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 동물을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구보씨, 동물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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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굳이 개냐 고양이냐를 따지자면 구보씨는 개 쪽이기보다는 고양이 쪽이다. 생긴 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은 아파트처럼 밀폐된 공간에서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늘었는데, 개는 하루만 혼자 두어도 곤란하지만 고양이의 경우는 혼자서도 며칠 정도는 잘 견딘다고 한다. 구보씨도 그렇다. 소란스럽고 번잡한 것보다는 차라리 홀로 있는 게 낫다고 여긴다. 아마 철학자라면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개를 닮은 철학자라고 하면 영 이상하지만, 고양이를 닮은 철학자라고 하면 어째 그림이 그려질 법도 하지 않은가.

하긴 때로 세상엔 개 같은 철학자가 없진 않았다.
(내용이 대단치는 않지만, 이런 책도 있다.)고대(古代) 그리스의 유명한 견유학파(犬儒學派), 곧 키니코스학파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그때의 ‘개 같음’은 개떼처럼 몰려다니면서 욕망의 대상을 약탈하거나 구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는 시끄럽게 짖어대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위계에 따른 협박과 아부의 몸짓을 과시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대로, 견유학파의 ‘개 같음’은 온갖 누추함을 마다않고 인위의 번쇄(煩?)를 갈가리 찢어버리는 자유로움에 있었다. 그러니까 견유학파에서조차 사교성은 철학자의 특성이 아니었던 셈이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세속의 그 무엇에도 굽히지 않는 자존과 고독의 품위가 있었다. 그것은 개보다는 오히려 고양이 족속들에 더 어울리지 않는가.

그렇다고 구보씨가 호랑이나 사자를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표범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살쾡이라면 또 모르겠다.

“얘 좀 봐, 여전히 웃겨. 너처럼 배나온 살쾡이가 어디 있니?”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이크, Y다. 드디어 그녀가 돌아왔다. 오랜 여행 탓인지 약간 야위고 피부가 그을린 게 야생성이 더 강해진 모습이다. Y야말로 살쾡이 같다.

“글쿠 말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지, 애꿎은 짐승들은 왜 끌어들이니? 니들 철학자들이 언제 동물들을 제대로 대접해 준 적이 있기나 하니?”

아니, 그건 오해다. 철학자들도 나름으로 동물에 민감하다. 당장 니체와 말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1889년 토리노. 니체는 마부의 채찍질에도 꿈쩍 않는 말에게 달려가 목에 팔을 감으며 흐느낀다. 그 후 니체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는 마지막 말을 웅얼거리고, 10년간 식물인간에 가까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영화 ?토리노의 말?은 이런 내용의 해설자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토리노의 말? 중 한 장면)이 영화는 헝가리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벨라 타르가 작년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이제 영화는 그만 만들겠다고 하더니,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는 뉴커런츠 분야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니체는 말에게 동정(同情)과 공감(共感)을 표시했고, 벨라 타르는 이 공감을 모티브로 삼아, 요즘 유럽에서 다시 유행을 맞은 종말론적 분위기를 인상적인 흑백 화면과 강렬한 폭풍의 음향 속에 담아냈다.

니체가 말의 목을 껴안았다는 1889년은 히틀러가 태어난 해다.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도 그 해에 태어났다. 1989년에는 동구의 사회주의가 몰락한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동물이 철학자에게 공감하는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철학자가 동물에게 공감을 보이는 일은 확실히 있다. 벨라 타르는 여기에 주목한다. 강한 공감은 위기에서 비롯하고, 거꾸로 강한 공감의 표현이 위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근본적인 위기와 동물적인 공감, 꽤 그럴싸한 연결이 아닌가.
(벨라 타르)종말이 근본적인 종말이면 인간과 동물에 너나가 있을 수 없다. 반면에 ?혹성탈출? 식의 종말이라면 그것은 인간 지배의 종말일 따름이다. 그런 종류의 위기에서는 오히려 동물과 인간의 구별이 더 두드러진다. 공감이라고 해 봐야 그건 인간 위주의 공감이어서, 인간과 닮은 원숭이가, 곧 인간의 편인 원숭이와 인간의 적인 원숭이가 문제될 뿐이다. 위기의 심각성에 따라 공감의 양상과 범위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역시 종말론적 분위기에 편승해 요즘도 자주 언급되는 칼 슈미트에 의하면, 누가 동지인지는 누가 적인지에 따라 정해진다. 무엇이 우리랑 같은 부류인지는 무엇이 우리를 위협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적어도 사회적 반향이 있는 공감의 폭과 경계는 이런 적대와 위험에 따라 그 윤곽이 그려지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동물이 공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라 해도 보통은 인간적 감정의 연장일 뿐이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 우리는 우리의 적에 대해 때로 이렇게 외친다. 그런가 하면, 우울하고 서글픈 기분으로 주저앉아 있을 때 개나 고양이가 옆에서 살랑거리면 우리는 거기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래, 니들이 인간보다 낫지…”

그러나 니체가 두들겨 맞는 말에 대해서 느꼈던 연민과 공감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껏 우리 주변에 미치기 마련인 친근성의 테두리를 넘어선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낯선 말을 위해 니체는 뛰어든다. 그전부터 말에 애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니체가 말을 아끼던 애마(愛馬) 신사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도 그는 말의 목을 껴안고 흐느낀다. 거기에는 비일상적(非日常的)인, 그러나 보편의 심장을 꿰는 울림이 있다.

벨라 타르가 이 보편성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영화의 흑백 화면과 어울리는 수도사적 꼿꼿함의 전통이 깔려 있다. 그것은 물론 서구의 전통이고 기독교적 전통이며 히브리적 전통이다. 아니, 니체가? 기독교의 신을 부인했던 바로 그 니체가 기독교의 전통과 연결된다고? 당근이고 말밥이다. 적어도 신이 살아있었음을 인정해야 그 신이 죽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니체 자신이 목사의 아들이었으며 기독교적 죄의식과 평생 싸움을 벌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니체의 신은 죽었는가? 글쎄… ?토리노의 말?은 무엇보다 유럽의 절망감을 드러내 보인다. 영화의 무대는 황량한 벌판의 외딴 집에 고정되어 있다. 영화의 중간에 등장한 집시들은 마부의 딸에게 미국으로 같이 가자고 꼬드긴다. 그들은 한바탕 소동을 피운 뒤에 물러가지만, 집시 노인네가 건네주고 간 책에는 성소(聖所)가 더럽혀졌으며 회개의 의식(儀式)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집시들이 퍼 마시고 떠난 우물은 말라버린다. 방종(放縱)한 약탈자인 미국은 아직 승리자로 군림해 있는데 꼿꼿한 품위의 유럽은 처연하게 종말을 맞이한다는 말인가?

벨라 타르보다 더 성가(聲價)가 있는 유럽의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 역시 작년에 종말론적 작품을 내놓았다. 그 영화 ?멜랑콜리아?에서는 아예 지구가 낯선 별에 부딪혀 박살나 버린다. 여기에도 동물로는 말이 등장한다. 종말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무력함을 함께 나누기에는 말만한 상대가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때에도 말은 인간의 세계를 그려내는 주변적 역할을 넘어서지 못한다.
(조르조 아감벤)동물을 종말론과 관련해 전면적이고도 주제적으로 다룬 이로는 『호모 사케르』로 유명해진 조르조 아감벤을 들 수 있다. 그의 책 『열린 것』(이태리어 원본은 2002에, 영어번역본은 2004년에 나왔고, 우리말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보기에 따라선 니체 식 말목 껴안기의 연장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감벤이 다루는 종말론은 ?토리노의 말?에 비해서도, ?멜랑콜리아?에 비해서도, 니체의 흐느낌에 비해서도 그 절실함이 덜하다. 그것은 아마 10년 전의 이탈리아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에 패배한 것을 빼놓고는 심각한 위기나 절망에 부딪히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조르조 아감벤, 『열린 것』워낙 서구의 전통에선 종말이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되지 않는다. 종말은 새로운 시작인 까닭이다. 부활과 구원이 종말이라는 사건과 함께 하지 않는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 여기서는 새로워진다. 아감벤은 『구약』의 ?이사야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그때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사자 새끼가 함께 먹으며 어린 아이들이 그것들을 돌볼 것이다.”(11장 6절) 종말에 이르면 인간과 동물은 전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 이제까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동물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가 사라진다. 말하자면, 완전한 ‘신’(新;神)세계에서 동물과 인간의 공감이 완성되는 것이다.

“구보야,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횡설수설하더니 삼천포로, 아니, 영 엉뚱한 데로 빠지잖아. 동물 얘기하다가 종말이니 뭐니 하는 것도 이상한데, 이젠 아주 천당으로 올라가니? 내가 뭐랬니? 이것저것 괜히 주워섬기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지. 대체 하고 싶은 말이 있기나 한 거니? 그 동안 내가 없을 땐 어땠는지 정말 궁금하다, 얘.”

“어, Y야. 그래두 내 말에 맥락은 있는 거야. 철학자들이 근래에 동물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니까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게 기본적으로 인간 삶과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에서 온다는 거지. 종말론이라는 게 다름 아닌 그런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하는 거고 말이야. 물론 이런 생각들이 주로 서구적인 것이긴 하지만, 뭐, 오늘날의 주된 삶의 패턴이 서구적인 것이니까…”

“그런데 아감벤이 철학자 맞아? 역사학자 아냐?”

“뭐, 미학이나 문헌학적 작업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학자라고 해야겠지. 내가 말한 책에도 그림이나 옛 문헌에 대한 얘기가 다방면으로 많이 나오긴 해. 그러나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는 건 하이데거의 인간관과 동물관이고 거기에 대한 비판이야. 그리곤 벤야민의 견해를 일종의 대안 비슷하게 제시하지.”

“너처럼 횡설수설한단 얘기야?”

“쯔.,. Y야, 내 말도 횡설수설 아니라니까…”

“그럼, 대답해 봐. 아까, 니체가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고 말했다고 했지? 그게 무슨 뜻이야?”

“글쎄… 그건 아마 자신의 작업이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혔다는 뜻이 아닐까. 동물과 공감하는 차원까지 내려가서야 절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래서 니체의 그 말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거겠지. 종말론이라는 게 기존의 질서를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 뒤집어야 된다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래? 그럼, 구보 넌 언제, ‘Y야, 난 바보였어. 그 동안 횡설수설했구나.’ 하고 말할 건데?”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한철연 교육강좌]- ⑪

[한철연 교육강좌]- ⑪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

 

강사: 이병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후기: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분단 이후 남북 관계의 기본 특성은 적대성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적대는 군사 및 이념적 적대와 생활 문화적 적대로 대별된다. 생활 문화적 적대는 남북 주민들 간에 자발적으로 동의된 적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 구성원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적대성이라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같은 동족임에도 남북 국민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껄끄럽고도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적대감이 무의식 속에 내면화된 상태라면 분단은 이미 사회과학적 사태가 아니라 인문학적 고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우리 몸과 마음의 분단이라는 차원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수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그렇다면 홉스봄의 ‘역사적 국가 historical state’ 개념을 활용해 분단 적대성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역사적 국가란 혈연, 언어, 문화, 정치, 역사적 동일성이 구조화된 국가 상태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삼국은 천여년 이상 영토 경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각자의 역사적 국가 상태를 구성해왔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이런 상태가 붕괴되면서 한반도는 망국, 이산, 분단이라는 현실에 휘말렸다. 과거 한국인들은 한반도라는 일정 공간 내에서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던 역사적 국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현재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적 상태는 재중 동포, 재일 동포, 재러 동포 등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엄밀히 보자면 남과 북 국민들 모두가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있다. 오랜 역사적 국가 상태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불일치 현상은 일종의 치욕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민족 구성원들은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통일된 역사적 국가 상태를 희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서로를 증오하는가? 서로의 정부를 가짜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을 어머니, 국가를 아버지라 해보자.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두 아버지(두 개의 정부)를 둔 민족의 자손이 되었다. 남북은 서로를 가짜 아버지의 자식으로 치부하면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여기에 분단 적대성의 원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적대성의 근저에는 강력한 동질화의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전망하는 동질화의 상태가 상이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화해를 통한 동화는 거부하고 있다. 각자가 상대방을 자기 모습대로 동화하려드는 왜곡된 욕구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적대는 더욱 심해진다. 한국전쟁은 훼손된 민족 국가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던 왜곡된 몸부림이었다. 동질화의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전개될수록 적대 행위는 심화되고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무의식 속에 강하게 각인된다.

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 트라우마, 이산 트라우마, 분단 트라우마라는 세 가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현실의 불행한 대립의 역사는 이 트라우마를 이성적으로 치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트라우마화된 적대성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화해의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대방과 내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민족 공동의 서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전자를 인정의 노력이라 한다면, 후자는 민족통합서사를 이룩하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인정의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고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대립하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멈추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에는 자신의 관점을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태도가 여전하다. 이것은 일종의 전술적 고려 속에서 나온 인정의 태도에 불과하다. 세력이 비등하므로 억지로 상대방을 인정할 뿐이다.

또 다른 인정의 노력은 타자의 인정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현재적 상태의 변화를 감수함을 의미한다. 남한만 옳고 북은 고쳐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보기에는 각자의 체제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자기 체제의 문제점을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족통합서사의 구축은 과거의 통합된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복고주의나 보수적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반도 구성원들은 식민, 이산, 분단을 겪으면서 각자 상이한 문화, 의식, 역사, 생활양식을 구성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민족 공통의 서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잊혀진 과거에서 결합의 흔적을 찾다가는 혈통적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다. 현대사에서 공유한 역사적 수난을 바탕으로 하여 남, 북, 해외동포 등의 각 구성원들이 구성한 문화적 성과물들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남북 교류의 확대와 지속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질문1) 탈북 주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탈북인의 절반은 자신을 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체제적 정체성은 포기했으나 북에서 형성한 공동체, 풍습의 정체성은 고수하고 있다. 상이한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공통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분단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로서의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 탈북인을 같은 동포로 보고자 하는 것은 단지 혈연적 동일성의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질문2) 체제 세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삼대 세습은 분단 구조가 낳은 독특한 체제이다. 분단 구조는 북한 혼자만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삼대 세습 제도를 유발시키거나 그것을 지속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책임에 대해서는 남한도 자유롭지 않다. 삼대 세습은 현대적 사고에서는 비상식적 사건이다. 그러나 비상식적 사건의 극복은 비난과 조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습 문제를 낳은 분단 구조에 대한 면밀하고도 성찰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남북 문제를 민족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로 대비해서 고찰해 볼 수 있는 심층 강의라고 본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민족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제기하신 민족적 트라우마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단 이후 국가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이 다른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가 폭력이 개인의 폭력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이의 인정을 넘어서 타자성에 대한 이해로 남북 체제를 바라보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길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기존의 통일에 대한 생각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기존 이념과 국가가 하나가 되는 통일 개념이 잘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소통과 교류를 중시하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통일 개념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민족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 폭을 많이 넓혔습니다.

구보씨 사회적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구보씨 사회적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문 성 원(부산대 교수)

 

구보씨는 명색이 사회철학 전공자지만 딱히 ‘사회적’이진 않다. 오히려 자신이 그다지 사회적이지 못하다는 걸 의식하다 보니 사회적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게다가 한편으론 사회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부족한 사회성이 메워질 거라는 헛된 기대도 있지 않았을까… 하여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해서 다 사회적인 건 아니다. 그래서 칸트도 인간의 사회성을 일러 ‘비사회적 사회성’이라 하지 않았는가.
임마누엘 칸트칸트가 그런 표현을 쓴 데는 당시 부각되어 있던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관심과 긍정이 큰 몫을 했다.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근대의 인간상에 대한 관심과 긍정 말이다. 사실 이기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이란 얼핏 보기에도 서로 모순되는 두 면모지만, 이 두 가지를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근대 유럽의 현실이었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부대끼며 어울려 사는 사회, 그런 사회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발전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해명해야 했던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런 현상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대답이다. 직접적인 이기심을 넘어서서 인간 사회를 지탱해 주는 이성적인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비사회적 사회성’에도 비슷한 면이 있다. 각자의 이익을 좇는 것이 인간 본성의 ‘비사회적’ 면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런 비사회성을 끌어안는 사회성이 작용하는 탓이다.

그러니까 이 사회성에는 개체의 자기 이익 이상의 무엇이 있다. 칸트는 이런 면모를 역사가 추구하는 이념(理念)과 관련시켜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개체를 넘어서는 어떤 실체(實體)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헤겔에 이르면 그와 같은 사회성은 정신(精神)이라는 이름의 실체로 등장하게 된다. 민족정신, 시대정신 같은 초개인적인 무엇이 되는 것이다.

어라, 잠깐! 구보씨가 이렇게 딱딱한 얘기를 늘어놓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 때나 현학적인 철학자 행세를 하려 드는 건 비(非)사회적이고 반(反)사회적인 짓임을 아는 까닭이다. 그건 구보씨에게 어울리는 사회적 스타일이 아니다. 언제 보아도 우아한 남녘의 오빠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구보씨가 말하려던 것은 다만, 사회성에는 우리의 직접성을 뛰어넘는 면이 있다는 것, 그 덕택에 우리의 삶에는 숱한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 정도였다.

아니, 또 잠깐! 그렇다고 구보씨가 자신의 비사회적인 면을 이기심과 등치하거나 그런 이기심을 인간 본성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본래 이기적인 인간인데 필요에 따라 사회를 이루어 살려다 보니 이렇게 힘이 드는 거다, 라는 식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이기성이 부당하게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 질서가 자리 잡아나가면서부터였다.
아담 스미스실은, 칸트는 물론이고 아담 스미스도 인간의 본성에 이기적인 구석만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아담 스미스는뿐 아니라이라는 두툼한 책을 썼고(우리말 번역본도 나와 있다), 동정심을 인간의 기본 감정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아담 스미스는 당대의 유명한 지식인이자 역시 동정심을 통해서 인간의 윤리를 설명하려고 했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동향의 친구이기도 했다(둘 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나이는 흄이 열 살 가량 위였다).

인간을 순전히 이기적인 개체로만 보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 생각으로는 그런 식의 견해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마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이기심을 강조하는 것이 자본주의 하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데는 꽤 쓸모가 있다. 하지만 탐욕을 부린다 해도 그 탐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최소한 그럴 수 있는 무대인 사회가 존립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기심도 어떤 질서 속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잘 정돈된 질서 안에서 각자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는 얘기다.

현대 자유주의 정의론의 대가라는 존 롤스가 내세우는 정의로운 사회도 따지고 보면 이런 부류의 사회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의 원칙이라는 게 이른바 합리적 이기심을 가진 인간들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조직인데, 서로가 자기 처지만 생각해서는 그 이기심이 공정하게 추구되기 어려우니, 각자가 다른 처지에 놓일 경우도 생각해서 이기심을 충족시키자는 것이다. 이기주의의 세련된 보편화(普遍化)라고나 할까, 이것은 말하자면 아메리카의 고상한 자유주의 스타일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에는 동정심이 필요 없다.
존 롤스하긴, 오늘날처럼 규모가 큰 사회가 동정심에 입각한 도덕으로 굴러가기는 어렵다. 동정심(同情心)이나 공감(共感)이란 건 원래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살던 시기에 생겨나고 정착된 감정일 테니 말이다. 농경으로 대규모 정착 문명이 일어나기 전,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100여명 정도의, 많아야 200명이 못되는 규모의 집단생활을 했다고 한다. 현생 인류로서의 기간만 해도 수만 년이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십만 년의 세월이다.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제 아무리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백 명 남짓을 넘기 힘들다.

그래서, 군대로 따지면 중대(中隊) 규모의 집단이 정서적 교감을 지니고 가장 큰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대 단위가 된다. 아니, 그렇기에 중대의 크기가 그 정도로 정해졌다고 해야 맞는 얘기일 것이다. 집단이 이 크기를 넘어서면 서로 속속들이 알기도 어렵고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느끼기도 곤란해진다. 직접적인 접촉으로 유지될 수 있는 집단의 크기가 생래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크기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삶을 꾸려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자, 그렇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마음과 사회 환경, 심정과 사회 조직 사이에 괴리가 생겨난다. 오늘의 도시 생활에선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충실할 여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기억을 동반하는 이지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기억이란 것이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상당 부분 감정과 엮이기 마련이니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큰 규모의 사회 속에 산다 해도 결국 우리가 믿고 결속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무리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가령 일국의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관계하는 일차적인 집단의 크기는 백여 명 남짓이다. 물론 각각의 사람들이 관계하는 일차 집단은 서로 같지 않게 중첩된다. 그러나 이런 중첩적인 관계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퍼져가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틈새들을 따라 서로의 간극은 크게 벌어지며 집단들끼리의 엮임도 쉽게 적대적인 선들로 균열된다. 심정적 집단의 크기와 실제의 사회적 관계로 얽힌 집단의 크기 사이에서 온갖 문제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구보야, 그거 구닥다리 문제제기야. 그렇게 해서는 노자(老子) 식의 소국과민(小國寡民) 얘기밖에 더 나오겠어? 사대주의에 시비를 걸더니 아예 거꾸로 가는구나.”

C는 아무래도 강북의 영감탱이 스타일이다. 구보씨랑 나이는 같은데, 너댓 살은 더 먹은 것처럼 군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아니,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이거 보기에 따라서는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라구. 자치(自治)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느냐의 관건이지.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문제를 도외시하잖아. 걔들은 한편으로 기계적이라구. 말하자면, 분해-결합의 스타일이야. 인간을 일종의 레고 조각처럼 보고 필요에 따라 이어다 붙이면 어떤 규모의 어떤 사회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레고 조각만 깨뜨리지 않으면 된다는 거지. 그 조각이 완성된 사회의 어디에 붙어 있건 다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거야. 그 치들은 공동체 단위에 대한, 그러니까 코뮨 단위에 대한 생각이 없어.”

“하지만 그런 문제야 지방 자치나 지역 사회 단위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잖아. 지금 백 명 이백 명 단위의 공동체로 생활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고… 내가 보기엔 요즘 공동체주의라는 것은 알맹이 없는 수세적(守勢的)이고 수사적(修辭的) 논의에 불과해. 적어도 산업 사회 이후의 코뮨이라는 건 경제까지 공동체로서의 사회가 장악할 때 유의미해지는 거야. 그게 코뮤니즘이지. 그걸 포기한 공동체주의는 그냥 공화주의일 따름이고, 자유주의의 일파야. 자유주의적 공화주의란 말이지.”

“그런데 그게 개인주의는 아니거든. 골수 자유주의는 개인주의고. 개체를 우선적인 것으로 놓고 인간 사회를 바라보느냐 아니면 공동체적인 사회 속에서 개체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느냐는 큰 차이라구.”

“너희 철학자들한테야 그렇겠지.”

“허, 아니라니까. 예를 들면,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때, 그래서 개인의 소유권과 재분배를 통한 복지가 충돌할 때, 그런 입장 차이가 큰 역할을 한다구.”

“글쎄, 그럴까? 미국만 해도 그 구별이 선명치 않을 걸. 공동체주의자들 가운데 민주당파도 있고 공화당파도 있을 거야. 우리도 봐, 지금 박근혜에 붙어 있는 김종인 같은 이들이 순수한 개인주의자는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그거 개와 고양이의 차이보다도 못한 것 같아.”

“개와 고양이?”

“그래, 개와 고양이. 개는 사회적인 동물이고 고양이는 안 그렇다고 하잖아. 공동체주의자와 자유주의자를 나누느니 차라리 개 닮은 놈과 고양이 닮은 놈을 나누는 게 낫겠다. 구보, 넌 어느 쪽이냐?”

“나야 뭐 대체로 자유주의에 비판적이니까… 근데, 너 지금 나보고 개 같다는 거냐?”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한철연 교육강좌]- ⑩

[한철연 교육강좌]- ⑩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강사 :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오늘(5월 27일)은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통해 아방가르드 미학에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현대 예술의 경향을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로 나누면서 후자를 ‘사기, 해체, 꿈’이라는 세 키워드로 풀이해 나갔다.

 

1)사기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①예술은 가상을 마치 진짜 현실인 양 만드는 눈속임이다. ②예술은 장난(유희)이다. 이 말의 의미를 풀이해보기 전에 우선 청계천에 있는 이라는 조형물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클라스 올덴버그라는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작가의 것이다. 아이디어는 부인이자 동료 팝아트 예술가인 코샤 반 브룽겐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한국의 역사적 전통과 동떨어져 있으며, 조각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와도 거리가 멀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병창 회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소라를 귀에 대보면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소라와 같이 생긴 이 작품도 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물소리)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의 기만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샘의 생명에 찬 분출력을 인공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작품은 청계천이라는 거대한 인공 개천을 마치 자연 하천의 복원인 양 여기는 한국 사회의 기만적 행태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술은 사기이되 현실의 사기(기만성)를 사기라는 형식을 가지고 드러내는 사기라 할 수 있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또 다른 예는 삼성이 세운 리움 미술관이다. 삼성은 서구의 세 유명 작가(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에게 의뢰하여 각각 독립적인 건물을 세우게 하고 지하를 통해 세 건물을 연결했다. 각각으로 보자면 대단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전체적 관계성을 고려해서 보면 이 건물들은 사기이고 기만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그것이 거기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와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건축되어야 한다.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로마네스크 교회 양식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현대성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미적 가치를 웅변한다. 그러나 리움 미술관에 들어 선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특유의 긴장 관계가 소멸된 무맥락성 속에 있다. 이것은 그저 재벌가가 자신의 재력과 왜곡된 교양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들은 한국 재벌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들 혹은 한국 사회의 무비판성과 몰취미(기만성)를 폭로하는 ‘예술의 간교한 복수’를 감행하고 있다.

2) 해체

해체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작고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대표적 개념이다. 우리는 세상을 개념틀을 가지고 본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을 볼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 이런 대상과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지닌 기존 개념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반성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기존 개념틀의 구조를 새로 인식하게 되고 그것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해체란 자신이 은밀히 지니고 있던 개념틀의 토대를 드러내고 그것의 한계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 개념 구조틀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와 대면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파이프 그림과 파이프가 아니라고 진술하는 문장 간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회화 작업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적 개념틀을 재검토하는 비판적 태도를 경험하게 한다. 라우셴버그의도 해체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당시 유명 화가였던 데 쿠닝의 작품을 사서 그의 그림을 지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오직 지우는 작업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회화 작업이라는 통념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남기고자 삶의 모든 양식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지워나가는 작업에서 오히려 삶의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상념할 수 있다.

3) 꿈

예술은 꿈이다. 꿈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소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제대로 꿔내려면 무의식 상태에 진입해야 할 것이다. 무의식은 공포스럽다. 하지만 쾌락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흔히 불온하고 금지된 것을 꿈꾼다. 그것은 처벌의 공포를 주지만 동시에 강한 쾌감을 선사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탐닉하는 자신은 의식 세계의 자아를 벗어나 변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의식된 자아에서 해방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만끽한다. 지금과 다른 존재로의 변신은 지금 상태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보고 그것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에게 이해 불가능한 대상 중 대표적인 것은 자연이다. 예술은 언제나 자연과의 화해라는 불가능한 꿈을 꿔왔다.
이화여대의 ECC관은 도미닉 페로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건물이되 텅 빈 공간으로서의 인상을 준다. 어떤 공간을 채우는 형태의 건축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선사하는 건축 방식은 건축물 위에 공원이라는 자연 공간을 끌어옴으로써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건물은 자연과 인공물이 공존하려는 꿈을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로 변신했다. 이종호의 작품 박수근 미술관 또한 자연이 건물이 되고 건물이 자연으로 변신하는,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라는 예술의 꿈이 구현된 작품이다.

 

질문 1) 현대미술의 시기는?

연대 구분을 명확히 나눌 수는 없다. 대략 보자면 1920-30년대는 모더니즘, 50-60년대는 아방가르드, 70-8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라 할 수있다. 그러나 각 경향의 운동은 특정 연대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질문 2) 한국 사회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은 사실 전통 및 맥락과 단절된 곳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리움미술관의 무맥락성도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맥락은 단절의 관계이다. 기존 전통과 경향, 사건들이 현재적 상황과 충돌을 빚고 일정한 단절의 긴장을 형성함으로써 맥락적 관계가 등장한다. 그러나 리움은 뜬금없이 불쑥 세워진 완전한 무맥락성에 있다. 전혀 다른 의도와 맥락 속에서 등장한 구현물들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아무런 긴장 관계의 형성도 없이 억지로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철학과 예술 새로운 관점에서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추천해 주신 한국 내 작품들을 보고싶어집니다.

건축은 예술 작품이지만 동시에 공공 생활을 책임지는 유산이 될 수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도시 계획이 앞으로 더욱 성숙하고, 건축이 미래의 유산임을 염두에 둘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은 느끼는 것일까? 이해하는 것일까? 문외한으로서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강의였다.

예술가는 ‘시작과 끝’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5년동안 감상해오던 ‘바깥 미술회’의 작품들이 그동안의 시간과는 달리 나의 심상의 영향을 받아 크게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실제 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지난해 그들이 겪었던 쓰나미의 슬픔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건희 부인 홍라희가 비싼 예술품을 대중과 함께 즐기기를 바랍니다.

해체의 현 현상을 시적으로 살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건축 미학에 대해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강의를 통해 예술에 대한 새 시각을 갖출 수 있었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기술이 골치 아픈 대상이듯이 공학 종사자에게 에술이란 대하기 두려운 대상이다. 이병창 선생님의 사례 제시와 설명으로 예술에 대해 두려움을 덜어내고 재미를 심는 시간이었다.

구보씨, 안철수의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구보씨, 안철수의 크기를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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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며칠 전 TV에서 안철수가 출연한라는 프로를 보다가 구보씨는 문득, 머리 크고 키 작은 것으로야 안철수가 구보씨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키 크고 머리 작은 걸 좋아하는 세상이라지만, 세간의 기준도 사람 나름으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하긴, 보이지 않는 키도 있으니까… 구보씨는 인천 출신의 옛 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키가 꽤 작은 편이었던 그 친구는 그런 단점(短點)에 전혀 굴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정신적인 키’를 내세웠다. “오해하지 마라. 이래 뵈도 마음만은 꺽다리다.” 요새의버전으로 하면 이런 식이었다고 할까. 실제로 마음의 길이를 재어보지 못했으나, 언제나 여유 있고 푸근한 친구였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정신적인 키는 얼마나 될까. 구보씨는 그 프로 내내 앉은 모습만 보여주는 안철수의 정신적 키를 가늠하려고 애썼다. 그간의 고심이 처음의 긴장한 표정에서 언뜻 드러나기도 했다.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히고 흰 머리도 늘었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철수 원장의 SBS출연 모습, 출처: SBS이제 안철수가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만이 아니라 최근에 펴낸 책을 보면, 그 준비를 상당 기간 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직접적인 경험은 부족할지라도, 과외 수업을 통해서건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준비를 꽤 갖추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아직 나쁠 건 없다는 게 구보씨의 생각이다. 안철수 효과는 일단 긍정적이다. 기성의 정치에 대한 변화 요구를 대변하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 효과를 좀 더 이어나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더 보태기 어려울 정도로 말들이 많다. 그런데 구보씨로서는 논의의 중심을 약간 빗겨나 특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안철수의 경우가 이제는 거의 잊힌 옛 지도자상의 이상적(理想的) 전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릇 지도자나 통치자는 자신이 잘났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과 인품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고 밀어 올리는 것이라는 전통 말이다.

그런 전통이 정말 있느냐구? 물론이다. 따지자면 요순(堯舜) 시대부터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그 덕성으로 임금이 되었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은 치수(治水)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위에 올랐다. 당시에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악다구니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인물을 찾아 임금으로 세우는 것이 과제였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세속의 권력을 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기피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자신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는 말을 듣고 강물에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추대로 임금이 되었고 이후 석탈해나 김알지 등 다른 성씨들이 돌아가며 왕 노릇을 했다. 구보씨가 어릴 때만 해도 그런 전통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남 앞에 함부로 나서거나 스스로 우두머리가 되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었다. 이러저런 자리에 추천이 되더라도 더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리라고 배웠다. 학급의 반장 선거에서 자기 이름을 적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낯 뜨거운 일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가 크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닐 경우다. 부족 모임에 가까운 옛 국가에서는 왕이라고 해 봐야 큰 권한을 누린다기보다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았다. 오늘날도 위세는 없고 책임만 많은 자리는 서로 미루지 않은가. 왕위에 대한 욕심이 강해지고 세습이 일반화한 것은 챙겨 가질 것이 많아진 이후였다. 중국에서는 하나라 우왕의 아들인 계(啓)로부터 세습이 행해졌고 우리의 경우도 2~4세기 경에 이르면 세습이 확립된다. 그렇더라도 덕 있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선양(禪讓)의 정신은 오랫동안 유교 정치의 이상으로 남아 있었다.

민주주의 시대에 선양이니 덕치니 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민주(民主)의 민이 단일한 것이 아닌 한, 오늘날의 정치는 이해관계의 반영이고 조절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조절이 온갖 밀쳐내기와 나눠먹기로 행해지고 강자에 빌붙기와 약자를 억누르기로 이뤄질 때, 도덕적인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해관계로 엮인 정치의 장에서 단련이 된 인물들보다 정치에 대한 야심이 원래 없거나 약했던 인물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오늘의 사태는, 누구나 인정하듯 기존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의 증거다.
, 김영사, 2012.안철수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주변에서 부추기고 유혹하는 일이야 벌써 오래 전부터 있었다. 만일 정치적인 야심이 본래 있었다면 일찌감치 등장했을 것이다. 이명박과 다른 부류의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안철수 현상을 해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구보씨는 생각한다. 안철수를 ‘IT시대의 이명박’이라고 하는 것으로는 그가 내보이는 도덕성과 상식적 합리성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기대를 가늠하기 어렵다.

안철수의 긍정적인 이미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사심 없음이고 공익 지향성이며 약자에 대한 관심이다. 백신 개발과 무료 배포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래, 그는 20여 년간 그런 이미지를 지키고 키워 왔다. 박원순에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이유도 박원순이 그 자리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안철수의 판단 방식은 이상적인 지도자의 선정에 대한 전통적인 상과 들어맞는다. 또 그렇게 양보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심 없는 인물이라면 더 큰 자리에 적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대중들의 판단 또한 지도자 선정의 전통적인 상과 어울린다.

“철학자로서야 그런 면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굉장히 나이브한 생각이야.”

C는 언제나 그렇듯 약간 비관적이다. 한 명뿐인 직원마저 휴가 간 출판사의 사무실에는 이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기에도 텁텁하고 후덥지근하다. C는 에어컨을 켜면 금방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불과 5년 전을 생각해 봐. 그 때 이명박의 지지율은 지금 안철수의 지지율을 훨씬 뛰어넘었다구. 이명박이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지도자 상에 걸맞아서 그랬을까? 천만에. 오히려 거꾸로였지. 이명박의 비도덕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 눈을 감았어. 반면에 문국현은 또 어땠어? 문국현은 서투르게나마 이명박과 다른 윤리적 사회 경영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허망했지. 대중은 도덕성을 이유로 대통령을 뽑지 않아.”

“나도 물론 도덕성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건 아니야.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확실히 정치에서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지. 심지어 박근혜조차 신뢰성과 약속 지키기를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잖아. 이게 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요구의 뿌리를 전통에서 찾는 것이 무의미하진 않을 거야. 어떤 요구든 잠재된 바탕 위에서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민중의 요구는 때로 변덕스러워 보이지만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결국은 제 갈 길을 잡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도덕성은 정치에선 양념 같은 거야. 고춧가루를 마구 뿌리거나 소금을 함부로 쳐서 못 먹을 것 같은 음식으로 망가뜨려 내치기는 좋지만, 양념만으론 괜찮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구. 안철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이전 음식을 먹어 보니 상한 거라서 신선한 음식을 찾는 건데, 원재료가 부실한 채 몇 가지 양념만으로는 요리가 만들어지지 않거든. 금방 그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라구.”

“원재료? 그게 뭐야?”

“정치에서의 재료야 힘이지. 가장 중요한 힘은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거고. 그게 곧 쌀과 고기 같은 거야. 물론 도덕성도 힘이 아닌 건 아니고 재료가 아닌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재료에 지나지 않아. 쌀이나 고기 같은 기본 재료가 부실하면 그 위에 채소나 양념을 아무리 잘 깔아놔 봐야 겉으로만 맛있어 보일 뿐이야. 안철수는 턱없이 부족한 기본 재료로 음식을 만들려는 서툰 요리사와 같다구.”

“그럼, 안철수가 안 된다는 거야?”

“대통령 말이야? 글쎄,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과가 좋진 않을 거야. 안철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모델로 삼겠다고 하던데, 루즈벨트는 빵빵한 배경에 서른도 안 되어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들어선 인물이야. 1932년에 대통령이 되기 전에 관료로 1차 대전도 치루고 부통령 출마도 하고 주지사도 하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구. 뉴딜을 추진할 힘이 그냥 생기는 건 아니야. 안철수는 루즈벨트는커녕 오바마하고도 비교가 안 되지만, 지금 오바마를 봐. 운신의 폭이라는 게 한 뼘밖에 안 되잖아.”

“정치인이라면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이 배경이지 않을까? 그들의 요구가 힘이고 말이야.”

“하하…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노무현의 경우를 생각해 봐. 지지자를 계속 잡아두려면 그들의 요구에 맞는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구. 그런데 무엇을 통해서 그럴 수 있지? 도덕성을 통해서? 그런 양념을 걷어내는 데에는 긴 시간이 들지 않아.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나 룰라의 브라질처럼 자원이나 풍부한 나라 같으면, 그간 해먹던 놈들을 쫓아내고 경제를 정상화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계속 끌어낼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처지가 그렇지도 못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앞으로 세계의 경제 상황은, 그러니까 이제 다시 골이 파이기 시작한 공황은 점점 더 심해질 거라구. 우리 같은 경제 구조로는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가 다가올 공산이 커. 파시즘으로 안 가면 다행이야.”

“파시즘? 안철수가 말이야?”

“안철수가 직접 그런 길로 가지는 않겠지. 그러나 정치가 여러 갈등을 해결하는 데 무력함을 보이고 경제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래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면 무력과 선동으로 정권을 잡으려는 전체주의 세력이 득세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

“하하… C야, 그렇게까지야, 민주화 이후 20년이 넘었는데…”

“그래, 나도 안 그러면 좋겠는데, 역사는 전진만 하는 게 아니거든. 지금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봐. 불안불안하잖아.”

“흠… 그러나저러나은 읽어 봤지?”

“봤어. 대충… 그런데 정치가 학습한다고 금방 되진 않으니까…”

“많이 팔렸다지?”

“글쎄, 20만부는 넘었겠지…”

“하…나온 지 1주일 만에… C야, 근데 너네 출판사에서는 일 년에 책이 몇 부나 나가냐?”

“뭐? 지금 그딴 건 왜 물어?”

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한철연 교육강좌]- ⑨

[한철연 교육강좌]- ⑨

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

 

강사 : 박종성(호원대 외래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박종성 회원(호원대 외래교수)이 강의한 이번 강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론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해명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강의 제목에서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적 소유에 대한 맹목적 신뢰 의식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의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의로 ‘사적 소유의 퇴마’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말일까?

박종성 호원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분명히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소유 자체를 없애자거나 조야한 수준의 공유제를 만들자는 말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철폐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근대 이성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 이성은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는 이성으로서의 특성을 지녔다. 근대의 계량적 이성은 모든 것을 양적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이를 통해 그것을 제어하고자 했다.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은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물의 계량화는 각 개별 존재자의 질적 특성을 무시하고 양적 기준 하나로 추상화(균일화, 동일화)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동일화 원리가 화폐라는 양적 기준을 통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화폐를 얼마나 소유했고, 소유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따라 인격을 평가하고 서로를 견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폐를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는 서로를 수단으로 대우하면서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다. 사적 소유 관계는 이러한 소외 관계를 일반화시킨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 관계의 앙상블을 만드려면 사적 소유 관계의 철폐가 가장 좋은 길이 된다.

사실 사적 소유 철폐론은 마르크스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 토마스 모어 등도 공유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유제는 조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플라톤의 공유제는 모든 것(아내와 자식마저도)을 말 그대로 함께 소유하면서 사회를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 체제는 만인에 의해 사적소유로서 소유될 수 없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한다. 가령 재능과 같은 것을 폭력적 방식으로 도외시하려고 한다. 물리적, 현시적 소유만이 생과 생활의 유일한 목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MEW, 1, 534) “이 여성공유사상이 이 완전히 조야하고 반이성적인 공산주의의 노골적인 비밀…..이 공산주의는 인간의 개성(Pers?nlichkeit)을 도처에서 부정”(같은 책, 같은 쪽)한다. 사실 마르크스가 바라보는 공산주의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본질력을 표현하는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게 베어있다. 그의 사적 소유 철폐론도 모든 개인적 소유의 철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소유하도록 장려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다방면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 자유가 가능해진다.”(『독일이데올로기』 74쪽 / 128-9쪽)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적 소유는 소외된 노동의 결과물이다.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기계나 공장과 같은 생산 수단 및 그 밖의 소유물들은 원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산물들이 착취되어 자본가의 소유가 된다. 따라서 자본가의 사적 소유물은 노동자의 소외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는 이러한 관계가 심화되어 사적 소유 관계가 노동 소외를 더욱 심화시킨다.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를 고용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통해 화폐 및 생산물의 사적 소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이내 좌절된다. 임금 노동 관계에서 노동자가 만든 것은 노동한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임노동 계약 관계에서는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은 자기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노동 관계 밖의 노동자는 자기가 만든 노동 생산물에서 자아실현의 기쁨을 맛본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임노동 계약 관계에 묶인 노동자는 자아 실현의 기쁨은 커녕 노동 생산물의 상실로 인해 좌절감을 느낀다. 오히려 자신의 생산물에 의해 제어되는 이율배반을 경험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노동 소외라고 규정했다. 노동자의 좌절과 예속 상태는 결과적으로 생산물의 제어력을 자본가에게만 인정하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에서 비롯한다. 이렇게 맺어진 사적 소유 관계는 결국 인간 관계 전체를 왜곡시킨다. 그런면에서 볼 때 “사적 소유의 지양은 모든 인간적 감각들과 속성들의 완전한 해방이다. […] 이러한 감각과 속성들은 인간적으로 되고 […] 대상은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대상 즉 인간으로부터 기인하여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전화된다. […] 대상적 현실이 인간의 본질적 능력(die menschlichen Wesenskr?te)의 현실이 됨으로써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본질적 능력의 현실이 됨으로써 […] 모든 대상들은 자기 자신의 대상화 즉 인간의 개성(Individualit?)을 확인하고 실현하는 대상이 된다.”(?M 540-1쪽) 여기서 우리는 지양(Aufhebung)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제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의 생산적인 성과를 받아 안으면서 새로운 창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 폐지론은 사적 소유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적 소유와 분업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전면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므로 총체적인 개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전면적으로 도야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개인적] 자유(pers?liche Freiheit)가 가능해진다. […] 현실적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연합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연합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유를 획득한다.”(『독일이데올로기』74쪽 / 129쪽)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으로서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인격적[개인적] 자유’도 획득하게 된다. 계급 사회에서 물질적 조건들은 개인들에게 외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 주어져 왔는데, 인격적[개인적] 자유란 “일정한 조건들 내에서 방해받지 않고 우연성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독일이데올로기』 75쪽 / 130쪽)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계급 사회에서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 조건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었던 지배 계급의 성원들에게만 주어졌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폐지되므로 개인들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물질적 수단이나 조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이러한 인격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는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인 강제력에 포섭된 계급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던 자유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9강 후기

제가 알고 있던 마르크스보다 좀 더 말랑말랑한 마르크스를 만난 강의였습니다.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나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주의 체제 하에서 착취가 공공연히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서 사적 소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강사님의 거침없는 날 것으로서의 표현 방식이 신선하고 매우 공감적이었다. 강사님 짱!!

 

자본주의를 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사적 소유에 대해 철학적인 면과 함께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맑스에 대해 우리의 언어, 현실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도록 강의한 박종성 선생께 감사합니다.

 

‘16-14-12-10-8’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숫자의 나열이다. ‘사회적 관계의 총화’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실현 해나가는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 것. 나 또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맑스가 추구한 인간은 전인적 인간, 미학적 인간

 

힘든 몸 이끌고 강의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강의 내용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두려워하랴[노동이야기]- ④

노동자가 노동을 두려워하랴[노동이야기]-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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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 원(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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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기물 공장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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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에 의하면 외국인 근로자가 근로연수생 명목으로 들어올 때 1500-3000달러를 들여야 한다. 그 비용이 희한하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200만원 이상, 송출회사, 대사관 부로커들이 ‘먹는다’.

그들은 자기 조국을 위해 일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을 키워준 것은 그들의 이웃과 가족이다. 교육받고 일 할 준비 했으나 그곳에는 일자리가 없어 외국에 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들을 감수한다.

겨울에는 일이 없다. 몇 개 있는 일자리는 대단히 열악한 것으로, 일 년 내내 그곳을 마다하지 않고 나갔던 외국 사람들의 몫이다. 내국인들은 그곳에 하루 일 갔다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용역회사가 일 배치하는 패턴이 있다. 자주 오는 사람이 우선이고, 어떤 현장에 계속 나가는 사람에게 그 현장에 우선권을 준다. 나 같이 가끔 가는 이들은 금, 토요일에나 일이 돌아온다.

노동자들도 천차만별이다. 금, 토요일은 경마장에 간다. 일주일 일 했으니 주머니들 두둑히 가지고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차비도 안 남기고 다 쓰고 온다.

이번 겨울, 나는 용역회사에 나가 하루 일했다. 방수회사에서는 겨울이라서 외부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일한 날, 중국동포 두 명, 키르키즈스탄에서 온 사람들 두 명, 나 이렇게 5명이 폐기물 처리공장으로 배치되었다.

중국 동포 김 씨는 특별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술을 좋아해서, 현장에서 고철을 주워가는 고물상 주인이 항상 현장에 사다 놓는 소주를 아침부터 마신다. 그는 앞 서 말한, 열악한 환경의 현장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몇 년째 다니고 있다.

키르키즈스탄에서 온 둘 중 한 명은 작년에도 같이 일적 적 있다. 푸른 눈에 키가 크다. 그에게, ‘카레이스키(혼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아리안’이라고 답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리스 철학의 원류와 니체의 [비극의 탄생] 해석의 문제로, BC 15세기 그리스에 들어와 아티카 문화를 발전시킨 고대 ‘아리안’들에 대해 관심 관심이 있어, 지금도 그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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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하는 일은 항상 똑같다. 컨베어 벨트 옆에 마련한 의자에 앉아 쓰레기 주어내는 일 네 사람, 컨베이어벨트에 올리기 전 폐기물에서 미리 나무 토막 등 큰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작업이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 한 적 있다. 쇠붙이 등을 골라내는 전기 자석 장치에 의해 콘덴샤가 폭발하면 대단히 놀라게 된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불이 붙기도 한다. 또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올라오는 것들은 만지는 것 자체만으로, 아니 보는 것만으로도 파상풍 걸릴 듯하다.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한다. 겨울이면 차가운 얼음덩어리 쓰레기를 주워내는 통에 손에 동상 걸리는 듯하다.

이렇게 처리된 쓰레기는 태워 스팀으로 만들어 옆 제지공장에 보내고, 남은 모래와 자갈은 다시 사용한다. 플라스틱과 물렝이(연질의 플라스틱)는 재사용 분리하지 않는다. 쓰레기들과 함께 연료를 분사해 태운다. 그 과정에서 스팀을 만들어 옆 한솔제지에 공급한다.

나는 컨베이어벨트의 처음 공정, 포크레인이 쓰레기더미를 파내 흩어놓으면 굵은 쓰레기를 주워내는 곳으로 배치되었다. 작업할 것들은 산허리를 파헤치고 나온 생나무들, 집을 허문 뒤 나오는 목재들이었다. 컨베이어벨트 작업보다는 비교적 쉽다. 포클레인 기사는, ‘왔다갔다 하지 말고 잘 주어 내. 이거 하려고 (용역회사에서 작업자) 부른거니까’, 라는 등 잔소리도 심했다. 하우스 덮개 같은 큰 물건은 쇠스랑으로 찍어 끌어내었다.

태국에서 온,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도통 외울 수 없는 이와 함께 일했다. 옹박이라 이름 붙였다. 바싹 마른 몸매에 순박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 몸에서 기운이 얼마나 센지, 내 몸통 반 만 한 나무도 휙 집어던진다. 옹박은 회사에서 월급 주는 것이 아니다. 고물상에서 이곳에 한 사람 배치했다. 고철을 주어 모으되, 쓰레기도 주워낸다.

그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무에타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말에서 한 단어만 알아들었다. “무에타이!”, 하더니, 시범을 보인다. 팔끔치로 가격하고 무릎을 들어올려, 밖으로 뺀 자세에서 상대 옆구리 가격하고는, 번개같이 뒤돌아서며 상대의 머리를 가격하는 흉내를 낸다. 몇 년 수련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손가락 세 개를 내 보였다. 3년 수련할 경제력이 있다면 그도 태국에서는 비교적 경제 형편이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의 시범 답례로 양가 태극권을 시연했다. 그가 내가 시연한 것이 태권도냐고 했다. 내가 태극권이라고, 중국 기(氣) 운동이라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상명대에 가장 좋은 만화도서관이 있다. 각국의 만화들이 있다. 평소, 도서관으로 걸어가서 만화도 보고 책도 보다가 점심 먹고 나서는 한적한 곳을 찾아 태극권을 했다. 운동 안하고 나이 들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극권을 돈 내고 배운다는 것은 노동자에게 불가능하다. 비용뿐만 아니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태극권 선생도,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나 태극권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문화도 향유할 수 있는 사람, 부자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에타이 덕분에 점심 먹으며 나에 대한 태국 사람들의 호의어린 눈길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옹박이 마구 자기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을지라도, 내가 무에타이를 좋아한다, 태국 사람들 무술 최고다, 라고 했다는 등의 말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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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단 짜기?

어디에나 가난이 펼쳐져 있다. 집 뒤에 목욕탕 겸 찜질방이 있다. 용역회사에서 만났던 사람들 몇 명을 본다. 잠잘 곳이 없어 찜질방에서 생활한다 해도 그들은 노동하는 사람, 노동자이다.

40대 신씨는 힘이 좋아 6미터짜리 강관을 두 개씩 메고도 날아다녔다. 어느 노인은 ‘저녁은 대개 빵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덜 쓰고 저축하기 위해서다. 잘 먹지 못하는 탓에 그는 체중이 50킬로도 안 나가 보였다.

찜질방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함께 일했던 김씨이다. 그와 손 맞춰 며칠을 함께 계단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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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거푸집 짜는 것은 3차원의 사고를 필요로 한다. 평면도를 보고 입면을 생각하고 다시 전체 계단을 상상해야 한다. 김씨와 함께 만들었던 계단 도면은 높이 580cm, 상하 계단넓이 사이 20cm를 뗀, 한 쪽 넓이 120cm 양 넓이 합 260cm, 오도리바(계단참) 네 개의 비교적 큰 지하계단이다.

ⅰ) 계단 오름 방향 하부 벽체 거푸집을 준비한다. 계단을 향해 마주선다면 오른쪽이 오름 측이 된다. 후미당 세움 벽체 넓이 180cm, 높이130cm으로 합판을 잘라 준비하고, 여기에 계단 시작부 높이 30을 더해서 높이 160cm이 되도록 판넬을 만든다.

ⅱ) 계단벽체(후미당 하부), 전면, 좌측에 준비한 판넬과 철재 폼을 이용하여 외부 거푸집에 고정시킨다. 철재 폼은 타이가 잘 맞는다. 그러나 목재 판넬은 외부 폼과 이가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세파타이(안밖의 이가 맞지 않는 부분에 쓰는 변형타이)를 사용한다.

각 벽체가 콘크리트 타설시 밀리지 않도록 강관파이프를 가로 세로로 고정시킨다.

ⅲ) 상방향 후미당(계단 밑바닥)을 올릴 작업을 한다. 아시바(밭침대)를 설치하면서 시다오비끼(밑밭침) 9cm, 네다(횡목) 9cm을 고정시킨 후, 치수대로 합판을 잘라 후미당을 완성한다.

ⅳ) 첫 번째 오도리바를 설치한다. 아시바를 사용하여 시다와 네다를 설치한 후, 가로260cm, 상방향 96cm, 하방향 130cm이 되도록 합판을 잘라 고정시킨다.

지금까지 한 작업을 네 번 반복하면 네 개의 오도리바와 계단 총 높이(590cm)의 계단하부 거푸집이 완성된다.

이제 계단 상부거푸집을 짜 올려야 한다.

ⅴ) 계단 상부 벽체 거푸집(사끼리)을 설치한다. 보폭, 보고 부분을 계단모양이 나오도록 나나미(사끼리)로 잘라 판넬을 짜 붙이는 작업이다. 이 때 철재 거푸집폼을 사용하여 공중에 떠올린 상태로 외부 거푸집에 고정시킨 후, 그 아랫부분에 베니야를 잘라 판넬을 짜 붙인다. 일곱 계단을 높이와 폭에 맞도록 잘라 판넬을 짠 후, 세파타이를 이용해 외부 거푸집과 기존 설치한 계단 상부 폼에 고정시킨다.

이 때 각 보폭 보고 계단 콘크리트 두께 15cm가 나오는지(이 부분이 허공에 떠 있어야만 콘크리트가 이 부분에 들어간다)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ⅳ) 전방 벽체를 다음 오도리바(세 번째 오도리바) 높이까지 설치한다. 대개 폼 치수가 부족하거나 남는다. 부족하게 폼을 올린 후, 치수 높이까지 합판을 잘라 판넬을 짜서 보강한다. 오도리바에서 콘크리트 타설할 치수 15cm를 허공에 띄워, 외부 거푸집에 폼을 고정시킨다.

ⅶ) 내림계단(두 번째 오도리바로 올라가는 법면-왼쪽 방향) 벽체(사끼리)를 설치한다. 이때 콘크리트를 타설했을 때 오도리바 세로 방향이 140cm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업(ⅴ, ⅳ, ⅶ)을 한번 더 반복하면 계단 내부 벽체 거푸집이 완성된다.

ⅷ) 계단폭 120cm가 되도록, 그리고 콘크리트 높이 15cm를 채울 수 있는 높이로 법면 네 군데에 게꾸미 고정대를 설치한다.

목수가 작업을 끝내면 철근공이 작업을 한다 철근작업이 끝나면,

Ⅸ) 완성된 계단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채울 폭 26cm, 높이 17cm 간격으로 게꾸미(계단 밭침)를 설치한다.

일 끝나면 김 씨와 나는 거의 매일 ‘슈퍼 했’다. 나는 대개 맥주나 막걸리를, 그는 소주를 마셨다. 그는 당시에 목수 송출회사의 숙소에서 기거했다. 목수 송출회사란 두목 노동자가 만든 회사로, 용역회사와 다르다. 목수 예닐곱 또는 열 명이 소속돼 있어 두목 노동자가 이들을 시켜 작은 현장에서 도급노동도 하고, 대 건설회사 직영 형식으로 목수들을 ‘대여’한 다음, 회사에서 팀장 수당을 받는다. 도급노동이 불법이므로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찾아낸 방법으로, 일종의 파견노동 형식을 제공하는 것이 송출회사의 역할이다.

하루는 김씨가 술 취한 채 일하러 왔다. 온전한 날에도 가끔 의견 충돌하는데, 술 취한 그와는 불안해서 함께 일 할 수 없었다. 나는 반장에게, ‘말 못할 사정으로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하고는 그냥 돌아왔다. 그 뒤로 그 회사에 일하러 가지 못했다. 기본급 받는 회사에서 일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는 남쪽에 가족이 있었다. 그의 사정을 듣자면, 아이들 공부 중이라서 겨울이 가장 문제라고 했다. 여느 노동자처럼 겨울 일 못하면 생활비는 빛이 되어, 다음 해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지금 그는 송출회사 숙소를 나와, 용역회사에서 일을 다닌다고 했다. 일 다니며 이곳 찜질방을 숙소로 삼는다. 그는 올 겨울 내내 일했다. 오늘만 쉬는 중이다. 내가, “겨울에 일해서 다행이네요, 겨울에 일하면 힘들기야 하지…” 라고 말하자, 그는 “억지로 일하는 거지요, 일 시작해서 아침 열 시 까지는 손이 시려워 어찌할 줄 모르죠”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김씨의 의중을 알 수 있다. 일 없는 것이 문제이지, 노동자가 고생하는거야 문제될 거 없다. 김씨는 겨울에 일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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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푸집 기능사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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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그냥 놀아요. 용역회사 가끔 나가봐도 일이 없어요.”

“일 안하고 어떻게 살아요? 생활비는?”

“거푸집 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요. 그 덕분에 회사에서 기본급을 받아요.”

“그 자격증이 어떻게 소용되죠? 어떤 식으로 시험을 봐요?”

“우리 포스코 현장에서 일한 적 있잖아요, 거기 형틀 반장이 있었어요. 도면 들고 다니며 스미(먹줄) 놓은 거 대조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라고 지시하던 사람이 형틀목공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죠. 연줄이 있다면 그 사람처럼 월급쟁이 할 수도 있죠. 또는 회사에 소속해서 일 할 수도 있어요. 각종 공사 응찰시 기능공 자격증이 필요하거든요. 기본급이 얼마 안되는 대신, 일하면 일당을 따로 받는 식이죠.”

거푸집 기능사 자격증 시험은 5시간 30분을 준다. 시험 문제는 ‘현치도를 작성한 후, 내경 480 cm, 외경 530cm, 높이 560cm의 원형 거푸집 반쪽을 짜라’고 했다. 시험문제 도면은 수직재 16개, 띠장 12개, 연결재 9개가 있다. 필요한 재료를 받았다. 현치도를 그리기 위한 켄트지랑 목재들이다.

ⅰ) 자와 콤파스를 사용해서 켄트지에 내경 480, 외경 530이 되도록 수직재와 띠장, 연결재를 평면화 해서 그린다.

ⅱ) 현치도 위에 띠장 재료를 올리고, 컴파스를 사용해서 도면에서 따 올린 후, 직소톱을 이용해서 자른다. 연결재도 같은 식으로 원형이 되도록 잘랐다. 작업 순서대로라면 수직재를 자동대패로 가공해야 하지만 수험생들이 자동대패에 몰려있어 시간을 벌기 위해 띠장과 연결재를 먼저(우선) 가공했다.

ⅲ) 자동대패를 이용하여 수직재를 두께 25mm, 넓이 52mm로 가공했다.

ⅵ) 기계대패로 수직재를 외경52cm, 내경 48mm로 마름질했다. 대패질하기 편하도록 현치도보다 1mm씩 줄였다.

작업중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 기계대패가 고장났으니, 다 썼으면 내것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는 ‘실어도(초짜)’다. 기계대패는 힘주어 쓰면 탄소가 타서 금방 고장난다. 타인 연장을 빌려 쓰면 탈락이다. 그 사실을 말해 주었는데, 그럴지라도 빌려달라 했다. 초짜가 시험보러 오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외국인일 경우 기능공 자격증으로 비자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ⅴ) 수직재를 560mm씩 자른 후, 이것을 네 개씩 띠장 상단 중단 하단, 세 개에 고정시켰다. 고정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수직재 이가 잘 맞지 않으면 불합격이다. 서로 맞을 때까지 정교하게 대패질했다.

ⅵ) 띠장에 연결한 수직재 모듬, 도합 네 개를 연결재로 고정시켰다.

형틀이 완성되었다. 점검해 보니 합격 가능했다. 시험문제, 현치도, 형틀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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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기본급 받는다거나 회사 관리자가 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그 자격증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하자. 이런 건물 때문에 고생하는 후손들은 몇 십 년, 몇 백 년 후 이렇게 말 할지도 모른다. “배고파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일을 했다고? 속없는 인간들이 살았었군. 굶어 죽었어야 옳지. 그래, 배고프다고 무기공장에서도 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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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 안하는 겨울, 노동자는 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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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은 쓰지 않으면 아주 빨리 사그러진다. 일주일만 방구석에 쳐박혀 있어보라. 걷기에도 힘들어진다. 석탄 캐는 노동자가 옷에 석탄가루로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랴만, 일을 하래도 몸이 안 따라주면 애달프다. 평소 육체를 단련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하기 위한 운동은 맨손 체조가 제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필요한 근육은 노동하기 불편하다. 근육이 걸리적거려서 두터운 옷 입은 듯, 움직이기 둔하기 때문이다. 끌로드 르 르슈의 영화 [우리와 같은 타인(Les Uns et Les Autres-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에 맨손체조하기 좋은 동작들이 있다. 이 영화는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중심에 두고, 2차 대전의 와중에 있는 네 예술가의 인생 여정을 사실과 상상을 교차하여 그리고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글렌 밀러, 에디뜨 삐아프, 루돌프 누레예프가 그들이다. 감독이 가장 큰 공로자임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작곡가까지 포함하여 걸출한 여섯 명의 천재가 등장하는 셈이다.

르 르슈의 영화 초반과 후반부, 유니세프 자선 공연에 위 네 사람의 예술가들(과 후손들)이 볼레로를 연주하고 누레예프 역의 배우가 차라리 운동에 가까운 춤을 춘다. 춤의 요점은 하체에 있다.

두 발바닥을 밖으로 벌려, 왼 발은 오른 쪽에, 오른 발은 왼 쪽으로 교차시킨 다음, 무릅을 적당히 굽히고 앞 뒷발 을 편히 벌린다. 발 뒷끔치를 볼레로 리듬에 맞추어 오리내리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앞, 뒷발을 좌우로 움직이기도 한다. 배우의 손동작을 따라 하기에 여의치 않아, 스트레칭하듯 자세를 취한다.

볼레로가 중요 모티프가 되는 영화가 또 하나 있다.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한 [텐]이다. 또다른 여주인공은 볼레로가 성애(性愛)에 가장 적합한 음악으로 묘사한다. 음악이 어떻게 감성을 자극하는지, 어떻게 엑스타시(Ex-tasis)를 가능하게 하는지 여부는 각 사람의 정서에 따라 틀리겠으나, 어쨌든 감성해방의 기능이 있음은 분명하다.

볼레로 체조(춤)는 온 몸이 뻐근할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 그러나 이 동작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음악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다가 안죽겠다고 떼쓸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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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 여전히 크기를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구보씨 여전히 크기를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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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 원(부산대 교수)

 

세상에 글 잘 쓰는 이들이야 많고 많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 가운데서도 구보씨가 몇 손가락에 꼽는 사람이다. 구보씨는 20여 년 전 [다윈 이후]라는 책을 처음 대했을 때의 감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책을 읽는다고 밤을 꼴딱 새운 것은 당시 구보씨가 젊고 팔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굴드는 유명한 고생물학자고 과학사가지만, 인문학적 소양도 누구 못지않다. 덕택에 그의 글에는 다른 데서는 찾기 힘든 종합적 미덕이 넘쳐난다. 수수께끼와 추론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날카로운 비판과 풍부한 유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통념을 깨는 매력적인 통찰이 있다.

굴드가 괴팍하고 뻔뻔하고 심지어 야비하기조차 하다는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인 과학적 글쓰기에서 어쩌면 굴드보다 더 잘 알려진 리차드 도킨스 진영과 오랫동안 각을 세우고 논쟁을 해온 탓이 클 것이다. 도킨스와 굴드는 동갑나기(1941년생)인데, 안타깝게도 굴드는 십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도킨스는 아직도 활동 중이다. 도킨스의 출세작인 [이기적 유전자](1976)가 나온 시기나 굴드가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에세이집 [다윈 이후](1977)를 펴낸 시기도 비슷하다. (굴드의 그런 에세이집은 이후 아홉 권이 더 나왔다.)

 

[이기적 유전자]도 정말 뛰어난 책이고 그 성가(聲價)는 아마 [다윈 이후]보다 앞설 것이다. 그렇지만 글의 멋이나 맛은 굴드가 낫다는 게 구보씨의 생각이다. 더구나 구보씨가 보기에는 진화론의 쟁점들에 관해서도 굴드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대목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도킨스에 호의적인 최재천 같은 이들이 큰 활약을 하는 바람에 이 둘에 대한 평가가 치우치거나 기운 면이 있다. 다윈주의를 소개하고 전파하는 데 공로가 큰 최재천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다. 윌슨의

여성주의적 근본주의를 넘어서 [한철연 교육강좌]-⑧

[한철연 교육강좌]-⑧

여성주의적 근본주의를 넘어서

 

강사 : 강지은(건국대 외래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5월 20일에는 강지은 회원(건국대 외래교수)의 여성주의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강의는 성차별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사례에서 시작되었다. 세계경제포럼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135개 국가 중 107위였다. 이 기관이 지니고 있는 평가 기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일단 한국 사회가 그다지 성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은 대략 짐작할 만한 자료라 여겨진다.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강하게 요청되는 현실적 단면이다.

 

강지은 건국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페미니즘은 성 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투쟁이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어떤 특정 집단 여성들이나 특정 인종 및 계급의 여성들에게 이익을 주는 데 있지 않다. 또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특권을 줄 것을 주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의 삶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여성 권리에 대한 옹호’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나 실체를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갈래의 이념적 토대와 관점을 견지하는 사상, 이론, 행동주의로 구성된 묶음이다. 페미니즘은 통상 다음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①여성은 체계적으로 억압당해왔으며, ②젠더 관계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되거나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며, ③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실천.

여성주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답한다. ①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종속되어 왔는가? ②우리는 어떻게 특정 사건을 개별적 불운이 아니라 성(sex)에 기반한 사회적 억압의 한 부분으로서 이해할 것인가? ③우리는 어떻게 억압적 상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④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종속에 저항할 수 있는가? ⑤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⑥삶의 어떤 영역에 초점을 맞추어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 ⑦여성의 종속은 인종, 민족, 국적, 계급, 섹슈얼리티에 근거한 억압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 등등.

페미니즘의 사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① 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개인의 권리 개념을 발전시킨 18, 19세기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전략은 자유, 평등, 정의라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법적,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는 데에 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남녀 동수 공천을 강제하는 법을 제정한 것도 이러한 사조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임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여성의 종속은 사유재산제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 계급사회, 여성 억압은 필연적 관계를 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편의 역할은 임노동을 위해 가정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된다. 아내는 임노동 체제의 지속을 위해 가사에 종사하도록 강제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이유는 가사노동의 위상이 대량 생산적 임노동 체제를 보조하는 것으로 배치된다는 데에 있다. 시장과 가사노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혼 여성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임금의 유동적 노동력을 제공하는 산업예비군이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여성문제를 확장시킨 데에 이바지 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에 의한 여성 억압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남성 문화에 의한 여성 억압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③ 급진주의 페미니즘

1960년대 후반에 생겨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에 의한 여성 억압, 즉 가부장적 억압이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 중 가장 근본적이라고 보며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에 주목한다. 급진주의의 주장은 첫째 여성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이며, 둘째 여성 억압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 현상이고, 마지막으로 여성 억압은 근절하기 가장 어려운 억압 형태로 계급 사회 철폐와 같은 변화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아주 뿌리 깊은 것이다. 이들은 공적인 영역에서의 기회 평등을 추구하는 제도 개혁의 방식만으로는 여성 억압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가부장제 문화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④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중요 요인인 문화적 제도들(가족, 섹슈얼리티 등)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둠으로써 마르크스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의 통찰을 결합시킨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생산 양식의 변화만으로 여성 해방을 이룰 수는 없다고 본다. 여성 해방은 경제적 예속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정신적 혁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거나 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지난 2월 나꼼수의 비키니 파동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나꼼수를 지지하는 한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이라고 쓴 사진을 미권스(정봉주와 미래권력들) 게시판에 보냈다. 나꼼수 멤버들은 ‘가슴응원사진 대박, 코피를 조심하라’고 쓴 정봉주 접견서를 인터넷에 올렸고 나꼼수에서 비키니녀의 사진을 보고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하는 발언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꼼수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느냐 아니냐가 논란이 되었다. 나꼼수는 인간을 성적대상화하는 것과 동지의식은 같이 갈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강사는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조정희 씨의 자료를 예로 들며 김어준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열내는 페미니스트는 이제 필요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성성을 더 드러내는 ‘쿨한 엠브라’가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정희 씨는 남성 마초에 대응하는 여성 엠브라는 성적인 여성성을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여성이 대세라고 하였다.

그러나 강사는 우리 웹진 <이 시대와 철학> 2월 15일에 실린 황주영 씨의 ‘(나)꼼수’에 속지 말고 닥치고 페미니즘‘은 김어준 씨의 의견이나 조정희 씨의 견해가 갖는 허점을 날카롭게 찔렀음을 보여주었다. 아래는 황주영 씨의 기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글이다.

다행히도(?!) 나꼼수 멤버들은 (이번에 배운 건지 정말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지간한 진보적 남성 지식인에 비해서는 약간 더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방송에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판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가해자의 의도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여성이 이런 이슈에 민감할 권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기들은 배운 남자라고 항변했다. (이 정도 기본 지식을 가지고 칭찬받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배운 여자들은 배운 남자들만큼 못 믿을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진보적인’ 혹은 ‘비판적인’ 배운 남자들은 더 그렇다. 대학에서, 진보적 운동 단체들에서, 운동권 학생회에서 중심적인 활동을 했던 수많은 남성들과 교수들이 자신의 여성 ‘동지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걸 김어준씨가 모르진 않겠지.

삼국카페는 공동성명서에서 여성을 치어리더로 삼는 남성중심의 ‘반쪽 진보’인 ‘나꼼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 동지의식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심정으로 오래 몸담았던 진보적 집단에 등을 돌렸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여성운동을 시작했던가! 나꼼수 멤버들이 다른 남성들에 비해 1그램 정도 낫다거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변한 게 없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사실 이번 일에 대한 (나꼼수 멤버를 포함한) 남성들의 반응은 너무 빤하기 때문에 새삼 놀랄 것도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봐야 할 것은 저 삼국카페 회원들이 낸 공동성명서이며, 그들과 페미니스트 이론 사이의 격차, 그들과 비키니 응원 여성 및 그녀를 모방하며 나꼼수를 지지하는 여성들 사이의 격차, 그리고 이 후자의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격차다.

김어준씨의 말대로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은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 내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여러 방식으로 수정보완하려는 노력들도 있어왔다. (이런 걸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김어준씨는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관심을 끊었나보다.) 문제는 그 파급력이다. 현재 페미니즘이 20대 여성들에게 매력이 없는 건 이전 세대들과 지금 20대의 삶이 크게 다른 데 비해 페미니즘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20대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큰 변화나 도약이 없는 것은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여성들의 삶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많은 독려를 받으며 자란 젊은 여성들은 소위 알파걸이라고 불리고 엄친딸을 지향하며 산다. 이들은 제2의 수퍼우먼이지만 선배들이나 엄마처럼 지독하게 혹은 청승맞게 애쓰지 않는다. 여성성을 한껏 뽐내면서도 학업이나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싸워야 할 상대는 남성이 아니다.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애교로 의존하는 척 하면서 구워삶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하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현재 20대의 많은 여성들도 여전히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저런 특별법이 마련되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아직도 임노동과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라면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이 아직도 절실할 것이다. 이건 김어준씨가 스포츠 중계하듯이 ‘피해자 프레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와 줘야 되는데 안 나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어준씨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도구화하기로 결정한 그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 폭력이 피해자 프레임 페미니즘의 콜래트롤 데미지(부수적 피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어준씨가 간과한 또 하나의 부수적 결과가 있다. 그게 바로 비키니 응원 여성이나 코미디언 곽현화, MBC 이보경 기자와 같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걸 원하는 여성이야 없겠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피해의식도 없는 아주 당당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거칠고 민감한 페미니스트와도 거리를 두고 싶고, 고통스러워하고 청승맞은 피해자와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고 어떤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비꼬는 패러디물을 만들고, 나꼼수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비키니 응원에 참여한다. 이들은 개인이다. 이들은 여성 집단에 대해서 아무 고려도 하지 않는다. 이 여성들은 한편으로는 이른바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존재로 자신을 등장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대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성적 존재로 노출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자기가 처해있는 성적 입장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피해자 프레임과 더불어 속박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라는 일종의 강령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남성중심적 권력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게다가 이는 부수적인 게 아니라 결정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도구화’ 되는 것도 스스로 ‘도구화’ 하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에서 출발해 그것을 정치적 활동의 역량으로 확대하면서, 하이힐 신고 아스팔트를 걸으며 가카 퇴진을 외치고, 시위대에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플래시 몹을 선보이는 등 ‘발랄한’ 시위 방식을 보여주었다. ‘대의’를 위해서 어떤 취약 계층을 배제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사유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 프레임을 넘어선 이야기들을 제시하는 페미니즘 이론과 여전히 피해자 프레임을 필요로 하는 여성운동 및 여성의 현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느 쪽과도 관계되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과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페미니스트 의식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 사이에 어떤 공통성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꼼수를 이길 순 없다. 우리에겐 그만한 명성도 권력도 미디어도 없다. 게다가 그런 ‘팬덤’도 없다. 나꼼수의 지지자들은 이미 동지도 지지자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아이돌의 팬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들 믿고 배신하지 말자’며 팬심을 다지듯이, 다 필요 없고 김총수가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고 그 판단에 맡기고 우리는 한 길만 가자고 서로를 도닥이는 분위기다. 이렇든 천군만마를 가진 나꼼수는 꼴페라고 만날 욕만 들어먹는 여성들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사과한다면 잘해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정도겠지만, 이런 소릴 할 캐릭터들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민감할 권리는 있어도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을 권리는 없다며, 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점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돌리면서 회피해 가는 이런 담론에 또 휘둘릴 필요 없다. 그러는 대신 담론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나 대의가 뭐냐, 여성문제는 사소한 일이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은 그만두자. 이런 쟁점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어떤 쟁점을 다루든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마주보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협상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8강 후기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여성은 역사적으로도 소수이자 약자의 모습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여성이 신체적 측성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육아, 가사노동이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으로 변화, 남성들의 공감과 사회적 인식을 이끌어내길 바랍니다.

 

여성의 권리가 상당히 발전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소수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정당한 권리 확보를 위한 유익한 강좌였다.

 

누군가 여성 해방이 인간 해방의 마지막 단계라는 말을 했다.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에서 여성 해방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문지에기도 하다.

 

여성은 소수자이다. 소수자인 여성이 중심에 서서 문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남성은 더 교육 받아야 한다.

 

여성의 성이 착취당해 온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여성이든 남성이든 의식 속에 각인된 성 청체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만이 또 남성만이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입장보다 우리의 의식에 고착화된 이성애주의에 대한 비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