각되어 있던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관심과 긍정이 큰 몫을 했다.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근대의 인간상에 대한 관심과 긍정 말이다. 사실 이기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이란 얼핏 보기에도 서로 모순되는 두 면모지만, 이 두 가지를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근대 유럽의 현실이었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부대끼며 어울려 사는 사회, 그런 사회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발전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해명해야 했던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런 현상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대답이다. 직접적인 이기심을 넘어서서 인간 사회를 지탱해 주는 이성적인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비사회적 사회성’에도 비슷한 면이 있다. 각자의 이익을 좇는 것이 인간 본성의 ‘비사회적’ 면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런 비사회성을 끌어안는 사회성이 작용하는 탓이다.
그러니까 이 사회성에는 개체의 자기 이익 이상의 무엇이 있다. 칸트는 이런 면모를 역사가 추구하는 이념(理念)과 관련시켜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개체를 넘어서는 어떤 실체(實體)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헤겔에 이르면 그와 같은 사회성은 정신(精神)이라는 이름의 실체로 등장하게 된다. 민족정신, 시대정신 같은 초개인적인 무엇이 되는 것이다.
어라, 잠깐! 구보씨가 이렇게 딱딱한 얘기를 늘어놓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 때나 현학적인 철학자 행세를 하려 드는 건 비(非)사회적이고 반(反)사회적인 짓임을 아는 까닭이다. 그건 구보씨에게 어울리는 사회적 스타일이 아니다. 언제 보아도 우아한 남녘의 오빠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구보씨가 말하려던 것은 다만, 사회성에는 우리의 직접성을 뛰어넘는 면이 있다는 것, 그 덕택에 우리의 삶에는 숱한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 정도였다.
아니, 또 잠깐! 그렇다고 구보씨가 자신의 비사회적인 면을 이기심과 등치하거나 그런 이기심을 인간 본성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본래 이기적인 인간인데 필요에 따라 사회를 이루어 살려다 보니 이렇게 힘이 드는 거다, 라는 식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이기성이 부당하게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 질서가 자리 잡아나가면서부터였다.
아담 스미스실은, 칸트는 물론이고 아담 스미스도 인간의 본성에 이기적인 구석만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아담 스미스는뿐 아니라이라는 두툼한 책을 썼고(우리말 번역본도 나와 있다), 동정심을 인간의 기본 감정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아담 스미스는 당대의 유명한 지식인이자 역시 동정심을 통해서 인간의 윤리를 설명하려고 했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동향의 친구이기도 했다(둘 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나이는 흄이 열 살 가량 위였다).
인간을 순전히 이기적인 개체로만 보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 생각으로는 그런 식의 견해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마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이기심을 강조하는 것이 자본주의 하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데는 꽤 쓸모가 있다. 하지만 탐욕을 부린다 해도 그 탐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최소한 그럴 수 있는 무대인 사회가 존립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기심도 어떤 질서 속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잘 정돈된 질서 안에서 각자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는 얘기다.
현대 자유주의 정의론의 대가라는 존 롤스가 내세우는 정의로운 사회도 따지고 보면 이런 부류의 사회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의 원칙이라는 게 이른바 합리적 이기심을 가진 인간들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조직인데, 서로가 자기 처지만 생각해서는 그 이기심이 공정하게 추구되기 어려우니, 각자가 다른 처지에 놓일 경우도 생각해서 이기심을 충족시키자는 것이다. 이기주의의 세련된 보편화(普遍化)라고나 할까, 이것은 말하자면 아메리카의 고상한 자유주의 스타일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에는 동정심이 필요 없다.
존 롤스하긴, 오늘날처럼 규모가 큰 사회가 동정심에 입각한 도덕으로 굴러가기는 어렵다. 동정심(同情心)이나 공감(共感)이란 건 원래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살던 시기에 생겨나고 정착된 감정일 테니 말이다. 농경으로 대규모 정착 문명이 일어나기 전,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100여명 정도의, 많아야 200명이 못되는 규모의 집단생활을 했다고 한다. 현생 인류로서의 기간만 해도 수만 년이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십만 년의 세월이다.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제 아무리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백 명 남짓을 넘기 힘들다.
그래서, 군대로 따지면 중대(中隊) 규모의 집단이 정서적 교감을 지니고 가장 큰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대 단위가 된다. 아니, 그렇기에 중대의 크기가 그 정도로 정해졌다고 해야 맞는 얘기일 것이다. 집단이 이 크기를 넘어서면 서로 속속들이 알기도 어렵고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느끼기도 곤란해진다. 직접적인 접촉으로 유지될 수 있는 집단의 크기가 생래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크기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삶을 꾸려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자, 그렇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마음과 사회 환경, 심정과 사회 조직 사이에 괴리가 생겨난다. 오늘의 도시 생활에선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충실할 여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기억을 동반하는 이지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기억이란 것이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상당 부분 감정과 엮이기 마련이니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큰 규모의 사회 속에 산다 해도 결국 우리가 믿고 결속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무리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가령 일국의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관계하는 일차적인 집단의 크기는 백여 명 남짓이다. 물론 각각의 사람들이 관계하는 일차 집단은 서로 같지 않게 중첩된다. 그러나 이런 중첩적인 관계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퍼져가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틈새들을 따라 서로의 간극은 크게 벌어지며 집단들끼리의 엮임도 쉽게 적대적인 선들로 균열된다. 심정적 집단의 크기와 실제의 사회적 관계로 얽힌 집단의 크기 사이에서 온갖 문제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구보야, 그거 구닥다리 문제제기야. 그렇게 해서는 노자(老子) 식의 소국과민(小國寡民) 얘기밖에 더 나오겠어? 사대주의에 시비를 걸더니 아예 거꾸로 가는구나.”
C는 아무래도 강북의 영감탱이 스타일이다. 구보씨랑 나이는 같은데, 너댓 살은 더 먹은 것처럼 군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아니,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이거 보기에 따라서는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라구. 자치(自治)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느냐의 관건이지.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문제를 도외시하잖아. 걔들은 한편으로 기계적이라구. 말하자면, 분해-결합의 스타일이야. 인간을 일종의 레고 조각처럼 보고 필요에 따라 이어다 붙이면 어떤 규모의 어떤 사회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레고 조각만 깨뜨리지 않으면 된다는 거지. 그 조각이 완성된 사회의 어디에 붙어 있건 다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거야. 그 치들은 공동체 단위에 대한, 그러니까 코뮨 단위에 대한 생각이 없어.”
“하지만 그런 문제야 지방 자치나 지역 사회 단위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잖아. 지금 백 명 이백 명 단위의 공동체로 생활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고… 내가 보기엔 요즘 공동체주의라는 것은 알맹이 없는 수세적(守勢的)이고 수사적(修辭的) 논의에 불과해. 적어도 산업 사회 이후의 코뮨이라는 건 경제까지 공동체로서의 사회가 장악할 때 유의미해지는 거야. 그게 코뮤니즘이지. 그걸 포기한 공동체주의는 그냥 공화주의일 따름이고, 자유주의의 일파야. 자유주의적 공화주의란 말이지.”
“그런데 그게 개인주의는 아니거든. 골수 자유주의는 개인주의고. 개체를 우선적인 것으로 놓고 인간 사회를 바라보느냐 아니면 공동체적인 사회 속에서 개체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느냐는 큰 차이라구.”
“너희 철학자들한테야 그렇겠지.”
“허, 아니라니까. 예를 들면,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때, 그래서 개인의 소유권과 재분배를 통한 복지가 충돌할 때, 그런 입장 차이가 큰 역할을 한다구.”
“글쎄, 그럴까? 미국만 해도 그 구별이 선명치 않을 걸. 공동체주의자들 가운데 민주당파도 있고 공화당파도 있을 거야. 우리도 봐, 지금 박근혜에 붙어 있는 김종인 같은 이들이 순수한 개인주의자는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그거 개와 고양이의 차이보다도 못한 것 같아.”
“개와 고양이?”
“그래, 개와 고양이. 개는 사회적인 동물이고 고양이는 안 그렇다고 하잖아. 공동체주의자와 자유주의자를 나누느니 차라리 개 닮은 놈과 고양이 닮은 놈을 나누는 게 낫겠다. 구보, 넌 어느 쪽이냐?”
“나야 뭐 대체로 자유주의에 비판적이니까… 근데, 너 지금 나보고 개 같다는 거냐?”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한철연 교육강좌]-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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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강사 :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오늘(5월 27일)은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통해 아방가르드 미학에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현대 예술의 경향을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로 나누면서 후자를 ‘사기, 해체, 꿈’이라는 세 키워드로 풀이해 나갔다.
1)사기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①예술은 가상을 마치 진짜 현실인 양 만드는 눈속임이다. ②예술은 장난(유희)이다. 이 말의 의미를 풀이해보기 전에 우선 청계천에 있는 이라는 조형물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클라스 올덴버그라는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작가의 것이다. 아이디어는 부인이자 동료 팝아트 예술가인 코샤 반 브룽겐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한국의 역사적 전통과 동떨어져 있으며, 조각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와도 거리가 멀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병창 회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소라를 귀에 대보면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소라와 같이 생긴 이 작품도 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물소리)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의 기만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샘의 생명에 찬 분출력을 인공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작품은 청계천이라는 거대한 인공 개천을 마치 자연 하천의 복원인 양 여기는 한국 사회의 기만적 행태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술은 사기이되 현실의 사기(기만성)를 사기라는 형식을 가지고 드러내는 사기라 할 수 있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또 다른 예는 삼성이 세운 리움 미술관이다. 삼성은 서구의 세 유명 작가(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에게 의뢰하여 각각 독립적인 건물을 세우게 하고 지하를 통해 세 건물을 연결했다. 각각으로 보자면 대단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전체적 관계성을 고려해서 보면 이 건물들은 사기이고 기만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그것이 거기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와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건축되어야 한다.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로마네스크 교회 양식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현대성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미적 가치를 웅변한다. 그러나 리움 미술관에 들어 선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특유의 긴장 관계가 소멸된 무맥락성 속에 있다. 이것은 그저 재벌가가 자신의 재력과 왜곡된 교양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들은 한국 재벌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들 혹은 한국 사회의 무비판성과 몰취미(기만성)를 폭로하는 ‘예술의 간교한 복수’를 감행하고 있다.
2) 해체
해체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작고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대표적 개념이다. 우리는 세상을 개념틀을 가지고 본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을 볼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 이런 대상과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지닌 기존 개념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반성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기존 개념틀의 구조를 새로 인식하게 되고 그것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해체란 자신이 은밀히 지니고 있던 개념틀의 토대를 드러내고 그것의 한계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 개념 구조틀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와 대면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파이프 그림과 파이프가 아니라고 진술하는 문장 간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회화 작업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적 개념틀을 재검토하는 비판적 태도를 경험하게 한다. 라우셴버그의도 해체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당시 유명 화가였던 데 쿠닝의 작품을 사서 그의 그림을 지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오직 지우는 작업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회화 작업이라는 통념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남기고자 삶의 모든 양식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지워나가는 작업에서 오히려 삶의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상념할 수 있다.
3) 꿈
예술은 꿈이다. 꿈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소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제대로 꿔내려면 무의식 상태에 진입해야 할 것이다. 무의식은 공포스럽다. 하지만 쾌락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흔히 불온하고 금지된 것을 꿈꾼다. 그것은 처벌의 공포를 주지만 동시에 강한 쾌감을 선사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탐닉하는 자신은 의식 세계의 자아를 벗어나 변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의식된 자아에서 해방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만끽한다. 지금과 다른 존재로의 변신은 지금 상태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보고 그것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에게 이해 불가능한 대상 중 대표적인 것은 자연이다. 예술은 언제나 자연과의 화해라는 불가능한 꿈을 꿔왔다.
이화여대의 ECC관은 도미닉 페로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건물이되 텅 빈 공간으로서의 인상을 준다. 어떤 공간을 채우는 형태의 건축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선사하는 건축 방식은 건축물 위에 공원이라는 자연 공간을 끌어옴으로써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건물은 자연과 인공물이 공존하려는 꿈을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로 변신했다. 이종호의 작품 박수근 미술관 또한 자연이 건물이 되고 건물이 자연으로 변신하는,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라는 예술의 꿈이 구현된 작품이다.
질문 1) 현대미술의 시기는?
연대 구분을 명확히 나눌 수는 없다. 대략 보자면 1920-30년대는 모더니즘, 50-60년대는 아방가르드, 70-8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라 할 수있다. 그러나 각 경향의 운동은 특정 연대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질문 2) 한국 사회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은 사실 전통 및 맥락과 단절된 곳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리움미술관의 무맥락성도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맥락은 단절의 관계이다. 기존 전통과 경향, 사건들이 현재적 상황과 충돌을 빚고 일정한 단절의 긴장을 형성함으로써 맥락적 관계가 등장한다. 그러나 리움은 뜬금없이 불쑥 세워진 완전한 무맥락성에 있다. 전혀 다른 의도와 맥락 속에서 등장한 구현물들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아무런 긴장 관계의 형성도 없이 억지로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후기
철학과 예술 새로운 관점에서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추천해 주신 한국 내 작품들을 보고싶어집니다.
건축은 예술 작품이지만 동시에 공공 생활을 책임지는 유산이 될 수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도시 계획이 앞으로 더욱 성숙하고, 건축이 미래의 유산임을 염두에 둘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은 느끼는 것일까? 이해하는 것일까? 문외한으로서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강의였다.
예술가는 ‘시작과 끝’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5년동안 감상해오던 ‘바깥 미술회’의 작품들이 그동안의 시간과는 달리 나의 심상의 영향을 받아 크게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실제 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지난해 그들이 겪었던 쓰나미의 슬픔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건희 부인 홍라희가 비싼 예술품을 대중과 함께 즐기기를 바랍니다.
해체의 현 현상을 시적으로 살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건축 미학에 대해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강의를 통해 예술에 대한 새 시각을 갖출 수 있었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기술이 골치 아픈 대상이듯이 공학 종사자에게 에술이란 대하기 두려운 대상이다. 이병창 선생님의 사례 제시와 설명으로 예술에 대해 두려움을 덜어내고 재미를 심는 시간이었다.
2013년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0 Comments/in 18세를 위한 철학캠프, 톱뉴스, 학술행사 /by cabeza구보씨, 안철수의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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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며칠 전 TV에서 안철수가 출연한라는 프로를 보다가 구보씨는 문득, 머리 크고 키 작은 것으로야 안철수가 구보씨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키 크고 머리 작은 걸 좋아하는 세상이라지만, 세간의 기준도 사람 나름으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하긴, 보이지 않는 키도 있으니까… 구보씨는 인천 출신의 옛 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키가 꽤 작은 편이었던 그 친구는 그런 단점(短點)에 전혀 굴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정신적인 키’를 내세웠다. “오해하지 마라. 이래 뵈도 마음만은 꺽다리다.” 요새의버전으로 하면 이런 식이었다고 할까. 실제로 마음의 길이를 재어보지 못했으나, 언제나 여유 있고 푸근한 친구였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정신적인 키는 얼마나 될까. 구보씨는 그 프로 내내 앉은 모습만 보여주는 안철수의 정신적 키를 가늠하려고 애썼다. 그간의 고심이 처음의 긴장한 표정에서 언뜻 드러나기도 했다.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히고 흰 머리도 늘었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철수 원장의 SBS출연 모습, 출처: SBS이제 안철수가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만이 아니라 최근에 펴낸 책을 보면, 그 준비를 상당 기간 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직접적인 경험은 부족할지라도, 과외 수업을 통해서건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준비를 꽤 갖추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아직 나쁠 건 없다는 게 구보씨의 생각이다. 안철수 효과는 일단 긍정적이다. 기성의 정치에 대한 변화 요구를 대변하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 효과를 좀 더 이어나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더 보태기 어려울 정도로 말들이 많다. 그런데 구보씨로서는 논의의 중심을 약간 빗겨나 특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안철수의 경우가 이제는 거의 잊힌 옛 지도자상의 이상적(理想的) 전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릇 지도자나 통치자는 자신이 잘났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과 인품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고 밀어 올리는 것이라는 전통 말이다.
그런 전통이 정말 있느냐구? 물론이다. 따지자면 요순(堯舜) 시대부터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그 덕성으로 임금이 되었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은 치수(治水)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위에 올랐다. 당시에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악다구니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인물을 찾아 임금으로 세우는 것이 과제였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세속의 권력을 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기피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자신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는 말을 듣고 강물에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추대로 임금이 되었고 이후 석탈해나 김알지 등 다른 성씨들이 돌아가며 왕 노릇을 했다. 구보씨가 어릴 때만 해도 그런 전통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남 앞에 함부로 나서거나 스스로 우두머리가 되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었다. 이러저런 자리에 추천이 되더라도 더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리라고 배웠다. 학급의 반장 선거에서 자기 이름을 적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낯 뜨거운 일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가 크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닐 경우다. 부족 모임에 가까운 옛 국가에서는 왕이라고 해 봐야 큰 권한을 누린다기보다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았다. 오늘날도 위세는 없고 책임만 많은 자리는 서로 미루지 않은가. 왕위에 대한 욕심이 강해지고 세습이 일반화한 것은 챙겨 가질 것이 많아진 이후였다. 중국에서는 하나라 우왕의 아들인 계(啓)로부터 세습이 행해졌고 우리의 경우도 2~4세기 경에 이르면 세습이 확립된다. 그렇더라도 덕 있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선양(禪讓)의 정신은 오랫동안 유교 정치의 이상으로 남아 있었다.
민주주의 시대에 선양이니 덕치니 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민주(民主)의 민이 단일한 것이 아닌 한, 오늘날의 정치는 이해관계의 반영이고 조절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조절이 온갖 밀쳐내기와 나눠먹기로 행해지고 강자에 빌붙기와 약자를 억누르기로 이뤄질 때, 도덕적인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해관계로 엮인 정치의 장에서 단련이 된 인물들보다 정치에 대한 야심이 원래 없거나 약했던 인물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오늘의 사태는, 누구나 인정하듯 기존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의 증거다.
, 김영사, 2012.안철수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주변에서 부추기고 유혹하는 일이야 벌써 오래 전부터 있었다. 만일 정치적인 야심이 본래 있었다면 일찌감치 등장했을 것이다. 이명박과 다른 부류의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안철수 현상을 해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구보씨는 생각한다. 안철수를 ‘IT시대의 이명박’이라고 하는 것으로는 그가 내보이는 도덕성과 상식적 합리성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기대를 가늠하기 어렵다.
안철수의 긍정적인 이미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사심 없음이고 공익 지향성이며 약자에 대한 관심이다. 백신 개발과 무료 배포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래, 그는 20여 년간 그런 이미지를 지키고 키워 왔다. 박원순에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이유도 박원순이 그 자리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안철수의 판단 방식은 이상적인 지도자의 선정에 대한 전통적인 상과 들어맞는다. 또 그렇게 양보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심 없는 인물이라면 더 큰 자리에 적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대중들의 판단 또한 지도자 선정의 전통적인 상과 어울린다.
“철학자로서야 그런 면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굉장히 나이브한 생각이야.”
C는 언제나 그렇듯 약간 비관적이다. 한 명뿐인 직원마저 휴가 간 출판사의 사무실에는 이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기에도 텁텁하고 후덥지근하다. C는 에어컨을 켜면 금방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불과 5년 전을 생각해 봐. 그 때 이명박의 지지율은 지금 안철수의 지지율을 훨씬 뛰어넘었다구. 이명박이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지도자 상에 걸맞아서 그랬을까? 천만에. 오히려 거꾸로였지. 이명박의 비도덕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 눈을 감았어. 반면에 문국현은 또 어땠어? 문국현은 서투르게나마 이명박과 다른 윤리적 사회 경영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허망했지. 대중은 도덕성을 이유로 대통령을 뽑지 않아.”
“나도 물론 도덕성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건 아니야.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확실히 정치에서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지. 심지어 박근혜조차 신뢰성과 약속 지키기를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잖아. 이게 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요구의 뿌리를 전통에서 찾는 것이 무의미하진 않을 거야. 어떤 요구든 잠재된 바탕 위에서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민중의 요구는 때로 변덕스러워 보이지만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결국은 제 갈 길을 잡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도덕성은 정치에선 양념 같은 거야. 고춧가루를 마구 뿌리거나 소금을 함부로 쳐서 못 먹을 것 같은 음식으로 망가뜨려 내치기는 좋지만, 양념만으론 괜찮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구. 안철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이전 음식을 먹어 보니 상한 거라서 신선한 음식을 찾는 건데, 원재료가 부실한 채 몇 가지 양념만으로는 요리가 만들어지지 않거든. 금방 그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라구.”
“원재료? 그게 뭐야?”
“정치에서의 재료야 힘이지. 가장 중요한 힘은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거고. 그게 곧 쌀과 고기 같은 거야. 물론 도덕성도 힘이 아닌 건 아니고 재료가 아닌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재료에 지나지 않아. 쌀이나 고기 같은 기본 재료가 부실하면 그 위에 채소나 양념을 아무리 잘 깔아놔 봐야 겉으로만 맛있어 보일 뿐이야. 안철수는 턱없이 부족한 기본 재료로 음식을 만들려는 서툰 요리사와 같다구.”
“그럼, 안철수가 안 된다는 거야?”
“대통령 말이야? 글쎄,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과가 좋진 않을 거야. 안철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모델로 삼겠다고 하던데, 루즈벨트는 빵빵한 배경에 서른도 안 되어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들어선 인물이야. 1932년에 대통령이 되기 전에 관료로 1차 대전도 치루고 부통령 출마도 하고 주지사도 하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구. 뉴딜을 추진할 힘이 그냥 생기는 건 아니야. 안철수는 루즈벨트는커녕 오바마하고도 비교가 안 되지만, 지금 오바마를 봐. 운신의 폭이라는 게 한 뼘밖에 안 되잖아.”
“정치인이라면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이 배경이지 않을까? 그들의 요구가 힘이고 말이야.”
“하하…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노무현의 경우를 생각해 봐. 지지자를 계속 잡아두려면 그들의 요구에 맞는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구. 그런데 무엇을 통해서 그럴 수 있지? 도덕성을 통해서? 그런 양념을 걷어내는 데에는 긴 시간이 들지 않아.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나 룰라의 브라질처럼 자원이나 풍부한 나라 같으면, 그간 해먹던 놈들을 쫓아내고 경제를 정상화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계속 끌어낼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처지가 그렇지도 못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앞으로 세계의 경제 상황은, 그러니까 이제 다시 골이 파이기 시작한 공황은 점점 더 심해질 거라구. 우리 같은 경제 구조로는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가 다가올 공산이 커. 파시즘으로 안 가면 다행이야.”
“파시즘? 안철수가 말이야?”
“안철수가 직접 그런 길로 가지는 않겠지. 그러나 정치가 여러 갈등을 해결하는 데 무력함을 보이고 경제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래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면 무력과 선동으로 정권을 잡으려는 전체주의 세력이 득세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
“하하… C야, 그렇게까지야, 민주화 이후 20년이 넘었는데…”
“그래, 나도 안 그러면 좋겠는데, 역사는 전진만 하는 게 아니거든. 지금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봐. 불안불안하잖아.”
“흠… 그러나저러나은 읽어 봤지?”
“봤어. 대충… 그런데 정치가 학습한다고 금방 되진 않으니까…”
“많이 팔렸다지?”
“글쎄, 20만부는 넘었겠지…”
“하…나온 지 1주일 만에… C야, 근데 너네 출판사에서는 일 년에 책이 몇 부나 나가냐?”
“뭐? 지금 그딴 건 왜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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